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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천사를 본 소녀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천사를 본 소녀

    동서고금을 통틀어 신비주의자를 ‘한 사람’만 꼽으라면 에마누엘 스베덴보리(1688~1772)를 들겠다. 명상에 들면 영계를 마음대로 여행했다고 하는 그는 ‘신비주의 영역의 제왕’이다. 물론 현대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으니 인정하고 말고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스베덴보리가 없었다면 메피스토펠레스를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파우스트’를 완성할 수도 없었다”는 괴테의 말을 무심히 흘려버릴 수 있을까. 철학자 칸트,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 에머슨, 칼라일, 발자크,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같은 문인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3중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는 ‘스베덴보리주의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압도적 영향을 받았다. 스베덴보리는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막연히 신비주의자로만 기억될 뿐이다. 연구자가 한 명쯤은 나와 주면 좋으련만 한국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한국 지식 생태계의 다양성 결여와 획일주의를 느낀다면 지나친 반응일까. 하기야 ‘주류’ 인문학도 사멸해 가는 중이니 이런 비주류 인물에 관한 연구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학창 시절 서울 종로2가 책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지옥은 의지에 반해 강제로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곳이라는 것. 지옥의 영혼은 천국에 머물면 못 견딘다고 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대로 비슷한 영혼끼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보다 백 년 뒤에 태어난 스웨덴 역사학자 안데르스 프뤽셀(1795~1881)은 자신의 할머니가 어릴 적에 스베덴보리의 이웃에 살았다며, 스베덴보리의 성품을 엿보게 해 주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준다. 그의 할머니는 십대 소녀였을 때 부모님과 함께 스베덴보리의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와 친하게 지냈다. 소녀였던 그의 할머니는 신비가 스베덴보리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소녀는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에 이끌려 ‘스베덴보리 아저씨’에게 영이나 천사를 보여 달라고 졸라 대곤 했다. 마침내 그가 승낙했다. 그는 소녀를 자기 정원의 여름 별장으로 데리고 가 커튼 앞에 서게 했다. 그리고 “자, 이제 천사를 보게 될 거야”라고 말하면서 커튼을 끌어당겨 열었다. 그러자 소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용산 망루, 미얀마, 어디에도 ‘열흘의 광주’ 불쑥 다시 온다

    용산 망루, 미얀마, 어디에도 ‘열흘의 광주’ 불쑥 다시 온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 이 문장은 2017년에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한강의 수상 소감 중의 일부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전한다.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게 아니며, 단지 내 감각과 존재, 육신을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 살아남은 사람, 그들의 가족에게 빌려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그러기까지 작가가 겪어야 했을 내적 고투와 1980년 광주를 원형으로 하는 이들의 삶의 궤적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해 봄에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보거나 겪은 이들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로 그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이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가. 그의 글을 읽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곳’에 있지 않고, ‘그 일’을 자세히 모르고, ‘그 시간’을 겪은 것도 아닌데 무려 “미루어 짐작”이라니. 하지만 소설은, 작가는 그 ‘일들’ 속으로 곧바로 침투해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게 구술해 나아간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어떤 “짐작”을 가능케 한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이야기다.‘소년이 온다’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와 영과 육, 죽은 자와 산 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의 기록이다. 아직도 판결이 끝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참상의 기록이 지금도 덧대어지는 현재형의 실재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때 당시에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를 했던 터라 고향의 참혹한 시간에 대하여 ‘뒤늦게 알았다’는 고백과 더불어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기까지 “34년을 건너서 우리에게 한발 한발 걸어오는 그런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남겼다. 소설의 형식 자체를 여러 명의 시점으로 쓸 수밖에 없던 이유 또한 그것일 터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그에게 다가와 울부짖었을 테니 작가로서는 도무지 어찌할 바 몰랐을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의 말을 받아 적으며 작가는 영혼의 몸주 노릇을 충실하게 해냈다. 소년과 소년을 둘러싼, 소년이 지나쳤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소리를 끝내 받아 적었다. 이 모든 것은 다 그 이야기가 80년 봄의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었을 터. 몸주가 겪어야 했을 고통을, 그리하여 함께 “미루어 짐작”해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이 번역돼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 읽히고 있는 것 역시 억울한 영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의 힘일 터이다. 이제 ‘소년이 온다’는 나라별로 제목을 달리해 세계의 독자들을 ‘처절하게 고립되어 원통하게 죽어갔던 사람들의 시간’으로 붙들어 놓는다. 이 무시무시한 일을 소설가 한강은 끝내 해내고야 말았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가 당선됐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뽑히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는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 영원’ 등을 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맨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광주서 태어난 작가, 기록으로만 알던 그날 열 살 남짓의 광주 출신 소녀는 아버지의 서재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광주 항쟁의 기록물들을 보며 자란다. 그때를 회고하던 한강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광주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채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뚫고 지나야 하겠다는, 그렇지 않으면 글을 못 쓰게 될 것 같은 그런 시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5·18 광주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를 뚫고 지나야 하겠다’는 것은 결국 작가로서 가장 끝까지 밀어붙인, 끝내 해내야만 하는 운명적 이야기인 까닭이 아니겠는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소년이 온다’ 중에서) 자국의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쏜 군인들과 그들을 그 자리에 서게 만든 자의 명령이 그 열흘의 광주를 만들었다. 열흘이 훨씬 지나 34년이 흘러도, 2021년이 와도 광주는 계속해서 어디선가 ‘되태어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산화하는 곳에서라면 그곳이 어디든 ‘광주’라고 한강은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해의 용산도 그리고 지금의 미얀마까지도 또 다른 ‘광주’가 아닌가.죄없이 죽은 사람이 짐짝처럼 실려가 함부로 불태워지고, 어린아이까지도 총에 맞는 것을 본 자들의 기록은, 실상은 인간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는데,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방식대로 편안했으며, 심지어 아직도 잘 살고 있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시체라도 찾게 해 달라’며 광주 전역 여기저기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녀도, 뻔뻔하게 광주에 찾아가 ‘나는 죄가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대는 그 시절의 명령권자에게도 80년 광주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 중에서)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행불인들은 여전히 행방불명인 채로 그렇게 있다. 매일 장례를 치르는 마음으로 산 까닭에 한 몸이, 집 전체가 사원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매해 맞는 봄의 빛은 어떤 시간이려나. 어떤 빛이어야 하나.●‘소년’을 통해 하고 싶던 말 “죽지 마” 인간이 인간됨을 강제로 잃고, 주검조차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사람들에게 한강은 ‘소년’을 보냄으로써, ‘소년’을 ‘오게’ 함으로써 어떤 위로를 건네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소설 속의 누구의 입을 빌려서라도 이 말을 꼭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죽지 마./ 죽지 말아요.” 광주의 봄을 기록하는 일은 작가와 독자들의 영혼이 그들과 함께 산화하는 것과도 같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리고 끝내 죄상을 부인하는 가해자들을 보는 일이란, 어떤 면에서는 지옥을 보는 것과도 같아서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일은 다시 펼쳐지는 생지옥의 문 앞에 선 것과도 같다. 그러나 작가는 ‘죽지 말’라는, 그 누구도 다시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끝내 해버리고야 만다. 그해 5월의 봄은 “죽지 마”라는 정언명령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광주’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처절하게도 ‘사람답게, 평범하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고 싶을 것인가. 그 일이 그들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가.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중략)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중략)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소년이 온다’ 중에서)그렇게 소년이 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에, 웃으며 우리에게. 소년은 언제까지고 끝내 죽지 않은 얼굴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리고 가족들과 독자들의 뇌리에서. 이제 우리가 그에게 ‘네가 와 준 덕분에’ 봄이 더 푸르러졌노라 일러줄 차례다. 덧붙이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광주’를 살고 있는 미얀마에도 한시바삐 평화의 봄이 오기를 기원한다. 소설가 이은선
  • [데스크 시각] 예술의 ‘서울 탈출’을 기대하며/최여경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예술의 ‘서울 탈출’을 기대하며/최여경 문화부장

    2014년 9월 어느 날 오후 그때 그 느낌을 똑똑히 기억한다.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에 전시된 그림을 보다가 어느 모퉁이를 돌고는 숨이 턱 막혔다. 30㎡ 정도 되는 공간에 커다란 유화 세 점이 각각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Le Bon Samaritainㆍ1880)과 ‘비탄의 계곡’(La Vallee de Larmesㆍ1883)을 거쳐 가로 세로 4~6m에 이르는 ‘승천’(L’Ascensionㆍ1832)에 다다르면서 그 웅장함에 압도됐다. 화가들이 영혼을 갈아 넣어 그렸을 이 대작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 순간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프랑스 국립고등미술학교 교수였던 아이메 니콜라 모로가 그렸든, ‘승천’이 발자크와 단테가 사랑한 삽화가 귀스타프 도레의 작품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온전히 느낌으로 명작을 받아들이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아주 좋은 기회로 파리 연수를 간 덕이다. 틈만 나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 미술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봤던 작품들을 그야말로 입체적으로 직관했다. 유화의 질감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조각상은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눈앞에 서 있다. 평면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루브르가 소장한 밀로의 비너스상 앞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프랑스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수백년 된 명작을 보고 따라 그리는 게 수업인, 예술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가 왔다. 삼성가가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 등에 기부한 작품이 2만 3000여점에 이른다.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가 60건이나 되고,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 명작들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세간은 고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 사회적 책임을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해석한다. 14년 전 삼성의 미술품 투자 논란이 불거졌을 때 반응을 떠올리면 인식의 온도차가 살짝 당황스럽다. 아마도 그 사이 예술에 대한 이해가 한층 커졌고, 즐기고픈 사람들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수많은 작품을 전국 곳곳에 퍼뜨려 더 많은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정부와 미술계는 수장고와 전시관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몇몇 광역자치단체에서도 유치 의지를 보인다. 어디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라도 서울은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망과 수요가 크다. 지난달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본 광주시립발레단의 창작 발레 ‘오월, 바람’에서 그 모습을 확인했다. 공연장에선 거리두기를 하려고 남긴 자리를 빼고는 빈 좌석을 찾을 수 없었다. 무용수들의 기량도 기대 이상이었다. 국립발레단을 현재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태지 단장의 리더십이 한몫한 듯했다. 광주 양림동에는 해외에서 다양한 전시를 보여 준 이이남 미디어아트 작가와 윤회매도자화를 탐구하는 김창덕 작가가 자리한 예술 골목이 있다. 이곳을 즐기는 10~20대 청년들도 많았다.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오는 20일 개막하는 뮤지컬 ‘위키드’는 벌써 주요 자리가 매진됐다고 한다. 티켓 판매를 분석해 보면 서울 관객 비율도 크단다. 명작을 찾아 먼길 마다않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프랑스에 있는 1240개 미술관·박물관 중 파리에 있는 건 0.05% 정도인 60여개다. 서북쪽 끝 르아브르 앙드레 말로 모던아트미술관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다음으로 근현대 미술 명작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북쪽 끝 팔레 데 보자르 드 릴에는 도나텔로, 고야, 루벤스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7만여점 있다. 동쪽 콜마르 운털린덴 미술관엔 매년 20만명이 방문한다. 지역 곳곳에서 수준 높은 예술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한국도 예술문화기관을 분산시켜야 한다. 지역관광 활성화 차원으로도 추진할 일이다. cyk@seoul.co.kr
  • 美공화 ‘反트럼프 전쟁’ 4개월… 결국 트럼프가 이겼다

    美공화 ‘反트럼프 전쟁’ 4개월… 결국 트럼프가 이겼다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리즈 체니 의원(하원총회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지난 4개월간의 전쟁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의 거센 비난에 그간 체니의 뒷배가 돼 주었던 당 지도부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법치, 진실 등 ‘보수의 가치’를 주장했던 체니를 축출하는 게 공화당에 독이 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힐은 5일(현지시간) “(체니가) 공화당의 영혼을 걸고 벌였던 전쟁에서 트럼프가 이겼다”며 이는 지난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난입 참사 이후 4개월 만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는 12일에 공화당이 체니를 하원총회 의장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투표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그의 지역구는 친트럼프 성향이 강한 와이오밍주다. 그럼에도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거부한 트럼프를 앞장서서 비판했고 탄핵 표결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체니는 이날 WP 기고에서 “공화당은 전환기에 있다. 역사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위험하고 반민주적인 트럼프를 숭배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보수의 가장 큰 가치는 법치”라며 이미 대선 불복 주장이 수많은 법원 판결에서 진 만큼 승복하자고 했다.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는 이날 성명에서 체니를 “공화당 지도부에서 볼일 없는 바보”라고 칭하고 자신의 충성파인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을 체니의 후임으로 노골적으로 밀었다. 의회난입 사건 이후 트럼프 책임론을 주장했던 미치 매코널, 케빈 매카시 등 상·하원 원내대표들은 하나둘씩 체니와 거리를 두는 상황이다. 매코널 의원은 체니 구하기에 나서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관심은 100% 조 바이든 행정부를 막는 데 있다”며 말을 돌렸다. 더힐은 “공화당은 (트럼프 편으로) 결정을 내렸고, 이로 인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평당원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친트럼프 노선이 당내 승리는 보장하지만, 40%에 못 미치는 트럼프 지지율을 감안할 때 내년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의 승리 카드인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청문회에 등장한 샹들리에…“집에서 썼다” 박준영 해명에 “궁궐이냐”

    청문회에 등장한 샹들리에…“집에서 썼다” 박준영 해명에 “궁궐이냐”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인의 ‘고가 도자기 밀수 의혹’과 관련해 문제의 도자기와 장식품들을 실제 가정에서 썼다고 주장했다. 이에 야당은 영국 주재시 살던 집이 궁궐이었냐며 거짓 해명이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은 박 후보자 부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을 제시하며 주 영국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시절 후보자 부인이 도자기와 장식품을 가정생활에 사용했다는 해명이 거짓이라고 몰아붙였다. 김 의원은 “외교부에 확인해보니 후보자가 (영국에서) 지냈던 거처가 30평밖에 안 된다”며 “영국에서 궁궐에서 살았나”라고 쏘아붙였다.그는 “집안 장식용 도자기가 맞느냐. 사진 속 샹들리에만 8개”라며 “처음 접했을 때 난파선에서 보물을 건져 올린 사진인 줄 알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사진을 보면 중간에 2개가 현재 집이다. 카페 창업 전에 가정에 달아놨던 것”라며 장식품들을 실제 가정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의 부인은 남편이 2015~2018년 주영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찻잔, 접시 세트 등 대량의 도자기 장식품을 구매한 뒤 외교행낭(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입했다. 외교행낭의 경우 출입국 과정에서 물품 검사를 하지 않는다. ※보도 이후 5월 8일 해양수산부는 박준영 장관 후보자가 ‘외교행낭’을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해수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박 후보자가 과거 해외 근무 후 귀국 당시 외교행낭을 이용한 사실이 없다”면서 “박 후보자는 귀국 당시 상사 주재원 등과 동일하게 해외이사대행 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국내로 배송했다”고 밝혔습니다. 박 후보자 부인은 이렇게 들여온 도자기 등 장식품에 대해 별도의 세관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 후보자 부인은 2019년 12월쯤 경기도에서 카페 영업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도소매업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도자기 장식품을 판매했다.2019년 10월 개인 SNS에 도자기 사진을 올리며 “뭘 산 거야, 얼마나 산 거야, 내가 미쳤어, 씻기느라 영혼 가출” 등의 글을 쓰기도 했다. 부인의 도자기 판매를 도우려 회의에 불참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열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계부처 회의에 박 후보자가 불참한 이유가 부인의 도자기 판매행위를 도우려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회의에 불참한 다음 날 박 후보자의 부인이 영국에서 들여온 장식품과 도자기 개봉 사진을 SNS에 올렸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가 차원에서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하는데 만약 후보자가 도자기와 장식품 정리 때문에 회의에 불참하고 배우자를 도왔다면 장관은 둘째치고 고위공직자로서 기본적 자세가 안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저뿐만 아니라 9개 부처 중 5개 부처는 실장과 국장이 대리참석했다”며 “휴식이 필요해 휴식을 취한 부분은 맞다”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씨줄날줄] 영국 도자기/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국 도자기/전경하 논설위원

    런던에서 차로 두 시간가량 걸리는 영국 중부의 도시 스토크온트렌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8년과 2009년에 유독 붐볐다. 도자기 도시인 이곳에는 웨지우드, 로열덜튼, 포트메리온, 스포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과 아울렛이 있다. 아울렛에는 정상 제품은 물론 미세한 흠집이 있는 B급 상품도 진열돼 있다. 금융위기로 자금 압박에 시달린 회사들은 대규모 세일을 했다. 이 소식에 한국 교민과 주재원들도 몰려갔다. 다양한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본차이나’(bone china)의 시발지다. 동물 뼛가루를 점토와 섞어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을 개발해 200여년간 독점 생산했다. 본차이나는 뼛가루가 더해져 가볍고 얇으면서 내구성이 높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도자기 생산이 가능했다. 영국 제조업체들은 장식을 테두리만 하기도 하지만 그릇 전체에 엉겅퀴, 꿀벌, 나비 등 자연을 묘사하거나 기하학적인 모양을 넣어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영국 도자기는 음식을 먹을 때 쓰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장식용으로 이용한다. 접시, 찻잔은 물론 액세서리 보관함, 찻주전자 등도 많이 팔리는 까닭이다. 영국 도자기를 상징하는 회사는 조시아 웨지우드가 1759년에 세운 웨지우드다. 웨지우드는 조지 3세의 아내 샬롯 왕비로부터 찻잔 세트를 주문받았고 품질에 만족한 왕비가 ‘퀸스웨어’(여왕의 자기)라고 부르도록 허락했다. 웨지우드는 유약을 칠하지 않는 ‘제스퍼 라인’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4대 도자기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웨지우드는 1986년 크리스털로 유명한 워터퍼드와 합병했고 로열덜튼(RD)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사모펀드 KPS에 인수됐다. 워터퍼드(W) 웨지우드(W)도 인수한 KPS는 앞 글자를 딴 ‘WWRD’라는 도자기 회사를 만들었다. 백화점 행사장에서도 보기 힘든 다양한 영국 도자기를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아내의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박 후보자가 2015~2018년 주영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산 제품이란다. 입이 떡 벌어지는 물량의 도자기 사진에는 “내가 얼마나 산 거야 씻기느라 영혼 가출”이라고 적혀 있다. 요리를 좋아하면 예쁜 그릇이 탐나서 잔뜩 사는 것은 당연지사.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많은 양이다. 외교관 이삿짐이면 관세를 내지 않고 들여올 수 있다는 계산에 잔뜩 샀을 것이다. 운송비도 당연히 적게 들지 않았을까. 후보자 부인은 귀국 다음해 카페를 열어 도자기를 팔았단다. 영혼 가출은 씻기는 시점이 아니라 사들였던 그때부터였다. lark3@seoul.co.kr
  • “얼마나 산거야, 내가 미쳤어” 장관 후보 부인의 도자기 ‘의혹’

    “얼마나 산거야, 내가 미쳤어” 장관 후보 부인의 도자기 ‘의혹’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1일 부인의 고가 도자기 장식품 불법 판매 의혹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박 후보자 측은 이날 오후 해수부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은 전날 박 후보자의 부인이 고가의 영국제 도자기 등을 불법으로 판매한 의혹을 제기했다.김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가 2015∼2018년 주영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부인은 찻잔, 접시 세트 등 대량의 도자기 장식품을 구매한 뒤 ‘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입했다. 별도의 세관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김 의원은 이들 장식품이 최소 수천만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박 후보자의 부인은 2019년 12월쯤 경기도에서 카페 영업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도소매업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영국에서 들여온 도자기 장식품을 판매했다. 특히 지난달까지도 ‘로얄알버트 소품판매’, ‘이태리 소품매장’ 등의 해시태그를 도자기 사진에 붙이며 도자기 판매 의사를 밝혀왔다. 2019년 10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도자기 사진에는 “얼마나 산거야, 내가 미쳤어, 씻기느라 영혼 가출” 등의 글도 올라왔다.박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영국에서 구매한 소품은 집안 장식이나 가정생활 중 사용한 것으로, 당시 판매 목적이 없었음은 물론 그 가치도 높게 평가되지 않는 중고물품”이라면서 “카페를 개업하게 되면서 다른 매장과의 차별성을 위해 자택에 있던 소품을 매장에 진열했고 불법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일부를 판매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거듭 사과한다”면서 “관세 회피 및 사업자등록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조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오는 4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화장터 장작도 떨어졌다… ‘코로나 생지옥’에 빠진 인도

    화장터 장작도 떨어졌다… ‘코로나 생지옥’에 빠진 인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는 인도의 극한 상황이 화장터를 통해서도 그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외신은 인도 화장터에 너무나 많은 시신이 몰려들어 이를 태울 장작도 떨어져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번에 언론에 조명된 장소는 뉴델리 동부에 위치한 시매퓨리 화장터. 팬데믹이 있기 전 이곳에서 하루 화장된 시신은 8~10구 정도.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는 하루에 무려 100~120구 시신이 화장되고 있다. 이에 화장터 측은 주차장까지 공간을 넓혔지만 아직도 유가족들은 번호표를 뽑아들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화장터 측 관계자는 "직원은 물론 자원봉사자들도 잠시 벽에 기대 눈을 붙일 정도로 쉬지않고 일하고 있다"면서 "유가족과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특히 청년의 시신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어 "장작의 재고도 바닥나 지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힌두교 장례식에서 영혼의 환생을 위해 화장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수많은 유가족이 이곳으로 몰려든다.한편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된 2차 코로나 유행으로 인도는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있다. 29일 기준 인도의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37만9000여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누적 감염자는 1830만 명이며 일일 사망자 수도 이틀 연속 3000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시매퓨리 화장터의 모습은 이곳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절박함을 이용한 암시장도 성행 중이다. BBC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코로나19 환자에게는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산소통이 암시장에서 기존 6000루피(약 9만 원)보다 10~20배 높은 5만 루피(약 75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가짜 코로나 약까지 기승을 부려 환자들을 곤궁에 몰아넣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꽃동네 마지막 선물… 바지 20년 입으며 아낀 2000만원

    꽃동네 마지막 선물… 바지 20년 입으며 아낀 2000만원

    대학교·봉안당 등 꽃동네 곳곳 발자취신 수사, 정 추기경 모친 주치의로 인연자신의 어머니처럼 안구 기증하고 떠나마지막엔 남에게 모든 것 베풀고 영면교황도 “정 추기경 선종에 깊은 애도”“정진석 추기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충북 음성 꽃동네는 없었을 겁니다.”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인 신상현(66) 수사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수사는 지난 27일 선종한 정 추기경을 “꽃동네의 큰 은인”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은 바지 하나를 20년 가까이 입으며 아껴 쓰고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삶을 실천했다”고 떠올렸다. 오웅진 신부가 1976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노숙인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꽃동네를 처음 만들었을 때 주민들은 물론 신도들까지 탐탁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청주교구장이었던 정 추기경은 “사람이 하는 일이면 저절로 없어지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면 잘될 것이니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며 꽃동네 사람들에게 힘을 실었다. 꽃동네에는 정 추기경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그는 꽃동네대학교를 세울 자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쓴 책의 인지세를 기부했다. 2017년 무연고자들을 위해 만든 꽃동네 봉안당도 그의 이름을 따 ‘추기경 정진석 센터’로 지었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임종을 준비하면서 2000만원을 꽃동네에 내놓기도 했다. 신 수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느라 추모가 어려워져 수도자들이나 봉사자, 가족(환자)들 모두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꽃동네 사람들은 대신 방송으로 중계되는 미사를 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정 추기경 어머니 고 이복순씨의 주치의였던 신 수사는 모자의 사랑과 희생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씨는 “나는 하느님께서 돌봐 주실 테니 사제의 길을 가라”며 외아들인 정 추기경을 신학교로 떠나보내고 홀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신 수사는 “여사께서 어린 정 추기경에게 신발을 사 주면 어머니가 사준 신발이라며 신지 않고 품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려 주곤 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1996년 안구를 기증하고 꽃동네 성모상에 안장된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영면했다. 신 수사는 “추기경께서는 병상에서도 ‘꽃동네가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동네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면서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사익과 쾌락을 좇는 우리 사회가 추기경이 남긴 메시지를 되새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정 추기경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조문을 마친 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에게 “어려운 때 교회와 사회의 큰 어른이 선종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진정한 행복의 삶, 청빈의 삶이라는 좋은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도 정 추기경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교황은 “정 추기경이 오랜 기간 한국교회와 교황청에 봉사한 데 감사하며 그의 고귀한 영혼을 주님의 연민 어린 사랑으로 인도하는 엄숙한 장례미사에 함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오페라 속 여성들의 삶의 변주

    오페라 속 여성들의 삶의 변주

    사랑 앞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아이다부터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클라라까지. 다음달 7일 개막하는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오페라 여섯 편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로 여성들의 삶을 그려 낸다. ●정통 오페라 백미 ‘아이다’로 포문 올해 축제에선 이탈리아 정통 대작부터 원작을 재해석한 작품, 그리고 신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7~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사단법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아이다’가 첫 문을 연다. 아이다와 암네리스, 라다메스 등 세 남녀의 갈등을 사실적인 묘사와 장엄한 음악으로 풀어낸 베르디 작품으로 정통 오페라의 백미를 느낄 수 있다. 스폴레토 메노티극장 상임지휘자이자 페루지아 국립음악원 교수인 카를로 팔레스키와 이탈리아 아시시 시립극장에서 ‘나비부인’으로 데뷔한 연출가 최이순이 합작했다.●치정 얽힌 푸치니 대표작 ‘토스카’ 21~23일 노블아트오페라단은 푸치니의 대표작인 ‘토스카’를 올린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로마를 배경으로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극장 주역 가수인 소프라노 김라희가 토스카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주역 테너 신상근이 카바라도시를 맡아 드라마틱한 치정을 노래한다. 라벨라오페라단이 다음달 29~30일 선보이는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도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비련의 여인 안나 볼레나에 소프라노 오희진, 이다미, 헨리 8세 엔리코 역에 베이스바리톤 김대영, 양석진이 이름을 올렸다. ●숙명적 사랑 그린 ‘브람스…’ 첫선 국립오페라단은 13~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서정오페라 ‘브람스…’를 처음 선보인다. 브람스의 생애를 바탕으로 슈만과 클라라 사이에서의 필연, 영혼을 뒤흔든 숙명적 사랑을 다룬다. 지난해 초연해 호평을 얻은 ‘레드슈즈’에 이어 작곡가 전예은이 작·편곡을 맡아 참신한 무대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원작을 재해석한 소극장 오페라 두 편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다음달 28~30일 디아뜨소사이어티가 ‘전화&영매’를, 오는 6월 4~6일 코리아아르츠그룹이 체질 오페라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각각 공연한다. 이탈리아 사실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미국 작곡가 메노티의 ‘전화’(The Telephone)와 ‘영매’(The Medium)를 한 무대에 올려 전화 중독증에 걸린 현 시대 여성과 영혼을 부르는 영매 마담 플로라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전자 바이올린을 활용해 원작 속 여러 악기 캐릭터를 표현한 음악도 관심을 모은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을 각색해 서양 오페라와 동양의 사상체질을 버무려 작품 속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한 참신한 작품이다.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뿐 아니라 아리아까지 100% 우리말로 풀어 쉽고 유쾌한 무대를 선사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연소득 5000만원 김씨 7억 아파트 살 때 주담대 2.8억→1.7억

    연소득 5000만원 김씨 7억 아파트 살 때 주담대 2.8억→1.7억

    주담대·신용대출·카드론 등 모든 금융권 年대출 원리금 상환액 연소득 40% 제한내년 7월부터 대출 2억 넘으면 DSR 적용 전문가 “중산층·저소득층은 타격 클 것”DSR, 모든 금융권 대출 규제… 영끌 막혀‘차주(대출받는 사람)가 갚을 능력이 있는 만큼만 빌려줘라.’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29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저금리 속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 집을 사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는데 이를 막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7.9%로 뛰었는데 올해 5~6%대, 내년에는 4%대로 낮춘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시장에서는 “가계빚 증가세를 안정시킬 비교적 강력한 대출 규제가 나왔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도권의 비싸지 않은 아파트를 살 때도 대출 규제를 적용하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이번 대책의 핵심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차주의 확대다. 지금까지는 투기지역 또는 투기과열지구의 9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거나 연 8000만원 넘게 버는 고소득자가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때만 차주별 DSR 40% 규제를 적용해 왔다. 주담대와 신용대출, 카드론 등 모든 금융권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주 연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규제지역’(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에서 6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주담대를 받거나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을 땐 차주의 소득과 무관하게 무조건 DSR 40%를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의 83.8%, 경기도 아파트의 33.4%가 DSR 규제를 적용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내년 7월부터는 총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할 때, 2023년 7월 이후에는 1억원을 넘어설 때 DSR 40% 규제를 적용한다. 현재 전체 대출자 10명 중 3명(28.8%·568만명)가량이 1억원 이상 가계대출을 받았는데, 이들이 받은 대출금액은 전체의 76.5%에 달한다. 1억원 이상 고액 대출을 잡으면 전반적인 가계빚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DSR은 모든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을 망라해 규제하기에 여러 대출을 모조리 받아 집을 사는 ‘영끌 대출’ 수요를 막을 수 있다. 금융 당국은 또 신용대출의 DSR 산정 때 가급적 실제 만기가 반영되도록 정비하기로 했다. 이 또한 대출 가능 금액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현재 신용대출 만기는 10년으로 일률 산정해 DSR을 계산한다. 예컨대 2억원을 원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대출받는다면 한 해 갚아야 하는 원금을 2000만원으로 본다. 하지만 오는 7월부터는 신용대출 DSR 산정 만기를 7년으로 줄이고, 내년 7월부터는 5년으로 더 줄인다. 이렇게 되면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더 커져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서울신문이 조정대상지역인 경기 김포시의 7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고 주담대를 받는 직장인 A씨 상황을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DSR 규제가 강화되면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크게 줄었다. A씨가 기존에 마이너스통장으로 5000만원(금리 3%)을 대출받고 주담대(금리 2.7%, 30년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 조건)를 받을 경우 현재는 2억 8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오는 7월부터는 2억 3000만원, 2022년 7월부터는 1억 7000만원만 빌릴 수 있게 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가계빚 증가세를 잡을 수 있겠지만, 자칫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주거 사다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임채우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가 11억원으로 사실상 6억원 이하 아파트를 찾기가 어렵다”면서 “돈 있는 사람들보다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이 타격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2023년 7월 이후에도) 1억원을 넘는 차주에게만 DSR을 적용하기에 대출 금액이 크지 않은 서민들은 적용받지 않는다”면서 “약 90% 이상의 차주는 DSR 규제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마통’ 있으면 대출 덜 나온다…집값 6억 넘으면 DSR 40% 적용

    ‘마통’ 있으면 대출 덜 나온다…집값 6억 넘으면 DSR 40% 적용

    올해 7월부터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면 수도권 등 규제지역에서 집값이 6억원이 넘는 주택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은행별로 적용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대출을 받는 사람(차주)의 소득에 맞게 대출해준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중심인 가계대출 심사에 DSR이 전면 도입된다. DSR은 대출 심사 때 차주의 모든 대출에 대해 원리금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론을 모두 포함한다. DSR을 확대 적용한다는 것은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는 의미다. ●DSR 확대 적용해 소득에 따라 대출 지금은 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 초과 주택이나 연 소득 8000만원 넘는 고소득자가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을 때만 DSR 40% 한도가 적용된다. 그러나 올해 7월부터는 전체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서울 아파트의 83.5%, 경기 아파트의 33.4%가 DSR 40% 규제를 받게 된다. DSR 40% 적용 범위는 내년 7월에는 총대출액 2억원 초과, 2023년 7월에는 총대출액 1억 초과 차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이 고가의 주택을 매입할 경우 ‘영끌’(영혼까지 끌어쓴다는 뜻) 대출 상당 부분 막힐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별 대출 한도 편차가 생기고 저소득자의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예를 들어 연소득 2000만원인 직장인이 다른 대출이 없는 상태에서 만기 20년으로 주택담보대출(대출금리 연 2.5%, 원리금 상환 기준)을 받을 때 DSR 70%가 적용되는 현재는 대출가능 금액이 최대 2억 2000만원이지만 DSR 40%가 적용되면 1억 2600만원만 가능해 1억원 가량이 줄어든다. 같은 조건에서 만기 30년이면 대출가능 금액이 현재 최대 2억 9500만원에서 1억 6900만원만으로 1억 2000만원 이상 줄어든다. ●신용대출 있으면 주담대 한도 줄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든다. 연 소득 5000만원에 기존 대출이 없으면 30년 만기 주담대 한도(대출금리 2.5%·원리금균등상환)는 4억 2200만원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통장 4000만원(금리 연 3.7%)이 추가되면 서울 소재 9억원 아파트의 주담대 한도는 3억 6000만원에서 3억 1800만원으로 4200만원 줄어든다. 신용대출은 현재 연소득 8000만원 초과 및 신용대출 총액 1억원 초과자에만 적용하던 DSR 40% 규제를 7월부터 신용대출 총액 1억원 초과자에 적용하기로 하면서 고소득자뿐 아니라 연소득이 5000만~8000만원 이하인 이들이 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 사이에서는 개인별 DSR 강화 시행 전에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오는 7월 대책 시행 전에 신용대출을 미리 받아놓으려 하는 고객들이 몰릴 수 있다”며 “특히 6억∼9억원 사이 주택을 구입하려고 계획 중인 고객의 경우 잔금을 앞당겨서 7월 전에 매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文 “하늘에서도 화합하는 사회, 간절히 기도해 주실 것”

    文 “하늘에서도 화합하는 사회, 간절히 기도해 주실 것”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2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된 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이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한 것은 지난 2019년 2월 고 김복동 할머니와 지난 2월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에 이어 세 번째다.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 부부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고인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 선 채 손으로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서울대교구 관계자가 건넨 기도문에는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 믿으며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 드리나이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무수한 은혜를 베푸시어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감사하나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장례위원장을 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관 별관에서 환담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천주교의 큰 기둥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께서 2월 21일 성모병원에 입원해 65일간 연명치료 없이 수액만 맞으며 잘 이겨내셨다”며 “코로나로 병문안을 자주 하지 못했지만, 추기경께서는 우리나라와 교회, 평화, 사제와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있다고 하셨다. 이제는 주님 품 안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며 “힘든 순간에도 삶에 대한 감사와 행복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셨고, 특히 갈등이 많은 시대에 평화와 화합이 중요하다고 하셨다”며 애도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도 화합하는 사회를 누구보다 더 간절히 기도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은 특히 매일 묵주 기도를 할 때 우리나라 위정자들과 북한 신자들을 기억하며 기도를 했다. 저도 그 뜻에 따라 기도하겠다”며 “특별히 요즘처럼 어려운 기간에 나라를 위해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옴니버스 옴니아/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옴니버스 옴니아/임병선 논설위원

    그제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이 쓰던 문장(紋章)이 있다. 가톨릭 추기경은 문장 하나에 자신의 사목 방향을 모두 담는다. 붉은색 갈레로(모자)는 주교의 사목 책임을 뜻한다. 십자가 아래 방패의 왼쪽 문양은 성모 마리아의 보호(세 별) 아래 순교 성인들의 정신으로(붉은색 바탕의 빨마와 칼) 성덕(聖德)을 실천함으로써(별과 칼의 금색) 한반도에 빛을 비추어(노란색 무궁화) 한국 사람들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려는 뜻이 담겼다. 방패 오른쪽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작은 원)를 중심으로, 성령(비둘기)과 함께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커다란 원)이 돼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증진하려는 염원이 담겼다. 아래 리본에는 라틴어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가 새겨졌는데 그의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다. 정 추기경은 연명 치료를 거부했으며 90세라 장기 기증이 어렵다고 판단돼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됐다. 그는 “모두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를 마지막 말로 남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명동밥집에 1000만원을 전달하고 음성 꽃동네와 예비신학생들, 아동 신앙교육을 위해 기부하는 등 가진 것을 모두 나눈 뒤였다. 공교롭게도 어제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 30조원 가운데 6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옴니버스 옴니아의 정신에 어느 쪽이 더 부합하는지는 판단해 볼 일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회의 아버지였다면 정 추기경은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돌아봤다. 밖으로는 교회법 전문가로 세상사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처럼 비쳤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2009년 서울 뉴타운 개발에 대해 “돈보다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쌍용차 파업, 용산 참사, 이듬해 세월호 참사 때 시류를 좇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또 생명 윤리에 관심이 깊어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를 하나의 생명으로 봐 반대하고 황 교수와 나눈 논쟁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서울대교구가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투자한 것도 어린 시절 과학자, 화학자를 꿈꾸고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어 과학과 연구 윤리에 조예가 깊은 그의 영향이었다. 2009년 김 추기경, 이듬해 법정 스님에 이어 정 추기경처럼 영적 지도자들이 세상을 떴다. 교회를 세습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재벌기업의 세습도 여전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당긴 투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상화폐 광풍에 휩쓸리는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검박한 삶이 작지 않은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bsnim@seoul.co.kr
  • 벽에 걸려야 예술인가, 바닥에 놓인 이 ‘의자’도 예술이지

    벽에 걸려야 예술인가, 바닥에 놓인 이 ‘의자’도 예술이지

    조각이지만 가구이고, 가구이면서도 조각이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조각가 구현모와 가구 아티스트 함도하의 작품이 그렇다. 한 작가는 조각의 예술성에 쓰임새를 더하고, 다른 작가는 정형화된 가구 형태를 비틀어 위트가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든다. 가구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두 작가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구현모 작가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리셈블’(resemble·5월 22일까지)을 펼쳤다. 나무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재결합해 제작한 탁자, 잘린 나무 기둥을 틀로 떠 황동으로 정밀 주조한 의자, 버려진 나뭇가지의 세밀한 형태를 그대로 살린 금속 조각 등이 전시장을 채웠다. 홍익대 도예과와 독일 드레스덴예술학교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실재와 허구, 원리와 현상 같은 상반된 개념을 넘나드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전시도 “벽에 걸리면 예술이고, 바닥에 놓이면 가구인가”라는 의문에서 조각 같은 가구, 가구 같은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같은 존재도 어떻게 선택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게 재밌더라”면서 “흔히 쓸모의 유무로 가구와 예술을 구분 짓는데 그렇게 따지면 사실 예술 작품도 쓸모가 없는 게 아니다.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영혼의 쓸모’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자연과 인공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나무 기둥 의자 3개 가운데 2개는 실제 모과나무와 황동이 섞여 있고, 다른 하나는 오롯이 황동 주물 작품이지만 구분이 쉽지 않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도 인간이 정한 것일 뿐 서로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가구 아티스트 함도하는 서울 한남동 BHAK갤러리에서 개인전 ‘나는 가구가 아니다’(5월 15일까지)를 열고 있다. 홍익대 목조형가구과를 졸업한 그는 인테리어와 가구 회사 등에서 실력 있는 가구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개인 작업실을 차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아트퍼니처로 영역을 넓혔다. 전시장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손과 발이 달린 의자들이다. 사람처럼 벌렁 드러누워 있거나 손을 들어 인사하는 의자, 물구나무 선 의자까지 제각각이다.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 같은 모습들이다. 작가는 “의자마다 캐릭터를 부여해 스토리를 만들었다”면서 “서로 다른 형태의 의자 3개가 여행 중에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이 담긴 가구’, ‘위트가 있는 가구’가 지향점이다. 그는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다음에 어떤 감정을 표현해 낼까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전통 가구인 머릿장도 그의 손에서 다양하게 변주됐다. 형태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되 화려한 문양과 다채로운 기법으로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쓰임새뿐 아니라 작품으로 감상하는 재미도 아울렀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가구와 예술의 경계를 묻다, 구현모·함도하 작가의 도전

    가구와 예술의 경계를 묻다, 구현모·함도하 작가의 도전

    조각이지만 가구이고, 가구이면서도 조각이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조각가 구현모와 가구 아티스트 함도하의 작품이 그렇다. 한 작가는 조각의 예술성에 쓰임새를 더하고, 다른 작가는 정형화된 가구 형태를 비틀어 위트가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든다. 가구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두 작가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구현모 작가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리셈블’(resemble·5월 22일까지)을 펼쳤다. 나무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재결합해 제작한 탁자, 잘린 나무 기둥을 틀로 떠 황동으로 정밀 주조한 의자, 버려진 나뭇가지의 세밀한 형태를 그대로 살린 금속 조각 등이 전시장을 채웠다. 홍익대 도예과와 독일 드레스덴예술학교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실재와 허구, 원리와 현상 같은 상반된 개념을 넘나드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전시도 “벽에 걸리면 예술이고, 바닥에 놓이면 가구인가“하는 의문에서 조각 같은 가구, 가구 같은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같은 존재도 어떻게 선택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게 재밌더라”면서 “흔히 쓸모의 유무로 가구와 예술을 구분 짓는데 그렇게 따지면 사실 예술 작품도 쓸모가 없는 게 아니다.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영혼의 쓸모’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자연과 인공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나무 기둥 의자 3개 가운데 2개는 실제 모과나무와 황동이 섞여 있고, 다른 하나는 오롯이 황동 주물 작품이지만 구분이 쉽지 않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도 인간이 정한 것일 뿐 서로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가구 아티스트 함도하는 서울 한남동 BHAK갤러리에서 개인전 ‘나는 가구가 아니다’(5월 15일까지)를 열고 있다. 홍익대 목조형가구과를 졸업한 그는 인테리어와 가구 회사 등에서 실력 있는 가구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개인 작업실을 차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아트퍼니처로 영역을 넓혔다. 전시장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손과 발이 달린 의자들이다. 사람처럼 벌렁 드러누워 있거나 손을 들어 인사하는 의자, 물구나무 선 의자까지 제각각이다.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 같은 모습들이다. 작가는 “의자마다 캐릭터를 부여해 스토리를 만들었다”면서 “서로 다른 형태의 의자 3개가 여행 중에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이 담긴 가구’, ‘위트가 있는 가구’가 지향점이다. 그는 “가구든 공예든 예술 작품이든 어떤 이름으로 불러줘도 상관없지만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다음에 어떤 감정을 표현해 낼까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전통 가구인 머릿장도 그의 손에서 다양하게 변주됐다. 형태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되 화려한 문양과 다채로운 기법으로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쓰임새뿐 아니라 작품으로 감상하는 재미도 아울렀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모든 이들 행복하길”…정진석 추기경 선종, 다 주고 떠나다(종합)

    “모든 이들 행복하길”…정진석 추기경 선종, 다 주고 떠나다(종합)

    1970년 최연소 주교2006년 국내 두번째 추기경청주·서울대교구장 42년 활동‘교회법전’ 번역·해설서 역작 평가신학생 때부터 번역·저술 50여권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며 “현재 장기기증 의사에 따라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발명가 꿈꿨던 소년 정진석, 최연소 주교에서 교회법 권위자로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최연소 주교로 발탁돼 42년간 청주교구·서울대교구장을 지낸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 인사다. 정 추기경은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으나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고서 사제의 길을 택했다. 언제나 책과 가까웠던 그는 60년 사목 활동 중에도 독서와 집필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직에서 떠난 뒤로는 매년 책을 내는 학자형 신부였다. 그가 20년 가까이 교회법전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펴낸 일은 한국 가톨릭계에 큰 자취로 남아 있다. 발명가를 꿈꿨던 소년, 가톨릭 사제가 되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나흘만인 6일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당시 명동성당 사목회장이었을 만큼 집안 신앙생활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교적 부유했던 외가에서 자란 그는 당시 서울 명동의 계성보통학교에 다닐 때 책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인근 소공동에는 일본인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접했고 이때 발명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중앙중학교를 거쳐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발명가, 과학자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섰으나 불과 두 달 만에 터진 전쟁은 그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가 정 추기경의 회고를 토대로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했던 ‘추기경 정진석’에는 그가 겪은 전쟁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 추기경은 1950년 9월 6촌 동생과 함께 은신해있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만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서까래에 동생이 숨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충격적인 사건은 그에게 동생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불러왔고, 후에도 그는 동생의 안식을 기도했다고 한다.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기로 한 데에는 책 한 권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첫 번째 역서이기도 한 ‘성녀 마리아 고레티’이다. 한국전쟁에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정 추기경은 미군 통역병으로 일하며 알게 된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이 책을 가져와 읽게 됐고, 성녀의 행적에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마리아 고레티 성녀’의 이야기는 그의 영혼에 크고 환한 빛을 비췄다. 희미하던 새벽의 어둠이 해가 뜨면서 사라져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제가 돼야겠다’”(허영엽 신부 책 ‘추기경 정진석’ 中) 당시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내려면 주교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노기남 주교는 입학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랐던 정 추기경 어머니의 완곡한 부탁에 노 주교도 학교 입학을 허용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최연소 주교·청주교구장 28년…서울대교구장에 추기경 서임까지 1954년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신자들과 함께하는 신부로, 신학교 교사로, 교구장 비서로 봉직한 그는 1968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후일 교회법 전문가로서 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년 반 만에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방학 때 미국 교회를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자신이 주교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당시 만 39세였던 그가 최연소 주교가 된 것이다. 그는 1970년 가난하고 힘들었던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 정 추기경은 첫 사목 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었다. 주교로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의 적극적인 사목활동으로 1970년 4만 8000명에 그쳤던 교구 신자 수는 1990년 8만명으로 불어났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부름을 받은 건 1998년이다.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정년을 맞아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는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며 여러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들었다. 2000년에는 교구 시노드(synod)를 개최했다. 시노드는 교리와 규율 등을 전반적으로 토의하는 자문기구 성격의 교회 회의체다. 교구 시노드는 1922년 열린 이후 약 80년 만에 다시 개최된 것이다.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장 때부터 생명을 사목활동의 맨 앞에 뒀는데, 2005년 비로소 생명 운동을 본격 추진할 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생명 운동의 연장선에서 그는 일찌감치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2006년 서울대교구 성체대회 당시 공개적으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을 약속하는 사후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사제 중 600여 명이 교구장이었던 정 추기경의 뜻에 함께했다.‘교회법’ 권위자…집필에 평생 바친 사제 정 추기경의 생애를 돌아볼 때 교회법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제가 된 뒤 신학교 교사를 하며 라틴어를 익혔던 정 추기경은 1968년 로마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교회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유학 시절 라틴어-일본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라틴어 교회법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겠다는 결심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청주교구장으로 있던 1983년 교회법 번역위원회를 출범하고, 교회법을 전공한 사제 10여명과 함께 교회법전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장도는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역작을 낸 뒤로도 교회법을 쉽고 정확히 알리고 싶었던 바람을 놓지 않았다. 교회법 해설서를 틈틈이 쓰기 시작해 2002년까지 총 15권짜리 교회법 해설서를 완간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교회법에 매달린 성과였다. 정 추기경은 매년 책을 쓰는 신부로도 유명했다. 1955년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시작으로 그가 우리말로 번역한 역서는 13권이다. 저서로는 1961년 낸 ‘장미꽃다발’부터 2019년 쓴 ‘위대한 사명’까지 45권에 이른다. 50권을 훌쩍 넘는 집필의 힘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독서에서 비롯됐다.명동성당서 선종미사…장례는 5일장으로 거행 정 추기경은 지난달 22일 병실을 찾은 서울대교구장 후임인 염수정 추기경 등에게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데,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자. 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더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 모든 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정 추기경이) 25일 통장 잔액을 모두 필요한 곳에 봉헌하셨다. 당신의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인지 몇 곳을 직접 지정해 도와주도록 했다”며 “나머지 얼마간의 돈은 고생한 의료진과 간호사들, 봉사자들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허 신부는 “당신의 장례비를 남기겠다고 하셔서, 모든 사제가 평생 일한 교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그건 안 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28일 0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미사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다. 정 추기경은 이날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입원해있던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선종미사 동안 명동성당 대성당에 마련된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다. 정 추기경의 선종미사는 명동대성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된다. 그의 장례는 5월 1일까지 5일장으로 진행된다. 조문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가운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할 수 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나중에 봐요” 인도네시아 잠수함 장병들의 생전 ‘이별 노래’ 공개

    “나중에 봐요” 인도네시아 잠수함 장병들의 생전 ‘이별 노래’ 공개

    발리 앞바다에서 실종된 뒤 세 동강 난 채로 발견된 잠수함 낭갈라(Nanggala) 함에서 근무하던 장병들이 작별의 노래를 부른 동영상이 인도네시아 해군에 의해 26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됐다. “탑승자 전원 사망”을 통보받은 유족들은 “제발 시신 수습만이라도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데 생전의 장병들은 전역 지휘관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노래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몇주 전 함내에서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사령관인 헤리 옥타비안 대령의 기타 반주에 맞춰 수병들이 함께 인도네시아의 히트 곡인 ‘삼파이 줌파(나중에 봐요)’를 부르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다. 노랫말은 “그대를 그리워할 준비가 안 돼 있어도 그대 없이는 살아갈 준비도 안돼 있어요. 그대가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로 돼 있다. 인도네시아 군 대변인 자와라 윔보는 AFP 통신에 “전출되는 지휘관과 작별하면서 동영상을 녹화한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산 재래식 1400t급 잠수함인 낭갈라 함은 지난 21일 오전 3시 25분 발리섬 북부 96㎞ 해상에서 어뢰 훈련을 위해 잠수한 뒤 사라졌다. 탑승자는 49명의 승조원과 사령관 1명, 무기 관계자 3명이며, 낭갈라함은 당초 해저 600∼700m까지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됐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수중음파 탐지기를 이용해 24일 수심 800m 이상 지점에 낭갈라 함이 가라앉은 것으로 파악했고, 25일 싱가포르 정부가 지원한 구조함이 카메라가 장착된 수중 로봇을 해당 지점에 내려보낸 결과 수심 838m 지점에서 낭갈라 함이 균열이 발생한 채 세 동강 난 것을 확인했다. 또 구명조끼가 보관함 밖에서 발견됨에 따라 탑승자들이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됐다. 탑승자 53명의 가족은 이제 어떻게든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해리 세티아완(앞의 ‘헤리 옥타비안’과 동일인인지 모르겠음) 대령의 모친과 가족들은 “제발 시신을 수습해 수카부미의 가족 묘지에 묻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령의 집에는 많은 친인척과 이웃 주민들이 방문해 그의 영혼을 알라가 받아드리길 기원하는 이슬람 기도를 함께 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도 밤늦게 대령의 시신 없는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네 자녀를 지원하겠다. 첫째 아들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돕고, 몸이 아픈 막내 아이의 치료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수중 로봇이 심해에서 가벼운 잔해는 수거할 수 있지만, 동체를 들어 올리거나 동체 안으로 들어가 희생자 수습 등의 활동은 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 군은 물론 세계 각국의 잠수함 전문가들이 희생자 수습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017년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 ‘ARA 산후안’호가 44명을 태운 채 실종됐고, 1년 뒤 심해 수색 전문업체가 해저 907m 지점에서 동체를 찾아냈으나 인양은 이뤄지지 못했다. 1968년 52명을 태운 채 실종된 프랑스 해군 잠수함 ‘라 미네르브’호도 2019년 같은 업체가 해저 2370m에서 찾아냈으나 역시 인양하지 못했다. 낭갈라 함 침몰 원인에 대해 인도네시아군 수뇌부는 “인간의 실수가 아니라 자연적 요인에 더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장현국 경기도의회 의장, 민족대표33인 다룬 다큐영화 ‘아! 꽃이여 별이여’ 시사회 참석

    장현국 경기도의회 의장, 민족대표33인 다룬 다큐영화 ‘아! 꽃이여 별이여’ 시사회 참석

    장현국 의장(더불어민주당·수원7)이 지난 25일 다큐영화 ‘아! 꽃이여 별이여’ 시사회에서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독립유공자에 대한 합당한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 꽃이여 별이여’는 민족대표 33인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3·1운동 등 독립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다. 일제에 항거하다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영혼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 외롭게 반짝이다가 다큐 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나며 역사 속에서 재조명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이날 오후 1시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주최로 진행된 이번 시사회를 후원하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했다. 장현국 의장은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가장 대표적인 독립운동으로 이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들이 민족대표로 나선 33인의 지사들”이라며 “우리 후손히 마땅히 그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함에도 이분들 가운데는 독립유공자로 마땅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밤하늘의 외로운 별로 남은 분이 계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현국 의장은 “3·1운동의 거대한 물결을 이끈 민족대표들의 발자취를 영화로 담기위해 애써 준 모든 분께 감사인사 드린다”며 “경기도의회는 이번 시사회를 계기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 분들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시사회에는 장현국 의장을 비롯해 박근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의왕1), 최만식(더불어민주당·성남1)·김명원(민주당·부천6)·김태형(민주당·화성3)·김성수(민주당·안양1)·김용성(민주당·비례)·김중식(민주당·용인7)·송영만(민주당·오산1)·이필근(민주당·수원3)·김영해(민주당·평택3)·이진연(민주당·부천7)·김직란(민주당·수원9)·안혜영(민주당·수원11) 의원과 민족대표33인유족회 나영의 회장 및 홍내준 대표,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김재옥 이사장, 수원시의회 의원, 경기도 이용철 행정1부지사, 이기우 전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조로 읊어내는 시대정신…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다

    시조로 읊어내는 시대정신…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다

    빼어난 문화민족은 저마다 고유한 정형시 양식을 계승해 왔다. 영미 쪽의 소네트, 한자 문화권의 한시, 일본의 와카나 하이쿠 등이 그 사례다. 우리의 경우에는 시조가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고 시조는 지금도 왕성하게 쓰이고 읽히고 있는 현재형이다. 이렇게 우리의 운문 양식 가운데 거의 모든 것이 소멸했거나 다른 장르로 흡수된 데 비해 시조는 민족문학의 장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면면히 이어 가고 있다. 시조시단의 종가인 한국시조시인협회는 이러한 시조시인들의 열정과 역량을 모아 문학장(場)에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지난 3월 20일 제26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정환 시인은 40년 이상 시조를 써 온 우리 시조시단의 대표 중진이다. 그를 만나 시조만의 매혹을 느껴 보고 그 미래를 예감해 보리라 생각했다.●‘목숨 그 자체’인 시조시인의 길 이정환 시인은 1954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대구 영신중 3학년 가을 국어 시간에 박상근 선생님께서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 육성 파일을 들려주셨습니다. 뜻은 못 알아들었지만 그 운율과 음악이 몸에 감겨 왔습니다. 시에 관한 첫 기억이지요.” ‘소년 이정환’은 이때부터 날마다 시를 생각했고 대학에 가서는 직접 시와 시조를 쓰는 습작생이 됐다. 그러다가 시조로 안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6년 월간 ‘샘터’에 시조를 응모해 한 해에 세 번이나 뽑혔던 것이었다. 여기서 용기를 얻은 ‘청년 이정환’은 본격적인 시조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연말에 가작으로 입상했을 때 잡지가 한 권 배달됐어요. 처음 보는 ‘시조문학’이라는 시조 전문 계간지였습니다. 보낸 분은 오래전 돌아가신 류제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마음 내키면 신인 추천에 응모해 보라는 권유의 쪽지가 들어 있었다. 류 선생의 권면에 따라 그는 1978년 겨울호에 ‘시조문학’으로 추천을 완료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그 후 거침없이 시조시단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1984년 ‘오류’ 동인을 결성해 시조시단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 이때 그는 민족문학의 자존심인 시조가 자신을 선택한 것 같은 떨림을 체험했다고 한다. 시조가 민족정신의 위의를 세워 가고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시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돼 갔다. 문청 시절에 ‘시림’, ‘순수연대’ 등 자유시 동인 활동을 했지만 시조를 쓰면서 “시조가 숙명이라는 자각을 했고 길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떠올린 그는 “시조 형식이 몹시 갑갑할 수 있을 터인데 처음부터 몸에 잘 맞았다”고 했다. 그는 시조를 쓰면 쓸수록 오묘하다는 것을 느꼈고, 시조 3장으로 무슨 노래든지 다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 깨달음이 40여년을 관통해 시조의 길을 달려오게끔 해 준 것이다. “시조는 제게 목숨 그 자체”라고 단언한 이정환 시인은 “시조가 더욱 사랑받는 양식이 되기 위한 길은 본령에 충실한 창작이다. 전통적 기율을 잘 지키는 가운데 다채로운 변용과 변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은 창의적 의미 공간인 종장의 반전을 잘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시조는 반드시 3장을 구비해야 하는데 그것이 시조의 존재론적 전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형식의 확장과 축소를 내세우더라도 매력과 마력의 율격인 3장이 훼손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시조가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는 일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자유시와는 판연히 다른 시조만의 고유성을 등한시하고서는 널리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시조의 생명은 가락에 있거든요.” 나아가 시인은 시조를 쓰는 이들이 고시조와는 변별되는 ‘다른 목소리’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봤다. 뜨겁게 읽히는 시조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궁구하지 않으면 시조시단이 ‘우리만의 리그’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엄격한 제약… 그럼에도 왜 시조인가?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형시에는 선험적 율격이 주어져 있고 자유시에는 시인의 호흡에 따른 자유로운 운율이 부가될 뿐이다. 그러니 시조를 쓰는 게 불편해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왜 굳이 시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자유시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왜 제약이 큰 시조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려 하는가? 이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시조라는 오랜 양식이 왜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이정환 시인은 “시조는 분명히 자유시와 다른 특성이 있다”면서 “그것을 ‘시조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시조성을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지, 즉 전통적 기율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길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시인은 시조의 다양한 형식은 인정하되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 창작에 주력하는 일이 더 요청된다고 덧붙였다. 그것만이 ‘왜 시조인가?’에 대한 명징한 답변이 된다고 했다. 시조를 해외에 알리는 데 단시조가 가장 적절한 텍스트인데 단시조야말로 가장 맞춤한 ‘존재의 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새와 수면’을 들었다.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의 새 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역동적인 팽팽함과 퍼덕거림의 몸짓이 새 떼의 솟구치는 비상을 감각적으로 잘 전달해 준다. 시인은 이 밖에도 ‘애월 바다’, ‘에워쌌으니’, ‘주상절리’ 등을 떠올렸다. 시조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정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한 것입니다. 2019년에 제1회 수상자를 냈고 올해로 3회째를 맞습니다.” 제정 취지에서 시인은 훈민정음에서 찾아낸 ‘정음’의 정신을 받들겠다고 선언했다. 등단 15년 미만인 신진 시인의 창작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의도로 시작된 이 문학상이 한국 시조시단의 청량한 기폭제가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시인은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것이라고 문청 시절부터 믿었던 것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순간을 들려줬다. 1987년 첫 시조집 ‘아침 반감’을 내러 갔던 서울 길에서 체험한 종교적 회심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진정한 영혼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데 종교와 문학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더불어 이정환 시인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시조를 꾸준히 쓰고 있는데, 2000년에 펴낸 첫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에 수록된 ‘친구야, 눈빛만 봐도’가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가진 역량과 열정이 빛을 발하는 단면들일 것이다.●공복으로서, 시인으로서의 지극한 울림 이제 그는 10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다. 3년 동안 이 협회를 이끌어 간다. “공복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공공을 위한 일꾼’이라고 여기고 항상 낮은 자세로 일하고자 합니다. 종가는 한 문중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이기에 그 책무가 무겁고 중차대합니다.” ‘이사장 이정환’은 협회의 소중한 자산인 회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참여 지분을 적극 넓혀 나가도록 힘쓸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여러 시조단체가 활동 중인데 모두 함께 시조 발전을 위해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그는 ‘한국현대시조문학사’ 편찬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전통 시가인 현대시조가 100년 역사를 맞고 있으나 아직 현대시조문학사를 정리한 전공 서적이 없는 실정이라 문학사 간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3년 안에 우리는 비교적 두툼하고도 정치한 시조문학사 한 권을 그의 노력으로 받아 보게 될 것 같다. 막중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시인 이정환’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 그는 팔순이 넘어서도 시조와 동시조를 쓰면서 명작을 남긴 백수 정완영 선생을 떠올리며 “시인의 길에 나이는 조금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조는 삶을 향한 태도와 마음 상태가 중요하지요. 여력을 확보해 시조의 본질에 근접해 가는 활동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이정환 시인의 밝고 굵은 목소리에서 시조를 통해 빛을 뿌리는 미학적 순간들이 지극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봄날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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