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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유산 톡톡] 보안여관·공평도시유적전시관, 미래유산 지정해야

    [미래유산 톡톡] 보안여관·공평도시유적전시관, 미래유산 지정해야

    지난 6일 투어단이 찾은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통인동 이상의 집, 옛 조선중앙일보 사옥(NH농협 종로지점), 1930년대 미국 유학파 출신 박인준의 건축사무소로 지어진 동헌필방, 일제강점기의 월스트리트 한국은행 앞 광장 등 4곳이었다. 이상의 날개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 2개의 장소인 옛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 옥상과 경성역(서울역)도 코스에 포함돼 있었지만 당일 태풍으로 말미암은 옥상 미개방과 시간부족 등으로 빠졌다. 이날 답사단이 둘러본 코스 중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지 않지만 조만간 지정해야 할 곳이 통의동 보안여관과 공평동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보안여관은 2009년 갤러리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7만명 이상이 다녀간 서촌의 ‘핫스폿’이다. 갤러리에 머물지 않고 최근 구관 옆에 아트 스페이스 ‘보안1942’라는 신관을 열어, 책방·찻집·술집·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하는 문화숙박업이라는 새로운 문화생태계로 진화 중이다. 생활밀착형 예술공간의 재탄생이다. 서정주 시인이 이곳에서 장기 숙박하면서 최초의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한 한국문학의 산 역사 현장이다. 조선시대 통의동을 드나들었던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의 예술혼이 묻어 있는 곳이고, 시인 이상이나 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숱한 문인 예술가들이 문턱이 닳도록 출입한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빠진 게 이상할 정도이다.지난달 문을 연 공평동 26층짜리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조선의 시장 터와 관아 터, 한옥, 뒷골목과 담을 ‘생’으로 만날 수 있다. 개발과 보존의 상생을 보여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의 도시 유적 박물관이다. 16~18세기 조선시대 도시유적을 통째로 보존해 유리판 보행 데크와 각종 전시물을 함께 곁들여 옛 경관을 통째 살려냈다. ‘압도적 스펙터클’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1000여평의 공간은 도시의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도심 유적 보존 활용을 놓고 겪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값비싼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건축주에게 용적률을 크게 늘려 지상 4개 층을 더 짓게 해주고 지하 1층을 전시관으로 기부채납 받았다. ‘공평동 룰’의 첫 사례이자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가을은 축제의 계절] 소원 담아 방학천에 등 띄울까

    평양예술단 공연·조명 만들기 체험도 방학천의 가을밤을 음악과 불빛으로 채우는 도봉구 등(燈)축제가 올해는 13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10일 서울 도봉구에 따르면 올해로 7회를 맞는 등축제는 ‘빛과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주제로 정하고 전통 등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방학천을 수놓을 예정이다. 도봉구를 상징하는 두루미, 둘리와 친구들, 어가행렬과 십이지신 등 모두 73점의 등(燈)을 선보인다. 13일 오후 7시 ‘평양예술단’ 공연에 이어 개막 점등식을 한 뒤 곧바로 김범룡과 안계범 등의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14일부터는 저녁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청소년 댄스 동아리와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해 대중가요, 국악, 클래식, 케이팝 댄스, 퓨전음악, 뮤지컬 등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연다. 특히 18일에는 지역 기획사 후원으로 가수 전영록, 위일청이 출연해 축제의 흥겨움을 더한다. 이번 축제에는 체험프로그램도 더욱 다양해졌다. 우선 지역 예술가 10여팀이 매일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한지공예, 캘리그라피 체험, LED 조명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민의 소중한 추억과 소원을 담기 위해 소원지쓰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도봉구 등축제는 매년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도봉구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면서 “깊어가는 가을밤 빛으로 물든 방학천에서 구민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문화로 거듭난 공간] 흉물이었지… ‘문화놀이터’로 8만 시민 사랑받기 전엔

    [문화로 거듭난 공간] 흉물이었지… ‘문화놀이터’로 8만 시민 사랑받기 전엔

    연초 제조창에서 쓰는 담뱃잎 보관 장소 2004년 공장 폐쇄 뒤 아파트 건설 추진 문체부·청주시 69억원 투입해 리모델링 공연연습·생활문화센터·갤러리 등 활용 이달부터 일대 문화복합시설 사업 진행“쓱~툭, 쓱~툭툭.” 대패 홈에서 나온 동글동글한 대팻밥이 바닥으로 연이어 떨어진다. 충북 청주 동부창고 6동에서 열린 ‘젓가락 만들기’ 행사에 참여한 초등학교 4학년 예원이와 2학년 영찬이가 연신 구슬땀을 흘린다. 나무 틀에 호두나무 막대를 넣고 젓가락이 될 때까지 열심히 밀어 본다. 처음 해 본 대패질이 어려웠을까. 지켜보던 아빠 김희종(43)씨가 결국 대패를 넘겨받는다. “아빠가 하는 걸 봐. 이렇게 하는 거야.” 힘찬 대패질에 대팻밥이 우수수 떨어지자 아이들이 감탄의 눈길을 보낸다.청주 율량동에 사는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체험행사가 많이 열려 동부창고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옛 창고 모습을 그대로 살려 운치가 있다. 천장이 특히 멋지다”고 위를 가리켰다. 천장은 직사각형 나무를 삼각형으로 맞대고, 철물 볼트로 지탱했다. 서양에서 목조주택의 지붕을 짤 때 사용하는 방식인 트러스 구조로 지었다. 큼직한 소나무가 맞닿은 천장은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붉은 벽돌로 지은 창고 외벽은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진다. 벽이 삼각형 지붕과 맞닿으면서 독특한 오각형 모양을 만든다.충북 청주 청원구 덕벌로에 있는 연초 제조창을 지나 언덕을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동부창고에 다다른다. 1960년부터 만든 7개 창고 시설로, 연면적이 7508㎡(약 2300평) 정도다. 주차장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34·35·36동, 왼편에 6·8·37·38동이 있다. 이 창고들은 연초제조창에서 쓰는 담뱃잎을 보관하던 곳이다. 1946년 설립된 연초 제조창은 솔, 라일락, 장미 등 연간 100억 개비의 내수용 담배를 만들었다. 한때 30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일했는데, 월급날이면 공장 앞에 장터가 들어설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1999년 공장을 통폐합하면서 기계 소리가 잦아들고, 2004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청주 원도심에서 인구가 급속히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마저 이어지며 주변은 황량해졌다. 방치된 연초 제조창과 동부창고는 흉물로 남았다. 청주시 측은 KT&G 부지였던 이곳을 2004년 사들였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역 예술인들이 “문화적 보존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전기를 맞았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에 7개 동 가운데 34·35·36동이 선정됐다. 이들 3개 동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10월 새 모습을 선보였다. 문체부와 청주시가 절반씩 돈을 내 모두 69억원을 투입했다. 34동은 다목적홀, 갤러리실, 목공예실, 푸드랩실 등 6개 공간으로 나눠 대관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 다목적홀에서 충북학원연합회가 주최한 어린이 그림대회가 한창이었다. 100여명이 한꺼번에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규모지만, 하루 대여료는 18만원에 불과하다. 전동일(50) 청주미술협의회장은 “규모가 적당한 데다가 접근성이 좋고 주차 시설이 넓어 4년째 이곳에서 대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기업인 디랜드협동조합 목공교실을 운영하는 성유경(55) 이사장은 “문화예술공간이 적은 청주에 적합한 곳이다. 청주 지역 문화예술에 활력을 넣고 있다”고 설명했다.35동은 공연예술연습공간으로 활용된다. 대·중·소 연습실 각 1곳이 있다. 특히 164평(약 540㎡) 규모 대연습실은 주요 공연 리허설장으로 쓰거나 결혼식장으로 활용된다. 36동은 생활문화센터다. 동아리 활동과 교육 공간으로 사용된다. 기자가 찾은 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꿈다락문화학교 일환으로 ‘폐차 그뤠잇´ 막바지 수업이 한창이었다. 폐자원을 조형물로 만드는 수업으로, 중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수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신수정(45) 공작플러스 대표는 “사용료가 저렴하고 부대시설이 훌륭해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36동 입구 오른쪽에는 청주 독립서점 4곳을 지정해 책을 전시하는 ‘책 골목길’을 조성했다. 좀더 들어가면 삼각형 모양의 트러스 구조에 유리문을 낸 ‘빛내림홀’이 자리한다. 빛바랜 창고 풍경 속에 빛이 바닥까지 내려앉은 모습이 인상적이다.동부창고 6·8동은 지난해 문체부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추가 선정돼 내년부터 정식으로 시민들을 맞는다. 예술가와 함께하는 이벤트 장소, 또는 각종 장터가 열리는 곳으로 조성한다. 앞서 ‘2017 스타일마켓’, ‘2018 스프링마켓’, ‘2018 베스트셀러마켓’ 등의 이벤트가 진행됐다.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촬영 장소로 쓰였던 8동은 시민 커뮤니티 카페, 아트숍 등으로 꾸며진다. 37동은 영화 군함도, 프리즌, 덕혜옹주 등의 촬영장소로 이용됐다. 앞으로도 영화 촬영지나 초·중·고교 학생을 위한 방과후학교 공간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38동은 동부창고와 연초 제조창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곳으로 만든다. 아파트가 들어설 뻔했던 동부창고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 이제 매년 8만명의 시민을 맞는다. 20년 가까이 거주한 김남기(67)씨는 “아파트를 지었어도 공동화 현상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겠느냐”며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드니 주변 분위기도 좋아지고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동부창고 주변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문체부와 국토교통부가 이번 달부터 2019년 1월까지 연초 제조창 일대에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에 무려 297억원이 투자된다. 연초 제조창은 시민예술촌, 국립현대미술관, 업무·숙박 단지 등 대단위 문화 복합시설로 거듭난다. 흉물이었던 동부창고가 연초 제조창과 함께 다시 시민들을 부른다. 청주 글 사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문화로 거듭난 공간] “쓰임새가 모두 다른 7개동… 점유 아닌 공유 공간으로 운영”

    [문화로 거듭난 공간] “쓰임새가 모두 다른 7개동… 점유 아닌 공유 공간으로 운영”

    동부창고 7개 동은 쓰임새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시민을 향한다’는 지향점만은 같다. 운영을 총괄 담당하는 박종명(31)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지역문화재생팀 연구원에게 동부창고 운영 원칙을 물었다.→1960년대 창고 분위기를 잘 살렸다. -공간이 지닌 매력을 잘 보존하면서 여러 문화예술 행사를 할 수 있게 했다. 될 수 있으면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자 천장의 금강송 목조 트러스 구조를 최대한 살렸다. 건물 외벽은 원래 적벽돌이었는데, 안전 문제 때문에 표면을 재시공했다. 시민들은 동부창고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잘 모를 수 있다. 이를 알려주고자 지난해 개장 당시 예술가들이 동부창고를 보고 감정을 표현한 전시회와 동부창고 역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운영 원칙이 있다면. -동부창고는 점유가 아닌, 공유 개념으로 운영한다는 게 제1원칙이다. 특정 예술인이나 단체가 점유하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동마다 성격을 조금 달리했다. 34동은 커뮤니티 플랫폼, 35동은 공연예술연습공간, 36동은 생활문화센터로 운영한다. →운영상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각 동마다 다른 용도로 쓰는데, 전체적으로는 균형 있는 공간을 만들려 노력한다. 공유 개념을 내세우지만, 전문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접점을 어떻게 잇느냐를 고민한다. 월 1회 유명 밴드의 콘서트를 비롯해 클래식·아카펠라 공연, 여러 행사를 기획한다. 평일은 시민들이 사용하고, 주말에는 시민들이 즐기는 콘셉트로 보면 된다.→대관료가 저렴해 수입이 적겠다. -6·34동 대관율이 70% 수준, 35동이 80% 수준이다. 월 160만~400만원 정도 수입을 낸다. 갤러리와 장기 대관 등을 합하면 1년에 7000만원 정도다. 이런 규모 시설에서 이 정도 수익이면 사실상 운영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수익을 바랐다면 동부창고에 원래대로 아파트를 짓는 게 나았을 거다. 동부창고가 가진 역사적인 가치, 청주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생각해 보라. 지난해 동부창고를 찾은 시민이 8만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 이익은 따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부창고는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나. -6·8동은 올 하반기 공사를 거쳐 내년 6월 정식 오픈한다. 창고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리모델링한다. 6동은 이벤트, 8동은 지역 커뮤니티 카페나 아트숍으로 활용한다. 38동은 지난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다만 보존 과정에서 기계가 없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초 제조기계 등은 KT&G가 공장 통폐합 때 가져갔다. 현재로선 담뱃잎 나르던 수레나 기록, 소품들만 남았다. 남은 자료를 최대한 모아 구성해야 한다. 동부창고뿐 아니라 전국 폐산업시설이 개발에 밀리면서 옛 역사를 잃어버린 점이 아쉽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소각장이 문화공간으로 부천아트벙커B39” 2018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소각장이 문화공간으로 부천아트벙커B39” 2018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경기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이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과 특별상을 수상했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은 쓰레기 소각장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부천아트벙커B39’로 ‘2018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과 특별상을 받았다고 8일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일 열린 공공건축상 시상식에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품격 높은 디자인의 공공건축물을 조성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한 11개 기관과 개인에게 정부포상과 장관 표창 등을 수여했다. 시는 쓰레기 소각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부천아트벙커B39’로 대상(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부천문화재단은 우수한 공공건축 조성 및 기관 간 우수 협력사례로 특별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부천아트벙커B39는 2010년 가동이 중단된 삼정동 소각장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국내 최초의 폐소각장 문화재생시설이다. 국·도비 49억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95억원을 들여 전시뿐 아니라 공연과 교육할 수 있는 융·복합문화시설로 거듭났다. 2014년부터 시와 문화재단은 공간 운영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콘텐츠 개발 예산을 별도 편성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험해왔다. 콘텐츠 운영은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에서 맡았다. 부천아트벙커B39에서는 지난 5일부터 26일까지 부천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가들이 차세대문화예술지원사업 ‘청년예술가S’ 방안으로 스토리와 시각·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15억 낙찰 직후 파쇄된 그림…작가 “창조 욕구로 파괴했다”

    15억 낙찰 직후 파쇄된 그림…작가 “창조 욕구로 파괴했다”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이기도 하다.”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 현대미술 판매전에서 15억여원에 낙찰된 직후 저절로 찢어져 화제가 된 회화 작품 ‘풍선과 소녀’의 작가 뱅크시가 하루 만에 사건이 자신의 소행임을 밝혔다.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거리예술가인 뱅크시는 전 세계 도시의 거리와 벽에 기발한 그래피티(길거리 그림)를 남기거나 런던 테이트미술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 두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하다. 뱅크시는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도 창조적인 것”이란 파블로 피카소의 발언을 인용하며,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모습과 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그림이 잘려나가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몇 년 전 나는 이 작품이 혹시 경매에 나갈 경우를 대비해 비밀스럽게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앞서 경매장에 등장한 뱅크시의 작품은 수수료를 포함해 104만 2000파운드(약 15억 4000만원)에 팔리자마자 잘게 분쇄됐다. 뱅크시가 액자 프레임 뒤에 설치해 놓은 기계 장치를 리모트컨트롤을 활용해 작동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경매 참가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소더비의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인 알렉스 브랜식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뱅크시’에 당했다”면서 “이런 경험은 우리도 처음”이라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뱅크시의 전력에 비춰 볼 때 현대미술 시장의 거래 관행을 조롱하고 예술의 파괴와 자율의 속성을 보여주려 한 기획으로 해석된다. 해당 작품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렸다. 손상이 가해진 만큼 낙찰자는 구매 의사를 철회할 수 있지만 사상 초유의 이벤트로 작품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서울포토] ‘오늘은 나도 거리예술가’

    [서울포토] ‘오늘은 나도 거리예술가’

    7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 2018를 찾은 시민들이 거리에 테이핑을 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2018. 10 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제주의 바람마저 화폭에 담다… 故 변시지 작가 전시회

    제주의 바람마저 화폭에 담다… 故 변시지 작가 전시회

    제주 출신으로 고향의 자연과 풍물을 주로 그린 고 변시지(1926~2013) 작가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공익재단법인 아트시지(이사장 변정훈)와 에스팩토리(대표 이호규)는 ‘변시지의 작가노트’전을 오는 7일까지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 A동 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변시지 작가는 바람, 파도, 바다, 오름, 초가집, 정랑, 말, 까마귀 등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과 풍물을 주로 그린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 작고한 작가의 작품 8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다. 황토색과 거침없는 필치를 구사함으로써 제주의 자연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화법을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07년 6월부터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전시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노트 및 원고에 남긴 글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작가의 예술관을 엿보고 작품이 탄생한 사유의 과정을 추적한다. 전시는 3개의 섹션으로 구성한다. 첫 번째 섹션 ‘제주에 산다’에서는 제주의 자연환경에 주목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시도들을 전시한다. 두 번째 섹션 ‘바다를 묵상하다’는 자연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시선과 태도를 보다 드러내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세 번째 섹션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에서는 제주의 자연 풍경을 빌어 철학적 사유와 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지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흔한 제품을 흔하지 않게 만드는 게 내 역할”

    “흔한 제품을 흔하지 않게 만드는 게 내 역할”

    주류 예술 저항하는 실험적 작품 선보여 공상 과학 만화·소비사회 메시지 결합 아시아 첫 전시…회화 등 100여점 출품“서울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살고 있는 미국 LA도 러시아워에 교통 체증이 심합니다. 보통 차는 깨끗하게만 쓰려고 하는데, 차가 막힐 때 남의 차는 어떻게 꾸몄나 보는 재미도 있지 않나요. 흔히들 지나치는 생활용품에 ‘아트’를 더해서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제 일입니다.” 2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광장. 빨간색 그라피티를 휘갈긴 듯한 티셔츠에 무릎이 살짝 나온 트레이닝 바지,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은 그가 ‘쉐보레’ 앞에 섰다. 그리고 곧 손에 든 스프레이를 일필휘지로 뿌리기 시작했다. 그라피티로 자동차 외관을 꾸미는 ‘카밤즈(Karbombz) 퍼포먼스’다. 뉴욕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거리의 예술가’ 케니 샤프(60)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 최초로 그의 작품을 총 망라하는 롯데뮤지엄의 ‘슈퍼 팝 유니버스전’을 위해서다. 그는 1980년대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등과 함께 뉴욕 이스트빌리지를 거점으로 주류 예술에 저항하는 실험적 전시를 선보인 인물이다. 바스키아가 1988년, 키스 해링이 1990년 요절한 것과 달리 케니 샤프는 지금껏 왕성하게 활동하며 ‘팝아트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그는 그들의 ‘요람’ 역할을 했던 ‘클럽 57’의 사진을 가리키며 “1970년대 말, 80년대 초반 뉴욕의 한 교회 지하에서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아티스트들이 모여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했다”며 “굉장히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때”라고 말했다. 케니 샤프는 이번 전시에 공상 과학만화 캐릭터와 소비 사회의 메시지를 결합시킨 회화, 조각, 드로잉, 비디오, 사진 자료 등 100여점을 출품했다. 그의 작품은 지구 종말론에 따른 우주에의 관심, 환경오염에의 경각심 등이 주 테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코스믹 캐번’(Cosmic Cavern)은 폐장난감, 플라스틱 쓰레기 등으로 버무려진 유토피아다. 그는 “예술하는 이들의 일 중 하나가 대중들이 깨닫기 전에 먼저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라며 “1960~70년대, 재활용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사람들이 플라스틱을 버리는 것을 보고 걱정했는데 지금은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아 심각성을 계속 작품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방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LA에 코리아타운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큰 전시를 하게 돼 기쁘다”며 “정말 기분 좋고 신이 난다”는 말로 대신했다. ‘일상을 아름답게’라는 그의 모토처럼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칙’, 스프레이를 뿌리는 손놀림이 더없이 경쾌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헤겔 철학 대가‘ 임석진 교수 별세

    ‘헤겔 철학 대가‘ 임석진 교수 별세

    헤겔 철학 권위자인 임석진 명지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86세. 임 교수는 국내에 처음으로 헤겔을 소개한 철학자다. 1987년 한국헤겔학회를 창립한 뒤 초대 회장을 맡아 20년간 이끌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 강사를 거쳐 1967년부터 1998년까지 명지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논리학’ 등을 번역하고, ‘헤겔의 노동의 개념’,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 ‘변증법적 통일의 원리’등 헤겔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임 교수는 1961년과 1966년 평양을 방문하고 유학생을 북한대사관에 소개하기도 했다. 1967년 이기양 조선일보 서독특파원이 취재차 체코에 입국했다가 실종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북한 접촉 사실을 털어놨다. 이후 중앙정보부가 작곡가 윤이상, 이응로 화백, 천상병 시인 등 예술가와 학자 등 194명을 간첩으로 몰면서 ‘동백림(東伯林)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박정희 정권이 동백림 사건을 무리하게 확대 포장했다고 발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 자의 서해 직항로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 보였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 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 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 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 볼 날이 없었다. 고려호텔 2층 뷔페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 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으나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봤다. 북측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묵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는 것으로 평양 일정은 시작됐다.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우리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측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 꼿꼿이 서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지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됐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 주었다. 공연에 등장한 배우들의 한복 디자인은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했다.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됐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거리를 걸어갔다. 저녁 환영만찬이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 중 한 사람은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평양 방문은 우리에게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9월 19일. 방북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 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다.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평양에서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됐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 주었다. 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밤 9시쯤이었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우리는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 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 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젊은 가수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새벽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 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됐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 빈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이었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꽃은 졌지만 잎이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나는 은밀하게 봉투에 넣었다. 숲에서 발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손가락 길이만 한 가문비나무 어린 새싹을 살짝 뿌리째 뽑아 들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내 수첩 속으로 들어왔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갤러리처럼 예술 입은 호텔… 호캉스族 사로잡다

    갤러리처럼 예술 입은 호텔… 호캉스族 사로잡다

    취향 저격 ‘가치소비’ 트렌드 대세 유명 디자이너 설계·예술작품 장식 파격적인 실험으로 틈새시장 공략 강남·홍대 등 지역 고유한 분위기 살려 中 의존 벗고 새 고객 확보 대안 떠올라국내 호텔업계가 최근 잇따라 부티크 호텔을 문 열면서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국내 호텔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데다, 최근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호텔업계로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티크 호텔이란 일반적으로 특급 호텔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인테리어나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 서비스, 운영 방식 등이 독특하고 고유한 콘셉트를 가진 호텔을 말한다.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로비와 객실 등 시설물과 각종 문화 콘텐츠 등 색다른 경험을 앞세운 것이 특징이다. 부대시설을 최소화한 대신 편리한 교통편과 표준화된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 등으로 편의성을 극대화한 비즈니스 호텔과 대비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호텔 그룹인 아코르호텔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알코브 호텔 서울’을 개장하고 처음으로 국내에 부티크 호텔을 선보였다. 승가헌이 개발 및 브랜딩을 총괄했고, 아코르호텔과 국내 앰배서더호텔 그룹이 합자한 호텔 운영 전문기업 ‘아코르앰배서더코리아’가 운영을 맡는다. 7가지 종류의 객실 108개와 야외 테라스 등 개별 공간을 마련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선정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특징이다. 화려한 디자인이나 최신 유행의 콘셉트를 지양하는 대신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개별 정원에서 미국식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아메리칸비스트로를 표방한 레스토랑 ‘살마나자르’를 비롯해 루프톱에 위치한 ‘클럽 리밋’, ‘블루우드 하우스 라운지 앤 바’ 등 5개의 식음료 업장을 갖췄다. 알코브 호텔 서울의 개발을 맡은 승가헌 관계자는 “호텔과 부대시설 모두 첨단 유행이 아닌 단골 고객들이 오랫동안 찾을 수 있는 ‘편안한 아지트’를 목표로 구성했다”고 말했다.신세계그룹도 지난 7월 서울 중구 퇴계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바로 옆에 첫 독자 브랜드인 ‘레스케이프’를 문 열면서 부티크 호텔 시장에 야심 차게 뛰어들었다. 이미 개장 약 2개월 만에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명소로 자리잡았다는 평이다. 레스케이프는 프랑스 파리에서 영감을 얻은 국내 최초의 어번 프렌치 스타일 부티크 호텔이다. 유명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가 설계한 호텔 객실은 19세기 귀족 사회를 본떴다. 모두 204개 객실 중 스위트룸이 80개로 전체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 객실마다 다른 무늬의 고급 실크 자수 벽지와 낮은 조도의 조명, 꽃문양의 캐노피 장식, 고풍스러운 가구를 배치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식음료 업장도 전 세계의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6층에 마련된 메인 중식당인 ‘팔레드 신’에서는 홍콩 최고의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모트 32’의 딤섬과 베이징덕 등 시그니처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또 호텔 최상층인 26층에 위치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는 세계적인 레스토랑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늘 변화하는 미식 플랫폼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첫 번째 파트너로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위치한 뉴욕 대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더 모던’과 손을 잡았다.이 밖에도 호텔롯데는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를 표방하는 ‘L7’이 순항 중이다. 서울 명동과 강남에 이어 지난 1월에는 홍대에 3호점을 열었다. L7 홍대는 지역별 고유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즐길 수 있는 젊음과 자유분방함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그 일환으로 호텔 곳곳에 홍대 일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배치했고, 루프톱 바 ‘플로팅’과 수영장을 통해 유명 뮤지션의 공연 및 디제잉 파티를 진행하는 등 홍대 지역의 놀이 문화를 호텔로 들여왔다. 또 국내 최대 규모의 ‘라인프렌즈 L7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가 입점했으며,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 ‘피프티 피프티’, 가상현실(VR) 테마파크 ‘히트브이알’ 등 이색 매장들도 들어섰다.세계적인 글로벌 호텔 기업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도 홍대 지역에 자리잡은 부티크 호텔이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들어선 이 호텔 역시 홍대의 지역적 특색인 청년 문화와 예술을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독일 베를린의 소호 하우스의 설계를 맡은 세계적인 디자인 건축 기업 ‘미켈리스 보이드’가 참여했다. 또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매칸’, 설치미술가 ‘박여주’, 사진작가 ‘로랑 세그리셔’, 페인팅 아티스트 ‘찰스 문카’ 등 개성이 뚜렷한 국내외 예술가들이 직접 4개의 아티스트 스위트룸의 디자인에 참여해 각각의 객실이 독립된 예술 작품이 되도록 꾸몄다. 이 밖에도 스트리트 패션 편집매장인 ‘웍스아웃’, 신진 작가들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아라리오 갤러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베이커리 카페 ‘타르틴’ 등이 입점했으며, 루프톱에는 청담동 바 ‘르 챔버’의 국내 최정상 바텐더와 협업한 ‘사이드 노트 클럽’이 들어섰다. 이처럼 업체들이 부티크 호텔로 눈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5성급 특급호텔과 가성비가 높은 비즈니스 호텔로 양분된 기존의 호텔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2013년 191개(객실 2만 9828개)였던 서울 시내 호텔 수는 지난해 399개(객실 5만 3453개)에 달하는 등 큰 폭으로 늘었다. 절대적인 공급이 늘어난 만큼 독특한 콘셉트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부티크 호텔이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여기에 최근 ‘호캉스’ 문화가 발달하면서 도심 호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보편화되면서 세분화된 고객의 취향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고유한 콘텐츠 개발이 절실해졌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호텔·관광업계에서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등을 겪으면서 업계에서도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진 상황”이라면서 “부티크 호텔은 내국인 고객뿐 아니라 미주·유럽국가 관광객들에게도 선호도가 높아 다양한 고객층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지구촌에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서양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섰다.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정보의 빠른 전파를 통해 중세적 사고를 근대적 사고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해 2001년 9월 4일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다음달 1일부터 21일간 펼쳐지는 청주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은 직지의 위대함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행사다. 글로벌 축제답게 수준 높은 전시, 학술, 강연, 체험, 공연 등이 풍성해 눈과 귀가 심심할 틈이 없다. 행사 기간 세계인쇄박물관협회 창립총회도 열린다. 직지는 100여년 전 헐값에 팔려 프랑스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의 책’이지만 청주의 직지 사랑은 뜨겁다.●책속에 담긴 자기 수양과 치유 속으로 26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의 주제는 ‘직지, 숲으로의 산책’이다. 직지와 숲은 다소 생뚱맞은 조합 같아 보이지만 직지의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 승려 백운화상이다. 그는 공부하기 위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스님 석옥청공에게 ‘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받아 왔다. 이 책은 부처 등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모아 석옥청공이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아는 직지는 백운화상이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 수정한 책이다. 그래서 직지의 풀네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백운의 제자였던 석찬과 달잠은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도움을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했다. 직지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직지의 내용을 주목했다. 현대인들이 자기 수양과 힐링을 위해 숲을 찾듯이 고려시대 사람들은 직지를 읽지 않았을까. ‘직지’와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됐다. 조직위는 직지의 내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메인 무대인 청주예술의전당 광장에 ‘직지숲’을 조성한다.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다.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한석현 작가가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18m 높이로 만든다. 숲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의 정원’이 꾸며진다. 직지가 간행된 해(1377년)를 기념해 시민들에게서 기증받은 1377권의 책으로 만든다. 행사 종료 후 이 책들은 작은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1377년 간행 기념한 1377권 ‘책의 정원’ 직지코리아의 한 축인 전시는 크게 주제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뉜다. 주제전시관은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백운화상과 직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주자라는 큰 역할을 한 묘덕의 의복을 재현한다. 백운화상의 초상화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백운화상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못했으나, 최근 충남 청양군 장곡사에서 그의 친필이 발견되는 등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직지를 세상에 알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최초로 알린 박병선 박사, 직지 활자를 처음 복원한 오국진 금속활자장, 사이버외교사절단으로 불리며 직지세계화운동을 전개하는 반크 등이 소개된다. 또한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해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직지 등 고서와 문화재를 수집해 프랑스로 건너간 콜랭 드 플랑시도 소개된다. 이후 직지는 1911년 경매를 통해 주인이 앙리 베베르로 바뀌었다가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안승현 직지코리아 홍보마케팅부장은 “직지와 관련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링 전시로 풀어냈다”며 “이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전시는 직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나라들의 세계기록유산을 모았다. 데스멋 컬렉션은 네덜란드 최초의 영화배급자인 장 데스멋이 1907년에서 1916년 사이 전 세계에서 제작된 900편 이상의 35㎜ 영화 필름과 원본 포스터, 홍보물 등을 수집한 것이다. 그림 형제가 만든 ‘그림 동화’는 종교 혁명의 시초가 된 루터의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독일 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배포된 책이다. 인류 최초로 유럽과 동양의 모든 전통 동화를 체계적으로 편집하고 과학적으로 기록했다. ‘솜 전투 필름’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했던 솜 전투를 기록한 영상이다. 전쟁 준비와 전투 초기단계가 흑백의 35㎜ 무성필름에 담겼다. 약 70분 분량이다.‘직지로드’라는 전시공간도 꾸며진다. 이곳에는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전시된다. 이 편지는 고려와 서양 간의 교류 가능성을 높여 주는 자료다.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직지코리아의 또 다른 축은 공연과 체험이다. 지난 행사보다 기간이 3배 가까이 길어진 만큼 주제에 걸맞은 공연과 프로그램이 넘친다. 청춘들의 고민을 나누는 토크 청춘콘서트, 음악과 차, 명상이 어우러진 다도가 있는 음악회, 고려의상 패션쇼, 젊은이들이 밴드와 함께 금요일 밤을 즐길 수 있는 Rock&Night, 고려 장터를 재현해 당시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고려 저잣거리 등이 마련된다. 색모래를 이용해 도로 위에 그림을 그려 보는 그라운드아트, 차 없는 거리에서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나잇 청주, 고려시대 금속활자 조판임무를 담당하던 군자장의 역할을 놀이로 만든 직지조판놀이, 직지를 맛으로 표현하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문자와 먹거리를 결합한 직지콜라시옹도 즐길 수 있다.●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 참여 학술회의도 세계인쇄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들도 속속 열린다. 직지코리아 개막일에는 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인쇄박물관협회(IAPM)를 창립하기 위해서다. 세계 50여국의 80여개 인쇄박물관, 인쇄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2일과 3일 이틀간 학술회의를 갖고 기록유산과 인쇄문화의 보존, 지식정보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등을 논의한다. 김천식 직지코리아조직위 사무총장은 “세계 인쇄박물관 정보공동체인 IAPM 출범식 개최로 청주는 세계적인 기록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개막식 때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열려 개막식에서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올해 수상자는 아프리카 이슬람 문서보존을 위해 힘쓴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아프리카 말리의 ‘사바마-디’(SAVAMA-DCI)로 결정됐다. 사바마-디는 아프리카 말리 북부지역이 알카에다 연관 무장단체에 장악돼 많은 유적과 문서가 손실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리의 ‘알 왕가리 도서관’ 등에 소장된 600여건의 문서를 디지털화했다.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01년 제정된 이 상은 기록유산의 보전·연구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가 2년에 한 번씩 주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3만 달러가 상금으로 전달된다. 역대 직지상 수상자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문화 발전을 위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인 ‘직지상2.0라운드테이블’도 열린다. 직지코리아 입장료는 성인기준 사전 예매 6000원, 현장 판매 8000원이다. 직지코리아는 정부 공인 국제행사로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조윤선 석방…보수단체 응원 속 귀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조윤선 석방…보수단체 응원 속 귀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사건)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석 연휴 첫날인 22일 0시를 기해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지난 1월 23일 항소심 선고 때 법정 구속된 뒤 약 8개월 만이다. 이날 0시 3분쯤 남색 정장 차림으로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온 조 전 장관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법원에서 아직 세 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남은 재판 절차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답변하고 자리를 떴다. 당시 서울구치소 앞에는 보수단체에서 100여명이 찾아와 태극기와 성조기, 하얀 백합 등을 흔들며 조 전 장관에게 “사랑해요”, “힘내세요” 등을 외쳤다. 지난달 초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석방된 서울동부구치소 앞에서처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에 대해 이름과 배제사유 등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기초로 정부지원금 등을 줄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2월 구속기소 됐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1심 선고 때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혐의는 무죄가 나왔고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은 약 6개월 만에 석방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지원 배제 관여 혐의가 유죄로 뒤집혀 징역 2년이 선고돼 다시 법정구속됐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는 3번의 구속갱신 후 기간이 만료되자 구속취소 결정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구속 기간을 2개월씩 갱신해 연장할 수 있다. 1심에서는 두 차례, 2심과 3심에서는 세 차례까지 가능하다. 조 전 장관은 지난 3월과 5월, 7월 세 번의 구속 기간 갱신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은 법정 구속된 지 242일 만에 두 번째 귀갓길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의 불법 보수단체 지원(화이트리스트) 의혹으로도 추가 기소된 조 전 장관은 징역 6년을 구형받고 오는 28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수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안도현 시인이 서울신문에 당시 감동을 담은 기행문을 보내오셨습니다. 안 시인이 보고 느꼈던, 그리고 언론 매체에선 볼 수 없었던 정상회담 이면의 이야기들을 원문 그대로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북한의 풍경들을 함께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자의 서해 직항로의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보였다. 이른 새벽 해 뜨기 전에 잠을 자지 못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 순안비행장이라 불리던 평양국제비행장 청사는 현대식 건물로 면모를 완전히 바꿨고, 의장대와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의 함성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차범근도, 유홍준도…벅찬 감동에 “왜 이렇게 눈물이”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 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천천히 움직였고 우리는 시민들의 진심 어린 표정 하나하나를 가까이에서 읽을 수 있었다. 버스 바깥도 버스 안도 만남의 감격의 출렁거렸다. 선두에서 남북 정상은 정상끼리, 행렬 뒤쪽에서 같은 동포인 우리는 우리끼리 만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 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썬팅 처리된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볼 날이 없었다. 누군가가 눈물 타령한다고, 감상적이라고 또 이죽거린다고 해도 평양에서는 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공식수행원들의 숙소는 백화원초대소, 특별수행원들의 숙소는 고려호텔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고려호텔은 별다른 장식 없이 조용히 낡아가고 있었다. 1인 1실로 배정된 방에는 사과, 배, 귤, 바나나로 구성된 과일 한 접시와 과자, 사탕, 껌이 담긴 접시 하나가 ‘당신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내게 재떨이는 또 반가운 선물이었고. 호텔 창밖으로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올라 평양 시내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평양역 구내로 화물차와 전철이 쉼 없이 오가는 게 보였다.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호텔 2층 뷔페식당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는데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북쪽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룩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으면서 나는 1930년대 후반 시인 백석을 떠올렸다. ●김정숙 여사 ‘영부인 외교’ 동행한 리설주 여사 ‘깍듯한 환대’ 인상적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와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등 체육계 인사,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14호차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쪽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정장 차림에다 하이힐을 신고 부동자세에 가까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이기 전에 젊은 부부가 웃어른을 모시는 우리의 전통 예절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가 분명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이어서 김원균 음악종합대학을 방문했다. 김원균은 북한의 국가와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작곡한 사람으로 북한 정권 초기 앞장서서 음악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재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 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되었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 ‘그대 없이는 못 살아’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주었다. 남쪽의 대중가요를 선곡한 것도 모두 남쪽 손님들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거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서도 왠지 불편했다. 낯간지러운 가사와 트로트풍의 가요를 내가 모두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 북한 식당을 들렀을 때 점점 남쪽 사람들의 입맛대로 음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과 유사한 것이다. ●‘홀로아리랑’에 눈물…“어떤 난관도 아리랑 고개 넘듯 헤쳐 가야” 환영공연에 등장한 인민배우들의 한복 디자인도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한이 원래의 것을 놓치고 남쪽을 흉내 내는 일로 남쪽을 배려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남북 관계에서 북한은 원래의 북한을 유지해야만 화해와 협력도 대등한 관계 속에서 진전될 것이 아닌가.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되었다. 가사 뒷부분은 이렇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1980년대 후반에 남쪽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가 2018년 평양에서 울려 퍼진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걸어가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와 부인 리설주 녀사께서 주최하는 연회”가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 것으로 나는 평양 방문을 한 것에 대해 우쭐거려 보려고 한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당중앙위 조용원 부부장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금지의 언어가 아니라 소통의 언어로 말하고자 하였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은 찡그린 얼굴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한 한 사람은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양에서 가장 현대화한 지역은 미래과학거리 구역이었다. 여기에는 전에 없던 현대식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곳에는 과학자, 연구자, 교육자들이 주로 거주한다고 했다. 이 거리의 가로수들은 대부분 메타세쿼이아였다. 북에서는 이걸 수삼나무라고 부른다. 이밖에 평양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나무들은 살구나무와 버드나무가 있다. 봄이 되어도 평양 거리에 벚나무들이 벚꽃을 휘날리는 일은 없다.9월 19일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이번 평양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공동선언은 남쪽에 생중계 되었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웅장한 집단체조…남북 정상을 향한 15만 환호는 ‘지축 진동’ 평양 방문은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고,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모두 300g이었다. 평양교원대학은 우리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합친 교육기관이다. “어린이들에게 한 컵의 물을 주기 위해 한 동이의 물을 들이키는 심정으로 가르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평양 방문 때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집에 그 판화를 가져와 펼쳐 놓고 다시 보아도 내 선택이 현명했던 건 분명하다.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보는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지축을 울린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수사일 것이다.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말했다. “남쪽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공연이지. 아이들을 저렇게 동원해서 연습 시키면 가만히 있을 엄마가 한 사람도 없을 걸.” 씁쓸했지만 그게 또 우리의 현실이었다. 1970년대 중반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중학생이었던 나도 마스게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어린 우리는 뙤약볕 속에서 살을 태워가며 연습을 해야 했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북쪽 안내원이 말했다. “여기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엄마는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답니다.”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저녁 9시경이었다. 20일 새벽 4시에 출발한다는 갑작스런 통보가 전해졌다. 평양 방문 내내 우리는 그 다음 일정을 알지 못해 궁금해 하였다. 일정이 정해진다고 해도 남과 북의 안내원 말이 다를 때가 있었다.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실무적으로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특별수행원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백두산은 밤에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간다는 말도 들렸다. 어쨌든 젊은 가수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9월 20일 새벽 1시까지 큰 짐들을 호텔 로비에 내려놓으라는 전갈이 왔다.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되었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서 빈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남북을 위한 백두산의 환대, 이젠 평양도 백두산도 멀지 않더라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의 공기였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마음껏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삼지연의 공기를 팔아 돈을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지연비행장과 그 주변은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터미널이 신축되었고, 활주로는 깨끗하였다. 백두산으로 가는 포장도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깔나무(냑엽송),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말했다. “남쪽에서 오신 나이 드신 손님들을 위해 속도를 80㎞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백두산과 천지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1920년대에 육당 최남선이 쓴 ‘백두산근참기’를 나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꽃은 졌지만 잎은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는 일이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봉투에 넣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백두산과 천지 주변을 마음껏 걸으며 둘러보고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사귀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나의 ‘백두산근참기’는 완결편을 갖게 되었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금요칼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금요칼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실사구시(實事求是). 실지의 일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 하간헌왕 때 일이었다. 그 정신에 가장 충실한 것은 훈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유교 경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글자 하나하나의 음과 뜻을 정확히 연구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경전 해석이 형이상학에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했다.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실사(實事)가 잊혔다. 그 의미를 재발견한 것은 11세기 송나라의 성리학자들이었다. 주희는 자신의 학문을 실학이라 주장할 정도였다. 그랬건만은 성리학이 주류 학문이 되자 학자들은 또 형이상학에 매몰됐다. 다시 수백 년이 지난 청나라 때 일군의 신지식인들이 등장했다. 고증학자들이었다. 그들은 현실과 괴리된 성리학을 비판하고, 재차 실사구시를 학문적 목표로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실사구시의 진가에 주목한 선비들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는 그런 흐름을 대표하는 대학자요, 독창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17세기 이후 축적된 실학파의 전통을 이었다.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으로 이어진 실학을 완성했다. 김정희는 ‘실사구시설’이라는 논문을 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새 길을 천명했다(완당전집, 제1권). 논문에서 그는 성리학자들을 비판의 도마에 올렸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었다.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으나, 그들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고담준론만 일삼아 일상의 사소한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성리학자들은 허황된 이론을 이리저리 끌어다 자신들의 무능을 위장했다. 진리란 초월적이고, 오묘하며, 높디높아,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조선의 지배층은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의 통치 이념은 공리공담이 되고 말았다. 지배층의 지적 환상과 정치사회적 무능을 김정희는 짧고 강한 몇 마디로 질타했다. “마땅히 사실에 의거해 올바른 진리를 찾아야 한다. 헛된 말을 지어내어 거짓 속에 몸을 숨기지 마라.” 학문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실’ 곧 공자와 맹자 같은 유교의 성인이 이룩한 진리의 전당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김정희는 그렇게 보았다. 따라서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는 거창한 담론은 가짜 학문에 불과하다는 것. 김정희의 확고한 신념은 그러했다. 진리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형이하학의 세계에 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하루하루 실천되는 덕목인 것이다. 김정희를 포함한 조선의 실학자들, 그리고 청나라의 고증학자들은 모두 그런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단순하다. 이기심을 버리고 공익을 중시하자고 했다.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이 우선이랬다. 한마디로 모두 착하게 살자고 했다. 그런데 이른바 대학자라는 사람들이 일을 망쳤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빙자하며 복잡하게 꾸며 댔다. 태극은 무엇이며 태허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김정희의 해법은 간단했다. 지식인은 잡다한 여러 학설에 현혹될 이유가 없다. 그저 마음을 평안히 하여 널리 배우고 착실히 실천하면 된다. 만약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주장도 공허한 것이다. 옳은 말이다. 김정희의 깨침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해결책은 뜻밖에도 매우 간단명료할 수 있다. 색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사물을 볼 수만 있으면 말이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수학은 쉽고 디자인은 어렵다 - 서울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수학은 쉽고 디자인은 어렵다 - 서울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좋은 예술가는 흉내를 내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디자인이 세상을 움직인다. 1997년, 끝없이 추락하던 미국 기업 ‘애플’의 구원투수로 CEO자리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1955-2011)는 회사를 다시금 일으킬 핵심역량으로 디자인 변혁을 내세운다. 이를 위해 회사 내에서 산업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던 조너선 아이브(51. 현 애플 CDO)을 발탁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감싼 감성적 디자인의 컴퓨터, 아이맥(1998)을 그려 낸다. 10억 달러의 적자가 1년 만에 4억 달러의 흑자로 돌아선다. 이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단순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지닌 조너선 아이브만의 디자인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애플은 단연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디자인의 기적이다. 4차 산업의 핵심 역량 중 가장 중요한 힘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의견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우리네 삶은 눈 안에 들어온 모양새에 마음을 내어주게끔 변하고 있다. 수천억 제품 개발비를 보기 좋게 날려 먹은 디자인도 있고, 애플사처럼 넘어지던 회사 다시 일으켜 세운 디자인에 관한 일화도 심심찮게 들린다. 또한 우리네 속담에도 나오듯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든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며 고운 물건 손이 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 디자인이 다 모여 있는 곳, 서울 근현대디자인 박물관이다. 서울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서울시 등록 제1종 전문박물관 제 55호로 인가가 난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디자인 전문 박물관으로 홍익대 근처 와우산 자락에 2008년 3월 14일에 개관하였다. 이곳에는 국내 디자인 사료들을 5만 여점 이상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개화기 이후 2000년대 초까지 한국 디자인에 관련된 수많은 사료들 중에서 역사적, 미학적 가치가 높으며 희귀성이 있는 디자인 제품 약 1,60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서울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의 외양은 자그마한 원룸 크기의 독특한 건물모양을 지니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은 박물관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아담하다. 그러하기에 오히려 관람객들에 그리 큰 위압감을 주지 않아 다정다감한 느낌도 안겨 준다. 지상 2층과 3층에 상설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나머지 층들은 학예연구실 및 디자인숍, 커피숍 등이 위치하고 있어 가벼운 산책 장소로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작은 박물관 규모와는 다르게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귀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기자료,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우리나라 최초의 전축,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VS-191,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 우리나라 최초의 비디오 카메라, 우리나라 최초의 핸드폰 등등 전시된 제품마다 눈물 쏙 뺄만한 이야기 한 트럭씩 가지고 있는 귀한 물건들이 박물관에는 가득하다. 또한 박물관 2층과 3층의 상설전시장은 ‘밤하늘에 빛나는 7개의 별 ... 북두칠성’이라는 컨셉트로 모두 7개 섹션으로 구분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자료부터 2002년 월드컵 관련 자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근현대 디자인 역사의 흐름을 한 눈에 꿰어볼 수 있도록 시대순으로 조명해 놓기도 하였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처럼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옛날이야기 가득하고 유익한 박물관임에는 틀림이 없는 곳이다. <서울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규모가 작아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 관련 업종에 종사하거나 옛날 물건들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특히 데이트 장소로는 제격이다. 2. 누구와 함께? - 연인과 함께 천천히. 홍대에 나온 김에 시간이 난다면. 3. 가는 방법은? - 2호선 신촌역 7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13번 탑승 후 와우공원 정문에서 하차. - 273번, 7011번, 마포08, 마포09번 탑승 후 산울림소극장 하차, 도보 5분 4. 감탄하는 점은? - 우리나라 최초 제품들의 모습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유명하지도 않으며 또한 아주 유명해질 만큼의 규모를 갖춘 박물관은 아니다. 전문가의 컬렉션 장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6. 꼭 봐야할 물건은? - 우리나라 최초의 각종 전자 제품들. 간판들 7. 관람의 의미를 찾는다면? - 책이나 화면이 아닌 실제 만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날것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designmuseum.or.kr/sub/main.a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마포구 경의선 숲길, 홍익대 주변, 신촌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너무 큰 기대는 가지지는 말기를. 규모가 크지 않다.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천지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나치 유혹해 사살했던 네덜란드 소녀, 92세 나이로 숨져

    나치 유혹해 사살했던 네덜란드 소녀, 92세 나이로 숨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서 나치 독일군들을 유혹해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한 여성이 9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17일(이하 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반(反)나치 저항조직의 마지막 생존자 여성이 지난 5일 사망했다고 전했다. 프레디 오버스테헌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93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졌다. 몇 년 전부터 고향 근처 요양원에서 지내온 그녀는 생전 심부전으로 수차례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1925년 9월 6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인근 하를럼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느날 찾아온 한 남성의 권유로 ‘라트 판 페르제트’(RvV·Raad van Verzet)라는 이름의 저항조직에 친언니 트루스와 함께 가입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4세에 불과했으며 외모는 최소 2살 더 어려보였다. 두 자매의 어머니는 공산주의자로 당시 네덜란드 공산당과 연계돼 있던 이 조직의 가입을 허락했다. 자매의 아버지는 가족과 별거하고 새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자매는 우선 저항 활동에 필요한 사격과 정찰, 이동 등의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추후 법대를 중퇴하고 이 조직에 합류한 또 다른 조직원인 한니 샤프트와 함께, 나치 독일군의 눈을 피해 다리나 철로 등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폭파하거나 강제 수용소에 잠입해 유대인 아이들을 구출했으며 자전거 바구니에 총을 숨겨두고 가능한 한 많은 나치 독일군을 사살했다. 초기에 프레디는 나이가 너무 어려 주로 정찰 임무를 맡았으며, 한니와 트루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독일군에게 먼저 접근해 유혹한 뒤 “함께 산책하러 가자”는 말로 인적이 드문 숲으로 유인하면, 다른 조직원들이 이들 남성을 제거하도록 했다. 프레디는 과거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선량한 사람들을 팔아먹은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필요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여성들은 암스테르담 외곽에서 나치 독일군이나 변절자들을 제거하는 데 삶을 바쳤다. 사실 네덜란드 저항조직의 여성들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오버스테헌 자매가 하를렘 주변에서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표적(나치 독일군)을 찾거나 다른 암살 작전을 위한 정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에 따라 오버스테헌 자매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종전 이후 언니 트루스는 2016년 사망하기 전까지 예술가로 활동했고 자신이 저항조직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썼다. 반면 프레디는 종전 이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것으로 전쟁의 참상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얀 데커라는 이름의 남성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하지만 이들 자매의 친구이자 리더였던 법대생 출신 한니 샤프트는 나치 독일군이 항복하기 불과 3주 전 체포돼 처형됐다. 샤프트의 이야기는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가르쳐졌고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국가적으로 여성 저항의 상징이 됐다. 또한 1981년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소녀’(The Girl With the Red Hair)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한편 프레디의 언니 트루스는 한니 샤프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96년 ‘국립 한니 샤프트 재단’을 설립했다. 프레디는 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박경리 기념관/김성곤 논설위원

    박경리 기념관은 통영~대전 고속도로 통영나들목에서 20여㎞쯤 거리에 있다. 하지만, 통영항 뒤 동피랑벽화마을이나 청마 유치환 문학관 등을 볼라치면 두세 배는 더 품을 들여야 한다. 작은 도시에 문인과 예술가도 많다. ‘풀’의 시인 김춘수, 재독 작곡가로 현대사 굴곡을 함께한 윤이상까지. 가는 길은 해안도로를 택하면 좋다. 작은 항구와 요트들…. 왜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했는지 짐작이 가리라. 굽이진 둔전길을 가다가 달아공원 못 미쳐 좌회전하면 박경리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작고 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던 글이 적힌 받침돌 위에 빈틈없는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6·25가 나 부역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남편을 잃고, 이어 어린 아들을 갑자기 잃은 그의 인생이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파시 곳곳에 녹아 있다. 수줍음 타던 앳된 주부의 얼굴에 의지가 서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으리라. 그곳엔 박경리 선생의 육필 원고도 있고, 인생도 있다. 소설보다 더한 감동이 그곳에 있다. 소곤소곤 소감을 나누는 소녀들, 아이들에게 박경리를 이해시키느라 애쓰는 부모,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찾는 사람이 많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sunggone@seoul.co.kr
  • 최초 민간 달 여행객 손정의 아니다

    최초 민간 달 여행객 손정의 아니다

    민간인 최초의 달 여행객은 일본인 억만장자 마에자와 유사쿠(사진·42)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7일(현지시간) 자신이 창립한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민간인 달 탐사 계획을 공개하고 첫 여행객이 유사쿠라고 밝혔다. 마에자와는 일본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조조타운 설립자이자 유명 미술품 컬렉터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자산은 약 30억 달러(약 3조4천억원) 규모다. 일본 18번째 부호로 꼽힌다. 마에자와는 머스크의 소개를 받은 뒤 연단에 나타났다. 그는 “나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면서 “달 여행에 전 세계에서 6~8명의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와 다른 창의적인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에자와는 “인류를 위해 놀라운 예술 작품을 창조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머스크는 “마에자와가 이번 여행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면서도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달 여행은 오는 2023년 이뤄질 예정이다. 4~5일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민간인이 달을 여행한 적은 없다. 스페이스X는 민간 관광객을 자사의 차세대 우주선 ‘BFR’(빅 팰콘 로켓)에 태워 달에 보낼 계획이다. 머스크는 이날 118m 크기의 BFR의 세부 사양도 공개했다. 앞서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달 여행객이 누구냐는 질문에 일장기 이모티콘으로 답변, 첫 민간 달 여행객이 일본 국적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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