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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ㆍ북이 “얘기꽃”… 화기넘친 만찬/북녘손님 맞던날

    ◎「손에손잡고」 선율속 문배주 축배/“어서오세요”연도엔 환영인파/“통일전기 마련됐으면”… 국민들 큰관심/회담장주변엔 외신기자등 몰려 법석 분단 45년만에 남과 북의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만난 4일 7천만 겨레는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공을 빌었다. 때마침 맑게 갠 서울의 가을하늘도 남북총리의 역사적 만남을 축복하는듯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되새기며 연형묵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의 입경을 지켜본 국민들은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강영훈총리가 일행을 따뜻히 영접하는 장면을 보곤 다시한번 같은 겨레의 정을 실감했다. 이날 북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마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일행을 환영했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저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둬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하루라도 빨리 흩어진 혈육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며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저녁 강총리가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만찬회에 참석한뒤 무역회관에서 우리영화를 감상하고는 모두 숙소에 돌아가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만찬 및 영화관람◁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하오7시쯤 힐튼호텔에서 북한대표단에게 만찬을 베풀고 이들의 서울 방문을 환영했다. 이날 만찬에는 북측인사외에 우리측 관계ㆍ재계ㆍ언론계인사 등 2백20여명이 참석,통일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면서 남과 북이 화기애애한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칵테일장에는 국산양주와 맥주 외에 인간문화재 이경찬옹이 특별히 빚은 문배주가 준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으며 만찬음식은 7가지 코스의 양식.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27개 테이블에 나눠앉았으며 헤드테이블에는 강ㆍ연 두 총리를 비롯,김상협 적십자사총재ㆍ민관식 평통수석부의장ㆍ김용식 통일고문회의의장ㆍ홍성철 통일원장관ㆍ김윤환 정무1장관ㆍ최호중 외무장관ㆍ유창순 전경련회장 등과 북한측의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참석. 만찬장에는 7인조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지정곡인 「손에 손잡고」를 비롯,선구자ㆍ고향의 봄ㆍ아리랑 등 우리가곡ㆍ민요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고 강총리는 연총리에게 해강 유근형씨가 제작한 청자화병을,회담대표들에겐 고급양복지,북측 수행원들과 기자들에게는 손목시계 및 탁상시계를 각각 선물. 북측 대표단은 원하는 사람들만 만찬이 끝난뒤 하오8시부터 40분동안 한국종합전시실(KOEX) 4층에서 문화영화인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가 서울의 첫밤을 보냈다. 영화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 북측 기자들은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역사성이 결여된 듯하다』 『졸음이 와 제대로 못봤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곤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이날 상오10시쯤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총리가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평화의 집」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홍성철 통일원장관이 『진심으로환영합니다』라며 손을 내밀어 영접했고 연총리는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연총리는 이어 『우리 대표단은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말한뒤 홍장관의 안내로 「평화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에앞서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 33명과 기자단 50명은 상오9시50분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신분증이나 「보도」라고 쓰인 완장으로 간단한 신원확인절차를 거친뒤 우리측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도◁ 북측대표단들이 통과하는 통일로 등 연도 곳곳에는 통일에의 염원을 안고 미리 나와 기다리던 시민들과 길가던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차량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일행을 환영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시민들이 창가에 나와 일행이 지나는 광경을 지켜봤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많아 흩어진 혈육의 재회를 애타게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북측대표단 일행들도 이따금 차창을 열고 환영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기도 했다. ▷회담장주변◁ 북측대표단 일행이 낮12시5분쯤 회담장이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하자 이들을 보려는 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한때 큰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주변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북측대표단 일행은 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 속에 카메라 플래시가 잇따라 터지자 사뭇 긴장하기도 했으나 차츰 여유를 되찾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강영훈총리의 영접을 받고 호텔에 들어선 연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은 호텔직원들의 안내로 30∼33층에 마련된 숙소에 여장을 푼뒤 불고기와 된장찌개 등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동안 휴식을 가졌다. 한편 대부분의 북한기자들은 우리측 취재진과의 접촉을 꺼렸으나 로동신문의 이광진기자를 비롯한 3∼4명의 기자들은 취재진이 모여있는 1층 로비로 자주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이기자는 하오5시40분쯤에도 1층 커피숍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얼굴을 익힌 몇몇 기자와 환담을 나누다 기자들이 40∼50명으로 늘어나자 10분남짓 즉석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 총리회담 북측 대표 오늘 서울에/연형묵총리등 90명

    ◎3박4일 일정… 두차례 회담/자유왕래ㆍ경협ㆍ군축 논의/우리측,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노력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할 연형묵정무원총리를 비롯한 회담대표 7명과 수행원 33명,기자단 50명 등 북한대표단 90명이 4일 상오 10시 판문점을 통과,육로로 서울에 들어온다. 북한대표단은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을 비롯한 대표 6명의 영접을 받고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 앞에서 도착성명을 낭독한 뒤 승용차ㆍ버스 등에 나눠 타고 회담장 겸 숙소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한다. 북한대표단은 이날 저녁 강영훈총리가 힐튼호텔에서 베푸는 만찬에 참석하며 남북한 대표단은 5일과 6일 「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ㆍ협력 실시문제」를 의제로 두차례 회담을 갖는다. 북측 대표단은 6일 하오 청와대를 방문,노태우대통령을 예방한 뒤 7일 상오 11시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되돌아간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간 공존공영관계로의 전환,남북간 교류협력의 실질적 성과지향,신뢰구축을 바탕으로 한 정치 군사문제 해결,정상회담 분위기 조성,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구현의 기반구축의 5개항의 회담원칙에 입각해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남북간의 진정한 대화ㆍ협력의 길을 틀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는 기본방침아래 강총리의 5일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한의 자유왕래및 경제교류등 남북한 관계개선및 통일문제에 임하는 우리측의 기본입장을 밝히는 한편 군비통제를 위한 상호 신뢰구축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강총리는 특히 남북간 교류협력의 실현을 위해 60세이상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를 추진하고 통행ㆍ통상ㆍ통신 등 3통협정의 체결,판문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북측에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남북 쌍방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발전돼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 혁명노선및 테러등의 포기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무력 도발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완곡하게 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또 남북 교류협력문제와 관련,실현 용이한 사업들을 제의하고 군비통제를포함한 정치ㆍ군사문제에 관해 제한없이 진지하게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우리측은 남북간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평화통일의 전기를 마련하는 데 있어 가장 실효성있는 수단은 쌍방간 최고책임자간의 회담이라고 판단,이번에도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북한측이 정상회담에 호응해나올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경주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서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의 발표가능성에 대해 『남북 쌍방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위급회담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자는 선에는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이 회담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고위급회담 산하에 ▲교류ㆍ협력공동위 ▲군사공동위를 설치하는 문제도 의견접근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합의문 작성이나 공동성명 채택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대표들의 노태우대통령 예방시 이들이 속기사를 대동하겠다고 우리측에 통보해온 점을 지적,『북한측이 이번 기회에 노대통령의 남북 관계개선에 관한 구상과 의지를 경청,북한 김일성주석에게 십분 전달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고 『10월 중순 2차 평양회담시 강총리가 김주석을 면담,노대통령에게 면담내용을 보고하는 등 남북 정상간 간접대화가 진전되면 남북한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대표단 일정 ◇4일=상오 10시 판문점 통과,낮 12시 인터콘티넨탈호텔 도착,하오 7시 강영훈국무총리 만찬(힐튼호텔),영화관람(무역회관) ◇5일=상오 10시 1차 회담,하오 예술단 공연관람(워커힐 쉐라톤호텔),하오 7시 고건서울시장 주최 만찬(신라호텔) 영화관람(무역회관) ◇6일=상오 10시 2차 회담,낮 12시 수행원ㆍ기자단 오찬(삼원가든),하오 4시 연형묵총리등 청와대방문,수행원ㆍ기자단 중앙박물관 관람,하오 7시 박준규국회의장 주최 만찬(올림픽공원 수변무대) ◇7일=상오 9시 서울출발,상오 11시 판문점 착,판문점 통과.
  • 강총리등 회담대표들 리허설 마쳐/휴일도 잊은 「평양손님」맞이 준비

    ◎“가능하면 서울구경 많이 시키자” 만찬장소 3곳 변경/세계언론들 관심 고조… 방한 소 기자 4명도 취재 신청 ○…남북 고위급회담을 이틀앞둔 정부는 일요일인 2일 하오 3시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 2층 모의회담장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국무총리를 비롯한 회담대표 7명이 사실상 마지막 회담진행 리허설을 갖는등 회담준비에 분주한 모습. 이날 리허설에서 강총리는 대화사무국ㆍ안기부 등에서 선발된 남북대화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상의 북한회담대표들이 갑자기 『여보쇼』라는 고함과 함께 테이블을 치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응하는 등 처음보다 상당히 자신있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후문. 강총리와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정호근국방부합참의장,이진설경제기획원차관,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이병룡 국무총리특별보좌관,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원장 등 회담대표 7명은 3일에는 회담장과 숙소가 마련된 삼성동의 인터콘티넨탈호텔을 사전답사,분위기를 익힐 계획. ○…청와대ㆍ총리실ㆍ통일원 등 정부의 관련부처 직원들은 2일 아침 일찍부터 각부서로 출근한 뒤 대화사무국에 나와 인터콘티넨탈호텔을 왕복하며 회담준비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통일원의 한 고위당국자는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오늘 평양에 도착하는데 이를 주목하는데 이를 주목해야 된다』며 셰바르드나제장관의 방북이 고위급회담에 미칠 파장의 정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쌍방의 고위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나 상호비방금지 등에 대한 합의 정도는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면서도 고위급회담이 별다른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국민들의 실망감을 고려한 듯 『고위급회담에 너무 성급하게 큰 기대를 갖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그러나 이 당국자는 『남북간교류ㆍ협력과 정치ㆍ군사적 신뢰회복을 위해 쌍방간 대화채널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 남북 총리회담의 실무문제를 관장할 판문점 공동연락사무소설치는 가능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 ○…우리측은 오는 4일 홍성철통일원장관을 비롯한회담대표 6명이 판문점에서 서울까지 북측 대표단의 승용차에 각각 동승해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자세를 감지한다는 전략인데 특히 북측 대표단 단장인 연형묵정무원총리 이하의 회담대표와 수행원을 막후에서 「지시」할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연총리책임보좌관 림춘길의 상대역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는 후문. 강총리의 북측 대표단 초청만찬은 당초 4일 회담장이 있는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추진했으나 호텔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북측 대표단이 서울시내 구경을 가능한 많이 갖는 것이 좋다는 지적에 따라 힐튼호텔로 변경했으며 이에 따라 힐튼호텔로 예정됐던 고건서울시장의 5일 만찬도 신라호텔로 바뀌었다고. 강총리주최 만찬에 초청되는 우리측 인사는 정계인사를 제외한 각계인사 2백20명선이 되며 3일 상오까지는 대상자에게 초청장이 발송될 것이라고 총리실의 한 관계자가 설명. 한편 정부는 고위급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자세와 기본입장 등을 외교경로를 통해 미국ㆍ일본 등 우방들에 이미 전달했다고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소개.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기간중 총리ㆍ서울시장ㆍ국회의장이 각각 주최하는 만찬에는 서로 초청대상자가 중복되게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3번의 만찬에 모두 1천여명선이 초청될 것이라는 관측. 특히 고시장의 만찬에는 북측 대표단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 전해진 영화배우 강수연양을 비롯,가수ㆍ코미디언 등 문화예술계인사들이 초청될 예정인데 이날 즉석에서 이들의 여흥순서를 추진할 계획이며 북측 대표단은 4일 하오 숙소 바로 옆의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영화관람을 한 뒤 6일 낮에는 강남구 삼원가든서 불고기 점심식사를 할 예정. 북측 대표단의 세부일정은 보안상 당일 상오 9시30분에 공개되고 회담결과는 하오 3시30분에 밝혀질 예정이었으나 본회담이 5,6일 상오 10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일정공개는 상오 9시에 갖기로 조정됐다고 대화사무국이 발표.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이 갈수록 고조됨에 따라 외신기자들이 속속 내한. 상주외신기자 1백20명을 제외하고 2일까지 각국에서 내한,취재신청을 한 외신기자수는 76명이며 회담 막바지에는 1백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는 분석. 외신기자들 중에는 노태우대통령을 4번 인터뷰하고 한소 정상회담특별기사를 쓴 뉴스워크 도쿄지국장 마틴씨,ABC뉴스 홍콩특파원 리트케씨가 포함돼 있으며 헝가리 마레겔신문은 페헤르외신부장을 파견. 소련의 코스텔라디오기자 4명은 우리나라 방송계를 견학왔다가 취재신청을 했다는 후문.
  • 소에 한국영화 붐/첫 「우리영화주간」 모스크바등서 성황

    ◎극장마다 초만원… 입장권 동나고/“진한 토속적영상미 인상적” 찬사/향수 못이긴 동포들 눈시울 적시기도 【모스크바=나윤도특파원】 소련에서 처음 열린 한국영화주간 행사는 가는 곳마다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유사이래 소련에서 한국영화의 붐을 조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우리 동포들에게 따뜻한 조국애를 심어주고 있어 큰 의미를 갖는 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20일 모스크바시내 노보로시스극장에서 첫 상영에 들어간 한국영화는 연일 상영극장마다 매진사태를 빚었다. 노보로시스극장의 경우 1루블(한화 약 1천7백원)하는 입장권이 날개 돋친듯 팔려 다음날 상영분까지 동이났는가 하면 이 때문에 입장권이 3루블에 팔리는 암표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미국에서도 일찍이 찾아볼수 없었던 이같은 한국영화 붐은 타슈켄트와 알마아타에서도 이어졌다. 타슈켄트 최대의 극장인 나오이예술궁전에서 상영된 한국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는 첫날부터 객석 2천석이 모자라는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가이버번 문화부장관,말리크 카이유모크 영화제작자동맹 제1서기,니콜라이 볼가크 영화센터이사장 등 우즈베크공화국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극장에는 70여명의 재소 한인들도 참관했는데 대부분 난생 처음 대하는 한국영화를 관람한다는데 기뻐서인지 영화상영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며 관람하는 모습이었다. 알마아타 시내중심가에 있는 아루만극장에서 이어진 한국영화주간은 아예 한국인들의 축제분위기를 연출할 정도였다. 고리키가의 제로니 바자르라는 시장에서 야채상을 하고 있는 많은 한인들은 『그동안 북한영화는 보았어도 한국영화는 처음 본다』면서 하나같이 상기된 모습들 이었으며 이 지역에서 발행되는 친북한계 한글신문인 레닌기치의 기자들도 여러명이 참관할 만큼 대단한 열기를 보였다. 이곳서 상영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관람한 한인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뛰어난 영화』라고 입을 모았으며 무엇보다 정윤희의 열연을 보고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반응은 재소한인은 물론 소련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는데 소련의 매스컴 종사자들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전 인류적 가치에 관심을 둔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라고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번 소련에서 가진 한국영화주간은 이곳에서의 한국영화붐을 일으킨데 그치지 않고 양국간의 영화교류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영화관계자들의 평이다.
  • 사무실ㆍ공장 백열등 사용금지/에너지절약 세부 추진계획

    ◎연비 낮은 차량생산ㆍ수입 규제/옥외간판,업소당 1개만 허용/엘리베이터 격층제운행 실시 최근 이라크­쿠웨이트 사태를 계기로 국제석유시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가정ㆍ산업부문 등 사회전반에 걸친 방만한 에너지 소비행태가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정부는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때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길만이 국제석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보고 17일 에너지 소비절약 종합대책을 마련,발표했다. 그동안 저유가시대 속에서 지나치리만큼 에너지를 과소비해온 것은 사실이다. 올 5월까지 수송용 휘발유 33.7%,가정ㆍ상업용 등유 1백4.3%,상업용 전력 26.7%라는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소비신장세가 바로 그 반증이다. 다음은 정부가 17일 마련한 에너지 소비절약 세부 추진계획의 골자다. ▷수송부문◁ ◇자가용승용차의 관련세제 개편 ▲현행 자동차세를 조정,중ㆍ대형차에 중과 ▲휘발유 소비억제를 위해 휘발유특소세 1백30%로 인상 ◇승용차의 연비향상유도 ▲연비가 낮은 차량 생산 및 수입 규제 ▲향후 연비향상목표 설정 및 예시 ◇택시의 중형화계획 완화 ▲택시 증ㆍ개차때 중형택시 의무화를 지역특성에 맞게 시ㆍ도지사가 조정 ◇주유소 영업시간 제한 ◇자가용승용차의 주차료조정 ▲도심지역 주차장의 주차료 대폭인상 ▲시외곽 및 전철역 주변의 주차료는 대폭인하 ◇운전면허시험 및 교통관련교육때 에너지절약운전기법 반영 ◇전국 송유관 93년까지 조속 건설 ◇대도시 교통난 완화대책 실시로 주행효율 향상 및 에너지절약 ◇가구당 2대 이상 보유할 경우 자동차세 중과 ▷가정ㆍ상업부문◁ ◇전력수요억제를 위한 전력요금제도 조정 ▲주택용 요금의 누진제 확대 ▲업무용전력 과소비 억제를 위한 제도보완 ▲여름철 높은 요금 부과로 계절별 차등폭 확대 ▲냉방용 전력계약은 비수기에도 기본요금 부과 ◇전력사용제한 ▲사무실ㆍ일반공장의 백열등 사용금지 ▲광고선전용 옥외간판은 업소당 1개 사용허용 ▲투광기 옥내외 사용금지 ▲엘리베이터의 3층 이하 운행금지 및 4층 이상 격층제 운행 ▲일반사설운동장의야간조명시설 사용금지 ▲상업용 전자식전광판의 사용금지 ▲소형조명전구 광고물의 옥외사용금지 ▲네온사인ㆍ전자식전광판 및 소형조명전구의 옥외광고 사용시간 제한(자정까지) ▲영화관의 24시 이후 전력공급제한 ◇냉방기기 가동에 의한 실내경기억제(7월10일∼8월20일) ◇슬림형에어컨에 32.5% 특소세 중과 ◇에너지 다소비형 호화사치성 건물(사우나ㆍ유흥음식점) 신축제한기간 연장 ◇주택 및 건물의 단열시공 ◇국민주택규모 이상의 아파트열량계 설치 의무화 및 소형아파트도 설치 권장 ◇건물의 적정 냉난방온도 기준설정 법제화 ◇제품 및 광고ㆍ상품안내서에 에너지효율표시 철저이행 ◇산업부문은 물론 숙박시설ㆍ병원ㆍ목욕탕ㆍ실내수영장 등에 대해서도 에너지절약 검토기준 조속재정 ◇건물의 냉방용 전력 수요감축 ▲신도시지역은 지역난방방식으로 전환 ▲신도시이외 지역은 가스냉방방식 설치유도 ◇관광호텔 객실조명 자동화 ◇산업체 폐열의 인근공장 및 주택에 공급촉진 ▷산업부문◁ ◇산업용 전력요금의 시간대ㆍ계절별 차등폭확대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재원 안정확보(연 2천억원)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3∼10%) ◇대기업포함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에 대한 여신완화 ◇산업체의 에너지절약 기술 실태조사 ◇중소기업에 대한 에너지진단 지원 ◇목표 에너지원단위 설정 및 관리 ◇에너지절약 전문기업의 육성 ◇공업단지ㆍ도시ㆍ건물ㆍ교통시설 건설시 에너지수요 최소화방안 검토 ◇과천ㆍ상계동 등 지역난방의 도입확대 ◇집단에너지 사업법(가칭) 제정 및 공업단지 집단에너지 공급확대 ◇태양열ㆍ바이오ㆍ폐기물 등 대체에너지 개발 보급촉진
  • 이 실망스런 사회병리현상(사설)

    ◎중고생이 「떼강도」가 되는 세태를 보며 「중고생 떼강도」라는 말이 예사롭게 신문기사의 제목이 되고 있다. 이것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 말인지를 곰곰 생각해 보면 몸서리가 쳐질 일인데,사회 전체가 무신경해질 만큼 예사로워졌다. 이번 주말에만 해도 「서울 S고 3년등 고교 3년생 4명」이 강도짓을 한 혐의로 붙들렸고 「H실업고 1년생등이 금품을 훔치고 장물을 팔려다」 붙잡혔다. 「D상고생과 그 친구」들도 잡혔고 D중생과 또래들도 교회에서 도둑질을 했다가 잡혔다. 어떤 「중고생 강도」는 하루에 3번도 범행을 했고,30여차례 절도행각을 벌인 학생 섞인 청소년집단도 있다. 대개의 경우 이들은 집안도 멀쩡하고 사무치게 가난한 것도 아니다. 또 도회의 오염된 청소년만 이런 비행에 빠진 것이 아니다. 심심치 않게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온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요즘 범행을 저지른 이들 「중고생 떼강도」의 범행동기는 하나같이 「바캉스 자금 마련을 위해서」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0대 청소년중 비행을 저지르는 계층은 학교에서 쫓겨났거나 진학에 실패한 「고교생 낭인」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교육받을 대상에서 제외되어 낙오한 청소년들이 자포자기하듯 비행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맡겨진 청소년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까지는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버젓하게 학적을 둔 확실한 재학생이 범죄중에서도 강력범 노릇을 하고 다닌다. 흉기를 들고 대낮 강도도 하고 남녀 행인에게 대담한 폭행도 한다. 지난 27일,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장기 5년,단기 3년의 징역 선고를 받은 오모 피고인만 해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주부를 대낮에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을 한』 고교생 범죄자다. 그는 그 범행때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겁에 질려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학생」에게는 많이 관대하다. 특전도 많고 편의도 제공하고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하는 쪽을 택하고 버스비 기차비 영화관 입장권에까지 할인혜택을 인색하지 않게 베푼다. 가정이 불우하여 열망하는 학업을 중단한 채 산업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는 같은 또래의 청소년에게는 주지 않는 갖가지 은전을 「학생」에게는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소득원을 갖지 못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미래의 좋은 인재로 연마되고 있는 중인 것이 그들이므로 소중하고 조심스러워서 아끼고 가꾸는 뜻으로 온갖 혜택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중고생 떼강도」라는 말이 예사로울 만큼 비행에 물들어가고 비뚤어져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잘못된 책임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있다. 바캉스철에는 바캉스 자금을 위해,크리스마스철에는 크리스마스 유흥자금을 위해,행락철에는 행락자금을 위해 그들은 범죄하고 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놀고 싶은 때는 놀아야 하겠다」는 행태가 사회에 만연한 것과 청소년범죄의 번창은 시기를 같이한다. 그들의 환경을 싸고 도는 온갖 정보가 그것을 충동이고 있고 어른들의 부주의와 무신경은 거기에 가속을 주고 있다. 가정은 이기주의로 가득 차가서 훈육은 제쳐놓고 출세와 영달의 가도를 달리는 기술과 수단에만 투자하고 보급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학부모의 욕심에서 학생들을 바로잡지도 격리시키지도 못한다. 교육제도는 교육제도대로 압력만 가해주고 있다. 입시공부를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을 집밖에서 보내는 것이 요즘의 중고생이다. 부모와 선생님의 눈길에서 벗어나 하루에 3분의1 이상을 밖으로 돌고 있는 그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기회는 너무도 많이 있다. 잔인하고 부도덕한 상업주의는 그들이 다니는 길목에마다 함정을 파고 있다. 학원 밑에 유흥가가 있고 학교 담 옆에 오락실이 있다. 이발소 하나도 온전한 곳이 쉽지 않고 안방의 전파매체조차도 조심성이 없다. 법대로 지켜지는 일이 없고 공권력은 맥을 못춘다. 치안은 공백을 면치 못하고 죄를 지은 쪽이 큰소리를 친다. 이런 일들이 청소년 학생들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기관이나 계층만의 책임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에도 무관심해서는 바로잡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명백한 것은 중고생이 「떼강도」로 물들어가는 일의 결과가 주는 피해는 우리의 미래 모두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어떤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이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주 절박한 시기에 이르고 있음에 인식이라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 “무지개를 쫓는 김일성”/불지,7ㆍ20선언 계기 북한특집

    ◎못이룬 남한적화의 꿈… 아들에게 물려줘/45년 전시 체제… 남은 것은 경제 파국 프랑스의 르 휘가로지는 22일 한국의 「민족 대교류 기간」 제의와 이에대한 북한의 거부사실을 중점보도하면서 이를 계기로 개인숭배 권력세습등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김일성,인간극성」제하의 르휘가로지 기사의 요약이다. 이미 왜소해진 「큰 지도자」 김일성은 오늘도 일곱빛깔 무지개를 잡으려 나무꼭대기에 오르고 있다. 이상한 도시 평양을 45년이나 지배하고 있는 올해 78세의 이른바 「인간북극성」 김은 결코 이즈러 질 수 없다는 몽상에 잠겨 있다. 스탈린도 죽고 모택동 티토도 사라졌으며 차우셰스쿠까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김」의 뒤는 다시 「김」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아들 김정일이 「사회주의 낙원」을 넘겨받도록 계획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간단히 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거대한 김의 동상벽화 또는 터무니없는 그의 전기들과 관련한 개인숭배에 연결되어 있다. 김이 어떤 조선소를 방문했다고 하자,그가 한 노동자에게 선글라스 하나를 선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물론 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은 「감격에 목이 메인다」. 김이 어느 공원에 나타나면 그곳에 있는 「진달래꽃은 오직 인민을 영도하시는 경애하는 수령을 위해서만 활짝 피어난다」. 또 그가 어느 학교에 들렀을 때 선생은 학생들에게 「김일성 어버이께서는 자녀를 몇명이나 두셨지요」라고 묻고 어린 학생들은 합창하듯 입맞추어 「우리는 모두 어버이 수령의 자녀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북한의 선전에 의하면 김일성은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나라를 편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2차대전중 김은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하지만 선전으로밖에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소련군 관할의 한 수용소에서였으며 그때 그는 소규모 게릴라부대 인솔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남한이 군사정권과 산업화로 비춰진 반면 북한은 저개발과 개인숭배사상으로 표징되었다. 김의 「지상낙원」은 오직 남한을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은 항상 총력전의 구호아래 총동원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쟁의 이름아래 토론도 있을 수 없고 반대의견의 제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이같이 숨막힐 듯한 전쟁준비는 1945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며 힘에 겨워 헐떡거리면서도 지속되고 있다. 괴상한 왕국,한건의 시위도 없고 누구도 싫어하는 이 나라에서 집권자는 인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이 후계자라고 수시로 선전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천재성을 나타냈다느니 판단능력,관찰력,재능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16살때 수천권의 책을 읽었다는등의 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일은 한 여배우에 빠져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국에서 그는 테러의 지령자로 비난받고 있으며 살생을 즐기는 빗나간 독재자의 모델이 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휴전선이 실제로 개방되는 날 남북한 주민들은 아마도 분단의 현실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도 역시 북한주민들은 『위대하신 어버이수령 김일성­』하는 노래를 불러야 될 것이다.
  • 이것이 「HDTV」/영화 화면처럼 선명한 차세대 첨단영상기기

    ◎가정ㆍ산업ㆍ국방용등 이용… 홈쇼핑도 더욱 편리 HDTV(High Definition TV)는 「고화질 TV」의 약자로 기존 컬러 TV보다 선명도가 두배이상인 차세대영상기기로서 마치 영화관의 깨끗한 화면을 보는 듯한 효과를 갖는다. 또 음질이 콤팩트 디스크와 같이 깨끗하고 잡음이 없기 때문에 가정용 TV로서 뿐만이나라 산업용,국방용등 미래산업을 주도할 첨단영상기기로 평가되고 있다. HDTV는 기존 TV의 영상분야 뿐 아니라 인쇄ㆍ출판등 여러면에서 「보는 문화」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되며 다양하고 넓은 분야에 걸쳐 새로운 미디어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35㎜영화는 종전에 영사기로 촬영한뒤 현상ㆍ복제를 거쳐 각 영화관에 전달,영화를 상영해 왔다. 그러나 HDTV는 HDTV카메라로 찍어 VTR에 기록한 것을 직접 전달하거나 광케이블,마이크로 웨이브,위성 등을 통해 각 영화관에 전송,상영하게 된다. 따라서 제작기간 및 경비를 대폭줄일 수 있고 특수효과도 용이해져 이제까지는 눈으로만 보았던 영화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돼 영화산업의 통념을 완전히 변화시키게 된다. HDTV를 이용하면 인쇄출판도 전자화,다양하고 수준높은 출판문화를 이룩하게 되며 상품광고면에서도 혁신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HDTV방송은 위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군사작전에서 필요한 영상정보를 레이다 또는 정보위성으로부터 수신,HDTV디스플레이장치를 통해 볼 수 있으며 각종 위락시설 등을 갖춘 고도의 영상정보도시 건설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이밖에 흠쇼핑이 더욱 편리해져 상품유통 과정이 달라지며 전시회를 HDTV로 감상하는등 전반적으로 생활주변에서 향상된 영상문화를 즐길 수 있다. HDTV는 90년대 하반기에는 세계TV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돼 일본ㆍ미국ㆍ유럽국가들이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68년부터 처음으로 NHK가 연구에 착수,88서울올림픽 개ㆍ폐회식을 시험방송했으며 내년부터 HDTV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미국은 94년부터,EC(유럽공동체)는 95년부터 실용화할 계획이다. HDTV수상기의 세계시장 규모는 오는 94년에 4조원,2000년에는 20조원에 이를 것으로전망된다. 이와 함께 VTR,비디오텍스등 HDTV의 관련기기시장도 94년에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세계 제2의 TV수출국인 경우 시장규모가 큰 HDTV의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HDTV개발은 전자ㆍ정보ㆍ통신산업은 물론 방위ㆍ영화ㆍ인쇄산업등 모든 산업에의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반도체분야의 경우 HDTV수상기 1대분의 메모리 반도체소요량은 퍼스널컴퓨터 20대분량에 이르며 HDTV의 정보량은 기존 TV보다 5배이상이나 많다.
  • 「범국민 통일주간」 9월 선포

    ◎“남북은 하나”… 민족공동체 인식 심는다/9월9일∼15일까지/영화제·8도 사물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북한도 초청,「한반도」 국제학술회의도 정부는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8월중 서울에서 개최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북한도 함께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일반인식을 폭넓게 확산시키기 위해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주년(9월11일)을 전후한 오는 9월9일부터 15일까지 1주일동안을 범국민통일주간으로 선포할 방침인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함께 통일문학상과 통일대상제도를 신설,통일문제와 관련해 우수작품을 쓴 작가에게 통일문학상을,남북 대화진전과 통일문제 발전에 공로가 있는 학자·시민·공무원 등에게 통일대상(가칭)을 각각 시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분단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통일주간 행사에서는 북한 및 중·소·미·일 등 한반도 관련국 학자들을 초청,「한반도 통일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8도 사물놀이·통일사진전·북한영화제 등 각종 문화행사,그리고 「북한바로알기운동」을 비롯한 대중행사 등이 다채롭게 개최된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남북 쌍방총리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되는등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통일문제가 냉전논리에 입각,효율적인 대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데다 국민 실생활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는 자체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행사기간중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7천만 사물놀이 한마당」이 대학로등에서 벌어지며 ▲그동안 매달 한번씩 광화문 북한자료센터내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북한영화를 매일 상영하고 ▲일반국민들에게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북한영화·사진 등도 많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 자유인 김현희 서울신문과 첫 단독인터뷰

    ◎“시장서 쇼핑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 없어요”/김일성 기만 깨닫고 증오감 느껴 자백/남해안 바닷가ㆍ제주도 가보는 게 소원/성경ㆍ이야기국사 등 읽으며 사회적응 노력/통일 앞당겨져 부모ㆍ형제 빨리 만나봤으면… 김현희는 역시 예뻤다. 그녀에 대해서는 두가지 측면에서의 관찰이 가능하다. 하나는 북한의 선발된 특수공작원으로서 1백여명이 넘는 무고한 KAL기 승객과 승무원을 무참하게 살해한 테러리스트였다는 점. 또 하나는 만일 그녀가 이같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던들 그녀 또한 양가의 맏며느리로서 남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내이며 주부로서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한 여인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유족들에 용서빌어 따라서 「테러리스트」와 「미녀」를 동시에 만나 『당신은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무차별 질문공세를 펴야만 하는 기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고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큰 죄인을 살려준 것은 과분한 은혜입니다. 대한민국과 인민들이 살려주신 의미를 바로 알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김현희는 지금 용서를 빌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구하며 유족들의 용서를 바란다. 그러나 그 용서는 힘든 것임을 그녀 자신이 너무도 잘 안다. 『성서를 읽지 않고 하나님을 모를 때는 왜 나만 이렇게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기구한 운명을 비관하고 생의 의욕을 잃고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와서 하나님을 알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서를 읽음으로써 이런 시련속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다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흰 칼라를 받친 보라색 투피스에 머리를 묶은 김현희는 화장기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만 가볍게 바른 얼굴이었다. 특별회견이 진행되는 2시간30분 동안 그녀는 때로는 입술을 깨물며,때로는 미소짓는 여유를 보이며 최근의 일과 신앙생활,앞으로의 생활계획과 소망,자신의 의식변화,북한에서의 공작원선발과정 및 훈련내용,김일성체제에 관한 인식,북한의 체제변화예상 등에 관해 또박또박 답변했다. 회견도중 어느 대목에서는 긴장이 되는 듯 심호흡을 하기도 했으며 대담하는 기자를 바라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눈을 약간 아래로 깔고 깜박거렸다. 현재 김현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의 적응문제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사면은 됐으나 저지른 죄는 가셔지지 않았으며 유가족의 슬픔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직업선택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지금 생활면에서 불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북에서 성장했으며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인민들이 어떻게 받아주실지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면에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는 역시 문제가 있었다. 우선 어휘의 문제이다. 김현희의 말씨가 이북 사투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기 위해 새벽에 남대문ㆍ동대문시장에 가 본 일이 있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는 창발성을 발휘하는 사회』,또는 『저도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된장국ㆍ김치를 좋아한다』라는 등 때때로 튀어나오는 생경하거나 북한전용의 어휘는 얼마간거부감을 일으켰다. 이날 김현희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5번,「조선」이라는 표현을 3번이나 썼다. ○수영장 아직 못가봐 김현희는 아직 지방까지는 돌아보지 못했으나 서울근교는 거의 다 구경했다. 민족역사에 관심이 많아 덕수궁ㆍ창경궁ㆍ비원은 물론,독립기념관ㆍ현충사도 둘러보았다. 그녀가 시장ㆍ백화점 등에 외출할 때 처음에는 『아,김현희가 아닌가』라고 알아볼까봐 겁이 났었으나 특별히 변장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남에게 신경쓰는 일이 없는지 물건파는 사람이 한번도 알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김현희가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남해안 바닷가와 제주도이다. 『북한사람의 소망은 거의 그렇지만 저 역시 남해안과 제주도에 가보는 것이 꿈입니다. 제주도에 가는 것은 「언니들」과 의논해 본 일이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못했으며,남해안에서는 수영을 하기보다 그곳 경치를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수영실력은 공작원훈련을 통해 2㎞까지 헤엄칠 수 있는 정도지만 남한에서는 아직 수영해 본 일이 없다. 김현희의 사회적응에 있어서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의식의 순화이다. 그녀는 아직도 명곡보다는 행진곡을 더 좋아한다. 이날 회견에 앞서 서울신문사의 협조에 의해 동석하게 된 일본도쿄(동경)신문과 아사히(조일)신문 기자들이 강아지 인형들을 선물했을 때 그녀는 『감사합니다』라며 기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28살이라는 그녀의 나이 때문이었는지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통일을 저해하는 88올림픽을 반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습니다. 그것은 전투임무였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앙당을 위해,통일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테러의식이 순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침상의 베갯머리가 썩도록 눈물을 흘리고 참회해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엄청난 결과를 빚은 KAL기 격추범행에 대해 비록 비행기가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거나 시체의 참상을 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결과를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었다. 『제가 실제로 격추현장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고한 동족을 죽이는 잔인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형제가 잘못될까봐 두려워 자백도 안했으나 진상이라도 바로 알려드려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지구상에 이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백하게 되었습니다』­그녀는 바레인에서 검거된 후 자살할 생각도 했었다. 또 법정에서 유족들에게 매도당했을 때도 『왜 그때 바레인에서 죽지 못했는가』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레인에서의 자살생각은 검거에 따른 「공작실패」가 그 원인이었으며 사실상 기회가 없어 실행을 못했던 것 뿐이었고 법정에서의 괴로움은 『사람의 죄는 하나님이 판정해 주신다』고 목사님이 많이 위로해 주어 견딜 수 있었다. 김현희의 하루 일과는 대개 아침 6시30분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어나면 성경을 공부하고 청소ㆍ식사준비를 한다. 체조도 거르지 않는다. 8시부터는 식사,9시부터의 오전시간에는 수사기관 또는 다른 곳에서 의뢰하는 북한실태에 관한 원고를 쓴다. 오후에는 사회적응을 위해 역사소설ㆍ간증소설ㆍ교과서 등을 읽는다. 요즘 읽고있는 책은 간증소설과 김동길교수의 「너와나의 사랑을 위하여」이며,시리즈로 된 「이야기 국사」도 본다. 오후에는 지난날을 반성하는 수기를 쓰고 있으며 TV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다. 가끔 외출도 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오늘(6일)아침 읽은 성경구절은 잠언 3장 5ㆍ6절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녀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야고보서 제1장 2절로부터 4절까지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 ○부모생존 위해 기도 김현희의 신앙생활은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되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사관들이 성경과 불교서적 등을 갖다주며 읽어보도록 권고했다. 성명말씀은 처음 대해본 것이었는데,잠언중에 좋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과 모르는 단어가 많던 차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목사님을 소개받게 되고 지정된 장소에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날 회견에서 잠시 입술을 깨물다 대답한 대목은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 ­혹시 꿈에 부모형제나 고향산천을 보는 일은 없습니까. 『그거야 뭐,누구나 다 부모형제 그리워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꿈속에서 자주 봅니다. 범행을 자백하기 전에는 부모형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다만 기도로써 남북통일이 되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바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김현희의 인식은 「위대한 수령」으로부터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에 대한 인식은 검거 후 8일만에 자백할 때부터 달라진 것입니다. 자백하게 된 동기는 북한에서 남한에 대해 「미국의 식민지」이며 「군사파쇼정권」이라고 교육받았으나 그것이 아니며 김일성이지금까지 인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자백을 하고 나서는 한때 김정일의 지시를 잘못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혹은 한국의 일면만 보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도 했었으나 날이 가면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또 「미제」는 조선전쟁을 일으켰고 남한을 강점했으며 통일을 방해하는 철천지 원수라고 교육받았고,「일제」도 36년간 조선을 강점하고 학살ㆍ강탈을 일삼은 원수라고 해서 적대감정을 가졌으나 여기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계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식민지가 아니고 서로 하나가 되어 도와가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8살 때 공작원으로 18살 때 공작원으로 선발됐던 김현희는 「통일을 위해 중앙당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고 각오했다.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많은 단련을 받았다. 그녀를 감상적으로 「미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산이다. 위장된 일본공작원화 훈련을 위해 81년과 82년 1년6개월에 걸쳐 일본인화교육을 받았으며,중국인화 교육도 받은 전문테러리스트였다. 그녀는 「이은혜」라는 일본인 여선생과 생활하면서 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생활ㆍ풍습ㆍ지리ㆍ역사를 익혔다. 태이프를 통해 야마구치 모모에,가토 도키코,시마쿠라지요코의 노래를 배웠으며 지도를 놓고 신주쿠(신숙)의 이세탄(이세단)백화점은 어떻고,유락조(유락정)는 젊은이들의 영화관이 많다는 것도 배웠다. 따라서 선생 「이은혜」로부터는 거의 일본인처럼 되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신문과 「문예춘추」같은 잡지도 술술 읽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은혜」를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으로 생각하는데에는 근거가 있다. 은혜 자신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고 말했고,조총련계 학생들이 까만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것을 보고 부러워 어릴 때 그것을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더니 『그것은 조선사람만이 입는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또 은혜는 「조선사람」의 흉을 많이 보았다. 『조선사람은 밥먹고 물로 울럭울럭하며 입가심을 하지않나,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는다. 또 크기를 표시하는데도 일본사람들은 동그렇게 표시하는데도 조선사람들은 팔뚝을 내밀고 길이로 나타낸다』고 흉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일본여인이라고 단정했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엄격한 통제로 인해,그뒤 공작원이 되어서부터는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해와 이성교제의 기회가 없었다는 김현희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와 악수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러웠으나 감춰진 힘이 느껴졌다. 역시 그녀는 웃어서는 안되는 테러집단의 예쁜 인형의 그림자였다.
  • “통독 만세”… 폭죽ㆍ경적속 열광/경제통합 첫날 베를린 표정

    ◎비밀경찰 본부서 “밤샘 춤파티”/환전인파 쇄도… 실신사태 속출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1일 0시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통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독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찼다. 동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을 꽉메운 수만명의 동독인들은 광장시계탑의 대형시계가 0시를 알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그순간 동베를린 하늘은 폭죽의 불꽃과 섬광으로 수놓아졌으며 가정에서,거리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뜨려졌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이 개방되던 날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광란의 축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동베를린 하늘에 울려퍼진 알렉산더광장 시계탑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히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독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였다. 동독은 이제 종소리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자정을 앞두고 쓸모가 없게 된 동독 화폐 잔돈부스러기들을 다 써버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동베를린 시민들은 길거리 카페와 주유소등에 장사진을 쳤으며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잔뜩 들뜬 분위기가 시가지를 뒤덮었다. 동서독의 모든 국경들은 일시에 개방됐으며 동서베를린 경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찰리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자리를 떠서 사라져갔다.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동베를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유일하게 이날 0시부터 화폐교환을 해줄 수 있도록 은행문을 연 동베를린시내 알렉산더광장 근처의 도이체방크 주변에는 쓸모없게 된 동독 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1만명이상 몰려들어 축구장에 몰려든 관중을 방불케 하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소란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일부 시민들이 군중사이에 끼여 실신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은행측은 질서정리에 나선 경찰의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바꿔줄 돈이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하는등 고객 접대에 안간힘. ○…이날 도이체방크에서 동독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가장 먼저 환전한 사람은 올해 41세의한스 요하임 코살리씨로 그는 은행측으로부터 1백마르크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잡았다. 코살리씨는 예금액중 약 1천2백달러 상당을 서독 마르크화로 환전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고 응답. ○…이날부터 서독 마르크화만이 동서독 양국의 공식화폐로 통용되게 됨에 따라 못쓰게 된 동독 화폐들이 화폐 수집가들의 투자대상이 돼 주화 풀세트의 경우 벌써부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동베를린의 비밀경찰 병영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30일 밤 서독마르크화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는 주요행사의 하나로 「도이치 마르크화속에서 춤을」 즐기자는 구호아래 개최된 파티에는 1천명이상의 동서독 젊은이들이 쇄도해 춤과 열기로 범벅. 주최측은 예상을 넘는 고객들이 몰려들자 정원을 초과한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준비한 음식과 맥주등이 모자랐다고 즐거운 비명. ○…동베를린시내 문화의 전당건물에 모여 영화관람등을 하고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이날 0시 구내 방송을 통헤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증오했던 우리의 조국 동독 인민공화국에 작별을 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휘파람과 환성을 지르며 환호. 연인들이 입을 맞추고 동전을 공중에 던지는등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으면서 방송에서는 곧이어 동독국가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동독 국민들은 이날 동서독의 경제통합을 환영했으나 일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실업사태및 인플레등과 관련,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기도. 동독에서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 수는 최저 50만명에서부터 최고 4백만명까지 전문가들에 따라 추정치에 큰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나 어떻든 대량의 실업사태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실정. ○…동독 당국은 공중전화와 기차표 판매대등에서 서독 마르크화를 받아들이고 동독 화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기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등 경제ㆍ화폐통합에 따라 생겨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주한 모습. 또 백화점과 대형상점들도 아예 문을 닫고 1일부터 판매될 서방상품들을 위해 기존판매상품들을 창고로돌리고 서방상품들을 위한 매장진열과 서구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작업에 나서는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차우셰스쿠 처형이후 “재활용” 모색 한창(세계의 사회면)

    ◎루마니아 「인민궁전」 관광명소로 탈바꿈/베르사이유궁의 3배… 초호화판/“카지노ㆍ박물관 만들자”제안 쏟아져/줄이은 관광객… 하루 7천명 찾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백성들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사스럽게 지어 올려 원망의 대상이 됐던 꿈의 궁전 「공화국궁전」이 이제는 국민의 사랑속에 재활용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인민궁전」으로 바뀐 이 궁전의 활용방안을 놓고 루마니아 신정부는 널리 의견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 궁전은 차우셰스쿠가 생전에 토요일마다 들러 「현장지도」를 할만큼 몹시 애착을 가졌던 곳. 부쿠레슈티를 굽어보는 곳에 차우셰스쿠는 인공으로 높은 언덕을 쌓고 그 위에 초호화판 맘모스 궁전을 세웠다.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된 이 궁전은 크기가 베르사이유궁전의 3배나 되며 루마니아와 전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온갖 고급치장재로 장식됐다. 지난해 12월 유혈 혁명후 루마니아정부는 이 궁전을 인민궁전으로 개명하는 한편,이 궁전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방안을 공모하고 있다. 루마니아정부는 이 궁전으로 이주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지난 1월에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뜻을 비추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묘안이 쏟아졌다. 미국 최대의 카지노 「트럼프 타지마할」보다 큰 카지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1천여개의 상영실을 갖춘 세계 최대의 복합영화관을 만들자는 제안,심지어는 무도장ㆍ전시실ㆍ유엔본부로 삼자는 안 등등. 현재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저명한 관광명소로 탈바꿈,하루 7천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 궁전의 입장료는 미화 50센트. 관광안내책자에 조차 궁전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광고가 들어 있다. 아직도 30만달러는 더 들여야 완공될 이 궁전의 사용방법에 대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자는 노인,외화 가득을 위해 외국인에게 팔자는 화가도 있다. 또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한 여학생은 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 미치광이가 광몽을 이루려고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의 아들들,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들에게 이르기까지 알 수 있도록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그녀의 주장. 이 궁전은 루마니아가 절대 빈곤에 빠져 있을때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도 부러워할 만큼 호사스럽게 지어졌다. 인도의 마호가니,이탈리아의 금세공품,희고 분홍빛나는 대리석 등등 온갖 호사품이 아낌없이 들어갔다. 3백명의 건축가와 노동자 2만7천여명이 궁전건축에 동원됐다. 이 궁전지하 1백m에 국방부와 지하철로 연결되는 비밀터널과 방공호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12층 높이에 복도 면적만 3백90만평방피트. 이 궁전에 몇개의 방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한 원형 응접실에는 9백개의 전구가 박혀 있는 2t짜리 수정 샹들리에가 유럽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차우셰스쿠 24년 독재에 고초를 겪으며 궁전건축에 동원했던 루마니아국민들은 그러나 이제 자부심속에 궁전을 되찾았다. 차우셰스쿠재임시절 건축공학도로서 천장장식에 징발됐던 투크쿠 코르네일라양은 요즘 궁전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들은 이 궁전이 루마니아 국민에 의해 건축됐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나는 비록 이용당했지만 내가 일했던 곳을 보노라면 기쁨을 느낀다』고 궁전을 되찾은 즐거움을 말한다. 한때 원성의 대상이었던 「공화국 궁전」이 이제는 루마니아인 모두의 자랑거리가 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역사의 아이러니다.
  • 영화 「가자 장미의방」 제작권없어 상영금지

    서울민사지법 합의51부(재판장 권성부장판사)는 21일 현진필름(대표 김원두)이 세진영화사(대표 한상우)를 상대로 낸 영화제작 및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심리,『세진영화사는 「가자 장미의방으로」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상영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 현진필름은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교수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마교수로부터 영화제작권을 사들여 영화를 찍어오다 세진영화사가 제작권도 얻지않고 마교수의 시집 제목을 거의 본뜬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 전국 영화관에 배급하려하자 이를 금지 해달라고 가처분신청을 냈었다.
  • 「파업전야」 상영 강행/공투위 성명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장산곶매」등 18개 영화관련 단체로 구성된 「파업전야 상영 재개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는 10일 정부당국에서 의해 상영 금지된 영화 「파업전야」를 11일부터 서울ㆍ부산 등 전국 11개 지역에서 재상영하겠다고 밝혔다.
  •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며칠전 외신은 「고르바초프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짤막한 뉴스를 흘린 일이 있다. 뉴스는 요점인즉 고르바초프가 과연 어디에 살고 있는가가 궁금했던 기자들이 이날만은 찾아낼 요량으로 한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나오는 고르바초프 일행을 바짝 따라 붙었으나 모스크바 10번가에서 또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요즘 그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모양새가 좀 우습게는 됐지만 누가 뭐래도 소련은 아직도 강대국이다. 고르바초프는 그 소련의 최고지도자요,더구나 그는 「개방」과 「개혁」을 앞세우고 철의 장막들을 거침없이 쓸어내고 있는 세계의 슈퍼스타다. 그런 고르바초프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비밀에 감춰진 오늘의 소련사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날 고르바초프를 따르다 닭쫓던 개꼴이 된 기자들은 그러면서 고르바초프가 아마도 모스크바강변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5층짜리 노란색 저택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수년전 은밀하게 건축된 이건물에는 지하5층이 더있으며 크렘린궁으로 가는 지하철역과 지하비밀통로를 통해 연결돼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소련의 급진개혁파 기수 보리스 옐친이 쓴 「고백」이라는 수기가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돼 있다. 옐친은 이수기에서 오래전 고르바초프가 쓰던 모스크바의 한 별장을 방문했다가 놀란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벽난로가 붙은 50㎡의 홀,대리석과 나무를 모자이크해 만든 마루바닥,황금빛 융단,화려하기 비할데 없는 샹들리에,욕실과 방의 숫자는 셀수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모스크바 지국장을 하고 돌아와 「소련인들」이란 저서를 남겨 더욱유명해진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헤드릭 스미스기자는 그의 책에서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그가 모스크바에 있을때는 브레즈네프시대 였고 당시에는 브레즈네프의 모친도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고향인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모친을 모셔다 그가 얼마나 출세를 했으며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를 보이고 싶었다. 자기의 전용차를 태워 이전 스탈린과 흐루시초프도 썼던 우노보의 자기 별장하며 모스크바의 일상거처인 거대한 아파트,크렘린궁 등을 두루 구경시켰다. 그러고 나선 헬리콥터를 동원해 그가 자주 사냥을 즐기는 수렵지역으로 날아가 그의 산장,그가 수집해 놓은 세계적인 엽총들을 두루 소개했다. 그런데 브레즈네프의 어머니는 전혀 감동을 하거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견디다 못한 브레즈네프는 이렇게 물었다. 『어머님,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의 모친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훌륭하구나! 레오니트,그런데 말이다 붉은군대가 쳐들어오지 않겠느냐…』 작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그 뉴스의 충격이 너무나 커다른 자질구레한 얘기들은 묻혀 버리고 말았지만 실은 베를린장벽과 함께 또 하나의 장벽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동베를린 교외에 위치한 특별지구 반틀리츠저택지역이다. 길이 2ㆍ4㎞의 콘크리트장벽으로 둘러싸인 이 특별지구는 호네커 공산당서기장을 비롯한 동독의 최고위 당료 23가구가 사는 특별한 곳이다. 이 지역은 다른 동독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별천지다. 23가구를 위해 수입품이 즐비한 백화점병원 수영장 극장 등 모든 편의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영화관에서는 할리우드나 파리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수시로 상영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반틀리츠낙원은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함께 감옥으로 변했다. 새 정부는 호네커를 비롯한 전정치국원들을 모두 여기에 연금시켰던 것이다. 지난해 12월25일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가 그의 군대의 총탄에 처형된 후 그가 입만 열면 외치던 「조국을 위한 희생」이 얼마나 허구였는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방이 수십개나 됐고 실내의 장식은 호사의 극치였다. 세면대 수도꼭지까지 금박이었음이 드러났다.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 보련던 마르크스의 이상은 이토록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꽤 오래된 얘기지만 소련의 크렘린궁을 구경하고 돌아온 일단의 미국기자들은 미국의 백악관은 크렘린의 곁방수준에도 못미친다고 술회한 일이 있다. 크렘린궁이 볼셰비키혁명 이후 건축된 것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의 평양사정은 어떨까. 자세히 밝혀진게 없으니 마음이야 편하지만 어디 그럴까.편린이나마 드러난게 전혀 없는것도 아니다. 신상옥ㆍ최은희 부부가 밝힌 것을 보면 그들은 김정일로부터 서독제 고급승용차 벤츠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도 몇차례나. 벤츠를 선물로 주고 받는 사회,그것이 한반도의 마르크시즘이다. 부정ㆍ부패 척결을 「혁명공약」 으로 내세웠던 3공화국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엄청난 축재를 한 것으로 알려진 모씨는 그것을 「콩고물」이라고 해 두고 두고 원성을 샀었다. 불해히도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이 평범한 말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리로 남아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있다,
  • 북한영화 월말께 일반공개/「도라지꽃」ㆍ「춘향전」등

    ◎가극 「피바다」도 검토/정부 정부는 6일 북한자료를 공개,북한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우선 「도라지꽃」 「춘향전」 등과 같은 북한예술영화를 이달말부터 매달 한번씩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영키로 했다. 정부는 이에따라 30일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북한 및 공산권정보자료센터」내에 1백석규모의 영화관을 설치,첫관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는 북한예술영화관람회를 통해 국민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이들 영화의 지방상영과 함께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 소위 혁명가극의 일반공개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무부ㆍ문화부ㆍ문교부ㆍ통일원과 안기부 등 관계부처 실무자들로 구성된 「북한영화심의위원회」의 최종심의를 거쳐 다음주중 북한영화 상영프로그램을 확정할 방침이다. 통일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예술영화는 현재 1백10편에 이르고 있으나 이중에서 비교적 체제홍보성향이 약한 「도라지꽃」 「춘향전」 「달매와 범다리」 「성황당」 「홍길동」 「임꺽정」 「소금」 「탈출기」 등 10여편이 우선일반인에게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원의 고위당국자는 이날 『북한자료 공개정책차원에서 북한에서 재작한 영화를 일반인에게 상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 “룸살롱 살인범과 대전서 지냈다”/동행 애인 돌아와 밝혀

    ◎5일간 백화점등 함께/거리서 검문검색 받은적 없어 지난달 26일 경찰의 감시망을 따돌리고 「샛별」룸살롱 살인사건의 범인 조경수(24)ㆍ김태화(22)가 데리고 갔던 조의 애인 이모양(21)이 5일만인 2일 하오 서울로 되돌아왔다. 경찰은 이에따라 이양을 불러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하는 한편 범인들의 범행후 도피행각도 캐고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양은 지난달26일 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준」카페에 찾아온 조씨 등과 함께 흰색스텔라승용차편으로 곧장 대전으로 내려가 범인들이 미리 얻어 지내고있던 사글세 방에서 4박5일을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양은 경찰에서 『숨어있는 동안 낮에는 조씨와 함께 대전역에서 택시로 10여분거리에 있는 셋방에서 지내다 저녁이면 시내로 나와 백화점ㆍ영화관ㆍ오락실등지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으나 단 한차례도 경찰의 검문검색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양은 또 범인가운데 김은 26일 밤에만 함께 지낸 뒤 조와 다투고 27일 하오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진술했다. 이양은 『조가 자신들이 샛별룸살롱의단골손님인데도 여주인이 홀대를 해 혼내주러 갔다가 일을 저질렀다고 범행사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양은 2일 상오10시30분쯤 조와 함께 대전역으로 나와 상오11시55분발 영등포행 통일호 열차표 한장을 건네받은 뒤 헤어졌다. 조는 이때 이양에게 역앞기둥에 붙어있던 자신들의 수배사진을 가리키며 『저게나』라면서 『시집가서 잘 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그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범행직후부터 머리형과 옷차림을 바꾸어 도피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의 경우 앞머리를 내리고 검은색양복 정장차림에 검은 뿔테안경을 써 변장했으며 가스분사기 2정ㆍ칼ㆍ흰색마스크 등이 든 누런가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김은 수배사진과는 달리 머리 가운데를 가르고 빨간 티셔츠와 남색바탕의 줄무늬가 있는 웃옷에 청바지차림이었으며 검은색구두와 흰 운동화를 번갈아 신고 다녔다는 것이다. 한편 경찰은 3일 상오 대전으로 형사대를 급파하는 한편 조가 이양과 헤어지면서 『가능하면 다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는 점 등을고려,이양을 다시 찾아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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