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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경우에 따라 군대 시절의 ‘보따리’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 주인공은 오늘날의 인기가수 조영남(62)이다. 대학 시절 그는 ‘딜라일라’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꾀가 생겼다. 군 복무를 계속 연기했다. 여차 하면 ‘안가는 방법’까지도 궁리했다. 그러던 1970년 4월8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세상이 요란스러워졌다.20여일 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김시스터즈의 귀국공연이 열렸다. 김시스터즈는 국내 여성보컬 1호로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정권 고위층도 참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여기에 조영남은 찬조 출연한다. 무대에 선 그는 무심코 노래 한소절을 바꿔 불렀다. ‘신고사니이∼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라고 해야 하는 데 ‘신고사니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별 일이 아니겠지만 그때는 달랐다. 특히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일전을 치러야 하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다. 이런 판에 조영남이 고춧가루를 뿌렸으니 분위기가 험악할 수밖에. 겨우 눈치를 챈 조영남은 무대 뒤로 간신히 빠져나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울신문사 사장 방에서 잠시 피신해 있다가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4시에 두명의 형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끌고갔다.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자 최초 여류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도움을 받는다. 즉 이 박사가 조영남을 재판에서 빼내주었고 대신 군 입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평소 조영남이 이 박사가 잘 가는 소년원에서 무료로 위문공연해 준 인연이 작용했다. 결국 조영남은 이 박사의 보증아래 훈련을 받은 뒤 육군본부 합창대에서 근무했다. ●가사 바꿔 불렀다 여러번 ‘혼쭐´ 군복무 시절 다시 한번 아찔했던 순간을 겪는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조영남은 나름대로 민족의 애환이 깃든 노래를 한답시고 ‘각설이 타령’ 한곡을 ‘쭉∼’ 뽑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얼씨구씨구 들어간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조영남은 모처로 불려가 혹독한 ‘취조’까지 받았다. 비슷한 사연은 또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래 도중 하모니카를 빼다가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 영부인 김옥숙 여사를 향해 ‘나 하나의 사랑’을 열창했다가 눈총을 받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 ‘화개장터’는 공교롭게도 1997년 대선 때 선거바람을 타고 빅히트를 쳐 ‘운때 맞았던’ 경우도 있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대중 정권 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김한길 의원이다. 조영남은 원래 즉흥적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치와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으로 바꿔 부른 것도 여전히 회자된다.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재임 1969∼74년)이다. ‘시커먼 하얀집/어쨌든 하얀집/누가 뭐래도 하얀집/좌우지간 하얀집/불이 나면 빨간집/꺼지면 까만집/∼/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결국 그가 지칭하는 하얀집은 ‘백악관’이었다.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조영남씨를 만났다. 올해로 데뷔 41주년이 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달에 한번꼴로 콘서트를 가진다. 얼마 전에는 다시 방송에 복귀, 최유라와 함께 ‘지금은 라디오 시대’(MBC-FM 오후 4∼6시)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가수이자 문학인, 화가, 전방위 예술가로 푸짐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따뜻한 봄날, 문득 선문답을 나눠보고 싶다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음악·문학·그림? 그건 그냥 취미야 “노래는 왜 합니까?” 우문이었을까, 뿔테 안경너머로 살짝 째려보더니 “밥벌이”라고 소리지른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렇다면 시는 왜 씁니까?” “암호해독이지, 진실의 핵심을 푸는 재미라고나 할까.” 내공의 깊이가 이 정도?.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다. 노려보던 시선을 흐트려뜨리며 “보들레르, 랭보,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결국 아무것도 아냐. 인간 존엄성이지.”라고 뱉는다. “하지만 한 가지 못 푼 게 있어, 이상의 ‘날개’, 음 정말 암호가 많아.” 이때 MC 임백천씨가 나타났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잠시 일어선다. 저쪽 방에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등 몇몇 정치인들이 눈에 띄었다. 정 고문의 어머니 고 이태영 박사가 앞서 언급된 병역기피 재판 때 조씨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잠깐 오버랩됐다. 인터뷰가 다시 진행된 것은 20여분 후. “인간 조영남은 음악인, 문학인, 화가 중 과연 어느 쪽을 좋아합니까?”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취미일 뿐이지.” “그렇다면 사는 재미를 어디에서 찾나요?” “재미의 순서? 젊은 여자들과 밥먹고 수다 떠는 것이 제일 재밌지.” “수다가 가능합니까?” “가능하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하고 공부하지. 공부 안하고 연구없이 재미있게 살 수는 없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다 재미있게 살려는 것이지.” “젊은 여자를 만나면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떠나요?” “그날 그날 다 달라. 어제는 여름 이불이 어느 정도 얇아야 하느냐, 어떤 천이 좋으냐, 이런 주제로 2∼3시간 수다를 떨었어.” ●젊은 여자랑 밥먹고 수다떠는 게 제일 재밌어 “그렇다면 인생은 수다인가요?” “재미있게 수다 떨다가 죽는 것이 최종목표지 뭐.” “수다 뒤에 찾아오는 허무는 무엇으로 채우나요?” “무엇을 해도 허무해. 허무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고, 잠들면 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또 수다 떨고….” “주변에서 인간 조영남은 고독하고 쓸쓸한 팔자가 아니냐고 합니다.” “말 같지 않은 얘기야, 고독하지 않은 것이 없어. 고독 반, 고독하지 않은 것 반, 기쁨 반, 슬픔 반, 인간사 다 그렇지 않은가.”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음악을 만드나요?” “몸부림친 적도 없어…, 다 구라치는 얘기야.” 조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툭툭 내뱉는 단어들이었지만 조합을 해보면 매사에 솔직하고 일관된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답을 위해 인생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운찬·정동영·손학규, 삼두 정치 어떨까 “주변에 대통령이 될 법한 친구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 정운찬, 정동영, 손학규…. 그러나 그 중 한명(정운찬)이 떨어져 나가 승률이 줄어들었어.”이어 “정운찬은 쓸 만한 물건이고, 정동영은 잘 만들어진 물건이고, 손학규는 쓰기 편한 물건이고, 다 괜찮아. 말 나온 김에 옛날처럼 삼두(三頭)정치를 제의하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자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같이 살자고 하면 살아줄 여자도 몇명 있지. 안 하는 이유? 두번씩이나 둘이서 살아봐서 아는 데, 혼자 살아보니 훨씬 재미있어. 난 역시 독립군 체질이야. 성격이 변태 같은데 감당하고 들러붙어 살 여자가 쉽게 나타나겠어?”그는 자신이 불렀던 곡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노래에 대해 이제하씨가 가사를 쓴 ‘모란동백’, 그리고 방송작가 김수현씨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파문을 언급하자 “많이 아팠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했다. 인생 앞날의 계획을 재차 물었다. “죽기 직전까지 산다는 것이야.”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황해도 남천 출생. ▲51년 1·4후퇴때 월남. ▲64년 서울 용문고 졸업. ▲66년 서울대 음대 시절, 미8군 무대데뷔로 노래인생 시작. ▲68년 첫음반 ‘딜라일라’ 발표. ▲7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권유로 미 트리니티침례신학대학 입학. 이후 목사자격증을 받고 미국 생활. ▲81년 귀국후 가수활동 재개. # 대표곡 딜라일라, 제비, 물레방아 인생, 각설이 타령, 별은 빛나건만, 신고산타령, 화개장터, 웰컴투코리아, 사랑했기에, 겸손은 힘들어, 늘푸른 마을, 인생은 요지경, 무너진 사랑탑, 보리수. 내고향 충청도 등. # 주요 저서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82년), 놀멘놀맨(95년),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2년),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03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05년). # 그외 영화 서울에비타 등 출연.1990년 LA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
  • “이웃사랑 실천이 곧 구원이고 해탈”

    기독교와 불교의 요체는 구원과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기독교)과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자력 해탈’(불교)은 두 종교의 가장 핵심이면서도 그 목적과 방법이 상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구원·해탈의 인식과 방법도 점차 열린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넘어선 남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이라는 법전 조계종 종정의 일갈은 그런 측면에서 빛이 났다. 지난해 5월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붓다와 예수’라는 주제로 공동 모임을 가져 주목받았던 한국불자교수연합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이번엔 ‘구원’과 ‘해탈’의 현재적 의미를 화두로 종교의 공동 본질 탐색에 나선다.27일 오후 1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국제회의장에서 여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과 해탈은 무엇인가’주제의 학술회의에서다. 고려시대 태고(太古)스님은 ‘만법이 돌아가는 하나의 진리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화두 참구 끝에 득도했다고 한다.‘모든 종교는 동일하며 길은 다르더다도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27일 학술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천하에 진리는 둘이 아니고, 성인의 마음도 둘이 아니다’(天下無二道,聖人無兩心)라는 공동 인식아래 자비와 사랑을 토대로 한 구원과 해탈의 실천방안에 뜻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장)씨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는 요즘, 구원도 근원적 관계성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상호 소통하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 측면을 구체화시킬 때 구원은 완성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소외된 남을 남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보는 가운데 의식적으로 남에게 맞추는 것이야말로 내적 개인 구원의 징표이자 사회 구원의 시작이며,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데서 구원은 최고의 구체성을 띤다.”고 못박았다. 이민용(참여불교연대 공동대표)씨는 “무아·무상 등 무(無)를 강조하며 열반으로 이끄는 불교는 기독교의 서구인들에겐 허무주의에 다름아니었지만 점차 부정주의적 현실관을 극복하는 최대의 이상론으로 격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불교에서 현장을 떠난 이상 세계(천국)가 있을 수 없고 천국의 전제없이 현실은 발붙일 근거가 없다.”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느니라’‘성령이 너희 속에 계시다’는 기독교의 구원론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명권(코리아 아쉬람 대표)씨는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하지만 불교의 해탈은 개인이 깨달음을 추구한 뒤 중생을 제도하는 상이한 구조를 띤다.”며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새로운 계명을 실천하는 구원이나 해탈의 결과 깨달음을 사회 속에 실천하는 보시는 결국 사회적 구원이라는 연대적 해탈로 만난다.”고 주장했다. 즉 ‘십자가’의 자기부정으로 출발해 만인의 대동사회를 열어가는 ‘만다라’의 조우, 그것은 유토피아를 넘어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키는 것이요, 극락을 이땅에 실현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美 교포학생 총기난사 파문] 섬뜩한 동작…적개감으로 가득

    [美 교포학생 총기난사 파문] 섬뜩한 동작…적개감으로 가득

    “너희들은 내 피를 보겠다고 결정한 거야.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어. 내겐 한 가지 선택밖에 없어. 너희가 이렇게 만든 거야. 당신들은 절대 씻겨지지 않을 피를 손에 묻히게 된 거야.” 미국 NBC방송이 18일 공개한 조승희(23)씨의 동영상 비디오와 43장의 사진,1800자 분량의 ‘성명서(manifesto)’는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사전에 계획된 범행임을 드러낸다. 조씨가 우편물을 발송한 시간은 사건 당일인 16일 오전 9시1분. 최초 총격(오전 7시15분)으로 2명을 살해하고, 재차 범행(오전 9시45분)에 나서기 직전이다. 조씨는 동영상과 사진에서 ‘스킨헤드(극우주의자)’처럼 짧은 머리에다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권총과 흉기, 망치 등 살인 도구를 든 채 의식을 치르듯 다양한 동작을 취했다. 입으로는 적대감과 분노에 찬 증오심을 뿜어냈다. 조씨는 직접 찍은 10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성명서를 낭독했다. 조씨는 “내가 그들을 위해 저질렀다. 이제 시간이 됐다. 내가 했어야 했다.”고 기숙사에서의 총격을 시인했다. 그는 “얼굴에 침을 뱉으면 어떤 기분인지, 목구멍에 쓰레기를 밀어 넣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너희가 아느냐.”며 뿌리깊은 원망도 드러냈다. 중간 중간에 사회적 약자, 십자가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또 “벤츠도 보드카와 코냑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냐.”고 부유층의 쾌락적인 삶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그의 기숙사 방에서 발견된 ‘부잣집 아이들’,‘방탕’이라는 메모에서 드러낸 적개심이다.NBC뉴스는 조씨가 특히 ‘쾌락주의(Hedonism)’ 혐오와 ‘기독교 신앙(Christianity)’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오사마, 부시’ 언급 조씨는 자신이 ‘PDF파일’로 보낸 43장의 사진 곳곳에 메시지를 넣었다. 그는 김정일,9·11테러의 오사마 빈 라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언급하며 “너희들이 나를 이런 사람들로 만들었다.”며 “행복하냐.”고 비아냥거렸다. 그가 보낸 사진 중 여느 평범한 청년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은 2장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진들은 마치 살육을 앞둔 전사처럼 권총을 겨누고 칼과 망치로 위협하는 섬뜩한 동작들이 연속됐다.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겨눈 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들은 조씨가 오래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차량 안과 실내외가 모두 사진 배경이 됐고 옷차림도 조금씩 달랐다. 그가 시차를 두고 미리 사진들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조씨 ‘유나보머’ 모방했나? 미국내에서는 조씨가 우편물을 통해 범행 동기를 밝히고 합리화하는 것이 마치 ‘유나보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씨의 성명서와 우편물 발송 수법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나보머(Unabomber) 사건은 1970∼80년대 현대 문명과 기술을 경고한 버클리대 교수 출신의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를 가리킨다. 카진스키는 직접 만든 소포폭탄을 발송하는 수법으로 사망자 3명 등 26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그 역시 ‘유나보머 선언문’이라고 불리는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편지를 언론에 보내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조승회 성명서 요약 너희(You)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많은 방법과 기회가 있었다. 너희는 내 피를 쏟기로 결정했다. 너희는 나를 구석으로 몰고 내게는 어떤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 그 결정은 당신들의 것이다. 너희는 절대로 씻겨지지 않을 피를 손에 묻혔다. 너희는 내 마음을 파괴했고, 나의 영혼을 강탈했으며, 나의 양심에 불을 질렀다. 너희는 소멸시킨 것이 한 애처로운 소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당신들 덕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한 사람들과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 너희는 평생 동안 단 한 방울의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다. 너희는 원했던 모든 것을 가졌다. 메르세데스 벤츠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너희는 금목걸이로도, 신탁예금, 보드카와 코냑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속물들아. 유흥과 환락으로도 부족했느냐. 그 모든 것들도 너의 쾌락주의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순 없다. 이제 시간이 됐다. 나는 행동했다. 그래야만 했다.
  • 사학법 재개정에 반대 후보 개신교“총선·대선 낙선운동”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개신교계가 “사학법 재개정에 반대하는 대선ㆍ총선 후보자들에 대해 조직적 낙선운동을 전개하겠다.”고 18일 밝혔다. 기독교사회책임(공동대표 서경석 목사)은 “현행 사학법은 선교의 자유와 사학의 자율을 침해하는 법률”이라며 “사학법 재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해 조직적 낙선운동을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최근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탈당그룹인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질문지를 발송했고, 답변 여부에 따라 낙선운동 대상자를 정할 방침이다. 한국미래포럼(사무총장 김춘규)도 이날 주요 교단 소속 평신도 11만여명의 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정치권이 기독교 사학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4월 임시국회 회기중 사학법이 재개정되지 않을 경우 재개정에 반대한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기총,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ㆍ총회장 이광선 목사) 등 개신교계 주요단체들은 17일 여의도 모 호텔에서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나 “이달 말까지 사학법을 재개정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유럽 축하행사 다양

    |파리 이종수특파원|16일로 80회 생일을 맞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축하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유럽에서 벌어진다. 로마에서는 전날인 15일 성 베드로 성당에서 대규모 미사가 열린데 이어 이날 저녁에 축하 콘서트가 열린다. 낮에는 12명의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의 초청으로 점심을 함께 먹으며 베네딕토 16세의 건강을 기원한다. 또 이날 교황 취임 이후 첫 저작인 ‘나사렛 예수’도 출간된다. 특히 교황이 태어난 독일의 열기가 뜨겁다. 라디오 방송 네트자이퉁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교황의 생일 선물로 ‘1시간 라틴어 방송’을 준비했다.”고 발표했다. 교황의 출생지인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는 전날 ‘베네딕토 16세 기념 박물관’을 개장했다. 이 박물관은 독일의 한 가톨릭 재단이 교황이 태어난 마르크틀 경찰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으로 단장했다. 앞서 13일에는 독일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과 개신교 협의회장이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쾰러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당신의 삶과 생각은 교회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과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이어 “당신의 교황 선출은 독일인에게는 특별한 어떤 것을 뜻한다.”며 “독일 대통령으로서 당신이 비길 데 없는 직책을 맡고 있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본명이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인 교황은 1927년 마르크틀 암 인에서 경찰관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005년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받았다.vielee@seoul.co.kr
  • 男 없어도 임신가능?

    男 없어도 임신가능?

    신화 속에 등장했던 ‘아마조네스(여자만 존재하는 세계)’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금기에 도전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연구팀이 12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인간의 골수(骨髓)로부터 인공 정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론적으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처럼 남성 정자가 없이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남성 골수에서 미성숙 정자 생성 BBC방송은 이날 영국과 독일 연구팀이 남성 골수에서 미성숙 정자를 생성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여성도 자신의 정자를 생성할 수 있다.”면서 “과학자들이 이제 신의 역할을 대행할 것인가.”라고 전했다. 연구 결과는 ‘생식세포생물학(Gamete Biology)’ 최근호에 발표됐다. 영국 정부는 불임 치료에 관한 새 법안을 발의, 인공 정자와 난자를 불임치료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기로 했다. 영국 줄기세포연구소, 뉴캐슬대학, 독일 괴팅겐대학과 하노버 의과대학 연구팀은 미성숙 상태의 인공 정자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골수에서 인체의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했다. 일반적으로 골수에서 채취된 줄기세포는 근육조직 세포로 발전하지만 연구팀은 이 세포들을 ‘정조세포(spermatagonial cells)’로 분화시켰다. 남성 고환속에서 생성되는 정자의 초기 상태와 같은 것이다.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 정자는 미성숙 상태이다. 연구팀은 적어도 3∼5년 이내에 성숙 상태의 정자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또 암컷 쥐의 골수에서 정자도 만들어냈다. 여성의 골수에서도 정자 생성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반박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상적인 남성의 성염색체는 ‘X·Y’이며 여성은 ‘X·X’이다. 여성의 골수에서 생성된 정자에는 Y염색체가 없어 쓸모가 없다는 주장이다. ●“인간 유전적 변화 야기” 우려 영국 국립의학연구소 로빈 배지 박사는 “Y염색체는 정자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X염색체만으로 정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줄기세포 분야의 생명윤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복제윤리논평(CORE)의 조세핀 퀸타베일도 “연구가 상당부분 과대 포장됐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해리 무어 셰필드교수는 윤리적 측면에 대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자가 인간의 유전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2)

    가수 조영남씨의 노래들 속에는 다분히 자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 살다 정든 곳,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길러준 고향 충청도’. 노래처럼 그는 1945년 해방둥이로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났다.1·4 후퇴 때 피란 내려와 충청도 예산의 삽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보, 무교동 어느 음악다방에서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로 시작되는 ‘여보’에도 그의 음악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배경은 젊은이들의 문화를 주도했던 음악감상실 ‘쎄시봉(C´est Si Bon)’, 상대는 첫사랑 윤여정씨다. 이곳에서 만나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가수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도향씨 등 이른바 1970년대 ‘청년문화’의 주역들이며 이들과 어울려 통기타 문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뿐인가. 지난 2001년에 발표, 최근 네티즌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은퇴의 노래’.‘제발 나같이 오래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몸은 비록 최희준 선배지만 마음만은 HOT랍니다.’며 자신의 마음을 호소하고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는 1973년 첫 개인전 이래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음악은 대중성이 있어야 하지만 미술은 독자적이고 독창성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이하게도 화투를 주 오브제로 사용하다가 1980년대 말부터는 바둑판, 초가집, 바구니, 태극기 등으로 소재를 넓혔다. 그러나 정작 고스톱은 못 친다. 바둑 또한 못 둔다. 최근엔 입체 콜라주로까지 영역을 확대, 설치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무게 잡기’를 싫어하는 듯한 그의 거침없는 행동, 너무 특출나 오히려 진지해 보이지 않는 면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조영남씨.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며 동시에 여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한양음대 2년 중퇴, 서울대 음대 3년 중퇴, 그리고 미국 트리니티침례신학교의 졸업장과 목사 자격증을 받은 뒤 1981년 귀국, 첫 저서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를 발간했다. 이어 ‘조영남 양심학(1983)’ ‘놀멘 놀멘(1994)’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1)’ 등에서 예의 해박함과 자유분방한 논리를 보여준다. 스스로 억제시키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할 것 같은 강렬한 개성,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로부터 비난도 동시에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번 출간한 저서,‘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파장이었다. 민감한 시기였던지라 더욱 논란이 되었다. 그 여파로 KBS-TV ‘체험 삶의 현장’을 비롯한 모든 방송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었지만 1년7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본격 방송 DJ로 복귀했다. 현재는 최유라씨와 함께 MBC 간판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발상의 전환을 지닌 자유주의자, 조영남씨의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가장 영향력 있는 책 ‘해리포터’ 1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지난 25년 동안 독자와 출판계에 큰 영향을 끼친 25권의 책을 선정했다. 1위는 1997년 처음 출간된 해리포터 시리즈 1편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뽑혔다. 주인공 해리가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을 얻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랑’의 힘을 실감하면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법사의 돌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2위는 ‘딥 엔드 오브 더 오션’으로 어머니가 친구들 모임에 함께 데리고 간 아이를 잃어버린 뒤 겪는 고통을 그린 소설.1993년 영화로 제작됐고 한국 관객들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로 기억하고 있다. 3위는 ‘다빈치코드’가 차지했다.2003년 3월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소설로 전세계에서 7500만부가 인쇄됐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자식을 뒀다는 가설에서 출발, 기독교를 왜곡했다는 논쟁이 확산됐다. 2004년 발간된 ‘9·11 사건 보고서’는 4위에 랭크됐다.5위는 1993년 출간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 및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작은 감동을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서술한 책이다. 1992년 출간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6위.“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에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1992년 출판된 ‘앳킨스 박사의 신 다이어트 혁명’은 7위를 차지했다. dawn@seoul.co.kr
  • [케이블·위성방송]

    ●시네마TV 07:00 블랙 후레쉬 09:00 폭풍속으로 11:00 왕꽃 선녀님 13:00 놀러와 15:00 해피투게더 18:00 신비한TV 서프라이즈 23:00 놀러와 01:00 에너미 03:00 마고 ●DTN드라마 08:30 상상플러스 09:50 파도 11:10 애정백서 13:40 내사랑 레이몬드4 15:00 손상미의 드림워크 2기 16:20 넌센스 시즌2 18:50 현장추적 사이렌 20:10 파도 22:50 장희빈 ●평화방송 08:30 복음을 사는 사람들 12:00 삼종기도 14:00 평화메디컬 영육간에 건강합시다 19:00 주일 미사 중계 21:00 차동엽 신부의 하는일마다 잘 되리라 20:00 주 찬미 ●WOW 한국경제TV 07:00 와우 메디컬 센터 08:00 웰빙 파노라마 13:00 생방송 창업 정보센터 17:00 성공창업 유망프랜차이즈 20:00 웰빙 파노라마 22:00 우리 아이 똑똑한 부자 만들기 ●논픽션Q채널 09:00 TV특종 놀라운 세상 11:00 요리보고 세계보고 13:00 인간극장 17:00 신의 아들 예수 20:00 7일간의 아시아 22:00 잘만 킹의 포티듀스 01:00 리얼다큐 천일야화 ●현대홈쇼핑 08:20 생활의 여유를 찾아 09:20 키즈스토리 10:20 Digital Zoom-in 11:20 뷰티cafe 13:20 당당함의 비밀-속옷 14:20 뷰티클리닉 16:20 쉬퐁 by 임태영 ●Xports 08:00 2007 메이저리그 토론토:탬파베이 14:00 풋볼 아시아 17:00 WWE 스맥다운 20:00 2007 세계 아이스 하키 챔피언십 01:00 2006-07 프로농구 하이라이트
  • KBS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지난 2004년 개봉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가 죽기 전 마지막 12시간의 이야기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 성서를 바탕으로 풀어간 작품. 감독 겸 제작자인 멜 깁슨과 베네딕트 피츠제럴드가 각색을 맡았다. 1970년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년 개봉) 등 예수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작품들 가운데 가장 사실적인 묘사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라는 논쟁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1995년 ‘브레이브 하트’로 감독상 등 오스카 5개부문을 석권한 멜 깁슨이 감독, 제작, 시나리오 집필을 맡았다. 반유대 정서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하자 멜 깁슨은 3000만달러의 사재를 쏟아부어 영화를 만들었다. 유대인 출신이 많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사장들로부터 “앞으로는 멜 깁슨과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비난도 들었다. 이 영화는 촬영이 끝나고 1년이 지나서야 독립영화사인 ‘뉴마켓 필름’을 통해 개봉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멜 깁슨이 원하는 이미지를 담기 위해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이 영화 촬영지인 이탈리아 로마까지 날아갔고, 예수 역을 맡은 제임스 카비젤은 매일 7시간씩 특수분장을 받았다. 영화에서도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아랍어로,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이야기하는 등 사실적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네이버 네티즌 평점 8.63(10점 만점).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 길을 들어서면 초입 왼쪽 좁은 골목 끝의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교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골동품 가게며 크고 작은 현대식 건물들이 어수선하게 엉킨 풍경에선 영 생뚱맞게 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뾰족집 승동교회(종로구 인사동 137·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다. 인사동을 찾는 이는 물론 주민들도 대부분 존재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색 공간. 이처럼 생소하지만 1904년 이후 줄곧 지금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해온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교단의 대표적인 모교회다. 특히 일제 치하 3·1운동의 중심지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곳. 통합·합동으로 갈라진 대한예수교장로회 분열의 현장이란 아픔을 함께 담고 있는 개신교계의 또렷한 유산이다. 승동교회의 뿌리는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인 옛 곤당골의 작은 한옥에서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새뮤얼 포먼 무어(1860∼1906·한국명 모삼열) 목사가 1893년 시작한 목회. 곤당골이란 청계천 변에 고운 담(곤담)이 둘러쳐져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시 주변에는 백정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교도소 수감자와 빈·천민 대상 사목으로 널리 알려진 모삼열 목사가 이 곤당골에서 최하층 신분의 백정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시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초창기 예배에 이 백정들을 중심으로 16명의 교인이 참여했는데 그 때문에 승동교회에는 지금도 ‘백정 교회’라는 이름이 별명처럼 따른다. 곤당골 교회가 인사동에 한옥을 사들여 이사한 것은 2대 당회장인 이눌서(W.D.Reynolds) 목사가 시무하던 1904년 10월. 이듬해부터 새 예배당 건립에 나서 1912년 지금의 본당 골격을 갖췄다. 원래 적벽돌을 쌓아 박공 지붕을 인 정방형의 벽돌조 로마네스크 건물이었는데 1959년 앞 출입문쪽 신자석 공간을 늘린 증축공사로 초기의 모습을 잃었다. 초창기엔 앞쪽에 두 개의 출입문을 따로 내 남녀 신자들의 출입과 예배 공간을 구분했지만, 지금은 증축된 공간 쪽으로 한 개의 통합문을 내어 당시와는 영 딴판이다. 그나마 독경대를 비롯한 중앙의 의식공간은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본당 주변에 흩어져 있던 옛 모습의 한옥들은 전도회 장소로 쓰이고 있다. 지하엔 기도실과 교역자실, 상담실, 유치원, 성가대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승동’이란 옛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동의 원 명칭은 인근 절골(寺洞)로 이어지는 마을이란 뜻의 승동(承洞).1907년 이 교회에서 장로교 경기도연합부흥회가 열렸는데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였던 길선주 목사가 설교하면서 “이웃 절골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이길 승(勝)자를 쓰기 시작, 그때부터 승동(勝洞)교회가 됐다고 한다. 교회 이름에 얽힌 사연은 썩 내키지 않지만 승동교회는 이후 여러 이유에서 한국 개신교계의 중요한 신앙 터로 거듭 주목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들이 자의반 타의반 동참했던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반성에 앞장섰던 것도 그중 하나.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승동교회 총회에서 ‘당시의 신사참배는 잘못된 것’이라며 무효선언을 해 세상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백정교회 이후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신앙철학을 지킨 역대 목회자들도 교회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주 요인이다. 특히 김익두(9대·1935∼1938년 담임) 목사와 뒤를 이은 오건용(10대)·이덕흥(11대) 목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황해도 안악 태생인 김익두 목사는 원래 불량배 출신이었으나 부흥사가 돼 이 교회를 이끈 인물. 몸이 아픈 신자들을 치료하는 재능이 탁월했는데 그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심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구름처럼 몰려든 신자들을 두려워한 일제가 김 목사와 교회를 탄압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결국 신사참배에 강력하게 맞섰던 김 목사는 강제로 물러난 뒤 6·25전쟁때 새벽기도회를 하던 중 퇴각하던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오건용·이덕흥 목사는 맹인들을 위한 신앙공간이 없던 무렵 맹인 선교에 치중해 대부분의 맹인 신자들이 이 교회에 의지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을 놓고 용공성 시비 끝에 의견이 나뉘어 장로교가 갈라진 것은 한국 개신교계의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시 WCC 가입에 반대하던 측은 승동교회에서, 찬성하던 측은 연동교회에서 각각 총회를 열었는데 이를 계기로 합동(승동교회측)과 통합(연동교회측)으로 교파가 나뉘었다. 갈라진 지 43년 만인 지난 2002년 6월 양측 교회가 극적으로 교환예배를 갖긴 했지만 교회의 통합은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교회에 적을 둔 신자는 3000명. 이 가운데 예배 출석 인원은 1500명 정도로 대를 이어 이 교회를 다닌 신자가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신자들이 사는 곳도 분당, 안산, 춘천 등 다양해 그야말로 전국적인 교회인 셈이다.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승동교회만의 특징은 노인 사목. 인근 탑골공원을 찾아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세례를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승동교회를 찾아와 신도가 됐다고 한다. 10년 전부터는 탑골공원을 자주 찾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노인 위주의 장년 2부를 운영해 지금은 매주 300여명의 노인이 예배에 참석한다. 세례 받은 노인들은 사후 경기도 백석의 승동동산 묘역에 안치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찾아와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상훈(54) 담임목사는 “승동교회는 드물게 도심 복판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교회”라면서 “초기의 ‘백정교회’ 이후 사회 기여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목회와 신앙을 이어온 흔치 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3·1운동 유적지’ 지정된 항일역사의 산실 승동교회는 비록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교회’가 됐지만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3·1운동의 본산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1900년대 초 우국지사들이 모여들어 예배를 보면서 민족주의의 색채를 띠어간 승동교회는 청년운동의 주축인 YWCA(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를 태동시켰고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19년 3·1운동에 앞서 학생 대표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모의한 학생지도자회의가 열렸던 현장임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승동교회 청년모임인 청년면려회장이었던 김원벽은 연희전문대생으로 학생들의 큰 신망을 얻었던 인물. 김원벽을 주축으로 한 전국 학생대표들은 승동교회 지하실(지금의 기도실)에 모여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문을 나눠 갖고 3월1일 거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조계사 뒤쪽 보성사에서 인쇄된 독립선언문은 거사 전날인 2월28일 새벽부터 전국에 전달됐다. 이 가운데 1500여장이 승동교회에 모였던 학생대표와 신자들을 통해 서울 시내 각처로 배포됐다. 학생 대표들은 3·1운동 나흘 뒤인 5일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다시 일으켰는데, 현장에서 일경이 휘두른 칼에 찔려 체포된 김원벽은 3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결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3·1운동 직후 당시 승동교회 담임이었던 차상진 목사가 주도한 이른바 ‘십이인등의 장서(十二人等의 長書)’ 사건도 유명한 일화다. 차 목사를 비롯한 목회자 12명이 연서해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장서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발표한 뒤 총독부에 제출한 사건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같은 사연으로 인해 승동교회는 지난 1993년 ‘3·1운동 유적지’로 지정됐으며 매년 3·1절 주일마다 3·1정신을 기리는 예배가 올려지고 있다.
  • “경제 논리가 인간의 도덕률 넘어선 안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부활절(8일)에 앞서 2일 메시지를 발표,“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죄로 잃어버린 생명을, 어둠 속에서 빛을 다시 가져다 주시기 위함”이라고 부활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 추기경은 특히 메시지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인 배아를 파괴하는 어떤 종류의 배아 연구도 반대하며, 경제적 논리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률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선포한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안한 체세포복제배아연구의 제한적 허용안을 의결한 것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신한은 수수료 8종 면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 통합 1주년을 맞아 수수료 인하와 다양한 사은행사를 단행한다. 또 앞으로 신한은행에서도 LG카드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신한은행은 통합 1주년을 맞아 2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계좌이체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거나 면제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면제되는 수수료는 신한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자행간 계좌이체 수수료(영업 외 시간 포함), 자기앞수표 발행, 사고신고, 명의변경, 보호예수, 자기앞수표 부도처리, 어음·수표결제 재연장 수수료 등 총 8종이다. 이어 100만원 이하 소액 계좌이체 거래에 대해서는 자행간 창구 송금 수수료를 기존의 1500원에서 1000원으로 500원 인하한다. 신한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간 소액(10만원 이하) 계좌이체 수수료는 ▲마감 전(오전 9시∼오후 6시) 1200원에서 600원 ▲마감 후 1800원에서 800원으로 내린다. 앞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자동화기기 이용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거나 면제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우리銀도 새달 수수료 대폭 인하

    우리銀도 새달 수수료 대폭 인하

    우리은행이 자동화기기 수수료 면제 등 대폭적인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에서 시작된 수수료 인하 바람이 전 은행권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최초로 영업시간 외 당행이체 자동화기기 이용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다음달 2일부터 각종 수수료를 면제·인하한다고 28일 밝혔다. 면제되는 수수료는 당행이체 자동화기기 이용 및 모바일뱅킹, 정액자기앞수표 발행, 받을어음(매출채권) 반환, 보호예수, 가계당좌개설, 제증명 등 7가지. 모바일뱅킹수수료는 연말까지, 나머지 수수료는 별도 공지 때까지 면제된다. 이와 함께 타행이체 자동화기기 이용수수료도 최고 400원 인하, 시중은행 최저수준으로 낮췄다. 우리은행의 이번 수수료 면제의 특징은 일반·우수 고객의 혜택의 차별을 거의 해소했다는 점. 기존 은행들은 수수료 혜택을 우수 고객에게 편중,‘무늬만 인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대신 기존 우수고객에 대한 혜택은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은 연 1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고객 확대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 이익은 이를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 개인마케팅팀 이광구 부장은 “고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동화기기와 모바일뱅킹 수수료 등을 최저수준으로 인하, 직접적인 혜택이 주어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들도 속속 수수료 인하에 동참할 계획이다. 농협은 당행이체,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등을 중심으로 2주 안으로 인하 계획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하나, 기업은행 등도 시기와 인하 대상을 검토하고 있지만 다음달 중에는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당초 전자금융수수료 중심으로 인하하려 했다가 ‘한두가지에 그치지 말고 전체적으로 원가를 따져서 재검토하라’는 리처드 웨커 행장의 지시에 따라 인하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부활절 연합예배 첫 ‘성찬성례’

    부활절 연합예배 첫 ‘성찬성례’

    한국 개신교 부활절 연합예배 사상 처음 ‘성찬성례’의식이 재현된다. 다음달 8일 오전 5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10만여명이 참여해 열리는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참여교회 소속 목회자들이 신도들에게 성찬성례를 직접 집례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성찬성례’란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 전날 밤 12명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희생을 기념해 의식을 거행하도록 한 전례. 기독교계에선 초대 교회 때부터 행해진 감사와 기념의 전례이지만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이날 성찬성례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20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의식복인 스톨(영대)을 차려입은 목회자들이 일제히 포도주가 담긴 성찬기를 들고 신도에게 포도주를 묻힌 빵을 나눠주게 된다. 약 4000명의 목회자들이 예배 참석신도 모두에게 일일이 집례한다. 목회자들이 착용할 스톨은 부활의 상징색인 백색 바탕에 꽃·새 그림과 십자가를 새겼으며 하단에는 공동주최측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로고를 함께 넣었다. 포도주가 담길 성찬기 역시 흰색 바탕에 양측 로고를 함께 새겼다.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측은 “그동안 각 교단과 한기총·KNCC의 입장이 달라 성찬성례를 하지 않았으나 평양대부흥회 100주년과 부활절 연합예배 60주년을 맞아 한 장소에서 하나의 빵과 공동의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됨’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예수와 12제자 개로 패러디…美 ‘최후의 만찬’ 파문

    미국의 한 팝 아티스트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적잖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 성화인 ‘최후의 만찬’를 패러디했지만 그림 속 예수 그리스도와 12명의 제자들이 모두 개이기 때문이다. 미 abc방송은 24일 유명 화가인 론 번스의 작품인 ‘개의 아들과 함께 하는 만찬’이라는 작품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갤러리 1곳에서 전시를 거부했으며 교계에서는 ‘신성 모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당초 이 그림을 전시하기로 했던 화랑들도 취소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림은 다빈치의 작품과 똑같은 구도다. 중앙에 자리잡은 예수로 분한 개에게는 뼈다귀 모양의 후광이 비친다. 이 개는 번스가 기르는 애완견을 모델로 했다는 후문이다. 또 식탁에는 포도주와 빵 대신 개 사료가 있다. 작품 크기는 세로 1m, 가로 1.8m이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 12명의 제자와 함께 만찬을 하는 장면을 그린 성화다.1999년 새로 복원돼 공개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열린세상] 전문가가 인정받는 사회 돼야/차동엽 신부

    [열린세상] 전문가가 인정받는 사회 돼야/차동엽 신부

    오스트리아에는 “아침에 굴뚝청소부를 보면 그날 하루 재수가 좋다.”는 속담이 있다. 빈의 굴뚝청소부들은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흰색 모자를 쓰며, 특이하게도 옛날 황제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버클을 허리에 차고 다닌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 누구 못지않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놀랍게도 오스트리아에서 굴뚝청소부는 에너지 관리와 화재 예방도 담당하는 고소득 업종 ‘전문가’로서, 일을 마치고 작업복을 벗으면 세계 최고급 승용차인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라고 한다. 소위 ‘3D 업종’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오스트리아에서 굴뚝청소부가 되려면 3년 과정의 ‘굴뚝학교’를 졸업한 뒤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러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마이스터라 부른다. 또 마이스터로 16년 이상 활동해야 비로소 사업장을 운영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하면서 이렇듯 철저한 독일어권의 장인제도에 대하여 경탄을 금치 못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장인제도 정신이 전 영역에서 구현되고 있다. 그곳에서는 정치가가 되려면 정치에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학자가 되려면 아카데미에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러기에 전직(轉職)이 거의 없다. 학자가 정치에 뛰어드는 일도 없다. 그들은 각자 고유분야 전문가로서의 명예를 더 중요시한다. 필자가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은 필자를 ‘마기스터 차’라 불러 주었다. 그것은 필자의 학위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 이후,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사람들은 필자를 ‘독토르 차’라 불렀다. 그것은 적어도 필자가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인정이자 예우였다. 박사 배출과정이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독일어권에서 학위 소지자란 질적으로 그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에게는 진정한 전문가와 그러한 전문가를 만드는 풍토가 존재하는가.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직업이동과 계층간 유동(流動)이 심하다. 성공에 전문적 역량보다는 요행과 줄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부동산을 위시한 불로소득의 기회가 너무 많다. 그래서 한 분야에 골몰하는 성실한 전문인보다 기회를 찾아 이 분야 저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졸지에 행운이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언변이 좋고 술수에 능한 사람이 전문가보다 더 인정받기 십상인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난무하는 것이 사이비 종교이며 선동가다. 만일 도올이 독일어권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는 아마 애당초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만든 것은 대한민국 사회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노자, 공자, 부처, 그리고 예수에 대하여 전문가들보다 한 수 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들 가운데 한 인물만 평생 연구해도 부족할 판인데 어찌 그는 동시에 여러 인물에 정통한 사람으로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깊은 역사의 뿌리를 싹둑 무시한 들쭉날쭉한 주장들이 어떻게 그를 철학자로 일컫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서 미래를 고심하고 있는 한국 사회. 이 사회가 미래를 담보 받으려면 어느 분야에서건 전문가의 권위를 존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일 한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한 똑똑한 비전문가의 의견이 상충할 때, 무조건 전문가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사회가 밝은 미래를 기약 받는다. 전문(專門)이라는 말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선진(先進)이라는 말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신학자로 변신한 도올의 강의가 새삼 이슈화되면서 이 사회의 전문성, 전문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본다. 차동엽 신부
  • 프리섹스 교회앞마당까지

    프리섹스 교회앞마당까지

    예비성직자(豫備聖職者)인 신학대학(神學大學)생들이 『섹스는 어디까지』란 주제로 지난 7월13일 YMCA 강당에서「세미나」를 열었다. 세계적인「프리·섹스」의 물결이 마침내 한국교회의 성스러운 재단에 까지 밀려들 것인가「프리·섹스」풍조로 심각해진 한국 예비성직자「聖」이「性」에 기울인 관심은-. 「플레이보이」지(誌)·히피 등이 프리·섹스의 시대를 재촉 전국 22개 신학대학 신학생 연합회(회장 김용걸) 주최로 마련된 이「세미나」에 등장한 연사는 두 분. 연세대(延世大)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정하은(鄭賀恩)박사와 서울대 의과대학 학장 權(권)이혁 박사. 청중은 약1백50명 가량이었는데 그중 3분의1 정도는 여자, 특히 여대생들이 많았다. 먼저 등장한 정박사는 신학적(神學的)인 입장에서 본「프리·섹스」문제를 발표. 60연대를 한마디로「프리·섹스」홍수의 시대라고 말한 정박사는「섹스」문제가 사회혁명으로 까지 확대된 심각한 시대였다고 단정하고 그 이유로 다섯가지를 들어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첫째가 미국에서 발간되는「플레이·보이」라는「섹스」잡지의 죄. 마치「핸드백」이나「파라솔」처럼 필수적인「액세서리」로「플레이·보이」를 들고 다니는 유행이 있었다.이런 현상은「마르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성서를 대중화시켜 너도나도 성서를 들고 다니던 중세이후 최대의「붐」이었다는 것이다. 두번째가「히피」족의 출현. 이유나 동기야 어떻든「히피」족의 출현이야 말로「프리·섹스」의 노골화였다는 주장.「히피」들은 거리나 공원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신성한 교회에서까지 진출하여「프리·섹스」의 극성을 부린다고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정박사가 서독(西獨)을 여행하면서 서부「베를린」에 들렀을 때 전통있는「카이젤」교회에서 본광경인데 교회 앞 마당에서 젊은 남녀들이 서로 끌어 안고 태연히「키스」, 애무, 심지어는 성교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세번째 이유로 60년대에 생겨난 나체「데모·붐」. 가장 극한의 방법인「데모」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나체로 호소함으로써 가장 큰 효과를 노린다는 묘한 풍조가 엉뚱한 부산물로「프리·섹스」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형이상학이 알몸의 형이하학과 야합을 한 셈. 결혼의 신성을 부르짖은 1천여신부(神父) 결혼도 한몫 네번째 이유가 67년부터「가톨릭」신부 1천여명이 결혼하기 위해 성직을 내던진 사태를 들고 있다. 결혼의 신성함과 자유를 부르짖으며「인간」이기를 주장하고 나선 이들의 결혼소동이 엉뚱하게도「프리·섹스」에 부채질한 격이 됐다는 것. 다섯번째 이유는 지난해에「덴마크」에서 열렸던「섹스」박람회. 지금까지「터부」로 알아온「섹스」를 마치 자랑스러운 상품인양 박람회를 열만큼「섹스」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가지 이유가 필연적으로「프리·섹스」의 물결을 일으킨 진원이었다고 단정한 정박사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아 전통적(가톨릭적)인 눈과 낭만적(성공회적)인 눈으로 나누어「프리·섹스」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전통적인 입장에서의「섹스」는 부부관계(결혼)로서만 인정되는 것이고 혼외정사(婚外情事)는 일체 죄악으로 보고 있다. 반면 낭만적인 입장에서의「섹스」는 반드시 부부관계가 아니더라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 애정만 있다면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도 성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프리·섹스의 본고장에선 오히려 난교(亂交)현상 적은편 성(性)의 낙원이라는「덴마크」에서 혼외정사에 대한 일반의 여론조사를 해보았더니 애정만 있다면 찬성한다는 편이 85%였다는것. 성교는 애정의 한 형태로서 해석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프리·섹스」가 가장 발달한(?) 북「유럽」에서는 오히려 무절제한 난교현상이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 흔히「프리·섹스」하면 아무하고나 「인·베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북「유럽」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모럴」을 지키는 나라보다 난교의 현상이 적다는 이야기. 그런데 예수는「섹스」에 대해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다만 창녀「마리아」를 놓고『죄 없는 자 있으면 돌로 치라』고 대갈일성한 것으로 보아 경우에 따라서는 율법을 초월한 「프리·섹스」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정박사는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받아들여야 할「프리·섹스」의 자세를 전통과 낭만의 중용으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정박사는 70년대에는 60년대보다「프리·섹스」의 물결이 주춤한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마치 요즘「미니」가 퇴색하여「맥시」가 머리를 드는 유행처럼. 서울의대 학장 권이혁박사는 의학적인 입장에서「프리·섹스」를 논했다. 몇해전 서울시내 모 지역을 선정하여 20세에서 40세까지의 주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 결혼전에 임신한 사람이 전체의 18%였다고. 혹시 잘못 조사된 것이 아닌가하고 다음 해에 다시 해 보았더니 이번에는 1%가 늘어난 19%로 나타났다는 이야기. 임신율이 그 정도이니 성교율은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높지않겠냐는 결론「프리·섹스」의 문제는 의식주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을때 요구분출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섹스」의 낙원 북「유럽」여러나라들이 세계에서 사회 보장제도가 가장 잘 된 나라라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40세까지의 결혼전 임신 우리나라에서도 19%나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의식주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따라서「프리·섹스」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 권박사의 결론. 지금「프리·섹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10원짜리「버스」도 제대로 못타는 주제에 자가용 타고 다닐 걱정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비유. 그러나 우라나라의 일부에서는 그리고 언젠가는 심각하게「프리·섹스」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은 틀림없는 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땅히 예방을 해야 할 것인데 예방책으로는 성교육이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단계적인 성교육을 통하여 올바른「섹스」의식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그러나 실제로「섹스」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의문이라는 얘기. 어쨌든 아직은 우리나라에서「프리·섹스」를 논의한다는 것은 사치품과 같은 노릇이라고 권박사는 못박았다. [선데이서울 70년 7월 26일호 제3권 30호 통권 제 95호]
  •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강원도 춘천 시내의 언덕 지대인 약사리 고개에 우뚝 선 죽림동 주교좌성당(등록문화재 54호·죽 림동 38)은 춘천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이다. 신도들이 자생적인 신앙의 싹을 틔워 공소·본당에서 주교좌성당까지 이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따랐다. 지난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4000여명이 미사에 참석할 만큼 교세가 컸던 본당. 개발 바람이 불어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신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지금은 ‘주교좌성당’의 명맥만 근근이 이어가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신앙의 태동기부터 고난의 신앙 역정을 모두 견뎌내고 묵직하게 선 ‘맏형’격 신앙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죽림동 성당의 역사는 1920년 본당으로 설립된 곰실 공소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강원 중심 본당인 횡성 풍수원 성당의 신부가 이 지역의 작은 공소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외딴 곳의 곰실 공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본당 설립을 요청했고 마침내 1920년 본당이 설립돼 당시 풍수원 성당의 보좌였던 김유용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모셔왔다. 이후 신도들은 춘천 시내에 성당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함께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삼아 내다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의 성당 아래 골롬반의원 터와 아랫마당, 수녀원 터를 사들여 성당을 세운 게 1928년 5월이다. 지금의 성당은 이 부지에 보태 1939년 서울(경성)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가 분할되면서 부임한 구인란(Quinlan) 주임신부와 신도들이 약사리 고개 언덕의 도토리 밭을 추가로 매입해 마련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성당 모양새만 갖췄지 구조며 성물은 변변치 못했던 것 같다. 결국 1941년부터 새 성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성당 벽의 라틴어 초석이 말해주듯 일제의 살벌한 감시와 박해로 8년 뒤인 1949년 4월5일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전남 광주의 ‘자’씨 성을 가진 화교 기술자가 설계와 건축을 맡았다.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석재를 날라다 외벽을 모두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어 내부공사를 하던중 6·25전쟁이 터졌다. 한쪽 벽이 모두 무너지고 사제관이며 부속건물이 대파되었는데 전쟁 중에도 복구작업을 벌여 1956년 6월 마침내 주교좌 성당 축성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교구 설정 60년을 맞은 1998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가회 작가들이 힘을 모아 제대며 내부 성물들을 새롭게 꾸몄는데, 물론 외벽이며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성당은 명동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은 모습의 십자가와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이 작은 십자가는 서울대교구에서 갈라져 출발한 교구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려면 둔중한 청동 문을 지나야 하는데 성당 건립을 관할했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기리는 한 쌍의 아일랜드풍 십자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주로 강원과 호남 지역을 관할했는데 죽림동성당에서도 1939년부터 30년간 모두 11대에 걸쳐 이 선교회 소속 신부가 주임을 맡았다. 지금도 성당 입구엔 이 선교회 소속 수녀원이 있으며 성당 아래쪽 병원의 이름도 여전히 ‘성골롬반 의원’. 지역 주민들에게 ‘성당 병원’이라 불리는 이색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외벽과는 달리 내부는 현대식으로 가꿔져 대조를 이룬다. 양쪽 벽을 두른 정감어린 예수 고행 14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 성당의 핵심은 역시 감심과 화강암 제대, 독경대, 주례석, 촛대로 구성된 중앙 제대 공간. 한국 천주교계에서 성미술과 전례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정평난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인들이 뜻과 품을 모은 작품들이다. 요즘 새로 짓는 성당들이 모두 이곳에 와 그야말로 ‘한 수 배워간다’는 바로 그 이름난 전례공간이다. ‘파격의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성당 뒤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이내 낯선 광경을 만나게 된다. 이 성당에 몸을 담았거나 강원 지역에서 희생된 내외국인 성직자 유해 16구를 모신 성직자 묘역이다. 성당 본당에 바로 붙여 묘지를 쓴 흔치 않은 곳이다. 묘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전쟁기 북한으로 끌려가다 순교한 신부들. 전쟁 발발 당시 보좌신부였던 프란치스코 신부와 라바드리시오 신부, 고안당 신부, 진야고보 신부의 이름이 눈에 띈다. 외국인 신부들 틈에 나란히 누운 한국인 이광재 신부는 원산까지 끌려가 어느 방공호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춘천교구는 해마다 11월 첫 주간을 ‘위령의 달’로 정해 이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된 사제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 ‘위령의 달’ 행사에는 춘천 지역 사제와 신도들이 모두 모인다고 한다. 6·25 전쟁 중 주요 인사들이 쇠사슬에 손이 묶인 채 북한으로 끌려간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기독교계도 숱한 희생자들을 냈다. 당시 교황 사절을 비롯해 외국인 사제와 수녀, 개신교 목사 수백명이 평안북도 산골에 강제수용돼 34개월간 포로생활을 했는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 성당이 건립될 때 주임으로 있었던 구인란 신부도 미사 도중 끌려갔으나 기적적으로 돌아와 주한 교황청 대사를 지낸 뒤 1955년 초대 춘천 대목구장에 부임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과는 아주 질긴 인연을 가진 인물인 셈이다. 이 묘역 바로 뒤편에는 기이한 십자가가 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지난 2000년 대희년 6월25일 춘천교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를 열면서 제단에 설치했던 십자가다. 동해안 지역을 휩쓴 화마로 불 탄 소나무에 북한의 주목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분단 교구의 아픔과 신도들의 통일 염원이 서려 있다. 지금 죽림동 성당에 적을 둔 신도는 1600명. 대부분 오래도록 이 성당을 다닌 나이 든 세대들이다. 지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3800명이 성당을 다녔다고 한다.2000년대 들어 춘천 지역엔 17개의 성당이 새로 생겨나 애막골, 퇴계동, 수무숲 성당같은 곳엔 신도 수가 3000명을 넘는다. 지난 2003년부터 주임을 맡고 있는 김현준 신부는 “지금 죽림동 성당은 옛날의 교세와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만 신도들의 자생적인 믿음에서 출발해 신앙 공간을 일군 흔치 않은 성당으로 한국 교회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kimus@seoul.co.kr ■ 죽림동 성당·춘천교구 ‘밀알’ 엄주언 죽림동 성당과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지역에 신앙의 싹을 틔워 성당을 세워놓은 밀알인 엄주언(말딩·1872∼1955)이다. 한국의 천주교가 외국 선교사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갖는다고 할 때 춘천 지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 한 가운데 바로 엄주언이 있는 것이다. 춘성군 장학리 노루목에서 태어난 엄주언은 19살때 우연히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천주교와 연을 맺었다. 맏형과 함께 천주교 발상지인 광주 천진암을 찾아 움막생활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영세하도록 인도했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천주학쟁이’로 몰려 따돌림과 온갖 수모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감화된 주민들이 차츰 모여들었으며 죽림동 성당의 모태인 곰실 공소를 마련해 예절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설립된 것도 순전히 엄주언의 공이다. 풍수원 성당과 서울의 명동 성당을 오르내리며 상주사제 파견을 간청한 결실이다. 본당 설립후 신도들의 애련회를 조직해 춘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서 결국 성당 터를 구입했으며 여기에 6대 춘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구인란 신부가 인근 밭을 매입해 지금의 죽림동 성당을 세우게 된 것이다. 성당 입구의 사제관과 연결된 말딩회관은 바로 춘천교구가 그의 공을 기려 지난 1997년 건립한 곳으로 춘천 지역 천주교계의 핵심 공간으로 통한다.
  • ‘예수 무덤’ 다큐멘터리 진실 공방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은 기독교계는 물론 전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6일 오후 10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Q채널의 ‘래리 킹 라이브’는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의 제작자와 만나 다양한 토론을 벌인다. 영화 ‘타이타닉’의 제작자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캐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심차 야코보비치가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예루살렘 탈피요트의 2000년 된 무덤에서 예수와 그 가족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주장한다. 이는 예수가 숨진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기독교의 근본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고 강조하는 ‘성혈과 성배’‘다빈치코드’‘다빈치 코드와 숨겨진 역사’등 지금까지의 이단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1980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탈피요트의 한 가족 무덤에서 10개의 석재 유골함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5개의 유골함에서 예수, 마리아, 마태, 요셉, 막달라 마리아 등 신약성서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명이 나왔다. 당시 예수, 요셉, 마리아 등의 이름이 흔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모든 이름이 같은 무덤에 한꺼번에 사용될 확률은 600분의1에 불과한 만큼 이 무덤은 예수의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캔터키주 남침례신학교의 앨버트 몰러 총장, 노스캐롤라이나대 샬럿 캠퍼스 종교의학부의 제임스 테이버 학장, 종교 및 시민 권리를 위한 가톨릭 동맹의 윌리엄 도노휴 의장 등이 나와 열띤 진실 공방을 벌인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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