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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살바도르(세계 문화유산 순례:54)

    ◎800여개 유럽 성당·아 사원 한도시에/17∼18세기 바로크·로코크양식 건축물 산재/‘황금성당’ 산 프란시스코·바실리카 대표적 살바도르(Salvador)는 브라질문명의 특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토착 인디오 문화와 식민지시대 유럽문명,그리고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개념이 뒤섞인 복합문명이라고나 할까.어떻든 살바도르는 이 세가지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들을 고루 감싸 안았다.그중에서도 3백50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흑인일 정도로 아프리카 전통이 강했다.이는 365개의 유럽식 성당 말고도 아프리카 전통종교인 칸동블레 사원이 46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 상파울루를 떠나 살바도르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렸다.번화한 도시를 떠나 갑자기 호젓한 도시를 찾아서인지 다소 나른한 기분마저 들었다.그리고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흑인인 탓에 묘한 이질적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원색의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강렬한 인상이 우러났다.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수도로 브라질 북동부에 자리한 바이아주의 주도 살바도르는 원래 18세기 중반까지 브라질의 첫 수도였다.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자연이 만든 풍요로운 온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시가 아름다운 열대의 자연으로 뒤덮였다.정복자인 프로투갈인들은 1549년 그들의 신세계를 살바도르에서 열고나서 1763년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겼다.오늘의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긴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살바도르는 산토 안토니오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해안을 낀 낮은 지대에 형성됐다.도시는 구도시와 높은 구릉지대에 이루어진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그런데 두 지역은 높이 100m에 가까운 엘레바도르 라 세르타라고 불리는 대형 엘리베이터로 연결됐다.편리한 교통수단이자 희한한 관광상품 구실을 했다.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바이아주는 당시 남미지역 최대의 흑인노예시장이었다.자연 노예매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심지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에게도 보석을 주어 노예들이 보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놓고 부를 가늠할 정도였다고 한다.구도시 중심가에 버티고 선 메르카도 모델로는 당시 노예의 실상을 짐작케 했다.용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은 16년전 대형화재가 났을때 지하의 대형 노예창고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결국 오늘날의 바이아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오들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후손들인 것이다. 한때 번영을 누렸던 살바도르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17∼18세기의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우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펠로링요 광장이 그 시대에 건설됐다.1657년 프랑스인 샤를르 벨레비가 청동 300㎏을 들여 만들었다는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가 눈에 띄었다.로코코 양식의 이분수에는 가톨릭 성녀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신성한 여인이 함께 조각돼 있다.크게 네갈래로 뿜어내는 물줄기는 바이아주를 지나는 4개의 강을 뜻한다고 한다. ○신∼구도시 엘리베이터로 광장은 유서깊은 건축물들로 둘러 싸였다.그중 하나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바실리카 성당이다.포르투갈에서 들여온 돌로 90년에 걸쳐완성했다는 이 성당은 800㎏의 황금으로 성전 내부를 도금했다.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진수 모두가 이 성당에 간직됐다.흥미로운 것은 내부 양쪽 벽면에 세워진 예수상과 마리아상 등의 성상이다.이들 성상의 머리카락은 모두가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이다.가톨릭과 칸동블레의 습합 현상을 보여주는 성상의 두발은 당시 귀족들이 죽을때 바친 머리카락이라고 한다.신앙을 향한 깊은 신심을 넘어 섬뜩했다. 광장 한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 프란시스코 십자가를 지나 50m쯤을 걸어서 ‘황금성당’으로 이름난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다달았다.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18세기 건축물인 이 성당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통한다.935㎏의 금을 입혔다는성당 내부는 무척 화려했다.그럼에도 성베드로 동상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화려한 성당 내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거니와 어떤 여운을 안겨주었다.폐결핵에 걸린 노예들의 고통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 했다. ○금 935㎏으로도금 화려 광장 근처의 도로는 돌을 땅에 박아 만들어서 울퉁불퉁했지만 200∼300년전에 만든 길 치고는 여전히 쓸만 했고 정취도 배어있었다.그 길 중간에 갈멜제3성당이 자리했다.외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짓고 내부는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치장한 성당안에는 유명한 볼거리가 하나 있다.한개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상이 그 것이다.십자가에 못박혀 흘리는 핏물을 2천개의 루비로 표현해냈다. ◎여행가이드/신∼구도시 나눠져 대중교통 보다 렌터카 이용을 상파울루에서 살바도르까지는 국내선으로 4시간 가량 걸린다.비행기편에 따라 다소 다르나 항공료는 1인당 800달러 정도로 비싼편.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브라질 항공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500∼600달러로 4∼5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심도 좋은 편이며,주민 대부분이 흑인인 탓에 브라질내 다른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녔다.그리 많지는 않으나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살바도르 특유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도시 자체가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보다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유적들은 좁은 도로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걸어다녀야 한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사람의 아들/바스 토스지음 남진희 옮김(화제의 책)

    ◎중남미 억압받는 민중의 삶 묘사 1959년 발표돼 이듬해인 1960년 첫 출판된 중남미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적 작품. 파라과이의 삶과 역사에 천착해온 지은이의 3부작 「사람의 아들」「나는 절대자」「검사」중 1부작품으로 제1회 국제소설 콩쿠르대상과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따뻬라는 파라과이의 작은 원주민 마을을 배경으로 저항과 탄압의 세월을 거듭하는 원주민들의 삶에 접근,중남미의 왜곡된 현실과 억압받는 민중의 구원에서 나아가 휴머니즘 회복을 강조한 장편. 스페인치하에서 벗어난 직후 쿠테타가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독재자에게 탄압받고 백인 선교사들에 의해 강제로 이식된 기독교의 지배에 저항하면서 문둥병자가 만든 예수상을 세워 종교적 자주성을 찾는등 신에 의한 구원이 아닌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꿈꾸는 모습을 통해 역사적 삶의 영원한 슬픔을 암시하기도 한다.도서출판 동숭동 5천8백원.
  • 브라질:하/해외도피 8백억불 “회수 총력전”(세계의개혁현장:31)

    ◎화폐개혁에 이은 세제개편 통해 “유인” 리우 데 자네이루 공항에 내려 승용차 문을 열어젖히고 시내를 행해 조금 달리다 보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악취 때문에 곧 창문을 닫게 된다. 해변에 맞닿은 하천에서 풍겨오는 악취는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약하기 이를데 없다.이 하천은 공항과 시내를 잇는 고속도로 오른쪽 언덕위의 빈민가에서 흘러내리는 것이다.길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그 빈민가의 모습은 목불인견,바로 그것이다. 깡통과 누더기·판자 등으로 지붕과 벽을 이은 2∼3평짜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판자촌.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흑인 어린이와 아낙네들의 절망이 먼지처럼 쌓여있는 곳.문명의 이기를 얘기하기 전에 별도의 화장실과 하수도가 있을리 만무한 슬럼.수십년을 그렇게 흘러내렸을 하천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70년대 인기영화 「007 문레이크」의 무대였던 해발 3백94m의 돌산(빠우 데 아수강)과 영화 「리오의 사나이」의 주무대이자 무게 1천1백45t,높이 38m의예수상이 있는 해발 7백9m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리우 데 자네이루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는 도시다. 젊음이 넘치는 코파카바나해변을 거쳐 남쪽 바하다 티주카해변과 송콩하드해변,그 해변들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고급 아파트와 저택들은 리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백∼1백50평 되는 초대형 아파트와 5백평 안팎의 호화저택 주변에는 회원제 골프코스와 행글라이더장,20㎞가 넘는 해변이 이웃하고 있어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호화스러운 것인가를 짐작케 해준다. 1억6천만 인구의 1%가 국내총생산(GNP)의 15.7%를,인구의 14%가 전체 부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80% 이상의 국민은 월최저임금인 80달러도 벌지 못해 극빈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말해주듯 브라질은 또한 부의 편중이 극심한 나라다. 전체 국민의 14%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 호화별장을 갖고 있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돈을 국내에 투자하거나 저축하지 않고 모두 해외에 도피시켜 놓고 있다. 이들 부유층이 해외에 도피시킨 돈은 모두 8백억달러.브라질 전체 외채는 1천3백40억달러이지만 해외도피자금을 상계할 경우 순부채는 5백40억달러 밖에 안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엔리케 재무장관이 이끄는 개혁팀은 해외로 빠져 나간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8월1일 금리인하를 겨냥한 화폐개혁을 단행한데 이어 탈세방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제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인구 14%가 국부위 70%를 독점/「부의 공정분배」 실현에 개혁초점 브라질의 개혁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상 파울루 주정부의 해외협력부 호세 에두아르도차관을 주정부청사인 반데이란치스궁으로 찾았다. ­브라질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연방정부뿐 아니라 각 주정부를 비롯한 지방정부의 쓰임새가 너무 큰 것이다.이는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인원이 지나치게 많은데 따른 것이다.상 파울루시만 해도 적정 인원의 3배에 달하는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국영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또 한가지는 조세제도의 허점으로 세수를 제대로 올리지못하고 있는 점이다.그동안의 탈세액수는 89년 1백10억달러,90년 86억달러,91년과 92년 각각 70억달러에 이어 올해도 70억달러 정도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나.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지방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대폭 삭감,자율적인 감원 등을 통해 지출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공동시장(Mercosul)결성을 주도하고 있다.역내 국가간의 교역은 활발해질지 모르지만 역외국가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앞으로의 전망은. ▲브라질의 상대는 남미가 아니라 전 세계다.전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우리도 세계를 향해 진출할 것이다.관세의 대폭인하와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한 제도개선도 개혁정책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브라질병」의 병인을 꿰뚫고 있는 엔리케 재무장관의 세제개혁은 부의 공정한 분배를 목표로 하고 있다.따라서 개혁의 방향은 증세가 아니라 세금을 줄여 평등하게 내게 하는 쪽으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브라질에서 탈세가 극심한 것은결국 세금이 너무 많고 세금을 내면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큰 병인 하이퍼인플레의 원인도 방만한 정부와 국영기업의 운영,조세제도의 미비로 인한 탈세행위의 만연에서 찾아지고 있다. 이를 해결한다면 국민들도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해줄 것이고 브라질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엔리케장관도 브라질의 개혁정책이 바로 이 점을 겨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 열반의 땅 「보드가야」 「불교의 바타칸」으로

    ◎아시아 11개국,사원 등 앞다퉈 건립/“세계 중심지 만들자” 국제단체 나서 부처 열반의 땅­보드가야.아쇼카대왕이 부처의 득도를 기려 세운 마하보디사원으로 유명한 인도 중북부 비하르주 황무지의 작은 도시가 세계불교의 최고성지인 「불교의 바티칸」으로 가꾸어진다. 이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경제적 부를 이루기 시작한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이 마하보디사원 주변에 자국의 성지순례객들을 위한 자체 사원과 인도인을 위한 빈민구제시설 등을 다투어 건립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는 힌두교를 주종교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불교유적지들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왔다. 현재 이곳에 진출해있는 국가들은 스리랑카 미얀마 티베트 중국 타일란드 일본 부탄 베트남 네팔 방글라데시 등과 가장 늦게 진출한 한국 등 11개국.각기 고유의 문화적 배경에 입각,건축양식 등을 달리하고 있어 시가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 도시에 최근 1천만루피(4억원 상당)를 들여 부랑아 보호시설을 갖춘 부다가마 사원을 건립했다.이의 준공식 참석차 최근 방문한 라나싱게 프레마다사 스리랑카대통령은 『보드가야를 개신교의 예루살렘이나 카톨릭의 바티칸과 같이 불교의 고향으로 꾸며,동서양을 잇는 정신의 교량이 되게하자』고 주창했다.이곳에 진출한 국가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국가는 일본.두개의 사원과 빈민구제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국제불교기구인 마하야나보존재단(FPMT)은 모두 2억 루피(80억원)를 투입,이 도시에 불교공원인 마이트레야공원 건립계획을 세우고 있다.이 공원에는 명상센터와 평화정원 등이 꾸며지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과 같은 규모의 거대한 불상 건립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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