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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아래아 한글’(朴康文 코너)

    나는 89년 세운상가 4층 러브리소프트라는 가게에서 ‘한글’을 샀다. 개발자 이찬진씨한테 어디서 파느냐고 천리안 전자우편으로 물었더니 이곳을 일러 주었다. 그 때 그는 남의 소유인 이 가게의 한켠에 작은 책상 하나를 놓고 5.25인치 디스켓 다섯 장에 든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한글’을 팔았다. 그는 대학노트를 펴고 기다란 일련번호 다음에 구입자 주소 성명을 모나미 볼펜으로 적은 뒤 1번 디스켓 레이블에 그 번호를 써 주었다. 그와 말을 나눈 것은 이 때를 앞뒤로 하여 두어 번밖에 되지 않는다.그는 수줍음을 타는 편이었는데 겸손하고 성실한 젊은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그런 그가 뒷날 화려하게 날개를 펴고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한국의 빌 게이츠로 날아오를 줄은 그 때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외국에 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출국할 때쯤에 새 버전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그 해 여름 새 버전으로 바꿔 미국에 가서 잘썼다.그의 성실함에 끌려 ‘프로그램의 이러이러한 점은 저러저러하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꽤 긴 편지를 서울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서 잠시 함께 지내던 국어학자 서 아무개 교수도 나와 마찬가지로 ‘한글’사랑에 빠진 이였다.세종대왕 이후의 최대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한글’이야말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었다.이것이 나옴으로써 컴퓨터에서 한글이 비로소 제대로 살아 빛을 뿜었다.이찬진씨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는 서 교수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한글’이 처음 나올 때부터,그 뒤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제까지,10 년 동안 써 왔다.내 머리 속의 생각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 짜여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다. 이찬진,그가 빛나는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리라는 것도 몰랐지만, 그가 자신의 분신이라 할 ‘한글’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 같은 이보다야 그자신이 몇 백 갑절 더할 것이다. 고민도 많았으리라. 그를 생각하면 죄책감,허탈감이 밀려 온다. 우리가 누린 만큼 그에게 제대로 보답했는가.우리 잇속만 챙기고 그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는가.사실 여러 번의 버전업이 있었지만,내가 정품을 구입했던 것은 두 번 아니면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컴퓨터를 사면 하드 디스크에 이미 설치된 경우가 있어 굳이 따로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배신감도 한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그 길밖에 없었는가.자신이 만들기는 했지만,또 비록 그것이 돈벌이가 안된다지만,이제 국민적 자산이 된 ‘한글’을 버릴 수 있는가.자기 ‘아이’를 버리기로 하고 2,000만 달러를 빌 게이츠에게서 얻다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성행하고 정품이 팔리지 않는 풍토를 그가 원망하지만, 이름없는 청년을 오늘의 그로 자라게 한 밑거름은 초기에 싸지 않은 값을 치르고 정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뿌렸다. 초기의 겸손을 잊은 것이 오늘이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다. 이제,자꾸만 그가,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보이니 슬프다.무너지는‘한글’의 신화가 가슴 아프다.
  • 이옥순씨 에세이 ‘인도여자에게 마침표는 없다’ 펴내

    ◎지구촌 여성의 20%… 그들 삶의 무게/1시간42분마다 한명꼴 지참금 관련 강요된 죽음/속박넘어 자유 얻을 날은…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는 “힌두 여성은 신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당당히 말했다.또 인도 고대의 법전인 마누법전은 “여성의 몸은 신성하기 때문에 꽃으로라도 때려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인도의 현실은 이러한 진리를 간단히 배반한다.죽은 남편의 화장더미에서 함께 타죽게 하는 ‘사티’의 전통이 아직도 숨쉬고 있고,지참금이 적다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사리에 불을 붙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옥순씨(숭실대 강사)가 펴낸 ‘인도여자에게 마침표는 없다’(사과나무)는 인도 여성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문화에세이다. “얼마 전 인도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단발머리를 한 여자들은 인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 말썽을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인도에서는 단발머리여성들은 보통 부도덕하고 헤픈 여자로 간주됩니다.이 정도면 인도 남성들의 사고는 초(超)보수적이라고 할 만하죠.인도 벵골 지방에는 ‘여자와 말이 있어야 할 곳은 남자의 다리 밑’이라는 모욕적인 속담도 있어요” 그러나 그는 인도 여성들의 척박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단서를 찾아낸다.‘바라트 마타’ 곧 ‘인도의 어머니’로 불린 인디라 간디 총리와 ‘작은것들의 신’으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가 그 예다. “1966년 인디라 간디가 48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자 남성들은 몹시 못마땅해했습니다.그러나 지난 71년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보여줬듯 그는 결단력과 단호한 성격을 지닌 지도자로 역사에 확실하게 자리매김돼 있어요.오늘날 인디라 간디는 힘의 여신인 ‘두르가’로 숭배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로 통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인도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추상으로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명상의 나라,굶주리고 헐벗은 몸으로 갠지스 강을 찾아와 행복하게 죽어가는 사람들,곳곳에서 신의 현현을 목도할 수 있는 영혼의 나라….인도는 과연 타락한 물질세계의 대안인가.‘정신주의’라는 알약을 내세워 인도를 과거에만 묶어두려 했던 영국 제국주의의 시선을 우리가 은연중 본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자신은 무한대의 세속적 욕망을 향해 줄달음치면서도 인도는 그저 심신이 고달플 때 잠시 쉴 만한 영혼의 땅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한,우리는 이기적인 이방인일 뿐이다.이 책은 바로 이러한 자성적 관점에서 씌어졌다. “이방인의 편견이 만들어낸 인도에 대한 허상을 깨고 인도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는 게 이 책의 집필 의도입니다.문맹,결혼지참금,부정부패,저개발,부당 착취와 같은 사회문제에 몸살을 앓으며 요로운 삶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이 호흡하는 땅이 인도예요.인도에 성자가 넘치고 종교가 넘치는것은 그만큼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는 반증이 아니겠어요” 97년 유엔의 세계인구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여자들은 1시간42분마다 한 명 꼴로 결혼지참금과 관련해 사망하는 것으로 돼있다.해마다 약 5,000건의 ‘강요된 죽음’이 발생하는 셈이다.인도에서 결혼은 한편으로는 ‘비즈니스’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바람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 경(經)에 나오는 이 구절처럼 인도의 여성들이 속박을 넘어 자유를 얻을 날은 언제쯤일까.전세계 여성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여성,그들의 옹이진 삶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이 책 속의 인도여성들 이야기를 가볍게 읽되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렸으면 합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식민주의와 교육’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현재 식민지시대 인도와 영국의 관계를 다룬 에세이집 “인도에 온 ‘영국신사’”(가제)를 구상중이다.그는 나이 밝히기를 한사코 꺼렸다.
  • 이상국씨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화선지에 그린 ‘넉넉함의 세계’ 강원도 양양의 이상국 시인이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생존논리만이 득세하는 요즘 시인의 새 작품은 따뜻하다.6년간의 공백을 더욱 넓어진 여백으로 채우고 있다.쫓기는 현대인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여유로워진 시선은 표제시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집약되어 있다.“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오래 된 삶도 소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상처를 달래주는 이 시적 경지가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북으로 가는 길을 따라 ‘겨울 화진포’를 다니기도 하고,사북의 폐석더미서 남은 희망을 건지며(‘희망에 대하여’),‘별’을 보며 서러운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한차례 격정으로 걸러진 여정은 세상의 약음을 허허롭게 바라보는 삼불사 스님의 어깨(‘삼불사’)와 북설악의 샛령을 너머 선림(禪林)을 찾는다(‘禪林阮址에 가서’).막힘이 없는 걸음은 결국 세간의 무림(武林)으로 향한다.어차피 보듬고 가야할 곳이다.“가지 꺾인 소나무의 빛나는 자해/ 혹은 아름다운 마감”(‘대결’)을 매개로 세상으로 돌아온다.그곳은 연어가 찾아오는 남대천이고 강원도의 뚝심과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직장’인 농촌이다. 걷잡을 수 없는 자본의 속도에 눌리는 시대에 이상국의 존재는 화선지 같다.그 속에서 묵화를 치든,잇속을 따지든 강요하지 않는 넉넉함의 세계다.시인은 그저 아늑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언젠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이 아름다운 뿌리를 되찾을 날을.또 하나의 세파를 뛰어넘어 달관의 자세로 돌아온 시인이 만든 집은 여전히 따뜻하다.그가 꿈꾸는 한 그릇의 국수를 함께 먹고 싶다는 느끼는 순간 그는 또 다른 여백으로 저 멀리서 웃고 있다.
  • 여백과 서정의 공존/조상현­폴 하탈 2인전

    서양화가 조상현.폴 하탈의 2인전이 27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단성갤러리(735­5588)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여백주의와 서정적 개념주의의 만남’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조씨와 하탈씨가 주장하는 미술사조를 작품을 통해 비교해보는 자리다. 조씨가 주창하는 ‘여백주의’는 우리의 역사적,사회적,정신적,미술적 전통에서 걸러낸 동양적인 조형정신과 양식으로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평안과 위안을 주는 것이다. 폴 하탈은 캐나다의 화가이자 이론가로 그가 주창한 서정적 개념주의는 감성과 지성의 상승효과적인 상호작용,영혼과 정신의 균형잡힌 항상성과 단일성을 지향한다.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사조를 표방한 조씨의 작품 18점과 하탈의 작품 24점이 선보인다.
  • 어제 ‘5·18’ 18돌 추모행사 1만여명 참가

    ◎민주의 꽃으로 핀 5월의 넋이여…/망월동 묘역서 씻김굿 등 진혼의식 엄숙히/독일 목사 등 7명 방한 국제적 위상 확인도 【광주=崔治峰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8주년 기념식이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광장에서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와 유가족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에는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를 비롯,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 朴相千 법무장관 등 정부인사와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鄭水萬 5·18유족회장 등이 참석했다. 金 총리서리는 묘지순례 및 유영봉안소 추모분향을 마치고 추념문 잔디광장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5·18묘지에서는 기독교 대학총학생회연합의 추모예배가 열렸으며 광주공원에서도 5·18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 등이 펼쳐졌다. ○…기념식장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나사오 개신교회 바그너 노 회장과 목사,평신도 등 7명이 참석해 시종 행사광경을 지켜보며 달라진 5·18기념행사와 한국의 민주주의 위상에 대해 관심을 표명. 하오 광주 한빛교회에서열린 5·18기념 예배에 참석한 바그너 노 회장 일행은 “그동안 2∼3차례에 걸쳐 5·18 연합예배에 참석하고 5·18묘지를 방문했으나 이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치러진 기념식은 처음”이라고 밝히고 “이는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선도한 5·18관련자의 희생대가 때문”이라고 평가. ○…추모광장 입구에는 조선대 구속자가족들이 ‘모든 양심수를 어머니의 품으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속학생 9명의 조속한 석방을 눈물로 호소. 97년 총학생회 부회장 강성일씨의 어머니 박명자씨(55)와 97년 동아리연합회장 정재형씨의 어머니 기흥순씨(59) 등은 “全斗煥 盧泰愚씨도 사면하는 마당에 죄없는 아들들을 차디찬 교도소에 가둬 두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멍예를 씌어 2∼3년씩 실형을 선고한 아들들을 학교와 가족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밝히고 “金大中 대통령이 약속한 5·18양심수 사면에 이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묘역앞에서는 씻김굿 무형문화재인 李상조씨가 초혼가를 시작으로 지전춤·넋올림·씻김·고풀이·길닦음 등으로 5·18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진행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동광주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상진료팀으로 나와 봉사했으며 광주 전남 적십자사 무선봉사자들이 햄(HAM)으로 기념식 상황을 해외에 생중계하고 참배객을 안내했다.
  • 셰익스피어 한국에 오다/신정옥 지음(화제의 책)

    ◎셰익스피어와 한국 근대극의 발전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과정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서.16·17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들어서이다.이 책에서는 특히 셰익스피어의 연극적 수용과정에 주목한다.영국의 극작가 벤 존슨이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영혼”이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만대의 사람”이다.셰익스피어는 근대작가는 아니다.그러나 그는 우리나라의 근대극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한국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된 것은 1925년 경성고등상업학교 어학부가 올린 영어극 ‘줄리어스 시저’가 처음이다.당시는 민권사상이 팽배한 때였던 만큼 시저가 살해된 뒤 앤토니와 브루터스가 벌이는 대조적인 명연설 장면을 주로 공연한 것으로 추정된다.셰익스피어가 20여년의 극작생활을 하면서 창조한 극중인물은 수백명에 이른다.하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같은 유형에 속한다 해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특히 햄릿에 대한 해석은 그 의미의 진폭이 크다.어떤 햄릿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모습이고 또 어떤 햄릿은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그러나 햄릿은 언제나 천박한 듯하지만 고결하고,우스꽝스럽지만 슬프며,피로 얼룩진 무질서 속에 질서를 담고 있는 그런 모습을 잃지 않는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이 책은 셰익스피어가 이 땅에 소개되면서 문화적 충돌을 거의 겪지 않고 순탄하게 정착했음을 밝힌다.셰익스피어는 사실 극작가로서보다는 시인의 모습으로 개화기 한국인들에게 비쳐지기 시작했다.그나마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소개돼 실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시성(詩聖) 또는 위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백산출판사 1만8천원.
  • 음악평론가 韓相宇(이세기의 인물탐구:169)

    ◎‘올곧은 비평’ 음악계 정의의 사제/방송·강연 통해 고전음악 정신 전하는데 전력/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 살아가는 ‘노신사’ 누군가 음악평론가 韓相宇를 향해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했다.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은 단순히 평론가의 차원이 아니라 몸속에서 음악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식이다.그가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는 한음한음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악보의 쉼표와 점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실력이다. ○논리정연한 이론가 음악을 통해 정신적 위로와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옷깃을 여미고 기도하듯이 콘체르토와 심포니에 접근해 나간다.거짓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지키면서도 예술가의 고뇌나 센티멘탈리즘대신 이론가답게 논리정연하고 글귀마다에 번뜩이는 경구가 도사린다. 악곡뿐만 아니라 그 곡에 관련된 예술가 자신의 삶과 죽음,연주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궁구(窮究)하여 절중(節中)을 기하는 주의다. 그러나 미소망상(微小妄想)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원로 박용구씨의 말대로 ‘어떤 경우에도 결백하고 청담(淸淡)한 인품을 지닌 신사가 한상우’인 것이다. 이른바 ‘작곡가나 작품명을 줄줄이 외우고 디스크 진열을 자랑삼는 것’은 천열(賤劣)하다고 지적하고 전통을 중시하지만 완강하게 자기고집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유하는 마음가짐이 그의 인간됨이며 옳지 못한 일을 지적할 때도 날카로운 송곳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를 부드러운 유머와 재치로 감싼다. 그의 생활방식도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상통한다.집안은 조선왕조 후기에 총융사(總戎使) 어영대장 공조판서를 지내고 갑신정변때 나이 사십에 순절한 충숙공(忠肅公) 韓圭稷이 그의 증조부이고 포대장 장위사(壯衛使) 찬정(贊政)을 지낸 韓圭卨이 작은 증조부,부친은 충북 제천중을 설립하고 제2대국회의원을 지낸 韓弼洙씨다.그러나 부친은 ‘계파’를 따지는 것을 지극히 자제하여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한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일러왔다.‘과거집착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자유로움 속에서 떳떳한 자세’는 바로 부친이물려준 가르침 덕분이다. ○세계적 명반 대량 소장 부친은 37년 서울을 등지고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는 제천으로 낙향했고 그는 다음해 그곳에서 태어났다.형제는 4남2녀중 막내,다섯살을 전후해서 유성기옆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교회나 동네모임에서 하모니카 독주,한때는 부친이 광산에 손대는 바람에 모진 파란을 겪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강한 생활력’을 터득할 수 있었다.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세계명곡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악책과 음악사전문학작품집에 몰두하여 음악이론을 향한 탄탄한 지식을 쌓아왔다. 그가 방송에서 음악해설을 시작한 것은 문화방송제작위원으로 있던 72년부터다.그때도 방송 첫머리에서 ‘안녕하세요’라든가 ‘오늘 날씨가 좋다’는 식의 형식적인 멘트를 하지않았다.‘물론 안녕하니까 나의 방송을 듣고있다’는 생각에서 청취자를 음악의 숲으로 인도해주었고 이런 결곡한 매너가 ‘나의 음악실’을 14년이상 장기프로로 성공시킨 비결일 것이다.음악평에 손댄지도 30년이가깝다.서대문구 대신동 그의 집 음악실에는 낡은 유성기에서 레이저 디스크등 최신 오디오시스템을 고루 설치하여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저녁에는 음악회에 간다. 그의 음악평중에서 지난 75년,한 일간지에 시리즈로 실었던 ‘해방 30주년을 맞아 살펴본 현실과 그 반성’은 음악계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 일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음악계 이대로 좋은가’제하로 ‘연주회는 돈많은 자랑이거나 교수진급을 위한 것,교향악단은 연주회보다 개인레슨같은 부업에만 치중하고 교수는 특기자 입학을 미끼로 한 밑천 잡자는 식,오페라는 나눠먹기 배역에다 해외유학생들은 귀국하자마자 대학전강부터 따고나서 자리를 고수하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이어서 ‘작곡도 탈낭만(脫浪漫) 탈정서(脫情緖)운동으로 지나치게 난해하고 애매모호할뿐 아니라 음악성이 결여되어있고 평론가 자신도 색종이를 오려붙이듯이 미사여구나 동원해서 주문식 잡문이나 쓴다’고 몰아붙였다. 이로 인해 음악계는 발칵 뒤집혔으나 평론계의 원로 유한철씨는 ‘한국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관점에서 시정해야 할 점을 끌어내어 격려한 사항은 바람직하다’고 공감해 주었다.최근에도 그는 ‘신인발굴의 허구성’이란 글에서 ‘교향악단들이 예술적 양심으로 되돌아가 청소년연주회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라’고 전제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청소년협연자를 내세우는 연주를 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음악 조기영재교육 장려 그는 대학강단과 서울예고에 몸담고 있는 동안 비평활동과 음악의 조기영재교육을 장려하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 차원높은 고전음악 정신을 전하는데 전력해온 공로자다.가족은 핵물리학을 전공한 辛承愛 교수(이화여대)와의 사이에 남매,그들 부부는 ‘인간으로서 또는 전문직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적인 가정’으로 소문나 있다.좋아하는 음악가는 브람스와 슈베르트,카루소가 1910년대 취입한 SP를 LP화시킨 RCA 50주년기념판과 빈필하모닉 150주년 기념음반등 세계적 명반들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70년대부터 살고있는 그의 집마당에는요즘 살구나무 감나무등 유실수와 회양목 향나무등 수목이 우거지고 집안은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향기가 범람한다.‘부자는 부(富)로 괴롭고 빈자는 빈(貧)으로 괴롭다지만 나는 부하지도 빈하지도 않으니 괴로울 이유가 없다’는 그는 때마침 취미와 전공과 직업이 모두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서 살고있는,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틀림없다.물질의 허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계의 ‘정의의 사제’ 로서 그는 오늘도 자신을 위한 보보행진(步步行進)을 멈추지 않는다. □연보 ▲1938년 충북 제천출생 ▲1958년 제천고 졸업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졸업 ▲1962­69년 무학·경기중교사 ▲1969­84년 문화방송제작위원 ▲1980­86년 문화공보부 자문위원 1980­93년 국립극장 자문위원 ▲1987년 대한민국음악제 집행위원 ▲1984년 단국대대학원 졸업 ▲1982­85년 公倫 영화심의위원, 아세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1985­88년 公倫 음악심의위원 ▲1984­96년 서울예고 음악과장▲1987­89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자문위원, 국제음악제 운영위원 ▲1989­93년 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 ▲1990년 문화부 기획위원 ▲1991년 남북문화예술교류정책자문 ▲1996년 KBS교향악단 자문위원 ▲1996­97년 월간음악춘추편집인 ▲1997­현재 KBSFM음악회 실황중계진행자,성균관대 출강 한국음악협회이사,세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위원회이사, 예술의 전당이사,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사 ‘선율,온 영혼의 불꽃’ ‘삶과 죽음의 음악’(청한출판사) ‘북한음악의 실상과 허상’(신원문화사) ‘한국오페라 50년사’등 출간 예술평론가상(80년) 국음악상(94년)
  • 국난 극복 ‘진정한 부활’ 다짐/어제 전국서 부활절 예배

    ◎“영혼·빈민구제로 모든 분야 새 출발”/‘고난·희생 감수’ 남북화합 동시 미사/연합예배위 “헌금,실직자 기금으로 사용” 부활절인 12일 상오 5시30분부터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전국 121개 지역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일제히 열렸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당회장 趙鏞基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서울 장충체육관예배에는 1만3천여명의 신도가 참석해 위기에 처한 경제의 부활과 교회의 일치를 기원했다. 대회장 趙鏞基 목사는 이날 “국민 모두가 힘모아 나아갈때 부활의 승리와 풍요가 온 교회와 이 민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해 현 위기상황 대처를 위한 범국민적인 노력을 거듭 강조했다. 천주교계도 이날 상오 11시 명동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성당에서 일제히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특히 서울 명동성당과 북한 평양 장충성당에서는 남북한 화해와 이산가족 재회를 기원하는 미사가 동시에 열렸다.이날 평양 장충성당 미사는 미국 뉴욕의 朴昌得 오렌지 한인성당 주임신부가 직접미사를 집전해 96년 부활대축일 이후 첫 남북한 동시미사도 이루어졌다. 올해 부활절 행사의 의미는 예년에 비해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우선 개신교와 천주교계가 모두 국난 극복에 초점을 맞춰 연합예배와 미사를 진행했고 그 내용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제 분야의 새 출발과 그를 통한 부활의 의미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여기에 남북한 천주교계가 2년만에 동시미사를 올린 점도 이같은 어려운 경제상황 극복과 남북화합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장충체육관 연합예배에서 閔丙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과 池德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기도와 설교는 무엇보다도 이같은 기독교 정신의 영혼구제와 빈민구제사업 측면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된다.이들은 “부활은 고난과 희생을 통해 다가오는 것”임을 모두 전제했고 “지금의 고난을 모두가 힘모아 헤쳐나갈때 결국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부활의 승리와 풍요가 온 교회와 이 민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말해 신도들을 숙연하게 했다.조선기독교연맹 산하 북한 개신교 신자들도 “주님의 은총으로 한반도 대립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게 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부활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도록 하라”는 내용을 담은 남북한 공동기도문을 낭독해 우리측의 기원에 동참했다. 천주교계의 부활대축일 미사도 현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화합에 초점을 맞춘채 이례적으로 남북한 동시 미사 집전으로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연합예배 행사를 주도한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위원회는 이날 모은 헌금을 실직자를 위한 기금으로 쓴다고 밝혀 기독교정신의 빈민구제사업을 다시한번 천명했다.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정률씨

    ◎‘장애인의 삶’ 10년간 카메라에 담아/“순수한 영혼 사진 통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재활원 찾아 봉사활동… 200여회 순회전시도 “장애인들의 순수한 영혼을 사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정률씨(31)는 지난 10년동안 장애인들의 삶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왔다. 이씨의 인연은 지난 86년 단국대에 입학,장애인 봉사동아리인 ‘키비탄’에서 활동을 하면서 시작됐다.여기서 장애인들의 삶을 처음 접한 이씨는 고교시절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은 카메라로 장애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20세기초 미국 사진작가 루이스하인이 찍은 ‘캐롤라이나 방직공장’이란 사회문제를 고발한 사진이 ‘아동 노동금지법’의 인준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한 뒤 자신이 장애인 사진을 찍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들의 사진촬영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정심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이들의 삶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요즘도 광고·결혼사진 촬영 등으로 돈을 벌면 미련없이 장애인들의 삶을 찾는다.전국의 장애인 재활시설과 수용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이들의 삶을 사진으로 만든다. 이씨는 이렇게 촬영한 사진 수천장으로 그동안 3차례의 개인전과 2백여차례의 지방 순회전시회를 가졌다. 30여장의 사진을 통해 장애인들의 삶을 보여준 ‘이땅의 장애인들’이란 주제로 첫번째 전시회를 가진 데 이어 빈민 장애인과 장애인 수용시설을 다룬 ‘바다가 보고싶은 사람들’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로 장애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장애인 사진을 찍으면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촬영시 고민과 번뇌 등을 적은 ‘바다가 보고싶은 사람들’이라는 사진 에세이집을 펴냈다.
  • 사라진 미술관/헥토르 펠리치아노 지음(화제의 책)

    ◎나치가 자행한 유럽 미술품 약탈행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유럽미술품 약탈행위를 기록.전쟁은 한 나라의 영혼과 숨결의 상징이라고 할 미술과 문화까지도 속속들이 학살했다.교만한 독일 고관과 여기에 기생한 파렴치한 유럽의 미술중개상들,전시중에도 여전히 번창했던 파리 미술시장을 들쑤셨던 경솔한 경매회사들….이들은 물샐틈 없는 그물망을 형성해 유럽 명품의 운명을 거머쥐었다.히틀러는 프랑스 입성과 동시에 별도의 정부부서 세곳으로 하여금 점령지프랑스에서의 미술품 몰수 감독업무를 맡게 했다.독일군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미술품 보호부,외무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 그리고 나치의 창도자이며 당수였던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던 점령지 로젠베르크 전국특별참모부(ERR)가 그것이다.나치는 당시 2만점 이상의 그림과 조각품을 프랑스에서 약탈해갔다.수천개의 나무상자에 실려 파리에서 독일로 흘러들어간 미술품,그 상자 위에는 나치의 만장과 ‘제3제국 소유’라는낙인이 선명하게 찍혔다.작품은 일일이 촬영되고 목록으로 작성된 다음 독일로 운송됐다.이 고가의 문화적 전리품들은 히틀러와 예술애호가였던 헤르만 괴링에게,혹은 다른 유럽미술관으로 옮겨졌다.한편 나치의 눈에 평가절하된 현대화들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번창하던 전시 미술시장으로 팔려나갔다.이 책은 로스차일드,로젠베르크,베른하임­죈느,다비드­베일,슐로스 등 다섯 미술수집가 가문의 개인소장품에 초점을 맞춰 나치가 얼마나 집요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미술품을 강탈해 갔는가를 밝힌다.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의 국립미술관에는 나치가 약탈하거나 사들인 2천점 가량의 미술품들이 ‘소유불명’이란 딱지와 함께 보관돼 있다.한기찬 옮김 금호문화 9천원.
  • 지옥의 역사 Ⅰ·Ⅱ/앨리스 터너 지음(화제의 책)

    ◎지옥의 이미지와 관념의 변천양상 천국이 정신적이라면 지옥은 기이할 정도로 육감적이다. 창조적인 사람들 특히 화가와 시인들은 지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괴한 상상,귀스타브 도레의 음울한 환상,윌리엄 블레이크가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과 시….이 책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지옥의 이미지와 지옥관념의 변천양상을 살핀다. 수메르에서 고대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지옥은 그저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지하의 어두운 장소일 뿐,특별히 죄인을 처벌하는 곳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죄 지은 자가 사후에 처벌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이르면 핀다로스는 악한 자들이 지옥에서 끔찍한 노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지하세계의 심판관을 열거하고,‘파이돈’에서는 생전에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각각 다른 시련을 겪는 영혼의 운명을 묘사했다.또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진 신비주의 신앙은 초기 기독교의 지옥관에 영향을 미쳤다.교회가 지배하던 중세는 ‘지옥의 전성기’였다.중세의 지옥은 이단을 박해하고 억압적 지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도구였다.그러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사람들은 지옥을 하나의 실재로 생각하는 전통적 지옥관을 거부했다.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지옥을 “당신의 하녀나 재단사가 믿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한편 괴테·블레이크·바이런·보들레르·랭보·멜빌 등 낭만주의 문학가들은 지옥에 관한 흥미로운 태도를 보여줬다.그들은 악을 기피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았다.그들에게 지옥은 사회의 도덕·관습을 이탈하고 삶의 한계를 뛰어넘는 즐겁고 위악스런 도피처였다.현세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지옥,그 은유적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이찬수 옮김 동연 전2권 각권9천원.
  • 편안하게 풀어쓴 그리스철학사/伊작가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대표작

    ◎특유의 경쾌함­비판정신 결합/‘암호문같은 말잔치’ 탈피 고심 “밀레토스는 기원전 1000년경 크레타 섬과 그리스 본토,그리고 불타버린 트로이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세운 도시다.그리스의 역사가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당시 밀레토스로 몰려온 침입자들은 여자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강탈한 카리아 지방(오늘날의 터키 일부로 에게해 연안)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다.당시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마치 ‘사비니의 약탈자’처럼 전형적인 침략자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이탈리아 작가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만능 지적 엔터테이너’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발군의 솜씨를 보여준다.최근 국내 출간된 그의 대표작 ‘그리스 철학사1·2’(김홍래 옮김,리브로)는 이런 그의 재능이 압축돼 있는 대중 철학서다. 데 크레센초는 이 책에서 특유의 경쾌함과 진지함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독특하게 결합,그리스 철학에 대해 말한다.1권에서는 물의 사나이 탈레스,콩을 먹지 않은 피타고라스,파르메니데스의 조연배우였던 제논,원자에 미친 사나이 데모크리토스,대중연설의 대가인 소피스트 등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철학자들이 소개된다.또 2권에서는 기회가 생기면 헤타이라 곧 교양과 기예를 갖춘 고급 매춘부들과 사랑을 나눴다는 소크라테스를 비롯,동굴의 현자 플라톤,고물수집가 아리스토텔레스,정원의 현자 에피쿠로스,주랑의 사나이스토아학파,신(新)플라톤주의자 등 아테네와 헬레니즘의 철학자들을 다룬다. 데 크레센초의 비판정신에는 심오한 해학이 깃들여 있다.그는 이 책에서 진지한 수학자요 철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가 당시 명문대학 사제들에게가르침을 받기 위해 추천장과 뇌물의 힘을 빌렸다고 빈정거린다.그런가하면 소크라테스의 가정문제를 언급하면서 세기의 악처로 기록된 크산티페를 변호하기도 한다.또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이데아의 세계,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논리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했던 것과는 달리,소크라테스 이후 인류의관심은 인간과 도덕의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은 마치 과학과 종교의 중간에 있어서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주인 없는 땅’같은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데크레센초에게 있어서 철학은 더이상 블랙홀에 빠져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난해한 학문도 암호문같은 말잔치로 가득한 ‘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다.그의 철학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내 그가 차린 철학카페에 와서 그가 연출하고 주연한 ‘대중’을 위한 철학쇼의 관객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한 예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일곱 현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소개한다.“칠현인(七賢人)은 일곱이 아니라 스물둘이었다.탈레스,피타코스,비아스,솔론 등 네 사람만이 주전이었고 나머지 셋은 무려 열여덟 명의 후보선수들 중에서 그때그때 결정됐다” 이 책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철학의 왕국’이라는 독일에서도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작품이다.
  • ‘韓方’ 닮은 독일 자연치료학/쉬케 박사 이색강연

    ◎“안구의 홍채가 모든 장기 대표 침술로 류머티스·피부염 치료 혓바닥 보고 소화기이상 진단” 지난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서는 이색적인 의학강연이 열렸다. 세계의학저널(02­616­3456)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유럽 전통의학의 하나인 독일 자연치료법에 관한 것.한의사를 비롯,일반인들이 대거 참석,요즘 부쩍 높아지고 있는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강연은 에스페란토로 진행됐으며,鄭元朝 박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회장)가 통역했다. 자연치료는 중세 수도원에서 비롯된 약물치료학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지금 독일에만 1만명 이상의 자연치료학자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자연치료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도 함께 치료한다는 것.연자로 나선 자연치료학자 하랄트 쉬케박사는 이날 독일 자연치료학의 핵심인 홍채학,서양침술,설진(舌診)법에 대해 설명했다. 주요내용을 요약한다. ▷홍채학◁ 안구의 홍채안에는 인체의 장기(贓器)에 해당하는 조직이 있다는개념에서 출발한다. 오른쪽눈동자는 오른쪽 장기를,왼쪽 눈동자는 왼쪽 장기를 대표한다고 본다.기관지,간,비뇨기등의 이상을 홍채를 통해 알수 있다는것. 예를 들어 ‘위염을 앓고 있다’면 서양의학에서처럼 위의 염증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걸렸느냐를 중요시 한다.홍채를 통해 어떤 장기가 약해졌느냐를 본 뒤 원인을 발견,다양한 치료를 하게 된다.예컨대 이 방법으로보면 독일인에게 흔한 축농증의 한 원인은 오른쪽 발이 차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어리석어 보이지만 차가워진 오른쪽 발을 따뜻하게 했더니 축농증이 실제로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침술◁ 약150여년전 독일의 발명가 카를 바운샤이트가 만든 기계를 이용한 침술.그의 이름을 따서 ‘바운샤이트침술’이라고도 한다.한방침술과도 일맥상통한다. 33개의 바늘로 만든 기계로 피부를 1㎜정도 찔러 치료하는 것.바늘 끝에는 약초기름을 바른다.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자극만 주는 것으로,맞고 나면피부가 빨갛게 변한다.류머티스,피부염 등에 효과가 있다. 만성편도선염환자를 치료할 때는 침으로 찌르고 수건으로 덮어두면 뜨거운 느낌이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치료된다.피부염의 경우,문제가 생긴 바로옆 부위에 침을 놓아 치료한다. ▷설진(舌診)◁ 말 그대로 혀를 보고 병을 진단하는것.독일 자연치료학자들은 혓바닥이 소화기를 대표한다고 본다.우리 한방에서도 쓰고 있는 방법이다. 혓바닥의 색깔,백태 유무,패인 곳,부었는지와 함께 혓바닥 밑의 정맥 등을 관찰한다.예를 들어 혓바닥의 안쪽 부분은 항문의 이상을 나타낸다.위,간,장 등의 질환을 이 방법으로 진단할 수 있다.
  • 계열사 책임경영 ‘기업연방제’/LG그룹 구조조정안 내용과 의미

    ◎상표만 공유… 의사결정 각사 이사회서/상호출자 해소… 구 회장 전자·화학 맡아 LG그룹이 26일 발표한 그룹 경영체제 개편방안은 궁극적으로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룹 해체’까지도 염두에 둔 조치로 평가된다.LG는 이과정에서 기존 계열사들이 브랜드와 경영이념은 공유하되 독립기업의 협력체로 운영되는 ‘LG기업연방제’를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 LG그룹의 발표가 어느정도 실천될 지는 지켜봐야 겠지만 4대그룹 가운데 金大中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 및 기업 구조조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셈이다. LG의 조치는 두가지로 압축된다. 오너의 수족(手足)으로 비난의 대상이 돼온 기업지배 구조인 ‘회장실’의 즉시·완전해체하고 독립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LG는 먼저 80명 규모의 회장실을 해체하는 대신 LG화학과 LG전자에 ‘이사회 지원실’을 설치,갑작스레 회장실을 해체하는데 따른 경영혼란을 수습키로 했다.또 구조조정과 개혁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한 한시기구로 ‘구조조정본부’를 설치키로했다.LG의 회장실 해체는 현대그룹이 종합기획실을 현대건설에 옮겨 놓아 이름만 바꾼 사실상의 ‘회장실’을 존치라는 비난여론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여겨진다.삼성그룹이 삼성전자로 회장실 자체를 옮기기로 한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G는 구조조정본부가 상호출자해소와 올들이 크게 늘고 있는 외자도입업무 등을 맡도록 하고 최소한의 인력만 둘 것으로 알려졌다.본부장은 회장실 사장인 李文浩 사장이 맡아 실질적인 개혁을 지휘하도록 했다. 책임경영을 위해 모든 기업을 법인 이사회 위주로 운영키로 했다.CEO(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具本茂 회장이 화학과 전자의 대표이사를 맡는다.두 회사는 그룹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具회장은 정유 상사 반도체 정보통신 등의 이사로만 등재된다.53개 계열기업군의 대부분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벗어나 독립적인 경영에 나서게 된다.LG는 고객의 신뢰도를 현저히 해치거나 가치창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LG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스핀오프’(계열분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 연극인 김의경(이세기의 인물탐구:164)

    ◎10년 앞 꿰뚫는 공연 예술의 선지자/초대형 청소년 뮤지컬 ‘슈퍼스타’ 기획 공전의 히트/청소년공예술진흥회 등 구성,연극계 입지 넙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분과 결부된 감성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극작가이자 발군의 연극기획자인 김의경의 연극인생을 두고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나 김의경은 극작가 이전에 먼저 ‘조직의 천재’다.단체를 조직하고 그 조직을 움직이는데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획 능력을 타고 났다.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포착하여 그 시대의 연극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그때의 활약상으로 한 시대의 영욕과 투철성을 일목요연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 그가 조직한 단체의 면모를 살펴보면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의 서울대 연극회를 필두로 지난 60년, 이낙훈 김동훈 등과 만든 극단 실험극장을 들 수 있다. 창단 당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노력하는 천재를 발굴하고 미래의 참된 예술인을 위한 가교가 된다’는 것이었으나 이 극단이 10년이상 지속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그러나 당시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던 소극장 중에서도 실험극장은 최근까지 단연 돋보인 단체로 손꼽혀 왔다.사무실도 없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던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그들은 연극을 향한 열망만으로 종로 2가 아세아제과점에 죽치고 앉아서 ‘행운의 여신’이 오기만을 베케트의 고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끝내 여신은 손짓하지 않았고 그대신 사회 각층의 연극애호가들을 모아 ‘실험극장 후원회’를 만들었다.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때는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 이진순 이해랑이 원경씨와 의논하여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축전’을 기획했고 스스로 사무간사가 되어 고급 관객을 위한 티켓을 제작한 것이 연극 페스티벌 사상 공전의 히트를 성취시킨 첫번째 예이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76년,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현대극장을 창단했고 춤과 노래와 연기의 총체적 예술에 눈뜨게 되었으며 창작뮤지컬 ‘빠담빠담빠담’과 ‘백설공주’‘피터팬’‘올리버’‘오즈의 마법사’ 등청소년 연극과 어린이를 위한 어른의 뮤지컬로 연극의 대형화,형태의 다양화, 관객의 광역화에 성공했다.그중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관객 2백만을 동원한 초대형 호화판으로 정력적이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기획력은 단시일에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을 발휘해 냈다. ○극작가로도 활동 활발 실험극장이 자기세계를 위한 위대한 준비기간이었다면 뮤지컬공연은 전문연극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군소극단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대형 뮤지컬에 승부를 걸면서 청소년층에 ‘연극을 보는 것도 수업’이라는 캠페인을 벌여나갔고 이화여고 강당인 류관순기념관과 능동 어린이회관의 무지개극장 등 공연장을 확대한 것도 그의 공로로 돌릴 수 있다. 그가 어린이·청소년연극을 만들게 된 동기는 지난 75년 국제극예술협회(ITI)총회에서 만난 미국의 저명한 연출가 해럴드 클로먼이 ‘한국연극사’ 토론중에서 ‘한국연극의 영세성과 낙후성’을 타개하려면 ‘먼저 어린이연극을 시작하라’는 충고에서부터다.김의경 특유의 냉철한 투쟁정신과 정확성의 힘은 지난 80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SSITEJ) 한국지부를 유치하는가 하면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를 발족하여 연극계 입지를 강화하는데 추호의 빈틈이 없는 완벽성을 기하고 있다.이후 대학로극장 개관과 함께 ‘대학로의 타락과 황폐화’를 막기 위한 대학로지역 극장연합회,서울시립극단의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으로서 지방의 시립극장의 모임인 한국공립극단연합회 등은 결국 연극인의 단합과 연극의 퇴보를 검속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극작가로서 그가 쓴 ‘함성’‘북벌’‘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와 ‘남한산성’ 등은 우리민족의 수난사와 고난사, 민족정신에 깔린 간독을 갈파하면서도 당대의 정사를 이지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론 정연한 원칙주의자 그런 가운데 극의 반전과 드라마투르기로 어둡고 슬픈 이야기에 진지하게 파고들고 억지웃음이 아닌 투명한 웃음을 무대에 부조하여 관객 공감의 밀도를 더하고 있다.이런 창작의지는 미국의 명배우 윌리엄 워런이 말한 것처럼 ‘기계가 인간의 웃음을 앗아가는 시대’에서 ‘진정한 웃음은 우리들 인생의 시’라는 차원과 서민의 애환을 보다 간박하게 펼치는데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평남 순안에서 의명학교에 재직하던 교육자 김연묵씨의 9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났다.해방후인 10살때 월남하여 서울대 사대부고에 다닐때는 교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고 일찍이 소설가 허윤석씨로부터 문재를 인정받기도 했다.그만의 사업적인 두뇌는 아무도 뮤지컬의 붐을 예견하지 못할때 청소년 연극인 ‘수퍼스타’를 무대에 올렸으며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연극계는 뮤지컬의 회오리에 휘말려 있다.연극계의 편협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선험적으로 ‘연극산업’을 시도한 셈이다.그런 한편으로는 ‘한국 연극의 홀로서기’를 위해 ‘뉴욕­런던­파리­도쿄’로 이어지는 세계적 극단의 공연일정속에 서울공연이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서울은 마치 호적이 없는 무적자’‘우리의 현실은 빈자의 왕자’라는 자조가 그의 예술적 고뇌를 뒷받침한다.성격은 원만하지만 능소능대보다는 이론이 정연한 원칙주의자이다.능력있는 ‘걸물’로 불리는 부인 최문경씨와의 사이엔 남매.서울시립극단의 봄공연인 입센의 ‘민중의 적’을 준비중이다. 그의 감성은 연극무대에서 항용 ‘이성과 지성의 갈등’을 교직시키면서 어느때는 ‘노도와도 같은 웅변’을 뿜지만 그의 영혼의 뿌리는 한국연극의 10년 앞을 재단하는 연극의식이 누구보다 총달하다.지금도 희곡·기획·조직에서 이시대 삼장장원의 면모를 마모시키지 않는 그는 연극계의 기수로서 시들 줄 모르는 기백과 예각적 혜안으로 언제까지나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세다. □연보 ▲1936년 평남 순안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졸업 ▲1960­72년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운영위원·대표 ▲1961년 MBC창설멤버(PD1기) ▲1963년 희곡 ‘애욕의 우화’공연 ▲1964년 희곡 ‘갈대의 노래’공연, TBC창설 멤버 ▲1964­94년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 ▲1967년부터 캐나다 ITI총회 참가 ▲1968­70년미 브랜다이스대학원 수료, 연극학 석사 ▲1973­76년 중앙국립극장 공연과장 ▲1976년 현대극장 창설, 대표 ▲1980년 한국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SSITEJ) 초대 이사장 ▲1983년 미 하와이대 연극학과 수학 ▲1986­89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서울올림픽문화축전 서울국제연극제 상임위원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이사,ITI한국본부 회장,서울시립극단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 동국대 고려대 서울대 중앙대 출강 ‘세계신경향희곡선’(76년) 희곡집 ‘남한산성’(77년)‘경극과 매난방’ 번역(93년) 외 백상예술상 희곡상(75·86년) 눈솔상(85년) 문화훈장 ‘관훈장’(89년) 서울연극제 희곡상(91년)
  • 나무의 영혼/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굄돌)

    가끔씩 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중요한 일을 놓아두고 도망친 듯한 켕김을 느낀다.몸에 초록색 그물 같은 것을 두른채 주위의 벽돌과 콘크리트 더미에 가려,힘들게 올린 팔만이 겨우 보이는 그 나무때문이다.나이가 730살이나 된다는 서울의 최장수 느티나무. 그곳에 이사했을 때 느티나무는 참으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에서 수호신 대접을 받고 있었다.주민들은 해마다 그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매봉산을 배경으로,주변의 그보다는 어리지만 꽤 나이든 잔가지의 나무들과 함께서 있는 그 느티나무는 서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한 모습이었다. 그 나무의 시련은 주변의 연립주택 단지를 사들인 재벌 건설회사에 땅이팔리면서 시작되었다.회사는 어떤 교수들에게서 유리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와 나무를 보호하려는 구청의 조사를 뒤엎고 아파트 건립계획을 진행시켰다.처음에는 나무를 살리고자 애쓰는 듯하던 구청 각 부서는 완연 태도가 달라졌고 밤마다 주민들의 애타는 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노력은 지역이기주의로 몰리고 행정은 기업 쪽으로 기울어지는 가운데,주민들 내부에서도 분열과 이탈이 생겨 그동안 늦춰져온 건설작업이 차츰 기지개를 편 것이다.지난 일년간 별 진전이 없어 보이던 건설현장에서 느티나무의 주변에 그물을 치고 연립주택 철거가 한창이다. 이제 고층아파트로 철갑을 두른 나무는 바로 창문을 마주한 새 주민들의 눈에만 모습을 보인 채,시름시름 죽어갈 것이다.나무에도 영이 있다는데,나무를 죽이는 데 공모한 땅주인과 기업 관계자·관리·교수들은 나무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길잃은 환경정책 주변을 700살이 넘은 나무의 영혼이 배회할텐데….
  • 머리띠 졸라매기/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요즘 신문을 보면 부고란이 따로 없는 것같다.정치·경제·문화·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괴로운 신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최근 도매상의 연쇄부도로 야기된 출판계 위기 또한 끝모를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이미 작년 말부터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막상현실로 닥치고 보니 암울하기만 하다.종이·인쇄·필름 등 기초자재비의 폭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웠던 상황에서 서적 도매상의 마비는 출판인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이 때문에 제작을 해도 책을 뿌릴 데가 없어 창고로 직행해야 할 딱한 형편이다. 벌써 신간종수는 반이하로 줄어들었고 개접휴업인 상태의 출판사도 한두군데가 아니다.무언가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식산업의 대표격인 출판업은 절반이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이 그대로 실현되고 말 것같다. 책은 단순히 활자만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책은 시대를 편집하고 디자인한다.한 시대를 호흡하는 정신의 총화는 책을 통해 갈무리되어 다음 시대로 전달된다.인간의 육체에 산소가 필요하듯 인간의 영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외국에서는 불황기에 오히려 책이 더 잘나간다는 통계가 있다.하지만 우리의 경우 서점에 사람이 많긴 하지만 판매는 이전보다 뚝 떨어졌다는 전언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얼마전 평소 존경하는 소설가 한분과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졸라매어야 하는 것은 허리띠도 물론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머리띠”라는 말을 듣고서 퍽 공감했었다.턱없는 과소비는 굳이 IMF시대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삼가고 자제해야 마땅한 일이다.하지만 너무 위축된 소비심리는 오히려 경제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연구/석영중 등 지음(화제의 책)

    ◎서술구조­주인공들의 특징 해부 ‘인간 영혼의 투시자’‘잔인한 천재’등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주요 소설들을 분석적으로 고찰.기호학,구조주의,성서신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 제기하는 시학의 문제점들을 살핀다.러시아의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 이후 미국과 유럽,러시아의 도스또예프스끼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온 의사소통 시스템과 시공구조,텍스트의 위상 등에 초점을 맞춘다.아울러 순수하게 테마론적인 시각에서 도스또예프스끼 특유의 관념적 심연에 접근한다. 고려대 노문과 석영중 교수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독서광들과 해석자들­합리적 코드와 초월적 코드에 관한 개론적 고찰’이란 글에서 열광적인 독서가로서의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주인공들을 살핀다.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인물들은 각종의 실제적·허구적 텍스트들을 읽고 인용하고 표절하고 분석한다. 한 예로 ‘죄와 벌’에서 뽀르피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문을 읽고 그가 노파살해범이라는 심증을 굳히며,라스꼴리니꼬프는소냐와 함께 요한복음을 읽은 뒤 비로소 도스또예프스키가 예비해 놓은 회개와 구원의 대장정에 참여 할 수 있게 된다.그러나 누구보다 몽상적인 독서광이라고 할만한 인물은 ‘지하생활자’이다. 그는 20여년 동안 ‘지하’에 살면서 하이네·고골·루소·네끄라소프 등을 탐독한다.이런 맥락에서 도스또예프스키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독서의 독서’‘해석의 해석’을 수반한다는 게 석교수의 설명이다. 이 책에는 ‘구원의 흐로노또프­『죄와 벌』의 에필로그에 관한 소론’‘『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타난 극성연구’‘『백치』의 서술구조와 삽입 텍스트간의 상관성’‘『백치』의 므이쉬낀 공작과 크리스톨로지의 이중성’‘『악령』의 스쩨빤 베르호벤스키 연구’등 11편의 글이 실렸다.열린책들 9천500원.
  • 역사적 변화에 대한 적응력 키우자/연세대 김병수 총장 졸업식사

    21세기의 도래,세계화의 급속한 진행,IMF사태 등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서변화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경제공황을 이겨내도록 이끌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두려움과 진정으로 맞서 싸울 때 힘과 경험,자신감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환경이 비록 어렵더라도 우리는 이를 이겨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인식할 점은 우리 사회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여러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맥,인맥,지연,평생고용,안일주의 등 고질적 사회제도나 민족성을 고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역사적 변화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첫째,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고도의 전문화된 개인 경쟁력을 키워 창조적 소수가 되십시요.세계속에서 여러분이 21세기에 도전할 수 있는 무기는 지식뿐입니다. 둘째,21세기 세계의 새로운 질서이며 인류문명을 바꾸어 나갈 제도인 정보화에 대비하십시요. 컴퓨터를 무기로 한 새로운 사회질서는 무한대의 사이버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줄 것입니다. 셋째,모든 것이갖추어져도 지구촌시대는 이러한 지식을 소통하게 해주는 언어능력이 필수요건입니다.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연마하십시요. 넷째,여러분은 연세인답게 사회에 봉사하고 세계를 돕는 지도자가 되십시요. 끝으로 이 혼탁한 사회의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연세인의 몫을 다하십시요.얼마전 작고한 테레사 수녀님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이라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 인간의 외모는 하나님처럼 창조되었으며 모든 우주의 진리를 우리 몸에 열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여러분은 충실한 하나님의 연필이 되어 역사도 기록하고 소설도 쓰고 경제개발,지능컴퓨터 등 무엇이든 그려내도록 하십시요. 쉽고 편안한 환경에선 강하고 능력있는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이 탄생하고 통찰력이 생기는 점을 명심하십시요.
  • 우리시대 젊은작가 7인 소설로 푼 자전적 이야기

    ◎단편소설집 ‘서정시대’/글쓰기의 고통·희열 명쾌한 언어로 표현 채영주(‘미끄럼을 타고 온 절망’) 김인숙(‘바다에서’) 윤대녕(‘은항아리 안에서’) 은희경(‘서정시대’) 최인석(소설가 최보의 어제,또 어제) 함정임(‘동행’) 구효서(‘오남리 이야기3’).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일곱 명의 자전적 소설집 ‘서정시대’가 도서출판문학동네에서 나왔다.저마다 독특한 문학의 성을 구축하고 있는 7인의 작가가 자전소설이라는 타이틀로 쓴 단편들을 한데 묶은 것.이들에게 있어 세상은 하나의 가면무도회장.이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은폐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노출시키면서 글쓰기의 고통과 희열,그리고소설적 진실을 명쾌하게 담아낸다. “그때 열아홉 살때 첫키스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내 첫사랑은 완성되었을까”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은희경의 ‘서정시대’는 작가만의 문학적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특유의 날카롭고 속도감 있는 해학적 어조의 문장이 그대로 살아 있다.소설 제목인 ‘서정시대’는 화자가 여섯 살에서부터 대학졸업 때까지의 인생 시기를 일컫는 말.소설은 지금의 ‘나’와 지나치게 ‘진지했던’ 서정시대의 나 사이를 넘나들며 전개된다.지나친 진지함이 자신의 삶에 오해와 고지식함을 덧씌웠다는 게 ‘나’의 진단.인생에 대한 서정적 태도를 지녔던 ‘서정적 나이’의 그 시기와 당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자의식’ 사이에 작가 특유의 해학이 넘쳐난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구효서는 최근의 자신의 일상과 소설쓰기의 고민을 술술 읽히는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냈다.그 작품이 ‘오남리 이야기3’이다.작가는 “내가 소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설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그의 말 속에는 소설가의 운명이란 무당이 되기 싫어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종당엔 신내림굿을 받아들이고 마는 신딸의 운명과도 같은 어떤 숙명적인 인식이 스며 있다.구효서에게 있어 작가의 운명이란 “날마다 글 감옥에 갇혀 허우적대고 빌빌거리는 생활의 연속” 바로 그것이다. ‘동행’은 지난해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 김소진의 문학과 생활의반려였던 함정임씨가 고인의 마지막 투병과정을 진솔하게 적은 작품.악마의 놀림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몹쓸 병에 걸린 남편이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당하던 한달여 동안 함씨가 겪은 애통한 상황들이 소상하게 그려져있다.“새벽이 되자 그의 혼은 한마리 새가 되어 어둔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소설 ‘동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구상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고인의 순결한 영혼에 바치는 진혼가다. “글 쓴다는 것은 바퀴 빠진 수레를 밀고 언덕을 혼자서 올라가는 짓”이라는 최인석.그는 ‘소설가 최보…’란 작품을 통해 환상적 기법을 동원한 글쓰기의 고민을 토로한다.이 작품은 ‘소설과 망상의 경계’에서 시작된다.자신을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에 견주는 화자는 가공의 인물과 이미 사라진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먼저 이 소설은 정신분열증환자 쉬레버 박사를 등장시켜 프로이트를 비판하며,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이 실로 다양함을 보여준다.작가는 스스로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반성과 문제의식을 나름의 이야기 틀속에 정치하게 담아낸다. 감성적 언어와 몽환적 분위기로 특유의 소설적 성과를 일궈내고 있는 윤대녕의 ‘은항아리 안에서’는 자전소설이라는 이름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그는 이 소설에서 또 다시 한편의 서정시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닿을듯 말듯한 애절한 사랑의 아픔을 황홀한 이미지로 그려낸다.채영주의 ‘미끄럼을 타고 온 절망’은 무어라 이름붙일 수 없는 젊음의 열병에 사로잡혀 방황하던 작가의 20대의 삶을 애잔하게 그린 작품.작가의 길에 들어서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정신적 내출혈 과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김인숙의 ‘바다에서’ 역시 80년대의 시대고를 다루는 데 관심을 보여온 작가 자신의 20대 이야기다.“이루어야 할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속이 투명한 아이 J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80년대의 ‘운동권체험’을 힘겹게 토해낸다. 아울러 글쓰기의 진정성에 대한 물음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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