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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가 김복희(이세기의 인물탐구:118)

    ◎부딪치는 모든 인연을 안무주제로/한지·상여·전통악기 등 우리것 춤속 용해/동서의 모든것 혼합·파격… 「한국적 춤」 고수 「변치않는 경상도 사투리」 「70년대의 몸매와 90년대의 몸매」 「풍경을 만들줄 아는 멋쟁이」 「우정」 「시시한 평문은 무시하기」 「뛰어난 음악 감식안」 「생선요리와 채소선호」 「연습때는 호랑이」 「작품에 임할때는 독」 이는 무용평론가 김영태가 김복희와의 20년 교류를 정리한 「김복희의 열가지 특징」이다. 김복희는 자신의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절대로 소극적이지 않다.어느 부분에서도 「호랑이」와 「독」의 요소를 속속들이 지니고 있다.정열적으로 자신을 설명할줄 알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승부근성이 대단하다.그의 춤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고 부딪치는 모든 인연」을 안무의 주제로 삼으면서 어떤 무대에서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한국적 춤」을 고집한다.그의 춤은 이른바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자료들, 이른바 백의와 한지와 탈 상여 부채를 끌어내고 대금 징 목탁과 구음을 춤에 인용하고 있다.또 자료와 자료들을 서로 접목시키거나 동서의 모든 것을 뒤섞어 보기도 한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파격하고 다시 용해시켜 춤의 탄성을 확고하게 확대해 나간다. 이광수소설을 원작으로한 「꿈,탐욕이 그리는 그림」에서의 대금과 첼로의 대비가 그랬고 서서히 역사의 뒤로 사라져가는 고려의 이미지를 윤이상의 「이미지」에 접목한 「반혼」이 그 한예이다.그중에서도 대작 「꿈,…」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조각」들이 현실의 가상공간으로 유도되는 과정을 오버랩과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불균형과 비대칭으로 해탈과 초월에 이르는 경지를 경건하게 그리고 있다.이 춤은 지난 95년,푸미폰 아둔야뎃태국국왕 즉위50주년을 맞아 태국정부가 마련한 기념공연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그의 극미한 거동조차도 춤의 흐름이며 춤의 다이내믹스와 짜임새가 놀라울만치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저돌적이면서도 앞장서는 행동은 71년 이화여대를 졸업하던 해부터 시작된다.그가 현대무용을 본격적으로 접하던 60년대 말의 우리의 현대무용은 육완순이 미국에서 배워온 마사 그레이엄과 호세리몬의 테크닉이 전부였다.그 시절에 스승을 떠나 독립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는 『예술의 세계와 사제지간은 별개』라고 선언하고 동기생인 김화숙과 스승의 문하를 떠났다. ○대학졸업때 독립선언 「우리만의 한국적 현대무용」을 만든다는 각오로 전통악기나 살풀이가락을 춤에 맞추거나 한국적인 정중동과 서구적인 역동성을 도입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긴 세월을 모색으로 보냈다. 그때의 첫무대가 불교적 색채가 짙은 「법열의 시」다.공연이 끝나자 『현대무용의 새로운 시각이다』 『아니다.저것이 무슨 현대무용이냐?』는 호평과 비난이 엇갈렸고 결국 「구성상의 재치가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계속 선보여 「자신들의 세계를 투철하게 성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예술은 체험의 산물」이라는 말에서 출발된 그들의 협력작업은 「예술가는 항상 자신에게 귀기울이면서 자신이 들은 것을 스스로 기록해야 한다」는 에머슨의말에 공감하여 지난 92년부터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그때부터 김복희는 그동안 축적된 자신의 세계를 솟구칠듯 분출시키면서 「오리지널 김복희춤」을 연속적으로 발표해 나갔다. 「십우도」를 바탕으로하여 「인간본성의 상실과 억제,정열과 정열의 파멸」을 심층있게 파헤친 「아홉개의 의문,그리고」를 비롯,그리움이 하나가 되어 한송이 꽃에 이르는 「국화옆에서」와 인체를 산이나 강에 비유한 「진달래꽃」,역시 종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장승과 그림자」는 인간의 현란한 삶이 「장승」이라는 목신의 유구함에 비해 아무것도 아닐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으로 무용계의 호평받았다.평론가 김경애의 「평소 불교적인 소재의 작품을 많이해온 김복희의 일련의 작품에서 또다른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는 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법열의 시」가 첫무대 그가 불교적 의식과 분위기를 좋아하게 된것은 대학 4학년때 우리의 전통악기를 사용한 작품 「탑」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부터다.절에서 울리는 북이나 종소리를 녹음해 오기도 하고 석가탑다보탑 등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실감하기 위해 그는 요즘도 자주 지방여행에 나선다. 그는 대구중심가인 상서동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완고한 편이었으나 어머니가 무용을 좋아해서 두딸중 장녀인 그에게 무용을 가르쳤다.6살때부터 함귀봉무용연구소에 다녔고 정소산 최희선을 거쳐 수도여사대 김남주 교수에게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자신의 무용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지 배운다는 욕심에서 그는 대학에 와서도 현대무용외에 김진걸의 「산조」,육태환의 「탈춤」을 사사했고 「반드시 춤은 몸으로만 춘다」는 타성에서 벗어나 「몸으로 내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은 춤」이라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불교적 소재 즐겨 사용 사업을 하는 김규현씨와의 사이엔 딸만 둘,74년부터 살고있는 연남동자택에서 가야금과 관음보살상이 걸린 서가에 앉아 그는 강의와 공연이 없는 날은 하루종일 탈춤을 연구하고 무당춤의 동작에 파고들어 새로운 동작을 창조하는데 천착한다.그의 저서에서 「춤은 끊이지 않고 의미를 바꾸면서 암시적이면서도 포괄하기 어려운 고리를 형성시킨다」고 한것처럼 그는 강렬한 창작력이 샘솟는 가운데 「가장 감정적이고 지적인 경험」을 그의 새로운 작품에 살려내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수 있고 춤을 출수 있을때까지 무대에 서겠다」는 그의 의지는 「춤을 춤으로도 보고 춤을 소리로도 듣고 춤을 그림으로도 생각하면서」 언제나 「열려진 감각으로 사물과 자연과 풍속과 세태를 감지」하는 자세를 지킨다.그리고 김영태의 지적대로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은 변치않지만 그의 춤만은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고 움직이면서 긴 인고와 고뇌끝에 마침내 「춤은 아름답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이제 한국현대무용언어를 정립한 시점에서 「그만의 의식을 위해」「인생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밤새 천둥소리를 이긴 또다른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는 현란한 창조의 빛을 무대에 흩뿌리고 있다. □연보 ▲1948년 대구출생 ▲71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제1회 현대무용발표회 「법열의 시」외 ▲74년 이대 대학원 졸업,이대 강사 ▲75년한양대 전임강사,제2회 현대무용발표회 「춘향이 이야기」외 ▲79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남불) 개인공연 ▲80년 브뤼셀 암스테르담 개인공연 ▲80∼85년 서울대 연세대 강사 ▲81년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82년 미국 LA개인공연 ▲83년 일본 ’83무용작가협회 특별공연(도쿄 도라노몬홀) ▲84∼85년 소극장운동 전개 ▲85년 파리 국제무용제 참가 ▲86년 현대춤협회 회장 ▲87년 파리 피에르카르댕극장 개인공연 ▲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혼돈」안무,서울국제무용제 참가 ▲89년 대한무용학회 부회장 ▲90년 멕시코 세르반티노시티 축제참가 및 5개 도시순회 공연 ▲91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서울예술단 「영혼의 노래」 안무 ▲92년 원광대 대학원(철학) 졸업 ▲93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94년 경기대 대학원서 박사학위,스페인 마드리드 라빌라문화센터 초청공연 ▲95년 태국국왕제위 50주년기념 페스티벌초청공연,광주비엔날레 축하공연 ▲96년 멕시코문화원초청공연,김복희무용단 창단25주년기념공연 〈저서〉「현대무용 테크닉」(80년) 「무용창작」(83년) 「무용론」(86년) 〈수상〉대한민국무용제우수상(79년) ’87최우수예술가선정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90년)
  • 연말연시 「안방 영화」 풍성/공중파·케이블TV 안내

    ◎KBS­「머나먼 여정」·「쿨 러닝」 등 부담없는 프로/MBC­시간때우기에 알맞은 국내외 10여편/SBS­액션·오락물 위주 편성,집중 방영 계획/케치원 등­「캐스퍼」·「당신이 잠든 사이에」·「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번 연말연시에는 어떤 영화들이 안방을 찾을까.연휴기간 TV앞에서 적지않은 시간을 보낼 시청자들은 무엇보다 각 방송사가 내보낼 영화프로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이에 맞춰 공중파 채널과 영화전문 케이블TV들은 다양한 영화를 준비했다.그러나 아무래도 공중파 보다는 케이블TV 프로그램들이 더 실속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KBS는 가족들이 함께 시청하기에 부담없는 영화를 주로 준비했다.1TV가 1월1일 방영할 「머나먼 여정」(하오2시)과 5일 내보낼 「쿨 러닝」(하오10시) 등이 그것.「머나먼…」은 개 두마리와 고양이 한마리가 주인을 찾아 긴 여행에 나서는 내용으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쿨 러닝」은 열대의 나라 자메이카 선수가 최초로 동계올림픽 봅스레이 종목에 출전한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물로 전편에 흐르는 레게음악이 이색적인 정취를 북돋운다. 국내외 영화 10여편을 마련한 MBC는 코믹성이나 「시간 때우기용」영화를 많이 마련했다.「수호천사」(1월1일 밤12시5분)「꼬리치는 남자」(2일 상오11시40분)「탑독」(3일 하오7시10분) 등. 장 마리 프와레 감독,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수호천사」는 돈 욕심때문에 양심을 버린 남자를 선(선)을 대표하는 수호천사가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내용.박중훈·김지호 주연의 「꼬리치는…」은 예쁜 여자를 밝히는 남자가 교통사고로 자기가 구박하던 개와 영혼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애정물이며,척 노리스 주연의 「탑독」은 전형적인 「시간 때우기」액션물. SBS도 흥미성 액션물과 오락물 위주로 방영할 계획.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프레데터」(30일 하오9시50분)에 이어 「빅」(1월1일 하오4시30분)「테러리스트」(2일 하오11시25분)「죽음의 땅」(3일 하오9시25분) 등을 방영한다. 톰 행크스,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빅」은 12살 소년이 하룻밤 사이에 35세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로 가족용 영화.최민수·이경영 주연의 「테러리스트」는 최민수의 액션이 돋보여 극장 개봉시 꽤 관객을 끈 작품이다.「죽음의 땅」은 스티븐 시걸이 주연·감독한 액션영화로 주인공이 알래스카로 날아가 돈벌이에 눈먼 사람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선굵은 스티븐 시걸의 액션이 돋보인다. 캐치원(31번)·DCN(22번) 등 영화전문채널도 다양한 특집영화를 마련했다. 캐치원은 꼬마유령의 우정과 감동을 다룬 가족영화 「캐스퍼」(1월1일 하오10시),풋풋한 사랑과 따뜻한 웃음을 소재로한 산드라 블록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당신이 잠든 사이에」(1일 밤12시10분),93년 베를린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결혼피로연」(2일 하오1시30분),95년 칸영화제 공식초청작인 1급 범죄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2일 하오10시) 등을 마련했다.DCN도 맥 라이언의 상큼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31일 하오10시)에 이어 노동계의 전설적 인물 전태일의 일생을 조명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월1일 하오10시),헝가리의 영상시인이라 불리는 미클로시얀초 감독의 역작 「붉은 시편」(2일 하오11시50분) 등을 내보낸다.
  • 제암리 진혼곡(외언내언)

    경기도 수원시청에서 서남쪽으로 20㎞쯤 달리면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에 닿는다.400여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는 이마을 시장터옆에 마을이름을 딴 조그마한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다.제암리교회.농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예배당 모습이지만 이곳은 3·1운동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화성군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서울보다 꼭 한달뒤인 4월1일.이날 하오7시 장안면 수촌리 뒷산에서 봉화가 오르면서 시작됐다.이튿날 시위군중은 2천명으로 불어났고 3일에는 시위군중일부가 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했다.사태가 급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헌병대를 파견,시위를 진압했고 15일에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23명을 제암리교회에 가둔뒤 불을 지르고 무차별총격을 가했다.그리고 같은 날 제암리 옆마음인 고수리에서도 천도교신자 6명을 무참히 살해,불태웠다. 이 만행으로 사람과 가축·곡식 등이 타는 냄새가 10㎞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한다.학살사건이 일어난후 신자나 일반주민은 일본경찰의감시 때문에 사건현장에 얼씬도 못했지만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박사가 찾아와 불탄교회에서 유골을 수습,공동묘지에 묻었다.제암리교회가 복원된 것은 1952년.정부의 도움과 주민의 성금으로 옛터에 옛모습 그대로의 교회가 지어졌고 유족회관도 건립됐다. 성탄절 전날인 지난 24일밤 제암리교회에서는 조촐하지만 감동적인 음악회가 열렸다.일본 히로시마(광도)슈도(수도)대학 나카우네 미노리 교수(50·여)가 3·1운동때 학살된 영혼들의 명복을 빌고 일제의 만행을 속죄하기 위해 마련한 「진혼연주회」.이 연주회에서 나카우네 교수는 바이올린으로 11곡의 진혼곡을 연주했고 「아리랑」 「봉선화」 「고향의 봄」 등 우리 가곡을 주민 200여명과 합창하기도 했다. 진혼연주회는 작은일이다.그러나 그 뜻은 매우 크다.이런 일들이야말로 한·일 두나라 관계를 보다 가깝게 하는 큰걸음이 아닌가 싶다
  • 발레리나 문훈숙(이세기의 인물탐구:114)

    ◎영혼을 춤추는 황색요정/국내외 공연 7백회… 한국발레 대명사/푸에테 36호 회전… 동양인 핸디캡 극복 발레리나 문훈숙,그의 춤추는 모습은 바람에 날려 떠다니는 공기의 정,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비실체적 이미지다.그의 부단한 변용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깃털 같은 비약은 지상의 것같지 않은 눈부신 백색광을 무대곳곳에 흩뿌린다.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올백으로 곱게 올려빗은 머리와 가늘고 희고 수줍은 모습에서 흡사 그가 춤추는 「백조」나 「레실피드」 혹은 「지젤」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평론가 김경애에 따르면 「이른바 한국 발레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그는 어느덧 무용계정상에 우뚝 서서 그가 아니고는 한국발레를 말할 수 없다」는 평을 듣게 된 위치다.「단지 춤잘추는 발레댄서일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발레에 끼친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89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초청으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지젤」공연을 가졌을때 극장을 가득 메운 발레본고장의 관객들로부터 7차례이상의 열광적인커튼콜을 받았고 「춤추는 동양의 진주」 「황색요정」의 돌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는 일약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도약했다.동양인으로서는 넘볼 수 없던 고난도의 푸에테 36회 회전으로 발레 콤플렉스를 일시에 불식시키는 순간이었다. ○발레계 발전 지대한 공헌 그는 또 춤의 직업성을 투철하게 각인시킨 본격적인 직업발레리나이기도 하다.그가 소속한 유니버설발레단은 「정부의 지원이 없는 민간단체로서 국립발레단을 넘어서는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평을 듣는다. 고전발레에서 창작발레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700여회의 공연을 기록했고 볼쇼이의 안드레스 리에파 키로프의 알렉산더 쿠르코스 아메리칸발레 시어터의 케빈 매켄지 같은 기라성같은 세계적 발레댄서들과 파트너를 이루었으며 그중에서도 「심청」은 우리 발레 레퍼토리로서는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어 평론가 김태원은 장면장면을 정확하게 재현해 낸 문훈숙을 향해 「지적인 발레리나」란 명칭을 장식해 주고 있다. 모든 무대예술이 그렇듯이 춤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스타가 절대 요구되는 예술이다.더구나 발레는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훈숙을 이 시대 「스타」의 한사람으로 손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그가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자기 노력,그리고 춤예술이 스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기민하게 파악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탁월한 기획력이 뒷받침한 때문일 것이다.그런 행운의 세례를 받아 오늘에 이르렀고 그는 그런 의미에서의 노력가였으며 또한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상급을 받은 행운아이기도 하다. ○로잔발레콩쿠르 첫 입상 그는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에다 선화학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부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최연소 이사지만 직함에 어울리는 권위나 오만이나 섣부른 흐트러짐은 어느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긴 목선과 긴 팔,활처럼 휘는 긴 속눈썹과 함께 그 얼굴은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채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겹게 따를줄 알고 아직은 「피자」를 좋아하는 신세대 분위기를 품고 있다. 아침 9시 반에 성동구 능동에 있는 발레단사무실에 나와 하오 3시반까지 연습,어릴 때부터 기숙사생활이 몸에 밴 독립심이 강한 기질로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꾸준히 일을 성취하는 형이다.정교한 생김과는 달리 전혀 까다롭지 않아 단원들이 마시던 커피잔을 거둬 씻거나 어질러진 소품을 정리하기도 한다.그의 성격은 약간의 낯가림과 수줍음이 있지만 그의 후배인 강수진이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가 주목하는 발레리나가 된 것」을 환영하여 지난 6월 강수진초청 「지젤」공연을 마련할 만큼 관대하고 포용력이 큰 편이다. 한국문화재단의 박보희씨와 윤기숙씨 사이의 3남3녀중 넷째.밀밭을 스치는 바람이나 도약하는 새의 비상등 미세한 움직임에 대해 예민한 감응력을 지닌 그는 『춤은 일찍부터 삶의 일부로서 나의 내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말한다. 워싱턴에서 태어나 74년부터 리틀엔젤스에서 세계순회공연에 참가했고 미국 체스터브룩 초등학교졸업후 선화중에 오면서 애들리언 델라스등 철저한 외국인 발레교사들로부터 「날카로운 테크닉」을사사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미국 오하이오발레단과 워싱턴 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발레리나는 즐기기보다 보여주기 위해 최고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터득한 후에도 춤추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17세때 한때 가벼운 슬럼프를 겪었다.그러나 철저하고 혹독한 훈련을 극복한 끝에 「발레의 참맛」을 알게 되면서 안나 파블로나 알리시아 마르코바 같은 신화적인 무용수를 꿈꾸게 되었다. 문선명 통일교교주의 차남(흥진씨)과 21살되던 해 미국에서 약혼,결혼을 불과 몇달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인생은 영원할진대 지상에서 못다한 백년해로 천국에서 하겠다」며 영혼 결혼을 간청한 것으로 한때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그때부터 그의 이름 박훈숙 대신 부군의 성을 따서 문훈숙을 사용하게 되었고 국제무대에서는 통상 「줄리아 문」으로 불리고 있다.지금은 한남동시댁에서 5년전에 입양한 아들(신철·유치원)을 향한 모성의 행복에 젖어있다. ○문선명 차남과 영혼결혼 스타는 아름답고 그들의 감정은 관객을 변화시킨다. 어느 때는 날개처럼 어느 때는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비상하고 비약하고 비행하면서 「인간 영혼의 가장 고매한 정서를 표현」하는 그의 테크닉은 장대한 포물선과 살아있는 나선을 커브시키면서 「천상의 꽃밭을 수놓는 신비로운 나비」로 무대를 날고 있다.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심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참예술인이 되리라』 그는 45세까지 춤추는 것이 소망이지만 어쩌면 마사 그레이엄처럼 80이 넘어서도 무대에 서있을때 서있는 자체만으로 이미 춤으로서 관객을 눈부시게 할지도 모른다. 몸이 악기인 춤예술에서 그는 지금 한창 생동감에 넘쳐 물오른 장미와 같은 시기다.무용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불멸의 광채로 남고 싶어하는 그를 향해 「우리시대 자랑스러운 신데렐라」로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연보 ▲1963년 미국 워싱턴 출생 ▲76∼79년 선화예고에서 발레 전공.애들리언 델라스 사사 ▲79∼81년 영국로열발레 및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수학(마리카 베스브라소바 사사),미 오하이오발레단 솔리스트 「비애」 출연 ▲82∼84년 미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 「헨델축하」 출연 ▲84년 유니버설발레단(UBC)창단기념공연 「신데렐라」 주역 ▲85년 일본 대만 등 5개도시에서 「세레나데」「흑조 그랑파」주역 ▲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 박용구대본 「심청」주역 ▲87년 일본 말레이시아 등 6개도시 「심청」 「호두까기 인형」 주역 ▲89년 키로프발레단초청 「지젤」주역(키로프 마린스키극장) ▲90년 러시아 노던팔마이라 페스티벌초청 「레실피드」,레닌그라드 백야제초청 「돈키호테」 주역 ▲91년 뉴욕 이글레프스키발레단초청 「호두까기 인형」,「상트 페테르부르크 르네상스를 위한 갈라텔레톤」행사초청 「지젤 파드두」,모스크바 크렘린궁전극장 아메리칸발레 페스티벌 참가 ▲92∼96년 키로프발레단초청 「돈키호테」,「춤의 해」기념 「백조의 호수」등 국내및 해외 50여개도시순회등 700여회.12월 20∼25일「호두까기 인형」(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현재〉 유니버설발레단단장겸 수석무용수,한국무용협회이사,학교법인 선화학원이사장,한국문화재단 부이사장 〈수상〉 문학의 해 기념 「가장 문학적인 발레리나상」 MBC문화스페셜 선정 「4월의 예술가상」 한국발레협회상(96년)
  • 강석경씨 신작 「세상의 별은 다,라사에 뜬다」

    ◎안식을 찾는 이들의 영적 방황/2년여 인도생활 통해 담은 체험적 사연/30대안팎 한국여성중심 억압적 제도 고발 「숲속의 방」 「가까운 골짜기」 등에서 섬세한 영혼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의 결을 내밀한 소설공간에 아로새겨온 작가 강석경씨가 신작장편 「세상의 별은 다,라사에 뜬다」를 내놨다.(살림간) 「가까운 골짜기」 이후 8년만의 장편인 이번 작품은 안식을 찾아 영혼의 땅 인도로 찾아든 이들의 영적 방랑을 그리고 있다.2년여에 걸친 지은이의 인도체험이 바닥에 깔려 소설의 육질은 더욱 풍성히 살아오른다.현실세계에 부대껴 지치고 다친 인물들은 활짝 열린 창문 너머 아침의 대기에 스며오르는 토코르꽃과 유칼리나무의 향내,탐부라(인도 특유의 기타 비슷한 악기)반주에 맞춘 신묘하기 그지없는 인도노래 등에서 실존의 허기를 채워줄 단서를 찾아헤맨다. 소설에는 세계각국 공허한 영혼들의 다채로운 사연이 담겨있지만 특히 30대 전후반의 한국 여성들이 중심인물이다.이들은 한결같이 억압적 사회제도,특히 결혼에서 입은 상처로 속이 곪아있다.남편의 외도를 의심조차 못할만큼 결혼에 순진 무지했던 문희는 배신한 남편과의 이혼을 겪은뒤 의상점을 차리고 건조한 삶을 이어간다.그녀의 동생 주원은 집시법 위반으로 형을 살고 나온 대학동창과 결혼하지만 이는 은신처를 제공해달라는 그의 제의를 거절한 부채감때문이었다.결혼만이 여자의 살길로 돼있는 한국사회에 넌더리가 나 인도로 건너온 자유연애주의자 성자는 결국 원치않은 임신으로 영국인과 결혼하게 된다.인도의 소도시 치와올라에 모인 이들은 인도에 대한 막연했던 동경과 현실로 체감하는 사회제도사이에서 때론 흔들리고 때론 실망하며 자기들의 덧난 상처와 대면해 나간다. 「라사」는 세계의 지붕 티베트에서도 심장부에 놓인 성스러운 도시.문희가 인도 북부로의 여정에서 우연히 만난 티베트인 빠샹은 달라이 라마의 궁전이 있고 가을이 되면 한달간이나 연날리기가 이어지는 이곳을 더할 수 없는 평화와 태평성대의 이상사회라고 들려준다.하지만 중국의 대량학살을 피해 망명한 부모를 좇아 인도에서 태어난 빠샹은 정작 단 한번도 라사에 가본 일이 없다. 이처럼 라사는 폭력 가득한 세상에서 실제로 가 닿을 길 없지만 그래서 더 큰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향을 상징한다.알 수 없는 업과 슬픔에 떼밀려 떠도는 이들을 통해 지은이는 현실 저너머 존재의 충일을 찾아헤매는 실존의 운명적 모습을 그려보이고 있다.
  • 대하소설 「혼불」 10권 완간/최명희씨,집필 시작 17년만에

    ◎1930년대 매안 이씨 가문 여인3대 얘기/평등과 혁명사상­신분의 굴레에 얽힌 삶 작가 최명희씨가 「혼불」에 마침표를 찍었다.지난 80년 첫 장을 메우기 시작한지 17년만에 대하소설 「혼불」 전 5부,10권이 한길사에서 완간됐다. 제목부터 특이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1930년대 전북 남원의 매안 이씨라는 양반가문을 내세운 소설은 식민지시대를 배경삼은 여느 역사소설처럼 지식인들의 사상적 방황과 천민들의 신분적 각성을 고루 담고 있지만 그때 사람들의 심중에 들어가 그들의 혼을 빌려 말하는듯 넋이 서린 붓끝으로 이같은 목적의식을 훌쩍 뛰어넘어 감싼다. 시집오자마자 시아버지와 남편의 겹초상을 치렀지만 고결한 기품과 매서운 기상으로 쓰러져가는 매안 이씨가문을 일으켜세우는 청암부인은 소설의 지붕 같은 인물.그는 장손자인 강모를 일찍 장가들여 날로 거세지는 일제탄압에서 가문을 지키려 몸부림치지만 여리고 섬약하기만 한 이 종손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자조로 식민지의 고통스런 현실을 비껴간다.여기에평등과 혁명사상에 사로잡힌 당시 지식인들,신분의 굴레에 갇혀 버둥거리는 거멍굴 사람들,근대사의 격랑에 맞서 양반가문의 기품을 지켜나가려는 매안 이씨가문 여인 3대의 이야기가 얽힌다. 이같이 다사다난한 한 시대를 그리면서도 이 소설은 이야기가 압도하는 근대소설의 풍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기후며 풍토,관혼상제,생활습관 등 당시 풍속의 세목을 판소리가락처럼 기름지고 유장한 언어로 풀어놓는 것이 먼저이며 이 가운데 당시의 시대상황과 사람들의 다층적인 삶이 여러가지 무늬를 그리며 자연스레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은 단어 「혼불」은 육체속에 깃든 영혼의 불덩어리라는 뜻.조상들은 이를 목숨과 삶을 지탱하는 핵심으로 여겨 혼불이 나간 집은 아무리 길어도 사흘을 못넘기고 초상을 치른다고 여겼다 한다. 최씨는 17년간 다른 소설작업을 전폐하다시피 한 채 「혼불」의 집필에만 매달렸다.워드프로세서도 제쳐두고 초고에 종이날개를 달아가며 손으로 수를 놓듯 한뜸한뜸 치밀한 교정작업을 했다.그는 『이작품은 내가 썼다기 보다 내 속에 지펴진 조상의 혼불이 어느 순간부터 절로 써내려갔다고 할만하다.한 민족의 자식으로서 검질긴 혼의 불씨를 지켜온 우리 모든 부모들에게 「혼불」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 「페미니즘 소설」 활짝 피다/올 문단의 「보이지않는」 큰 수확

    ◎복잡 다면성의 삶속 여성의 문제 접근 활발/「염소를 모는…」·「블루 버터플라이」 등 주목받아 96년 문단의 보이지않는 수확의 하나로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페미니즘 소설의 약진이다.90년대 들어 하나둘 나타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여성주의 문학이 올들어 폭죽터지듯 만개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억압의 체험을 들춰내는 이같은 소설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여성문제에 한층 다채롭게 접근,심화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예전의 작품들이 변두리로 밀린 여성문제를 끌어내기 위해 자의식 강한 여성의 극단적 얘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삶의 복잡한 다면성을 인정하고 여성문제도 그 속에서 풀어내려는 현실적 접근이 부쩍 늘었다. 올 하반기엔 전경린씨의 주목받은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차현숙씨의 첫 장편 「블루 버터플라이」와 소설은 아니지만 공지영씨의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 등이 여성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며 주목받았다.최근 1∼2주동안만도 이청해씨의 신작소설집 「숭어」,김민숙씨의 장편 「시간이 마술을 걸어온다면」,이경자씨의 「황홀한 반란」 등이 페미니즘 성황을 이뤘다.얼마전엔 남성작가 김원우씨도 가부장제하에서 일부일처제의 허위의식을 벗긴 「모노가미의 새얼굴」이라는 장편을 내놓아 여성억압이 더이상 여성소설가들만의 고유소재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처럼 양이 축적되면서 페미니즘 소설들도 개성의 편차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무엇보다 날선 공격성과 턱없는 피해의식이 수그러들고 여성문제를 삶의 무한히 복잡한 갈등의 하나로 접근하려는 다원주의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블루 버터플라이」는 부부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은 남녀 두쌍을 정신분석 상담실로 끌어들여 남성위주의 왜곡된 성통념에 다치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라는 사실을 무의식 층위에서 파헤친 점이 독특했다.「염소를 모는 여자」의 경우 까만 우산을 받치고 염소를 몰며 아파트를 뛰쳐나오는 기혼녀라는 한국문학사상 드물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낳았다.이청해의 신작 작품집 「숭어」에 실린 단편들은 배운 여자들의 예각적 자의식이기일쑤였던 여성문제가 소시민의 삶으로까지 내려와 부대끼는 모습을 푼푼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 소설의 「공세」수위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자 역으로 경계어린 반작용도 커지고 있다.작가 이문열씨는 「세계의 문학」 가을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신작장편 「선택」에서 조선후기 한 양반집 아낙을 내세워 「여성해방론자」들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고 작가 유순하씨도 산문집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장」을 펴내 페미니즘에 대한 훈계를 보탰다.성격은 좀 다르지만 아버지가 가정에서 죽은 이름이 돼버렸다며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자는 소설들이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것에도 이같은 경계심리는 깔려있을 법하다. 아무튼 안팎에서의 이러저런 도전앞에서 페미니즘 소설은 더 깊은 문학성과 정치한 방법론으로 인간보편의 문제를 끌어안는 주류문학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전환기에 놓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문인들의 눈에 비친 ‘이국정취’/학고재,세계문화예술기행 시리즈

    ◎1차 실크로드·스페인·이집트 「예술의 향기」/거대유적·미술관·뒷골목 등 생생한 스케치 문인들의 세계여행기를 모은 「세계문화예술기행」 시리즈가 학고재에서 나온다.1차분으로 김영현씨의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실크로드편),김혜순씨의 「들끓는 사랑」(스페인편),최수철씨의 「사막에 묻힌 태양」(이집트편) 등이 출간된 것을 비롯,박완서씨(티베트·네팔),곽재구씨(터키·중앙아시아),황지우씨(이탈리아),김승희씨(마야),임철우씨(아일랜드),이인화씨(몽골),문학평론가 김명인씨(독일),고종석씨(프랑스)편도 곧 뒤따른다. 요즘은 해외여행 안내서나 전문여행꾼들의 여행기도 많지만 이 책들은 이같은 길잡이류와는 좀 다르다.차라리 여행길에 들고 떠나고싶은 홀가분한 에세이에 가깝다.낯선 풍물들과 마주친 문인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매혹으로 반짝이며 끝없는 예술의 향기를 길어올린다.거대한 유적과 곰팡내 그윽한 미술관,사람들의 살냄새로 북적이는 뒷골목이며 난무하는 상혼의 현장들이 삶의 본원적인 의미를 캐묻는 이방인의 눈길앞에서 애수를 더하는 것이다.고급 지질에 이국의 풍취를 담은 화사한 사진들도 듬뿍 실렸다. 작가 김영현씨의 중국 실크로드기행은 지난 94년,95년에 걸친 두차례 답사의 산물.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모래바람을 뚫고 서역 깊숙이 묻힌 돈황이며 투루판,우루무치를 찾아가는 끝없는 사막길 한가운데서는 불쑥 신기루가 현혹하는가 하면 어디선가 김일성 사망소식이 날아들어와 고국과의 거리를 절감시킨다.결고운 흰모래가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지어진 거대한 모래산,아무리 가도 생명체를 만날성 싶지 않은 고비사막,마치 불꽃이는 듯한 산주름과 고랑을 가진 후오이엔(화염)산 등 함께 실린 사진이 인간을 압도하는 불모의 자연을 무엇보다 생생히 보여준다. 한편 시인 김혜순씨는 돈 키호테의 여성형인 도냐 키호타가 돼 말그대로 예술기행이라기에 손색이 없는 스페인 탐험에 나선다.가우디의 건축물들이 피카소며 벨라스케스,엘 그레코의 그림들과 엇갈릴때마다 시인의 마음속엔 로르카의 아름다운 시들이 퐁퐁 샘솟아난다.시인은 이슬람의 애상이 드리운그라나다,활기찬 바르셀로나,세련된 탱고의 세비야 등 스페인의 도시를 쏘다니며 생기속에 한방울의 죽음을 간직한 스페인을 산뜻한 스케치로 보여준다. 이에 비해 작가 최수철씨의 이집트기행은 장엄하고 화려한 유적 행렬과 현지인들의 무례한 「바쿠시시」(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 틈바구니에서 숨가쁘게 진행된다.영혼이 깃든 미라,벽화로 가득한 암굴신전,콥트교의 거대한 사원,그 유명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이 줄줄이 늘어선 한편에선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을 비대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염치없게 하는 가난이 줄곧 일상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 자녀마음 떠보려 거짓죽음 했더니(박갑천 칼럼)

    세상에는 별난 장난질도 있다.남아프리카공화국 지와이드라는 곳에 사는 조지 소그웨라는 노인의 장난도 좀 엄발났다.친척이나 친지들이 어쩌나 보려고 거짓으로 죽은척 관속에 들어가 밖에서 주고받는 얘기들을 들었다는 것 아닌가.장례식이 끝날 무렵 관속에서 불끈 일어섰다니 얼마나들 놀랐을까. 이 얘기는 우리 전통사회의 가짜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사대부 집안에서는 개가를 못했다.그랬으니 청상 딸(혹은 며느리)을 보는 어버이마음은 오죽했겠는가.밤중에 몰래 집안 종과 짝지어 돈꾸러미 안겨주면서 멀리 떠나 살도록 얼러방친다.그래놓고 병들어 죽은양 울며 불며 장사지낸다.시쳇말로 해본다면 『가문이 뭣이길래』. 시건방떨며 젠체하는 한 제독관을 관(궤)속에 담아 골탕먹인 얘기가 「천예록」에 적혀 있다.그 일엔 경주골 기생이 모두 나섰고 평소 괘씸하게 여겨온 부윤까지 가세한다.제독은 향교의 재실에서 홀로 거처했는데 시골아낙으로 변장한 기생이 접근하여 꼬드겨낸다.드디어 기녀집으로 가게 된다.둘이서 발가벗고 막 이부자리 속으로들어가려 하는데 경주 제일의 망나니라는 기둥서방이 들이닥친다.옴나위없이 당할 판이다. 제독관은 체면이고 뭐고 알몸인 채로 빈 관(궤)속에 들어간다.그 관속에서 제독관은 남녀가 이해관계로 다투는 소리를 다 듣는다.나중에는 궤(관)의 소유권문제에까지 이른다.날이 밝으면 부윤한테 가서 판결을 받자고 한다.이튿날 부윤의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였다.『두사람이 절반씩 돈을 내어 샀다고? 그러면 그걸 두 도막으로 잘라 하나씩 갖도록 하라』.소그웨노인 아닌 제독관으로서는 얄망궂게 된 형편.흥부박일 수는 없다.톱으로 자르기 시작하자 살려달라며 뛰쳐나왔으니 알몸뚱이 양반체면이라니. 「장자」(지낙편)에는 초나라 가던 길의 장자가 촉루(해골)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해골이 장자에게 뒤넘스럽다 싶게 인생을 강론하지 않던가.해골이 그러니 숨 거둔지 얼마 되잖은 주검들이야 친지·자녀들이 궁뚱망뚱 치르는 장례의식을 샅샅이 보는 건지도 모른다.특히 재산문제로 무람없이 아옹다옹거리는걸 보면서는 소그웨노인같이 관을 뚫고 나올 마음 굴뚝같으리라. 말은 없지만 돌아간 영혼들은 관속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들 언행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려니….〈칼럼니스트〉
  • 「한국전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법」 제정을/심재기(발언대)

    최근 강릉 앞바다로 침투한 무장공비사건은 우리의 안보의식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다. 6·25가 종전상태로 지속돼온지 46년.이 사건은 그동안 남북이 대치양상으로 치달아왔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잠수함 침투지역인 안인진리는 6·25때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하기 1시간전인 상오 3시에 북한 549부대가 최초로 남침을 감행한 지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북한은 아전인수식 통일의 미몽에서 우리의 안마당을 제집 드나들 듯 해왔으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편향된 좌경의 늪으로 빠져들고만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력의 우위가 사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현대전의 승패는 군의 화력등 물리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결집력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이는 월남·걸프전 등에서 증명됐었다. 우리는 6·25 당시 1백만명이란 민간인들이 조국을 수호하고자 귀중한 목숨을 잃은 비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혹자는 전화를 피해 짐을 꾸리기에 급급했고 혹자는 하루아침에 북한 완장을 차기도 했지만 1백만 민간인 희생자들은군번없는 용사로,학도병으로 적들과 싸우면서 산화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회」는 민간 희생자들의 유족을 중심으로 이들의 애국혼을 계승하고 국민에게는 호국정신을 선양해 오고 있다.선열들의 위패 하나 모실 곳 없고 유복자·미망인 등 유족은 해마다 현충일이면 울려퍼지는 「군·경·공무원만을 위한」 진혼나팔 소리가 가슴에 비수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호소하는 것은 이들 영혼과 유족에 대한 보상이나 국가차원의 수혜가 아니다.단 한가지 유족들이 한곳에서 영령을 진혼하고 국민에게는 이들의 희생이 살아있는 사표(사표)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가신님들의 참뜻을 구현하고자 이번 정기국회에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사회법안」을 상정,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법안의 내용은 ▲기념사업회의 법인화 ▲기념관,안보박물관 및 위령탑 건립 ▲민간항쟁 자료의 수집·보존·관리 ▲남침현장 일대의 안보교육장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의 중차대한 의미를 깊이 헤아려 우리의요구가 수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 장묘문화 개선해야 한다/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서울광장)

    산자(생자)를 위한 땅은 점점 좁아져가는데 비해 죽은자(사자)를 위한 땅은 점점 넓어져가고 있다.이런 상태로 계속되다가는 국토의 묘지화가 우려된다.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의 묘지수는 1천9백만기로서 전국토의 약 1%인 9백60만㎡를 차지하고 있다.서울 면적의 1.7배에 달한다.해마다 25만명의 사망자중 85%인 22만여명이 매장됨에 따라 여의도의 1.3배 규모인 10㎢의 땅이 묘지화되고 있다. 한국장묘연구회의 보고에 의하면 산 사람이 1인당 차지하는 대지면적이 44.5㎡(13.5평)인데 비해 죽은 자가 차지하고 있는 1인당 묘지면적은 50.5㎡(15.3평)나 된다고 한다. 수도권 지역의 산세가 완만하고 경관이 좋은 곳은 묘지 아니면 골프장으로 채워지고 있고,특히 일부 몰지각한 저명인사와 부유층은 호화분묘를 만들어 사회의 빈축거리가 되고있다.이들은 매장에 관한 법률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듯 하다. 현행 묘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분묘의 면적은 기당 20㎡(6평)이내이고,합장의 경우도 25㎡(7.5평)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그러나이러한 법률이 특권층에 의해 사문화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묘지문제는 법률적 규제 이전에 국민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동양의 풍수지리설과 유학의 조상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명당자리에 호화묘지를 만드는 것이 효도이고,가문을 빛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선조의 정신을 이어 받으려는 내용 보다는 좋은 묘지를 만들려는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 고대 인도의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젊은 왕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명당자리에 묘지를 잘 마련하였다.한 해가 지난뒤 기일이 되어 왕은 어머니의 묘지에 가 보았다.묘지만 쓸쓸히 있는 것 같아서 석등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의 조각상들을 묘지주변에 세웠다.그 다음해에도 어머니 묘지에 가 보았다.묘지 주변이 허전한 것 같아서 담을 쌓고,묘지옆에 대궐도 지었다.나무도 심었다.여러해 세월이 흘렀다.왕이 다시 묘지를 찾아 갔었다.묘지 뒷동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묘역의 경관도 좋고 대궐도 웅장하고 망부석도 담장도 아름다운데 잡초가 우거진 가운데 부분이너무 초라하게 보여 눈에 거슬렸다.왕은 신하에게 명령하기를 담장안에 있는 볼품없이 잡초로 덮여있는 부분을 파 없애버리라 했다고 한다. 외양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결국 본질을 상실하고 만다는 의미의 설화이다.그래서 인도사람들은 이 설화에서 교훈을 찾아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기 보다는 화장한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만든후 그 속에 영혼을 넣어주어 하나의 인격체가 되게 했다고 가르치고 있다.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고,육체는 썩어 흙이 될 뿐이다.흙이 될 시신을 위해 호화분묘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가족 자신들의 위세를 드러내려는데 불과하다.묘지를 잘 만드는 것이 곧 효도라는 인식의 개혁이 있어야 하겠다. 당장 사망자 모두를 화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정서가 화장에 호의적이 아니다.또한 종교에 따라 화장을 허용치 않는 경우도 있다.그렇다고 현행 분묘의 폐습을 그대로 방치해 둘수는 없다.몇가지 개선점을 생각해 본다. 첫째,모든 묘지는 규격화,평준화해야 한다.현행법이 허용한 묘지규격(6평)도 너무 크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에서는 묘지 크기가 대개 3평(10㎡)이내이다.이탈리아의 경우는 기당 1∼2평에 불과한다.법적규격을 절반정도로 축소해도 묘지로서 충분하다.「국민 누구도 예외없이 평준화된 묘역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만약 위반한 묘지에 대해서는 개선될때까지 해마다 벌과금을 중과해야 한다」 한가지 부연하고 싶은 것은 국립묘지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은것은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묘지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국립묘지부터 규격화,평준화되어 다른 사설 묘지의 본이 되고,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둘째,납골당을 각 지역별로 세워서 적극 활용토록 해야 한다.정부에서는 사회복지,국토이용의 측면에서 납골당을 전국 각지에 건축해야 할 것이다.납골당을 건축하되 음산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현대식으로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으로 지어야 하고,특히 각종 종교의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셋째,한시적 묘지제도를적극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일부 종교계에서 전개하고 있는 한시적 묘지제를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10년이상 매장된 시신은 거의 부식되게 마련이다.따라서 15년 이상된 묘는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발전시켜야겠다.모든 관립과 사설 묘지단지에는 반드시 납골당을 의무적으로 건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종교계가 앞장서서 묘지개선을 위한 의식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전국에 3만여 교회가 있는데,자립하는 교회는 1만여곳 된다.대다수 자립하는 교회들은 자체 묘지를 가지고 있거나,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다.장례나 묘지제도는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각 교회가 묘지를 가지려고 하고 있다.이러한때 교회가 묘지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거석을 찾아서 내 영혼을 찾아서/M.스콧 펙(화제의 책)

    ◎영국 거석유적에 대한 단상 기록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사회개혁가인 지은이가 21일동안 영국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일대의 거석유적을 돌아보며 느낀 단상을 적은 에세이.지은이는 돌의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화두들,즉 이성과 믿음,삶과 죽음,성스러움과 종교 등의 문제를 깊이있게 통찰한다.그는 거석을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신의 현현을 보며 동시에 우리 삶 전체에 내재해 있는 신성을 발견한다.그에게 있어 거석은 우리가 잃어버린 믿음과 사랑의 기억을 일깨우며,비속한 일상에 깃든 성스러움을 비춰주는 영혼의 거울과 같다. 영국 롱하우스 농장의 고인돌을 하늘과 땅이 접하는 장소,곧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적고 있는 지은이는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이처럼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거석유적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 자신을 만성 「신비중독자」라고 부른다.고려원미디어 김훈 옮김 8천원.
  • 파이프오르가니스트 윤양희(이세기의 인물탐구:107)

    ◎「천상의 소리」로 기도하는 연주자/독실한 신앙인… “삶은 예술” 빈틈없는 생활/국제적 명성에 매년 4∼8차례 해외공연 천상에서 울려오는 현란한 방울소리. 국제적인 활약으로 명성이 드높은 윤양희의 파이프오르간은 음 하나하나를 확고한 터치로 탄주하여 장엄한 신비적 음률과 웅장한 저음을 싱싱하게 되살려 낸다. 세종문화회관에 있는 그의 방에 가보면 핀란드·네덜란드·체코·슬로바키아와 수년전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연주 포스터가 빈틈없이 걸려있고 지난 79년 미국에서 가지고 나온 로저스 전자오르간이 고색창연하게 놓여 있다.파이프오르간은 다른 악기들과는 달리 여러개의 건반이 층을 이루고 수천개의 파이프와 수십개의 스톱(음전)이 설치되어 팔이 길고 손가락이 길어야만 건반들을 넘나들며 무궁무진한 울림을 얻게 된다. 그는 연주회를 앞둔 연습에서 하루 8시간에서 열시간 이상,어느 때는 밤을 새워 이곳에서 연습한다.바람소리에 실려 둥글게 구르는 「변화무쌍한 음색과 뛰어난 색채적 연결」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신을 향한 간절한 기원인듯 경건한 중에도 가슴을 설레게하는 뜨거운 감동을 던져준다.레퍼토리를 짤때도 바흐이전의 북스테후데와 바흐,생상스에 이르기까지 내면적 정서를 간직한 극적·환상적인 토카타 푸가 샤콘느 코랄칸타타를 고루 선택하여 사상과 철학이 용해된 낭만적인 표현으로 뭇영혼의 심금을 진동시키고 있다. ○하루 10시간이상 연습 78년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초청 윤양희 파이프오르간 독주회가 있었을 때 사통팔달의 음악평론가 유한철씨는 『밝은 음색,경묘한 리듬감,멋진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는 음악외의 불필요한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화사하고 극명한 지성의 연주』라고 호평했었다.81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사원초청 독주를 가졌을 때도 프랑스 「레데페쉐」지는 그의 토카타와 푸가에 대해 「정감과 격정을 자아냈으며 여성다운 감수성을 훌륭히 나타낸 비르투오소다운 연주」로 찬사하여 그의 음악미래에 팡파르를 울렸다.비르투오소란 「예술에 대한 특별한 지식과 기교에 능한 사람」을 이른다. 윤양희는 자신의 생활에 빈틈없이 성실하다.참다운 생활자체를 예술로써 승화시키기 위해 한순간도 나태하든가 긴장을 푸는 일이 없다.쉬는 시간에는 실내장식을 바꾸거나 바느질에 열중한다.그의 바느질 솜씨는 미국 유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지금도 옷들이 크거나 작으면 솔을 전부 뜯어내어 꼼꼼하게 늘이고 줄인다. 그는 이대 피아노과 재학 시절에 이미 정동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다.그 시절에 만난 윤용구씨와 결혼후 도미,부군(55·사업)은 전 서울대총장 윤일선 박사의 5남으로 그들이 남들보다 호사스런 유학생활을 했으리라 짐작하겠지만 검약이 몸에 밴 가풍대로 부군은 접시닦기·호텔청소·자동차용접일로 루스벨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그도 부군과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할틈도 없이 삯바느질과 공장의 모터게이지 조립에 매달려 시카고 아메리카음대와 대학원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미국 오르가니스트협회 시카고지부 상임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가진물건 절대로 못버려 79년 귀국후 세종문화회관과 정동교회소속 파이프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그는 수많은 협연외에 해마다 세종문회회관 독주회,1년에 4차례에서 8차례이상의 해외연주로 「신비」를 기대하는 청중들에게 오르간의 감동과 공감을 나눠 주었다.지난 10년동안 총신대 종교음악과에 몸담았으나 단순히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대학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인생에서의 쓰디쓴 좌절과 낭패감으로 남아있다. 상도동의 드넓은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는 87년 당시 이미 환중이던 시아버지 윤일선 박사는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였고 87세였던 시어머니 조영숙 여사는 그 나이에 바가지공예전을 열만큼 정열적인 노익장으로 올해 96세인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면서 그는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건강하고 명랑하시다』고 자랑삼는다.자녀는 딸만 둘(시카고 노스웨스트대학원에 유학중). ○유학시절 삯바느질도 윤양희는 경기도 문산출생.부친은 병원이 없는 산간벽지등 무의촌을 찾아 치료에 나서고 있었고 그는 조모인 김부순 여사의 손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났다.조모는 어린시절 새문안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평양 숭의학교시절 선교사에게 풍금을 배운 신식여성으로 『할머니가 레가토를 치기 위해 풍금위에서 자꾸만 바꾸던(서브스티튜션)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어릴 때부터 신학대학교수가 되어 교회찬송가를 지도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눈부시게 하얀 피부,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단정한 용모에다 성격이 밝고 상냥한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치밀한 순수성을 잃지않는 것이 장점인 예술가다.그대신 소유욕과 집착욕이 강하여 한번 가진 물건은 절대로 버리지 않고 사람도 한번 사귀면 영원한 친구로 지낸다. 또 병적인 천재성 보다 자기세계를 지키려는 음악적 의지가 굳건하다.평론가 김원구가 『니체는 지적 오만을 지녔으나 윤양희는 오만 때문이 아니라 고집과 오기로 어떤 그룹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오르간이 할수있는 최상의 소리에 닿고 싶어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이른바 음악가가 완벽한 연주를 하기는 어렵지만 인간답게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 보람을 느끼고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해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홀과 페테르부르크 카펠라콘서트홀 독주등 굵직한 연주만 7차례,자주 해외연주에 나가면서 통역을 통하는 것이 번거로운 나머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 이어 최근에는 독학으로 태국어와 러시아어를 익혔고 중개자 없이 연주를 주선하고 스케줄을 짤수있게 되었다. 항상 신을 향한 기도의 자세가 윤양희 연주의 이미지다.이제 그는 평화스러운 플라치도나 당당한 그란디오소로 진행되는 「눈부신 화엄미」를 구사하면서 더이상 오르지 못하는 「플래토」에 머무르지 않고 연주 때마다 「창조적 진화」와 「생명의 도약」을 보여준다.그리고 보이지않는 신의 손길이 언제나 그를 감싸 인도하고 있음을 확인하여 청중은 그의 연주 앞에서 경건과 숙연을 감출수 없게 된다. □연보 ▲1944년 경기도 문산 출생 ▲65년 이대 음대(피아노전공) 졸업 ▲66∼현재 정동교회 오르가니스트 ▲1965∼67년 서울합창단 반주자 ▲1971∼76년 미국 시카고 아메리칸 음대 및 대학원(파이프오르간전공)졸업, ▲1974년 일리노이 라그랜쥐 임마누엘성공회 1백주년기념초청 독주 ▲1977년 아메리칸음대 오르간강사 ▲1977∼79년 미국 오르가니스트협회 시카고지부 상임이사 ▲197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 초청독주 ▲1979∼87년 추계예대·이대 출강 ▲1980년 몬트리올 성요셉사원 「라콩세 스피리추알」음악제 초청독주 ▲1981 파리 노틀담사원초청 독주 ▲1982년 네덜란드 헤이그 반델루데성당 및 노르웨이 토론하임 성울라프페스티벌·핀란드 나스톨라성당·라하티국제오르간페스티벌 초청등 7차례 독주회 ▲1983∼91년 총신대 종교음악과 전임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초청 독주 ▲1994년 정명훈 지휘 바스티유오케스트라 협연(예술의 전당) ▲1994∼현재 윤양희 파이프오르간교실 주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5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홀·페테르부르크 카펠라콘서트홀·세종문화회관 독주회 등 1백여회 〈현재〉 목원대 대우교수·세종문화회관 오르가니스트·미국오르가니스트협회(AGO)한국지부장 〈저서〉 「파이프오르간의 이론과 실제」(예지각)
  • 미술전문 출판 열화당 창립25돌

    ◎「한국의 굿」 시리즈 등 책5백여종 출간 미술 및 시각매체 관련도서 전문출판사 열화당(대표 이기웅)이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가운데 한 구절인 「열친척지정화(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에서 사호를 따온 열화당은 지난 71년 설립돼 그동안 500여종의 책을 냈다.천주교 박해사(사)의 주요자료로 꼽히는 이만채의 「벽위편」,미술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열화당미술문고」,「한국의 굿」시리즈,「한국문화예술총서」등이 대표적인 출판물. 한편 열화당은 창립 25주년을 맞아 최근 사사를 기록한 소책자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예술을 위하여」와 「열화당 도서목록」을 펴냈으며,80년에 나온 이기서 고려대부총장의 「강릉 선교장」 증보판도 발간했다.또 15일 하오 6시 서울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창립 25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 작가 조성기씨 「소설가 조성기 영화에 빠진 날」 출간

    ◎영화를 소재로 쓴 「영화소설」 눈길/피아노,그 어둡고 투명한­젊어 홀로 된 벙어리 친구엄마를 회상/애정의 조건­시한부 삶속 침몰하는 나자신의 허무 시장에서 찬거리 사듯 영화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게 되면서 작가들 사이에서도 영화산문집 한권씩 내는 일이 대유행이 됐다.하지만 최근 고려원출판사에서 영화에세이집 「소설가 조성기 영화에 빠진 날」을 펴낸 작가 조성기씨의 경우는 좀 특수하다.영화에 「먹혀」버리기는 커녕 영화를 보면서까지 작가기질을 발휘,다름아닌 영화를 재료삼아 단편소설을 써낸 때문이다. 책에 실린 그의 「영화소설」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를 보고 쓴 「피아노,그 어둡고 투명한」과 셜리 매클레인의 감동연기가 돋보인 「애정의 조건」에 철학적 주석을 단 「황량한 날의 애정의 조건」 등 두편.주인공들이 문제의 영화를 보며 속말로 털어놓는 감상,회상 등이 기둥줄거리를 이룬다. 「피아노…」에서 딸을 데리고 시집가는 길에 파도 몰아치는 해변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벙어리여인 아다를 보면서 「나」는 문득 엄마가 벙어리였던 초등학교 때 친구가 떠오른다.무척 예쁜 여동생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던 그 친구는 가끔 그악스런 엄마의 손갈퀴에 거세게 맞곤 했는데 남녀간의 욕망이 어떻게 변질되거나 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며 「나」는 친구의 엄마를 이해할 것도 같다.그것은 젊어 홀로 된 그녀가 끓는 속욕정을 해소하는 나름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여기면서 욕망의 실타래 위에 놓였었던 「나」의 그녀들이 차례로 추억된다. 한편 장편 「욕망의 오감도」의 일부를 떼어 손질한 「…애정의 조건」은 상준이 술집 「에포케」의 호스티스 수애를 만나 같이 「애정의 조건」을 보고 정사를 나누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애정의 조건」의 주인공 엠마가 갑자기 뛰어든 암에 삶의 복판에서 무방비로 침몰하듯이 자신의 삶,더 나아가 모든 이들의 삶은 언제 물이 찰지 모르는 구멍뚫린 폐선에 불과하다는 상준의 도저한 허무주의가 소설에 색채감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5년간 비디오만 1천편을 봤다는 지은이의 안목은 함께 실린 영화에세이들에서 더욱돋보인다.「자전거 도둑」 「버디」 「모 베터 블루스」 「바그다드 카페」 「카드로 만든 집」 등 누구나 봐둘만한 수준작을 고른데다 현학적 영화분석을 접고 이야기와 문제성 위주로 쉽게 풀어쓴 점이 특징. 조씨는 『영화와 문학은 다른 장르지만 서로 침투할 수도 있으며 그 실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글 그 자체는 장르 보다 앞서고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때문에 앞으로도 소설,시 등 인위적 장르에 묶이지 않고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글쓰기의 방법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 형식에 소설의 이야기성을 얹어 또다른 장르침투로 눈길을 끌었던 조씨의 소설시 「내 영혼의 백야」와 「그리운 날의 약속」 두편도 곧 한권의 소설시집으로 묶여 민음사에서 선보인다.〈손정숙 기자〉
  • 노벨 문학상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인간 진실의 조각 섬세하게 풍자”/공산체제에서도 정신적 독립·영혼 중시/「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시인」 평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73)는 「풍자적이고도 섬세한 언어로 인간의 작은 진실들이 역사적,생물학적 문맥속에 살아나는 시」라는 작품세계 평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를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듯한 시인」이라고 극찬했다.그녀는 「쿼바디스」의 셍키에비치(1905),「농민」의 레이몬트(1924),「한낮의 밝음」의 밀로즈(1980)에 이어 폴란드인으로는 네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여성으로는 아홉번째 수상이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는 시(시)로 1980년작 「유일한 것(nothing twice)」을 인용했다.『웃음과 키스로,우리는 별들 아래 합일을 찾는다.우리가 두 줄기의 물방울처럼 다를 지라도(우리는 일치한다)』라는 내용. 28년 폴란드 중서부 지방 태생인 그녀는 46년 「나는 언어를 찾는다」로 데뷔한뒤 50년대 초반 처녀 시집 「그래서우리는 산다」(52년)를,2년뒤 두번째 시집을 잇달아 펴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시들을 썼다.하지만 공산주의 검열이 무력화된 57년이후 존재와 인간내면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 본격적으로 시세계를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의 문학세계는 실존적 문제를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언어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서정시인이지만 단순한 미학주의에 빠지지 않고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줄곧 파헤쳐왔다.인류,사랑,죽음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언어의 결을 최대로 살리기 때문에 까다롭지만 유럽 10여개국에 번역본이 나와있을 만큼 중요한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정신적 독립과 영혼의 문제에 천착하는 그녀의 시는 지식인층에서 새시대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면서 폴란드 전후세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최근작인 93년의 「끝과 시작」까지 50여년의 시작생활동안 10여권의 시집을 펴냈다.또한 수많은 비평서,프랑스시 번역본 들을 내면서 평론가 겸 학자로도 활약해왔다.53∼81년에는 문학잡지 「지시에 리테라키에」의 논설위원으로도 일했으며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수줍은 성격으로 알려져있다.폴란드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삼색연작 영화의 하나인 「레드」는 그녀의 시 「첫눈에 느낀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 시에 살고있는 심보르스카는 남부의 휴양지 자코파네에서 수상소식을 듣고 폴란드 전국라디오방송 제트(ZET)를 통해 『상을 기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믿기 어렵다.매우 행복하고 놀랍다.이제 얼마 살 것 같지 않다』고 소감을 밝혔다. 외대 폴란드어과 정병권 교수는 『심보르스카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왔으면서 특히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시세계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역대 최고인 1백12만달러가 수여된다. □심보르스카 연보 ▲폴란드 시인,번역가,문학비평가 ▲23년 7월2일 포즈난 근처 프로웬트­브닌에서 태어남 ▲크라크푸에 있는 야골레니언대학 졸업 ▲45년 문단 데뷔 ▲52∼83년 폴란드 작가협회 회원 ▲53∼81년 문학주간지 「지시에 리테라키에」 논설위원 ▲91년 괴테상 수여 ▲대표시집으로 「자신에게 하는 질문」,「모래알 전경」,「다리위의 사람」,「소리,느낌,생각:70편의 시」,「끝과 시작」 등이 있음. ◎내가 본 심보르스카/외대 폴란드어과 코바리크 교수/폴란드 현대작가중 첫손 꼽히는 문인/10여개국서 번역돼… 교과서에도 수록 폴란드 크라크푸 야골레니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94년부터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야드비가 코바리크씨(Jadwiga Kowalik·여·56)는 『심보르스카의 노벨상 수상은 셍키에비치 밀로즈 레이몬트 이후 문단에서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던 폴란드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교수로 있던 야골레니언 대학의 국제 현대문학 심포지엄과 크라크푸시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문학가 모임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소식을 들은 직후 폴란드의 집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에 실패,대신 문학하는 친구들과 기쁨을 나눴다는 그는 심보르스카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변치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친절한 마음씨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심보르스카가 폴란드 현대작가 가운데 첫손 꼽히는 작가로 유럽에서만 독일을 비롯,20개 나라에서 그녀의 시집이 번역됐고 폴란드 고교 교과서에 많은 시가 수록돼 있어 그녀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폭넓게 사랑받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또 심보르스카는 70년대 초 남편과 사별한뒤 크라크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자녀는 없다고 했다.
  • 작가 공지영씨 첫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내

    ◎상처입은 마음의 방황 진솔히 토로 30대 작가 공지영씨의 첫번째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푸른숲 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등어」 등의 진보적 소설로 젊은 작가 특유의 신선한 문학세계라는 인정도 받고 대중적 인기도 얻는 등 두마리 토끼를 잡아온 공씨지만 정작 본인은 그 진보적 열망에 너무 동떨어진 현실의 편견앞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던 것 같다. 라는 랭보 시의 한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이번 산문집에는 씩씩한듯 하지만 속이 여려 그같은 상처에 턱없이 부대껴온 공씨가 툭툭 털고 다시 싸울 힘을 얻기까지 마음의 움직임이 기록돼 있다.상처를 정당화하는 논리보다 그로인한 마음의 방황을 털어놓는 진솔한 육성이 공감을 얻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산문집은 모두 5장으로,글들이 한끼에 먹기좋게 포장된 반찬거리처럼 읽기좋은 길이로 나눠져 있다.1,2부는 「홍콩으로부터의 편지」와 「일본으로부터의 편지」로 낯선 땅에서 상처를 오히려 또렷이 바라보며 치유하려는 공씨의 내면풍경을 전한다.3부에는 작가의 유년과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이,4부에는 현실의 곳곳에 스민 여성차별을 드러내는 예리한 시선이 빛을 발하고 있다.마지막 5부는 작가인 공씨에게 깊은 인상을 심은 문학이나 선배들에 대한 에세이다. 어릴적 한번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지만 놀아줄 친구를 찾지 못해 책에 빠져 들었다는 공씨는 이번 책에서 자주 편지형식을 빌리고 있다.세상의 쓴맛을 다보고 냉혹한 현실법칙을 겪을만큼 겪은 후에도 편지를 교환할 친구를 꿈꾸는 대책없는 순수함을 그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사촌언니의 말을 빌려 그는 이같이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한다.
  • 항암맥주(외언내언)

    세계에서 맥주를 처음으로 만든 종족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족.이 종족은 기원전 4천2백년께부터 맥주를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1953년 메스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된 수메르족의 한 무덤 비문에는 「발효를 이용해 빵을 만들고 그 빵으로 보리의 맥아를 당화시켜 물과 섞어 맥주를 만든다」는 제조법까지 기록돼 있다.오늘날 맥주가 「액체로 만든 빵」으로 불리는 것도 초기의 이런 제조법에서 연유한 것. 이후 맥주는 소아시아인의 이동과 함께 이집트로 전해졌고 다시 유럽대륙으로 보급됐다.맥주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긴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술을 「매우 신성하고 깨끗한 사후의 음료」로 여겼다.그래서 가족이 죽으면 그 무덤에 영혼이 목을 축일수 있도록 4병의 맥주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맥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대중의 술이다.1995년 세계맥주시장의 연간매출액은 1천3백억달러(약1백5조원).한국도 3조원(출고가 기준)에 이른다.지난해 한국에서의 맥주판매량은 1억9천1백여만상자,5백㎖짜리 맥주병으로 38억2천여만병이다.국민 한사람이 연간 90병씩을 마신 셈.70년의 5·4병,80년의 30병,90년의 64병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났다.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체코의 2백44병,독일의 2백18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소비증가율은 이들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맥주에 발암물질을 억제하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흥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일본 오카야마대학 약학부연구팀은 맥주가 고기나 생선의 탄 부분에서 발견되는 「트립P2NHOH」라는 발암성분의 DNA파괴기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오는 10월10일 열리는 일본 암학회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당들에겐 환호작약할 복음이겠지만 그렇게 기뻐할 것은 못된다.이 연구가 아직 의학계 검증을 거치지 못했을뿐 아니라 맥주는 역시 술이지 약이 아니기 때문.맥주도 지나치게 마시면 알코올중독이 될뿐 아니라 건강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는 더 무서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연극인 박정자(인물탐구:102)

    ◎출연작마다 대히트… 한국 연극의 자존심/타고난 목소리·정열적 연기로 「천의 얼굴」 창조/무대인생 34년… 침묵만으로도 관객을 숨죽여 83년 8월 실험극장이 여름무대에 올렸던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관람한 연극배우 박정자는 닥터 리빙스턴 역할에 은근히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매춘부이자 알코올중독자인 아그네스와 종교적 기적으로 그녀를 구원하려는 수녀원장, 종교의 무지와 어리석음속에서 아그네스를 구해내려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등 세 역할중에서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리빙스턴은 장렬한 휴머니티를 발산할 수 있는 색다른 연기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무렵 KBS와 MBC에서 이 연극을 라디오드라마로 만들면서 그에게 출연요청을 해왔을때 양쪽 책임자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근엄한 「미리엄 수녀원장」을 그에게 맡겼다. 4년전 실험극장이 「신의 아그네스」를 리바이벌하면서 그에게 출연을 제의해오자 그는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를 물었고 연출을 맡은 윤호진은 당연히 「수녀원장」이라고 대답했다. ○「위기의…」서 완벽 변신 그는 연출자에게 『나는 왜 수녀만 해야하느냐, 내가 하고싶은건 닥터』라고 건의해보았다. 그러자 윤호진은 『그렇다면 수녀원장은 누가 하겠는가, 닥터 리빙스턴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미리엄은 아무나 할수 없다』고 받아넘겼다. 이처럼 박정자의 이미지는 재치있고 이지적이며 흐트러짐이 없는 요조숙녀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고집불통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인간상」이 그의 연기패턴으로 굳어져 버린지 오래다. 그러기전 그는 극단 산울림이 소극장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막올린 「위기의 여자」에서 「모범적인 주부」「헌신적인 아내」「희생적인 엄마」라는 미명하에 남편을 「한낱 월급장이」로 몰아붙이는 이기적이고 히스테리컬한 여성의 속성을 유감없이 창조해낸적이 있었다. 시몬느드 보봐르 원작의 이 연극은 86년 8월, 뜨거운 한여름에 시작됐으나 장사진을 이루는 관객들로 극장은 즐거운 비명을 올렸고 한달공연에서 1주일 연장, 다시 연장을 되풀이 한끝에 5개월간의 장기공연으로그는 새로운 연기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극단 자유의 대표 이병복씨는 분장실로 찾아와서 『정말 잘했다』고 그를 격려해 주었고 자유에서 크고 자란 배우를 객원출연으로 변신시킨 임영웅씨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않았다. 물론 이 역할도 우연히 얻어진 것은 아니다. 임영웅씨는 인생에서의 성공을 사랑과 결혼으로 저울질하려는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그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데서 비롯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배신의 파장을 그린듯이 누벼 나갈 이모셔널한 연기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때 이제까지의 딱딱하고 강한 이미지를 벗고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여성적 연기에 도전하고 싶었던 박정자는 『나는 위기의 여자가 될수없겠느냐』고 임영웅씨에게 물었다. 연출자는 처음에는 『박정자라는 배우는 여성의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박정자의 다양한 연기의 가능성은 어쩌면 여성의 변덕스러운 갈등변환을 절묘하게 끌어낼 수 있을것 같은 예감』에 그에게 주역인 모니크역을 내주었고 그대신 그의 「오만과 정열을저온으로 낮출것」을 부탁해 마지않았다. 연기에 몰입하면 「극과 극을 넘나드는 자유분방과 야생마처럼 분출하는 에너지」가 불처럼 폭발해 버릴 것을 우려해서다. 막이 오르자 매스컴은 그의 신선한 변신을 다투어 조명했다. 그는 과연 「불같기도 소슬바람같기도한 섬세하게 계산된 연기」로 주변의 노파심을 잠재워버렸다. 그가 무대에서 우뚝 솟아 눈부신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작품에 대한 엄밀한 이해와 준엄한 탐구정신, 그리고 극예술이 지닌 무한한 깊이에 철저하게 빠져들어 「사실주의와 부조리극을 폭넓게 넘나들고 항상 새로움과 창조성」을 찾아내는데 있다. 「위기의 여자」를 본 한수산이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된다. 『그의 장점은 한치도 소홀함이 없는 완벽한 대사의 전달, 유려하고도 감동적인 연기의 호소력, 빗겨가는 조명을 받고 서있을때의 긴 침묵속에서도 관객의 숨소리를 죽게하는 힘』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확실한 캐릭터를 지니면서도 역할에 따라 묵직한 울부짖음으로 관객의 가슴에 녹슨 못을 박는가하면 호수의 수면같은 속삭임으로 듣는 이의 정감에 물비늘이 일게 하는 마력같은 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세상을 알만큼 알고 인생을 살만큼 산 배우가 시간의 체에 걸러서 보여주는 원숙함」일 것이다. 박정자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집안의 1남 4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3살되던해 아버지를 여의고 여장부같은 어머니 김진옥 여사 밑에서 자라면서 극단 신협의 단원이던 오빠(박상호)를 따라 극장출입을 한것이 어릴때부터 배우의 길을 예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장중한 목소리와 자신도 모르게 역할의 내면에 파고드는 집착은 지령을 내리는 북조선 고위 여간부, 타협을 모르는 형무소 여간수, 신들린 무당, 악녀, 마녀, 촌부, 과부, 변덕스럽고 수다스러운 백작부인에서 파란과 고초를 이겨낸 지사의 현처등을 종횡무진으로 연기해내었고 그의 연기가 무대에서 현란하게 교직되는 순간은 「연기는 두뇌가 아닌 가슴으로 한다」는 미국의 명배우 줄리아 말로의 말을 그대로 실감시킨다. 「신의 아그네스」를 장기공연한 적이 있는 손숙은 『저 불같은 열정으로 어느날 무대에서 활활타서 산화하지나 않을까. 그와 함께 공연을 하면 느슨하게 풀린 신경이 팽팽하게 조여지고 긴장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흐트러지기 쉬운 장기공연때도 그는 빈무대에 나와 한치도 연습에 소홀함이 없이 관객들에게 「언제나 첫 장면, 언제나 새 얼굴을 보여야한다」는 각오를 철저히 지킨다. 나이들수록 당당하고 아름다웠던 배우 캐서린 헵번처럼 「영원한 무대의 영혼」으로 남기위해 그는 「좋은 작품 좋은 연출 좋은 상대역 그리고 반드시 좋은 관객이 있어야만 그 배우의 무대가 빛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릴때부터 극장 출입 그는 평소 차분하고 점잖은 편이다. 또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이세상에서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쟤고 이를 관리하는 성의가 대단하다. 자신을 따르는 팬을 위해 연말에는 5천장이 넘는 카드를 직접 써서 우송하는가 하면 박정자를 후원하는 모임인 「꽃봉지회」를 만들고 89년에는 「아직은 마흔네살」이라는 음반을 출반하여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되돌리는 것등이 그렇다. 72년에 결혼한 CF감독 이지송씨(50)와의 사이엔 남매가 있다. 「위기의 여자」에서 그가 맡았던 모니크의 대사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은 결국 옳건 그르건 자기방식대로 살게 마련이니까요.나는 아직 마흔 네살이고 저 굳게 닫힌 문뒤에는 어떤 형태일지 모르지만 내 미래가 있다는 걸 나는 굳게 믿고 있어요』 미래의 문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삶이자 숙명인 연극이며 한결같이 늠름하고 든든한 대형배우의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면 이병복씨의 지적대로 「박정자는 우리 연극의 텃세이자 자존심에 틀림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연보 ▲1942년 인천 소래 출생 ▲61년 진명여고 졸업, 이대 신문학과 입학, 대학극 「페드라」 출연 ▲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입사, 극단 실험극장 「팔려가는 골동품」으로 데뷔, 「악령」「담배내기」 출연 ▲66년 극단 자유창단멤버 「따라지의 향연」 출연 ▲79∼현재 「국군의 방송 5분 실화극」 출연이후 5천회이상 방송중 ▲89년 「아직은 마흔네살」 출반▲92∼현재 한국배우협회 부회장 ▲94년 10월부터 실험극장 「오늘의 명배우」시리즈 「11월의 왈츠」 장기공연 및 뉴욕 LA공연 ▲97년 1월 일본 스바루극단 초청 도쿄서 1인극 공연 예정 「대머리 여가수」(69년) 「그 여자 사람잡네」(78년) 「위기의 여자」(86년) 모노드라마 「웬일이세요, 당신」(88년) 「굿나잇 마더」(90년) 「무녀도」 「그 자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91년) 「신의 아그네스」(92년) 「햄릿」 「내사랑 히로시마」(93년) 2백50회에서 3백50회 공연기록외 1백여편과 영화 출연 수필집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예음·93년) 동아연극상(70·71·85년) 백상예술대상(70·81·85년) 서울신문문화대상(71년) 서울극평가그룹상(85년) 한국연극예술상 대종상 여우조연상(75·84년) 영희연극상(79년) 이해랑연극상(96년)외 다수
  • 클린턴 대선후보 공식 지명/미 민주 전대

    ◎“미래의 지도자 선택을” 지지 호소 【시카고=나윤도 특파원】 민주당 전당대회는 28일 하오(한국시간 29일 상오)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사흘째 대회를 열고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을 올 11월 미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재지명했다. 이날 대통령후보 지명에 나선 민주당 전국위원회의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코네티컷주)은 『클린턴 대통령은 용기와 비전과 새 세기를 향해 미국민 모두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그가 바른 레일위에 미국을 올려놓고 새로운 여행을 출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선택을 모아 그를 지명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참석 대의원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등단한 앨 고어 부통령은 『돌 후보는 스스로를 과거와의 가교임을 강조했는데 클린턴 대통령은 미래로 연결하는 가교』라고 강조하며 미래의 희망을 이끄는 지도자인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고어 부통령은 또 『돌 후보는 의료보험과 사회복지제도의 창출을 거부하고 교육에 대한 지원은 물론 우주개발에 대한 자금지원까지 반대하는 비관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어린이들의 영혼을 보호하고 돌보고 이끌어 나감으로써 미국의 정신을 어린이들안에 살아있게 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태줌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할 수 있는 지도자는 클린턴 대통령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밤 인디애나주 미시간시티에서 열차유세를 끝낸후 헬기편으로 시카고 시내에 있는 일리노이대 캠퍼스에 도착,1천여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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