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예총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경보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동해상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9
  • 광복60년 문화사업위장 황병기

    문화관광부는 27일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69)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광복 60주년 기념문화사업 추진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추진위원으로는 강형철 문예진흥원 사무총장, 김종헌 예총 사무총장, 김상철 민예총 사무총장, 홍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한태숙 극단 물리 대표, 이선주 예총 인천시지회장, 최준호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권중천 광복회 문화부장, 황준연 서울대 음대 교수, 임병수 문화부 차관보,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추진단장)이 위촉됐다.
  • [韓日협정 문서 공개] 한·일협정 주역들 “…”

    [韓日협정 문서 공개] 한·일협정 주역들 “…”

    애써 묻어둔 기억을 들추다 무슨 실수라도 할까 주저한 것일까? 65년 한일협정 서명의 주역이나 핵심 실무자들은 문서 일부가 공개된 17일 하나같이 입을 다물거나 말을 아꼈다. 당시 협상 주역은 자민련 김종필(JP)전 명예총재와 이동원 전 외무장관.JP는 중앙정보부장과 공화당 의장을 역임하면서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양국 회담의 기본원칙을 담은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했고 오노 반보쿠 일본 자민당 부총재 등과의 막후 협상을 맡았다. 이 전 장관은 일본의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상과 한일관계 기본협정 가조인 및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협상의 주역이었다. ●JP 방일중… “할말없고 하지도 않을것” JP는 지난 7일 재일거류민단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 중이다. 김상윤 특보는 이날 “24일께 귀국할 예정인데 이야기할 게 없을 것이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면서 “정부가 공개한 문서에 대해 이야기할 게 있겠느냐.”고 JP의 심정을 전했다. ●이동원 前외교 “말할 입장 아니다” 이동원 전 장관도 함구했다. 최갑섭 비서는 “김대중 정권 이후 일체 손을 뗐고 3∼4전 전부터는 인터뷰도 않고 있다.”면서 협정 서명 상황과 관련 ‘침묵의 이유’에 대해 “혹시 말실수를 할까라는 부담감에다 함부로 말할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이메일로 질의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응답이 없었다. 또 다른 협상의 주역으로 당시 주일 대표부 대사로 회담을 마무리지은 김동조 전 외무장관은 지난해 타계했다.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 과장으로 핵심 실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최광수 전 외무부 장관은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정빈 前외교 “문안작성만… 아는것 없다” 외무부 조약과 서기관이었던 이정빈 전 외교부 장관은 “조약과는 협정 문안을 작성하는 게 주 임무여서 교섭 과정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 전 장관은 “다만 서명 반대 시위가 거세게 몰아치던 소용돌이 속에서 1달 전부터 도쿄 힐튼호텔 지하실에서 양국 실무자 30여명이 만나 마지막 문안 작업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전 장관은 또 “문서 원본만 20∼30개로 가방 2개를 꽉 채울 분량이어서 시간 내 정리하기가 힘들었다.”면서 “검토 과정에서 착오·오타도 발견했지만 시간에 쫓겨 일단 서명한 뒤 사후에 수정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고 들려 주었다. 이종수 박준석기자 vielee@seoul.co.kr
  • 소설 ‘김일성’ 펴낸 이항구 씨

    소설 ‘김일성’ 펴낸 이항구 씨

    “우리 민족의 거대한 흐름 속에 김일성·김정일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체제의 흐름과 북한동포들의 삶을 묘사하는 것은 누구든 반드시 해놓아야 할 겨레의 사명입니다.” 소설가 이항구(70)씨는 어느 누구보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그는 17살 때 좌익활동 중 월북한 뒤 인민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어 32살 때 공작임무를 띠고 남파된 직후 귀순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지근거리에서 취재하는 등 북한에서 노동자·군인·기자·작가 등으로 파란만장한 생활을 했다. ●정지용 아들과 빨치산 활동 그는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최근 전 3권짜리 책 ‘소설 김일성’(이가서刊)을 펴냈다. 말이 ‘소설’이지 대부분 실명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원래 ‘소설 김일성’은 지난 93년 처음 일어판으로 발간했을 때 황장엽 전 비서의 망명을 예언한 대목이 있어 일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된 ‘소설 김일성’은 최근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변화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추가로 삽입한 것. 지난달 말 서울 중구 서소문에 위치한 통일연구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과거 얘기를 자꾸 들추지 말고 책이나 잘 소개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씨는 193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청운초등을 거쳐 휘문중 4년 때 좌익단체인 민주애국청년동맹원으로 활약했다. 이때 이태준씨 아들 이유백, 정지용씨 아들 정구용, 또 남로당 계열의 거물급 간부인 홍증식(월북후 조국전선 서기장)의 아들 홍창희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유백과 홍창희가 먼저 월북하고 정구용과 함께 서울에 남았지요.6·25가 발발하자 월북하던 중 남조선에서 계속 투쟁하라는 지시를 받았지요. 그래서 태백산으로 내려가 정구용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습니다.” ●중앙방송 노동자 출신 기자로 이씨는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정선·문경 등지에서 유격대를 결성해 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이씨는 51년 4월 상부지시에 따라 다시 월북했다.6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그는 인민군에 입대했으며 56년 특무상사로 제대했다. 이후 그는 흥남비료공장에 배치돼 노동자 생활을 한다. 이 무렵 그는 ‘안전띄’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때마침 북한 전역에 신인작가 발굴령이 내려졌다. 당시 문예총위원장인 한설야가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인을 발굴했다. 이씨는 한설야가 흥남비료공장을 방문했을 때 직접 면담을 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이씨는 58년 중앙방송위원회 노동자 출신 기자로 발탁됐다. 산업부 기자로 김일성 주석이 농촌 순시 때마다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이씨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부 전신인 평양문학대학이 설립되면서 1기생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문예총출판사 현대문학 편집부 기자가 됐다. 이때에도 김일성 주석 수행기자를 맡았다. “하루는 무용가 최승희가 원고를 들고 와 자신이 집필한 것이라며 책을 발간해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구금상태인 남편 안막이 쓴 것으로 밝혀져 무산됐습니다.” ●북한 실상 바로 알릴 의무감 느껴 66년 초부터 북한당국이 남조선 출신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사상검증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시험대에 오른 이씨는 어쩔 수 없이 대남 공작훈련을 받았고 그해 7월 서부전선 군사분계선을 통해 남파됐다. 그러나 곧바로 미군측에 귀순했다. 이후 기무사 군무원으로 있다가 정년 퇴임했으며, 지금은 모기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거듭 책 발간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7일 TV 하이라이트]

    ●오픈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서울의 경우 자동차의 오염 비중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의 대기오염 실태를 알아보고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 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또한 자동차의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면서 뉴욕에서 산타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 산타학교는 수염과 가발을 쓰는 법, 종을 울리는 법부터 사람들을 대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진짜 산타가 되기 위한 비법을 가르친다. 학교를 졸업한 산타들은 노숙자와 자선단체에 기부할 성금 모금 활동에 나서게 된다. ●문화 문화인(EBS 오후 11시40분) 무용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조선대학에 무용과를 만들고 지방에선 최초로 시립발레무용단을 만드는 등 광주를 한국발레의 메카로 만들어온 박금자 교수의 50년 문화인생을 함께해 본다. 지금은 제자에게 시립무용단 단장직을 넘겨주고 광주예총회장으로 또다시 지역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최종분석(세계의 불가사의)(iTV 오후 10시50분) 외계인을 만나봤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눈으로 외계인을 본 차원이 아니라,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외계로부터 수술을 받고, 외계인에게 쫓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증언이 사실일까?최면요법을 통해 외계인과 만난 날, 어떤 일을 겪었는지 확인해 본다. ●TV특종 놀라운 세상(MBC 오후 7시20분) 금산군청의 유명인사 김현우씨. 공익근무요원 현우씨가 빛을 발하는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이다. 공중 2단회전돌려차기,360도 회전차기 등 갖가지 기술들이 총동원되는 현우씨의 족구 게임. 목표한 결과물은 모두 맞힌다. 그렇다면 주특기인 강력한 서브로 촛불 끄기가 가능할까?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학교가 있는 시내에 갔던 고3인 큰형 진건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동생들부터 살핀다. 이영선 김미현 부부는 재혼 커플이다. 진건이 하나를 두고 이혼을 한 목사 영선씨와 그 교회의 신도였던 미현씨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혼을 했고 99년부터 매년 한 명씩 아이들을 입양했다. ●금쪽같은 내새끼(KBS1 오후 8시25분) 영실의 채근으로 마음을 굳힌 덕배는 집밖으로만 나도는 희수의 버릇을 고칠 궁리를 한다. 지혜, 재민은 점순에게 아기를 데려가고, 점순은 가끔 아기가 어릴 적 민섭으로 보인다며 고민한다. 지웅을 찾아온 영란은 은수와 함께 있는 지웅을 멀리서 훔쳐보기만 한다.
  • ‘카지노 대부’ 전락원 회장 타계

    ‘카지노 대부’로 불렸던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3일 지병으로 타계했다.77세. 고 전 회장은 서울 워커힐 호텔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외국인전용 카지노를 1973년 관광공사로부터 인수, 이를 기반으로 호텔과 면세점, 건설 등 관광·레저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지금의 파라다이스그룹을 일궈냈다. 파라다이스 그룹은 현재 11개 영리법인과 5개 비영리법인을 두고 있으며, 연간 매출은 6000여억원, 전체 종업원은 3000명 가량이다. 그는 계원조형예술대학과 계원예고를 설립해 예술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또 파라다이스 문화재단과 파라다이스 복지재단 등 비영리 법인을 통해 사회사업에도 앞장섰다. 누나인 소설가 전숙희씨를 통해 문인들의 문학활동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회장은 1978년부터 5년간 한국스키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국내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또 케냐 명예총영사로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민간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고인은 이같은 공로로 1988년 정부로부터 사회발전유공포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전필립 ㈜파라다이스 부회장과 원미, 지혜씨 등 1남 2녀. 발인은 6일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9시 경기도 의왕시 계원조형예술대학 우경예술관에서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선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책꽂이]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이진영 지음, 문학과경계사 펴냄) 계간 ‘문학과 경계’ 발행인이기도 한 중견시인 이진영씨가 세번째 시집을 펴냈다. 판화가 류연복씨의 판화가 곁들여진, 촌철살인의 짧은 시들로 채워졌다.29일까지 서울 동숭동 예총화랑에서 시판화전도 연다.7900원. ●먹는 여자(쓰쓰이 도모미 지음, 한성례 옮김, 이룸 펴냄) 지은이는 영화 ‘실락원’의 시나리오를 쓴 신예 소설가.18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에서 작가는 음식과 사랑, 섹스를 교차시킴으로써 생의 욕구를 자극한다. 작가는 “자유연애와 프리섹스는 현대적인 삶이 잉태한 문화의 한 형태가 아니라 생래적으로 우리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주장한다.9500원. ●독설의 팡세(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 루마니아 태생의 20세기 대표적 잠언가 에밀 시오랑의 잠언집(1952년).“니체, 마르셀 프루스트, 보들레르 혹은 랭보가 유행의 변화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들의 무관심한 잔인성, 신들린 듯한 해부기술, 풍부한 독설에 기인한 것이다.” 삶의 본질을 근원까지 파헤치는 역설과 희망의 아포리즘들을 대면할 수 있다.8000원. ●잠들지 마라 잊혀져 간다(최재목 지음, 샘터 펴냄) 최재목 시인이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고 명료한 10자짜리 시들을 써모았다.‘외로워졌다면 어른이다’ ‘흩어져 산다 낱낱의 순간’ 등 10자로 다 표현되지 못한 시심(詩心)을 다시 100자 안팎의 산문으로 해설처럼 덧붙인 독특한 산문시집이다.7500원.
  • [레저+α] 28일부터 김포문화예술제

    경기도 김포시는 28일부터 31일까지 시민회관과 시청앞 문화광장에서 ‘제21회 김포문화예술제’를 개최한다. 한국예총 김포지부와 김포문화원 등 각종 문화예술단체들이 참여해 공연과 전시, 참여행사를 펼친다.(031)984-2131.
  • 원주시민-중앙박물관 ‘문화재 10년전쟁’

    원주시민-중앙박물관 ‘문화재 10년전쟁’

    강원도 원주지역 주민들이 10여년 동안 차질을 빚고 있는 일제때 반출된 문화재 환수운동에 다시 나섰다. 원주시는 지난 95년부터 원주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여 왔으나 국립중앙박물관측이 법개정과 이전비용 등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해 장기간 표류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원주문화원을 비롯해 원주예총과 시번영회, 원주상공회의소 등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내년 용산이전 계획이 발표되자 국보급이 포함된 9점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적극 나섰다. 이들 단체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보낸 공문을 통해 “문화유산은 우리 삶과 정신의 뿌리이며, 제 위치에 원형 보전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며 “국보 101호인 지광국사 현묘탑과 104호인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 등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 9점을 되돌려 달라.”고 주장했다. 원주문화원측은 “지난 95년 처음 환수운동을 추진할 때 중앙박물관측이 이전비용 등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으나 최근 용산이전 계획에 따라 문화재를 해체·이동할 수밖에 없는 만큼 특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원주로의 반환이 가능해졌다.”며 “환수조건을 제시하면 시와 함께 도난방지 장치 등 필요한 여건조성에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민병도 페이버스회장 ‘노벨금메달’

    민병도 페이버스그룹 회장(주한 키르기스스탄 명예총영사)이 4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국제정보노벨센터(IINC)가 주는 ‘노벨상 제정 100주년 기념 노벨금메달’을 수상했다.‘노벨금메달’은 노벨펀드(노벨상을 수여하는 노벨위원회의 재정부문 담당기구)와 러시아자연과학아카데미(RANS)가 협력해 만든 IINC가 노벨상 제정 100주년(2001년)을 기념해 사회 각 분야에 공헌한 바가 큰 인물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선교재단법인인 페이버스의 민 회장은 주한키르기스스탄 명예총영사로 활동하며 유라시아 경제외교 발전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15번째 노벨금메달 수상자로 선정됐다.
  • [주간 문화 캘린더]가을밤 예술제

    예총 안양지부는 19일(일) 오후 7시30분 안양시 만안구 석수3동 안양천 둔치 충훈2교 아래에서 ‘가을밤 예술제’를 연다.사물놀이와 난타,부채춤 공연 등이 이어진다.
  • 민예총 ‘이슬람과 서구’ 특강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는 15일부터 4주간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이슬람과 서구,그 애증의 역사’ 주제의 공개특강을 연다.특강은 이슬람 문명의 본질과 역사를 소개하면서 이슬람·서구 충돌의 연원과 이유를 살피고 해법을 찾아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양대 이희수(한국이슬람학회 회장),선문대 이원삼(이슬람문화연구소장)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세부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www.myacademy.org) 참고.(02)739-6854.
  • [발언대] ‘직지심경’ 마저 버릴 텐가/이칠용 문화재전문위원 ·명예논설위원

    귀지 8월17일자에 실린 ‘직지심경은 왜 안 알려졌나’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 프린스턴고의 교사가 우리 금속활자로 제작한 직지심경에 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지만 자료를 구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는 내용을 보고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한 대한민국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필자가 2003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에서 한국을 주빈국으로 한 행사를 갖게 됐다.단연 세계 최고요,대한민국의 자랑인 ‘직지심경’ 책자와 ‘금속활자판’을 가지고 현장에서 직접 먹물을 묻혀 찍는 시범을 보이며 내외 귀빈을 비롯해 TV·신문 등의 언론인들에게 한참 신이 나 알리고 있었다.그런데 소위 한국인 중 프랑스 명예총영사란 사람이 나에게 “직지심경이 뭡니까? 금속활자가 왜 세계 최고입니까?”라고 되물어 억장이 무너진 적이 있다. 저런 자가 어찌 문화예술의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한국을 홍보하는 명예영사란 말인가? 화가 나서 그의 저녁 초대를 거부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특히 청주에 자리잡은 ‘직지 관련 조직’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마다 개최하는 ‘청주 국제공예 비엔날레’ 때마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직지는커녕 금속활자판이나 이에 관한 설명이 없고 막상 직지박물관을 찾아가려면 물어물어 힘들게 걸음을 해야 한다.금속활자와 직지심경,한지·먹·먹물 등은 우리 공예문화의 최고·최대 장르인데도 왜 청주 국제공예 비엔날레에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을까? ‘집안에서 대접받지 못한 식구는 외부에서도 대접받지 못한다.’는 옛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직지심경이 제대로 대접 받으려면 우선 청주에서,충북에서, 대한민국 전체에서부터 직지를 제대로 알고 홍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칠용 문화재전문위원· 명예논설위원
  • 부천 전국 제일 문화도시로 정착

    부천 전국 제일 문화도시로 정착

    ‘부천=문화도시’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요즘은 이견이 없다.실제 부천이 문화도시로 정착한 과정은 한 경제연구소의 연구과제로 채택될 만큼 ‘이례적’이었다.연구를 수행한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45) 수석 연구원은 “부천시가 단기간 내에 문화도시로 급부상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며 “시의 문화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투자와 만화·영화·오케스트라 등을 매개로 한 참신한 도전,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 등을 최대한 활용해 문화산업 집적화에 성공한 결과”라고 진단내렸다. 이를 반영하듯 부천국제영화제는 지자체가 여는 국제영화제 가운데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되고,부천시립교향악단은 전국 1∼2위를 다투는 수준 높은 악단으로 성장했다.영화제와 교향악단이 문화척도를 가늠하는 절대적 잣대는 아니지만 부천이 기초지방단체에 불과하고,90년대까지만 해도 ‘난개발과 공해로 찌든 도시’였던 사실을 상기하면 놀라운 변신이다. 이같은 현상은 정책과 민간 예술단체의 적극적인 활동,시민들의 풍만한 문화욕구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난개발,공해도시가 문화도시로 화려하게 변신 부천은 1973년 시 승격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구와 공장 등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공해가 심한 도시라는 ‘원죄적’ 불명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문화재와 관광지가 거의 없는데다 시민들의 자긍심과 정체성마저 부족해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수도권의 그저 그런 위성도시였다.이러던 차에 1995년 민선 단체장 출범을 계기로 ‘문화’라는 컨셉트가 도입됐다.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굴뚝없는 공장’인 문화를 특화전략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이해선 초대 민선시장은 97년 기초단체로는 처음으로 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를 개최했다.평소 친분이 있던 이장호 영화감독이 부천의 방향설정을 위해서는 뭔가 대형 기획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당시 시의 규모로 보아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지만 시와 지역예술인들이 힘을 합해 밀어붙인 결과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차별화 전략으로 성공한 부천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부산·전주·광주보다 질과 호응도 면에서 앞서고 있다고 자부한다.올해 8회째 열린 영화제(7월 15∼24일)는 국내·외에서 261편이 출품돼 8만 3413명이 관람하는 성황을 이뤘다. 차별성 전략이 주효했다.다른 지자체의 국제영화제가 일반 작품을 다루는 영화제인 것과는 달리 부천은 모험·환상·사랑을 주제로 한 ‘판타스틱’으로 특화,영화의 주고객인 젊은층에게 어필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을 영화전문가들로 구성하는 등 인적 인프라의 우수성도 강점으로 작용했다.게다가 부천은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아 관객 동원이 수월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부천시립교향악단(부천필)이 KBS교향악단 다음가는 악단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휘자인 임헌정(52)씨의 역할이 컸다.부천필이 태동된 이듬해인 89년부터 15년째 지휘를 맡고 있는 임씨는 실력은 물론 특유의 카리스마로 부천필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부천은 ‘부천필’이 있는 도시” 치열한 실험정신으로 ‘한국의 사이먼 래틀(베를린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불리는 임씨는 99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 최초로 말러의 교향곡 10곡을 모두 연주하는 위업을 달성했다.이를 계기로 부천은 클래식애호가와 문화계 인사들에게 ‘부천필이 있는 도시’로 알려지게 됐다. 임씨는 누구의 입김도 통하지 않는 실력 위주의 단원 선발로 유명하다.‘너무 팀워크가 좋은 것이 단점’이라고 엄살을 떠는 원동력이다. 그렇다고 단원들의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니다.수원이나 성남.·경기도립 교향악단에 견줘 중간 수준이지만 단원들의 ‘짱짱한’ 실력이 알려지면서 개인레슨 등이 밀려들어 부천필은 음대 졸업생들이 선망하는 악단이 됐다. 무엇보다 부천시가 문화도시로 열매를 맺은 데에는 원혜영 전 시장의 공이 컸다. ‘문화가 곧 경쟁력이고 현대는 문화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시대’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원 전 시장은 98년부터 지난해 12월 퇴임하기 전까지 문화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만화가 21세기형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판단 아래 만화정보센터와 만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상동신도시 10만평에 영상문화단지를 설립했다.여기에는 해방 전후 서울 종로거리를 재현한 영화·드라마 세트장과 세계 건축물 미니어처인 ‘아인스월드’ 등을 부천으로 끌어들였다.애견테마파크와 서커스상설공연장이 건립 중이다. ●자치단체장의 정책의지가 원동력으로 작용 또 “박물관이 많은 도시가 진짜 문화도시”라며 종합운동장에 만화박물관,유럽자기박물관,교육박물관,수석박물관 등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을 입주시켰다.상동 호수공원에는 자연생태박물관,물박물관,활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문화란 한 사람의 역할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 부천은 시장의 정책의지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대두되는 것은 이같은 원 전 시장의 역할과 무관치 않다.반면 원 전 시장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예술진흥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시의 정책의지와 맞물린 데다 일반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시민들의 높은 문화역량도 빼놓을 수 없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7시 중앙공원에서 어김없이 열리는 공연에는 수천명의 관객이 몰려든다.이들은 공연이 끝나도 귀가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인근 시청 잔디광장으로 옮아가 8시부터 열리는 ‘에어 스크린’에서 영화를 감상한다.부천필이 연간 30회 가량 개최하는 공연은 유료임에도 항상 관람객이 객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다른 도시 문화공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지난해 부천에서 열린 대형 문화공연만 360건을 넘었다는 사실이 ‘문화의 생활화’가 이뤄졌음을 짐작케 한다. 상동의 한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김미정(38·여)씨는 “토요일에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중앙공원을 찾는다.”면서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문화공연이 열리는 도시에 산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예술단체들,눈높이문화 뒷받침 이 과정에서 예술단체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부천예총은 시 전통축제인 복사골예술제와 시청광장에서의 영화상영을 주관하는 등 시의 문화정책을 뒷받침했다.또 연간 14회에 걸쳐 아파트단지 등 각 동을 순시하면서 연극·국악·합창·무용 등이 어우러진 ‘찾아가는 작은 무대’를 펼쳐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부천예총 최의열(42) 사무국장은 “부천시만큼 문화마인드를 갖춘 지자체는 찾기 힘들다.”면서 “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영역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화밖에 없다.’며 시작된 문화정책에 시민들이 동화된 데에서 더 나아가,이제는 “문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아우성이 나올 만하다. 부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계명대 명예총장 신태식 박사

    대구 계명대 명예총장인 신태식(申泰植) 박사가 19일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95세. 고인은 지난 61년 11월부터 78년 2월까지 계명대 학장을 역임한 이후 지금까지 계명대 명예총장으로 지내왔으며,교육계에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바 있다.빈소는 계명대 대명캠퍼스 본관 대강당, 장지는 경북 청송군 안덕면 복동 선영.유족으로는 신일희 전 계명대 총장 등 2남 2녀.(053)620-2050∼2.
  • [삶과 경영 이야기] (18)신동렬 성문전자 회장

    성문전자 신동렬(63) 회장은 일생의 절반은 야구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보냈다. 그는 최근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만루 위기에 처한 투수에 비유하면서 “내·외야수들이 마운드에 선 투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듯이 임직원이 어려운 경영 상황을 함께 거든다면 불황은 극복된다.”고 강조했다.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에 대해서도 까다로운 주문을 빼놓지 않았다. ●시련과 좌절이 패기를 키운다 1965년 성균관대 졸업과 함께 실업 명문팀인 대한통운 야구부에 투수로 입단했다.당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구호가 온 나라에 퍼질 때다.대한통운은 국영기업이라 야구 선수들도 요즘으로 말하면 구조조정을 겪게 됐다.나는 초년 선수라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일부 선배들은 졸지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첫 직장에서 비애감을 느꼈다.어릴 적에는 김응룡(당시 한일은행 선수감독·현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 감독)씨처럼 야구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선배들의 처지를 보면서 야구가 싫어졌다. 형과 남동생 등 세 형제가 사업을 시작했다.그때는 건설 현장이 많아 유리 수요가 많았다.소자본으로 노동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유리 공장을 차렸다.그러다 72년 대홍수로 한강물이 범람하면서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동에 있던 유리 공장이 침수됐다.혹독한 첫 시련이었다. 그때 전자산업이 유망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벤처산업이었던 셈이다.미국과 일본의 전자부품업체에 편지를 보냈다.‘나는 공장을 갖고 있는데 자본과 기술을 대주면 훌륭한 합작 회사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수없이 편지를 보냈더니 그중에 한 일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74년 일본의 한 전자부품업체와 합작을 했다. 태동기인 국내 전자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그런대로 사업이 잘 됐는데,79년 터진 2차 석유파동으로 두 번째 시련기를 맞았다.한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곧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공장 규모나 기계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다 줄였다.가슴 아프게 일부 직원들도 내보냈다. 80년 석유파동의 여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중소기업을 인수했다.이 때부터 콘덴서에 손을 댔다.콘덴서는 지금도 모든 전자제품에 없어선 안 되는 주요한 부품이다.기능은 전혀 다르지만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그 콘덴서에 들어가는 필름을 만들었다.핵심 공정은 기술이 모자라 일본에서 처리한 뒤 필름을 다시 들여와 국내 전자업체에 납품했다.그 때는 삼성·LG·대한전선 등 국내 대기업도 정신없이 전자제품을 생산할 시기였다.일본에서 중요한 기술은 가르쳐 주지 않아 일본에 건너가 기술을 훔치다시피 몰래 배웠다.3년 만에 국내에서도 100%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이 생겼다.콘덴서에 목숨을 걸자고 다짐하고 한 대에 20억∼30억원이나 하는 콘덴서용 금속필름 증착기를 들여왔다.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공동으로 금속증착 필름의 독창적인 국산화에 성공했다.로열티를 물지 않아도 됐다.일본 회사로부터 독립도 했다.투자자를 찾아 헤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의 투자조합으로부터 지원금을 얻었다.5년 만에 회사를 주식 시장에 상장해 자산의 30%를 조합에 주는 조건이었는데,약속대로 5년이 되기 전인 90년에 주식을 상장했다. 그 시기엔 정말 기업할 맛이 났다.우리가 신뢰를 저버린 회사를 먼저 찾아가 신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했다.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매달렸다.힘들 때마다 투수 시절에 위기에 몰린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를 떠올리면서 버텼다. 해외의 유명 전자업체들이 우리 제품을 인정하자 그 다음은 순풍에 돛 단 듯 일이 잘 풀렸다.지금은 금속증착 라인이 15개로 늘었고,머리카락의 1000분의1에 불과한 얇은 필름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생산하고 있다.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우수중소기업대상,과학기술훈장 등을 연이어 받았다. ●원칙과 명예를 존중하는 스포츠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해운대에 살면서 야구를 배웠다.초등학교 주변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주말이면 야구 배트과 글러브를 피란민 청년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야구 시합을 했다.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취미는 야구뿐이었다.동래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큰 키(180㎝)에서 내리꽂는 공을 타자들이 잘 맞히지 못해서 그런지 투수를 맡았다.당시 부산의 야구 명문은 경남고교인데,이 학교를 콜드게임으로 이긴 적도 있다.전국 대회에서 5일 동안 9회까지 완투를 하는 바람에 손가락에 물집도 났다.하지만 나는 원칙과 명예심을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이 좋았다.이는 선수단의 집단 생활에서 익혀진다.성대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당시 성대는 전국 우승을 넘보는 명문 팀이었다.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 패망후 미 점령군에게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웠다.미군은 패전국 일본의 사회 치안이 불안정하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자 정책적으로 야구를 보급했다.특히 게임의 룰을 중시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지금은 일본에 5000여개의 야구팀이 있지만 유소년 팀에선 경기방법보다 먼저 야구인의 자존심과 매너를 가르친다.야구 선수는 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과 바지를 입는다.타석엔 혼자 서지만 수비석에는 9명이 정교하게 호흡을 맞춰야 멋진 플레이가 나온다. 80년대쯤 평소 존경하던 성대 총장이 만나자고 해서 모교를 찾았다.사무실 비품 등이 함부로 내팽개쳐진 채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총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총장은 학생들을 탓하기보다 “가라앉은 학교 분위기를 살리고,학생들에게 단합된 애교심을 심어주고 싶으니 야구인 동문회를 활성화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그 뜻을 받아들이고 다시 총장실로 가서 후배 학생들을 호통쳤다.“총장은 너희들 뜻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데,이게 무슨 행패냐.지킬 것은 지키면서 주장하라.”고 다그쳤다.나중에 총장실 점거를 곧 풀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했다. ●투수와 CEO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희생 정신과 융화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나를 낮추고 동료들과 함께 하려는 정신을 바탕으로 남과 공정한 원칙속에서 경쟁하는 법을 배운다.기업에도 룰이 있다.정확한 물건을 만들어 바르게 팔 때 소비자들이 나를 인정한다.또 동료 기업인들의 본보기가 되면 그들과 언제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래 관계에서 그 이익이 내게 돌아온다.기업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 주변의 극단적인 노사관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도저히 한 배를 탄,한 운명의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직원들을 자기 식구처럼 여기고 있다.제 직원에게 월급을 제대로 못 주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다.노조도 이같은 경영인들의 심경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 한다. CEO는 끊임없이 앞길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이제는 정보와 기술이 바로 돈이다.내가 갖고 있는 정보와 기술은 곧 다른 이들의 표적이 된다.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CEO는 직원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모 대기업 회장은 첨단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에게 약속했던 대가의 몇 배를 주고 아낌없이 격려했다.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방기술 연구진을 밤에 홀연히 찾아가 만두를 함께 나눠 먹으며 그들을 감동시켰다.CEO는 마운드의 투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다방면에서 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기업을 하는 환경이 매우 나쁘다.30년 이상 지속된 중소기업의 생산 환경이 중대한 변화기를 맞았다.대기업에 의존하는 하청관계를 벗어나야만 할 때가 됐다.중국은 방문할 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나라다.우리는 절대 중국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우리의 권위적인 행정 규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하다.미국 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관적이고,배타적으로 보고 있다.한국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정(情)과 열(熱)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이제는 정확히 해야만 살 수 있다.모 국회의원이 내게 보낸 글을 인용한다.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선 세계 5대 경제부국이었다.볼펜과 버스,헬리콥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다.그러나 페론 정부의 인기주의 정책과 계층간 갈등 때문에 지금은 세계 5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한국을 잘 아는 한 일본인이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을 열거한 글이 생각난다.그 일본인은 ‘막히는 고속도로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물건을 파는 한국인’에 대해선 호감을 표시한 반면 ‘한국의 버스 정류장에는 반드시 버스가 서지 않는다.’라면서 일본인 방문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또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종종 이긴다.’고 꼬집었다. 한국인이 룰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게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돼선 안 된다.이제 모두 제자리에서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한 때다. ■ 신동렬 회장은 성문전자의 신동렬(辛東烈·63) 회장은 고교·대학 시절 정식 야구선수 출신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전자부품 업계에 뛰어들어 회사를 작지만 강한 전문 기업으로 키운 최고경영자(CEO)다.그는 실업야구 초년 시절에 야구를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전기·전자 부품인 콘덴서의 핵심 소재인 금속증착필름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성문전자를 창업했다.경기도 성남과 평택 등 공장 3곳의 연매출액은 500억원.이 분야 국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제품의 65%가 세계 20여개국에 수출된다. 신 회장은 파푸아뉴기니 명예총영사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감사도 맡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 [鄭문화 인사청탁 논란] 정진수 교수는

    정진수(60) 성균관대 예술학부 주임교수는 극단 민중을 이끄는 연극연출가이자 95∼97년 제18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낸 연극계 중진 인사다.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인 정 교수는 언론 등을 통해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특히 지난해 9월,정부가 문화부 소속 예술관련 기관 및 단체장들을 민예총 등 특정 세력 위주로 인선하고 있다면서 거세게 반발했고,연극인들을 결집해 ‘100인 성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鄭문화 인사청탁 논란] 정진수 교수는

    [鄭문화 인사청탁 논란] 정진수 교수는

    정진수(60) 성균관대 예술학부 주임교수는 극단 민중을 이끄는 연극연출가이자 95∼97년 제18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낸 연극계 중진 인사다.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인 정 교수는 언론 등을 통해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특히 지난해 9월,정부가 문화부 소속 예술관련 기관 및 단체장들을 민예총 등 특정 세력 위주로 인선하고 있다면서 거세게 반발했고,연극인들을 결집해 ‘100인 성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집시법 재개덩 찬·반 논란] 소음규제 첨예 대립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와 경찰이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부분은 소음 규제이다. 국무회의 상정을 앞둔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소음 기준을 ‘낮 80㏈,밤 70㏈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는 “사람의 대화가 60㏈ 수준, 일반적인 교통소음이 80㏈인 만큼 소음 규제 기준은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지난 3월부터 2개월동안 열린 각종 집회의 현장소음을 측정한 결과 45%만이 80㏈을 넘었을 뿐”이라면서 “웬만한 집회의 소음은 실제 80㏈을 넘기가 어려우며 80㏈은 청력장애를 일으키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현행 도로변 주거지역주간 소음 환경기준은 65㏈이며 일반 진공청소기의 평균소음이 79㏈이다. 경찰과 연석회의가 실제 집회에서 측정한 소음 수치는 비슷했다.1만 2000여명이 참석하고 대형스피커 36대가 동원된 대학로 노동절 집회에서 경찰은 15m 떨어진 예총회관 1층에서부터 100m 떨어진 패스트푸드점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측정했다.경찰의 측정치는 73.7㏈에서 96.5㏈까지 평균 85.5㏈을 기록했다.시민단체가 17차례 측정한 평균치도 86.18㏈을 기록했다.새로운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절 집회는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상이다. 경찰청 정보1과 김수환(35)경감은 “집회 현장에서 신고된 소음관련 민원만 2002년 199건,2003년 236건으로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려는 경찰의 입장에서 소음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제준(34)연석회의 상황실장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소음 규정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현실화해야한다.”면서 “경찰에 집시법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특히 소음기준이 가진 문제를 조목조목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6·15 남북정상회담 4돌] 南北 제집 가듯 교류 2차 정상회담 ‘훈풍’

    “시작은 미약하나 결과는 창대할 것이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남북정상회담 4돌을 앞두고 최근 크게 늘어난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진단한 표현이다.남북관계가 뜨거워지는 듯한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우리 내부에서도 ‘정상회담’ 관련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맞아 이제는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장성급회담 군사신뢰 구축 단초 4년 전 남북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늘어온 남북 대화는 최근 들어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정상회담 이후 2000년에 27회,2001년 8회,2002년 33회,2003년 38회의 회담이 열렸다. 이달 들어서는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는가 하면,장성급 군사회담에서는 군사분계선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서해상에서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선전활동 중지 합의는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실마리로 평가된다.노무현 대통령은 이같은 조치를 “주목할 만한 상징적인 사건”이라면서 “남북관계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정상회담 4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이종혁 부위원장과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김정호 중앙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대거 남측을 방문했다.남북 대화가 급류를 타는 느낌이다. 게다가 오는 17일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심포지엄에 북측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북한이 서방 국가에도 빗장을 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北核문제가 최대의 걸림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연히 답방해야 한다.이제는 (서울에)와서 노 대통령을 만났으면 좋겠다.”4년 전 남북 정상회담의 당사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1일 4돌을 맞아 제시한 화두다.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문희상 의원은 다음 날 화답이라도 하듯 김 전 대통령의 대북특사론을 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여러가지 전제조건이 해결돼야 하고,그 가운데서도 북핵 문제는 최대 걸림돌이다.정세현 통일부장관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고 한 발언은 북핵문제 해결 또는 해결 조짐 없이는 정상회담이 어려울 것임을 내비친 것이다.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결단이 있으면 성사될 수 있고,결과물도 내놓을 수 있는 전격성과 담판성을 띠고 있다. 북핵문제는 바꿔 말하면 남북 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중대 사안이다.노 대통령이 14일 세계경제포럼 참석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북핵문제는 매우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해결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당인리발전소에 복합문화센터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공연장,전시장,도서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센터로 탈바꿈한다.공공미술품 활용 증진을 위한 미술은행이 설립되고 대학로가 명실상부한 공연예술의 메카로 자리잡는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창의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문화비전)과 기초예술분야 진흥책인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새예술정책)을 보고했다. ‘문화비전’과 ‘새예술정책’에 따르면 문화관광부는 오는 2006년까지 국고 예산을 비롯해 로또복권 수익금·문예진흥기금 등으로 1000억여원의 예산을 마련,관계 부처와 협의해 당인리 발전소를 매입해 국제적인 문화·관광명소로 만든다.공연장,전시장 외에 도서관,인터넷 예술카페 등을 갖춰 매일 각종 문화예술행사와 이벤트,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미술품을 활용하여 공공기관을 문화적으로 리모델링하고,미술품을 구입해 일반인에게 대여하는 미술은행제도가 도입된다.미술은행은 도시 문화환경 개선을 위해 도입된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신진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입해 공급할 예정이다.현재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기무사가 교외로 이전할 경우 이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전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50여개의 소공연장과 예술극장 등 수많은 공연장이 모여 있지만 급속한 상업화로 인해 몸살을 앓는 대학로를 공연예술의 메카로 조성하기 위한 조치를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서울사대부중이나 흥사단이 이전할 경우 이곳에 4∼5개의 소공연장이 집적된 테아플렉스(Thea-Plex)를 조성하며,예총회관 자리에는 소규모 공연장과 공연예술인 명예의전당 및 사랑방 정보센터를 포함한 복합공연시설을 설립할 계획이다.서울시와 함께 부족한 무용,뮤지컬 전용극장의 신설도 추진하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리모델링 중인 명동 옛 국립극장을 국립극단 등 국립단체들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