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예언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영양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거액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청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도시락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91
  • [이용원 칼럼] ‘놈현스럽다’ 소동이 희비극인 이유

    [이용원 칼럼] ‘놈현스럽다’ 소동이 희비극인 이유

    한글날을 앞두고 국립국어원이 ‘사전에도 없는 말 신조어’라는 책을 펴냈고, 이 책에 수록된 단어 가운데 ‘놈현스럽다’가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이라는 보도를 처음 접하고는 그러려니 했다. 우리사회에서 유행한 신조어를 모아 해마다 자료집을 내는 일은 국어원이 늘 해오던 업무요,‘놈현스럽다’도 한때 유행한 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태는 엉뚱하게 비약했다. 청와대 쪽에서 국어원에 항의했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이어 국어원과 출판사가 남은 책의 배포를 중단한다는 둥 배포된 책도 회수한다는 둥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급기야는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 “민간기관도 아닌 국가기관에서 그런 표현을 실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편의 코미디 같은 이 소동을 지켜보면서 든 의문은 “왜 청와대가 ‘놈현스럽다’는 표현에 새삼 발끈할까.”라는 것이었다. 국어원이 발간한 책은 해마다 내는 신조어 자료집 가운데 2002∼2006년치를 한데 엮은 것에 불과하다.‘놈현스럽다’는 2003년치에 이미 수록됐고, 당시 청와대 쪽에서는 전혀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아무도 쓰지 않는 이 죽은 말(死語)에 청와대가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3년 4월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두 달째 되는 달이다. 막강하다던 제1야당 후보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새 대통령은 많은 국민에게서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TV에 나와 검사들과 맞장토론을 벌이면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거침없이 말해 국민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권위를 벗어던진 새로운 대통령상(像)으로 보였다. ‘놈현스럽다’는 그 시절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그 뜻이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고 풀이됐다. 비록 부분적으로 실망스러운 데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기대할 만하다는, 애정 어린 시선이 그 단어에는 어려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깊어지면서 그 단어는 세인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청와대가 이번에 코미디 같은 소동을 벌인 까닭도, 그래도 국민에게 기대를 받던 그 좋은 시절을 되씹으며 자격지심에 괴로웠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통의 도구가 극히 한정된 먼 옛날에도 백성의 말은 곧 천심(天心)이고 예언이었다. 따라서 위정자들은 말을 두려워해 곧잘 억압하려고 했지만 역사는 늘 위정자보다 백성의 말을 편들었다.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현재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는 유행어를 수집·연구하는 통상적인 학술사업을 두고 ‘국가원수 모독’ 운운하며 겁박한다. 한술 더떠 국가기관은 당연히 대통령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민간기관도 아닌 국가기관에서”라고 질책한다.‘놈현스럽다’ 소동을 지켜보면서 낄낄 웃다가도 한편으로 슬퍼지는 건 학문·지식에 대한 이같은 무지와 폭력성 때문이다. 2007년 말 ‘놈현스럽다’는 말이 되살아난다면 그 함의(含意)는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너 죽고 나 죽자는 위협적인 태도’ ‘집단 내에서 편가르기를 통해 세력을 유지하는 방식’ ‘교묘한 말재주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우선 포함될 터이다. 덧붙여 ‘듣기 싫은 말은 어떻게든 못하게 하려는 행태’도 빼놓을 수 없겠다. 수석 논설위원 ywyi@seoul.co.kr
  • [토요영화] 파니 핑크

    [토요영화] 파니 핑크

    ●파니 핑크(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29세의 공항 검색원 파니 핑크(마리아 슈레이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딘가 자신의 반쪽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비행기 소음이 떠날 줄 모르는 허름한 고층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자신이 영원히 잠들 관을 짜서 방에 두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서 마주친 아프리카 출신의 심령술사 오르페오(피에르 사누시 블리스)는 핑크에게 23이라는 숫자가 그녀의 운명이 될 것이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오르페오의 예언은 빗나가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핑크. 출근길에 2323번을 달고 있는 차를 보고 운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생각하고는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다. ‘파니 핑크’는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영화속 대사로 유명한 판타지풍 페미니즘 영화다. 파니 핑크를 주인공으로 여성과 사랑의 모든 것을 코믹하고 때론 심각하게 풀어나간 이 작품은 멜로영화라기보다는 한 여자의 성장영화에 가깝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독일의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는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통해 이 시대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섬세하게 그린다. 영화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과 해골 분장을 한 오르페오가 핑크를 위해 이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펑키스타일에 블루, 블랙, 옐로 등 신비롭게 펼쳐지는 영상미도 인상적이다. 여주인공 파니 핑크 역을 맡은 마리아 슈레이더는 이 영화 한편으로 일약 유럽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급부상했다. 영화연출 외에도 동화작가, 오페라 제작 지휘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도리스 되리 감독은 2005년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으로 서울여성영화제에 초청돼 방한하기도 했다. 원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104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도리스 레싱의 작품세계는

    2007년 노벨문학상(제100회)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88)은 1950년대 ‘앵그리 영맨(성난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에서 일어난 전후세대 젊은 작가들을 일컫는 ‘앵그리 영맨’은 영국의 기성세대와 전통적 권위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현재 레싱은 ‘20세기에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레싱은 소설, 시, 희곡을 넘나들며 작품을 썼다. 그의 소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소설과 성장소설에서부터 우화, 설화, 로망스, 공상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레싱은 평생 주류에서 벗어난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했다. 비유럽권에서 태어나 자랐고,14살에 제도권 교육을 그만둔 후 어떤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젊은 시절 공산당 활동을 한 레싱은 기성 가치와 제도, 체제, 이념에 늘 비판적이었다. 레싱을 영국문학의 중심작가로 만든 것 또한 타협을 모르는 작가정신과 인간 심리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관찰력에 힘입은 바 크다.“도리스 레싱은 분열된 문명을 비판적으로 다루며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서사시인”이란 스웨덴 노벨재단의 수상자 선정사유는 레싱의 이같은 면모를 잘 보여준다. 레싱은 50년 2차대전 전후 영국에 합병된 짐바브웨 로디지아 지배민족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을 사회정치적 시각으로 묘사한 소설 ‘초원은 노래한다’로 문단에 입문했다. 이후 레싱은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 ‘폭력의 아이들’(1964),‘서머싯 몸상’을 받은 중편소설 ‘다섯’(1953) 등을 발표하며 신비주의와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사회생물학, 인종차별, 생명과학 등 폭넓은 지적 관심사를 포괄했다. 노벨재단은 레싱의 대표작으로 ‘황금빛 노트’를 꼽고 “여성주의 운동의 태동기와 맞물린 선구적 작품으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20세기적 시각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소수의 저작들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영미문학계에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황금빛 노트’는 가부장적 신화 속에서 진실된 삶을 추구하려는 여성작가 안나 울프의 이야기를 통해 혼돈과 질서, 허구와 현실을 밝혀 나간다. 페미니즘 소설이란 비평가들의 평가에 정작 레싱은 ‘황금빛 노트’에 정치적 색깔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레싱이 99년에 쓴 ‘마나와 단’에 대해서도 노벨재단은 “인류를 더 원시적인 생활로 되돌리게 될 전 지구적 재앙이 레싱에게 특별한 영감을 제공했다.”면서 “인간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특성들이 좌절과 혼돈 속에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레싱은 영국에서 보낸 최초 몇 개월 동안의 시간을 묘사한 ‘영국인의 추구’(1960), 예언적 환상을 그린 ‘어느 생존자의 회상’(1975), 공상과학 연작소설 ‘아르고스의 케노푸스, 고문서’ 등 모두 7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고령임에도 레싱은 인터넷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www.myspace.com)에 직접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즐겨 찾는 블로그 사이트가 136개에 이를 만큼 네티즌과 왕성한 교류를 즐긴다. 수상자 발표 시간, 현재 런던 교외 햄스테드에 살고 있는 레싱은 자신의 수상을 전혀 예상치 않고 평소처럼 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싱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고, 레싱의 편집자인 니컬러스 피어슨은 “여성의 내면 세계를 묘사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문학의 모습을 바꿔놓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수상 소식을 접한 레싱은 “이제 유럽의 모든 상을 다 받아 매우 기쁘다. 이건 로열 플러시(포커게임 최고의 패)다.”라며 수상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레싱의 수상으로 역대 노벨문학상을 받은 여성 작가는 11명으로 늘어났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도리스 레싱 연보 ▲1919년 10월22일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출생 ▲1925년 아프리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 ▲1939년 공무원이던 프랭크 위즈덤과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으나 1943년 이혼 ▲1945년 우간다 주재 독일 대사를 역임한 고트프리드 안톤 레싱과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 ▲1949년 영국 런던에 정착 ▲1950년 첫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 발표 ▲1952∼1969년 연작 ‘폭력의 아이들’ 발표 ▲1952∼1956년 영국 공산당원으로 반핵 활동 ▲1956∼1995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비판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입국 금지 ▲1962년 ‘황금빛 노트’ 발표 ▲1974년 ‘어느 생존자의 회상’ 발표 ▲1988년 ‘다섯째 아이’ 발표 ▲2002년 ‘가장 달콤한 꿈’ 발표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
  • [씨줄날줄] 이누이트족의 외침/구본영 논설위원

    미국 서부의 대도시 시애틀은 한 인디언 이름에서 유래했다. 서부 개척시대 수콰미시 부족 추장의 이름이다. 수콰미시 족이 살 때만 해도 시애틀은 태평양에 면한 비옥한 구릉 지대였다. 1854년 말에서 1855년 초 어름. 이들은 당시 피어스 미 대통령에게서 날벼락같은 통보를 받는다. 살던 땅을 팔고 퓨젓사운드 만의 한 섬에 있는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라는 것이었다. 지혜롭고 백인에 우호적 인물인 시애틀 추장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마지막 강이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매각협상 때 시애틀이 했다는 연설의 일부다. 아직도 진위 논란이 이어질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는 구절이다. 시애틀의 버전이 아닌, 크리족 인디언의 예언이었다는 학설에서부터 후세 환경론자들에 의해 변용됐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올해. 러시아 등 강대국들간 지구상의 마지막 자원보고인 북극해 선점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심해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면서부터다. 현행 유엔해양법은 북극해에 관한 개별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등 인접국의 경제수역만 허용할 뿐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가 잠수정과 로봇팔을 동원, 북극점 심해에 국기를 꽂으면서 영유권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구온난화가 부정적 환경변이를 촉진할 해역 다툼을 유발하는 역설이 빚어진 꼴이다. 이런 슬픈 현실에 맞서 원주민들이 ‘우리땅 지키기’에 나섰다고 한다. 에스키모로 불리던 이누이트족이 주역이다. 문제는 16만명에 불과한 소수 종족이 강대국들의 북극해 난개발 경쟁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란 사실이다. 수콰미시 부족이 그랬듯이. 강대국들이 개발에 앞서 자연을 걱정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을 되새겨봐야 할 듯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에 한국인 업자가 골프장을 건설하려다 제동이 걸렸다는 소식이 들리기에 하는 얘기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열린세상] 안다는 것과 존중한다는 것/성석제 소설가

    [열린세상] 안다는 것과 존중한다는 것/성석제 소설가

    차량 왕래가 많은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교통신호제어기 옆에 있는 경찰관을 볼 때가 있다. 시간대에 따라 동서, 남북 어느 쪽이든 교통량이 많은 도로가 있게 마련인데 그 도로에는 직진 신호를 길게 주고 그렇지 않은 도로에는 짧은 시간을 배정하는 게 상식이다. 중앙의 교통신호통제센터에서 총괄해서 제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 경찰관이 나와서 교통 신호를 직접 조작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서 있는 차선이 불공평하게 시간을 배정 받을 때 발생한다. 내가 가려는 방향의 신호는 3분이 지나고 4분이 다 돼가는 듯한데 붉은색에서 도통 바뀔 줄을 모른다. 반대쪽 방향은 지나갈 차는 다 지나가고 없는 것 같고 이따금 총알처럼 달려오는 차가 한두 대 있을 뿐이다. 약속시간은 자꾸 다가온다. 정상적으로 간다면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제 시간에 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 다음 교차로에 또 다른 경찰관이 버티고 있을 수도 있고 교차로마다 있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게 되고 머피의 법칙을 떠올릴 이유가 없는데 머피의 법칙이나 생각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이 스스로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한심스럽다고 느낄 때 겨우 신호가 바뀐다. 내가 지나가기 전에 신호가 금방 바뀔지 몰라서 마음이 급하다. 그런데 앞에 가는 차가 뭘 하는지 자꾸 꾸물거린다. 옆 차선은 벌써 다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옆 차선으로 끼어들 수도 없는 것이 도로에 실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신호 아래를 지나치며 경찰관의 얼굴을 확인한다. 제복을 입었고 무표정하지만 어쩐지 어려 보인다. 시간만 되면 그의 판단능력이나 권한에 대해 검증하고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신호를 지나치고 나서도 여전히 꾸물거리며 가고 있는 앞차에도 미친다. 도대체 뭘 하고 있어서 그러는지 성별은 무엇이며 나이는 얼마나 됐으며 생김새는 어떠하며…… 자동차의 외양과 번호판처럼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는다. 차선을 바꿔 왕왕거리며 지나가면서 왼쪽 차에서 운전대를 껴안다시피 하며 운전하는 사람이 반백의 노인임을 알아낸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설득시킬 만한, 위안할 만한 논리를 만들어 내고서야 갈 길을 간다. 경찰관은 아직 젊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뿐이라서, 운전을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노인이니까 하고. 외국에서 운전을 하거나 길을 잘 모르는 지방 도시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는 일정한 범위의 상호존중이 있는 법이다. 나는 경찰관의 권한과 전문적인 판단능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앞차 운전자가 빨리 가지 못하는 데는 내가 모를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우리 모두 한국 사람이고 내가 다니는 곳이 서로 알 만한 사람끼리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어서 지나가며 악착같이 고개를 빼서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알아낸 피상적인 자료를 객관적인 근거를 무시하고 공평성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데 사용한다.‘좋은 게 좋은 거지 왜 그렇게 요령이 없어?’라든가,‘왜 다른 사람 다 놔두고 나만 가지고 그래?’ 하는 식의 발상이 여기서 나온다. 혹시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게 아닐까. 예언자의 권능을 인정하는 편이 분명히 고향의 발전에 도움이 될 텐데도. 성석제 소설가
  • [문화플러스] 향린교회서 종교문화원 시민강좌

    종교문화연구원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한국교회인권센터와 함께 시민강좌를 13일∼11월1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을지로 향린교회에서 개최한다. 인연, 공부, 개벽, 예언, 영혼 같은 낱말을 통해 종교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강의로 진행한다.(02)776-9141.
  • 빈 라덴, 환경운동가로 변신?

    빈 라덴, 환경운동가로 변신?

    9.11 테러 6주년을 앞두고 공개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비디오 메시지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은 없었다. 대신 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들이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환경 문제. 9일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빈 라덴은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 TV를 통해 방영된 26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서방의 ‘자본주의 기업들’을 지목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특히 아프리카 등에서 수 백만명의 목숨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 공장의 배출가스가 주요 원인인 지구 온난화 때문에 모든 인류의 삶이 위험에 처해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백악관에서 이들 기업을 대표하는 이들은 교토 협약을 지키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빈 라덴은 또 “미친 듯이 오르는(insane) 세금과 부동산 모기지”를 언급,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빈 라덴이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4년 이후 3년여만이다. 선데이 타임스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인 빈 라덴의 새로운 모습이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일간 알-쿠드스의 편집자인 압델 바리 아트완은 “빈 라덴은 ‘나는 옛날의 빈 라덴이 아니다. 나는 새롭고 성숙한 빈 라덴이며 알-카에다의 정신적 지도자다’라고 말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인에게 이슬람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빈 라덴의 메시지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UPI 통신에 따르면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 종교관련 단체인 ‘휴머니티스 팀(Humanity’s Team)’은 “빈 라덴의 성명은 분열을 일으킬 뿐 아니라 인류 화합을 강조한 모하메드의 가르침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50세인 빈 라덴은 비디오 영상에서 짙은 검은색 턱수염 등 한결 젊어진 모습이었지만 가짜 수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백악관 전 대테러 관리인 리처드 클라크는 “가짜 수염을 단 것처럼 정말 이상해 보였다”면서 “3년전 테이프에서는 수염이 희끗희끗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퍼스트 래디/육철수 논설위원

    역술이란 세월이 지나면 대개 별것 아니지만 예언 당시에는 그럴듯한 게 많다. 몇달 전 어느 역술인은 한국에서 몇해 안에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근거는 지금이 음기가 충천하는 하원갑자(下元甲子,1984∼2043년)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나라를 다스려야 혼란스러워진 음기를 잘 다독이고, 정치·경제·사회가 안정돼 나라가 번성한다는 얘기다. 역술에 의하면 음양기의 순환에 따라 상원갑자(1864∼1923년)를 남성상위시대, 중원갑자(1924∼1983년)를 남녀평등시대, 하원갑자를 여성상위시대로 나눈다고 한다. 상원갑자 시기에 여성이 남성에게 대들다가 혼쭐났듯이, 하원갑자 시기엔 남성이 여성을 이기려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나, 세계에 여성 대통령 6명과 여성 총리 4명이 배출된 데다, 국내외 각계에 여풍(女風)이 거세지는 현실로 미루어 하원갑자의 음기론을 도외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바다 건너 미국에도 뻗쳤다. 퍼스트 레이디를 지낸 힐러리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해지면서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을 어떻게 부를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남편에 대한 호칭은 이미 클린턴 부부가 묘안을 내놓긴 했다. 힐러리는 4년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남편을 ‘퍼스트 메이트’(First Mate)로 부르라고 했다. 며칠 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클린턴은 ‘퍼스트 래디’(First Laddie)란 새 호칭을 추천했다. 래디는 스코틀랜드 구어로 ‘젊은이’라는 뜻이니, 음운상 퍼스트 레이디와 잘 어울리는 대칭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가하는 여성 정상들의 남편을 ‘퍼스트 젠틀맨’으로 부른다니까, 이 세 가지 호칭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다. 우리도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대비해 ‘부군’(夫君)이나 ‘영부군’(令夫君) 같은 고유 존칭을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남녀의 입장이 바뀌면 새로운 호칭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 호칭은 우먼파워 시대를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예언가 우리역사를 말하다’/푸른역사 펴냄

    [내 책을 말한다] ‘예언가 우리역사를 말하다’/푸른역사 펴냄

    1990년대 초반부터 나는 한국 역사상에 보이는 예언을 눈에 띄는 대로 수집했다. 예언서의 사료적 가치에 주목한 것이다. 어떤 예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물론 재미있다. 하지만 예언이 담은 역사적 의미를 캐내는 작업은 더욱 흥미롭다. 가령 고려시대에는 어째서 도선국사를 최고의 예언가로 떠받들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도선비기’의 예언이 적중했는지를 알아보는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예언서에는 정사의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역사적 인식이 살아 숨쉰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은 유교 국가의 중요한 정치적 이념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늘 그랬다. 아무도 드러내 놓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가치였다. 하지만 예언서의 뚜껑을 열어젖히면 이런 불변의 가치는 뒤집힌다. 예언의 세계에서는 반란의 획책이 정당하고 일상적이다. 예언서는 역사의 이면을 기록한 또 하나의 역사책으로 보아 무방한 것이다. 나의 책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는 수년간 매달린 문제의 일부를 정리해 본 것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예언가로 평가되는 십여명의 대표 저작이 차례로 시험대에 오른다. 도선을 비롯해 무학대사, 서산대사, 이지함과 남사고 등의 예언을 망라한다. 조선 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의 골자를 주된 해부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몰랐던 여러 사실이 밝혀진다. 도선의 저술로 알려진 많은 예언서가 사실은 후대의 위작이라든지,‘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이 사실은 사람들이 점술에 현혹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강조되는 점은 따로 있다. 예언서를 통해 익명의 저자와 독자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따져보자는 외침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한국 문화의 깊은 내면 또는 주류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심지어 비주류 문화의 흐름까지도 파악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의 역사인식은 풍성해질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역사학계는 예언서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예언을 일종의 미신이라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상의 어두운 그림자로만 인식되었다. 알다시피 광복 이후 한국사회는 오직 근대화만을 추구했다. 역사학도 한국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주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 자본주의 맹아론, 사회적 모순의 해소 과정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 그런 일방적이고 편향된 역사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역사는 중층적이다. 백승종 경희대 겸임교수
  • [기고] 자주독립정신 되새기는 광복절 아침이기를/김정복 국가보훈처장

    광복 62주년을 맞는다.1945년 8월15일. 광복의 감격은 어느 수필가의 글처럼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우리 선열들은 50여년에 걸친 길고도 험난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의병의 활약,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3·1운동, 의열투쟁, 무장투쟁,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학생운동, 문화운동, 외교활동 등으로 광복을 맞는 그날까지 피어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미주와 유럽대륙, 심지어 일본 열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선열들은 이 나라의 어둠과 울분시대에 겨레의 한을 대신한 한줄기 의로운 빛이었다. 그 암흑 속에서도 선열들은 조국 광복의 일념으로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조국을 사랑한 마음과 앞날을 예언한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는다.”는 예언을 했고,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끌어가고 또 계승해 가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준 열사는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해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남겼으며, 이상설 선생은 “동지들을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늘 우리에게는 선열들의 이러한 나라사랑, 독립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조국의 자유, 인류의 평화가 모두 그 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예우하는 ‘보훈’을 국민통합을 이루는 국가의 근본정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 전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정부대표로 방문한 네덜란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헤이그에서는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과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을 기리는 거리축제와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헤이그시는 7월14일을 ‘이준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이준 문화유적지 지정 등 열사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렸다. 이렇듯 네덜란드에서는 100년 전 온갖 수모를 당하며 자국의 독립을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한 타국의 특사라도 그 숭고한 정신에는 뜻을 함께하였던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국경을 떠난 ‘보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올해는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광복절을 기해 개관 20주년 기념행사와 더불어 제4관 ‘겨레의 함성’이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연다. 앞으로 많은 국민이 달라진 독립기념관에서 8·15의 감격과 국난극복의 역사를 되새기고 통일과 선진조국의 꿈을 키웠으면 한다.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거울이다.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선열들이 보여 주었던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국민통합과 진정한 민족공동체정신이 필요한 이때 8·15 광복절을 맞아 선열들이 보여준 독립투쟁과 사상,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신명을 바쳤던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0)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이 민간신앙과 신흥종교의 성지라지만 대전 쪽에서 동학사를 거치거나, 충남 공주에서 갑사로 오르는 일반적인 방문코스에서 이 산이 지닌 신령스러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주에서 갑사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계룡산 중턱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굿당이나 암자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기독교와 천주교의 기도원도 보이는데, 계룡산이 발산하는 영적인 기운이 무속이나 불교, 신흥종교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다 계룡산 기슭으로 난 왼쪽길로 접어들면 곧 신원사가 멀리 보입니다. 신원사는 눈 푸른 납자들이 수행하는 국제선원이 있는 절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신원사를 기억해야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이곳에 중악단(中嶽壇)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845m의 천황봉을 등지고 있는 중악단은 조선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며 끊어졌던 계룡산 산신제는 1998년부터 민간차원에서 되살려 해마다 모셔지고 있지요. 조선은 묘향산을 상악(上嶽), 계룡산을 중악(中嶽), 지리산을 하악(下嶽)으로 삼아 각각 상악단과 중악단, 하악단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묘향산과 지리산의 제사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중악단이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1959년 발간된 ‘공주군지’는 1879년(고종 16년) 계룡산사(鷄龍山祠)라는 이름을 중악단으로 바꾸며 건물도 중수한 것으로 전하지요. 일본인 인류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1931년 ‘조선의 풍수’에서 대한제국 수립 이후 고종이 1898년(광무 2년) 중악단을 위엄있게 짓고,神院寺(신원사)였던 절 이름도 제국의 기원을 연다는 뜻에서 新元寺(신원사)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신원사의 역사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내에서는 백제시대 와당(기와)이 발견되었다고 하지요.神院(신원)이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뜻하는데,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제사터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백제시대 계룡산 제사터의 위상은 확실하지 않지만, 통일신라는 전국의 5대 명산을 5악(五嶽)으로 지정하고 국가적 제사터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합니다. 토함산이 동악, 지리산이 남악, 계룡산이 서악, 태백산이 북악, 팔공산이 중악이었지요.5악신앙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태조는 계룡산신에게 호국백(護國伯)이라는 작호(爵號)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태조가 계룡산의 산세를 높이 평가하여 새로운 왕조의 도읍으로 삼고자 한동안 공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17세기 들어서면서는 계룡산 신도안이 이씨 왕조의 400년 수도 한양에 이어 새로운 왕조가 800년 동안 도읍할 땅이라는 ‘정감록’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말에 이르러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계룡산이라는 존재는 왕실에 적지않은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종이 중악단의 격을 올리고 건물도 새로 지은 것도 새 왕조의 도읍으로 공공연히 일컬어지는 계룡산의 땅기운을 억누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지요.‘정감록’의 예언이나 왕실의 중악단 중건이 모두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고도의 정치행위였던 셈입니다. dcsuh@seoul.co.kr
  • “힐러리는 대통령 후보 오바마는 부통령 카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 2008년 미국 대선 출마를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있는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29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부통령 후보로 나서는 카드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두 사람은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예측 여론조사에서 각각 1,2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힐러리 의원은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오바마 의원은 첫번째 흑인 대통령을 꿈꾸며 대선전에 뛰어든 상태다. 이런 그들이 러닝메이트로 나설 경우 득표력에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돼 깅리치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깅리치 전 의장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힐러리와 오바마 의원이 러닝메이트로 나서는 카드가 유력하다면서 공화당에서 “진공상태가 발생해 누군가 힐러리 의원과의 토론을 준비할 실질적인 필요가 있을 경우 출마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상황1 지난 봄 어느날이었다. 한 풍수학자와 현직 경찰 고위간부가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풍수학자는 “5월을 조심하라.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조직에 줄초상이 났다. #상황2 경찰총수의 퇴진압력이 거세게 일던 얼마 전, 풍수학자와 경찰 고위간부가 다시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앞날을 물어보는 경찰 고위간부에게 풍수학자는 “지금은 (총수가)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올해 안에 한번 더 고비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앞으로의 일이야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이택순 경찰청장은 일단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지만 앞날이 불안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요즘 경찰 내부에서는 ‘푸닥거리’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사건을 둘러싼 후유증으로 다들 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택순 청장이 최근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건청탁 관행을 일소하고 조직 운영 시스템을 바로잡겠다.”고 역설했지만 일선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경찰은 1991년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둥지를 튼 후 무슨 연유에선지 총수들의 ‘말년 팔자’가 대체로 사납다. 이인섭(2대) 전 청장은 슬롯머신 사업자와의 연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김효은(3대) 전 청장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밀려났다. 박일용(5대) 전 청장은 초원복집 사건으로 구속됐고, 김광식(8대) 전 청장은 인천 인현동 상가건물 화재참사로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무영(9대) 전 청장은 수지김 피살사건 내사중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이팔호(10대) 전 청장은 최성규 전 특수수사과장 배후의혹 참고인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때문에 2003년 12월 경찰청장 임기제가 확정되자 안팎에서는 오랜 숙원인 ‘수사권 독립’과 달라질 경찰의 위상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임기제 시행 첫 총수인 최기문 전 청장은 지역구 출마와 관련, 정치권에 휘둘리다가 결국 2004년말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도중 하차했다. 최 전 청장은 퇴임후 한화건설 고문을 맡았다가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 그 뒤를 이은 허준영 전 청장 역시 임기 1년을 남긴 2005년말 농민시위 사망사건으로 그만 뒀으며 지금의 이택순 청장 역시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경찰청 주변에는 풍문대로 ‘불운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는 걸까. ●26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한국 도선풍수 명리학회 이정암(60·본명 이기만) 회장. 전직 경찰 간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2005년 8월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해 최종 계급은 경무관이다. 경찰에 몸담은 26년 중에 17년이 넘게 수사분야에서만 근무한 베테랑이다. 경찰 입문 전부터 배운 풍수·명리학을 적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어서 경찰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용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퇴임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밀린 원고를 정리해 ‘풍수 그리고 운명’,‘범위명운수비결’ 등 10여권의 관련저술을 연이어 발간,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이달 중 발간 예정인 ‘건물풍수 핵심 비결’은 국내 최초의 건물풍수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끈다. “경찰청 건물은 마름모꼴의 대지 위에 동향(東向)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문 출입문이 북동쪽으로 나 있어 풍수상 좋지 않아요. 북서쪽의 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경찰청장 집무실이 9층인데 바로 여기가 절명궁(絶命宮)에 해당합니다. 즉 관재(官災), 구설(口舌)이나 교통사고로 요절하는 등 단명을 주관하는 흉살(凶煞)방위에 해당되지요.” 그러면서 청장실을 적절한 층(7층)으로 배치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문을 남쪽(정동향)으로 일부 개조해야 대길(大吉)하다는 것. 사실 이씨는 이택순 청장이 경기청장 재임때 차기 경찰총수로 승진할 것을 이미 예견한 바 있어 주위에서는 이씨의 권고를 그럴 듯하게 받아들인다. 하기야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예언도 그렇거니와 2003년 8월 인천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 때 대통령 탄핵건을 비롯, 모 장관의 100일 낙마와 17대 총선 당락여부까지 미리 알아 맞혔으니 그럴 법도 하다. 흥미있는 일화도 많다.2004년 경기도 군포경찰서장 재임 때였다. 평소 군포서장은 단명하기로 소문난 자리였다. 그가 부임해서 서장자리를 풍수적으로 풀어 보니 육살궁(六煞宮)에 해당됐다. 그래서 대문의 방향을 현 교육청 쪽으로 약간 틀었다. 이후 해마다 전체 직원 중 10% 이상 승진자가 계속 생겼고, 지금도 감사의 전화를 받곤 한다고 전한다. 군포시의회 건물도 같은 ‘절명궁’ 자리여서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생기궁’으로 바꾸는 법을 귀띔해 줬더니 단명하던 의장이 연임하는 경사가 겹치기도 했단다. ● 청와대 3층으로 지었어야 “청와대는 3층으로 지어야 합니다. 배산이 탐랑목성(貪狼木星)이고 정문이 정남향에 배치돼 있어 1층은 금(金),2층은 수(水)로 대문과 상극이 되지만 3층일 경우 생기궁이 되어 대길할 운입니다.” 국회의사당의 경우 떠다니는 배의 꼬리에 있어 정치인들의 생각이 이재(理財)에 치우친다고 지적했다. 여의도가 행주형(行舟形)이라면 63빌딩이 돛이요, 섬안에 늘어선 빌딩들은 마치 큰 상선에 짐을 싣고 계류하는 선박의 모습인데, 선미(船尾)가 되는 남동쪽에 국회의사당이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대검찰청 건물도 배산보다 높이 솟은 데다 정문이 남향으로 돼 있어 검찰총장실을 현재의 8층에서 5층으로 옮겨야 복덕궁(福德宮)의 생기가 회복된다고 했다. 반면 재벌가의 경우 비교적 길운의 자리에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사는 동네는 서울 강북의 한남동 등 남산 자락과 성북·평창·가회동 등 북한산 자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들이 모여 있는 한남동의 경우 남산을 등지고 양 옆에 좌청룡·우백호 격의 언덕이 솟아 바람을 막아주며, 옆에 한강이 감싸듯 흘러 풍수적으로 재물운이 많다는 것. 재벌그룹의 사옥 중에서는 삼성그룹의 서울 태평로 본사가 층수별로 오행상생의 길운을 받도록 잘 배치돼 있다고 풀이했다.SK건설도 풍수경전인 ‘양택삼요’에 따라 집을 짓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귀띔했다. 생활풍수 상식에 대해 몇가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임신 중에는 집수리를 하지 말 것 ▲아이들이 비뚤어지면 동쪽과 동남쪽을 먼저 살필 것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북서쪽을 살필 것 ▲여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남서쪽을 살필 것을 권했다. 또한 주택의 서쪽에 큰 길이 있으면 길하고, 남쪽에는 빈터가 있어야 좋다고 말한다. 과거 각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집에 가보면 대부분 ‘절명궁’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는 그는 현장 경험이 풍수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 풍수 학문적으로 집대성할 것 “풍수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입니다. 또 그 역사와 뿌리가 장구하고 경험적 과학의 산물이기에 백발백중, 천발천중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한테서 한학과 역경 등 경학을 배웠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해군에 지원해 36개월 군복무를 마친 뒤 검사가 되고자 고시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나 “자네는 검사는 안 될테고 경찰서장은 하겠구만.”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돼 3년 동안 스님과 전국을 떠돌며 풍수·명리학을 공부했다.1979년 간부27기로 경찰에 입문한 후에도 틈틈이 스승(스님)한테 물려받은 풍수경전을 익히며 내공을 쌓았다.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관련 저술을 발간하는 등 오로지 풍수·명리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요새는 고미술협회와 대학, 각 단체 등에 초청 강의도 나간다. 이래저래 제자가 130여명에 이를 만큼 따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제갈공명과 소강절 선생의 인간 길흉사 요결 ‘황극책수(皇極策數)’ 등 7,8권 정도의 저술을 더 발간해 풍수이론을 학문적으로 새롭게 집대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의성 출생. ▲76년 경북대 졸업. ▲79년 경찰 간부후보 27기로 임관. ▲99∼2004년 강진경찰서장. 군위경찰서장, 군포경찰서장. ▲05년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경무관). ▲주요 저서 풍수 그리고 운명(풍수), 요해 도선비기(풍수), 소설 도선국사(풍수), 비전으로 전하는 한국 최고의 명당(풍수), 옥룡자답산가(풍수), 범위명운수비결(주역), 하락명운수(주역), 적천특수비전(명리), 천운(명리) 등.
  • [22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한지공예는 우리 삶 가까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의 전통한지는 통풍성이 좋고, 내구성이 뛰어나 작은 생활소품은 물론, 소반이나 반닫이 등 쓰임새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품명품 추적대감이 재현해 본 전통 한지공예.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통 한지공예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공개된다. ●최강!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강이네, 채린네, 은기네 가족은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강이와 채린은 둘만의 시간을 갖으려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한강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길이 막혀 여행을 포기하고 한강으로 차를 돌린 가족들에게 딱 걸린 두 사람. 누구보다 은기는 훈이까지 알고 있는 두 사람 관계를 몰랐다는 것에 격분하는데….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97년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비롯해 계속되는 충격적인 예언들. 수많은 사건을 적중시킨 인터넷 세상의 예언가,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1973년 7월20일 구급실로 실려와 손 쓸 겨를도 없이 세상을 등진 사람은 시대의 영웅 이소룡이었다.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죽음의 진실은 무엇일까? ●굿모닝 세상은 지금(SBS 오전 7시40분) ‘와이프로거’란 주부(wife)와 블로거(blogger)를 합친 신조어. 자신만의 가사비법을 블로그에 담아 스타가 된 주부를 가리킨다. 요리와 수납의 달인 현진희, 천연화장품과 비누를 만드는 강영주, 침구·커텐 DIY의 이수연 주부가 자신만의 성공담과 인기블로그를 만드는 비법을 털어 놓는다. ●사랑의 공부방-네발 자전거(EBS 오후 6시) 꼬마 어른, 권재명. 이제 겨우 열 살.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 채 가족이라고는 할머니와 네살배기 여동생 아름이가 전부이다. 그래서 일까?재명이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너무나도 성숙하다. 공부방에서든 학교에서든 발표력도 최고, 리더십도 최고다. 열 살 재명이를 성숙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대서양과 인도해, 지중해와 홍해로 둘러싸인 아프리카는 다채로운 문화와 종교, 언어를 가졌다. 뉴욕 흑인문화센터는 아프리카 후예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또 아프리카 대륙의 단합이라는 원대한 꿈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꽃 피울 정치, 경제, 사회 연합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도전!1000곡(SBS 오전 8시30분) 각종 음악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정상을 달리고 있는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선배가수 원미연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다름 아닌 미모?과연 미모와 실력을 두루 갖춘 선후배의 경쟁에서 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가창력의 소유자 서울패밀리. 그들이 진짜 ‘패밀리’로 돌아왔다는데…. ●TV탐험 멋진 친구들(KBS2 오전 9시45분)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KBS 드라마의 알짜배기 NG장면을 지켜본다. 인기 드라마부터 예능 프로그램까지 이번 주,TV 속 시청자를 사로잡은 명장면도 지켜본다. 조선 후기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드라마 ‘한성별곡’의 현장에서 뒷 이야기를 들어본다.
  • [브리티시오픈] 美언론 최경주 우승후보 위 꼽아

    ‘클라레저그(Claret Jug)는 누구 품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픈대회(The Open)’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가 19일 스코틀랜드 커누스티골프링크스(파71·7421야드)에서 개막, 나흘간의 열전에 들어간다.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고 미국프로골프(PGA)와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등 양대 투어 대회를 겸하는,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다.초점은 당연히 최경주(37·나이키골프)에 맞춰진다. 우즈가 3연패를 벼르고 있지만 지난주 AT&T내셔널 우승으로 정상의 반열에 오른 그는 이미 우승후보 3순위에 올라 있다.●브리티시 악연 끊는다 최경주는 다른 3개 메이저대회와는 달리 브리티시오픈과는 유독 인연을 맺지 못했다.7차례 도전 가운데 3차례나 컷오프당했고, 최고 성적이라야 2004년 공동 16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최경주에 거는 기대는 크다.AT&T내셔널을 포함, 올시즌 굵직한 2개 대회 정상에 선 뒤 현재 상금랭킹 4위와 세계랭킹 12위, 그리고 다승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다음 목표는 메이저대회”라는 예언은 급상승한 자신의 기록들로 더욱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도 우승 후보군에 최경주를 포함시켰다. 미국의 ‘골프닷컴’은 10명의 우승후보 가운데 최경주를 세 번째로 꼽았고, 영국의 ‘골프투데이닷컴’도 20명 후보 중 하나로 언급했다. 특히 골프투데이닷컴은 “최근 몇 달간 가장 뛰어난 경기를 펼친 선수가 바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 우승에 가장 근접해 있는 최경주”라면서 “드라이브샷이 정확하고 파워까지 출중하며 퍼팅도 한층 좋아졌다.”고 극찬했다. AT&T내셔널 우승 뒤 “백만 가지 난관이 따를지라도 내 자신을 믿으며 앞으로만 나가겠다.”고 최경주가 밝힌 각오는 브리티시오픈을 염두에 둔 것. 지난 14일 대회장으로 일찌감치 날아가 코스를 점검한 최경주는 19일 오후 3시36분 리처드 스턴, 데이비드 하웰과 함께 첫 티샷을 날린다.●‘51년 만의 3연패?’ 브리티시오픈 최다 연승은 톰 모리스 주니어가 1972년 세운 4연패다. 대기록에 ‘황제’ 우즈가 한 발 더 다가설지 주목된다. 지난 2년 연속 ‘클라레저그’를 품었던 그가 올해 3연패를 일굴 경우 1954∼56년 피터 톰슨 이후 51년 만이다. 지난해 우즈는 아버지 얼 우즈가 타계한 지 두 달 만에 우승컵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올해 아버지가 된 우즈는 이번엔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세 번째 우승컵을 선물하겠노라고 벼른다. 그러나 3연패 길목에 버틴 경쟁자들의 면면도 만만찮다. 브리티시오픈과 인연이 없었던 필 미켈슨(미국)과 비제이 싱(피지), 그 외에도 어니 엘스와 레티프 구센(이상 남아공),US오픈에서 우즈를 잡은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 짐 퓨릭(미국) 등도 우즈의 3연패를 저지할 세력이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토정은 민중과의 소통에 신화적 존재”

    충남 아산시 영인면 사무소에는 토정 이지함(1517∼1578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아산현감 시절 이곳에 일종의 ‘홈리스재활센터’인 걸인청을 세우고 유랑민들에게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앞서 포천현감 시절엔 ‘땅과 바다는 백 가지 재용의 창고’라면서 상공업을 천시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국토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토정은 현감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전국을 유랑하며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지음, 동녘 펴냄)의 첫권인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서 전한 토정의 진면목이다. 토정은 그동안 예언가이자 점술가로, 구리솥을 머리에 얹고 다니던 야사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는 토정이 ‘적극적인 국부 증진책을 제시한 뛰어난 경제학자였으며,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실천적이고 통 큰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토정은 점술과 천문·지리·의학·관상·비결에 두루 능통했다. 하지만 ‘토정비결’이 그의 저작물이라는 데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토정비결’이 민간에 유행한 것은 아무리 올려잡아도 18세기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토정비결’의 지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토정의 민중 지향적인 성향 때문일 것으로 신 학예사는 짐작한다. 토정을 빼닮은 민중 친화성을 가진 누군가가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토정의 이름을 빌리자, 급속히 민간에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는 이밖에 ‘도선비기’의 도선,‘동명왕편’의 이규보,‘열하일기’의 박지원,‘서유견문’의 유길준이 소개됐다. 장지연 서울대 강사, 김인호 광운대 교수, 노대환 동양대 교수,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각각의 인물을 맡았다. 토정의 사례에서 보듯, 엄밀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스토리성을 복원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이들 책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집필에 참여한 젊은 사학자들은 무엇보다 ‘지은이들이 사람들의 욕구나 시대적인 요구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당대의 문제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시대와 소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명왕편’은 혼란스러운 국가를 바로잡을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게 했고,‘도선비기’와 ‘토정비결’은 어지러운 사회에서 삶에 지친 백성들을 위로했다.‘열하일기’는 새로운 주장을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담아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서유견문’은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읽히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는 인물을 통한 역사 읽기로 대중적인 역사 서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60여명의 인물을 선정하여 각각의 인물과 시대 전공자들이 썼다. 1권 ‘베스트셀러의 저자들’과 처용, 쌍기, 인후, 이지란, 박연을 다룬 2권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이 발간된 데 이어 모두 11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각권 1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오는 7월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금융·무역의 허브, 동양의 진주 홍콩의 밤거리는 계속 불야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스모폴리탄 홍콩인은 과연 중국의 공민(公民)에 머물고 말 것인가. 사회주의 중국에 맞선 민주의 보루는 어찌 될 것인가.1997년 전반 중국 회귀를 앞두고 쏟아진 이런 질문들에 10년이 지난 오늘 몇 개의 답변은 가능할 듯하다. 현지 탐방을 통해 3회에 걸쳐 홍콩 특집을 싣는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한다. 막강 홍콩 경찰의 방어벽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반대에 나선 한국의 원정 시위대에 무너졌다. 예고된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을 사전답사까지 했던 홍콩경찰이지만, 시위대의 노련한 작전에 맥없이 1차 저지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위대의 ‘밀기’에만 신경쓰다가 ‘밀었다, 당겨’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도의 원리’에 우르르 앞으로 넘어진 홍콩 경찰들 위로 한국인 시위대의 진격 모습이 TV로 생생하게 전달되자 홍콩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한국 사람이야 ‘그 정도 갖고 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홍콩인들의 충격은 컸습니다. 그 일 이후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몰라요.” 홍콩 한인회 김구환 부회장의 말은 ‘안정’에 대한 홍콩인들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홍콩인의 안정에 대한 집착은, 곧 ‘혼돈’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다. 홍콩의 최근 역사는 안정희구 성향을 잘 보여준다.1967년 노동 파업으로 시작돼 반식민지 운동으로 번졌던 반영(反英)폭동 때도 노동자 탄압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보다는 결국 시위대만이 혼란의 주범으로 각인된다. 사회 질서가 불안해지고, 자본이 홍콩을 빠져나가자 홍콩인 대다수는 시위대를 원망하게 된다. 이는 홍콩인들이 ‘안정’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실제 안정이 흔들리면 홍콩인들도 크게 흔들렸다. 홍콩 반환이 결정된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 발표 이후 본격화된 홍콩인의 해외 이주는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이 혼란에 빠져들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캐나다 서부도시 밴쿠버가 돈 많은 홍콩인들의 집단 이주로 ‘홍쿠버’로 불리게 된 것도 이후의 일이다. 현재는 상황이 변했지만…. 굵직한 사건 때마다 ‘안정’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홍콩인의 중국 본토 자녀 흡수 문제의 분수령이 됐던 2000년 홍콩 입경처 방화사건을 보자. 심사과정 등에서 심하게 모욕을 당한 일부 ‘대륙인(중국본토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콩을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를 ‘대륙인의 폭력’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 결과 대륙인이 홍콩에서 당한 인권모독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한 해 전만 해도 ‘홍콩인들이 본토에서 낳은 자녀는 홍콩인이 될 수 있다.’는 종심(終審)법원의 판결로 대륙에 남은 홍콩 자녀들의 입경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위 난동으로 ‘폭도’,‘홍위병’ 등의 단어가 들먹여지자 여론은 험악해져 갔고, 판결은 허망하게 뒤집힌다. 안정이 기준이었다. 2003년 홍콩에서는 50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인다. 영국 식민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홍콩 정부가 국가전복행위를 금지한 국가안전법을 입법화하려 하자 회귀 기념일인 7월1일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통해 이를 무산시킨다. 많은 이들은 여기서 민주주의의 단초를 찾는다. 행정수반 둥젠화의 하야와 직선제 요구가 본격 제기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4년 국회의원 선거는 예상과 달랐다. 친중파(親中派)의 승리.“시민들이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언제 홍콩에 자유와 민주가 있었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영국 식민시기의 자유도 결국은 민주주의 없는 ‘시장의 자유’ 또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일 뿐인데, 보편적 자유인 양 찬양됐다는 얘기다. 주로 중국쪽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1997년 반환을 앞두고 영국 식민정부에 의해 진행된 정치개혁을 식민통치의 잔재를 남기려는 술책이었다고 비난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정치전문 대기자 크리스 영은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의 민주는 중국과 영국이 홍콩문제를 해결한 80년대 중반 무렵에 싹이 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 식민정부는 홍콩 반환이 확정된 1984년부터 반환 직전까지 상당한 자치권과 국제적 자율성을 부여한다. 선거권·피선거권·정치참여권은 중국 반환 결정 이후 부분 도입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명예로운 퇴각을 위한 정치개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에서 만난 상당수 홍콩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질문 자체에 민망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는 안정속의 번영을 원한다.”고 답했다.‘민주’라는 가치에 집착하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민주와 자유가 없던 영국 식민 시절부터 ‘안정’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번영을 누려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홍콩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一國兩制’ 일거양득 효과 |홍콩 이지운특파원|‘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뿐 아니라 영국 등 서방 세계를 안심시키는 주요 기제로 작용했다. 이는 나아가 대(對) 타이완 통일 원칙으로도 적용되고 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티베트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귀국을 종용하는 당근,‘고도의 자치’도 일국양제의 변형이다. 왕전민(王振民) 칭화대 법학원 부원장은 “일국양제를 통한 통일 구상은 중국인의 통일관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게다가 이는 아무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통일 비용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의 성공은 중국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정치선전이 진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국양제는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것이다. 그는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두 체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당초 선전(深) 등 경제특구에서 적용했던 것이다. 일국양제 10년에 대해서는 일단 좋은 평가가 우세하다.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은 최근 홍콩을 방문,“지난 1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당시의 불길한 예언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12년 전 홍콩에 대한 전망 보도가 잘못됐다고 시인하면서 홍콩 반환 10년의 변화상을 전하며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전했다. jj@seoul.co.kr
  • “2060년 지구 멸망”

    근대과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 206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측했다. AFP통신은 17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공개 전시되고 있는, 뉴턴이 1704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같은 예측이 들어 있다고 전했다. 뉴턴이 지구 멸망을 예측한 근거는 구약성서의 예언서 중 하나인 다니엘서다.그는 다니엘서의 내용을 토대로, 프랑크 왕 샤를마뉴가 대제에 올라 신성로마제국의 기원을 이루게 되는 서기 800년부터 정확히 1260년 후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 편지는 예루살렘의 히브루대학이 열고 있는 ‘뉴턴의 비밀’ 전시회에 나온 것이다. 과학자들의 친필 원고를 모으는 수집가가 대학에 기증한 뉴턴 자신의 기록 자료 중 일부이다. 대학측은 이 편지가 전시회에서 공개된 것은 1969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서의 내용을 연대기적으로 입증하고 연금술의 신비주의를 규명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1670년대에 4년간의 연구결과물로 연금술에 관한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연합뉴스
  •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한국정교회. 신교인지, 구교인지, 아니 한국에선 그 존재마저도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하지만 엄연히 전국에 2000명의 세례교인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교회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부산 전주 춘천 양구 용미리 등 7개의 정교회 성당에서 매일 하루 두번씩 예배가 열리며 주말엔 어김없이 성찬예배가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 맞은 편 언덕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마포구 아현1동 424-1)은 한국정교회의 총본산격으로, 한국에선 처음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독특한 공간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정교회 교인들은 신앙의 신조 ‘니케아 신경’을 외울 때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오순절에 거룩한 사도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고 위대한 교부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역공의회와 세계 공의회의 보호를 받은 교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5대 교구가 형성되어 내려오던 그리스도교는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열로 인해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4개 지역을 관할하는 정교회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이 가운데 정교회는 서방교회라 부르는 로마 가톨릭과 구분해 동방교회로 통한다. 한국정교회는 아직 독립교회나 자치교회로 인정받지 못한 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를 모교회(母敎會)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작은 교회. 그리스에서 파송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를 중심으로 그리스 출신의 주교와 한국인 신부 6명, 한국인 보제신부 1명, 러시아 출신 신부 1명 등 9명의 사제가 사역하고 있다. 종교로서의 정교회는 1900년에야 이 땅에 처음 들어왔지만 정교회와 우리와의 만남은 800년전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 몽골 군이 유럽을 유린하던 중세시대 몽골에 파견되었던 로마 교황청의 사절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 보면 몽골의 왕실은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에서 온 대공(大公)을 후하게 대접했다. 당시 볼모로 잡혀가 있던 고려 왕실 등의 귀족 자제들이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조선 영조시대 청나라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던 이윤신은 ‘문견사건(聞見事件)’에서 ‘큰 코 오랑캐’라는 의미의 대비달자(大鼻獺子)를 만났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비달자는 바로 ‘코 큰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조선 선교책임자로 입국한 러시아 흐리산토스 쉐헤트콥스키 대신부가 그해 2월17일 러시아 공사 관저의 큰 방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것이 한국정교회의 시초. 한국정교회는 그 날을 생일로 삼고 있다. 고종으로부터 부지를 하사받아 지금 경향신문 자리인 서울 정동 22번지에 첫 성당을 세웠는데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온 7개의 크고 작은 이색 종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이후 정교회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의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면서 사실상 단절됐지만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교구로 조직되어 교세를 늘여가다가 한국전쟁을 맞아 다시 철퇴를 맞았다.1947년 한국인 사제 알렉세이 김의한이 서품되었지만 전쟁 발발 두 달뒤 납북되어 처형되었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정동성당도 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당시 한국에 파병된 그리스 병사들이 매월 1달러씩 모아 성당 복구 비용에 보태기도 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육군의 종군 사제인 안드레아스 할쿄풀로스 대신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보리스 문이춘이 교회재건에 나서 1968년 아현동 언덕에 지금의 성당을 세워 놓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들이 긴 사각형의 공간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신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바실리카 양식을 택한다면 정교회 교회들은 한결같이 중앙의 둥근 돔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의 빛을 수렴하는 비잔틴 양식을 쓴다. 성니콜라스 대성당도 다르지 않다. 멀찌감치서 볼 때도 지붕의 둥근 돔이 가장 먼저 눈에 든다. 성당 입구 왼쪽에 선 아치형 종탑도 보통 교회나 성당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종들에 내리 걸린 줄을 잡아당겨 치도록 했는데 요즘도 매일 예배 때 어김없이 종이 울린다. 정교회가 처음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러시아에서 7개의 종을 들여왔는데 전쟁중 2개만 남긴 채 모두 파손되었고 지금은 이 2개와 나중에 그리스 정부가 기증해온 3개의 종을 모아 5개의 종을 걸었다.1978년 종탑을 세울 때도 파병 그리스 병사들이 모금한 돈이 쓰여졌다고 한다. 정문 위에 걸린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의 금색 모자이크상을 보며 성당 문을 들어서면 비잔틴 양식 그대로 천장의 거대한 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앙 돔을 기준으로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가 나뉘지만 중앙 돔 양쪽에 사각형 공간을 각각 두어 결국 내부 공간은 십자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문 바로 앞에는 양쪽에 촛불을 밝히는 성초대가 있는데 신자들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나를 희생하고 이타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정화의 공간이다. 전례공간으로 가다 보면 신자석 앞 왼편에 세례조가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침수 세례를 고수하는 정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지하 1.5m 깊이의 공간에 물을 채워 신자들이 세번 물속에 잠기는 과정을 통해 세례를 받는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화(聖畵)를 중시한다고 한다.4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성화는 대부분 복음서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신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보조교재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성당 안은 온통 성화로 도배되다시피 장식됐다. 모두 그리스 아테네대학의 소존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제작해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 돔 역시 거대한 성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꼭대기의 예수를 정점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사·세례요한, 구약의 예언자 아브라함·다윗·모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이른바 구약의 의인들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결국 이 돔은 천상의 예수님부터 지상의 인간까지 연결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를 구분하는 이코노스타시스(성상 칸막이)도 천주교 성당과는 달리 높게 쳐져 있어 독특하다. 꼭대기에는 정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꽃봉오리 십자가가 올려져 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짊어진 예수의 고귀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십자가이다. 성상 칸막이 중간의 ‘아름다운 문’ 양쪽에는 역시 예수와 세례요한, 성모마리아상이 새겨졌다. 성상 칸막이 안쪽의 전례공간 구성은 천주교 성당과 비슷하지만 제대 벽은 성모상과 아기예수, 최후의 만찬을 형상화한 성화로 마감하고 있다. 성당 왼쪽, 선교사관과 사무실·교육실로 쓰이는 건물의 지하엔 성 막심 성당이 있다. 중앙 성당이 일요일 성찬예배가 열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평일 두차례씩 예배가 열리는 소성당. 초기 선교사들이 입던 제의와 18세기 제작된 성화, 복음경, 한글 기도문, 성가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러시아 신자들을 위한 예배와 영어 예배도 이곳에서 열린다. kimus@seoul.co.kr ■ “교세 확장보다 진실된 믿음 전파에 힘써” 소티리오스 트람바스(78) 대주교는 1975년 문이춘 신부의 후임으로 그리스 정교회에서 부임해 32년간 한국정교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정교회의 가장 웃어른. 교인 2000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정교회를 대표하며, 세례며 온갖 성사를 주례하는 ‘영적 아버지’로 통한다.“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달랑 성당 하나밖에 없었어요. 종탑도 없이 성당 한 쪽에서 종 몇 개를 매달아 예배를 알리곤 했는데, 돌이켜 보면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정교회는 천주교 못지않게 이 땅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세계 어느 지역 정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신자들의 열성과 신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는 “한국의 정교회 교인들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가르침’의 의미를 가진 정교회 교리에 존경스러울만큼 충실한 채 성숙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거듭 자랑한다. “서구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인해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지만 정교회는 초기 교회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은 채 진실된 믿음(복음) 전파에 치중해온 역사를 갖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정교회는 이같은 초기 교회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분쟁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국가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는 “그러나 같은 종파이면서도 분열을 재생산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성장과 신자 확보에 치중하지 않는 정교회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 [27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화려한 나전칠기, 내부에는 왕실에서만 사용했다는 주칠이 되어 있어 그 진가가 궁금하다. 과연 이 함은 언제 사용된 것이며, 어떤 것들을 담아 두었을까? 함 속에 담긴 놀라운 비밀이 공개된다. 혼례식에서 신부를 태우던 가마. 의뢰인이 결혼할 때 직접 탔다는 이 가마는 아기자기한 문양에 튼튼한 골격을 갖고 있다. 이 가마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최강! 울엄마〈사랑한다면 이들처럼?〉(KBS2 오전 8시55분) 은기의 사진을 던져버린 최훈. 은기는 또 한번 상처를 받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최강의 마음 또한 편치 않은데…. 은기는 마지막으로 최훈에게 영화티켓을 쥐어주며 나와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최훈은 최강에게 티켓을 넘겨주고, 아무것도 모른 채 상영관을 찾은 최강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은기를 보고 몹시 당황한다.●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97년 러시아 볼고그라드 지역에서 태어난 소년. 그는 3살이 되기도 전에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능력을 보였다. 나라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면 소년은 이유 없이 몸이 아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소년은 그날 이후 지구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 소년이 갖고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연개소문(SBS 오후 8시45분) 연개소문은 ‘새 고구려가 생긴다.’,‘가까운 곳에서 싹이 튼다.’는 조실 어른의 예언을 상기한다. 그는 마중 나온 아들 및 수하들에게 얼굴을 붉히는 등 언짢아하며 소임을 다하지 않고 임지를 벗어나 마중 나온 것을 크게 꾸짖는다. 죽리는 그동안 백제와 신라, 당나라의 정세를 보고한다. 한편, 백제 의자왕은 며칠 동안 꽃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민지의 꿈은 무용 강사가 되는 것. 제대로 춤을 배워본 적이 없는 민지는 인터넷으로 혼자 춤을 익힌다. 진도읍내에서는 무용학원을 찾기도 힘들 뿐더러 설사 무용학원이 있다 해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론 학원에 다닐 엄두조차 못 내기 때문이다. 이에 공부방의 큰엄마 김혜영씨가 직접 나서서 민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펼친다.●인사이드 월드(해일이 남긴 상처)(YTN 오전 8시30분) 2004년 12월, 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로 20만명 이상이 죽고 150만명이 집이 부서지는 등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 이후 재해 지역에서는 대규모 재건 사업이 펼쳐졌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