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예인 집안
    2026-05-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1
  • 택시 이천희 전혜진 러브하우스 ‘992㎡ 대저택’ 내부는?

    택시 이천희 전혜진 러브하우스 ‘992㎡ 대저택’ 내부는?

    택시 이천희 전혜진 러브하우스 택시 이천희 전혜진 러브하우스 ‘992㎡ 대저택’ 내부는? 배우 이천희, 전혜진 부부의 집이 공개됐다. 지난 17일 방송된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는 이천희가 출연해 아내 전혜진, 딸 소유와 함께 살고 있는 러브하우스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경기 광주의 이천희 집은 넓은 정원과 캠핑장을 연상하게 하는 자연친화적인 전경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MC 오만석과 이영자는 “집이 저택이네”, “대충 잡아도 한 300평(약 992㎡)은 되는 것 같다”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천희는 집에 대해 “내 집은 아니고 전세다. 아내가 마당에서 아이와 놀고 싶다고 해서 이 집을 골랐다”면서 “근처에 엄태웅, 이병헌, 변정수 등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개된 집안 내부 곳곳에는 이천희가 직접 만든 가구들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 이천희, 전혜진 부부의 방은 앤티크한 가구들과 전혜진이 직접 그린 그림을 배치해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 평판 사회] ‘학벌의 벽’ 뚫다 - 전문대 출신 성공한 ‘4060’

    [新 평판 사회] ‘학벌의 벽’ 뚫다 - 전문대 출신 성공한 ‘4060’

    ■김영진 디자인일어소시에이츠 대표 ”학벌 위주 사회 기죽지 않아, 120억 매출…가능성 무한대” 국내외 홍보 전시장에서 전시디자인을 하는 전문 대행사 ㈜디자인일어소시에이츠 김영진(42) 대표는 2005년 창업 이래 11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5평(16.5㎡) 남짓한 공간에서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현재 직원 25명이 다니는 5층 2개동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을 비롯한 20여곳을 거래처로 뒀고, 매출액도 창업 첫해 10억원에서 지난해 120억원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전시 현장에 나가서 직원들과 함께 직접 전시용 부스도 꾸미고 청소도 합니다. 대표직을 맡고 있지만 누군가의 윗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김 대표가 꼽은 성공 비결이다. “학벌을 따지는 현실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가능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지금 잘나가는 그이지만 시작은 힘겨웠다. 인덕대학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네 차례 옮겼다. 1997년 들어간 첫 직장은 취업한 지 2년이 못 돼 부도가 났다. 두 번째 직장은 임금 체불로 두 달 만에 관뒀다. 세 번째 회사의 동료가 창업한 회사로 김 대표도 옮겼는데, 곧 부도로 문을 닫았다. “아이 분유값도 집사람에게 제대로 못 줬고, 카드 돌려 막기를 하다가 신용불량자 예비 통보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일이 없던 기간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설움을 더욱 깊게 한 건 전문대 출신이란 ‘꼬리표’였다. “세 번째 회사를 나올 때 돼서야 제가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회사에서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죠. 전문대를 나와서 일용직으로 채용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씁쓸하더라고요.” 창업 2년차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6년 한 대기업 통신회사에서 전시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한 관계자가 갑자기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발표 내용의 신뢰도가 학벌 때문에 의심을 받아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이전 회사에서의 인연으로 창업하자마자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거래 요청을 받았다. 그는 “창업 후에도 기존에 알고 있던 거래처에서 계속 연락이 왔다”며 “학벌에 신경 쓰지 않고 주어진 일을 빈틈 없이 하는 모습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전문대 출신이라고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꾸준히 자기 일을 하면 빛을 발할 수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학벌, 스펙을 극복하고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강호양 디자인 회사 ‘홍당무’ 대표 ”한때 여공 생활…주경야독, 창업으로 내 자리 찾았어요” “대기업에서 뽑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내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난해 매출 22억원을 올린 디자인회사 ㈜홍당무의 강호양(47·여) 대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서울 왕십리의 장갑 공장.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이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타지로 떠나면서 친척 집에 맡겨졌다. 선택의 여지 없이 졸업과 동시에 공장에 취직했다. 강씨는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와 반복되는 일상이 서글펐다”며 “그런 삶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직공들 사이에서 유독 서글픔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주경야독을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고단한 하루를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갔다. 자정까지 주산, 부기, 타자를 배웠다. 1년 만에 공장을 그만두고 스키복을 수출하던 한독섬유에 들어갔지만 주어지는 일은 잔심부름뿐. 고심 끝에 강씨는 화실에 다니며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4년간 일했지만 강씨에게는 ‘고졸’ 딱지가 따라다녔다. 그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대졸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인정하기 싫지만 능력보다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강씨는 26세 때 한양여대 산업디자인학과 93학번으로 늦깎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강씨는 “2년제 대학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었다”며 “학교 경험은 창업의 밑그림이 됐다”고 설명했다. 졸업을 앞두고 구직 활동을 하면서 또 한 번 냉정한 현실에 부딪혔다. 그는 “28살짜리 전문대 졸업생에게 손을 내미는 회사는 드물었지만 작은 회사에 들어가 일을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창업을 해도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강씨가 1998년 설립한 ‘디오’란 디자인 업체는 8년 만에 3억원의 빚만 남기고 망했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3년 뒤 ㈜홍당무로 오뚝이처럼 회생했다. 홍당무는 영어교육 콘텐츠 개발 업체인 ㈜이퓨처와 손잡고 초등 영어교재 ‘마이 퍼스트·넥스트 그래머’를 디자인했다. 이 책은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수출됐다. 강씨는 또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성공 비결을 묻자 강씨는 “‘특별함’은 지겨운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다”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기업에서 날 절대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날 받아 주는 곳에 가서 내 자리를 찾아 나갔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명희 국립소록도병원 간호과장 ”‘한센병 환자 위해 인생 바쳐…언젠가 阿 의료 봉사하고파” “언젠가 아프리카로 가서 의료 봉사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한센병이나 결핵 같은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보살피며 40여년을 보낸 이명희(60·여) 국립소록도병원 간호과장은 오는 6월 정년퇴임 이후 또 다른 꿈이 있다며 여전히 설레고 있었다. 이씨는 1977년 대전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인 대전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남 고흥군에 딸린 섬 소록도로 떠났다.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 해서 소록도라 불리는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한센병력자’ 600여명이 소록도에 머물고 있다. 이씨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소록도를 택했다”며 “소록도는 초심을 잊지 않도록 해 준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새내기 간호사에게 소록도는 녹록지 않았을 터. 이씨는 “균이 말초신경에 침범해 손가락, 발가락이 문드러진 환자는 물론 안구가 적출되거나 코의 연골이 내려앉은 환자 3200명을 30여명의 간호사가 돌봐야 했다”며 “의료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감염에 대한 우려는 아예 접었다”고 회상했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2년 만에 소록도를 떠나야 했지만, 이씨는 2011년 다시 소록도로 돌아갔다. 당시 작은 아들이 고3 학생이었지만, 간호사로서의 초심을 잡아 줬던 곳이기에 다시 갔던 것이다. 소외된 환자들을 돌보고자 하는 이씨의 의지는 소록도를 떠나서도 계속됐다. 국립마산병원에서 오랫동안 결핵 환자들을 돌봤다. 이씨는 결핵 환자들을 위한 ‘치료 순응도 관리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결핵 환자를 위한 후원회, 봉사단 활동도 지속했다. 또 사회복지사, 정신보건간호사, 노인건강지도사, 호스피스, 보험심사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업무에 접목했다. 2011년 간호사의 최고 명예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을 받기도 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은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상으로, 1912년부터 국제적십자위원회가 2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 간호업무 종사자 50여명에게 수여한다. 이씨는 “유명 대학 간호학과를 나왔는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선택한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도전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후배들이 기존 평판을 좇기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발을 끊임없이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키 188cm ‘훈남 떡볶이 오빠’ 中서 화제

    키 188cm ‘훈남 떡볶이 오빠’ 中서 화제

    일명 ‘떡볶이 오빠’라 불리는 22세 중국 남성이 현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중국일보 등 현지 언론의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주인공은 안후이성 우후시에 사는 올해 22살의 가오젠(高健)으로, 얼마 전 우연히 그의 사진이 인터넷에 뜬 뒤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이 남성은 우후시 길거리에서 떡볶이 등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데, 평소 이 포장마차를 자주 들르던 ‘여성팬’들이 그의 모습을 찍어 사진을 올리자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화제가 된 사진은 검은색 모자와 검은색 점퍼를 쓴 가오젠이 큰 키와 긴 팔을 자랑하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이를 본 네티즌들은 “음식을 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당장가서 그가 만든 음식을 사먹고 싶다” 등의 의견을 남기며 관심을 표했다. 현지 언론이 조사한 결과 1994년 생, 188㎝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훈남인 가오젠은 노점상을 연지 불과 3개월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떡볶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식을 파는 그의 노점상은 오후 5시에 문을 열어 새벽 1시까지 운영한다. 가오젠은 “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를 봤다가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었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갑작스러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에는 잘생겼다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아마도 사진을 찍은 사람의 기술이 좋았나보다”라며 “한국스타일을 잘 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 속 한국 연예인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집안 환경이 어려워 직접 돈을 벌어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는 그의 웨이보는 친구 200명에서 단 며칠 새 친구 3만 명으로 급격하게 성장했으며, 일각에서는 ‘노점상 출신 연예인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화장품요? 저는 소주로 만든 스킨 쓰는 게 전부예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간호조무사 A씨의 유일한 화장품은 ‘소주 스킨’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간단한 색조 화장은커녕 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소주와 레몬 조각, 글리세린을 섞어서 가제로 덮고 냉장고에 2~3개월 정도 숙성시켜서 쓴다. 인터넷상에서는 천연 화장품 비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A씨가 ‘소주 스킨’을 만들어 쓰는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글리세린은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얻어 쓰기 때문에 1200원 하는 소주값과 레몬값까지 하면 2000원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넷(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딸 두 명,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2명)을 키우면서 월 135만원을 버는 A씨에게 화장품이란 구매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쓰는 것이다. 그나마 주변에서 얻은 화장품 샘플들은 아이들 몫으로 돌아간다. 절대빈곤층에게 화장품은 ‘사치품’일 뿐이다. 먹는 것을 사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은 아예 화장품을 사지도 바르지도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31세 싱글맘 B씨는 5년 전 아이를 낳은 뒤부터 지금까지 스킨, 로션을 한번도 발라 본 적이 없다. B씨는 “딸 아이는 베이비로션을 발라 준다”면서 “나도 베이비로션이라도 같이 쓸 수 있지만 아끼려고 안 썼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처녀 때랑 다르게 주름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39살 싱글맘 C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녀 3명(12세 아들과 2세와 8개월 된 두 딸)명을 키우는 C씨는 과거에는 명동의 화장품 매대에서 화장품을 사기도 했지만 3년 전부터 기초 화장품조차 바르는 것을 포기했다. 어쩌다가 결혼식 등 신경을 쓰고 가야 할 자리가 있을 때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다.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씨는 “왜 없겠어요. 여자는 나이가 적건 많건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하죠”라면서 “그런데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니 나 자신한테 쓸 돈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C씨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해 보였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D(82)씨도 20년간 로션 같은 것을 사 본 적이 없다. D씨는 “이제 나이를 먹으니 화장품을 바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서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데 바를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절대빈곤층에게 귀한 화장품은 바로 ‘샘플’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E씨는 지인들로부터 샘플을 얻어 쓰고 있다. 특히 고급 화장품으로 알려진 S브랜드의 샘플을 얻는 날은 ‘운수대통’이다. 딸 셋(초등학교 6학년, 4학년, 5세)을 키우고 있는 기초수급자 싱글맘 F(33)씨는 시장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가서 ‘샘플 동냥’을 한다. 운이 좋으면 샘플 몇 개를 얻어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 복지관 행사에서 색조 화장을 받아 본 게 F씨가 ‘제대로’ 화장이라는 것을 해 본 전부다. F씨는 “화장한 나를 보고 복지관 선생님이 ‘못 알아보겠다. 너무 예쁘니 매일 화장하라’고 하는 말에 웃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화장이야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F씨지만 학부모 총회나 공개수업처럼 아이들 학교 행사 때만큼은 초라한 자신이 신경 쓰인다. “다른 엄마들은 다 화장하고 예쁘게 하고 오는데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마음이 아프죠.” 샘플은 본래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빈곤층이 밀집해 사는 주변 상가에는 묶음으로 판매하는 곳이 꽤 있었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개미마을 인근 시장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는 설화수 샘플 2~3개를 2000~3000원에 팔고 있었다. 경기도 광명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G씨는 “샘플 한 개당 100원에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1000원어치씩 팔기도 한다”고 했다. G씨는 “화장품 샘플을 달라고 무턱대고 가게에 오는 할머니들도 일주일에 한 명은 있다. 며칠 전에 화장품을 샀는데 샘플을 못 받았다는 식”이라면서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샘플 두어 개를 준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판매되는 ‘정품’도 대부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G씨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나마 많이 사는 게 4000원짜리 H 보디워시(900㎖)와 3000원짜리 B 로션(450㎖)”이라면서 “3000원짜리 로션도 바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000원이라는 소리에 놀라서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절대빈곤층한테 화장품 중 ‘사치품’은 핸드크림이라고 한다. 겨울에 막노동 등 험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손이 트는 경우가 많지만 꼭 필요한 화장품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핸드크림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1000원짜리 D 핸드크림을 종종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H씨는 “여기서는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 화장품도 사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서 “저가 브랜드 중 M이나 C는 그래도 1만원 남짓이면 살 수 있으니 사 가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I씨는 1년에 1만원 내외의 제품 2개 정도를 구매한다. 여름철에는 바르지 않고 겨울에만 조금씩 아껴서 바른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달동네 개미마을에 사는 50대 J씨는 “아는 사람들 중 S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기초제품만 해도 2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화장품 하나 사면 한 석 달밖에 쓰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J씨는 손녀와 1만 5000원짜리 베이비로션을 같이 쓴다. 절대빈곤층이 미용에 신경을 쓰는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머리다. 화장품은 바르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머리는 겉모습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달리 한번 돈을 들이면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앞서 소개된 싱글맘 H씨도 1년에 3번 정도는 머리를 자른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K(81)씨는 “화장품은 못 발라도 파마는 해야 한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한다”면서 “그래도 여기가 물가가 싸니 2만원이면 파마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개미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L씨는 “대부분 기본적인 파마만 하고 가기 때문에 2만원 선을 넘지 않는다”면서 “할머니들은 1년에 한두 번 오시기 때문에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다. 1000원이라도 올리면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나마 올해 가격을 1000원씩 올려 커트 8000원, 학생은 6000원, 염색은 1만 8000원이다. 복지관이나 봉사단체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개미마을 근처의 한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무료 봉사로 머리를 잘라 준다. 앞서 소개된 E씨는 7살 딸 아이와 14살 아이의 머리를 직접 잘라 주고는 한다. 남성의 경우는 스타일을 따지기보다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게 ‘답’이다. 서울 중구 중림동 쪽방촌 주변 미용실을 이용하는 30~40대 남자들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한다. 짧을수록 깔끔하고 머리를 더 자주 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쪽방촌 근처 한 미용실은 커트 7000원에 머리를 감으면 1만원인데 열이면 열 모두 머리만 자르고 감지 않은 채 간다고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M(26)씨도 되도록이면 머리를 짧게 자른다. 집안 사정이 괜찮았을 때는 3주에 한번씩 미용실에 갈 정도로 헤어스타일에 특히 공을 들였지만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 이후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주기가 길어졌다. ‘멋’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많이 선보이면서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인 포마드 머리(2:8 가르마를 연출해 머리를 빗어 넘기는 형태)를 시도해 보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커트만 해도 일반 커트 가격에 3배일 뿐만 아니라 스타일 연출을 위해 필요한 전용 기름이 3㎖에 4만원 정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남성들이 많이 하는 파마도 꿈꾸지 못한다. 6000원짜리 왁스로 반년을 버틴다. M씨는 “향수와 스킨, 로션에 수십만원씩 쓰고 외모에도 투자를 많이 하는 친구를 보면 놀라기도 한다”면서 “화장품은 아껴 써도 두 달 정도밖에 못 쓰니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여자를 만날 때도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M씨는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서 외모도 큰 차이가 나겠지만 중요한 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 스스로가 이성 앞에서 위축되다 보니 만날 때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송수연 이두걸 유대근 기자 songsy@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진그룹] 법조·학·관·재계 망라…명문가와 폭넓은 인맥

    관가와 경제계·학계·법조계까지 폭넓게 구성된 한진그룹 조씨 일가의 혼맥은 국내 대기업 어느 집안에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중매결혼이 많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92) 여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 명문가 자녀들과 연이어 짝을 맺었다. 4남 1녀 중 장녀인 조현숙(70)씨는 1968년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법조인인 이태희(75·대한항공 법률 고문) 전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낸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1983년 KAL기 폭파 사건 당시 보상 문제와 관련된 법률적 문제에 앞장서 주목을 받았다. 둘째이자 장남인 조양호(66) 한진그룹 회장은 19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이자 서울대 미대 출신인 이명희(6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양가 부모가 한 모임에서 각자의 아들딸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사돈이 됐다고 한다. 당대 유력 운수기업 후계자와 주무 부처인 교통부의 이례적인 만남인 셈이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1976년 공직에서 물러나 인하대 총장을 거쳐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역임했다. 셋째인 조남호(64)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고 김영혜씨를 우연히 만나 연애결혼했다. 넷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은 한진 일가를 다른 재벌가와 이어 준 중심축이다. 우선 처가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3) 총괄회장 집안이다. 부인인 최은영(53·유수홀딩스 회장)씨의 모친이 신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씨다. 또 신씨의 남편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막내인 조정호(57) 메리츠종금증권 회장은 1987년 LG가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인 구명진(51)씨와 혼인했다. 구 회장의 부인인 이숙희(80)씨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차녀라는 점에서 삼성가와도 이어진다.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41) 전 부사장은 2010년 10월 경기초교 동창인 박종주(41)씨와 결혼했다. 박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성형외과 의사다. 공동투자했던 성형외과 병원은 유명 연예인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최근 이 병원 생활을 접고 한진그룹 등이 380억원을 투자한 인하국제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2013년 하와이에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 일로 조 전 부사장이 원정 출산 논란에 휩싸였다. 조 회장의 외아들인 조원태(40) 부사장은 2006년 5월 김태호 충북대 정보통계학과 교수의 외동딸인 김미연(37)씨와 결혼했다. 김 교수는 3대 중앙정보부장과 8, 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춘 5·16민족회 이사장의 장남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이정재 임세령 열애, 김민희 소개로 만났다? ‘두 사람 함께한 사진보니..’

    이정재 임세령 열애, 김민희 소개로 만났다? ‘두 사람 함께한 사진보니..’

    ‘이정재 임세령 열애’ 지난 1일 한 매체는 배우 이정재와 대상 그룹 상무 임세령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배우 이정재가 오랜 열애설 결혼설 끝에 대상그룹 임세령 상무와의 열애를 공식 인정함에 따라 재벌 3세 임세령 상무의 집안이 눈길을 끌었다. 임세령 할아버지는 대상그룹의 창업주 임대홍 회장이며, 지난 1987년 장남 임창욱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았다. 임창욱 회장은 ‘청정원’, ‘순창’, ‘햇살담은’ 등의 브랜드를 내놓으며 대상그룹을 종합식품그룹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임창욱 회장의 장녀가 바로 임세령이다. 1977년생인 임세령은 그룹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 20% 가량을 보유한 상속녀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2012년부터 대상 식품사업총괄 디렉터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열애설을 보도한 해당 매체는 이정재와 과거 연인 관계였던 김민희가 두 사람을 소개해줬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에 관해 이정재 소속사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임세령과 김민희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2010년 2월 이정재와 임세령의 만남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나오면서 공개된 사진을 통해 임세령이 연예계에 인맥이 넓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사진 속 임세령은 배우 김남진, 김민희와 가수 정재형 등 지인들과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정재 임세령 열애 소식에 네티즌들은 “이정재 임세령 열애, 친하구나”, “이정재 임세령 열애, 인맥 넓다”, “이정재 임세령 열애..임세령 연예인 같다”, “이정재 임세령 열애..김민희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지?”, “이정재 임세령 열애..김민희가 좀 그렇겠네”, “이정재 임세령 열애..쿨한 사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이정재 임세령 열애) 연예팀 chkim@seoul.co.kr
  • [2014 결산] 올해 세계서 가장 이슈가 된 해외 가십 Top 6

    [2014 결산] 올해 세계서 가장 이슈가 된 해외 가십 Top 6

    올해도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들은 다양한 뉴스거리로 세계를 흔들었다. 좋았던 소식도 있고 나빴던 소식도 있었겠지만, 이 중 세계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해외 가십 뉴스들을 정리해 봤다. ■ 연예인 사적인 사진 유출 올해는 여러 할리우드 스타 연예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사진들이 대거 유출된 한 해였다. 지난 8월 한 해커가 아이폰을 연동하는 아이클라우드를 해킹해 스타들의 개인 사진을 게시판 등에 올리면서 확산됐다. 올해 세계 최고 흥행 배우로도 선정된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해 피플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도 선정된 톱모델 케이트 업튼까지 수많은 연예인의 사진이 유출돼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유출 대상은 계속 확대해 커스틴 던스트, 아리아나 그란데, 에이브릴 라빈 등도 피해를 보았다. ■ 소니 픽처스 해킹 소동 불과 한 달 전, 미국의 소니 픽처스가 사이버 공격으로 해킹을 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유감을 표했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북한 김정은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의 개봉 중단을 요구하는 해커 집단에 대형 극장들은 상영하지 않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 독립영화 극장에서 상영하게 됐다. 문제는 해킹 과정에서 소니 사의 중역들이 주고받은 배우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메일이나 배우들의 개인 정보, 영화 출연료 등 기밀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되기도 했다. ■ 아카데미 시상식 셀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했던 해외 스타들의 셀카 사진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위터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사회자인 엘런 디제너러스가 공개한 이 사진에는 브래들리 쿠퍼와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케빈 스페이시, 안젤리나 졸리 등 초호화 멤버가 찍힌 것으로, 하루 만에 300만 리트윗을 넘어 역대 최고 리트윗 수를 기록했다. ■ 아이스버킷 챌린지 SNS를 이용한 자선 캠페인도 폭발적인 확산을 보였다. 난치병인 루게릭병(ALS: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을 지원하기 위해, 레이디 가가와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인사들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까지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SNS에 게시했다. 이 운동은 참여자가 다음 사람 3명을 지명하는 것으로 국내 연예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확산됐다. ■ 스타 커플들의 결혼과 파경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획득해 화제가 된 것은 리얼리티 스타 킴 카다시안과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결혼식 키스 사진이다. 킴 카다시안은 그 후에도 패션 잡지 ‘피플’을 통해 엉덩이를 드러낸 사진을 선보이는 등 항상 많은 가십거리를 전해줬다. 킴 외에는 평생 독신을 공언하고 있던 조지 클루니는 물론 세기의 커플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결혼이 주목받았다. 반면,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기네스 팰트로와 크리스 마틴이 이혼했다. 또한 9살 나이 차를 극복해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던 잭 에프론과 미셸 로드리게스 커플은 불과 1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 집안싸움부터 여배우 변모까지...놀라운 사건 5월 팝스타 비욘세의 동생 솔란지 놀스가 애프터파티 엘리베이터에서 비욘세 남편 제이 지에 크게 화가나 때리고 발로 차는 CCTV 영상이 공개돼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세 사람은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이 소동의 발단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또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으로 유명세를 탄 여배우 르네 젤위거는 전보다 커진 눈에 얇은 입술로 몰라볼 정도로 변모한 모습을 선보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컬투쇼 규현 누나 “예뻐서 여친 오해, 사람들 계속 쳐다봐..” 미모 보니

    컬투쇼 규현 누나 “예뻐서 여친 오해, 사람들 계속 쳐다봐..” 미모 보니

    ‘컬투쇼 규현 누나’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이 ‘컬투쇼’에 출연했다. 규현은 24일 방송된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친누나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이날 ‘컬투쇼’에는 “월곡동 단골집에 와서 누나랑 고기 드시는 거 봤다. 누나가 예뻐서 여친인 줄 알았다. 규현 씨가 누나라고 너무 강조해서 오해할 뻔했다”는 청취자의 사연이 도착했다. 이에 규현은 “누나와 가는 단골집이 있다. 누나가 나름 예뻐서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더라”며 “그래서 일부러 ‘누나 더 시킬래?’라고 말하거나 엄마 얘기를 계속 했다”고 털어놨다. 컬투쇼 규현 발언에 누나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규현 누나는 바이올린연주가로 앞서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가수 타블로의 딸 하루의 바이올린 선생님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방송에서 규현의 누나는 단아하면서도 청순한 미모로 감탄을 자아냈다. 네티즌들은 “컬투쇼 규현 누나, 정말 예쁘구나”, “컬투쇼 규현 누나, 규현 닮았으면 예쁘겠지”, “컬투쇼 규현 누나, 집안 다 인물이 좋은가 보다”, “컬투쇼 규현 누나, 연예인 해도 됐을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캡처(컬투쇼 규현 누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이모는 나문희’ 연예인집안 외모 비교보니 “닮았네”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이모는 나문희’ 연예인집안 외모 비교보니 “닮았네”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뮤지컬 배우 정원영의 아버지가 배우 정승호라고 알려진 가운데, 이모는 배우 나문희라고 밝혀져 화제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가족의 품격-풀하우스(이하 풀하우스)’의 ‘가족포차’ 코너에는 방송인 최정원, 전수경, 정성화, 송승환, 바다, 정원영 등이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이날 방송에서 MC 조우종은 정원영에게 “낙하산으로 캐스팅이 됐다는 소문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에 뮤지컬 제작자이자 배우 송승환은 “이번 작품이 아니고 데뷔할 때 낙하산이었다”고 폭로했다. 송승환은 “그때 내가 뮤지컬 ‘대장금’을 제작했는데 정원영이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연기를 아주 잘했다”고 칭찬했다. 이어 “그 날 저녁 정원영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내 아들이 (네 뮤지컬)오디션을 봤대’라고 말했다”며 “정원영의 이모는 나문희였다”고 전했다. 송승환의 폭로에 정원영은 “당시 군인이었고 말년 휴가를 받아 부모님 몰래 뮤지컬 오디션을 봤던 것”이라며 “이제껏 혼자 힘으로 잘 컸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정원영은 “이것(풀하우스 출연)도 아빠가 전화하셨나?”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소식에 네티즌들은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이모는 나문희라니”,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이모가 나문희.. 피는 못 속이네”,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연예인 집안이네”,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나문희 조카였구나”,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끼를 물려받았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서울신문DB(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나문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집안에 또 연예인이? ‘대박’

    정원영 아버지 정승호, 집안에 또 연예인이? ‘대박’

    지난 1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가족의 품격-풀하우스(이하 풀하우스)’에 출연한 뮤지컬배우 정원영에 반응이 뜨겁다. 이날 방송에서 배우 송승환은 “ 데뷔할 때 낙하산이었다”며 정원영을 폭로했다. 송승환의 말에 정원영은 “당시 군인이었고 말년 휴가를 받아 부모님 몰래 뮤지컬 오디션을 봤던 것”이라며 “이제껏 혼자 힘으로 잘 컸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정원영이 배우 나문희의 조카라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이 집중됐다. 사진=서울신문DB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골프존] 김영찬 회장 가족사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골프존] 김영찬 회장 가족사

    “뭐 그리 자랑할 만한 집안은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리 성공했다거나 유명한 사람도 한명 없고요.” 김영찬(68) 골프존 회장은 1946년 8월 전북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업으로 삼던 아버지 김만태(작고)씨와 어머니 유기순(작고)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명의 형님(영성, 영진)도 돌아가셨고, 현재 누나 민수씨만 생존해 있다. 모두 평범한 소시민이다. 어린 시절 김 회장의 꿈은 교사였다. 엄격했던 아버지에게서 도덕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고 자신도 남들과 소통하며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많아 교단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충남 강경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실상 꿈을 접었다.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빨리 취업해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 성동공고를 선택했다. 꿈을 접고 들어간 학교지만 김 회장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최근엔 모교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이후 홍익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65년 산악 동호회 활동 중 여고생 산악부원이었던 부인 전병인(65)씨를 만나 8년간의 열애 끝에 1973년 결혼했다. 카투사 출신인 그는 군 생활을 통해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서구 문화를 이른 나이부터 체험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은 성당에서 시작하는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나눔, 소통, 공감, 배려’라는 그의 사업 철학도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이런 배경에서 김 회장은 골프존문화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그지만 생활은 매우 소탈하다. 늘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탓에 구입한 이른바 연예인 밴(쉐보레 익스프레스)과 직업상 골프를 많이 친다는 것이 그가 누리는 사치의 전부다. 명품은 이름도 잘 모르고 그리 즐기지 않는다. 부인 전씨 역시 그저 동네 아줌마 스타일이다. 김장 때면 동네 사람들과 같이 김장을 담그고, 동지 때면 팥죽을 쑤어 먹는다. 집 앞 텃밭을 가꾸는 것 역시 그녀의 몫이다. 지인들은 “구두쇠는 아닌데 2000억원이 넘는 자산가라는 걸 전혀 느낄 수 없는 부부”라고 말한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부인들이 회사 일에 깊게 관여하는 것과 달리 전씨는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골프존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자선행사들이 있을 때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김 회장의 친인척 및 처가에는 역시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유명 인사가 없다. 삼성전자 등 20여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기에 그는 봉급생활자의 애환과 심리를 잘 안다. 주식 상장 전까지만 해도 골프존은 직원들의 여름휴가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휴가비가 통장으로 직접 들어가면 정작 부하직원들은 비상금 하나 챙길 수 없다는 고충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시 휴가비를 지급하며 김 회장은 ‘집사람이나 남편에게 들키면 나도 공범(?)으로 몰리니 절대 걸리지 마라.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어른 노릇, 자식 노릇 한번 멋지게 해보라’는 글을 회사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직계 가족으로는 외아들인 김원일(39) 전 대표만 있다. 김 전 대표는 고려대 산림자원공학과를 졸업한 2000년 이후 아버지와 함께 골프존을 일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었지만 아버지가 회사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존에 들어왔다. 전체 지분의 38.18%를 가지는 최대 주주가 됐지만 창업 초기 골프존 매출을 고려하면 가업을 물려받는 게 오히려 모험이었다. 지난해까지 골프존을 이끌었지만 올해 초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현재 휴식을 취하며 골프존의 미래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005년 동갑내기인 오지영(39)씨와 결혼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10월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 가장 생각나는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그중 하나가 ‘잊혀진 계절’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30여년 전 발표하자마자 크게 히트를 쳤다. 지금도 10월만 되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까지 한번쯤 떠올릴 만큼 추억의 곡으로 여전히 애창된다. 그랬다. 가수 이용(56)은 ‘10월의 가수’로 혜성같이 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매년 10월이면 1년 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맘때가 되면 라디오 등에서 가장 많이 선곡되면서 전파를 타고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감수성이 절절한 가사 내용과 특유의 가창력 있는 목소리가 10월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원 벤치에서 사색에 잠긴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아줌마, 젊은 연인들도 그를 알아본다. 벤치에 같이 앉으면서 “10월은 이용의 달이라 많이 바쁘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맞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옛날에는 헬기를 임대해 하루에 제주, 부산, 다시 서울에서 공연 일정을 소화한 적도 있어요. 10월은 1년 중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달이기도 합니다(웃음). ” 왜 ‘잊혀진 계절’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해 “10월은 더웠다가 시원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단풍과 낙엽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밤이 왠지 쓸쓸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연인끼리 만남도 있지만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진 계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주한미군이 한국에 올 때 먼저 왔던 고참들이 신참들에게 세 가지를 미리 알려주는데, 첫 번째는 한국의 장마이고, 두 번째는 빨리빨리 문화, 세 번째가 연인끼리 기념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10월은 결국 연인의 계절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곡의 노랫말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고 박건호씨가 자신의 실제 이별 경험담을 풀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엽과 함께 ‘그날의 진실했던 표정이 진실인가요~’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소재로 1984년에 제작된 영화 ‘잊혀진 계절’에 이씨가 직접 출연해 전국적으로 개봉,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노래는 원래 조영남씨한테 주려고 했으나 바쁜 일정으로 약속이 틀어지는 바람에 지구레코드사 사장이 고음을 잘 내는 가수한테 주라고 해서 제가 부르게 됐습니다.” 이씨는 이 노래로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을 능가할 만큼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린다.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을 시작으로 그해부터 3년 동안 MBC 10대 가수상을 계속 수상했다. 또한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역시 3년 내리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평양, 금강산, 개성 등 북한공연을 여섯 차례나 다녀오면서 북한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잊혀진 계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가수 이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잊혀진 계절’ 외에도 그가 부른 ‘바람이려오’ ‘서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의 노래도 한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12집의 앨범을 냈으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도 80여곡은 된다. 그 중 김지애의 ‘몰래 한 사랑’, 하춘화의 ‘사랑은 길어요’가 대표적이다. 그는 1956년 3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했다. 13개월 위인 형과 동시에 군대를 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그런 일을 우려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평북 정주 출생으로 월남 후 육사를 나와 고급 장교로 근무했다. 어머니는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그가 어릴 때에는 외갓집인 수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잘 따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외갓집은 당시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만약 아들 둘을 낳게 되면 첫째는 명문대에 보내 판검사를 시키고 둘째는 가수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격한 성품이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린 시절을 수원에서 지낸 후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군 전역 후 인천에서 의료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이씨는 신장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어 시멘트블록 사업에 손을 대면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족들이 서울 한남동 빈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가 휘문고 2학년 재학때였다. 학비를 대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고 교회에서 쌀을 타다가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그는 이런 사정을 생각해서 등록금 걱정이 없는 육사에 진학하려고 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노래책만 있을 정도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결국 고 3때 한 학기등록금을 못 냈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판이었으나 때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청소부 겸 노래 부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1977년 전방 백골사단에 입대를 하게 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 ‘백골쇼’ 단원으로 발탁되면서 노래를 하게 된다. 특히 입대동기인 한규철씨와 함께 부른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날 좀 봐요/날 좀 봐주세요~’라는 ‘밀양머슴아리랑’은 단연 인기였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세직 장군은 물론 다른 여러 장교한테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사단통신대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근무했고 백골쇼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노래를 불렀다. ‘백골쇼’로 사실상 노래에 입문하게 됐으며 ‘노래가 내 인생’임을 깨달았다. 33개월 만에 만기제대한 그 해 11월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240점을 받고 연세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서울예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국풍81’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는 학교의 명예를 빛낸 공로로 서울예전 재학 내내 ‘동랑 유치진’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을 불러 여기저기에서 ‘가수왕, 가수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박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절정의 인기를 뒤로하고 1985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예기치 않은 소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나 할 생각으로 템플대 음대에 진학했다. 재학 중 부모 같은 테일러 교수를 만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이때 ‘몰래한 사랑’을 작곡했고 노래가 아주 좋다는 평가와 함께 A플러스 장학금을 받았다. 이 무렵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 그는 1988년 4월 아버지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유언을 듣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가수생활을 하다가 스캔들이 난 거니까 다시 가요계에 컴백해서 명예를 회복하라’고 하셨어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가수 컴백’이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하루에 밤 무대를 아홉 군데나 뛰어다니며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분양사무실에 가서 ‘3순위라도 없나요’라고 사정을 해 어렵게 분양을 받았다. 밤 무대에서 번 돈으로 착실히 중도금을 마련해 갚아나갔다. 입주 6개월 전 한 지인으로부터 “과천에 단독주택 하나가 경매 나온 것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때마침 부인이 알레르기 천식을 앓아 공기 좋은 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중간에 팔고 은행 융자금을 보태 4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무렵 방송출연을 하게 되면서 꼬였던 노래인생도 서서히 풀렸다. 2003년 신곡 ‘후회’가 방송 1위 곡에 올랐고 2004~2005년 MBC라디오 두시만세 ‘꽁노래방’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디오와 TV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했고 바쁜 가수생활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걷게 됐다. 그는 틈틈이 양로원과 고아원, 재소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벌인다. 선행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무슨 계획을 갖고 있을까. “저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레슨을 한 번도 안 받고 음악을 해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젊어지라고 외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이 곧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젊은 생각은 또 다른 제3의 인생을 찾게 하지 않을까요.” 선임기자 km@seoul.co.kr 가수 이용은 수원에서 태어나 1975년 휘문고를 졸업했다. 백골사단에서 만기제대한 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1981년 ‘바람이려오’로 데뷔했다. 주요 히트곡으로는 ‘잊혀진 계절’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이 있다. 1981년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가수왕 상), 1982~1984년 MBC 10대 가수상, 1982~1984년 KBS 가요대상,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제2회 가톨릭 가요 대상,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1983년 전국 프러덕션 연합회 주최 가수상, 1984년 선데이서울 주최 ‘올해의 7대 가수상’, 1989년 미국 내쉬빌 초청 가요제 본상 (내쉬빌 시장상), 1992년 서울 선행시민상, 1993년 환경처장관 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지금까지 12집 앨범을 냈다.
  • “단역이라도 괜찮아” 드라마 점령한 연기돌

    “단역이라도 괜찮아” 드라마 점령한 연기돌

    국내 드라마에 아이돌이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지상파 수목드라마에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수영(MBC ‘내 생애 봄날’)과 에프엑스의 크리스탈(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이 각각 주연을 꿰차 SM엔터테인먼트 ‘집안싸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월화드라마 쪽도 마찬가지. 신화의 에릭(KBS ‘연애의 발견’)과 동방신기의 유노윤호(MBC ‘야경꾼 일지’)가 주연이다. 시크릿의 전효성(KBS ‘고양이는 있다’), 제국의아이들의 박형식(KBS ‘가족끼리 왜 이래’) 등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에서도 아이돌이 대세다. 씨앤블루 정용화(tvN ‘삼총사’), 에이핑크 박초롱(tvN ‘아홉수 소년’) 등 케이블 드라마에서도 사정은 똑같다. 서울신문이 올해 들어 지상파 3사와 케이블채널(tvN, OCN 등)에서 방송된 국내 드라마 71편(단막극 제외)을 분석한 결과 아이돌이 주·조연 등으로 출연한 작품은 절반에 가까운 32편(45.1%)이나 됐다. 케이블 드라마가 ‘아이돌의 드라마 입문 통로’라는 얘기도 옛말이 됐다. 지상파 드라마 52편 중 25편(48.1%)에 아이돌이 출연하며 케이블 드라마(19편 중 7편) 쪽보다 아이돌 의존도가 심화된 것이다. 아이돌들은 중견과 신인을 불문하고 물밀듯 드라마로 밀려오고 있다. 이들은 주연과 조연은 물론 비중이 적은 단역까지 포진해 있으며 주중 미니시리즈와 일일 및 주말드라마, 심지어 어린이 드라마에도 출연한다. 정신장애인(B1A4 바로, SBS ‘신의 선물’), 사이코패스 살인마(엠블랙 이준, tvN ‘갑동이’), 주인공이 만들어낸 환상(엑소 디오, SBS ‘괜찮아 사랑이야’) 등 낯설고 독특한 캐릭터에도 전방위로 도전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드라마의 20대 초·중반 인물 대부분은 아이돌이 꿰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이 아이돌을 드라마에 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인지도와 영향력 때문이다. 함영훈 KBS 드라마국 기획팀장은 “20대 연예인 중 아이돌만큼 드라마의 인지도를 높일 대중성과 스타성을 고루 갖춘 이가 얼마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10~20대 팬덤을 구축한 아이돌이 드라마에 출연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해당 프로그램은 손쉽게 화제몰이를 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인기 있는 한류 아이돌이라면 출연작의 판권 가격도 크게 끌어올린다. 방송사들이 전문 연기자가 아닌 아이돌 쪽으로 눈 돌릴 수밖에 없는 데는 수년 전부터 제기돼 온 ‘20대 배우 기근현상’도 주요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김영섭 SBS 드라마국장은 “20대 배우 중 인기와 영향력을 두루 갖춘 이들이 많지 않은 데다 영화시장으로 많이 이동한 탓에 드라마 쪽에서는 20대 배우 공급 부족에 허덕이게 된다”고 말했다. 방송사 PD들은 “드라마의 시청률은 물론 판권 수익, 부가 사업, 광고 수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스타 연기자를 캐스팅하지 못하면 결국 아이돌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돌 가수들 역시 장기적인 활동영역을 확보하거나 빠른 시간 내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로 드라마를 찾으면서 방송사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이돌에 점령된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시선도 늘고 있다. 형편없는 ‘발 연기’로 드라마의 흐름을 끊어놓는 아이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아이돌 가수들은 데뷔 전부터 연기 겸업을 염두에 두고 연기력을 쌓는다. 몇몇은 전업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호평받기도 한다. 그러나 ‘연기돌’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그룹 내에서 형성한 이미지가 강해 극 속에 완전히 녹아들기 힘들다는 점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10대의 우상으로서 멋지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벗고 극중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문화마당] 이런 기특한 청춘들을 봤나/이애경 작가·작사가

    [문화마당] 이런 기특한 청춘들을 봤나/이애경 작가·작사가

    청춘은 청춘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그런데 이 청춘의 생각과 행동이 훌륭하기까지 하면 존경스럽고, 그 청춘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공인이나 연예인이라면 무한한 사랑을 쏟아주고 싶은 마음마저 생긴다. 기특한 청춘이 더 활짝 피어나고 아름다운 생동력을 발휘해 오랫동안 세상에서 아름답게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세 명의 청춘이 그랬다. 가난한 무명 연기자의 설움 속에서 10년을 버티자고 다짐하며 인내함을 보여준 청춘, 시골에서 배우의 꿈을 꾸고 올라와 살면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그들에게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성공할 필요가 있다는 청춘, 아이돌 가수를 하면서 고되게 번 돈을 집안 사정이 어려운 부모님께 선물로 드린 청춘. 그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빛난 이유는 여행지에서 촬영 스태프들의 오토바이를 뺏어 타고 질주하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흘러넘쳐서도 아니고 물놀이를 하면서 단단하게 단련된 몸을 보여주어서도 아니다. 간간이 진행된 인터뷰들을 통해 그 청춘들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지키며 잘 자라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찌질하게만 보이는’ 청춘을 잘 인내하고 버텨왔기 때문이다. ‘3포 시대’, 청년실업자 시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땅, 우리들의 생각을 이끌어줄 리더가 없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마치 등대처럼 작은 빛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힘들었지만 버티고 있었다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그들은 우리들에게 잔잔한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방송이 방영되고 며칠 뒤 식당에서 그 세 명의 청춘들에 대해 논쟁을 펼치는 대학생들을 볼 기회가 생겼다. “야, 걔 너무 괜찮지 않니?”라고 세 명의 연예인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쓸데없이 잘생겼다는 둥, 어깨 깡패라는 등의 외모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 생각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인터넷 반응도 잔잔히 들끓었다. 아마 몰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향해 도전해보겠다는 용기를 얻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향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은 추레해져 버린 어른들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동영상 협박까지 받게 된 연예인, 노상에서의 음란행위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법조인, 세금 탈루와 탈세로 입방아에 오른 스타, 뇌물수수로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게 된 고위공무원, 마약과 도박 사건으로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연예인.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뉴스들을 보면 심란하기만 하다. 청춘에게 길을 제시해야 할 어른들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탤런트 김부선씨가 난방비 싸움으로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 어른을 쉽게 찾아볼 수 없으니까. 청춘은 청춘인 것만으로도 특권이다. 세상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주눅들지 말고 툭 털고 일어나 빛나는 길을 가자.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이나 습성을 깨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도록. 청춘은 그렇게 강하고, 또 파릇파릇 싹이 돋아나는 푸른 봄처럼 생명력이 넘치니까 말이다.
  • 문준영, 신주학 대표와 하루만에 대화로 해결?

    문준영, 신주학 대표와 하루만에 대화로 해결?

    그룹 제국의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자신의 소속사인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22일 문준영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하루 동안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 조금 전 대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되었다”며 “저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해주신 저희 대표님께도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며 비판을 거둬들였다. 문준영은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며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고 신주학 대표를 두둔했다. 이어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하겠다.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고 전했다. 앞서 문준영은 21일 자신의 SNS에 “피같은 돈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신주학 대표를 맹비난한 글을 올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준영 신주학 비판에 나인뮤지스 세라 폭행영상 논란

    문준영 신주학 비판에 나인뮤지스 세라 폭행영상 논란

    ‘문준영 신주학 비판’ ‘문준영 세라’ 제국의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소속사 대표 신주학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문준영은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소속사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와 화해한 사실을 전했다. 문준영은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라면서 “조금 전 대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가 되었다”고 비판을 철회했다. 이어 “저는 이걸 알려주고 싶었다. 팬들과 대중에게 혼나는 사장님을. 그런데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고 성급한 비판에 대해 반성했다. 문준영은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 제가 오해한 부분도, 감정적인 부분도, 다른 기획사들도 같기 때문에 신주학 사장님 피 보신 것이다. 막상 다들 피하니까. 이게 세상이고 내 일 아니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고 싸움구경만 하실 줄 아는 것이다. 뜨금하시는 분들 많을 것이다. 이젠 우리 회사 마음을 샀으니”라고 신주학 대표와 화해한 배경을 설명했다. 문준영은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하겠다.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남자 사장님들이라면 저는 이제 저희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 특히 우리 ZE:A‘S 너무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문준영은 21일 SNS를 통해 신주학 대표에 대한 장문의 비판 글을 남긴 바 있다. 한편 제국의 아이들 문준영의 비판글과 더불어 과거 신주학 대표가 나인뮤지스 멤버였던 세라의 뺨을 때리는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영상에서 세라는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가 뺨을 치자 체념한 듯 그대로 눈을 내리 깔았다. 세라는 이후 스타제국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나인뮤지스를 탈퇴했다. ‘문준영 신주학 비판’ 소식에 네티즌들은 “문준영 신주학 비판, 하루 만에 사건이 마무리 됐네” , “문준영 신주학 비판, 그래도 해결돼서 다행이다” , “문준영 신주학 비판, 세라는 뭐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제국의아이들’은 문준영, 임시완, 케빈, 황광희, 김태헌, 정희철, 하민우, 박형식, 김동준으로 구성된 9인조 인기 아이돌그룹으로 지난 2010년 타이틀곡 ‘마젤토브’가 실린 싱글 ‘네이티비티’(Nativity)로 데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피같은 돈 어니갔냐” 하루만에 돌변 “대표님 지키겠다”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피같은 돈 어니갔냐” 하루만에 돌변 “대표님 지키겠다”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그룹 제국의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자신의 소속사인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22일 문준영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하루 동안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 조금 전 대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되었다”며 “저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해주신 저희 대표님께도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며 비판을 거둬들였다. 문준영은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며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고 신주학 대표를 두둔했다. 이어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하겠다.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고 전했다. 앞서 문준영은 21일 자신의 SNS에 “피같은 돈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를 맹비난한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문준영은 소속사와의 계약기간 및 수익 배분에 대한 문제, 컴백을 일주일 앞두고 체력 소비가 심한 프로그램 출연 강행으로 인한 다리 부상 등을 폭로했다. 또 소속사의 불합리한 처우로 인해 원형탈모증과 우울증을 겪고,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감행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네티즌들은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하루만에 이렇게 착하게 나가다니”,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결국 진실은 또 묻히는 것인가”,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철회, 그래도 잘 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준영, 소속사 대표 디스하더니 하루 만에 태도 돌변

    문준영, 소속사 대표 디스하더니 하루 만에 태도 돌변

    그룹 제국의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자신의 소속사인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22일 문준영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하루 동안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 조금 전 대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되었다”며 “저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해주신 저희 대표님께도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며 비판을 거둬들였다. 문준영은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며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고 신주학 대표를 두둔했다. 이어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하겠다.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고 전했다. 앞서 문준영은 21일 자신의 SNS에 “피같은 돈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신주학 대표를 맹비난한 글을 올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준영, 소속사 맹 비난하더니 하루 만에 “죄송하다”

    문준영, 소속사 맹 비난하더니 하루 만에 “죄송하다”

    그룹 제국의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자신의 소속사인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22일 문준영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하루 동안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 조금 전 대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되었다”며 “저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해주신 저희 대표님께도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며 비판을 거둬들였다. 문준영은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며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고 신주학 대표를 두둔했다. 이어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하겠다.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고 전했다. 앞서 문준영은 21일 자신의 SNS에 “피같은 돈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신주학 대표를 맹비난한 글을 올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하더니 “지켜주겠다” 각서에 사인? 내용 보니..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하더니 “지켜주겠다” 각서에 사인? 내용 보니..

    ‘문준영 스타제국’‘문준영 신주학 비판’ ‘문준영’ ‘신주학’ 그룹 제국의 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자신의 소속사 스타제국 신주학을 맹비난한 가운데, 돌연 하루만에 입장을 바꿨다. 22일 문준영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하루 동안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며 운을 뗐다. 문준영은 “조금 전 재표님과 대화를 마쳤고 저의 진심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해소되었다”며 “저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해주신 저희 대표님께도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문준영은 “저는 이걸 알려주고 싶었다. 팬들과 대중에게 혼나는 사장님을. 그런데 막상 일 치르고 나니까, 초라하다. 저랑 사장님만 집안 싸움한 꼴”이라며 “다른 기획사들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제가 아는데 넘어가는 것은 저희 사장님 혼자 남은 게 싫다. 제가 오해한 부분도, 감정적인 부분도, 다른 기획사들도 같기 때문에 신주학 사장님 피 보신 것이다. 막상 다들 피하니까”라고 신주학 대표와 화해한 배경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문준영은 “다른 연예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질책 하겠다”며 “차라리 저처럼 싸움 구경시키고 같은 편이 되어서 지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 사장님들이라면 저는 이제 저희 제국의아이들이 스타제국과 신주학 대표님 지키겠다. 특히 우리 ZE:A‘S 너무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문준영은 21일 자신의 SNS에 “피같은 돈,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신주학 대표를 맹비난한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대다수의 글은 삭제된 상태다. 문준영 신주학 비판 입장 돌변 소식에 누리꾼들은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저 사진에 사인은 뭐야?”,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저건 무슨 각서지?”,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뭐야 갑자기 입장이 바뀌네”,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이게 뭔 일이야”, “문준영 스타제국 신주학 비판, 뭐가 뭔지...”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문준영 트위터(‘문준영 스타제국’‘문준영 신주학 비판’ ‘문준영’ ‘신주학’’) 뉴스팀 seoule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