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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흔히 ‘스턴트맨’으로 불린다. 온몸을 던져 각종 위험한 연기와 묘기를 직접 실연한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역 인생’이기 때문. 그래서 목숨 걸고 열연을 해도 빛을 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영화계를 떠나간다. 하지만 여기 예외가 있다.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40)씨가 바로 주인공. 그는 한국영화가 한참 침체 속에 빠져 있을 지난해 11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븐데이즈’라는 영화를 불쑥 내놓았다.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개봉 한 달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원신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세븐데이즈 관객 200만 대박 그럴 것이 최근 네티즌들이 2007년 최고의 작품을 뽑은 결과 ‘화려한 휴가’(18.0%),‘디워’(12.2%),‘밀양’(10.2%)에 이어 ‘세븐데이즈’(8.3%)를 4위에 올려놓았다. 또 기대를 안 했으나 뜻밖에 재미있었던 영화로 ‘세븐데이즈’(5.9%)를 1위로 꼽았다. 아울러 2007년 말 시나리오작가들에 의해 ‘올해의 시나리오’에 뽑혀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평론가들은 ‘세븐데이즈’가 영화적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절묘하게 배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 스릴러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침체일로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야간 고등학교를 겨우 나온 스턴트맨 출신이 온갖 역경과 좌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 해외 유학파들조차 여전히 감독 데뷔를 못하고 있을 정도로 고학력 인재들이 많은 충무로 바닥에서 촉망받는 감독으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고졸출신이 해외파 제치고 충무로 우뚝 원 감독은 이에 대해 “그저 하고 싶었던 일이고, 단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세븐데이즈’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갈고 닦은 내공을 응집해 ‘발사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쏘아올리는 새로운 길, 즉 나이 마흔에 영화인생 제2막을 시작할 것이라고 새해 포부를 곁들인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지난 12월부터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두문불출,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스턴트맨 생활을 해서인지 얼핏 보아도 단단한 몸매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선 새해를 맞는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새로 준비하는 작품이 간단치 않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그랬더니 “새해 첫날 마니산 정상에 올라 ‘삼고’를 목놓아 외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무슨 삼고? ‘목숨 걸고’‘(시나리오)쓰고’‘(영화를)만들고’ 등 세 가지란다. 준비 중인 영화는 어떤 것이냐고 하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한국적인 정서가 충분히 녹아 있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면서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아직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며 예산도 많이 투입되고 또 한국영화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줄 것이라고만 했다. 아울러 올 여름에 크랭크인된다는 귀띔이다. ●“올여름 크랭크인… 한국영화 위상 보여줄 것” “관객들의 시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아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청각적으로 즐거움과 또 뭔가를 남겨줘야 합니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어떤 틀이나 공식에 얽매여 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코미디 영화인 경우, 처음에는 웃기다가 나중에 감동을 주는 식이지요. 이제는 좀더 자유로운 의식으로, 자유로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별로 공들이지 않은 영화들이 400만∼500만 관객이 드는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그러다보니 창의적인 텃밭과 그 밑거름이 무너져 우리 영화계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또 여기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작자들도 이런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고갈되면서 홍콩영화처럼 아류작을 양산하다보니 우리 영화가 스스로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관객들이 변하는 것처럼 감독이나 제작자들도 변해야 한국영화가 살아나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화제를 돌렸다. 왜 스턴트맨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다섯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976년 부모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집이 워낙 가난해 서울에 가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딱히 갈 곳도 없던 식구들은 서울 중랑천 인근에 ‘방공 방첩’이라고 씌여진 빈 초소 등을 떠돌며 살았다. 이런 생활 때문인지 원신연은 초등학생 때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자주받았다. 하지만 원신연은 평소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이겨냈다. 도봉중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기계체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 88서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면 포상이 푸짐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즉, 배고픔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기계체조를 하게 됐던 것. 하지만 제대로 된 코치한테서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책 보고 응용하면서 철봉과 평행봉 등을 접했다. 마루운동 연습은 아스팔트나 땅바닥이었다. 넘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나중에 도봉중학의 대표선수에 뽑히기는 했지만 시합에는 나가지 못했다. 보성고교 야간에 입학하면서 체육관에 다니던 선배들한테 쿵후와 종합무술 등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선배의 권유로 스턴트맨 역할을 하게 된다. 때마침 아르바이트 일을 구하던 참이었다. 이때부터 낮에는 영화 촬영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생활이 연속됐다. 시간이 지나자 공부하기가 싫어 결석하는 날도 많아졌다. 어쩌다가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한테 호된 야단과 함께 매맞기 일쑤였다. 한때는 아예 가출까지 해버렸다. 공부도 싫고 충무로에서 스턴트맨 생활이 그저 좋았다. 주위 설득으로 3개월만에 퇴학을 각오하고 다시 학교에 갔지만 다행히 담임 선생의 배려 덕분에 ‘없었던 일’로 됐다. 원신연의 솔직한 대답과 어려운 생활환경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고 높은 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다들 박수를 쳤지만 촬영이 끝나 뒤돌아섰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시나리오도 독학…100여편 탈고 그래서 마음 먹은 것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었다. 독학으로 시나리오 작법을 터득하면서 낮에는 촬영현장에서 몸을 굴리고 밤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러는 한편, 스턴트맨 일당으로 필름을 사고 카메라를 빌려가며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 번 돈으로 필름 사고, 돈 떨어지면 다시 뛰어내려 영화를 찍고 또 찍었던 것. 이런 열정으로 각종 단편영화·독립영화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소외계층에서 자랐다고나 할까요. 가난과 질시, 여러 고난이 생길 때마다 제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감자 몇개 들고 도봉산으로 들어가 며칠 밤낮을 견디곤 했지요.” 2003년에 각본 쓰고 감독했던 영화 ‘빵과 우유’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소외계층을 다룬 작품이다. 원 감독은 감성이 여린 편이다. 어려서부터 소외되다보니 희로애락을 잘 흡수하게 됐으며 오히려 영화를 만드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 지금까지 100여편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2008년 ‘삼고’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8년 경기도 여주 출생 ▲89년 보성고 졸업 ▲87∼98년 ‘49일의 남자’‘여고괴담’ 등 100여편의 영화에 스턴트 출연 ▲90년 ‘꼭지딴’ 단역출연 ▲91년 ‘밥풀데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조연 출연 ▲97년 ‘넘버3’ 무술지도 ▲99년 ‘카라’ 무술감독 ▲2001년 ‘적’‘세탁기’ 감독 ▲02년 ‘자장가’ 감독 ▲03년 ‘빵과 우유’ 감독 각본 ▲05년 ‘가발’ 감독 각본 ▲06년 ‘구타유발자’ 감독 각본 ▲07년 ‘세븐데이즈’ 감독 각색 # 주요 수상 제29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영화상,2004년 영화 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작품 ‘구타유발자’
  • [6일 TV 하이라이트]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탤런트 신신애가 전통과자 뻥튀기를 만들고 돌아온다. 탤런트 박용식이 양미리잡이 일꾼으로 ‘명’받고 강원도 속초로 출동한다. 또 탤런트 최주봉과 중소기업청장 이현재가 웰빙시대를 맞아 콩음식 가공공장 일꾼이 되어본다. 웰빙재료인 콩으로 여러가지 멋도 내고 맛도 내고, 찰떡궁합으로 호흡맞추는 체험현장이 유쾌하다. ●두뇌왕 아인슈타인(KBS2 오전 10시40분) CEO 변신으로 우뚝 선 윤정수. 구수한 부산 사투리의 사나이 올라이즈 밴드 우승민. 가수에 작사가,DJ까지 팔색조 변신을 자랑하는 메이비. 언제 어디서나 쩌렁쩌렁 발랄한 목소리의 박슬기.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이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출연한다. 제6대 아인슈타인의 자리는 누가 차지할 것인가? ●신비한TV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2004년 미국. 입양아였던 한 여성 영화감독이 수소문 끝에 쌍둥이 여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외모는 달라도 너무나 비슷한 습관을 가진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익명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고 편지를 읽은 두 사람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데…. 과연 그 편지 속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 걸까. ●SBS스페셜(SBS 오후 11시5분) 오늘도 터벅터벅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다. 단출한 짐을 메고 길을 나선 그들에겐 카미노(길)를 걷겠다는 마음이 전부다.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성지로 꼽히는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그들이 만나는 것은 무엇인지 엿본다. ●장학퀴즈(EBS 오후 5시) 영예의 4승을 향해 달리는 서울 배화여고, 충남 조치원 여고도 놓칠 수 없는 1승.4승과 1승을 놓고 경쟁하는 74명의 출연자들. 배화여고 14번 신경 양의 뛰어난 실력으로 조치원여고에 연달아 4연포를 날리는 배화여고. 감춰진 협공실력을 뽐내며 마침내 4승에 성공한다. 이로써 배화여고가 6번째 4승 주인공이 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이산화탄소의 대기 유입을 차단하는 탄소 격리 저장법(CCS)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땅 속에 격리하고 있는 전세계의 몇몇 공장들을 둘러보고, 탄소 격리 저장법이 지구 온난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배출하지 않고 가두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의 여부도 고민해 본다. ●주말극장 황금신부(SBS 오후 8시45분) 성일의 서재에 몰래 들어간 지영은 성일의 여권을 발견하고 성일의 미국 이름이 ‘리처드 김’임을 확인한다. 이 때 영민이 들어와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를 캐묻자 지영은 “배다른 동생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은 안 해봤냐?”며 진주의 존재를 알린다.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가족 사랑과 이웃의 정이 넘치는 경북 예천군 상리면 도촌마을을 찾아간다. 술만 마시면 부인에게 ‘땡깡’을 부린다는 남병원 어르신의 이야기부터 재주꾼 며느리 덕에 살림이 불어난다는 이복선 어르신의 이야기까지. 넉넉한 마음으로 고향땅을 지키는 도촌마을 노인들을 만난다.
  • “콜롬비아 인질석방 다큐에 담는다”

    “콜롬비아 인질석방 다큐에 담는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인질석방 과정을 지켜볼 국제감시단에 참여한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인질석방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다룰 예정이다. 영화 ‘플래툰´ ‘7월4일생´ 등을 만든 스톤 감독은 인질석방 현장에 대한 독점 촬영권을 확보했다. 스톤 감독은 30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비야비센치오에서 AP통신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FARC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싸우는 농민군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요청으로 감시단에 합류한 스톤 감독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 9명으로 구성된 국제감시단과 함께 콜롬비아 인질 3명의 석방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스톤 감독은 또 “이번 인질석방 과정은 현재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에 삽입될 것”이라며 “거기에서는 남미 현황과 차베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다른 인물들도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악명 높은 마약 밀매업자로 1993년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온 콜롬비아 좌익게릴라 인질 석방은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다.AP 등에 따르면 인질을 억류중인 FARC는 30일까지 최종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인질들이 언제 석방될지 불투명하다. 사회주의를 꿈꾸며 1966년 결성한 FARC는 미국 마약감시단원 3명 등 수백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으며,2002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클라라 로하스와 아들, 콘수엘로 곤살레스 전 하원의원 등 3명을 이번에 풀어주겠다고 밝혔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마돈나 감독 데뷔작, 베를린영화제서 첫 상영

    팝스타 마돈나(49)의 영화감독 데뷔작 ‘타락과 지혜(Filth And Wisdom)’가 내년 2월7∼17일 독일에서 열리는 제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된다.‘타락과 지혜’는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로, 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파노라마 섹션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영화에는 유진 허츠와 스티븐 그레이엄, 리처드 E 그랜트가 출연했다.
  • 2007년 사라진 ‘별’

    올해도 친숙하던 많은 동시대인들이 생을 접고 저 세상으로 갔다. 세밑을 맞아 우리들 곁을 떠난 ‘진별’들의 생을 반추해 본다.●정·관계 5공 시절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원경(85·8월4일)씨가 별세했다. 제1회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고인은 외무부 의전국장·차관 등을 거쳐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12·13대 국회의원이었던 지연태(79·12월21일)씨도 유명을 달리했다. 황정일(52·7월29일) 주중 정무공사는 베이징에서 식중독 치료를 받다 숨져 의료사고 여부를 놓고 외교마찰이 일기도 했다. 해병대 초대 사령관을 지낸 신현준(92·10월15일) 예비역 중장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통영 대꼬챙이’로 불린 이일규(87·12월2일) 전 대법원장은 1975년 대법원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때 유일하게 반대했다. 민복기(94·7월13일) 전 대법원장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10년간 재임한 최장수 대법원장이었다. 이종원(83·8월27일) 전 법무장관과 이범준(79·11월30일) 전 교통장관도 해를 넘기지 못했다.●사회·학계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59·6월27일) 민족미래연구소 소장이 지병인 폐기종으로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잠들었다. 독도 의용수비대 김경호(79·6월16일) 선생도 별세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추적해온 권중희(71·11월16일)씨도 세상을 떠났다. 평생 고아들의 무료 진료와 사회사업을 위해 헌신한 김종원(93·3월26일) 선린병원 설립자도 타계했다. 군 복무 중이던 장병들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서 근무 중이던 윤장호(27·2월27일) 하사는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해병대 박영철(20·11월6일) 상병은 총기탈취사고의 희생자였다. 국제법 권위자로 프랑스 문화재 반환과 독도 영유권 분쟁 해결에 앞장서 온 백충현(68·4월11일)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1990년 국내 최초의 의학대사전을 발간한 이우주(89·4월25일) 전 연세대 총장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약리학자였다.KAIST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국내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이주천(77·9월27일) 교수도 생을 달리했다. 1993년 3월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1호 이인모(89·6월16일)씨도 북한에서 사망했다. 기독교계의 대표적 진보인사로 도시 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종교운동에 힘썼던 김동완(65·9월12일) 목사도 소천했다.●문화·체육계 연예가는 벽두부터 잇따른 자살로 패닉에 빠졌다.1월 탤런트 겸 가수인 유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0여일 만에 영화배우 정다빈의 자살 사건이 겹쳤다. 개그우먼 김형은은 교통사고로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큰손’ 장영자씨의 사위였던 인기 탤런트 김주승과 원로 연기자 최길호는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당뇨합병증과 싸워 오던 중견 탤런트 홍성민의 사망소식도 팬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문단에선 2월에 ‘분명한 사건’‘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등을 남긴 오규원 시인,5월엔 ‘국민 수필가’ 피천득과 ‘강아지똥’의 아동문학가 권정생,11월엔 ‘수난이대’의 소설가 하근찬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화가·무용평론가로 이름을 날린 팔방미인 예술인 김영태, 원로출판인 홍석우 탐구당 대표, 한국 서예계의 거목 여초 김응현도 치열하게 생을 살다간 문화인으로 남았다. 원로 가수들의 부음도 전해졌다.2월 ‘키다리 미스터 김’의 주인공 이금희에 이어 5월엔 ‘이별의 인천항’ 등을 히트시킨 원로가수 박경원이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도 우리 곁을 떠났다. 대표적인 창작국악 작곡가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인 이강덕을 비롯해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조선시대 마지막 무동’ 김천흥,‘대동굿’ 명예보유자 최음전,‘영해별신굿놀이’ 보유자 김미향,‘북청사자놀음’ 보유자인 여재성 등이 역사 속 인물이 됐다. 원로무용가 송범, 한국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던 원로성악가 바리톤 윤치호, 가요 ‘잊혀진 계절’ 등을 쓴 작사가 박건호, 정명조 천주교 부산교구장 등도 역사의 뒤안으로 돌아섰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투수였던 박동희(39)씨가 3월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국 체육계의 큰 별인 조상호(81) 전 체육부 장관은 8월25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최은택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2월 66세로 유명을 달리했으며 국내 최초로 프로복싱 동양챔피언에 올랐던 강세철(81·5월)씨, 김성은(64·8월)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도 세상을 떴다.●경제계 ‘마지막 개성상인’이자 40여년 화학산업의 외길을 걸은 송암 이회림(90·7월)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이 세상을 떴다. 박경복(85·7월)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93년 OB맥주의 아성을 무너뜨려 ‘하이트 신화’를 세웠다. 경제기획원 전신인 부흥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신현확(87·4월) 전 총리도 올해 진 큰 별이다.5·6 공화국 시절 ‘금융계의 황제’ 이원조(74·3월) 전 은행감독원장도 유명을 달리했다. 강권석(57) 기업은행장은 편도종양 치료를 받다 12월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86)씨도 8월 남편 곁으로 갔다.●해외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지난 9월 미얀마 양곤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다 진압군 병사의 총격을 받고 50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디오카메라를 놓지 않아 감동을 주었다.`컵라면´ 등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든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안도 모모후쿠(96) 회장이 1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미국의 자선 사업가 브룩 애스터는 지난 8월 폐렴으로 105세로 생을 마감했다. 초대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보리스 옐친은 4월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9월 세계적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타계, 팬들의 애도가 지구촌 곳곳으로 이어졌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러시아가 배출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티콘 흐레니코프 등의 거장들도 떠났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자 `길’`닥터 지바고´ 등의 대작을 남긴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 네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차지했던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왕과 나´‘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할리우드 명배우 데보라 카도 `진 별’이 됐다.각부종합
  • [부고]

    ●이정일(뉴월드관광 고문)정덕(삼림농원 대표)정철(미국거주)씨 모친상 박경자(의정부 가능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이재연(서울신문 국제부 기자)씨 조모상 17일 청구 성심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57-4015●윤광렬(동화약품 회장)씨 상배 도준(동화약품 부회장)길준(동화약품 사장)씨 모친상 이우용(전 동화약품 부회장)씨 빙모상 이철하(영화감독)씨 외조모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02)3010-2631●윤영규(에이스저축은행장)씨 모친상 17일 인천 길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32)472-0872●최영철(한국동물병원 원장)영호(온누리 대표)씨 부친상 배경훈(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국장)씨 빙부상 17일 경북 김천 월명 성모의 집, 발인 19일 오전 011-9990-0623●이정환(보험개발원 선임)장훈(J.W.Tea 대표)씨 부친상 이경화(에셋비 과장)이은정(ARMANI Exchange 실장)씨 시부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3010-2263●표순민(공정거래위원회 서비스카르텔팀 사무관)씨 부친상 16일 안동 성소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54)850-8401●최승우(신우개발 사장)승덕(사업)승규(〃)씨 부친상 이경추(송탄상공회의소 회장)씨 빙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5●장기영(현대증권 화정지점 대리)기준(학생)씨 부친상 16일 충주의료원, 발인 18일 오전 9시20분 (043)841-0383●김종옥(전 춘천MBC 보도부장)씨 별세 17일 강원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33)258-2268●이은구(한남대 기획처장)씨 부친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3410-6912●이원달(청주저축은행 명예회장)씨 별세 현식(강릉대 무역학과 교수)씨 부친상 유순열(청주저축은행장)씨 시부상 신근식(전 삼보법회 이사장)이상웅(미국 거주)최용주(클라비스 청주점 대표)박기정(전 세종증권 인사팀장)씨 빙부상 17일 충북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30분 (043)269-7211●이동호(호텔롯데 경영지원부문 상무)철호(동작구청 주민생활팀장)동식(전 롯데마트 서현점장)씨 부친상 신광섭(신정보시스템 대표)임은우(현대백화점 차장)씨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02)3010-2295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시네마인생 53년 이길웅 영사기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시네마인생 53년 이길웅 영사기사

    “무슨 일을 하건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렴!”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명대사다. 수염 덥수룩한 알프레도가 도시로 떠나는 젊은 토토에게 애틋하게 건네는 말이다. 이 영화를 가슴 뭉클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추억의 필름을 잠시 맛보기로 돌려보자.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 여기에는 ‘시네마 파라디소’라는 낡은 영화관이 있다. 소년 토토와 영사기사 알프레도. 토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성당으로 달려가 신부님의 일을 돕는다.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마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모두 신부가 검열을 했으며 웬만한 키스신은 모두 삭제가 된다. ●‘드림시네마´서 마지막 상영작업中 영사기를 천직으로 여기는 알프레도는 토토가 영사기술을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부활절도, 크리스마스도, 휴일도 없이 영사실에 갇혀지내는 영사기사 생활의 고독과 허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다른 영화관과 동시 상영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필름을 운반하는 장면이다. 특히 나중에 ‘시네마 천국’ 극장도 철거되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중년의 토토가 홀로 초현대식 극장에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감상하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가를 흠뻑 적시게 한다. 이 영화는 1989년 칸영화제 등 대부분의 국제영화제를 휩쓸며 전세계 영화팬들을 감동시켰다. 이쯤해서 한국판 ‘시네마 천국’을 한번 떠올려보면 어떨까. 이길웅(68)씨. 영사기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와 알프레도와 닮았다. 또 토토와 비슷하게 어린 나이에 영사기술을 익혔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뛰쳐나올 법도 한데 오로지 집과 영사실만 오고간 흔치 않은 인생이다.14세 때 영사실에 처음 들어간 이후, 어느덧 53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홀로 영사실에 앉아 ‘촤르르∼’ 관객들의 눈과 귀를 감동시킨다. ●14살부터 목포극장에서 영사일 시작 이씨는 현재 서울시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인 ‘드림시네마’(옛 화양극장·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서 영사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스크린 하나만을 고집해왔던 ‘드림 시네마’는 이 지역 재개발로 인해 내년이면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그래서 ‘드림 시네마’측에서는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아름답게 남기기 위해 모든 것을 20년 전으로 돌려놨다. 선정된 영화는 ‘더티 댄싱’이다. 사라졌던 대형 붓간판을 다시 내걸었으며 티켓도 20년 전의 모습으로 바꿨다. 또한 오드리 햅번 등 유명한 배우들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까지 마련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중장년층과 20대 젊은층들이 찾아와 단관극장에서 추억의 명화를 감상하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이씨가 바로 이들을 위한 마지막 필름을 돌리고 있는 것.‘드림 시네마’가 문을 닫게 되면 마지막 상영작 ‘더티 댄싱’과 함께 자신의 ‘시네마 인생’도 어쩌면 마감해야 할 처지. 또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일간 심야시간대에 추억의 명화 ‘벤허’를 돌릴 예정이다. 이래저래 회한과 아쉬움이 가득한 이씨를 ‘드림 시네마’ 영사실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뭐 한 일도 없는데 쑥스럽게 인터뷰를 하느냐.”며 손사래다. 그러면서 화면과 영사기를 번갈아 응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1940년 출생이니 다시 해가 바뀌면 칠순이 코 앞이다. 하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영화는 자주 봤지만 영사실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라며 관심을 가졌더니 그는 “필름 갈아끼우느라 진땀을 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하고 입을 연다. 요새는 1만 2000커트 정도가 연결된 필름을 한번 끼우면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계속 돌아간다며 격세지감을 피력했다. 옛날에는 영화 한 편을 상영하면서 필름을 여러번 갈아 끼워야 했고, 또 영사기에 필름이 걸리거나 불이 붙기도 했다는 것. 또 영화관에 정전도 자주 났지만 그때의 관객들은 조용히 다시 상영되기를 기다렸다고 술회했다. 지금은 성인의 키만한 영사기 두 대가 과열방지를 위해 시간대별로 번갈아 사용되니 불이 붙을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필름의 질도 좋아져 상영 도중 끊기는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어찌하여 영사기사가 됐을까.“그냥 영화가 좋아서 그랬고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고 웃는다.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조건 목포극장으로 찾아가 영사기사가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엄격한 사수 밑에서 바닥 닦고 걸레질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영사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어깨 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침 일찍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일을 거른 적이 거의 없었다. 사춘기도 잊고 그렇게 10대를 보냈던 것. 당시 목포극장에서는 진도 등 크고 작은 섬지역에 임시 가설극장을 마련하기도 했는데 이때 출장을 가기도 했다. 초창기 때 어떤 영화를 주로 상영했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목포극장은 하루에 다섯번 상영하고 가끔씩 막간을 이용해 국악공연도 펼쳤다.”고 회고하면서 ‘판도라’ ‘카르멘’ 같은 영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울러 영화 상영 전에 인근 식당이며 예식장 등의 광고가 아주 많았다고 했다. ●“자정무렵 들어가서 가족얼굴 못본 게 미안” 그는 1963년 맹호부대 정훈병으로 입대했다. 그의 영사기술은 여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맹호부대 이 하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16㎜ 빅터영사기를 들고 여기저기 전후방 부대를 돌아다녔다. 극적인 장면에서 필름을 갈아끼울 때면 장병들로부터 어김없이 ‘빨리 돌려라.’는 원성을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괜히 어깨가 우쭐거려지곤 했다. “당시 영사기는 미 대사관에서 빌려준 것이었지요. 육군본부에서 필름을 수령한 뒤 며칠동안 전방 등지에서 상영을 하고 나서 다시 반납하곤 했지요. 덕분에 서울로 외출외박을 자주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군대생활이 가장 재미 있었던 것 같아요.” 군 제대 후에도 계속 목포극장에서 필름을 돌렸다.‘벤허’ ‘로마의 휴일’ ‘노틀담의 꼽추’ ‘외인부대’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화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기를 30년. 어느새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이 무렵 서울 서대문 네거리에 ‘화양극장’이 개관됐고 평소 알고 지내던 영화인의 권유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는 ‘영웅본색’ 등 주로 홍콩영화를 단골로 상영했다. 신형 영사기를 처음 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또 화양극장으로 옮길 무렵에는 떠나는 영사기사들이 많아 늘 혼자서 하루종일 필름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쉴 틈이 더욱 없어졌다. 집안 친척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정무렵에 퇴근하다보니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영사기사의 보수는 얼마나 될까. 이에 “1960∼1970년대 극장 앞에서 줄을 쭉 서고 볼 적에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멀티플렉스 다관 극장이 생겨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숨 섞인 표정을 짓는다. 다른 사람처럼 직업을 왜 바꾸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속 없어서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 그게 다 천직이 아니냐고 했다. 시네마 인생 53년을 뒤돌아보면서 “자식들이 다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줘 가장 기쁘다.”며 나름대로 보람을 찾는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으며 경찰, 스튜어디스, 애니메이션 감독 등으로 일하고 있다. 막내는 서울대를 나와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변변한 재산도 없이 오로지 영사기사 월급으로 자식공부를 시켰다. 경기도 원당 자택에서 부인과 단둘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연문인상’ 수상자 3명 선정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창회(회장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는 21일 제7회 연문인상(延文人賞) 수상자로 송방용 전 헌정회 회장,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 영화감독 봉준호 씨 등 3명을 선정했다. 이 상은 연세대 문과대 출신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졸업생에게 매년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5일 오후 6시 연세대 동문회관 중연회장에서 열린다.
  • 이명세 감독이 들려주는 ‘첫사랑’

    영화를 통해 꿈을 꾸는 감독 이명세. 늘 카메라와 배우 뒤에 서서 영상으로만 말해온 그가 직접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22일 밤 12시45분에 방송되는 KBS 2TV ‘낭독의 발견’에서다. 그는 이 낭독 무대에서 첫사랑에 관한 시를 읊고 그 설레는 울림을 전한다. 이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88년. 데뷔작 ‘개그맨’을 선보인 후 ‘첫사랑’‘나의 사랑 나의 신부’‘인정사정 볼 것 없다’‘형사’ 등 끊임없이 영상미 넘치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며 세상과 소통해 왔다. 최근작 ‘M’에서는 시간 저편에 묻어두었던 아련한 첫사랑을 꺼내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손길로 빚은 영상들이 쏟아지는 스튜디오에서 채호기 시인의 ‘사랑은’을 들려준다. 시와 시에 얽힌 사연을 통해 그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왜 하필 ‘첫사랑’이냐는 질문에 “첫사랑이란 시간의 비밀을 여는 키”라고 말하는 이 감독. 그는 자신의 1993년 작품 ‘첫사랑’이 자신의 첫사랑과 가깝다는 사실도 고백한다. 죽으면 제일 먼저 별이 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말하는 이명세 감독은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 후기를 두번째로 낭독한다.‘M’에도 이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실었다고 귀띔한다. 그리고 “시인은 24시간 동안 시만 생각해야 한다.”라는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하며 “나도 24시간 영화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그의 목소리에는 지난 30년 동안 영화인의 길을 걸으면서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는 신념과 창작의 열정이 함께 담겨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치열한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영화미학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는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미국 3부작을 기획한 의도는, Pax Americana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정치 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계기는 911 테러였다.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의 오만함도 커지고 적대적인 시선도 늘어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해부해 보고 싶어했다.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미국 3부작이 기획된 셈이다. 그 첫번째 시도가 <도그빌>이다.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망치듯 들어와 겪는 폭력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화 언어와 날카로운 실험정신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어냈다. 연극적 무대 양식과 영화적 실험기법이 충돌하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이 작품은, 이른바 구동독작가인 브레히트류의 서사극에서 영향을 받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감정이입에 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동화효과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과 인물에 의문점을 갖고 관객들로 하여금 비판적 이성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이화효과를 창안한 브레히트의 극작술과 연출방법은 현대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었다. 가까스로 도그빌을 벗어난 그레이스가 도착한 곳이 미국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만덜레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미국 정치의 심장부를 소재로 한 <워싱턴>이다. 개들의 마을을 뜻하는 도그빌이나, 흑인 노예 농장을 소재로 한 만덜레이 등의 제목이나 소재에서도 드러나듯이,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잔혹한 폭력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 마치 연극 작품처럼 무대 위의 셋트에서 촬영된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사실주의 양식의 무대가 아니라, 표현주의 스타일의 상징적이며 압축적 이미지를 담은 무대다. 따라서 한 마을이나 농장은 무대 위에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벽이나 울타리 등은 의미적으로는 설정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를 마임으로 연기하면, 음향으로 가상의 벽이나 문이 존재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는 바닥에 글자로 쓰여 있다. 카메라는 가끔 버즈 아이샷으로 공중 높이 올라가면서 마치 건축 설계도의 평면도처럼 관객들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도그빌을 떠나 남부 알래바마주의 한 오지 마을 만덜레이에 도착한 그레이스(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와 갱단 두목인 그녀의 아버지(윌리엄 데포우 분)는 폐지된지 70년이 넘은 노예제도가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농장주인 백인 마님은, 농장의 흑인 노예들에 관한 모든 비밀이 적힌 자신의 침대 밑 노트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에게 하고 숨진다. 그레이스는 흑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농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갱단의 부하 몇 명에게 그레이스를 경호하도록 하고 떠난다. 흑인 노예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당황해 한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모르고 무질서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죽은 백인 마님 대신 농장에 질서가 집힐 때까지 그레이스에게 마님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그레이스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진 비밀노트를 본다. 그 속에는 모든 흑인 노예들이 7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자존심 강한 1등급부터, 아첨 잘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며 생존해 나가는 카멜레온같은 7등급까지 상세하게 분류된 그 노트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레이스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목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노력한다.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노예제도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날의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강제적으로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성장 불가능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그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문제와 노예제도가 일차적 소재라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자유에 대한 것이다. 억압이 사라졌다고 저절로 자유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인가?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박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강요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선택한 속박에 길들여진 그들 곁에서 그레이스는 혼란을 느낀다. 또 그녀는 흑인 노예들의 벌거벗은 강인한 몸을 보면서 욕망을 느낀다. 흑백의 섹스는 미국 영화에서 오랫동안 금기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섹스는 문제될 것이 없다. 백인이 우월자이고 지배자였으니까. 그러나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섹스는 미국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만약 그 부분이 내러티브 전개상 꼭 필요하다고 해도, 침대로 갔다가 다음 날 해가 뜨는 식으로 간단하게 묘사하는 게 전부였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흑인 인텔리로 등장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 나잇 스탠드>는 그런 점에서 충격을 준 영화다. <만덜레이>에도 그레이스와 흑인 노예 티모시(이삭 드 번콜 분)의 사실적인 섹스씬이 등장한다. 흑인 남자들의 벗은 몸을 보고 자위를 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이어, 후반부에는 음부까지 드러낸 그레이스와 검은 성기까지 노출한 티모시의 격렬한 섹스씬이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흑백의 터부를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깨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다. 자유와 속박의 문제다. 농장 노예들을 분석한 비밀노트도 사실은 농장 집사인 흑인 윌햄(대니 글로버 분)이 작성한 것이었고, 흑인들이 농장을 떠나지 않는 것도 속박에 의해사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의도적으로 노예제도의 틀을 유지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만덜레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또 자존심 강한 1등급 먼시족 남자로 생각하고 이끌렸던 티모시는 사실은 기회주의적인 7등급 만시족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더구나 티모시는 목화로 수확한 마을의 공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린다. 분노한 그레이스가 티모시를 결박해 놓고 채찍으로 후려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회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농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레이스를 마님 대용으로 이용한 흑인들의 대부 윌햄도 그렇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른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속박의 경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대담한 방식으로 접근한 라스폰 트리에의 용기와 실험정신은 <만덜레이>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영화 양식의 무대적 차용이라는 독특한 외형적 방식뿐만 아니라, 내적인 주제적 측면에서도 저울추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위장된 휴머니즘을 신랄하게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예리한 연출력이 <만덜레이>를 보는 동안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니콜 키드만에 이어 그레이스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빌리지>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신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론 하워드 감독으로서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을 만든 명장이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버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노력으로 주목받는 연기자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유로파>로 데뷔한 후, 병원을 소재로 한 장편 시리즈 <킹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가수 비욕이 참여했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 등을 만들었던 문제 감독이다. 그는 인위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자연광 등으로 순수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고, 이에 동조하는 젊은 영화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들고 찍기를 자주 사용하고 카메라와 편집 테크닉에도 능란한 그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항상 문제 영화를 만들어왔다. <만덜레이>는, 미학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적 방법론을 영화언어에 접목함으로써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는 힘을 높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관객들의 비판정신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입양아 출신 한인미녀, 할리우드 ‘샛별’ 됐다

    입양아 출신 한인미녀, 할리우드 ‘샛별’ 됐다

    생후 7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 여배우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입양서류에 적힌 1975년 10월29일이 진짜 생일이라고 믿었던 조이 오스만스키는 현재 ABC의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와 새 시트콤 ‘사만사 누구?(Samantha Who?)’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방영된 ‘그레이 아나토미’는 매주 2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인기 수요 드라마이고 ‘사만사 누구? ‘는 이제 겨우 4회가 방영된 새내기 시트콤이지만 월요일 밤마다 1천400만 명의 미국인들이 보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다. 오스만스키는 ‘그레이 아나토미’에서는 주인공인 레지던트 메레디스 그레이의 지휘를 받는 새 인턴 루시로 그리고 ‘사만사 누구?’에서는 주인공 사만사의 비서 트레이시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프라임타임을 장식한다. 생후 2개월 때 서울의 한 파출소 앞에 버려진 뒤 5개월 동안 위탁보호됐던 오스만스키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워싱턴주의 알과 케이 오스만스키 부부에게 입양됐다. 베벌리 힐스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오스만스키는 석사학위를 지닌 늦깎이 배우치고는 나이에 비해 매우 어려 보였다. 한국 언론과 처음 인터뷰를 한다며 흥분해하는 오스만스키는 2003년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지난해 폭스TV의 시트콤 ‘루프(The Loop)’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뒤 2년 만에 인기 프로그램 두 편에 동시 캐스팅되는 행운을 안았다. 오스만스키는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한인배우 샌드라 오를 만나고 같은 한국계여서 무척 반가웠고 그녀가 매우 친절했다고 밝혔다. 같은 입양아 출신으로 올해 초 생부를 만난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토비 도슨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말한 오스만스키는 한번도 한국에 간 적이 없지만 간다면 생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큰 기대감 없이 단지 늘 일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순진한 목표를 가지고 할리우드에 온 그녀는 세인트루이스의 프린시피아 대학에서 창작과 스튜디오 아트를 전공하고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SD)에서 예술석사 학위(MFA)를 받은 인텔리 배우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연극, TV 프로그램, 독립영화, 광고 등에 출연한 오스만스키는 첫 번째 출연한 시트콤 ‘루프’에서 공연한 ‘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의 필립 베이커 홀과 톰 크루즈의 첫번째 부인인 ‘오스틴 파워’의 미미 로저스 같은 베테랑 배우들에게 많이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뉴욕포스트지는 “신인인 오스만스키가 이 시트콤에서 유일하게 빛난다”(the show’s only bright spot)고 호평한 바 있다. 한국 배우 김윤진이 ABC와 전속계약을 맺은 것처럼 폭스TV와 전속계약을 맺었던 오스만스키는 유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서바이버’의 제작자 마크 버넷이 공동제작한 폭스TV의 영화감독 선발 리얼리티쇼 ‘온 더 랏(On the Lot)’에서 감독 지망생들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을 만났던 경험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한국에서 입양된 4살 아래 여동생 홀리와 함께 동양인이 거의 없는 워싱턴주 올림피아에서 자란 그녀는 자라면서 양부모 가족에 동화하기 위해 애썼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천천히 배우면서 한국문화를 열심히 익히고 있다. TV에 한인 배우가 나오면 반가워 누구인지 꼭 알려고 애쓴다고 밝힌 오스만스키는 NBC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히어로즈’에 출연하는 제임스 가이손 리와 절친한 사이다. 오스만스키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현재 자신의 성공에 감사하고 너무 큰 스타가 될 생각은 없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언론 “‘색, 계’ 탕웨이는 포스트 장쯔이”

    中언론 “‘색, 계’ 탕웨이는 포스트 장쯔이”

    영화 ‘색, 계’의 탕웨이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장쯔이(章子怡·27)의 뒤를 잇는 ‘포스트 장쯔이’로 떠오르며 중국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 같은 북경중앙연극학원을 졸업하고 장이모(張藝謀)와 리안이라는 유명 감독을 만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점이 똑같다. 최근 유명 포털사이트 ‘163.com’은 장쯔이와 탕웨이의 데뷔 초기와 영화배우로서의 성장과정을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1. 데뷔 장쯔이: 16세때 처음 영화에 출연해 연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당시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데뷔하자 마자 큰 관심을 받았다. 탕웨이: 16세 때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으며 순수한 외모와 중성적인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다. 2. 학생 시절 장쯔이: 1996년 북경중앙연극학원에 입학, 활발한 성격과 뛰어난 연기실력으로 주변의 관심을 독차지 했다. 탕웨이: 2000년 같은 학원에서 영화감독론을 전공한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가르쳤던 한 교수는 “연약한 외모에 강한 개성이 숨겨져있다.”고 평가했다. 3. 작품 장쯔이: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이 200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탕웨이: 리안감독의 ‘색, 계’가 200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격렬한 정사신과 뛰어난 내면연기로 큰 호평을 받았다. 4. 평가 장쯔이: 중국내에서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서양인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시아 여인’이라는 호평을 듣는 명실공히 최고의 아시아 여배우가 되었다. 탕웨이: ‘색, 계’ 한편으로 2007년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로서 장쯔이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환영받는 중국 여성이 되었다. 사진=163.com(사진 왼쪽은 탕웨이, 오른쪽은 장쯔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토요 영화] 헤드윅

    [토요 영화] 헤드윅

    ●헤드윅(OCN 오전 11시)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고 그때까지 단 한편의 ‘록뮤지컬 영화’만 보도록 해주겠다면 당신은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머릿속에 언뜻 ‘헤드윅’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당신은 아직까지 이 영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일 테다. 농삼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2000)’은 내용은 물론이고 작품성과 완성도면에서도 탁월한, 그야말로 ‘물건’이다. 존 카메론 미첼은 록뮤지컬 ‘헤드윅’이 오프브로드웨이와 세계 순회공연에서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자, 직접 감독 겸 주연으로 나서 영화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는 곧 ‘21세기형 로키 호러 픽처쇼’라는 찬사를 받으며 갖가지 영화제의 주요상을 휩쓸기 시작했다.‘선댄스 영화제’의 관객상과 감독상도 그중 하나.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수상 이력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영화 자체의 미덕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한 것. 내용은 원작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 동 베를린 출신의 한 남성이 미국 록스타로 발돋움하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다. 평범했던 독일 소년이 미군 병사의 결혼 제의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하는 과정, 하지만 이 수술이 실패해 영문제목 ‘the angry inch(성난 1인치)’가 암시하는 것처럼 성기부분에 1인치의 살덩어리만 남게 된 아픔 등이 생생히 그려진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사랑의 배신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록스타로 우뚝 서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와 함께 뮤지컬에서도 그랬듯이 중간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이며, 영화 전반에 깔린 록뮤지컬 감성의 사운드트랙 등은 비극의 승화와 감정의 조율을 제대로 이뤄내며 영화의 작품성을 드높인다. 국내에서 ‘헤드윅’은 뮤지컬이 지난 2005년 4월부터 시작해 600회가 넘는 공연 동안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누렸다. 주인공 ‘헤드윅’을 맡은 조승우, 오만석 등은 ‘조드윅’‘오드윅’이란 별칭을 얻으며 일약 뮤지컬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이자 영화감독 겸 주연배우 존 카메론 미첼이 직접 방한해 헤드윅 콘서트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헤드윅’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러닝타임 90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대학로 4년만에 연극열전 ‘후끈’

    대학로 4년만에 연극열전 ‘후끈’

    뮤지컬에 눌렸던 연극의 기를 살린다. 새달 7일부터 2009년 1월4일까지 펼쳐지는 ‘연극열전’이 관객을 몰러 나간다.2004년 17만명의 관객을 모은 ‘연극열전’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가장 인기 있었던 연극을 모은 ‘베스트컬렉션’이었다면 2008년의 연극열전은 신작과 흥행작 12편을 고루 섞었다.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에서 마련한 연극열전은 연극의 대중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관객에 친숙하고 인지도 있는 연출과 배우들을 끌어 모은 이유다. 조재현이 프로그래머로 나섰고 연극에 뿌리를 댄 영화감독 장진과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도 작품을 선보인다. 박근형, 이해제, 김광보, 황재헌 등 대학로 스타 연출가들이 1년간 차례로 무대를 점령한다. 출연 배우 명단도 화려하다. 황정민, 유지태, 이순재, 한채영, 고수 등 연극 배우뿐 아니라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던 배우들도 연극 여정에 동참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길섶에서] 色 그리고 空/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조각가 박헌열은 난해하다. 그로테스크하다.‘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화두로 가진 최근 조각전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의식의 관념을 뒤틀어 표현했다. 작가는 육신을 가둔 미망의 영혼을 그려내려 애썼다. 욕정이나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고뇌하는 육신의 형상으로 표현했다.2,3명의 나신이 붙어있고, 머리도 여럿이다. 구상속의 비구상이다. 매끈한 브론즈가 불편함을 더한다. 섹스는 증오와 사랑, 분노의 표출이라고 했다. 얼마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색, 계(色,戒)’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타이완출신의 미국 영화감독 이안의 얘기다.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극도로 억눌린 감정은 마지막에 육체로 표출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엔 증폭된 심연의 갈등과 고뇌가 뒤엉켜 있다. 어느 탤런트 부부의 간통 공방이 화제였다. 부인은 11년 결혼 생활에 섹스는 10여차례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정상의 남성이라고 반박한다. 민망하다. 고뇌하는 영혼을 그린 박헌열 조각을 이들에게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아이비 협박 옛 애인 구속

    서울 강남경찰서는 2일 여자친구였던 인기 여가수 아이비(25ㆍ본명 박은혜)에게 함께 찍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 유모(31·무직)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유씨는 지난달 3일부터 27일까지 아이비에게 200여 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관계를 폭로하겠다. 동영상을 갖고 유포하기 전에 돈을 내놔라.”라고 협박해 4500만원을 받아 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는 또 아이비와의 관계를 토대로 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겠다며 연예계와 언론계 인사들을 접촉해 아이비의 명예도 훼손했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2년 전부터 사귀어 왔는데 최근 헤어지자는 요구를 해왔다”면서 “결코 때리거나 돈을 받지는 않았으며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이비의 소속사인 팬텀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유씨는 아이비의 가족에게까지 ‘(동영상을 유포시켜) 연예인 인생을 끝내게 해주겠다.’고 위협했다.”면서 “하지만 유씨의 주장과 달리 아이비는 유씨와 합의 하에 동영상을 찍은 적이 없으며 유씨가 동영상을 저장했다고 주장하는 노트북에서도 동영상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방송과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하며 뛰어난 외모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얻었다.2004년 한 지상파 구직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디자이너로 일해 오다 “영화감독 일을 하고 싶다.”며 지난달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색,계’ 적나라한 정사씬 무삭제 개봉

    탕웨이, “이안 감독님은 가장 훌륭한 배우” 29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는 제 64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영화 ‘색, 계’의 이안 감독과 여주인공 탕웨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영화 ‘와호장룡’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이안 감독은 “미국에서 강렬한 정사씬 때문에 영화관 상영에 제한을 받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베니스영화제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굉장히 기뻤다.”며 “모두 영화감독으로 구성된 베니스의 심사위원 7명에게 인정받아 이번 수상의 기쁨이 더욱 컸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중국의 신예 배우 탕웨이는 “촬영 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표현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며 “이안 감독님은 직접 재연하면서 연기지도까지 해주시는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중국에서 제한 상영 되었던 영화 ‘색, 계’는 무삭제판으로 국내에서 11월 8일 개봉할 예정이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은?

    할리우드의 최고 ‘실세’는 누구?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SF영화 ‘I Am Legend’의 주연 윌 스미스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로 선정됐다. 윌 스미스는 미국 영화잡지 프리미어(PREMIERE)가 발표한 할리우드 인물들의 영향력 순위 ‘2007 파워리스트 50’에서 9위에 올라 배우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배우 겸 가수이자 제작자인 윌 스미스가 지난해 참여한 영화들의 세계 수익 총액은 44억달러(약4조원). 그의 이름만으로 흥행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 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6위에 오르며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최근 2년간 연출한 작품이 없음에도 상위권 순위를 차지해 여전히 ‘할리우드의 실력가’임을 증명했다. 또 할리우드 대표연인 ‘브란젤리나’ 커플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안젤리나 졸리는 32위에 뽑히며 여자배우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브래드 피트는 윌 스미스, 조니 뎁(14위)에 이어 남자 배우 중 세 번째로 선정됐다. 이 외에도 ‘디스터비아’에서의 호연을 보인 샤이아 라보프(50위)가 어린 나이(1986년생)로 순위 안에 들어 눈길을 끌었다. 한편 2007년 할리우드의 최고 실력가로는 ‘폭스 필름드 엔터테인먼트’(Fox Filmed Entertainment)의 공동회장 짐 지아노풀로스 회장과 톰 로스먼이 뽑혔다. 아래는 프리미어 ‘2007 파워리스트 50’ 중 1위~10위 1 JIM GIANOPULOS AND TOM ROTHMAN (폭스 필름드 엔터테인먼트 회장) 2 RICHARD COOK AND JOHN LASSETER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 3 MICHAEL LYNTON AND AMY PASCAL (소니 픽쳐스 회장, CEO) 4 BARRY MEYER AND ALAN HORN (워너 브라더스 CEO, COO) 5 RON MEYER, MARC SHMUGER, AND DAVID LINDE (유니버설 COO, 회장) 6 STEVEN SPIELBERG (영화감독, 제작자) 7 DAVID GEFFEN (드림웍스SKG 회장) 8 PHILIPPE DAUMAN AND BRAD GREY (비아컴 CEO, 파라마운트 CEO) 9 WILL SMITH (배우) 10 JERRY BRUCKHEIMER (영화제작자) 사진=프리미어 인터넷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힐러리 대규모 환갑 모금행사

    미국 민주당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이 26일(이하 현지시간) 60세 생일을 맞아 대규모 모금행사를 연다. 힐러리는 이날 밤 3000석 규모의 뉴욕 비컨극장에서 열리는 생일잔치에 유명 스타들을 대거 초청, 선거자금을 모금할 계획이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최하고, 유명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이 사회를 맡는 이 행사의 입장권 가격은 좌석별로 100달러에서 2300달러. 힐러리 캠프 관계자들은 이날 행사에서 최소 100만달러(약 9억 1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모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힐러리 의원은 지난 21일 영화감독 롭 라이너가 주최하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다수 참석한 생일 축하연에서도 거액의 대선자금을 모았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카라마조프적인 힘’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렁저렁 타인이 될 법도 한데 질기도록 끈끈히 이어지는 흔치 않은 ‘인연’이 여기 있다. 한 사람은 소설가, 또 한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불처럼 살다가 요절한 영화감독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1975년.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1941∼79) 감독, 그리고 네살 아래인 소설가 최인호.30대 청년인 둘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만났다. 하 감독은 그 이전부터 서울대 불문과 시절 시인 김지하씨와 친하게 지내는 등 문단의 지인들과 교류도 많았다. 최 작가의 원작인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 대학가의 풍속도와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병태’와 ‘영자’ 하면 40대 이상의 팬들에겐 “아, 그때!” 하며 새삼 추억의 잔을 들어올리곤 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최인호와 인연 이후 하 감독은 최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속 별들의 고향’(1978년)과 ‘병태와 영자’(1979년) 등을 연출,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병태와 영자’가 한참 상영 중이던 1979년 2월28일 하 감독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2007년 9월 어느날. 최 작가는 20년 만에 아주 특별한 나들이를 했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시사회장을 찾은 것. 영화 감상이 끝난 직후 최 작가는 “처음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팔았다는 느낌에 다소 거북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감회어린 고백을 했다. 아울러 최 작가는 이 영화를 연출한 하명중(60) 감독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하명중 감독은 다름 아닌 하길종 감독의 친 동생. 오랜만에 만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껴안으며 ‘사모곡’을 합창했다. 최 작가는 하명중 감독보다는 두살 위. 하지만 30여년 전부터 대략 말을 튼 사이였다. 최 작가는 “길종이 형을 형님으로 모셨으니, 이 친구와는 얼렁뚱땅 말을 놓았다. 내가 이 하씨 형제하고 무슨 인연인지, 참 질긴 인연이야….”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최 작가로서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에 와서도 그의 동생과 또 다시 영화로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 감독의 두 아들(상원·준원)이 배우와 프로듀서로 이번 영화에 참여해 형-동생-아들까지 대를 잇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하 감독의 부인 박경애씨(뤼미에르 극장 대표) 또한 이번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 그 의미를 더해 준다. 하 감독은 4년 전 최 작가의 신작 ‘어머니는∼’가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죄다 읽었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작가는 “미처 ‘어머니는∼’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2권을 집필하겠다.”고 밝혀 하씨 형제와의 인연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 ‘땡볕´으로 스타감독 반열에 하 감독은 소위 ‘딴따라 인생’ 40년 동안 광고 모델 한번, 밤무대 한번 나가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영화로 얻은 이름, 영화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관객들에게 돌려 드리고 싶다는 철학을 평소 피력해 왔다. 피는 못속이듯 형처럼 올곧은 성품의 발로라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하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는 이번 영화가 ‘땡볕’(1983년)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0년) 이후 17년 만의 연출 복귀작인 셈. 특히 오락영화가 판치는 요즘,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화두를 추석 극장가에 과감히 던졌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용기와 열정을 보여 준다. 특히 나이 60에 제2의 감독인생을 향한 첫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연륜답게 세심한 손길로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스크린에 담아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그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했던 ‘땡볕’은 일제 강점기 척박한 삶을,‘태’는 섬 주민을 속이며 착취하는 지주(군부 독재자)의 횡포를 그렸다. 이후 소년가장의 수기를 바탕으로 ‘혼자 도는 바람개비’를 통해 시대적으로 굴절된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다뤘다. “점점 가족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에 서 있는지, 인생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로소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우린 어머니의 소중한 사랑을 알았을 땐 어머니는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말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결국 어머니의 친정 고모 되시는 분이 저랑 제 형을 키웠지요. 최인호씨의 책을 읽으면서 낳아준 어머니랑, 키워준 어머니(할머니)의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인생 40년… 제2감독인생의 첫작품 하 감독은 폭력과 인성파괴의 영화가 난무하는 요즘 세태를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의 참영화와 참사랑을 한번 얘기해 보자, 또 영화를 통해 씻김을 하고 기쁨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 영화 개봉에 앞서 신병훈련소에서 시사회를 가졌다.“잠시 어머니를 떠난 이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채워 주기 위해서이며 앞으로 교도소에도 필름을 갖고 찾아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디스크수술 부위가 터져 재수술하는 등 고생도 많이 겪었다고 귀띔했다. 화제를 바꿨다. 대외활동이 없던 지난 17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영화현장을 자주 찾아 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조디 포스터도 만나고 쉰들러리스트의 리엄 니슨, 그리고 유명한 시나리오작가와 영화감독 등을 많이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작법과 영화연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하게 된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부연했다. 하 감독은 1965년 문희 남정임 백일섭 이정길 등과 함께 KBS 공채 5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당시 드라마 ‘연화궁’에 출연할 때 홍콩 쇼브러더스의 란란쇼 회장의 눈에 들어 1967년 홍콩으로 건너가 한류스타 1호로 기록된다. 본명인 ‘하명종’(河明鐘) 대신 ‘하명중’(河明中)이란 예명을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체류 기간 중 ‘12금전표’라는 무협영화에 출연했다. 일본 도호영화사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겼으나 귀화를 권유해 이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1969년 귀국했다. 영화계 데뷔는 올해로 40년째.1967년 ‘너와 나’로 시작된다. 이후 ‘탄야’‘태’‘바보사냥’ ‘깃발없는 기수’ ‘사람의 아들’ 등 70∼80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극장 경영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어머니는∼’가 제2의 영화 인생 시작인 만큼 앞으로는 오로지 영화만 하렵니다. 내년에요? 2008년에 맞는 시대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하 감독의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영화얘기로 꽃을 피운다. 첫째 상원(34)씨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의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둘째 준원(31)씨는 ‘괴물’의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한 작가이며 곧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부산 출생. ▲65년 KBS탤런트 공채5기. ▲67년 영화 ‘너와 나´로 데뷔, 홍콩 영화계 한국배우 1호 진출. ▲71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신인상. ▲7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상, 아시아영화제 주연상 ▲83년 대종상 신인감독상. ▲84년 ‘땡볕´ 감독, 베를린영화제 출품. ▲90년 ‘혼자도는 바람개비´ 감독. # 주요 출연작 바보들의 행진(75), 불꽃(75), 발가락이 닮았다(76), 목마와 숙녀(76), 고교얄개(76), 한네의 승천(77), 느미(79), 사람의 아들(80), 태(85) 등 80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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