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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言改連 토론회 주제발표/이효성성균관대 교수·양삼승변호사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金重培)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명예훼손 소송과 공익보도’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토론회에서는 공익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와 언론사들이명예훼손 소송을 피하기 위해 지켜야 할 취재보도 준칙에 대해 관계자들의열띤 토론이 있었다.이효성(李孝成) 성균관대교수와 양삼승(梁三承) 변호사의 발제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 공직자 개인명예보다 언론자유가 우선 민주화가 진전되고 권위주의가 완화되면서 일반인들은 권리 행사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이런 움직임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잇단 명예훼손 소송으로나타나고 있다. 사법부도 90년대에 들어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의 자유보다는 개인들의 명예를 더 중시하고 명예훼손 보상금액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명예권이 언제나 언론자유에 앞서는 것은 아니다.공익과 관련된 사안,특히 공직자나 공인과 관련해서는 개인의 명예보다는 언론 자유가 더 존중된다.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힘있는 사람들의 명예나 사생활 침해에는 조심하는편이었다.반면에 일반인들의 명예나 사생활 침해에는 많이 소홀했다.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공직자의 명예보다는 일반 개인들의 명예를 더욱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개인은 공익과 관련성이 적고,명예훼손에 대한 구제수단도 공직자에 비해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공직자는 공익과 관련성이 크고,명예훼손에 대한 구제수단을 가지고 있다.특히 공직자는 정부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위해서는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자유스런 보도와 논의가 요구된다.공직자에 대한 자유스런 논의를 위해서는 다소 명예훼손적인 내용도 용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에 대한 보도에 대해 형법 310조에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할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이는 출판물 등에 의해 공표된 내용이 명예훼손적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진실하고공익에 관한 것이면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다.실례로 구미 언론은 일반인들의 보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공직자에 대한 보도에서는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공직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공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언론은 이런 철저한 공익정신으로 공직자들의 부정이나 비리를 폭로하고,권력의 독재화를 방지하며 정치의 민주화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효성 성균관대교수- 표현의 자유 제약 ‘방송금지’기준 엄격 최근들어 일부 종교단체가 방송의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고 사전에 방송을억제하는 소송을 제기하거나 실력 행사로 방송을 저지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민의 인격권 보호’와 ‘방송매체의 언론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상 2개의 기본권 충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인격권은 성질상 일단 침해된 이후 구제수단만으로는 피해의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따라서 인격권 침해에 대해서는 사전 구제수단으로 침해행위를 정지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금지청구권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인격권 침해에 대한 금지청구권은 인격권의 침해행위가 예상될 경우 침해행위를 금지시키는 사전 억제조치이다.방해예방청구권 및 방해정지·배제청구권 등을 포괄하여 일컫는다. 금지청구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금지 대상이 되는 행위가 법익에 대하여객관적으로 위법한 침해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허위 주장이나 비난적 표현이 담긴 의견표현에 대하여 금지청구권이 인정될 수는 없다. 금지청구권에 의한 가처분 절차에는 보통 가처분 절차보다 신중한 심리가요구된다. 국내에서 방송매체를 상대로 한 방송금지 가처분에 관한 판례는 지난 3월16일에 판결된 ‘국제크리스천연합 사건’이 대표적이다.이 판례에 따르면 방송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을 앞두고 있을 때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는 법원에 대하여 사전에 방송의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하지만 이와 같은 사전 금지는 검열에는 해당되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라는 점이 고려 된다. 따라서 보도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거나,또는 그 내용이 진실하더라도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닐 때에만 사전 금지조치가 받아들여 지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명백하게 가해자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쌍방의 관계및 사회적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해자가 중대하고도 현저히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염려가 있는 때에 한하여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양삼승 변호사
  • 한국서예 옛것을 따르되 옛것을 버려라/송하경 교수 인터뷰

    일본의 미술평론가 오노데라 게이지(小野寺啓致)는 언젠가 “한국의 현대서는 해행초전예(楷行草篆隸) 각 서체의 규범적인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서풍(書風)은 중국 서법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한국의 현대서예가들이 중국 본토의 화가들보다 더 중국 것을 존중한다는 비꼼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우리 서단(書壇)의 ‘중국병’은 과연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에는 18세기 말 자하(紫霞) 신위와 같은 능서가(能書家)가 있었고 아취면에서도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그러나 한국 서예는 왕희지풍을 계승한 동기창과 조맹부 등의 서풍에 밀려 새로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이러한 우리 서예사의 구각을 벗게 한 인물이 바로 추사 김정희다.‘서예의 죽음’이 입에 오르내리는 지금,‘제2의 추사 대망론(秋史 待望論)’이 나오고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현대서(現代書) 하면 일본 서도를,전통서(傳統書) 하면중국 서법을 으레 이야기한다.한국 서예는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셈이다.한국의 현대서는 지난 89년 한국서예협회가 주최한 첫 공모전에 현대서부문이 생김으로써 국내 서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한국의 서예 혹은 현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부 예술’‘들러리 예술’에 머물고 있는형편이다.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이유로 서예인들이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한채 스승의 법만을 추종하는 법노(法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그동안의 도제식 서예교육은 스승의 울타리에 갇힌 아류 서예인만을 양산해왔다.일찌기 추사가 “법은 익히기도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편 최근 들어서는 일부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현대 서예미학을 선보이고있어 관심을 모은다.이들은 문자가 전달하는 내용,즉 문학성이 아니라 문자가 지닌 독특한 언어체계,즉 감성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둔다.또한 공간의 운용과 자획(字劃)의 미,선조(線條)의 미를 강조한다.서예는 이제‘읽는 예술’에서 ‘보는 예술’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위엄있는 서체인전서(篆書)를 쓸 때도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화면으로 처리,시대정신과 미감을 외면하는 서단을 풍자한다.또 서예나 전각을 할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좌행(左行) 방식 대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우행(右行)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그런가하면 너무 작아 미감을쉽게 느끼기 어려운 전각을 확대,재구성한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이것은 90년대 미국 판화계에 새롭게 등장한 일렉트론 아트(Electron Art)의 영향을받은 것이다.일렉트론 아트는 미세한 사물을 전자기기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미술.필묵을 선의 파동으로 해석하는 물파(物波,Neo-Wave)그룹의 창립멤버인 서예가 이숭호씨(44·한국서예협회 이사)의 ‘대도지행(大道之行)’은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이씨는 “서예는 이제 더이상 문자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문자는 하나의 약속이자 소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도의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한국 서예가세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필묵정신을 구현하고 국제적인 교류를활성화하는 일이 시급하다.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서예가 정도준씨(51)의 초대전은 그런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정씨는 국전이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던 첫 해인 지난 82년 ‘조춘(早春)’을출품해 대상을 받은 중견 작가.문자로서의 의미전달 못지 않게 전체적인 조형적 특성을 살리고 있는 것이 그의 서예세계의 특징이다.그는 이번에 ‘철심석장(鐵心石腸)’‘흉중해악(胸中海嶽)’‘호시우행(虎視牛行)’‘무거마훤(無車馬喧)’‘송백(松柏)’ 등의 작품을 냈다. 김종면기자 - [인터뷰] '99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조직위 송하경 교수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끊임없이 운동을 해야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죠.서예예술에서의 부단한 운동이란 바로 동화(同化)와 이화(異化)의 작용을 통한 자기갱신을 뜻합니다” ’99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송하경교수(58·성균관대 동양학부)는 서예예술의 생명은 전통을 계승하는 가운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에 있다고 강조한다. 송교수는 강암체라는 독특한 서풍을 확립한 한국서예의 대가 고(故) 강암송성용 선생의 차남.한국서예학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전북 전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서예 비엔날레를 우리 서예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먼저 서예인의 덕목에 대해 언급한다. “서예를 하는 사람은 늘 빙동삼척(氷凍三尺),즉 하루 추위에 석자 얼음이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정진해야 합니다.아파트 층수에 따라전망이 달라지듯 자기수련의 정도에 따라 서경(書境)이 달라지죠.서예의 드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명비와 명첩을 많이 관찰하고,다양한 서체와 운필기법을 두루 체득하고,작품 전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표현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송교수는 이러한 서예인의 자세가 전제돼야한국 서예는 제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밝힌다.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현대서예의 정체성 문제다.“고암이나 운보,월전 등의 그림을 보면그 바탕이 서예임을 대번에 알 수 있어요.서론(書論)과 화론(화論)은 서로 통합니다.그것이 이른바 서화동원론(書화同源論)이에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예와 그림이 근원이 같다고 해서 그 한계까지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전위적이라 할 정도로 탈규범적인 ‘글씨 아닌 글씨’가 현대서예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는 없지요” 한국 서예에 어떻게 시대정신의 옷을 입힐 수 있을까.“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선택하는 재료와 표현기법,장법(章法),문장내용,표구방법 등이 아주 다양합니다.이런 경향은 법고의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속류(俗類)현상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창신현상으로 볼 수있어요.그렇다고 전통계승의 법고성을 절대로 외면해선 안됩니다” 송교수가 이야기하는 전통의 범주에는 한글의 판본체와 궁체는 물론,중국의 갑골(甲骨),이기명문(彛器銘文,옛날 종묘에 갖춰 뒀던 제기에 새겨진 글자)·명가의수적(手迹),역대 서가의 서론격언 등이 모두 포함된다. “서예 인구가 500만이 넘지만 정작 서예교육이나 지원의 측면에서 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서예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라야 고작 원광대·계명대·대전대·대구예술대 등 4곳 뿐이에요.보습학원이나 속셈학원 수준의 교육으로는 한국 서예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송교수는 “한국 서예가살려면 무엇보다 서예에 대한 학문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힘주어말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김상웅 칼럼] DJ정부 고위공직자들에게

    “카이사르의 아내는 소문만 나돌아도 안된다”면서 카이사르는 좋지 않은소문이 나돈 아내 폼페이아와 끝내 이혼을 했다. 카이사르의 집에서 여자들만을 위한 축전이 열렸는데 클로디우스가 여자로변장하고 이 종교의식에 참석한 것이 추문으로 번지자, 아내가 그를 집으로끌어들였다고 생각한 카이사르는 아내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고급옷 로비설’을 지켜보면서 카이사르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그렇다.장관부인들은 소문만 나돌아도 안된다. 어찌 장관 부인뿐이겠는가.김대중정부에 참여한 고위 공직자들은 본인은 물론 부인이나 친인척에 이르까지 ‘소문’만 나돌아도 안된다.어떻게 이루어진 정권교체이고 어떻게 구성된 ‘국민의 정부’인가.짧게는 해방 후,길게는 4,000년 역사상 최초로 피지배계층이 합법적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할 일도많고 갈 길도 험하다.고위공직자 개개인은 청교도적 자세로 최초로 ‘성공한 대통령’을 보좌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그럴 의지와 사명이 없는 공직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야한다.일신의 영달이나 세속의 출세를 위한 고위직이라면 우선 도덕적으로,그리고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있다.‘곰의 발바닥도,사슴의 뿔도 갖고 싶은’(장자) 것이 사람의 욕망이다.말타면 경마잡히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생활은 낮게 정신은 높게그렇지만 DJ정부 고위공직자들은 달라야 한다.왜 그런가.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그리고 역사의 아픔과 시련이 따랐고,지금 ‘국민의 정부’가 할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자신의 도덕적 수양을 해야 한다. 맹자는 이를 수기치인(修己治人),공자는 수신 제가 치국(修身齊家治國)이라 했다. 공직에참여한 사람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모두 갖겠다는 탐욕을 부릴때 사고가 생긴다. 하늘은 공평해서 모든 것을 함께 주지를 않는데 인간의 탐욕이 이를모두 챙기려다가 자신과 집안을 망치고 국가에 해를 끼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구에 ‘생활은 낮게 정신은 높게(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란 내용이 있다.서양문명의 모티브가 된 청교도사상의 올갱이는 바로 이 정신이다.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청빈사상이 없지 않았지만 이는 약자의 변명처럼 도외시되고 ‘부귀영화’가 과거를 보는 선비들의 목표가치처럼 되었다. 지금도 이러한 잘못된 출세의식이 공직자들에게 이어지면서 관직이 곧 부귀영화의 길이고 여기에 탐욕의 눈이 멀다보면 ‘교도소 담장’을 걷게 된다. 뇌물과 청탁의 부패구조에서 완전하게 자신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 한국적 관료사회이다. 이권이 따르는 고위직일수록 뇌물과 청탁의 악마가 천사의 가면을 쓰고 달라붙게 된다. 후한시대 양진(楊震)의 ‘사지(四知)’라는 고사는 부패구조에서 자신을 지키는 계명이다.금덩이를 들고온 사람에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알고 내가 아는”일인데 어찌 뇌물을 받겠느냐며 물리쳤다는 일화다. 백합 썩으면 잡초보다 냄새 고약 백합이 썩으면 잡초보다 냄새가 더 고약한 법이다.고위직이나 정치인들의부패는 말직의 ‘생계용 부패’보다 죄질이나 국민정신에 미친 영향에 있어서 훨씬 고약하고 (냄새가)역겹다. 김대중대통령이 장관급 및 수석비서관과 차관급으로 기용된 고위직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동석한 부인들에게 “공직자 아내들도 몸가짐을 깨끗이 해야한다”고 한말은 모든 공직자 가족이 새겨들어야 할것이다.예나 지금이나 공복(公僕)은 ‘空腹’의 의지로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소동파의 시에 ‘무죽사인속(無竹使人俗)’이라 했다.“살고 있는 집에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는 뜻이어서 옛 선비나 관리들은 집에대나무를 심어 푸르고 곧은 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대나무를 심지 않더라도그런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DJ정부 고위직(과 부인)들은 부정과 비리의 소문만 들려도 안된다.‘생활은 낮게 정신은 높게’를 모토로 공직에 전념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한다.
  • 세무공무원에 ‘징세수당’ 지급을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21일 ‘국세행정 관련 부조리실태 및 개선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정방지대책위는 보고서를 통해 세무공무원의 부조리가 각종 세금 징수 및 징수 유예,체납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국민의 정부출범 이후 비리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세무 공무원은 무려 270명이나 된다. 부가가치세 분야에서는 사업자 등록 때 위장사업 혐의가 있는데도 그대로접수하거나,일반과세자에게 과세특례를 적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부방위는 밝혔다.소득세 분야에서는 일정세액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형식적으로 조사를 마치는 사례가 드러났고,법인세 분야에서는 신고서에 직접 발견되지 않은 외형을 누락하거나 가공 경비 등을 묵인하는 행태가 적발됐다. 양도소득세 분야에서는 비과세 대상을 과세하겠다고 위협해 선처 명목으로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가,상속·증여세 분야에서는 재산의 시가를 확인하고도 신고대로 묵인하고 돈을 받는 행위가 대표적인 부정으로 지목됐다. 특히 징수유예나 체납 처분은세무공무원의 재량이 많아 부정과 비리가 가장 많다고 부방위는 지적했다.징수유예신청을 거부했다가 사유가 있는 것으로 승인하고 금품을 받거나,주소·사무소의 추적이 가능한데도 납세고지서발송 불가능을 이유로 징수유예 또는 부과 철회한 뒤 돈을 챙기는 행위가 적발됐다. 부방위는 세무 공무원의 비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징세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또 세무 비리를 신고한 시민들에게는 포상금을 주는제도를 신설할 것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현행 국세 16개,지방세 15개 등 총 31개에 달하는 세목을 10여개로 축소하고 ▲부가가치세 납세 대상자의 57.8%가 적용받고 있는과세특례제도 및 간이과세제도 대상을 대폭 축소하며 ▲5년으로 돼있는 법인 장부 보존기간을 연장할 것을 건의했다. 감사원은 부방위 보고를 토대로 종합적 세무비리 개선책을 마련해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입법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도운기자 dawn@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특별기고]천 냥 빚과 말 한마디

    “말,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말,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이것은 하이네가 한 말이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입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먼저 가위가 입을열었다.“나는 어떤 천이라도 날카로운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조금도 흠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그러자 톱이 말했다.“내 이빨은 장작을 썰어낼수 있고,나무토막도 거뜬히 베어낼 수 있다” 그러자 혀가 소리쳤다 “너희가 아무리 으시대 봤자 소용없다.내가 가진 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나는 남의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반쪽으로 쪼갤수 있다.친구 사이에 끼어들어 의리를 갈라 놓을 수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사와 가정일에 파고들어 짓이겨 놓을 수도 있다.나는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짓씹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가위와 톱은 입을다물고 말았다는 옛날 얘기 한 토막. 우리 사회는 언어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하다.신은 인간을창조하실 때 금수가 가질 수 없는 두 가지 기능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신의 품성을 닮은 이미지와 언어이다.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신을 경배하는 신앙수단이었다.그리고 훨씬 뒤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언어를 손으로 표기하는 문자를 발명했고 그것은 현재 정보통신의 시발점이 되었다.그러니까 언어나 문자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자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어와 문자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인간 살상무기로 오용되는가 하면 남용되고 있다.최근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가 하면 사이버 스토킹까지 등장하고 있는데도 제도적 장치는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언어폭력은 독버섯처럼 뻗어나는가 하면 독가스처럼 계층도 없이 스며들고있다.부부가 주고받는 일상대화,감정이 치솟았을 때 주고받는 대화의 수위는 어떤가.그리고 그 틈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받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언어순화는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정치권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국회의원들의 상대당 깎아내리기와 상대당 지도자 흠집내기에 동원되는 언어폭력을 지켜보노라면 그 양식이 의심스럽다.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아이들이 뉴스를 볼까 겁난다. 언어폭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영상과 전파,그리고 인쇄를 포함한 모든 매체의 책임은 더 중하고 크다.대문짝만한 활자와 지면으로 개인이나 공동체를 파멸시키다가 그것이 오보로 밝혀졌을 때 정정이나 사과보도는 하단석줄로 얼버무리는 인쇄 매체들,한 사람의 인격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하드라마로 엮어 짓밟은 후 정정보도는 토막소식으로 다루는 영상 매체들. 그뿐인가,건전문화 창달과 국민계도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대중매체들이 소비와 향락문화를 부추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이 아닐수없다. 1930년대 미국이 경제공황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미국국민들은 루스벨트대통령의 라디오연설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이유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과 행동,그리고 언어와 사상을 조절할 수있는 힘을가지고 있다.절제되지 않는 언어는 살상무기이며,조절되지 않는 행동은 활화산과 같아서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네 조상들의 금언은 전원을 가로질러 풍겨오는 꽃내음처럼 소박하고 싱그럽다.언어폭력일랑 몰아내고 우리동네를 꽃마을로 만들자.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 [대한광장] O양 비디오가 남긴 것

    이제 어지간히 시간이 지났으므로 차분히 되돌아보아도 될 성싶다.필자는아직까지도 O양의 비디오를 보지 못한 팔불출 중의 한 사람으로 실제로 ‘왕따’란 게 이런 거로구나 하는 경험을 해보았다.볼만한 사람은 거의 다 보았을 것이라는 얘기다.하여 지금 이 문제를 거론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래서 한번쯤 반성하는 마음으로 되짚어보자는 것이다.‘팔불출’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을 반성하자는 것인지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문제의 비디오가 어떤 경위로 유출되어 돌아다니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가않다.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부 호색 언론(인)들의 잔인함이다.그게 그렇게 뉴스로서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뉴스가치가 있다고 해서 모두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아니 그래서는 안된다.분명히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국가안보나 외교와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명예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사안들이 그것이다. 아무리 사회적인 관심이 있고 뭇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일이라도 이들 경우에 해당된다면 보도해서는 안된다.뉴스로 보도되기 위해서는 공적인 사안에 대한 ‘정당한’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술이라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O양의 비디오는 어디까지나 프라이버시,즉 사생활의 영역이다.우리 헌법은국민의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이 엄연한 프라이버시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대량으로 복제되어 돌아다니게 만든데는 언론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필자가 알기로 문제의 비디오가 대량으로 유통되게 한 책임에 한해서는 O양은 전혀 책임이 없다. 평소 필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중에 언론의 자유에 우월적인 권리가 있음을 신념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이 프라이버시를 경시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보도의 자유 못지 않게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한다.사실 그 경계가 애매한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할지 모른다.O양은 공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주장이 될 수 없다.O양은 사인으로 돌아간지 오래며,공인이라고 해도 사적인 영역은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공인도 공적인 활동과 관련해서만 다뤄야 한다. 이 사건은 공적인 사안에 대한 정당한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치졸한 호기심을 상품화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이것이단순한 호기심의 발동인 것은,그 행위의 상대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이나비난도 없었다는데서 증명이 된다.그 결과 O양은 사회적으로 매장되어버렸다.O양은 과연 이리 되어도 할 말이 없는 짓을 한 것일까? 왕따가 된 팔불출로서는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하느냐만 남았다.냄비처럼 끓다가 무책임하게 덮어버리는 속성으로 볼 때,언론이 상처받은 O양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할 것 같지는 않다.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O양이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은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매장될 만큼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언론은,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토록 처참하게 한 개인의 인생을 짓밟은과오를 반성하고 그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와 관용을 베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O양과 같은 피해자를 또다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필요하다. O양 자신도 부끄러운 과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그런 점에서 “더이상 O양이라는 이니셜 뒤에 숨어있지 않겠다”는 O양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이탈리아에서는 포르노배우 출신이 국회의원까지 되지 않았는가?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언론학
  • [대한광장] 지역감정의 실체와 언론개혁

    ‘지역감정’을 우리는 망국적인 병이라고 부른다.그래서 대통령이 할 수만 있다면 무인도에 가져가서 국민들을 편하게 하겠다고까지 했다.며칠후의 기자회견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대통령 뿐 아니라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도 왜 이것이사라지지 않고 망령처럼 배회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태초에 지역차별이 있었으며 그것이 특정 지역의 소외를 잉태하였을 뿐이다.차별과 소외를 전제하지 않고 감정을 운운할 수는 없다.예나 지금이나 호남사람들은 지역감정을 품기보다는소외로 인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오히려 누군가가 타 지역 사람들에게호남지역에 대한 감정을 조장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지금 지역감정으로 분기탱천해 있는 지역이 어디인가.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슨 지역감정을 어떻게 푼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호남지역 사람들은 지금 전혀 예견치 못했던 역차별로 상심해있으며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역감정의 해소는 차별을 시정하여 균형을 잡는데 있다.루머 등에 흔들려이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문제는 일반국민들이 아니라 바로 이 세력들이다.영남지역 사람들도 이들의 의도에 따라 끌려온 셈이다.그 세력이란 바로 야당과 일부 언론이다.작년 초 영남지역에서 있었던 재·보선에서 야당의 중견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망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김대중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여러분의 후배 아들이 밀려나고 있다’ ‘한풀이정치의 피해자는 경상도 사람이 될 것이다.경상도 기질이 보통 기질이냐.뭉쳐서 덤벼들지’.이런 식이었다.또 최근에는 영남지역을 돌며 대규모 집회를 열어 불이 붙은 지역감정에 기름을 쏟아 붓고 다녔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양 축을 이루는 한쪽에는 일부 언론이 또아리를 틀고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야당의 장난에 맞장구를 침으로써 힘을 실어주고있는 것이다.그 목적은 간단하다.개혁적인 정부의 위세를 꺾어 언론권력을강화하는 한편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여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자는 것이다.지역감정의 해소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조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원인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을 재벌과 족벌이 소유하여 좌지우지하고 있는 데 있다.독점적 소유구조로 인하여 소유주의 영향력이 막대한 결과 편집의 자율성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언론개혁,특히 신문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자율개혁만을 강조하고 있다.단언하건대 언론개혁은 절대 자율적으로는 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자꾸 강조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의 개입은 통제를 위한 간섭이 아니라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조치요 의무다.결코 언론자유의 침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재벌과 언론의 분리,족벌소유의 타파에 있다.그와 더불어 경영의 투명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여론의 독과점을 해소해야 한다.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특정 재벌 내지는 개인의 소유지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법의 개정이다.‘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민의 참여를 위해 주식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것은 정부가 단안을 내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언론개혁을 논의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김동민 한일 장신대 교수.언론학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 (25)

    ◆친일 미술가 金仁承·景承형제 작년 11월말 한 시민단체가 보낸 공문 한 통이 국가보훈처에 접수됐다.발신자인 신시민운동시민연합(의장 고경철)은 공문을 통해 “친일조각가 손으로세워진 애국선열의 동상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사의 왜곡행위로 뜻있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세워 민족정기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보훈처의조치를 촉구하였다. 이 공문에서 신시민운동연합측은 ‘친일조각가’로 김경승을 지목하고 “해방후 역대 정권과 결탁해 비호를 받으면서 조각계의 거목으로 변신한 김경승이 그 더러운 손으로 민족사에 길이 남을 애국선열과 역사적 기념물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반만년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민족에게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주는 반역행위”라고 지적하면서 “하루 빨리 친일반역자의 작품을철거하고 국민들의 정성을 모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공문에서 김경승이 제작한 애국선열의 동상으로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1953년 제작),남산 안중근 의사상(1959년 제작),백범 김구 선생상(1969년 제작),도산공원의 도산 안창호 선생상(1973년 제작),서울 종묘공원의월남 이상재 선생상(1989년 제작)등을 들었다. 김경승(金景承,1915∼1992)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유명한 조각가이다.그는 서양화가 김인승(金仁承,89·미국 거주)의 친동생으로 두 사람은형제 미술인으로도 유명하다.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한국 화단(畵壇)의 원로로 군림해온 사람들이다.이들은 일제 때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미술전람회에서 상(賞)을 휩쓸었고,해방후에는 교단과 화단에서 다시명성을 날렸다. 특히 김경승은 국내의 대표적인 위인·애국선열들의 동상 제작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예인(藝人)으로서 이들 형제는 재능을 떨쳐왔지만 민족사에서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해묵은 미술사 한 페이지를 들춰 그 이유를 알아보자. 1915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문학부를 나온 지주 김세형의 6남매중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난 김인승·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학생미술전에서 수차례 입상했다.1932년 김인승은 재능을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김경승도 2년 뒤 형을 따라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과(科)는 형과 달리 조각과를 택하였다. 1887년 일본 메이지정부에 의해 관립학교로 세워진 이 학교는 소위 서양미술을 가르치는 일본내 유일의 미술학교였다.이 학교는 일본인 외에도 조선·대만의 미술학도들을 청강생으로 받아 장학금을 주면서 미술교육을 시켰다. 이들 형제 외에도 조선인으로 심형구(沈亨求·1908∼1962)가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김인승과 심형구는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의 약칭)출품과 친일활동은 물론 해방후 이화여대에서 재직하는 동안 반평생을 단짝으로 지낸 사이다. 한편 김인승은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 98점이라는 학교 최고점을 기록하면서 우등생으로 졸업(1937년)하였다.재학시절 그는 이미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황기(皇紀) 2000년(1940년)봉축기념전’에 출품,입선하면서 화단에 얼굴을 내밀었다.졸업하던 해인 1937년에는 제16회 선전(鮮展)에 ‘나부(裸婦)’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였다. 3·1 만세의거 이후 소위 일제의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선전’은 1944년까지 23회나 개최되었는데 초기 서예나 4군자를 제외하고는 모든부문의 심사위원이 주최측인 총독부가 위촉한 일본작가였다.따라서 선전에출품된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은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반영한,왜색(倭色)이 짙은 작품들이 주로 입선되었다. 바로 이 ‘선전’에서 김인승은 1937년부터 연속 4회 특선,1940년 선전의추천작가가 되었다.이 때 서양화 부문에서 추천작가로 오른 사람은 그를 포함해 심형구·이인성(李仁星) 세사람 뿐이었다. 형에 이어 동생 김경승 역시 ‘선전’에서 연속 입상하였다.1939년 ‘S씨상’(흉상),40년 ‘목동’(전신상)등이 특선으로 입상하였고 41년에는 남자 입상(立像)인 ‘어떤 감정’으로 총독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여명’이라는 작품으로 총독상을 2회째 수상하였다.‘선전’에서 관록을 쌓은 그는 43년 마침내 추천작가가 되었다.44년 그는 ‘선전’에 ‘제4반’을 출품하였는데 이는 관변조직인 애국반(愛國班)의 반원인 조선여성이 전시하 후방에서근로봉사에 나선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김경승이 ‘선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작품을 포함,다섯 점 모두가 강한 ‘시국색(時局色)’을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일제침략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식량증산이나 근로에 동원된 조선인들을담은 것으로 이는 은연중에 전쟁협력을 부추기고 있다. 두 사람은 또 일제하 대표적인 친일미술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서 간부로활동하였다.1941년 2월 22일 시국하의 ‘회화봉공(繪畵奉公)’을 맹세하면서 탄생한 이 단체는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鹽原時三郞)가 회장,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계광순(桂珖淳)이 이사장,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백철(白鐵)등이 이사로 있던 관민합작 단체였다.두 사람은 각각서양화부(김인승),조각부(김경승)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조선문인협회·선전미술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 예술단체와 더불어 1943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예술가단체연락협의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들은 전람회를 열어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도 하였다. 한편 김인승의 대표적인 친일행위는 그가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하여 활동한 점이다.이 단체는 ‘성전하(聖戰下) 미술보국(美術報國)에 매진한다’는취지로 1943년 2월 조선인·일본인 화가 19명으로 결성됐는데 ‘선전’ 추천작가 중심의 최고 엘리트화가 집단이었다. 이 단체는 19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를 기념하여 회원 전원이 4개월간 합숙하여 100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시행기록화’(사진참조)를제작하였다.이 그림은 징집된 조선청년을 중심으로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장,지원병훈련소장,총력연맹 사무국 총장,경기도지사,친일파 윤치호 등이 등장해 징병으로 나가는 조선인 청년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내용이다.특히 이 그림은 인물 주위로 남산의 조선신궁(朝鮮神宮)과 병사들의 행진모습등을 곁들이고 있어 일본정신 고취와 성전(聖戰)출전의 분위기를 조장하고있다. 김인승은 이밖에도 194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열렸던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운보 김기창(金基昶)·심형구·월전 장우성(張遇聖)등과 함께 추천작가로 참여하였다.그는 또 작품의 제작연대를 일본식 황기(皇紀)로표기하였으며 ‘선전’ 출품작에는 작가 사인을 ‘김인승’의 일본어 발음인 ‘Jinsho,Kin’으로 표기하였다.그의 친일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할 수 있다. 해방후 이들 형제는 친일미술가로 낙인찍혀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그러나 이들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선전’ 추천작가등의 화력(畵歷)을 앞세워 다른 친일미술가들과 함께 승승장구 하였다.김인승은 47년 이화여대 미술과 교수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49년 제1회 국전(國展)추천작가·심사위원,예술원 회원·목우회 창립주도,이화여대 미대 학장,미협(美協) 이사장 등을 지내면서 서양화 구상계열을 주도했다. 김경승 역시 국전 심사위원·예술원 회원 등을 비롯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조각가로서 평통(平統)자문위원을 지냈다.특히 그는 충무공 이순신장군·백범 김구·도산 안창호 선생·안중근 의사 등 애국선열의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였다.이들 형제는 상복도 많아 문화훈장을 비롯해 ‘3·1문화상’까지나란히 수상하였다.남산의 백범 동상을 새로 만들자는 주장은 이래서 나오는것이다.
  • 특별기고-민주·통일·인권에 대하여

    요즈음 정가가 지역감정 문제로 다툼을 하여 IMF 극복을 위해 애쓰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주고 있다. 8·15 이후 지금까지 이승만 정권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 역대 정권이 지역감정과 남침위협 주장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연장해왔다는 것은 국민 거의가아는 사실이다.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동서 지역감정의 볼모가 되어 정권이 바뀌고 연장될 때마다,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상모리배와 군정 패거리들에이용당해 왔다. 누구도 이 땅의 사람들은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지역감정이라는 귀신에 들씌워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그 풍토가 새 정권이 들어선 후 사라졌는가 싶었는데 누가 선창만 하면 또 드라큘라처럼 살아나곤 한다.요즈음 또다시 이 나라 일부 국민이 이 유행병에 걸린 것 같다.그것으로살고 나라를 망친 지금 야당의 선창으로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망국병은 남침위협설(대북정책)이다.이 점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심화되었다.그것으로 민족을 분열시키고 권력을 누리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해 왔다.말하자면지역감정과 대북정책은 역대 정권을 유지시켜온 두 수레바퀴였다.걸핏하면 북한이 어쩌고 저쩌고 하여 민중들의 주의 주장을 묵살하고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다.민주화 요구가 있을 때마다,지배자들이 궁지에 몰릴때마다,백성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어김없이 그들은 이 전가의 보도를 사용해 왔다. 이와같이 이 땅 정상배들의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살아있는 한 완전 민주화도,조국통일도,전 국민의 안정과 번영과 행복도 힘들기만 한 일이다.왜냐하면 민주화와 인권·통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완전 민주화가 됐다는 말은 통일이 되었다는 얘기고 통일이 되었다는 얘기는 완전 민주화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선 민주 후 통일,선 통일 후 민주’의 논리는 그래서 힘을 잃은 지 오래다.분단상황에서 민주화나 통일은 하나다.하나가 되지 못할 때 이익을 보는나라와 사람들은 누구이겠는가.그런데도 강대국들의 본질처럼 이 두 가지 지배철학 ‘분열하라 지배할 것이다.상하 동서 좌우로…’를 정치인들이 계속사용한다면 우리 사회 전반적인 발전의 장애가 될 것이다.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청년학생 정치수배자들을 만났다.그들을 보면서 이 나라는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본질적 개혁은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왜곡되고뒤틀린 현상적인 개혁,그것도 말로만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펼치고 있다.그와같은 대북정책은 매우 잘한 일이고 참고 기다리며 계속되어 갈 때 성과가 있을 것이다.이 정책이 남한 내부에도 적용되어 우리사회 곳곳에 펼쳐졌으면 한다. 새로 들어선 정권마다 대물림하는 민주·통일·민생·인권 때문에 생긴 그늘진 곳,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햇볕이 좀 들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한번 약속했으면 또다시 잘못을 범할 때 잡아갈지언정 한번쯤 확풀어주고 확실히 규명(의문사)했으면 한다.다행히도 3·1절 대특사가 있다고 해서 기대해 보지만 또 기대로 끝나선 안될 것이다.김대중 정부도 역대 정권처럼 또 거짓말을 하고 양심수를 계속 양산해낼 것인가.얘기가 진행중인보안법 개정,양심수 석방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저와같은청년 학생들 때문에 이 땅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민간 민선정권이들어서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왜 수배해제에 인색하단 말인가.아직 준비가안됐다는 말인가.그래서 3·1절을 기다려 볼 것이다.한 순간이라도 양심수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 특별기고-빌 게이츠와 33억 달러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치고 미국의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를 모르는 사람은없다.그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간 매출액은 113억 달러,세계 58개국에 2만5,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적 컴퓨터사의 회장이기도 하다. 1975년 설립한 회사를 세계 굴지의 회사로 키운 데는 그만의 경영철학과 기업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지난달 29일 33억4,000만 달러(약 4조원)를 재단에 기부했다는 외신 보도는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본래 게이츠는 성서의 교훈대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기 위해 조용히 진행하려 했으나 언론의 집요한 추적으로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이다.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라면상자며 텔레비전 몇대를 쌓아놓고 그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우리네 과대포장 문화와는 한참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큰 일을 하고도 실체를 감추려는 사람들에 비해 작은 일을 드러내려는 홍보에 밝은 사람들은 어딘가 촌스럽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3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거금을 선뜻 재단에 기부하기 위해선 우선가진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기부하려는 용단을 재촉하는 가치관의 정립이 있어야 한다.부자라고 누구나 선뜻 돈을 내놓고 ‘뜻있게 씁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할 당시 금광을 중심으로 졸부들의 행태는 말이 아니었다.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가 하면 말 잔등에 올라탄 채 말에게 샴페인을 먹이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다.현대판 졸부 역시 어느 곳에나있게 마련이고 추태의 모양새만 달라졌을 뿐 예나 다를 바 없다.러시아 경제 몰락에 일조한 집단도 졸부들이었고,동남아 여러 나라의 경우 역시 그랬다.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 대열에서 빼내기 어렵다. 건국 이래 우리나라의 정치사는 그 어느 정권도 돈 때문에 얼굴을 구기지않은 정권이 없었다.혁명정부,군사정부,문민정부,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돈 때문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정치를 빌미로 오고 간 천문학적인 돈,그리고 그 돈의 가치와 의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정치인들의 안간힘을 들여다보는 소시민의 심정은 착잡하고 슬프다. 바로 벌고 바로 쓰는 것은 기업윤리여야 하며 경제윤리의 뿌리다.그것은 바로 배우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인생윤리나,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 하는 신앙윤리와도 다를 바 없다.우리 시대는 잘사는 사람은 많아도 바로 사는 사람은 적다.기업의 성공은 창업주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악장이나 지휘자만의 노력으로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동안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장담한 사람은 많았다.그러나 기업 이윤의사회환원은 허울일 뿐 어느 기업도 빌 게이츠처럼 선뜻 자기 살을 깎아 사회를 섬기려는 곳은 없다.창조주는 인간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했다.지금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시련도 더불어 살아야 된다는 가치관과 삶의 결단만이루어진다면 극복이 가능해질 것이다. 욕심껏 불다가 터지는 고무풍선처럼,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머니를 부풀리다가 터지는 굉음들,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졸부행진을 거듭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번쯤 안경 속에서 빛나고 있는 빌 게이츠의 두 눈을 들여다 보라”,그리고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성서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 ‘前官禮遇’와 법조비리

    대전의 변호사 수임비리 의혹사건이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의 오랜 관행인 ‘전관예우(前官禮遇)의 실태가 드러나 법조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지난 97년 한 해 전국 각 지역 변호사들의 형사사건 수임현황을 보면 연간 200건 이상의 사건을 맡은 전국 21명의 변호사중 20명이 개업한지 1∼3년 안팎인 판·검사 출신의 ‘전관’변호사들이다.또 서울등전국 12개 변호사회별 형사사건 수임 건수 10등 안에 든 변호사의 75%가 바로 ‘전관’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마디로 ‘전관’변호사들이 형사사건을 싹쓸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법조비리의 주범은 사건브로커와 함께 바로 전관예우라고 할 수 있다.전관예우는 판·검사의 유착관계를 가져오는 등 법조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전관’변호사들이 사건을 도맡아버리면 비전관(非前官)의 변호사들은 브로커를 고용해서라도 사건을 따와야 하기 때문에 전관예우와 사건브로커는 악순환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전관예우의 관행은 근절되어야 하며 차제에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변호사법개정안은 이같은 전관예우 방지장치가 헌법상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빠져 있다.그러나 퇴직후 2년간 공무원의 유관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공직자윤리법과 같이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직전 근무지에서는 2년간 형사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등의 제한규정을 두는 것은 무방할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대전 수임비리사건과 관련해서는 차제에 만성적인 법조비리를 확실하게 척결한다는 각오로 수사를 강도높게 펴야 할 것이다.아직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비장부’에 오른 소개인이 379명에 이르고 있고 이 가운데는 전·현직 장관급 2명,현직 검사장 2명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일각에서는 검찰이 확보한 비장부 리스트에 언론인 등 일부 직군의 명단이 제외됐다는 의혹도 일고 있는 만큼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일부 변호사·판사·검사가 커넥션을 이룬 법조삼륜(法曹三輪)의 비리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고 보고 있다.수사당국은 자칫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현상이 법의 권위는 물론 국가체제에 대한 냉소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 이번 사건을 법조비리를정화하는 확실한 계기로 삼아주기 바란다.
  • 오늘의 눈-日자유당의 위험한 흥정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또 나라를 불문하고 명분과 실리,막전과 막후 거래의 산물인 것 같다.명분을 놓고 싸우는 무대 뒤를 살펴보면 실리를 빼앗고 뺏 기는 이해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 일본의 정치상황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무대의 주인공은 집권 자민당 과 자유당.중원 참원 통털어 367석을 가진 거대 자민당과 47석의 미니 야당 인 자유당의 연립정권 수립을 둘러싼 지루한 싸움은 관객에겐 잘 보이지 않 는 무대 뒤 흥정을 읽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양당간 최대 걸림돌은 자위대의 유엔군 참여문제다.자유당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郞)당수는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자위대를 유엔군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자민당 지도부는 ‘평화헌법’의 해석을 바꾸면서까지 자유 당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1월19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와 오자와 당수간 연정합의 이후 자 유당은 줄곧 ‘자위대’문제를 고집해왔다.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연정 합의마저 깰 수 있다고 자민당을 겁주고 있다. 그러나 ‘자위대 파병’이 연정합의를 깰 만큼의 긴급하고도 핵심적인 사항 인가 묻는다면 두 당 모두에게 ‘아니올시다’이다.자유당이 내세우는 ‘자 위대’문제는 흥정용 카드에 가깝다. 연정을 수립하게 되면 내년 봄 치를 통합지방선거 및 총선에 같은 선거구에 서 제각각 후보를 내세울 수 없다.두 당의 후보중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 로 단일화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군소정당인 자유당으로서는 선거구 조정은 사활이 달린 문제다.내년초 있을 개각 때 각료 지분을 더 많이 확보 하려는 것도 자유당이 떠들며 내세우지 못하는 속내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 일본 헌법 개정이나 해석변경은 군국주의 부활과 재 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정치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주변국을 자극해가면서까지 ‘위험한 흥정’을 하는 일본의 정 치판에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arry01@daehanmaeil.com [ marr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월간조선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문 요지

    법원이 11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崔章集 고려대 교수가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출판물 발행·판매·배포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내린 결정문을 간추린다. 언론·출판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아니되므로 고위 공직자의 신념에 대한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보도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를 벗어나 사실과 다른 허위 내용을 보도한다든지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에도 대상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명예훼손적 사실을 주장함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우리 법체계를 감안하면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사회주의 혹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주장은 물론 단지 그에 동조한다거나 좌파적 또는 친북한적이라는 정도의 표현만으로도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 전체 저서의 일부를 발췌한 기사의 경우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들은 그 흐름과 맥락을 알지 못하고 발췌된 부분만 읽음으로써 사실적 주장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도 있는 경우 역시 명예훼손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가 된 월간조선 11월호 기사 및 표지와 목차를 보면 목록 기재 부분은 신청인의 저서인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과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기는 하나 앞뒤 문맥에 비추어 신청인의 의도를 왜곡하고 신청인을 더 좌파적 인물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여진다.“…김일성은…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하였고”라고 돼 있고 그 뒤에는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했던 요소는…”이라고 표현해 김일성의 전면전 결심이 잘못된 판단임을 밝히고 있다.그렇다면 ‘역사적 결단’이라는 문구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중립적 표현임에도 독자들에게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간지 목차에는 “남진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부분이 있고 기사에도 “최위원장은 그의 책에서 ‘개전 초기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었으며…’라는 요지로 해석했다”는 부분이 있다.그러나 신청인은 한국전쟁을 네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마다 고유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첫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이라고 논술하고 있다.따라서 신청인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신청인의 생각인 양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북진의 가공할 사태’ 역시 ‘조건과 전망’에서 이 사건 기사와 정확하게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 바는 없으며,저서를 통해 볼 때 문맥상 ‘3차 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따라서 북진 자체가 가공할 사태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함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지게 했다.
  • 비리 軍 간부 수뢰액 일반 공무원의 10배/대부분 실형 안받아

    최근 3년간 군 간부들의 평균 수뢰액수가 일반 공무원에 비해 10배 이상 많았음에도 불구,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석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李揆澤 의원은 9일 국회법사위의 군사법원에 대한 국감에서 “최근 3년간 군내 뇌물수수 사건 재판에서 군 관계자들의 수뢰액은 총 24건에 18억8,500만원,1건당 평균 액수는 7,850만원으로 일반 행정부서 공무원들의 건당 평균 500만∼600만원에 비해 10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李의원은 또 최근 4년간 발생한 군 뇌물범죄 33건 중 2건은 현재 군사법원에 계류중이고 27건은 집행유예나 기소유예 등으로 석방됐으며 4건만 징역형이 선고돼 결국 군사법원의 ‘관대한 처분’이 군내 뇌물범죄를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 국감 일일 베스트5

    ▷법제사법 咸錫宰(자)◁ ◇정책제언=공무원 범죄 실형위주의 처벌 필요. ­공무원 범죄의 1심 선고유예율이 일반 형사범죄의 13배에 달하고 항소심에서는 25배에 가깝다. 공무원 범죄에 대한 처벌이 결국 솜방망이 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선고유예나 벌금형 등은 범죄예방에 대한 효과가 전혀 없다. 공무원 범죄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실형위주의 처벌이 필요하다. ▷법제사법 趙洪奎(국)◁ ◇정책제언=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강화. ­이 운동이 검찰의 생색내기 위주의 일과성 행사로 흐른다는 비판적 견해가 있다. 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은 아직도 공포에 떨며 자기가 당한 일을 숨긴다. 단순히 신고전화만 설치하고 신고만 받아서는 안된다. 검찰과 경찰,학교와 학부모 등이 보다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이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행정자치 朴九溢(자)◁ ◇정책제언=대구 밀라노 타운 위한 섬유산업특별법 제정해야. ­부채 1위의 불명예를 벗고 침체된 대구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안이 필요하다.그 중의 하나인 ‘밀라노 프로젝트’는 기존의 계획 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10년,2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섬유산업특별법 제정을 통해 확고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문화관광 李敬在(한)◁ ◇정책제언=문화예술진흥원 고누진율퇴직금 폐지하라. ­2년전 ‘고누진율 퇴직금’이 문제되자 96년 10월31일 관련 규정을 개정해 96년 11월1일부로 구지급을 규정의 적용을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구지급율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7년 남짓 근무한 사람에게 무려 4억원을 지급한 사례가 있다. ▷건설교통 李龍三(국)◁ ◇정책제언=철도청 외부 전문기관 경영평가 받아야. ­사업(경영)부서가 아닌 기관도 기획예산위원회의 권유에 따라 경영진단을 외부에 의뢰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청은 내부의 경영평가만 있을 뿐 외부에 의한 경영평가나 경영진단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특히 경영과 정책이 혼재되어 있는 철도청은 즉시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 접객업소 고용 18세미만 금지/아동복지법 개정안

    보건복지부는 17일 흥행을 목적으로 한 곡예나 주점,기타 접객업소의 고용 금지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8세 미만으로 올리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18세 미만이 종사할 수 없는 접객업에 단란주점 유흥주점 일반음식점 다방 소주방 호프집 컴퓨터게임장업 무도학원 무도장업 유기장(빠찡꼬 카지노)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 영아 매매 및 불법 입양을 금지하기 위해 정당한 권한이 없는 아동양육 알선자 및 입양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 팔당호 오염사범 뿌리뽑아야(사설)

    검찰이 팔당호를 비롯, 한강수계의 상수원 오염업소에 대한 수사의 칼을 본격적으로 빼들었다. 팔당호 수질개선 대책이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점이어서 오염업소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오염발생업체뿐 아니라 이를 묵인하는 단속 및 허가 공무원들과의 유착 여부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이번 기회에 오염의 뿌리를 뽑아주기 바란다. 환경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만큼 중요한 문제다. 바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후손 대대로 아름답고 깨끗하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 더구나 한번 훼손된 환경을 원상회복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오랜 시일이 걸린다. 따라서 오염을 미리 막는 것이 최선책이다. 오염업소에 대한 단속은 과거에도 수없이 되풀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임진강을 오염시키는 동두천시 일대의 가죽공장은 신문·TV 등 각 언론매체들이 여러차례 그 현장을 고발해 왔지만 크게 개선된 기미가 없다.영세업자들의 생업이라는 단순한 온정주의 시각도 곁들여져 단속과 처벌이 미지근했던 탓이다. 같은 이유로 팔당호 오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축산농가에 대해서도 엄정한 단속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강수계 주변에 줄줄이 들어선 러브호텔과 음식점 등이 수질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의 단속이 시늉에 그쳤다는 반증이다. 97년 통계를 보면 환경사범에 대한 1심재판 결과 3년 이상 징역형은 전체 3,169명 중 13명뿐이다. 1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환경사범은 182명이지만 이 중 162명은 ‘영업형’ 환경사범과 거리가 있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위반사범이다. 91년에서 97년까지 화학물질 사범을 제외한 실형선고자는 전체의 6%인 반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은 87%다. 다른 범죄의 실형선고율 22.4%에 크게 못 미친다. 올들어 7월까지의 환경사범 구속비율도 3.4%에 그쳤다. 벌금 역시 미미하기 짝이 없다. 영세업자나 축산농민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온정을 기대해서도,베풀어서도 안 된다. 오염의 정도가 원상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주민이나 업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오염이 없는 업종으로 전환하든가,오염을 완벽하게 차단하든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입는 현지 주민들의 피해는 환경부가 수질보전 대책에서 밝힌 것처럼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상하거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재원은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는 하류의 수도권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 ‘북한위성’이 남긴 문제들(林春雄 칼럼)

    북한이 쏘아 올렸다는 물체가 위성인지,미사일인지 10여일이 넘도록 모르고 있다.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우주사령부가 9일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했으나 그 또한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북한이 그런 물체를 과연 쏘아 올렸는지 조차도 알아 보아야 할 판국이다. 이번 일은 몇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 첫째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북한의 민감한 군사적 움직임에 우리는 물론 미국과 일본마저 깜깜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측이 그것이 미사일이 아니라 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인마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다. 위성을 궤도에 진입 시킬만큼 강력한 로켓이 발사됐는데도 정보망에 잡히지 않았다면 우리의 정보력은 물론 이겠지만 미국의 대공정보망에 이상이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북 공중정보를 미국에 의존해왔다. 우리 스스로 고가(高價)의 장비를 운영할 경제적 여력도 문제였지만 고도의 군사정보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려는 미국의 압력 또한 컸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공중정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고 있다. ○北 군사력 과장은 금물 둘째로는 북한이 위성이나 장거리 미사일을 실제로 실전에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군사적으로는 물론 전략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제 일본이나 태평양상의 여러 미국 군사기지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됐는다는 뜻이다. 북한의 위성발사 능력은 동북아 전체의 안보체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벌써부터 일본에서는 독자적 방공망 구축 논의가 시작됐고 주변에서는 일본재무장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동북아의안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와 대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기술 능력이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과장되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사정거리 1,000㎞가 넘는 장거리 미사일이라면 남한에 새로운 군사적 위험은 아닐 것이다. 북한은 이미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둔 중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다. 위험이 과장 되는 것은 북한 군사력의 실제 파괴력 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북한이 비록 장거리 미사일이나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북한의 국력이 잘못 평가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북한은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나라다. 옛 소련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겨루는막강한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면 서도 무너지고 말았다. 특수한 일부 군사무기가 국력으로 잘못 평가되면 남북 문제를 기본적으로 그르칠 수 있다. 金大中 정권에 들어와서는 비교적 일관된 대북정책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런 일로 과거 항용 그랬던 것처럼 다시 정책 기조가 흐트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남북간 군비(軍備)경쟁을 촉발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한·미·일 공조 필요성 강조 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남북의 대치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전략적 상황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군사적 적대관계와 통일정책이 혼돈돼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는 한국과 미국,일본 3국이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보다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야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고 있다. 당장엔 KEDO에서의 3국간 대응책이 논의돼야 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한이 차제에 국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함께 들어가는 문제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 남이 맡은 내 앞가림(朴康文 코너)

    셰익스피어가 쓴 것으로 돼 있는 희곡 ‘헨리 6세’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의 끝 무렵, 그러니까 프랑스 구국소녀 잔 다르크가 활약하던 때의 이야기다. 전쟁으로 국가의 치안 능력이 물렁해진 틈을 타고 영국의 한 지방에서 어중이떠중이가 패거리를 지어 기세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폭도 가운데 한 사람이 선동적으로 외친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법률가들을 죽이는 것이다” ○힘있는 곳에 부패가 15세기 서양 백성들 눈에, 법률가란 악덕의 표상으로 비쳤다. 법률가들이 양피지에 뭔가를 쓰고 나면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지는데, 까막눈인 보통사람은 뭐가 뭔지 모르고 죽는 일이 많았다. 힘이 있는 곳에 부패가 있기 쉬운 것은 예나 이제나 같다. 법률가들이 민초들이 꼽은 제거 제1순위 표적 집단이 된 것은 그만큼 전횡과 부패가 심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아마 그랬으니까 이 대목을 집어 넣었을 것이다. 성경에 율법학자 또는 율법교사들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예수의 꾸짖음이 준열하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서, 너희 스스로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았다”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을 보면, 법률가는 대개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얼마 전 새로 대법관 된 분의 청빈이 화제가 됐다. 법관 직분에 있으면서 청빈하기가 어렵다는 통념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깊이 깔려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 선진국에도 법률가, 특히 변호사에 대한 풍자적 농담이 많은 것은 여전히 그 직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직분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 직분의 일탈에 대한 비판은 크다.천국과 지옥 사이에 송사가 났다 하면 지옥이 이기게 마련인데, 법률가들이 지옥에 모두 가 있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다. 이런 농담도 있다. 입원한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의사더러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의사가 변호사를 불러 함께 병상에 다가갔다. 노인은 두 사람을 본 뒤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분 뒤 의사가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예수는 양쪽에 도둑 두 사람을 두고 죽었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소” 변호사를 헐뜯는 농담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변호사가 다 탐욕스러운 것은 물론 아니다. 물질적 풍요와 안온한 삶을 포기하고, 외롭게 의로운 투쟁을 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핍박을 받아 온 이들도 있다. ○변호사·언론 도마위에 지금 변호사 징계권을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지니고 있으나,정부에 되돌리는 것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추진하자 변협과 변호사들이 반발하고 있다.내가 해야 할 앞가림을 남이 나서서 해 준다는 것, 자율이 다시 타율로 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비리 변호사들을 스스로 징계하지 못한 죄로, 오랫동안 어려운 시절을 겪은 뒤 찾게 된 징계권이 5년만에 다시 관으로 넘어갈 판이다. 제 앞가림을 남이 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언론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어제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되었다. 시민단체가 이제는 언론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해야 할 때 할 말 못한 지난 날이 부끄럽고 앞으로 어떻게 나무람당할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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