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의 한국영화…활로를 찾아라/스크린쿼터란
한국영화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문제는 물론 제작편수의 급속한 감소에 대처하고 ‘쉬리’이후의 새로운 영화제작 방향을 찾아야 하는 등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이 중에서 영화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제외하면 제작활성화와 새로운 영화 방향의 모색이 중심 과제이다.
우선 영화계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제작편수의 급속한 감소.영화계는 올해 대략 30여편 가량 영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이는 사상최저수준.IMF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난해의 43편보다도 적은 숫자이다.97년에는 59편이었다.해마다 제작편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제작편수의 이같은 감소는 투자심리 위축이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아직 IMF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데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진 탓으로 풀이된다.일례로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 지난해 ‘약속’‘처녀들의 저녁식사’‘태양은 없다’‘쉬리’‘건축무한 육각면체의 비밀’등 5편을 만들었으나 올해는 제작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영화인들은 이 문제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지 않는한 조만간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영화는 기획부터 제작,개봉까지 대략 1년정도 시일이 걸린다.다시 말해 현재의 제작편수는 지난해 이미 정해진 것이며 요즘 제작을 준비하는 영화는내년초 쯤 관객에게 선을 보이게 된다.영화인들은 현재 20여편 이상의 기획서가 검토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내년부터 영화개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영화인들은 삼성 대우 등 대기업이 빠진 공간에 새로 들어선 투자자들이 모두 금융자본이라는 데 못내 걱정스런 표정이다.삼부파이넌스를 제외한창투 및 투금사 4∼5곳은 ‘쉬리’의 성공에 고무돼 선뜻 영화투자에 나섰지만 자칫 1∼2차례 흥행에 실패하면 손을 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30여억원이 든 ‘쉬리’는 서울기준으로 무려 243만명을 기록,한국영화의기록인 서편제의 103만명을 훨씬 넘어 타이타닉이 세운 종전 국내흥행최고기록 235만명도 경신했다.‘쉬리’는 이같은 흥행에 힘입어 이익규모가 투자액의 4∼5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그러나 ‘쉬리’는 ‘예외적인 영화’라는 게 중론이다.‘쉬리’의 돌풍이 계속되던 3∼5월중 개봉한 ‘건축무한…’‘북경반점’‘신장개업’‘내마음의 풍금’ 등 대부분 영화는 흥행에참패했다.15억∼20억원을 들여 만든 이들 영화는 간신히 제작비를 맞췄거나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영화인들은 “금융자본들이 이같은 ‘영화의 모험성’을 간과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이같은 자본의 성격 변화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향후 영화의 제작방향 설정.현재 영화계에는 두가지 흐름이 뚜렷이 일고 있다.하나는 올들어 ‘강원도의 힘’이나 ‘아름다운 시절’등 예술성 있는 영화가 실종됐다는 점이다.모두 상업영화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장르의 다양화.쉬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작으로,충무로에는 국가정보원 서해교전 등 블록버스터 류의 기획서 10여종이 나돌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엠바고’등 탄탄한 구성과 짜임새있는 연출을 강조하는 시나리오도 10여편이 있다.
한 관계자는 “영화가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투자환경이 조성되고 예술영화,상업영화가 고르게 제작돼야 한다”면서 “21세기를 맞아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정부와 영화인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범기자 - 스크린쿼터란 스크린 쿼터가 영화계의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스크린쿼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 제도는 언제 생겼고,어떤 내용일까.
스크린쿼터는 극장에서 자국 영화를 일정 부분 상영하는 것으로 공룡과 같은 미국 할리우드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1960년대초 영국에서처음 실시됐지만 스크린 쿼터제의 모델을 만든 나라는 영화강국 프랑스이다.
우리나라는 1966년 처음 도입,국산영화를 연간 90일 이상 상영하도록 했다.
70년에 상영일수가 30일 이상으로 줄어 들었으나 73년에는 3분의1(121일) 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그러나 당시는 스크린쿼터보다 국산영화를 몇편이상만들면 영화제작자에게 외화수입권한을 준다는 외화수입쿼터제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스크린쿼터는 88년 미국의 직배영화가 상륙하고 외화쿼터제가 폐지되자국산영화를 지킬수 있는 보루로 인식되기 시작했다.93년 전격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스크린쿼터를 시민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영화에 투자하던지하 자금들이 노출을 우려,투자를 기피하면서 영화제작편수가 사상 최저로떨어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영화인과 시민들이 스크린 쿼터 이행감시단을 발족하는 등 우리영화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스크린 쿼터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인도네시아,베네주엘라,아르헨티나,멕시코 등 11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프랑스가 분기별 5주씩,연간 140일을 상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베네주엘라는 18주(126일),인도네시아 48일,콜롬비아 30일 등이다.우리나라는 146일로 가장 많지만 경감 규정으로 인해 실제로는 106일이다.그러나 다른 나라가 스크린 쿼터를 어겼을 경우 극장측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등 간접적인 제재를 취하는 반면우리나라는 최고 30일까지 영업정지를 부과,가장 강력한 강제규정을 갖고 있다.그러나 이는 최근 영화법 개정으로,과태료만 물면 되게 됐다.
스크린 쿼터가 허리우드에맞서 한국영화를 존립할 수 있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견해가 일치한다.스크린 쿼터제가 없는 영국의 경우 지난해 자국영화 30편을 상영하지 못했을 정도이다.그러나 이러한 보호막으로 인해 온실속에 안주,결과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저해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또 개방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스크린 쿼터를 무한정 유지할 수 없다는 데 대해서도 모두 공감한다.
이에 따라 현재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다가올개방시대에 대비,영화인과 정부 당국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향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임태순기자 st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