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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래동 철공 기술, 예술을 입다…영등포구, 2022 소공인특별전 개최

    문래동 철공 기술, 예술을 입다…영등포구, 2022 소공인특별전 개최

    서울 영등포구가 오는 15일까지 문래동의 철공 기술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소공인특별전 ‘ASSEMBLE’을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문래동 일대는 1960년대부터 철공소가 모여있던 곳이다. 쇠를 두드리고 깎는 소리가 익숙하던 문래동 골목에 2000년대 이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철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색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는 이러한 문래동의 특색 있는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문화도시 사업 추진에 힘쓰고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소공인특별전 역시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소공인특별전은 문래동 기계·금속 제조산업의 생생한 현장을 예술 전시로 표현하여 지역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모이다, 조립하다’라는 뜻인 ‘ASSEMBLE’은 문래동 철공소 장인들의 기술과 재료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이곳에 터를 잡아,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는 문래동의 기술력,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계·금속 제품들과 공간 디스플레이, 초기 철공 단지를 일군 기술장인 7명의 이야기를 지역 청년 예술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영상 콘텐츠 등으로 구성됐다. 구는 이번 전시가 기술과 예술의 협력의 장인 문래동의 기술인과 예술인, 방문객 모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공인특별전 ‘ASSEMBLE’은 15일까지 예술·기술 융복합 문화공간인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술술센터)에서 열린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전시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영등포문화재단 또는 구청 문화체육과로 문의하면 된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전시를 통해 오랜 세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문래동 철공 기술의 위상을 널리 알려 소공인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문화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문래동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말 서울시 자치구 최초 문화도시로 지정됐으며, 구민 모두가 함께하는 명품 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 아프리카서 TV 포장 박스로 작품 전시회 연 LG전자…“환경을 위한 혁신”

    아프리카서 TV 포장 박스로 작품 전시회 연 LG전자…“환경을 위한 혁신”

    LG전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일환으로 아프리카에서 올레드 TV 포장 박스를 재활용한 예술 작품 전시를 진행한다고 4일 밝혔다. LG전자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니케 미술관(Nike Art Gallery)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활용 전시(전시명: LG Waste to Wealth)를 열고 올레드 TV 포장 박스로 만든 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아프리카 기후변화 대응 비정부기구인 ‘솔루션(Solution)17’ 및 현지의 젊은 예술가들과 협업했다.작가들은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자산으로 전환한다’는 콘셉트에 맞춰 포장 박스를 활용한 작품을 소개했다. 총 20여개의 올레드 TV 포장 박스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나 콜라주(종이를 찢어 붙이는 미술 기법)의 도구, 장식품 소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전시는 연말까지 진행된다. LG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는 한편 고객들에게 올레드 TV가 제품 자체뿐 아니라 포장 박스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만들어졌음을 알리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자원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올레드를 포함한 TV 전 제품의 포장 박스에 컬러잉크를 사용하지 않은 재활용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다. 또 올레드 등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TV 사업에서 ▲플라스틱 사용 원천 감축 ▲재생원료 사용 비중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LG 올레드 TV는 화면 뒤에서 빛을 쏴주는 백라이트가 필요 없는 특성상 동급 LCD TV 대비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단순해 자원효율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출시한 65형 ‘올레드 에보’를 생산하는 데 드는 플라스틱의 양은 같은 화면 크기의 LCD TV의 40% 수준이다.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또한 확대한다. 지난해에는 QNED 등 일부 LCD TV에 적용하던 재활용 플라스틱을 올해는 올레드까지 확대 적용했다. 이를 통해 TV에서만 연간 3,000t 가량 폐플라스틱 재생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LG전자는 올해부터 올레드 에보에 복합섬유구조 신소재를 적용, 제품 무게를 대폭 줄이고 제품 운송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고 있다. 운송 컨테이너(40피트 기준)에 65형 올레드 에보를 싣는 경우 한 번에 150대가량을 운반할 수 있는데, 지난해 동급 모델을 운반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컨테이너의 중량이 2.3t가량 줄어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동연 LG전자 나이지리아법인장은 “이번 전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LG전자의 노력의 일환으로, 앞으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수재민 치유 바자·음악회… 서초 문화의 힘[현장 행정]

    수재민 치유 바자·음악회… 서초 문화의 힘[현장 행정]

    “완판입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청 광장. 서초구가 개최한 ‘나눔과 회복의 서리풀 바자회’를 찾은 주민들의 줄이 양재역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부스 곳곳에서는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28일 서초구에 따르면 당초 이 행사는 국내 최대 문화예술축제인 ‘서리풀페스티벌’로 기획됐다. 구는 코로나19로 3년간 중단됐던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폭우로 수해를 입은 주민을 돕기 위해 바자회와 음악회로 전환했다. 당초 계획보다 행사 규모가 축소됐지만 의미는 더욱 커졌다. 바자회 판매 수익금 5000여만원은 수해를 입은 서초구민에게 전달된다. 구 관계자는 “수해와 코로나19 등으로 지친 심신을 음악과 예술, 나눔으로 치유하고 소통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행사 시작과 함께 바자회 부스를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주민들과 인사했다. 바자회에는 총 50여개의 부스가 운영됐다. 구에 있는 기업과 복지관 등이 참여해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했다. 바자회를 찾은 주민들은 질 좋은 물품들을 싸게 ‘득템’할 수 있었다. 특히 양재2동 주민들은 기부받은 청바지 자투리 천으로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구를 지키는 코너’라는 주제로 천연수세미와 친환경세제, 비누 등도 만들어 판매했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는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 사업을 통해 자체 브랜드로 제작한 힐링 식물 등을 내놔 인기를 끌었다. 장난감과 완구류를 파는 기업 부스도 설치돼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수해 주민 지원에 힘을 보탰다. 판매를 위한 부스뿐 아니라 안내·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특히 ‘낙서체험존’에서는 아이들이 매직과 크레파스, 물감 등을 활용해 바닥에 마음껏 끼적였다. 또 구청 광장 한편에서 청년 예술가들의 버스킹 공연이 열려 분위기를 한층 달궜다. 청년버스킹 50개 팀은 바자회·음악회 행사 기간 서초구 거리 곳곳에서 치유와 활력의 에너지를 전달했다. 아울러 지난 23~24일 열린 ‘회복의 서리풀 음악회’에서는 가수 SG워너비, 뮤지컬 가수 마이클리와 박소연, 팝페라 보컬그룹 포레스텔라 등이 무대에 올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음악회와 바자회에는 총 1만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전 구청장은 “수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문화의 힘으로 주민들에게 회복과 나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번 서리풀 음악회와 바자회를 마련하게 됐다”며 “이번 행사가 많은 분에게 치유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환승대기때도 예술 여행은 계속된다

    환승대기때도 예술 여행은 계속된다

    카타르 항공이 카타르 하마드 공항에서 ‘공항에서의 예술의 발견’ 도보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환승 대기 중인 여행객들을 위한 스톱 오버 프로그램으로, 하마드 공항 안에 조성된 조각, 설치 미술 작품 컬렉션을 전문가의 안내로 돌아볼 수 있다.하마드 공항엔 카타르를 비롯한 전 세계 60여 예술가들의 작품 약 70점이 설치돼 있다. 올해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40여개의 새 공공 예술 작품이 추가될 예정이다. 최근엔 미국 작가 톰 오터니스의 ‘아더 월드’(Other Worlds), 프랑스 장 미셸 오토니엘의 ‘코스모스’(Cosmos), 이라크 아메드 알 바흐라니의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 등이 새로 전시됐다. ‘공항에서의 예술의 발견’ 가이드 투어는 1시간 정도 진행된다. 참가비는 1인당 10달러다. 하마드 공항에서 최소 2시간 이상 환승 대기하는 승객이어야 한다. 누리집(www.discoverqatar.qa) 참조. 손원천 기자
  • ‘빛의 캔버스’ 된 채석장, 고흐와 함께 거닐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빛의 캔버스’ 된 채석장, 고흐와 함께 거닐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버려진 채석장 사면 채운 예술의 빛바위의 결·무늬, 원초적 美 드러내음악·관객 움직임 더해 치유 장소로 소외되는 관객 없이 영화 보듯 관람단순 감상 넘어 적극적 창조자 역할뛰어가는 아이들마저 하나의 작품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기, 절대로 만지지 말기, 무조건 조용히 하기. 이렇듯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어떤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하는 곳도 많고 백팩은 반드시 사물함에 맡기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으며 작품 사진을 찍지 못하는 곳도 많다. 그런데 가끔 이런 조심스러움을 확 벗어던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꾸밈없이 느끼고 싶을 때. 복잡한 에티켓을 잠시 잊고 그저 작품 속으로 온전히 빨려 들어가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프랑스 남부 레 보드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을 떠올린다. 나에게 미술을 말 그대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체험의 기쁨을 알려 준 곳이다. 이곳에서는 그림이 천장 위에도, 바닥 위에도 ‘상영’되기에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그림을 자연스럽게 만질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실제 그림이 아니라 벽에 투사된 이미지이기에 관객들은 그림을 향해 마음껏 손을 뻗어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아무 데서나 주저앉아 영화처럼 그림을 감상해도 되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음악 소리에 묻혀 웬만한 속삭임은 타인에게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작품 위를 성큼성큼 걸어가도 되고, 작품 속에서 남몰래 살짝 춤을 춰도 되는 그런 자유로운 미술관. 아이맥스 영화관 같기도 하고 초대형 미술관 같기도 한데, 극장처럼 어둡지도 않고 미술관처럼 조용하지도 않아 흥미로운 곳이다. 관객이 미술작품의 퍼포먼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을 주는 장소이기에 더욱 기분 좋다. 원작을 직접 관람하진 못하지만 뛰어난 화질과 엄청난 사이즈로 작품을 확대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가의 작품을 한 장소에서 몰아 보는 기쁨도 쏠쏠하다. 한 화가의 작품을 마치 자서전처럼 연대별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배움의 기쁨도 함께한다. 빛의 채석장에서 미술과 음악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미술은 음악으로 인해 더욱 커다란 울림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의 목소리도 음악에 파묻혀 더이상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미술과 여타 예술의 컬래버레이션은 관객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하는 ‘백조의 호수’에 맞춰 홀로 춤을 추는 댄서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는 파리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는 무용수가 그림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는 공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멋진 퍼포먼스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남준의 ‘다다익선’ 앞에서 멋진 오케스트라 공연을 해도 좋을 것 같고, 김환기의 그림 앞에서 현악사중주나 무언극을 관람해도 멋지지 않겠는가.●건축비 아끼고 지역 경제도 살려 무엇보다도 작품 앞에 관객이 서 있을 때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이 빛의 채석장의 또 다른 묘미다. 보통 미술관에서는 ‘내 차례’가 오기까지, 다른 관객이 그림을 다 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만 그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빛의 채석장에서는 어떤 후미진 공간에서도 그림이 시원하게 보이기 때문에 키 큰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안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사방에서 무한히 터지는 불꽃놀이처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천장과 바닥, 사면을 꽉 채울 때 고흐의 별빛 속을 걸어가는 관객의 모습은 더욱 애잔한 감동을 준다. 고흐는 하늘에서 신명나게 붓을 놀려 별빛을 뿜어 대고, 우리는 그 별빛을 머리 위에 한가득 맞으며 춤을 추는 기분이다. 기존의 미술관에서는 텅 빈 공간을 그림이 채우고 있는데, 빛의 채석장에서는 그림 자체가 또 다른 어엿한 공간이 된다. 왜 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에 가도 ‘더 아름다운 장소’를 찾고 싶어 하는 것일까.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말처럼 정말 인간은 욕망이 충족될수록 더 큰 욕망을 갖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더 큰 욕망을 갖는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더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더 아름다운 장소를 ‘창조’하고 싶은 꿈도 함께 깃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장소들을 자꾸만 바라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장소를 내 손으로 가꾸고 싶다는 꿈도 자라난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은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눈부신 영감을 선물했다. 쇠락한 공업도시였던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이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통해 단 하나의 아름다운 장소만으로도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처럼 빛의 채석장도 인구절벽을 향해 치닫던 레 보드프로방스의 운명을 바꿨다. 빛의 채석장은 구겐하임미술관처럼 엄청난 건축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더욱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아름다운 공간을 원하고 또 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빛의 채석장은 예술가들의 꿈을 이뤄 주는 공간, 미술을 사랑하지만 매번 머나먼 나라의 거대한 미술관에 가서 원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꿈을 이뤄 주는 공간이다. 원화를 모방한 가상의 이미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관객의 움직임, 그림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서 이곳 자체가 또 하나의 치유적 장소가 된다. 빛의 채석장에서는 누구나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의 친구가 되고, 모네의 수련이 가득한 연못 위에 배를 띄워 평화롭게 노 저으며 모네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빛의 채석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채석장 위에 아름다운 영상을 ‘덧입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채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질 뻔한 채석장에 ‘예술의 빛’을 비춤으로써 그 채석장의 바위 하나하나가 지닌 ‘결’과 ‘무늬’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술이라는 빛이 거대한 돌들을 비추자 하나하나의 돌들이 지닌 결과 무늬가 저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새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돌들에 비친 그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돌들 자체가 아름다웠다. 빛의 채석장은 첨단형 미디어아트이기 이전에 원초적 대지의 예술이 아니었을까. 자연 속 대지는 우리에게 매일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선물하는데, 우리는 그 대지의 빛을 잿빛 콘크리트 건물로 가린 대도시에서 그 야생의 빛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스토리텔링으로 다시 태어나는 작품 나는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져 고흐가 거대한 채석장의 바위들 속에서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숨 막히는 감동의 눈길로 바라봤다. 고흐의 그림들이 평소보다 아름다워 보일 뿐 아니라 채석장의 돌들 자체가 고흐의 그림으로 인해 ‘그저 평범한 바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캔버스’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잃어버린 장소, 버려진 채석장이 미술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삶이라는 스토리텔링과 첨단과학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지역경제 전체를 살려 냈다. 이런 공간에서는 관객이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야’란 생각 때문에 소외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를 보듯 편안하게 미술을 관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머나먼 거리가 좁혀지고, 전문적 비평가와 아마추어 관람객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이들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으로 뛰어가도 그림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처럼 보인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밑으로 뛰어가는 아이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고흐는 거대한 우주의 캔버스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마치 페인트칠하듯 그려 주고, 사람들은 고흐가 창조해 낸 거대한 예술의 공간에서 웃고, 울고, 뛰고, 거닐고, 춤추며 작품 ‘안쪽’의 공간을 살아가는 거주민이 된다. 빛의 채석장에서 고흐는 화가를 뛰어넘어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새롭게 재창조한다. 관객은 그림 ‘밖에서’ 그림을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숨 쉬는, 적극적인 미의 창조자가 된다. 관객이 그림 위에 서 있고, 그림 옆에 기대고, 그림 속으로 걸어가고, 그림 아래로 뛰어감으로써 그림은 때로는 거대한 벤치가 되고, 때로는 천장이 되고, 마침내 그림 자체가 거대한 장소가 돼 관객의 마음속에서 찬란하게 물결친다. 문학평론가·작가
  • 전 세계 누비는 손열음의 건반… 그 안엔 깊고 넓은 독서가 있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전 세계 누비는 손열음의 건반… 그 안엔 깊고 넓은 독서가 있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중2 때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고 피아니스트 손열음. 그의 독서력이 그의 음악을 심화시킨다. 그의 빛깔로 해석해 낸다. 세계를 무대로 삼아 전문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의 작은 도시 원주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책과 독서는 그의 음악을 성장시키는 근원 같은 것이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던 ‘글방터’라는 작은 책방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는 그 책방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글방터에 비치돼 있는 어린이·청소년 책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친절한 사장님 내외분은 글방터에 없는 책들은 서울로 주문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이, 책의 세계가 그렇게 좋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문학이란 게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었는데 엄청 강렬했어요. 우리 언어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했습니다. 두 번이나 읽었어요.” 손열음의 독서는 넓고 깊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영역은 넓어졌고, 의미는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저도 어렸을 적에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습니다. ‘데미안’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리알 유희’를 펼쳤다가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책을 덮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마저 읽었습니다. 중3 때 어머니가 권한 릴케와 마르틴 부버를 읽었습니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역사가 좋았다. 역사는 신비로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국사대사전’이란 엄청 큰 책을 사 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ㄱ’부터 순서대로 다 읽었습니다.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 같은 책도 특유의 시대정신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도 좋아했습니다. 라벨, 스트라빈스키, 거슈윈,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등 개성 있는 사조를 창출해 내는 음악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근현대사, 인류문화사에서 그 개개인이 빛을 발하는 시대이기에, 음악을 하는 저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그를 존재하게 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문학가를 당연히 탐독한다. 홍명희의 ‘임꺽정’뿐 아니라 채만식의 ‘탁류’를 읽었다. 김유정·이광수를 읽었다. 박경리의 큰 소설 ‘토지’를 가슴 졸이면서 읽었다. “문학엔 경계가 없지요. 중국현대사에 우뚝 서는 루쉰도 좋아합니다.” ●토마스 만 음악소설 ‘파우스트 박사’ 우리에게 ‘마의 산’으로 널리 알려진 토마스 만은 ‘파우스트 박사’라는 불멸의 음악 소설을 써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서술한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철학가 아도르노의 자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제가 지금까지 읽은, 음악을 글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을 꼽으라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라고 말하겠습니다.” 수많은 철학자·사상가·문학가들이 그의 독서목록에 들어 있다. 니체,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들이다. 괴테, 프루스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슈무엘 아그논 같은 문학가들이다. 독일음악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종교에 맞닿아 있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를 정말 좋아합니다.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지만, 저는 다소 종교적인 것 같아요.”●그를 키워 낸 이강숙의 음악철학 손열음은 ‘순 국산’이었다. 한국에서 공부해 세계에 서는 피아니스트가 됐다. 지금은 더 많은 ‘국산 연주자’가 탄생하고 있지만, 손열음은 서울도 아닌 저 원주에서 공부해 국제무대에 당당히 서고 있다. 이런 손열음의 뒤에는 이강숙이라는 걸출한 음악교육가가 있었다. 2015년 손열음이 써낸 음악에세이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 한예종 이강숙 총장이 ‘축하의 글’을 붙였다.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에게서 배웠다. 순 국산이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울었다. 손열음을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셨길래 저를 이렇게 기쁘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강숙 총장은 이 기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우리 예술교육의 장래를 위해, 손열음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썼다. 저 1980년대부터 나는 이강숙 선생을 만났고, 한예종을 준비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음악교육철학을 들었다. 그때 나는 세계가 연주·연구하는 우리 음악가 윤이상의 음악이 왜 자기 조국에서는 연주도 안 되고 연구도 안 되느냐면서 베를린으로 갔다. 선생을 뵙고 선생의 음반을 펴내려 했다. 그때 한 신문사는 선생의 귀국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국의 불허로 음반도 음악회도 성사되지 못했지만, 나는 이강숙 선생과 함께 음악회에 즈음한 ‘윤이상 귀국’을 의논하기도 했다. 이강숙은 손열음에게 ‘영웅’이다. 그의 예술영혼에 언제나 살아 있다. 그와의 만남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등에 짊어지고 견인해 주신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웅에 비견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렸을 적 매일매일 역사책을 붙들고 다니던 때는 잘 몰랐는데, 때때로 세상은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는 것, 그분이 안 계셨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계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의 뒤에는 역시 어머니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의 ‘가르치는 일’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던 딸 손열음을 사랑과 이성으로 키워 낸 최현숙 선생이다. “어릴 적 열음이가 하는 일은 딱 두 가지, 책 읽기와 피아노 치기였습니다.” 손열음도 말했다. “원주에서 레슨을 받으러 서울로 다니는 차 안에서도 책 없이는 살 수 없었다”고. 그런 독서의 덕택이었을까. 그는 빼어난 글쓰기의 ‘작가’가 됐다. “어린 시절 제가 책에서 받은 선물들을 돌려드릴 마음으로 설렌다”고 ‘음악 편지’ 머리말에 쓰고 있다. 손열음은 참 의미 깊은 이야기도 한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음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처럼 경쟁적인 대도시, 뭐라도 빨리빨리 해야 하는 속도의 사회에서 음악이 과연 가능할까. 제가 어렸을 때 책을 덜 읽었다면 30분, 40분 소요되는 클래식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젊은 감독 2018년 32세의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이끌던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이어받는다. 그의 고향 강원도가 그를 선택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손열음의 젊은 예술정신으로 새로워지고 있다. “원주와 강원도는 저의 근원입니다. 고향의 산과 들, 나무와 숲과 꽃이 저의 가슴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강릉 외삼촌 댁에 놀러 갈 적에 넘어야 했던 그 대관령이었다. 그는 이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세계 속의 음악제’로 만들고 싶다. 고향의 산하에서, 고향의 숲에서 펼쳐지는 음악제를 위해 헌신하는 손열음이 아름답다. “평창대관령을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꿈은 그렇게 꿔야지요. 제가 해외 연주를 가면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와 보고 싶다는 음악 팬들이 많이 늘었다는 걸 알게 돼요.” 2021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는 윤이상이 연주됐다.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이 더 많이 연주돼야 할 것이다. 우리 연주자들이 더 참여해야 할 것이다. “당연합니다. 윤이상 선생의 곡은 편성이 큰 곡이기 때문에 악기 편성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이 많이 연주되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돼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세계에 내놓으려면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속돼야 한다. 연륜과 역사가 중요하다. “평창대관령은 음악제를 하기 위한 지형적 조건이 참 좋다고 생각됩니다. 산하가 아름답고, 기본적으로 조용합니다.” 1년에 세계 무대에서 50여회 연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논어’를 읽으면서 세계의 음악인들과 호흡을 맞춘다. 열려 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그는 이미 인기 있는 대중적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강단에 서기보다는 연주자로 남고 싶어 한다. “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생이지만 지금도 힘찬 연주를 해내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남성 연주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도 80~90대까지 연주했지요. 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 다양해지는 연주자로 오래오래 남고 싶어요.” 나는 학창 시절부터 책방을 드나들었다. 지인들과 함께 ‘숲속의 책 읽는 마을’의 건설을 모색하고 있다. 1995년부터 북녘땅이 건너다보이는 파주의 통일동산에 예술마을 헤이리를 건설하는 일에 나섰다. 그 한가운데에 책의 집, 책을 위해 존재하는 ‘북하우스’를 지어 개관했다. 책방이 그 중심공간이고, 전시와 공연이 함께 펼쳐진다. 나는 헤이리의 북하우스 프로그램에 이어 숲과 산악의 땅 강원도를 주목하고 있다. 평창과 대관령의 고원지대 숲속 어딘가에 책방을 개설한다면, 이 책방을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연계한다면 어떨까. 이름하여 ‘손열음 책방’이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 깊은 밤 적막강산의 책방을 밝히는 달빛과 별빛. 작은 음악회와 시 낭독회가 열린다. 작은 미술 전시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좋아요. 저도 그런 거 하고 싶어요.” 책과 음악이 하나 되는 작은 책방, 도시문명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힐링공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는 저 숲으로 울창한 강원도의 고원지대에 ‘손열음 책방’을 친구들과 손잡고 개설해 보고 싶다. 인문예술의 장르와 공간의 확장운동이다. “생각만 해도 신명나는 일입니다. 우리 함께해 봐요.”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문화마당] ‘미술과 건축을 위한 진열창 갤러리’ 40주년의 의미/최나욱 건축가·작가

    [문화마당] ‘미술과 건축을 위한 진열창 갤러리’ 40주년의 의미/최나욱 건축가·작가

    뉴욕에 위치한 비영리 전시공간 ‘미술과 건축을 위한 스토어프런트’가 설립 40주년을 맞이했다. 숫자놀음에 그치는 평범한 기념행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의 40주년은 다른 사건들과 맞물리며 의미를 확장한다. 우선 뉴욕이라는 현재 세계 최고 대도시의 태동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40년 전 뉴욕은 냉전과 석유파동이 끝나고 가파르게 도시 개발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 고층 빌딩이 무지막지하게 올라가는 동안 철거 중인 건물에는 각종 이민자와 예술가들이 들어섰다(힙합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건물의 진열창을 뜻하는 ‘스토어프런트’는 공사 중 널려 있는 임시 공간 중 하나였다.이제는 명실상부 최고 대도시인 뉴욕이 ‘대도시’ 개념을 구축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대도시는 자급자족이 아니라 물류의 이동을 통해 형성되는 곳으로, 뉴욕의 정체성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들의 산물이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쓴 ‘정신착란의 뉴욕’이 바로 1977년에 출간된 책이다(당시 뉴욕을 아무 규범도 없는 무정부 상태로 묘사한다). 스토어프런트의 설립자 박경은 한국전쟁 이후 도미한 이민자 출신이다. 오늘날 예술에서 당연하게 언급하는 ‘공공성’이 대두된 것도 이 무렵이다. 대도시를 개발하는 거대 자본 앞에서 사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던 예술가들은 예술을 어느 엘리트 집단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지평에서 다루기를 목표한다. 이러한 이들이 모여 만든 스토어프런트는 개관 이후 줄곧 공공성을 주제로 삼았고, 이번 40주년을 맞아 여는 전시 또한 (갤러리의 핵심 멤버였던) 비토 아콘치의 공공성에 관한 에세이로부터 출발한다.인접 분야로 여겨지는 ‘건축과 미술’이 관계 맺던 방식도 돌아볼 만하다. 도시 개발과 함께 최고의 호황을 달리던 건축은 철학을 짝꿍 삼아 담론을 발전시켰고, 상대적으로 미술은 들러리처럼 여겨졌다. 쿠퍼 유니언을 만든 존 헤이덕, 건축 및 도시 연구소를 만든 피터 아이젠먼처럼 철학 이론에 근거를 두는 당대 ‘뉴욕 파이브’를 위시한 건축가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와중에 스토어프런트는 보여지는 현실에 뛰어들기 위해 건축과 미술이라는 새로운 짝을 찾은 것이다. 건축사와 미술사 각각에서 ‘미술과 건축을 위한 스토어프런트’를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갤러리가 건축 공간을 다루는 방식 또한 각별하다. 명확한 프로그램을 갖춰야 마땅한 시기였던 만큼 전시 공간이란 무릇 ‘화이트큐브’여야 했는데, 스토어프런트는 비좁은 진열창에 전시장을 차리고는 바로 앞의 거리를 제 면적으로 활용한다. 대도시를 상징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클럽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건물 안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문밖에 줄을 서 외부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필지 하나하나 부동산을 계산하던 시기 중 과연 이민자와 예술가만 할 수 있는 발상이다. 설립자 박경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건축가 전진홍은 “한국 포장마차의 유전자를 가지고 계신 거야”라고 농담한다.모쪼록 40년이 지나 뉴욕은 개발 시기를 기억할 수 없는 안정된 대도시가 됐고, 스토어프런트는 혁신보다는 기념비적인 갤러리가 됐다. 설립자 박경은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감독으로 선정돼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개발 진행 시기 ‘살아남기’를 토대로 공공성을 고민하던 박경은 이 비엔날레 전시에서 개발 이후인 오늘날 ‘함께 살기’를 중요한 문제로 삼는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후회하지 않는 인생/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후회하지 않는 인생/미술평론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오스트리아 빈은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도시였다. 작곡가 말러와 쇤베르크,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미술가 클림트를 비롯한 숱한 인재들이 활동했다. 이들을 떠받드는 예술 수집가와 음악 애호가, 사교계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카를 몰은 빈 미술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클림트의 친구였던 몰은 클림트가 보수적인 기성 화단에 맞서 분리파를 결성할 때 힘을 합쳤고, 분리파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신진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조직하고 홍보했으며, 예술을 일상생활로 확장한다는 목표를 지닌 빈 공방의 설립에도 관여했다. 몰은 1905년 반고흐의 첫 번째 빈 전시회를 조직하고 그의 작품 ‘예술가 어머니의 초상’(1888)을 사서 자기 서재에 걸었다. 그는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클림트처럼 화려하고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세련된 풍경화와 실내 그림, 정물화를 남겼다. 그의 그림을 통해 20세기 초 빈 중산층 가정의 모습과 빈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다. 고요한 서정과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세계. 그는 왜 잊혔을까? 몰은 나치 동조자였다. 그는 평생 유대인을 혐오했고 히틀러를 칭송했다. 그의 딸도 마찬가지였고, 나치당원이었던 사위는 나치 법원의 고위직에 있었다. 1945년 4월 10일 소련군이 빈에 진주했다. 12일 그의 집에 소련군이 난입해 약탈을 자행했다. 그날 밤 몰은 딸, 사위와 함께 독약을 나눠 마셨다. 몰은 작별 편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잠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인생이 허용한 아름다움을 다 가졌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평론집 ‘생트뵈브에 반대한다’에서 작가의 전기에 의존해 작품을 해석하는 실증주의 비평을 비판하고 작품과 작가의 생애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루스트의 이런 견해는 현대 형식주의 비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작품과 작가의 생애를 어떻게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단 말인가. 동료 화가들이 활동을 금지당하고, 더러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고, 히틀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광장에서 불태워지는 가운데 태연히 후회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 그의 단정한 풍경화를 들여다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 역사 속 트라우마 예술로 시각화… 과거에 비추어 현재 조망 성찰케[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역사 속 트라우마 예술로 시각화… 과거에 비추어 현재 조망 성찰케[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2000년대 초반 본인이 세운 갤러리아 플랜B에서 개인전으로 데뷔해 20년도 안 된 2015년 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루마니아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고, 해외 주요 미술기관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놀라운 행보를 보이는 작가가 있다. 현재 주목해야 할 최고 아티스트 반열에 올라 있기도 하다. 특별히 영국 20세기 최고 화가로 소개되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많은 형식적, 내용적 유사점으로 더욱 주목받는 40대 회화 작가 아드리안 게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 크리스티 경매사가 처음으로 게니의 첫 아시아 전시를 베이컨과의 2인전 형태로 열어 소개했다. 1977년 루마니아의 바이아마레에서 태어난 게니는 차우셰스쿠의 독재정치를 겪으며 암울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대통령으로 혁명이 일어난 1989년 12월까지 독재정치를 펼쳤다. 차우셰스쿠의 통치 아래 루마니아 국민들은 감시와 억압 그리고 폭정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으며 루마니아 사회에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겼다. 유년 시절 경험한 독재 정치의 뼈아픈 상흔은 게니가 작품에서 트라우마와 역사적 암흑기의 인물들을 다루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독재의 아픔을 경험한 게니는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 역사에 남겨져 있는 트라우마까지 확장해 사회의 집단적 기억과 트라우마를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또한 단순히 과거 기억을 다루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과거 기억을 동시대 예술가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고찰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 주고 있다. 즉 동시대 작가가 예술을 통해 행하는 과거 기억을 기록하기 위한 기억술이리라. 대표적인 작품으로 ‘컬렉터’ 연작을 살펴보자. ‘컬렉터’ 연작은 2008년에 그려진 게니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작품 속 인물은 독일 군인이자 나치의 추종자였던 정치가 헤르만 괴링이다. 그는 비밀경찰과 강제 수용소를 만들어 나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학살하며 나치 시기에 앞장서서 사람들을 억압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잔혹함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인물로도 유명했는데, 나치가 통치하는 동안 자신의 권력을 앞세워 수많은 예술품들을 약탈한 것으로 전해진다. ‘컬렉터’ 연작은 총 4개 작품으로 이뤄졌다. 앞선 3개 작품이 약탈자이자 컬렉터였던 괴링의 살아 있는 모습을 담아냈다면 마지막 작품은 임종을 맞이한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후 사형 집행 전날 자살로 죽음을 맞이했던 괴링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있던 비극적 역사와 트라우마들을 떠올리게 한다. 홀로코스트 이후 ‘기억의 의무’는 마치 정언 명령처럼 우리 사회에 주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기억’은 과거의 비극적 사건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류의 행위라 여겨진 것이다. 게니는 괴링을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매체로 만든다. 부유하던 과거의 흔적들은 게니의 회화적 제스처를 통해 가시화되고 고착된 기억이 됐다. 작가는 실제 행해졌던 인류의 비극적 행위들, 그리고 그 이면에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잊혀지지 않도록 전환시켰다. 게니의 작품은 예술을 통해 과거 기억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게니의 작품에는 미술사 내 여러 작가들이 미친 영향이 잘 드러나 있다. 역사화와 같은 유사한 이미지 구성은 램브란트를 생각하게 하는가 하면, 유화의 붓을 사용하지 않고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해 물감을 아주 두껍게 칠하는 그의 특유기법으로 그린 고흐는 얼굴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베이컨의 초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특유의 이미지를 긁어내는 기법을 쓰기도 했고, 이외에도 앙리 루소와 제리코 등 모두 미술사 내의 회화라는 매체의 전통과 기법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한 뒤 이를 수용했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시각언어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런 독창적인 기법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책, 영화, 사진, 미술사적 요소들을 해체, 재해석, 재결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제작했다. 대표적 작품인 ‘콜렉터 4’와 ‘다다는 죽었다’에 그려진 다다이스트(전통을 부정하는 예술가) 존 하트필드와 루돌프 슐리히터의 돼지머리를 한 독일 장교 모형인 ‘프로이센 대천사’와 고흐의 초상화를 마치 베이컨의 작품처럼 변형시킨 ‘눈꺼풀 없는 눈’에서 그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제시된 새로운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그 경계를 지속적으로 넘나들게 한다. 이로써 게니가 시간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제시한 이미지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 새롭게 혹은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게니의 작품은 완전히 구상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은 특징을 지닌다. 때문에 그가 다루는 정치적인 주제들 역시 구체적이거나 명확하기보다는 작품 속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게니를 대표하는 ‘파이 싸움’(Pie Fight) 연작의 인물들은 마치 베이컨의 인물들처럼 물감이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특히 이 연작 중 2014년에 그려진 ‘파이 싸움 실내 12’는 2022년 5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8106만 홍콩달러(약 140억원)에 팔려 게니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됐다. ‘파이 싸움’은 서양에서 파이를 상대 얼굴에 던지는 행위다. 파티에서 축하하거나 혹은 장난으로 하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정치인, 권력자 등 적대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롱의 의미로 던지기도 했다. 게니는 ‘파이 싸움’ 연작에서 인물의 초상을 그리되 얼굴에 물감을 덧대고, 긁어내고, 비틀어 대상의 얼굴을 지운 익명의 초상화를 그려 낸다. 초상화에서 인물의 얼굴은 대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얼굴을 지우고 해체시켰다는 것은 대상의 정체성을 지움으로써 특정 인물이 아닌 과거 혹은 현대 사회 속에서 권력의 병폐와 그런 권력에 가담했던 추종자, 이를 묵인하고 외면했던 예술가들 모두를 대변하는 보편적인 초상화를 그려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파이 싸움’ 연작은 위의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의식을 담아 그려 낸 것으로, 사회에 내재돼 있는 집단의 트라우마적 기억들과 비극적 사건들 그리고 그 속의 다양한 정치적 내러티브에 주목하고 있는 게니의 관심사들을 집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유례없는 극한의 사건이 발생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전 세계에서는 권력의 횡포로 억압받고 소외받는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혹은 동시대에 일어난 여러 사건과 기억들을 결합시켜 그려 내 기억의 매체로서 제시하는 게니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게 만들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로써 게니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속 세계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당한 권력의 행세와 행위들을 우리가 묵인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성찰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퐁피두 미술관, 해머 미술관, 라크마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스태들릭 미술관, 겐트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숨 프로젝트 대표
  • 과일과 인간의 끈끈한 관계, 아삭한 글로 풀어내다

    과일과 인간의 끈끈한 관계, 아삭한 글로 풀어내다

    과일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달콤한 맛과 풍성한 영양성분은 물론이거니와 생김새며 색깔까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다. 아담과 이브 역시 과일을 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됐고, 세계 곳곳의 신화에도 과일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태초의 인간에게도 과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 덩어리였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태초에는 자연 그대로 있었겠지만 과일은 동물들이 끊임없이 퍼트리고 인간들이 끊임없이 길들이면서 폭넓게 확장됐다. 기후의 제약이 불가피한 과일을 어느 지역에서까지 재배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재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인간과 과일을 함께 진화시켰다. 독일의 논픽션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베른트 브루너가 지은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과일처럼 아삭한 글과 잎사귀처럼 풍성한 자료로 전한 책이다. 저자는 과수원을 “과일나무와 나무들을 돌보는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매우 독특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무대”라고 정의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피땀 흘린 노력으로 자연과 협력해 만들어 낸 예술품이 바로 과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일을 찾아 헤맸던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과일을 가까이에서 재배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이 14세 당시 베르사유궁전에 조성된 정원은 궁전에 과일을 공급하는 용도인 동시에 왕의 이미지를 위해 디자인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과일이 익는 데 필요한 열이 부족했던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과수원에 돌담이 둘러쳐진 이유는 차가운 북풍을 막고 태양열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의 한 농토에 과일 묘목 수천 그루를 심고 기록을 남기는 등 과일 재배는 인류의 역사 곳곳에 스며 있다. 과일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과수원에 대해 노래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올리브를 재배하는 사람을 관찰해 그려 냈다. 저자는 문화사, 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접근 방식에 더해 풍성한 삽화와 예술 작품을 통해 과일과 인간의 끈끈한 관계를 탐험하며 독자들에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과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 장애인+비장애인, 뮤지컬 배우+수어 통역 배우, 라디오 진행자 연기+음성 해설…위+너+들+ ‘합★체’

    장애인+비장애인, 뮤지컬 배우+수어 통역 배우, 라디오 진행자 연기+음성 해설…위+너+들+ ‘합★체’

    저신장 아버지 둔 쌍둥이 형제 키 커지기 위한 수련 얘기 담아 극중 DJ, 대사로 연극 진행 설명 ‘2인 1역’… 연기자 옆서 수어 전달 “장애인도 배우 되게 하고 싶어” “무장애(배리어 프리) 공연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저희 공연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100여분간 편하고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립극장이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와 관객을 아우르는 음악극 ‘합★체’를 초연한다. 고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합★체’는 저신장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으로 이들이 키가 커지기 위한 특별 수련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연출은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 연출가로 20년 가까이 장애 예술인과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온 김지원(48) 연출가가 맡았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수어와 음성 해설 등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다양한 언어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느끼고 편안하게 적응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합★체’는 한글 자막,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마련되는 것은 기존 무장애 공연과 같지만 방식이 다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은 극중 배역 라디오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은 1명의 통역사가 모든 대사를 통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배역에 뮤지컬 배우와 수어 통역 배우 2명을 캐스팅한 것이 특징이다. 수어 통역 전문 자격증을 겸비한 배우 3명과 무대 경험이 있는 전문 수어 통역사 2명이 수어 통역 배우로 무대에 올라 주요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신장 장애인 ‘아빠’ 역할은 실제 저신장 장애 배우 김범진(31)이 맡았고, 농인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농인이 직접 수어 대본을 번역했다. 김 연출가는 “박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했던 2010년 당시는 ‘키가 작으면 루저’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라며 “키가 크고 싶은 바람과 결핍을 유쾌하면서도 가슴에 남도록 무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합’과 ‘체’ 사이에 별(★)을 집어넣은 것도 원작의 제목을 살린 것이다. 김 연출가는 “극중 아빠가 ‘좋은 공은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튕겨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탄력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탄력도’가 체화되면서 또다시 도전하는 힘이 생기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김 연출가는 2004년 장애인 극단 ‘휠’에서 우연히 연출을 맡으면서 장애인 예술가들과 활동하게 됐다. 이후 2013년 창단한 ‘다빈나오’에서 대표와 상임 연출가로 활동하며 ‘소리극 옥이’(2017년 초연) 등 무장애 공연을 만들어 왔다.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장애인이 아닌, 배우라고 말할 수 있도록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해 주고 싶었어요. 작품을 잘 만들어 무대에서 멋있게 공연하면 장애인으로 보겠어요. 배우로 보지.”
  • KB금융, 압구정에 국내 최대 자산관리센터 열어

    KB금융, 압구정에 국내 최대 자산관리센터 열어

    KB금융그룹은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자산관리센터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는 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구성된 총 9층 규모의 종합자산관리센터다. 15개의 고객상담실과 1400여개의 최신식 대여금고를 갖추고 있다. 센터 전체 내부 공간은 ‘책과 예술’이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또 김환기 화백과 같은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센터 곳곳에 전시해 고객이 마치 미술관에 들어와 작품을 관람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실내 공간을 구성했다. 이 밖에 대형 세미나실, 고객 전용 야외 테라스 및 바리스타가 상주하는 고객 전용 라운지도 갖추고 있다. 센터는 고객 중심, 고객 만족 서비스를 위해 KB국민은행, KB증권 프라이빗 뱅커들과 투자, 세무, 부동산, 법률, 신탁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뤄 고객을 관리한다. KB형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통해 개인자산을 포함해 법인, 재단 등 본인의 모든 자산에 대해 부의 증식·이전·가업승계까지 고려한 신탁 솔루션을 받을 수 있다. 기업대출과 개인대출 등도 이용할 수 있다.
  • “수어통역 어우러진 ‘합★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편하게 즐겨요”

    “수어통역 어우러진 ‘합★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편하게 즐겨요”

    “무장애(배리어 프리) 공연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저희 공연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100여분간 편하고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립극장이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와 관객을 아우르는 음악극 ‘합★체’를 초연한다. 고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합★체’는 저신장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으로 이들이 키가 커지기 위한 특별 수련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연출은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 연출가로 20년 가까이 장애 예술인과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온 김지원(48) 연출가가 맡았다.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수어와 음성 해설 등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다양한 언어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느끼고 편안하게 적응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합★체’는 한글 자막,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마련되는 것은 기존 무장애 공연과 같지만 방식이 다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은 극중 배역 라디오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은 1명의 통역사가 모든 대사를 통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배역에 뮤지컬 배우와 수어 통역 배우 2명을 캐스팅한 것이 특징이다. 수어 통역 전문 자격증을 겸비한 배우 3명과 무대 경험이 있는 전문 수어 통역사 2명이 수어 통역 배우로 무대에 올라 주요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신장 장애인 ‘아빠’ 역할은 실제 저신장 장애 배우 김범진(31)이 맡았고, 농인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농인이 직접 수어 대본을 번역했다. 김 연출가는 “박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했던 2010년 당시는 ‘키가 작으면 루저’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라며 “키가 크고 싶은 바람과 결핍을 유쾌하면서도 가슴에 남도록 무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합’과 ‘체’ 사이에 별(★)을 집어넣은 것도 원작의 제목을 살린 것이다. 김 연출은 “극중 아빠가 ‘좋은 공은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튕겨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탄력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탄력도’가 체화되면서 또다시 도전하는 힘이 생기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김 연출가는 2004년 장애인 극단 ‘휠’에서 우연히 연출을 맡으면서 장애인 예술가들과 활동하게 됐다. 이후 2013년 창단한 ‘다빈나오’에서 대표와 상임 연출가로 활동하며 ‘소리극 옥이’(2017년 초연) 등 무장애 공연을 만들어 왔다.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장애인이 아닌, 배우라고 말할 수 있도록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해 주고 싶었어요. 작품을 잘 만들어 무대에서 멋있게 공연하면 장애인으로 보겠어요. 배우로 보지.”
  • 한국이 이끈 ‘치유 예술’ ITAC… “하나의 몸짓, 사람·세상 바꾼다”

    한국이 이끈 ‘치유 예술’ ITAC… “하나의 몸짓, 사람·세상 바꾼다”

    “한국 문화예술이라고 BTS(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케이팝만 떠올리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집중하는 예술교육은 나와 우리, 공동체를 만나며 돌봄과 치유를 꾀하는 매개체죠.” 최근 서울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6)에 참가한 김소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본부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ITAC 국제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ITAC는 지역사회와 교육 현장 등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 예술교육가들이 모이는 국제 대회다. 스스로 예술가가 아닌 예술교육실천가(TA·Teaching Artists)라고 부르는 이들은 2년에 한 번 열리는 ITAC에서 예술교육의 가치와 역할, 실천 방향 등을 함께 모색한다. 김 본부장은 “한국은 2020년 아시아권 최초로 ITAC5를 개최했고, 지난해 한국 ITAC 사무소를 공식 발족해 국내외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며 “빠르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이 어디까지 발전할지에 대한 해외 국가들의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올해 ITAC6는 ‘변화와 촉매로서의 예술’을 주제로 해 36개국 200여명의 TA와 예술가가 모여 60여개의 세션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중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객원교수인 제환정 디렉터는 현장에서 한국무용 TA 13명의 인터뷰 영상과 무용수 5인의 안무를 곁들인 공연형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여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인터뷰에 참여한 TA들은 초등학생부터 가정폭력 생존자, 지하철 청소 노동자 등과 함께 실제 워크숍을 진행하는 현장 실천형 무용가다. 단순히 멋진 춤과 동작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평소 사람들의 손동작과 발동작을 본떠 안무를 구성했다. 제 디렉터는 “예술이 직접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을 바꾸고, 결국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며 “유명인 한 명이 아닌 일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주는 생생한 울림이 컸다”고 돌아봤다. 이어 “아직도 TA라고 하면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각성한 예술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 최전방에서 예술교육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손에 흙을 묻히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공유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들은 국제 교류 플랫폼으로서 한국 ITAC 사무소가 더욱 역할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스코틀랜드 공공지원기관인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에서는 예술가와 문화기관, 사회적 기업의 협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컬쳐 콜렉티브펀드’를 운영하고, 18개월에 걸쳐 이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역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할 기회, 시간, 비용을 지원하고, 교육 대상자와 함께 오랜 시간 호흡하며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그는 왜 우도에 훈데르트바서파크를 허 하였는가

    그는 왜 우도에 훈데르트바서파크를 허 하였는가

    “자연에서 빼앗은 땅을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 ‘섬속의 섬’ 우도에 훈데르트바서의 이같은 철학이 녹아들지 않았다면 훈데르트바서파크는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우도에서 가장 전망좋은 땅에…. 훈데르트바서 우도미술관 이상엽 관장은 지난 8일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과 자연은 하나라고 강조했다”면서 “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도에 훈데르트바서파크를 세우게 됐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1928~2000년)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의 3대 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화가이자, 건축가이자 환경운동가였다.#직선은 곡선을 이길 수 없다… 모든 건축물에 곡선미 살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하던 훈데르트바서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써온 ‘건축 치료사’ 답게 훈데르트바서파크 역시 부지 내에서 자라던 1600여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거나 뽑아버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심어, 그야말로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는 자연속의 예술적인 파크로 재탄생시켰다. 실제 옥상에 올라가면, 초지로 자연에게 다 돌려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훈데르트바서파크의 대표적 건축물인 박물관은 직선 디자인이 없다. 모두가 곡선이다. 화가이자 건축가인 그는 그림을 하듯 건축을 했고, 건축을 하듯 그림을 그렸다. 어느날 아뜰리에(화실)에 화재로 모든 것이 타버리고 남은 것은, 직선이었던 자가 곡선의 자로 변해 있었다. 그때 그는 그것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단다. 그 이후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곡선만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건물의 외형, 기둥, 창문, 벽, 계단, 광장 등 대부분의 공간을 곡선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장은 “그래서 훈데르트바서파크의 기둥은 78개가 있는데 형태와 색상이 모두가 다 다르다”면서 “벽과 기둥, 창틀에 붙인 세라믹 타일도 독일에서 공수했다”고 설명했다. 사과, 한라봉, 호박의 느낌이 나는 타일을 붙여 자연의 느낌, 마치 붓으로 그린 듯한 이 질감의 느낌을 살려냈다. “심지어 131개의 창문이 있는데 각각 모두 다르다”고 덧붙였다. # 인간은 모두 다른 존재… 자기 손이 닿는만큼 집도 꾸며야 한다며 ‘창문의 권리’ 주장 훈데르트바서는 ‘창문의 권리’를 주장했다. “우리 인간은 다섯가지 피부로 이뤄졌다”면서 “인간으로서의 피부와 의복, 집, 국가, 자연 등 다섯가지 피부로 인간은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옷도 인격으로 봤다. 자신이 직접 다 만들어 입었을 정도였다. 집도 세를 얻어 살지만, 자신이 사는 방 만큼은 행인들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손길이 닿는만큼 꾸며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창문들에 개성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파크 광장에 있는 ‘쯔블링(독일어로 쌍둥이)분수’마저 모양과 생김새가 다르다. 그 이유는 쌍둥이도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이고 우리 인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훈데르트바서 건축은 노예가 지어선 안된다… 돈 벌기 위해 억지로 짓지 마라 특히 훈데르트바서는 실제 우도에 건물을 지을 당시 현장 인부들에게 타일을 붙일 때 창의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훈데바르트바서 건축은 노예가 지어선 안 되며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지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예술성과 창의력을 발휘해 달라 당부했다. 이 미술관장은 “처음엔 공사장으로부터 도망쳤던 인부들이 돌아와 건물을 완성했을 때는 인부들 스스로가 인부가 아니라 예술가가 된 느낌이 들어 자신들이 붙인 타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보처럼 집에 보관하게 될 정도가 됐다”고 전했다. 놀라운 것은 화장실의 타일마저 다르게 붙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로 탄생됐다. 우도 남쪽 우도봉 기슭에 톨칸이 해변을 따라 위치한 훈데르트바서파크는 4만 9981㎡(1만 5100평)에 뮤지엄 외에도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굿즈샵, 숙박시설 등을 갖춰 우도의 새 명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 박물관은 회화관(23점), 판화관(23점), 생애관, 건축관, 파크관 등 5개의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또 박물관 앞 우도미술관에서는 새롭고 다양한 주제를 담은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획 전시장이 되고 있다. 그 옆에는 굿즈샵에선 전시되지 않은 훈데르트바서 1000여점 작품들을 엽서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우리들의 블루스’ 발달장애인 화가 정은혜 작가 특별전 우도미술관에선 천재 꼬마 화가 전이수 작가의 전시회에 이어 발달장애인 화가 정은혜 작가 특별전을 준비 중이다. 원래 8일부터 열릴 예정이었으나 태풍 등의 영향으로 연기돼 오는 20일부터 10개월간 열릴 예정이다. 채색작품 40점과 캐리커처 375점이 전시된다. 정 작가는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한지민 역)의 쌍둥이 언니 영희로 열연했던 발달장애인 화가이자 배우로 알려져 있다. 이 미술관장은 “정은혜 작가의 그림은 참으로 특별하다”며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 대신, 인물의 정수리부터 물이 흘러내리듯 그림을 그리는 정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보이지 않던 대상을 물로 씻어내 인물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백 개의 물’이란 뜻의 훈데르트바서의 이름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화가가 또 있겠느냐”며 정 작가와 그녀의 그림이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설립 취지와 경영 철학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리미엄 숙박시설인 훈데르트 힐즈는 48개실을 갖춘 최고급 휴양시설로 우도의 절경에 빠져 힐링하고 휴식같은 쉼표를 찍고 싶다면 호기롭게 머물만 하다.
  • 이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문화예술계의 끊임없는 노력에 다방면으로 지원할 것”

    이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문화예술계의 끊임없는 노력에 다방면으로 지원할 것”

    서울특별시의회 이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국민의힘·강북1)은 지난 7일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제1회 서울문화예술포럼’에 참석했다.  이날 이 위원장은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이창기)이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미래가치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출범한 ‘서울문화예술포럼’의 1부 개회식에서 축사하고 포럼을 시작으로 서울의 미래 먹거리인 문화예술 분야 활동이 더욱 풍성해지길 당부했다.  서울문화예술포럼은 서울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계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문화예술정책 및 미래변화 전망 등 다양한 주제의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담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는 포럼이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 1월, 3대 전략 10대 혁신과제 발표 당시 ‘서울문화예술포럼’ 운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분기마다 문화예술 분야별로 역량 있는 문화예술 전문단체, 각 장르별 협회, 오피니언 리더,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예술계 주요 이슈와 트렌드를 고민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포럼을 계획했으며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정책에 반영시킬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오늘 포럼의 출범은 시민과 예술의 가치를 나누기 위한 문화예술계의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의 일환”이라며, “포럼을 시작으로 더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지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밝혔다. 또한 “서울의 미래 먹거리는 문화와 예술 분야이며 여기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위가 선양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서울시의회도 문화예술계의 노력에 보탬이 되도록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동숭동 붉은 벽돌 건물의 운명/무용평론가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동숭동 붉은 벽돌 건물의 운명/무용평론가

    서울 지하철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1975년 서울대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된 것인데, 그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로니에 나무에서 이름을 따왔다. 동네는 이화동. 하지만 ‘동숭동’, ‘대학로’라고 주로 부른다. 그곳에 가면 무용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극장이 있다. 1981년 개관한 붉은 벽돌 건물의 아르코예술극장이다. 개관 당시 이름은 ‘문예회관’이었고 현재 600석 규모의 대극장과 150석의 소극장 등 두 개의 극장이 들어서 있다. 이 극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모여든 소극장이 150여개가 있지만 주로 연극공연을 올리고 있고, 전국 공공극장 중 전용극장 하나 없는 무용계로서는 다분히 희소가치 때문에라도 이 극장을 주목한다. 하지만 무용가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그뿐만은 아닌 것 같다. 20세기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부지 개발 당시 사비를 털어 일부를 샀고 이를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증하는 대신 극장과 미술관 두 곳의 설계를 직접 맡았다. 이미 대학로의 많은 건물을 설계한 경험으로 진정한 예술공간으로서의 가치를 태생부터 심었다. 그래서일까. 무용가들 말을 들어 보면 저렴한 대관료는 기본이고 공공극장 중 작품활동하기에 가장 여건이 좋다는 것이다. 불가사의하게도 그동안 수많은 무용가들의 발디딤으로 다져진 무대가 가장 큰 창작의 힘이 된다고들 한다. 평론가 입장에서 보아도 무대 위의 무용수들이 유독 입체적으로 보이고 동시에 흡입력을 발휘하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무용계뿐 아니라 연극계의 사랑도 만만치 않아 이 극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가치는 대체불가하다. 그만큼 권위 있고, 명예로운 극장이다. 115년 만의 폭우가 내린 지난 8월, 극장 관계자들은 걱정이 많았다. 공연장의 경우 노후화로 인한 리모델링을 고민해야 하는 나이를 25년이라고 본다면 그 기준을 훌쩍 넘긴 아르코극장이 이 큰비를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 노심초사 지켜봐야 했다. 이미 2010년 태풍에 건물 외벽이 붕괴됐고, 이듬해 가수 양희은의 데뷔 40주년 기념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 취소 건이 발생하는 등 본격적인 누수로 인한 하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회 취소하고 바로 재개했지만, 2020년 폭우 때는 무대 사용이 불가할 정도로 누수가 심각해졌다. 현재는 매년 보수작업을 이어 가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처럼 전국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난 상황에서 공연 좀 쉬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극장은 삶의 터전이고 생활이다. 더욱이 아르코예술극장처럼 상징적인 건물의 경우 어떻게든 잘 보전해야 하는 예술계 사명이 있다. 다행히 올봄 3개월간 폐관하고 임시방편으로 옥상 방수공사를 한 덕에 이번 비는 큰 피해 없이 넘어갔다. 비록 무대 세트를 위아래로 이동시키는 배튼이 고장 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올리는 데 지장은 있지만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가을 축제도 계획대로 올릴 예정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폭우가 잦을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아니더라도 전면 보수는 불가피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관한 극장들이 이미 보수를 했거나 예정인 걸 보면 더 늦추기는 힘들 것 같다. 지난해 실시한 타당성조사 결과를 보면 500억원 정도의 예산은 확보돼야 번듯한 극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장 내년에 계획한 설계비조차 정부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정부예산은 해마다 크게 늘었다는데 꼭 필요한 문화예술 예산은 이번에도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이 큰 예산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예술가들이 직접 나서서 지난 40년 동안 아낌없이 베풀어 준 극장을 살리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에서 모금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 ‘2022 세계유산축전:경북’ 오는 3일 개막…안동·영주 세계유산 6곳서

    ‘2022 세계유산축전:경북’ 오는 3일 개막…안동·영주 세계유산 6곳서

    경북도는 오는 3일부터 25일까지 23일간 안동과 영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6곳에서 ‘2020 세계유산축전:경북’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세계유산 6곳은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소수서원,부석사다.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유산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향유하기 위해 2020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 행사는 ‘이동하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 in Transit)’이라는 주제로 9월 경북, 10월 수원 화성과 제주 순으로 진행된다. 경북 행사는 문화재청, 경북도, 안동시, 영주시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 세계유교 문화재단이 주관한다. 오는 3일 영주 소수서원에서 세계유산 국제콘퍼런스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이 행사는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세계유산, 전통과 현대의 교차’를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 이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세션이 마련된다. 같은 날 오후 안동 하회마을에선 플라잉쇼 ‘나는 유교다:더 레알 유교’ 개막공연이 펼쳐진다. 행사 기간 세계유산을 주제로 18개의 전시·공연·체험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하회마을에서는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세계유산축전 주제관’에서 국내 유수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유산 테마 상설전시가 마련된다. 병산서원에서는 서원에서 머무르며 그 가치를 알아가는 병산서원에서의 3일,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잇는 구곡길을 생방송 라디오와 함께 걷는 도보여행 프로그램 등을 준비한다. 부석사에선 세계적인 안무가 안은미가 ‘부석사 명무전 - 기특기특’을 통해 불교적인 해석을 선보이는 로밍형 공연 및 이태수 작가의 부석(浮石) 조형물을 관람할 수 있다. 도산서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야간 개장한다. 행사 기간 증강현실(AR)을 활용해 모바일로 참여할 수 있는 ‘AR 유산 탐정’, 주말마다 ‘나의 세계유산 답사기’도 운영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안동과 영주 지역의 세계유산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삼아 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북은 우리나라 세계유산 15건 가운데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하회·양동마을, 한국의 산지승원(부석사·봉정사), 한국의 서원(소수·옥산·도산·병산서원) 등 5건 11곳을 보유하고 있다.
  • 혁명·예술 보듬은 ‘몽마르트르’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빛난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혁명·예술 보듬은 ‘몽마르트르’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빛난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거리를 아틀리에로 만든 화가들모델·뮤즈·감상자가 된 관광객들골목 구석은 버스킹 ‘천연의 무대’ 비극적 역사 ‘파리코뮌’의 공간서외로울 틈 없는 예술·낭만의 도시로 세잔 격찬하며 후원자 찾아준 모네경쟁사회 속 우리도 격려에 목말라숨은 잠재력도 일깨우는 ‘힐링 공간’사람 자체가 풍경이 되는 순간이 있다. 장소가 자아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곳에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 있기에 비로소 그 풍경이 짙은 의미를 피워 올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에펠탑만으로도 멋진 풍경이 되지만, 에펠탑 사진을 찍으며 ‘드디어 파리에 왔다’는 표정으로 뿌듯해하는 사람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순간이 더 멋지다. 베로나에 자리한 ‘줄리엣의 집’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이 사랑의 대화를 나눴다고 알려진 발코니가 있는데, 이곳은 사실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풍경’이다. 줄리엣의 발코니를 인공적인 조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막상 그곳에서 행복해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스며 나온다.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풍경이 있다면 바로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그렇게 장소의 아름다움을 넘어 사람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곳, 그곳이 내가 사랑하는 몽마르트르의 이미지다. 파리에 가면 여행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에펠탑 뷰’가 아름다운 숙소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몽마르트르 뷰’가 아름다운 숙소를 찾는다. 몽마르트르가 보인다는 것은 왠지 파리의 멋지고 화려한 모습뿐 아니라 그늘지고 어두운 부분까지 다 볼 수 있는 더 깊고 드넓은 시야를 지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몽마르트르는 무려 2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코뮌’(1871)의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그 참혹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사람들에겐 ‘파리가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까지 품게 한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비극적인 파리코뮌의 역사를 간직한 몽마르트르가 이제 예술가의 거리, 관광객이 매일 넘쳐나는 축제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저 유명한 ‘사랑해 벽’에서 수십 장의 셀카를 찍으며 무려 300여개의 언어로 채색된 ‘사랑해’라는 문장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다. 몽마르트르의 그 극단적인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내 마음을 울린다. 나는 도시의 화려함만을 탐색하기보다는 도시에 스민 아픈 역사까지도 품어 안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모든 아름다움 다 모인 몽마르트르 정작 나의 친구들은 ‘몽마르트르에 가자’고만 하면 눈살을 찌푸린다. “여울아, 나 거기서 소매치기 만났잖아. 다신 안 가.” “너는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 꼭 가고 싶니? 몽마르트르는 너무 복작거려서 정신이 없더라.” “제발 여름엔 몽마르트르 가지 말자. 파리에서 제일 더운 곳일걸. 쪄 죽을 것 같아.” 과연 몽마르트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차분함이나 조용함과는 거리가 먼 곳, 항상 넘쳐나는 관광객을 현혹하는 무리한 호객 행위가 판을 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몽마르트르에서 경찰을 발견하면 유난히 반갑다. 경찰이 지켜 줄 때만은 소매치기들이 우리 관광객들을 함부로 노리지 못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몽마르트르를 사랑한다. 몽마르트르에는 내가 파리를 향해 꿈꾸는 모든 아름다움이 다 모여 있기에. 거리 자체를 거대한 아틀리에처럼 만들어 어디서나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열정적인 모습, 모든 사람이 그저 관광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태어나는 그림들의 모델이자 뮤즈이자 감상자가 될 수 있는 분위기, 골목 구석구석이 천연의 무대가 돼 어디서든 아름다운 길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버스킹 장소가 바로 몽마르트르다. ●다채로운 빛깔의 파리 속 무료 전망대 무엇보다도 몽마르트르는 해 질 무렵 파리의 가장 다채로운 빛깔을 원 없이 내려다볼 수 있는 무료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몽파르나스타워나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려면 꽤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고 기다랗게 줄을 서야 하지만, 몽마르트르는 가도 가도 평지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기에 누구나 이곳에서 찬란한 일몰과 일출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몽마르트르에서는 외로울 틈이 없다. 몇 발자국 옮기기만 하면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파리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 ‘벨 에포크’ 시대의 저 유명한 물랑루즈 포스터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작품을 엽서나 냉장고 자석으로 만들어 파는 상점들,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길거리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온갖 사람과 공연들, 관광객들에게 ‘호객’을 하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을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미소로 맞이해 주는 주인들. 마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글을 쓰는 그 모든 예술가가 몽마르트르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 같다. 1900년 이후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운 문화적 발전과 예술가들의 교류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이사도라 덩컨, 마르크 샤갈, 장 콕토 같은 수많은 예술가가 파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 것도 이 시기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즐비하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로 모여들어 예술과 사랑, 우정과 혁명을 이야기했다. 파블로 피카소, 막스 자코브, 모리스 드 블라맹크, 케이스 판 동언, 모딜리아니 등 많은 예술가가 가난에 굴하지 않고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파리를 더욱 아름다운 빛의 도시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이렇게 말했다. 삶은 뿌리이고 예술은 꽃이라고. 삶에 뿌리내린 예술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힘은 단지 예술적 재능이 아니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 주는 것, 파리를 늘 사랑과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완성해 주는 화룡점정의 에너지는 바로 파리지엔이었다. 언제나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들, 예술가들을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야말로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찬란한 주역이었다. ●예술가의 재능 발견할 준비가 된 도시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본 파리가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예술가들이 ‘마침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흐, 마네, 모네, 고갱, 휘슬러, 무하 같은 화가들뿐 아니라 드뷔시, 생상스 등의 음악가들, 프루스트, 졸라, 발자크 또한 파리에서 활동할 때 최고의 영감을 얻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진정한 ‘지음의 벗들’을 만났다. 지금은 명실상부 위대한 아티스트로 인정받지만 한때는 심각한 굶주림과 언론의 혹평으로 고생했던 수많은 아티스트가 결국 파리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았다. 파리는 바로 언제든지 예술가의 재능을 발견할 준비가 된 도시, 객지에서 고생하던 수많은 예술가 지망생이 결국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해 주는 관객들과 후원자들을 발견하는 도시다. 마침내 예술가의 재능이 꽃피는 도시, 비로소 예술가의 간절한 꿈이 이뤄지는 도시, 오직 아름다움과 예술과 문학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사람들의 도시가 바로 파리다. 세잔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던 당시 분위기에 맞서 모네는 수많은 사람에게 세잔의 재능을 격찬했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평생 더 나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니, 얼마나 애석한 일인지! 그야말로 참된 예술가인데, 너무 자신감이 없어요. 격려가 필요하다오.”(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우리들의 파리’ 중에서) 한때 자신도 굶주림과 외로움으로 고생하던 모네가 세잔을 칭찬하며 그의 후원자를 찾아 주는 모습은 내게 커다란 감동을 줬다. 우리에게도 그런 진심 어린 격려가 필요하기에. 질투하고 경쟁하는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지 않고, 서로의 배고픔과 외로움을 걱정해 주던 파리의 아티스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네의 수련과 세잔의 사과와 고흐의 해바라기를 사랑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눈부신 잠재력을 일깨우는 장소, 몽마르트르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북적임과 혼잡스러움 속에서도 파리의 아름다움을 가장 완벽하게 압축하고 있는 거리, 몽마르트르야말로 나의 힐링 스페이스이기에. 이렇게 복잡한 상념에 잠겨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 파리 시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것 봐! 무지개야!” “쌍무지개다!” 영어와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탄성은 저마다 그 찬란한 무지개를 앞다퉈 환영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이 아름다운 파리를 향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사다리를 내려 준 것 같았다. 그 어떤 인간의 건축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오직 자연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내려 줄 수 있는 위대한 선물이었다. 문학평론가·작가
  • 한여름 밤의 그 꿈처럼… 모던하게 스친 옛 기억

    한여름 밤의 그 꿈처럼… 모던하게 스친 옛 기억

    ‘미드나잇 인 파리’(2012)라는 영화가 있다. 프랑스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이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카에 올라탄 뒤 1920년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들과 조우한다는 내용을 담은 판타지 멜로 영화다. 빛고을 광주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의 공간을 만났다. ‘광주의 명동’이라는 충장로, 금남로 등 옛 도심에서다. 나희덕 시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북극성 같은 진실”인 현실에서 광주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불어)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난다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음악과 커피 향이 흐르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그 ‘모던한 세계’를 헤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모던 보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광주는 역시 예향(藝鄕)이었다. 광주 원도심 나들이의 들머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언제 가도 좋은 곳. 압도적인 공간감과 시원한 개방감이 매력이다. 총탄 자국 남은 옛 전남도청을 떠받친 거대 건축물들은 서늘하면서도 미래적인 느낌을 듬뿍 안겨 준다. 야경은 더 좋다. 거대한 미디어 월에선 쉼없이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고, 잔디 깔린 ‘하늘마당’은 연인들의 밀어로 가득 찬다. ACC 주변을 에워싼 사각형의 채광창 큐브들도 멋지다. 낮에 밖의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한 76개의 큐브들이 밤에는 고스란히 그 빛을 밖으로 돌려준다.광주극장으로 간다. ‘광주의 명동’이라는 충장로에서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난 세기 말, 이른바 ‘멀티플렉스 영화관’(복합상영관)의 등장은 당대의 시네필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오래된 단관극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빠르게 그 자리를 점령해 갔다. 영화계를 뜻하는 ‘은막’이란 단어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무렵이다. 광주극장은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이다. 옛 영사기로 영화를 상영하는 고풍스런 극장들은 전국에 몇 곳 있지만,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오는 곳은 광주극장이 유일하다. 현존 최고(最古)의 극장 중 하나로 꼽히는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인 자본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1250석 규모의 4층짜리 영화관은 광주를 넘어 조선 최대였다. 일제가 세운 700석 규모의 ‘광주좌’ 등에 견줘 두 배 가까운 크기였다고 한다. 개관을 기념해 최초의 발성영화였던 ‘춘향전’이 상영됐고 연극이며 판소리 공연, 권투 경기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로 활용됐다. 해방 이후에도 1948년 백범 김구의 연설 등 역사의 고비마다 빠짐없이 등장했다. 광주극장은 영화박물관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지금도 옛 영사기와 영화 관련 장비들을 볼 수 있다. 낡은 건물 밖엔 매표소가 있고, 옛 관람권을 사 든 사람들이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딘가 영화 같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은막’에선 주로 예술 영화들이 상영된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영화를 고풍스런 극장에서 감상하며 한때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간간이 빨간 딱지 붙은 ‘청불’(청소년관람불가) 영화도 상영된다.광주극장 옆은 ‘영화가 흐르는 골목’이다. 밤에 찾지 못한 아쉬움이 여태 끈끈하게 남은 곳이다. 지난해 주민 주도의 골목재생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영화가 흐르는 골목’에선 이 일대에만 무려 14개의 영화관이 밀집했다던 광주의 영화 전성시대와 마주할 수 있다. 문화공간 ‘영화의 집’, 옛 영화 포스터 등을 전시한 ‘아카이빙 월’ 등으로 이뤄졌다. 영화의 골목이 좋아 이주해 왔다는 독립서점 ‘소년의 서’도 가볍게 훑어볼 만하다. ‘도깨비 골목’이라 불리는 귀금속 골목, 주단(이불) 골목 등 시간이 박제된 듯한 골목들도 이웃해 있다. ‘광주 폴리’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동화된 광주 옛 도심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진행된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애초 동구를 중심으로 조형미술 작품들이 세워지다가 점차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4차 광주 폴리까지 진행되는 동안 기능성, 실용성이 더해지며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후안 헤레로스의 ‘소통의 오두막’(장동교차로), 도미니크 페로의 ‘열린 공간’(옛 광주시청 사거리) 등은 시민들의 약속 장소이자 길거리 공연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5차는 이제 조성 중이다.ACC 맞은편의 ‘뷰 폴리’는 필수 방문 코스다. 광주영상복합문화관 8층에 있다. 아름다운 도심 야경과 무등산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소통의 문’도 독특하다. 충장로에서 가장 비좁은 골목을 찾아 작품을 설치했다. 명주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라인을 활용해 죽어 있던 공간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상의 포털처럼 꾸몄다. 광주극장 인근에 있다. ‘아이 러브 스트리트’는 셀카의 명소다. 독특한 계단형 구조물과 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서석초등학교와 중앙도서관 사이에 있다. ‘혁명의 교차로’도 꼭 찾아 보는 게 좋겠다. ‘혁명의 도시’ 광주와 수미상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을 뒤흔들었던 ‘아랍의 봄’ 등 세계 각지 시민투쟁의 진원지였던 교차로의 맥을 잇고 있다. 광주역 바로 앞에 있다. 역시 밤에 찾아야 작품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31개의 광주 폴리 가운데 늘 수위를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었던 산수동의 ‘쿡(COOK) 폴리-콩집’은 콘텐츠 변경을 위해 공사 중이다. 야경이 멋진 곳인데 아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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