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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리아 대통령/「반김일성」 북 유학생 도왔다

    ◎첼리프와 북한인사이 얽힌 비화/62년 북한학생 4명 도피주선/평양소환 저지… 함께 민주운동 국빈으로 우리나라에 온 젤류 젤레프 불가리아 대통령이 북한 망명유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아직도 이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것으로 확인돼 화제다.특히 망명유학생들의 대표격인 최동성씨(56·함북 길주군 동해면)는 이번 젤레프대통령의 방한에 「친구」로 공식수행원에 포함됐다. 최씨가 젤레프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56년 10월 소피아대 화학부 유학시절.최씨는 소피아대학의 외국유학생 어학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철학부 3년생이던 젤레프등 불가리아 학생 3명과 6달동안 기숙사의 같은 방을 사용하도록 배정됐다.그뒤 10년동안 최씨는 후일 공산주의 비판으로까지 연결되는 젤레프의 개혁주의에 영향을 받게된다.이 영향으로 최씨는 62년 5월 흐루시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스탈린비판에 따른 비판사상의 유입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당국이 유학생들을 일제히 귀국하도록 했을때 다른 유학생 3명과 함께 「반김일성선언문」을 작성,소련정부등에 우송하고 불가리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북과 단교까지 검토 「반김일성 선언문」을 제일 먼저 보여준 사람도 젤레프대통령.최씨등은 망명신청후 젤레프의 하숙집등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하다 그해 8월 소련의 조정에 따라 불가리아 체류를 허락받게 됐다.그러나 이들의 체류허가도 잠시,북한은 8월말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2명의 공작원을 평양에서 파견,소피아 시내 영화관 앞에서 뭇매를 때리고 북한대사관 지하실로 끌고 갔다.약50일동안의 구금을 거쳐 북한대사관은 그해 10월 19일 최씨 등을 아에로플로트편으로 평양으로 압송하기 위해 공항으로 데리고 나가지만 불가리아당국의 연락을 받은 젤레프등 불가리아 교우들의 「저항」에 부딪혀 최씨등을 풀어주어야 했다.북한과 불가리아 정부가 상대방 대사를 축출하며 단교까지 검토했던 유명한 사건이다. 젤레프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레닌을 부정적으로 묘사,65년 공산당에서 축출되면서 민주투사의 길을 걸었다.89년에는 재야 17개 단체로 구성된 민주세력 연합 의장으로 피선되고,92년에는57%의 지지를 받아 임기 5년의 대통령이 됐다.젤레프의 민주화 역정을 최씨등이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4명 국적취득 허용 이는 대통령에 당선된 젤레프가 당선후 첫 사업으로 국적이 없던 이들 4인의 국적취득을 허용,최씨등 2명은 불가리아 국적,나머지는 한국국적을 취득토록 한데서도 읽혀진다.그때 젤레프대통령은 최씨에게 『한반도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은 4천3백만명이나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불가리아인은 없다』면서 불가리아 국적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최씨는 현재 스타라자고라의 화학비료공장에 근무하고 있다.
  • 불 퐁피두 문화센터(걸작건축감상:14)

    ◎“예술은 즉흥적” 가건물처럼 축조/철제 구조물이 외벽 형성… 내부엔 기둥 없애/대형벽 1시간내 이동… 건물 해체·조립 가능/설계안 71개국서 6백81점 응모… 총공사비 1억불 파리 퐁피두센터 『언제 완공되는가?』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를 처음 찾는 이가 하는 말이다. 『벌써 보수공사를 해야만 하는가?』 두번째 방문에서 하는 말이다. 『?!』 다음부터는 입빠른 질문을 삼간다.조심스럽게 건물을 살필 뿐이다.혼란과 당혹은 미완성이거나 보수공사중인 느낌의 외관에서 유래한다.건물을 둘러싼 철제구조물은 가설공사용 비계로,정면 공중에 떠 있는 투명 튜브 에스컬레이터도 가설계단으로 오해받는다.마치 조립과 해체가 쉬운 곡마단의 가설극장인듯 「가설건물」을 이룬다.건축가의 의도도 예술무대가 갖는 가설성,즉흥성에 착안하여 이를 건물의 기본구상으로 삼은 것이니 만큼 관광객들의 즉흥적인 질문은 정곡을 찌른 평이랄 수 있다. 외벽과 지붕의 거대한 파이프라인과 환기탑은 정유공장 제분공장을 연상하게도 한다.공장의 외관이란 제조공정을 시각화한 결과라는 점에서 예술문화공장을 자처하는 이 센터의 본연의 임무와도 통한다.투명한 유리벽,노출된 뼈대와 내장기관(동선과 설비공간),거대동물의 관절과 같은 기둥과 트러스보는 자연사박물관의 조립복원된 화석공룡군이 주는 구조미와 통한다. ○문예진흥 담당기관 퐁피두센터는 예술문화진흥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1975년 퐁피두대통령에 의해 세워졌는데 실은 1960년대말 앙드레 말로가 제기했던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적 재창조」에서 유래한다.국립현대미술관,산업미술센터,국립정보도서관,음악음향연구소의 4개 전문영역으로 구성되며 모두 이 건물에 있다.「보부르」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기관이 발족되기 전인 1971년에 벌써 설계안이 공모되어 총공사비 1억달러를 들여 1977년에 완공되었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하면서 우리들이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이곳은 문화의 중심지이지만 문화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드나들 수 있고 여러가지 활동이 진행되는 장소가되는 것을 바랐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는 이렇게 설계구상을 밝힌바 있다. 건물이 자리한 곳은 파리의 전형적 17세기 석조건물지구이며,터의 절반은 광장으로 할애되었다.야외극장 겸 광장은 건물을 향한 내리경사로 방향성과 친절한 초대의 인상을 풍기면서 에스컬레이터와 현관으로 안내한다.철과 유리의 가설무대같은 건물은 획일에 가까운 주변 고전건물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데 설계자는 그렇다 치고 이를 뽑은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배짱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다.1만㎡에 달하는 지상5층 지하4층에는 4개 전문영역 공간외에도 각종 편의시설이 있고 옥상층의 전망대,레스토랑,실험극장,간이전시장은 밤늦게까지 개방되어 항상 활력을 뿜는다.맑은날 광장 모퉁이에서는 차력사와 마술사의 연기를 보며 쉽사리 이탈리아영화 「길」의 주인공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차력사의 거리무대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음향실험실까지 포용하는 이곳은 중첩이 많을수록 더 많은 흥미와 대중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건물설계안은 현상공모에 참가한 71개국 6백81개 계획안 중에서 뽑은 것이다.건축가와 미술관 실무자로 구성된 국제심사위원회는 렌조 피아노­리처드 로저스­아럽(이탈리아,영국,덴마크계)의 협동안을 당선작으로 지명하였다. 정부당국은 설계와 시공의 질을 위하여 설계감리(설계대로 시공되는가를 확인하는 임무),건설에서의 자금운용과 공기에 대한 전권을 건축가에게 부여하는 특별계약을 체결하였다.자금은 12%,공기는 2개월의 여유만을 허락하였는데 준공시에 이 모두는 지켜졌고 이후 설계시스템 개정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독서 조립 주철 생산 설계는 「변화의 수용」과 「가능성의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를 위하여 ①내부에서 기둥과 고정벽을 제거하였고 ②계단과 설비공간을 변두리에 조립하였고 ③가동칸막이시스템을 채택하였다.이렇게 하여 변화는 평면만이 아닌 입면과 단면에서도 가능하였다.사무실칸막이는 수분만에,미술관의 대형벽은 1시간에,방화벽은 하루만에 모터로 이동시킬 수 있다.정면 모습도 쉽게 바꿀 수 있으며,심지어는 건물전체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도 가능하다.더 복잡미묘한 가능성은 음악음향연구소에 적용되었다.지하에 배치된 스튜디오 겸 콘서트홀은 부피와 음향조건을 변경하여 각종 실험을 할 수 있다. 건물은 건축이외의 분야에서도 큰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뼈대는 19세기 게르버식교량에서 힌트를 얻었는데,산업혁명기의 주철구조 현수교량이 현대의 최신건물에 활용된 것이다.부재의 표준화,철재량의 경감,물량의 적기생산 등을 위해서는 조선과 항공산업에서의 경험을 빌렸다.5년으로 제한된 공사기간에 맞추는데는 조립식구조가 절대적 도움을 주었으며,공정은 지하와 지상에서 동시에 착수되었다. 조립용 주철은 독일의 크루프공장(1차세계대전시 독일의 거포 제작사)에 의뢰함으로써 프랑스 국내에 큰 논쟁도 일으켰고 특별허가를 내주었던 퐁피두대통령도 난처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었다.공장에서의 시험조립,수송,현장도착과 곧 이어 행해지는 조립은 거창한 의식이었다.심야에 초대형 트러스(길이 45m,높이 3m,무게 67t)는 트럭 2대가 양끝을 받들고 수송하는데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운반과 맞먹는 작전이었다.지붕과 동축입면에 노출된 설비용 배관은 요란한 형태와 색채를 갖는데,보수 증설 등 「가능성의 확대」원칙과 프랑스 표준색채규정을 따른 결과이다.공기를 다루는 공기조화용 덕트파이프는 푸른색이다!(동일한 원리로 물과 전기는 각기 초록과 노랑이다) ○하루 2만여명 찾아 신기술개발은 그러나 파리소방당국의 까다로운 규정을 충족시키는 데서는 기대이하이었고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였다.트러스는 둔중해 보이는데 그것은 2시간 내화를 위해 철구조를 두껍게 단열피복하고 알루미늄 캐스팅을 덧씌운 때문이다.더 복잡한 것은 동축입면이다.전면이 스플링클러 소화시설이 된 것은 물론,모든 기계설비 장치는 소요기능에 따라 반시간,1시간,3시간별 내화등급처리가 되어야 했다.건물은 법제,기술,정치,경제 상황과 유리될 수는 없으며,설계는 이 제약조건을 흡수하고 긍정적 요소로 변환시켜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색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매일 2만5천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 데당초 계획보다 2만명 초과한 것이며,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 방문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방문자 폭증에 따른 시설조정은 당초부터 건물에 부여된 「가능성의 확보」때문에 아주 쉬운 일이었다.준공 10여년만에 영화관이 지하에 신설되었고 화장실캡슐이 주변에 더 끼워졌는데 조립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출입구는 13개에서 2개로 줄이고 대기줄을 길게 하였다.장차 필요하다면 공중에스컬레이터도 쉽게 끼워질 수 있다.관리요원도 2배로 늘어나 사무실은 인근 건물로 이사해 나갈 것이다.이러한 것은 예기했거나 아니거나간에 건물 「보부르」가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첫 반응이며,변화와 불확정성이 강한 현대에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파리넬리」/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소프라노)의 비극적생애(이영화)

    ◎250여개 음 소화한 18세기 실존인물/새달 개봉… 한 여인과 형제 사랑하는 장면은 충격적 카스트라토(CASTRATO).거세된 남자소프라노 가수를 뜻하는 이 낮선 음악용어가 올봄 우리 영화관객들의 입에 부쩍 오르내릴 것같다. 18세기 바로크시대 유럽인들의 비명섞인 환호를 받았던 한 카스트라토의 비극적 예술혼을 그린 음악영화 「파리넬리」(FARINELLI)가 4월초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패왕별희」와도 분위기가 흡사한 이 작품은 카스트라토들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목소리 하나로 유럽을 평정했던 실존인물 카를로 브로스키(일명 파리넬리)의 뒤틀린 운명과 사랑,음악열정을 그린 에로틱 예술영화.3옥타브 반의 음역을 자유자재로 넘나 들었을뿐 아니라 한 악구에서 2백50여개의 음을 소화해냈다는 파리넬리의 전설적인 목소리가 「음악적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며,오페라 작곡가 형과의 기묘한 인연이 극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중세 교회음악이 융성하던 시기,교회에서는 여성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에이들을 대신할 고운 음색의 남성가수가 필요했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6∼12세 변성기 이전 남자아이들을 거세해 만든 카스트라토.이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이 영화 전편에는 「거세공포증」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무대에서만큼은 카리스마적인 위용과 노래로 관중을 압도하지만 무대를 내려서면 이내 「잃어버린 남성」에 대한 열등감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파리넬리.그의 파리한 영혼과 육체의 방황이 이탈리아출신 성격배우 스테파노 디오니시의 섬세하면서도 강한 연기력에 힘입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당시 여인들이 카스트라토의 노래에 매료돼 기절한채 실려 나갔다든가,파리넬리가 동시대 음악가 헨델과 음악적 애증을 주고 받았다는 등의 일화도 영화속에 그대로 재현된다.파리넬리가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신이 내린 목소리로 헨델의 아리아「카라 스포자」를 부르는 장면이 압권. 한편 이 영화에는 일부 충격적인 장면도 담겨 있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형과 아우가 한 여인과 동시에 사랑을 만드는 장면이나 성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파리넬리를 마약으로 위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하지만 이 장면들에서는 단순히 변태적인 성심리나 인간 내면에 감춰진 추악한 마성보다는 차라리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힘같은 것이 읽혀져 영화전체의 씁쓸한 기운을 더해준다.
  • 심야의 탈주/맥주거품에 부각된 인간내면 “인상적”(감동의 명화)

    ◎쫓기는 자의 두려움 화면마다 넘쳐/거푸 두번 감상… 그때 추억 아직 생생 뤼미에르 형제가 18 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반대중에게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지 올해로 꼭 1백주년.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영화는 이제 4차원의 영상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인간의 꿈을 대변하는 각광받는 대중예술로 자리를 굳혔다.세계영화 탄생 1백돌을 맞아 문화 예술 각계 인사들이 집필하는 「감동의 명화」를 연재한다. 김종원(영화평론가) 흘러간 영화에는 마치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는 것과 같은 남다른 감흥이 있다.그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각인돼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낭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원천이 된다. 젊은 날 영화는 나의 연인이었고 지식의 보고였다.또한 구원 그 자체이기도 했다.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을 찾았다.그럴 때는 으레 준비해 간 노트에 좋은 장면과 대사들을 적어놓곤 했다. 그 시절 아련한 기억의 창문을 열면 의식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한편의 영화가 있다.대학 2학년 때던가.나를 매료시킨 캐롤 리드 감독의 「심야의 탈주」(1947년 베니스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영국)가 바로 그것이다. 캐롤 리드라면 흔히 「제3의 사나이」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보다 「심야의 탈주」를 사랑한다.이 흑백 시네마에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쫓기는 자의 내면에 응고된 삶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이 화면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특히 현상수배된 탈옥수인 주인공 조니(제임스 메이슨)가 갈등하는 모습을 맥주 거품을 빌려 부각시킨 중반부의 장면은 압권이었다.조여오는 수사망과 밀고의 압박 속에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시던 맥주잔이 탁자에 엎질러지면서 확대되는 맥주 거품.캐롤 리드 감독은 이 화면에 동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 시켰다. 아일랜드의 한 시가지가 흔들리면서 전개되는 타이틀 백.추운 겨울의 탑시계는 하오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지하 독립운동 조직의 총기 밀수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조니는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직공장을 습격한다. 세명의 일당과 함께 돈을 털어 달아나던 조니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수위를 쏘고 그 역시 총상을 입는다.뒷골목에 숨어 있다가 동료의 도움으로 비상선을 빠져나온 조니는 애인 캐더린(캐더린 라이언)의 부축을 받으며 탈출이 계획된 부두에 이른다. 그러나 조니는 경찰관들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가운데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미래를 단념한 애인의 권총에 맞아 절명한다.함박눈이 내리는 부두의 광장에 서로 손을 잡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두 남녀의 시체. 이처럼 라스트 신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예컨대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캔버스 앞에 앉힌 뒤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광적인 화가(로버트 뉴턴)의 행위나 현상수배범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흥정하는 새장수(F J 매코믹)의 야비한 이기주의 등은 성악적인 인간의 한 전형이었다. 나는 쫓기는 자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출한 이 영화의 영상미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이들 캐릭터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나는 「심야의 탈주」를 앉은 자리에서 두번이나 봤다.그래서 지금은 없어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4층에 자리한 재개봉관은 나의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 연변동포작가 류연산씨 한·중 국경르포(두만강 7백리:1)

    ◎화룡 8순노인 “강 건너 뼈 묻었으면”/중국땅에 이주했지만망향의 한 때문에 못떠난다/강너머 들려오는 고국 기차소리… 그리움 사무쳐 사연많은 두만강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북으로 달려 7백리.이름하여 두만강이다.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으로서 중국 조선족과 북한 동포들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채 살아 가고 있다.서울신문은 그 강 유역에 얽힌 사연들을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 류연산(38)씨가 엮는 「두만강 7백리」를 새로 연재한다.두만강 양안(양안)에서 한쪽은 변화의 회오리 바람속에 놓여 있고 다른 한쪽은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다.이 시리즈 집필을 위해 작가 류연산씨는 2개월 남짓 두만강 7백리를 답사했고 사진은 본사 김윤찬 차장이 촬영했다. 배낭을 등짐삼아 두만강 7백리를 굽이굽이 돌아 가노라니 깊은 정회가 가슴에 스며들고 마음은 곧 애수에 젖는다.나뭇잎이 져 버린 산야가 사뭇 허전한데 밤새 강물도 꽁꽁 얼어붙었다.물결이 넘실댈 두만강의 봄은 아직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김정구 선생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얹혀 한민족 가슴에 설움을 심어준 이 노래는 답사길에 오른 내 가슴을 적신다.이주민 3세인 젊은 심정이 이러할진대 그 당시 조상들이 살아온 고난의 시대를 구태여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전 김정구 선생이 연변공연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자 장내는 눈물바다로 변했다.그 이튿날 도문(오늘의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한 여인이 두만강에 몸을 던졌다.기약도 없이 돈벌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여인이 삶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그만큼이나 한많은 사람들이 두만강가에서 모진 삶을 살았다다.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화용시 노과진 노과촌)을 찾았을 때 조창렬(85·함경북도 경선군 주을면 봉파리 태생)노인은 피맺힌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부모님이 낳은 지 일곱달되는 나를 업고 이곳으로 이사왔디요.그때 증조부님은 굶어 죽더라도 조상산소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불호령을 쳤다지 뭡니까.막무가내로 자식의 등허리에 업혀 고향을 떠나온 노인은 운명을 앞두고 조상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수다.사람이 팔십이면 쌀벌레라는데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지 못할 걸 생각하면 나는 잠이 안오우다.저 강이 야속하고 인생이 원통할 뿐이외다』 아버지 시신까지는 귀향시키고 외롭게 떨어져 늪골(노과의 원명)을 지키고 있는 노인은 쓸쓸해 보였다. 『삐익』 그 집앞 두만강건너에서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가 기적을 뽑는다.노인은 그 쪽에 망연한 눈길을 주고는 한숨 짓는다.열차는 조선 삼형제굴을 지나 남촌굽이로 뱀같이 구불구불 흘러온다.애달프다.저 기찻길은 서울도 통하고 중국도 통하건만 고국 땅 허리의 군사분계선과 국경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두만강에 얽힌 32년전 19 63년 12월27일의 이야기 하나를 꺼내고자한다.무산쪽으로 달리는 99 31호 열차에서 청년 둘이 뛰어 내렸다.쇠처럼 굳은 언 땅에 나뒹굴던 그들은 벌떡 일어서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강쪽으로 달려갔다.그들은 얼음장이 둥둥 떠내리는 물에 서슴없이 첨벙첨벙 뛰어들었다.바로 조선 청진철도국 백암열차구 차장 김형호와 함북 무산 임산사업소 공무직장 선반공 최상현이었다.이수촌(지금의 노과진 이수촌)에서 5백여m 떨어진 두만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 아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때 물에 빠졌던 여자 아이 가운데 하나가 지금 중국 화룡시 팔가자진(화용시 팔가자진) 부진장의 부인인 한친선(원명 한순자·45)이다. 19 64년 1월9일 화룡인민영화관에서는 중조 인사 7백여명이 김형호·최상현의 살신성인적 용기를 기리기 위한 대회를 거행했다.이 자리에서 한순자의 부친 한창도는 구명은인한테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딸의 이름을 한친선으로 고쳐 부를 것을 약속했다.그날 저녁 연변가무단은 김형호·최상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각색한 가극 「친선의 물결」을 공연했다. 이러한 옛날 일을 회상하는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30여년전 이른바 중조 친선의 미담은 오늘날에 와서 많이 퇴색해 버릴만큼 세월이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십년 대동란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한때 중국과 북조선관계에 틈이 생겼다.조선의 은인들과 빈번한 편지거래를 가졌던 한친선은 처녀시절에 수정주의 조선간첩 혐의를 받기도 했다.중조관계가 완화된 후엔 연락처를 몰라 문안편지 한장 전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연말 두만강 답사길에서 북조선에 사는 김형호 소식을 들었다.용정시 백금향(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48)문화잠장이 북조선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재작년 가을 웅기로 친척방문을 가게 됐드랬습니다.도문해관을 넘어 북조선 남양에 이르렀더니 뉘엿뉘엿 해가 지더군요.그곳에서 밤을 나고 이튿날 웅기행 열차를 탈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디요.기래서 짐들을 보관시키고 갖고 간 쌀과 고기며 술을 가방에 넣고는 무작정 아무 집이나 찾아갔습니다.남양군 남양읍 42반이라고 쓴 벽돌집이었는데,방에 앉아 유심히 집안을 뜯어보다가 깜짝 놀랐댔시요.북조선 정부에서 발급한 라성교(조선전쟁 당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희생된 중국 지원군 병사)식 영웅이라는 훈장과 중국 정부에서 발급한 상장들이 액틀속에 정히 넣어져 벽에 걸려 있었댔습니다.그 전에 두만강에서 우리 조선족 처녀들을 구해준 김형호 그 사람이었습네다.우리는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네다. 나는 김형호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화룡시 팔가자진에 사는 한친선 여인에게 전했더니 퍽 감격스러워 했다. 오늘 우리는 도문에 가면 중조교두를 마주하고 선 친선탑을 볼 수 있다.문화대혁명시기 이 자리에는 모택동 사상이 조선에 비치라는 의미에서 조선쪽을 향해 선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었다.문화대혁명이 끝난 70년대 말에 모택동 동상을 폭파하고 거대한 두 손이 악수하는 모양의 친선탑을 세웠다.자초에는 중국과 조선의 혁명적 친선을 상징하는 뜻이었으리라.하지만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그 이미지가 폭을 넓혀 두만강 건너 한반도전부를 포함하게 되었다. 연변의 친선탑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대립된 남북한 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약력 ▲중국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출생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졸업 ▲중산대 철학부 연수 ▲단편소설「푸른매」로 문단데뷔,「아 쪽박새」「인생숲」 등 중·단편소설 60여편 발표 ▲「해란강」「청춘무대」등 문학상과 전국소수민족 우수도서 편집상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이사,연변조선족 문화연구회 회장,연변 인민출판사 문예부 편집위원
  • 개봉 미영화 「가정교사」/일 문화색채 짙어 “논란”

    ◎감독·출연진 상당수 일본인 구성/「왜색영화」 수입금지 취지 어긋나 국적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영화 「가정교사」(원제 Private Lessons)가 18일 개봉(국도극장)과 함께 또 다시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수입 및 상영심의를 내줬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설명과는 달리 감독과 출연진의 상당부분이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는 등 일본영화의 색채가 매우 짙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윤리위원회는 당초 이 영화의 국적이 문제가 되자 소명자료를 내 미국 영화제작자 R.벤 에프레임이 설립한 「프라이비트 레슨스 파트너십 L.P」사가 제작했으며 감독도 미국인 알란 스미티가 맡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난 93년 3월 일본에서 개봉될 당시의 영화포스터에는 제작은 공륜측의 설명대로 R.벤 에이프렘이 맡았지만 감독은 충무로 영화인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즈미 세이치(화천성치)감독이 맡았음이 명기돼 있다.또 촬영도 스기무라 히로아키(삼촌박장)촬영감독이 했으며 상당수의 스태프와 출연진들도 일본인으로 표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화의 상당부분이 일본어로 진행될 뿐 아니라 일본의 거리풍경과 생활모습을 담은 화면이 연이어 펼쳐지는 등 일본색이 짙게 드러난다고 말한다.때문에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미국영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영화와 마찬가지라는 것.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나가키 고로와 가수 최연제가 함께 부른 주제가와 일본 팝그룹 린드버그의 노래 등 대중가요가 실린 음반이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서 발매되고 있어 일본 대중가요까지 들여오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영화관계자들은 정부와 공륜이 「제작 주사무소가 위치한 곳의 국적을 따른다」는 형식논리에만 매달려 명백한 「왜색」영화의 수입 및 상영허가를 내준 것은 일본대중문화의 수입을 금지하는 본래 취지를 망각한 처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새영화진흥법 제정 첫 공개토론회/“영화인 자율확대…규제는 최소화”

    ◎「입장료 문예기금」 전액 영화지원 금고로/의무상영 신축 운영… 잘지키는 극장 혜택줘야 문화체육부와 영화진흥공사는 14일 하오 세종문화회관 소회의실에서 영화제작자와 극장주·대학교수·정부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진흥법 제정을 위한 첫 공개토론회를 열었다.김동호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영화진흥법 제정의 본래 뜻을 살려 정부는 최소한의 규제만 하고 영화인 자율에 의한 영화육성쪽으로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동국대 민병록 교수(연극영화과)는 「영화진흥법 제정의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자율적인 영화산업발전에는 재원확보가 시급하다』고 전제,▲극장입장료에 포함된 문예진흥기금을 전액 영화진흥금고재원으로 출연하거나 ▲영화·비디오 판매시 일정비율의 부가금을 부과해 영화진흥금고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민교수는 이와 함께 다목적 극장개념을 정리해 영화전용관을 도입하고,한국영화의 대외경쟁력확보와 해외시장개척을 위해 현행 외국제작자와의 합작영화제작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또 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를 신축운영해 성수기에 한국영화를 상영하거나 청소년영화등 가족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혜택을 주는 방법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토론에 나선 정광웅 영화제작협동조합이사장은 『영화진흥법의 제정목적이 규제완화에 있는데도 논의단계에서 규제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지적했다.정씨는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작제와 독립프로덕션의 연간 제작편수등에서 외형상의 개선노력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규제의 성격을 지닌 부분에 대한 과감한 시정이 없는 한 새 영화진흥법은 과거와 같은 부작용을 노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문 경인일보논설위원도 『영화는 기본적으로 상품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새 법은 교육등 민간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을 보완,지원하되 최소한의 간섭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대서 전국극장연합회회장은 『영화의 유통과 배급 등 영화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극장의 발전 없이는 한국영화육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극장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강씨는 특히 『현재의 영화법은 극장에 대한 개념이 명확치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극장을 방치한 채 영화전용관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은 현실을 무시한 시도』라고 못박았다. 서울예전 강한섭 교수(영화과)는 『영상분야의 대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영화법도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에 철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강씨는 특히 『전자영상분야의 우위가 확연해지는 추세에서 방송국도 장편영화를 의무제작토록 유도하는 한편 영화진흥공사나 영상자료원등 영화관련 기구의 기능을 대폭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베를린 영화제… 「태백산맥」공개 시사회 성황

    ◎“민초들 삶 그린 감동의 휴먼드라마”/“인본주의 정신 돋보였다” 기자·시민 호평/심사위원 특별상·감독상 수상 가능성높아 제4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태흥영화사 제작)이 13일 하오 1시(현지시간) 기자시사회와 하오 8시 공개상영회를 통해 현지에 첫 선을 보였다. 베를린 시내 「세계문화원」 파스빈더 홀에서 열린 기자시사회는 8백여명의 각국 보도진들이 관람,한국영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관객들은 대부분 「태백산맥」이 단순히 이데올로기 영화라기보다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온 민초들의 삶을 그린 휴먼드라마로 읽혀져 한층 감동적이었으며 특히 되새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는 도입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관람한 독일 뒤셀도르프지의 펠프만 기자는 『좌우익 이념갈등을 다룬 무거운 내용의 영화이지만 2시간 50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으려는 감독의 인본주의 영화정신이 돋보인다』고 촌평. 국제적인 영화평론가 토니레인즈씨는 『생과 사의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일상생활,심지어는 성관계까지도 규정하려는 이념적 대립을 인간본연의 존재문제와 대조시켜 그 허구성을 폭로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질의 비디오지 파울로 드 고메즈기자는 『한국의 수려한 자연과 토속적인 삶을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에 깊이 끌렸다.특히 여자무당 소화(오정해 분)의 굿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국내 및 외신기자 60여명이 참석,작품의 의도와 해석 등에 관해 질문공세를 폈다.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대결의 실상과 남북의 이념적 화해가능성 등이 주요질문내용.이에 대해 임권택 감독은 『한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역사의 문제』라며 『이데올로기의 목적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데 있는만큼 이 작품속에는 좌도 우도 아닌 「인본」만을 담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우익테러의 위협까지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좌우익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며 『민족화합,나아가 통일메시지까지도 이 「태백산맥」엔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초 팔라스트 극장에서 열린 일반 공개시사회 역시 1천여 좌석이 매진되는 등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영화를 보고 나온 한 현지유학생은 『염상진(김명곤)에서부터 염상구(김갑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쫓아가기가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한민족의 한과 역사의 멍에를 실감할 수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제작사인 태흥영화사측은 이곳 극장주변의 유료광고판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의 「전투적」 홍보에 자극받은듯 7천5백달러를 들여 자체 홍보책자 8만부를 제작,배포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수상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중반전까지의 성적으로 최우수상인 금곰상은 몰라도 심사위원 특별상이나 감독상은 받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현지분위기이다. 이와 관련,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기자시사회와 일반시사회에 나타난 열기와 호의적 반응만 계속 유지된다면 3위격인 감독상 이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보였다. 이날 마지막 행사로 열린 「한국의 밤」축제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모리츠 데 하델른,심사위원장인 리아 판 레어감독,캐나다 모스크바 영화관계자 등 2백여명이 참석해 한국영화의 발전을 기렸다.
  • 복권·영화표·경기장 입장권/슈퍼­편의점서도 판다

    ◎즉석복권 등 2종 판매 개시/슈퍼연합회/6월부터 철도­항공표 취급/훼미리마트 슈퍼마켓과 편의점 등 소형 유통업체들이 새로운 서비스 상품을 개발,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주택복권 판매와 영화표·경기장 입장권까지 예매하고 있다. 가격경쟁으로는 백화점의 세일판매와 할인점의 가격파괴 공세를 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새로운 전략이다. 4일 한국슈퍼마켓연합회(회장 김원식)에 따르면 연합회는 최근 주택은행과 판매계약을 체결,전국 3천여 회원 슈퍼(38개 지역조합)들이 주택복권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지난 2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등 4개 조합에서 판매 중이며 나머지 슈퍼들도 이 달 중 판매를 개시한다. 취급하는 주택복권은 2개월 단위로 발행되는 다첨식(액면가 2천원)과 즉석식(5백원) 등 2종류이며 1주일 단위로 발행되는 추첨식은 제외된다. 슈퍼들은 지난 달부터 금호전기와 공동구매 계약을 통해 전파사나 철물점에서 다루는 형광등과 전구,콘센트 등도 팔고 있다. 이밖에 일부 편의점들은 영화표와 경기장 입장권 등을 예약 판매하고 했으며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의 대납도 추진 중이다. 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보광(대표 오광열)은 영화표 예약 전문업체인 (주)가우자리와 계약,서울의 25개 개봉관의 관람권을 예약판매할 계획이다.오는 17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신촌점에 영화관람권 발권기를 시험 운영하며,내달부터는 서울 20여개 점포에서 온라인망을 통해 예약판매를 시작한다. 또 오는 4월부터는 프로야구 관람권을 예약판매하며 6월부터는 농구와 축구는 물론 철도 및 항공권도 팔기로 했다.
  • 대우/북경대공원 공사 수주/52억불규모… 미 컨소시엄과 공동으로

    ◎내년 본계약 체결… 99년 1단계 완공 대우그룹은 20일 52억달러의 북경대공원 프로젝트를 미국 컨소시엄과 함께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기업과 중국 북경시가 합작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대우가 일괄 시공한다. 미국 컨소시엄의 대표인 재미 교포사업가 정현갑씨(중국 북경세계낙원유한공사회장 대표)도 이날 북경에서 (주)대우의 장영수 건설부문 사장과 보브 헨킨스 북경대공원 고문과 함께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대우그룹의 관계자는 『설게가 끝나는대로 내년에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경대공원은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나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위락시설을 비롯해 ▲상업 및 사무용시설 ▲고급주택 및 외국인 전용 아파트 ▲요양병원 ▲영화관 ▲스포츠센터 ▲고급호텔 ▲골프장 ▲5만대규모의 주차장 등을 갖추며 설계는 디즈니랜드를 설계했던 미 듀얼사가 맡는다. 내년 상반기에 착공,중국 공산정부 수립 50주년이 되는 오는 99년 10월1일 디즈니랜드·호텔·쇼핑몰·골프장·스포츠센터 등 1단계공사를 완공하고 요양병원·고급주택·아파트·사무용시설 등 2단계 공사는 2002년 마무리한다. 이 계획은 중국이 오는 99년에 열릴 북경세계박람회와 2004년 북경세계올림픽 대회를 같은 장소에서 열기 위한 야심찬 구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위치는 북경∼천진간 고속도로 주변의 북경 통견으로 북경 도심에서 20㎞,천진시에서 77㎞ 떨어져 있다. 규모는 1천2백만평이다. 자본으로 참여하는 기업은 미국의 1백대기업에 드는 11개사를 비롯해 일본·홍콩·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의 다국적 기업들이다. 한편 북경시와 중국 국제무역 촉진위원회는 공원 옆 3백만평에 20억달러를 투자,대규모 국제전시장 건설을 계획하는 등 이 지역을 국제상업 및 위락도시로 개발할 방침이다. 정회장은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지난 69년 미국으로 이민간 후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세계에 4천여개의 호텔을 둔 미국 베스트 웨스턴 인터내셔널사의 아시아담당 사장도 맡고 있다.
  • 초대형 TV스크린/안방극장시대 개막

    ◎52인치에 스트레오 음향… 미서 2,400달러에 판매 안방극장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52인치 초대형스크린,전문오디오수준의 스테레오 하이파이 사운드,그리고 느긋하게 앉아서 팝콘을 먹을 수 있는 소파.결코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미 포천지 최근호는 안방이나 거실에서 영화관과 같은 수준의 영상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 최근 개발돼 대량생산에 들어갔다고 전한다.이 시스템은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비디오 온 디맨드(주문형비디오)와 결합될 것으로 보여 더욱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몇천달러만 투자하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안방극장」시스템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크기만 큰 대형스크린 정도를 뛰어 넘는다.벽을 가득 채우는 50인치 이상의 스크린과 원음을 거의 그대로 전달해 주는 초대형스피커는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안방극장」시스템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하는 SF물이다.「쥐라기공원」이나 「터미네이터」같은 영화가 그 예이다.이 밖에도 공연실황이나 「아마데우스」같은 음악영화는 오히려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다른 사람을 신경쓰면서 좁은 의자에 않아 영화를 감상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느긋하게 가족들과 편한 자세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요즘의 한 사회현상을 나타내는 「카우치 포테이토」족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52인치 대형스크린의 가격은 대략 2천4백달러선.음향효과를 그대로 살리면서 화면의 크기를 27인치로 줄이면 3천달러정도에 안방극장을 구성할 수 있다.이 정도의 가격이면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펜티엄PC를 프린터와 함께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다.게다가 이 가격대도 핵심부품인 전자회로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1년내에 절반가격 정도로 하락할 전망이다. 아직까지 규격이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이 시스템이 기존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대체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반포지역에 시범서비스되고 있는비디오 온 디맨드와의 결합은 영화관과 기존 TV제조업체가 설 땅을 곧 잃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 굴업도개발 7백50억지원/정부,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구체계획 마련

    ◎주민운영 감시시설 “절대안전” 역점/주변 임해관광지 개발… 보상 최대한 경기도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의 방사성페기물처분장입지를 확정한 정부는 시설지구개발계획 주민열람,지역협의회구성,공청회개최등 최종적인 부지지정고시를 위한 절차를 추진하는 한편 관리시설지구개발계획(안)및 지역지원사업추진계획을 마련,주변지역주민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13일 마련한 시설지구개발계획및 지원사업계획에 따르면 처분장이 들어서는 굴업도는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처분시설로,주변지역인 덕적도등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모범마을의 하나로 가꾼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로 돼 있다. 정부는 오는 2001년까지 총 7천억원을 투입,중저준위폐기물 20만드럼,사용후핵연료 4백MTU(사용후 핵연료의 질량단위·메트릭톤우라늄)를 수용할 수 있는 처분시설을 1단계시설로 완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이 시설의 사업비(시설건설비 제외)는 1천3백11억4천만원규모로 이중 3.3%인 42억8천만원이 토지매입및 보상비로 책정됐다.그러나 이 액수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것일뿐 정부는 공시지가가 아닌 시가보상을 원칙으로 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보상을 할 계획이기 때문에 실제보상비는 대폭 상향될 전망이다. 정부는 또 굴업도및 주변지역에 대해 향후 37년간 총 1천7백50억원을 투입,이 지역을 서부수도권 임해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어서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예상되고 있다. 면적 1백86만㎡(56만3천6백10평)의 굴업도지구에는 ▲폐기물이 들어가는 종합관리시설(7만9천9백94평) ▲항만 전력공급(7MW규모) 정비관리동 등의 공통지원시설(3만9천2백40평) ▲독신료(독신자용 숙소 1백6명분)·사택(10가구)·체육시설·홍보관등의 복지시설(4만6천6백37평) ▲녹지및 기타시설(39만7천7백39평)등 기능별로 크게 4부분의 시설이 들어선다. 종합관리시설중 중저준위폐기물처분시설은 사업부지 서측 바다밑(그림참조)에 지하로 깊이 들어가는 해저동굴처분방식으로 지어지며 섬의 남측 만지역에 건설될 항만시설및 인수검사시설과는 지하터널로 연결되도록 계획됐다.사용후 핵연료저장시설은 경수로형과 중수료형을 구분해서 저장할 수 있도록 2개 부지로 나누어 배치되며 개별시설은 수납및 저장시설 외에 수송차량이동공간및 완충지역으로서 시설물주위에 약 20m정도의 통제구역을 둘 계획이다. 공통지원시설중 항만시설은 2천∼3천t급 전용운반선 2척이 접안할 수 있는 규모로 건설되고 간조때도 수심 6t이상을 유지하도록 준설할 계획이다.전망이 좋은 구릉지에 배치될 홍보센터는 전시관·영화관·휴식공간,주민운영의 환경방사선감시시설을 설치,섬에 상주할 88명의 인원 외에 하루 1백명정도의 방문객을 받는다는 계획이다.정부는 이같은 시설외에도 오수처리시설·폐수처리시설등 환경보전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한편 주변지역 지원금은 올해 상반기중 일시에 출연될 특별지원금 5백억원을 비롯,건설기간 7년동안 연간 50억원씩 3백50억원,시설운영기간 7년동안 연간 50억원씩 3백50억원등 총 1천7백50억원이 소득증대사업및 공공시설사업·육영사업등에 투입된다. 정부는 22일까지 개발계획에 대한 주민열람및 의견제출을 마감하고 25일 인천시 중구 민방위교육장에서 공청회를 가진 뒤 2월중순까지 시설지구개발계획을 최종지정,고시할 계획이다.정부는 방사성폐기물과 관련된 연구소시설의 입지에 대해서는 덕적도·영흥도·대부도중에서 검토,처분장 고시와 동시에 확정키로 했다.
  • “2002년 월드컵유치에 최선”/신임 주돈식문화체육부장관에 듣는다

    ◎“문화·체육공간,신명나는 놀이터로 활용”/국민 문화수요 부응할 정책 개발 『내년부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할 국정 목표가 세계화 작업입니다.세계화 작업이란 우리 것을 내보내고 우리 것을 바탕으로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임 주돈식 문화체육부장관은 24일 상오 문체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문화,체육,관광업무는 세계화의 선행조건인 한국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문화 체육부가 세계화의 첨병이며 주력부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업무를 추진하겠습니다』 30년 가까운 기자생활경력에다가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대변인을 거친 주장관은 달변이다. 『경제발전으로 선진국에 진입할수록 국민들의 문화,체육,관광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국민의 문화 수요에 부응하는 정책을 개발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주장관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70년대부터 서울과 지방에 시민들의 문화 공간이나 체육공간이 많이 늘어났으나 이를 활용할 소프트 웨어가 없어 거의 대부분 텅텅 비어 있다』고 지적하고『이런 좋은 시설들이 문화·체육공간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대관으로 명맥을 잇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산재한 문화·체육공간에 아마추어,예술가,체육인,전문인들이 모여들어 웃음소리와 땀흘리는 소리를 내도록 신명나는 문화 현장을 만들겠다는 것이 주장관의 다짐이다. 『라빈 이스라엘총리가 방한했을 때 수행원들에게 제2외국어를 무얼하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한다고 대답하더군요.이스라엘에서는 영어가 제2외국어가 아니고 외교관들은 물론이려니와 공무원들도 히브리어와 함께 영어를 상용어로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화의 주역인 문화체육부의 해외문화원 근무자들과 체육교류 및 문화외교 담당자들의 어학 실력도 강조했다. 그는 『월드컵 유치는 단순한 스포츠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올림픽을 치른 이후 우리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것처럼 2천년대에는 월드컵의 열기로 우리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월드컵 유치를 위해최선을 다할 뜻을 비췄다. 『저는 전문 문화인이나 체육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국무위원의 한사람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에 문화·체육일선에서 일하는 전문인들의 생각을 모아서 통치이념과 접목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장관은 그동안 시간이 없어 영화관에 갈 기회는 없었으나 텔레비전을 통해 옛날 영화를 많이 보았다면서 앞으로는 연극과 음악회등 문화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서 감각을 익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 대한뉴스(외언내언)

    연전에 모TV방송 주말연속극 「아들과 딸」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면서 시청자의 인기를 끈 일이 있다.스토리의 전개,개성파 연기자들의 열연등이 시청률을 높인 요인이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배경으로 설정했던 60년대초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절의 삶의 향수가 진하게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었을것이다.궁핍했던 시대의 생활상이 그 당시를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리게 했던것이다. 그런 이점을 노려 어느 방송국의 코미디프로에서는 50∼60년대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을씨년스러운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그때를 아시나요」라는 한 특집프로에선 지금의 우리가 연민을 느낄 정도의 궁핍한 생활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이무렵의 시대상을 재현시켜준 이 필름들은 국립영화제작소(현 국립영상제작소)가 제작한 「대한뉴스」에서 선정한 것들이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의무적으로 상영되던 「대한뉴스」는 그 연원이 해방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1945년 「조선시보」란 제호로 부정기적으로 제작한 것이 그 효시.그뒤 「대한전진보」로 제명이 바뀌었고 1953년들어 「대한뉴스」로 개명되었으며 주간단위로 정기제작된 것은 57년부터였다. TV가 본격 보급되기 전인 50∼60년대 「대한뉴스」의 인기도는 높았다.태극기가 펄럭이면서 떠오르는 「대한뉴스」 타이틀백도 인상적이었다.그러나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대한뉴스」는 국민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보름이나 늦은 구문을 봐주려는 영화관객이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극장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대한뉴스」는 마침내 올해 연말까지 상영되는 2천40호로 종언을 고하게 됐다. 그러나 「대한뉴스」는 광복50년의 파노라마와 시대상을 증언하는 유일무이한 영상자료이다.현대사의 부침을 필름으로 남겨놓고 「대한뉴스」는 퇴장한다.천수를 다한 셈이다.
  • “영화포스터도 고가 예술품”/「킹콩」 11만2천5백달러에 낙찰

    ◎349점 출품,281점 팔려/「바람과 함께…」도 7만달러에/소더비,포스터 경매 영화포스터가 어엿한 고가 예술품 대접을 받고 있다.영화관이나 거리 게시판에 붙어 새영화의 상영을 알려주고 프로가 바뀌면 흉칙하게 찢기거나 새 포스터의 덧칠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영화포스터가 수집가들의 과잉열기로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최근 열렸던 영화포스터 경매에는 1933년에 제작된 영화 「킹콩」의 포스터(2.06m×1.04m)가 11만2천5백달러(한화 약9천만원)에 팔렸다.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 올라앉아 한손에는 적의 비행기를,다른 손에는 미녀를 움켜쥐고 있는 이 포스터는 여지껏 나온 킹콩 포스터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했다.이날 경매된 다른 킹콩 포스터 두개도 각각 4만8천8백75달러와 2만4천1백50달러를 기록,모두 예정가를 훨씬 웃도는 강세를 보였다. 총3백49점이 출품돼 2백81점이 낙찰된 이날 경매에서 두번째 기록은 19 39년에 제작돼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기록한,남북전쟁을 주제로한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포스터(1.65×1.09)로 개인소장가에 의해 7만1천2백50달러에 낙찰됐다. 디즈니 시리즈의 대표격인 1931년에 제작된 「미키마우스의 사슴사냥」은 3만5천6백50달러에 팔렸으며,1933년 작품인 글래머 여배우 마를린 디트리히트의 「노래중의 노래」도 두개의 포스터가 각각 2만9천9백달러와 1만8천4백달러로 강세를 보였다. 1942년 제작된 당시 최고 인기배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전쟁중 사랑이야기를 그린 「카사블랑카」는 2만5천3백달러와 1만3천8백달러에 팔렸다.1939년 작품인「오즈의 마법사」도 예정가를 두배 이상 웃도는 2만1천8백50달러와 1만1천5백달러를 기록했으며 1938년 콜럼비아사에 의해 제작된 코미디영화 「위 위 무쉬에」 역시 예정가보다 다섯배에 달하는 1만8천4백달러에 팔렸다. 이밖에 이날 1만달러를 호가한 포스터들은 「메트로폴리스」(1927·프리츠 랑 감독),「8시 저녁」(1933·MGM),「리틀 시저」(1930·워너 감독)등이 있다. 이번 영화포스터 경매를 주관한 소더비의 대이나 호크스수집부장은 『주로 크게 히트를 쳤던 영화일수록 포스터 역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92년 첫경매를 시작한 이래 세번째 경매로 해마다 새로운 소장가들이 계속 늘어나는등 수집가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왜곡된 한·일관계사 바로잡자”/이성적 극일의 길 어디에

    ◎일학계 논거 침략합리화서 출발/뒤틀린 「그들의 논리」 극복이 과제 근대 이후 공식적인 한일관계는 흔히 불평등조약으로 불리는 1876년 2월의 「조일수호조규」로 시작되었다.일본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피해 또한 이때부터였다. 「조일수호조규」는 일본측에 치외법권 및 연안측량권·해도작성권 부여,조계지 설정,무관세 및 일본화폐의 국내유통 허용 등 정치·군사·경제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불평등한 조항을 명기했다.더구나 조약의 유효기간 및 폐기조항을 명시하지 않아 불평등 조약의 무기한 존속을 허용한 꼴이나 다름 없었다.그러나 당시 조선정부는 이 조약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일본은 일찍부터 우리를 알았지만 우리는 일본을 몰랐던 결과였다. 일본의 한국연구는 에도(강호)시대(1603∼1867)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이미 이퇴계의 학문을 존경해 연구하는 주자학자들과 「일본서기」 등 일본 고전을 연구하는 「국학자」들,그리고 국방상 필요에 의해 조선을 인식하는 「해방론자」들이라는 세 부류의 조선연구자가 있었다.특히 이때 「국학자」들에게서 형성된 조선관은 「일선동조론」에 따른 「정한론」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1885년 도쿄제국대학에 사학과가,그 2년뒤에 국사과가 설치되면서 근대역사학이 출발했고 한국사 연구도 본격화됐다.이 때 이들의 관심사는 역시 「국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대사가 중심이었다.이후 일제의 한국병탄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침략행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틀을 잡아갔다. 일본에선 지금도 교토대와 규슈대 오사카대 도쿄대 메이지대 덴리대 등 대학연구기관과 동방학회 동양문고 역사학연구회 조선사연구회 조선학회 등 민간연구기관에서 한국학 관련 학술지를 내는등 한국연구 열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일본연구는 해방뒤 각 대학의 사학과와 일어일문학과가 중심이 됐으나 성과는 부진했다.그러다 1970년 이후 「한국일본학회」와 「한국일어일문학회」「한일경상학회」「한일 법과 사회 연구회」「현대일본연구회」같은 일본관계 연구기관이 나타나며 본격화되었다.또 계명대 「일본문화연구소」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부산대 「일본문제연구소」,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중앙대 「지역연구소」,덕성여대 「한일문화비교연구소」 등이 차례로 문을 열며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이 연구소들과는 별도로 개별적인 일본학 연구도 비교적 활발해지고 있다.연구기관들이 역사나 정치 어문 등 분야를 중심으로 한다면 사회·경제·인류학 등 분야는 아직까지 개별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양에서 앞서 나간 일본의 한국연구는 그 아전인수격 해석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학설로 굳어져 우리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우리 일본연구는 일본인들의 논리를 완전히 극복하는 순간 비로소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는 셈이나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일본연구를 국가·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관계전문가들은 말한다. ◎“「특수한 나라」 아닌 객관적 접근 필요”/일본전문가 한경구 교수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은 세대는 누구나 자신이 「일본을 안다」고 생각하지요.젊은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일본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일본전문가인 한경구 강원대 교수(38·인류학)는 『우리들은 대부분 일본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일본여행을 하거나 심지어는 몇년씩 머물러 책까지 쓴 사람도 「볼 준비가 되어 있던 것」밖에는 못 보고 온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교수는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대한 논란도 「일본은 특수한 나라」라는 인식 때문』이라면서 『이제 일본을 다른나라와 같은 하나의 외국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적용할 기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교수는 『불과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연구자는 거의 「친일파」쯤으로 대접받았으나 이제는 분위기가 바뀌어 거의 1만명이상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일본을 알기 위한 분야보다는 일본을 이용하기 위한 실용적인 분야에 국한되어 오히려 고급인력의 유출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일본대중문화개방… 분야별 파장과 대책 ○영화/성인용 비디오시장 무방비… 쿼터 제한해야 일본 영화의 전반적인 수준이나 규모로 볼때 우리 영화시장에 대한 일본영화의 잠식력은 그리 크지 않으리란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다만 성인용 만화비디오는 빗장이 풀릴 경우 우리 업계에 만만찮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일본 만화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65%에 이를 정도로 일본이 애니메이션 왕국일뿐 아니라 국내업계가 하청제작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구조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디오매출의 일정비율을 영화진흥기금으로 징수하는 방안과 영화관의 의무상영일수에 준하는 비율로 극영화 비디오 의무배급제(비디오쿼터제)를 시행하는 방안 등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대비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점은 산업적인 피해보다는 정서적인 악영향이 심각할 것이라는 점이다.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상품은 단순한 상품만이 아니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기 때문이다.일본 영화와 비디오의 폭력성과 외설성을여과할 수 있는 장치가 든든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다. ○가요/자본력 취약한 국내 음반업계 도산 우려 국내에서 일본가요를 즐기는 20세전후의 청소년층에게 일본가요는 2∼3년전에 비해 다소 인기가 떨어진 상태.현재는 신예그룹 「X」,가수 요시키 및 나가부치의 음반등이 인기를 끌고있다. 이 음반들은 현재 공식수입되지 않기때문에 서울 청계천 일대나 일부 레코드가게 그리고 리어카 행상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유통된다.연간 2천5백억∼3천억원에 이르는 우리 음반시장에서 그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될 경우 문제는 일본 가요 자체보다는 우리 가요가 일본에서 제작돼 역수입되는 것.일본은 음반제작기술,특히 효과음을 삽입하는 기술이 발전해 있다.일본은 국내가수 일부를 이미 국내에 진출한 자회사등에 전속시켜 놓고 있으며 「무시로」등 국내 가수들이 일본어로 취입한 음반이 역수입돼 인기를 끌고있는 상황이다.음반시장 개방시 일본 음반회사들이 자본과 기술력을 내세워 우리 가수를 고용,우리말로 취입한 뒤국내시장에 내놓는다면 열악한 국내음반회사들이 받는 타격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만화/이미 70%이상 잠식… 제조업수준 지원을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되면 가장 빠른 기간에,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가 만화산업이다.동아시아에서 만화가 인기높은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태국 등인데 이 가운데 일본만화를 일찌감치 받아들인 대만·홍콩·태국에서는 일본만화가 이미 시장의 95%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화업계는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들어온다면 국내 만화시장도 2∼3년만에 이 나라들과 비슷한 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해 나온 만화 6백여만권 가운데 70% 가량이 일본만화에 국내작가 이름을 붙였거나 대사만 우리말로 바꾼 사실상 일본만화라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따라서 만화계 인사들은 『개방시점을 되도록 늦추고 그동안 정부와 만화계가 힘을 합쳐 경쟁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만화산업에도 제조업에 준한 세제혜택을 주고 ▲4년제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만화 전문과정을 설립,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매체 영향력 커 개방시기 가능한 늦춰야 매체의 영향력이나 파급효과면에서 파장이 엄청날 것을 감안,방송은 당분간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책당국의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서 수입된 TV만화영화,우리 방송의 폐습인 일본프로의 모방·표절,파라볼라 안테나를 타고 들어오는 위성방송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의 개방된 셈.특히 위성방송은 매년 수신가구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현재 80만가구 이상이 수신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위성방송은 해외정보 습득이라는 순기능 보다 저질 일본문화와 일본식 사고·행동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역기능 때문에 문제다.또 시장에서 일본상품의 수요창출을 부추기는 간접효과도 초래한다. 내년 4월 방송통신위성 무궁화호 발사로 12개의 가용채널이 생기고 여기에 외국 위성방송까지 합치면 97년 80여개,2000년까지는 1백60여개의 채널이 시청가능해 진다.이같은 방송환경 변화와 일본 대중문화 침투가 연결되면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방송관계자들은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앞서 방송프로그램 제작능력이 제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를 위해 ▲프로그램 제작단지의 조성 ▲전문인력 양성기관 설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아울러 시청자 교육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지적한다.
  • 1995 광복 50돌/1인당 GNP 121배 늘었다

    ◎통계로 본 그때와 오늘의 국민생활 변화/인구 2.8배… 자동차 4백80배로 증가/수출 올 9백34억$… 3천3백배 껑충/도서관은 42곳서 7천8백곳으로 늘어/남한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해.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지 글자 그대로 반세기가 꽉 차 간다.그동안 우리는 세계의 다른 어느 민족이 같은 시간 동안 겪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를 경험했다.변화의 주체인 우리 자신들조차 광복 당시 사회상을 담은 사진 혹은 기록에서 현재 모습의 가능성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반대로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사회상을 복원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거의 무에서 출발해 오늘날 국제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올랐다.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본영향권에서 벗어나 서구영향권에 편입됐다고 할 수 있다.그 50년의 변화상을 각종 통계수치를 통해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인구◁ 통계청이 올해 7월에 발표한 남한인구는 4천4백45만명이다.남북한을 합치면 6천7백만여명.광복전해인 1944년 남한 인구가 1천5백88만명,남북한 총인구가 2천5백92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0년동안 남한은 2.8배,남·북한 합하면 2.6배가 늘어난 셈이다. ▷문맹◁ 해방 당시 문맹자는 전체 인구의 77%에 달했다.거의 2천만명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른바 「까막눈」이었다.그러나 40대 이하의 경우 정신·신체적인 장애 등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문맹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교육열의 덕분이다.이 높은 교육열이 또 거의 기적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성장을 선도했다. ▷자동차◁ 자동차의 증가율 또한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 하다.광복 당시 자동차 보유대수는 태평양 전쟁 말기 등장한 목탄차까지 포함해 1만5천대에 불과했다.그러나 11월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7백2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교통부는 집계하고 있다.최근에는 하루에 3천대씩 늘어나고 있다.광복 당시 자동차 총수는 현재 5일동안 늘어나는 자동차숫자에 지나지 않는다.▷수출◁ 한국무역협회가 예상하는 올해 수출액은 9백34억6천5백만달러,수입액은 9백93억2천8백만달러이다.집계가 시작된 1962년 수출이 2천8백만달러,수입이 2억1천4백만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출은 3천3백40배나 늘어난 것이다. 품목별 수출액을 보면 1948년에는 전체 수출액 가운데 오징어 38.4%,김 14.6%,한천 6.3%,광물 등 기타 40.7%였다.수출이라기보다는 천연자원을 캐거나 잡아서 그냥 내다판다는 표현이 옳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수출품은 전기·전자·화학·일반기계·자동차·선박 등 중화학공업 제품이 63.2%,경공업 제품이 26.4%로 1차산품은 3.9%에 불과하다.중화학공업 제품 가운데는 전기·전자가 49%,화학이 9%,자동차가 7·7%,선박이 6·4%,일반기계가 6·2%를 차지한다. ▷GNP◁ 1인당 총생산(GNP)은 올해 8천1백30달러에 이를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다.1953년 67달러에 비해 무려 1백21배 늘어났다. 경제지표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각종 사회·문화 지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도서관◁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3년 각종 도서관은 전국에 42개 뿐으로 장서 또한 86만권에 불과했다.장서는 일본 책이 82만3천권,한문으로 된 책이 3만6천권이었으며 한글로 된 우리 책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이에 비해 지난해 말 현재 우리의 도서관 수는 7천8백78개이고 장서 또한 6천9백55만4천권에 이른다. 단순계산으로 도서관 수는 광복 당시에 비해 1백85·4배가 늘어난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의 도서관 운동은 아직 초보 단계라는 지적도 있다.많은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국민소득을 올리던 시기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타◁ 또 광복 당시 우리나라에는 6개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발사하고 있었다.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청취자수는 16만4천8백10명에 지나지 않았다.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0.7%만이 라디오라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라디오는 벌써 그 역할을 TV와 비디오 등 다른 매체에 내준지 오래다. 총독부는 19043 한햇동안 2천6백59만2천명이 영화관을 찾은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또 이 해에 연극관람을 한 사람은 4백21만9천명에 이른다.국민 여섯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연극구경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비해 전국극장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을 찾은 사람은 모두 4천4백5만6천명이다.국민 한사람이 극장을 찾은 횟수가 광복 당시에는 1.07회,지난해는 1.1회로 큰 차이가 없다.그러나 이 거의 변하지 않은 수치에서 사람들은 50년동안 사회의 큰 변화를 읽어내고 있다. 이처럼 문화에 관한 한 통계치의 변화가 꼭 발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광복 이후 한세기의 전반이 경제성장률에 보람을 느꼈던 시대라면 그 후반이 될 내년 이후는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데 자부심을 갖는 시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불 국립영화센터(유럽 문화산업현장:상)

    ◎「100년 전통」 불영화 명예회복 “앞장”/연 4천4백억원 투자,우수작품 집중 지원/「국립학교」 운영… 학생 1인당 투자비 연1억/매년 30∼40명의 전문인 배출… 한국인 입학생 1명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문화의 역할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과거 냉전시대엔 무력이,그 다음엔 경제적 힘이 국가간 경쟁의 주요 무기였지만 이제 문화가 무기화 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문화전쟁의 시대 21세기를 앞두고 선진국들은 문화의 무기화 작업을 이미 시작한지 오래다.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 문화를 지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특히 문화의 무기화에 앞장선 나라들이다.두 나라의 문화산업현장과 적극적인 문화진흥정책을 현지취재로 3회에 걸쳐 싣는다. 프랑스는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과 함깨 세계영화시장을 양분해 온 영화종주국이었다.비록 지난해 미국영화 「쥬라기공원」과 프랑스영화 「제르미날」의 흥행대결에서 「제르미날」이 참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은 여전히 살아있다.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의 예술과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상예술로 제작되는데 비해 미국 영화는 대규모 상업자금을 투자한 문화상품일 뿐이다.프랑스는 흥행여부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재능있는 영화인으로 하여금 영원히 남는 예술 작품을 만들도록 한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 사무총장 장 푸레씨의 말이다.그는 프랑스 영상 및 음향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폭력적이고 음란한 영화를 제작할 의도는 없으며 과거 1백년간의 영예를 미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적인 문예영화를 제작하는데 국가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1895년 세계최초로 활동사진을 촬영한 뤼미에르 형제를 배출한 나라.그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 온 곳이 바로 국립영화센터다. CNC라는 약자로 불리는 국립영화센터는 영상산업진흥을 위해 지난 45년 문화부 직속으로 창설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CNC에서는 프랑스 영화 진흥을 위해 재정지원과 제작 배포 수출지원 등 영화 산업에 대한 모든 지원을 하고 있다.연간 4천4백억원의 예산을 영화진흥에 투자하고 있는 CNC는 지난 60년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 재직 당시부터 우수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를 지원하는 ATR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ATR제도란 매년 6백편정도의 시나리오를 심사해서 이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돈이 없는 영화사나 신인 감독에게 제작비를 융자해주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 지원을 받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CNC에서 손해를 볼 뿐 영화 작가들은 금전적 손해를 입지 않는다. 해마다 40∼50편의 작품이 이 돈으로 제작되며 지금까지 모두 1천2백25편의 영화가 이 돈을 받아 만들어졌다.따라서 해마다 프랑스 영화의 30% 이상이 실험성이 강한 신인 감독에 의해 제작된다. CNC는 우수한 영화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립영화학교도 설립,운영하고 있다.이 학교는 해마다 30∼40명의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해서 시나리오·연출·촬영·음향·장치·편집·제작등 7개 과정으로 40개월의 전문교육을 시켜 국가 자격증을 가진 전문영화인을 배출한다. 이 학교의 학생 한 사람에게 프랑스 정부가 투자하는 돈은 1년에 약 1억원.『프랑스정부는 한 사람의 전문 영화인을 양성하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만큼 투자하고 있다』고 이 학교의 교감이자 프랑스 외무부 장관 알랭 쥐페의 부인인 쥐페여사는 말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 학교는 외국인들에겐 1년에 3∼4명씩만 입학을 허용하는데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출신의 변혁씨가 최초의 한국인 학생으로 입학했다. 학생들에게는 한달에 50만원씩의 장학금이 지급된다.또한 문화부 장관 이름으로 발급되는 이 학교 학생증만 가지면 전국 4천4백여곳의 영화관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극까지 볼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 영화는 모두 1백1편이 국내에서 제작되고 70여편이 외국과 합작으로 제작되었다.영국이 28편,스페인과 독일이 30여편,이탈리아가 90여편밖에 제작하지 못한데 비해 프랑스가 1백70여편의 영화를 제작한 것은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아직도 영화산업의 선진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수준 높은 예술영화를 제작하던 독일과 이탈리아 소련 등이 영화 명맥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 나라의 우수한 영화인들이 본국에서 절망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가고 있다』고 설명한 장 푸레씨는 『프랑스가 유일하게 유럽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우수한 영화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물론 프랑스도 미국 영화의 침투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지난해 프랑스 영화관람인구 1억1천1백만명 가운데 프랑스 영화를 본 사람(4천40만명)보다 미국 영화를 본 사람(6천5백만명)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자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영상산업 진흥정책은 부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방대한 영화시장을 지닌 미국보다는 프랑스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영상산업 진흥정책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NC사무총장 장 푸레씨는 『영화는 아주 다루기 힘든 분야여서 국가가 정치적으로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며 『국가의 영화정책이 빈곤하면 한때는 영화 강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영화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듯이 다른나라도 이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프랑스전국의 4천4백여곳 영화관에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전하고 『파리나 런던 뉴욕 도쿄 서울 등에서 동시에 한 영화가 개봉되는 것보다는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 문화의 다양성을 위헤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칸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를 두편 본 일이 있다는 장 푸레씨는 CNC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한국의 영상예술을 국제화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기법을 답습하지 말고 한국 고유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성인용 「블루시걸」 인기 편승/만화영화 제작 활기

    ◎왜색 그림·폭력 탈피… 고유 캐릭터 살려/「소나기」「바우」 등 4편 가족용으로 꾸며 지난 5일 개봉된 본격 성인 만화영화「블루 시걸」이 나흘만에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적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극장용 만화영화들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제작중인 작품은 애니메이션 전문 프로덕션을 지향하는 스튜디오 소나기(대표 차종규)의 15분짜리 3부작 창작 애니메이션「소년병 바우」와 황순원씨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소나기」,이현세씨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상과학만화영화 「아마게돈」 등 4편.또 이규형 감독의 농구만화영화「헝그리 베스트5」도 제작자를 물색,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특히 연말에 개봉될 「소년병 바우」는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에 으례 등장했던 「국적불명의 영웅」이 아닌 우리 옷을 입은,순우리식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1백%「국산」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블루 시걸」의 경우 철저한 성인만화영화를 지향하고 있는만큼 어쩔수 없이 벌거벗은 폭력과 노골적인 성애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선과 면의 묘사 등 그림부문에서도 완전히 일본색을 탈피하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하지만 현재 제작중인 작품들은 한국적 정서에 보다 근접한 우리 고유의 캐릭터를 창출해내는데 승부수를 거는 「가족극장용」으로 꾸며질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소년병 바우」는 30년대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조실부모한 소년 바우가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 조국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일종의 「성장영화」형식을 띠고 있다.독립군 지도자 신돌석 장군의 활약상을 모티브로 삼았다.또 만화영화로 새롭게 탄생하는 「소나기」(연말 개봉예정)는 수채화풍의 담백한 색채와 유려한 그림이 돋보이는 서정적인 작품으로 등장인물의 옷차림 등을 70년대풍으로 바꿔 변화를 준 점이 특색.이밖에 서점용 단행본으로 재출판돼 화제를 모은 「아마게돈」도 내년 5월 개봉을 목표로 현재 밑그림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최근 「블루 시걸」의 흥행성공을 계기로 극장용 국산 만화영화제작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 만화영화시장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동안 극장용 국산만화영화는 80년대초 「로보트 태권브이」를 끝으로 맥이 끊긴 이래 10년 넘게 제작이 이뤄지지 못해온 상태다.국산 만화영화가 연간 2조8천억원에 이르는 거대한 세계만화영화시장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만화영화계가 하청기지 정도의 역할에 만족했던 그간의 안이한 자세에서 탈피,▲과감한 투자와 ▲전문애니메이터의 육성 ▲우리 고유상표의 개발 등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것이 만화영화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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