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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 그래미 받았다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 그래미 받았다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가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먼털 솔로’ 상을 받았다. 제니퍼 고는 4일(현지시간) 그래미 어워즈 사전 시상식인 프리미어 세리머니에서 이 부문 수상자로 호명됐다. 수상 작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해온 프로젝트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이다. 동명의 온라인 공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얼론 투게더 앨범은 재능있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의뢰한 곡과 유명 작곡가들이 기증한 짧은 신작들로 구성됐다. 제니퍼 고는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며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에게 주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았고, BBC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독일 도르트문트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래미 어워즈는 가수,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음악 전문가 단체인 레코딩 아카데미가 1959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미 대중음악 시상식이다. 높은 명성만큼이나 다른 음악 시상식과 비교해 음악적 성취를 중시하는 평단의 보수성 탓에 수상이 어려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상 부문 중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신인상’ 등이 4대 본상으로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로 불린다. 이외에도 팝, 록, 컨트리, 랩, 댄스, 클래식 등 음악 장르별 세부 부문이 있고 작·편곡, 앨범 패키지, 프로듀싱 등 기술적 부문도 시상한다.이날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엔 실패했지만, 클래식 부문을 중심으로 국내 음악가들도 꾸준히 그래미를 받았다. 지난해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제니퍼 고와 같은 부문을 수상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으로 1993년 클래식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음반 엔지니어인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는 그래미를 두번이나 받았다. 2012년 미국 작곡가 로버트 알드리지의 오페라 ‘엘머 갠트리’를 담은 음반으로 그래미 어워즈 클래식 부문 최고 기술상을 받았고, 2016년에는 찰스 브러피가 지휘하고 캔자스시티합창단과 피닉스합창단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베스퍼스: 올 나이트 비질’로 최우수 합창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 [월드피플+] 러시아군 포격에 머리에 파편박힌 우크라 소녀 구사일생

    [월드피플+] 러시아군 포격에 머리에 파편박힌 우크라 소녀 구사일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받고있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4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참상을 전하는 트위터에는 13세 소녀 소피아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달 AFP 통신으로도 보도된 소피아의 사연은 이번 전쟁의 참상을 작은 소녀의 몸으로 생생히 고발한다. 소피아는 지난달 5일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자택에 머물다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문제는 소녀의 머리에 박혀있는 파편. 지금까지 총 3차례의 수술을 통해 파편 일부를 제거했지만 완쾌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입원기간 동안에도 병원은 여전히 러시아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고 부족한 각종 의료품도 소녀 치료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 지난달 말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소피아는 "이제 팔과 다리를 조금 움직일 수 있게됐다"면서 "여전히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곧 병원을 떠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소피아는 "내 꿈은 예술가로 유명한 화가가 되고싶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던졌다. 이번에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소피아의 상태는 과거보다 훨씬 호전됐다. 여전히 머리에 붕대를 감고있지만 파편이 성공적으로 제거돼 이제 자신의 바람대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치료를 받고 이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피아의 상황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례다.유엔 인권사무소는 3일까지 이번 전쟁으로 사망한 민간인 사상자가 총 3455명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사망자는 1417명, 부상자는 2038명이며 특히 어린이 사망자는 121명에 달한다. 다만 이는 확인된 수치만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권사무소 측은 민간인 사상자의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무차별적인 포격과 미사일 공습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과거 행동 후회한다”...러 소프라노, 푸틴 지지했다 쫓겨나자 결국

    “과거 행동 후회한다”...러 소프라노, 푸틴 지지했다 쫓겨나자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달 초 세계 최고 수준 오페라단에서 퇴출됐던 러시아 유명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51)가 30일(현지시간)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네트렙코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분명하게 규탄하며, 전쟁의 희생자 및 그 가족들을 동정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러시아 지도자와 연결돼 있지도 않다”며 “과거 나의 행동이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이를 후회한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는 “올림픽 개막식이나 시상식 등에서 몇번 만난 것 밖에 없다”며 “러시아 정부로부터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네트렙코는 세금도 현지에서 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나는 조국 러시아를 사랑하며 예술을 통해 평화와 화합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뒤 5월부터 유럽에서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네트렙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크게 비난받았다. 이 때문에 그가 몸담고 있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는 지난 3일 “네트렙코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철회하라는 우리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향후 예정된 공연에서 물러나게 됐다”며 퇴출을 발표했다. 네트렙코는 그동안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2008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인민예술가’(PAR) 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도네츠크 지역의 오페라 하우스에 거액을 기부했다. 친러 독립세력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 [문화마당]파리 패션위크에 내리친 눈보라/최나욱 건축가·작가

    [문화마당]파리 패션위크에 내리친 눈보라/최나욱 건축가·작가

    코로나19로 인해 장장 2년은 치뤄지지 못했던 패션쇼가 재개되었다. 온라인 쇼로 대체하며 절감했던 런웨이 비용도 다시 수억원 대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10분 남짓한 쇼를 위해 쓰는 금액 말이다. 장소 대관에만 적게는 수천만원이 들고 음악이나 조명, 모델 인건비 등에도 그만한 지출이 필요하다. 솔직히 상상도 잘 가지 않는다. 한번은 루이비통으로부터 한국에서 크루즈 쇼를 할 만한 장소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일교차 큰 서울의 가을날 1000명 이상의 관객 동선을 해결할 만한 장소를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참고로 그때 쇼는 인천공항 비행기 격납고에서 열렸다.  하이라이트인 무대 디자인에 소요되는 예산은 도저히 가늠키가 어렵다. 2017년 파리 그랑팔레에서의 쇼를 위해 샤넬은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로켓’을 만들었고, 2014년 두바이에서의 쇼는 최소 20억원가량을 투자했다고 알려졌다. 관람객들을 위해 예약해주는 호텔과 항공권, 에스코트 비용은 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분야 가운데 건축의 규모가 가장 크다 하는데, 패션쇼가 잠깐 만들고 치우는 이 시간 대비 금액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상이 화려한 행사장의 연속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 10분을 위해 소비되는 수십억원을 매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캣워크에 눈을 고정시키면서도, 동시에 몇 분 지나 사라지는 요소들을 살피고 예산을 추정하다보면 이 제한된 환경이 별세계만 같다. 순간의 화려함을 좇는 패션쇼 현장에서 바깥에서의 삭막한 일상을 떠올리는 대비란 그저 시시껄렁한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럭셔리란 무엇인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 누군가의 고급 별장부터,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동시설을 동시에 고민하는 건축가라면 한번쯤 답해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건축가가 되기 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공산주의에 대한 글을 쓰던 렘 콜하스는 2004년부터 프라다의 런웨이를 전담하며 아예 ‘럭셔리란 무엇인지’에 대답하는 책을 냈다. 그리고 지난 1월 타계한 스페인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은 럭셔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외형이 아니라 이외의 것, 바깥의 것을 끌어들여 공존할 줄 아는 것. 이따금 일시적인 화려함에 잠식되었다가 깨어났을 때, 럭셔리 한복판에서의 존재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일 파리 르부루제 전시센터에서 치러진 발렌시아가의 런웨이는 그러한 고민이 응집돼있었다. 루이비통, 베트멍, 발렌시아까지 근 10년 동안 전세계 럭셔리를 진두지휘하던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사실 조지아 출신으로 1993년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기억을 갖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 ‘이 와중에 럭셔리 패션쇼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믿으면서도, 종종 현실 세계에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회한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쇼를 취소할까’도 고민했더라는 발렌시아가 22FW는 우크라이나 시 낭송으로 시작해, 행사장에 강한 눈보라를 내리치는 무대를 연출한다. 막대한 금액이 투자된 이 런웨이에, 이날을 위해 모든 일상을 갈아넣은 모델과 스탭들에, 럭셔리를 감상하러온 소수의 VIP 고객들에게 차디찬 눈보라가 내리친 이유다. 화려함의 극단을 일상으로 삼는 누군가가, 제한된 사치의 환경에서 제 존재의 의미와 럭셔리의 본질을 묻는 필사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 뱅크시의 ‘반전 작품’ 경매 후 우크라 소아병원에 기부

    뱅크시의 ‘반전 작품’ 경매 후 우크라 소아병원에 기부

    세계적인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 한 점이 경매에 나와 판매 기금 모두 우크라이나 소아병원에 전달된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현지언론은 뱅크시의 2005년 작 'CND 솔저스'(CND Soldiers)가 경매에 나와 8만1000파운드(약 1억2800만원)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뱅크시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이 작품은 소총을 든 두 명의 군인이 핵군축캠페인(CND) 상징을 그리는 모습을 담고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여전히 고전 중인 상황에서 이를 반전시킬 목적으로 소형 핵폭탄를 사용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적절한 반전 작품이 경매에 나온 것. 이번 작품의 경매는 익명의 소유자가 영국 경매회사 마이아트브로커닷컴에 기증해 이루어졌으며 판매 기금은 모두 우크라이나 최대 어린이병원 ‘오흐마디트’에 기부된다. 마이아트브로커닷컴 측은 "이 병원은 현재 전쟁 중 부상당한 어린이들과 중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면서 "향후 어린이와 가족, 의료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일명 ‘얼굴 없는 화가’로 전 세계에 알려진 뱅크시는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은 전쟁과 아동 빈곤, 환경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그렸다 하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킬 만큼 영향력이 크다.   
  • 창원 경남스틸 상설전시관에서 이인영 초대전

    창원 경남스틸 상설전시관에서 이인영 초대전

    포스코가공센터인 경남스틸㈜(경남 창원시 성산구 연덕로 15번길 10)은 회사안 상설전시관 송원갤러리에서 4월 7일 부터 29일까지 이인영 작가 초대전을 연다고 30일 밝혔다.이번 초대전은 2012년 송원갤러리 개관기념 소장전을 시작으로 송원갤러리에서 20번째 열리는 전시회다. 이인영 작가는 사진, 회화, 민화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종합예술가이다. 이번 초대전에는 구름, 바람, 빛 여명 등을 소재로 ‘자연’을 민화와 접목시켜 전통재료인 한지를 조형화하는 표현방식으로 창작한 이인영 작가의 작품 40여점이 선보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인영 작가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서 “말을 걸면 한참동안 긴 대화로 이어질 것만 같이 자연스레 글과 그림이 한지의 씨줄 날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다”고 평가했다. 송원갤러리는 경남스틸 본사 건물 5층에 있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전시회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까지이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열린세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고/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고/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페북에 그림을 아무런 설명 없이 올린 적이 있다. 팍팍한 삶에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림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여성화가들에게 집중하게 됐다. 전공자인 나도 처음 보는 화가와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은 매우 뛰어났고 작가의 생애도 흥미롭다. 이들은 미술사에 획을 긋는 작품을 만들고도 역사 서술에서 배제됐다. 우리가 이들을 몰랐던 건 이 때문이다. 현상만 보자면 아무 맥락 없이 여성화가들이 불쑥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다. 눈에 띄는 건 당시 북구의 여성인권운동과 교육 현황이다. 핀란드 1906년, 노르웨이 1913년, 덴마크 1915년, 스웨덴은 1921년에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은 동반 성장했다. 예술교육에서의 젠더 평등도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다른 유럽 국가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여성을 받지 않았을 때인 19세기 중반에 이미 북구에선 여성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거나, 미술학교를 세우면서 처음부터 남녀를 동등하게 교육했다. 25세 이상의 여성을 성인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지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성과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이들 여성 예술가 중에서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 적지 않다. 여성인권운동이 예술계에서의 젠더 평등과 별개가 아니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재능만 가지고 예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혐오와 배제의 철망이 촘촘했다. 나이 든 사람만 여성에게 적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기존 아카데미에 저항했던 진보적인 스웨덴의 ‘청년파’는 협회의 정관에 아예 여성들은 회원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고 명시했다. 여성 예술가들은 아카데미의 늙은 전통 세력과도 싸워야 했지만 젊은 청년들과도 싸워야 했다. 방법은 갖가지 형태로 ‘뭉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협회와 소그룹을 조직했고 함께 유학을 떠났다.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나 비싼 수업료를 내야 했지만 북구의 여성들은 자국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렇다. 당시에도 북구에서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똑같이 장학금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성 예술가들이 늘어날 수밖에. 그러나 제약은 여전했다. 북구 여성들이 함께 유학하고 여행하는 것을 곱게 볼 리 만무했다. ‘헤픈 여자’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귀국 후 전시 기회를 얻기도 힘들었다. 어렵사리 끼어들어도 중요한 자리는 남성들 차지였고 여성의 작품은 구석진 자리에 놓였다. 비평은 아예 여성 예술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작품을 팔 기회도 드물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들 여성화가의 작품은 개인 소장이 유난히 많다. 권위 있는 미술관에서는 그들의 작품을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우리는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혜성처럼 나타난 무명 가수들의 개성과 매력에 감탄하며 어디에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났느냐고 묻지만, 개인의 능력을 넘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평가 기준의 불공정함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젠더 불평등만이 아니라 연령과 성소수자, 지역과 장애인 차별 등 배제의 철망은 지금도 촘촘하다. 그럼에도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믿고 그게 공정이라 말한다. 19세기에도 알고 있던 것을 21세기에도 모른다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 ‘피카소에 영감’ 아프리카 가면, 경매서 56억원에 낙찰…“도난품” 주장 나와

    ‘피카소에 영감’ 아프리카 가면, 경매서 56억원에 낙찰…“도난품” 주장 나와

    19세기 아프리카 원주민이 만든 가면이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한 경매장에 나와 420만 유로(약 56억 3700만 원)에 팔렸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지역 국가 가봉의 최대 부족인 팡족이 오래전부터 의식에 사용하던 이 가면은 예상 낙찰가인 40만 유로의 10배가 넘는 가격에 지난 26일 새 주인을 찾았다.은길(Ngil) 가면이라고도 불리는 이 가면은 진귀한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등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낙찰 직후 한 남성이 “저 가면은 도난당한 것”이라고 소리치자 경매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동료 6명과 함께 경매장 뒤편에 있던 그는 자신들을 몽펠리에에 사는 가봉인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면은 식민지 시대에 약탈한 것으로 우리는 가봉인들을 대표해 고소할 예정”이라면서 “프랑스인들이 선조들과 팡족으로부터 훔쳐간 가면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경비원들은 그를 비롯한 가봉인들을 경매장 밖으로 쫒아 냈지만 이들은 밖에서 경매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경매사 장크리스토프 주세피는 “경매는 전적으로 합법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매에 붙여진 가면은 프랑스 식민지 총독이었던 르네빅토르 에드워드 모리스 푸르니에의 다락방에 100년 여 동안 잠들어 있다가 그의 후손들에 의해 발견됐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와 콩고공화국에 차례로 파견됐던 푸르니에 총독은 1917년 가봉 순방 중 해당 가면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 러 공격에 우크라 문화유산 등 39곳 파괴…“정체성 지우려는 것”

    러 공격에 우크라 문화유산 등 39곳 파괴…“정체성 지우려는 것”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지금까지 최소 39곳의 문화유산과 박물관 등을 파괴하거나 약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로 보고 있다. 29일 미국 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키이우(키예프)에 있는 비영리 정치단체 ‘트랜스애틀랜틱 대화 센터’(Transatlantic Dilogue Center)는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전국에서 최소 39곳의 주요 역사·문화 시설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하고 폐허로 변했다고 밝혔다. 하르키우 미술관의 미즈기나 발렌티나 관장은 예술작품 2만5000여 점이 있는 미술관 주변에 러시아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면서 직원들이 작품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포격을 받은 17세기 유산 하르키우 홀리 도미션 성당은 피해를 입었다. 성당 안에 있던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이 공격으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깨지고 일부 장식물들이 심하게 파손됐다.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마리우폴 시의회는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2000여 점이 전시된 아르히프 쿠인지 미술관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1만5000여 명이 학살당한 드로비츠키 야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파괴했다고 말하며 “정확히 80년 만에 나치가 돌아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7곳 있으며 1954년 체결된 헤이그협약은 역사적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목표로 공격하는 행위를 국제법상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이에 일부 문화 당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문화유산 파괴가 이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이리나 포돌랴크 전 차관은 “러시아가 주택과 병원 학교는 물론 문화유산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즉 우리 유산과 역사, 정체성,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은 역사문화 유산 파괴를 막기 위해 중요한 유물 등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설물 위에 보호 장치를 씌우는 등 대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대중지성은 없다/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대중지성은 없다/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문학선생이자 평론가로서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작품을 읽으면서 갖게 된 물음. 인간은 과연 이성적인가?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과 정념(passion)에 휘둘리지 않는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옳으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믿기에 옳다고 합리화하지 않는가? 정념이 지닌 힘과 한계를 강조한 별종 철학자가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를 다룬 책 두 권을 읽었다. ‘에티카’를 강의한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진태원)과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고용한 폭풍, 스피노자’(손기태). 새삼 주목한 건 대중을 대하는 스피노자의 시선이다.  뛰어난 작가나 예술가가 대중에게 오해받고 고독한 삶을 강요받은 사례는 많다. 스피노자도 그렇다. 태어나고 속했던 유대교의 전통적 교리나 관습에서 벗어나려 했던 스피노자는 파문당한다. “모든 저주가 그를 덮칠 것이며 주께서 하늘 아래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없애실 것이다”라는 저주와 함께. 대중에게 신앙의 자유, 사유의 자유를 지킬 걸 요구했던 그에게 돌아온 건 광신도의 살해시도였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택한 길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지성이었다.  스피노자가 평생 고민했던 화두는 종종 이성보다는 충동과 정념에 이끌리는 대중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성적이며 훌륭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었다. 대중의 정념에 호소해 권력을 얻으려는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나는 스피노자가 시도한 사유의 모험에서 발견한다. “이로써 사람들이 왜 참된 이성보다 의견에 더 동요되는지, 왜 좋음과 나쁨에 대한 참된 인식이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자주 온갖 종류의 욕심에 굴복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주었다고 믿는다. 이로부터 시인의 다음과 같은 시구가 생겨나게 되었다. 나는 더 좋은 것을 보고 인정하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게 되네.”(에티카) 대부분의 사람은 이성적으로는 올바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에 사로잡혀 이성이 파악한 것과 반대되는 길을 택한다.  대중지성, 집단지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집단은 사유하지 못한다. 개인만이 사유한다. 지성은 드문 것이다. “고귀한 모든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에티카) 대중민주주의 정치에서 정념과 이성의 역할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파시즘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파시즘이 탄생한다. 민주주의의 딜레마다. 관건은 시민사회가 지혜로운 이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이다. 각 시민이 지혜로운 존재가 될 때만이 민주주의가 내실을 갖는다. 그렇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의 자기 파괴적 체제로 추락한다. 원래부터 좋은 정치체제는 없다. 대중의 자유와 능력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 어떤 정치 체제든 이 점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우중(愚衆)주의로 전락한다. 묻게 된다.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와 있는가.
  • 죽은 동물 통해 삶의 화두를 던진, 그만의 ‘메멘토 모리’[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죽은 동물 통해 삶의 화두를 던진, 그만의 ‘메멘토 모리’[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최초 예술 형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구석기 동굴 벽화다. 동굴 벽화는 안전한 사냥을 기원하고,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제의와 주술이 목적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염원’은 이집트 고분과 조각상, 로마시대 돌로 만든 관, 르네상스 시대 많은 그림들과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18세기 역사화까지 이어진다. 미술은 죽음을 재현하거나 기억하기 위한 ‘메멘토 모리’를 지속해 왔다. 미술의 오랜 보편적 소재인 죽음은 아우슈비츠, 세계대전 등 수많은 충격적 사건을 거쳐 2년 전 발발한 팬데믹으로 인해 수없이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죽음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 중에는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그는 1989년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을 졸업한 뒤 동창생들과 결성한 ‘젊은 영국 예술가’(YBAs)의 프리즈 전시를 기획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죽음을 전통적인 ‘재현’ 방식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줬다. 1990년 미술관에 전시된 유리상자 속 죽은 소의 머리와 구더기, 그리고 죽은 파리의 사체들과 눈앞에서 반복해서 죽어나가는 파리들을 보여 준 ‘천년’(Thousand Years)은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탄생과 죽음의 반복적 굴레를 보여 주는 듯한 이 작품은 예술이 아닌 살생기계일 뿐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죽음을 재현해 온 미술계의 전통에 작은 변화의 불씨를 일으킨 사건이 됐다.2년 후 그는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제1회 ‘젊은 영국 예술가’전에서 커다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으로 가득 채운 수조에 넣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공개했다. 그는 계속해서 동물들을 토막내어 수조에 담아 전시하는 작품을 공개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인 ‘분리된 엄마와 아이’는 절단된 암소와 송아지를 각각 포름알데히드 용액으로 채운 수조 속에 넣어 전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95년 가장 괄목할 만한 전시나 미술활동을 보여 준 50세 미만 영국 미술가에게 주어지는 터너상을 받았다. ●실제 해골을 작품에 이용하기도 2007년 발표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1720년에서 1810년 사이 살았던 유럽인의 실제 해골을 티타늄으로 주형을 뜬 다음 8601개 다이아몬드를 붙인 작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 속 해골을 연상시킨다. 해골은 죽음을, 다이아몬드는 허망함을 상징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관통해 온 오랜 주제인 삶에 대한 허망함, ‘메멘토 모리’를 보여 주고 있다. 허스트는 상어 등 생명체를 작품 재료로 사용해 새로운 조형적 의미를 만들어 냈으며, 생명 연장 수단인 약을 통해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로 주제를 확장시켜 나갔다. 1988년 ‘약장’으로부터 시작된 ‘약 시리즈’는 1989년 골드스미스 졸업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약장’(1988~2008)을 시작으로, ‘점 작업’(1986~2011), ‘약국’(1992), 그리고 2005년의 ‘새로운 종교’로 연결된다. 앞서 언급된 동물 사체를 이용한 작품들보다도 이전에 시작된 시리즈로,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약 시리즈는 그의 어머니가 약에 대해 보여 준 믿음에 의문을 제시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어머니가 약국에서 보여 준 약은 믿으면서 갤러리에서 본 약은 믿지 못하는 태도에 주목해 약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약 시리즈 중 하나인 ‘점 작업’은 평면적이고 패턴화된 장식적 형태다. 점들은 빼곡하고 불규칙적으로 배열돼 있기도 하고 균일한 격자 형식으로 칠해져 있기도 하다. 그는 2011년 점 작업을 더이상 안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12년 가고시안갤러리에서 ‘완결된 점 작업’(1986-2011) 전시를 진행했다. 그는 약학사전과 매년 최신 정보로 갱신되는 처방약에 대한 제약회사 정보 편집물을 참조해 그의 점 작업 제목으로 쓰일 화학물 이름을 선정했지만, 각 색점들은 그 성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는 않다. 그는 단지 화합물을 제목으로 붙임으로써 약이 주는 효과처럼 색채가 주는 기쁨을 정의하고자 했다. 알록달록한 점은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점이 된다. 그의 어머니가 질병을 치유해 주는 약을 맹목적으로 믿은 것처럼 색채의 긍정적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때로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화합물의 이중적인 기능에 주목한다. ●NFT·암호화폐 등 패러다임 전환 미술은 언제나 동시대를 반영하고, 시대 흐름에 발을 맞춰 왔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최근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2021’ 경매를 시작으로 미술시장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대체불가능토큰(NFT) 또한 마찬가지다. 정보기술(IT) 업계나 일부 영역에서만 논의됐던 NFT 개념은 비플의 작품 판매를 시작으로, 빠른 속도로 미술계에 유입됐다. 소더비, 필립스 등 대표적인 경매업체들이 NFT 미술시장에 진출하고 유명작가들 또한 NFT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허스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순히 작품을 NFT로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할 수 있는 NFT 방식을 통해 미술 작품 거래과정에 질문을 던졌다. ‘통화’는 그가 2016년에 A4 크기의 종이에 직접 손으로 칠한 점들로 표현된 1만장의 작품으로, 그의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장당 2000달러(약 244만원)에 NFT로 변환해 발행했다.독특한 점은 구매자에게 이 작품을 NFT로 유지할지 실제 작품을 소유할지를 1년 안에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NFT로 유지할 경우 실제 작품은 소유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제 작품을 소유하게 될 경우 NFT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즉 구매자가 작품을 샀지만 직접 소장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교환할 수 있는 NFT’ 방식으로, 블록체인 발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물과 연동된 NFT를 사서 실물을 소유할 수도, NFT를 소유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 허스트는 이 프로젝트에 착수하기에 앞서 암호화폐로 작품을 파는 실험을 시도했다. 최근 판화 작품 ‘벚꽃’ 연작을 온라인으로 팔아 결제수단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시켰다. 통상 판화는 50점, 100점 등 한정판으로 제작해 팔지만 허스트는 ‘벚꽃’ 연작을 주문이 들어온 만큼 찍었다. ‘벚꽃’ 연작 판화 제작사(헤니)에 따르면 온라인 판매에 67개국 4000여명이 몰렸다. 장당 3000달러(약 339만원)인 판화 7481점이 팔려 2240만 달러(약 25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전체 프로젝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 강조했다. ‘통화’는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그리는 작업뿐만 아니라 작품을 NFT로 변환하고 그것을 사고파는 행위까지 작품에 포함되는 것이라 말했다. 허스트의 작품에는 항상 윤리 문제에 대한 논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조차 스펙터클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비난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미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기대하고 주목하고 있다. 그는 미술계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 준다. 숨 프로젝트 대표
  •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범인에게는 침을, 바보에게는 존경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는 1971년 자신의 아틀리에 벽에 이런 낙서를 남겼다.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바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한길을 걸었던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고독하게 예술혼을 불태웠다. 지난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는 한평생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끈질기게 추구했던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노실’(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방)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시장은 작가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해 만들어졌고 1950~1970년대까지 그가 만든 조각, 회화, 드로잉 등 240여점이 전시됐다. ‘노실의 천사’란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 즉 순수한 정신적 실체를 뜻한다. 오는 5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권진규 개인전 중 역대 최대 규모로 1947년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1973년 5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만든 주요 작품을 총망라한다. 동물상, 여성 두상과 흉상, 자소상, 부처와 예수상, 승려상 등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전시하며 주요 제작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 제작 과정도 소개한다. 전시작은 유족의 기증품 외에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이뤄졌다. 여기엔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장한 ‘말’(위·1965년 제작 추정)도 포함됐다. 전시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입산’, ‘수행’, ‘피안’ 등 세 시기로 구성됐다.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스카프를 맨 여성’, 건칠 기법으로 제작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이중섭의 ‘황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흰소’ 등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고려대 박물관을 찾아 한참을 응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사를 걸친 자소상’(아래)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작가의 평화로운 미소가 긴 여운을 남긴다. 권진규는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한 작가였다. 여성의 모습도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았고 작품 곳곳에 자신만의 유머도 심어 놓았다. 그는 아틀리에 옆 조그만 방에서 자신이 추종했던 프랑스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수행하듯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탐구 정신이 담긴 메모와 기록들도 함께 전시됐다. 세속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던 작가는 한국 화단의 몰이해로 인해 좌절하고, 불교에 침잠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생은 공(空)’이라고 적힌 마지막 메모에서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깊은 고뇌가 전해진다. 전시를 기념해 작가가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매주 토요일 특별 개방된다. 다음달 특별 공연과 학술대회도 열린다.
  • “노동운동 혐오 여전…‘투쟁’ 고정 이미지 탈피하고 싶어”

    “노동운동 혐오 여전…‘투쟁’ 고정 이미지 탈피하고 싶어”

    4464일. 해가 열두 번 바뀌고 계절이 마흔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길 위에 있었다. 법원에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에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이런 투쟁과 연대의 시간이 기록돼 있다. 이수정 감독은 대전 공장에서 기타 기능공으로 일했던 임재춘씨 등 해고노동자들의 길 위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을 받는 등 평단의 박수를 끌어냈다. 이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12년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복직 투쟁이 이어질 줄 몰랐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록 작업을 조급해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콜트·콜텍은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유명한 기타 브랜드였다. 그러나 지난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 투쟁에 들어간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노사 합의가 이뤄진 2019년 4월까지 이어졌다. 영화는 노동자들의 격한 투쟁 장면보다는 이들이 밴드·연극·시·그림 등 예술 활동을 하면서 사측과 해고 제도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투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기타를 만들던 사람들의 복직 투쟁이어선지 많은 예술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뮤지션들은 ‘밴드를 만들자’고 했고 배우들은 ‘연극을 해보자’고 했다. 이 감독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고립되는 걸 매우 두려워했다”며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투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 또한 했다”고 말했다. 작품 이름이 ‘재춘언니’인 이유는 임재춘 씨가 동지들과 선보인 연극에서 여자 캐릭터인 오필리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임씨가 솔직한 마음을 써 내려간 농성 일기도 등장한다. 그를 딸들과 갈등하고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해고노동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내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다”고 했다. 그는 앞서 희망버스와 그곳에 탄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2012)를 통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5년에는 세월호 이후 1년여간 유족들의 삶을 기록한 ‘나쁜 나라’(2015)를 선보이는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였다. 이 감독은 “자기 몫이 없고 결함이 있는 존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 성파스님 “조계종 갈 길은 한국 정신문화 주축 되는 것”

    성파스님 “조계종 갈 길은 한국 정신문화 주축 되는 것”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도(道)가 있습니다. 그 도를 알아서 잘 행하기를 바랍니다.” 중봉 성파 대종사는 24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 추대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종정은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다. 일반 행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고, 계율을 관할하는 전계대화상을 위촉할 수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이기도 한 성파 종정은 “오늘날 사회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개개인이 모두 한 걸음 양보하고, 악심 대신 선심을 품으면 봄바람같이 꽃이 피고 잎이 필 것”이라고도 했다. 1960년 스물 하나에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성파 종정은 20년 뒤 통도사 주지가 됐다. 26안거를 완수한 성파 종정은 2013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이어 이듬해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품서됐고 2018년부터 통도사 방장을 맡았다. 특히 도자대장경 불사(佛事)와 천연 염색, 옻칠 그림, 한지공예 등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성파 종정은 “예술가도 아닌데 언론에서 부풀린 게 아닌가 싶다. 종정에 오르려고 한 게 아니니 옆에서 놔뒀으면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서구 어느 나라에도 우리가 뒤지지 않는다. 한 치도 양보하고 싶지 않고 앞으로도 그 길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선거 이후 극단으로 치닫는 정국과 새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주제넘은 말을 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살림살이’를 잘하기를 바라고 두고 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살림이라는 말은 불교 ‘최절인아산 장양공덕림’의 ‘산림’에서 나왔다. 나만 잘났다고 각 세우는 인아산을 무너뜨리고, 공덕의 숲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라며 “한 국가의 지도자뿐 아니라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림을 잘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정의 임기는 5년이고 한 번 연임할 수 있다. 성파 종정은 “우리 사회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전통 불교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조계종이 나아갈 길은 여태껏 그랬듯 한국 정신문화의 주축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정은 개인이 아니라고 한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방향을 설정해 놓진 않았다. 여러 훌륭한 스님에게서 좋은 안이 많이 나올 테니 따라가겠다”고 했다. 조계종은 오는 30일 제15대 종정 추대 법회를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한다. 법회에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 지도자들과 함께 성파 종정과 가까운 문화계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간발의 차이/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간발의 차이/미술평론가

    뮤즈와 아폴론 사이에서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다. 그가 노래하면 야수도 고분고분해지고 초목도 귀를 기울였으며 극악무도한 인간도 순해졌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굉장히 복잡하고 방대한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하계에 내려가는 얘기다. 이 얘기의 가장 오랜 형태는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까지 문학, 회화, 오페라, 발레, 영화 등 숱한 작품에 영감과 소재를 제공했다. 아름다운 에우리디케는 초원을 거닐다 독사를 밟아 목숨을 잃었다. 일설에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무뢰한을 피해 달아나다 그리 됐다고 한다. 미칠 듯이 된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찾아 하계로 내려갔다. 온갖 난관을 넘어 하계의 신들 앞에 나아간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돌려 달라고 읍소했다. 신들은 그의 노래에 마음이 움직여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단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 그녀를 바라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어둠을 헤치고 지상에 거의 닿을 무렵 오르페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에우리디케는 하계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프랑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년)에는 주인공인 화가 마리안, 마리안의 모델 엘로이즈, 하녀 소피, 이렇게 세 젊은 여성이 이 일화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엘로이즈가 책을 읽는다. 낭독을 마치자 소피는 분개하며 외친다. “그럴 수가! 오르페우스는 좀더 주의했어야죠!” 가장 상식적인 반응이다. 오르페우스는 왜 그 엄중한 순간에 실수를 저지른단 말인가. 마리안은 예술가다운 해석을 내놓는다. 오르페우스가 돌아본 것은 시인의 마음이라고. 그렇다. 시인은 행동하지 않는다. 시인은 과거를 반추하고 기억할 뿐이다.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앞서가는 오르페우스를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것은 연인의 입장이다. 연인들은 항상 상대도 날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의심한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다 좋지만 나는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생각한다. 간발의 차이로 아내를 영영 잃은 후 그가 느꼈을 비통함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후회와 쓰라림을.
  • 인권 불모지 ‘전주 선미촌’ 문화·청년 창업 싹 틔우다

    인권 불모지 ‘전주 선미촌’ 문화·청년 창업 싹 틔우다

    전북 최대 성매매집결지로 악명이 높았던 전주 ‘선미촌’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집창촌이 완전히 퇴출된 첫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성매매 업소가 모두 문을 닫아 불법 업소들이 70여년 만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22일 찾은 전주 덕진구 물왕멀2길과 권삼득로 일대 선미촌은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85개 업소에 3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 있던 홍등가였다. 다닥다닥 붙은 유리방과 쪽방 문에는 ‘임대’나 ‘매매’를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철거가 진행되는 곳도 눈에 띄었다. 성매매 업소를 리모델링해 문화예술시설이 들어선 곳도 많았다.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17년이나 더 버텨 온 이곳이 청년 예술가와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는 극적 반전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성매매 업소들은 ‘놀라운 예술터’, 동네 책방 ‘물결서사’, ‘뜻밖의 미술관’, ‘노송늬우스센터’ 등으로 변했다. 전주시가 성매매집결지를 인권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두운 공간에 밝은 빛을 쬐여 독버섯이 자멸하게 하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2017년 6월에는 전주시가 선미촌에서 가장 큰 성매매 업소 건물을 매입해 시청 부서 1개 팀을 전격 배치했다. 이후 2020년까지 83억원을 들여 성매매 업소와 빈집을 사들이고 ‘성평등전주’, ‘새활용센터 다시봄’ 등을 만들었다. 또 소공원 조성, 골목 경관 정비, 가로수 식재, 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해 동네 분위기를 바꿨다. 방범용·불법주정차 단속 폐쇄회로(CC)TV도 25대 설치해 성매매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직업교육을 알선하고, 선미촌에 작업실을 만드는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주시의 전략은 적중했다. 성매매 업소는 2014년 49곳에서 2018년 21곳, 2020년 10곳, 지난해 6월에는 3곳으로 줄었다. 지난해 12월에 마지막 업소가 문을 닫았다. 선미촌 문화재생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도시재생 사례 공유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아 전국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의 모범 사례가 됐다.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는 여성이 행복한 길(여행길) 조성을 위해 2억원 규모의 선미촌 리빙랩(Living Lab) 사업을 펼치고 있다. 리빙랩은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일상 속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생활 실험실이다.
  • 한국예총, 엠엔비글로벌과 예술창작품 NFT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한국예총, 엠엔비글로벌과 예술창작품 NFT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지난 22일,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는 대한민국예술인센터 20층 한국예총 세미나실에서 엠엔비글로벌(주) (이하 엠엔비글로벌)과 예술창작품 NFT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한국예총과 엠엔비글로벌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예술창작품 거래 선진화 사업을 추진하고 다각적 업무 협력 및 상호 교류를 통한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예총 이범헌 회장은 이번 업무협약에 대해 “예술품이 모든 플랫폼을 통해 NFT, 메타버스 등으로 향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만드는 계기이자 서로 상생을 이루어 상호 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협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한국예총은 엠엔비글로벌과 함께 추진하는 사업을 위해 예술창작품 관련 콘텐츠 제공, 홍보, 마케팅 등 다각적 측면에서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엠엔비글로벌 김상범 의장은 “엠엔비글로벌은 실물 예술작품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NFT 플랫폼을 기획 중이며, 한국예총의 위상에 걸맞게 좋은 창작자들을 발굴, 지원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국내 예술가들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예총과 엠엔비글로벌이 협력하면 한국의 문화예술인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한국예총 이범헌 회장, 허성훈 사무총장 및 각 본부장과 엠엔비글로벌 김상범 의장, 하태형 대표 등 양 기관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국예총은 건축, 국악, 문인, 연예, 연극, 영화, 음악, 미술, 사진, 무용 10개 회원협회와 전국 170여개 시·도 연합회 및 지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술문화의 교류 촉진과 예술인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1962년에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 예술문화계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그리고 엠엔비글로벌은 트레저버스(Treasureverse) 플랫폼, 픽토스 코리아 (Pictos Korea) 등 NFT 플랫폼을 통해 실물 및 디지털 자산 거래 유통시스템을 확보하고 메타버스, NFT, 블록체인 기술을 융합한 글로벌 탈중앙화 금융 솔루션 (Global Decentralized Finances Solution)을 구축하는 중견기업이다.
  • 소외된 덴마크 여성 작가들, 양혜규가 되살리다

    소외된 덴마크 여성 작가들, 양혜규가 되살리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대미술가 양혜규 작가가 덴마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오랜 시간 덴마크에서 소외된 여성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라 흥미롭다.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7월까지 펼쳐지는 ‘양혜규: 이중 영혼’ 전시에서 양 작가는 50여점을 소개하는데, 이중 신작 조각은 그린란드계 덴마크 시각예술가 피아 아르케(1958~2007), 덴마크 조각가 소냐 펠로브 만코바(1911~1984)의 생을 재조명한다. 2018년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의 ‘볼프강 한 미술상’을 받는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양 작가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덴마크에서 전시를 연다고 했을 때 고민이 컸는데, 아르케와 만코바는 내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됐던 인물들”이라고 밝혔다. 아르케는 북극해 연안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소재로 그린란드를 향한 덴마크의 식민주의적 정책에 비판적인 작업을 했고,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만코바 역시 단일한 문화와 국가적인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 인물이다.양 작가는 “아르케와 만코바 모두 비주류적이고 소외된 생애를 살았지만,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았고, 관련 단체들과 함께 이들을 발굴하다시피 했다”고 전했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족과 이들을 다루는 덴마크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읽힐 수 있어 이번 전시를 앞두고 수많은 설득을 거쳐야 했다. 양 작가는 “조심스러웠지만, 오히려 덴마크 작가가 아니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미술관이 결국 두 작가를 기리는 전시실을 별도로 설치하고 그들의 작품도 소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양 작가는 다음 달 개막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단체전 ‘종잡을 수 없는 침묵’을 시작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 3인전에 참여하고, 베를린의 바바라 빈 갤러리과 프랑스 파리 샹탈 크루젤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연다.
  • 전북 최대 성매매집결지 문화·생활공간으로 거듭난다

    전북 최대 성매매집결지 문화·생활공간으로 거듭난다

    ‘전북의 대표적인 성매매집결지였던 전주시 덕진구 물왕멀 2길과 권삼득로 일대 옛 도심. 한 때 300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운집해 있던 ‘홍등가’였지만 다닥다닥 붙은 쪽방들은 을씨년스러운 슬럼가로 변한지 오래다. 볼썽사나웠던 유리방들은 임대나 매매로 내놓기도 했고 철거 준비 중인 곳도 눈에 띈다. 해질녁이면 활기를 띠던 이곳은 인적 조차 없는 암흑가로 변해 으시시한 분위기다. 오히려 성매매업소를 리모델링한 문화예술 가게가 드문드문 들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뚝너머’, ‘선미촌’으로 불리던 전주시 중심가의 성매매집결지가 문화와 생활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정비대상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쉽게 손 대지 못했던 사창가가 도시재생의 힘에 의해 퇴출된 전국 첫 사례다.전주시는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노송동 성매매 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22일 밝혔다. 1940년대 후반부터 음습한 상태로 영업을 계속해오던 불법 업소들이 70여년 만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85개 업소가 불야성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죽은 동네가 됐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17년이나 버텨오다 마지막 남은 2~3개 업소가 스스로 문을 닫으면서 사창가로 낙인 찍혔던 이곳이 재탄생 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이제 선미촌은 청년 예술가와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매력적인 장소로 변했다. 실제로 선미촌에는 놀라운 예술터, 동네책방 물결서사, 뜻밖의 미술관, 노송늬우스센터 등 청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문화시설이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는 카페 등을 창업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하는 공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전주시 서노송예술촌 홍성진 팀장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부정기적으로 영업을 하는 업소가 없지 않았지만 최근들어서는 모두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도시정비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 머지 않아 새로운 거리로 재탄생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전주시청 코 앞에서 버젓이 성매매 선미촌은 전주시청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위치한 옛 도심이다. 시청 북쪽 6차선 도로인 기린대로만 건너면 즐비한 유리방이 시야에 들어온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이루어진 약 2만㎡ 공간은 여인숙과 주택을 불법으로 개조한 업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 이후 성매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재생산됐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 유곽에 종사했던 여성들이 광복 이후 여행객이 많은 전주역 근처로 흘러들어오면서 형성됐다. 엄연한 불법행위지만 마치 합법화된 공간처럼 오랜 기간 상권을 형성하며 뿌리를 내렸다. 경찰 등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독버섯처럼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왔다. 청소년유해환경업소가 집단으로 번성하면서 이 일대는 인구유입이 안돼 도심공동화의 주요인으로 떠올랐고 도시 균형발전을 가록막는 암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선미촌이 본격적으로 재정비 대상이 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가족부가 성매매집결지 폐쇄 추진 방안을 지자체와 경찰에 시달하면서 부터다. 전주시는 여성가족부 보다 1년 앞서 성매매집결지를 인권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한옥마을과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버젓이 성매매 업소가 자리잡고 있어 도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접근했다. 시청 코 앞에서 밤 마다 불을 밝히는 홍등가를 못 없애는 것은 지자체의 의지 부족이라는 원성에 선미촌 일대 2만 2760㎡를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불법이 판치는 어두운 공간에 밝은 빛을 쪼여 독버섯이 자멸토록 하는 ‘전주시의 실험’이었다. ‘성공 가능성이 낮다’, ‘접근 방식이 쌩뚱맞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전주시는 뚝심으로 밀어부쳤다.●사창가를 문화공간으로 전주시의 실험 성공 2017년 6월 전주시는 선미촌에서 가장 큰 성매매업소 건물을 매입해 ‘서노송동예술팀’을 배치했다. 사창가 한 복판에 시청 부서 1개 팀을 공식 배치해 ‘성매매 업소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2020년까지 83억원을 들여 성매매 업소와 빈집을 사들여 ‘성평등전주’, ‘새활용센터다시봄’, ‘뜻밖의미술관’ 등을 만들었다. 또 소공원 조성, 골목 경관 정비, 가로수 식재, 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해 분위기를 바꾸고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방범용·불법주정차 단속 폐쇄회로TV(CCTV)도 25대를 설치해 성매매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직업교육을 알선하고 선미촌에 작업실을 만드는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전주시의 전략은 예상 밖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선미촌 성매매 업소는 2014년 49곳에서 2018년 21곳, 2020년 10곳, 지난해 6월에는 3곳으로 줄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에는 마지막 업소 마저 문을 닫았고 성매매 여성도 0명이 됐다. 전주시의 실험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선미촌 문화재생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도시재생 사례공유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아 전국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의 모범사례로 떠올랐다. ●선미촌 문화 재생사업은 아직도 진화중 전주시의 선미촌 문화 재생사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원숲이 조성되고 생활실험실로 진화한다.전주시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는 여성이 행복한 길(여행길) 조성을 위해 선미촌의 빈 업소를 활용한 2억 원 규모의 선미촌 리빙랩(Living-Lab) 사업을 펼친다. ‘리빙랩’은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다양한 일상 속 문제해결 방법을 찾고자 시도하는 현장 중심의 생활실험실이다. 성평등전주는 이 사업을 통해 창업·팝업스토어·문화 창작(체험) 활동을 실험할 창의적이고 사회적 연대에 관심 있는 10개 팀을 모집할 예정이다. 선정된 팀에게는 1400만∼2600만원이 지원된다. 여성인권 착취공간으로 인식된 선미촌을 즐겁고 건강한 장소로 시민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사업이다. 지난해 진행된 첫 번째 선미촌 리빙랩 사업에는 청년·여성·예술가·다문화 등 7개 팀이 참여해 폐 성매매업소를 리모델링한 후 판매 및 전시, 버스킹공연, 팝업스토어,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을 추진했다. 앞서 전주시는 2억 5000만원을 들여 정원숲 조성사업을 마쳤다. 선미촌 입구인 기린대로 띠녹지에는 조팝나무가 이식되고 애기노랑금계국, 크라스페디아, 겹물망초가 식재돼 가로정원으로 조성됐다. 선미촌 내 인권공간과 기억공간에는 팥배나무와 목수국, 털수염풀, 휴케라, 가우라 등이 식재돼 주민들을 위한 어울림 공간으로 꾸며졌다. 김현도 전주시 사회연대지원과장은 “여성 인권 침해 공간이었던 성매매 집결지가 시민주도의 선미촌리빙랩 사업을 통해 여성인권과 문화, 생태 공간으로 새롭게 재구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나는 어쩌다 이야기장수가 되었나/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나는 어쩌다 이야기장수가 되었나/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이달부터 내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다. 출판계에는 임프린트(imprint)라는 제도가 있어서 대형 출판사들이 기획·편집력을 갖춘 출판인에게 단독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대형 출판사의 관리, 디자인, 마케팅, 제작 환경을 이용하면서 편집자 개인의 색깔을 살린 책도 맘껏 출판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다. 개업날 시루떡을 돌렸더니 몇몇 사람들이 떡포장 스티커를 보고는 말했다. “맛있다. 근데 이야기장수라니, 떡집 이름 특이하네.” ‘이야기장수’는 떡집이 아니라 나의 새 출판사 이름이다. 조선 후기 이야기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 혹은 양반집 마당에 판을 깔고 소설을 낭독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흔히 전기수(傳奇?)라 불린 이들을 당시 사람들은 ‘이야기장사’라고도 불렀다. 바글바글 몰린 사람들 앞에서 신명나게 썰을 풀던 전기수는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사람들이 옷고름을 잘근잘근 씹을 지경이 됐을 때 돌연 입을 닫는다. 아마 괜히 쌈지를 조몰락거렸다가 먼산도 보았다가 짐을 싸는 체했다가 꽤나 관중의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그의 발치에 동전이 쏟아지고 난 뒤에야 이야기보따리는 다시 술술 풀려 나왔다. 이야기장수는 당대의 작가이자 연예인, 공연예술가, 그리고 탁월한 편집자였다. 요즈음의 책장수는 그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출판계 사람들이나 애서가들에게 책은 삶의 필수품이자 마음의 양식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가 대세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기 위해 몸과 형식을 수없이 바꿀지언정 정련된 이야기를 담은 그릇은 계속 팔릴 거라 믿는다. 수백 년 전 이 땅을 누비며 귀로 책을 듣는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던 거리의 이야기꾼, 이야기장수들을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책의 종말을, 이야기의 죽음을 말할 수가 없다. 앞으로 나는 21세기 이야기장수가 돼 볼 참이다. 장수의 기본 자질은 좋은 물건을 기막히게 잘 파는 것이다. 그리고 파는 사람은 살 사람에게 투덜대서는 안 된다. 나 역시 책 안 읽는 사람들을, 요즘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독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각박한 시대를 주저앉아 원망하진 않을 것이다. 시장 상인들이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콩나물을 안 사 먹냐고, 손두부는 왜 안 먹고 양말은 왜 안 사 신느냐고 투덜대지 않듯이. 콩나물을 먹지 않으면 인생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고 우겨대지 않듯이. 쟁여 둔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큰 소리로 호객하고 손글씨 간판의 문구를 요리조리 바꾸며 손님을 끌 생각에 골몰하듯이. 나를 둘러싼 시대와 환경이 점점 어려워질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당신에게 어떻게든 가닿을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게 책 만드는 일은 내 전부를 던지고 싶을 만큼 절대적으로 귀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출판인의 이미지는 바쁘고 고단한 서민들 위에 군림하며 유교사상과 인간의 도리를 호통치는 양반님의 느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해 질 녘 거리에서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웃기고 울려 주는 이야기장수가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상에 훨씬 가깝다. 이야기장수를 차린 이후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 가끔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묻는다. “오늘도 가게 나갔니? 장사는 잘되느냐?” 그 통화는 늘 이렇게 끝난다. “그럼 가게 잘 지켜라, 이야기장수야.” 나의 작은 이야기가게는 오늘도 문을 열고 당신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이 동네엔 당최 손님이 없다고, 사람들은 좋은 물건이 뭔지도 모른다고 투덜거리고 절망할 시간이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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