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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만의 5가지 비밀

    오만의 5가지 비밀

    아라비아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오만에서는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족인 ‘베두인’ 후손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있고, 친절함이 있다. 이라크 사태로 인해 중동 국가의 여행은 모두 위험하다는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오만은 평화롭다. 우리에게 친숙한 ‘신밧드 모험’의 주인공인 뱃사람 신밧드의 출생지 오만. 그러나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미지의 땅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대 유적들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등 다양한 이슬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국가로 ‘에코 투어’(친환경적 관광)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오만 여행이 제철을 만났다.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3일 끝난다.11월에서 내년 3월까지는 30도 안팎의 온화한 기후로 무덥지 않다. 대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중동의 은둔자’ 오만의 매력에 빠져보자. 글 사진 무스카트(오만)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오만의 5가지 비밀 (1)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없다. 남자들도 발끝까지 내려오는 전통적인 치마형 복장을 입는 탓이다. (2) 택시 기사의 상당수는 경찰이다. 오만은 이중직업을 허용하고 있어 경찰들이 업무시간 외에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다. (3) 최고 기온은 49도(?). 오만은 최고 기온이 50도를 넘으면 관공서와 기업 등이 휴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여름 50도를 넘어도 공식적으로는 49도라고 발표한다. (4) 은행 대출 등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이슬람 율법에 이자를 받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5) 오만의 한국 교민은 단지 1가족. 오만에는 대사관 직원과 상사 주재원 등 150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교민은 원양어업을 하는 김점배 라사교역 사장 가족이 유일하다. ●검붉은 바위산과 베두인의 미소 검붉은 바위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숨을 조여온다. 두바이에서 차를 타고 하타지역 국경을 넘어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는 뜨거운 태양이 내려쬔다. 거리에는 흰색 사원과 건물들로 가득했고, 차도르를 쓴 여인과 머리에 터번을 한 남자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국경지대부터 계속된 바위산인 하자르 산맥이 압도한다. 산 사이로 깊게 파인 ‘와디’(우기에만 흐르는 강)가 시원한 느낌을 줄 뿐이다. 처음에는 ‘이 더운 나라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점차 오만의 숨은 매력에 빠져 찌는 더위는 오히려 여행의 동반자가 됐다. 무스카트는 ‘오일 달러’의 힘을 빌려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다른 걸프지역 도시와는 달리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알부스탄 팰리스 호텔. 페르시아만안협력회의(GCC) 정상회담 개최 장소용으로 지난 1985년 건립된 오만 최고급 호텔이다. 화려한 로비는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궁전을 연상케 한다. 딜럭스룸 등 247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상층인 9층만은 국빈용으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하루 숙박료는 250달러로 시내에 있는 3성급 호텔의 객실료(40달러 수준)에 비해 비싼 편이다. ●오만을 사랑한 독일여성 타하니 여행은 오만 현지 여행사인 ‘마크 투어’의 여행 가이드인 독일인 여성 타하니와 함께 시작됐다.1년 6개월전 이 곳에 정착한 30대 후반인 그녀와의 여행은 색다른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찾은 곳은 ‘이티’(YITI)산. 시내에서 차를 남쪽으로 타고 30분쯤 달려 나무 한그루 없는 바위산 정상에 오르자 주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강렬한 태양이 내려쬐고 있지만 탁트인 전경 때문인지 더위가 사라진다. 비록 나무 한그루 없는 바위산이지만 그 아래로 펼쳐진 하얀 건물들과 길게 뻗은 한적한 도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다. 그녀는 “척박한 대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베두인 족의 삶에는 배울 것이 많다. 이 곳은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낸 나에게 새 삶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10대 후반에 멕시코 선원과 결혼해 베네수엘라 등지를 떠돌며 살다 이혼하고 이 곳에 정착했다.20살 난 아들까지 뒀으나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홀로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루이지역의 남부터미널을 지날 때 그녀가 가리킨 곳은 사람 얼굴 모양의 신기한 바위. 눈·코·입은 마치 조각을 해놓은 듯 사람의 얼굴과 똑같다. 오만 다이브센터 인근으로 차를 돌리자 이번에는 시원한 바다 풍광이 반긴다. 짙푸른 바다와 검붉은 바위산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반다르 지사해안 등 바닷가에서는 2000년 전 사람이 산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바위산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술탄의 궁전이 있는 마트라항에 들어서자 해안가 바위 봉우리마다 흙벽돌로 쌓은 원형 성채들이 이채롭다. 포르투갈 점령기인 16세기 무렵 적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세워진 망루다. 오만에만 5000여개에 이르는 성채와 망루가 있다. 인근에는 잘랄리·미라니 성채가 위용을 뽐내며 항구를 지키고 있다. 모두 1580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성채에 들어가려면 잘랄리 성채에서 입장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인근의 재래시장 마트라 숙에서는 은제 수공예품과 금 가공품, 향료 등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오만산 향수는 세계 최고급 고가 향수다.1병에 약 145달러. 이어 인근에 있는 알하자 마운틴에 오르자 아라비아해를 향해 서 있는 향로 조형물 ‘인센스 버너’가 눈에 들어왔다. 향로는 오만의 특산물이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가져왔다는 선물이다. 이 곳은 1시간 거리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마을 뒷산으로 바위산을 걸어 오를 수 있는데 주의할 점은 한낮에는 기온이 높은 만큼 해가 뜨기전에 오르는 것이 좋다. ●화려한 모스크의 불빛에 취해 오만에는 1만 3000여개의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사원은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다. 국왕의 이름을 따 2001년 문을 연 이 사원은 1만 6000명이 동시에 참배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모스크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5개의 대형 첩탑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원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카펫이 깔려 있다. 가로 60m, 세로 70m의 대형 카펫으로 600여명의 여성이 직접 사원에 들어와 4년동안 손으로 직접 짠 것이다. 무게가 21t에 이르며 58조각으로 나눠 실로 이어붙였다고 한다. 천장 중앙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빛나고, 창문을 장식한 화려한 스테인글라스가 아름답다. 오전에만 관람객들에게 개방한다. 사원안에서도 사진을 찍는데는 제한이 없다. 밤에는 모스크에 화려한 조명이 비춰져 예쁘게 빛난다. 시원한 밤거리를 걸으며 모스크의 불빛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건물들은 대부분 흰색이다 보니 낮보다 밤에 길찾기가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특히 오만인은 한국사람에 대해 우호적이다. 영국, 호주 등 다른나라 관광객들은 비자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한국인은 무비자다.2004년 양국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된 덕이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과거 한국의 산업역군들이 중동지역에 수로 건설사업을 한 탓에 ‘사막에 물길을 뚫어준 나라’ 등으로 기억한다. 오만에 다니는 자동차 5대중 1대가 한국 자동차이다. 오만 관광객들의 한국 유치를 위해 이번 여행을 함께 했던 이창용 한국관광공사 두바이 지사장은 “오만은 우리에게는 원유, 가스 공급국이자 자동차, 가전제품의 수출국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무척 가까운 나라지만 관광에 있어서는 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오만과 한국의 관광 교류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밧드의 고향 소하르 무스카트에서 두바이 국경 방향으로 2시간쯤 차를 달리면 바티나 연안의 인구 11만명이 사는 항구도시 소하르가 나온다. 이곳이 뱃사람 신밧드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다. 소설과 영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신밧드의 모험’의 출발지. 신밧드는 가상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곳에서는 실제 신밧드라는 선원이 이 곳에서 인도양 건너 동남아·중국으로 이어지는 모험길에 나섰다고 믿고 있다. 신밧드와 관련된 유물·유적은 없다. 해질무렵이면 사람들이 바티나 해변으로 쏟아져 나와 축구를 즐긴다. 축구는 이곳의 국기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스포츠다. 한때는 오만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현 부사이디 왕조의 발상지로 별궁이 소재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지금은 중화학 공업단지를 만드는 곳이다. 소하르 성채는 크고 하얗게 칠해진 사각형으로 정원에 한개의 탑이 솟아 있다. 특히 오만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정부다. 보호구역에는 희귀종인 아라비아 영양과 멸종 위기에 놓인 아라비아 타르(야생 거위), 아라비아 늑대 등이 살고 있다. 때문에 ‘에코 투어’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민물 호수의 수중동굴인 알후타케이브와 바다거북이 수백마리가 해변에 알 낳고 돌아가는 광경이 장관인 터틀비치, 차로 오를 수 있는 3000m급 산인 자발산 정상의 전망, 북부와 달리 나무와 풀로 덮인 산들이 이어진 남쪽의 살랄라 지역 등이 있다. 기원전부터 유향 무역이 번성했던 남부의 우바르 유적지, 살랄라 부근의 고대 도시 유적인 코르 로리와 알 발리드 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이상민 주오만 대사는 “해양민족인 오만인은 흰 옷을 좋아하고 예의가 바른 민족으로 우리나라와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면서 “오만은 다른 중동국가와는 달리 여자들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여행을 하는데 안전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오만은 사막성 기후로 여름철인 4∼10월은 50도를 웃돌지만 11∼3월은 30도 안팎의 비교적 온화한 기후로 덥지 않다. 때문에 11∼3월이 여행하기 좋다. 면적은 한반도의 1.6배, 인구는 약 250만명이며,GNP(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약간 넘는다. 환율은 1오만 리알(RO)에 2.6달러이며, 시차는 한국보다 5시간 늦다. 전기는 240볼트로 국내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으나 소켓이 영국식 3핀형이어서 플러그 어댑터가 필요하다. 오만은 한달간 관광 목적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휴일은 안식일인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일반 상점·식당에선 술을 팔지 않지만 호텔의 바에서만 술 판매가 허용된다. 상점의 경우 오전 9시∼오후 1시, 오후 4시30분∼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산유국 답게 휘발값과 자동차 렌트비가 저렴해 렌터카 여행도 고려해 볼 만하다. 기름값은 ℓ당 300∼400원수준이며, 렌트비는 중형차가 하루 60∼70달러선. 오만 여행은 중동지역 전문 랜드사인 ‘디티티에스’(www.godubai.co.kr)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만으로 가는길 오만까지 직항편은 없다. 항공으로 가려면 아랍리트 두바이에서 오만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에미리트항공(www.emirates.com/korea/kr)이 매일 밤 12시30분 두바이까지 운항한다. 최근 대한항공과 코드셰어 협정을 체결, 에미레이트 항공권으로 월·수·금 오후 9시15분 출발하는 대한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운항시간은 10시간. 오만 무스카트 공항까지는 두바이에서 에미리트항공이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15분 출발한다. 운항 시간은 1시간.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하타지역에 있는 국경을 통해야 하며 6시간이 걸린다. 유럽과 북미, 중동,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의 54개국,75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에미리트항공은 중동의 허브 항공사로 중동지역은 물론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데 편리하다. 세계적인 여행 전문지 ‘비즈니스 트래블러 아시아-퍼시픽’이 발표한 중동·아프리카 지역 최고의 항공사로 2년 연속 선정되었다. 국내에는 지난 5월1일 첫 취항을 시작했기 때문에 동반자 할인 행사와 인터넷 할인, 렌터카 할인 등 파격적인 특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02)779-6999.
  • “빚내서 北지원 하나” 논란

    “빚내서 北지원 하나” 논란

    정부가 농업·경공업·전력송출 등 6개 분야에 대해 내년부터 5년간 5조 2500억원에 이르는 대북지원 계획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져 자금조달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의 운용규모를 올해 1조 2525억원에 비해 110.3% 늘어난 2조 6334억원으로 정했다. 정부의 이같은 대북 지원책에는 국채발행을 통해 조성되는 공공기금예수금에서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 있어 ‘빚더미’ 대북 지원을 둘러싼 공방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세수가 부족한데도 빚을 내서 북한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비판했고, 여당 의원들은 ‘통일비용’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남북협력기금의 확대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이날 통일부가 제출한 자료 ‘경추위 등 합의사항 이행관련 연도별 소요액’을 공개하고 “정부가 5조 2500억원을 추가지원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남북협력계정에는 올해의 9배에 이르는 공공기금예수금 4500억원이 반영돼 있다.”면서 “정부 예산만으로 충당했던 대북지원이 빚을 낼 시점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남북협력기금 설치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조성된 기금은 5조 5300억원으로, 이중 민간출연금은 22억원에 불과하다.”면서 “민간 재원을 지원받는 아이디어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지난 2001년에는 남북협력기금이 770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6300억원 규모로 줄었다.”면서 “정부 재정만으로는 대북 지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만큼 내년에는 공공기금예수금을 통해 메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황혼에 싹튼 애절한 사랑

    황혼에 싹튼 애절한 사랑

    “나 동두천 신사 박동만은 하얀 머리가 검정머리가 될 때까지 평생을 업어주고 안아주고 아껴줄 것을 선서합니다.”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 두 배우가 객석을 향해 돌아서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식들 눈치 때문에 그저 가락지 한쌍으로 백년해로를 약속한 황혼의 부부.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랑을 다짐한 두 사람의 정겨운 모습에 중장년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위성신 작·연출)는 황혼의 나이에 만나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 노부부의 이야기다.2003년 초연 이후 매년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배우자와 사별한 두 사람은 꽃피는 봄에 만나 한여름의 태양처럼 절실하게 사랑하지만 불치병에 걸린 이점순 할머니는 가을 낙엽처럼 스러진다. 대학로 무대에 처음 서는 탤런트 이순재와 연극배우 성병숙(수·금·일), 그리고 이호성·예수정(화·목·토)커플이 번갈아 출연한다. 내년1월1일까지, 축제소극장.(02)741-393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종교계 ‘가족사랑’행사 풍성

    종교계 ‘가족사랑’행사 풍성

    종교계에 가족 및 청소년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풍성하다. 청소년만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가족가치상’을 제정하는가 하면 미혼 남녀를 위한 중매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오는 12일 서울 명동성당 부근에 청소년만을 위한 문화공간 ‘주’(ju)를 개관한다.‘주님’을 뜻함과 동시에 ‘세계와 교회의 주인이자 기둥인 청소년들의 공간’,‘매주일 청소년들이 가고 싶은 곳’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배 모양의 건물 외관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분기별로 요리·마술·마임·북아트·전시회 등 테마 체험과 단편영화 상영, 콘서트 등 문화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도서·잡지와 유기농 간식도 제공된다. 김영국 신부(서울대교구 교육국장)는 “잊혀져가는 청소년 문화를 일으켜 명동을 찾는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젊은 교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입양을 알선하는 가톨릭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은 입양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만화로 엮은 책 ‘다시 찾은 행복-어느 아기의 길고 긴 여행’을 펴냈다. 윤영수 원장은 “입양을 통해 가족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는 최근 가족 가치 증진에 기여한 지역사회 지도자에게 수여하는 ‘가족가치상’을 제정,1회 수상자로 이근후·이동원 이화여대 명예교수 부부를 선정했다. 이들 부부는 1995년부터 가족과 연관된 연구조사 및 사회교육을 제공하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미혼 남녀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도록 돕는 중매 프로그램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천주교 구의동본당은 처녀·총각의 짝을 찾아주는 ‘예비 아담·하와 맺어주기’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70여명으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결혼상담소인 ‘청실홍실’을 운영하는 불교조계종 조계사도 부부연(夫婦緣) 맺어주기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보살(여신도) 10여명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결혼상담을 받는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여담여담] 소박한 파티…따스한 감동/최광숙 문화부 차장

    최근 한 파티에 다녀왔다. 바쁜 12월을 피해 때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해서 약간의 들뜬 기분에, 어떤 근사한 파티일까 기대를 하며 파티장을 찾았다. 퇴근후 남들보다 1시간이나 늦게 간 파티장에는 팝페라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늦게 도착해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뒤에 서 있는데 탤런트 신애라씨가 나와 “저도 한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어요.”라며 ‘컴패션’(compassion)을 운운했다. 그러더니만 컴패션과 관련된 짤막한 비디오가 상영됐다.“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으로…”라는 말들이 이어지자 “컴패션이 뭐야. 오늘 파티는 예수님 믿자는 선교 모임인가봐.”라며 같이 간 일행들이 속삭였다. 파티장에는 낯익은 인물들이 많았다. 여성계 인사를 비롯해 기업체 임원, 언론계 인사 등등 각계의 인사들이 다 모였다. 아무리 봐도 공통점은 없었다. 이날 파티를 주최한 사람은 광고계의 여성 CEO 문애란 웰콤대표. 국내 여성 카피라이터 1호라는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광고대행사 ‘웰콤’을 세워 대표로 활동하는 맹렬 여성 선배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전세계 가난한 어린이를 후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자.”고 인사하며 “뒤에 맛있는 음식이 준비됐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파티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파티 장소는 서울 예술의전당 앞 한 레스토랑.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별 몇개짜리 호텔도 있건만 그녀는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빌려 지인들을 초대했다. 찐 고구마에 옥수수, 삶은 밤, 떡, 김밥, 어묵 등 뷔페식으로 마련된 음식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전에도 자선 파티에 가봤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감동을 받은 적은 없다. 화려한 호텔에서,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풀 코스의 요리를 즐기며, 유명 아나운서나 탤런트가 사회를 보는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보면서 “음식값과 호텔비용 빼면 자선기금이 얼마나 모아질까.”라며 아쉬움이 남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날 모두들 좁은 공간에서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어묵국물을 훌쩍이며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모두들 환한 표정에 격의없는 대화가 오갔다.6명이 둘러앉은 우리 식탁에서 누군가 어린이 후원 결연 신청서에 사인을 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뒤따랐다. 최광숙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 구로동 종합복지관 개관

    서울 구로본동에 건평 1000평 규모의 대형 종합복지관이 문을 열었다.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26일 구로동 476주변에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화원종합사회복지관 개관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복지관은 635평의 부지에 지하 1층과 지상 4층 연건평 979평 규모다.2001년 1월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큰 덩치만큼 복지관 안에는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하 1층 사회체육실·취미교실 ▲지상 1층 어린이집·무료 급식소·물리치료실 ▲지상 2층 방과후 교실·도서실·자원봉사실 ▲지상 3층 체력단련실·청소년실·프로그램실 ▲지상 4층에는 강당·프로그램실 등이 설치됐다. 화원복지관은 헬스·요가·컴퓨터·노래교실 등 다양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언어치료 및 특수체육, 도시락배달, 무료 법률상담, 가정문제 상담 등 다양한 계층별 복지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도 담당계층별 복지도 담당하는 등 폭넓은 복지사업을 구현하게 된다. 위탁 운영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이 담당하기로 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극 ■ 늙은 부부 이야기 29일~내년 1월1일 축제소극장. 황혼의 나이에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 노부부의 가슴 따뜻한 사랑.2003년 초연 이후 매년 중장년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영민 위성신 작·위성신 연출, 이순재 성병숙 이호성 예수정 출연.(02)741-3934. ■ 러브레터 12월31일까지 한양레퍼토리시어터. 두 남녀가 일생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엮어가는 사랑이야기.A.R. 거니 작·최형인 연출, 이호재 설경구 최형인 정경순 출연.(02)764-6460. ■ 울고 있는 저 여자 30일까지 게릴라극장. 늦은 밤, 지하철 플랫폼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와 그 여자가 우는 이유가 궁금해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 김현영 작·남미정 연출, 김소희 이승헌 출연.(02)763-1268. ■ 목화밭의 고독속에서 11월6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산울림 개관 20주년 기념작.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작·임영웅 연출. 김철리 박용수 출연.(02)334-5915. ●뮤지컬 ■ 헤드윅 11월1일부터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강렬한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록 뮤지컬. 속도감 있는 전개와 화려해진 의상, 메이크업 등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 아이 러브 유 29일부터 무기한 연강홀. 사랑에 관한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오나라 정상훈 출연.(02)501-7888. ■ 비밀의 정원 12월31일까지 백암아트홀 역대 뮤지컬 명곡들과 명장면들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혔다. 남경주 연출, 최정원 출연.(02)501-7888. ■ 넌센스 잼보리 무기한 충무아트홀소극장. 네명의 수녀님과 한명의 신부님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코믹극. 현경석 연출, 이태원 전수경 출연.(02)766-8551. ■ 그녀만의 축복 11월6일까지 코엑스아트홀. 뮤지컬 배우 김선경의 1인7역 모노극. 김은미 작·이용균 연출.(02)545-7302. ●미술 ■ 김혜숙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단성갤러리. 제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는 작품들로 가득찼다. 화폭에 담긴 바다, 동백꽃, 들꽃, 달맞이꽃, 산딸기에서 고향 제주를 그리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소박하고 단아하게 제주의 자연을 표현,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고향을 그리게 한다.(02)735-5588. ■ 화랑미술제 국내 최대의 미술축제답게 60개 화랑에서 213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러 화랑을 한자리에 모아 놓아 작품, 가격 등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11월3∼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733-3706∼8. ■ 갤러리 안 개관기념전 홍석창 홍대 미대교수, 이정지 전 여류미술가협회회장, 김정수 미술세계화협회장 등 한국의 전통미를 바탕으로 현대적 작업을 하는 작가 3명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11월 21일까지.(02)737-8089 ■ 성남아트센터 개관전 이만익, 이강소, 이석주, 김봉태, 전수천, 최만린씨 등 한국적 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열정적인 작가 10명이 ‘열정’을 주제로 작품을 내놓았다. 회화, 설치미술, 사진 등 작품 4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11월18일까지.(031)783-8091∼4. ●클래식 ■ 귀네스 존스 독창회 30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오페라계의 살아있는 전설, 은발의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귀네스 존스가 내한, 바그너와 베르디 등 중후하면서 드라마틱한 소프라노 아리아를 들려줄 예정.1980년 오페라 ‘반지’중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에서 브륀힐데로 출연, 초인적인 열창을 들려주며 기립박수를 받은 인물이다.(02)1544-5955. ■ 서울남성합창단 제9회 정기연주회 11월 8일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02)992-5590. 송병태 지휘, 이주봉 피아노. ■ 안드레아 셰니에 28∼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580-1300. ●어린이 ■ 하마가 난다 11월13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 형제와 조선시대 발명가 정평구의 이야기.(02)382-5477. ■ 즐거운 왈츠여행 30일 오후3시 코엑스 오디토리움. 온가족을 위한 해설이 있는 클래식 체험공연.(02)578-7193.
  • [문화마당] 종교간 대화와 열린 종교/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

    한국 종교계가 올해로 종교간 대화 4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종교간 대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개신교의 강원룡 목사가 1965년 10월 광나루에 있는 용당산 호텔에서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과 불교의 능가 스님 등을 초치해 처음으로 모인 것이 그 시초이다. 그 뒤로 한국의 종교간 대화는 많은 발전을 했다. 한국은 종교간 대화를 하기에 매우 좋은 실험장이자 학습장이다. 동서양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불교(그리고 유교)와 기독교가 모두 들어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종교들이 비슷한 세력으로 각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간 대화를 왜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종교간 대화에서 세계적 권위로 꼽히는 미국 템플대학의 스위들러 교수는 자신 저서의 제목을 ‘대화 아니면 죽음을!(Dialogue or Death)’라고 할 정도로 종교간 대화를 중시했는데, 우리는 종교간 대화를 왜 해야 할까? 종교간 대화에서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실익(實益)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배우는 데에 있다. 다름 혹은 차이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요소가 부족한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종교학에는 가장 기본적인 격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종교를)하나만 알면 (종교에 대해서)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He who knows one,knows none.)’라는 것이다. 이 격언을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종교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다른 종교와 대화를 하고 그 종교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상대방의 종교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일전에 기독교 TV를 보다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한 적이 있다. 그는 지상파 방송에 나온 바도 있어 개신교에서는 대단히 인기가 많은 목사로 꼽힌다. 그가 설교하다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겠는데 애를 낳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예수를 안 믿으니 둘만 지옥 가면 되는 걸 왜 애를 낳아서 셋이서 지옥엘 가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폐쇄된 보수주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데-보수주의 신앙도 열린 신앙은 훌륭한 점이 많다!-이런 신앙은 이웃과 단절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관계가 단절되면 그것은 반(反)생명을 뜻한다. 이런 사람들이 한둘일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숫자가 많아지면 세력을 이루어 반대 세력과 싸움을 하게 된다. 지금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도 그런 태도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나’는 선이고 ‘남’은 악이다. 부시가 가진 신앙도 따지고 보면 이런 수준 낮은 보수주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와 미국은 엄청난 힘을 가졌다. 그러니 저렇게 억지 전쟁을 벌여 놓았다. 그래 놓고도 본인이나 미국의 수구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원래 비슷한 것끼리 더 미워한다고 하더니 영락없이 그 꼴이 난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있는 우리나라에는 종교간의 전쟁이 없는 게 신기하다. 어떤 이는 우리 민족이 슬기로워서 다양한 종교들이 평화공존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면도 있겠고 우리나라 종교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종교들은 많은 교감을 나누었다. 새만금으로 대표되는 환경운동에는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등이 아름답게 동참을 했다. 이렇게 하는 종교간의 협력운동은 전 세계에서 희귀한 경우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대방 종교에 무심하고 헐뜯는 경우가 많이 남아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인생은 둥글다고 했던가. 그래서 가운데와 언저리가 있단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기왕이면 가운데에서 살아봄이 어떨까. 문득 ‘니나 붓슈만’이란 여인이 생각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생의 한가운데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란과 곡절의 인생항로, 우수와 슬픔,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자기 신념이 강한 여성이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70·한국명 許滿理) 이사장. 스물한 살 꽃다운 처녀 때부터 동방의 나라, 낯선 한국땅에서 ‘입양과 장애’라는 두 단어를 어깨에 모질게도 짊어지고 꼭 반세기를 걸어왔다. 어렵고 고달픈 생의 그늘에서도 자신보다 버려진 아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말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 지난 50년을 입양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와 우리나라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작고)와 어머니 버서 홀트(2000년 작고)가 떠나간 뒤인 요즘도 24시간 장애인들과 지내며 묵묵히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해외에 입양된 아이만 해도 9만 5000여명.6·25 전쟁의 폐허 속에 시작됐기에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대다수였으며 최근에는 미혼모 아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타운’을 찾았다. 본관 건물 바로 옆에 ‘말리의 집’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었더니 5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아이는 불편한 몸 때문인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흘리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외출 나갔던 말리가 들어왔다.“미안해요. 미국에서 친구가 와서 보내느라고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는 마당의 의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5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한국도 지난 세월만큼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입양아들이)정상적으로 자라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한국인 아가씨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가면서 영어로 인사한다.“어릴 적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달 전 자원봉사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온김에 생부모를 만날 생각도 있습니다. 다 커서 저렇게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저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 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합니다.”면서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고 일년에 4∼5명 정도는 본가족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고 부연했다. 50년 세월이면 강산이 다섯번 변했다고 하자 “56년 10월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건물이며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로 고아들을 잔뜩 실어오곤 했는데 워낙 못 먹고 며칠씩 씻지를 못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습과 영락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경우에는 버스 안에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 영아들이 보자기나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전구로 보온을 시키는 등 응급조치로 살려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61년 부친이 일산 현 위치에 3만 3000여평의 땅을 사서 복지타운을 건립할 때까지 서울 효창동과 녹번동의 임시 수용시설에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전국 11개지부를 둘 만큼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했더니 “어쩌다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 때 좋은 환경의 집안에 입양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많이 힘들어집니다.”라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신앙심이 있으면 굳이 안해도 됩니다. 고아 장애인들이 있는데 곧 그들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면서 “꼬마들은 자신에게 할머니 누나 언니 등으로 곧잘 부릅니다.”라며 웃는다.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책을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고 했다. 이어 전날의 일을 깨알같이 메모한다. 아침 7시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할머니가 된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손 훈련을 꾸준히 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온몸에 잼과 밥풀떼기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을 정도. 간단히 샤워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체크한다. 요즘도 미국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메일이 자주 온다.9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평상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줄 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한다.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기에는 아직도 서툴다. 때문에 영자신문이나 TV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접한다.“한국인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이나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빨리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었는데….”라고 한국의 발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말리가 한국에 오게 된 연유는 아버지인 해리 홀트의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본인 자신도 평소에 불우아동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잠시 집안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 버서 홀트는 원래 간호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농부인 해리 홀트를 만나면서 농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결혼 직후인 29년부터 대공황이 이어지자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해리는 이곳에서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던 54년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선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미 연방법에는 2명 이상 입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홀트 부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의회는 두 달 만에 ‘홀트법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55년 10월12일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는 한국에서, 버서는 미국에서 입양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최대의 시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던 것.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말리는 그동안 부산 광주 전주 등지의 고아원과 예수병원 등에서 활동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의촌 진료에도 앞장서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해요. 그러다 보니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입양은 불행한 아이나 아이를 원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 좋은 일입니다.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사랑은 다 똑같죠.” 전문 장애인병원을 건립해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말리는 현재 일산타운에서 주로 입양이 힘든 고아 장애인 270명을 돌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 땅에는 부모가 묻혔고 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말리의 어머니는 오리건주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현재 일산타운내의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파이어스틸 출생. ▲53년 오리건주 크레스웰고교 졸업 ▲56년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64년 오리건대학 간호학과 졸업 ▲91년 노스콜로라도 주립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석사) ▲56∼65년 홀트아동복지회, 부산 이사벨영아원, 우정보육원, 미국 오리건 병원, 전주 예수병원 간호자문역 ▲65∼78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67∼74년 홀트일산원 원장 ▲92∼현재 나사렛대학 재활학과 교수 ▲98∼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수상경력 국민훈장 석류장(81년), 로버트 피어상(84년) 세계성령봉사상(98년) 적십자 인동장 금장(00년) 일가상(01년) 비추미 여성대상(03년) 등.
  • [재계 인사이드] 세양선박 지분경쟁 뜨겁다

    [재계 인사이드] 세양선박 지분경쟁 뜨겁다

    ‘M&A 대가’ 최평규 S&T중공업 회장과 임병석 쎄븐마운틴그룹 회장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세양선박 지분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최 회장측의 ‘M&A설’이 알려지면서 세양선박 주가는 17일 하루 동안 180원이나 오르는 등 상종가를 치고 있다.‘M&A 작전’에 투자자들이 놀아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세양선박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873만 3625주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키로 했다고 밝혔다. 유상증자 물량은 향후 1년간 ‘유리자산운용’에 배정돼 전량 보호예수될 예정이며 신주가 발행될 경우 유리자산운용의 지분은 약 8%에 이른다. 세양선박측은 운용자금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라고 밝혔지만 최 회장측의 M&A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지난 주말 세양선박 지분 18.14%를 매입, 세양선박의 2대주주로 올라섰다. 세양선박은 이와 함께 2500만달러에 이르는 전환사채(CB)의 주식전환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CB가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전환된 주식의 지분율은 18.03%에 달한다. 쎄븐마운틴그룹의 세양선박 지분은 20.45%로 금융회사에 대여한 지분 5.03%를 포함하면 25.48%에 이른다. 여기에 유상증자와 CB전환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우호지분까지 더하면 경영권이 보다 안정된다. 최 회장은 S&TC를 발판으로 통일중공업을 인수한 뒤 대우종합기계, 효성기계 인수전 등에 뛰어들며 M&A계의 ‘혜성’으로 급부상한 인물. 강덕수 회장이 이끄는 STX그룹에도 도전장을 던졌다가 최근 지분을 4.52%로 낮추며 차익을 챙긴 바 있다. 세양선박은 ‘마도로스’ 출신 사업가 임병석 회장이 일군 쎄븐마운틴 그룹의 주력 계열사. 임 회장 역시 쎄븐마운틴 해운을 발판으로 세양선박,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주목을 받았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儒林(45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儒林(45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그러고 나서 맹자는 공명의(公明儀)의 말을 인용한다. 공명의는 노나라 사람으로 증자(曾子)의 문인이라고도 하고 자장(子長)의 학인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유가에서 태어난 현인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일찍이 공명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금의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으며,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으면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양주와 묵자의 도가 없어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사악한 이론이요 백성을 속이는 것이며, 인의를 꽉 막아버리는 것이다. 인의가 꽉 막힌다면 짐승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잡아먹게 될 것이며, 사람들도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다.…(중략)…사악한 이론이 마음에 작용하게 되면 그는 일에 해를 끼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일에 작용하게 되면 그 정치에도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다시 나오신다고 해도 내 이 말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묵자와 양자에 대한 맹자의 공격의 키포인트는 두 사상 모두 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는 금수, 즉 짐승의 논리라는 것이었다. 특히 맹자는 묵자가 주장한 박장(薄葬)을 집중 공격하였다. 묵가는 자신이 유가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유가의 사치스럽고 과도한 장례를 비난하였다. 묵자는 절검(節儉)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누구든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돕는 한편 물자를 절약하고 검소하게 지낼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묵자의 책 속에 ‘절검’이란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이를 묵가의 중요한 교리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청말의 대사상가였던 양계초가 묵자를 ‘작은 예수(小基督)’로 지칭하는 한편 경제사상면에서는 ‘큰 마르크스(大馬克思)’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공맹(公孟)편’에 보면 묵자가 정자(程子)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망치게 하는 유가의 도 네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그 네 가지를 ‘하늘과 귀신을 믿지 않는 것, 악무(樂舞)를 즐기는 것,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과 함께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번잡한 장례의 폐해’를 열거하면서 특히 장례의 폐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하고 있다. “…또 후하게 장사를 지내고 오랫동안 복상하여 관을 무겁게 하고 많은 수의를 마련하여 장사가 지내는 것을 이사가듯 한다.3년 동안 곡하고 울어서 부축해준 다음에야 일어설 수 있고, 지팡이를 짚은 뒤에야 다닐 수 있으며, 귀로 들은 것도 없고, 눈으로 보는 것도 없게 된다. 이것은 실로 천하를 망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맹자는 묵자의 이러한 장례에 대한 공격을 오히려 역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은 ‘등문공 상편’에 나오는 이지(夷之)와의 대화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지는 묵자를 좇는 묵가였는데, 맹자의 제자인 서벽을 통해서 맹자를 뵙기를 요청하여 왔다. 이때 맹자가 말하였다. “나는 정말 만나고 싶으나 지금 나는 병중이오. 병이 나으면 내가 가서 만날 것이니 이지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 다빈치 미공개작품 2점 첫 공개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공개 작품 2점이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됐다고 BBC 인터넷판이 16일 보도했다. 중부 마르케 지방의 중심지 앙코나에 있는 몰레 반비텔리아나 박물관에서 선보인 두 작품은 아기 예수와 어린 세례 요한이 함께 등장하는 ‘암굴의 성모’ 연작 중 세번째 작품과 다빈치가 죽기 4년 전인 1515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마리아 막달레나 반누드화’이다. 두 작품 모두 다빈치의 애제자 지암피에트리노의 도움으로 제작된 것이며 이들 그림은 100년 동안 개인 소장품으로 주인이 바뀌어오다 3년 전 스위스의 한 컬렉션에 나와 세상에 그 진가가 알려졌다.1495년과 1497년 사이에 제작된 ‘암굴의 성모’ 나머지 두개 작품은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런던 국립미술관에 각각 전시돼 있다. 목제 판넬에 그려진 ‘마리아 막달레나 반누드화’는 젖가슴을 살짝 베일로 가린 누드화 명작 중 하나로 지난 50년 동안 일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儒林(45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儒林(45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심도자의 말을 들은 양자는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 본래 자맥질을 배우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지, 물에 빠져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는데도 그 결과의 차이는 이처럼 심하다. 그러니 그대가 물었던 유가를 배운 앞의 세 형제 중에 누가 옳고 그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심도자는 조용히 물러나왔다. 그러자 함께 따라갔던 맹손양은 몹시 궁금해서 심도자에게 물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또 선생님께서 자신의 것도 아닌 하찮은 양 때문에 왜 하루 종일 말도 안하시고 그처럼 근심스러운 표정이 되셨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심도자가 한심한 얼굴로 후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아직도 선생님의 속마음을 모르겠단 말인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심도자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네. 곧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末端)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네. 자네는 선생님의 문하에서 자라나 선생님의 도를 익히 접하였으면서도 어째서 아직까지 그 비유의 뜻을 깨닫지 못했는가.” 그제서야 맹손양은 양자의 속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고사에서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성어가 태어난 것. ‘다기망양’은 문자 그대로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양을 놓치고 만다는 의미인 것이다. 원래 학문의 길은 하나인데, 너무 지엽적으로 갈라지고, 분파를 이뤄 그 본래의 진리가 다방면에 걸쳐 나뉘어져 오히려 그 말단적인 것에 구애될 수밖에 없어 학문의 목표인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맹자의 사상적 양심을 엿볼 수 있는 명장면인 것이다. 양자는 백가쟁명의 전국시대를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진 다기(多岐)의 난세’로 보았으며, 진리를 ‘잃어버린 양’으로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 역시 자신을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도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다.’고 선언하고 제자를 부를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비유함으로써 양자의 고사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과 ‘자맥질하는 어부’의 비유와 신기하게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양자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혹은 쾌락주의자라는 후대의 평가는 결코 옳은 것이 아니며, 여러 갈래의 길로 사라진 잃어버린 양, 즉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백가쟁명의 난세 속에 타오르던 또 하나의 횃불이라는 점일 것이다.
  • 종교·국경 초월한 나눔 실천

    |솔트레이크시티(미국) 김미경특파원|“대규모 구호품을 항상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때 가장 먼저 도울 수 있었습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외곽에 위치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복지광장’과 ‘인도주의센터’는 교회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어떻게 봉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복지광장은 주로 미국내 실직자와 집 없는 사람 등이 직접 식량과 옷 등 100개 이상의 물품을 타거나 물품을 만드는데 참여해 보수를 받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눈에 띄는 것은 교회 감독(목사 개념)들이 지역별 수혜자를 직접 선정, 식료품 등을 제공하는 대규모 창고와 의류 백화점 등에서 수많은 교회 자원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 치즈와 식빵, 통조림 등을 만드는 공장도 하루종일 바쁘게 가동됐다. 복지광장의 굿 리치 책임자는 “성도들의 금식헌금과 물자 기증을 통해 지난해 20만명에게 취업교육 등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센터는 미국 허리케인 재해 지원뿐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 등 이재민에게 의료·식량 등 각종 구호물자를 보내고 취업도 알선한다. 특히 지난 1995년부터 북한에 우유와 비료, 위생용품 등 600만달러어치를 보내는 등 북한을 긴밀하게 돕고 있다. 인도·남미 등에서 선교봉사를 한 뒤 인도주의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니컬러스 웰치 장로는 “매주 5차례 센터에 들러 물품 분류 및 포장 등을 하고 있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chaplin7@seoul.co.kr
  • 160개국 성도 1200만명 복음 전파

    160개국 성도 1200만명 복음 전파

    |팔마이라·솔트레이크시티(미국) 김미경특파원|지난 1830년 4월 미국 뉴욕 시골마을의 한 농장에 교인 6명이 모여 시작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이하 예수그리스도교회)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160개국에 1200만명의 성도를 거느린 대규모 교회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4번째로 큰 교회이자, 최근에도 전세계적으로 성도가 하루 900명씩 늘어날 만큼 성장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교회 창시자이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첫번째 예언자로 기록된 조지프 스미스의 탄생 200주년과, 한국에서의 선교 5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은 예수그리스도교회의 발상지인 미국 뉴욕주 팔마이라에서 교회 본부가 위치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사적지와 성전 등을 찾아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 봤다. 그들의 성장동력은 무엇일까? ●뉴욕에서 유타까지 대장정 뉴욕주 서부에 위치한 팔마이라와 페이에트에는 첫 예배가 들여진 농장을 비롯, 조지프 스미스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거룩한 숲’과 교회 경전인 ‘몰몬경’의 바탕이 된 금판을 받은 ‘고모라 언덕’, 몰몬경이 처음 출판된 에그버트 출판사 등이 복원돼 있었다.‘고모라 방문객센터’의 러셀 호머 책임자는 “100년전 교회에서 조지프 스미스 생가를 구입한 뒤 사적지들을 복원, 교회의 근원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팔마이라에서 차로 6시간 정도 떨어진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는 이 교회 최초의 성전이 지어진 곳. 스미스 등이 외부의 박해를 피해 커틀랜드로 옮겨 살았던 집이 복원됐고, 지금도 도로와 정원 등이 복원공사 중이다. 1844년 스미스의 순교 후 성도들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2000㎞의 대이동을 시작했다.1847년 교회 2대 회장인 브리검 영 등 선발대가 도착한 솔트레이크계곡의 ‘This is the place’에는 손수레와 마차, 배를 타고 이동한 성도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우뚝 서있었다. ●가족·규율·선교 최우선 20여년간 피난의 역사를 거친 만큼 가족을 중시하고 엄격한 규율을 지켜 왔다. 교회 초창기 스미스는 술과 담배를 금하는 ‘지혜의 말씀’을 내렸으며, 가족의 영원한 사랑을 강조해 왔다. 세상을 떠난 가족을 위한 대리침례를 비롯,‘가족역사도서관’을 세워 가족의 뿌리를 찾는 계보사업도 활발하다. 유타주 프로보의 브리검영대학교와 선교훈련센터는 청년 선교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선교사 6만명이 활동 중이다. ●세계적으로 뻗어가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19세기인 ‘후기’에 회복돼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교회’를 강조하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뉴욕 교회의 아마드 코비트 책임자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메리어트호텔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175차 연차대회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성도 3만여명으로 꽉 찼다. 고든 힝클리 회장은 “이제는 내부 성도들의 신앙을 갉아먹는 인터넷 포르노 등이 문제”라면서 “이들을 정화해 복음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성도 8만명 정도로 아직 미미한 편. 한국인으로서는 최고 자리인 ‘70인 정원회’소속의 고원용 장로는 “한국 교회 헌납 50년이 된 만큼 선교가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chaplin7@seoul.co.kr
  • 儒林(44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2)

    儒林(44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2)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2) 이처럼 묵자의 사상이 전국시대 때 중국의 전 대륙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은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는 만민평등의 ‘겸애론’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묵가가 내건 내세관(來世觀)이었다. ‘내세관’은 인간의 참다운 행복은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의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로서 기독교를 비롯하여 불교 등 인류의 중요한 종교들은 반드시 내세를 통해 인간의 구원을 다루고 있다. 불교에서는 전세와 현세, 그리고 후세를 삼제(三際)로 나누고 있으며, 인간의 업보에 따라 죽은 뒤에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미래의 세상에서는 극락정토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때로는 온갖 짐승이나 그런 짐승 같은 중생을 일컫는 축생계(畜生界)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비규환의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내세관을 내세우고 있다. 기독교는 더욱 엄격하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치는 것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였던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산상수훈(山上垂訓)’함으로써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에 관한 희망을 선포한다. 예수는 비록 현세는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고통스럽고 고달픈 것이지만 온유하고, 자비를 베풀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위해서 희생하고, 비록 박해를 받더라도 옳은 일을 하면, 하늘나라로부터 큰상을 받게 될 것이며, 죽더라도 영원히 죽지 않는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 즉 천국이라고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세 성인 중 유일하게 공자만이 ‘내세관’을 부르짖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유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가에서 파생된 묵가에서는 놀랍게도 이러한 내세관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 사랑하고 모두가 서로 이롭게 하여 반드시 상을 받게 된다. 하늘의 뜻을 반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분별하여 서로 미워하고 모두가 서로 해침으로써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順天意者 兼相愛 交相利 必得賞 反天意者 別相惡 交相賊 必得罰)” 묵자는 하늘은 ‘그 뜻을 따르는 자(順天意者)’에게는 반드시 큰상을 주고,‘하늘의 뜻을 어기는 자(反天意者)’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린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무렵 박해와 고통과 가난 속에 살고 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묵자는 하늘이 주는 벌은 미래나 후세보다는 오히려 당대에 일어난다고 강조하고 그 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이 바라는 것을 행하지 않고, 하늘이 바라지 않는 것을 행하면 곧 하늘도 사람이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고,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해주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이 바라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질병과 재난일 것이다. 만약 자기가 하늘이 바라는 것을 행하지 않고 하늘이 바라지 않는 짓을 하면 그것은 천하의 만백성을 이끌고서 환란 가운데 빠지는 일에 해당하는 셈인 것이다.”
  • 儒林(44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0)

    儒林(44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0)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0) 물론 묵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는 이기적 본능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 사랑’인 ‘겸애(兼愛)’와는 달리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친근한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것은 ‘별애(別愛)’라고 구별하고 이는 오히려 사회악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묵자는 ‘겸애’와 ‘별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규정짓고 있다. “사회의 여러 가지 해악이 생겨나는 이유를 추구해본다면 그것은 어디서 생겨나고 있는가. 그것은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해주려하는 마음에서 생겨나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치는 데서 생겨난다고 말할 것이다. 천하에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치는 자가 ‘겸애’하는 사람이겠는가,‘별애’하는 사람이겠는가. 반드시 ‘별애’하는 사람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니 서로 별애하는 사람이 과연 천하에 큰 해악을 낳게 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별애’란 그릇된 것이다.” 이처럼 묵자의 ‘겸애론’은 철저한 ‘이타주의적 사랑’이었다. 묵자는 이기주의적인 사랑인 ‘별애’는 오히려 사회를 해치는 악으로 보았으며, 사회의 혼란은 ‘사랑의 부재’에서 시작된다고 단정하였다. 이는 인간의 죄를 ‘사랑의 결핍’ 혹은 ‘사랑의 부재’로 규정하였던 가톨릭의 교리와도 완전 일치되는 것으로 따라서 청대 말의 대사상가였던 양계초(梁啓超)가 묵자를 ‘작은 예수(小基督)’라고 단정한 것은 탁월한 해석인 것이다. 묵자는 전국시대 때의 정치혼란과 사회악의 원인이야말로 바로 이타적 사랑인 겸애의 결핍 내지는 부재로 단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혼란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살펴본 일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은 데서 일어나고 있었다. 신하와 자식이 그의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효성스럽지 않는 것이 바로 혼란의 원인인 것이다. 자식은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아우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형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신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혼란인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다 해도 이것 역시 이른바 혼란인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皆起不相愛)’ 비롯되는 것이다. 또한 천하의 도둑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도적들도 그의 집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집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의 것을 훔치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도적들은 또 자신들의 것은 사랑하면서도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을 해침으로써 그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이것도 모두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은 여기에 전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를 살펴보건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 영화,그림속을 걷고 싶다 -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한창호 지음

    ‘영화 장면이 회화에서 봤던 이미지와 너무나 흡사하네?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한창호 지음, 돌베개)는 이같은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반 고흐의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는 수십마리의 까마귀가 밀밭 위를 날아다닌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꿈’에서도 흡사한 구도로 까마귀가 밀밭 위를 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그 제자들이 식사하는 장면은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 ‘비리디아나’에서 장님과 걸인들의 식사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모텔 이미지를,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와이드셧’도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의 황금빛 이미지와 똑같다. 저자는 말한다.“영화는 수없는 도둑질 끝에 예술이 됐으며, 그 중에서도 그림에서 많은 것을 훔쳐왔다.” 이 책은 영화평론가인 저자가 시각예술의 대표적 두 장르인 영화와 미술 사이의 은밀한 만남과 격렬한 뒤얽힘의 관계를 풀어놓은 영화에세이다. 저자가 영화잡지 ‘씨네 21’에 ‘영화와 미술’이란 제목으로 지난해 4월부터 연재한 35편의 글을 묶었다. 책은 영화 감독들이 영감을 얻었던 회화 예술을 작품 속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분석하고 있다. 개성있는 스타일을 구축한 거장 감독들의 영화 미학과 작품 세계를 깊이있게 소개한다. 특히 영화 스틸 사진과 회화 도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걸작 영화들이 어떻게 영화와 미술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한다.1만 8000원.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儒林(44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9)

    儒林(44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9)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9) 그러나 묵자가 하늘로부터 깨달은 불변의 진리는 바로 ‘사랑’이었다. 묵자는 ‘사사로움이 없고 베푸는 것은 두터우면서도 멈추는 일이 없고, 밝음은 오래되어도 꺼지지 않는 영원’인 하늘은 ‘천하의 모든 나라도 하늘의 고을이요, 천하의 모든 사람도 하늘의 신하이니, 하늘은 모든 신하들인 만백성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묵자의 이러한 ‘하늘의 사랑’은 ‘겸애(兼愛)’라는 사상으로 발전된다. ‘겸(兼)’이란 ‘자기와 남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자기와 남의 구별이 없는 것’,‘사람들을 차등을 두지 않고 똑같이 대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묵자의 ‘겸애론’은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묵자의 ‘겸애론’은 하늘의 법도(法道)를 바탕으로 해서 발전되었는데, 묵자는 법의(法儀)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하늘의 운행(運行)은 광대하면서도 사사로움이 없고, 그 베푸는 것은 후덕하면서도 은덕으로 내세우지 않고, 그 밝음은 오래가면서도 쇠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왕께서는 이것을 법도로 삼았던 것이다. 이미 하늘을 법도로 삼았다면 그의 행동과 하는 일은 반드시 하늘을 기준 삼게 될 것이다. 하늘이 바라는 것이면 행하고, 하늘이 바라지 않는 것이면 그만둔다. 그렇지만 하늘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싫어하는 것일까. 결단코 하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할 것을 바라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서로 해칠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엇으로써 하늘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해주는 것을 바라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서로 해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가. 그것은 하늘은 모든 것을 아울러 사랑하고, 모든 것을 아울러 이롭게 해준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무엇으로써 하늘이 모든 것을 아울러 사랑하고, 모든 것을 아울러 이롭게 해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늘이 모든 것을 아울러 보전하고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지금 천하의 크고 작은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늘의 고을인 것이다. 또 사람은 어리고, 나이 많고, 귀하고, 천한 구별 없이 모두가 하늘의 신하인 것이다. 이 때문에 모두가 말과 소를 기르고, 개와 돼지를 기른 다음 정결한 술과 단술과 젯밥을 담아놓고 공경하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모든 것을 아울러 보전해주고, 모든 것을 아울러 먹여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이처럼 진실로 모든 것을 아울러 보전해주고 먹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삼라만상을 아울러 보전해주고, 하늘 아래 만백성을 ‘어리고, 나이 많고, 귀하고, 천한 구별 없이 아울러 먹여주는 것’은 하늘이 천하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묵자의 주장은 신기하게도 예수의 다음과 같은 설법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그러므로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예언서 ‘정감록’을 한 채의 기와집에 비유하면, 정면 기둥은 풍수지리와 미륵신앙이 아닐까 한다. 얼핏 눈에 잘 띄진 않으나 집의 뒷면에도 기둥은 있는 법이다. 천문과 역법이 그에 해당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풍수와 미륵에 대해선 그동안 제법 자주 이야기를 해온 셈이다. 하지만 천문과 역법에 관해선 따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자니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선 천문사상이 ‘정감록’에 남긴 흔적을 더듬어 보았으면 한다.‘정감록’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혜성이 진성(軫星) 머리에서 나타나 은하수로 들어간 뒤 다시 자미(紫微)를 범하고 두미(斗尾)로 옮았다가, 두성(斗星)을 거쳐 남두(南斗)에서 멈출 것이다. 그러면 대중화(大中華)와 소중화(小中華)가 일시에 멸망하리라.”(감결) 이것은 정감의 예언이다. 그는 여러 별자리에 괴변이 일어나면 중국(대중화)과 한국(소중화)이 동시에 망한다고 했다. 요모조모 ‘정감록’을 잘 뒤져보면 비슷한 내용이 자꾸 눈에 띈다.“진성(軫星) 머리에서 혜성이 나와 몇 달 동안 없어지지 않네. 그 뒤 별들이 남극(南極)에서 싸우고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었네. 하늘 길이 한번 트이니 하늘 북이 두 번 울리네.”(삼도봉시) 조선건국의 주역 정도전이 지었다는 예언시의 일절이다. 실제로는 위작이 분명한데 이 시에 등장하는 천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새겨봐야겠다. 비록 그렇다 해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자미(紫微)에 저녁 무지개가 떴네. 다시 들러서 동쪽으로 나뉘니, 나라에 변괴가 있고, 상사가 참혹하네.”(경주이선생가장결) 역시 천문을 살펴 자미성에 이상한 징후가 일어날 경우 나라에 변괴가 있다고 예언하였다.‘정감록’에서 이와 엇비슷한 예언을 찾아내 일일이 언급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과 혜성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사람들은 28수(宿)를 중시했다. 이것은 황도(皇道)에 가까운 별자리들이었다. 황도란 지구에서 태양의 운행괘도를 일년간 연속적으로 관찰할 때 하늘에 그려지는 하나의 원이다.28수는 황도의 동서남북에 각기 7개씩 배치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관심을 표했던 별자리는 기성(箕星·궁수좌), 벽성(壁星·페가수스좌), 익성(翼星·바다뱀좌) 그리고 진성(軫星·까마귀좌)의 4개였다. 특히 진성에 대한 관심은 아주 유별났다. 이 별자리를 이른바 “청구칠성”이라 하여 청구 또는 한반도의 운명을 주관하는 것으로 보았다.‘정감록’에서도 진성의 머리에서 혜성이 나오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예언한 것은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 뿌리를 캐 보면 진성은 신라의 국운을 담당하는 별자리였다. 헌덕왕 7년(815)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단초를 발견한다. 그 해 서쪽 변방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러자 도적 떼가 연달아 일어나 조정에서는 군대를 파견해 토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변고를 예언케 하는 천문 현상이 있었고 문제의 별이 등장한다.“큰 별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서 나타나 서쪽을 향해 뻗어 갔다. 그 빛의 길이가 여섯 자쯤 되고 너비가 두 치나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큰 별은 혜성이다. 만일 아니라면 별의 길이와 너비가 그처럼 컸을 턱이 없다. 혜성이 서쪽으로 움직여 가자 천문을 담당하는 신라의 관리들은 반란의 진원지가 서쪽임을 알게 되었다. 하필 혜성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서 시작된 것은 두 별자리가 28수 가운데 서로 이웃해 있기 때문이다. 익성과 진성은 이른바 남방주작(南方朱雀)에 해당한다. 황도의 남쪽에 있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 방금 말한 두 개의 별자리 말고도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의 다섯 별자리가 더 있다. 통일신라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진성에 달린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엔 사정이 달랐다. 고구려의 운명은 서쪽 하늘의 별들이 맡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중국 측의 역사기록에 나와 있다. 고구려 보장왕 27년(668) 4월, 필(畢)과 묘(昴) 사이에서 혜성이 관측되었다. 그러자 허경종(許敬宗)이 보고하기를,“혜성이 거기 나타난 것은 고구려가 장차 멸망할 징조입니다.”(‘삼국사기’, 권 22)라고 하여 당 태종을 기쁘게 하였다. 허경종은 천문에 능한 당나라 관리였다. 그 역시 ‘정감록’이나 ‘삼국사기’와 똑같은 방식을 써서 고구려의 비참한 종말을 예언했다. 필성과 묘성은 모두 황도 서쪽의 별자리들이다. 묘성(황소자리)은 누(婁) 및 위(胃)와 더불어 호랑이 새끼 3마리로 여겨졌고, 필성(오리온자리)은 호랑이의 입으로 이해되었다.‘정감록’을 전파한 조선후기의 술사들은 되도록이면 고구려의 전통을 따르고자 했다. 그런 그들도 고구려의 별인 백호를 저버리고 주작(진성)을 국운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통일신라 이후 천년 동안 내리 지속돼 온 전통의 무게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미, 남북두성, 그리고 남극성에 숨은 뜻 변란을 알리는 혜성은 ‘정감록’에 객성(客星) 또는 요성(妖星)으로 나온다. 혜성은 때로 자미를 침범하거나 북두칠성, 남두육성도 쳐들어간다. 심지어 남극성을 유린하기까지도 한다. 이들 별자리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자미는 이른바 북쪽 하늘을 셋으로 쪼갰을 때 그 가운데 하나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태미(太微), 천시(賤視) 및 자미를 삼원이라고 했다. 달리 말해, 자미는 북두칠성의 북쪽에 위치한 별로 천자 또는 임금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일찌감치 백제 기루왕 9년(85) 4월에 이미 객성이 자미를 침범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으리라는 예언이었다.‘정감록’은 18세기에야 등장했다고 할 때, 최소한 그보다 1600년이나 앞서 반역에 관한 천문예언이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밤하늘을 수놓은 숱한 별자리 가운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그 반대편인 남쪽 하늘엔 남두육성(南斗六星·궁수좌)이 있다. 이 별들은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7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섬겨왔다. 그에 비해 6성은 삶의 세계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6성은 서양식 명칭으로는 궁수좌인데,28수의 하나인 기성과 중복되기도 한다. 그 옛날 고구려 사람들은 별자리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고구려 고분벽화들을 보더라도 틀림없이 그랬다. 지금까지 모두 22개나 되는 고분에서 다양한 별자리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19개의 고분에 등장하고 있으며, 남두육성 역시 최소한 10군데서 확인되었다.6성이 발견된 고분벽화에는 7성이 어김없이 짝을 이뤄 나타난다. 고구려인들은 두 별자리를 함께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요컨대, 생과 사를 주관하는 별자리가 6성과 7성이었다. 그런데 혜성이 그 별들을 모두 침입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전란, 굶주림, 또는 질병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될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정감록’은 한국 고대의 천문 전통에서 이런 예언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기성(箕星)이 희어질 무렵 피가 흘러 절구공이가 떠내려가고, 천리가 한 책상이 되니 갑옷에 두 뿔이 나는구나.”(정북창비결)라는 구절이 있다. 남두육성으로 볼 수도 있는 기성은 태풍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이 별자리가 풍해를 막아준다며 받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남부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도 기성과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피가 강물을 이뤄 민가의 절구공이가 떠내려갈 지경이라면 단순히 자연재해로 간주하기 어렵다. 전란의 피해로 봐야 옳을 것도 같다. 인용문의 뒷부분에 갑옷이 등장한 점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흉조라는 점에선 남극성(노인성이라고도 함)을 당해낼 별이 없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이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기로 결심한 것도 남극성을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경순왕 8년(934) 9월 그 별이 나타나자 왕은 고심했고, 이듬해 10월 마침내 항복문서를 바쳤다.(‘삼국사기’ 권 12) 때로 남극성은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남극성이 빛을 발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감록’에서 보듯 혜성이 남극성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기성 왕조가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는 예언으로 풀이된다. 혜성뿐만 아니라 무지개가 별을 꿰뚫을 경우도 흉조로 해석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백홍(白虹·흰 무지개)이 해를 꿰뚫고 지나간다는 예언이다. 이것은 국왕이 바뀔 징조로 여겨졌다. 예컨대 고려 현종 5년(1013)에도 “흰 무지개가 관일(貫日)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오는데,‘정감록’에도 유사한 표현이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오성의 변괴 이밖에도 ‘정감록’엔 오성 즉, 목성, 화성, 금성, 수성 및 토성의 변화에 대한 언급이 제법 많다. 물론 국가의 운명이 그와 직결된다는 전제 아래 끔찍한 예언이 도처에 숨겨져 있다. 우리 역사를 잘 살펴보면 오성은 사실 고대로부터 큰 관심거리였다. 고구려 차대왕 4년(149) 5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 오성이 동쪽하늘에 모였다. 목성(세성 歲星), 화성(형혹 熒惑), 금성(태백 太白), 수성(진성 辰星) 및 토성(진성 鎭星)이 한자리에 늘어선다는 것은 정말 희귀한 일이지만, 그것은 실상 흉조였다. 그러나 담당관리인 일자(日者)는 왕이 화낼까 걱정돼 거짓말로 둘러댔다.“이는 임금님의 덕이요, 나라의 복을 뜻합니다.” 왕은 그 말에 만족하였다.(‘삼국사기’ 권 15) 고구려는 일찍부터 천문이 발달한 나라였다. 고분벽화마다 별자리를 그려놓을 정도였으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미 국초부터 조정에 천문을 담당하는 특수 직책이 설치돼, 별을 보고 국운을 점치는 관리가 존재했다. 오성에 관한 예화에서 보듯 가끔은 담당관리가 국왕을 속이는 일도 있었다. 예언이라면 고려나 조선시대처럼 풍수가 아니라 천문이 근간을 이뤘다. 그런데 오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길조로 해석될 때도 있었다. 고려 인종 10년(1132) 11월 동짓날, 오성은 물론 해와 달까지, 그러니까 칠요(七曜)가 정북방향에 모여들었다. 인종은 이 같은 길조가 예언서에 이미 예고돼 있다며, 국정을 일신할 중요한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려사’ 권 16) 칠요가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신라 때부터도 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은 칠요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등에 칠성을 뜻하는 점이 있었다 한다. 영웅이 될 기상을 가진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기이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삼국유사’) 본래 칠요란 개념은 서양 고대에 있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의 신들이 인간세상을 관장한다고 보았다. 성신(星辰) 신앙이라고 할 만하다. 별의 신들은 전쟁, 흉년, 지진, 가뭄과 홍수를 마음대로 하며, 모든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어졌다. 특히 행성인 오성과 해와 달을 합한 칠요는 더욱 중요시 됐다. 칠요의 신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사를 맡아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칠요신앙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에도 전파된 것 같다. 김유신이 태어난 7세기에는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국 고대에 칠요신 특히 그 가운데서도 오성의 신들이 열렬한 신앙대상이 돼 있었다는 점은 다른 역사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태봉의 발풍사란 사찰에는 석가여래상 앞쪽에 토성(塡星 또는 鎭星)의 신을 새긴 조각이 봉안돼 있었다 한다.(‘고려사’ 권 1) 궁예 왕은 토성의 신을 예언서 ‘고경참’의 저자로 믿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오성과 칠요의 신은 한국 민중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잔영은 ‘정감록’에 여전히 남아 있다.“계축년에 세성(歲星·목성)이 바다에 잠기니 왕자가 섬으로 도망친다.”(오백론사)라고 했다. 목성은 천문학상 매우 중요한 별이다. 그 공전궤도를 12등분해 목성이 처한 위치에 따라 한 해의 이름을 다르게 불렀을 정도다. 이를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이라 하는데, 목성에 일어난 자그만 변화도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을 뒤바꾸는 징조로 이해됐다. 화성의 변화도 중요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려 때 달이 형혹성(熒惑星·화성)을 침범하자 일관(日官)은 “귀인이 죽을 것입니다.” 라고 풀이하였다. 최근 발견된 ‘송하비결’에도 화성에 관한 예언이 실려 있다.“형혹성이 기성을 범하리니 북쪽 문에서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누런 용이 여의주를 얻으리라.” 혹자는 화성이 목성을 침범했으므로 한반도엔 전쟁에 버금갈 만한 큰 변고가 일어난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화성은 화란 또는 전쟁의 징후를 알려주는 별이고, 목성은 가득차거나 이지러지거나 또는 변화가 멈춘 현상을 보여주는 별이라서 그렇다 한다. 목성은 나라의 명운을 예고하기에 적합한 별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성을 화성이 쳐들어갔다는 것은 나라에 병란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정감록’엔 금성과 수성에 관계되는 흉한 예언도 많은 편이다.‘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기록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차이가 있다면 역사에는 오성의 길조가 꽤 많이 언급됐다는 사실이다. ●복성이란 존재 ‘정감록’에도 천문에 관한 예언이 길조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산의 동쪽과 삼남(三南)에 복성(福星)이 두루 비친다.”(서계이선생가장결)라고 한 대목이다. 복성은 녹성(祿星) 및 수성(壽星)과 더불어 삼성이라 일컬어진다. 보통은 북두칠성의 왕별인 무곡성을 복성으로 믿고 있다. 조선후기의 유명한 고소설인 ‘토끼전’에선 복덕성(福德星)으로 간주해 목성으로 본다. 복성에 관해 한 가지 재밌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변도탄이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그는 천문에 밝았다. 군량미를 관리하는 관원으로 일하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천기를 보았더니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역력했다. 그는 국난에 대비해야 된다고 상소했으나, 인심을 흉하게 만든다며 도리어 관직만 빼앗겼다. 변 선비는 낙향을 결심했는데 어느 날 밤 복성(福星)이 남쪽으로 밝은 빛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저장했던 양식을 소달구지에 싣고 복성의 빛을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동안 하다 전북 장수군 번암면의 한 골짜기에 도착했다. 복성의 인도를 따른 것이다. 과연 얼마 안 되어 왜적이 침입해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변 선비가 터를 잡은 곳은 아무 일도 없었다.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미리 앞을 내다 본 변 선비의 뛰어난 지혜와 충성심에 감탄해 상을 내려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복성(福星)마을을 이루게 됐다 한다. 복성을 따라 피난처를 구했다는 전설이나 복성을 보고 길지를 찾을 수 있다 한 ‘정감록’ 예언은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들 역시 별빛의 인도로 먼 길을 걸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할 수 있었다 했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의 하늘에선 더 이상 별빛을 보기 어렵다. 별을 봤댔자 어느 별이 어느 별인지 구별도 못할 만큼 현대인들은 천문에서 멀어졌다. 별은 더 이상 우리의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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