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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맛’ 보면 세계 ‘맛’ 본다

    [싱가포르 강선임기자] 해외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듣기 원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욕심을 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이동거리가 너무 길어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 한차례 여행으로 여러나라를 가본 듯한 효과를 얻고 싶으면 싱가포르를 찾는것도 괜찮겠다. 미니어처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는 중국·인도·말레이계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답게 각각의 전통생활을 엿볼 수 있는 지역이 그대로 남았다.인도인 생활상을 보여주는 ‘리틀인디아’를 비롯해 중국인 거리인 ‘차이나 타운’,게이랑 세라이(말레이지안 거리),페라나칸(중국과 말레이 혼혈)거리가 바로 그것. 싱가포르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행사가 바로 ‘싱가포르 음식축제’이다.올해가 7번째로 오는 3월31일 막을 올려 4월 한달 싱가포르 전역에서 계속된다. 개막행사가 열리는 ‘부기스 정션’은 레스토랑과 카페 밀집지역.주제는 ‘최상의 음식 경험’(Foodmania-A Bite of Every ‘Best’)으로 8개 분야로나눠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축제 구성이 휠씬 다양하다.새 행사로는 향료공원인캐닝요새공원에서 영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필름 알 프레스코’,워터프런터(보트키와 클락키 포함)와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리는 ‘세계맥주축제’,사자와 함께하는 점심식사,중국차 워크숍,주롱새공원에서의 아침식사와 아이스크림 뷔페,먹자골목인 H2O에서 즐기는 초콜릿축제 등이다. 싱가포르 강을 중심으로 강변에 이어지는 식당가 보트키와 클락키에서 열리는 세계맥주축제 ‘컨비비아 2000’에서는 세계각지에서 생산되는 맥주와 음식,안주 등을 맛볼 수 있다.클락키 쪽에는 강바닥터널을 뚫는 지하철 공사가진행중이어서 강물이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그러나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마시는 맥주 한잔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하다.신축 국회의사당과 멀라이언 공원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밤풍경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새로 조성된 먹자골목인 H2O에서 열리는 초콜릿 패션행렬은 재미를 더해주며 유리창을 사이에두고 사자와 마주하며 식사하는 프로그램은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이색체험을 제공한다.육지와 센토사섬을 연결하는 70여m 케이블카 위에서 싱가포르 야경을 바라보면서 즐기는저녁식사,주롱새공원에서 플라밍고의 춤을 감상하면서 호수가에서 먹는 저녁식사도 좋은 추억거리가 될듯. 페라나칸의 전통음식을 맛보려면 킴 티안 거리에 있는 페라나칸 식당 ‘칠리파디’가 적당하다. 전통음식과 함께 주인 졸리 위의 요리강좌를 들을 수 있다. 케이블카나 호수가의 저녁식사,사자와의 점심식사 등은 인원이 한정돼 있으므로 예약해야 한다.문의 싱가포르 관광청 서울사무소(02)399-5570. ◈싱가포르는말레이반도 남단에 위치.인구는 중국계 77%,말레이계 14%,인도계 7%,기타로나뉜다.통용어는 영어며 민족별로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사용한다. 영국식민지에서 말레이령으로 바뀌었다 독립한 때는 1965년.면적은 서울과비슷하며 인구는 400만에 못미치는 도시국가.적도부근에 위치,연중 평균기온이 26도로 높다. ‘깨끗한 나라’라는 이미지 외에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조화가 놀랍다.도시 어느곳을 둘러봐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그러면서도 인공의 냄새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다.인간과 자연의 조화,공존의 원칙을 고수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음식 특징싱가포르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음식향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향신료가 강한 것은 음식맛을 내는 것말고도 방충제 구실을 하기 때문. 페라나칸 음식에 많이 사용하는 ‘판단’은 향이 특히 진하다.벌레퇴치용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택시 안에서 흔히 냄새를 맡을 수 있다.향료 탓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칠리소스나 삭힌 고추같은 것을 주문,함께 먹는 것이좋다. 코피 티암(원뜻은 커피점)이라 부르는 음식백화점과 아파트 1층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음식값은 싼 편이다. 싱가포르 화폐로 5달러(3,500원 내외)정도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sunnyk@ *싱가포르 주요 관광명소 [싱가포르 강선임기자] 싱가포르는 1년내내 축제가 열리는 나라다.방문하는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행사를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열린 축제는 타이푸삼(Thaipusam).힌두교인들이 믿음을 더욱 굳히려고 30일간 수양기간을 거쳐 화살로 제 몸을 찌른채 카바디스라는 커다란 철제 아취를 등에지고 3㎞ 고행길을 걷는 것이다.2월 한달동안에는 차이나 타운에서 설을 기념하는 점등식과 함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축제외 눈여겨 볼만한 장소를 소개한다. 주롱 새 공원에는 600여종 8,000여마리 새들이 서식한다.세계에서 가장 높은인공 폭포와 시뮬레이터를 통해 매일 정오 천둥번개가 내려치는 동남아시아조류관도 볼거리다. 나이트 사파리에서는 어둠이 깔린 야생초원에서 푸른 눈빛을 발산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짜릿함을 즐길 수 있다.동남아 우림지역,아프리카 사바나,버마 정글 등 총 8구역으로 나뉘며 110종 1,200마리의 동물들이 산다.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을 재구성한 당성도 흥미로운 장소.아시아 최대의 역사 주제공원으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당시의 궁전과 왕실,장터,숙박지 등 옛 모습을 재현했다.유령의 집에서는 3차원 환영을 통해 귀신들과 교감할수 있다. 가장 큰섬인 센토사에는 싱가포르의 상징인 멀라이언이 섬 중앙에 자리한다. 37m 높이의 멀라이언 전망대에서는 센토사 전체와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센토사섬에 있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해저아크릴 터널은 길이 80m에 이르는터널형 수족관.대형문어 늑대뱀장어 대형 거미게 등 250종 2,500여마리의 해양생물이 있다. 중국사원인 티안 혹 켕과 힌두교도가 불 위를 걷는 축제인 티미티가 열리는스리 마리암만 사원,회교예언가의 가계 및 계보를 볼 수 있는 압둘 가풀 사원은 서로 비교하면서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이밖에 리틀인디아,말레이 빌리지,차이나 타운,음식백화점인 코피 티암을 둘러보면서 그들의 아침식사인 로티브라타와 연유를 첨가한 진한 말레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싱가포르 여행중 할 수 있는 일이다.
  • MBC PD수첩 ‘벤처시대의 신흥부자들’

    25일밤 11시 MBC PD수첩 ‘벤처시대의 신흥부자들’(민현기 채환규PD)을 지켜볼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경기를 일으킬 지도 모르겠다.수천억대 자산을가진 벤처기업 사장,억대 연봉의 펀드매니저,우리사주로 돈벼락을 맞은 샐러리맨 등 이 시대의 신흥귀족인 소위 ‘스톡리치(Stockrich)’의 성공비결과이들의 생활상이 집중조명되기 때문이다. 이 프로는 지난 해 코스닥시장을 뜨겁게 달군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지난 11일 코스닥 등록후 연일 상한가를 기록 중인 버추얼텍의 성공신화를 다룬다.두회사 대표 모두 30대.특히 버추얼텍의 여사장 서지현씨는 코스닥 등록과 동시에 100억원대의 자산가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 한 해 증시열풍을 업고 가장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른 펀드매니저의 24시도 소개된다.뮤추얼펀드라는 간접투자방식을 일반화시킨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들이 등장해 자신의 하루생활을 소개한다.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이들의 성공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자가 미래사회를 주도할 것’이라는 학자들의 예언을‘소승적으로’ 실현시킨 예이지만이들은 자신이 흘린 땀방울의 값진 결실임을 확신한다. 한국산업투자자문 김신섭이사는 주식과 벤처투자로 3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지만 이같은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엔젤투자클럽에 참여하고 있는 이석종씨는 새벽부터 밤까지 오직 컴퓨터에 매달려 주식자료를 분석한 결과 30억원을 손에 쥐었다. 물론 이 프로는 이들의 성공 이면에 자리한 혼돈스런 주식열풍에 메스를 댄다.최근 10억원을 호가하는 고급빌라 분양에 젊은 귀족들이 북적댄다고 지적하고 있다.우리사주가 올라 돈방석에 앉은 사원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우울한 시선도 담아낸다. 또 우리사주의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사표를 던져 벤처기업으로 이직하고 ‘벤처’라는 간판만 붙으면 수백대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과열현상에 대한 경계심도 북돋운다. 이주갑 CP는 “번 돈만큼 고용효과로 연결되는 지 의문이고 인재가 한쪽에몰리는 부작용이 있다”며 “열풍에 휩쓸리지 않는,올바른 투자기법이 정착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임병선기자 bs
  • 기독교계 교회일치위한 포럼

    동·서방 교회와 신·구교의 기독교인들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새 천년기의 첫 일치 기도모임을 가진데 이어 21일 오후 2시 서울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교회일치를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선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이기도 한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가 발제에 나섰고 각 교단별로 에큐메니컬운동의 성과와 전망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목사는 지난 98년 12월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WCC총회 결과를 소개한 뒤 “일치운동의 영역안에서도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와 사회적 참여를 내세우는 세력이 갈등을 빚어왔으나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통합적인 에큐메니즘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면서 ▲예언자적 공동체운동 ▲선교및 봉사차원의 실천적 일치 ▲타종교와의 협력 ▲여성과 청년의 참여 보장 ▲보편적삶의 일치 등을 일치운동의 방향으로 제안했다. 이어 열린 토론에서 가톨릭대 김성태교수는 “멀리는 1,000년전,가까이는 500년전의 분쟁을 치유하기 위해선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인 욕심이나 교파적편견에 집착하지않는 영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을 버리고 참다운 이해심을 지닐수 있도록 기도할것”을 당부했다. 한국정교회의 나창규신부는 “교회일치를 위해선 지난 1,000년동안 동서교회로 분열된 요인을 이해해야 하는만큼 서로 다른 믿음과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갖고 겸손과 자애로 상대방의 과거와 오늘의 신앙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선희 루터신학대 교수는 “종교개혁의 3대원리인 ‘오직 성서만으로’,‘은총만으로’,‘믿음만으로’는 교회일치운동의 장애물인 동시에 열쇠가 될것”이라고 강조했고 양권석 성공회대 교수는 “신·구약 성서,니케아 신경,세례와 성찬,주교직 등 4가지를 끊임없이 새롭게 적용하고 재해석하는 게 일치운동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형기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한국장로교는 보수와 혁신 신학이론의 맞대결에만 몰두해 핵분열을 거듭했으나 80년대 들면서부터 일치운동을 주요한과제로 삼아왔다”며 “이제는 피선교 교회나 신생교회에서 탈피해 성숙한교회적 정체성을갖고 일치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종천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에큐메니컬 포럼의 성서적,신학적 근거를 삼위일체론적 패러다임에 둘 것 ▲기독교 내부의 일치운동만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한 세상을 포괄하는 에큐메니즘을 지향할 것 ▲에큐메닉스 커리큘럼을 신학교육과정에서 대폭 강화하고 신학도들의 선교현장과 실습과정까지연결시킬 것을 제안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시론] 지식과 지혜

    17세기 초,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작가 셰익스피어는 “만약 당신이 지식의 날개로 하늘을 난다면,낙원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지식의 힘을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군사력이었다.18세기 중반 이후,산업혁명의 결과로 인해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경제력이 대두되었다.존 D.록펠러,앤드루 카네기 등의 금력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다.그러나 그때까지 지식인들은 군왕이나 대재벌을 보조하는 정도의 ‘주변인들’에 지나지않았다. 그러나 1990년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지식의 힘이 인간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지식 없이 산업화는 진전할수 없는 것이다.지식 없이는 어떠한 첨단 군사무기체제도 발달할 수 없다”고 했다.지력이 금력과 무력을 능가하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베이컨의 예언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정보사회란 말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가상현실이 현실화되었다.초고속 컴퓨터는 반복적인 감각자극을 통해 개인을 전자영역에만 존재하는 미지의 다른 세계로 심리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전뇌공간’은 데이터와 프로그램에 모양,색깔,동화상 같은 물질적 특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작이 가능한 전자적 환경을 의미한다.사람들은사이버공간을 접속하여 탐색하면서 데이터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컴퓨터화면은 전세계로부터 음성과 화상을 통합하여 하나의 신기루적인 만남의 장을 만든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정보시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미국은 21세기의 ‘정보 초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있다.싱가포르는 2005년까지 모든 가정,회사,정부를 단일 광섬유 정보망에 연결할 계획이다.모든가정에는 전화,컴퓨터,TV,비디오,그리고 카메라를 결합한 통제시스템이 설치될 것이다. 일본은 학교와 회사,가정을 컴퓨터 케이블로 연결하는데 2015년까지 4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하고 있다.유럽연합은 통합된 고속 유럽통신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우리 정부도 이에 못지 않게 정보화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화 사회는 지혜를 도외시한 지식만을 공급하고 있다는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지혜 없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인가? 지혜의 사전적 정의는 ‘지식을 바르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지혜는 바른 분별력이다.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주리라고 하셨을 때,그는 “주의 종에게 지혜를 주소서”라고 요청했다. 지혜는 참과 거짓,정의와 불의,중요한 것과 급한 것,선과 악을 구별하고 바른 것을 택하는 능력이다.미국의 고교생들이 총을 난사하여 급우들을 죽이고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모르는 세태가 되었다. 현대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식은 그 속에 지혜가 결여되었을 때 문제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우리는 오늘날 분별력이 없는 북한지도자의 어리석음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기아로 죽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미사일과 원자폭탄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어떤 부정한 일도 서슴지 않는 ‘미다스’형 사회가 되고있다.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우리도 잘 살아보세”의 구호를 외침으로써경제발전을 촉진하였다.그때에 ‘바르게’라는 낱말을 하나 더 첨가하는 지혜가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있었더라면…. 이원설 前한남대 총장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 [대한시론] 바뀌는 세상, 변화하는 삶

    기업이 외국회사에 넘어간 뒤 외국인 사장이 취임하였다.이제 연공서열식급여체계보다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시대이다.유능한 젊은이들이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벤처기업을 차린다.대량생산에 익숙한 대기업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며 금융부실을 키울 뿐이다.관료주의가 경제를 멍들게 하였다.학교교육이 무너진다…. 이는 한국의 현실을 빗대어 하는 말이 아니다.이웃 일본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그들 자신에 관한 기사내용이다.종전 후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서발돋움하면서 일본은 자신의 것을 오랫동안 고집해 왔다.그 일본은 지난 10년간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마침내 글로벌 표준을 그 대안으로 삼은 것 같다. 지금 세계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동력으로 하고 급격한 글로벌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1994년 말에 일어났던 멕시코 외환위기를 IMF 총재 캉드쉬는 21세기 현상이라고 부른 바 있다.그렇게 빠른 시간에 멕시코 경제가파국으로 내몰리고 한 나라의 경제위기가 국제자본시장에 그렇게 큰 파급효과를 미치는 것은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21세기의 문턱에 우리는 올라섰고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주식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도시,농촌 어디서나 봉급자,주부,대학생 가릴 것 없이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러나 정작 돈을 버는 이들은 ‘소익부 노익빈(少益富 老益貧)’이라는 요즈음 유행어가 말해 주듯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수월한 젊은 세대들이다.장이 서기 전 지난 밤에 일어났던 세계뉴스를점검하고 소화한 투자자가 그렇지 못한 투자가들보다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말 재벌기업의 사장단에 40대 이공계 출신이 대거 등용되었다.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사건이다.봉급자가 예전같이 대학을 나와 순탄한 직장생활을 20년정도 할 수만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큰 행운인 것 같다. 연초 한 통신회사가 무료로 전화서비스를 제공하였다.많은 이들이 공짜의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해피엔딩일 수만은 없다.이 통신회사는 무료서비스를 광고수입으로 메울 것이고 결과적으로 무료서비스의 혜택을 받을수 없는 이들이 광고비를 부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더욱이 기존 통신회사의 경우 살아남기 위한 감량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며칠전 유명 시민단체가 이른바 국회의원 공천후보 부적격자 160여명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또 다른 시민단체가 동조할 것이라는 소식이다.여기서 그 당위성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마우스를 몇 번클릭 하면 모든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전자(電子) 민주주의는 더 이상 식자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고 이미 우리 눈 앞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는 변혁의 시대에 있다.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이 자신보다 앞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어떤 세상이 펼쳐질지,그리고 자신은 그 세상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관하여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더욱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으로 이 불안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역동적인 혼란스러움은 현대자본주의가 시작된 100년전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전환기적 현상이다.글로벌화와 정보통신의혁명은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하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이 보다 활발하게 발휘되게 한다.능력있는 이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경제의 파이(π)를 키우게 된다.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 줄 것이다. 지금 정부가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신속하고 강력한 경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다.이 시점에서는 신속하고 강력한 구조조정만이 모든 구성원이 변화하는 시대를 하루빨리 준비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성균관대교수·경제학
  • [대한시론] 카오스와 창조적 개혁

    정보화시대는 곧 복잡계(카오스)의 시대이다.노벨화학상 수상자 프리고진은복잡계의 과학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골을 메우고,21세기에는 새로운 지(知)의 패러다임이 형성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실제로 그가 주장한 내용이 속속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빌 게이츠는 자신의 윈도와 매킨토시의 시장점유율이 거의 같을 때 거액을 투자해 자신의 소프트웨어의 시장점유율을 높임으로써 업계를 석권했다.복잡계의 경제학에서는 이 사실을 ‘록인(lock in)의 성공’으로 표현한다.복잡계의 경제학은 기존의 경제학이 ‘수확체감의법칙’에 중심을 둔 것과는 정반대로,일단 록인된 상품이 시장을 싹쓸이하며,투자와 노력을 높일수록 이익이 증가한다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됨을 보여준다. 또 재일교포 실업가 손정의는 자신의 성공비결이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3개씩 생각해낼 것을 스스로에게 가한 결과라고 한다.그러나 일단 록인된 것이라 해도 끊임없이 차세대와 차차세대의 제품을 준비해야 하며,그것이 성공의 필수조건이다.그런 면에서 이 두 사람은카오스시대가 낳은 경제영웅이라 할 수 있다.록인과 창조적 개혁(break through)이 카오스시대의 생존과 번영의 지혜인 것이다. 경제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복잡계이며,복잡계 과학의 대상이 된다.카오스적인 현상에서는 ‘처음 출발할 때의 조건(초기조건)’의 사소한차이가 그 후의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이 사실을 “오늘 서울 거리를 날던 나비의 날개짓이 며칠 뒤 뉴욕에 큰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비유로 설명하며,‘나비효과’라 한다. 사회현상에도 미미한 일로 여겼던 것이 후일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프리고진은 복잡계 중 가장 미묘한 카오스의 생명력과 자기조직의구조를 밝혔다.카오스는 난잡(Randam)과는 다르다.무질서와 질서가 공존하는 미묘한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질서가 자기조직화되며,길고 긴 생물의 진화와 인류사의 발전에도 수없이 많은 자기조직의 과정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민족사와 사회 변동과정에도 카오스는 그대로 적용된다.조선왕조 500년사는 카오스를 거부한 결과가 비극적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장장 518년간같은 체제로 지속되었던 것은 ‘용의 눈물’로 상징되는 왕실의 영속화라는초기조건에서 출발하여,사대와 쇄국의 올가미 속에서의 사문난적 시비,온갖차별과 오기 등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왕조 초기에 록인된 풍조가 생명력이 있는 카오스의 발생을 억압함으로써 결국엔 식민지화라는 결과로 이어진것이다. A 토인비는 일본에 들렀을 때 “가까운 한국에 들르지 않겠느냐”는 건의를 받고 “한 왕조가 500년 이상이나 지탱한 나라에 볼 것이 뭐가 있겠는가”며 그대로 떠났다고 한다.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처음 록인되었을 당시에는 긍정적이었던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정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내일을 위한 이상(理想)의 설정과 착실한 계획으로 뒷받침되는 새로운 창조적 변혁이 요청된다. 애국시인 한용운은 “당신은 해당화 필 때 돌아오신다고 하였습니다.봄이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랬더니 봄이 오고 보니,너무 일찍 왔는가 싶습니다”라고 노래했다.우리는 여러 차례 좌절의 봄을 맞이해 왔다.해방의 봄은남북 분단을 가져왔다.4.19의 봄은 군사쿠데타,80년 서울의 봄은 신군부의군화,그리고 문민정부의 봄은 IMF의 한파에 쓰러졌다.평화적 정권교체도 오늘의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준비없는 변혁이 몰고온 비극들이다.통일 또한,확고한 준비가 없다면 더욱 고통스러운 봄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새로운 21세기,밀레니엄,이런 화려한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이다.개혁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구체적인 계획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강령이 절실하다. 金容雲 한양대 명예교수 한국창의기획학회장
  • [기고] 과학과 정치의 불균형

    1999년이 저물어간다.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은 세기말의 끝이며 동시에 천년의 끝이다.지금 유럽에서는 세기말을 상징하는 검은 색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백년 전에도 마찬가지로 검은 색이 길거리를 뒤덮었다고 한다.지금과 백년 전의 사회분위기가 옷 색깔이 어두워질 정도의 것이었다고 한다면 지금보다 천년 전인 서기 999년경의 유럽의 분위기는 지금은 잘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긴박했을 것 같다. 당시의 유럽인들은 성서의 예언대로 신이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가진 돈을 교회에 다 바치고 면죄부를 얻으려는 사람들과 쾌락과 사치로 몽땅 탕진하는 사람들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 나올 정도로 세기말이 가져다준 불안감은 강력했던 것 같다.그때로부터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은 인간세상을 파멸시키지 않고 있다.그 대신 지난 20세기는 인간 스스로가 세계를 파멸시킬수 있다는 것을 잘 알려준 시기였다. 20세기를 집약해 표현하는데 전쟁과 과학이라는 두 마디 단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을 것 같다.지난 백년동안 1억2,000만명이 130여건의 전쟁에서 죽어갔다.20세기는 그야말로 살상의 시대였던 셈이다.이 숫자는 20세기 이전의 인류사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를 훨씬 넘는 규모다.냉전시기의 전쟁에서만 188만명이 희생당했다.냉전은 이런 점에서도 인류가 20세기에 가장 잘 던져버린 유산이다.그의 조국 러시아에서의 냉랭한 평가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를 20세기 최고의 인물로 꼽는 것은 이때문이다. 20세기는 또 과학의 세기였다.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지식의 90%는 지난 30년간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났고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백년전 세계일주를 하려면 2개월이상 걸리던 것이 지금은 24시간이면 가능하게 되었다.인터넷을 통해 지구상의 어떤 사람과도 같은 시간에 대화를 나눌수 있다.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과연 인간을 파멸로부터 건져낼수 있을까.전망은 아직 어둡다.지구 곳곳에서 대규모환경파괴가 진행되고 있다.냉전이 끝났다고 하나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민족문제나 종교문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막대한 자금과 기술이 살상무기를 만드는 일에 투여되고 있다.20세기의 어두운 유산을 짊어진 채 우리는 21세기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얼마전 타계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은 자서전에서 21세기 최대의 불행은 과학의 발전과 정치발전의 불균형이라고 말한 바 있다.과학과 정치의 불균형은 과학을 인간사회의 평화를 파괴하는 힘으로 변하게 하였다.정치가 진보하지 않는한 과학은 인간을 소멸시킬 수도 있는 무서운 도구로 바뀔 수 있다는것이다.과학이 발명한 핵기술을 인간이 어디에 사용하였는지 우리는 금세기의 중반에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파멸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지금 우리에게 완벽한 해답은 없다.그러나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재앙을 막을 가장 튼튼한 방파제는 인간이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의 위험을 정확히 알고,그 지식을 만인이 공유하는 데 있다.인터넷을 필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보는 평화를 위한 정보와 지식을 전 인류가 공유하는 시스템을 가능케 하고 있다.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있느냐는 문제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다.정치가 아직도 오래된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21세기에도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정치를 바꾸지 않으면,우리는 19세기형의 정치가 21세기의 과학을 악용하는 끔찍한 그림을 보게 될 지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우리가 풀어야할 가장 큰 화두는 의외로 ‘정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金武坤 동국대교수·신문방송학]
  • [외언내언] 세기말의 재난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 천년을 맞는 올해는 유난히 재난이 많았다.홍수와가뭄에 폭염과 혹한,지진,태풍 등 자연재해가 지구촌 곳곳을 덮쳤고 화재와폭발,아파트 붕괴,비행기 추락사고등 인재(人災)도 다른 해보다 많은 편이었다.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의 종말(終末)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종말론에 대한 공포가 실감나는 한 해였다. 세기말을 20여일 남기고 있는 지금도 재난은 계속되고 있다.베트남에는 지난달과 이달 초 두차례의 대홍수가 덮쳐 800여명이 사망하고 3억달러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입었으며 수십만명이 생활터전을 잃고 굶주림에 떨고 있다.덴마크 영국 독일등 유럽북부에는 지난 3일과 4일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쳐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채의 가옥과 도로,통신시설이 침수돼 도시기능이 마비되는 재난을 겪었고 10월말에는 강력한 사이클론이 인도를 덮쳐 1만5,000여명이 사망했다.사상 최장(最長)의 경기 호황을 누리며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도 허리케인의 강습과 잇단 총기난사 사건등의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조종사의 고의냐,폭발이나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냐로 원인이 아직도 의문에 싸여있는 지난 10월의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 767기 추락사고를 비롯한 비행기 사고도 올해는 예년보다 잦았다.영국에서는 통근열차가 충돌하는 참사를빚었다.코소보사태에 이어 체첸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등 인종·종교 분쟁과 국지적인 전쟁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며 인류를 공포에 떨게했던 재난은 지진이었다. 지난 8월 터키에서 발생한 지진은 2만여명의 희생자를 냈고 9월 대만을 수차례 덮친 강진은 4,000여명의 사망자와 23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앗아갔다.재난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여름 경기북부지방의 큰 물난리와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인천 호프집 화재참사등을 겪었다.지구촌이 마치불과 물의 심판을 받는 듯한 한 해였다. 스위스의 한 보험회사는 올 한 해 전세계에서 일어난 각종 재난으로 5만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2조1,500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것으로 집계했다.예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급속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늘어나는 인구등에 의한 환경파괴가 멈추지 않는 한 지구촌의 재난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수밖에 없을 것으로 걱정된다. 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세계는 지금 온통 축제분위기에 빠져 있다.기상재해와 전쟁,질병과 식량난 등 재난의 고통은 잊은 듯하다.세기말의 재난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며 재난 없는 희망의 새 천년을 맞기 위한 길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될것 같다. 장정행 논설위원
  • [특별기고] 거품 밀레니엄은 안된다

    분위기를 깨서 상당히 죄송한데,밀레니엄은 거품이다.달력의 숫자가 2,000년으로 올라간다고 갑자기 천년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한 해가 지나갔을뿐이다.또 2,000이라는 숫자로 표기된다고 그 해가 우리가 이제까지 맞은 다른 해보다 특별해야 할 이유도 없다.그런데 왜 이 난리? 모두들 테크노피아의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세기말이면 등장하는 종말론적 예측은 한 번도 들어맞은 적 없다.종교적 종말론이든,세속적 종말론이든.미래학적 전망은? 그것도 믿을 수 없다.가령 금세기 중반에 컴퓨터라는 물건을 발명했던 어떤 과학자는 20세기 말의 컴퓨터는 무게가 1t 미만일 것이라고 올바르게(?) 예언한 바 있다. 경제학적 예측? 마찬가지다.가령 이 나라가 IMF로 치닫던 시절 어느 시장경제 전문가는 한국경제,끄떡없다고 예측한 바 있다.어쩌면 경제전문가란 어제한 예측이 오늘 왜 안 들어맞는지 내일 분석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모두들 새 천년에 들어가 살 가건물을 지어놓고 거기에 장밋빛 페인트칠을 하기에 바쁘다.엊그제 뉴스를 들으니 성대한 입주식이 열릴 예정이라 한다.서울시 여기저기에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문을 짓는다는얘기도 들린다.해가 제일 먼저 뜨는 태평양 피지섬에서 채집한 불을 영구히보존할 곳을 짓는다는 얘기도 들린다.다 좋은 일이다.그러나 제대로 된 장애인 시설,제대로 된 도서관 하나 없는 나라에 이런 행사를 할 돈은 얼마든지있다는 사실이 난 너무나 신기하다.이게 바로 결식아동 20만,최저생계비 이하의 극빈층이 1,000만 명이 넘는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새 천년을 맞는 독특한 방식이다. 우리를 IMF로 이끌었던 그 요인들은? 곧 IMF를 졸업한다고 하나 사실 뭐 하나 제대로 개혁된 것이 없다.부정부패는 여전하고,날림과 땜질도 여전하다. 지금도 백화점과 다리는 열심히 지어지나,이것들이 삼풍이나 성수대교처럼무너지지 않으리라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지금 우리가 들뜬 마음으로 요란하게 짓는 장밋빛 미래의 풍선 역시 언젠가 허무하게 퐁! 하고 터지지 않으리라고 나는 장담할수 없다.씨랜드화재사건이 터지자 난리를 치는 시늉을 냈지만,결국얼마 안 있어 똑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던가.인천 호프집화재사건을 보고 이 나라를 못 믿어 끝내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을 떠나야 했던어느 전직 운동선수는 어쩌면 현명한 판단을 했는지도 모른다. 경제발전을 일으킨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을 짓는다는 얘기도 들린다.우리의 새 천년은 죽은 독재자에게 봉헌하는 신전과 함께 시작될 모양이다.재미있는 현상이다.‘라인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독일.거기서 경제발전이 아데나워 수상 덕이었다고 하면 모두들 웃는다.경제발전의 ‘원인’을 찾는 대신‘은인’을 찾아 감사하려 들고,경제위기가 오면 원인을 찾아 고칠 생각을하지 않고 성토할 범인을 찾는 것.이 황금가지식의 주술적 사고방식을 합리적 사고로 바꾸어놓지 않는다면,새 천년이 찾아와도 우리는 세계 속에서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새 천년 맞이가 장밋빛 미래학적 전망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미래의 상을 SF적 공상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그저 우리의 현실을 굽어보며 뜯어고칠 것을 하나 하나 찾아내 꼼꼼하게고쳐나갈 때,바로 그안에서 우리의 미래는 구체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새 천년을 맞는 우리의감회는 근거없는 희망에 들뜬 부푼 마음이어서는 안 된다.우리가 저지른 잔인한 과거를 참담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냉정함이어야 한다.새천년의 희망. 그것은 값싼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아픈 노력의 산물이어야 한다. [진중권 자유기고가]
  • 임기3년 남기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사퇴한 박종화목사

    지난 94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무로 활동해온 박종화(朴宗和·54) 목사가 기장 총무직을 사퇴하고 5일부터 서울 중구 장충동 경동교회의 담임목사를 맡아 시무한다.박 목사는 이번 담임목사 취임이 사실상 본격적인첫 목회활동인 셈이다.진보적인 노선으로 70∼80년대 민주화의 요람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던 경동교회.박 목사는 경동 교회를 기존 목회와는 다른 새교회로 이끌겠다고 다짐한다. ■경동교회 담임목사를 맡게된 배경은최근 당회장 중심의 목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담임목사를 빨리 임명할 사정이 경동교회 내부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안다.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임기가 3년 남았지만 경동교회 초기의 도덕적·영적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자는운동이 평소 소신에 맞아 결정했다. ■현장목회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소감은30·40대엔 독일교회에서 선교사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인권운동에 가담했고 50대엔 기장 총무를 맡아 행정을 담당했다.해외선교와 학문 행정 경험을 모아 사회개혁과 교회갱신에 앞장서 한국의 교회들이 연구하고지침으로 삼을모델을 현장에서 만들어가겠다. ■경동교회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뿌리는 조선신학교(지금의 한신대)와 경동교회에서 찾아진다.그중에서도 경동교회는 기장을 출생시킨 모체랄 수 있다.한국사회의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 지성계와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8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 역할보다는 내면화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이젠사회속에 참여해 소금과 빛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경동교회의 운영방안은교회법상의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를 그대로 두되 예배·문화선교 등 20여개의 직능별위원회를 협력체제로 가동하겠다.경동교회의 지성인 모임 성격을 살리면서 타 교회들과 연대해 사회의 소금과 빛을 다시 세우는 전위대가 되도록 하겠다.경동교회는 300석 규모의 여해문화관을 갖추고 있다.복음의 진수가 바탕을 이루는 한 모든 문화예술·사회 심리적 요소를 포함하는 열린공간으로 이 문화관을 제공하겠다.열린목회,열린예배를 주관해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교회의 자정과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데물량주의가 교회 세속화의 다리가 되고 있으며 기복신앙도 문제다.교회자체가 기득권 세력화함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교회는 제사장의 입장에서 위로하는 목회인데 예언자적 비판 없이 기존 가치관과 체제를 정당화해 정치종교로 퇴락했다.2000년대엔 교회도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교회는 영적 갈등을해소하는 위로의 목회를 하면서 도덕적 해이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도덕적 처방까지 제시해야 한다. ■평소 교회의 NGO기능 측면을 강조했는데 다문화 다종교 시대에 교회는 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 새로운 NGO로 거듭나야 한다.물론 다른 NGO와는 다르게 예언자적 비판기능과 제사장적 위로기능을 토대로 자주성을 가져야한다.교회 자체가 도덕 윤리적인 사회 구심체로서 역할을 해야 하며 그 바탕은 신앙에 있다.불의와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을추구해 사회적 실체로 드러나도록 부정부패추방 운동같은 것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소망이나 계획이 있다면교회 일에 충실하면서 세계 교회일치 운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지금까지새로운교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왔다고 자부한다.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형제 5분,동생이 모두 목사였고 아들도 신학대학원 졸업반이다.직업상의 종교인이 아니라 전통 신앙인의 목회활동을 이어받아 새 목회의 틀을 만들고싶다. 김성호기자 kimus@
  • 美·埃, 여객기 추락원인 싸고 날카롭게 대립

    [뉴욕·카이로 연합] 지난 달 31일 발생한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 767기의추락원인을 놓고 미국과 이집트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사고조사를 맡은미국 쪽에서 조종사의 자살비행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이집트측은 기체결함등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추락 당시 부기장 자리에 앉은 교대 조종사 가밀 알 바토우티(51)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에 남긴 아랍어 기도 해석을 놓고 전혀 다른 추론을 하고 있다. CVR과 비행기록장치(FDR) 자료에 따르면 바토우티는 기장이 잠시 자리를 비워 조종실에 혼자 남자 “나를 신께 맡깁니다.알라는 유일신이며 모하메드는 그의 예언자입니다”는 짧은 기도문을 암송했으며 이를 전후해 두번 연속눌러야 작동되는 자동비행장치가 꺼지고 기체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미 언론들은 이런 정황을 들어 바토우티의 기도문은 자살을 앞둔 기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반면 이집트의 유력 일간지 알 아흐람은 교대 조종사의 말은 이집트항공 조종사들이 이륙 후 정상고도에 접어들면 흔히 하는정상적인 말들이라고 주장했다.관영 알-아크바르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하고 심지어 미사일에 의한 추락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바토우티씨의 아들 모하메드는 이날 이집트 일간지 알 아흐람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사고 하루 전 전화요금을 내라고 집에 돈을 보내줄 정도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서 부친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 신사회공동선운동聯 창립5돌 세미나

    사단법인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은 2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1층 세종홀에서 창립 5주년 기념세미나를 가졌다.서영훈(徐英勳)상임대표의 기조강연‘세계화·정보화시대의 공동선 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요약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부정부패와 몰가치적 행태는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도의와 가치,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맹목적 질주의 결과다.20세기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적 가치의 황폐화를 경고해 왔다.특히 새로운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은 삶의 질과 인간적 가치의 회복을 부르짖는 암묵적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우리는 인간 고유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범인류적인 자각과 지혜의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이런 지혜의 문화정착을 위해서는 도덕적 자각과 자율의 확산을 위한 가정과 학교·사회에서 교육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정서·문화환경은 어떤가.대중문화는 예술을 빙자한 장사,이윤추구의 상업문화로 전락해 버렸다.끊임없는 판로개척과 유행창조를 위해인간의 저급한욕망을 자극하는 문화가 됐다.영화·대중음악·잡지·오락할것 없이 섹스와 폭력을 주내용으로 삼는 일회성 욕망 충족의 문화인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교육에서 음악과 시(詩)의 역할을 중요시했다.플라톤도 음악을 정신순화의 중요한 단계로 간주했다.훌륭한 음악과 예술은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정신을 성숙하게 한다.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정서의 문화를 확산해나가는 운동이 지혜의 문화운동과 더불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내 인류의 보편적 과제를제시했다. 인구·공업화·환경오염·식량생산 및 천연자원 이용이 현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지구의 성장은 100년 이내에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이것 말고도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낭비와 자연파괴가 계속된다면 새로운 야만상태가 도래할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수없이 많다. 이제 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오래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온 경제적 삶의문제를 단적으로 지적했다.양적 팽창과 큰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당연시해온 경제행태를 이제는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삶을 추구해야 하고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절약,재활용,불필요한 생산과 과소비 억제 같은 노력을 통해 작은 욕망이지만 질적인 삶의 수준을 높이고 환경친화적인 삶으로의 의식전환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정리 김성호기자 kimus@
  • [쉽게 읽기]폴 존슨 ‘벌거벗은 지식인들’

    ‘지식인을 조심하라고요?’ ’지식인은 위험하다.왜? 그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과대 망상적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저자는 ‘지식인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지식인이란 존재를 마뜩찮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않지요.그래서 시쳇말로 ‘먹물’이라고 부르지 않던가요.헌데 저자의 전언은 단순히 지식인의권위를 폄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우리가 인간성과 사회의 행복을 지키려면 위대한 지식인들의 주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단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이 책에서 다루는 ‘벌거벗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알아볼까요.근대지식인의 시조이자 원형인 루소,그는 진리와 덕성의 예언자로 명망이 높았지만 다섯명의 자기 아이들을 고아원에 내팽개쳤습니다.노동해방의 선각자 마르크스는 45년간이나 가정부에게 단 한푼의 봉급도 주지 않았고,‘나만큼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던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줄창 드나들면서도 성생활의 타락을 극렬 비난했지요. 또한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이 우정의 미덕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동료작가들과는 잔인하고 악의에 찬 언쟁을 일삼았으며,‘노동자복’을 입고 이름도 ‘좌파적’으로 바꾼 브레히트는 당시 민중의 굶주린 생활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논리학의 대가 러셀도 돈과 명성 앞에서는 ‘논리 좋아하네!’라는 행태를 보였으며,사르트르와 촘스키는 각기 실존주의와 언어학으로얻은 학문적 명성을 무책임한 현실 참여로 인해 망가뜨린,슬픈 본보기라고합니다. 이렇듯 이 책은 ‘위대한’ 지식인들의 추악한 면모를 폭로합니다.혹자는‘인간적인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다,중요한 건 그들이 내놓은 사상과 이론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요.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단호합니다.그들의사상과 이론이란 것도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채 관념으로 만들어진 모래성에 불과하다는거죠. 꽤 두툼한 책인데 단숨에 책을 읽었습니다.좋은 번역인데다 남의 비밀을 엿보는 재미 탓이 컸지요.그간 내가 좋아하고 지지했던 몇몇 사상가가 한갓 자기 홍보의천재거나 야비한 독설가로 재조명되는 대목에서는 ‘아,이렇게 나쁜 놈이 있나’를 되뇌며 모종의 배반감도 맛보았지요.지식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와 추종이 얼마나 허망하고 때론 위험할 수도 있음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김성기 현대사상 주간
  • 몰몬교 20세기 마지막 연차대회 열려

    지난 3일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몰몬교)의 본부가 자리잡은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템플스퀘어에서는 20세기의 마지막 몰몬교 연차대회가 열렸다.이 대회는 각국 회장단 등이 참석해 간부회의와 예배,회원 훈련 등을갖는 몰몬교 최대의 행사이다. 이날 연차대회는 고든 B.힝클리 제13대 대관장을 비롯해 70인 정원회장단,160여개국에서 모인 1만여명의 회원들이 테버너클 성전과 인근 교회강당,정원 등을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됐고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대회에선 세계적인명성을 얻고 있는 테버너클 합창단의 성가합창에 이어 힝클리 대관장 등 간부들의 설교,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신앙지침의 전달 등이 있었다. 테버너클 성전은 1863년 제2대 지도자 브리검영 대관장에 의해 세워진 몰몬교 최초의 건물로 이날 연차대회를 끝으로 이곳에서는 더이상 대회가 열리지 않게 됐다.내년부터는 새 건물에서 대회를 갖게 된다.현재 템플스퀘어 북쪽에 2만1,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새 집회소 ‘컨퍼런스센터’를 짓고 있으며 내년 4월쯤 완공된다. 몰몬교 회원들로부터 ‘예언자’로 불리는 힝클리 대관장은 이날 “지금은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하시는 시대요,신권을 회복한 때”라면서 “새 천년을 맞이해 우리는 더욱 용서하고 도움을 주면서 우리 주위의 모든이에게 더욱 사려깊어야 한다”는 내용의 ‘21세기를 맞는 다짐’을 발표했다. 힝클리 대관장은 설교에서 기독교 발생에서 부터 종교개혁,1830년 몰몬교의 창설 등 지난 1,000년을 회고했으며 교회관계자들은 그가 21세기에도 몰몬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건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는 19세기 후반 한 때 일부다처제,즉 복수결혼을실행해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이후 이를 폐지,생활종교를 전환했으며 현재 회원이 전세계에 걸쳐 1,000만명을 넘어서는 등막강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김성호기자
  • [20세기 문명기행] 2. 인간의 시대, 대중의 시대

    20세기가 열리고 역사의 무대에 새 얼굴이 등장했다.대중이라는 인간군(群)이었다. 지난 100년을 이끌어온 역사의 동력으로,때로는 무기력한 군상의 동의어(同義語)로 대중은 ‘인간의 시대’라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해왔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협소한 계급적 울타리의 ‘민중’을 넘어서 포괄적 의미의 대중의 탄생과 승리를 가져온,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금세기의 중심적 사건’이었다. 대중은 인도,터키 등에서 열병처럼 번진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전후 유럽의신 사회운동,미국의 반핵·반전운동을 끌어가는 주력군이었다.소외됐던 대중은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면서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로 탈바꿈해갔다. 폴란드 자유노조의 승리,잇단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87년 한국의 ‘6월 항쟁’을 이끌어낸 힘도 분노한 대중이었다. 그들은 경제의 주역으로도 나섰다.대량생산,대량소비는 이들 대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소비주체로서 대중은 자본주의와 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런 폭발적 힘,그 이면에는 무력하고 탈색된 군중으로서,대량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우울한 모습도 숨길 수 없었다.대중정치,대중문화,대중매체에 이르기까지 대중과의 수많은 결합체가 만들어지면서 대중의 소외도 한편으로 빠르게 진전되어 갔다. 대중화 시대를 이끈 요술상자,라디오의 정시방송이 미국에서 시작된 20년을 전후로 TV,영화,컴퓨터는 대중을 발전시키기도 하고,혹은 대중을 어리석게퇴보시켜온 상징물이었다. 이런 대중의 시대를 또 한번 뒤집어 보면 어떤 모습일까.그것은 인류가 태초부터 목표로 삼아온 인간 본위의 삶,즉 인본(人本)지향의 모습이었다. 인류의 대다수는 19세기까지 봉건적·전통적 틀에 얽매여 있었다.미국에선노예제가,한국에선 반상제(班常制)가 공동체의 내용과 형식을 꽁꽁 묶어놓고 있었다.20세기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속박을 푸는 인간의 시대로 변모했다. 세계 곳곳에서 신분제의 사슬이 풀리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과 흑인,어린이들에게 권리가 주어졌다.1918년 영국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75년 멕시코에서 유엔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흑인의 인종차별도 점차철폐됐다.63년 워싱턴에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30만 흑인 대중 앞에서 흑인의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위대한 대중의 시대는 인류에게 공헌을 한 시대만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했듯 대중은 소수에게 이용되는 세뇌된 우중(愚衆)으로 전락하기도 했다.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치 독일의 히틀러는대중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사악하게 대중을 변모시켰다.냉전의비극인 50년대초 미국의 매카시즘도 소수가 대중을 부추킨 광기의 산물이었다. 20세기는 여러가지 지표로 볼 때 분명 대중의 정치·경제적 권리가 확대되고 인간의 삶이 개선됐다.그러나 형식적 권리만 확장됐을 뿐 실질적 권리가완전히 보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비관론(앤서니 기든스)도 적잖다.무한경쟁이란 억압의 새 틀에 놓여진 신 인류,노동시장에 철저히 종속된 위기의 시대라는 해석이다. 심각한 불안정과 영속적 위기의 시대에 살면서(미카엘 스튀르머) 대중이길거부하는 몸짓도 있다.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대중에 머물기보다는 자아와 주체의 발견과 실현에 적극적인 ‘소중’(少衆)으로 분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일 미국 앰허스트.노벨상 수상자 7명 등 세계의 석학 100여명이 ‘인도주의자 선언 2000’을 발표했다.폴 쿠르츠 교수(미 버팔로대학)는 선언문에서 미래가 암울하고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21세기는 ‘더 나은 세상’이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의 전망대로 신 인류는 새 세기에 과연 희망과 행복을 기대해도 좋을까. 황성기기자 marry01@ * 오늘의 한국을 일군 피플파워 ‘탑골공원’‘4·19’‘빛고을’‘6·29’….한국 20세기 역사 고비고비의 상징어들이다.그 단어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는 바로 사회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대중의 승화체 ‘민중’. 전반기를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상태로,후반기를 남북으로 분단돼 대립하며불행한 한 세기를 보낸 한국의 오늘을 있게한 힘은 바로 근대사회의 태동과함께 전면에 나선 민중이었다. 이땅에서 사회개혁의 주역으로 대중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봉건의 암운이가시지 않은 때.봉건사회의 해체와 함께 태동하기 시작한 민중은 한반도를침탈한 외세와 집권층의 부패에 맞서 뭉치기 시작했다.1894년 동학 농민운동은 20세기 한국사에서 대중의 힘을 처음으로 담아안은 사건이다. 이후 한국의 대중,민중들은 1919년 3·1운동 등 반외세 운동으로 결집했고60년 4·19혁명,64년 6·3 굴욕적 대일 외교 반대시위,70년대 노동자 항쟁및 계엄반대 시위,79년의 부마항쟁,그리고 80년 광주민주항쟁에 이르렀다.‘한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사람의 한걸음…’ 80년 광주 항쟁의 아픔을 겪고 난지식인 그룹이 처절하게 경험한 대 원칙도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이었다. 이것이 87년의 6·29선언,나아가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박두진 1주기…유고시집 나와

    “너희가 박두진을 아느냐” 지난해 9월16일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한 시인이대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혜산과 지훈(芝薰)·목월(木月)의시가 모두 교과서에 실려 있고,그 세사람을 일컫는 청록파(靑鹿派)가 여전히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마당에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답변은 “잘 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럼 박두진의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그러나 그를 안다고 했던 신세대도 작품에 이르면 그리 할말이 없는 듯 하더라는 얘기다.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그지만 이렇게 변해버린 세태를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 혜산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고향땅에 묻힌 지 벌써 1년.떠나기 전,마지막 시기에 쓴 76편의 시가 ‘당신의 사랑 앞에’(홍성사)라는 제목으로 묶여져 나왔다.1980년대 후반에 쓴 것도 몇편 있지만,대부분은 90년대 들어 발표한 것들이다. ‘당신의 사랑…’은 크게 네부분으로 나누어진다.1부 ‘고향길’에서는 그의 시와 삶의 원체험이 됐던 고향 청룡산 일대의 자연과 체험을 추억한다.2부 ‘수석영가(水石靈歌)’는 ‘수석열전(列傳)’‘수석연가(戀歌)’등 일련의 수석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연작이다.다른 수석연작 처럼 혜산의 신앙고백이자,자기 설득의 노랫말이다. 3부 ‘더 멀리,더 오래’에는 각종 기념일이나 행사를 위한 계기시(契機詩)를 모았다.누구보다 정치·사회적 현실을 비판해 온 혜산이다.여기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당대 현실에 대한 뜨거운 내면을 표출하고있다는 점에서 ‘기념시’의 차원을 넘어선다.4부 ‘새 하늘,새 땅’에는 평생을 추구한 기독교적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신 앞에서 인간의 나약성과 근원적 오류를 고백하는 노시인의 인간적 면모가 담겨 있다. 이렇게 보면 ‘당신의 사랑…’은 혜산 평생의 시적 편력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렇다고 과거를 되풀이한 것은 물론 아니다. 혜산은 여기서 자연에 대한 순수한 감각의 기쁨에서 출발하여,자연과 인간,그리고 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귀착한다.초기의 자연친화적인세계와 예언자적 호소가 이 시집에 이르면 하나로 나타난다.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전생애에 걸친 시적 탐색의 완결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고향을 노래한 몇몇 시는 주목받는다.전작보다 진솔하면서 호소력도크지만,혜산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시가 누리는 함축과 함의는 더 풍요하고강렬하다는 것이다.‘남으로 볕을 받는’‘고향길’‘뻐꾹새,고향’ 등이 그것이다.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착을 과장이나,감상없이 간곡하지만 간결하게토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년의 절창’으로 평가된다. “시인은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았는데,왜 당신들은 시를 외면하는가”.이시집을 통해 무덤 속의 혜산이 이렇게 질책하고 있는 듯 하다. 서동철기자 dcsuh@
  • [쉽게읽기] 호모 에티쿠스-윤리적 인간의 탄생

    선(善)이란 무엇인가.진정으로 잘 산다는 게 무엇인가.이런 물음 앞에 혹자는 ‘야,이거 왜 이래’하며 인상을 찌푸릴 지 모르겠네요. 괜히 골치 아프다는 거죠.가뜩이나 바쁜 세상에,내 밥그릇 하나 건사하기도힘겨운 이 시대에 애들 ‘바른 생활’시간도 아니고 뭐 얼어 죽을 놈의 도덕 타령이냐’는 힐문(詰問)이지요. 하기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돈과 권력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닙니까.그럼에도 이 책은 거듭 묻습니다.우리에게 도덕은 있느냐고.애들이 아니라 동시대의 어른들에게 말입니다.오직 자기 하나의 이익을 좇아 사는 모습을 돌아보지 않으면 이제는 ‘다 함께 망한다’는 위기의식 탓이지요. 그래서 저자는 “어떤 나라나 민족도 윤리와 도덕을 포기한 채 행복과 쾌락만을 추구하면서 바라던 바 그대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산 예는 일찍이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무슨 예언자의 외침처럼 들립니까.그렇다면 ‘거 참,훌륭한 소리다’며 한귀로 듣고 흘려 보낼 수도 있지요.문제는 그게 서양철학사의 오랜 내력을 섭렵한 뒤 나온 결론이라는 겁니다.저자는 소크라테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사의 주요 흐름을 통해 ‘인간은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근본 물음을 짚어 내고,서양 정신이 추구해 온 윤리적 삶의 이상을 오늘 이 자리에서 반추하고 있지요. ‘오늘 이 자리’라고 강조한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저자는 오늘의 철학이시쳇말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현실 속으로,저잣거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지요.한마디로 ‘저 낮은 곳’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 체험도 짙게 배어 있지요.지난해 저자는 한대학 당국의 전횡으로 인해 교단에서 쫓겨났습니다.그러니까 대학이 곧 사회비리와 부도덕의 축소판이라는 깨달음도 저자로 하여금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끌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책은 모호함의 세계처럼 비춰지는 철학책의 선입견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요.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강의록을 묶어낸 책이기 때문에 여느 철학서와는 달리 난해한 전문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서양철학사의 현재적 의미를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미덕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딴 생각이 들 겁니다.부담스럽게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되기 때문이죠. 한길사 1만원.김상봉 지음[김성기.현대사상 주간]
  • 90년대 日현대미술 조명 아트선재센터 팬시댄스전

    1990년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팬시 댄스’전이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10월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일본의 인기 만화 제목을 딴 이 전시회는 일본 현대미술의 전반을 훑기 보다는 ‘현대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유화 등 전통적인 그림 대신 설치,합성사진,비디오,애니메이션 및 건축 등 비전통적 분야에서 주목받은 젊은 작가·팀(13)들이 초대되었다. ‘설치적’ 성격의 이 현대미술 작품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그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적극성이 돋보이는데 여기에 ‘일본적인’ 정교함이 가미된다.일본 세타가야 미술관 큐레이터로 국제적 이름이 있는 하세가와 유코 씨가 직접 전시기획을 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선재센터 큐레이터 김윤경씨는 “‘공상하듯,도약하듯’ 부드러우면서 강한 일본의 현대미술의 오늘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추천한다. 형제로 구성된 예술그룹인 메이와 덴키는 물고기를 소재로 해서 미술적인‘산업물품’을 선보인다.이 물품들은 매우 정밀해 아이디어 상품인가 싶어뜯어보면 효용성 대신 일반 물품의 효용성을 풍자하는 예술적 자태가 드러난다.형제들은 이런 식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야나기 미와는 합성사진을 통해 현대사회를 풍자한다.‘불멸의 도시’는 개인성이 삭제된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의 이미지를 반복 합성하고 있다.하치야 가츄히코의 ‘빛·심연’은 관객참여의 쌍방향 작품으로 작가나 관객이 스케이트 보드를 일정 속도 이상으로 재빠르게 탈 경우 밑에 깔린 수십대의 모니터 화면이 급격변환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다카야스 도시아키는 ‘새로운’ 풍경화를 선보인다.밖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대신 풍경을 비디오로 찍어온 뒤 이것의 컴퓨터 이미지를 집안에서 그리는 ‘디지털화’한 풍경화다.오다니 모토히코는 절단된 뒤에도 그냥 달려있는 듯한 ‘환상지’(幻想肢)란 제목의 사진작품을 내놓았다.심리적 불안감의 무중력 상태가 전달된다.정교한 목조 공예솜씨로 바이올린 현과 사람의 손가락을 결합한 작품 등도 출품했는데 사람이 이상하게 돌연변이해 버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열망에 대해강한 관심을 보인다. 일본의 과거로부터 상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는 모리 마리코는 이번 전시에서 ‘무녀의 기도’라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예언적인 시각을 보여준다.오가이 다케하루 팀은 풍경과 인물의 정교한 모형을 사진으로 찍어 사람들을 현혹하는,이 세상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세지마 가츠요 팀은 최소주의적형태와 비중력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새 건축미를 제안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대한광장] 무기여 잘 있거라

    지난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그라나다 힐스에서 기관총 난사사건이 발생했다.유태계 커뮤니티센터에서 백인 괴한이 난사한 기관총탄에 어린이 3명과 직원 등 5명이 총상을 입었다.지난 7월 인디애나주에서는 인종혐오주의자들의 총기난사로 유학생 유원준군이 목숨을 잃었고,애틀랜타에서는증권에 투자한 10만달러가 물거품이 된데 앙심을 품은 사람의 총기난사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총기사고는 미국이 겪고 있는 세기말적 고민이아닐 수 없다.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고한 생명들이 총구 앞에서 이슬처럼 떨어지고 있는 미국사회의 병리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은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그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막강한부와 군사력으로 세계 지배의 꿈을 지켜왔다.개인의 인권과 자유는 최대한보장하면서 국가집단의 이익은 무서우리만큼 철저하게 지키는 미국사람들이지금 자신들이 만들어 팔고 소유하고 있는 총구 앞에서 떨고 있는 것이다. 총기 난사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것이라든지 미국 언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총기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 실황을 보도하는 것 등이 그들의 저린 발을 실감케 한다. 1899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46년동안 미국이 만들어낸 총기는 4,571만1,000정에 달한다.그리고 1946년에서 1996년까지 만들어낸 총기를 합하면 무려 2억1,302만4,000정이 된다.미국인 1인당 한 자루의 총기를 지닌 꼴이다.미국은 총기 보유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의 강국인 셈이다. 그러나 1996년 한해동안 총기에 의한 살인이나 자살자가 3만4,040명에 이르렀고,이는 세계 25개국 다른 나라들보다 12배가 넘는 숫자이다.오늘도 미국은 부단히 크고 작은 무기를 만든다.그리고 다양한 명분으로 세계 도처에 판매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총으로 대통령도 죽게 만들고,지상천국으로 믿고 찾아온 소수민족도 희생시키고,자기네 아들 딸조차도 비정한 총구 앞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가게 하고 있다. 총구의 횡포나 만행은 미국의 경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양과 질의 차이가 있을 뿐 범세계적인 추세이다.총으로 권력도,정권도,목숨도,남의 돈도 빼앗는다.한편에서는 총없는 사회를 만들자,총기판매법을 철폐하자며 피켓을 내거는가 하면,다른 한편에서는 24시간 총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그리고 세계의 무기판매상들이 미국으로 모여들고 있다. 무기란 인간이 구사하는 모든 폭력행위의 물리적 결집체이다.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질 않아 궁리해낸 폭력행위의 극대화인 것이다.권총이나 기관총으로는 모자라 만들어낸 것이 미사일이고 핵무기이다.세계는 국방과 자위라는 미명으로 만들어놓은 핵무기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그리고 겉으론 핵제한협정을 이야기하면서 속으론 앞다퉈 핵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폭력은 그 자체로서 악이다.무기 역시 그 자체로서 인간의 삶을 유린하는흉기임에 틀림없다.그럼에도 ‘무기여 잘 있거라’며 버릴 수도 없고,버리지도 못하는 고뇌와 당혹감 속에 빠져 있다.성서는 칼과 창을 두들겨 삽과 괭이를 만드는 날,그날이야말로 세계평화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성서의 교훈 한 구절이 생각난다.‘칼쓰는자 칼로 망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행복과 생명의 안전을 지키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그것이 폭력이나 물리적 힘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된다.내가 만드는 그 총구가 언젠가는 내 가슴을 노릴 것이라는 종말적 위기감을 갖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 모두는 서 있다. [박종순 충신교회 담임목사]
  • [굄돌]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가?

    요즘은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있다보면 초인종을 누르는 방문객들이 많다. 문을 열어보면 대개는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다.그들은 나에게 전해줄 상당한 분량의 유인물들을 들고 있는데 그 유인물들 중에는 설문지 형식을 띤 것도 있다.그러한 설문지에 실려있는 몇 가지 간략한 질문들은 모두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질문인즉,“당신은 종말을 믿는가?” 내가 조금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은 온갖 종말의 징후들을 제시한다.2000년 1월1일 모든 컴퓨터가 작동을 중지한다는 소위 ‘밀레니엄 버그’ 대재난,기상이변으로 인한 각종 재난들,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환경 오염,핵무기,화학무기의 공포.이러한 것들을 열거하고 난 후 그들은 모든 것이 결정돼 있다는 증거로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툼한 성경을 펼쳐보인다. 그들은 곧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은신처에서 머무는 것이라고 비장한 어투로 말한다.빨간 줄을 쳐 놓은 성경의 문장들을 읽어주면서 말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이렇게 종말이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믿음의 근거로 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신의 예언이 수록됐다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언론 매체라는 것이다.성경은 종말을 확언하고 언론 매체는 성경이 확언한 종말의 징후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언론 매체가 보여주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참혹한 재해의 현장들,‘밀레니엄 버그’나 기상이변,환경 오염 등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들은 종말론자들의 논리를 살찌우는 자양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언론 매체는얼마 전부터 ‘세기말 현상’ 운운하며 독자적으로 종말론적 분위기를 만들어 오고 있지 않는가? 사실 종말론이나 ‘세기말 현상’ 운운이 갖는 허구적 요소에 대해 논리와이성으로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하지만 문제는 종말이라는 말에 깃든죽음의 공포에 반응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데 있다.어디선가텔레비전이 보여주는 폭우로 망가지고 파괴된 도시의 모습에 경악하며 종말에 대한 확신을 재확인하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떠오른다. [주형일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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