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화 1987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통계청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임명장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스루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69
  • ‘송환법 반대’ 홍콩 어머니들 시위에 등장한 ‘임을 위한 행진곡’

    ‘송환법 반대’ 홍콩 어머니들 시위에 등장한 ‘임을 위한 행진곡’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어머니들의 집회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15일 홍콩 명보, 유튜브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홍콩 도심 차터가든 공원에서는 주최 측 추산 6000여명의 어머니들이 모여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고 지난 12일 시위 때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 12일 학생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수만명의 홍콩 시민이 입법회 건물 주변에서 송환법 저지 시위에 나서자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서 수십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집회에서 어머니들은 촛불 대신 깜빡거리는 플래시를 들고 “어머니는 강하다”, “우리 아이에게 쏘지 말라”, “백색테러 중단하라”, “톈안먼 어머니회가 되고 싶지 않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톈안먼 어머니회는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유혈 진압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뒤 그 희생자 유족들이 결성한 단체다.이날 집회에서는 한 어머니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눈길을 끌었다. 이 어머니는 “이 노래는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라면서 “영화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등을 본 홍콩인들은 이 노래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7년 100만명의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면서 “‘우산 행진곡’으로 노래를 바꿔 부르겠다”고 말하고 노래를 불렀다. 2014년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을 기리며 가사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 어머니는 노래의 전반부는 광둥어, 후반부는 한국어로 불렀으며, 수천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플래시를 깜빡거리며 호응했다. 특히 후반부의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부분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의 집회가 주목되는 것은 송환법을 추진 중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들고 나온 ‘어머니론’이 여론의 거센 비난을 샀기 때문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12일 홍콩 TVB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두 아들을 둔 엄마”라면서 “내 아들이 공부하기 싫다거나 제멋대로 행동하고 싶어할 때 이를 놔두면 단기적으로는 괜찮겠지만, 버릇없는 행동을 방치할 경우 아이가 커서 ‘왜 그때 꾸짖지 않았느냐’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집회에서 어머니들은 “누가 자식에게 물대포를 쏘고 최루탄을 퍼붓느냐”, “우리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기 전에 떨쳐 일어나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반박하며 캐리 람 행정장관의 발언과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했다. 한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에서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지지 열기가 뜨겁다고 전했다. SCMP는 “2만여명의 한국인들이 정부가 홍콩의 송환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청원에 동참했으며, 대학가에 홍콩 시위 지지 포스터가 붙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운동의 열기가 뜨겁다”고 전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홍콩 시민들도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송환법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30 세대] 1987년의 6월과 1989년의 6월/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2030 세대] 1987년의 6월과 1989년의 6월/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한국의 1987년 6월과 중국의 1989년 6월만큼 자국에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달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1987년 6월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끝내 성취해낸 영웅적인 달로, 2년 전에는 30주년 행사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그날은 오랜 독재와의 투쟁을 끝내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참된 민주국가로 들어섰다는 민주화 세력의 승전기념일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하지만 중국의 1989년 6월은 전혀 달랐다. 그달은 톈안먼광장에서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무참히 쏴죽인 그런 달이고, 중국 정부가 결코 인민에게 민주화의 기억을 소생시키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은폐하려는 그런 달이다. 아마 이웃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으로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기념(?)하는 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빚었을까? 운동가들의 절실함이 차이점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현대사가 한국 현대사보다 더욱 비극적이면 비극적이었지 딱히 그 질곡의 크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톈안먼에 핏자국을 남긴 학생들도 1980년 광주의 시민만큼 절실했다. ‘87년의 6월’과 ‘89년의 6월’을 가른 차이는 결국 두 가지로 종합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외부세력, 즉 미국의 개입 여부였다. 당시 미국은 신군부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중국공산당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교육받은 광범위한 도시 중산층의 유무였다. 한국에서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팽창한 도시 중산층이 ‘넥타이 부대’로 뛰쳐나와 정권에 최종적 타격을 입혔지만, 중국은 여전히 대다수가 민주주의보다는 경제성장을 염원하는 극빈층 농민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당대 중국은 민주주의 역량이 미약했고 권위주의 세력의 역량은 너무나 강력했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 이후 30년간 중국도 비슷한 변화를 겪으며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폭발적 경제성장과 도시화, 대미 의존도의 증가 등이 최근 중국이 겪은 변화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 시대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대동소이하다. 온전히 일대일로 등치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지금 100만명씩이나 운집한 홍콩의 시위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가진 자산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각광받을 수도 있다. 바로 시민저항의 전통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노동쟁의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몇몇 네티즌들은 불법으로 영화 ‘1987’을 내려받아 보는 상황이다. 물론 억압적 중국 국가 질서 아래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어느 정도 크기로 분포하고 있는지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역전쟁이라는 외부 충격과 내부 반발이 중국을 거세게 압박하는 지금, 1987년 6월의 기억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끼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아는가, 그리하여 1989년 6월의 기억도 살아날지.
  •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승리호’ 캐스팅 확정..7월 크랭크인 [공식]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승리호’ 캐스팅 확정..7월 크랭크인 [공식]

    영화 ‘승리호’(가제)가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그리고 유해진까지 승리호 크루의 캐스팅을 확정지었다. 7월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 영화 ‘승리호’(가제) 측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를 배경으로 이제껏 본 적 없는 볼거리와 스토리로 무장한 색다른 SF 대작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지만 언제나 알거지 신세인 ‘승리호’의 문제적 파일럿 ‘태호’ 역은 배우 송중기가 맡는다. ‘군함도’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김태리는 온 우주를 휘어잡을 대단한 기세로 ‘승리호’를 이끄는 ‘선장’을 연기한다. 영화 ‘아가씨’, ‘1987’, ‘리틀 포레스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까지 흥행몰이를 이어왔다. ‘승리호’의 달콤 살벌한 살림꾼 ‘타이거 박’ 역에는 ‘범죄도시’로 주목을 받고 올해 초 영화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진선규가 낙점됐다. ‘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말모이’등에서 활약한 배우 유해진이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로봇 모션캡쳐와 목소리 연기로 새로운 연기의 장을 펼친다. ‘승리호’(가제)는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조성희 감독이 10년간 구상에 공들인 작품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며 7월 크랭크인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천안문 사건 30주기… 투쟁의 역사 품고 묵묵히 버텨왔네

    천안문 사건 30주기… 투쟁의 역사 품고 묵묵히 버텨왔네

    10년 만에 찾은 중국 베이징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천안문(天安門) 앞 인산인해를 이루는 풍경은 여전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서있는 공안도 변함없었다. 자금성(紫禁城)은 고궁(故宮)의 옛말이며 중국인들은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부른다. ‘자주색을 띤 금지된 성’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포비든 시티’(Forbidden City)라고 한다. 철저히 계획된 하나의 도시이면서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일반인에겐 금지된, 오로지 황제만의 세계였다. 자금성은 명나라부터 청나라까지 24명의 황제가 거주했고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를 끝으로 궁궐의 주인을 잃었다.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변해 가던 중국 근현대사, 비운으로 생을 마친 푸이와 자금성의 위용은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 잘 그려져 있다. 지금 자금성은 고대 예술품과 중국 궁정역사의 유적을 모아 놓은 대형 박물관이 되었고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웅장한 자금성을 제대로 보는 것은 중국을 제대로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남쪽인 천안문 방향에서 들어가 북쪽인 신무문으로 빠져나오는 간단한 동선으로 산책을 즐겼다. 자금성 북쪽에 있는 경산공원에 오르면 자금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지붕은 태양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난다. 중심축을 기준으로 건축물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한가운데엔 황제의 집무실인 태화전이 새하얀 대리석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다. 상당히 위압적인 풍경이다. 천안문은 자금성의 정문이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이다. 봉건왕조시대에는 황제가 조령을 반포했고 1919년 5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는 지식인, 청년, 학생들이 모여 반일 애국 운동을 벌였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국민당과의 내전을 종료하고 천안문 성루에 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했다.올해 6월 4일은 천안문 사건의 30주기다. 천안문 사건의 발단은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추모하기 위한 시위였다. 학생과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외쳤다. 덩샤오핑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은 수천 구의 시신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정확한 희생자수를 여전히 발표하지 않는다. 2년 전 중국에서는 한국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안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고 인터넷에서조차 노출되지 않았다. 웨이보나 바이두에서도 천안문 사건은 검색할 수 없다. 올해는 한 가지가 더해졌다. 천안문 사건 30주기를 앞두고 세계적인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중국 내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천안문은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사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천안문은 역설적이게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사건을 안고 있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사람이 좋다’ 김봉곤이 지금의 훈장님이 되기 위해 한 노력은?

    ‘사람이 좋다’ 김봉곤이 지금의 훈장님이 되기 위해 한 노력은?

    청학동 훈장님 김봉곤이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다. 28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차림새의 주인공 청학동 훈장님 김봉곤이 출연한다. 댕기머리의 청학동 소년이 청학동 이단아로, 또 지금의 호랑이 훈장님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리산 청학동 해발 900미터 고지의 산골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봉곤. 온 가족이 약초를 캐서 물물교환으로 쌀을 사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던 시절, 김봉곤 가족은 해마다 보릿고개를 견디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중 1987년,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 후 성공해 효도하겠다는 일념으로 청학동을 떠난 김봉곤. 그러나 산골에서 나고 자란 청년에게 도시 생활은 쉽지 않았다. 판소리 공부를 하면서도 서빙, 청소, 노숙 등 갖은 고생 끝에 1989년 그는 드디어 서울에 서당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92년 방송 활동을 시작하며 세상에 청학동 총각 훈장으로 처음 모습을 알렸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얻은 김봉곤은 앨범 발표, 영화 제작 등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며 당시 폐쇄적이었던 청학동 개방에도 힘을 썼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댕기머리 총각 훈장은 어느덧 1남 3녀를 슬하에 둔 가장이 되었다. 2012년부터는 조상인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진천으로 터를 옮겨 예절학교를 운영하며 집안의 대를 잇고 있는 김봉곤. 21세기 마지막 선비, 전통과 예절의 아이콘 청학동 김봉곤 훈장의 인생사는 오늘(28일) 저녁 8시 55분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TV는 사랑을 싣고’ 박영선, 과거 돌연 은퇴 선언 이유?

    ‘TV는 사랑을 싣고’ 박영선, 과거 돌연 은퇴 선언 이유?

    모델 박영선이 전성기 시절을 함께 했던 단짝 모델 친구를 찾았다. 1987년 19세의 나이에 신이 내린 모델이라 불리며 모델계를 평정한 박영선은 90년대 청춘스타 등용문인 초콜릿 CF는 물론, 드라마와 영화까지 접수했다. 그러나 1999년 돌연 은퇴 선언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델 최초로 패션뿐 아니라 방송 활동을 병행한 원조 슈퍼모델 박영선.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로 50대 중년 여성이 된 박영선이 24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20대 전성기 시절의 단짝 모델 친구 박선희 씨와 재회를 소망했다. 박선희 씨는 박영선이 1987년부터 90년대 후반까지 톱모델로서 성공 가도를 달릴 때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곁에서 큰 힘이 돼줬던 단짝이었다. 박영선은 “올해 52세로 갱년기가 왔다. 1999년 은퇴 후 미국으로 떠나 2005년 아들을 낳고 2014년에 화려한 싱글로 한국에 복귀했으나 혼자 지내니까 무척 외롭다”면서 “갱년기로 사람이 그리운 요즘, 20여 년 전 톱모델로서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심신이 지쳐갈 때 숨통을 틔워준 친구를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19세 때 ‘국제복장학원’ 차밍스쿨에서 만난 박선희와 친분을 쌓고 성인이 된 후 ‘민화투‘, ’오이 소주‘, ’무도회장‘ 등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박영선은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박선희를 만나 처음 알게 된 자유였다. 바쁜 삶 속 숨 쉴 수 있는 탈출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박영선과 두 MC는 당시 두 사람의 추억이 묻어있는 압구정으로 향해 90년대 패션의 중심이었던 압구정 문화를 소환했다. 1990년대 압구정은 일명 ‘오렌지족’이라 불리는 청년들의 집결지로 유행을 선도하는 젊음의 거리였다. 박영선은 “나와 선희 언니는 물론 모두 압구정으로 모였다. 그땐 카페에서 김치볶음밥과 콜라를 먹는 게 유행이었다”며 추억에 젖었다. 이어 박영선은 1999년 명실상부 대한민국 톱 모델로 승승장구하던 때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가 2014년 다시 복귀하게 된 심정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는 “정상에 있을 때 떠나고 싶은 배부른 생각을 했다. 은퇴 후 미국에 갔을 땐 일을 안 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특히 “15년의 공백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내 마음은 아직도 30대고 무대에서 어린 친구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나이만 보더라”며 복귀 후 순탄치 않은 상황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영선은 “첫 무대 복귀 후 집에서 울었다”고 고백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삼각산과 쌍문동’ 편이 지난 18일 쌍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정현 가옥에서 ‘분지’의 작가 남정현(87)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참가자들이 미래유산의 현장이자 작가의 집필 모습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집안까지 개방했다. 2016년 방영 당시 20%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 쌍문시장과 감포면옥을 기웃거리면서 식지 않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꼈다. 함석헌기념관에서 반독재 민주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곱새겼다. 기념관은 선생이 만년에 6년간 살던 집을 개조한 서울미래유산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을 증명하는 둘리뮤지엄을 거쳐 덕성여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덕성여대 캠퍼스에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연과학대, 예술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삼각산을 품은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부셨다.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해설사가 쌍문동의 어제와 오늘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오늘의 북서울을 이루는 도봉구와 강북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포함된 성저십리(성 밖 십리) 지역이며, 노원구와 중랑구 일부는 경기 양주에 속했다. 도봉구 쌍문동은 경기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였다. 노해면은 일제강점기 노원과 해등촌을 합쳐 만든 의미 없는 합성 지명이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효자 계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두 개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역 내 효문중·고교도 효자마을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강조하려고 지었다. 2007년 쌍문동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고 하여 효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쌍문동은 서울과 강원도~함경도 동북지방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10개의 큰 길이 있었다. 한양~의주 간 1070리길이 의주1대로라면 한양~경흥 간 2110리길은 경흥2대로였다. 이 길을 통해 함경도의 북어와 땔감과 약재가 유입됐고, 함흥차사와 김종서의 여진정벌군이 오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의 경유지와 거리, 경유 지역을 정리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중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경흥대로는 동대문에서 15리 떨어진 수유현과 32리길 누원을 지나 금화현~금성현~영흥부~함흥부~북청부~길주목~회령부~경원부~경흥을 거쳐 최북단 서수라까지 장장 2190리길이 이어졌다.동북방을 오가는 길의 한양 쪽 마지막 쉼터는 안암동 보제원이었고 다음 쉼터인 누원점(다락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북서울 일대에 역이나 여관은 없었다. 관원이나 상인은 보제원이나 다락원에서 서울을 들고나는 마지막 여정을 챙겼다. 북서울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물품과 봉수(熢燧)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조선 후기 누원점에는 난전 단속을 피하려는 서울상인들이 진을 친 동북방 제일 큰 시장이 열렸다. 정조6년(1782년) “어상이 왕래하는 요충지 누원점의 매점매석이 심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재의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 도봉산역이 누원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창포원과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벽), 다락원체육공원, 서울YMCA다락원캠프장 등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북서울 일대는 고려 남경(南京)의 후보지였다. 고려 숙종(1101년) 때 오늘의 서울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려고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노원, 해촌, 용산, 북촌 일대가 꼽혔다. 고려사에 “노원역, 해촌, 용산 등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선 노원은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노원역 일대이고, 해촌은 창동 일대이며, 면악의 남쪽은 경복궁 뒤 청와대 지역이다. 조선의 도읍지는 고려 남경 터를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북서울에는 경흥대로 노선을 흡수한 경원선 등 세 갈래의 철도궤도가 부설됐다. 1910년 착공, 1914년에 개통된 경원선은 용산역을 출발해 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를 거쳐 원산까지 223㎞를 달렸다. 경춘선과 금강산철도도 건설됐다. 기차역이 생긴 창동은 서울교외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봄에는 우이동 벚꽃놀이, 가을에는 도봉산 망월사 단풍놀이가 유행하면서 우이동 관앵(觀櫻)열차와 망월사 하이킹열차가 각각 운행했다. 경성역에서 창동역까지 50분 거리여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관광 인파가 북적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서울 너른 들에는 전재민과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수용소, 이주정착촌, 저소득층 임시거주지가 집중 조성됐다. 1970~80년대 들어 도봉지구와 창동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상계·중계·창동지구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한 데 이어 1988년 노원구, 1995년 강북구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은 1967년 도심개발 당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 흔적이다. 1985~198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상계동 철거민 투쟁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무허가주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자와 건설사, 가옥주인 조합원들과 충돌한 도시빈민 투쟁사로 기록됐다. 삼각산은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조상산(祖上山)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이루는 ‘세 개의 신령한 뿔’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까지 멀쩡하던 지명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북한산 유적조사보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면서 지명이 변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3년 영문도 모르는 정부가 삼각산을 포함한 서울 북쪽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게 결정타였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지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삼각산은 산의 이름이지만, 북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 지명 한양(漢陽)은 7세기 신라 때부터 이 지역의 지명인 한산(漢山)이라는 땅의 남쪽, 한강(漢江)이라는 강의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지리학에서는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라고 풀이한다. 북한산이란 한산의 북쪽 지역을 이르고, 남한산이란 한산의 남쪽 지역을 이른다. 산 이름 삼각산을 제쳐 두고 지역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의 영험함과 정기의 상실을 초래한다.삼각산 깊고 너른 품에 안긴 쌍문동은 효자마을이라는 정체성에,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과 ‘응답하라 1988’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 쌍문동에 살던 김수정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둘리는 쌍문동을 넘어 도봉구의 마스코트가 됐다. 지역의 대표 캐릭터답게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미니어처공원이 건립됐다. 거리와 역, 버스정류장, 담벼락엔 온통 둘리 그림과 조형물로 채워졌다. 우이천변엔 둘리가 발견된 곳 표지판도 세워졌다. 도봉구는 2011년 만화주인공 고길동씨와 둘리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후속작 ‘응답하라 1988’은 조용한 동네 쌍문동을 다시 화제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동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이름 때문에 드라마 무대로 쌍문동을 캐스팅했다”고 담당PD는 말했다. 만약 2007년 효문동으로 동명을 바꿨더라면 드라마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세 개의 뿔’ 삼각산의 기운이 쌍문동의 뒤를 받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조국 “5·18 폄훼 망발과 악행 일삼는 자들…괴물이 되진 말자”

    조국 “5·18 폄훼 망발과 악행 일삼는 자들…괴물이 되진 말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8일 ‘5·18 망언’을 한 정치인 등을 겨냥해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이 되진 말자”라는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비판했다. 이 대사는 2002년 개봉한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다. 조 수석은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페이스북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조 수석은 글에서 “5·18은 현행 1987년 헌법의 뿌리다”라면서 “우리 모두는 5·18의 자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5·18 폄훼 망발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 그리고 정략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그런 악행을 부추기거나 방조하며 이용하는 자들에게 이하의 말을 보낸다”라며 해당 대사를 옮겨적었다. 조 수석의 이번 발언은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을 비롯해 한국당 지도부가 이들에 대한 징계를 매듭짓지 않는 상황 등을 염두에 둔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기념사에서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고 비판한 바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기인 이사장 등 참석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기인 이사장 등 참석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추진위)는 2일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이날 대회는 지난해 10월 범국민추진위가 출범한 뒤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모은 60만명의 국민 서명을 공개하고 행정안전부에 국가기념일 지정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촉구대회에는 오거돈 부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 허성무 창원시장,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여영국 국회의원,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부마민주항쟁 주역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에 맞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유신독재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4대 민주화 운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독재에 항거한 부마민주항쟁 정신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민주화 대장정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4대 민주화 운동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못했다. 범국민추진위는 항쟁 4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10월부터 국가기념일 지정 서명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59만 3858명이 동참했다. 범국민추진위에 따르면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와 해외 동포까지 온라인으로 서명에 참여했다. 범국민추진위는 이날 촉구대회를 마치고 서명 용지를 박스에 담아 행정안전부에 전달한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부마민주항쟁 등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아이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그 첫걸음이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도 채택했다. 건의문을 낭독한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마민주항쟁은 유신 독재 정권을 청산하고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부산·경남 주민의 자랑스러운 역사다”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든든한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다”고 강조했다.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지고 정신과 가치가 제대로 정립될 때까지 전 국민의 관심과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서 부산시·경남도·창원시·부산국제영화제·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협약 참여 기관들은 부마민주항쟁 기념을 위한 각종 사업에 상호 협력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부마민주항쟁 섹션’을 구성해 부마민주항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로 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정대화의 더 정치] 벼랑 끝 전술에 의존 ‘일차원적 정치’서 벗어나자

    [정대화의 더 정치] 벼랑 끝 전술에 의존 ‘일차원적 정치’서 벗어나자

    일차원은 점과 점으로 연결되는 선을 말한다. 일차원에서 모든 존재는 선 위의 특정 위치로 표시되며 이 위에서 움직이는 존재는 다른 존재를 비켜 갈 수 없기 때문에 대립적이다. 이것이 일차원 존재의 특징이다. 이 존재가 다른 존재를 비켜 가기 위해서는 이차원 너머로 도약해야 한다. 마르쿠제는 산업사회에 대한 판단이 결여된 인간을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불렀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가 수반되었지만 기술적 진보로 사회가 획일화되면서 도구적 이성이 만연된 상태의 인간을 말한다. 일차원적 인간은 도처에서 다른 인간과 충돌할 수밖에 없도록 조건 지워진 인간인 바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일차원적 인간의 존재양식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다.일차원적 인간의 존재방식은 치킨게임으로 설명될 수 있다. 경제학에서 게임이론은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들 간의 상호 의존적인 의사결정을 다루는 이론이고 치킨게임은 그 극단적인 모델이다. 치킨게임은 복수의 참가자가 상대방의 양보를 기대하면서 위험을 무릅쓰는 게임인데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 제임스 딘이 불량배와 함께 절벽을 향해 달리는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마주 달리는 열차” 담론이나 냉전시대에 미소 간 군비확장과 핵대결을 표현한 ‘벼랑끝 전술’ 역시 치킨게임의 일환이다. 해방 후 한국정치에 균열을 가한 것은 1987년 6월항쟁이다. 우리 정치는 6월항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6월항쟁 이전은 정치 자체가 부재한 통치의 시대였고 장기독재로 나타났다. 6월항쟁은 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쿠데타가 사라지고 선거가 쿠데타를 대체했다. 국민이 정치의 주체이자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는 대결 일변도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발호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자유화를 표방한 군부독재가 공안통치의 이름으로 기득권을 사수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민간세력을 포섭한 군부독재의 잔재들이 개혁에 저항했다. 탈군사화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야당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했다. 다시 권력을 장악하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기득권을 도모하다가 권력을 박탈당했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개혁 저지에 나서고 있다. 역사구조적 관점에서 이들은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쳐 형성된 기득권 세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친일파에서 시작하여 반공집단, 군사독재, 보수세력으로 옷을 갈아입게 되는데 해방공간에서 분단이 현실화되자 친일파가 반공주의 분단세력으로 변신했다. 그 후 4월혁명으로 상실했던 기득권은 군사독재와 손을 잡고 회복했으며 6월항쟁 이후에는 산업화 세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기득권을 대변했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이들은 노동 및 중소기업과 대립하며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고, 영남 중심의 패권적 지역주의를 대변하며, 보수·반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친일 부역의 연장선상에서 극단적 친미사대주의를 표출하는 등 민족공동체의 이익과 대척점에 서 있고 건강한 사회발전에 역행하는 파벌적 기득권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정치행위론적 관점에서 이들의 행위는 파벌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이고, 정치심리적 관점에서 이들은 기득권의 유불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의 정치적 좌표는 파벌적 기득권의 척도로 표시되는 일차원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기득권을 위협하는 이차원 이상의 국가적, 민족적, 사회적 가치는 무시되고 은폐된다. 이 기득권은 다른 사회적 가치와 공존할 수 없는 배타적 기득권이자 다른 가치를 배제함으로써만 보호되는 배제적 기득권이기 때문에 언제나 극단적인 치킨게임이나 벼랑끝 전술에 의존한다.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정치가 항구적인 불안정성으로 퇴행되는 배경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득권의 파벌적 속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단과 전쟁과 지역주의로 점철된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또한 반공·반북적 대결주의의 사회적 확산으로 인해 파벌적 기득권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의 외피를 두껍게 걸쳤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라는 국민적 가치가 파벌적 기득권의 위장 논리인 국가안보나 경제성장과 대결하는 듯한 역사적 혼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극 중의 비극이다. 한국현대사는 4월혁명, 6월항쟁, 촛불혁명과 같은 위대한 분출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지만, 이 혁명적 분출은 언제나 짧은 봄으로 끝나고 곧 긴 겨울에 묻히는 불임의 과정을 반복했다. 특별한 역사적 계기에 따른 힘의 분출은 가능하지만, 그 분출을 사회적으로 유지하거나 정치적으로 전환하는 창조적 도약이 제약되기 때문이다. 4월혁명이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귀결되고, 6월항쟁이 노태우의 유사군사독재로 귀결되고, 촛불혁명의 대의가 2년 만에 다시 도전받는 배반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배반의 역사와 단절하는 역사적 도약은 현대사 최대의 과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파벌적 기득권의 재생산을 지원하는 일곱 가지 역사구조적 조건, 즉 식민지배, 분단, 전쟁, 남북대결, 군사독재, 재벌체제, 지역주의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등장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이미 종결된 사실을 변경할 수 없으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한 대안이며 분단체제와 재벌체제가 그 대상이다. 즉 분단체제를 평화통일체제로, 재벌독점체제를 중소기업 중심체제로 변경하는 것이 도약을 위한 유일한 해법이다. 배반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는 개혁은 미리 실패한 개혁이다. 이 제안에 대해서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기술적인 난관이 있다. 분단체제와 재벌체제가 역사적으로 구조화되어 난공불락의 강고한 방어막을 구축해 놓았고 상당한 자생력까지 확보한 마당에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의 문제와, 이 경우 장기간의 혼란 없이 단절을 추진할 전략적 방법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두 가지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파벌적 기득권의 위장된 거짓 실체를 밝혀내는 일이다. 이 기득권은 다른 가치들과 공존 불가능한 기득권인데다 수많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을 배제하는 소수의 배타적이고 배제적인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 다수의 이익이 무엇인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공론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파벌적 기득권이 쳐 놓은 일차원의 덫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파벌적 기득권과 대결하는 폭넓은 생활정치를 조직하는 일이다. 정치가 여의도로 제한되고 국가 중대사의 결정이 여의도 정당들 간의 정략적 타협의 산물이 되는 한 4월혁명과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대의는 유지될 수 없다. 국민이 소외되고 혁명의 대의가 실종된 여의도 정치는 통상 벌거벗은 권력투쟁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며 그 속에서 치킨게임과 벼랑끝 전술이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의도와 정당을 넘어서는 전국적이고 전 국민적인 생활정치의 용광로로 여의도 정치를 녹여내는 정치의 사회적 실천 혹은 사회의 정치적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경제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정치는 권력에 따라 움직인다. 경제는 이익의 극대화와 독점을 추구하고 정치는 권력의 장기화와 독점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는 예외 없이 불행으로 귀결되었다. 경제를 기업의 이윤동기에만 맡겨 둘 수 없고 정치를 정당의 권력의지에만 위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사회가 있고 국민이 있는 것이다. 깨어 있는 국민의 조직된 사회적 실천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상지대 총장
  • 채용 규모·경쟁률도 기밀… 영화 속 스파이? 진·보·상·사 돼야 합격!

    채용 규모·경쟁률도 기밀… 영화 속 스파이? 진·보·상·사 돼야 합격!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원(NIS)이 다음달 22일까지 올해 공개채용 원서를 접수한다. 1987~1999년에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전 정권에서 국내 정치 개입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는 국정원이 개혁 임무를 완수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는 데 국정원 직원들도 십분 공감한다. 그만큼 신규 채용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국정원 관계자는 23일 “올해 공채뿐 아니라 경력채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수 인재를 충원할 계획”이라면서 “준법지원관 제도 확대에 따라 하반기에는 변호사도 추가로 모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국정 개입 논란의 중심에 있던 국내 정보담당관(IO) 제도를 없앴다.●영어·중국어는 원어민 수준 돼야 합격 유리 모든 수험생이 가장 궁금해하는 정보는 국정원의 채용 규모와 경쟁률이다. 몇 명을 뽑는지를 알아야 경쟁률을 파악해 합격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지만 국정원은 채용예정 인원을 공개하지 않는다. 당연히 경쟁률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국정원 조직 규모 자체가 국가 기밀이어서 그렇다. 채용예정 인원을 공개하면 이를 토대로 국정원 전체 직원수를 유추해낼 수 있다. 전문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별도의 지원 자격이 없는 분야는 80대1~100대1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경쟁자가 몇 명이 되는지를 모르고 채용 절차에 뛰어들어야 한다. 올해 채용 부문은 국가정보, 전산, 통신, 7개 외국어(영어·중국어·러시아어·일본어·아랍어·스페인어·우즈베키스탄어) 등이다. 국정원이 해외 정보파트를 강화할 방침이어서 외국어 분야 채용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국어 능통자로 응시하기 위해 별도의 자격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격증을 갖추고 있으면 유리하다. 중국어는 신HSK 5급 이상, 일본어능력검정시험은 N1 이상, 스페인어는 유럽언어 공통참조기준 B2 이상이다. 소수 외국어는 이런 외국어 기준에 맞는 FLEX(한국외국어대 주관)나 SNULT(서울대 주관) 성적을 갖고 있으면 된다. 다만 자격증이 최종 합격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영어·중국어 등 능통자가 많은 외국어는 원어민에 가까운 실력을 보여야 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관계자는 “외국어 실력이 뛰어날수록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입사 후 교육도 이뤄지고 전형 과정에서 다양한 측면을 보기 때문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개혁 방안 ‘준법지원관제’… 업무 중 위법 차단 2017년 서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뒤 내놓은 조직 개혁 방안 중 하나가 준법지원관 제도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정치적 중립을 실현하고자 도입했다. 경력으로 변호사를 채용한 뒤 준법지원관으로 임명한다. 이들은 국정원 각 부서에 배치돼 법률 자문 업무를 맡는다. 국정원 직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 사항을 심사하는 일도 한다. 법적으로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준법지원관 연봉 등 복리후생에 대해서는 공개된 것이 없다. 하지만 국정원에 따르면 이들의 이직률은 그리 높지 않다. 변호사로 개업하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음에도 이들이 국정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볼 때 복리후생 수준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준법지원관 A씨는 “국정원 직원의 현안을 파악하고 바람직한 직무 방향을 찾는 일을 도와준다”면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합법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올해 사상 최초로 채용연계형 인턴 모집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원서 접수를 시작해 현재 서류와 면접 전형을 밟고 있다. 최종 선발된 인턴들은 오는 6월 첫 근무를 시작한다. 북한·정보통신기술(ICT)·전략물자·대테러·방첩·미래전략·해외지역분석·어학·교육·홍보 분야에서 3개월간 활동한다. 실적이 우수한 이들은 내년 초 정규직(특정직 7급)으로 정식 임용된다. 다만 인턴이라도 국정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 일반 기업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도 입력해선 안 된다. 국정원에서 활동 증명서를 발급해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존 전형으로는 선발할 수 없던 인재를 뽑고자 채용연계형 인턴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수시 경력직도 꾸준히 모집한다. 지금은 일반·과학기술 분야 경력 채용이 진행 중이다. ● NIAT 필기 난도 높아… 문제 원리 꿰뚫어야 국정원 공채에 합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국정원 인사담당자는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진실성과 보안 의식, 폭넓은 독서와 상식, 논리적 사고력이다. 최근 전문가가 대신 써주거나 첨삭 지도를 받은 국정원 입사 자기소개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사담당자는 “국정원 자소서의 핵심은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진솔하게 표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수험생들이 자신의 입사 준비 과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세히 올리는 것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지원자가 과연 투철한 보안 의식을 지녔는지 의심이 된다는 것. 인사담당자는 “국정원 요원은 사실 뒤에 깊이 숨어 있는 진실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폭넓은 독서와 상식 공부로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필기시험은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와 논술(한국사·전공)로 진행된다. NIAT는 순간적 상황 판단뿐 아니라 문제의 구조를 근원적으로 꿰뚫는 능력까지 요구한다. 매년 유형이 바뀔 뿐 아니라 시험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문제의 원리를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합격자들은 공기업과 사기업 기출문제, 공직적격성평가(PSAT) 등 시중에 나온 관련 문제집을 모두 풀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국가정보와 외국어 직렬은 한국사 논술을, 정보통신 분야는 관련 전공 논술을 치른다. 한국사 논술의 경우 역사적 사실과 현안의 유사점, 차이점을 찾아 이를 엮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국정원 합격자 B씨는 “어떤 유형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상상해 직접 출제해 보기도 했는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사생활 불편도 감수할 애국심·헌신 자세 필요 체력검사 종목은 4가지다. 20m 왕복달리기와 10m 왕복달리기, 윗몸말아올리기, 악력이다. 기본적인 지구력과 민첩성을 평가한다. 합격 기준 역시 공개하지 않지만 20대의 보통 체력이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면접에선 다양한 상식과 사회 현안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신문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국정원 요원의 핵심 덕목인 애국심, 보안 의식, 정보 감각과 연계해 수시로 정리하면 도움이 된다. 또 다른 합격자 C씨는 “영화 속 ‘007’처럼 화려하고 멋있는 스파이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면서 “보안을 이유로 사생활의 불편도 평생 감수해야 하는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애국심과 헌신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여검사를 황영감이라니요”/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여검사를 황영감이라니요”/손성진 논설고문

    지금이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수십 년 전에는 남성의 전유물 같았던 직업이 많았다. 그 속에 끼어 남성과 경쟁한 한 명의 여성, 홍일점은 개척자이자 선구자였다. 1948년 정부 수립 직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은 67명이었는데 그중에 여성은 단 1명, 이화여중 5학년 학생인 투원반 선수 박봉식(1930~1950)이 있었다. 1948년 제헌국회 총선에 여성 18명이 출마했지만 전원 낙선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1949년 보궐선거에서 임영신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당선됐고, 이듬해 총선에서 박순천이 홍일점으로 배지를 달았다. 1952년 1월 발표된 고등고시 2회 사법과 합격자 명단에 고 이태영 박사가 들어 있다(동아일보 1952년 1월 23일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초의 여판사 황윤석은 1953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검사시보로 근무했다. 직원들이 “황 영감님”이라고 부르자 황씨는 얼굴을 붉히며 “미스 황”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고 한다. 기사가 나자 황 시보에게 러브레터가 전국에서 쏟아졌다. 어떤 이는 ‘황 영감’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여성 공군 조종사로 6·25전쟁에도 참전한 김경오 대위의 기사가 실렸다. 석사 학위를 받는 여성도 극히 드물어 기삿감이었다. 1962년 이미순씨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서울대 농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에 프랑스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은 함복순씨 기사도 실렸다. 그때까지도 함씨는 홍일점 약학 박사였다(경향신문 1962년 8월 28일자). 1969년에 여성 박사는 국내 박사 75명, 해외 박사 11명이었다. 의학 박사를 빼면 문학, 법학, 정치학, 사학 등 각 분야에서 1~2명씩에 불과했다(동아일보 1969년 3월 20일자). 1962년에 홍일점 영화감독인 홍은원씨가 ‘여판사’라는 제목의 영화 데뷔작을 촬영 중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은 박남옥씨인데 1955년 ‘미망인’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다. 아기를 업고 15명이나 되는 스태프의 식사를 차리면서 영화를 찍었지만 개봉 3일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동아일보 1955년 2월 27일자). 홍숙자씨는 1959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 됐다. 외교관으로 10년 동안 근무하고 동국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7년 사회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교육자이자 정치가였던 정희경씨는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에 홍일점 대표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평양 만찬장에서 정씨가 술을 사양하자 북측 박성철이 “술 연습 좀 하시죠”라고 말했다.
  • 김윤석 “늘 맘에 품었다, 인간 얘기 그리는 감독을”

    김윤석 “늘 맘에 품었다, 인간 얘기 그리는 감독을”

    여성 네 명의 표정 섬세히 잡아낸 작품 “특별한 것보단 보통 사람 그리고 싶다 우리 주변 이웃의 삶, 그 속의 삶 보도록”집 밖을 맨발로 뛰쳐나와 딸아이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는 중년 엄마의 허전한 뒷모습, 마주하기 불편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파르르 떨리는 한 여인의 입술, 원망하고 미워하던 서로에게 끝내 웃음 지어 보이는 두 여고생의 말간 얼굴. 배우 김윤석(51)의 연출 데뷔작인 영화 ‘미성년’(11일 개봉)에는 주요 등장인물인 여성 네 명의 복잡다단한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최근 이 영화의 언론 시사회 이후 객석에서는 “(김윤석에게) 이런 섬세한 면이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황해’, ‘도둑들’, ‘남한산성’, ‘1987’, ‘암수살인’ 등 주로 진지하고 강한 모습을 선보였던 김윤석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제 역량에 카메라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장르적으로 세련된 기교를 부릴 수도 없었기에 드라마와 캐릭터, 배우들의 연기력에 승부를 걸었다”면서 “신인 감독의 패기라면 패기”라며 웃었다.‘미성년’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평온했던 두 가정이 마주하는 폭풍 같은 시간을 담았다. 이야기의 골자는 단순하지만 한 사건에 반응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점이 눈에 띈다. 이 영화는 김윤석이 2014년 대학로 창작극 페스티벌에서 봤던 한 젊은 연극인의 작품을 바탕으로 했다. 김윤석은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아이들이 수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원작자에게 영화화를 제안했고, 3년에 걸쳐 함께 시나리오 집필을 했다”면서 “어떤 일을 피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이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김윤석이 직접 연기한 대원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가장이다. 자신의 비밀이 하루아침에 들통나자 아내 영주(염정아), 딸 주리, 연인 미희로부터 일단 도망치고 본다. 자신이 벌여놓은 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상황을 모면하려 애쓰는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의 표상이다. 그래서 이름 역시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대원’이라고 지어 익명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어떤 순간이 되면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를 쑤시잖아요. 젊었을 땐 추하다고 생각해서 절대 안 보여주던 모습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무의식 중에 무뎌지는 데 그게 상대방에게는 불쾌감을 주죠. 단적인 예를 들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성숙한 성장은 죽는 날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었으니 성장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거죠.”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인생의 목표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 ‘황해’를 찍을 때도 하정우씨와 ‘형이 (연출) 먼저 하세요. 네가 먼저 해’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연극 연출을 한 적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만나면 언젠가 영화 연출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감독이 되니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장면까지 신경쓰여서 긴장됐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 연출작에 대한 계획을 물으니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눙쳤지만 김윤석이 추구하고 싶은 작품 세계는 뚜렷해 보였다. “오래 지속되는 테마는 왕이나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더라고요. 앞으로도 연출을 한다면 별일이 있지 않은 한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의 삶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특별한 이야기보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익숙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두 번 세 번 봐도 질리지 않고 꺼내서 볼 때마다 새로운 시각이 보이니까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몸 속 움직이는 마이크로 로봇 작동시킬 모터 개발

    몸 속 움직이는 마이크로 로봇 작동시킬 모터 개발

    1987년 영화 ‘이너스페이스’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나노 잠수정을 타고 동물과 사람의 몸 속을 탐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영화는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마이크로 탐험대’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최근 나노기술이 발달하면서 SF에 등장하는 것처럼 혈관을 비롯해 몸 속을 돌아다니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치는 나노 규모의 로봇 개발이 현실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 연구진이 나노 크기의 초미세공간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모터, 일종의 동력기관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김준수 교수팀은 DNA를 기반으로 해 나노입자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브라운 모터’를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 6일자에 실렸다. 나노로봇이나 나노머신을 몸 속이나 미세공간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분자들을 원하는 곳으로 선택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원인은 나노 크기의 분자들은 용액 속에서 다른 용매들과 충돌하면서 방향성 없이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 불규칙한 브라운 운동을 제어해 나노입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브라운 모터를 개발했다. 이론화학 및 계산화학 기법을 바탕으로 나노입자가 DNA를 따라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DNA를 설계한 것이다. 음(-)전하의 DNA와 양(+)전하의 나노입자는 정전기적 인력으로 결합되는데 DNA 구조가 유연할수록 나노입자와 결합에너지가 낮고 결합하기 쉬워진다. 이런 원리로 나노입자가 DNA의 유연한 부분을 향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계산적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DNA 유연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구조가 반복되도록 합성한 뒤 주변 이온 농도를 변화시키면 나노입자가 한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김준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초미세 공간에서 DNA를 결합한 나노입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나노크기의 모터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선택적으로 분자 위치를 제어할 수 있는 나노디바이스나 응용기술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조두순 24시간 감시할 전자발찌… 80가지 징후로 성범죄 사전대응

    조두순 24시간 감시할 전자발찌… 80가지 징후로 성범죄 사전대응

    성범죄자 범행 전 유사패턴 반복 포착 과거전력 분석 도입… 위험징후 ‘경고’ 오늘부터 CCTV로 현장 실시간 확인 재범 가능성 높아지면 집중 보호관찰 AI 개발 ‘허수경보’ 줄이고 업무 경감지난해 말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오는 2020년에 출소한다는 소식에 청와대 게시판은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으로 도배됐다. 조두순은 출소 이후에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해 24시간 전자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질러도 ‘사후 대응’밖에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작용한 탓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정부는 지난 2월 전자발찌 착용자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범죄 징후 예측 시스템’을 새로이 도입했다. 시행 11년째를 맞이하는 전자감독제도(전자발찌)는 이번 개선을 통해 ‘사전 대응’이 쉽지 않다는 비판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법무부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해 조두순을 감시하게 될 전자발찌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직접 살펴봤다.●3등급으로 관리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지난 4일 기자가 찾은 중앙관제센터 2층 관제실은 쉴 틈 없이 분주했다. 거대한 중앙관제 화면과 함께 4교대로 근무하는 5명의 관제직원들이 분주히 준수사항 위반 경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관제직원이 다급히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출입금지구역에 진입한 전자발찌 착용자에게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고 퇴거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다. 출입금지구역은 일반적으로 초·중·고, 유치원, 어린이집 등이며, 법원에서 범죄와 연관성 있는 장소도 추가 설정할 수 있다. 만일 전자발찌 훼손 등 긴급 상황에서 착용자와의 통화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관제직원은 즉시 지역 보호관찰소와 관할 경찰에 연락해 현장 출동을 요청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경보음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이들이 관리해야 하는 착용자는 대전 관제센터와 합쳐서 3115명. 하루에 울리는 경보는 평균 1만건이 넘는다. 여기에 법무부가 새로 도입한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이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었다. 경보 대상자들의 명단이 표시되는 알림판에는 착용자 각각의 재범 가능성에 따라 예측시스템이 분류한 ‘일반’, ‘주의’, ‘고위험’ 등급이 표시됐다. 등급은 판결문, 보호관찰 상황, 위치 추적 시스템으로부터 뽑아낸 자료를 토대로 범죄수법, 이동경로, 정서상태, 생활환경 변화 등 80여 가지 요인에 점수를 매겨 ‘재범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를 수치화시킨 것이다. 착용자의 현재 상태에 따라 등급은 실시간으로 변화된다. 문서에서 특정 정보를 뽑아내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통해 실시간으로 면담 기록에서 위험 징후를 파악해내기도 한다. 관제직원은 점수가 높은 착용자일수록 우선순위에 두고 주의 깊게 관리할 수 있다. 특히 이동경로 분석은 착용자의 평소 생활패턴을 ‘빅데이터’로 관리하며 이상 징후를 보일 경우 경고해주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관제직원이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 한 착용자의 생활패턴을 조회하자 평소 주야간 생활패턴과 함께 최근 갑자기 드나들기 시작한 장소가 나타났다. 출입금지구역은 아니지만, 착용자가 생활패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보이자 예측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식한 것이다. 관제센터 관계자는 “성범죄자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유사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특성을 보인다”면서 “예를 들어 공원에 아동을 유인해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경우, 재범도 공원에서 저지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원 자체가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진 않지만, 갑자기 공원 방문 횟수가 늘어난다면 과거 범죄전력, 생활패턴 변화 등을 감안해 점수가 올라가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될 것”이라면서 “당장 위반 사실이 없더라도 면담 횟수를 늘리는 등 집중 관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자발찌 11년… 재범률 감소 효과 톡톡 2006년 용산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사건, 2007년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인사건, 2008년 안산 초등학생 납치 강간사건까지. 2008년 우리나라에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될 당시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전자발찌 제도는 형량을 채워 출소한 이후에도 재범 위험성이 높은 특정 범죄자의 신체에 전자발찌를 부착해 24시간 대상의 위치, 이동경로, 상태를 파악한다. 정부는 보호관찰관의 밀착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억제하고 있다. 이미 미국(1983년), 캐나다(1987년), 영국(1989년) 등 해외에선 일찍이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강력범에 대한 재범 방지 목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 경범죄자에 대한 자택구금 목적이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도입 초기엔 오히려 강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지 않고, 대신 교도소 과밀 수용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들을 전자발찌 착용 대가로 가석방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우리나라와 같이 재범 방지를 위해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30여개 국가가 전자발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전자발찌 제도의 목표가 ‘재범 방지’로 수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발찌의 효과는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전인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성폭력 범죄 재범률은 평균 14.1%에 달했지만, 제도 시행 이후 성폭력 범죄 전력이 있는 착용자의 재범률은 7분의1 수준인 2.01%로 낮아졌다. 성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강도, 미성년자 유괴 등의 범죄도 24시간 전자감독을 받고 있다. 법무부는 향후 가정폭력 범죄도 전자발찌 착용 대상에 포함되도록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 “법령 근거… 인권 침해 요소 없어” 일각에선 전자발찌 제도, 나아가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을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비유하며 사생활 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실제로 미래에 발생할 범행을 미리 예측해 범죄자를 사전에 체포하는 내용을 다룬 SF영화다. 영화에서처럼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미리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미 10년 넘게 시행된 전자발찌 관련 법을 토대로 수집해온 자료를 활용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인권 침해 요소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범죄 사실, 보호관찰관 면담내용, 위치추적 결과 등 정상적인 업무를 통해 이미 수집된 정보를 컴퓨터가 분석하는 것으로 모두 법령에 근거하고 있어 인권 침해적 소지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에 비유되는 것에 대해선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을 사전에 체포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단지 재범 가능성에 따라 면담 횟수를 늘리고 집중적으로 보호관찰을 실시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1명당 9만건 경보처리… 고질적 인력난 숙제 고질적인 인력난은 현재 여전히 숙제다. 2008년 첫 도입 당시 151명이었던 전자발찌 착용자는 3월 기준 3115명으로 약 20배가 됐다. 그러나 같은 시기 관제직원은 9명에서 43명으로 4.8배가 됐을 뿐이다. 착용자들이 지난해 울린 경보는 387만건에 달했다. 직원 1인당 한 해에 평균 9만여건에 달하는 경보를 처리한 셈이다. 직접 출동해야 하는 일선 보호관찰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58개 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는 전담 직원은 162명으로, 1인당 착용자 19명에 대한 정기 면담, 긴급 출동, 상황 수습을 도맡아야 한다. 특히 지방 관찰소에선 야간에 여러 상황이 발생하면 한꺼번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인력 충원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법무부는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통한 업무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우선 전국에 퍼져 있는 폐쇄회로(CC)TV를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은 착용자가 이상 징후를 보이더라도 당장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 상황이 발생해 보호관찰관이 현장에 가서 확인하더라도 시간이 지체된 상황이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월 국토교통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주는 CCTV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우선 1일 대전에서 시작하는 CCTV 연계 시스템은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으로 순차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착용자의 일탈 행동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근처 CCTV를 통해 착용자의 행동을 즉시 파악하고 전화를 통한 대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통해 ‘허수 경보’ 대응을 줄이는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착용자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출입금지구역에 진입하게 되는 경우에도 경보가 울리기 때문에 관제직원들은 모든 경보를 일일이 파악하고 상황을 종료해야만 한다. 그러나 AI 시스템이 도입되면 금지구역에 진입한 착용자의 이동 속도가 차량과 비슷하다는 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경보를 울리지 않게 자동으로 조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도는 상당히 올려놓을 것”이라며 “(허수 경보를) 30%만 걸러도 충분히 업무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조두순법’도 조만간 본격 시행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조두순과 같은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범죄자에 대해 일대일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하고 매년 심사를 통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면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레미제라블’ 프랑스어 콘서트 5월 국내서 본다

    ‘레미제라블’ 프랑스어 콘서트 5월 국내서 본다

    인기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초연 40주년을 맞아 오는 5월 프랑스어 버전 콘서트로 국내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인 쇼미디어그룹은 ‘레미제라블’의 프랑스 투어팀이 5월 8~12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평화의전당과 같은 달 25~2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내한 콘서트를 연다고 19일 밝혔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레미제라블’은 작사가 알랭 부브릴, 장마르크 나텔과 작곡가 클로드미셸 숀버그가 만들어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후 작품에 관심을 가진 영국 뮤지컬 연출가 캐머런 매킨토시가 새롭게 연출해 5년 뒤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려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됐다. 매킨토시는 뮤지컬 넘버(곡) 가사를 영어로 번안하는 등 음악과 대본을 대폭 손질했다. 2년 뒤인 1987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는 등 ‘레미제라블’은 세계 뮤지컬 시장에서 초유의 흥행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현재까지 22개 언어로 번역돼 40개국 이상에서 공연됐다. 1987년 토니어워드에서 최고 뮤지컬 부문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레미제라블’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명작 뮤지컬로 평가받는다.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 ‘원 데이 모어’,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등 뮤지컬 넘버도 큰 사랑을 받았고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다. 이번 공연은 콘서트 형식이지만, 배우들이 입·퇴장하고 자연스러운 의상 교체를 선보이는 등 실제 공연에 가깝게 진행된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공연 중이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등에서도 투어가 예정돼 있다. 가수 및 배우 28명이 내한하고, 프랑스와 한국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커지는 양극화·외국 이주민 혐오… 한국도 ‘외로운 늑대’ 주의보

    커지는 양극화·외국 이주민 혐오… 한국도 ‘외로운 늑대’ 주의보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 중심부에 있는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이 사건은 계획적인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다. 용의자들은 테러리스트 워치리스트(테러 위험인물 명단)엔 없었다”고 밝혀 충격을 준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함께 ‘테러 청정국’으로 꼽히는 곳이다. 국제 관계 비영리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테러리즘 인덱스’(GTI)에 따르면 한국과 뉴질랜드의 테러 영향력은 0.286점(10점 만점)으로 ‘매우 낮음’ 수준이다. 전체 163개국 중 공동 114위다. 이번 뉴질랜드 총격 테러는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한국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자생적 테러’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발달한 인공지능·로봇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테러리즘의 가능성도 떠오른다. 서울신문은 18일 한국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테러리즘의 현주소를 짚어 봤다.재난 테러리즘 ●정치적 폭력에서 무차별적 학살로 테러리즘은 인간이 ‘계획한’ 재난이다. 일반적인 자연·사회 재난과는 결이 다르다. 특수한 목적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담겼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8~2017년) 세계 각국에서 3만 427건의 테러가 발생했다. 11만 1103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인명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진다. 2017년엔 1978건의 테러가 발생해 8299명이 사망했다. 테러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가 각각 가장 많았던 해는 2013년(4096건)과 2015년(1만 7329명)이다. 초창기 테러리즘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테러의 대상과 목표가 명확했다. 살상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모도 크지 않았다. 정치적 요구 사항만 쟁취하면 테러는 성공한 것이었다. 정치학적인 의미로 테러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다. 프랑스혁명(1789~1794)을 분석한 버크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등 당시 나타났던 여러 유형의 폭력을 테러리즘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테러리즘은 관점에 따라 정치적 대의를 위한다는 나름의 정당성을 갖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엔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날 테러리스트들은 추상적인 목적을 내세우며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살상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테러의 개념이 정치적 폭력에서 무차별적 학살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9·11테러’다. 2011년 9월 11일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는 민간 항공기 4대를 납치해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에 있는 미 국방부(펜타곤)에 자살 테러를 감행했다. 납치된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을 비롯해 인명 피해만 3500명이 넘는다. 사상자 수도 엄청났지만 무엇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 조직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이 충격을 줬다. 테러의 대상이 일부 정치 세력이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1년 1373호 결의에서 테러리즘을 ‘민간인을 상대로 사망·중상을 입히거나 인질로 잡는 등의 행위로 특정 집단에 공포를 야기해 대중이나 정부, 국제조직에 특정 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의도를 가진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제 테러 조직 소탕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9·11테러의 원흉으로 지목된 빈라덴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1년 사살됐다. 빈라덴은 죽었지만 아직도 세계 각국에선 테러리즘이 끊이지 않고 있다.첨단기술 활용 ●4차 산업혁명, 테러리즘 위협 커져 기술의 발달로 테러리즘도 진화하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사이버테러는 첩보 영화의 단골 소재다. 그만큼 대중에게도 익숙하다.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항공·철도·통신 등 국가 기간산업을 장악할 수 있다.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순식간에 국가 기능 전반을 마비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것이다. 전자기파(EMP)로 전력 공급을 차단하거나 용량이 큰 데이터를 마구잡이로 전송해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온라인 폭탄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수법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방송사와 농협 등 은행의 전산망이 마비됐던 ‘3·20 사이버테러’가 있다. 방송사 직원들은 회사 내부망 접속이 차단됐고, 은행들은 창구를 비롯한 모든 거래가 중단됐던 초유의 사태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내부에서 사용 중인 인터넷 주소(IP)가 백신 소프트웨어 배포 관리 서버에 접속해 악성 파일을 뿌린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해커들만 쓰는 악성 코드의 흔적을 미뤄 봤을 때 북한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초연결성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전에 없던 테러리즘의 위협도 커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연결은 더욱 촘촘해졌다. 새로운 방식의 결합으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돼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고 낙관론자들은 내다본다. 하지만 이런 초연결사회의 허점을 노린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이 파고들 여지도 크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됐기 때문에 간단한 공격만으로도 연쇄 작용이 일어나 사회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테러 조직이 사이버공간을 조직 선전과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 것 역시 초연결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2016년 3월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슈퍼컴퓨터 알파고의 대국은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발달해 언젠가는 인류를 지배할 거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인류를 제압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테러 조직이 인공지능 기술을 악용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경고한다.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뇌파를 분석해 인간의 뇌를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숫자를 본 사람들의 뇌 반응을 분석해 은행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실험도 있다. 음파를 분석해 특정인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위조해 보이스피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경고했다.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는 미래 로봇산업의 명암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로봇 슈트를 장착한 주인공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정의의 사도로 악당을 무찌른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상대하는 악당들 역시 첨단 기술을 동원한 로봇 슈트를 장착해 시민들을 위협한다. 앞으로 로봇을 활용한 테러리즘도 활발하게 펼쳐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일부 정부와 군수업체들은 로봇병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최첨단 무인 로봇 공격기인 ‘리퍼’와 ‘프레데터’ 등을 배치했다. 로봇 전문가인 노엘 샤키 영국 셰필드대 명예교수는 “로봇 제작 비용이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무인 로봇병기를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생적 테러 ●한국 사회 고용 참사와 저성장의 늪 한국은 비교적 테러로부터 안전한 국가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인에 대한 테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얀마 아웅산 테러(1983), 칼(KAL)기 폭파 사건(1987),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 사건(2004), 샘물교회 탈레반 피랍 사건(2007) 등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국내에선 2008년 7월 탈레반 연계 세력의 불법 활동이 적발됐고, 지하드(성전)를 선동하는 이슬람인이 포착되기도 했다. 2009년 8월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거점 지역인 ‘칸다하르’로 마약 원료 물질을 밀수출하던 일당이 국내에서 검거되기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2015년 11월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세계 동맹국’이라면서 자신들이 테러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정한 60개국 중엔 한국도 포함됐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1월 ‘IS·알카에다 관련 보고서’를 통해 시리아 내 알카에다 계열 무장조직의 우즈베키스탄인 다수가 터키를 거쳐 한국으로 가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엔 “한국에 있는 일부 우즈베크 이주 노동자들이 급진화됐으며 시리아 아랍공화국으로 향하는 극단주의자들의 자금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쓰였다. 이 외에도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터졌던 연평도 포격 사건(2010) 등 무력 도발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테러방지법은 2016년 제정됐다. 숱한 진통을 겪었다. 법에서 정의하는 테러의 개념이 모호해 시민들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테러 위험 인물 관련 정보 수집 행위가 자칫 민간인 사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테러방지법의 주요 내용은 대테러 활동을 총괄·조정할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테러 예방·대응을 위해 관계 부처가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도 만들었다. 테러로 발생한 사망·부상자에 대한 위로금, 재산 피해 복구비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국은 최근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용 악화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고 우발적인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특수한 목표를 가지고 조직된 테러단체가 아니라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이른바 ‘외로운 늑대’다. 외로운 늑대는 테러의 방법 등과 관련된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만큼 예방도 어렵다. 최근 증가하는 외국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피해 의식 역시 자생적 테러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다양한 형태의 불만 세력과 사회 반체제 세력들이 활동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불만을 테러로 강력하게 표명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공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경찰의 위기관리 역량을 강화하면서 민간 경비업체와의 협력도 늘려야 한다”면서 “평소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민방위훈련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원희 건양대 국방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테러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SNS에서 사진이나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얼굴인식 기술로 용의자를 추적·검거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적극적인 공보 활동으로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을 차단해 혼란과 공포를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테러 피해자들이 무사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마이웨이’ 정한용, “생후 6개월 첫 딸, 먼저 떠나 보냈다” 고백

    ‘마이웨이’ 정한용, “생후 6개월 첫 딸, 먼저 떠나 보냈다” 고백

    배우 정한용이 아픈 과거를 털어놨다. 13일 방송되는 ‘인생다큐-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는 연기자, MC, 정치인, 사업가까지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이자 올해로 데뷔 41년 차를 맞이한 배우 정한용이 출연한다. 정한용은 “우연히 친구 따라갔던 공채 탤런트 시험에 덜컥 합격해 데뷔했다”고 말하며 “마침 방송국에서 ‘가장 배우처럼 안 생긴 사람’을 뽑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외모였던 내가 합격했다”고 합격 비화를 공개한다. 이어 “데뷔와 동시에 당시 최고의 여배우 장미희와 드라마 ‘욕망’(1980)의 주연이 됐다”고 밝히며 “처음이라 조연 역할이나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주인공을 맡으라고 하니 나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이후 그는 ‘보통 사람들’(1982), ‘욕망의 문’(1987), ‘고개 숙인 남자’(1991) 등 드라마, 영화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까지 전천후로 활동하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날 정한용은 그동안 꾸준히 마음을 쏟아온 장소로 ‘마이웨이’ 제작진을 안내한다. 그곳은 미혼모 아이 입양 전문 기관 ‘동방사회복지회’. 몇 년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첫아이이자 생후 6개월이었던 딸을 폐렴으로 먼저 떠나 보냈던 것. 그는 “어머님이 화장해 양수리에 뿌렸다고 하시더라. 눈물이 나서 한동안 강변도로를 다닐 수 없었다”고 고백하며 “그 아픔 겪으며 본능적으로 자식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고 회상한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연기자이자 MC에서 정치인으로, 이제는 사업가의 길까지 변화무쌍한 인생을 살고있는 배우 정한용의 ‘인생다큐–마이웨이’는 13일 오후 10시 TV CHOSUN에서 방송된다. 사진 = TV조선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4부. 광복의 여명 : 충칭 시기 ② 일본의 패망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1931년 중국 만주를,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하며 제국주의 팽창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점령한 뒤 “독일과 중동에서 만나겠다”며 버마(현 미얀마)·인도 전선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지막 정착지인 중국 충칭에서 당·정·군 체제를 갖춘 뒤 ‘전쟁 괴물’이 된 일본의 패망을 기다렸다. 해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찾아왔다.●임정, 1945년 2월 28일 독일에도 선전포고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이 선점한 중국 내 이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일본은 제조업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41년 12월 미국의 해군기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석유금수 조치를 풀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 간 군사력 차이를 감안할 때 진주만 공습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즉각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태평양전쟁’(1941~1945)에 나섰다. 이 전쟁은 임정이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광복군을 양성해 뒀다가 일본이 중국,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면 이들을 도와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정은 일제가 진주만을 공격한 직후 주석 김구(1876~1949)와 외무부장 조소앙(1887~1958) 명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3000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해 중국과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에 민주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임정은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포고했다. 194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려면 3월 1일 이전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해 하루 전인 2월 28일 발표했다.●中 통제받은 광복군, 9개 조항 행동준승 논란 1940년 9월 태어난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하던 또 다른 한인 부대였던 조선의용대 대원 상당수가 1941년 3~5월 본진을 이탈해 화베이 지역으로 떠나자 국민당 정부는 당황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은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한국광복군 행동준승’이라는 9개 조항을 전달했다. 중국 중앙군 참모총장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 광복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 준승은 광복군이 사실상 중국의 고용군이 된다는 것으로 매우 굴욕적인 군사협정이었다. 중국이 임정을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외국 군대를 통제하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당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어느 정도 간섭이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있다. 임정은 중국의 준승 명령에 분개해 청사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1875~1965)과 협의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우리 측의 지속적인 요구로 1944년 8월 광복군 통제권을 임시정부에 돌려줬다.●광복군, 한지성·문응국 등 임팔전투 투입 일본은 1942년 1월 영국의 식민지 버마를 침공했다. 인도에 주둔해 있는 영국군이 즉각 대응에 나섰는데, 이를 버마 전투(1942~1945)라고 한다. 영국군은 영어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광복군은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면전구공작대’를 꾸렸다. 인도와 버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공작부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인도 캘커타에 도착했다. 한지성(1913~?)과 문응국(1921~1996) 등 9명이었다. 공작대는 영국군에게서 심리전 교육 등을 받고 1944년 초 임팔전선에 투입됐다. 임팔은 인도와 버마의 접경지역으로 열대밀림 산악 지대다. 광복군은 1945년 7월 일본군이 버마에서 완전히 패해 철수할 때까지 1년 넘게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9월 이들은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로 무사히 복귀했다. 한지성의 증언이다. “우리 공작대는 언제고 전투할 수 있도록 무장한 뒤 적(일본군)과 가장 가까운 진지에서 일본어로 방송을 했다. 선전문을 제작해 살포하고 일본군 문건을 번역하며 포로를 심문했다.”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함께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지하공작에 나서는 것이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여러 활동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를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1945년 4월 OSS 요인들이 충칭의 임정 청사로 찾아와 작전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고 김구는 이를 승인했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독립운동 인사를 구출하고자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에 잠입한 박무영(송중기 분)이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이다.OSS는 같은 해 5월부터 광복군 내 엘리트들을 차출해 군사훈련을 시켰다. 대표적인 이들이 훗날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 2011)과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장준하(1918~1975)다. 이들은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김준엽은 1987년 개헌 당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조문을 삽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장준하는 박정희(1917~1979)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1975년 의문사했다. ●승전국 지위 확보·강대국 간섭없이 독립 목표 임정은 미군의 지시로 국내에 진격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8월이 되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8일에는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국을 점령했다. 당시 일본 측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보다 소련 참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적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도 결국 무산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임정은 한반도에 잠입해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강대국의 간섭 없이 한반도 독립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 참전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광복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에 참가했더라도 그 수가 워낙 적어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일본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외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던 1944년. 임정은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려야 했다. 1943년 ‘카이로선언’(미·영·중이 일본 문제 논의)으로 조선 독립을 보장받은 시기였기에 이를 반영해 헌법을 개정했다. 주석(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를 가미해 절충적 정부를 구성했다. 교육과 직장, 노약자 부양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파업권도 명시했다.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다. 이는 1941년 임정이 조선민족혁명당과의 합작을 앞두고 좌우를 아우르기 위해 내놓은 ‘건국강령’의 영향이 컸다. 건국강령을 지은 이가 ‘사민주의자’ 조소앙(1887~1958)이다.●조소앙의 삼균주의, 건국 이념 기초로 작용 일본 메이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19년 3·1운동 뒤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1919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임정을 정식 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호소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한독당은 1940년 5월 우파 통합정당의 이름으로 계승돼 임정의 여당이 됐다. 그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모두 균등해지려면 정치와 경제, 교육의 세 가지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삼균주의인데, 훗날 건국강령의 이론적 기반이 됐다.●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한국전쟁 때 납북 해방 뒤 김구와 함께 한독당을 이끌었고, 1948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좌파 정당인 사회당을 창당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됐지만 6·25전쟁 때 납북됐다. 만약 임정의 ‘1944년 헌법’대로 해방 정부가 꾸려졌다면 지금쯤 우리는 독일이나 스웨덴을 모델로 한 사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948년 제헌헌법은 건국강령의 경제조항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이룬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충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히틀러의 광기 그린 ‘베를린 천사’ 브루노 간츠 타계

    히틀러의 광기 그린 ‘베를린 천사’ 브루노 간츠 타계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배우로는 처음 아돌프 히틀러를 연기했던 스위스 배우 브루노 간츠가 77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매니지먼트사는 고인이 대장암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지난 15일 밤(현지시간) 취리히 자택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16일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말미에 사회를 본 여배우 앙케 엥켈케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순서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었으며 ‘만추리안 캔디데이트’(2004년)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년) 등 영어로 제작된 영화들에도 많이 출연한 그의 연기 내공은 히틀러의 마지막을 그린 영화 ‘다운폴’(2004년)에서의 터질듯한 광기와 내면의 우울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우리에겐 동서로 분단된 독일의 상황을 묘사한 ‘베를린 천사의 시’(1987년)로 낯익다. 히틀러를 ‘악의 화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묘사했다는 비판에 그는 비평 전문지 ‘아츠 데스크’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악의 화신 자체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악이 그 자체로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며 그런 비판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히틀러도 결국 인간이었다는 관점에서 역할에 접근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도 사람이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라고 되물었던 일로 유명하다. 그의 연기는 너무도 탁월해 전 세계에서 92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마지막 장면은 인터넷 등에서 온갖 패러디 소재로 등장했다. 간츠는 젊은 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2001년에는 페터 슈타인이 연출한 21시간짜리 대작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역할을 맡기도 했다. 도이체 벨러에 따르면 어렸을 때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자란 간츠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1960년대 독일에서 서점 직원, 병원 위생보조원 등을 하며 영화계 문을 두드렸다. 그는 히틀러 역할을 하고 난 뒤 몇년 동안 히틀러역이 자신을 따라다녔다며 “호텔에서 미스터 히틀러를 옆에 두고 매일 밤을 보낼 수는 없어서 벽을 쌓거나 철의 장막을 치기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2005년 그는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기를 준비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으며 비밀리에 녹화된 필름들을 포함해 역사 기록들을 연구했고, 파킨슨씨 병을 앓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히틀러가 이 병을 갖고 있었음을 믿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가 그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와 함께 벙커에 있던 목격자들조차 이 남자의 진수를 정확히 묘사할 수 없었다. 그는 동정이나 공감 능력이 없어 전쟁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배우로는 가장 유명했지만 특히 다양한 연기 욕심을 가진 것으로도 이름높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노‘Nosferatu the Vampyre (1979년)과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속편 ‘Faraway, So Close!’(1993년) 등과 누아르 장르의 ‘The American Friend’ (1977년),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공상과학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1978년)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지난해 영화 ‘잭이 지은 집’이 됐다. 죽는 순간 그는 독일어권 배우에게 최고의 영예인 이플란트 반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반지는 배우에서 배우에게로 넘겨졌는데 간츠가 자신의 죽음 이후 어떤 이에게 넘기고 싶어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