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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카혼타스는 실존 인물인가/백인남성과 최초로 결혼한 전설의 인디언

    ◎만화영화 주인공으로 맹활약… 재조명 활발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실존인물 포카혼타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포카혼타스는 이미 미국사회에서 2백년동안 화제가 된 인물.인디언 가운데 최초로 세례를 받고 백인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이다.그러나 현대 사람들의 머릿속에 포카혼타스는 버지니아에 도착한 영국인 개척자 존 스미스라는 청년을 구해주고 그와 사랑에 빠졌다는 달콤한 연애담으로만 남아있다.물론 만화영화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포카혼타스가 스미스를 구해준 것은 사실이나 애틋한 사랑에 관한 얘기는 어디에고 찾아볼 수 없다.그녀는 담배재배자인 존 롤페와 결혼,1616년 영국으로 문명을 구경하러 갔다가 결핵에 걸려 22세의 나이에 숨졌다.포카혼타스는 자신의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나 그녀의 삶은 호사가들에 의해 이리저리 부풀려졌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토착 영웅을 찾아헤맬 때 포카혼타스의 얘기가 그들의 의도에 들어맞았던 것.이때부터 그녀의 이야기는 아름다운전설이 돼 웨브스터사전에 실렸으며 포카혼타스의 조각품도 만들어져 한 성당에 영구전시됐다. 포카혼타스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했다.남부사람들은 그를 귀족가정의 시초로 숭앙했으며 북부인들은 노예제도 철폐주의자의 상징으로 여겼다.독립전쟁이 끝난뒤 버지니아주는 백인과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1백%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주지 않는 법을 제정했다.그들이 영웅으로 삼는 포카혼타스가 20세기에 살았다면 롤페와의 결혼으로 감옥행을 하게 되는 모순을 스스로 만들어낸 꼴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영국왕실의 연회,비극적인 단명 등 포카혼타스 실제의 삶도 마치 소설같다.그러나 포카혼타스 전설을 소재로 삼은 시인이나 극작가들은 단 한가지 구조적 결함을 발견했다.바로 포카혼타스와 스미스 사이에 로맨스가 부족하다는 것.따라서 존 데이비스라는 소설가는 1798년 롤페라는 재미 없는 인물을 버리고 스미스를 주요 인물로 꾸몄다. 포카혼타스는 이후 미국의 「뮤즈」로,순결한 영혼의 처녀 등으로 탈바꿈하다가 마침내 95년에 「흥행의 마술사」 디즈니사를 만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을 본뜬 멋쟁이 여성으로 변모했다.게다가 시공을 초월해 헌신적으로 스미스를 사랑하는 착한 마음씨에 평화·환경보호주의자이기도 하다.포카혼타스는 숨진지 3백여년만에 17세기판 원더우먼으로 거듭나게 됐다.
  • 강아지/침대/장례식/한국영화 「소재파괴」 바람

    ◎「꼬리치는…」「은행나무…」「학생부군신위」에 등장/파격·환상적 내용설정에 극흐름 큰 비중/테마주의 경향 탈피… 이색소재로 “신선감” 한국영화에 소재파괴 바람이 불고 있다.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충무로에 이른바 「기획파워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해지기 시작한 우리 영화의 소재가 최근들어 강아지,침대,장례식,폭음족 등에까지 이어지면서 영화계 전반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이색소재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작품은 「꼬리치는 남자」(제작 기획시대,감독 허동우).국내 첫 시도로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바람둥이 장님이 우연한 사고로 자신의 강아지와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부터가 파격적이다.강아지로 변신한 남자가 미모의 내레이터 모델과 함께 지내는 가운데 여자들만의 세계를 훔쳐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이 작품에서 빙고(BINGO)란 이름의 강아지는 인간의 관음증 등 부정적 속성을 드러내는 유력한 수단으로 등장한다.주인공 빙고는 미국영화「빙고」「에어 헤드」「아이 러브 트러블」등에 이미출연한 적이 있는 베테랑 연기파.현재 절반가량 촬영을 끝낸 상태로 10월 중순경 개봉될 예정이다.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은행나무 침대」(제작 신씨네)도 새로운 소재의 영화.전생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천년뒤 환생해 사랑을 나눈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줄거리다.궁중 가야금 악사 종문(한석규)은 공주 미단(진희경)과 비밀스런 사랑을 나누다 공주의 약혼자인 황장군의 질투로 죽음을 당한다.악사와 공주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하지만 천둥번개에 무참히 쓰러진다.시간이 흘러 석판화가 수현으로 다시 태어난 악사는 우연히 노천시장에서 은행나무 침대를 구입하게 된다.미단공주의 영혼이 깃든 이 침대에 몸을 눕히는 순간 수현은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미단공주를 다시 만나게 된다.이렇듯 이 영화에서 은행나무 침대는 이야기의 극적 반전을 이루는 매개물로 단순한 소품 이상의 역할을 한다.오는 12월 개봉될 예정. 올봄 「301·302」로 실험적 영화문법을 선보였던 박철수감독이 만드는 「학생부군 신위」는 장례식을 소재로했다.영화의 무대는 기와지붕에 잡풀이 우거져 있는 고색창연한 시골 초상집.종손어른의 5일장을 계기로 모여든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시추에이션영화 형식에 담는다.새달초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박철수 감독은 『이제 우리영화도 지나친 테마주의 경향에서 탈피해야 할 때』라며 『장례영화인 만큼 슬픔의 정조를 바탕으로 하되 죽음을 통해 산자의 삶을 희화하는 지독한 코미디영화로 꾸미겠다』고 말했다. 지난 92년 새우잡이배의 문제를 다룬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상업영화권에 데뷔한 홍기선 감독의 「폭주족」(가제·제작 영필름)도 주목을 끌만한 작품.조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에 절어 지내는 한 잡지사 기자의 정신적 방황을 통해 좌표를 잃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다.새달중 촬영에 들어갈 예정으로 주인공 진호역엔 조재현이 캐스팅됐다.이밖에 엘리베이터를 주요공간으로 한 심리스릴러 「엘리베이터」,우리의 전통무예를 다룬 「대륙혼」등도 이색소재의 영화로 기획단계에서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식민지 지배·침략 통절히 반성”/일 총리 종전50주년 담화/전문

    ◎전후문제 성실히 처리… 아태국에 신뢰 쌓을터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분 한분의 영지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미국,나아가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배양해 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현대화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연구를 지원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 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제국의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또 역사가 초래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만지한 오늘,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서서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나가야 합니다.동시에 우리 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며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긴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할 곳은 신의만한 것이 없노라」고 합니다.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정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모든 것은 신의 은총」 라스트신 압권/박진감 넘치는 소설기법을 영상화한 걸작 이 작품은 1936년에 소설로 발표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대표작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다.그는 철저하고 엄격한 연출력으로 영화예술의 자유로운 표현기법을 보여줌으로써 프랑스가 낳은 세계 최고의 지성적인 감독으로 부각되었다. 영화는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가 쓴 일기장이 펼쳐지면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어 펼쳐졌던 일기장이 덮이면서 끝이 난다.현대사회의 모든 악과 싸우다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죽게되는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는 현대인의 마음을 파고드는 권태와 겉으로는 건전한 생활을 하는 듯한 교구 사람들속에 웅크리고 있는 방황,증오,교만,반항등의 악과 싸우게 된다.이러한 악은 더욱 파급돼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영혼까지도 타락시키며 결국 그들로 하여금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한다.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는 이 싸움을 하는데 있어 상관들의 비난과 백작가의 반발,소녀들의 깜찍스런 음모 같은 것들에 의해 곤경을 겪는다.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은 투박한듯 하면서도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직관력을 가진 토르씨의 늙은 신부뿐이다. 이와 같은 곤경에 빠진 환경속에서도 앙브리쿠르 신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사랑을 잃고 신에 대한 증오심으로만 가득찬 백작부인의 희망과 사랑을 되찾고,신부를 골탕먹이려고 음모를 꾸민 소녀 세라피타가 어느 날 언덕위에 위암의 고통으로 탈진해 쓰러져 있는 신부를 구원해주게 되며,백작의 딸 상탈도 신의 은총을 받게 된다. 브레송은 원작자인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구사한 방대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소설기법을 그의 까다로운 카메라 서술법으로 재구성했다.브레송은 앙브리쿠르 신부의 심리현상을 초현실적인 영상기법을 사용해 추상적으로 만들어서 그의 운명과 싸우는 인물들의 내적 시간의 흐름을 우리에게 직접 느끼게 해준다. 앙브리쿠르 신부의 핏기 없고 무표정한 얼굴의 큰 화면은 우리에게 죽음을 동시에 암시한다.백작아들의 죽음,백작부인의 죽음,델방드 의사의 자살,마지막에는 신부의 죽음이 있다.그리하여 이 무표정한 얼굴들과 신의 불투명한 존재는 브레송의 작품을 진정한 비극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영화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이 승리를 거두지만 거기에는 악의 본질적인 약점이 있다.증오로 표시되는 본질적인 악도 신의 사랑에까지 승화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의 사랑(파스칼적인)앞에서는 역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그러나 제아무리 강한 이 사랑의 힘도 「은총」으로 순화되기 전에는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없을 것이다.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앙브리쿠르 신부가 말한 『모든 것이 은총이다』라는 말은 나자신 내면의 소리로 다가온다.『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다』
  • 남을 미워하지 말라고는 했지만(박갑천 칼럼)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다.미워하는 쪽으로부터 어떤 씨양이질이라도 받지않도록 술책상 후히 대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주고싶진 않지만 그런 엉너리는 다음에 생길지 모르는 티격태격을 막을수 있다는 뜻도 곁들인다.상대방이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버성겼던 감정의 앙금을 씻어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미운 사람 떡하나 더 준다』면서 호의로 고쳐 써나가 봄직도하다.남을 미워함은 내 영혼을 좀먹는 일이라지 않았던가. 남을 미워하는 일은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수 있겠다.첫째는 개인대 개인의 관계다.아네르센의 「미운 오리새끼」가 못생긴 모습으로 해서 받게 되는 미움 같은것.쥘 르나르의 「당근」에서는 어머니가 그아들을 미워하고 있지 않던가.붉은 색 머리칼에 주근깨 투성이여서였을까.몹쓸 계모같이 군다.르나르 자신이 어린날 어머니의 미움을 받았던 기억을 되살린 작품이라 말하여진다. 두번째는 공적인 성격을 띠는 미움.그리스도에게도 그런 미움은 있었다.그건 마태복음 23장만 들춰봐도 알수있다.『화있을진저,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것이 가득하도다』(27절).『뱀들아,독사의 새끼들아,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 서릿발치는 말본새이지만 사감은 아니었다.위선과 감언으로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데대한 공적인 미움이었을 뿐이다. 같은 관점에서 공자도 그런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자공이 『군자도 미워하는 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때 한 대답.『남의 나쁜 점을 들어 말하는자를 미워하며 아래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 헐뜯는자를 미워하며 용감하기만 할뿐 도리에 막힌자를 미워한다』 공자다운 미움의 가리사니였다고 하겠다.공자의 물음에 답하는 자공의 미움도 비슷하다.『남의 지혜를 훔쳐 제 지혜로 삼는자를 미워하며 불손을 용기로 아는자를 미워하며 남의 비밀을 들춰내면서 정직하다고 여기는자를 미워합니다』 비록 어렵다해도 개인끼리의 미움은 「떡하나 더주면서」 털어나가는 것이 화평을 생각하는 삶의 지혜라 치자.하지만 예수나 공자가 말했던 「공적인 미움」까지도 떨쳐버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람마음 아닐는지.신문을 읽어나가느라면 숱한 진티속에 얽힌 미움의 대상이 한두가지가 아니다.『화있을진저…』해주고 싶어지는 사람들.정치판에,공사판에,공직사회에,종교계에,교육계에,또 어디에….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자유와 평화의 빛나는 승리(사설)

    전사자의 이름만을 검은 돌벽에 새겨 늪지처럼 낮게 조성한 베트남 기념공원에 비하면 그 맞은편에 새로 개장한 한국전 기념공원은 거의 눈부시다.죽은이의 이름이나마 탁본하려는 슬픈 행렬이 이어지는 베트남전 기념물 공원보다는 한국전 기념공원이 더 조형적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똑같이 젊은 미국 군인들의 산화일지라도 자유를 지켜낸 자부심과 그렇지못한 한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기념탑을 제막하면서,그 자유를 기초로 번영을 일궈낸 혈맹의 한국 대통령이 「역사의 진전에 자부심」을 나타내는 연설을 하게 된 것에 한국국민은 자긍심을 느낀다.김영삼 대통령은,자유세계가 「6·25전쟁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처음으로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저지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사실」을 세계에 당당히 상기시키고 있다.「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미국국민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육성으로 들려준 이 기회를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전쟁에 참가하여 귀하게 희생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고마움을 말할 수 있었던 일도 우리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대통령의 말처럼 6·25는 「먼 훗날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전쟁」이었음을 오늘의 세계는 이미 알고 있다. 그와 함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우리의 젊은 영혼들에게도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한다.그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는 이념의 억압과 빈곤만이 현재하는 삶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국 건국의 기념조형물이 즐비한 워싱턴 심장복판에 세워진 채 새 명물로 등장한 한국전 기념공원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몰려들어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칭송한다.자유란 거저 수호되는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실감시킨 한국은 훌륭한 나라다. 오늘에 이르러 기념공원이 마련된 역사적 의미도 그런 것이다.한국전에 대한 다소 왜곡된 일부의 시각이나 관념의 유희도 이로써 정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아옌데 에세이집 「파울라」 인기/73년 암살된 칠레대통령의 조카

    ◎의료사고로 죽어가는 딸 병상서 쓴 회고록 「영혼의 집」의 작가 이자벨 아옌데가 죽은 딸의 이름을 딴 에세이집 「파울라」를 펴냈다.딸의 병상을 지키다 자신을 송두리째 삼키려는 분노와 싸우려 써내려간 이 책은 현재 미국,남미,유럽에서 줄곧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다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전한다. 파울라가 1∼2주 케이스인 가벼운 신진대사 장애로 입원했다 의료사고로 몇달간 혼수상태끝에 숨진 것은 지난 92년.억울한 딸의 머리맡에서 아옌데는 세갈래 선택에 맞닥뜨린다.자살과 병원을 상대로 한 법정대응과 책을 쓰는것.결국 어머니는 딸의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로 결심한다.이렇게 병상일지로 시작된 기록은 어느덧 그녀의 어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었던 그녀의 삶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으로 옮아갔다. 아옌데는 지난 73년 피노체트 쿠데타로 암살당한 살바토레 아옌데 칠레대통령의 조카.그녀는 외교관이었던 의붓아버지를 따라 라 파즈와 베이루트 등을 전전하며 사춘기를 보냈고 칠레로 돌아와 20세부터 잡지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삼촌의 실각후에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베네수엘라로 강제추방된 그녀는 유배지와 다름없는 이곳에서 82년 처녀작 「영혼의 집」을 써 일약 유명해진다. 우리에겐 제레미 아이언스,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 더 친근한 이 소설은 서릿발같은 칠레의 근·현대사를 4대에 걸친 가족사와 교직한 작품.초자연적인 운명에 이끌리는 사람들의 일화가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때문에 이 책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남미의 위대한 작가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비견돼 왔다.하지만 『내게 있어 마술적 사실주의란 한낱 문학만이 아니라 삶의 곳곳에서 만나볼수 있는 것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그녀의 할머니는 실지로 눈빛만으로 설탕통을 옮기는 초능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자신을 괴롭히던 한 어부가 그 다음날 죽어나간 여덟살 무렵의 섬짓한 경험도 그녀에게 삶의 생생한 마술적 섭리를 보여줬다. 이처럼 「파울라」를 통해 지은이는 그 자신 환상의 세계에서 오히려 현실의 속내를 엿봐왔음을 어느때보다 고백적 어조로 말한다.항상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말해온 아옌데가 이 책을 통해서는 자신의 절망,영적인 삶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근처 소사리토에 있는 아옌데의 별장에서 파울라의 조카가 태어난 것은 파울라가 숨을 거둔지 몇달뒤.병원에서 옮겨진 파울라가 숨을 거둔 바로 그 방에서였다. 파울라의 사진과 기념품들로 가득 들어찬 그 방에서 아옌데는 이제 『나는 마침내 인생은 모든것을 잃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소년이 되면 아기시절이 사라지고,어른이 되면 다시 소년시절을 잃듯이.그러니까 매일 아침 우리는 이순간 가진 그대로를 축복해야 한다』고 말하게 됐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코트디부아르 「평화의 성당」(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19)

    ◎3년만에 건립한 세계최대 성전/콘크리트 기둥·대리석을 조립식으로 축조/“영혼없는 건축”… 집권자의 과대망상적 산물/높이 170m 총33만 8천여명 동시 미사참여 가능 명지대학교 최재필 지금은 작고한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새삼 경탄을 하게 된다.김환기화백의 그림은 그저 조그만 네모와 그 속의 점들이 커다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이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이거 뭐 이래? 애들 장난같잖아』하는 반응을 보일는지 모른다.아무런 뜻도 없는(다시 말해서 의미있는 형태가 아닌)그저 조그만 무늬의 반복은 시정 아낙네의 치마폭에 인쇄된 무늬와 무엇이 다를까 하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김화백이 네모 하나하나,점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김화백은 노년이 되어 마지막으로 그 큰 캔버스에 네모 하나,점 하나를 찍으며 그간 그의 일생에서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만나서 좋았던 사람.이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젊었을 시절 신세를 졌던 사람.김화백은 네모 하나 점 하나를 그려가며 이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리라.밤이 새도록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새벽 그 넓은 캔버스에 이제는 더 채워넣을 공간이 남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때,그는 그가 그동안 보냈던 삶의 전부가 이 한장의 캔버스에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하며 탈진한 그의 육체를 뛰어넘는 초월의 경지를 느꼈으리라. ○규모 웅장… 감동은 없어 바로 이런 것이 예술품의 가치가 된다.이러한 가치는 비단 미술품에 그치지 않는다.건축도 마찬가지다.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물도 이것이 땅 위에 굳건히 서게 되기까지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것에 용해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유럽에는 대성당이 많다.로마 바티칸시의 성베드로 성당,파리의 노트르담사원,런던의 성바오로 성당 등.이들 성당 앞에 서면 그 웅대한 규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까지 정열을 쏟아 만들어 놓은 세심한 장식 디자인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이들 건물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렸다.중세의 장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말이다.이들중 대부분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된 건물을 보지도 못했다.그렇지만 이들은 벽돌 한장한장을 쌓아가며 스테인드글라스 한조각 한조각을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또 그것이 아름다웠든 그렇지 못했든지를 막론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며 자신이 마치지 못한 작업은 그의 아들에게,그의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그래서 수백년이 흐르면 비로소 그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성당이 완성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이보다는 인내심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바로 5년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단 3년만의 공사 끝에 건립되었다.더구나 이 성당은 본고장 유럽에 있지도 않다.「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이름지어진 이 건물은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라는 나라의 야무스크로시에 세워진 것이다. 성당 중앙부의 돔은 지름이 90m에 이르며,꼭대기의 높이는 지상에서부터 1백70m니 우리나라 63빌딩보다 약간 낮은 정도다.그러나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몇개가 이 돔 안에 들어갈 수 있다.성당 내부 제단의 캐노피(차양)높이만도 9층 높이가 되며,10층 건물의 높이를 가진 창문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총면적은 2만3천평에 이른다.그뿐이랴.이 성당에는 좌석이 7천석이 있고,추가로 1만1천명이 서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게다가 대리석이 깔린 옥외광장은 3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모두 총합 33만8천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코트디부아르의 행정수도로 근래 새로이 개발된 야무스크로시의 총인구가 3만명을 넘지 못하고,그중에서도 카톨릭 신자는 4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렇듯 비현실적이다 못해 과대망상적으로 큰 성당을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인 펠릭스 우페이 바냐다.참고로그는 코트디부아르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제껏 35년간 대통령을 해오고 있다. ○63빌딩보다 약간 낮아 우페이 바냐 대통령이 어린시절,그의 고향 야무스크로에는 성당이 없었기 때문에 영세를 받기 위해서 수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그의 고향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고향에 아름다운 성당을 갖고자 하는 개인적인 염원 자체야 높이 사 줄만 하지만,이러한 염원이 과대망상적인 사고로 귀결지어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이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3년만에 뚝딱 지어졌다.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피에르 카브렐리라는 건축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을 하고 있다.처음 우페이 바냐 대통령에게 불려간 자리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대한 꿈을 이야기했다.나는 요즈음 누가 이런 고전양식의 성당을 지으려고 할까하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그리고는 이 성당을 언제까지 완공해야 할는지 물어보았다.대통령은 바티칸의 교황이 4년만에 한번씩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그가 작년에 왔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다음번 방문까지 몇년이 남았는지를 나보고 계산해 보라고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대의 성당은 3년만에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기술이 없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돌 하나하나를 깎고 기둥을 하나씩 만들어 지은 중세의 성당과는 달리 이 성당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부재(공상에서 미리 만든 콘크리트 기둥이나 벽체 등)를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을 써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김환기화백의 네모와 점에 녹아든 영혼,또는 중세 장인들의 수공예작품에 밴 종교적 열정을 여기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 대통령의 업적” 과시 어느 후진국 장기 집권자의 개인적 욕구에서 시작되어 과대망상적으로 지어진,그러나 영혼이 없는 건축,이것이 이 세계최대 성당의 현주소다.우페이 바냐 대통령의 나이는 현재 90세가 넘었다.그가 대통령직에서 어떤 연유로든지 물러난 후에도 이 성당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지 우리는 예측할 수가 없다.후진국의 장기 집권자나 식민통치자들은 거개가 다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 개인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대형 구조물을 한 두개쯤은 지어놓게 마련이고,이들이 권력을 잃은 후에도 대부분의 이러한 건축물은 오래지 않아 장대한 기념식과 함께 허물어지거나,요행히 그렇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쇄락해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멀고 가까운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올 8월이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게 된다.5공 시절 세워진 천안의 독립기념관의 그토록 장엄한 모습이 요즈음 그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한 퇴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국민의 성금(?)으로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그래도 중간에 무산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34년만에 처음으로 인구 1천만의 국제도시 서울에 민선시장이 선출되었다.포부도 크고 개인적인 신념도 가지고 있겠지만 세계최대의 무엇을 서울에 들여놓고자 무작정 밀어붙이는 일만은 삼갔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출간/시인·소설가 김승희씨(인터뷰)

    ◎“권태에 빠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산물” 『고정관념,관습적 사고 따위의 당연히 옳다고 못박혀온 생각들을 한번쯤 놀려먹고 싶다는 욕망이 이 책을 낳았어요』 신작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세계사간)을 낸 시인 겸 소설가 김승희씨(44).책 서문에다 그 싸움이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반쯤 자기반성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시엔 길들일 수 없는 지은이의 생래적 야성이 생생하게 부조돼 있다. 『91년이후 쓴 시인데 너무 많아서 30여편쯤 덜어내고 묶었어요.권태나 무위가 휘감아올 때 달아나듯이 썼는데 그게 이렇게 두꺼워져버렸네요』 시인은 「무기력·망각·순응」의 지문을 「핏속에 DNA처럼 입력」한 채 주어진 틀에 삶을 결박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야만스러운 열정이여/나에게 와달라」고,신내림을 부르는 무녀처럼 외친다.「가장 야만스러운 열정/잔혹한 그 검은 웃음이 없다면/누가 우리를 그물에서 해방시킬 것인가?」 그물을 뚫고 날으려는 열정은 시인을 일견 평온한 듯한 일상에서 떨어내기에 필연적인 아픔을 낳는다.하지만 시인은 이같은 상처를 삶의 비극적 조건으로 보기보다 비상의 동력으로 적극적으로 감싸안는다.「상처의 용수철/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19세기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고 삶의 필연적 불구성을 읊었지만 김승희는 「혼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고 되묻는다.영혼의 상처에서 별의 가능성을 본다는 데서 그의 시는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드문 영웅적 울림을 갖는다. 『풀브라이트 펠로십으로 오는 26일부터 1년간 버클리대에 나가 한국학 세미나와 강의를 열 것』이라는 시인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버리지 않은 비상의 꿈을 말하고 있다.
  • “은영아… 내딸 은영아…” 끝내 실신/영구차 잡고 통곡… 몸부림

    ◎“요단강 건너서…” 눈물의 강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3일까지 91명의 장례가 치러진데 이어 4일에도 희생자 7명의 장례식이 서울시내 6개 병원에서 가족과 친지,친구 등의 통곡과 오열속에 치러졌다. ○…상오 7시5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서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조여오는 육신의 고통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 71시간을 버티다 가까스로 구조된 지 2시간여만에 숨진 이은영(21)양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박종성 신부의 집전으로 가족과 친지 등 조문객 30여명의 애절한 흐느낌 속에 거행된 이날 장례식에서 영혼 출발인사인 연령회에 이르자 애써 슬픔을 가누며 자리에 앉아있던 어머니 송희갑씨(44)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양과 가장 친했던 박은진(22)양은 『메이크업 기술을 배워 웨딩숍에 취직하겠다던 꿈을 이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느냐』며 오열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이양의 동생 진호군(17)이 촛불로 누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밝히며 영정을 들고 운구차에 오르자 어머니송씨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은영아,내딸 은영아』를 목놓아 불렀다. 콘크리트와 철근더미에 깔려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며 이종사촌언니 권은정양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할 만큼 나쁜 짓은 안했는데…』라며 지상의 삶을 원망했다는 이양의 영혼이 영원히 고통없는 천상의 나라로 떠나는 순간이었다. ○…또 상오 8시30분 서울 동부시립병원에서는 서문여고 3학년 정담비양(18)의 장례식이 같은 반 친구들과 교회신도 등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정양의 담임선생님은 『담비는 우리 반 학생 가운데 성적이 가장 우수했으며 성격도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며 고인을 애도했고 「요단강 건너서」라는 찬송가가 울려퍼지자 친구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이밖에 서울 삼성의료원,서울 성심병원,세림간호병원,여의도 성모병원 등 4개 병원 영안실에서도 위자료 등을 노린 파렴치범이 시신을 가로채는 바람에 2일 하오 가족 품에 안긴 민진홍(23·삼풍백화점 가정용품 코너 직원)씨와 조희주(27·여),진순덕(23·여),이은주(25·여),김선미(36·여)씨 등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 무더운 여름을 서늘하게/추리·스릴러 소설 “봇물”

    ◎「DNA」·「공포특급3」·「몬태나의 북쪽」…/의학·법정·테러·공포·SF 등 소재 다양 여름 독서 성수기를 앞두고 추리·스릴러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예년과 다른 특징이라면 독자들의 기호가 세분화한 데 맞춰 의학·법정·사회·테러·공포·SF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다투어 소개된다는 점.또 스릴러소설을 내지 않던 대형 출판사들이 새로 대열에 끼어든 점도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의학스릴러물.「돌연변이」「바이러스」등을 크게 히트시켜 국내에 의학스릴러 붐을 일으킨 로빈 쿡의 신작 「DHA」와 「메스」(이상 열림원 펴냄)가 최근 선보였다.「DHA」는 유전자 조작을,「메스」는 태아를 불법으로 주고받는 것을 소재로 대규모 병원의 구조적인 비리를 파헤쳤다. 「낙태를 반대하는 대법원장에게 강제로 임신을 시킨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제4의 절차」(스탠리 포틴저 지음·서적포),인체 장기 및 태아의 거래를 다룬 국내 소설 「옴니버스」(김민준·해난터)도 이 분야에 속한다. 공포를 주제로 한 사이코스릴러로는 「공포특급­3」과 「어둠의 묵시록」(이상 한뜻)이 돋보인다.요즘 추리물 출판이 장편에 치중하는 데 비해 두권 다 일급 작가들이 동원된 단편집이란 점이 특별나다.「공포특급­3」에는 최수철·고원정등 국내 작가 9명이 참여했고 「어둠의 묵시록」은 앨러린 퀸등 세계적인 추리작가들의 대표작을 실었다. 배심원 여성의 악몽과 살인사건을 연결한 「셀프 디펜스」(조너선 켈러만,열린세상),초능력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소설 「나이트헤드」(아이다 조지·가나다라)도 짜릿한 전율을 안겨준다. 독특하고 품격높은 추리소설로는 「종소리를 삼킨 여자」(로베르트 반 훌릭·디자인하우스)를 꼽을 수 있다.7세기 당나라 때 실존인물 디 젠지에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추리적 재미에 문학적 향취,사실적인 풍속 묘사가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디 젠지에 시리즈로는 「쇠못 세개의 비밀」에 이어 두번째로 소개됐다. 이밖에 ▲지난해 「에드거상」 최우수장편작 수상작인 「여류조각가」(미네트 월터스·중앙미디어) ▲「인문학적 미스터리」를 내세운 「영혼의 음모」(독토로우·한뜻)도 독특한 추리소설이다. 한편 김영사가 올해 스릴러소설 출간에 나서 펴낸 「사면」(제임스 그리판도)과 「몬태나의 북쪽」(에이프릴 스미스)등이 독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장진홍 의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 조선은행 폭파 “미완의 거사”/일제만행 철저히 조사… 국제사회 고발시도/동경경시청 테러 모색중 붙잡혀 순국자살 『육체는 죽는다해도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겠다』 창려 장진홍 의사(1896년 6월6일∼1930년 6월5일)가 일제에 의해 사형이 확정된뒤 대구 옥중에서 일제총독에게 보낸 서한문의 한 대목이다. 의사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의사는 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교,2년동안 군사지식을 배우고는 제대해 곧바로 독립운동단체인 광복단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사는 1918년 만주 봉천(심양)을 거쳐 연해주로 건너가 광복단 동료들과 함께 한인 청년 80여명을 규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훈련이 어렵게 되자 다시 귀국,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맞았다. 의사는 일제가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등을 저지르자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국제사회에 고발코자 전재산을 정리해 한국인 피해조사작업을 펼쳤다. 서적행상으로 가장해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학살·방화·고문사실등을 기록한 「조사문」을 작성,인천함대에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의사는 국내 독립운동이 미약해지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에게 타격을 가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27년 4월 의사는 동료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약전문가 굴절무삼낭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굴절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웠으며 만주와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뇌관등을 구입했다. 의사는 이어 1927년 8월 시험적으로 제조한 2개의 폭탄을 칠곡 산중에서 터뜨리는 폭파시험을 가졌다. 폭파위력을 확인한 의사는 혼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폭탄투척장소를 경북도청·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대구 부호가등 5곳으로 선정하는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는 거사를 위해 다시 6개의 폭탄을 제조,1927년 10월18일 거사에 나섰다. 이날 상오 9시쯤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대구시내 덕흥여관으로찾아온 선생은 『길전상점 점원인데 이 여관에서 며칠간 묵게 됐다』고 신분을 위장하고 투숙했다. 선생은 이어 상오 11시30분쯤 폭탄을 4개의 벌꿀상자속에 넣어 싼뒤 여관점원에게 『이웃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이 선물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대구지점의 한 일본인 은행원에게 이 상자를 전달했으나 이 은행직원이 폭탄폭발 직전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폭탄임이 들통났다. 은행원들은 서둘러 폭탄 도화선을 자르고 다른 3개는 길옆으로 내다놓았다. 그러나 11시50분쯤 길옆의 폭탄 3개가 폭발,신고를 받고 쫓아온 일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은행창문 70여장이 부서졌다. 이 거사로 대구시내는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고 일경은 총비상이 걸렸다. 의사는 미리 여관을 나와 선산군의 한 동지집으로 피신해있었다. 일경은 범인을 찾을 수 없자 전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정기등 8명을 검거,고문으로 거짓조서를 받아 공판에 회부했다.민족저항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건국훈장 애국장)도 이 때 사건에 연루돼 무고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의사는 이어 1928년 다시 영천경찰서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예 일본땅에서 거사를 할 생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11개월동안 이곳저곳 폭탄투척장소를 물색하던 의사는 동경 일제 중의원과 경시청을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거사후 일본을 탈출할 계획까지 치밀하게 짰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에게 이미 혐의를 두고 검거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다. 일제는 거사를 며칠 남겨둔 1928년 2월13일 의사가 묵고있던 대판시내 안경점을 급습,의사를 체포했다. 체포된뒤 대구로 압송된 의사는 일경의 심문과정에서 『조선은행 폭탄사건은 혼자 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동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의사는 사형이 확정되자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배고픈 지식인(두만강 7백리:16)

    ◎콩나물 장수만도 못한 의사·작가 수입/자금난에 출판사들 잇달아 문닫고/문인들은 천직 버리고 장사꾼 전업/이욱·윤동주시인 후대들에 「우리정신」 심어줘 이욱의 시비를 찾아 덕화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그의 시비는 북한땅 무산이 바라다 보이는 두만강가 산 언덕에 서 있었다.이욱은 1907년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숨을 거둔 곳은 연길이었는데 그해가 1984년이다. 시비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한동안 묵도를 올렸다.나는 그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비 앞에서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추모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반동학술 권위자로 몰려 연변대에서 쫓겨났다.그래서 화룡시 서성진으로 하방되었다.시인 이욱을 그때 만났다.어린 중학생이었던지라 시인이 쌓아놓은 책들을 목마른 사람 물 마시듯 탐독했다. ○반동학술로 몰려 수난 이욱 시비의 정면에는 19 57년에 쓴 시가 새겨있다.「칠순/할아버지/나무를 심으며/어린 손자를 보고/싱그레 웃는/그 마음/그 마음/그 마음」이라는 시비의 시에서 어떤 명언을 떠올렸다.내일 세상이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민족의 선각자들은 후대를 위해 사과나무와 같은 정신을 심어왔다.이상설,김약연,윤동주 같은 분들이 그들이다. 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 문화잠장의 말에서 오늘날 조선족의 문화,선인들이 뿌린 정신의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친은 가수였디요.광복 전에 회령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해서리 축음기와 판 20장을 상으로 받았다고 기래요.아버님은 김정구 이화자 백년설 남인수와 같이 목단강에 가서 공연했다는 말도 들었시요.공연기간이 끝나기 전에 소련 홍군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진격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귀국했는데 이화자만 남았다는 거디요.이화자가 못떠난 것은 전염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합데다.데려다 치료를 해준 어떤 한족의 은공을 못 잊어 이화자는 한족과 살다가 문화대혁명 때 결국 잘못되었다는 겁네다』 이렇듯 고급문화나 대중문화 모두가 한반도에 뿌리를 두었다.그러나 광복후 소련의 영향을 똑같이 받은 중국과 북한의 문화가 연변 조선족 문화를 좌우했다.19 58년에 일기시작한 문화대혁명의 대우파 투쟁에서는 또 사정이 바뀌어 북한의 문화가 밀려났다.그 이후 70년대 초에는 중국과 북한관계가 다시 개선되었다.조선어는 평양을 기준 삼아야 한다는 주은래의 담화가 나올 정도였다.따라서 언어규범이 북한을 닮아갔고 모든 분야의 문화가 중국과 북한의 혼합형으로 변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는 더 큰 변화를 맞았다.그것은 한국문화였다.한국문화를 닮아보려는 노력을 무던히 했고,실제 한국문화는 급속도로 번져나갔다.이에 대한 투쟁도 만만치 않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해에도 한국노래의 범람을 경계하는 광대극을 놀았다. ○북한의 언어규범 닮아 문화의 목적은 인간이 중시되어 세상이 보다 편리하게 열리는데 있다고 한다.연변의 원로작가 김학철선생은 미발표 소설 「20세기의 신화」가 문제되어 옥살이를 한 분이다.그가 연변 작가모임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적이 있다.반우파투쟁 당시 북경에서 실제 본 목격담이었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북경의 한 단위모임에서 어느작가를 우파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 다른 작가가 발언권을 얻었다.발언에 나선 작가는 『이 분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당하고만 있는 작가를 변호하고 6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용정시 고급중학교 운동장에는 시인 김성휘의 시비가 서 있다.1933년 용정시 백금향에서 태어나 1990년 작고한 이시인의 시 「시냇물의 흐름을/천천히 보아라/천리만리/먼먼 길도/자신 만만타/흐르고/흐르고/내처 흐르며/한생을/말숙하게/가는 나그네」.역대를 살면서 민족과 영혼을 팔아먹고 편히 살아온 좌파들의 양심을 두드리는 소리다.성급한 투쟁은 역사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정치투쟁은 이제사 끝났다.하지만 문인들은 요즘 경제사정에 충격을 느끼고,또 고민하고 있다.수술칼을 손에 쥔 의사가 면도칼을 든 이발사 수입만도 못하고 교수나 작가의 수입이 콩나물장수를 못 따라간다.그래서 많은 지성인들이 천직을 버리고 장삿길에 나서는 이른바 하해로 뛰어드는 것을본다.더구나 출판업이 곤경에 빠져들어 문인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연변인민출판사는 국가로부터 해마다 1백9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는다.그럼에도 1백43명의 재직자와 50여명의 퇴직자들의 인건비,기타 경비를 빼고나면 책을 찍어낼 돈이 남지 않는다.내가 근무하는 아리랑편집부에서 80년대 초에 1년에 30여종 문예도서를 발간했는데 지난해는 계획도서가 겨우 4종 뿐이었다.다른 몇종은 위탁출판으로 돈을 받고 대신 출판한 것인데 그것마저 몇종 안된다.그래서 한문도서를 찍어 번 돈으로 조선어책을 발간하고 있지만 그것도 근근득식이다. ○출판은 하늘이 별따기 요즘 작가들은 글을 써도 발표할 수가 없다.장편소설 한권을 발간하는데 자비로 1만5천원을 내야 하는데 그것은 교수급 지식인의 거의 2년 노임이니 개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혹시 정부나 기업인들의 찬조를 받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다.아무리 좋은 명작이고 좋은 글이라도 그것은 원고상태에서 죽어가는 형편이다.그리고 민간예인과 민담가들이 발굴되지 못한채 인생을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에따라 책을 통한 출판문화가 사라지는 경향이다.연변신화서점은 우리 민족도서가 가장 많은 곳인데 조선어책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종수가 적다.그리고 변강 향진의 상점엔 책이라곤 전혀 없다.그만치 농촌의 문화생활이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화룡시 덕화진에서는 원래 1년에 한번씩 운동대회를 열어왔다.지금은 2년에 한번으로 줄어들었다.그리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가 있는 날이면 영화관이 관중들로 꽉 찼다는 영화관이 문이 다 떨어져 나간 폐물로 되어 버렸다.용정시 백금향은 원래 문화보급이 잘되어 소문난 곳이었는데 지금은 문화잠은 있어도 문화활동은 없다.용정시 개산툰진 문화잠 책임자의 말에서 그 실상이 잘 드러났다. 『촌의 노인협회,부녀회,청년회의 활동차수로 보면 가관입네다.모여서 트럼프를 쳐도 통계에 넣으니깐요.경비난으로 지난해부터 문화활동이 정지됐지 뭡네까.촌마다 문화실이 있고 손풍금이 있지만 손풍금을 칠 사람이 없고 더구나 활동을 조직할 만한 청년 골간은 더욱 없습네다.똑똑한 사람들은 도시로 들어갔디요.연말회보를 하면서 이것저것 숫자는 많이 말하게 됩니다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 이말입네다』
  • 등록마감 현장(“열전” 6·27선거)

    ◎「여역 부풀리기」 많아 선관위 확인 “진땀”/“재산 1천억 아닌 1백억대” 정정 해프닝/신혼부부가 광역·기초의원 나란히 출마/60세 여장부 군수 출마… 기초장 여성후보 2호로 후보등록이 12일 마감되며 선거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른바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통합선거법정신을 존중해 후보자끼리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을 자제하는 대신 정책대결을 벌이자는 「공명선거다짐대회」가 번지고 있다. 개인유세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허용되자 후보자마다 유권자와 접촉하는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새벽부터 유세에 나서고 있다.반면 후보등록창구는 전날과 달리 한산했다. ○「공명」 결의대회 가져 ○…인천광역시장과 기초단체장선거에 출마한 민자당후보 11명은 이날 상오 최기선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공명선거실천결의대회를 갖고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선거문화정착의 선봉이 된다』는 등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 ○…전남 여천시 여천동에서 시의원에 출마한 황치종 후보(52·오성수산대표)와 오병선 후보(38·시의회부의장)도 여천동사무소에 모여 공명선거에 솔선수범하고 인격존중,불법·탈법선거운동척결,흑색선전 안하기 등을 지키며 고장발전에 앞장설 등을 공개적으로 다짐. ○…부산시장후보 3명은 꼭두새벽부터 유권자를 만나느라 동분서주.민자당 문정수 후보는 상오6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시장을 찾은데 이어 곧바로 사하구 신평동 신평지하철역에서 출근길 시민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전개.이어 ▲근로자와 점심식사 ▲아시안게임 유치위 총회 ▲부산시선관위 후보자공명실천대회 ▲부산역광장 개인연설회 등으로 꽉 짜여진 일정을 소화.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부산경찰청 교통정보센터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그의 일정 역시 ▲증산체육공원과 초량시장 공개연설 ▲평화시장 기사식당에서 저녁식사 ▲서면 천우장 뒷길의 정당연설회 개최 등 빡빡했다. ○…제주지사에 출마한 민자당 우근민 후보와 무소속 신구범후보는 각각 서귀포에서 연락사무소 현판식을 갖고 시장순회,가두연설 등 하루종일 한라산 남쪽지역을 집중공략. 민자당 우후보는 서귀포시장출마자 변성근 후보(민자) 선거대책본부와 자신의 서귀포사무소 현판식에 참석한 후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안덕면과 대정읍을 순회하며 지지를 호소. 무소속 신후보는 제주시수협 어판장을 거쳐 역시 한라산 남쪽지역으로 옮겨 서귀포상설시장,동명백화점,2호광장의 상가 등을 돌며 거리유세. ○“여론 호도한다” 흥분 ○…종로구 인의동 서울시선관위 접수창구에는 지난 92년 대선에 나선 김옥선 전의원(61·여)이 무소속 시장후보로 등록.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언론이 몇몇 후보만 선정해 「빅3」이니 「스몰3」이니 해가며 여론을 호도한다』고 흥분. ○…전북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는 민주당후보들은 유권자의 몰표를 유도하는 듯 플래카드를 같은 색깔로 만들어 눈길. ○…이인제 민자당 경기지사후보는 파주군 임진각에서 첫 유세를 갖고 『가장 민주적이고 깨끗하게 치러진 경기지사후보의 경선결과에 승복한 임사빈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 이 후보는 『엄정한 책임과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임 후보의 무소속 출마로 잃는것도 있지만 얻는 것이 더 많아 압도적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강조. ○…대구지역 12개 선관위는 후보들이 등록서류에 기재하는 최종학력을 과장하는 사례가 많아 정규학력을 확인하느라 진땀.후보들은 대부분 「XX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등 6개월짜리 비정규학력을 기재했는데,선관위 직원들은 일일이 전화로 정식학력을 재확인.선관위의 관계자는 『학력콤플렉스를 지닌 후보가 학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분석. ○…지난해 10월 기초의원끼리 결혼한 광주 북구의회 박정희 의원(29)과 남편인 전남 담양군의회 김영문 의원(37)이 이번 선거에서도 기초의원과 광역의원후보로 함께 출마. 남편 김 의원은 한단계 높여 담양 제1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광역의원에 출마했고 부인 박의원은 예전처럼 북구의원으로 출마. 91년 기초의원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당선으로 이목을 끈 부인 박의원은 『부부 공동선거전략을 준비했다』며 『남편과 함께 당선될 것』이라고 기염. ○…첫날 재산을 1천2백21억2천만원으로 신고한 포항 덕수동 기초의원후보조영우씨(35)의 재산은 잘못 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조씨는 토지의 평가액 1백18억원을 1천1백18억원으로 잘못 써넣는 통에 실제보다 10배로 부풀려졌다고 정정신고. ○한집안서 3명 출마 ○…청원군 현도면 군의원선거에는 이름이 같은 오해진씨(57·전현도농협조합장)와 오해진씨(38·축산업) 및 두 후보의 할아버지뻘인 오희업씨(67·농업) 등 3명이 나섰다.현도면은 주민 5천7백여명 가운데 세 후보의 집안인 보성 오씨가 43%로 문중의 결정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전주시장후보 교체여부를 놓고 말썽을 빚은 민주당 전북지부가 이번에는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순위를 바꿔 당사자가 항의하는 등 또다시 물의. 민주당 전북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4번으로 발표된 박원조씨(52·축산업)는 등록을 위해 도지부를 방문했다가 순위가 5번으로 낮아진 것을 알고 4시간동안 거세게 항의. ○…민자당의 전석홍 전남지사후보는 해남경찰서 앞 광장에서 연설회를 갖고 행정경험과 지역개발능력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정시채 민자당 전남도지부장과 최영철·지련태씨등이 참석한 가운데 24인승 승합버스를 개조한 유세차량 위에서 연설한 전후보는 『살림 잘하는 며느리를 뽑는 마음으로 전남의 구석구석을 잘 아는 기호 1번을 꼭 찍어달라』고 호소. ○등록 하룻만에 사퇴 ○…충주시 앙성면에서 시의원후보로 등록한 김관수씨(48)가 사퇴,지방선거후보중 사퇴1호를 기록. 11일 등록한 김씨는 12일 상오11시 충주시선관위를 찾아와 『고혈압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주민간의 대립과 마찰을 원치 않는다』며 사퇴신고서를 제출.김씨가 등록과 함께 낸 기탁금 2백만원은 전액 국고로 귀속된다. ○…경기 광명시의 전재희 후보에 이어 경남 하동군수 후보로 60세의 이영애씨가 이 날 등록함으로써 기초 단체장 여성 후보 2호를 기록.함양중학교를 나온 이씨는 농협에 근무하다 정모씨(60)와 결혼,남편 명의의 정부미 도정공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여장부로 『관권에 짓밟힌 민권을 되찾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며 『지지기반과 후원단체는 없지만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 합천군 제 1선거구에도환갑을 넘긴 김연이씨(62·여)가 군의원 후보로 등록.그는 홀몸으로 해인사 부근에서 식당을 경영한 것 외에는 뚜렷한 경력이 없어 출마배경에 주민들이 갸우뚱. ○탤런트아들도 동원 ○…청주 중앙공원에서 개인 연설회를 가진 민주당 이용희 충북지사 후보의 유세에는 탤런트인 이 후보의 막내 아들 재훈씨(33)가 나와 지지를 호소.MBC의 「사랑과 영혼」 「사춘기」 등에 출연하는 재훈씨는 『친분이 두터운 정한용·박상원·이재룡 등 인기 탤런트들이 도와주기로 했으며 정씨에겐 지지연설도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카사블랑카(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브그만의 청순한 지성미에 매료/보가트의 하드 보일드 연기 압권 가장 완벽한 여배우는 누구인가.평론가들의 집계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소피아 로렌으로 지목되었는데 그녀는 춤과 노래,각종 스포츠등 배우가 갖추어야할 기초실기가 풍부하다는,즉 다재다능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지성미가 뚜렷한 여배우로서는 단연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꼽는데 모두 주저하지 않았다. 나의 조감독 시절(6.25 동란 전후)처음으로 「카사블랑카」를 통해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순한 지성미를 접했을때 어떤 청정감에 매료되었던 아득한 기억이 되살아 난다.아마도 우리나라에 처음 잉그리드 버그만을 선보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버그만과 같은 스웨덴 출신의 미국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북구적인 신비감을 떠올렸다가 버그만의 지성미가 오버랩된다.뒤이어 나온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가 돋보일수록 버그만의 지성의 응결체같은 눈동자,알찬 얼굴의 윤곽은 지성을 추구하는 관객들에게 줄곧 절찬을 받아왔다. 험프리 보가트는 이미 1957년에 세상을떠났지만 올드팬들의 뇌리에는 그의 개성적 강렬함이 지금도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3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갱영화 전성시대부터 출발했으면서도 별볼일 없는 악역만을 거치다가 「카사블랑카」에서 그의 독특한 데드 마스크와 하드 보일드한(비정하고도 무감각하게 딱딱한)생김새와 연기가 빛을 내면서 당대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반나치를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보가트는 언제나 고독한 사나이로 열연한다.그러나 의협심이 강하며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자기 희생의 길로 들어서면서 고민하고,자유를 위한 사나이의 투혼을 깊숙한 영혼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과연 압권일 수밖에 없다. 모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의 인간군상들을 감독 마이클 커디즈는 입체적인 카메라 앵글로 스케치해나가면서 주인공들의 부피를 구축하며 요리해나가는 침착한 솜씨로 과연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만 했다고 하겠다.
  • 학자가 사회를 선도해야 한다/이수윤 한국교원대 교수(서울광장)

    우리사회는 지금 구한말의 개항기와 유사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공동선실현·정의구현의 주체인 국가의 역할은 약화되고 거대자본의 힘은 강화되는 신봉건주의가 확고히 자리잡아가고 있다.국민화합보다 국민분열이 촉진되고 있다.정치적 지도력은 충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정치세력은 사분오열되고 있다.세계최강국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세력각축을 벌이고 있다. 신봉건주의와 결합된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국가주의의 약화를 지향한다.그것은 표면현상일 뿐이다.세계체제 중심국가들 사이의 쟁투가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새로운 국제구조는 약육강식이라는 국제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약소국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사라졌다.강대국들의 세력각축은 불꽃을 튀기고 있다.작금의 국제정세는 세계주의적인 형식적 안정 속에서 국가주의적·지역주의적인 내용적 대혼란이 막 시작되는 상황이다.세계최강국들의 다극체제로 개편되고 있는 우리주위의 국제정세는 한층 더 난폭해지고 있다. 자주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정의롭고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려는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된다.거친 국제정세를 자주적으로 헤쳐나가면서 국가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국민화합이다.국민화합이 결여될 때 특권세력은 외국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소외세력은 누구를 위한 애국인가를 자문하게 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은 말해주고 있다.국민화합을 위해서는 과감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해야 한다.인간의 진정한 존재양태는 현상을 개혁해나가는 실천적 행동에 있다.인간은 동물처럼 주어진 현상에 만족하지 않는다.현상개혁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다.사회경제적 개혁은 진리에 입각한 학문이론에 근거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지금 우리사회에는 개혁의지가 확산되고 있다.개혁의 최대난관·최대문제는 진지한 개혁의지를 올바른 방향에로 인도할 수 있는 학문이론은 보이지 않고 현재보다 오히려 사회모순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학문이론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점에 있다.정치·사회·경제 등은 국가의 신체에 해당한다.학문은 국가의 영혼에 해당한다.영혼과 신체는 서로 상응하지만 영혼이 건전하면 병든 신체도 건강하게 될 수 있다. 우리사회는 그 학문적 영혼이 병들어 있다.지금 우리의 학문적 풍토는 특정국가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토대로 발전된 실증주의적 이론에 무비판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 이론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예속화된 대중들에 무관심한 사회적 주도집단의 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그 이론은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만이 존중되고 사회적 소외계층의 실질적 참여가 배제되는 정치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그 이론은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고교 출신들이 명문대학에 대거진학하여 사회적 계층구조가 세습화되는 현실에 대해 침묵한다.우리사회 위기의 근본원인은 학문위기에 있다.학문적 자주성에 입각한 학문개혁은 참다운 국가발전의 전제조건이다.학문적 자주성 없는 대외적 자주성 실현은 없다.학문적 자주성은 우리사회의 특수성에 집착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학문적 자주성은 「무엇이 진리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리를 찾아 그것에 입각해서 우리현실을 조명하여 활로를 개척해나가려는 것을 의미한다.사회적 위기일수록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역할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학자들은 진리외면적 현실타협을 지양해야 한다.학자들은 방관자적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학자들은 진리를 따라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나가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을 다시 한번 새롭게 자각해야 한다. 학문적 자주성에 입각한 학문개혁이 이루어질 때만 우리는 국민화합을 토대로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에 자주적으로 대처해나가면서 민족국가의 진정한 발전을 튼튼하게 구축해나갈 수 있다.
  • 옴교 무라이 살해/교주가 지시한듯/후지TV 보도

    【도쿄 연합】 지난 4월 23일 도쿄 옴 진리교 총본부앞에서 재일교포 청년에게 피살된 무라이 히데오(촌정수부·교단 과학기술청대신)는 아사하라 교주의 지시로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 TV는 23일 아사하라 교주가 지하철 사린독가스사건이 일어난 후 교단 간부들에게 『무라이의 입이 가볍기 때문에 영혼을 빼앗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 점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회의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추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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