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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의 여성지

    ◎수리학으로 풀어본 새해운수등 특집/세 할머니의 1백세 장수건강론 흥미/퀸 새해의 첫날은 보다 짜임새 있고 지혜롭게 한해를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기는 시기.알찬 정보를 가득 실은 여성지들을 통해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도있다. 서울신문사 발행 「퀸」은 새해맞이 특별 기획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맞벌이 주부에게 최대의 고민거리인 탁아문제해결에 각별한 관심을보여온 김옥숙여사의 인터뷰기사를 실었다. 유명 정치인들이 정초에 찾는 저국 유명역술인 총집합,예친도 실각하고 5년안에 한반도 통일 이뤄진다는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김학의 신년 대예언,수리학으로 풀어본 새해 운수등을 신년특집으로 다루었다.또다른 신년생활특집으로 한복 바로 입는 법부터 절하기,차 마시는법등 나들이가 많은 정월의 매너를 소개했다.영락교회 무료병동에서 처절하게 투병중인 차지철 전경호실장의 어머니,설악산 대청봉을 단숨에 오르내리는 세 할머니의 1백세 장수 건강론기사도 흥미를 끈다. 신세대 여성지「오픈」은 전화설문조사를 통해대권도전설이 나도는 정주영·김동길씨의 대통령 출마에 대해 20∼30대의 여성들의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봤다.신뢰도에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이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백15명)의 60·8%가「둘 다 지지할생각이 없다」고 응답,이들의 정계진출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 했다.두 사람에 대한 지지도를 비교했을때는 김동길씨 (27%)가 정주영씨(12·2%)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여성지 「젊은엄마」는 집중진단으로 미래의 주인공들에 대한 조기교육은 과연어떠것이여야 하며 여떻게 실시돼야 하는지를 전문가와 젊은 엄마들의 의견을 들었다.책속 보너스로 아이의 평생운을 결정하는 좋은 이름 짓는 법을 소개한다. 「행복이 가득한 집」은 새 기획물 「이 땅의 사람들이 좋다」를 시작하면서 강릉 현지취재로 그곳의 문화·인물·음식·가볼만한 곳을 두루 안내하고 있다.또 인테리어아이디어로 질박한 느낌한 느낌의 토분을 이용한 현대적 감각의 실내 꾸미는법,작은 소품 하나로 실내 풍경을 바꾸는 법을 실었다.
  • 외언내언

    신정연휴가 끝나기도 무섭게 시작된 국제정치의 첫 무대가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다.부시미국대통령의 아시아순방과 한미정상회담이 세계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부시는 세계정상국의 정상이다.그의 92년 정치·외교시동이 서울에서 걸리고 있는 것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92년의 세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분주해질 수밖에 없을 것같다는 생각을 한다.◆91년말을 고비로 남북화해와 공존의 기틀은 마련되었다.잘 지켜지고 실천만 되면 92년은 「한반도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남북통일은 「밤도둑처럼 예고없이 어느날 밤 갑자기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예언도 있다.통일까지는 아직 길은 멀어보이지만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것 같다.◆5일자 미워싱턴 포스트지의 한반도 전망기사는 새해 벽두의 우리를 고무시킨다.통일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하버드대 아시아문제전문가인 에버스타트는 「한반도가 벽을 허물면」이라는 글에서 독일에 비해 어려움은 많지만 이 도전만 극복하면 「적대와 분단은 마침내 공동의 번영에자리를 양보할 것」이며 「통일한국은 지역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4천3백만의 남한과 2천1백만의 북한을 합치면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인구가 많은 세계14위의 인구대국이 된다는 것.총생산은 세계12위.북한의 무역은 보잘것 없으나 한국은 세계11위의 수출국이요 10위의 수입국이라는 것.이것이 그냥 합쳐도 지역강대국이 되기는 간단하다는 이야기다.◆통일만 되면 한반도가 지역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다.북쪽엔 세계 제1의 인구대국과 자원대국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경제·기술·자본대국과 이웃하고 있다.조선말기엔 비극의 조건이었지만 내일의 통일한반도엔 비약의 환경일 수 있다.「21세기의 중심국가」가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희망을 갖자.
  • 화산폭발·태풍… 수십만 인명피해(대변환 지구촌’91:5.끝)

    91년 한햇동안 지구촌 인류가 겪은 각종 자연재해의 참화는 엄청났다.세계 도처에서 화산·지진·태풍·폭우·한파·폭염 등 천재지변이 잇따라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대환란의 7년」의 서막이 시작된게 아니냐는 우려를 고조시켰다. 6월들어 1주일사이에 필리핀·일본·인도 등지에서 일제히 발생한 화산폭발은 인류에게 「휴화산 부활」의 공포를 안겨줬다. 6백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필리핀의 피나투보화산은 수십차례나 폭발,인근 3개성을 화산재로 완전히 뒤덮으며 수도 마닐라국제공항을 일시폐쇄시켰고 미국의 아시아전략거점인 클라크공군기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일본 운젠(운선)화산도 2백년만에 분화를 재개,39명의 인명을 앗으면서 전일본열도를 화산과 지진의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다. 중국에서는 1세기만의 최대폭우가 대륙을 휩쓸어 사망자 2천여명,수재민수 1억1천4백만명,경제손실 수십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재앙을 초래,야심찬 경제부흥계획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런가하면 방글라데시는 연안도서와 인구밀집 해안지대를 강타한 태풍으로무려 22만5천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5억달러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이와함께 필리핀에서는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휘몰아쳐 사망·실종 7천명,이재민 70만명 발생등 화산피해의 상처위에 수마까지 겹쳐졌다. 그외에 환태평양화산대지역의 잇따른 강진,서유럽의 기록적 한파,칠레 아타카타사막의 난데없는 폭우,파키스탄의 섭씨50도가 넘는 폭염등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91년은 인간이 자연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다시한번 확인해준 한해였다.
  • “「소련 74년」이 남긴건 굶주림 뿐”(특파원수첩)

    ◎주민들,이념의 공백속 불확실한 미래에 초조 『고르비가 물러가고 소련이 없어지고 옐친이 부상하고…,다음은 어떤 차례이지요』 25일 하오TV를 통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사임연설을 지켜보던 블라디미르 쿨라긴씨(45·블라디보스토크지기자)는 마치 퀴즈게임하듯 기자에게 반문한다.담담한 그의 말씨가 나타내주듯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벌써 10일째 휘발유 판매가 중단돼 자동차들은 발이 묶였고 빵 한조각을 사려면 영하30도의 추위속에 새벽3시부터 빵가게 앞에 긴 줄을 서야하는 마당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떠나든 국민들의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는 국민들은 오로지 어떻게 이 겨울을 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 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86년 고르비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했던 시영빈관은 하룻밤 1백2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을 재워주는 호텔로 둔갑해 소련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때 고르비를 시중들던 여종업원들은 달러를 갖고와 거들먹거리는 자본주의나라 비즈니스맨들의 비위를 맞추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난 74년간 자국민들에게는 억압과 공포의 절대지배자였고 서방세계에는 막강한 핵무기로 무장한 「예측불능의」 위험한 상대였던 소련의 몰락이 갖는 의미는 크다. 소련의 소멸은 무엇보다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던 공산주의이념과 그에 입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전몰락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는 그 체제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지난 한 세대 동안의 동서대결체제가 명실상부하게 종언을 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소련의 붕괴는 이데올로기면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우열을 확연하게 가려내준 역사적 이벤트임에 틀림없다.전통적 의미에서 이념대결시대는 이제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외도 빈부의 격차도 없고 그리고 눈물 없고 착취 없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의 약속이 소련국민들에게 남긴 것은 기아와 눈물 뿐이었다』 이 대목을 얘기하는 쿨라긴씨의 목소리는 자못 흥분되었다.자본주의는 자체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카를마르크스의 「위대한 예언」은 빗나갔고 오히려 정반대로 사회주의가 내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그 막을 내렸다고 그는 단정했다. 물론 앞으로 사회주의가 물러난 과거의 소련땅에서 자본주의가 쉽게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소련국민 대부분이 지난 70년동안 사회주의 외에 어떤 이념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사회주의가 사라진 이념의 공백상태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로 대표되는 슬라브민족주의가 당분간은 이들을 묶어주는 큰 유대역할을 할 것이고 여타 군소 공화국들도 나름대로 국가의 결속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그 테두리 안에서 민족간 갈등과 경제난이 어우려져 혼란도 가중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새로운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긴장된 양자대결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소멸은 나머지 한쪽에도 필시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그 변화의 모티브는 「대결」 「완승」 「패배」「공멸」등과 같은 과거세대의 수식어가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한 평화의 장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과거 냉전기간동안 소위 「공포의 균형」관계를 유지해왔던 소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러시아를 소련의 상속자로 신속히 인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도 자신들의 일차적인 과제가 구소련땅에서 일어나는 불안정,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같다. 과거엔 소련의 강대화가 서방세계의 위협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서방은 소련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련의 상속자가 된 러시아가 언제쯤 다시 기력을 회복하게 될지 또 어떤 성격의 국가로 등장할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대적인 산업국가로서의 국가경영기법을 도입해 재건에 나설 경우 그 장래가 크게 어둡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 쿨라긴씨는 조국의 엄청난 변혁을 담담하게 맞으면서도 소련의 몰락은 한 세대동안 지속돼온 반목과 갈등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인류에게 「공존의 장」을 만들어갈 호기를 마련해준 『역사적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자의 견해에는 쉽게 동의를 표했다.
  • 쉬운 「입시문제」의 문제(사설)

    대학마다 합격선이 유례 없는 상승행진을 하고 있다.이와같은 현상은 교육당국이 대학입시 관리방침을 엘리트교육체제에 두지 않고 대중교육단계로 변경해간다는 의지의 표출인 듯하다.그렇게 함으로써 고교교육의 정상화에 도움을 주고 과외에 대한 기대를 줄여 과열화로 치닫는 과외욕구를 숨죽이게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출제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목적과 명분이 교육적으로 충분히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이의가 없다는 것을 우선 밝혀둔다.다만 대학입시문제가 「쉬원진다」는 것만으로 명쾌한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학입시는 기본적으로 대학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수학능력을 판별하는데 있다.또한 대학별로는 가능한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해주는데도 목적이 있다.「대학교육」의 목표를 「대중교육단계」로 전환한다는 국가의 의지에만 충족하는 고사만으로는 모든 대학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될 우려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난이도의 편차가 너무 심해서 정답률이 낮은 것의 부작용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낳고 고등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지 못하며 따라서 망국적인 과외풍조를 낳는 원인이 된다는 말에 일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우선 절대경쟁률이 치열해서 쉽건 어렵건 과외는 해야겠다는 계층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단지 과외의 양상이 변할 뿐 그 수요는 별로 줄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덮어놓고 쉬운 문제가 아니라 학생능력에 따라 변별력이 있는 문제를 개발하는 일이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학력고사가 국·영·수를 중심으로 어렵게 출제되어 이 과목을 아주 포기하는 학생들이 생길 수도 있다면,이런 과목의 의미를 약화시켜 암기과목으로만 선별이 좌우되는 경우의 부작용도 걱정해야 한다.선발이 있는한 정당한 경쟁은 따르게 마련이므로 가장 좋은 선발을 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이 따르도록 노력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입시고사가 국·영·수 중심으로 난이도를 경영하는 것은 이 과목들이 지적 능력을 판별하는 척도이기도 하거니와 수학능력의 정도를 변별해주는 예언능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국·영·수로 승부가 나기 어려워지면 여타의 과목으로 과외대상과목이 확대되어 학문적 축적의 의미도 없는 과목과 씨름하느라고 수험생들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다만 어느 경우든 출제의 기준이 일관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부하고 싶다.「해거리」현상으로 들쭉날쭉한 난이도현상은 수험생으로하여금 극심한 혼란을 겪게 하고 마침내는 입시상인들의 「점치기」가 수험생과 학부모를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현상도 빚어왔다.그런일이 더는 거듭되지 말아야 한다. 대학별로 자율화 폭이 확대되어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학생을 더많이 뽑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쉬운 출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길이기도 하다.평가방법의 지속적인 개발과 함께 학생선발기능의 자율화도 서둘러져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프랑스 발루아왕조의 루이 11세앞에 불길한 예언을 하여 혹세무민하는 자가 끌려왔다. 왕은 그를 사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묻는다. 『넌 사람운수를 잘 아는 모양인데 네 운수도 알겠지. 몇년이나 더 살 것 같으냐』『잘은 모릅니다만 폐하가 돌아가시기 3일전에 죽는다는 것만 압니다』 ◆이 말에 루이 11세는 사형을 중지시킨다. 그 사람의 말이 꼭 옳다고 믿어서 중시켰던 것일까. 왕은 이 자가 살기 위하여 빈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엉터리 점쟁이 말이라곤 해도 빈총도 안맞느니만은 못한 법. 3일후 제가 죽을 짓을 왜 하겠는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죽음이 두려워서 백전노장도 도망을 친다. 붙잡힌 몸이 되어서는 한목숨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죽음이 두려워서 비굴해진다. 거짓을 지껄이고 배신을 한다. 불의를 보면서도 입을 막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였던 것. 하지만 대의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삶도 적지 않다. 그런 의인은 역사에도 있고 현실에도 있다. 며칠전 애기와 함께 산화한 이상희 대위도 그런 사람이다. ◆견위수명이란 말이 「논어」(헌문편)에 나온다. 위기에 처하면 사람들은 제가 해야할일 버리고 달아는 경향이지만 그러지말고 목숨을 내던지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목숨 아까운 것은 인지상정인 것을. 그런데 견위수명했던 이대위, 비행기가 마을로 떨어지면 피해가 클 것을 염려하여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민가추락을 막은 끝에 자신은 갔다. 숙연해지는 죽음이다. ◆초등·중등·고등비행 훈련과정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했다는 이대위. 우리는 훌륭한 조종사 하나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악스런 이 사회에 고귀한 의를 심은 것. 그 뜻이 결코 「훌륭한 조종사」에 못지않다 할 것이다.
  • 김춘수 그리고 박노해(송정숙칼럼)

    지난주의 한 TV에 김춘수 시인이 등장했었다.가파르게 수척한 칠순의 시인이 구사하는 남도사투리는 알아듣기가 매우 거북했다.그렇기는 하나 그 말에 담긴 진률한 목소리는 TV같은데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숨을 죽이고 귀기울이며 들어야 했다. 육신의 고통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의 체험담은 오늘의 시인이 지닌 그 이기적인 정직성을 이해하게 했고 그중의 한 대목인 「3개의 빵」에 대한 삽화는 오래오래 지워지지않을 부조로 새겨진 느낌이 들었다. 일제하의 일본유학시절 관헌의 끄나풀을 못알아본 실수로 그는 감옥에 간 적이 있다.거기서 거물급 좌익사상가인 일인 노교수와 잠깐 부딪는다.굶주린 탓에 피골이 상접한 대학생 정치범 앞에서 「김이 무럭무럭나는 빵을 3개씩이나」차입받고 앉았던 노교수는 그 빵에 시선이 못박힌채 신음하며 마주앉아 있는 젊은이를 묵살한채 혼자서 독식을 해버렸다. 그 노교수가 출옥한 뒤 「감옥까지 다녀온 경력」을 과시하며 펼쳐갔을 「사상운동」을 생각하며 시인은 인간성의 한계앞에스스로 부끄러워진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예수만이라도,인간의 자존심을 위해 예수만이라도 『있어 줘야겠다』고 말한다.그 말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날의 시인의 고백중 관심을 끈 것은 그의 「80년도의 행적」이다.그는 이른바 5공시대에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평소에 증류수를 느끼게 하는 맑음과 순수함을 풍기던 시인의 이 느닷없는 「정치리환」은 당시의 문단을 놀래준 이변이고 당혹이었다.그래서였던지 「신세력」과의 피치못할 관계설이 소문으로 떠돌았었다.의리로도 친분으로도 거역하지 못할 「관계」때문에 거절이 허락되지 않았다는,그 소문으로 사람들은 양해를 자청한 셈이다. 그러나 TV에서의 고백에 의하면 그의 「의원직」은 강압도,피치못할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60살이던 그때의 내게,이상하게도 그일은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이다.정치라는 것이 무엇하는 것인지 한번 경험해보고도 싶었고 문화예술,교육같은 분야에서 도움이 되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도 솔깃해지더라는 것이다.그의 그 무섭도록 이기적인 정직성이 토해놓는 이 고백이,신뢰감도 주고 위안도 준다.호기심이나 솔깃함이 짓밟혀 결국은 『괜히 들어온게 아닌가』하는 회의를 부르는 것으로 끝났지만,그것 역시 정치적 역량의 문제였음을 체험한 그로서는 「한 체험의 소득」을 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서는 성숙한 해답같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이제는 우리도 이만한 해답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위선에 찬 궁한 답이나 일차방정식같은 우답,가짜대답들에는 염증이 났으니까. 자기와 반대되는 뜻을 가진 시인,그러니까 이른바 참여파의 이념시인에 대해서도 명징한 답을 그는 가지고 있다.그런 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다만 그 시인들이 「자신들것만 시다」라며 다른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김춘수시인은 최근의 박노해시인을 생각나게 했다.「얼굴없는 노동자시인」으로 80년대의 일부를 영웅처럼 차지했던 시인이다.그는 지금 영어의 몸이다. 그가 최근 법정에 서서 「거대한 꿈의 환상에서 깨어났음」을 고백했다.1차공판때인 몇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주의」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정정당당」을 최대의 자존심으로 삼았던 참여파 시인이다. 그런 그가 『무거운 침묵속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지켜보았다』고 말했다.또 「자본주의 체제가 승리했음」을,「경쟁을 통한 자기성취와 끊임없는 자기갱신이 승리의 요인임」을 인정했다.그러면서 그는 「소월」과 「미당」같은 순수파 시인들의 작품을 옥중에서 읽은 소감도 피력했다.『국어를 갈고 닦은 그들의 노력을 평가한다』는 것이다.동양적 예의나 겸손의 미덕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버릇없는 「평가」이긴 하다.거인같은 민족시인들을 국어의 갈고닦음 속에 축소시켜버리려는 듯한 맹랑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구사한 어휘가 지닌 본래의 뜻만 살려도 시인들의 크기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다만 김춘수시인의 유감처럼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것을 「그것도 기다」라고 인정한 박노해의 그 변화가 놀랍다.그 변화의 성숙성때문에 우리는 『자유와 인권,민주가 가득한 사회를 바라며 혁명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앞으로도)생겨난다』는 그의 예언도 미소로 수긍할수 있는 것이다.또한 「겨울나무처럼 잎을 떨구고 추위를 견디고 있는」박노해시인의 겨울에 연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홍수가 남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시인들은 진주를 키운다.김춘수,박노해들 말고도 우리시대의 고통을 품고 있는 진주조개같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우리시대에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 “대권 주자 93년 가야 결정”/역술가 김학씨 이색주장(조약돌)

    ○…지난 76년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에 오는 「91년 세계평화가 온다」고 예언했던 역술가 김학씨(59)가 28일 강남구 청담동 프리마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나라의 대권주자는 내년에 결정되지 않고 93년초에야 분명이 드러날 것』이라고 이색적인 주장을 했다. 김씨는 또 『김일성이 죽을 경우 남북한은 5년안에 통일될 것』이라면서 『중국도 내년에 등소평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시장이 개방되고 민주화작업이 진척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년에는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닥쳐오고 소련의 연방제 해체로 옐친과 고르비가 동시에 실각할 것』이라고 예언.
  • “북한의 급격붕괴 안바라/한국,흡수통일도 않을것”

    ◎노 대통령,독 시사지 회견 【베를린=이기백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에 위협의 존재로 비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북한 대내문제에 관한 모든 간섭을 포기하고 공산주의 체제에 위협이 될 조치는 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독일의 유력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가 31일 보도했다. 노대통령은 지난 22일 방한한 디 차이트지 크리슈토프 베르트람 편집위원과의 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북한이 급격히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변신을 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독일과 같은 흡수에 의한 통일방식은 북한을 극히 의심에 차게 만들 것』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고 이 주간지는 전했다. 노대통령은 또 『북한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스스로 사회개방은 하지 않은채 남북간에 인적 접촉을 할 경우 자신의 체제 안정성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관해 설명했다고 디 차이트는 보도했다. 이 기사는 특히 한국의 예언가들이 통일이 되는데는 5∼1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하고 『독일의 통일모델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위협적』이라면서 『38선의 장벽이 갑자기 걷혀질 경우 북한은 동독지도부가 체험했던 것 같은 붕괴를 두려워하고 있고 한국측은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외언내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계에서는 이세상이 언제쯤 끝날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지구의 종말을 날짜까지 예언한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했다.이른바 시한부 종말론.2세기중반 초대교회때의 몬티누스가 시한부종말론의 선두주자이고 12세기의 요아힘피오레,16세기의 재세례파,19세기의 윌리엄 밀러,20세기의 찰스 다이어등이 그뒤를 이었다.◆시한부종말론은 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세계대전등 당시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1950년,1975년등 몇차례에 걸쳐 소동을 일으켰다.그러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종말론」은 성서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날과 그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태복음 24장36절).따라서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다.그런데도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예언한다는 것은 반성서적이다.◆종말론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의 하나이지만 시한부 종말론은 교리의 범위를 벗어난 이단의 사설이란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또 종말론은 하나님의 심판 보다는 「항상 깨어있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보다 큰뜻을 두고있다.성서의 가르침은 거의가 비유로 되어 있는데 종말론도 비유를 통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에 또다시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떨고있다.『92년10월28일 예수가 재림하시고 이때 휴거(휴거·공중에 들리어 올라감)의 영광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고 외치는 일부 선교회 회원들.사람이 많이 모이는 역주변이나 도심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참으로 민망스러운 세태의 한단면.신앙의 자유도 좋지만 이런일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제되어야 한다.
  • 요구르트 사건의 개가(사설)

    요구르트에 독을 넣고 기업주를 협박하며 돈을 울거내려던 범인들이 잡혔다.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불쾌하고 불안한 우려를 던지며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남녀노소 할것 없이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폭넓은 즉석음료를 범행매개체로 삼았기 때문에 독물피해를 예방할 방법이 없고 잇달아 예언된 피해가 일어났기 때문에 공포심이 확산되었다.다행히 28일만에 범인이 덜미잡혀 우선은 큰 걱정은 해소되었다. 음료나 제과업체를 상대로 하는 독극물 투입범죄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채 미제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불특정다수를 무작위로 인질로 삼으면서 정체를 숨기기가 쉬워서 여기저기 출몰하여 적극적인 수사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런 난점을 내포하고 있었던 「요구르트 사건」이 다행히도 범인을 잡아 비교적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이 사건의 해결은 수사팀들의 해결 능력이 잘 발휘되어 완벽하게 개가를 올린 결과여서 더욱 개운한 느낌이다.하려고만 들면 우리의 수사능력도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준 셈이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었던 또하나 중요한 점은 해당업체의 의지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명한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이다.시시각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제조업체로서는 사건이 표면화하여 확대되는 동안 입을 타격을 줄이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범인과 협상하거나 은밀한 내부거래로 은폐시키기도 한다. 그런 약점을 노려서 같은 범죄가 자꾸만 모방되어가는 것이다.그와는 반대로 세가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범인이 잠적해 버려서 그대로 미궁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범죄가 항용 거치는 과정들을 피해회사와 경찰이 합심하여 놓치지 않고 추적한 결과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포착된 것이다. 붙잡힌 범인은 범인이 갖출 요건을 다 갖추고 있다.여러번 거듭된 전과가 있고 그리고 상습 도박으로 막다른 길에 이른 별로 하는일 없이 먹고사는 사람이다.지능을 나쁜 일로만 동원하여 일 안하고 목돈 벌 궁리에만 차있는 젊은이다.사기라도 쳐서한꺼번에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이 의외로 만연되어 자고새면 악행의 궁리만 해대는 상당수의 사람들이다.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노름하고 놀고 먹으며 사회악을 확산시키고 다니는 것이다.일하기 싫은 풍조가 범죄사회를 가속시키는 것도 그런 순서를 밟게 마련이다.인질사건이나 독극물사건같은,죄질이 악질이고 가증스런 범죄는 반드시 검거해야만 이런 종류의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을수가 있다.요구르트 사건을 해결한 것은 같은 종류의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아나가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처럼 판매원이 입회하지 않는 유통구조가 급속히 늘어나는 우리의 주변 또한 상당한 주의력을 가지고 비슷한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도록 노력 해야할 것이다.
  • 외언내언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고도 고르디온시 신전의 수레.끈으로 기둥에 단단히 매어져있었다.이 매어진 매듭을 푼 자는 세계의 왕이 된다는 예언이 있어 왔지만 아무도 못풀었다.동정중 이곳에 이른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대왕)는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린다.그는 유럽∼아시아에 걸치는 지배자가 된다.◆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모셔 윤리학·정치학 강의를 받고 싸움터에서도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었던 사람이다.20세에 왕위를 이어받아 그리스·시리아·이집트 등을 점령하고 페르시아·인도도 습복시킨 불세출의 영웅.화살과 칼 앞에 무적이었던 그도 말라리아 모기에 물려 열병으로 죽는다.아까운 나이 32세에.◆3대륙에 걸치는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였건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을 고비로 하여 쇠락의 길을 걷는다.후계자 분쟁이 분열을 재촉했던 것.더구나 3차에 걸친 마케도니아 전쟁으로 로마한테 패하고는 그 촉주로.옛날의 영화는 한때.그 후로도 고난의 역정을 거친 끝에 20세기 들어 발칸전쟁의 결과로 영토는 그리스·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에 속하게 된다.◆내분이 일고 있는 유고슬라비아 연방.8일에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도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의 지지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이은 또하나의 독립선언.이는 유고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불가리아 등과도 관계가 된다.19세기 이후 대두되어온 이른바 「마케도니아 문제」의 재점화이기 때문.그래서 그리스 정부에서는 이미 반대의사를 표명한바 있다.◆소련도 그렇고 유고도 그렇고.옛공산권의 억눌렸던 용수철 퉁기는 소리들이다.지구촌은 얼마동안 민족문제의 홍역을 치러야 할듯 싶다.
  • “공산주의 사망” 공식 조종/소 최고회의의 「당활동 정지」 의미

    ◎「계급없는 사회」 구현 74년 실험 실패 확인/동구공당 몰락이 종주국에 “부머랭 효과” 공산주의의 장송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지난 74년간의 공산당지배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소련의 연방최고회의는 29일 공산당의 활동을 소련전역에서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최고회의는 공산당의 주도세력이 지난 19일 발생한 쿠데타의 모의및 실행에 연계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공산당 활동의 정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연방최고회의가 공산당해체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소연방 최고재판소가 공산당 활동을 종식시킬지 여부를 결정할수 있도록 자료들을 제출하도록 명시했다고 보도,공산당의 공식해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소련 공산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했던 보수파의 쿠데타로 스스로 종말을 재촉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소련시민들의 자유의지가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시민저항이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공산당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당을 정부및 의회기구와 분리시키는 개혁을 단행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따라 89년 소련의 최고 입법기관인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가 소련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경선에 의해 실시됐다.다음해인 90년에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스스로 공산당의 권력독점 포기를 선언했으며 지난달에는 당중앙위 전체회의가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는 새 당강령을 채택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희망했다.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면서도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했다.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불행히」도 사회주의에 대한 소련인들의 환상이 한낱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과 함께 등장한 소련 공산주의의 74년간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그러나 공산주의의 등장은 화려했었다.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해방과 계급없는 풍요로운 사회,이른바 「지상낙원」의 건설을 선언했었다. 공산주의의 환상은 한때 지식인들의 희망이었다.그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자체 모순을 일으킬때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그러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몰락하기 전 먼저 스스로 종언을 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공산주의는 이제 무너지는 레닌동상과 함께 희미한 「전설」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소련 한나라의 국가이념이나 체제 붕괴 이상의 의미가 있다.이는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할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개념의 붕괴를 의미하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인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산주의의 몰락은 자체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카터 전미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박사는 『소련의 변화는 추악한 역사의 한 장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부시 미대통령은 『소련 공산당의 죽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대소긴급지원을 선언했다.강대국간의 경쟁은 숙명적이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화된 소련은 미국과의 화해의 시대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새로운 시작은 어느 한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의 힘에 의해 창출되고 있다.역사의 한 발전단계가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혁명」의 와중에 있는 모스크바거리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3

    ◎쓰러진 레닌동상위서 새 역사 기록/「고르비의 6년」은 공산틀 안에서의 개혁/“진짜 개혁은 이제부터” 시민들 이구동성 소련전역에서 때아닌 「우상파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발트해 연안 공화국에서 시작한 이 우상파괴는 키르기스탄·몰다비아·백러시아공화국·레닌그라드를 거쳐 마침내 수도 모스크바에까지 도달했다. 모스크바에서는 24,25일 제르진스키와 스베르들로프등 10월 혁명동지들의 동상들이 잇따라 제거됐다.모스크바시민들의 관심은 이제 「옥타브리스카야 광장」(10월 혁명광장)에 버티고 서있는 무게 50t이 넘는 레닌입상이 언제쯤 끌어내려질 것인가에 있다.그에 의해 소련의 역사가 창조되어 왔지만 이제 다시 시민혁명의 피플파워는 공산독재 소련의 역사를 정지시키려 하고 있다.25일 잠에도 자정 전후해서 철거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아 10월광장은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모여든 시민·취재진들로 붐볐다. 고르바초프가 쿠데타군들에 의해 억류됐다가 풀려난 지난 22일을 이곳 사람들은 소련에서 진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날로 부르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지난 6년간 추진해온 개혁은 사회주의의 틀내에서의 「한계내 개혁」이었다.즉 사회주의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이름하에 자행된 70여년의 공산당 일당 독재는 이 사회에 일체의 기득권 포기를 거부하는 「공산당 마피아」를 키워놓았다.이번 쿠데타는 이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실증적 교훈이었다.모스크바에서 레닌 동상이 사라지는 것도 이제는 시간문제가 됐다. 1960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 수렴논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소련은 이를 제국주의 세력이 소련을 망치려고 만들어낸 음모라고 흥분했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소련에서 사회주의 포기가 시작됨으로써 수렴논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제3의 힘」으로 불리는 이 지구촌 공통의 문제들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은 마지막 장애였다. 한 소련학자는 소련의 역사를 러시아 중심주의와 서구주의가 주기적으로 반복된 것으로 설명한다.다시 말하면 폐쇄와 개방의 반복이고 이 반복은 볼셰비키 혁명이후에도 계속됐다.이번에 공산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지 않으면 제2·제3의 쿠데타 기도가 반드시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진짜 혁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발트해 연안 3국과 몰다비아 등이 2차대전을 전후해 만들어진 국경선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독립이 허용되어야 비로소 전후처리문제가 매듭지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럴 경우 유럽은 국경선 변경문제를 놓고 일대 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유고에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이미 독립을 선언했고 독일에서도 폴란드에게 넘어간 영토반환문제가 다시 제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는 밑바닥을 헤매고있고 본격 개혁이 시작되면 혼란과 부작용은 더 심해질 것이다.올 겨울이 고비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오고있다.실제로 기아의 공포가 있다.「노동자가 천국」인 나라에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3백루블,배추 한포기 값이 1백루블이다.어떻게 살아가는지 기적같이 느껴질 뿐이다.힘빠진 고르비가 이 고비를 넘길수 있을것 같지가 않다. 당분간 국제질서는 미국과 통합EC가 주도하리란 견해가 유력하다.1992년 말 EC통합을 내걸고 유럽국가들은 옛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있다.마르크스의 고전적 견해를 빌리면 앞으로 거대 통합EC와 미국사이에 제국주의적 시장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그러나 미래학자들은 계속되는 기술개발로 경제면에서는 양자간에 협조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있다. 레닌이 『임시정부는 붕괴됐다.토지 사유제의 철폐,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그리고 소비에트정부 수립은 보장됐다』고 외친 것이 1917년.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시내에 볼셰비키 혁명완수를 다짐하며 10월 광장에 초대형 레닌 동상을 세운게 1985년 11월이었다.이 두번의 길고 짧은 시행착오끝에 소련은 마침내 볼셰비키 혁명의 청산작업에 들어갔다.「눈물없고 착취없는」노동자 천국의 약속이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눈물뿐이었다. 모스크바시내 한 곳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마르크스의 흉상이 있다.25일 누군가가 그 문구밑에 붉은 페인트로 이런 낙서를 해놓았다.『나를 용서하라』이제 역사는 그 낙서자에 의해 새로 쓰여질것이다.
  • 제목과 내용이 다른 나라­중국/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중국 광동성 심수는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조금 잘못 알려졌다.우선 「심천」이 아니라 「심수」이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센첸」으로 발음한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수를 흔히들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창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광동성 저아래 변두리 한촌이었던 심수는 11년전에 중국 자본주의실험창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 도시」로 지정,개발됐다.홍콩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심수는 이제 홍콩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가 돼있다. 그렇게 볼때 중국 자본주의 실험창구라면 오히려 그 수도 북경쪽이 더 가깝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중국대륙을 여행한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은 중국이란 참으로 크고 무섭고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었다.사회주의 중국이 표방하는 제목과 그 사람들이 연출해내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제목과 내용이 아주 다른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세계사적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근1세기전 새로운 세계관으로 등장하여 혁명적변혁을 이룩했던 마르크시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예언하며 자기비판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독화살이 이제 그 자신에 되돌아가 꽂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자아비판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는 끝났다.그로써 동유럽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제도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종막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인식에 혼동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그게 바로 오늘의 중국이다.제목은 사회주의인데 내용은 무척 자본주의적이다.아니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인정하는 공식문서는 한장도 없다.오히려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주자파」는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이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주자파에 대해 모택동이 벌였던 지각변동과도 같았던 대량 말살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등력군 등 중국공산당내 극좌이론가들은 그 주자파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제2의 문화혁명을 발동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과학원의 미래학자 하신은 보다 더 보수적이다.하의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자본주의 선진열강은 중국이 그 능력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이내에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중국은 이 신제국주의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공식이론과 「아래」의 움직임이 전혀 딴판인게 중국이다.그들 극좌이론가들과는 달리 이붕을 비롯한 전기운 추가화등 당정고위층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손님들과 악수하고 8차 5개년계획을 직접 브리핑하며 중국에 투자하는 나라는 무조건 친구 나라라며 파안대소한다. 북경의 번화가나 천안문 광장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왕부정 대가의 수없는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들이 지천으로 흘러넘치며 사람들 또한 물결친다.호텔·식당·백화점·극장들에다 자영상점들도 즐비하고 멋쟁이 아가씨들도 많다.저녁시간 북경 TV를 보노라면 한프로그램 앞뒤에 끼여드는 10여가지의 상품선전 광고에 눈이 부실지경이다.개방 중국 수도의한면이다.물론 상해는 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 심수야말로 오늘날 중국의 이중구조­제목과 내용이 다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심수는 잠안자는 도시다.새벽1시에도 중심가 화문로일대는 대낮같이 밝다.줄지어 늘어선 「가랍OK」(가라오케),무도장·가무청(댄스홀)·야총회(나이트클럽)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불야성을 이룬다.뒷골목들도 이에 지지않는다. 주자의 도시 심수에는 시인민정부(시청)청사가 둘이 있다.제1청사는 정치·행정부서이고 제2청사는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기획·투자유치와 집행부서가 들어있다.심수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곳이다. 경제발전과 개발의 모든것을 실무차원에서 지휘하는 「심수시 투자촉진중심」의 부처장인 여국추씨와 심수시 경제개발국 부국장인 이청삼씨는 그래서 그런지 외모부터가 퍽이나 「자본주의적」이다.그들은 모두 놀랍게도 명확한 어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효용성을 지지했고 제품가격결정의 자율성과 경쟁성을 강조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이증자형식으로 참여한 화리전자유한공사의 사장 고래지씨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제의 시장성과 가격결정의 자율성및 경쟁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에서 오는 기업의 비능률을 거리낌없이 비판한다.고씨는 그러면서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재의 고충을 말한다. 천안문광장 건너편 정면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그 바로 뒤쪽 일직선상에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화국봉이 2억원이나 되는 국비를 투자해 지은 이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는 오성공기로 하반신이 둘러싸인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공개되고 있다.이 기념관을 참배코자 수십만의 중국인이 뙤약볕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주자」를 박해한 모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무언가 달라지고 보다 잘살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아버지인 모의 유해에 경배하고 숙연해지는 것이다.그들의 행태에 주자의 요소는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그것이 모순인가 아닌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과 우리의 위상등 지난 몇년의 흐름은 우리 북방정책의 당위,나아가 그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과 이해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인구 세계 제1의 중국이긴 하다.그렇다 해도 홍수 이재민 5천만명이라니 얼마나 큰 피해인가를 헤아릴 만하다.대한민국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 아닌가.사망자만도 1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근자의 천재지변은 어째 아시아 쪽으로 몰린다 싶은 느낌.일본의 운젠다케(운선악)화산 폭발에 이어 필리핀의 피나투보,인도의 프라데시주 캉그라인근의 산등이 불을 뿜었다.그 모두가 휴화산이었던 것.이와 관련하여 학자들은 환태평양 지대 6백여개 화산의 「요주의」를 경고하기도.그러나 한편에서는 우연한 일이지 연관성은 없다고도 말한다.◆화산 폭발만이 아니다.50도를 넘는 폭서가 인도·파키스탄을 뒤덮어 6백여명이 죽었다는 것이니 그 생지옥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그러고서 인도에는 다시 홍수까지.적잖은 인명을 잃었다.더욱 참담한 것이 방글라데시의 태풍 피해.좀 과장된 것인지는 몰라도 20만∼30만 명의 사망자에 이재민만 1천만이라지 않던가.가난한 나라에 닥친 불행의 설상가상.이 모든 재난은 지난 4월말 이후의 일이다.◆엊그제의 외신은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뉴질랜드 등지에서 강진이 일었음을 알린다.재앙은 아시아쪽에서만의 일은 아닌듯.지구촌은 인재에 겹친 천재에 신음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옛날 같았으면 12일에 있은 개기일식이 몰고온 재변들이라 했을지도 모르지만.어쨌거나 이런 자연의 재앙들을 보면서 신비주의에 탐닉한 사람들은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7년 환란」서막설을 강변하기도 한다.◆우리도 지금 장마철.남녘에 폭우를 쏟아 이미 큰 피해를 낸바 있다.이 주일에는 장마전선이 중부쪽으로 몰리리라는 예보.헤아리기 어려운게 하늘 뜻이 아니던가.더 큰 피해없이 이 장마철을 나야겠건만…
  • 노 대통령 후버연구소 연설(요지)

    ◎한·미,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공동노력/한국은 민주주의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 오늘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온 수많은 석학과 지도자를 배출한 스탠퍼드대학을 방문하고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에 빛나는 이곳 후버연구소에서 미국의 각계 지도자와 친구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은 큰 기쁨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인류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립과 유혈의 혁명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혁명입니다. 동중부유럽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행복의 희생을 강요해온 체제는 잇따라 붕괴되었습니다. 자유와 행복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한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초강대국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대결로부터 협력으로 그 관계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미래는 인류가 그 속에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며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살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많은 석학들의 예언이 있어왔습니다. 이를 상기할 필요도 없이 미래의 세계는 새로운 태평양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될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APEC)에 참가하고 있는 12개 국가에서만 유럽공동체의 2배가 넘는 세계 총생산의 50%가 창출되고 세계 교역의 40%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전후 이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이 지역 국가간에는 냉전시대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활발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강택민 총서기의 모스크바방문이 말하는 중소 관계,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말하는 일소 관계와 특히 북방정책의 성공에 따른 한소 관계의 진전 등이 그것입니다. 북한도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수교교섭을 벌이고 있으며 그들의 완강한 태도를 전환하여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소련·중국은 물론 몽고·베트남·북한에 이르는 사회주의경제국가들은 번영을 구가하는 태평양국가와의 교역,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시장경제국가와의 협력체제 안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의 세계를 눈앞에 보며 나는 태평양시대를 향한 협력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큰 방향으로 진전되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시아태평양지역에도 냉전체제의 대결을 종식하고 안정의 확고한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아시아태평양의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국가로서 그 역할을 감소할 경우 그 공백은 불안으로 메워질 것이며 그것은 또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긴장은 이 지역의 안정을 저해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의 협력증진을 위해서도 한반도의 냉전종식이 가속화되어야 합니다. 둘째 아시아태평양의 번영이 개방을 통한 교역과 경제협력의 증대를 통해 지속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이나 특정한 나라만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역내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와 경제력에 상응하여 서로의 시장을 개방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민족과 문화는 물론 경제구조와 발전단계가 서로 다른 이 지역 국가의 다양성을 조화하고 융합하는 협력을 촉진해나가야 합니다. 나는 이를 위해 모든 나라가 합치된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 지역 경제의 활력과 협력증대의 추세에 비추어 아시아태평양지역은 남북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세계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넷째 이제는 아시아태평양의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협력의 틀을 진전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역을 분할하는 소지역권의 형성은 보호무역 추세를 강화하거나 대립과 마찰의 소지를 넓힐 우려가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APEC)가 이 지역에서 공동번영을 실현하는 훌륭한 모체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강대국도,번영을 누리는 선진국도아닌 한국이 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겪어온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그 속에서 이룬 성취가 한국으로 하여금 변화하는 세계에서 참으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남북문제에 있어 한국은 최빈국의 단계에서 불과 한 세대의 기간에 역동적인 신흥산업국가를 이룩함으로써 가난한 개도국도 노력하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모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후 부흥을 이룩한 독일·일본과 달리 전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며 그나마 모든 것은 한국전쟁의 불길 속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세계가 서울올림픽을 통해 본 것은 전쟁이 몰고온 허기진 어린이와 피란민의 긴 행렬이 아니라 활력에 넘친 새로운 나라였습니다. 우리들의 성취는 더욱이 나라의 분단과 그로 인한 과중한 국방비의 부담 위에서 이룬 것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소중한 경험을 결코 우리의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우리의 이웃과 모든 개도국과 폭넓게 나누어 공동번영에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경제적 역량에 대한 자신감에 바탕한 북방정책은 한국 외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는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의 오랜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긍정적 시발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정책으로 태평양과 북방대륙을 잇는 길은 더욱 넓게 열렸으며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선한 숨결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나의 6·29선언 이래 한국은 지난 4년간 인권과 자유언론·자유선거와 삼권분립,다원적 민주주의의 이 모든 원칙을 실현하는 민주화를 급속히 진전시켜왔습니다. 이제 굳건한 국민적 합의의 바탕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올해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가 실시됨으로써 민주주의가 온전한 제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전후 독립을 쟁취한 나라로서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이지상에 드물 것입니다. 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언제나 미국이 곁에 있었다는 것을 한국국민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며 서로에 도움을 주는 긴밀한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나갈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의 동반자관계는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와 번영하는 태평양시대를 이루어나가는 데 중추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자유 속에 새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이상을 나누는 우리 두 나라는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로부터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세계로 함께 전진할 것입니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부활의 참뜻(사설)

    31일은 부활절. 26개 개신교단은 이날 새벽 서울 여의도광장을 비롯,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가졌고 가톨릭도 30일 자정을 기해 전국의 성당에서 일제히 부활절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던 그리스도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자 핵심. 부활절은 「죽음」이라는 인간최대의 파멸과 좌절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인간의 승리로 일치시키는 기독교계의 가장 뜻깊은 명절이다. 따라서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으며 때문에 부활은 패배와 승리,절망과 희망,슬픔과 기쁨,고통과 환희라는 인간사회의 상반된 모습이 늘 함께하는 속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인간구원의 교훈이다. 패배가 없는 곳에서의 승리는 가치가 없고 절망이 없는 곳에서의 희망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부활의 참된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을 잊어버린채 그리스도의 부활만을 기뻐한다면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부활의 참뜻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사회와 겨레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구원의 손길을 뻗고 있는가.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겉옷을 스스럼없이 벗어주고 있는가.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 국토의 넓이와 인구수에 비례해서 세계제일의 교세를 과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몇가지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성직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부활절이 되면 거창한 연합예배를 갖고 화려한 경축행사나 치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느낌이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는 교회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울 뿐이요,많은 신도와 엄청난 헌금을 뽐내는 대규모의 교회와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성직자는 경탄이나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과 지탄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재산을 모으는 데는 열심이면서 불우한 이웃에는 지극히 냉담한 성직자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예언자적 발언과 사도적 행동을 보여주는 참된 성직자도 적지않지만 그렇지않은 성직자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사회각계의 지도층도 부활의 참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대입부정·수서사건·페놀수질오염,그리고 늘어만가는 잔혹한 범죄 등으로 어진백성들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지도층과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이 먼저 「내탓이오」라고 통회하면서 아픔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부활의 정신으로 그릇된 사회풍토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참되고 깊은 뜻을 진솔한 마음으로 성찰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 알바니아 오늘 자유총선/5개 야당참가/46년 공산독재 몰락 가능성

    【티라나 UPI 로이터 연합】 동구권 최대의 빈국이며 폐쇄적인 공산통치 국가인 알바니아는 지난 46년간 일당독재를 펼쳐온 공산정권의 몰락을 가져올지도 모를 총선거를 31일 실시한다. 총인구 3백20만명중 약 1백80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인민의회(국회)의원 2백50명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은 지난해 12월 학생들을 중심으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끝에 집권 공산당이 허용한 다당제 체제하에서 알바니아 사상 처음으로 치러지는 자유선거이다. 이번 선거에서 인민의회 간부회의장(국가원수)라미즈 알리아가 이끄는 공산당과 격돌하는 5개 야당 중 최대규모의 민주당은 선거를 이틀 앞둔 29일 반정부 시위의 본거지인 티라나대학 잔디광장에서 약 9만명의 지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가진 마직막 선거 유세에서 「이제 어둠은 걷히기 시작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알바니아에 민주주의의 봄이 오고 있다며 민주당의 총선 압승을 예언 했다. 민주당의 티라나대학 유세에 참가한 군중들은 승리를 기원하는 V자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흔들고 「자유」와 「민주주의」를연호했으며 민주당 지도부가 대학식당의 지붕위에서 40년간 혹독한 공산통치로 국민들을 탄압하다 지난 85년 사망한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쓴 책들의 페이지를 찢어 내리고 흰 비둘기떼를 공중에 풀어놓자 「호자는 히틀러」,「호자는 강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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