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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리뷰] 사실주의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연극리뷰] 사실주의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연극을 보고 있는데, 연극 특유의 과장됨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삶을 그렸지만, 동네 어귀에서 한두 번 지나쳤을 법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실주의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이하 ‘잠 못 드는’) 이야기다. ‘잠 못 드는’은 은퇴 이후 삶의 터전으로 고국이 아닌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일본인들을 그렸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인을 위한 말레이시아 고지대의 호화로운 리조트 로비에 집중된다. 그래서 잡다한 장치는 필요 없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한 아픔을 안고 사는 지즈코(이영숙), 나비 수집을 좋아하는 그의 남편 고조(김학수),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지만 타국에선 일본 DVD 등을 구해 사람들에게 배달해 주는 미쓰루(박완규), 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를 잃고 조국 일본을 싫어하는 아키라(최용민)와 그의 딸 에미코(주인영), 중병에 걸렸지만 고국에 돌아가길 거부하는 겐이치(정재진)와 그의 아내 이쿠코(예수정), 이혼을 앞두고 기념여행에 나선 하야토(김주헌)와 마유미(유나미) 부부….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최근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은퇴 이후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즐기고자 물가가 싼 해외로 이주하는 ‘은퇴 이민’, 방이나 집 등 특정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히키코모리에 바깥이란 뜻의 ‘소토’(外)를 합성시킨 ‘소토코모리’(외국에 사는 히키코모리) 등이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옹기종기 이국땅에 모여 살아가지만, 사실 이들의 소통은 조금씩 단절돼 있다. 그런 이들이 말레이시아의 원주민인 세노이족의 ‘꿈 해몽’을 자주 언급한다. 세노이족은 꿈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준다. 상처를 안고 사는 등장인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세노이족의 꿈 해몽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일본인이지만 고국을 거부하고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이들, 그렇다고 말레이시아인도 아닌 이들에게 있어 꿈을 통제한다는 것은 흥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다스리고 싶은 소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년 배우들의 연기가 잔잔하면서도 가슴을 울린다.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대목에서도 중년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력은 빛을 발한다. 31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3만원. (02)708-5001.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루르드 ‘동굴의 샘’ 치유의 기적 소망하는 순례객 행렬

    루르드 ‘동굴의 샘’ 치유의 기적 소망하는 순례객 행렬

    ‘천주교는 예수보다 성모 마리아를 더 숭배하는 종교.’ 천주교와 관련해 적지않은 이들이 품고 있는 오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천주교계는 이 말에 정색하고 반대한다. “성모 마리아는 오로지 예수의 존재와 뜻을 밝힐 뿐이다.” 원죄의 속박 없이 잉태된 무염시태(無染始胎)의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의 성심(聖心)은 곳곳에 현현하지만 그 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비쳤다는 발현처는 성모 성심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이적의 땅들이다. 순례단이 지난 18, 19일 잇따라 찾은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시골마을 루르드와 파리 중심가 파리외방전교회 인근 ‘기적의메달 성당’은 예사롭지 않은 영성의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 발현과 그 발현때 이루어진 사적 계시를 인정한 곳은 모두 8곳. 이 가운데 루르드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발현처로 연간 600여 만명의 순례객이 찾아든다. 1852년 성모 마리아가 14세 소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18차례에 걸쳐 발현했다는 성소.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시골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모습을 보이면서 ‘가엾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이곳에 성당을 지을 것’과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행렬을 지어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 계시를 따라 이곳에는 ‘동굴 성당’과 ‘비오 10세 성당’, ‘무염시태 성당’을 비롯해 30여개의 성당이 들어서 있다. 순례단이 루르드를 찾은 때는 성수기가 끝난 무렵이지만 루르드 샘물이 솟는 동굴과 성당은 미사와 기도에 참여하려는 순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치유의 능력을 가졌다는 동굴 샘물은 가장 많은 순례객이 찾는 곳. 베르나데트가 성모를 만난 이 동굴의 샘에서는 지난 153년 동안 끊임없이 하루 14만ℓ의 물이 흘러나와 순례객들의 식수와 침수로 사용되고 있다. 7000여건의 치유 사례가 접수돼 그 가운데 교황청이 67건을 인정한 이적의 샘이다. 얼마 전까지 이 샘 앞에는 병자들이 놓고 간 목발들이 걸려 있었지만 외적인 것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모두 치워졌다고 한다. 이곳에 상주하는 사제는 30여명. 사제들이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으며 부활절 일주일 전부터 11월 1일까지의 성수기엔 비오 10세 성당에서 성체강복 미사와 6개 국어로 진행되는 국제미사가 열린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의 성지순례를 안내하는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이 마리 스텔라 수녀는 “각국에서 자비를 들여 와 묵묵히 순례객들을 돕는 자원 봉사자가 8000여 명에 달한다.”며 “이곳을 다녀간 순례객은 이웃을 더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며, 그것이 성모님 뜻에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루르드에 이어 순례객이 찾은 기적의메달 성당.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00m쯤 떨어진 이곳은 루르드보다 28년 앞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이다. 성모 마리아가 카타리나 라브레(1806~1876) 수녀에게 발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 성모는 카타리나 수녀에게 발현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됐다.”며 성모 공경에 대한 메달을 만들라는 계시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신뢰심을 갖고 이 메달을 지닌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회개 등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로 부르게 됐다. 순례단이 성당을 찾은 때는 마침 오후 미사가 열리던 무렵. 세계 각국에서 찾아든 신자며 순례객들로 성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사가 끝난 뒤 이웃 박물관과 기념품점엔 기적의 메달을 사려는 발길들이 이어졌다. 천주교 성물방이며 웬만한 신자들의 묵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적의 메달. 이곳을 찾는 이들이 어디 기적의 메달 하나쯤을 사려 모이는 것일까. 루르드·파리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가톨릭 ‘영성의 심장’을 가다-유럽 수도원·성지 순례기

    가톨릭 ‘영성의 심장’을 가다-유럽 수도원·성지 순례기

    많은 종교는 세상과 섞이기도 하고 세속과 단절한 채 절대자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몸과 마음의 정화를 추구한다. 가톨릭의 수도원은 그런 정화의 가치를 온전히 담은 영성의 뿌리이자 심장으로 통한다. 세상과 교회가 어지럽고 흔들릴 때마다 쇄신과 정화의 기치를 들어 사람들의 영혼을 가다듬었던 수도원은 그래서 세상에서 더 멀리 있을 때 빛이 난다. 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지난 14∼24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수도원과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에서 진행된 순례의 현장을 소개한다. ●‘수도생활의 아버지’ 베네딕트 이상 구현 독일 바이에른 주 수도인 뮌헨 시내를 둘러본 순례단이 처음 찾아간 곳은 성 오틸리엔 수도원. 뮌헨에서 고속도로를 1시간쯤 달려 한적한 시골마을에 접어들자니 고즈넉한 수도원이 얼굴을 내민다. 베네딕도 수도회의 창설자이자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트(480~547) 성인이 제시한 규칙과 이상을 변함없이 따르는 수도원. 1500년 전 베네딕트의 정신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는 이곳 사람들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순례단 앞에 불쑥 나타난 인상 좋은 젊은 수사가 수도원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밭이며 축사·돈사, 출판사, 김나지움(중·고등학교) 교사, 체육관…. 이곳에 살고 있는 100여 명의 수사라면 누구라도 빠짐없이 해야만 하는 노동의 현장들이다. ‘기도하고 노동하라’(Ora et labora). 사막과 동굴에서 흩어져 살던 수도승들을 한 곳에 모여 살게한 정주(定住) 수도원을 처음 세운 베네딕트의 규칙이 생생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 소리가 수도원의 적막을 깬다. 줄을 지어 성당을 들어 선 수사들. 가톨릭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의 음률에 맞춘 ‘요한의 첫째 서한’에 이어 성경 구절 봉송과 시편 독서, 신자들의 기도, 주의 기도를 이어가는 수사들의 표정이 엄숙함을 넘어 신비롭게 다가온다. 수사들의 기도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순례단의 어수선한 몸짓들. 성당 밖으로 순례단을 인도해 던지는 한 수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세상의 소리는 크게 울린다. 그 속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소리는 작다. 우리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하다.” 하루 5차례의 미사말고도 늦은 밤 끝 기도 부터 새벽기도까지 수사들의 침묵이 이어진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통해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들의 수도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해발 1300m 알프스 산자락 ‘단절의 땅’ 베네딕도 수도회가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추구했다면 브루노(1030~1101) 성인이 설립한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영성은 철저한 고독과 침묵을 통한다. 순례단이 두 번째로 찾은 해발 1300m 알프스 산자락, 프랑스 생피에르 샤르트뢰즈에 자리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11세기 브루노 성인이 창립한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본원이다. 영화 ‘위대한 침묵’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단절의 땅’이자 ‘창살 없는 감옥’.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그 수도원은 지난 1000년간 외부 세계에 드러나지 않고 수도자들의 고독한 기도처로 존재했던 그대로 순례단에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입구에 수도원 모델 하우스 격으로 설치된 박물관을 통해 수도원 속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33명의 수사가 오로지 기도 수행을 위해 홀로 생활하는 독채들. 1층에 조그만 정원과 목공 및 철공 작업실, 장작보관소, 화장실이 있고 2층에는 작은 침대와 기도공간, 세면대, 책상, 성모상을 모신 경당이 들어있다. 매일 아침 함께 드리는 공동미사를 빼곤 모든 시간을 각자의 거처에서 홀로 지내는 수사들은 하루 한끼만 먹는다. 방마다 마련된 음식 투입구를 통해 제공되는 음식은 혼자 해결한다. 1주일에 한번씩 하는 산악행군 때 말고는 철저히 침묵한다는 수사들은 불교 선사들의 무문관(無門關) 수행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14세기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돌던 때에도 가난과 고독 속에 하느님의 음성을 찾아가는 엄격한 규칙을 고수했다는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휘장엔 이렇게 쓰여있다.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 알프스 자락 그곳에서 1000년간 이어 온 수사들의 고독한 침묵이 가톨릭과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면 무리한 생각일까. ●聖者 프란치스코의 고향 순례단이 마지막 찾은 영성의 땅은 로마에서 차로 2∼3시간 떨어진 목가적인 지방 아시시. ‘제2의 예수’라 불릴 만큼 성자 중의 성자로 꼽히는 프란치스코(1182~1226)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다.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스무살 때 기사의 꿈을 품고 참가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있다가 병을 앓고 난 뒤 회심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무소유의 탁발승이 됐던 인물이다. 베네딕도 수도회의 세속화에 반발해 초기 수도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세웠던 그는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채 나환자며 거지 등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사랑을 전했다. ‘청빈’ ‘순결’ ‘순명’. 그가 세운 수행의 정신은 아시시 곳곳에 스며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 맨 먼저 수리했다는 작은 ‘포르치운쿨라’성당과 그 성당을 품고있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프란치스코의 묘가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사형수들의 처형장이 있어 ‘죽음의 언덕’으로 불렸던 자리에 묻히기를 원해 유해가 안치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후세 사람들은 그곳을 ‘희망의 언덕’ ‘천국의 언덕’이라 부른다. 극단적인 가난을 택해 청빈과 단순함을 목숨처럼 여겼던 프란치스코. 그의 영성이 오롯이 담긴 아시시를 떠나는 순례단에게 한 수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잠깐 지나가는 순례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집착하며 살아간다.” 오틸리엔(독일)·상트피에르 샤르트뢰즈(프랑스) 아시시(이탈리아)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 동의보감, 선조 아이디어였다

    ‘어느 날 천재의 머릿속에 불쑥 솟아오른 영감’ 신문, 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상업적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강화되어온, 정형화된 틀(스테레오 타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가 이 스테레오 타입을 비판하는 흥미로운 학술대회를 연다. 23일 오전 10시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다. 주제는 ‘에포컬 모멘텀(Epochal Momentum) : 한국 과학발전사의 우수 사례들을 통해 배우는 과학문화발전의 방향’. 가장 눈길을 끄는 발표는 신동원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의 ‘동의보감의 협력자들’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신 교수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보다 조력자들에게 집중한다. 물론 동의보감이 허준의 높은 성취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임진왜란과 유배 상황에서도 17년을 들여 완성한 걸작이라고 인정한다. ●“허준 단독 플레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질문도 던진다. 조선 후기에 동의보감이 있었다면 조선 전기에는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가 있었다. 향약집성방은 유효통 등 집현전 학자들이 쓴 의약서이고, 의방유취는 유성준 등이 그 뒤를 이어받아 완성한 의학사전이다. 그런데 두 책을 거론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집필을 ‘지시’한 세종이다. 향약집성방 등은 세종의 공이 부각되는데, 동의보감은 왜 허준만의 공이냐는 게 신 교수의 문제 제기 출발점이다. “한쪽에선 총명한 왕의 결정이 부각되고, 다른 쪽에선 왕이 허준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는 “세종과 허준의 ‘위인전’ 안에 다른 인물이 끼어들기 힘들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게 신 교수의 진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신 교수는 선조의 역할에 주목한다. 일단 동의보감 편찬 자체가 선조의 명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전쟁(임진왜란)으로 다친 백성들이 무척 많았던 데다,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병약했던 선조의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다. ●“유례없이 의사 5명 붙여줘” 동의보감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치료보다 양생을 내세웠고 조선의 풍토에 잘 맞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동의보감 서문에는 ▲수양(修養)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하라 ▲처방이 너무 많으니 요점을 추려라 ▲국산 약명을 명기해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선조가 제시한 편찬기준 가이드라인이다. 신 교수는 “실록을 보면 선조가 어릴 적부터 잦은 병에 시달려 의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기존 연구는 선조에 대한 부분을 의례적인 것으로 치부해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의보감의 방대한 자료도 선조의 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쟁 뒤끝이라 책이 귀하던 시절에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각종 기록물 500여권이 허준에게 제공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조는 동의보감 편찬을 위해 허준 외에도 정작,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 총 5명의 의사를 투입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신 교수는 “동의보감에 있어 허준의 공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왕(선조)의 전폭적인 후원과 초반에 큰 방향을 잡았던 5명 의사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청주 “유공자 예우 이 정도는 돼야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시민들은 확실하게 예우하겠습니다.” 충북 청주시가 전국 최초로 병역명문가 예우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독립유공자 등의 지원책 마련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시에 따르면 ‘청주시 독립유공자 지원조례’가 최근 제정됨에 따라 내년부터 청주지역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은 매달 3만원의 보훈명예수당을 받는다. 지급 대상자는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또는 유족들로 지급일 현재 청주에 주소를 두고 있으면 된다. 현재 5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 지원과는 별도로 충북의 지자체가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게 보훈명예수당을 주는 곳은 충주에 이어 청주가 두 번째다. 청주시는 또 월 5만원씩 지급되고 있는 참전명예수당의 거주제한(청주시에 1년 이상 거주)을 내년부터 폐지키로 했다. 지급일 기준으로 청주시에 거주만 하면 참전명예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상자도 100여명 늘어나 청주지역에서 참전명예수당을 받는 인원은 총 2600여명이 된다. 전국에서 참전명예수당을 주는 지자체는 150여곳에 달하지만 거주제한이 없는 곳은 많지 않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시는 최근 ‘청주시 공공시설 내 매점 및 자동판매기 설치에 관한 조례’도 개정, 우선 자격기준에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포함시켰다. 시 주민복지과 이정희 주무관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유공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하고, 나아가 후세들의 애국심 함양을 위해 이 같은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G2의 설전…통상무역위원회 회의서 기선제압용 쓴소리

    미국과 중국이 전쟁터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내륙으로 옮겨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엔 남중국해가 아니라 통상무역이 쟁점이다. 미·중 양국은 20일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이틀간의 일정으로 제22차 미·중 통상무역위원회 회의를 시작했다. 중국 측은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미국 측은 존 브라이슨 상무장관과 론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가 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정례 협의체 회의이긴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공략이 본격화된 시점인데다 지난 주말까지 양국이 남중국해 문제로 치열하게 대치한 직후여서 첫날부터 통상 현안을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며 고성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미국은 중국의 시장개방 확대, 지적재산권 문제 등에 주목하고, 중국은 시장경제지위 부여, 첨단기술 수출제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오래된 현안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국 주재 대사를 통한 ‘선전전’으로 기선제압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상무장관으로 대표단을 이끌었던 미국의 게리 로크 주중대사는 “중국의 기업 환경은 외국 기업가와 정부 지도자들에게 갈수록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시장개방과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중국의 장예수이(張業遂) 주미대사는 “위안화 절상으로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제한 완화를 요구했다. 양측이 통상 문제로 으르렁거리곤 있지만 서로 ‘무역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번 회의가 파국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특히 중국은 최근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도발’이 중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노림수라는 판단에 따라 맞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앞서 지난 주말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도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로 미국과 대치하면서도 확전을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했다. “방문에 대해 답방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라며 일부 국가지도자들이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한데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원 총리는 남중국해 문제가 당사국 간 교섭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원 총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앞서 예정에 없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양자회담까지 갖는 등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총력 저지했지만 회의에서는 미국과 필리핀, 베트남 등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깎아지른 절벽에 예수 얼굴 형상이…

    깎아지른 절벽에 예수 얼굴 형상이…

    아일랜드의 한 관광 명소에 예수 얼굴 형상이 나타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한 미국인 관광객이 휴가 기간 중 아일랜드 클레어 카운티의 모어 절벽(Cliffs of Moher)에서 촬영한 예수의 얼굴과 흡사한 모습이 나타난 절벽 사진을 소개했다. 사진을 촬영한 관광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산드라 클리포드(42). 그녀는 현지 일간 아이리시 센트럴에 “그 형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보였다.”고 말했다. 자신을 조종사로 소개한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항상 의심하기 때문에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광경이 보이는지 물어봤다고 회상했다. 클리포드는 자신이 본 광경을 확실히 증거로 남기기 위해 가지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로 그 풍경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녀는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이번 여행 기간 동안 800여 장을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그녀는 휴가 당시 친구 피오나 페이와 함께 다녔다면서 사진을 찍은 날 밤 지역 카페에 방문했을 때 주민들에게 해당 사진을 보여줬었다고 말했다. 한편 클리포드는 사진이 조작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카메라 안에 항상 원본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아이리시 센트럴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도전에서 성공까지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도전에서 성공까지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2008년 12월이다. 뉴세븐원더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 7곳을 뽑기 위해 전 세계 네티즌이 추천한 440곳을 대상으로 인터넷 1차 투표(2007년 7월∼2008년 12월)를 한 결과 제주도를 포함한 261곳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제주도관광공사는 본격적인 참여를 위해 2008년 12월 뉴세븐원더스 재단에 공식후원기관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인터넷 2차 투표(2009년 1∼7월)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2009년 7월 21일 세계 7대 자연경관 최종 후보지 28곳에 포함될 때까지만 해도 제주관광공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는 우근민 지사가 2010년 7월 취임하면서 비로소 발벗고 나섰다. 그해 하반기부터 제주를 7대 자연경관에 올려놓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같은 해 12월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위·위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도민추진위원회’(위원장 부만근)가 출범했다. 결선 투표가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나서야 투표참여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제주도는 다른 후보지에 비교해 상당히 불리했다. 하지만 범국민위와 제주도가 지난 1월 13일 내외신 기자 100여명을 초청, ‘세계 7대 자연경관 도전 선포식’을 열어 불을 지피고 국내외 유명인사와 재외동포, 기업,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참여 열기가 이어지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한국계 미국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오페라 가수 폴포츠, 아시아태평양지질공원 의장 이브라힘 코무 등 여러 분야의 유명 외국인들까지 제주 홍보대사로 나섰다. 미국 LA와 샌디에이고,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에도 7대 경관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등 국내외에서 제주를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삼성물산, 대림산업, 대한통운, KT그룹, LG그룹 등 대기업과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불교 조계종,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등 각계의 지원활동도 뜨거웠다. 각계각층의 염원에 힘입어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지질공원 인증,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등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을 휩쓴 데 이어 마침내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명성을 더해 그야말로 ‘보물섬’으로 거듭나게 됐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북촌나래홀, 모노극 ‘빌라도의 편지’ 10일 무대에 올려

    북촌나래홀, 모노극 ‘빌라도의 편지’ 10일 무대에 올려

     ‘빌라도’를 아는가? 이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면 당신은 한 단편의 로마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만약 ‘예수’가 떠오르다면 당신은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사람일 것이다. 빌라도는 AD 1년 전후 로마의 식민지 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했던 총독이다. 예수를 처형한 인물이며,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와 함께 인류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악인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연극 ‘빌라도의 편지’가 서울 창덕궁 옆 북촌나래홀에서 10일 무대에 올려졌다.이달 초에 진행된 프리뷰 기간엔 허를 찌르는 반전과 긴장,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만석을 이루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일반인과 크리스찬 모두에게 다양한 각도로 느껴지고 이해되는 모노극이란 점. 관객들은 마치 2000년전 예수의 처형을 결정한 ‘심판정’에 들어선 듯한 긴장감을 느낀다. 출연 배우의 근육 움직임과 땀방울 하나하나를 보는 세밀함이 곳곳에 있다. 또한 기교독인에게는 80분의 짧은 연극 한편을 통해 신약과 구약 성경 66권의 핵심적인 근간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함축해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작품 속의 빌라도는 로마 황제에게 보낸 예수 처형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관객들은 극중에 빌라도의 고뇌와 고통, 절망을 엿볼 수 있고, 어느새 자신이 빌라도와 같은 운명적인 상황 속에 놓여진 것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내가 빌라도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하루의 삶속에서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을 되돌아 보게 한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빌라도, 그는 신의 도구였을까 아니면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이었을까?  이 작품은 ‘우동 한그릇’, ‘완득이’ 등에 출연 중인 극단 ‘자연의 사람들’ 대표 박종보씨가 기획했다. 박 대표는 연극 경력 20여년의 베테랑 연기자이며 연출가다. 12세 이상 관람가, 공연가 2만원. 공연시간 80분. 문의 (02)924-1478.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똥 싸는 메시 인형 ‘까가네’ 올해도 최고 인기

    똥 싸는 메시 인형 ‘까가네’ 올해도 최고 인기

    ”똥 싸는 모습도 메시가 최고야!”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가 인형세계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출시된 ‘까가네’ 인형시리즈 중 리오넬 메시의 인형이 주문량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여자인형 중에는 라틴팝의 여왕으로 불리는 샤키라의 인형이 최고 판매를 기록 중이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으로 유명한 ‘까가네’ 인형 2011시리즈는 8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공개됐다. ’까가네’는 유명인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드러낸 채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는 모습의 인형이다. 엉덩이 아래 쪽에는 인형이 싼(?) 똥이 놓여 있다. 스페인 카탈란 지방에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마굿간 장식을 꾸밀 때 똥을 누는 인형을 세워놓으면 이듬해 풍요로움과 행운이 깃든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똥을 누는 인형 ‘까가네’는 이런 바람을 담은 히트 연말상품이다. 매년 이맘때 출시되는 ‘까가네’ 시리즈엔 가수와 배우로부터 교황에 이르기까지 특급스타와 인기인, 유명인이 총망라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정치인들도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한다. 올해는 20일 총선을 앞두고 스페인 사회당 총리 후보 알프레도 페레즈 루발카바, 마리아노 라호이 국민당 대표 등 스페인 정치인들의 인형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인기는 메시 인형이 최고다. 메시 인형은 지난해에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판매 1위에 올랐다. 현지 언론은 “올해도 메시 열풍이 여전하다.”며 판매부문 2연패를 점쳤다. 사진=에페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경남 시·군 사회복지수당 통일

    경남지역 시·군이 각종 사회북지수당의 금액을 제각각 달리 지급하고 있다는 지적<서울신문 8월19일자 12면·8월 29일자 14면>에 따라 제반 사회복지수당에 대한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지자체마다 선심성 선거공약과 경쟁 등으로 사회복지수당이 자꾸 올라 재정압박이 심각해지자 복지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담합’을 한 것이다. 경남시장·군수협의회(회장 박완수 창원시장)는 2일 이 같은 기준을 담은 ‘경남시·군 복지균형발전을 위한 협약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협약안은 이달부터 시행된다. 시장·군수협의회는 협약서에서 “도내 시·군에서 시행하는 복지지원책이 지역마다 달라 형평성 문제와 함께 열악한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어 복지수당에 대한 적정한 지급기준을 마련, 시행하기로 협약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공통으로 지급하는 수당을 증액하기 위해서는 협의회 의결을 받도록 하고 새로운 수당을 신설할 때는 협의회에 의견을 제출하도록 협약했다. 협의회는 또 장수수당이나 참전유공자수당처럼 지자체 외에 정부에서도 비슷한 수당이 지급돼 이중 혜택이 되는 수당은 장기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참전명예수당과 장수수당은 월 3만원씩, 참전유공자 사망위로금은 20만원, 셋째아 이상 영·유아 양육수당은 월 20만원(만 5세 이하까지)을 지급하는 것으로 통일했다. 출산장려금은 셋째아에 대해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맞추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0) 진보적 신학자 이반 일리히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0) 진보적 신학자 이반 일리히

    1992년, 이반 일리히는 암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요가 같은 자기 수양으로, 고통이 극심할 때는 생아편을 피우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통증을 감당해냈다. 일리히에게 병은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시련”이었고, 삶이 준 선물이었다. 그는 병을 얻음으로써 새롭게 열리는 세계에 대한 숙고가 우리의 삶을 고귀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몇 분 몇 초밖에 남지 않았을지라도,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온전히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일리히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고귀해지는 길. 그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간 이 시대의 현자, 이반 일리히(1926~2002). 이반 일리히는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사망하자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어머니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피렌체로 갔다. 일리히는 피렌체에서 학교를 마친 후 사제가 되기 위해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잘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황청은 신실하고 총명한 이 젊은 사제가 로마에 남아서 추기경이 되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일리히는, 사제란 교회라는 제도에서 복음을 독점적으로 전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청빈과 무권력과 비폭력을 실천하며 사는 또 하나의 예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교회와 일리히 사이의 갈등은 예견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태생… 철학과 신학 공부 일리히는 교회를 ‘그녀’(she)와 ‘그것’(it)으로 구분해서 불렀다. 전자는 “개개인이 따로 또는 함께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나가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모습을 간직한 교회였고, 후자는 “사랑을 세속적으로 만들고 진실한 믿음을 강제화하는 제도화를 통해 삶을 타락하게 하는” 세속화된 교회였다. 그는 둘 중 ‘그녀-교회’에, 즉 권력 없는 ‘어머니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머물고자 했다. 일리히는 로마교회의 관료제도를 뒤로한 채 미국으로 떠난다. 당시 뉴욕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로 넘쳐났고, 일리히는 그들이 사는 지역의 사제직을 자청했다. 그러나 기존의 천주교단은 이주민들을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리히는 분개했고, 교회에 이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1956년,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 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되면서 일리히의 문제의식은 확장된다. 그는 학교라는 제도가 ‘경제성장’ ‘진보’라는 말로 포장된 자본의 배타적 경쟁 논리를 이식하고, 사람들에게 “의무교육을 마치지 못했다는 내면의 죄의식까지 새로 짐 지우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일리히는 ‘교육’이라는 말 속에 계몽자가 수동적인 수혜자를 구원한다는 의미가, 서구 근대 문명에 기독교식 구원의 논리가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196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한 달 전, 푸에르토리코를 장악하고 있던 두 명의 가톨릭 주교가 사제 권력을 남용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진다. 일리히는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 일로 추방된 후 멕시코로 건너가 국제문화형성센터(CIF)를 창설한다. 이를 1966년에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로 전환하고, 일리히는 여기서 주류적 흐름에 반하는 대항-연구와 지식운동을 전개해갔다. 일리히가 멕시코로 건너간 그 해에 존 F 케네디가 ‘진보를 위한 동맹’ 계획을 발표한다. 내용인즉, 미국이 22개 중남미국가와 경제협력관계를 체결하여 그들의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사회주의 확산을 두려워한 미국이 소수의 부유한 자를 위해 마련한 책략에 불과했고, 미국을 등에 업은 우익단체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보조를 맞춰 ‘평화봉사단’까지 창설했다. 심지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다시 말해 대량학살 도구를 가지고 있는 각국 정부를 아직은 규탄할 수 없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리히 말대로, 교회는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치수단”이 되었고, 교황은 “현대의 개발 경제학이라는 전제 위에 복음주의적 문장을 처바르는 기회주의자”로 전락한 것이다. 일리히는 세속화된 교회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을 전개해갔다. 기존의 가톨릭 사회에서 일리히는 ‘이상하고 불성실하고 미덥지 못하며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람’ ‘호기심 많고, 교회를 곤혹스럽고 떠들썩하게 하는 눈엣가시’였다. 1967년, 교황청은 미국 정보부(CIA)의 보고서를 도용해 그를 소환하고 심문했고, 침묵으로 저항한 일리히는 결국 파문당했다. 이제 일리히는 신부로서의 공식 임무를 버리고, 새로운 배움과 실천의 길을 찾아 떠난다. ●구원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리히는 세미나를 조직해 공부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으며, 푸에르토리코에서 품었던 질문을 정교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에는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새로운 ‘복음’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네 편의 팸플릿, ‘학교 없는 사회’(1971) ‘성장을 멈춰라’(1973)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1974) ‘병원이 병을 만든다’(1976)는 건강, 죽음, 교통, 배움, 사랑과 같은 삶의 보편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위해 우선은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 제도에 의존해서만 잘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일리히의 눈에 제도는 ‘사람을 잡아먹는 우상’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사랑과 제도적 허위를 구분하지 못한 채 생의 모든 가치들을 서비스나 보호의 결과로 여기고 제도의 노예가 되었다. 일리히는 넘쳐나는 제도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불필요한 소비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소외시켰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가치의 제도화’라고 정의했다. ‘제도적 인간’은 자신에게 내재된 잠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대신 제도라는 외적 척도에 의해서만 가치가 실현된다고 믿는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은 잘 곳 없는 나그네들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주고,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는 자발적 실천행위였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는 많은 제도가 필요치 않다. 우리는 최소한의 소유와 행위만으로도 복음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제도의 서비스를 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발적인 환대능력을 키워라! 일리히가 존경했던 12세기 수도사 성 빅토르 휴그의 말처럼, 구원은 나 자신과 “내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지 제도로부터 오는 게 아니었다. 일리히는 교회 제도와 계몽에 의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오랜 기독교 전통을 폐기하고, 꺼져가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불씨를 현재에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내 이웃인가 1980년대 이후에는 ‘그림자 노동’(1981), ‘젠더’(1982)에서 노동과 성의 문제 등을 다루며 연구를 확장시켰다. 일리히는 역사로 눈을 돌린다. 그에게 역사는 “현재를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기준점”에 이르는 특별한 길이었다. 과거는 오직 현재의 경험에서 출발할 때에만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리히는 역사와 고전을 배움의 보고(寶庫)로 새롭게 인식했다. 부단히 자신을 돌아보는 배움의 과정 없이는 다른 삶이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지혜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배움의 여정에서,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르칠 수 있고,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얻어맞아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구해주는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을 구해주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행동하고 싶다.”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어느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었다. 강도를 당해 반죽음이 된 유대인을 도와준 것은, 유대인들의 적이자 멸시의 대상인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법, 의무, 종교와 같은 제도와 무관한, 보편적 인류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일리히는 예수의 답을 평생의 질문으로 간직했다. 누가 내 이웃인가? 끝없는 배움과 실천의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던 자, 일리히는 또 하나의 예수였다. 최태람 남산 강학원 연구원
  • ‘예수’ 연기한 배우, 실제로 일가족 ‘구원’ 화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예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 한 일가족의 생명을 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예수의 마지막 7일간을 다룬 ‘록 오페라’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서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아왔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국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주인공 예수 역을 맡아 열연한 바 있는 배우 레비 제임스(38)는 지난 25일 밤 11시 30분경 브리스톨에 있는 자신의 앞집에 발생한 화재로 위험에 처한 10대 부부와 10개월 된 그들의 아이를 목격했다. 곧장 집밖으로 나온 그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집에서 호스를 가져와 진화하려 했지만 거리상 여의치 않자 직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길은 이미 집 뿐 아니라 집 주변의 차고에까지 번져가고 있었지만,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가 어린 딸을 안고 있는 어린 부부를 무사히 밖으로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화재로 상당한 재산피해가 발생했지만, 제임스의 용기있는 행동 덕분에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제임스는 “내가 큰 일을 한거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목숨을 구한 일가족은 제임스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주인공 예수 역을 맡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의 작은 구세주”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한편 현지 경찰은 이번 화재가 방화범의 소행인 것으로 보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찾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대구서도 ‘제2 도가니’…장애학생 성추행 교사입건

    대구 지역의 한 사립특수학교에서 발생한 교사의 10대 장애학생 성추행 사건이 7개월이나 지난 뒤에야 기소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정신지체학생 교육기관인 A학교의 교사 B(40)씨가 지체장애 학생인 C(18)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조사결과 B씨는 도예수업 도중 실습을 해보자며 피해자를 교실 안 칸막이가 설치된 곳으로 데려가 신체 일부를 만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거짓 반응이 나온 점을 근거로 지난 2월 B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B씨에 대해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미루다 지난 6월 기소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B씨와 관련,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데에서 뺐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재판 결과를 지켜본 뒤 징계 수위를 검토할 예정”이라면서 “C양은 부모의 뜻대로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등교하지 않고 다른 사회복지시설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경·김진아기자 white@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7) ‘동의보감’ 허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7) ‘동의보감’ 허준

    허준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모르면 간첩이라는 농담도 안 통한다. 그만큼 범국민적 인물이라는 뜻이다. 물론 친근한 것 이상으로 신비화되어 있기도 하다. 고난에 찬 삶의 역정, 라이벌들의 비방과 음모, 예진 아씨와의 지순한 사랑 등등. 물론 하나같이 소설과 드라마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이 이미지들로 인해 허준은 400여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명의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들로 인해 그의 진면목은 봉쇄되어 버렸다. ●허준이 ‘허준’이 된 까닭은? 먼저, 허준의 라이벌 역할을 담당한 양예수는 실제로 허준의 스승뻘이자 당대 최고의 명의였다. 동의보감 편찬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지만 정유재란 이후 빠졌다. 다음, 많은 이들이 지적했다시피 허준의 스승으로 나오는 유의태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허구적 인물의 등장 자체야 문제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의 절정에 해당하는,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이것은 마치 한의학이 미망의 어둠을 거쳐 해부학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학적 편견을 조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예진 아씨와의 러브스토리? 택도 없는 소리다. 사랑이 이렇게 특화된 건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다. 그 이전에는 우정과 의리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20세기 이후 우정이 사라진 자리를 사랑과 연애가 채웠고, 그 결과 허준을 비롯하여 모든 사극의 주인공들은 본의 아니게(?)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했다. 아무튼 좋다. 허준의 ‘만들어진’ 이미지 가운데 더 결정적인 결락이 하나 있다. 허준이 ‘의성’ 허준이 된 건 명의라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슨 소리? 허준이 전통의학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의사로서가 아니다. 양예수를 비롯하여, 당대 허준을 능가하는 명의들은 많았다. 하지만 허준처럼 ‘동의보감’이라는 대저서를 남긴 사람은 없었다. 아니, 조선은 물론이고 동양의학사를 다 통틀어서도 동의보감처럼 방대하고 체계적인 의서는 없다. 고로 허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허준’이 된 건 어디까지나 동의보감이라는 저서 때문이다. 허준의 생애는 의외로 드라마틱하지 않다. 양반집 서자로 태어났지만 그것 자체가 특별한 사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의원이 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했다. 사대부 유희춘의 추천을 통해 내의원에 들어갔으며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면서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대부 관료들조차 앞다퉈 도망을 갔지만 허준은 선조의 피란길을 동행함으로써 그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서자 출신임에도 종1품 승록대부에까지 올랐다. 이 정도야 뭐,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이런 허준을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조다. 더 구체적으론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맡기면서부터다. 그때 이후, 허준의 이 평범한 ‘성공스토리’는 비범한 삶의 여정으로 변주된다. “허준은 본성이 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박식했다. 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어서 신묘함이 깊은 데까지 이르렀다. 사람을 살린 것이 부지기수다.”(‘의림촬요’) 허준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다. 보다시피 그의 삶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의사 이전에 학문이다. 당대 명망 높은 사대부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 또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많은 의서들을 편찬할 수 있었던 것 등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학문적 열정과 집념이었다. ●동의보감의 탄생-전란에서 유배까지 1596년 어느 날 선조는 어의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한다. 허준의 나이 58세. 허준의 생애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전란의 와중이었다. 전란 중에 잉태된 의서! -극적이라면 이런 장면이 극적이다. 허준은 그 즉시 유의 정작과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바로 그 다음해 정유재란(1597)이 발발하면서 초기 작업은 중단되었다. 난이 수습되긴 했지만, 프로젝트팀은 해체되었다. 결국 의서의 편찬은 허준 개인의 몫이 되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작업의 속도는 한없이 더뎠다. 그렇게 해서 무려 10여년이 지났다. 1608년 2월 1일. 허준의 생애에, 아니 동의보감 편찬의 여정에 결정적인 변곡점이 찾아왔다. 선조가 승하한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선조의 위상은 이중적이다. 선조의 등극과 더불어 조선은 훈구파의 집권이 끝나고 마침내 ‘사림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림 내부의 분화와 갈등이 점화되면서 ‘당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당시는 특히 북인 안에서 대북파와 소북파의 분화가 심각하게 재연되는 때였다. 대북이란 선조의 후계자인 광해군을 미는 쪽이고, 소북이란 선조가 말년에 낳은 영창대군을 미는 쪽이다. 한데, 하필 선조가 승하할 당시 내의원 전체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도제조가 유영경이었는데, 이 유영경이 바로 소북파의 리더였다. 대북파에서 이 사건을 간과할 리 없다. 어의 허준에게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은 허준의 상관인 유영경에게까지 미쳤다. 허준도 이 숙청의 피바람을 피해갈 순 없었다. 하지만 광해군한테 허준은 특별한 존재였다. 왕자 시절 두창에 걸려 목숨이 오락가락할 적에 다른 어의들은 약을 썼다가 허물을 뒤집어쓸까봐 망설였지만 허준은 과감하게 약을 써서 목숨을 구해주었다. 빗발치는 상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허준을 적극 방어해 주었다. 이를테면, 허준을 위기에 빠뜨린 것도 의술이었고, 허준을 구해준 것도 의술이었던 것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래도 유배만은 피할 수 없었다. 69세의 나이로 머나먼 의주땅으로 유배를 가야 했으니, 참으로 고단한 말년이었다. 하지만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던가. 유배기간은 1년 8개월. 놀랍게도 그 기간 동안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이때 한 작업은 전체 분량의 반에 해당한다. 유배지는 그에게 집필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마련해준 셈이다. 대반전! 만약 이 작업이 없었다면 유배지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억울하고 쓸쓸했으랴. 허준으로 인해 동의보감이라는 비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동의보감은 무엇보다 그 편찬자인 허준의 생을 구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구원’으로서의 공부다. 흔히 생각하듯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있었기에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허준과 동의보감이 바로 그런 관계였던 것. 71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허준은 후반부 작업에 박차를 가해 마침내 동의보감을 완성해서 조정에 바친다. 시작한 해로부터 따지면 무려 14년의 기나긴 여정이다. 조선으로서도 전란과 정권교체, 당쟁 등으로 이어진 초유의 시간이었고, 허준으로서도 영광과 오욕을 한꺼번에 누린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이후 내의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역병에 관한 책을 편찬하는 등 조용한 여생을 보내다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다.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편찬을 명하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기존 의학사의 난만한 흐름을 정리하라는 것, 둘째, 질병이 아니라 수양을 중심으로 한 양생서를 쓰라는 것, 마지막으로 조선의 약재를 가난한 백성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 허준은 선조의 세 가지 당부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먼저, 동의보감에는 의학사의 양대 지존인 ‘황제내경’과 ‘상한론’을 비롯하여 손진인의 ‘천금방’, 이천의 ‘의학입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의학사의 최고봉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 바탕 위에서 허준은 오랜 기간 서로 갈라져 온 양생과 의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통합하였다. 즉, 그는 병과 처방이 아니라, 몸과 생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질병에서 생명으로! 그렇게 해서 구성된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이어지는 목차는 어떤 의서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분류학의 결정판이다. 아울러 처방과 약재들의 방대한 목록은 자연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말하자면, 최고의 지적 성취와 가장 대중적인 용법을 두루 갖춘 의서가 탄생한 셈이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양생이다. 양생은 단지 임상을 넘어 존재의 우주적 ‘탈영토화’를 꿈꾸는 ‘삶의 기술’이다. 요컨대, 양생이라는 비전 위에서 몸과 우주, 질병과 자연, 생명과 존재의 근원적 일치를 기획했던 자연철학자, 그것이 허준의 진면목이다. 고미숙 감이당 연구원
  • [부고] 개신교 원로 이종성 목사

    [부고] 개신교 원로 이종성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낸 춘계(春溪) 이종성 목사가 지난 2일 낮 12시 40분 서울 자택에서 노환으로 소천했다. 89세. 고인은 192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신학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 등을 나왔다. 장로회신학대학장, 정신학원 이사 겸 이사장, 영남신학대 총장, 동북아신학교협의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흥씨와 세 딸이 있다. 장례는 5일 오전 9시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영락동산이다. (02)3410-6914.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책읽는 금천 만들기’ 독서토론 바람

    ‘책읽는 금천 만들기’ 독서토론 바람

    “대학 입학 면접에서 학생들이 토론하면서 중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제가 교수하면서 면접 때 그런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28일 서울 금천구 동일여고에서 학생 28명과 독서토론회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입에 고통받는 고등학생들과 만나다보니 멘토로 잠깐 변신한 것이다. 차 구청장은 또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성적이 좋은 것과 공부를 잘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더라도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여러분이 30~40대에 반드시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격려했다. 이번 토론회는 구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책 읽는 금천’을 만들기 위한 구민 독서토론회로 지난 6월 시작한 후 벌써 네 번째다. 이날 주제 도서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저)로 논제별 자유토론과 찬반토론으로 진행됐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백인 문명에 억눌리면서도 영혼의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아메리칸인디언 체로키 족의 철학과 지혜를 풀어 내려간 성장소설이다. 학생들은 책이 전하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디언의 이야기에 인간문명의 문제점과 현대인의 인식 등에 대해 사뭇 진지한 토론을 펼쳤다. 차 구청장은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디언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왜 인디언처럼 박해받고 핍박받는 소수만 이런 좋은 생각을 하고 살고, 정복자와 지배자 같은 강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는 지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든 생각이고, 내가 평생 가진 의문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예수와 부처, 공자 등 성인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도 큰 가르침을 베푼 위인들도 당대에서는 억압받는 소수였다는 점도 거론하며 토론을 이끌었다. 토론패널들이 수험생인 점을 고려해 교수 출신의 차 구청장은 대학입학을 위한 면접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는 “토론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생각의 다름도 나눌 수 있다.”면서 “정답을 찾기보다 자신만의 생각을 할 것”도 함께 주문했다. 또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사실을 모르고 사물을 판단할 수 없다. (교과서가 가르치는) 사실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앞서 차 구청장은 지난 6월 가산초등학교에서 초등생 25명과 ‘내 짝꿍 최영대’(채인선 저)를 읽고 토론을 가진 후 ‘연을 쫓는 아이’(할러드 오세이드 저), ‘친절한 복희씨’(박완서 저)를 읽고 주민들과 독서토론을 했다. 교육도시를 표방하는 구는 독서토론회를 통해 합리적인 사고 형성을 돕고, 주민들과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 구는 독서토론회가 독서운동 캠페인과 더불어 구민들의 독서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 사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저축銀에 6조~7조 추가투입

    정부가 저축은행 구조조정 자금으로 최대 6조~7조원을 추가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6개 부실 저축은행 정리 자금으로 당초 계획한 15조원보다 2조원 정도가 더 소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중은행 고객의 예금 보호를 위한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예금보험기금 내 설치된 구조조정 특별계정의 운영기한을 최장 5년까지 연장할 뜻을 비쳤다. 구조조정 특별계정은 올해 1월 이후 영업정지된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려고 지난 3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 은행 계정에 매년 들어오는 예금보험료의 45%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저축은행 계정에서는 100%가 특별계정으로 넘어온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을 2026년까지 운용할 경우 연 평균 1조원씩 약 15조원을 조달, 이 돈을 저축은행 구조조정 재원에 집행한다는 게 금융위의 당초 구상이었다. 하지만 상반기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한 데다 85개 저축은행 경영진단 결과 자산 3조원 이상 대형사 2곳을 비롯한 7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자 예상보다 재원고 갈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금융위 측은 설명했다. 상반기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 매각에 6조 3000억원이 투입됐고, 조만간 부산저축은행을 정리하는데 2조원 넘게 들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결국 특별계정 잔액은 6조~7조원만 남는 셈이다.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는 데 일반적으로 예수금의 70~80%가 필요하다는 점과 7개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예수금 총액이 11조 4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8조원 넘는 돈이 투입되어야 한다. 현재 재원으로는 2조원 가량 부족해지는 셈이다. 금융위 안에서는 특별계정 운영 시한을 2031년까지 5년 연장하면, 추가 재원 6조~7조원을 더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저축은행 상시 구조조정 자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더구나 국회가 특별계정 설치 조건으로 내건 정부재정(공적자금) 투입 규모도 당초 약속했던 5000억원 출연 방식이 아닌 1000억원 무이자 융자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특별계정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한편에서는 특별계정 운영 연장이 관철되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금자보호법 부칙에서 특별계정 운영 시한을 2026년 12월 31일로 못박았기 때문에 기간 연장을 위해서는 추가로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파스칼의 신학논쟁, 정의를 되묻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인간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 그가 33세의 젊은 날 격렬한 신학 논쟁에 열정적으로 가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안혜련 옮김, 나남 펴냄)는 명상록 ‘팡세’에 이은 파스칼의 또 다른 역작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제주이트(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만든 예수회에 소속된 사제들)와 장세니스트(네덜란드 신학자 얀센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 간 신학 논쟁이 한창일 때 편지 형식으로 예수회 신부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당시 우월적 위치에 있던 예수회 신부들이 설파한 도덕 지침인 ‘결의론’, 즉 무엇이 죄가 되고 안 되는지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비판한다. 나아가 무엇이 거짓과 구별되는 진실과 정의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책은 단순한 신약 관련 논쟁서가 아니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비롯한 몇 가지 기독교 교리에 관한 이견에서 출발하였기에 신약서로 읽히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을 훌쩍 뛰어넘는다면 350년 전 파스칼이 세상에 던진 ‘진실과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담론과 만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힘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는 ‘힘 없는 정의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끼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믿음을 여전히 보여준다. 그가 예수회 신부에게 “진리가 여러분 편이라면, 진리는 여러분을 위해 싸울 것이고, 여러분을 위해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의 적이 누구든 진리는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설파한 것도 그 때문이다.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이 책이 프랑스 산문 문학의 정수라는 점이다. 파스칼과 동시대를 산 라퐁텐은 물론 볼테르조차 인정했듯이 책은 비판적 이성과 날카로운 감성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의 배경에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 장세니즘과 제주이트,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 체제와 프롱드 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까지 맥이 닿아 있는 정신사의 한 가닥 등 흥미롭고 복합적인 여러 사슬이 얽혀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2만 5000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中 “美, 타이완 F16 성능개선은 내정간섭”

    중국이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한 미국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미 국방부가 의회에 타이완에 대한 58억 5000만 달러(약 6조 9000억원) 규모의 F16 A/B 성능 개선 사업 계획을 확정, 보고하자 즉각 미국의 게리 로크 주중대사를 불러 거세게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즈쥔(張志軍) 상무부부장은 지난 21일 밤 늦게 외교부청사로 로크 대사를 초치한 뒤 “미국의 잘못된 행위로 양국관계가 훼손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경고했다. 장 부부장은 또 “미국의 행위는 중국 내정에 대한 심각한 간섭이자, 중국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면서 “강력한 분노와 함께 결연한 반대의 뜻을 밝힌다.”고 말했다. 중국은 또 장예수이(張業遂) 주미 대사를 통해 미국 측에 즉각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통신, 인민일보, 중국중앙(CC)TV 등 관영매체들도 22일 일제히 이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의 대(對)타이완 무기판매로 양국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은 이미 예견돼 왔다. 중국은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 결정이 임박해진 이달 초부터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해선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잇따라 내보냈다. 관심은 추가 대응 여부다. 패트리엇 미사일 등 64억 달러 규모의 무기판매를 결정한 지난해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교류 중단을 선언하는 등 강력 대응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의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이 “신형 F16 C/D 66대를 제공하라.”는 타이완 측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존 F16 A/B 145대에 대한 성능 개선 사업으로 한정한 데다, 중국 역시 올 초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미를 통해 가까스로 정상화된 양국관계를 되돌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구두 반발’ 선의 마무리도 예측가능하다. 물론 타이완 측이 여전히 미국에 F16 C/D와 디젤잠수함 등의 판매를 요구하고 있고, 미 의회 내에서도 동조 여론이 강력하다는 점에서 중국 측이 ‘쐐기’를 박기 위한 대응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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