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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곡의 벽, 무너진 ‘차별의 벽’

    유대교에서 가장 거룩하게 여기는 성지인 ‘통곡의 벽’은 사실 오랫동안 ‘차별의 벽’이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 있는 높이 18m의 돌담인 이곳은 매년 수많은 예배자가 찾아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나 다 공평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성을 비롯해 정통 유대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장벽은 높았다. 특히 여성들은 여러 가지 ‘금기’에 시달려 왔다. 정통 유대교 신자라 해도 남성들과 한 공간에서 기도할 수 없어, 벽 인근에 있는 별도의 기도처를 이용해야 했다. 유대교 경전(토라)을 읽거나 전통 복장을 입는 것도 불가능했다. 찬양뿐 아니라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토라만 들고 있어도 경찰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의회는 통곡의 벽에서 이뤄졌던 모든 차별을 허무는 결정을 내렸다. 남녀는 물론 다른 유대교 종파 신자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900만 달러를 들여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구적 예배 공간을 조성하는 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이날 워싱턴포스트와 AP 등 외신들은 “양성 평등과 종교적 다원주의를 위한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를 주도한 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다. 그는 총리에 오른 이후부터 개혁파 및 보수파 유대교가 다수인 미국 유대교 단체의 압력에 직면해 왔으며, 정통 유대교 랍비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번 사안을 의회 표결에 부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통곡의 벽은 유대교 분열이 아닌 통합의 원천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대교는 정통 유대교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개혁파 유대교, 중립적 입장인 보수파 유대교 등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스라엘 본국에서 대세인 정통 유대교는 토라와 율법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다. 보수파와 개혁파 유대교는 독일, 미국 등에서 확산됐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통 교리와 계시를 그대로 따르기를 거부해 정통 교파와 대립을 겪어 왔다. 20년 넘게 통곡의 벽 앞에서 매달 집회를 열어온 ‘벽의 여성들(Women of the Wall)’이라는 단체는 “놀라운 조치”라고 반기면서도 “아직 많은 장애물이 있는데 새로운 공간이 준비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반기문 “정착촌 중단” VS 네타냐후 “테러 조장”

    반기문 “정착촌 중단” VS 네타냐후 “테러 조장”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이하 서안)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해 전 세계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가운데 반기문(왼쪽)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나서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이스라엘 총리는 오히려 반 총장이 테러리즘을 부추긴다는 ‘막말’로 응수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반 총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에서 강행하고 있는 정착촌 사업 중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국민과 국제사회에 대한 모욕”이라며 “여러 시대를 거쳐 억압받은 민족들이 보여줬듯, (원치 않는) 점령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며 이는 잠재적인 증오와 극단주의를 낳는다”고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1967년)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후보지였던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 일대를 점령했다. 이후 “서안 지구를 팔레스타인에 반환하라”는 국제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이곳을 실효 지배하기 위해 130여개의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지었다. 서안 지구(인구 약 310만명)에는 이스라엘인 35만명이, 동예루살렘(인구 60만명)에는 약 20만명이 살고 있다. 양측 간 유혈 충돌로 지난 10월 이래 이스라엘인 25명, 팔레스타인인 149명이 숨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했지만 태도가 바뀌지 않자 유엔 사무총장이 나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이곳에 새 주택 150채 건설 계획을 승인하는 한편 370에이커(약 1.5㎢)의 땅을 압류하기도 했다. 반 총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이스라엘 총리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반 총장이 테러리즘에 순풍을 불어준다”며 “(유엔은) 이미 오래전에 중립성과 도덕성을 잃었다”고 쏘아붙였다. 또한 “팔레스타인 살인자들은 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하지 않고 국가를 파괴하기를 원한다”며 “그들은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유대인이기 때문에 살인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두 국가 해법’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반 총장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양측에 충돌 자제를 요청하며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두 국가 해법’을 제시했다. 당시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갈등의 원인은 정착촌 건설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에 있다”면서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도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사주했다”고 말한 바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바지 벗고 지하철 타기, 세계 주요 도시 진풍경…한국에서도?

    바지 벗고 지하철 타기, 세계 주요 도시 진풍경…한국에서도?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비엔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지하철에 팬티 차림의 시민들이 나타났다. 매년 1월 열리는 ‘바지 안 입고 지하철 타기’(No Pants Subway Ride) 퍼포먼스가 올해도 열린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14년 동안 계속된 전통 있는 행사다. 이 행사는 2002년 미국 뉴욕에서 7명이 공공장소에서 웃음을 줄 목적으로 시작했다. 매년 1월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현재 전 세계 60여개 도시에서 수 천명이 참가하는 글로벌 행사로 확대됐다. 참가자들은 지하철에 타서 바지를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 된다. 답답한 일상에서 하루 정도는 바지를 벗고 해방감을 맛보자는 취지다. 실제로 사진을 보면 바지를 벗은 사람들이 지하철과 역을 활보한다. 이 모습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다른 시민들과 경찰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이 행사가 열리기 어렵다. 바지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것은 선정적이라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일본에서는 ‘바지를 입지 않고 야마노테선(도쿄 시내를 지나는 지하철 노선)을 타자. 10일 오후 1시에 오오츠카역에 집합’이라는 인터넷 글이 올라왔었다. 일본 당국은 경찰 60여명을 도쿄 시내 전철에 배치했고 결국 한명도 바지를 벗고 지하철역에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지를 벗고 지하철을 타면 형법에서 정한 공연음란죄 위반으로 걸릴 수 있다. 이 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아시아인들이여, 인권을 자각하자/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시아인들이여, 인권을 자각하자/박홍환 논설위원

    독일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였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2년 6월 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스로 유럽 각지의 유대인 500만명을 폴란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했다고 자랑했던 그이다. 이런 악(惡)의 화신이 또 있을까 싶지만 1961년 4월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선 그는 그저 그렇게 생긴 평범한 중년의 게르만 남성에 불과했다. 그는 7개월간 계속된 재판에서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자신이 사지로 내몰았던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의 피 끓는 분노의 증언이 쏟아졌지만 그는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르는 ‘명령수행자’였을 뿐이라고 끝까지 항변했다. 이런 그에 대해 재판을 지켜본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생각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은 수많은 독일의 소시민들로 인해 보편적 인권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나치즘의 광기가 한 시대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히틀러의 무장친위대에 복무했던 사실을 2006년에야 고백한 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 또한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거짓된 것만을 아는 데 만족했다”며 자책하지 않았던가. 이 시점에 50여년 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단지 엊그제가 아렌트의 40주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편적 인권은 결국 대중들의 사유와 자각을 통해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 그라스는 “나중에 전범 재판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치 범죄의 진상을 깨달았다”며 알려고 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광기의 시대가 또 올 수 있다는 경종으로도 들린다. 유럽 못지않게 아시아 역시 지난 세기 광기에 휩쓸려 반인륜적 집단범죄가 잇따랐다. 일제의 난징대학살이 대표적일 것이다. 집단말살이 서슴없이 자행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는 또 어떤가. 그럼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반성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상흔은 짙게 남아 있다. 반성은커녕 ‘후손들에게 사죄의 부담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일본이다. 이런 아베 정권에 박수를 보내는 일본의 우익은 나치즘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 대중들의 무사유를 연상시킨다. 아시아에서 또다시 인권말살의 참혹한 풍경이 재현되어선 안 된다. 범죄를 범죄로 알아보지 못하고, 왜? 하고 묻지 않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절대 안 된다. 보편적 인권 보장은 비단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시아인 전체의 책무이기도 하다. 유럽은 전후 청산과 동시에 지역 전체의 인권 보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1953년 인권조약이 발효됐고 1959년에는 유럽회의 산하에 유럽인권재판소를 창설했다. 유럽은 지금 각국의 상호 감시 및 압박을 통해 개개인의 인권까지 보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가 못 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프라이부르크대학 초청 특강을 통해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의 필요성을 밝혔다.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은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총회에서도 우리가 제안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국가 간 정치·종교·문화·역사적 차이를 고려해 집단말살 금지, 여성 및 아동에 대한 보호 등 어느 국가도 반대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기준으로 출발해 차츰 보편적 인권 전반을 다루는 명실상부한 지역인권보장기구로 키워 나가자는 것이다. 집단의 슬기는 집단의 광기를 물리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위안부와 같은 세계사적인 여성인권 유린 행위나 제2의 난징대학살, 제2의 킬링필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아시아인들의 악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경시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시아인들이 깨어나야 한다. ‘악은 주변에 있다’는 아렌트의 경고를 허투루 흘려선 안 된다.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6명만 남았을 뿐이다. 이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기 전 아시아인들이 힘을 모아 인권보장의 새 지평을 열 수 있길 소망한다. stinger@seoul.co.kr
  • [새 영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새 영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범죄 스릴러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멕시코 후아레스가 주된 배경이다. 리오그란데 강을 사이에 두고 미국 텍사스 앨파소와 지척에서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한때 호황을 누렸다는 이 도시에는 마약 카르텔이 저지르는 온갖 끔찍한 사건들로 넘쳐난다. 영화는 미국 영토에서 참혹한 학살 사건을 일으킨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두목을 없애기 위해 후아레스에서 펼쳐지는 미국 측의 비밀 작전을 다루고 있다. 원칙을 지키려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무법에 무법으로 맞서려는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작전 총책임자인 맷(조슈 브롤린)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작전 컨설턴트로 불리는 멕시코 검사 출신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가 맷의 곁에서 영화 내내 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이 영화는 왠지 모르게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2012)와 여러모로 닮았다. 초입의 대형 폭발 장면을 비롯해 영화가 품고 있는 묵직한 긴장감, 사실적이면서도 황량하고 건조한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악을 무너뜨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놓고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점 또한 이러한 느낌을 부채질한다. 9·11 테러를 일으켰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기까지의 추적 과정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이 목도한 불법에 젖어들지만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여주인공은 그렇지 않다는 게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이다. 과장되지 않은 총격전 장면에서는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1995)와 장면이 겹치기도 한다. 그런데 에밀리 블런트의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가다가 보면 어느새 베니치오 델 토로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기-승-전-델 토로로 매듭지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관객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듯하다. 시카리오는 암살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로마군을 암살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을 일컫던 ‘질럿’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쌍둥이의 영정을 그린 ‘그을린 사랑’(2010)을 통해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한국에선 할리우드 진출작인 ‘프리즈너스’(2013)로 인지도를 넓혔다. 보스턴 여아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선 휴 잭맨과 제이크 질랜할의 연기 대결이 볼만했다. 12월 3일 개봉. 121분. 청소년 관람 불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팔 분쟁이 낳은 참극…오열하는 여군 병사

    이-팔 분쟁이 낳은 참극…오열하는 여군 병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잇단 희생자를 낳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잇는 443고속도로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한 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 남성의 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현장에는 시신을 본 한 여군이 울음을 터뜨리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 모습은 여러 외신을 통해서 공개됐다. 사망한 이스라엘 군인은 올해 18세로 당시 함께 있었던 다른 여군은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을 습격한 남성은 이후 다른 두 여성을 습격하다가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오전 예루살렘 중심에 있는 유대인 시장에서는 2명의 팔레스타인 여학생이 70대 팔레스타인 남성에게 가위를 휘둘렀다가 이스라엘 경찰의 총격을 받고 소녀 1명이 숨지고 나머지 1명은 부상을 당했다. 이 소녀들은 자신들이 공격한 남성이 이스라엘인인 줄로 착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요르단 강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부근에서도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이스라엘인 습격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먼저 1명의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병사 1명이 사망했으며, 이어 또 다른 팔레스타인 남성은 행인들을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한 뒤 도주했다. 최근 두 달간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이스라엘인 습격사건과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들 간 무력충돌로 이스라엘인 20명, 미국인 1명, 팔레스타인인 최소 9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신자유주의 삼킨 사회 지독한 괴물을 내뱉다

    신자유주의 삼킨 사회 지독한 괴물을 내뱉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파울 페르하에허 지음/장혜경 옮김/반비/288쪽/1만 7000원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은 지난 16일 박모(55)씨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다. 지난해 말 동거녀를 살해한 뒤 끔찍한 방법으로 사체를 훼손한 박씨의 사이코패스 여부를 감정하기 위해서였다. 박씨가 당시 어떤 심리 상태에서 범행했으며 그 상태를 유발하는 근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분석해 범죄의 고의성 여부 등을 따져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재판부의 뜻이 담겨 있다. 전문의의 문답형 정신감정 대신 뇌 영상 자료를 직접 재판에 활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82)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평범한 대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간수 역할과 죄수 역할을 맡기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인간 본성의 비밀스러운 밑바닥을 슬쩍 엿보기도 했다. 이렇듯 인간의 존재 및 본성에 대한 탐구는 인류가 지속되는 한 멈출 수 없는 과제다.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 쓰인 수천 년 된 글귀는 ‘그노티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이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는 타자(他者)다’라고 썼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는 결국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간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과제는 공통되지만 현상에 대한 접근 및 원인에 대한 진단도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내놓는 해법과 대안도, 당연히, 제각각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일으키는 대량 학살, 테러, 묻지마 살인 등 각종 반사회적 범죄는 말할 것도 없다. 평범한 어른들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음해하고 비난하기 일쑤며 어린아이들도 학교 안에서 폭력, 왕따 등을 죄의식 없이 행하고 있다. 성과에 집착하는 교수나 연구자들은 논문을 베끼거나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특정한 문제가 있는 몇몇 개인의 문제를 떠나 보편적인 윤리와 질서의 도착 현상과 그 배경이 된 제도적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벨기에 헨트대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현재 인류가 처한 세상을 ‘엔론 사회’로 규정한다. 2001년 수조 원대 회계부정 스캔들을 일으키며 9·11테러 못지않게 세계적인 충격을 줬던 바로 그 엔론 기업을 소환해 냈다. 스스로 ‘도발적인 명명’이라고 하면서도 이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엔론 기업에서 더욱 주목하는 부분은 최고의 생산성을 올린 직원에게 보너스를 몰아주고 생산성이 제일 낮은 10%의 직원은 해고하는 방식의 인사정책을 삼은 모습이다. 대규모 회계부정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고, 모든 직원이 성과 평가의 수치 조작 욕망에 내몰렸다. 이러한 ‘엔론 모델’이 여전히 상당수 기업에서 준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개탄하며, 주식시세표처럼 등수가 매겨지며 지식공장 또는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 이윤을 남기는 기업의 가치를 좇는 병원 등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탐욕과 허영심이 빚어낸 신자유주의적 시스템과 능력주의라는 허구성에 기대 사회의 작동원리로 삼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거기에 인간 본성의 파괴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묻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직설적으로 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기대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는 철학과 윤리학, 종교학 등을 씨줄 삼고 뇌과학, 동물행동학,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틀을 날줄 삼아 이를 차근차근 입증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무한경쟁과 물신주의, 탐욕적인 이익 추구 등에 벌거벗겨진 채 내몰린 개인들은 능력주의와 패배주의라는 이율배반적 정체성을 갖고 두 극단을 오가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지켜본 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전하는 한편 아이히만에게는 ‘무사유의 죄’를 물었다.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지며 보편화되고 제도화된 악에 대해 ‘무연대의 죄’를 묻는다. 즉, 대안에 대해 냉소하며 공동체의 목표를 설정하고서 타인과 연대하지 않은 채 고립을 자초하는 개인의 책임을 묻고 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개인이 풀어야 한다. 연대가 혁명의 출발선이니까.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역사 전쟁과 진실의 연못/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역사 전쟁과 진실의 연못/이지운 정치부 차장

    영화 ‘아이히만 쇼’는 1961년 진행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실제 재판을 37개국 시청자에게 전달한 세계 최초의 TV 생방송 이벤트를 다루고 있다. 올해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을 맞아 영국 BBC에서 기획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지난 7월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 ‘송 포유’의 감독 폴 앤드루 윌리엄스가 만들었다. ‘아이히만 쇼’는 어떤 면에서 같은 재판을 소재로 3년 앞서 나온 ‘한나 아렌트’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이 영화는 2013년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소개됐다.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했다. 두 영화는 관람자들에게 거악이 특별한지, 평범한지를 고민케 하는 괴로움을 던진다. 이 점에서라면 개인적으로는 영화 한나 아렌트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지만 대신 아이히만 쇼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남겼다. 영화속 ‘쇼’의 촬영감독과 그가 묵고 있던 호텔 여주인 간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깨고 TV 쇼가 성공을 거두자 호텔 여주인은 촬영감독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TV 쇼 전후의 예루살렘’ 반응을 설명해 준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여주인이 예루살렘에 정착한 뒤 자신이 겪은 일들을 얘기하자 주변의 반응은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 여주인은 입을 닫고 살았다. 아이히만의 재판이 있기 전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대학살을 유대인조차 전반적으로 공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재판을 통해 112명의 증언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되지 않았다면 아우슈비츠의 사건을 인류가 공유하는 데 17년 훨씬 더 넘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아이히만을 기어이 찾아낸 이스라엘의 노력과 성과가 새삼 위대해 보였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유대인은 독일로부터 진실한 사과를 거듭 반복해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대인들이 받고 있는 역사의 응당한 대접이,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구걸하다시피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더욱 처연하게 만든다. 더 명확한 증거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기존의 증거라도 우리 스스로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과, 세계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를 앞두고 우리의 외교적 입장을 정확히 알리기 위해” 아시아·태평양뉴스통신사기구(OANA)와 마련한 인터뷰에서다. 15~16일 G20 회의장에서도 그랬고, 앞으로 많은 다자 외교 현장마다 아베 총리와 나란히 앉아 눈도 마주치고 악수도 해야 하지만 이 압박 행위는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실로 안팎으로 ‘역사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안으로든 밖으로든 현실적으로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한 것은 안으로 좌우의 대립이거나 밖으로 한·일 간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질적으로는 사실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싸움이다. 주장이든 증거든 진실의 연못에 뒤엉켜 빠져들면 진실이 아닌 것은 가라앉게 돼 있다. 그렇게 해서 역사적 사실이 이기도록 하는 것 말고는 이 전쟁은 다른 방법이 없다. 빼앗긴 진실은 빼앗아 와야 하고, 지구 반대편에 숨은 아이히만은 찾아내야 한다. jj@seoul.co.kr
  •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교황 “프랑스 위해 기도”… 쿡 “우리는 파리지앵” 트윗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발생한 사상 최악의 연쇄 테러로 전 세계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나는 프랑스 국민과 희생자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매우 슬프다”며 비통해했다고 바티칸 라디오가 보도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13일 밤 시민 500명이 모여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킨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추모 집회를 열었다. 드니 코데르 몬트리올 시장은 “테러범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프랑스 국가를 합창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프랑스인 유학생 수십 명이 모여 추모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인도의 모래 예술가는 인도 부바네스와르에서 ‘테러를 종식하라’ 등의 문구를 새겨 넣은 모래 조각 작품을 완성해 희생자 추모와 반테러 의지를 표시했다. 이번 테러로 숨진 미국인 교환학생이 소속된 대학이 추모집회를 열었다.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CSULB)의 제인 클로스 코널리 총장은 이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이 대학의 디자인 전공 3학년생 노에미 곤살레스(23·여)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고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드레이크 대학에서 이날 밤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2차 TV토론은 전날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발생한 테러 여파로 인해 다소 절제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CBS 방송 주최로 진행된 토론회는 먼저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진 뒤 이슈 토론에 들어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추모 글이 넘쳐났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파리와 희생자,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며 “우리는 모두 파리지앵이다”라는 문장을 프랑스어로 덧붙였다. 해리포터의 배우 에마 왓슨은 ‘특정 단어에 대한 글’이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를 올린 뒤 파리 주재 영국·아일랜드·미국·호주·캐나다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올렸다. 일반인들도 트위터를 통해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프랑스다” 등의 해시태그를 통해 현지 상황을 공유하거나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계적 건물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흰색, 붉은색 조명을 점등했다.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 호주 캔버라의 국가종탑, 중국 상하이 둥팡밍주 타워 등에도 삼색 조명이 비춰졌다. 뉴욕의 9·11테러 자리에 새로 세워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 런던의 명물 관람차 런던아이,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도 추모 조명을 점등했다. 반면 조명을 모두 끄고 어두운 모습으로 희생자를 기린 곳도 있었다. 한때 삼색조명을 환하게 점등했던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이날 밤에는 조명을 모두 끈 채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팔, 美 인권 운동가 죽이다

    이·팔, 美 인권 운동가 죽이다

    악화 일로를 걷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 사태에 휩쓸려 평화 공존을 부르짖던 70대 인권운동가가 목숨을 잃었다. AP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의 한 버스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에서 중상을 입은 미국인 리처드 라킨(76)이 27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라킨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평화행진에 참여하고 학생들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선 평화주의자였다. 미국 코네티컷주 글래스턴베리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 1984년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 이후 무슬림과 유대인을 한 교실에 모아 놓고 영어를 가르치며 화해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사고 당시 라킨은 예루살렘에서 병원 진료를 마치고 버스로 귀가하던 도중 팔레스타인 남성 2명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얼굴과 몸 곳곳을 흉기로 난자당했다. 범인들이 라킨을 유대인으로 착각하고 ‘묻지마’ 범행을 벌인 탓이다. 이 사건으로 라킨을 포함해 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다쳤다. 현재 라킨의 페이스북에는 이스라엘과 아랍계 어린이들이 ‘공존’이라는 글자 아래에서 껴안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소식에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 수천명이 유족에게 충격과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유대교 랍비인 리처드 플래빈은 고인이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인 ‘프리덤 라이드’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또 생전 라킨이 1967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기 국가를 세워 분쟁을 끝내자는 ‘2국가 해법’을 신봉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아들인 마이카 아브니는 AP에 “아버지는 평화와 친절함, 사람 자체를 열렬히 신봉했고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한 번도 다치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등의 집계에 따르면 이달 초 동예루살렘 알아끄사 사원을 둘러싸고 격화된 양측의 충돌로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55명과 이스라엘인 11명이 숨지고 2000명 넘게 다쳤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케리의 지혜’, 분쟁의 해법 찾나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템플마운트) 성지를 둘러싸고 격화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 사태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극적 중재로 해법을 모색하게 됐다..  AP 등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슬람과 유대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내부에 24시간 작동하는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는 방안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 지역 관리를 공식적으로 책임진 요르단과 긴장 완화 조치에 합의한 덕분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추후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무력 개입 수위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스라엘은 케리 장관과 네타냐후 총리의 베를린 회동 직후인 23일부터 알아크사 사원에 팔레스타인인의 출입을 전면 허용했다.  합의의 단초는 케리 미 국무장관이 제공했다. 앞서 24일 요르단 수도 암만을 전격 방문해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회동한 뒤 긴장 완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이 24시간 CCTV 설치안을 내놨고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중재는 케리 장관의 몫이었다.  케리 장관은 앞서 22일 네타냐후 총리를, 24일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연이어 만나는 등 양측의 유혈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이어 이스라엘도 이날 ▲요르단의 성지 관리인 역할을 존중 ▲성지에서 예배자들의 규칙을 존중▲성지를 분리할 의도가 없음을 인정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회해의 첫걸음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현 상태를 불안케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고 도발하는 측이 어디인지를 밝히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모셰 야알론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사원 내부에 CCTV를 가동하면 관리 책임이 있는 요르단이 상황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측은 그러나 알아크사 사원의 CCTV가 이스라엘의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될 것이라며 양측의 유혈충돌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스라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격화되는 물리적 충돌의 중심지다. 지난달부터 이곳에서 이어진 유혈사태로 60명이 숨졌고 이중 51명이 팔레스타인인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중재자 없는 이-팔 ‘피의 보복’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에서 17일(현지시간) 흉기를 휘두른 팔레스타인 사람은 5명이었고 이 가운데 최소 3명이 이스라엘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한 달 동안 주로 팔레스타인 십대의 흉기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8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당국의 발포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39명이다. 최근 부쩍 유혈 충돌이 잦아지면서 발생하는 ‘피의 보복’의 양상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최근 폭력 사태가 잇따르는 이유는. -지난해 7월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십대 3명을 납치해 살해했고, 몇 주 뒤 유대 극단주의자들이 17세 팔레스타인 소년을 납치해 살해했다. 갈등이 깊어지던 차에 지난달 13일 유대 극우주의자들이 예루살렘 구시가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할 권리’를 주장하자 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이 충돌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지어졌던 이 사원은 이슬람교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을 유대 교회로 변경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곳곳에서 벌어진 소요를 이스라엘이 강경 진압하며 보복전이 이어지고 있다.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또 다른 일전인가. -이스라엘 정보 당국에 따르면 최근 소요를 주도하는 조직적인 배후단체는 파악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사정을 파악하고 서로 따라 하는 식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례가 많다. 과거 하마스처럼 주도세력이 분명했던 인티파다(무장 민중 봉기)가 재현되기에는 팔레스타인 측 조직력이 약화됐다고 보는 견해도 여기에서 나왔다. → 소요 사태를 풀 중재자가 있나. -없다. 이 지역에선 참견은 많고 조율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6일 긴급회의를 소집했지만 폭력 종식을 위한 실효적 행동을 취하겠다는 결단은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개의 국가’에 대한 기대는 양측 모두에서 줄었고, 양측 시민은 무장 중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팔 청춘, 또 핏빛 봉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며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가능성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공습에 즉각 대응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조직되지 않은 열정’이 1, 2차 인티파다와 다른 양태의 3차 인티파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알자지라는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북쪽 검문소에서 13세 소년인 아마드 샤라케가 시위 중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숨졌고, 이스라엘 북부 하데라에선 20세 아랍계 청년이 이스라엘인 4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열흘 동안 팔레스타인인 22명과 이스라엘인 4명이 숨졌고, 부상자 수백 명 중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 정치 지도자들은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정착촌 활동을 중지하지 않음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2국가 체제를 선언한 오슬로 협정은 무효가 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의 아랍계 거주 지역에 수천 명의 군·경찰 병력을 추가 배치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정책으로 대응했다. 영국 가디언은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센터(PCPSR)가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화 없는 인티파다를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이 석달 전 49%에서 최근 57%로 늘었다고 밝혔다. 3차 인티파다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3차 인티파다 가능성에 회의적인 전망도 많다. 중동모니터는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이 과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나 하마스가 쓰던 조직화된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대응하기보다 차를 몰고 돌진하는 등 개인적 분노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복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과거 인티파다와 달라진 행태를 전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임신부·2세 아이까지… 이·팔 다시 ‘피의 악순환’

    임신부·2세 아이까지… 이·팔 다시 ‘피의 악순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최근 다시 격화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모녀가 사망했다. 예루살렘 등지에서 이스라엘인을 겨냥한 공격 사건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3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시작한 것으로 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전했다. 11일 오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근 주택이 무너지면서 임신부 누르 하산(30)과 딸 라하프 하산(2)이 숨졌다고 dpa, AFP 등이 현지 의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공습이 지난 10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가 발사된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하마스의 무기 제조 시설 2곳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보복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양측의 사상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0일 가자지구에서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던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2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사망했으며 동예루살렘 구시가에서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 10대 2명이 이스라엘인에게 흉기 공격을 벌인 후 경찰에 사살됐다. 지난 12일간 양측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22명과 이스라엘인 4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와 AP 등이 보도했다.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자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각각 전화해 “폭력 행위에 대한 강한 비난과 선동 행위에 대한 대응 그리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긍정적 조치들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고 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②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Masada 마사다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②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Masada 마사다

    ●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광야Judean Desert를 지나 사해Dead Sea로 예루살렘을 벗어나 동쪽으로 달린다.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할 듯 삭막하고 건조한 풍광이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광야Judean Desert’라 부르는 암석사막이다. 예로부터 하느님께 몸을 바치려는 자들에게 황폐하고 쓸쓸한 유대광야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들은 광야의 절벽을 깎고 수도원을 만들고 기도했다. 예수가 40일간 금식하고, 악마의 시험을 받으며 깨달음을 얻은 곳도 유대광야다. 그는 광야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광야의 끝에 사해가 나타난다. 해발 820m의 예루살렘에서 해발 마이너스 423m의 지하세계로 간다. 사해로 가는 길은 해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사는 곳 중 가장 낮은 곳이 사해다. ‘죽은 바다Dead Sea’라는 무서운 이름과 달리 사해는 곱디고운 옥빛이다. 색이 너무 예뻐 깜짝 놀랐다. 죽음의 색이 이런 거라면 지구상에서 죽음이 가장 매혹적으로 여겨질 곳이 사해일지도 모르겠다. 에인 보켁Ein Bokek의 관광단지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챙겨 입고 5분 거리의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말 둥둥 떠 있다. 바닷물 속에서 수영은 하지 않고 가만히 둥둥 떠 있는 사람들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해 바닷물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진한 염도 때문인지 미끈미끈한 바닷물이 기름처럼 쩍쩍 몸에 달라붙는 것 같다. 문득 궁금하다. 이 소금물 속에 얼굴을 담가 보면 어떨까? 장난기가 발동해 눈을 감고 얼굴을 넣어 본다. 아, 순식간에 눈가가 짜릿짜릿하다. 눈을 감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 오산이다. 내 손을 잡아끄는 누군가에 이끌려 샤워장으로 갔다. “여기서 수영할 수 없는 걸 몰랐어요?” “저 앞에 대기 중인 앰뷸런스 못 봤어요?” 눈에 스며든 염분을 씻어 내느라 경황없는 내게 그는 몇 번이나 괜찮은지를 되묻는다. 그는 내가 수영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느 한국 신문에선가는 사해 물에 빠지면 실명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던데 나는 말짱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사해 물 속에 얼굴을 담글 일은 없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해의 남북 길이는 약 80km, 폭은 17km 정도다. 크고 넓다. 장소에 따라 사해 소금물은 여러 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염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해의 염도는 대략 33.7%, 보통 바다의 8배로 1리터당 340g의 염분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다. 수영을 할 순 없지만 사해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먹지 않는 건 머드팩이다. 사해 바다 속 진흙은 염화마그네슘, 염화나트륨, 염화칼슘 등 무기질을 풍부히 갖고 있어 피부 미용에 좋다. 생명은 살지 않는데 미용에는 좋다는 곳이 사해다. 사해 건너편은 요르단이다. 동편이니 요르단 저 편에서 해가 떠오를 게 분명하다. 새벽 5시, 다시 사해 바닷가로 나간다. 소금 덩어리가 바닷물 속에 응결된 소금꽃 바닷물 속에 둥둥 뜬 채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 이 순간을 위해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될 만큼 기억에 남은 순간이다. ●Masada 마사다 유대인의 초상, 마사다Masada 사해를 떠나 갈릴리에 도착하기 전에 들른 곳이 있다. 두 개의 사해 사이에 있는 마사다Masada다. 마사다는 사해 서쪽, 깎아 세운 듯 가파른 고원에 지어진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다.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 정상으로 향한다. 꼭대기에 오르니 서쪽으로는 계단 모양의 단구와 구릉이 많은 유대광야가, 동쪽으로는 옥빛의 사해가 펼쳐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동서남북의 끝은 모두 가파른 벼랑이다. 사해 수면을 기준으로 450m 높이에 건설된 마사다 요새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650m, 300m 정도로 사막에 있는 요새라 하기에 장대한 규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케이블카 오른편의 ‘북쪽 궁전’은 벼랑의 단구를 깎아 3개 층으로 만들었다. 북쪽 궁전 외 서쪽에도 궁전이 있다. 웨스턴 게이트 부근이다. 고대 로마 양식으로 지은 마사다의 궁전은 흔히 헤롯의 ‘요새 궁전’이라 불린다. 궁전 외에도 유대교 회당, 남쪽 물 저장고, 대중목욕탕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마사다 요새 서쪽 아래로는 로마군이 마사다를 공격할 때 사용한 공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마사다는 기원 후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끝까지 로마에 맞선 유대인 전사들의 마지막 항전지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대인 반란군은 마사다에 모여 결사항전을 다짐했고, 로마군은 철벽 요새인 마사다 서쪽 웨스턴 게이트 옆에 돌과 흙을 다져 댐을 쌓듯 거대한 경사로를 만들어 공격한다. 기원 후 73년 항전의 마지막 날,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할 지경에 이른 960명의 유대인은 집단 자결한다. 로마군은 마사다를 포위한 지 3년 만에 성벽을 넘었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수많은 시신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노예로서 목숨을 연장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를 명예로운 죽음으로 기억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사다는 압제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상징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마사다 함락 이후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로마군은 40년에 걸쳐 마사다에 주둔하다 철수하고, 마사다는 버려진다. 그 후 몇몇 크리스천 공동체가 마사다에서 생활하기도 했으나 이들마저도 사라지고 1960년대 초반,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인 야딘의 주도하에 발굴이 시작될 때까지 마사다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다. 정작 1960년대 발굴시 집단 자결한 이들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마사다는 영원한 성지이자 고대 유대 왕국의 증거다. 오늘날 마사다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신병 훈련을 마치는 장소로 종종 사용된다. 그들이 훈련을 마치며 외치는 말이 있다. “마사다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사막과 사해, 만년설, 지중해, 갈릴리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국토는 작으나 지형과 기후, 문화는 매우 다채롭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분쟁만 없다면 이스라엘은 완벽한 여행지다. 이스라엘을 3일간 여행한다면 하루는 지중해, 하루는 사해, 하루는 사막에 갈 수 있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안식일에는 노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오늘은 보통 커피밖에 없습니다. 샤밧안식일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지 않거든요.” 다른 곳도 아닌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의 일이다. 안식일이면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에 멈춘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생산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이서 하느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여기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막연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멀었다. 물리적 거리만큼 심정적 거리도 멀다. 나는 더욱이 기독교 신자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니 이스라엘 성지순례 같은 로망도 없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년 유엔을 인용한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이스라엘군은 51일 동안 가자 지구를 6,000번 이상 공습, 5만번 이상 폭격했고, 민간인 희생자의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수천 발의 로켓과 박격포 사격으로 반격을 했다지만 과연 성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스라엘 쪽의 처지도 간단치 않다. 남쪽으론 이집트의 시나위 사막, 동쪽으론 요르단, 북쪽으론 시리아, 레바논과 국경을 마주한다. 모두 아랍 국가다. 서쪽으론 지중해 바다이니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겉으로 드러난 형세만 보면 이스라엘은 거대한 아랍 국가들에 포위된 작은 섬이다. 이래저래 숨이 팍팍 막힐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에는 인터넷, 신문, 컴퓨터도 없는 유대인 마을이 있다. 아무리 ‘정통’ 유대인이라 해도 인터넷을 안하는 청춘이라니?! 이들은 피임도 하지 않기에 마을에 가면 열 명씩 아이를 낳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정통 유대인들은 14세기 복장을 하고, 미간에 성경을 붙이고 산다. 성경에서 수염 양 편을 깎지 말라고 했다고 여전히 수염을 기른다. 남들이 뭐라 하건 기도하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만 보면 하느님께 더 이상 독실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까?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Jerusalem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새벽 5시, 잠에서 깼다. 시차 따위는 잊고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두운 올리브산 뒤편으로 붉은색 기운이 피어오른다. 예루살렘 성벽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20분쯤 걸었을까. 야파 게이트Jaffa Gate가 나온다. 드디어 3000년 고도, 예루살렘과 만났다. 미명 속의 예루살렘 구시가지 골목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게 만든다. 네모난 돌을 쌓아 지은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오렌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야파 게이트를 통과해 시온 게이트로 가는 길은 아르메니아인 지역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에 아르메니아인 살고 있다니?! 알고 보니 구시가지 성벽 안에는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지역, 기독교인 지역도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 곳이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십자가의 길’을 찾아오는 순례자 행렬은 일 년 내내 끝없이 이어진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친 장소 역시 황금돔 사원 자리다. 그런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에서도 신성시하는 곳이 바로 이 자리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슬람교도에게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고, 예언자 마호메트(정확한 발음은 ‘무함마드’에 가깝다)가 천국으로 승천한 곳이다. 성전산Temple Mount에 세운 황금돔 아래 동굴에서 마호메트가 말의 형상을 한 동물을 타고 천사와 함께 천장의 구멍을 통해 승천했다고 한다. 632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 성전 터에 황금돔 사원Dome of the Rock을 지었다. 황금돔 사원 안에 있는 엘 악사El Aqsa 모스크는 메카, 메디나를 잇는 세 번째 모스크로 마호메트가 승천한 바위 터에 세웠다.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황금돔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발원지, 최고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기원전 996년에 다윗 왕이 유대민족을 위해 세운 도시다. 하지만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서쪽 벽을 제외하고 완전히 파괴된다. 결국 2000년 전 유대인 성전이었던 곳에 현재는 이슬람 황금돔이 서 있다. 유대의 성전에 갈 수 없는 유대인들이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벽이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은 유대교, 안은 이슬람 사원인 셈이다.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다. 황금돔은 예루살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예루살렘의 상징이지만 그 의미를 외국인이 이해하기란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시가지의 성벽을 벗어나 신시가지의 쇼핑몰 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이곳이 3000년 고도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로마식 아치, 비잔틴식 해자, 십자군과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쌓은 성벽과 신시가지의 이스라엘 뮤지엄, 성서의 전당 등 예루살렘은 거대하고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도시다. 성경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 예루살렘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독실한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삶이 신앙이고 기도인 사람들. 이들은 길을 걸으며 성경을 읽는다. 이마에 성경 구절을 이고 산다. 율법 토라는 이들의 삶 자체다. 통곡의 벽에 가면 이들이 머리를 세게 흔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는 기이하고 과장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머리를 흔드는 건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의미다. 하루에 세 번씩 이렇게 전력을 다해 기도한다. 검은색 옷은 겸손한 삶에 대한 다짐이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을 잘 섬기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인 ‘키파Kippah’는 ‘하느님의 종’이란 의미다. 하느님이 자신들 위에 계시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 머리와 팔에 붙이는 ‘테필린Tefillin’ 안에는 성경 구절이 담겨 있다. 테필린을 팔에 감는 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꽉 조인다고 할 정도로, 얼핏 봐서는 아플 정도로 세게 감는다. 하느님에 대한 강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독실한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구 전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들과 이스라엘을 동격시 할 순 없다. 재미있는 건 테필린의 종류도 가격별로 아주 다양하단 사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④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④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Tel Aviv·Jaffa 텔아비브·야파 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텔아비브에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온다 하면 그때는 가자나 서안지구를 보고 싶었지 이스라엘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별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텔아비브에 와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선 좀 살아 봐도 좋겠구나.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다. 지중해를 따라 남북으로 14km에 걸쳐 아름답게 펼쳐진다.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분위기만으로 텔아비브에 홀리는 여행객은 적잖을 게 분명하다. 지중해의 하얀 햇빛은 텔아비브 어디서나 찬란하게 빛났다. 색색의 파라솔이 가득한 텔아비브의 비치는 지중해의 여느 휴양지 같다. 외양만 보면 여기를 하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북쪽의 야르콘강에서 출발해 비치를 따라 남쪽의 야파까지 두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텔아비브 여행을 시작했다. 카르멜 시장과 야파의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바닷가를 산책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뒤편, 네베 쩨덱Neve Tsedek은 1887년 고대 항구인 야파를 벗어나 유대인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이다. 텔아비브는 바로 네베 쩨덱에서 시작됐다.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뉴욕이라면 네베 쩨덱은 텔아비브의 소호다. 1900년대 초반부터 많은 예술가, 작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슈무엘 아그논Shmuel Agnon, 1888~1970년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도 있었다. 뉴욕의 소호나 이스트 빌리지 같은 분위기를 간직한 네베 쩨덱은 텔아비브에서 가장 세련되고 활기찬 거리다. 유명한 문화 학회, 디자이너 부티크, 갤러리, 숍, 카페와 레스토랑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텔아비브 남쪽은 고대 도시 야파Jaffa다. 야파의 옛 이름은 욥바Joppa. 야파의 역사는 3,000년 전 시작된다. 1909년 야파에 살던 유대인들이 현재의 텔아비브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하면서 텔아비브란 도시가 탄생했다. 백색의 도시, 텔아비브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50년 텔아비브와 야파는 통합되어 텔아비브-야파로 이름을 바꾼다. 텔아비브에 머무는 동안 느닷없이 나이트클럽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 온 ‘나이트 라이프 전문’ 여기자, 그리고 ‘텔아비브 나이트 라이프’ 담당 공무원과 함께 텔아비브의 각양각색 클럽을 돌아다녔다. 유흥과는 담쌓고 지낼 것 같은 이스라엘에 와서 클럽 호핑을 할 줄이야!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는 건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텔아비브의 밤은 뜨겁고, 아주 유혹적이다. 벤구리온 공항에 내릴 때 잠시나마 가졌던 긴장이 새삼스럽다. 텔아비브를 싸돌아다니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의 입장이 되어 폭탄 테러를 돌이켜 생각하게 됐다. 여느 지중해의 휴양지 같은 이곳에도 분쟁의 흔적과 기억은 남아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이 땅은 ‘팔레스티나’라고 불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땅을 여전히 팔레스티나라고 부를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복잡하다. 10년 전 일이라곤 하나 인터콘티넨탈 호텔 근처 바닷가의 나이트클럽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있었다. 어제 오늘 내가 산책을 하며 오갔던 곳이라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1948년 5월14일 다비드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곳도 텔아비브이고, 1995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모색하던 전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 극우 유대 청년인 아미르에게 희생된 곳도 텔아비브다. 여담이지만 현재 아미르는 감옥에서 풀려나왔고, 자신의 변호사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135개국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의 이스라엘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135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가의 존재 자체가 다문화국가이니 생활환경도 국제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에서도 텔아비브는 이런 국제적 분위기의 정점에 놓인 도시다. 게다가 평균연령 28.3세의 매우 젊은, 어쩌면 청춘의 도시다. 팔레스타인 문제만 없다면, 문화적 다양성만으로 보면 텔아비브는 ‘리틀 뉴욕’ 같다. 텔아비브는 뉴욕처럼 ‘잠들지 않는 도시’다. 금년에는 동성애자 축제인 ‘마디 그라 텔아비브’ 페스티벌이 처음으로 열렸다. ‘하느님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렸다는 게 나로선 무척 신기하다. 미국이 그렇듯 이스라엘 역시 국내적으론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유대인들은 텔아비브 시청사 앞에서 “인종차별을 하지 말라”고 시위한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처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백인 출신 유대인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완전히 다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불만은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에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인구 740만 중 20%는 아랍인이다.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이란 모순을 안고 사는 이들이다.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다름 아닌 아랍어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과 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인터콘티넨털 호텔 바로 옆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 이스라엘 국민 중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유대교도 중에서도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정통 유대교도’는 겨우 5%에 불과하다. 아랍인은 무슬림, 기독교, 드루즈파로 나뉘고 이스라엘의 분류법에 따르면 기독교도마저 아랍인으로 간주된다. 유대교에서 말하는 성서는 구약만을 뜻하며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예수는 여러 선지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 모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막과 사해, 지중해, 갈릴리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국토는 작으나 이스라엘의 지형과 기후, 문화는 매우 다채롭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분쟁만 없다면 이스라엘은 완벽한 여행지다. 텔아비브에서 만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필요가 없어요. 이스라엘에는 지중해가 있고 사해가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사막이 있고 바다 같은 갈릴리 호수가 있어요.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는 거죠. 예루살렘에서 두 시간이면 이 모든 곳에 갈 수 있거든요.” 그렇다. 이스라엘을 3일간 여행한다면 하루는 지중해, 하루는 사해, 하루는 사막에 갈 수 있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에서 사람을 만날 때 건네는 인사는 ‘샬롬’이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일주일간의 이스라엘 여행을 마치고, 모두가 자유롭게 될 그날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샬롬, 이스라엘. 샬롬, 팔레스티나. ▶travel info Israel ISRAEL 인구는 724만. 아랍 이슬람, 아랍 기독교, 두르즈, 베두인, 체르체스키, 사마리아, 유대 디아스포라 출신이 모여 산다. 천연 자원은 거의 없지만 개인당 GDP는 2만7,300달러에 달한다. 세 개의 대륙과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곳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매우 복잡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나라다. AIRLINE 화·목·토요일 운행하는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에서 텔아비브까지 약 11시간 걸린다. 이스라엘항공의 경우 베이징을 경유한다. 우즈벡항공이나 타이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다. transportation 이스라엘은 국토 면적이 작아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기에 편리하지만 국내 항공편은 비싸다. 기차 |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안식일과 유대교 휴일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쉐루트(합승택시) | 버스 노선과 같은 구간을 운행한다. 대개 버스 요금과 비슷하거나 저렴하다. 쉐루트가 아닌 보통 택시의 경우 야간, 휴일 그리고 안식일에 25% 할증된다. food 팔라펠felafel |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의 모든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 콩을 저며 양념과 함께 둥글게 빚어 튀겨 만든다. 동그란 피타 빵 안에 넣어 먹는다. 호무스Hummus | 으깬 병아리 콩을 참깨와 함께 반죽해 만든다. 올리브 오일, 파슬리, 피타 빵 등 다른 사이드 메뉴와 함께 먹는다. 코셔Kosher 음식 | 유대교 율법에 의해 먹어도 좋다고 허락된 음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유와 육류를 함께 먹거나 굴을 먹는 것은 금지된다. 코셔 식당에는 그 지역 랍비가 인증한 증명서가 진열돼 있다. immigration 출발 3시간 전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탑승할 항공사 카운터로 가기 전 보안 검사를 받는다. 두 명의 보안 요원은 다음 같은 질문을 번갈아 가며 되풀이한다. “이스라엘에 며칠 있었죠? 이스라엘에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누가 짐을 쌌습니까? 어디서 짐을 쌌습니까? 어디를 방문했습니까? 어느 호텔에서 잠을 잤죠? 일주일 동안 잠을 잔 호텔 이름을 전부 말하세요.” 경우에 따라선 20가지 정도 질문을 할 수 있다. 사전에 이스라엘관광청을 통해 질문 내용을 인지하고 답변을 미리 준비하면 덜 당황할 것이다. 수하물로 부치는 짐은 잠그지 않는 게 좋다. 잠겨 있을 경우 보안 검색 과정에서 보안요원에 의해 파손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입출국 때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주지 않는다. 대신 얼굴 사진이 들어간 스티커 같은 종이를 여권과 함께 건네준다. 이스라엘에 왔다는 흔적은 별지의 스티커 외 여권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SABBATH안식일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대개 금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해가 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해 ‘안식일’이라 부른다. 관광객에게 안식일이 중요한 이유는 안식일에 거의 모든 가게, 식당이 문을 닫고 지역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버스와 기차 같은 대중교통조차 운행을 멈추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안식일은 1년 중 50일 정도라고 하지만 안식일이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는 100일에 가깝다. money 뉴 이스라엘 쉐켈shekel 또는 줄여서 쉐켈이다. 지폐 단위는 20, 50, 100, 200이다. 1 쉐켈은 310원. 달러를 받는 곳도 많지만 어느 정도 쉐켈을 준비하는 게 좋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Galilee 갈릴리 호수 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사해의 서북쪽 연안,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쿰란Qumran은 2000년 전 필사한 성경이 발견된 곳이다. 1947년 베두인 양치기 소년은 쿰란 제1동굴에서 사해사본을 발견했다.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파 사람들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욕주의자들이었다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정결한 몸을 유지하고 의식을 치르기 위해 공중목욕탕도 만들었다. 쿰란을 떠나 이스라엘 북부의 산악지역에 있는 갈릴리Galilee 호수로 향한다. 도로 왼편은 사마리아 지방이다. 성경이나 영화 속에서 듣거나 본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갈릴리로 가는 길에 요르단강도 건넌다. 예수는 여리고 근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라지만 물줄기는 작다. 레바논 북쪽, 헤브론산에서 발원한 요르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간다. 굽이굽이 흐르는 요르단강 강줄기는 320km에 달한다. 늦은 오후 갈릴리 호수 남쪽 마간의 한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했다. 갈릴리 호숫가 키부츠다. 키부츠 안에 수영장도 있다. 키부츠 숙소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머무르기 좋게 방갈로 형식이다. 해가 지면서 호수 맞은편 산간 지역은 실루엣처럼 보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수면 위로 돛을 세우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붉은 병풍 같은 골란고원이 보인다. 골란고원 저편이 시리아라는 사실이 좀체 실감나지 않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갈릴리 호수의 둘레는 60km에 달한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던 게 수긍된다. 영어 이름대로 ‘바다 같은 호수Sea of Galilee’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설파한 산상설교지인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이 바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요.’ 예수는 산상설교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 예수는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 편에 서 있었다. 사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갈릴리 호수도 해저 222m로 매우 낮은 지역에 위치한다. 평균 수심은 30m이지만 가장 깊은 곳은 50m에 달한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수심이 다르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식수의 70%를 생산할 만큼 깨끗한 상수원이다. 갈릴리 지방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프로방스’라 불린다. 이스라엘을 찾은 크리스천들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굴곡진 요르단강을 찾아 래프팅을 즐긴다. 갈릴리 지방의 중심지인 티베리아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미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찾은 이유는 만 열두 살이 된 아들의 성년식 때문이다. 외국에 살지만 이스라엘로 돌아와 성년식을 치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축복할 일로 여겨지는 듯하다. 비행기 값, 호텔, 식사, 촬영비 등 제법 큰돈을 들여 성대한 파티를 벌이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도 매주 두 번씩 요란하게 성인식을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개 다른 나라에 살다가 성인식을 위해 이스라엘로 온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 Western Coast Cities of Israel ▶십자군 성채 도시, 아코Akko 지중해의 동편을 마주한 아코는 요새처럼 구축된 항구도시다. 이스라엘에 속한 ‘아랍인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아코의 올드 시티는 지중해를 마주보고 성벽에 둘러싸였다. 북으론 레바논과 시리아, 터키, 남으론 아프리카, 서쪽으론 유럽과 면한다. 1104년에는 십자군에 점령되었고, 1291년에는 술탄 말렉 엘-아쉬라프에게 함락된 바 있다. 술탄 말렉은 아코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나마 남은 것은 땅에 묻어 버렸다. 기구한 역사는 아코를 강건하게 만들었을까. 훗날 나폴레옹은 두 달간 아코를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결국 아코 성벽을 넘지 못하고 퇴각했다. 요새 같은 항구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탓에 아코는 때로 번영하고, 때로는 깨뜨려졌다. 아코의 구시가지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몰 때 아코의 성벽을 따라 저녁 산책을 즐기면 좋다. ▶헤롯왕의 도시, 카이사레아Caesarea 헤롯왕이 만든 도시로 로마의 행정수도이자 총독의 거주지였다. 로마 시대의 항구도시로 번성하면서 남긴 유적 외에도 십자군 성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이사레아 남쪽의 극장은 헤롯왕 때 건설된 이후 수백 년 동안 사용된 극장으로 4,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헤롯 시대의 전차 경기장 흔적도 남아 있다. 거대한 U자 모양의 전차 경주장은 1만명의 관객을 수용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로마군 장군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카이사레아에는 헤롯 시대뿐만 아니라 로마, 비잔틴, 십자군 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만 봐도 영고성쇠를 거듭한 도시의 역사가 보인다. ▶자유의 도시, 하이파Haifa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무역항구로 유명하다.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어 도시의 분위기는 자유롭다.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라지만 안식일이면 어김없이 버스가 운행을 멈추는 텔아비브보다 유대교적으로 덜 경건한 것도 하이파의 매력이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북부의 해안 평야에서 느닷없이 솟아오른 갈멜산Mount Carmel 북서 기슭에 자리잡았다. 아코와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이 많이 살지만 생활수준은 아코에 비해 높다. 하이파의 유명한 상징 중 하나는 황금색 돔을 가진 바하이교 사원이다. 세계적인 종교 가운데 가장 최신 종교다. 아름답고 웅장한 정원이 유명하다. 바하이교 사원 밑으론 1869년 처음 조성된 독일 템플 기사단의 공동체 마을Templar Society이 복원되어 독일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다. 단, 중세 시대 십자군인 템플 기사단과 헷갈리지 말 것.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척박한 땅에서 삶을 개척한 이스라엘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삶을 개척한 이스라엘 사람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향해 벌여온 오랜 전쟁과 살상으로 세계적 공분의 대상이 되면서도 광야와 바다, 호수 등 자연환경은 또 다른 매력이 되고 있는, 애증의 나라다. 성경의 나라답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과 얽혀 있는 수천년 역사를 품은 유적지도 풍부하다. EBS 1TV는 푸른 지중해의 항구도시에서 고도 예루살렘과 죽음의 땅 사해, 그리고 남부 네게브 사막을 거쳐 최남단 홍해까지 둘러보며 이스라엘의 재발견에 나선다. 15일 밤 8시 50분 세계테마기행 ‘이스라엘의 재발견’에서 척박한 광야를 개척해 온 이스라엘 국민들의 삶을 따라간다. 히브리어로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헤르몬 산(해발 2814m)은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명산으로 1년 내내 눈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눈의 산으로 불린다. 헤르몬 산의 만년설은 갈릴리 호수까지 흘러 들어가는데 이스라엘 전체 약 90%의 식수 공급원이 된다. 헤르몬 산 인근 ‘메툴라’ 지역에는 과거 아랍인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교전지가 남아 있다. 방앗간으로 위장된 비밀스러운 무기고를 찾아 아직도 진행형인 분쟁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황량한 광야를 비옥한 농토로 바꾼 원동력으로 유명한 키부츠 집단농장. 히브리어로 ‘협동’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집단 농업 공동체 마을이다. 그중에서 초창기 설립된 미슈마르 하에메크 키부츠를 찾았다. 토지는 국유로, 생산 및 자동차, 집, 교육, 생활비까지 공동 소유로 하며, 구성원의 전체 수입은 키부츠에 귀속된다. 주거는 부부 단위로 할당되고, 세탁과 젖소 키우기, 가게 점원 등 활동은 나눠서 하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은 바꿀 수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상주의 신학생이었던 청년 스탈린

    이상주의 신학생이었던 청년 스탈린

    젊은 스탈린/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김병화 옮김/시공사/712쪽/3만 2000원 ‘20세기 최고 괴물’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조셉 스탈린(1878~1953)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린다. 그리고 그를 향한 좋지 않은 평가의 방향은 대개 ‘불우한 어린 시절 탓에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됐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정작 스탈린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해 세상에 알려진 1917년 이전의 일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젊은 스탈린’은 가난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이상주의 신학생으로 자랐던 스탈린이 어떻게 무자비한 음모가이자 잔혹한 억압자로 변신했는지를 살피고 있어 흥미롭다. ‘예루살렘 전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가 10년에 걸쳐 9개국, 23개 도시에서 진행한 조사와 연구의 산물로, 분량이 무려 700쪽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저자는 혁명 이전에도 스탈린의 일탈적 행동과 범죄는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쓰고 있다. 은행강도, 폭력적 갈취, 방화, 약탈, 해적질, 살인…. 강도단 두목을 훨씬 능가하는 폭력성을 보였던 그의 일생은 명암이 극명히 교차하는 모순적 행로로 소개된다. 저자에 따르면 제화공의 아들인 그는 스무 살 때 이상주의 성향의 신학생이 됐고 낭만주의적 시를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서른 살 무렵인 1907년 은행강도가 돼 어둠의 길로 빠진 그는 폭력과 약탈, 방화 등 범죄행위를 겁내지 않았다. 여러 정부들과 애정행각을 벌여 사생아를 낳는 등 가정생활도 일탈의 연속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날의 상처를 무시할 수 없다. “스탈린을 형성한 데는 이처럼 비참한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한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스탈린은 일찍부터 정치 조직가 겸 폭력단원이었으며 차르 체제의 보안 시스템을 뚫는 달인이었다. 신체적 위험을 무릅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대장인 레닌과 맞서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담했다. 이를테면 지식인의 재능과 살인자의 재능을 겸비한 독특한 인물이랄까. 레닌은 1917년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부관으로 스탈린을 일찌감치 평가해 등용했다고 한다. 1917년은 이들이 서로 알고 지낸 지 12년째가 되는 해였다. 수십 개의 이름을 쓰던 그가 스탈린이라는 성을 공식 사용한 것도 1917년이었다. 저자는 결국 “레닌과 스탈린은 혁명 이전에 각자가 거느리던 무자비한 음모가들의 작은 그룹을 모방해 기묘한 소비에트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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