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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대표연설자에 趙淳/李會昌 총재 고심끝 결정

    ◎“경제정책 대안 집중 거론”/탈당설 등 관련 배려한듯 한나라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로 趙淳 명예총재를 확정했다.원외인 李會昌 총재를 대신할 적임자 선정 문제로 고민하던 당지도부는 29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전직 총재인 趙명예총재가 맡는 것이 상식과 순리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安商守 대변인이 밝혔다. 安대변인은 “경제와 예산문제가 중요한 시점이어서 경제전문가인 趙명예총재가 연설자로 나서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며 “경제 정책 대안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당내에는 徐廷和 전당대회의장이나 朴熺太 원내총무 등이 ‘대타’로 거론됐다.전 부총재 가운데 金德龍 의원도 강력한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다.최근 사정(司正)정국과 거리가 멀고 비주류 내에서 ‘구당(救黨)정신’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그러나 趙명예총재가 金전부총재의 계보모임인 ‘21세기 국가경영연구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점 등을 감안,趙명예총재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金전부총재도 완곡하게 고사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당안팎에서 꼬리를 무는 趙명예총재의 탈당설과 관련,李총재 등 주류쪽이 ‘당내 화합’ 차원에서 趙명예총재를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 ‘잠행’ 金德龍 기지개/계보모임 국가경영연구회 이사회

    ◎趙淳 명예회장으로 추대 ‘위상 과시’/“비주류인사 활동 뒷받침” 리더 자임 지난 8월31일 전당대회 이후 잠행해온 DR(金德龍 한나라당 전부총재)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金전부총재는 20일 오전 여의도 ‘21세기 국가경영연구회’회의실에서 이사회 및 정책세미나를 잇따라 열고 정치활동을 재개했다.국가경영연구회는 그가 이끄는 계보 모임이다. 정치적 경쟁상대랄 수 있는 金潤煥·李基澤 전 부총재가 검찰수사로 곤욕을 치르고있는 터에 대외활동을 본격 선언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또 다른 경쟁상대인 李漢東 전 부총재와 徐淸源 전 사무총장의 활동도 아직 두드러진게 없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탈당설이 끊이지 않는 趙淳 명예총재를 국가경영연구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趙명예총재를 붙드는 한편 계보 모임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金전부총재는 “앞으로는 당권에 연연하지 않고 의정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라며 “당내 개혁적 비주류 인사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비주류 리더’를 굳히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金命潤 金燦于 朴明煥 朴源弘 李揆澤 李信範 金映宣 의원 등 현역의원만 23명이 참석,그의 영향력이 시들지 않았음을 보여줬다.원외위원장 등도 50여명 나와 성황을 이뤘다.
  • JP 정치권·언론 직접 챙긴다

    ◎내각제 언급 강행… 자민련 위상되찾기 시도/“권력구조 논의할때 아니다” 일부여론 일축 金鍾泌 총리는 19일 상오 국회에 갔다.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대독하기 위해서다.점심은 국회 앞 한 음식점에서 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책위 지도부를 초청했다.양당의 金元吉·車秀明 정책위의장과 3개 정책조정위원장들이 모두 참석했다.하루 일정의 절반을 국회에서 보낸 셈이다. 지난 15일에는 양당 원내총무단을 초청했다.韓和甲·具天書 총무와 부총무 등 15명이 모였다.金총리는 이날 具총무에게 ‘특혜’를 주었다.명예총재로서 접대비를 적잖이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의원들을 열심히 만나라는 주문과 같다.스스로도 정치권을 부지런히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자민련의 최근 기류와 무관치 않다.자민련은 대변인을 바꿨다.李完九 대변인이 ‘입’이 됐다.언론보도 건수를 찾느라 무척 부산을 떤다.자민련이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다시 가까이 당겨놓음으로써 위상을 되찾으려는 시도다. 자민련은 20일 내각제 추진위를 발족한다.21일에는 당내 소장파 모임인 ‘비전 21’첫 세미나가 열린다.盧在鳳 전 총리가 초청연사다.내각제 소신을 갖고 있는 인사다.지향하는 방향이 한결같이 내각제다. 金총리는 최근 ‘강연정치’를 재개했다.내각제는 빼놓지 않는 메뉴다.한 당직자는 자제를 건의했다.권력구조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는 일부 여론을 의식해서 그랬다.하지만 金총리는 이를 일축하고 내각제 언급을 강행했다는 후문이다.한 측근은 “JP가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고 전했다. 정치권과 언론을 부쩍 챙기기 시작한 JP.노련한 정치인으로서 구상이 있을 것이다.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 북한영화 방영/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 9월 SBS에서 방영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에 이어 한달여만에 벽초(碧初) 홍명희의 원작소설을 극화한 ‘림꺽정(林巨正)’이 국영방송의 전파를 탔다. 5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지난 88년,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1부인 ‘의형제’편과 2부인 ‘결의’편이 제작되었고 작품이 상영되자 당시 평양방송은 ‘봉건 통치배들의 가혹한 수탈과 전횡·학정을 반대하여 일떠선 인물들의 생활상’을 내용으로 한 것임을 소개한 바 있다. 북한 영화의 주제는 당의 과업과 혁명의 지조,경제난 극복,대(對)한·미 모략비방등 북한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 강화로 유일사상 체계를 강조하는 점이 특징이다. 1972년에 제작된 ‘꽃파는 처녀’도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농민의 딸인 꽃분이를 내세워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인민들의 혁명투쟁이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통제의 무기로 활용해온 문학작품의 선정성을 ‘직접통제’에서 ‘간접통제’로 바꾸면서 80년대 이후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불후의 고전적 혁명영화’들이 탄생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와 ‘림꺽정’ 등이다. 최근들어 남북관계는 여러 방면에서 협력이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러나 남북간 문화교류는 85년 예술단 교환방문 이후 거의 맥이 끊겼고 지난 봄, 리틀엔젤스예술단 평양방문공연과 지난 6월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회)이 매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민족통일축전’을 열기로 합의한 것이 고작이다. 북한경제에 도움이 되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속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측의 문호개방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영화 상영은 남북문화교류의 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대학가에서는 ‘북한 바로알기’ 차원에서 4,5편의 영화들이 상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가 주는 감정과 언어표현,습관과 풍속의 해석은 민족동질성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미국영화가 판을 치고 일본영화가 수입개방된다는 마당에 우리 땅에서 상호이해와 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되는 북한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비록 북한은긴 단절 속에서 적으로 대치되어 있었으나 우리는 그 전통문화를 외면할 수 없다는 진한 피가 저변에 흐르기 때문이다. 어두웠던 둘 사이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햇볕이 비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요즘이다.
  • 여야 상임위 재조정 어떻게 됐나

    ◎‘노른자위’ 놓고 진통… 당직자 양보/여 장관의원·야 이회창쪽 인사가 기피委 떠안아/영입파들 수성… 정보·법사위선 전력·재판 논란 여야는 15일 국감 일주일을 앞두고 어렵사리 상임위 재조정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재조정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최후까지 지도부에 ‘항거’해 ‘노른자 상임위’를 차지했고 결국 당직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들의 상임위를 양보했다는 후문이다. ▷국민회의◁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주요 대상이 됐다.국민회의는 12명이 자리를 옮겼다.영입파 의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그대로 지킨 가운데 李在明 의원이 행정자치위에서 재경위로,張永喆 의원은 행정자치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위로 각각 이동했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서 보건복지위로,金琫鎬 국회부의장은 국방위에서 통일외교통상위로,韓和甲 총무는 법사위에서 행정자치위로 각각 상임위를 옮겼다.鄭東泳 대변인은 정무위에서 교육위로,농림해양수산위 林采正 국장근 金仁坤 의원은 각각 건교위와 정무위,보건복지위로 재배정됐다. 장관 겸직 의원들이 ‘기피 상임위’를 채웠다.千容宅 국방장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서 농림해양수산위로,朴相千 법무장관은 보건복지위에서 환경노동위로 옮겼다.당초 법사위에 배치됐다가 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인 사실이 드러나자 행자위로 옮겼던 李基文 의원이 다시 법사위로 복귀,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자민련◁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한 끝에 모두 5명이 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朴泰俊 총재는 정무위에서 농림해양수산위로,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 속했던 車秀明 정책위의장이 법사위로 옮겼다. 법사위 金復東 의원이 국방위로,행정자치위 鄭相千 의원과 李相晩 의원이 법사위와 정무위로 각각 이동했다. ▷한나라당◁ 吳陽順 의원이 운영위(겸임)에서 여성특위(겸임)로 옮겼다.대신 李佑宰 의원이 여성특위에서 빠졌다. 법사위 인원이 축소됨에 따라 辛相佑 국회부의장이 문화관광위로 재배치됐다.白南治 의원이 정무위에서 행정자치위로,‘경제통’인 趙淳 명예총재가 통일외교통상위에서 금융감독위를 주관하는 정무위로 이동했다.朴鍾根 曺雄奎 의원이 재경위와 교육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위로,趙重衍 尹源重 의원이 보건복지위와 건교위에서 행정자치위로 자리를 바꿨다. 당 지도부는 백두사업이나 국방부 인사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방위에 ‘전문 공격수’를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기부 공세의 장(場)으로 활용할 정보위(겸임)에는 金道彦 柳興洙 梁正圭 의원을 빼고 朴寬用 鄭亨根 洪準杓 의원을 포진,전력을 강화했다.그러나 국민회의가 “지방자치제 연기문건 파동으로 안기부에서 물러난 鄭의원을 정보위에 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논란이 예상된다.국회법에는 국가기밀을 다루는 정보위원에 한해 교섭단체 대표인 여야총무가 협의하거나 국회의장이 직권조정토록 돼 있다. 이번 자리옮김은 ‘친(親)李會昌’쪽 인사들이 행자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 등 비인기 상임위행(行)을 선뜻 받아들여 예상밖으로 순조롭게 이뤄졌다.
  • 홍명희 문학비 제막식/17일 충북 괴산 생가서

    벽초 홍명희의 문학비 제막식과 제3회 홍명희 문학제가 17일 오후 2시 충북 괴산 군민회관에서 열린다. 사계절출판사와 충북 민예총 문학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제막식과 문학제는 벽초 서거 30주기와 ‘임꺽정’ 연재 70주년을 맞은 해에 열려 의미를 더한다. 이날 제막식과 문학제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신경림 회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구중서 의장 등이 참석한다. (0431)258­2202
  • JP,부여지구당위원장 공식 사퇴

    ◎“후배에게 물려 줄때 됐다” 고향 포기/金龍煥 부총재 “내년말 내각제 꼭 관철” 金鍾泌 총리는 12일 오후 고향 부여에 갔다.그러나 마음은 오전부터 가 있었다.청와대 오찬행사 때문에 조금 늦었을 뿐이다.날씨가 흐려 타고 갈 헬기가 뜨지 못할 뻔했다.그는 헬기 기종을 바꿔서라도 가자고 고집했다. 金총리는 이날 자민련 부여지구당을 내놓았다.“의원은 지역구가 생명”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그다.8선(選)중 지역구 의원을 여섯차례 지냈다.지난 63년부터 유지해 온 그 ‘생명’을 포기했다.또다른 ‘정치적 생명’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金총리는 이날 “후배에게 넘겨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내각제를 위한 결단이라는 해석에는 “비약하지 말라”고 경계했다.하지만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金명예총재가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분명히 했다. 金수석부총재는 이날 “내년 말 내각제 개헌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강조했다.이어 “(내각제)약속은 지키게 만들어야지 지켜주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그런 뒤 “멋대로 이런 얘기를 했다”고 金총리에게 양해를 구했다.金총리는 “멋대로가 아니겠지”라고 받아넘겼다.복심(腹心)임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 듯했다. 金명예총재는 부여지구당 개편대회가 끝난 뒤 도착했다.朴泰俊총재도 마찬가지다.金수석부총재 등 부총재들이 총출동했다.참석한 현역 의원들은 20명이 훨씬 넘었다.명예총재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반영했다.그보다는 내각제개헌을 위한 ‘출정식’같기도 했다. 부여지구당은 金學元 의원이 물려받았다.한나라당에서 입당한 ‘대가’다. 그는 서울 성동을에서 당선됐다.지역구는 성동을,지구당은 부여가 됐다.우리 정치가 낳은 또하나의 기형(畸形)이다.
  • 국내 첫 가요사 박물관 선다

    ◎가요연구가 김점도씨 소장품 인천예총에 기증/SP·LP음반 11,600여장에 유랑극단시절의 포스터도/새달 17일 현판식후 본격준비/내년 6월이면 일반에 공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사 박물관이 인천에 세워진다. 한평생을 가요관련 자료 수집에 바쳐온 가요연구가 김점도씨(金占道·63)가 기증한 소장품 1만여점을 토대로한 것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회(이하 예총인천지회·회장 李鮮周)부설로 오는 10월17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설립준비에 들어갈 이 박물관은 국내 미공개 자료들을 더 모아 명실상부한 우리 가요사의 최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가요계의 자료광’김씨가 내놓은 자료는 일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대중가요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SP(78회전)음반 1,600여장,LP음반 1만여장과 유랑극단 시절의 포스터 100여점 등 양적인 의미 외에도 미공개된 자료가 많아 가치가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보컬그룹 ‘연희전문 4중창단’사진이나,국내 여성보컬1호 ‘저고리시스터’,대정11년(1922)시대의 노래책 등은국내에서 처음 빛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시는 내년 6월이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집에서 예총인천지회로 옮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는 김씨의 ‘30년 정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선 10월의 현판식 및 축하공연을 통해 공식출범한뒤 전국에 있는 미공개 자료들을 보태서 내년 상반기내에 100평 규모의 인천문화회관(인천시 숭의4동) 1,2전시실에 상설전시관을 개설할 계획이다. 박물관 건립의 공신은 김점도씨와 예총인천지회장 이선주씨. 이선주 회장은 “우선 가요사박물관을 세운뒤 사진,문학박물관 등을 차례로 세워 예술박물관을 건립하는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힌뒤 “벌써 소문이 나기 시작해 개인 소장가들이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와 작업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총인천지회 차원에서 추진한뒤 인천광역시나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가요 전통에 비추어 볼때 번듯한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 대중가요가‘천덕꾸러기’였음을 반증한다. ◎가요관련 자료 기증 김점도씨/“30년간 돈만 생기면 자료찾아 전국 헤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내 최초의 가요사박물관 설립을 눈앞에 둔 김점도씨(관장 위촉·KBS­TV ‘가요무대’ 자문위원)의 얼굴엔 지난 30년간의 ‘대중가요 짝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67년 밴드마스터로 활약할때 전주나 간주가 없는 악보가 이상해 원래의 음반이나 악보를 모으면서 시작한 외길인생이 벌써 30여년. 돈만 생기면 서울 인사동이나 전국 곳곳을 헤매면서 고귀한 자료를 찾아다녔다. “언젠가 인사동 고서점에서 SP음반 몇개를 발견하고는 주머니를 뒤져 샀는데 인천에 돌아올 차비가 없는거예요. 할수없이 주인에게 1,000원을 빌리기도 했지요”. 김씨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가요사는 상처투성이다. 특히 월북이나 피랍된 사람의 작품인 경우 이름이나 가사를 고쳐서 유통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쓰로 있다는 것이다. “가요‘알뜰한 당신’은 어부풍 작사·전수린 작곡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월북한 조명암씨가 작사한 것”이라며 당시 나온 ‘빅터 레코드’의 종이자켓을 보여준다. ‘선창’이나 ‘번지없는 주막’도 비슷한 사연이라고 덧붙인다. 이번 박물관 건립이 가요사를 새로 쓰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소장자나 유족들에게 달라고 하면 잘 주지않아 어려웠던 점이 이번 박물관 설립으로 수월해질 것”이라고 소박한 의미를 부여했다. 꾀가 많은 사람은 못할,실속도 없는 일에 매달리느라 살림은 부인이 도맡다시피 했고 “남은건 600만원 빚뿐”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흠뻑 배인 김씨의 굽은 어깨 너머로 곰팡내나는 ‘김씨의 분신’들이 고맙다는듯 빽빽이 어깨겯고 있었다.
  • “비상사태… 당운 건 일전 불사”/한나라,중진 소환에 강력 반발

    ◎비대위 첫회의 黨 중진 대거 참석/“의원직 총사퇴” 강경발언 쏟아져 한나라당은 李基澤 전 총재권한대행과 金重緯 전 정책위의장,李富榮 야당파괴저지투쟁위원장의 검찰 소환에 대해 당운을 걸고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당의 골간을 이룬 핵심 지도부의 심장에 비수(匕首)를 겨눈 것은 당 전체에 칼을 들이댄거나 마찬가지라며 발끈하고 있다.한마디로 ‘비상사태’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상적인 당 체제로는 여권의 탄압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 16일 하오 2시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가졌다.회의에는 李會昌 총재를 비롯,黃珞周·金守漢 전 국회의장,李전대행,金潤煥·金德龍·辛相佑 전 부총재,徐廷和 전당대회의장,당 3역,崔秉烈 당개혁특위원장,李야당파괴저지투쟁위원장 등 중진들이 참여했다. 趙淳 명예총재는 선약을 이유로,李漢東 전 부총재는 외유중이어서 나오지 못했다. 金命潤·李重載·權翊鉉 당 상임고문도 17일부터 이 회의에 참여한다. 첫 회의에서는 오는 21일 열기로 한 전국위원회를 잠정 연기키로 했으며 의원직을 던져야 한다는 ‘초강경발언’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또 李총재는 끝을 보는 자세로 단식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피력,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참석자들 역시 李총재를 중심으로 당이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검찰권의 남용을 집중 공격했다.검찰이 야당파괴 수단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흘려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가중처벌법”을 곧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이 법에는 언론도 당사자들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내용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도하면 공범관계에 있으므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당분간 여야 총무 접촉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날 상오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의 국회 방문 때 국회의장실에서 국민회의 韓和甲 총무를 만나고 온 朴熺太 총무는 “이제 총무가 설 땅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총무선에서 타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야가 영수회담을 통해 경색정국을 푸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 보폭 넓어진 金龍煥 부총재

    ◎TJ와 껄끄러운 관계 정리/소속의원들과 회동 등 분주/“내각제 전도사 되겠다” 의욕 자민련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지난주 金鍾泌 총리(JP)를 네차례 만났다.세차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같이했다.총리 집무실에서 독대도 한차례 했다.핵심 측근답게 늘 가까이 있다. 그는 지난 10일 소속의원 전원에게 저녁을 샀다.부부 동반으로 했다.金총리도 명예총재 자격으로 초청했다.처음 있는 일이다.지난 일요일에는 영입 인사들과 골프모임을 가졌다.金學元 의원,朴泰權 전 의원 등이 함께했다. 이처럼 동선(動線)이 눈에 띈다.보폭이 그전보다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다.朴泰俊 총재(TJ)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가 정리된 데 따른 변화다.金수석부총재는 TJ로부터 행보에 제동을 걸린 적이 있다.金復東 고문으로부터 수석부총재를 넘겨받을 때 그랬다.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다.金고문이 반발한 탓도 있다.하지만 그 뒤로 TJ의 ‘길들이기’흔적이 엿보였다.金수석부총재가 한마디 하면 JP의 흉중(胸中)으로 해석된다.金수석부총재도 이를 의식해 조심스럽게 처신해 왔다.국정협의회가 지난 12일 발족했다.金총리는 의장,朴총재는 당 대표로 참석한다.대신 ‘8인협의회’는 폐지됐다.金수석부총재가 당 대표로 참석하던 기구다.국민회의측과 마주앉아 신경전을 펴는 부담을 떨쳐냈다는 얘기다. 金수석부총재는 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도 내놓았다.“수석부총재가 이런 저런 자리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자유로운 위치에서 내각제 전도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그는 최근 한나라당 영입 대상 의원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 “내각제 위해 사심 버렸다”/金 총리,지구당 위장 사퇴

    ◎후임에 金學元 의원 자민련 명예총재인 金鍾泌 총리가 충남 부여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했다.朴俊炳 총장이 지난 7일 총리 집무실에 직접 가서 사퇴서를 받았다. 金총리는 지역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그런데 영입 인사를 배려한다면서 내놓았다.金龍煥 수석부총재는 “金총리가 내각제를 위해 사심을 버렸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내각제 개헌을 위한 ‘배수의 진’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자민련은 9일 당무회의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입당한 金學元 의원을 후임 위원장 직무대리로 임명한다.
  • ‘철의 노동자’ 꽃다지(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8)

    ◎노동가요­대중 묶어준 ‘노래패’/노동자들의 애환 서정적 선율에 담아 합법성 인정받으려 공륜과 힘겨운 싸움/첫 앨범 ‘가사변경’ 장벽 뚫고 원안수록 감격/‘희망의 노래’ 보안법위반 시비는 시대착오 노동자 집회나 대학가 시위에선 반드시 노동가요와 민중가요가 불려지게 마련이다.이 노동가요와 민중가요만을 보급해오고 있는 전문 노래패 ‘꽃다지’는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하지만 웬만한 노동가요와 민중가요치고 이들의 작품이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꽃다지’는 확고하게 자리잡았다.이처럼 큰 성과 뒤에는 눈물겨운 투쟁이 숨어 있다. 이 단체가 정식 출범한 것은 지난 92년 3월.하지만 그 뿌리는 전국에서 민주노조 결성을 위한 총파업이 거행되던 87년 7월부터 9월까지 현장 문예운동의 첨단에 섰던 두 노래패로 거슬러 올라간다.노동자노래단(노노단)과 대학 노래패 출신들의 모임인 예울림이 그것. 당시만 해도 노동가요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주로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그러나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입에 올려지던 관념적인 이 노래들은 구사대가 몽둥이를 휘두르던 급박한 상황엔 맞지 않았다.노동가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노노단에서 노래운동을 벌이던 金호철씨와 현재 아라리요민요연구회 대표인 金애영씨가 ‘파업가’‘노동조합가’‘민주노조사수가’ 등을 만든 게 이때다. 88년 가을 ‘총파업가’를 실은 비합법 테이프는 만든지 3∼4개월만에 20만개가 팔려나갔다.방송을 타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주문이 쇄도해 매일 밤을 새면서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다.이때부터 ‘운동권 노래’는 학생운동,지식인 위주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이후 만들어진 89년의 ‘단결투쟁가’와 91년의 ‘철의 노동자’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는 레퍼터리다. 그러나 90년 전노협이 결성되고 민자당이 출범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고 노동자집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이전의 투쟁가와는 달리 생활공간에서 불려질 수 있는 서정적인 노동가요의 필요성이 부각됐다.그래서 노동자노래단과 예울림이 합쳐진 게 바로 ‘꽃다지’다.노노단과 예울림에서 모두 33명이 활동을 시작한다.그러나 이들의 노래가 합법적으로 불려지기에는 상황이 너무 험했다.92년과 93년 사이에 각각 15곡씩이 실린 테이프 1·2집을 내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이나 노동집회현장에 내다 팔았다.이렇게 구전되던 이들의 노래는 마침내 94년 첫 공식음반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꽃다지’는 이 첫 음반으로 뼈아픈 사연을 겪게 된다.공윤 심의에 15곡을 올렸는데 4곡을 빼곤 모두 반려됐다.가사를 바꿔 내라는 것이었다.15곡은 6개월전부터 2,000여명의 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선곡한 것들.공륜을 찾아가 항의했다.“풀뿌리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문민정부의 모순이 불거진 것이지요.수십만명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바꾸라는 것은 대중정서를 훼손하는 우스운 짓입니다.심의 싸움은 사실상 음반회사의 몫이지만 그때 분위기상 음반사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지지 않으려 했고 어쩔수 없이 우리가 투쟁에 나섰습니다”(꽃다지 대표 李銀珍·33). 재심의가 열렸다.이번엔 ‘단결투쟁가’ 한곡만 빼면 통과시키겠다는 양보를 얻어냈다.‘단결투쟁가’는 그 당시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노래.문화평론가들의 자문을 구해 소견서를 첨부해 제출하며 ‘단결투쟁가’를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마침내 승리를 이끌어 냈다.모든 노래가 실릴 수 있게 됐다.그래서 나온게 94년 5월 노동절에 맞춰 선을 보인 첫 음반이다.‘꽃다지’ 창립 1년만의 일이다. 노래는 흔히 불려졌지만 이들의 무대는 좁았다.첫 음반이 나오기 한 달 전에야 처음 공식적인 무대에 설 수 있었다.민노총이 주최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이 그것이다.여러 노래패의 연합공연이긴 하지만 꽃다지로선 의미있는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이후 전국의 대학 강당과 소극장,운동장,공원등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그러던중 96년 대표가 구속되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 대표 李銀珍씨는 연세대 재학시절부터 노래운동에 뛰어든 전문가.90년 전노협 노래책 ‘진짜 노동자’와 92년부터 민맥출판사에 펴낸 노래책 ‘희망의 노래’ 4집의 선곡·감수를 맡았다.그런데 이 ‘희망의 노래’가 국가보안법에 걸려들었다.노래 가사가 북한의 노선과 맞물린다는 이유였다. 96년 2월 장안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갇혔다.이기간 내내 꽃다지 회원들은 매일 낮 12시 탑골공원에서 시위를 벌였고 李씨는 결국 50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80년대부터 대학가에서 흔히 불려져 음반으로 발표됐던 노래들을 문제삼은 것은 시대착오적인 조치였다고 봅니다.6월 민주화항쟁을 담은 노래마저도 문제시됐는데 그렇다면 6월항쟁도 불법이란 말인가요.합법적으로 나와 유통되던 노래책을 뒤늦게 묶는 조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李銀珍 대표) 지난해 낸 2집 음반과 싱글음반은 모두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했다.지금까지 3집에 걸쳐 음반을 내면서 전국에서 가진 크고 작은 공연만도 1,800여회.방송에서도 이들의 노래는 드문드문 들려진다.전국의 노래패중 가장 많은 가수와 연주자,기획자를 확보한채 활발하게 움직이는 전문 노래패이기도 하다.“이젠 집회나 대학축제때 분위기를 돋우는 도구적인 노래를 벗어나 안방과 일반 모임에서도 불려지는 레퍼터리로 정착해야 합니다.노동가요와 민중가요가 거부감없이 입에 올려질 정도로 노래와 일반인들의 인식이 모두 성숙했습니다.시민들이 스스로 문화의 장르를 찾는 능력이 쌓일때 문화는 성숙해가는 게 아닐까요”(李銀珍 대표) ◎금지된 사연들/대중화된 노래 가사 바꾸라니…/1집 대부분 방송금지 ‘족쇄’/‘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서정성 극치 ‘꽃다지’의 레퍼터리는 급박한 시위현장의 합창이 전부인가.87년 노동자 총파업 속에서 선동적으로 진행되던 노래운동은 90년 노동자 탄압에 밀려 서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다.물론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숱한 노동·민중가요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분위기와 통일에의 꿈을 분명히 담고 있다.지난 94년 공윤심의에서 모두 통과한 1집음반의 일부가 방송에서 철퇴를 맞았던 사연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KBS의 경우 1집음반중 ‘단결투쟁가’를 탈락시켰고 MBC는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거부했다.“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우리는 가리라 기필코 가리라 승리의 한길로”(단결투쟁가),“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서울에서 평양까지).대중들의 민감한 반응을 의식해야만 하는 방송의 입장에선 당시 분위기상 선뜻 전파에 실을 수 없는 노래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부른 노래중 적지않은 것들이 방송을 탄다.‘바위처럼’‘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전화카드 한장’‘통일이 그리워’가 그것들이다.“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바위처럼),“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전화를 하라고 내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전화카드 한장). 작가와 단체만으로도 탈락했던 과거 심의 잣대라면 ‘꽃다지’의 노래는 무조건 거세돼야만 한다.그러나 서정적인 양식을 갖추고 파급됐던 이들의 노래들은 여과없이 안방에도 들어가고 있다.사람들을 위해 꽃과 잎,씨앗을 모두 바치며 사는 한해살이 풀 꽃다지.결국 한해살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노래패 ‘꽃다지’에게도 얼마든지 있다고 볼 수 있다. ◎꽃다지의 길 ▲92년 꽃다지 창립.연세대 대강당서 제1회 콘서트. ▲93년 세종대 대양홀,예술극장 한마당서 제2·3회 콘서트. 효창운동장서 전노협주최 전국노동자대회 초청공연. ▲94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서 민예총 주최 ‘다시 서는 봄’ 공연 출연.합법음반 제1집 발매.세종문화회관 대강당서 ‘노래판굿 꽃다지’ 공연 출연.마당세실극장서 제4회 콘서트. ▲95년 소극장 오늘서 제5회 콘서트.창무포스크극장서 제6회 콘서트.연세대 대강당서 민노총 출범 축하공연.마당 세실극장서 제7회 콘서트. ▲96년 두레극장,마당 세실극장서 제8,9회 콘서트. ▲97년 제2집 앨범 발매.마당 세실극장,대학로 라이브1관에서 제10,11회 콘서트.싱글음반 ‘세상을 바꾸자’ 발매.북한어린이돕기 거리공연. ▲98년 동숭아트센터서 콘서트
  • 자민련 ‘지지율 올리기’ 총력

    ◎朴正熙 기념관 건립 등 30대 과제 선정/젊은층 공략으로 내각제 분위기 조성 자민련이 ‘30대 과제’를 내놓았다. 지지율 제고를 위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한자리 수 지지율을 두자리로 올리는 게 1단계 목표다. 종착점은 내각제 완결로 되어 있다. 30대 과제는 ‘제몫찾기’로부터 시작한다. 공동정부운영협의회를 통한 실질적 권한 확보가 핵심이다. ‘국무총리 지위와 권한 행사법’제정 필요성도 제기했다. 명예총재인 金鍾泌 총리가 고개를 내저은 사안이어서 눈길을 끈다. 정체성 확립부문에서는 내각제 추진이 요체다. 경제청문회는 문민정부와의 차별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당 부설연구소를 설치,정책개발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 이미지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는 갖가지다. 朴正熙가(家)의 결집,朴正熙 기념관 건립,‘아!朴正熙 뮤지컬’등 ‘朴正熙되찾기운동’이 이채롭다. 소장파 의원 및 사무처 요원의 출신대학 전담제는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다. 홍보활동 차원에서는 미디어전략팀 운영,PC통신 홈페이지 개선,젊은 지식층대상 저널발간 등을 내놓았다. 당보는 1만부에서 6만부 수준으로 늘려야 할 것으로 강조됐다. 또 이동민원상담소 설치,도시와 농촌지구당 교환운동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새 인물 영입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대학생 인턴제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는 그중 하나다. 마포 중앙당사를 조기 이전하자는 주장이 들어 있다. 지난 6월 현재 자민련 지지율은 3.7%. 여론조사기관인 R&R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다. 12.7%가 지난 95년 창당 이후 최고였다. 지난해 1월 金鍾泌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때 잠시 기록했다. 앞으로 얼마만큼 올라갈지는 미지수다.
  • 한나라 총재 李會昌씨/1차 투표서 55.7% 득표

    ◎대화정치 천명… 영수회담 제의 한나라당은 31일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李會昌 명예총재를 새 총재로 선출하고,趙淳 전 총재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李총재는 경선 1차 투표에서 총 유효투표 7,326표 가운데 55.7%인 4,083표를 얻어 당선됐다.전체 대의원은 8,354명이다. 李漢東 후보는 1,554표(21.2%),金德龍 후보는 1,283표(17.5%),徐淸源 후보는 392표(5.3%)를 각각 얻었다. 이로써 李총재는 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한 뒤 명예총재로 물러났다가 8개월만에 다시 총재로 정치일선에 복귀했으며,그동안 과도체제로 운영됐던 한나라당도 李총재 중심의 지도체제를 이루게 됐다. 李총재는 총재 수락연설에서 “국익과 민생을 외면한 소모적인 대결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타협의 생산적인 정치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李총재는 이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면 정부여당에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면서 “내일이라도 金大中 대통령과 만나 여야를 떠나 솔직하고 진지하게 국정을 논의할 용의가있다”고 영수회담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金대통령과 여당은 권력을 앞세운 야당파괴공작을 즉각 중단하고,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해줄 것”을 촉구했다. 李총재는 또 빠른 시간 안에 부총재를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李총재의 여야 영수회담 제안과 관련,“국난극복을 위해서도 여야간 대화는 필요한 일”이라면서 “내부에서 검토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 한나라號 선장 李會昌씨 유력/31일 총재 경선… 후보들의 다짐

    ◎李會昌­‘1차서 승리’ 장담속 긴장/金德龍­黨 결속·재집권 위해 헌신/李漢東­최후까지 黨과 함께 운명/徐淸源­계보·줄세우기 정치 타파 거대 야당 ‘한나라호(號)’의 ‘선장’은 누가 될까. 총재 경선에 나선 李會昌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는 30일 각각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갖고 막판 지지를 호소했다. 李會昌 후보가 1차 투표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세 후보는 2차 투표까지 염두에 두고 표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후보 기호순으로 31일 경선에 임하는 다짐과 각오를 들어본다. ▷李會昌 후보◁ 세 후보와 달리 공식 기자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대신 여의도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재경선에 임하는 각오와 소회를 피력했다. 李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총재가 되든 강한 야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당이 단합·화합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당원의 뜻을 저버리고 대국민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후보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며 대의원들을 접촉해 보니 대부분 당이변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며 “특히 처지가 어려운 지역일수록 야당의 확실한 위상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당원들의 기대와 요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1차투표에서 55∼60%를 득표,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자신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李漢東 후보◁ 李會昌 후보를 직접 겨냥해 공세를 퍼부었다. 李후보는 “유감스럽게도 이번 전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3가지 기본조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과장된 ‘대세론’과 명분없는 ‘줄세우기’,李會昌후보와 李基澤 총재권한대행의 밀약설,‘李會昌­金潤煥­李基澤’ 3인의 밀실합의설 등을 공략했다. 李후보는 “당내 민주화를 짓밟는 패권주의 정치행태와 불공정 경선,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당권분할 의도 등은 3金정치의 표본이며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국민 여망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자신과 관련한 ‘金大中 대통령 접촉설’이나 ‘경선패배 후 탈당설’등을 “허무맹랑한 흑색선전”이라고 단정하고 “마지막까지 당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1차에서 1위를 확보,최종 승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金德龍후보◁ 金후보는 “여권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여권의 패권주의에 단호히 맞서 당의 결속과 재집권을 위해 헌신하는 총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일부 후보를 겨냥,“독선적 자세로 ‘쫓아낼 사람,쫓아내겠다’고 호언하거나 내각제 개헌 문제 등으로 경선 이후 정치 행보가 불투명한 후보에게는 표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위대한 ‘대의원 혁명’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만에 하나 총재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당을 지키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겠다”고 경선 결과에 승복할 뜻을 분명히 했다. 1차투표에서 40% 안팎의 득표율로 2위를 확보,2차투표에서 역전하겠다는 전략이다. ▷徐淸源 후보◁ 徐후보는 “우리 당은 이제 더이상 몇몇 계파 보스의 정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른바 ‘대세론’이라는 것은 한낱 허구에 불과하며,‘대세’가 있다면 특정인이 총재가 되는 대세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대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徐후보는 “개인의 기득권이나 지키고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 있었다면 경선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총재가 되면 계보정치와 국회의원들을 줄세우는 구태정치,돈쓰는 정치,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정치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또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에 끝까지 남아 제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1차에서 25%의 득표로 2위를 차지,2차투표에서 ‘이변’을 기대하고 있다. ◎D­1 캠프별 움직임/대의원 숙소 돌며 한표 호소/反李 3후보 연대 강력 시사 ‘8·31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30일 한나라당은 행사준비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총재경선에 나선 네 명의 후보들도 자정이 되도록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의 숙소를 돌며 한 표를 부탁했다. ○李會昌 후보 표 점검 계속 ○…李會昌 후보에 비해 ‘세불리’를 인정하고 있는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등 3명은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대의원 혁명’을 역설했다. 이들은 2차투표까지 가면 ‘반 李會昌표’가 결집해 ‘대의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3人 연대’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했다. 반면 李會昌 후보는 여의도 부국증권빌딩 사무실에서 辛卿植 비서실장,梁正圭 河舜鳳 金鎭載 의원,尹汝雋 전 환경부장관 등 핵심참모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략회의를 갖고,표점검을 계속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핵심참모들과 맨투맨작전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6,000여명은 한강호텔,팔레스호텔,올림픽파크텔 등 42개 숙소에 묵었다. 4명의 후보는 핵심 참모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이들 숙소를 돌며 ‘맨투맨식’작전을 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후보들에게 전당대회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는 등 경선보다는 앞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고속도휴계소서 선거운동 ○…金德龍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에서 지방 대의원들을 맞는 이색 선거운동을 펼쳐 눈길을 모았다. 이어 잠실 롯데월드에서 수도권지역 대의원 1,000여명(후보측 주장)이 참가한 가운데 필승 전진대회를 갖고 ‘대의원 혁명’을 다짐했다. ○…鄭昌和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국 직원들은 행사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 예행연습을 갖는 등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31일 전당대회는 조촐한 식전행사에 이어 孟亨奎 의원의 사회로 성원 보고,徐廷和 전당대회의장의 개회선언,총재 선출순으로 진행된다. ○…명예총재와 부총재 지명문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당초 李會昌 후보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부총재 지명문제가 전대 이후로 연기된 듯 했으나 세 후보의 반발로 일단 방향을 선회했다. 31일 상오 8시 당무회의에서 재론키로 했으나 결과는 미지수다.
  • 대정부질문 초점­달라진 국회 이모저모

    ◎여야 극한대립 사라지고 내각 답변에 여유/의원들 질문앞서 ‘실세총리’에 깍듯이 인사 27일 마감된 국회 대정부 질문은 여느 때와 달랐다. ‘실세총리’에서 발원된 변화다. 내각은 무게가 실렸고,안정감을 물씬 풍겼다. 여야는 맞섰지만 극한 대립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보다 실세총리 증후가 곳곳에 나타났다. 金총리의 답변은 여유가 넘쳤다. 때로는 질문 의원들을 가르치듯 했다. 장관들이 건네주는 메모지에 별로 의존하지 않았다. 의원들의 ‘공손함’도 눈에 띄었다. 자민련 邊雄田 의원은 명예총재인 金총리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질문을 시작했다. 국민회의 張在植 의원은 27일 경제분야 질문에 앞서 金총리에게 90도로 인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예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치분야 질문에서는 보충질의가 없었다. 여야간 야유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 徐勳 의원이 “의회 민주주의를 쿠데타로 짓밟고 공작정치의 서막을 연 장본인”이라고 金총리를 비난하면서 단 한차례 연출됐다. 자민련 金鍾學 李在善 의원이 “내려와”라고 고성으로 맞섰지만 별탈없이 넘어갔다. 오는 3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열기를 식히는 요인이 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잦은 이석으로 본회의장은 썰렁했다. 참석 의원들이 많을 때도 130석 안팎이 고작이었다.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朴槿惠 의원이 이채를 띄었다. 수박색 투피스 정장을 차려 입고 金총리의 답변을 빠짐없이 경청했다. 지난 17일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 때 애써 金총리를 외면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실세총리에 걸맞게 일부 장관들의 소신답변도 돋보였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있다” “없다”식의 짤막한 답변과 함께 민감한 사안에는 장황한 설명까지 늘어놓았다. 반면 李起浩 노동부장관은 현대자동차 사태에 혼줄이 나서인지 답변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 “YS 父子 비자금 파일 있다는데…”

    ◎邊雄田 자민련 대변인 대정부질문/朴 법무장관에게 공개여부 집중추궁 자민련 邊雄田 대변인이 ‘YS 부자 비자금파일’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26일 정치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주장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과 賢哲씨 부자의 비자금 관련 자료의 실존 및 공개여부를 문제삼았다. 邊대변인은 이날 “金泳三 정권 시절 한보와 金賢哲씨 수사 과정에서 92년 대선 잔여금과 金전대통령 부자의 비자금 관련자료가 파일로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공개여부를 朴相千 법무장관에 추궁했다. 경제청문회도 촉구했다. 그는 “200만 실직자가 거리에 나 앉고 있는데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느냐”고 몰아세웠다. 이어 “金대통령 부자가 그 책임을 통감해 먼저 국민앞에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부정한 돈이 있다면 그것을 공개하고 국가에 자진 헌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朴相千 법무장관은 “金전대통령 부자 파일은 존재하지 않으면 검찰은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자민련은 金전대통령 시절 ‘핍박’을 받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 金鍾泌 명예총재 朴泰俊 총재 朴哲彦 부총재 李健介 의원 등이 대표격이다. 그래서인지 자민련은 金전대통령에 대한 압박에 적극적인 분위기다.
  • JP/23년만의 국회답변 “허 참”

    ◎野 사퇴주장에 “할일 더있다” 일축 金鍾泌 총리는 26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대표 연설을 했던 자리다. 이날은 총리 자격으로 대정부 질문에 임했다. 지난 75년 12월 사퇴한 뒤 23년 만이다. 당시 4년6개월동안 역임했다. 金총리는 여느 총리와 다른 위상으로 답변대에 올랐다. 무엇보다 자민련 명예총재이자 공동정권의 한 축이다. ‘대독총리’‘허세총리’라는 비아냥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세총리’‘정치총리’라는 수식어가 대신하고 있다. 또 8선(選) 의원이다. 9선인 朴浚圭 국회의장에 이어 두번째 다선이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거친 공격을 받아넘겨야 했다. 사전 입수된 질의서에 인신공격성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고는 “허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불쾌감도 다소 엿보인다. 답변에서 때로는 정면 돌파로,때로는 비켜가기로 대처했다. 답변 1시간내내 노련함이 엿보였다. 상대방에 이해를 구하는 특유의 ‘JP어법(語法)’을 곁들었다.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강의’성격을 물씬 풍겼다. 먼저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있다”고 한나라당 徐勳 의원의 사퇴주장을 일축했다. 현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徐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지지 않아 그런 지적을 주신 것으로 안다”며 비켜가기도 했다.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서는 부쩍 힘을 넣었다. 그는 “지금은 경제문제 등으로 논의를 삼가고 있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채택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작심(作心)한 듯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며 ‘2인자론’도 폈다. 그리고는 “金大中 대통령만틈 더 잘한 분을 찾을 수 없다”고 극구 칭찬했다.
  • 한나라 당권경쟁 지역분할 양상

    ◎“텃밭 대의원 표 결집력이 승패 좌우”/지지위원장 2·3중 분류 혼전 예상 한나라당 당권경쟁이 지역간 표갈림 양상을 띨 조짐이다. 각 후보마다 서로 다른 지역 기반을 토대로 텃밭 다지기와 상대 지역 허물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별 대의원 표의 ‘결집력’이 주요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공식 유세 첫날인 24일 후보들이 각각 전략 및 취약지역으로 직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李會昌 명예총재는 ‘대세론’으로,다른 세 후보는 ‘대의원 혁명론’으로 대심(代心·대의원의 票心)을 공략했다. 특히 각 진영은 지지 위원장 분석에서부터 신경전이 날카롭다. 조사결과 2·3중으로 분류된 인사도 많다. 특히 각 주자쪽 주장대로라면 당내 원내외 위원장은 실제 248명의 1.6배가 넘는 406명에 이르는 셈이다. 李명예총재쪽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을 ‘절대 우세’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날 李基澤 총재권한대행 계파인 ‘민주동우회’의 지지선언을 계기로 ‘李會昌­金潤煥­李基澤’의 3자연대를 통한 수도권­대구·경북­부산·경남 연합전선을최대한 가동할 작정이다. 영남권 대의원 표의 60∼70%만 뭉치면 낙승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혼전’으로 분류한 인천,광주,대전,경기 등도 집중적으로 파고 들 태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李명예총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李漢東 전 부총재는 경기,인천을 ‘절대 우세’지역으로 자신한다. 경기,인천 대의원의 표쏠림 현상이 70∼80%로 다른 지역보다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 ‘열세’로 분류한 부산·경남,대구·경북,호남은 이번 주 집중 순회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생각이다. 대구·경북은 26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공략할 예정이다. 金德龍 전 부총재는 서울과 전남·북을 ‘절대 우세’지역으로 여긴다. 이날 공식 유세전의 첫 장소로 태생지인 전북을 선택한 것도 텃밭 사수(死守)를 통해 세확산을 노리겠다는 의도다. 金전부총재는 인천,강원,부산·경남에서도 선전(善戰)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徐淸源 전 사무총장은 ‘절대 우세’지역 없이 부산·경남,강원에서 ‘우세’를 보인다는 주장이다. 부산·경남 민주계 대의원들의 지지를 기대한다. 특히 이날 후보등록 직후 부산으로 직행,‘1박’하며 대의원들을 접촉했다.
  • 평가와 전망(金 대통령 취임 6개월:上)

    ◎경제개혁·세일즈 외교 순탄한 ‘출항’/외환보유고 급증… 환율·금리 안정/총체적 국정개혁 숨가쁘게 추진/실업자 증가·정치권 개혁 미진한게 흠 金大中 대통령이 25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다. 미증유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속에서 출발한 ‘국민의 정부’ 6개월은 환란(換亂) 극복과 IMF체제 탈출을 위한 총체적 국정개혁 추진으로 요약된다. 특히 여야간 정권교체는 ‘개혁세력’의 제도적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기업·금융·정부·노동시장 등 4대 개혁을 숨가쁘게 추진해온 게 사실이다. 金대통령이 제창한 ‘제2의 건국’은 바로 이같은 국정개혁과 의식혁명을 통해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자는 종합적인 국정 청사진인 셈이다. 당선자 시절부터 숱한 외국 투자자들을 만나온 金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 등을 상대로 이른바 ‘세일즈외교’를 펼쳤다. 발등의 불인 우리의 대외신인도 제고와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해서였다. 그 결과,지난해말 39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 외환보유고가 8월에는 사상 최대규모인 410억달러에이름으로써 일단 환란의 위기를 넘겼다. 엔저(円低) 등 국제적 장애요인에도 불구,환율·금리·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경상수지 적자 또한 올 상반기중 224억달러의 흑자로 반전되기에 이르렀다. 또 상호지급보증 금지 등 5대 원칙에 입각한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5개 은행 퇴출,정부조직 개편 및 공기업 민영화 등의 경영혁신 노력은 낡은 경제구조의 대수술로 이해되고 있다.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난마처럼 얽힌 경제분야에서 속도를 잃지 않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절반은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국정운영의 시스템 변화.‘뉴리더십’으로 표현되는 金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를 활성화시키고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폭도 크게 넓혔다. 절차와 증거를 중시,인치(人治)가 아닌 법치의 리더십도 꾸준히 구축해왔고,비선(秘線)이 아닌 공식창구를 활용함으로써 정책결정의 투명성도 제고했다는 평가이다. 정경분리 원칙하의 대북정책도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으로 ‘햇볕론’이 도마위에 오르긴 했으나 상황에 따라 냉·온탕을 거듭하던 전정권의 대북정책과 대별된다. 다만 실업자 문제와 수출,정치권 개혁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혁주체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점도 우려하는 이가 많다. 취임초 야대(野大)에 발목이 잡혀 정치권 개혁은 물론 개혁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또 정리해고에 정치적 논리로 접근,재계와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일각에서 정책의 우선순위에 회의적인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金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6대 국정과제의 틀 안에서 정치권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고,실업자 대책의 기본골격을 밝힌 것도 이를 감안한 것이다. 특히 제2건국 운동을 범시민단체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전 국민을 개혁주체로 삼으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국민통합을 위한 개혁성과의 가시화이다. ◎與野 엇갈린 평가/“혼신의 힘으로 국가부도 막았다”/“독단과 독선 과거 권위주의 능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DJ정부는 6개월동안,정치안정과 경제재건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DJ정부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도위기에 몰렸던 한국호를 살려냈다”며 집권 6개월을 집약했다. 정권교체 당시 38억달러에 불과한 외환보유고가 400억달러를 넘어섰고 환율과 금리도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반면 한나라당 李會昌 명예총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능가할 만큼 독단과 독선이 횡행했다”며 평가절하했다. 여권의 독주와 정책 난조가 정치불안과 경제악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이다. ‘정치개혁 미흡’에 대해선 여야 모두 같은 시각이다. 반면 그 원인을 놓고 책임전가 공방이 한창이다.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야당이 개혁작업을 가로막고 있다”고 질책했지만 한나라당 李基澤 총재대행은 “의회주의를 무시한 金大中 대통령의 힘의 정치가 여야의 대치정국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여야의 시각차에도 불구,DJ정권은 정치권 구조조정,즉 정치개혁을 최우선 당면과제로 설정했다. 여권은 내년 상반기까지 21세기 정치모델을 제시하면서 국회·정당·선거제도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정계개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나라당 8·31 전당대회 이후 20명선의 야당의원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여대야소 구도 정착이다. 장기적으로 동야서여(東野西與) 구도 허물기와 지역분할의 타파로 잡았다. ‘정치권 사정’과 경제청문회를 정치개혁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경제청문회를 통해 정경유착의 실상을 공개하고 구여권 비리인사들을 압박하겠다는 복안이다. ◎경제 이렇게 달라졌다/환란극복·관치체질 개선/연초 20% 웃돌던 시중금리 10% 밑돌고 부실금융·기업퇴출… 공기업 과감히 축소 새 정부의 6개월간 실적은 우선 외환위기 극복과 함께 경제부문의 개혁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면한 외환부족사태를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으로 해결하면서 그동안 외환위기를 초래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에 중점을 두어왔다. 바닥이 보이던 외환보유고(작년말 89억달러)가 8월 중순 400억달러를 넘고 대(對) 달러 환율은 도리어 내려가 적어도 외환위기는 한숨 돌린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20%를 웃돌던 시중금리 역시 10%를 밑돌고 있다. 물가도 안정세이며 무역은 상반기까지 흑자를 보였다. 새 정부는 적어도 외형상 외환과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고할 수 있다. 정부는 또 금융,기업,노동시장과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관치경제’의 체질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부실한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과 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다. 근로자 해고,공기업 축소도 동시에 진행돼 왔다. 재벌의 구조개혁도 추진돼 재벌간에 경쟁력없는 대규모 사업의 교환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정부의 압박도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실토하듯 ‘새 정부가 가장 예상치 못한 것이 바로 실업자 급증과 실물경제의 급격한 하락’이다. 정부가 앞으로 직면할 가장 큰 현안은 실물경기의 하락. 내수경기가 극도의 침체를 겪고 있으며 수출 역시 흑자행진 속에서도 지난 5월부터 전년대비 감소세로 돌아서 최근에는 두자릿수 낙폭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까지 감소할 경우 외채부담을 덜 수 있는 길도 막막해진다. 지금까지 정부는 ‘무엇보다 구조조정이 우선’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9월말까지 매듭짓고 대기업의 구조조정도 마무리되면 올 4분기에는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섣부른 실물경기 부양으로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실업. 6월말 현재 7%의 실업률,150만명의 실업자는 앞으로 더 늘 전망이다. 자칫 경제불안이 사회불안으로 이어질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金 대통령 취임 6개월 일지 ▲98. 2.25=제15대 대통령 취임. ▲2.28=정부조직법 공포. ▲3.3=高建 총리 제청으로 조각. ▲3.30∼4.5=ASEM참석 위한 영국 방문. ▲4.20=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5대 개혁과제의 충실한 이행 등6개항에 합의. ▲4.30=朱良子 보건복지부장관을 경질,金慕妊 신임장관 임명. ▲5.10=‘국민과의 TV대화’ ▲5.18=李康來 정무 임명 등 청와대 수석 일부를 교체. ▲6. 4=지방선거 ▲6. 5=취임 100일 회견. ▲6.6∼14=미국 국빈 방문. ▲6.16=鄭周永 현대명예회장,소 500마리 몰고 방북. ▲6.18=55개 퇴출기업 명단 발표. ▲6.22=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발생. ▲6.29=5개 퇴출은행 및 7개 조건부승인 은행 명단 발표. ▲7.31=전직 대통령 부부 청와대로 초청 만찬. ▲8. 4=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 경질,洪淳瑛 신임장관 임명. ▲8.15=건국 50주년 경축식에서 제2의 건국운동 주창. 7,700명 특별사면,복권,가석방. ▲8.17=金鍾泌 총리 국회 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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