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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3) 미국 예일대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3) 미국 예일대

    |뉴헤이번(미국 코네티컷주) 이도운특파원| 예일은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공공부문)’를 강조하는 대학이다. 이것이 다른 대학들과 비교되는 예일대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미국의 최근 6명의 대통령 가운데 4명(제럴드 포드,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이 예일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뒷받침한다. 미국 대학 졸업생은 평균 5% 정도가 퍼블릭 서비스 분야로 나간다고 한다. 예일의 경우는 그 비율이 40%가 넘는다. 연방 및 주 정부·의회뿐만 아니라 비정부기구(NGO)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 예일 로스쿨의 홍보담당자인 클라스 버그먼은 “NGO나 국제봉사단 등 경제적 보상이 낮은 공공분야를 선택하는 졸업생들에게는 다른 동료들과의 수입 격차를 보전해 주는 프로그램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예일대 캠퍼스를 둘러보면 사회 봉사의 징표들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각 단과대학과 기숙사의 게시판에 붙은 벽보에는 ‘뉴헤이번 흑인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이나 ‘뉴올리언스 복구 지원’ 등 각종 봉사 활동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하는 광고가 가득하다.‘북한 주민에게 인권을’이라는 주제의 모임도 눈에 띄었다. 예일대 사회봉사의 본산은 캠퍼스 서쪽에 자리잡은 ‘드와이트 홀’이다. 이곳에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공서비스 및 사회 정의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 센터는 2000명이 넘는 예일 학생들이 가입해 뉴헤이번에서만 60가지가 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달에는 현안이 되고 있는 이민자 문제와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했다. 예일대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학부 학생들의 교양 교육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퍼블릭 서비스라는 강점을 계속 살려나간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예일대는 지난 10여년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올해부터 학부의 커리큘럼을 개편했다. 본격적인 커리큘럼 개편은 수십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커리큘럼 조정위원회에 참여했던 최승자 한국어과 교수는 “개편의 핵심은 국제화와 수량적 논리(Quantatitive Reasoning), 작문능력 강화”라고 설명했다. 국제화를 위해 예일대는 학생들에게 외국어 하나는 상급 수준으로 익힐 것을 필수화했다. 이전에는 외국어를 중급 정도까지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상급까지 마치거나 또다른 제3의 언어를 중급까지 이수하도록 규정했다. 또 예일대는 외국 학생들에게도 미국 학생과 같은 기준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예일대의 기부금 총액은 152억달러로 하버드대에 이어 2위다. 수량적 논리는 쉽게 말하면 수학 처리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통계와 각종 수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요체다. 졸업 때까지 최소 3개의 관련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예일대에는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다. 하지만 교수들은 학문적인 논문을 쓰기에는 학생들의 작문 실력이 모자라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작문 능력 강화가 개편의 핵심으로 나오게 됐다. 졸업 후 대학에 남든 다른 진로를 택하든 어떤 자리에서나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작문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예일대의 판단이다. dawn@seoul.co.kr ■ 로스쿨 수업 참관기 |뉴헤이번(미국 코네티컷주) 이도운특파원|월요일 아침 8시10분. 예일대 로스쿨의 1호 강의실로 학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부분 커피와 물통을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른 봄 아침의 추위를 막기 위해 목을 감았던 머플러를 푼 뒤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먼저 꺼냈다. 학생들은 전원을 꽂은 다음 재빠르게 지난밤의 뉴스와 필요한 정보를 검색했다. 친구와 메신저로 아침 인사를 하는 학생도 보였다. 고색창연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강의실의 벽면에는 예일 로스쿨을 거쳐간 저명한 선배들의 초상화들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8시20분 해럴드 고 학장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한 손에는 책이 든 가방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이날 수업은 고 학장이 직접 강의하는 국제법.100여개의 강좌가 마련된 예일 로스쿨의 경우 5∼10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수업은 60명가량의 학생이 참석하는 드물게 규모가 큰 강의였다. 학생들의 자리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누구나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됐다. 로스쿨 가운데 세계 최고라지만 이곳에도 5분이나 지각하는 학생들은 있었다.‘인포멀(informal)’하다는 평가를 받는 고 학장은 강의가 시작된 뒤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고 학장은 “국제법의 효력은 미국의 연방법과 주(State)법 가운데 어느쪽에 해당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어 좀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졌다.“후세인이 미국내에서 고문 혐의로 기소될 수 있을까.”,“미국과 유럽연합(EU)이 동성결혼을 허락하는 조약을 맺으면 각 주에서 따를 의무가 있을까.” 고 학장은 해당 주제와 관련한 판례들도 설명하고, 꼭 읽어야 할 논문들도 소개했다. 그는 국제법이 미국내에 미치는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유엔 등 국제사회의 문제로 점차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갔다. 또 고 학장의 수업에서 두드러진 점은 최신 시사문제들이 강의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국제법의 기구를 설명할 때는 현재 진행중인 유엔 사무총장 인선을 언급했다. 국제법과 외교정책간의 관계를 분석할 때는 이란 핵 문제가 등장했다. 90분간의 강의가 끝나자 마치 국제법으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제기된 문제들도 많았다. 그에 따라 학생들이 다음 수업시간 전에 준비해야 할 과제도 많았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고 학장과 학생들은 오랫동안 강의실을 떠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고 학장을 둘러싸고 수업시간에 다 마치지 못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었다. dawn@seoul.co.kr ■ “법과 다양한 직업간 연결고리 마련에 중점” |뉴헤이번(미국 코네티컷주) 이도운특파원|예일대 로스쿨의 수업참관을 허락한 해럴드 고 학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예일 로스쿨은 미국에서 랭킹 1위다. 순위에 신경을 쓰나. -1978년 이후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마도 순위를 매기는 것은 잡지를 팔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웃음).1위를 차지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예일 로스쿨의 경쟁력은. -최고의 학생, 최고의 교수진, 이들을 둘러싼 최고의 지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하나만 있어도 훌륭한 학교가 되겠지만, 예일 로스쿨은 세 가지 모두가 잘 조합돼 있다. ▶커리큘럼을 바꾸나. -예일 로스쿨은 커리큘럼이 매우 개방적이다. 일단 교수를 채용하면, 그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친다. 교수들은 법의 변화를 늘 주목한다. ▶로스쿨에 비즈니스 스쿨이나 메디컬 스쿨과 공동으로 학위를 받는 ‘조인트 프로그램’이 많은데. -‘인터(inter)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한다. 법을 공부하고 의사가 될 수도 있고, 기업인이나 언론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법과 이같은 직업간의 연결고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로스쿨 설립을 추진중인 한국에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법은 학부보다는 대학원에서 다루기에 적절한 주제라고 본다. 보다 넓고 다른 분야와 조화된 안목에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쟁하려면 그에 맞는 제도를 시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일 로스쿨에 오기 원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웃으며 한국말로)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 한국계인 고 학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집무실에는 한국산 소품과 가족들의 사진, 그림 등이 진열돼 있었다. 고 학장은 장면 정권 당시 주미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5·16이 발생하자 미국으로 망명한 고(故) 고광림 박사의 3남.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법관 서기, 변호사, 법무부 법률고문을 지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dawn@seoul.co.kr ■ 한국인 재학생들이 보는 예일대 |뉴헤이번(미국 코네티컷주) 이도운특파원|‘뚜렷한 목표와 이를 이뤄내는 열정과 개성.’ 미국의 명문 예일대에 다니는 제니퍼 서(미국학과 3학년)·그레이스 김(종교학과 3학년)·김정현(언어학과 2학년)씨는 좌담을 통해 동료 학생들의 공통점을 이같이 묘사했다. 그들은 “예일대는 이런 학생들이 가진 창조적 야망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제니퍼 서·그레이스 김씨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김정현씨는 두 살 때 호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셋 모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다. ▶예일이 다른 대학과 비교해 특출난 점은. 제니퍼 서 컬럼비아대는 핵심 커리큘럼이 있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정해져 있다. 반면 예일은 학생들이 보다 폭넓고 다양한 수업을 듣도록 유도한다. 학기마다 인문분야와 과학과목 몇개를 수강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제한은 없다. 그레이스 김 다른 대학들은 학부에서도 비즈니스나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실용 학문을 전공으로 삼는다. 그러나 예일은 순수하게 학술적인 전공만 있다. 학교는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창조적 사고와 분석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예일의 교육 철학이다. ▶예일은 사회 봉사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니퍼 서 좁게는 예일이 있는 지역에서부터 넓게는 국제적인 활동까지 매우 활발한 사회봉사가 일어나고 있다. 학생 누구든 사회 봉사를 위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학교는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으면 학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음악 교실을 운영할 수 있다. 김정현 학칙상 사회봉사를 의무화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의 자발적인 활동을 최대한 지원한다. 이것이 활발한 봉사 활동의 밑거름이라 생각한다. ▶예일대와 같은 미국의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제니퍼 서 예일에 다니는 외국 학생들은 똑똑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이나 과외 활동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 같다. 학문에만 열중하지 말고, 본인이 무엇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지 알고 이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정현 한국에서는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려고 말하자면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 운동도 하나, 악기도 하나, 이런 식으로 공식화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대학 입시 관계자들은 이력서를 보면 그런 활동이 좋아서 하는 것인지 입학을 위한 것인지 다 안다. 따라서 입학 자격 요건에 본인을 맞추기보다 실제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재능이 있는 부분을 더욱 집중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dawn@seoul.co.kr
  • ‘원주민 소녀의 꿈’ 아이비리그 감동

    한 캐나다 ‘원주민 소녀’의 꿈이 국경을 넘어 미국 대학마저 감동시켰다. 책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이 소녀는 자신이 사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도서관 설립을 보는 게 꿈이었다. 그녀가 도서관 설립에 나선 것은 불과 13살 때였다. 어린 소녀의 꿈과 노력은 미국 최고 명문인 ‘아이비리그’ 대학마저 감동시켰다. 올해 17세의 고교 졸업반인 소녀에게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이 입학 허가와 4년 전액 장학금을 제안한 것이다. 캐나다 전국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이 22일(현지시간) 1면 머리기사로 몬트리올 원주민 보호구역의 스카웨니오 반스양을 소개했다. 그녀의 이름인 스카웨니오는 원주민 말로 ‘아름다운 언어’라는 뜻이다. 4년 전 9학년생이었던 반스는 방과 후 집에 돌아와도 책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 원주민 소녀는 절실하게 책을 읽을 장소를 원했다. 소녀는 모하크 지방의회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소녀의 탄원은 지역 신문에 실리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도서관 설립 운동에 불을 붙였다. 그녀는 10대 잡지인 ‘코스모걸’의 300단어 수필 대회에도 참여했다.‘마을에 도서관을 세우는 자신의 꿈’을 적은 글로 1등에 당선됐다. 그녀의 꿈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캐나다 국립도서관도 반스를 초청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녀에게 책을 보내왔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신간을 기증했다. 순식간에 3만권이 모아졌다. 2003년 10월4일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도서관 이름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스카웨니오의 장소’로 지어졌다. 변호사가 꿈인 그녀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지망했다. 입학지원서에 쓴 그녀의 글은 아이비리그 대학 관계자에게 감동을 던졌다. 반스는 원주민 소녀로서 어려운 성장 과정과 원주민들의 척박한 삶을 전했다. 그녀는 13살 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해야 했고, 그녀의 부모는 둘다 고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일 당장 세상 밖으로 밀려나더라도 내 두 발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다면 좋겠다.”고 글을 마쳤다. 지난달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대학까지 그녀에게 1년에 4만 6000달러(약 46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사람들은 간단하게 ‘옥스브리지’라고 부른다. 옥스브리지는 섬나라 영국 속의 또 다른 섬과 같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영국 지성계의 양대 축이다. 세계적인 명문으로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며 수백년 동안 영국의 ‘인재풀’ 역할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학생, 교수, 연구원 등 옥스브리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튜터(Tutor) 시스템이라고 하는 개별지도 방식이 그 해답이었다. 두 대학은 실체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에서 출발한 두 대학은 모두 보수적인 전통을 중시한다. 수많은 칼리지들이 모여 이뤄진 거대한 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학생들이 모두 기숙생활을 하는 학료(學寮)제도를 택하고 있다. 특히 튜터 시스템은 이들 두 대학이 오래 전부터 유지해 온 특별한 교육시스템이다.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를 그 원형으로 삼아 16∼17세기에 발전된 이 교육방식은 빛의 속도로 정보가 오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두 대학의 교육적 토대가 되고 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생들은 대학(전공)과 각 칼리지의 소속이 된다. 대학에서 일반적인 전공 강의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진행한다. 시험도 대학이 주관한다. 반면 개인지도 수업은 각 학생이 속한 칼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도교수들을 옥스퍼드에서는 튜터라고 부르고, 케임브리지에서는 슈퍼바이저(Supervisor)라고 부르는 차이는 있으나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지도방식은 같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은 재학 중 에세이 위기(essay crisis)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매주 지도교수와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는 개별지도 시간을 위해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탓이다. 학생들은 담당 지도교수를 포함해 학기당 3∼5명의 개인지도가 있다.1주일에 2∼3차례씩 진행되는 개인 수업에서 교수들은 전공 과목의 진도에 맞춰 학생들에게 관련 서적, 논문을 지정해 주고 다음 시간까지 특정 주제에 대해 4∼5쪽 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도록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에세이에 대해 교수에게 왜 이렇게 썼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기존 학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는지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옥스퍼드대의 엘리자베스 팔레스 교육담당 실무 부총장은 “학생들은 일찍부터 전공 분야의 최고 석학들과 그들의 수준높은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 그룹의 일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튜터 시스템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교육시스템의 핵심”이라며 “교수의 숫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좋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1년에 쓰는 에세이는 평균 50편 정도. 이를 제대로 쓰려면 최소 3권의 책과 2편의 전문 저널을 읽어야 한다. 학부 3년 동안 150편의 에세이를 쓰려면 읽어 치워야 하는 책은 전문저널을 포함해 적어도 750권은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옥스퍼드에서 PPE(철학·정치학·경제학)를 전공하는 김진아(21·세인트 힐다스 칼리지)씨는 “한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출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면서 “적당히 준비했다가는 교수들로부터 면전(面前)에서 엄청나게 공격받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는 “실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많이 읽고, 쓰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학생들은 죽을 맛이지만 이 수업방식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쌓게 될 뿐 아니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앨리슨 리처드 케임브리지 부총장은 “개인에게 집중된 교육시스템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고, 학문적 질문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런 방식은 경쟁력이 뛰어난 전문직업인이나 유능한 연구인력이 되기 위한 훌륭한 준비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선(先)지원·후(後)시험 방식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두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학생들은 고교졸업을 1년 앞둔 10월부터 서류 접수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AS레벨 점수, 지도교사의 추천서, 자기 소개서, 수학 계획서 등을 첨부해 대입업무 총괄기구인 UCAS를 통해 응시원서를 낸다. 서류심사에 합격한 학생들은 12월 초 대학에 가서 면접을 치른다. 이를 통과하면 A레벨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경우 최종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부 입학허가’를 이듬해 1월에 받는다.8월 A레벨 테스트의 성적이 대학이 제시한 조건에 맞으면 최종으로 입학이 허가된다.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최종선발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입학하는 데 A레벨 테스트 점수 외에 중요한 것은 교수들과의 면접이다. 케임브리지의 케이트 프리티 실무 부총장은 “완성된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지적인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주는 것이 바로 대학과 교수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옥스포드 총리만 25명 배출 ‘정치 지도자 산실’ 케임브리지 노벨상 수상자 80명 ‘자연과학 메카’ |케임브리지·옥스퍼드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는 자연과학에서, 옥스퍼드는 인문학에서 각각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고색창연한 케임브리지의 칼리지들을 둘러보다 보면 ‘현대 과학이 케임브리지 없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케임브리지는 지금까지 모두 8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케임브리지가 자연과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트리니티 학자들의 공이 크다.31개 칼리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3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또 다른 원동력은 1873년 설립된 카벤디시 연구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학 기초연구소로 정평이 난 카벤디시 연구소는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혁신의 전통은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1975년 트리니티 칼리지가 설립한 영국 최초의 사이언스 파크는 컴퓨터 공학과 바이오테크닉 분야에서 영국 최고의 중심지로 꼽힌다. 세인트존스 칼리지도 1987년 기술혁신을 위한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해 대학의 기초적인 연구와 기업의 경제적 효용을 하나로 묶는 산학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수백년의 학문적 전통과 미래기술이 결합된 케임브리지의 창조적 환경에 매료된 세계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유럽의 다른 도시를 제쳐두고 케임브리지에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를 설립했다. 소니, 올리베티,AT&T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케임브리지를 유럽 연구거점으로 삼고 있다. 케임브리지에 대한 세계적 기업들의 재정지원은 매년 8% 이상씩 늘고 있다. 현재 40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39개의 칼리지로 구성된 옥스퍼드는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는 46명으로 케임브리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전통과 함께 토니 블레어 현 총리를 비롯해 역대 영국 총리 25명을 배출한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인디라 간디 인도 전 총리, 맬컴 프레이저와 밥 호프 전 호주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옥스퍼드 출신이다. 옥스퍼드의 학생 토론클럽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는 미래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데뷔무대 역할을 한다.1823년 귀족출신의 학생 몇몇이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옥스퍼드 연합토론협회가 모태다.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에서 윌리엄 글래드스턴 등 5명의 총리들이 정치가의 삶을 시작했다. lotus@seoul.co.kr ■ “하루 일과 오직 공부… 공부” |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아이작 뉴튼을 배출한 명문으로 수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조태준(23)씨는 이곳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몇 안되는 한국인 유학생 중 유일한 학부생이다. 다른 케임브리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칼리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태준씨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졸업반인 태준씨는 오전 시간은 전공강의를 듣는 데 모두 할애한다. 오후와 저녁은 밀린 공부와 ‘슈퍼비전’이라는 개인지도 수업 준비로 보낸다. “학생들은 하루를 대개 오전, 오후, 저녁으로 쪼개서 생활하는데 세 부분 중 적어도 두 부분은 공부에 할애합니다. 계획한 대로 마치지 못한 분량이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 채워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거의 공부하는 데 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3학기로 나뉘어 진행되는 한 학년 동안 순수 및 응용수학, 이론물리학, 확률·통계 과목을 10∼12개 수강해야 하는 빡빡한 강의 일정에 슈퍼비전까지 제대로 따라가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형편이지만 밤새 공부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법”이라며 자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태준씨는 중학교 3학년때 혼자 조기유학을 왔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거쳐 2001년 트리니티 칼리지의 공학부에 입학했다.1년을 다닌 뒤 순수학문인 수학에 매료돼 ‘뉴턴의 후예’가 되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는 태준씨는 “자기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리가 잡혔지만 끝없이 연구하는 교수님들과 머리가 비상하면서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명문대로 살아남기 “기부금이 경쟁력”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옥스브리지가 전통과 권위를 살리면서 미국의 명문대학들 틈에서 톱클래스 대학으로 살아 남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학의 재정 확충문제다. 옥스브리지는 영국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명문이지만 하버드나 예일·MIT 등 미국의 명문대보다는 재정이 취약해 21세기에 선도적인 역할을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대학들의 재정이 취약한 중요한 이유는 기부금 규모가 미국의 라이벌 대학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기부금 규모는 각각 54억달러와 47억달러다. 미국대학 중 기부금 1위인 하버드대(255억달러)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옥스브리지 졸업생들은 미국 명문대 졸업생보다 기부금을 내는 데 소극적이다.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은 케임브리지의 경우 10%다. 반면 미국 명문사립인 프린스턴대는 60%에 가깝다. 케임브리지는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개교 800주년을 맞는 2009년까지 기부금 10억파운드(약 1조 7000억원)를 모금하는 ‘케임브리지 개교 800주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예일대의 재정담당관을 지낸 앨리슨 리처드 부총장이 캠페인 총책을 맡았다. 리처드 부총장은 “케임브리지가 미국의 대학들을 제치고 과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연구시설 등 인프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부금은 미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계획을 진행하는 데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 된다.”고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는 이공계 학과의 연구단지를 구성하는 웨스트캠퍼스 개발계획과 남쪽의 아덴브룩병원을 중심으로 한 생의학 단지조성 계획 등 6억파운드(약 1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웠다. 옥스퍼드도 런던 금융가에 진출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기부금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옥스퍼드의 빌 맥밀런 기획담당 실무부총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안정적인 재정과 재정적 독립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브리지는 또 미국대학들보다 낮은 기부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미국 대학들에 일반화된 최고투자책임자(CIO) 영입도 서두르고 있다. 기부금을 유명 투자회사에 맡겨두고 학내 투자위원회를 통해 감사만 하던 기존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CIO를 앞세워 헤지펀드 사모펀드(PEF) 등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고수익 부문에 대한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에 맞서기 위해 옥스브리지는 해외 우수인재들을 유치하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인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lotus@seoul.co.kr
  • 7억弗 만찬 후진타오 시애틀 빌게이츠 저택 초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4년 만의 워싱턴 무대.’ 워싱턴의 눈이 다시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부주석으로 방문한 지 4년 만인 18일 방미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베일에 가려진 이 차세대 지도자는 ‘온화한 미소에 춤을 멋있게 잘추는’ 정도로만 알려졌다.‘후스(Hu´s) 후(who)?’란 물음도 그래서 나왔다. ●공격적인 부시를 상대해야 이번에는 고도의 정치적 역량 발휘를 요구받고 있다.“경제계와 정치계, 미국 국민들로부터의 압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고 AP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그러잖아도 이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중국에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 등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전해지는 등 ‘공격적인’ 자세다. 부시와의 만남은 적지 않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부시의 모교인 예일대에서 강연하는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9월 뉴욕의 유엔본부를 찾아 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지만 서방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일정을 갖지 못했다. 원래는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었으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정상회담을 미뤘다. ●후 주석을 위한 대규모 오찬 정상회담을 하는 20일 후 주석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국가 원수에 걸맞게 21발의 예포와 의장대 사열 등 최고의 예우를 받은 뒤 부시 대통령과 함께 간단한 연설을 한다. 이어 두 나라 대통령과 국가안보 보좌관들은 대통령 집무실(오벌룸)에서 공통 안보 현안을 논의한 뒤, 각료 회의실(캐비닛 룸)로 자리를 옮겨 양국 각료들도 참석시킨 가운데 경제 현안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눌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 부부는 이 회의가 끝난 뒤 후 주석 부부에게 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오찬을 베푼다. 이어 후 주석은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에 머물면서 딕 체니 부통령과의 면담에 이어 미국 의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빌 게이츠의 초호화 만찬초대 18일 저녁 워싱턴주 시애틀에 먼저 도착한 후 주석은 ‘게이츠 하우스’로 불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1억 5000만달러(약 1500억원)짜리 초호화 자택에서 만찬을 가졌다. 중국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7억달러(약 7000억원)어치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이번 만찬은 ‘7억달러짜리’로 불리고 있다. 한편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두 정상이 지난 1년간 5번이나 만나는 등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이번 ‘방문’을 통해 심도 있고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 달력을 보니까 두 사람은 최소한 4번 더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리는 중국측이 후주석의 방문을 ‘국빈 방문(state visit)’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냥 ‘방문(visit)’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측이 볼 때에는 국빈방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아이비리거 되기는 어려워] 입학경쟁률 올해 사상최고

    미국 메인주 팰머스의 윌 메이슨(17)은 교내 신문 편집장에 피아노를 연주하고,4년 내내 A학점을 유지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은 2400점 만점에 2200점을 받았다. 미국 동부 명문대학인 아이비(Ivy)리그 입학은 따놓은 당상인 듯했다. 하지만 아이비리그가 아닌 오벌린대와 스키드모어대에만 합격했을 뿐 정작 가고 싶은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대에는 예비합격자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다. 미국 명문 대학의 경쟁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이에 따라 합격률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있다. 아이비리그의 경우 합격률이 10%선에 불과하다. 올해 예일대에 지원한 2만 1099명 가운데 8.6%만이 합격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지난해에는 1만 9448명중 9.7%가 합격했다. 다른 명문대학의 합격률도 비슷하게 낮아졌다. 컬럼비아 9.6%, 스탠퍼드 11%,MIT 13%, 브라운 13.8%, 다트머스 15.4%, 펜실베이니아 17.7%였다. 이처럼 대학 입학이 어려워진 이유는 우선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미 대학입학카운슬링협회(NACAC)에 따르면 올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는 사상 최대인 300만여명으로 이중 65%가 대학에 지원했다. 1970년대 도입된 표준지원서 제도가 지난 10년간 광범위하게 수용되면서 학생들은 수십장의 입학지원서를 제출했다. 표준지원서는 7장의 서류를 채워 이메일로 부치면 되기 때문에 대학 지원이 간편해졌다. 하버드와 같은 명문사립대는 연간 학비가 4만 5000달러(약 4500만원)가 들지만, 주립대는 1만 2000달러(약 1200만원)면 된다. 주립대의 학비부담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지원도 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은 명문사립대에 합격하지 못하면 주립대를 차선으로 택하는 편이다.대학교육을 받아 교육열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대학에 지원하면서 지원자의 수준도 높아졌다.튀기 위해 별난 지원서를 제출하는 학생도 많다.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 매키나 칼리지의 입학담당자는 보드 게임판으로 만든 자기소개서를 받았다. 게임은 지원자의 삶에 관한 소소한 질문으로 구성돼 있었다.일부 전문가들은 대입 경쟁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미국에는 2600개의 4년제 대학이 있는데 이중 합격률이 25% 이하인 곳은 26개,50% 이하인 곳은 140개밖에 안 된다.대입 상담사이트를 운영하는 캐롤린 로렌스는 “입학이 가능한 좋은 대학은 널려 있다.”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이비리거 되기는 어려워] “졸업하려면 정문 출입하지 마라”

    |프린스턴(미국 뉴저지주)·뉴 헤이븐(코네티컷주)·보스턴 이도운특파원|‘아이비(Ivy) 리그’로 불리는 미국의 동부 명문대학들은 미신도 많다. 특히 학문적 명성이 높고, 학생들간의 경쟁도 심하다 보니 미신들도 다분히 ‘학구적’이다. 뉴저지주에 자리잡은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들은 학교 밖을 나갈 때 정문인 피츠랜돌프 게이트를 지나지 않는다. 이 문을 지나가면 졸업을 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1학년생인 조너선은 “대학 설립 초기에 졸업생들이 이 문을 통해 행진해 나가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미신이 생긴 것 같다.”면서 “물론 미신인 줄은 알지만 학교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다른 문들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브라운 대학의 학생들은 시험 때가 되면 도서관의 존 헤이 전 국무장관 동상의 코를 만진다. 그렇게 하면 시험을 잘 보게 된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 앞에 설치된 미네르바의 여신상의 옷깃 사이에는 조각가 몰래 새겨넣은 올빼미가 숨겨져 있다. 이 올빼미를 처음 발견하는 신입생은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졸업식 때 대표로 고별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 컬럼비아 학생들의 미신이다. 예일 대학의 교정 중앙에 자리잡은 디어도어 울시 전 총장의 동상. 구리로 만든 동상의 왼쪽발은 색깔이 닳아 노랗게 변했다. 이 발을 만지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자녀는 나중에 예일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의 미신이 하버드 대학에도 있다. 이 대학 설립자 존 하버드의 구리 동상 역시 왼발의 색깔이 노랗게 바래져 있다. 하버드 대학 방문객들은 누구나 한번씩 동상의 왼발을 만지며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이에 대해 조지프 린 하버드대 대외협력처장은 “존 하버드가 사진은 물론 초상화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동상 자체가 실물과 같은가에 대해 의문이 많다.”며 “하버드에 들어오려면 미신을 믿기보다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dawn@seoul.co.kr
  • 중앙노동위원장 김유성씨 내정

    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9일로 임기가 끝나는 신홍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후임에 김유성(66) 전 서울대 법대 교수를 내정했다고 김완기 인사수석이 6일 발표했다. 차관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는 이성열(55) 중앙인사위원회 소청심사위원장이, 소청심사위원장에는 정택현(55) 중앙인사위 사무처장이 발탁됐다. 노 대통령은 한국은행 부총재에 이승일(61) 서울외국환중개㈜ 사장을, 금융통화위원에 심훈(65) 전 부산은행장을 기용했다. 노 대통령은 7일 오전 이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김 수석은 브리핑에서 예정과 달리 금통위원 1명의 내정을 유보한 것과 관련,“논의 끝에 상공회의소가 추천한 학자 출신보다 정부와 연결고리 및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무원 출신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따라 2주 정도 미뤘다.”고 설명했다. 김 중노위원장 내정자는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국제노동법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노동법의 권위자이다. 이 교육원장 내정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행시 17회 출신으로 행정자치부 인사국장과 전북 행정부지사를 지냈다. 정 위원장 내정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인사위 인사정책심의관, 소청심사위원 등을 거쳤다. 이 부총재 내정자는 용산고와 연세대 상학과,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 한국은행에서 공보실장·인사부장·부총재보 등 인사·기획 분야에서 근무했다. 심 금통위원 내정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예일대를 졸업한 뒤 35년간 한은에서 재직하면서 조사·자금부장·감사·부총재를 역임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부고]

    ●강정원(전 옥천 삼산의원)시원(대전성모병원 원장)덕원(대전MBC 보도국 부국장)씨 모친상 민종(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원)세종(IT컨설팅 부사장)수종(신한은행 외환팀)규성(국제종합농기계 연구원)씨 조모상 박범수(옥천 안내초등학교 교감)씨 빙모상 29일 충북 옥천농협장례식장, 발인 31일 오전 9시 (043)731-6017●조종희(전 한진해운 선장)씨 별세 민호(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씨 부친상 박진용(연합뉴스 전산부)씨 빙부상 2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31일 오전 7시30분 (02)590-2697●이철영(이마산업 사장)수영(영국로이드선급협회 검사관)호영(한진정보통신 부장)장영(청우 사장)씨 부친상 29일 서울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2)2072-2018●채승진(연세대 교수)미애(사업)경애 명애씨 모친상 신계선(사업)박봉근(〃)박요한(한솔교육 상무)씨 빙모상 김숙영(전 HP 차장)씨 시모상 2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30분 (02)392-0299●이영만(전남도의회 사무처 홍보담당)씨 모친상 29일 나주 한국병원, 발인 31일 오전 10시 (061)334-4311●최재호(인스퀘어 대표)씨 모친상 29일 건국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 (02)2030-7903●우동진(한국은행 감사실 차장)씨 부친상 하재명(자영업)이훈우(〃)이원호(회사원)씨 빙부상 29일 서울의료원, 발인 31일 오전 6시 (02)3430-0298●김재섭(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정섭(충주우체국)씨 부친상 유승혜(서울염리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김태규(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씨 큰아버지상 29일 건국대 충주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 (043)840-8495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커리어 우먼] 김 유니스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보

    [커리어 우먼] 김 유니스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보

    지난달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증권·자산운용회사와 증권 관계기관 등의 감사와 준법감시인 180여명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들 가운데 여성 참석자는 10여명이 안됐다. 준법감시제도가 시행되기 4년전인 1996년 이미 템플턴투신운용에서 업계 준법감시인 1호로 근무하고 2000년에는 투신업계의 내부통제기준 안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한 한국씨티은행의 김 유니스 부행장보는 “금융현장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으니까 앞으로는 여성 준법감시인 비율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행장보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뒤 템플턴투신운용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옛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에서 준법감시와 법무를 담당하다 2004년부터 한국씨티은행에서 법무본부를 맡고 있다. 예일대 학부를 졸업하던 1982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통일신라역사를 연구했다. 로스쿨을 졸업하던 1986년에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대학에서 중국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연구를 한 독특한 경력도 갖고 있다. 중국 유학 경험은 ‘나의 중국유학생활’(출판 시사영어사)이란 책으로 나와 있다. 김 부행장보의 학부 전공은 중국학과 행정학으로 학부 시절에는 타이완국립사범대학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꼭 풀어야 하는 지적 호기심 김 부행장보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던 때”라면서 “우한대 유학시절은 중국학을 전공하면서 가진 중국에 대한 많은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미국에 돌아와 법률회사에서 일하던 김 부행장보는 기업경영에 관심을 느껴 사내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외부 변호사는 해당 회사를 설명해주는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시각으로 회사를 봐야 하고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 알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김 부행장보는 “사내 법무팀이라고 하면 소송담당이 주 업무라고들 생각하지만 이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내 법무팀은 회사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법규 해석, 영업행위와 관련된 상담, 계약과 각종 문서 검토, 전략과 상품개발과정 참여 등 문제 예방을 통해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회사의 명성과 고객보호를 극대화하는 조직이다. 회사가 추진하는 모든 업무에 처음부터 참여하다 보니 김 부행장보의 하루 일과는 법무팀이 아니라 최고경영진은 물론 상품개발·영업·준법감시·인사팀 등 다른 팀과의 회의에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현재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에는 국내외 유명한 법률회사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은 10명의 국내외 변호사를 포함,16명이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씨티은행은 변호사 4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일을 즐기든지 좋아하는 방법을 찾아내라” 금융도 김 부행장보의 끊임없는 탐구 대상이다. 그는 “금융은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분야인데다가 한국 금융시장의 역동성과 이에 따른 다양한 법률활동은 금융인으로서 많은 참여 기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행장보는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이다.1998년 사내 변호사 모임인 ‘in-house counsel forum’ 창립멤버로 참여, 지금 3대 회장을 맡고 있다.8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회원 120명으로 격월마다 세미나를 갖는 큰 조직이 됐다.1998년부터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의 증권시장분과위원에 이어 국제금융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구성된 금융허브전략분과위원이기도 하다.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금융여성인네트워크에서 설립 초기부터 부회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칠줄 모르는 호기심과 일에 대한 욕심은 자신의 일을 즐기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김 부행장보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최상이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방법이라도 찾아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전형적으로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금융법률가와는 달리 부드러운 성격에 오렌지색, 핑크색 등 밝은 계열색을 좋아하고 액세서리 색깔도 맞추는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김 유니스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보 ▲1959년 서울 출생▲82년 예일대 졸업▲86년 예일대 로스쿨 졸업▲87년 중국 우한대학 연구원▲89년 뉴욕주 변호사▲미국 로펌 근무▲94년 영국 및 홍콩 기업 근무▲96년 템플턴투자신탁운용 법무·준 법감시인(서울)▲99년 템플턴투자신탁운용 부사장▲2000년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상무▲2004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보▲1998년∼금융발전심의회 분과위원▲2005년∼금융허브전략분과위원 글 전경하 사진 안주영기자 lark3@seoul.co.kr
  • 故 박성용회장 서울대 명예박사 추대

    故 박성용회장 서울대 명예박사 추대

    서울대가 지난해 별세한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서울대가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는 2일 대학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박 전 명예회장을 명예철학박사로 추대하는 안건을 가결시켰다. 학위 수여식은 오는 28일 오전 본부에서 열린다. 명예박사추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태수 대학원장은 “이제 서울대도 건전한 기업 활동을 명예박사 학위 수여 선정에 고려할 때가 됐다.”면서 “박 전 명예회장은 학자인 동시에 노사화합과 사회봉사 등 덕목도 탁월히 수행한 성공적인 경영자이고, 기업의 성과를 문화예술계에 아낌없이 투자한 훌륭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명예박사 추대절차가 까다로운 서울대가 고인이 된 기업인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대는 개교 60년 이래 102명에게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인은 이승만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등 6명이 전부다. 기업인으로서는 2000년 한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놓은 성과를 인정해 학위를 준 이건희 삼성 회장 이후로 두번째다. 재계 1세대 원로 경영인으로 꼽히는 박 전 명예회장은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예술의 전당 이사장, 한국메세나 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 지원을 아끼지 않은 문화예술계 최고 후원자로 생전에 ‘한국의 메디치’로 불렸다.‘통영 윤이상 음악회’를 세계적인 음악제로 키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 전 명예회장은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예일대생들 “올드보이 공부합니다”

    예일대생들 “올드보이 공부합니다”

    |뉴헤이븐(미 코네티컷 주) 이도운특파원|‘예일대 학생들도 올드보이에 반했다?’ 미국의 명문 예일대가 올 봄학기부터 처음으로 한국 영화 강좌를 개설했다. 예일대 영화학과와 동아시아학과에서 공동으로 개설한 강좌의 제목은 ‘1961년 이후의 한국 영화’. 담당교수는 예일대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를 담당하는 최승자 교수다. 최 교수는 27일 “최근 미국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필름 스터디측과 공동으로 강좌를 개설했다.”면서 “미국과 한국 학생 등 10명이 수강 중”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가 수업 ‘교재’로 선택한 영화는 10여편. 대부분이 한국 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학생들이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올드 보이’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요청해 한국의 최신 ‘스타일리스틱 무비’로 수업에 포함시켰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국영화에 대한 수강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마다 영화가 나온 한국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영화 관람, 관람후 토론 등 3단계로 나눠 수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서편제처럼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정서를 표현한 영화를 미국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印싱총리 부녀 ‘엇갈린 노선’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그의 막내딸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 노선을 걷고 있어 화제다. 아버지는 친(親)부시 쪽이지만 딸은 적극적으로 반(反)부시 활동을 하고 있다. 싱 총리의 막내딸인 암릿 싱(36)은 미국의 떠오르는 반부시 인권 운동가. 그녀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포로 학대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핵심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음달 인도 방문을 앞둔 부시 대통령과 싱 부녀의 상반된 행보가 ‘포스트 9·11 세계’를 보여주는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라고 21일 전했다. 암릿 싱은 부시 정부에 그야말로 ‘눈엣가시’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지난달 미 국방부 문서를 공개,“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쿠바 관타나모의 포로 학대가 조직적으로 자행됐다.”고 비판했다. 또 뉴욕 지방법원에 부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진을 추가 공개하라.”는 판결을 이끌어 낸 주역이다. 그녀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9만쪽이나 되는 정부 문서들을 입수해 공개하는 운동의 최선봉에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학대 혐의로 고소한 6명의 이라크인과 4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의 변호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반면 아버지 싱 총리는 지지율 하락에 고민하는 부시의 친구를 자청하고 있다. 인도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대외 정책을 펴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싱 총리는 지난해 7월 부시 대통령과 핵 협정을 맺는 등 정치·경제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다. 다음달 인도 뉴델리에서 싱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게 될 부시는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인도를 방문하는 5번째 미국 대통령이 된다. 싱 총리의 측근들은 부녀가 국내 문제에는 같은 시각을 보이면서도 부시의 대외 정책만큼은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싱 총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암릿 싱은 부시 대통령과는 대학 동문이다. 워싱턴 정가는 ‘부시 사냥’에 나선 암릿 싱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세계 대장정 나선 ‘독도라이더’ 5인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세계인과 직접 만나 알리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대학생 5명이 독도를 바로 알리기 위해 오토바이 타고 세계일주에 나선다. 연세대 강상균(26)씨와 KAIST 김상균(26)씨 등 5명은 새달 1일 인천을 출발해 미국·프랑스·인도·중국 등 23개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총 3만4000㎞의 대장정에 일주 기간만도 8개월에 이른다. 이들이 처음 독도수호 세계일주를 기획한 것은 독도 논쟁이 한창이었던 2004년 봄. 군 복무중이었던 강씨는 후임병인 김영빈(24)씨와 독도 문제를 놓고 토론하다가 ‘독도 바로 알리기’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뒤 뜻이 맞는 이강석(26)씨와 홍승일(22)씨가 합세해 ‘독도라이더’를 결성했다. 리더를 맡고 있는 강씨는 “보다 능동적으로 세계인과 부딪쳐 독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청년 아이콘인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돌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지의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미국대학과 유럽지역 대학 등 20여곳의 대학캠퍼스에서 독도를 알리기 위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또 미국 CNN·중국 인민일보 등 언론사와 세계지도 제작 단체도 방문해 ‘독도’를 바르게 표기해 달라고 정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하버드가 지배한다/리터드 브래들리 지음

    1636년, 미국 독립보다 140년 앞서 하버드대학교가 문을 연다. 이후 7명의 대통령,3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명망있는 정치가, 대법관, 학자, 예술가 등을 배출하며 세계 지성의 산실로 자리매김한다. 하버드는 이같은 물리적 가치를 넘어 ‘정신의 제국’이란 평가를 받아왔다.1960년대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진 반전운동과 흑인 인권운동의 핵이었으며, 널찍한 하버드 야드 중앙에 세워진 메모리얼 교회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하버드의 의지를 상징한다. ●서머스, 400대1 경쟁률 뚫고 총장에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버드에 대한 ‘진실’은 지금도 유효할까?‘하버드가 지배한다’(리처드 브래들리 지음, 문은실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는 하버드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에 강력한 의문부호를 던지며 하버드가 전통적 상식 밖으로 달음질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책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프리랜서로서 글을 써온 저자는 예일대에서 학부를 나와 하버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마치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듯 하버드 외피속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여겨지던 하버드는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변화하게 되었는가? 책은 그 변화의 핵심 인물로 로렌스 헨리 서머스 현 하버드대 총장을 지목한다. 래리 서머스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그는 젊은 시절 하버드에서 최연소 종신교수직을 따내고 미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까지 언급되었던 인물. 하지만 돌연 워싱턴의 경제전문가로 진로를 바꾼 뒤 재무부 장·차관을 거쳐 지난 2001년 10년 만에 하버드로 돌아온다.40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돌아온 서머스는 하버드에 매머드급 돌풍을 몰고 왔다. 10년간의 ‘워싱턴식’ 게임이 하버드에서 시작된 것. 책에 따르면 하버드엔 이제 외곬같은 ‘착한 교육’은 없다. 오로지 경쟁 속에서 세계 초일류 대학 정수리에서 낙마하지 않기 위해 서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시대의 트렌드, 생명공학에 투자하라. 찰스강 인근에 자리잡은 하버드를 올스톤 구역까지 확대해 하버드 제국을 건설하라. 커리큘럼을 바꾸고, 세계화에 발맞춰 세계 각국에 하버드 분교를 설립하라. 하버드는 지난 4년간 그야말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보통 15∼20년인 총장 재임기간을 고려해볼 때 하버드의 변화는 누구를 총장으로 앉히고,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학생·교수 본분에 돌아가 성과 만들라” 지금 하버드 교정에선 반유대주의를 인정할 수 없고, 한갓 회의주의에 빠진 인종·종교 관련 문제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학생과 교수의 본분으로 돌아가 오로지 경쟁, 그리고 성과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 서머스의 강력한 논리다. 이 논리를 거부하는 학생이나 교수는 버텨낼 수 없다. 총장에게 길들여지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하버드인이기를 포기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인종 종교 사회문제 등에 적극적이었던 미국흑인학과 교수 코넬 웨스트는 학생들을 선동하고, 수업에 소홀하다는 서머스의 트집에 첫번째 희생양이 된다. 서머스의 동갑내기로, 서머스보다 1년 앞서 종신교수직을 따냈던 하버드 학부 학장 해리 루이스도 축출된다. 교육에 대해 ‘속도 줄이기’를 요구했던 그는 2003년 서머스가 베네딕트 그로스를 학부 학장에 앉혀 완벽한 ‘서머스계’ 인사를 감행한 후 자진 사임의 형식으로 하버드에서 완전히 밀려난다. 극심한 경쟁과 성과주의 압박은 학생도 마찬가지. 공부벌레로 불려지는 하버드 학생들은 90년 이래 16명이나 하버드의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뚱이를 해체하는 극단적 방법, 즉 자살을 택했다. ●‘서머스계 인사´ 감행 반대교수들 축출 학교가 배움의 전당이라는 숭엄한 권위 보다는 각종 데이터로 수치가 매겨지는 산술의 공간으로 변모해 간다는 저자의 우려는 의미심장하다.‘속도만능’‘성과만능’의 시대를 교육이 거리낌 없이 좇아가야 하는지,21세기 교육의 자화상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1만 9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실용경제|●나폴레온 힐 부의 법칙(나폴레온 힐 지음, 수전 텔링게이터 개정, 이강락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자기 계발서의 원조 격으로, 부를 창출하는 성공원리를 집대성했다.1만 5000원.●지식의 힘(박종현·이보연 지음, 삼진기획 펴냄)한국 대표 CEO 27명에게 듣는 성공 스토리.1만 2800원.●따뜻한 성공(로타르 J. 자이베르트외 지음, 전재민 옮김, 북폴리오 펴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10인의 일과 삶에서의 성공 비결 소개.1만 2000원.●고마워요, 인생이여(셰리 카터스콧외 지음, 채세진 옮김, 명진 펴냄)인생의 진정한 승자인 이름 없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9500원.●월드클래스 공부법(박승아 지음, 김영사 펴냄)국제수능에서 만점받은 예일대 여학생의 공부법.9900원.|유아·아동|●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의 신나는 기차여행(베아테 드뢸링 엮음, 마티아스 베버 그림, 유혜자 옮김, 노마드북스 펴냄)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 ‘짐 크노프 이야기’가 그림동화로 다시 태어났다. 환상적인 공간 햇빛섬으로 배달된 소포에서 나온 꼬마 짐 크노프의 신나는 모험.5세 이상.9000원.●동물들의 덧셈 놀이(콜린 호킨스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화살표 방향으로 책장을 뽑으면 동물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재미있는 플랩 북. 곰, 생쥐 등이 등장하는 입체그림책이 유아에게 덧셈의 원리에 눈뜨게 이끈다.‘괴물들의 뺄셈 놀이’가 함께 나왔다.3세 이상. 각권 1만 2000원.|초등·청소년|●어린이를 위한 우리나라 지도책(이형권 글, 김정한 그림, 아이세움 펴냄)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화가가 그린 그림지도책. 산, 강 등의 지형과 지물을 그림으로 표현해 ‘지도는 재미없는 것’이란 편견을 깬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은 꼬마 주인공과 삼촌의 대화장면을 끼워넣어 이해를 도와준다. 초등저학년.1만 1000원.●그림으로 읽는 우리 고전 삼국유사(전2권)(전일봉 글·그림, 휴머니스트 펴냄)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 ‘삼국유사’를 수묵채색화로 되살린 교양만화.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학습용으로 권해주어도 손색 없는 교양서. 초등생. 각권 1만 2000원.
  • 직원·졸업생등도 평의원 선임

    개방형 이사제와 관련, 일본의 사립학교법에는 ‘학교법인의 평의원 중에서 기부행위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사를 선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평의원은 학교 법인의 직원, 졸업생, 기타 기부행위자 가운데 선임된다. 실제로 와세다 대학 정관을 보면 법인에 총장을 포함해 14명의 이사를 두는데 이사는 평의원회에서 선임한다. 총장을 뺀 13명의 이사는 법인 소속 교직원 가운데 10명, 교직원이 아닌 동문 가운데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법은 이사정수의 4분의1 이내로 친족이사 비율을 제한했으나 일본은 ‘임원 중에는 각 임원에 대해 그 배우자 또는 사촌 이내의 친족이 1명을 초과해 포함돼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학생의 수업료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순수한 의미의 사립대학인 영국 버킹엄대학의 경우 대학운영의 실질적 권한은 대학집행이사회에 있다. 대학집행이사회는 당연직 4명과 임명직 35명 이내로 최고 39명의 인사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대학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이 절반을 넘는 20명이고 행정직원 2명과 학생 3명도 참여하고 있다. 또 대학집행이사회의 장은 대학의 교원이나 행정직원 또는 학생이 아닌 자로서 이사회의 구성원이나 구성원이 아닌 자 중에서 임명하게 돼 있어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제3자적 지위에 있는 자가 이사회의 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이밖에 교육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미국 예일대에는 19명의 이사 가운데 6명의 동문이 포진해 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아름다운 모교사랑 3제] “10만달러 후학위해” 유언

    한 재미교포가 10만달러를 대구의 모교에 전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연이 7일 뒤늦게 알려졌다. 대구 제일여자정보고교(옛 제일여상)는 지난 9월22일 이름만 밝힌 한 미국국적의 교포로부터 장학금으로 사용하라며 10만달러를 송금받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학교측은 돈의 출처를 밝히려고 미국의 송금자와 돈의 주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졸업생의 아름다운 기부 사실을 알게 됐다. 장학금을 기증한 사람은 제일여상 10회 졸업생으로 미국인과 결혼해 하와이로 건너가 생활하다 2003년 1월 숨진 이정옥(당시 47)씨. 이씨는 20여년전 미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애리조나주로 옮겨 혼자 살면서 우체국 등에서 일하며 매우 검소한 생활을 통해 20만달러가 넘는 재산을 모았다. 이씨는 지병이 악화되자 전재산 26만달러 가운데 10만달러를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증하고, 미국 하버드와 예일대에 각각 1만달러,4명의 한국인 고아에게 3만∼4만달러씩을 전달하라고 유언한 뒤 숨졌다. 장학금의 뒤늦은 전달은 이씨를 돌봐왔던 애리조나주 스카츠데일의 등대교회 김형수 목사가 2년여에 걸쳐 미국법에 따라 복잡한 상속절차를 밟은 끝에 지난 9월 절차를 완료해 이뤄졌다.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Doctor & Disease] “男모르는 병 자궁암 정복 희망있다”

    [Doctor & Disease] “男모르는 병 자궁암 정복 희망있다”

    “자궁경부암은 좀 별난 암입니다. 다른 암과 달리 HPV바이러스가 거의 유일한 발병원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상당히 유력한 것으로 보이는 백신들이 개발돼 임상시험 중인데, 앞으로 상용화되면 이 암의 발병 억제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장으로 자궁암 치료 분야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박상윤(52) 박사는 “자궁경부암이 ‘여성의 덫’인 것은 사실이지만 바이러스에 의한 발병 경로가 상당 부분 드러나 다른 암보다 빨리 정복될 가능성도 있다.”며 ‘두려움’ 대신 ‘희망’을 전했다. ▶자궁경부암이란 어떤 질병인가. -자궁의 입구인 자궁경부에 발생하는 여성 생식기암이다. 정상 상피세포에서 이형성증을 거쳐 암으로 진행하며,0기일 때를 상피내암,1∼4기 때를 침윤성 자궁경부암이라고 한다.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문제다. 역학조사에 따르면 17세 이전의 이른 성관계,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 배우자가 다른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일수록 발생률이 높았는데, 이는 HPV가 성관계로 감염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박 박사는 HPV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고위험군에 속하는 HPV는 대부분 체내 면역체계에 의해 사멸되지만 일부가 자궁경부암의 전 단계인 자궁경부 상피이형성증을 유발하며, 이 중의 일부가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절제된 성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절제가 질병을 구축하는 상황인 셈이지요.” ▶자궁경부암은 어떻게 세분하는가. -조직학적 관점에서 편평상피세포암과 선암으로 구분한다. 편평세포암은 자궁경부암의 80%를 차지할 만큼 흔하다. 선암은 11% 정도 점유율을 보이지만 발생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35세 이하의 젊은 여성에게 많다. ▶유형이나 병기별로 나타나는 특징적인 증상은 무엇인가. -가장 흔한 증상은 질출혈로, 폐경기 이후에 출혈이 있거나 폐경 전인 경우 생리기간이 아닌데도 불규칙하게 출혈이 보인다. 출혈은 성관계나 심한 운동 후, 대변 볼 때, 질 세척 후에 주로 나타난다. 폐경 전 여성의 경우 갑자기 생리량이 늘고 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이밖에 감염되면 질 분비물 증가와 함께 악취가 나며 암이 요관과 골반 좌골신경으로 전이되면 하지로 방사되는 골반통이, 방광과 직장으로 전이되면 옆구리 통증, 배뇨곤란과 혈뇨, 직장출혈, 변비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암이 진행되어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 ▶최근의 유병률과 발병 추세를 소개해 달라. -현재 국내 자궁경부암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15명 정도이고 사망률은 10만명당 3.5명 정도로 최근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생활의 서구화로 여성생식기암 중 난소암, 자궁내막암은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인다. ▶연령대별로 보이는 특이점은 없나. -상피내암은 35∼40세 사이에 많으며, 침윤성은 30세 이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50대에 정점에 달한 후 급감하는 경향을 보이나 최근에는 20대의 자궁암 발생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진단은 어떻게 하나. -내진과 자궁경부질세포검사를 통해 대부분의 자궁경부 이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상이 있을 경우 간단하게 질확대경검사나 조직검사를 시행한다. 이밖에 필요에 따라 방광경 및 에스결장경검사나 경정맥 신우조영술을 시도하며,CT나 MRI,PET 검사를 통해 세부 치료계획을 세운다. ▶일반적인 증상을 통해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초기에는 대부분 증상이 없다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악취가 나는 분비물이나 질출혈, 요통, 골반통, 체중감소 등이 나타난다. 질출혈의 경우 염증이나 질이 허는 미란, 호르몬 분비체계가 바뀌어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산부인과 전문의 진찰이 필수적이다.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 -치료법은 다양하다. 암 이전의 전암단계일 경우 원추절제술만으로도 완치되며 치료 후 임신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침윤성 암은 대부분 광범위한 자궁적출술이나 항암화학방사선요법이 필요하다. 초기 침윤성 암은 광범위 자궁경부 적출술과 복강경 임파절절제술을 적용해 환자에게 임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광범위 자궁적출술인 수술법은 1기와 2기초인 경우에 시행하며 초기 암은 거의 완치될 정도로 예후가 좋다.2기말부터는 화학 및 방사선치료를 병행한 항암화학방사선요법을 시행한다. ▶재발 등 치료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나 후유증은 없는가. -자궁경부암도 다른 암처럼 재발할 수 있으므로 치료 후 철저한 추적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술 합병증으로는 급성인 출혈, 장폐색, 혈관·요관손상, 직장파열, 폐렴, 폐색전증 등이 있으나, 드문 편이다. 만성 합병증으로는 방광과 직장의 기능부전이 대표적이다. ▶진단이나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상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궁경부암은 조기검진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따라서 조기검진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건강증진 프로그램 및 청소년의 성교육에도 조기검진 교육이 포함돼야 한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출혈·월경이상·골반통증땐 ‘의심’ 박 박사가 전하는 자궁경부암의 위험인자는 대략 다섯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먼저,17세 이전에 성관계를 가졌거나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 다른 여성들과 두루 성관계를 가진 배우자를 둔 여성이 문제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이 포경, 음경암을 갖고 있거나 흡연과 잦은 음주에 노출된 여성도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런 여성들이 특정 증상을 보이면 지체없이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또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후 면역억제 치료를 받은 경우에도 발생률이 높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병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도 상세히 소개했다. “성교 또는 질 세척 후 출혈이나 악취가 나는 질 분비물이 보이면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 또 월경 이상, 폐경후 출혈, 골반통, 요통, 빈뇨, 설사, 변비에 체중감소도 중요한 증상으로 꼽히는 만큼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박상윤 박사는 ▲서울대의대·대학원 및 고려대의대 대학원▲원자력병원 산부인과 과장▲미국 예일대 연수▲미국 워싱턴암센터, 독일 마인츠대학 교환교수▲대한부인종양학회▲미국임상암학회, 미국암연구협회, 국제부인암학회 회원▲대한암학회·대한부인종양학회 편집위원▲산부인과 내시경학회 보험위원장▲대한부인종양학회 심사위원장▲현,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장·자궁암연구과장·호발암연구부장
  •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을 보면 동쪽 끝에 외따로 박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하면 조용히 숨어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중심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은 이미 오래전 세계화된 국가였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이 문제를 짚기 위해 중앙아시아학회(회장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4∼5일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단순히 ‘비단 상인들의 길’이 아니라 ‘문명의 흐름’으로서 실크로드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고려대 정수일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확대를 제안했다. 실크로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중국~인도간 교역로로서다.19세기말 탐험가들이 발견했다. 그 뒤 발굴과 탐험이 잇따랐고 이 길은 중국 시안에서 시리아의 팔미라에 이르는 기다란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길은 점처럼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잇는다 해서 흔히 ‘오아시스로’라고 불린다.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 하면 떠올리는, 모래바람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다란 상인들의 행렬과 같은 이미지는 바로 이 오아시스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 연구가 더 깊어지자 다시 북방초원지대를 통하는 ‘초원로’와 지중해에서 중국 동남해안에 이르는 ‘해로’ 개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숱한 교역로가 확인되면서 이제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숱한 길들이 됐다. 정 초빙교수는 여기에다 아예 전세계를 뒤덮는 길로 실크로드를 재조명하자고 제안했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까지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16세기 ‘대범선 무역’을 그 증거로 삼았다. 필리핀을 기점으로 중남미의 백은과 중국의 비단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의 중국과의 교류를 보면 오아시스로와 잇대어 있다는 것이다. 해로 역시 유물로 증명된다. 백제왕릉에서는 동남아 특산 유리구슬이 나오고 중세 아랍문헌에서는 신라의 수출품목들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다. 초원로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실해 명확한 증거만 없다뿐이지 활발하게 이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이런 증거들을 모아 실크로드가 한국까지 이어졌고 이것이 ‘세계 속의 한국’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胡 중국 왕조 가운데 국제적 교류가 가장 많았던 당나라에는 유독 ‘호(胡)’자가 들어간 것들이 많다. 호복(胡服)·호식(胡食)·호악(胡樂)·호선무(胡旋舞)·호희(胡姬)….‘오랑캐’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이 북방 이민족을 부를 때 흔히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대학 모리야스 다카오 교수는 당나라 때는 이 ‘호’가 바로 중국 서쪽에 있던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였다고 주장한다. 소그드족은 중앙아시아 상인들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다카오 교수가 보기에 실크로드에 대한 당나라의 입장은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일관되게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호’를 썼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바로 개국 초기 쇄국하고 있던 당나라가 시야를 넓혀 가고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외에도 이주형 서울대 교수, 우지용 신간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밸러리 핸슨 예일대 교수 등이 실크로드와 불교미술·복식·역사를 다룬 주제들을 발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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