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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II)

    ◆이슬털기-편혜영고양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니.그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운동화의 끈을 여덟 개 구멍에 천천히 넣어 X 자 모양으로 만든 후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는 듯이 현관에서 발을 몇 번 굴렀다.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현관에서 뿌옇게 잔먼지가 일었다.남편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 손사래를 치면서 현관을 나섰다. 남편이 아파트 단지까지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실은 한 번도 본 적이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츄리닝 바지춤에서 부석거리는 잔모래가 떨어지거나,바지 끝에 풀섶 이슬이 묻어 있거나,저 아파트 앞으로는 8차선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라거나,아파트 외벽이 이만큼이나 높아졌어,팔을 벌리며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짐작했을 뿐이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도 남편은 곧잘 베란다 창을 통해 새로 시공 중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남편은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좁은 마당에 쥐가 들끓어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아파트 단지를끔찍하게 여겼다.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여오는쥐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은 쥐새끼는 소리라도 안 내는데 저 놈의 도둑 고양이 새끼가 질러대는 소리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고양이들은 아파트 마당을 소리없이서성여 대다가, 발정기가 되면 길고 끊이지 않는 소리로 암컷을 불러 대곤했다.그 소리는 부쩍 떨어진 기온으로 잔뜩 냉랭해진 아스팔트 위로 길게 솟구쳐 올랐다.야생에 사는 쥐는 스스로 독초를 먹는다는 거야,부엉이나 올빼미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기르는 거지.아파트 마당에다가 먹고 죽지 않을 정도로 쥐약을 뿌려야겠어,결국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다가 고양이가 죽게 될꺼야,그러면 저 지겨운 소리를 안 들어도 될테지,남편은 시선을 이제 반 너머 지어지고 있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이 시선을 거둘 줄 모르는 아파트는 최신 설계에 따라 시공 중이며 아파트 내부는 입주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높은 층에 살꺼야,베란다를 아주 넓게 하고,창은 아무 소리도 새어들지 않게 5mm 유리를 두장 쯤달겠어.남편은 밤이면 철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 괴괴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꿈에 부푼 아이처럼 유리에 입김을 불어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저 아파트 말이야,35평 분양가가 1억 4천이라는 거야,어디 급전쓸 데 없을까? 그는 꼭 내게라고 할 것 없이 베란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시선을 여전히 주공 아파트 단지에 고정한 채 말했다.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몸 속에 켜켜이 쌓이는 독약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쓴 침만 삼켜대는 쥐를,그 쥐를 먹고 고통스러워 할 고양이를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그러나 아파트 공사는 중단된 지 두 달이나 되었다.남편은 그것을 모르는 걸까.산책을 나갔다 오면 어김없이 저 아파트 말이야,마치 그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온 사람처럼 얘기를 했다.오늘은 저기 뒷동의 외벽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거야,어쩐지 퇴근 무렵에 인부들이 유난히 몰려 있더라고.현장 사람들이그러는 데 석달 정도면 외관 공사는 마무리 될 것 같다는군,석달이면 말이야. 나는 이미 8층에 사는 반장 여자를 통해,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가 하나떨어져 죽었는데,회사측에서 보상액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임금 노동자들이 반발하고,노동쟁의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일손을 놓고 있다고,게다가 회사 간부가 계약자들한테 받은 착수금을 갖고 해외로 도망쳐서 회사측에서는 더할 수 없이 자금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데도,나는 남편의 말에 간혹 대거리까지 해가며 짐짓 그 사실을 모른 척 했다. 수정이 나를 부르러 왔다.마당에 상청이 다 마련되었다고 했다.울었는지 수정의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병풍을 친 마당에는 조상상과 망자를 위한 상이 따로 놓여 있었다.무녀는 도사중의 영력으로 임신하여 ┌欲屛? 제석님네 맏딸아기가 아들을 낳아 남편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맏딸아기가 찾아가자 곧 제석이 중노릇을 파하고 큰 법당은 헐어내어 몸채 팔간을 짓고 큰 장삼은 뜯어내어 홑이불이 제격이며 목탁은 쪼개내어 장종지로 쓰고 장죽장은 분질러서 부지깽이로 쓰시어어,하는 긴 소리의 사설이 이어졌다.소리가 끝나자 무녀가 관중과고인을 상대로 재담을하기 시작했다.주발 뚜껑을 땡땡 치면서 염불도 하고,업도 불러들이고,바라춤을 추기도 했다.마당에 둥굴게 모여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무녀와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인들도 아까의 오열을 잊고 일어나 어느 샌지 흐흐 웃음을 흘리며 덩더쿵,사람들과 함께 춤을추었다.수정도 박수로 박자를 돕고 있었다.나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수정을 따라 박수를 쳤다.춤은 사람들의 웃음 속에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춤을 추고 난 후에 무녀가 천막을 친 기둥에 무명 한 끝으로 쌀 담은 주발을 묶어 맨 후 나머지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무녀는 신칼을 들고 서서 고풀이 무가를 잠시 불렀다.불쌍하신 최씨망제,최씨망제가 새앵전에 매애치인하안으을 고오로로 푸우러러 가시오오,축원한 후 고를 들고 춤을 추며 너울지게 흔들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갔다.왠일인지 고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저승까지 가져간 한을 뜻한다는 고를 풀기 위해 애쓰는 무녀를 보자,아직 예 남아 있는 그의 영혼이 저 고를 놓지 않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은이도 왔구나. 누군가 어깨를 툭,치며 알은 체를 했다.강호 선배였다.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강호 선배가 왔으면 은미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까이에 은미는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언제니,배가 많이 나왔다,은미도 임신해서 못왔어. 강호 선배는 내가 왜 두리번거렸는지를 알아채고 말했다.은미와 강호선배는 작년에 결혼을 했다. 강호 선배 어디 있었어요?수정이 다가왔다.아까 수정이 그의 방 문앞에서 만난 사람이 강호 선배였던듯,수정과 강호 선배는 오랜만일텐데도 안부 인사가 없었다.아직도 무녀가 쩔쩔매며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잡고 있자,그의 큰 누이가 나가 고를 푸는 것을 도왔다.드디어 첫 번째 고가 풀렸다.사람들이 와아,길게 환호성을 질렀다. 첫번째가 풀리니 나머지는 쉬웠다.무녀가 모두 풀어진 고를 든 채 염불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식구들을 축원해 주었다. 드디어 고가 풀렸다고,정말로 그가 생전에 한이라도 남기고 갔으면,다 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박수를 쳐대다가 나는 다시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뭔가가 뭉클,아랫도리로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왔다.수정은 강호선배를 내보내고,마당에서 아까 나를 부축했던 아주머니를 찾아 데리고 왔다.아주머니는 내게 밑에 뭐시 묻었소? 라고 물었다. 나는 축축한 팬티를 벗어 보았다.피가 섞인 끈적끈적하고 맑은 점액 덩어리가 묻어 있었다. 이슬이라요,이것이.아가 나오기 전에 자궁이 벗개지면서 쪼께 피가 나는 것이요,배 많이 아프요? 곧 아가 나올 수도 있겠어라요.나는 몸을 활처럼 휘고 잠깐 누워 있었다.마당에서 다소 느린 흘림 장단이 들려왔다.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진통을 털고 문을 열었다.수정이 바람도 찬데,나오지 말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덮어 주려고 하였으나,나는 마당으로 나갔다.영혼으로라도 그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며칠 전,그는 잔뜩 신이 나서 임신 4개월 밖에 안 된 주제에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사겠다고 남대문 시장을 돌아 다녔다.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말 이후로 몰라보게 달라진 그가 환멸스러워서 모든 것이시큰둥해 있었다.그게 그거인 좁은 시장통을 몇 바퀴 도는 동안 너무 지쳐 버려서 세 시간쯤이 되자 아무 옷이나 사 버렸다.커다란 테디 베어가 조악하게 프린트된 옷이었다.순면도 아니어서,갓난아기에게는 도무지 입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나는 아기의 배냇 저고리가 담긴 비닐 봉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아기 지울꺼야,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마침 도착한 좌석 버스를 탔다.그가 버스를 타려는 나를 잡았으나 있는 힘껏 그의 팔을 뿌리치고 재빨리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버스는 바로 출발했다.눈을 떴을 때 그가 지하보도로 느릿느릿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점점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빠져 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 때문에 충분히 불행하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나쁜 공기처럼 늘 우리 곁을 떠돌게 마련인 죽음의 신에게 음울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곧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그가 죽어 버렸다.횡단보도에서 유아들을 태운 12인승 미니 버스에 치이던 날 같이 있던 성우선배는 이상하다고,건너 편에 선 나를 보고 길을 건너던 기환이가,갑자기 판화처럼 멈추어 서더라고,그리고는 가깝게 다가오는 노란색 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여서 사람들은 기환의 곁을 빠르게 걸어 지나갔다고,그런데도 기환은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고 그의 학생증 사진을 확대해서 만든 영정 사진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죽자 없던 입덧이 생겨났다.입덧이라니.터무니없었다.이미 내 자궁은 내게 음식 냄새를 거부할 만한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수술은 봄날의 낮잠처럼 짧고도 평온한 것이었다.얇은 가운만을 걸친 채 벌린 다리가 수술대의 차가운 난간에 가끔씩 부딪쳤다.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보았던,혈관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얇은 살갗을 가진 16주된 태아가 씨앗같은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을 떠올리며 몽롱하게 마취되어 갔다.4개월 된 태아의 죽음에는 암울한 흑백 사진도,값싸고 아린 만수향내도 나지 않았다.눈물도 아까울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나는 우욱,먹은 것을 토해내고 질질 침을 흘렸다.대학 병원 전체가 장례식장인 듯 어딜가나 전을 지지는 기름내와 비릿한 육계장 냄새,만수향내가 났다.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해서 물도 마시지 못하다가 그의 하관식 날,나는 정신을 잃었다. 굿을 시작하면서 안방의 병풍에 걸려 있던 그의 한 벌뿐인 양복을 내려 마치 산 사람이 입은 것과 꼭 같이 만들어서 가마니 위에 펼쳐 놓고 이를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웠다.그 위에 술을 만드는 누룩을 놓고 다시 사람 모양으로 오린 넋을 놋쇠 주발 속에 넣어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바가지를 덮었다. 무녀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렸다.저승문을 두들겨 여는 것이라고 했다. 선배가 가려나 보다. 나직하게 한숨짓는 목소리로 수정이 말했다. 나는 그가 가는 길은 어딘가,혹 그가 죽은 후,마음 속으로 그의 무덤 곁에묻었던 우리의 4개월 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닌가,아득하게 눈을 돌려 영혼이 올라간다는 바닷길이 있는 쪽을 보았다가,먼 하늘에 돛대도 없는 쪽배인 듯 조금 차 오른 상현달을 보았다.무녀가 그의 옷을 넣어 만든 영돈을 쑥물,향물,청계수 순서로 빗자루에 묻히어 머리로부터 아래로 씻겨가기 시작했다.진양조의 긴 소리가 이어졌다.나야아 시러어어어 에에 헤이이이히로오 넋이로오오고나아아아 넋이이로오고나아.장구와 징만으로 된 진양조의 가닥이 슬프게 들리는지 그의 작은 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어머니가 손을 맞대고 빌면서,부디 이승에서 맺힌 원한풀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하소서 기구하는 짧은 소리를 했다.망자는 마르고 깨끗해야 환생할 수 있는데 망자의 원한이 이슬이 되어 젖어 있기 때문에 이를 씻겨 주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해서 이슬털기라고 한다는,씻김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 꿈에 선배가 나타난대,그의 어머니도 여러 번 꿈을 꾼 모양이야,아무래도 선배가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굿할 날을 받았다는 거야,실은 우리가 떠나보내지 못한 걸텐데 말이야.수정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나도 선배의 꿈을 꾼 적이 있어,꿈에 선배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무서워서 잠이 깼어,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나도 딱한 번,꿈 속에서 그를 만났다.꿈 속의 그는 나를 등지고 서서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었다.뒷모습에 불과한 남자의 영상을 그라고 생각한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사내가 멈칫 걸음을 멈추고,이내 서서히 돌아섰기 때문이었다.나는 돌아서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이 깨었다.지은아,가자,난선배 넋도 풀고,빚진 것 같은 내 마음도 풀고 와야겠다.너한테 수술하라고 다그친 게 내가 아니니.아무래도,선배가 그것 때문에 넋을 놓고 죽어 버린것 같아서 말이야.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정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무녀가 솥뚜껑을 연 후에 신칼로 바가지를 쳐서 독에 담긴 물 위로 떨어지게 하였다. 넋이 담긴 주발을 다시 한 번 쑥물 향물 비누 맑은 물로 씻기고 바가지 위에 얹어 놓았다.바가지는 배가 되고 독안의 물은 저승으로 가는 강이 된 것이다.망자는 쪽박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천천히 무녀가 신칼로 바가지를 돌리자 무녀를 돕던 다른 무녀가 아,배삯을 내야 저승으로 가지,하고 소리를 질렀다.그의 누이와구경꾼 몇이 바가지 속에 돈을 놓으니 쪽배는 금방 속력을 내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저승으로 가버렸다.그는잠깐이라도 들렀던가,다시 빠른 속도로 떠나 버렸다. 진통은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기미를 팬티에 흘려 놓고 사라져 버렸다.사방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때없이 닥치는 진통으로 나는 미처 내게닥친 진통이 몇 분 간격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다가,진통은 20분이 채 못되는시간꼴로 한 번씩 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여기서 아기를 낳는다면…나는갑자기 두려워져서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이미 새벽세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긴 산책 후 돌아와서는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남편을 잠깐원망하며 나는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앉아 치마 아래로 이슬이 비친 팬티를 벗어 버리고 몽골한 새 팬티로 갈아 입었다.그 때,진동으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남편이었다.자다 깬 듯 졸려운 목소리였다. 이왕 간 거니 어쩔 수 없쟎아,조심해서 있다 오라구. 굿이 끝나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예요. 재촉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나는 지레 그렇게 대답했다.아니야,한숨도 못자고 운전하는 당신 친구도 생각하라구.다만 몇 시간이라도 좀 자 둬. 나 때문에 깬 거예요?미안해 할 필요 없어,산책을 안갔다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어.당신,산책을 안 나갔어요?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고양이 죽이는 일도 지겨워,사방에 쥐약 뿌리는 짓을 몇 번 했더니 어제는 드디어 죽은 고양이를 네 마리나 보았어,당신 생각대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 따위는 가지도 않았다구.애기가 저 고양이 소리를 안 듣게 되서 기분이 좋아.난 좀 자야겠어,당신도 좀 자두지 그래.남편이 선하품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나는 밤이슬 젖은 풀섶을 뒤적이며 쥐는 죽지 않을 만큼,종내는 고양이가 죽을 만큼의 쥐약을 흩뿌리고 있었을 남편을 떠올려 보았다.어이없고 황당한 마음 한켠으로 고양이 소리 따위에 마음 속에서 확확 불길이 치솟는 그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아 안쓰러워지기도했다. 무녀가 대바구니 속에 쌀이며 망자의 옷,넋을 담고 지전으로 장식한 넋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쌀을 천 위로 뿌리면서 신칼을 들고 소리를 했다.안방에서는 그의 작은 누이가 무명천으로 만든 질베의 한 끝을 잡고 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 끝을 잡고 있었다.무녀가 신칼과 넋상자를 다리 위로 조금씩 움직여 닦으면서 염불을 했다. 가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저승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넋상자를 질베 밑으로 넣어 한 바퀴 돌린 후 망자가 편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은 후 마당 쪽에서부터 베를 걷어 안방에서 들고 가족들 축원을 잠깐 했다.이제 망자는 극락으로 천도했고,자손들 발복하게 축원도 했으니 한 번 놀고 가자면서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었다. 춤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수정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배며 후배들을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이기도 했지만,사람들마다 춤사위가 워낙 커서 나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구르고 크게 팔을 내두르는 손짓에 슬쩍배가 맞았다.팽팽한 고무줄처럼 바짝 조여 있던 배가 약하게 떨려 왔다.무녀가 굿상의 음식을 조금씩떼어 바가지에 담고 있었다.왼손에 바가지 오른손에는 빗자루에 손대를 들고 마당에 서서 굿에 따라든 잡귀에게 풀러 먹인 후 대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다 버렸다.나는 가늘게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통증에 잠깐 휘청였다. 마당 가운데 그의 옷 넋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 길게 퍼져 올랐다.벌써 저편으로 연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불꽃 속에 그의 옷가지며 책들을 던져 넣었다.그의 누이가 누런색 곰인형을 들고 나오더니 거리낌없이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인형은 솟아오르는 불기둥 근처에 떨어져 타박타박,날라오는 불씨에 조금씩 타고 있었다.나는 허적이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쳤다.인형은 태우지 마세요,말은 입속에서만 크게 울렸다.사람들 몇이 춤을 추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그 때,몸이 찢겨지는 듯한 통증이 다시 아래로부터 솟아올랐다.진통은 아까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나는 휘청거리는 것으로는 막지 못하고 바닥에 스러져버렸다.초겨울 바람에 잔뜩 얼어 있던 땅이 임부복을 입고 있는 내 몸에 닿자,나는 진통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다시 한번 몸을 웅크렸다.아슴하게 사람들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진통은 멈추지 않았다.누런 곰인형은 여전히 날아드는 불씨에 조금씩 타 올라 이제는 불꽃을 내뿜는 전설 속의 용처럼 온통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아랫도리로 뭔가가 뭉텅,빠져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원피스가 따뜻하게 젖어갔다.왠일인지 흙바닥이 더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다리 사이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나는 따뜻하게 젖어가는 땅 위에서 혼몽하게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아서,이를 꽉 물고 내게로 다급하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누군가,어째야 쓰까나,양수가 터져 버렸네,크게 소리를질렀다.자꾸만 감기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안아 일으키려는 얼굴을 바라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지,그 사람의 얼굴 뒤로 보이는 달은 아까보다 조금 더 차오른,상현이다.
  • [굿모닝 새천년] (20) 21세기의 신제품

    ‘신제품(新製品)’을 사전적 의미로만 풀이한다면 ‘원료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물품’정도가 될 것이다.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의 시대 및 상황논리가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 협의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신제품의 탄생에는 시대적 ‘요청’과 조류가 원하는 ‘필요’에다 이를 충족시키는 관련 분야의 성공적인 ‘기반’이 수반되야 하기 때문이다.무형의‘핵심원료’인 신기술이 성공적 기반의 중심이다. ‘사이버’‘지식’‘정보화’‘인터넷’….잘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이러한 단어들이 21세기의 일상(日常)을 지배할 것은 확실하다.굳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린다면 ‘인터넷’이란 수단을 통해 대충 뭉뚱그려지는 ‘네크워크 호환사회’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우리의 몸도 예외일 순 없다.일본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주인공의 영혼이 직접 인터넷에 들어간다. 이처럼 네트워크 호환사회와 이를 뒷받침하는 신기술은 신제품 탄생의 필수적 ‘상수(常數)’다.여기에 ‘매개변수’가 무엇이냐에 따라 신제품이 형태와 종류가 결정지어진다.네트워크 호환의 정도가 어디까지 갈지 현재로선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제품의 구체적인 적시는 어렵다. 그러나 미래학자나 관련 전문가들의 예측과 예상을 종합해보면 매개 변수도 크게 3가지 정도로 묶을 수 있어 대강의 형태는 그릴 수 있다.▲신기술에대한 인류의 욕구,▲시공(時空)의 압축.▲사이버사회의 도래 등이 큰 줄기다. 이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인류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왔던 신기술에 대한인류의 욕구다. 최근 일본의 경영전문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정보가전,생명·의류공학,환경등 3개 분야로 나눠 ‘21세기초 세계의 주목을 끌 신기술’을 발표했다. “정보가전의 등장으로 가정에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자유로이 편집해 다시 인터넷등을 통해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부엌의 냉장고는 식품재고를 점검해 야채나 과일이 부족하면 슈퍼마켓에 자동으로 주문 신청을 하게 된다.” “또 생명·의류공학은 인간과 식물의 유전자 해독을 가능하게해 인류의복지와 식량문제 해결에 이바지 하며 환경분야 신기술은 전력의 무공해 발전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인류의 생활및 환경에 대한 인류의 희망과 직접 연관이 있는 기술들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 21세기 신제품 등장에 대한 윤곽을가늠할 수 있게 했다. 네트워크 호환성에 비롯된 시공(時空)의 압축도 신 개념의 제품들을 탄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이른바 웹코노미(web+economy)의 부산물이다. 제품 생산과 유통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자본 순환과정이 여러구성단위들로 잘게 쪼개지고 뒤섞이는 과정에서 신 제품이 파생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기술을 토대로 한 게 아니고 신기술을 원료로 한 제품 활용에서 비롯된 2차적인 21세기 제품인 셈이다.특히 판매자와 구매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개인의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현금을 주기도 하는게 좋은 예다.소비자는 이미 ‘정보’의 판매자가 돼 버린다.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도 인터넷이 개인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하는 ‘퍼스널웹’시대의 도래를 예측했다. 가상사회화가 생성을 촉진할 제품들도 무시할수 없다.무형의 특히 서비스분야 제품들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전 인류가 물리적인 세상과는차원이 다른 사이버 공간으로 무대로 옮겨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가상기업이 보편화되고 가상직업도 흔해진다.가상정부,가상마을,가상사무실,가상여행 등….현재 실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공간과 활동이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사이버 생활도 여기서 발생하는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새 제품들의 탄생을 촉진시킨다.심지어 대화식 멀티미디어를 통해 가상섹스를 할 수 있는 디지털파트너의 등장마저 점쳐지고 있다. 김병헌기자 bh123@ **MS 퇴장…리눅스시대로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MS)사의 윈도즈가 20세기 정보혁명의 대미를 장식했다면 새로운 세기 주역은 ‘리눅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99년 MS사는 세계 소프트웨어 업계 제왕으로서의 명성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야했다.숱한 재판끝에 11월 미 연방법원은 MS에 대해 ‘독점’판결을내렸고 이후 MS는 ‘왕국 해체설’에까지 시달렸다. MS를 위축되게 한 것은 시장 윤리문제인 독점 판결 그 자체가 아니라 거세게 불어닥친 ‘리눅스’돌풍.MS의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윈도즈를 대체하는 무료 운영체제인 리눅스는 테크노 밀레니엄 시대의 총아를 꿈꾸는 벤처기업및 네티즌들의 성원에 힘입어 올 후반기들어 폭발적인 확산에 들어갔다. 리눅스는 지난 91년 핀란드의 리누스 토발즈란 대학생이 윈도즈의 대안 운영체계를 개발,인터넷상에 공개하면서 널리 퍼지게된 무료 운영체계.‘인터넷 등 정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사명으로 뭉친 미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무료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등의 정보 공개운동과 반(反)MS감정을 가진 네티즌들의 연구와 사용으로 급속히 보급돼왔다. 리눅스는 세상에 나온지 10년도 안됐다.하지만 세계적으로 1,500만명,국내에서는 10만명 이상이 리눅스를 연구하거나 사용중이다. 지난 11월 미국에서 열린 ’99추계 컴덱스에는 전용 리눅스관이 개설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빌 게이츠 MS사장,칼리나 피오리나 휴렛 패커드 회장등 기라성 같은 업계거물들과 함께 리눅스 창시자인 리누스 토발즈가 기조연설에 참가하기도 했다. 리눅스를 바탕으로한 한 각종 서버를 개발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미국의 레드햇,칼데라,코렐 등.IBM은 각 업체들의 개발 프로그램이 각각이어서 생기는 불편을 덜기 위해 고객 교육및 AS부문은 도맡아 개발키로 했다. 국내에서도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나모인터랙티브,리눅스원 등 5개사가 리눅스전문 합작법인 (주)엘릭스로 출범,소프트웨어 개발과 마켓팅을 공동으로 펼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리눅스의 미국내 시장점유율은 97년 6.6%,98년 17.2%,,99년 30%이상에서 2005년 쯤에는 MS윈도즈와 대등해질 것이란 전망이다.휴대폰,셋톱박스,게임기 등 이른바 포스트 PC기기의 운영체계로 집중개발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넷 즉 네트워크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21세기의 특징은 세계적인 파워브랜드의 부침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최근 뉴욕 타임스가선정한 21세기를 주도할 대표적인 파워 브랜드의 절반이상이 인터넷이나 컴퓨터,정보통신 등과 관련된 업체들이었다.나머지 업체들도 인터넷 활용을 기본으로 하는 업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선정된 21세기 21개 파워 브랜드중 인터넷 정보통신 컴퓨터와 직접 관련된브랜드는 인터넷 검색엔진 야후를 비롯,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과 전자상거래 업체 프라이스라인 닷컴,인터넷 서비스회사 아메리카온라인(AOL) ,익사이트앳홈,인터넷 경매업체 이베이(eBay) 등 12개. 20세기 파워브랜드 27개 가운데 정보통신 컴퓨터 관련 브랜드가 10%정도인마이크로소프트(MS)·IBM AT&T등 3개에 불과했던 것과는 격세지감이다.더욱이 코카콜라·질레트·마이크로소프트(MS)·IBM·캘빈 클라인·월마트·말보로·AT&T·제너널모터스(GM)·캐딜락·벤츠·나이키 등이 부문별 선두를 다투지만 21세기 파워브랜드 반열에서 탈락한 대목은 21세기 제품 기상도의 대 변혁을 예고하는 서곡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뉴욕타임스가 미래 가치를중심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야후 등 정보통신 업체가 21세기 파워브랜드 앞부분을 차지한 점에서도 잘나타난다.야후는 하루 평균 세계 1억명 이상이 이용,이미 시장가치가 420억달러를 넘어 섰다. AOL도 세계 100여개국에 2,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300여만종의서적을 취급하는 아마존은 고객이 160여개국 450만명으로 시장가치가 224억달러까지 성장했다.제프리 베조스 아마존 회장은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익사이트앳홈은 가입자가 64만명선으로 AOL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99년2·4분기에만 1억4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정보통신 업체로는 노키아,델 컴퓨터,네트워크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루슨트테크놀러지와 SBC커뮤니케이션이 각각 파워브랜드 자리에 올랐다.1865년 핀란드에서 제지·고무회사로 출발한뒤 92년 통신기기 메이커로 변신,4년만에 미 모토롤라사에 이어 세계 2위의 메이커로 급부상했다.PC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델 컴퓨터는 98년 182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게임기 업체 닌텐도,투자회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와 뱅가드,커피체인 스타벅스와 크리스피 크레메,의류업체 토미힐피거와 옷가게 체인점 바나나리퍼블릭,스포츠전문 방송 ESPN과 만화전문의 어린이방송 니클로디온,청소년용탄산음료 업체인 마운틴 듀,세탁업체 드리엘 등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업체들도 21세기를 이끌 업체로 선정됐다. 특히 70년대만해도 화투놀이용 카드를 만드는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닌텐도는 83년 가정용 게임기 패미콤을 개발,히트하면서 단숨에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했다.98년 매출액은 40억달러.또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가 페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자그마치 3,000억달러를 굴린다.고급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전 세계에 2,000개 이상의 지점을 거느리고 있는 ‘커피왕국’이다. .김규환기자 khkim@
  • 불황한파 매서워도 良書는 살아남는다

    새 밀레니엄이 눈앞에 바짝 다가섰다.지난 천년을 보내고 새천년을 맞는 설레임이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희망과 도전,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가운데에서도 어제를 돌이켜 보고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필요하다.대한매일은 이를 위해 지난 10년 시대정신에 활기를 불어 넣은 양서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교수와 출판사 대표 등 관계자의 도움을 얻어 각 분야별 서적을 점검해 본다. ◆인문·사회◎제3의 길(앤서니 기든스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정책 배경을 이룬 이론.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토플러의 ‘제3의 물결’,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등에 이어 사회과학서적으로는 예외적으로 전세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제3의 길’은 아직껏 ‘진행형’이지만 미래의 통찰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21세기에도생명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죽이기(강준만 지음,개마고원 펴냄) 우리사회의 전라도 차별주의를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 의식,즉 지식인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비판한다.오피니언 리더들의 약점을 폭로해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탈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조혜정 지음,또하나의 문화 펴냄) 일상적 삶의 구석구석을 우리의 시각으로 들여다 본다.서구 학문의 권위나거대 담론에 기대어 말하는 것만을 학문인양 여기는 지적 풍토를 비판하고있다. ◆문화·예술◎욕망,그리고 도시와 문화-호모 픽토르 1(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지음,호영 펴냄) 문화연구와 인간의 욕망구조를 접목시켜 우리의 일상을 해부한다.90년대 최신 대중영화에서부터 일상용어,춤 등의 문화현상을 통해 현대인의 의식에 노비(奴婢)심리가 각인돼 있음을 밝혀내는 등 다양한 시선으로 우리 일상생활을 탐구한다. ◎한국건축의 재발견(김봉열 지음,이상건축 펴냄) 옛 건축의 씨줄과 날줄을꿴 순례기로,건축만이 아니라 그 건축을 낳은 시대는 물론 사람과 정신을 알려준다.‘시대를 담는 그릇’,‘앎과 삶의 공간’ ‘이 땅에새겨진 정신’등 전 3권으로 이뤄졌다. ◎우연 또는 필연(강운구 지음,열화당 펴냄) 70년대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과 빛나는 영혼들,그리고 그들을 질곡하는 온갖 악들을 정직하고도 준열하게 보여준다.황석영의 ‘객지’,신경림의 ‘농무’ 등에서 뛰어나게 형상화된이 땅의 모습과 사람살이 사진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과학◎새로운 생물학-자연속의 지혜의 발견(로버트 어그로스 등 지음,범양사 펴냄) 상대론·양자론 등 뉴턴 역학의 한계를 극복한 현대 물리학의 혁명이 생물학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생물학의 접근방식의 변화를 촉구한다.서울대 김상종 교수는 “생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생물학을 연구하는 자세에 대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면서 “자연과학도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고 말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린 마굴리스 등 지음,지호 펴냄) 생명체를 경쟁과 정복의 관계로 해석한 다윈의 ‘진화론’을 뛰어 넘어 ‘생명체의 평등과 공생의 관계’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생명 및 환경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 깔려있다.과학서적에 대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읽는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거미의 세계(임문순 등 지음,다락원 펴냄)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거미의 종류,생활사,생태 등을 알려주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해준다.‘생물생태의 교과서’의 전범을 제시하는,가치가 큰 책이다. ◆역사◎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한국역사연구회 지음,청년사 펴냄) 90년대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이들은 80년대가 이데올로기와 사회과학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역사학 대중화,문화적 개성의 발흥기라고 구획하면서 이 책이 그 결절점에 놓여있다고 말한다.용인대 이동철교수 등은 “향후 한국 역사학계를 이끌 소장학자들이 역사의 대중화에 새로운모범을 제시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지음,들녘 펴냄) 기술의 엄밀성과 분량의 방대함으로 일반인들이 외면하는 조선왕조실록을 쉽게 풀이한 값진 책. 역사서로는 드물게 1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장의덕 개마고원 사장은 “역사의식만을 강조하는 여타 역사서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김상종 서울대 교수,유지나 동국대 교수,이동철 용인대 교수,김학원 푸른역사 대표,이기웅 열화당 대표,이원중 지성사 대표,장의덕 개마고원 대표,한철희 돌베개 대표. 정기홍기자 hong@
  • 영화비평지 ‘필름 컬처’ 내일-23일 특별주간

    ‘영화의 성자(聖者)’ 로 베르 브레송(1907∼).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하나인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영화비평 계간지 ‘필름 컬처’는 17일부터 23일까지 제2회 필름컬처 영화주간을 열어 브레송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한다.서울 정동 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영화제에서 선보일 브레송의 작품들은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브레송은 프랑스 누벨 바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진정한 의미의 영화작가. 인간의 영혼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집요한 추구는 1950년대 그의 영화를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작품 축에 들게 했다.영화산업의 주류에진입하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브레송은 아웃사이더였다.그러나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도 그는 주류 영화계에 끊임없이 충격을 줬다.이번 영화제에서는 프랑스 영화가 현대영화로 가는 길을 닦아 놓은 브레송의 면모를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거장의 세계’라는 이름 아래 소개될 브레송의 영화는 ‘볼로뉴 숲의 여인들’‘저항’‘소매치기’‘잔 다르크의 재판’‘당나귀 발타자르’‘무셰트’‘호수의 란슬로트’‘돈’.‘무셰트’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을원작으로 한 것으로 14세 소녀 무셰트가 강간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수난기처럼 보여준다.‘호수의 란슬로트’는아더왕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성배를 찾기 위한 고투에서 돌아온 기사 란슬로트는 왕비 기느비어에 대한 사랑과 아더왕에 대한 충성,그리고 신에 대한경배라는 딜레마 속에서 고민에 빠진다.브레송은 익히 알려진 이 소재에서로맨스와 스펙터클,마술적 요소를 모두 제거해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영화적 약동감을 안겨준다는 데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당나귀 발타자르’는 인간의 모순과 허위를 증언하는 매개자로 당나귀를 내세운 독특한 방식의 영화로 눈길을 끈다. 한편 이번 영화주간에는 브레송의 영화 외에 1960년대 일본 뉴 웨이브 영화들도 소개한다.프랑스 누벨 바그의 주역들이 시네필(영화광)이었던 데 비해일본 뉴 웨이브의 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적·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점이 색다르다.따라서 일본의 뉴 웨이브 영화들은 출발당초부터 강한 정치성를 드러낸다.오시마 나기사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 이번 행사에서는 일본 뉴 웨이브의 개막을 알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초기대표작 ‘청춘 잔혹이야기’를 비롯,막부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지사의 야심과 파멸을 그린 시노다 마사히로의 ‘암살’,인간의 본원적인 성적 에너지를 다룬 이마무리 쇼헤이의 ‘인류학 입문’,스즈키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등 4편이 선보인다. 이밖에 98년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드라이 클리닝’(감독 안 폰테인)과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성냥공장 소녀’란 작품이 ‘월드 시네마 걸작선’이란 제목으로 상영된다.입장료 4,000원 (02)736-6069김종면기자 jmkim@
  • [의열 독립투쟁] (15)이봉창 의사

    20세기 전반기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일제의 침략을받았다.일제의 침략을 받은 각 민족은 국가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에저항해 싸웠다.그러나 한국민족만큼 강인하고 격렬하게 일제와 싸운 민족은드물었다.그 중에서도 침략의 괴수인 일왕 처단을 시도한 민족은 우리민족뿐이었다. 1932년 1월8일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이 타고 가던 마차에 폭탄이 날아들었다.일왕을 처단하려는 조선인 애국지사가 던진 세번째 폭탄이었다.1924년 박열(朴烈) 의사가 히로히토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지려다 사전에발각되었고,1925년엔 김지섭(金祉燮) 의사가 일본궁성으로 들어가는 이중교에 폭탄을 투척한 바 있었다.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한국인 청년은 이봉창(李奉昌) 의사였다.이 의사는 1900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수원의 철로부근에 있던 땅을 일본인에게 빼앗긴 탓으로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자랐다.소년시절에는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고용살이와 용산역에서 기차운전 연습생으로일하기도 했다.그리고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뒤 6년여동안 나고야 등지를 떠돌며 노동으로 삶을 꾸려갔다.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이 의사는 일본인과 분간할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일본말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습속도 잘알고 있어 겉모습은 일본인과 다를 바 없었다.그러나 일본인의 고용살이를 하면서,또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한민족의 피가 끓고 있었다.스무살때 경험한 3·1의거를 계기로 그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조국독립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있었다. 1931년 1월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 의사는 임시정부 인사들을 만나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일왕은 왜 못 죽입니까”라고 일왕의 처단을 촉구했다.일왕을 손쉽게 죽일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를 임시정부에선 의심스럽게 여겼다.그의 행색이나 말투가 일본인과 흡사하였기 때문에수상히 여긴 것이다.김구(金九)는 직원을 시켜 이 의사를 은밀히 떠보도록하였다.어느 술자리에서 이 의사는 “작년에 도쿄에서 일왕이 능행(陵行)한다고 행인들을 엎드리라고 하기에 엎드려생각하기를 지금 나에게 폭탄이 있다면 쉽게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라며 자신이 일왕을 죽일수 있다는 얘기를 또다시 꺼냈다. 그를 은밀히 살피던 김구가 이 의사를 직접 만났다.그는 “제 나이 이제 서른 한 살입니다.앞으로 서른 한 살을 더 산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을 대강 맛보았습니다.이제부턴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사업에 몸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라며 자신의 진심을 김구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의열투쟁을 모색하고 있던 때였다.일왕을 죽일 수 있다는 것과 독립사업에 몸바치겠다는 이 의사의 각오는 김구를 감복케 하였다.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마침내 일왕을 폭살시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준비는 김구가 맡았다.김구는 중국군에 복무하고 있던 김홍일(金弘壹)에게 부탁하여 상해 병공창에서 폭탄을만들었다.준비한 폭탄은 두 개였다.하나는 일왕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이 의사 자신의 자결용 폭탄이었다. 1931년 12월 13일 이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단장 김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의사는 “나는 참된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국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를 도살(屠殺)하기로 맹서하나이다”라는 선서를 했다.적국의 괴수,그것은 일왕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일본인으로 가장한 이 의사는 이 해 12월말경 일본 도쿄로 향했다.그는 일왕이 1932년 1월 8일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김구에게는 “물품은 1월 8일 방매하겠다”는 전보를 보내 거사일을 알렸다.이 의사는 거사장소로 일본궁성 근처에 있는 경시청 앞을 택하였다.일왕은 경시청을 지나 사쿠라다몬(櫻田門)을 통해 궁성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1932년 1월 8일,예정대로 신년 관병식이 거행되었다.이 의사는 경시청 정문 앞에서 일왕을 기다리고 있었다.일왕이 탄 마차행렬이 앞을 지나자 이 의사는 뛰쳐나가며 손에 든 폭탄을 일왕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폭탄은 일왕이 탄 마차 뒤쪽에서 굉음을 내며 폭발하였다.순간 일장기를 든 기수와 근위병이탄 말 두필이 거꾸러졌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폭탄의 위력은 일왕에게 미치지 못하였다.폭탄을 만든 김홍일은 ‘회고’에서 군중과 일왕의 거리가 100미터 되는 것을 고려하여 폭탄을 멀리 던질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들었다고 했다.위력이 약했던 것이다. 이 의사의 일왕 저격의거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그중에서도 중국의 반응은 남달랐다.중국의 각 신문은 이 의사의 의거를 대서특필하면서 “한국인 이봉창이 일왕을 저격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적중하지 못하였다”고 하며,일왕을 폭살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해 했다.일제는 이러한 중국의 보도에 반발,1932년 1월 상해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상해사변’을 일으켰다. 이 의사의 의거는 일본제국주의가 신격화해놓은 일왕을 폭살시키려 했다는점에서,그리고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그해 9월 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0일 순국하였다. 해방후 김구는 일본에 있던 이 의사의 유해를 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효창원에 안장하였다.정부는 62년 이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하였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이봉창의사 주변 일본제국주의의 총수격인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자신은 적지 일본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봉창 의사.순국 당시 이 의사는 32세로 미혼이었다.그런 이 의사에게 직계후손이 있을 리 없다.이 의사와 가장 가까운 혈손으로는 이복형의 딸인 질녀 은임씨가 유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은임씨는 이 의사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전 일본서 노동자생활을 할 때 이 의사의 뒷바라지를 했다.거사를 앞두고 이 의사는 백범에게 질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해방후 환국한 백범은 은임씨에게 집을 사주는 등 이 의사와의 약속을 지켰다.은임씨도 이미 수 년전 작고했다.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중에서도 번듯한 후손을 둔 경우는 그래도 낫다.기념관이나기념사업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묘소를 돌보기도 한다.그러나 이 의사처럼 후사가 없는 선열들의 경우는 죽어서도 외롭다. 현재 이 의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나 추모단체는 없는 실정이다.다만 효창원순국선열추모회가 4월 13일 합동추모제를 지내고 있을 따름이다.동상 역시 지난 95년에야 겨우 효창원에 건립됐다.이 의사처럼 일점 혈육도 남기지 못한채 청춘에 간 애국선열은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당국이나 종친에서 ‘외로운 영혼’을 위해 양자라도 한 사람 세워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정운현기자
  • 1999년 12월 화두는 ‘세기말’이냐 ‘해피 엔드’냐

    20세기의 끝자락,두 편의 한국영화가 겨울 극장가를 이끈다.12월 극장가의이슈는 단연 11일 동시에 개봉되는 ‘세기말’(감독 송능한)과 ‘해피 엔드’(감독 정지우).‘세기말’이 1999년 서울 하늘 아래서 방황하는 인간군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만화경 같은 영화라면,‘해피 엔드’는 치정에얽힌 삼각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해피 엔드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풍의 멜로다. ‘세기말’은 ‘모라토리엄(지불 불능상태)’‘무도덕’‘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Y2K’ 등 네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첫째 장에선 생계를 위해마음에도 없는 멜로드라마를 써야 하는 시나리오 작가 두섭(김갑수)의 자괴감을,둘째 장에선 천민 부르주아 천(이호재)과 자포자기적인 쾌락에 빠진 여대생 소령(이재은)의 원조교제를 그린다.셋째 장은 극단적인 허무주의자인대학강사 상우(차승원)가 자신이 그토록 저주하던 속물적 삶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마지막 장은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등장해 세기말의 혼돈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데뷔작 ‘넘버3’를 통해 한국 사회 저변의 삼류정신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송능한 감독(40)은 이 영화에선 세기말을 화두로 위트 넘치는 독설의 미학을펼친다.“아줌마들은 20세기의 마지막 천민”이라고 몰아 세우는가하면,불륜의 사랑을 ‘에로틱한 우정’이라 강변하기도 한다.미국 감독 로버트 알트먼의 시나리오 작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송감독은 한 인물의 행동을 좇기 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주제에 접근해간다. ‘세기말’에는 각 장마다 1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로 하여금 각자 별도 지도도 길도 없는 시대, 시계(視界)제로의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하도록 한다.그 세기말의 풍경이 아무리 우울해도 감독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는 게 다 상처”라고 생각하는 자기과시형 속물 상우도 결국 “모든 걸 잃었지만 내 삶은 무거워졌다”고 고백한다.“집을 두채 가진 자 성을 잃고 두 여자를 가진 자 영혼을 잃는다”는 프랑스 속담처럼‘세기말’의상우는 불륜의 죄값으로 정신적인 죽음을 맞는다. 영화‘해피 엔드’는 여기서한걸음 나아가 불륜이 육신의 죽음까지 부르는치정극의 양상을 띤다. 실직 가장 민기(최민식)는 자식과 아내에 충실한 이시대의 평균적인 남편이다.그는 남편 대신 돈을 벌어 오는 어린이 영어학원원장인 아내 보라(전도연)의 구박을 견디며 나른한 일상을 꾸려간다.그러던어느날 아내가 대학동창인 일범(주진모)과 나누는 질펀한 사랑을 감지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애정과 집착,살의로 뒤엉키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오쟁이진 남편은 마침내 불나방 같은 아내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주체할 길없는 분노를 삭인다.‘해피 엔드’는 불륜에 대해 어떤 경계선을 긋거나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지 않는다.가부장적 질서가 흔들리고,남녀 성역할의구분이 모호해지고, 실업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여기,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불륜의 사회학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해피 엔드’는 정지우 감독(31)의 16㎜단편 ‘생강’처럼 배우 중심의 영화다.그런 만큼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하다.‘해피 엔드’는 그런 점에서 일단 ‘성공’이다.날 것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전도연의 농염한 정사연기는 특히 섹스신의 전범으로 꼽힐 만하다.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수줍은 처녀 홍연에서 벌거벗은 욕망에 몸을 맡기는 불륜주부 보라로 변신한 전도연은 이제 나름의 연기관을 논해도 좋을 만큼 여물었다. 김종면기자 jmkim@
  • [연극 리뷰] ‘백댄서’ ‘99 교실이데아’

    ‘학급붕괴’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게 된 요즘,우리 청소년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어떤 꿈을 꾸는 지를 보여주는 두편의 연극이 대학로에서 공연중이다. 극단 말죽거리가 인켈아트홀에서 공연중인 힙합뮤지컬 ‘백댄서’는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백댄서와 가수 지망생들을 주인공으로하고 있다.춤과 음악에 대한 열정,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는이들은 불나방처럼 기획사에 모여들고,철저하게 자본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곳에서 꿈의 허상을 깨닫는다.무리한 기획사 스케줄을 맞추느라 처음 가졌던 목표따위는 까맣게 잊고 기계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은 기획사에서 쫓겨나면서 오히려 진정한 댄서와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코믹한 대사와 ‘청소년의 언어’인 힙합과 테크노의 강렬한 비트로 표현됨으로써 주관객층인 청소년들의 공감을 끌어들이고 있다. 주제의식이 극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듯해 아쉽지만 모처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뮤지컬이란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2000년1월23일까지(02)529-4769극단 한강의 ‘99교실이데아’는 ‘청소년의 꿈’이란 주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펼쳐낸다.‘나’라는 개별성은 사라지고 모두 똑같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육,꿈꾸게 하기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이그러진 학교의 모습이 아이들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수험생을 찍어내는 공장같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자유를 찾아 서성이지만 아무데도 갈곳이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넌 누구니’라고 자문하며 절망에 빠진다.이들이 지친 영혼을 위안받는 안식처는 젝스키스,HOT 등 그들의 꿈을 대신 눈앞에 펼쳐보이는 대중스타들뿐. 기존 청소년극과 달리 대사는 가급적 배제하고 힙합과 랩,반복적인 움직임이 이를 대신하는데 이같은 극적 구성은 청소년 관객으로 하여금 능동적으로극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이끌어 낼 만한 무대이다.31일까지.소극장 오늘한강마녀(02)762-6036이순녀기자
  • 박호빈의 기획무용 2題 눈길

    30대 초반인 현대무용가 박호빈은 21세기 한국 무용계를 이끌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그의 무용단 댄스컴퍼니 조박이 세번째 기획공연 ‘히포크라테스의 침묵’을 무대에 올린다.11일 오후7시,12일 오후 4시·7시.문예회관 대극장(02)2272-2153. 이 공연은 1부 ‘녹색전갈의 비밀’과 2부 ‘히포크라테스의 침묵’으로 구성된다.‘녹색전갈…’은 박호빈의 대표작,‘히포크라테스…’는 신작이다. ‘히포크라테스’는 뇌사 판정을 둘러싼 의학계와 종교계의 치열한 공방을소재로 했다.한 의사가 텅빈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며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학생 시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하는 모습에서 최근 벌어진 장기 불법매매 소동까지. 마지막 장면.뇌사자의 영혼이 침대에서 나와 살풀이를 하고 사라진 뒤 홀로남은 의사는 “내 영혼은 누가 거두어줄 것인가”를 되뇌인다.안무자는 생명연장의 수단으로써 이용되는 뇌사판정,장기매매의 범람 속에서 인간 존엄성상실을 우려의 눈으로 응시한다. ‘녹색전갈’은,교미를 막 끝낸 전갈 암컷이수컷을 잡아먹는 모티브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파멸로 향한 창조’를 춤춘다.지난해 제5회 민족춤제전에서 초연한 뒤 지난 5월 제1회 대전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앙코르공연을 했다.지난달에는 미국의 워싱턴DC 등 네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벌여 그때마다격찬을 받았다. 예컨대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1월17일자에서 “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춤으로 된 시에 가까웠다”고 했고,필라델피아 인콰이어는 “이질적인 신비로움과 놀라움을 갖춘 작품”(11월16일자)이라고 평했다.박호빈은 내년 5월 프랑스로 유학갈 예정이어서 이번 공연은 그의 ‘활동 1기’를 마무리하는 성격이 짙다. 이용원기자 **
  • 호세 카레라스 3번째 내한 ‘밀레니엄 콘서트’

    스페인의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12월4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체조경기장에서 연주회를 갖는다.‘카레라스의 밀레니엄 콘서트’로 이름붙인 이번 공연은 93년과 94년에 이은 그의 세번째 내한연주회다. 카레라스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세계 3대 테너’의 한 사람.드라마틱하다기 보다는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아왔다. 카레라스는 이번 연주회에서 토스티의 ‘마레키아레’와 ‘입맞춤’,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가스탈돈의 ‘금지된 노래’,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스페인의 음악극인 사르수엘라 ‘신의 영혼’ 가운데 ‘헝가리의 노래’,로드리고의 기타협주곡을 편곡한 ‘아랑후에즈’,라라의 ‘그라나다’ 등10곡을 들려준다. 카레라스의 전속지휘자인 스페인의 신예 다비드 히메네즈와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080)337-5337[서동철기자]
  • ‘음악이 있는 마을’영혼의 和音

    ‘음악이 있는 마을’은 교사,주부,약사,의사,회사원,학생 등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이다.학력과 전공에 관계없이 재능과 열정만 있으면 단원이 될 수 있다.그렇지만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단장,같은 학교 음악원의 이건용교수를 음악감독으로 ‘세계 굴지의 합창단으로 성장한다’는 포부를 지닌 사람들을 순수 아마추어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자신들은 “개런티를 받지않는 프로라는 합창단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그런 표현의 이면에는 한국의 음악상황에서 드러난 ‘프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아마추어의 프로화’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 프로보다 더 프로다운 아마추어들이 29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나무-희망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4번째 정기연주회를 갖는다.이번 연주회 역시 재미있게 짜여진 프로그램속에 “우리가 어떻게 한국의 음악문화에 공헌할 수 있을까”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15곡의 레퍼토리 가운데 8곡이 작곡을 위촉하거나,새로 편곡한 것 들이다.황지우의 시에 곡을 붙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는 작곡가 류건주에게 위촉했다.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합창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불만스러워하는 합창곡 및 합창용 편곡의 부족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광야에서’와 ‘아침이슬’같은 이른바 운동가요와 ‘살다보면’‘마법의 성’같은 가요는 그동안 프로 음악인들이 외면한 예술과 사회적 현실과의소통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별을 보는 사람’ 등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의 작품 3곡을 넣은 것도 한국 합창단의 일반적 레퍼토리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다.이밖에 모차르트의 ‘라우다테 도미눔’과 ‘아름다운 세상’‘오 해피 데이’등은 한국적 특수성 못지않게 보편성도 무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읽혀진다.(02)520-8171서동철기자 dcsuh@
  • “기독교 상·장례는 신학적 오류”

    기독교인들은 상·제례에서 절차와 용어의 상당부분을 전통유교 의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그것이 서양 기독교 의례인줄 착각하는 등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오세종 암사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7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가 마련한 ‘한국종교의 사생관과 상장예법’에서 ‘한국개신교의 영혼관과 장례절차’를 발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오목사가 지적한 한국 기독교계의 신학적 오류는 상·장례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다.오목사는 이같은 유형으로 임종한 시신을 거둘 때 쓰는 나무판자를 기독교인들도 재래적인 용어인 칠성판(七星板)이라고 부르며 시신을 가릴 때 병풍을 사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입관하고 난뒤 시신앞에 병풍이나 흰 휘장을 친 다음 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그위에 고인의사진을 중심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거나 꽃을 꽂는 것도 그중 하나.작은상을 놓고 사진을 놓는 것은 유교의 상례에서 혼백(魂帛)을 대신하는 유교적습속으로 서양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 입관이 끝난뒤상복을 입는 의식도 유교적 성복(成服)절차의 유습과 절차가 같다.산소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와서 유교는 우제(虞祭)를 지내는데 한국기독교인들도 장례 당일 집으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는 것.또유교의례에는 삼우제(三虞祭)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도 장례후 3일째 되는날 산에 가는 습속이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삼우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목사는 “한국 기독교 상·장례의식은 외형적 의례의 절차에 있어 임종에서부터 추도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기독교 의식 절차보다 재래 유교적 절차와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이는 그 의례속에 있는 사상·신학적인 부분이이해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 의례신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 [독자의 소리] 대형사고에도 개선 안되는 사회행태 문제

    ‘씨랜드’에서 어린 생명들이 무참하게 생명을 잃어야 했던 아픔이 채 아물기도 전에 우리는 또하나의 화재소식을 듣게 됐다.그러나 항상 그렇듯 사고의 뒷소식은 한결같다.공무원의 봐주기 행태,부실시공,부도덕하고 책임감없는 건물주인과 안전불감증 등.잘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문제는 쌓이고 쌓였다가 터져나오는 것같다. 우리는 또 머지않아 씨랜드나 인천호프집 화재에 이은 또다른 화재를 접하고 또 그와 비슷한 원인과 결과를 접하게 될지 모른다.우리 속담에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한심한 이 속담보다 더 한심한 것이 오늘의우리들이다.소를 잃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외양간을 안고친 것이 우리 사회이다.잘못에 대해 철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것을 처음부터고치는 것이자 곧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다. 앞으로 더이상 소를 잃지 않도록 외양간을 고치자.이것이야말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영혼들을 진정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정윤주[대전시 서구 복수동]
  • 이 가을 영혼을 살찌우는 책들

    가을이 깊어가는 가운데 마음을 살찌우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나를 찾아가는 여행’,‘빵장수 야곱의 영혼의 양식’,‘인생으로의두번째 여행’등이 그것. ‘나를…’은 소설형식으로 다람쥐 쳇바퀴돌 듯 바쁜 일상사에 함몰된 ‘회사인간’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회사만이,일만이 인생의 전부는아니라고….일에 찌든 유명변호사가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진 다음 새로운 인생을 찾아 인도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얻은 지혜를 전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푸른 정원 ▲아름다운 꽃 ▲붉은 등대 ▲거대한 일본 스모선수 ▲황금 스톱워치 ▲노란 장미의 향기 ▲꼬불꼬불한 길 등의 상징을 제시하고 현실을 극복하는 마음의 힘에 관해 설명한다.로빈 샤르마 지음,산성미디어 펴냄.값 7,800원. ‘빵장수 야곱…’은 10년전 출간되어 화제가 된 명상에세이의 후속서.노아 벤샤가 지은 이 책은 가난하지만 경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빵장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여기에는 ‘어떤 질문에도 첫째 가는 가장 현명한대답은 침묵이다’,‘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서나 교사를 만난다’,‘다른 이들에게 항구를 제공해줄 때 우리 자신의 풍랑이 가라앉는다’등의 지혜가 담겨 있다.김영사 펴냄.값 6,900원. ‘인생…’은 ‘30대 이후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16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중년에 다가서거나 중년에 들어선 사람을 위해 정신분석학자가 쓴 책이다.‘젊고 멋지고 용감한 왕자가 늙어 대머리가 되고 공주가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를 주제로 삼아 갖가지 얘기를 전개한다.알렌 치넨 지음,황금가지 펴냄.값 8,000원. 박재범기자
  • SBS 9·10일 창사특집 다큐‘한국의 박쥐’

    거꾸로 매달려 살아가고,낮에는 잠적했다가 밤에만 활동하고,포유류 가운데유독 하늘을 날고,일부의 경우 피를 빨고…. 빛보다는 어둠 쪽으로 기운 이런 이단자적 특성 때문에 박쥐는 흔히 우리 상상계 속에서 사악하고 흉물스런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하지만 20g도 채 나가지 않는 박쥐가 표정이 풍부한 개구쟁이인데다 해충을 먹고사는 존재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SBS-TV 창사특집 2부작 자연다큐멘터리 ‘한국의 박쥐’(9,10일 각각 하오 10시55분)는 인간위주 사고의 편견을 벗겨내고 박쥐를 자연계의 정당한 자리로 복권시키려는 박쥐 생태 리포트다. 박쥐에 대한 풍문만 그림자처럼 쌓이는 건 검은 동굴속에 꽁꽁 숨어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자’ 특유의 습성 때문.제작진은 그들을 뒤쫓아 전국 120여개 자연동굴,폐광 등을 9개월여 뒤진 끝에 현재 한국에 남아있다고보고된 박쥐 24종 가운데 17종을 카메라에 담아냈다.레이저·내시경·체온감지 등 특수카메라를 총동원,토끼박쥐,평남졸망박쥐 등 희귀종과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한 붉은박쥐 등도 포착했다. 1부 ‘어둠에 매혹된 영혼들’(9일)은 박쥐들의 1년살이를 추적,그 생태와습성을 소개한다.조금이라도 체온을 아끼려 수십마리씩 몸 맞대고 5개월간동면중인 관박쥐들,교미후 만들어지는 자연 정조대 질정,캄캄한 곳에서 먹이사냥길을 인도하는 초음파,큰발윗수염박쥐·흰배윗수염박쥐 등의 신비로운출산과 양육과정이 펼쳐진다.기를 쓰고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박쥐를 떼어놓고 먹이사냥을 나갔다 와선 고만고만한 수십마리 틈에서 반드시 자기자식을찾아내 챙기는 모습은 인간사의 반면교사감.웬일인지 돌아오지 않는 어미를기다리다 5일만에 죽음을 맞은 새끼박쥐는 모두를 숙연케 하며 출산 한 달만에 어미품을 떠나 첫 비상하게 된 새끼들의 술렁임은 영화 라이온 킹 못잖은 감흥을 안겨준다. 2부 ‘박쥐의 생명전선’(10일)에선 박쥐를 위협하는 환경요인을 점검해 본다.한때 박쥐의 최대 천적은 부엉이·올빼미 등 맹금류였지만 현재는 인간. 동굴천장에 매달린 박쥐들을 송이송이 따다가 한약재상에 팔아 넘겨온 사람들때문에 박쥐들은폐광으로 달아났다가 납중독에 시달리는 등 최대 멸종 위기를 맞고있다. 서유정PD는 “누구라도 폐소공포증에 걸릴듯한 좁은 굴속에 웅크린 고독한이미지와 몸에 붙은 이슬을 떼먹고 사는 맑고 귀여운 습성에 반해 박쥐를 뒤쫓게 됐다”면서 “취재 결과 박쥐의 위기가 학계 보고서 이상으로 심각함을체감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가평 유명산 휴양림 ‘별장’ 안내

    하얀 유령같은 아침 안개가 숲속에서 흩어진다.안개에 가려 있던 단풍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붉은 햇살은 단풍을 더욱 붉게 물들인다.유명산의 아침 단풍은 자연예술의 위대함을 말없이 전해준다.숲은 이같이 계절의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숲속에 있는 산새들의 합창은 교향악단의 연주만큼 감동적이다.다람쥐는 도토리를 먹어치우지만 가을에 도토리를 저장했다 잊어버려 새로운 참나무가 태어나도록 한다.숲속에서는 이처럼 수많은 작은 드라마가 펼쳐진다.현대문명의 편리함을 잠시 접어두고 숲속의 다양한 드라마를 즐겨보면 어떨까.숲속의 통나무집은 자연의 드라마를 만끽할 수 있는멋진 ‘객석’이다. 통나무집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대부분 자연 휴양림 속에있는 70여곳의 통나무집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도시의 콘크리트문화에 찌든현대인들에게는 지친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소중한 휴식의 공간이다.여름에는 통나무집에 머물며 휴양림에서 삼림욕을 할 수 있다.가을에는 단풍으로절정에 이르는 가을 정취에 흠뻑 빠질 수있다.만추의 낭만은 연인들에게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눈덮인 겨울에는 가족들의 겨울여행으로 알맞다. 서울에서 멀지않은 경기도 가평의 유명산 휴양림.붉게 타오르는 단풍 속에통나무집들이 수줍은듯 숨어 있다.창 끝처럼 날카로운 황금빛 가지를 자랑하며 쭉쭉 뻗은 낙엽송들은 경호원처럼 통나무집을 지키고 있다. 통나무집 주변에 나타난 다람쥐들은 마지막 겨울 준비에 바쁘다.숲속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는 송사리떼가 한가롭게 노닌다.개울의 물소리와 산새들의지저귐은 멋진 화음을 만들어낸다.유명산에도 자연의 드라마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유명산 자연 휴양림 속에는 22동의 통나무집이 4개지역으로 나뉘어 있다.크기는 7평에서 16평까지 다양하다.청설모·다람쥐·꽃사슴·꾀꼬리·소쩍새·오소리·반달곰 등 새와 짐승의 이름을 딴 통나무집 이름이 정겹다. 가장 규모가 큰 반달곰집(16평)은 거실·방·부엌·욕실·베란다 등으로 구성돼 있다.8평 크기의 종달새집은 방 하나에 싱크대가 붙어 있고 미니 2층도 있다.난방은 기름 보일러나 전기온돌로 한다.냉장고와 TV도 준비돼 있다. 반달곰집 거실에는 난로가 있어 운치있는 분위기를 낼 수 있다.베란다에서바라보는 가을 산은 세파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한다. 유명산의 경우 난시청 지역이라 TV가 잘 안나온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TV가 잘 안나오는 것에 가장 큰 불평을 한다고 관리소 관계자가 들려준다.왜많은 사람들은 자연속에 들어와서도 TV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집에서 늘 보던 TV 드라마를 잠시 잊고 자연의 드라마에 몰입하면 얼마나 좋을까. 종달새집에서 하루밤을 지낸 김성필(35)씨는 멋진 자연의 드라마를 체험할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물소리만 들리는 밤의 침묵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연출하는 숲속의 향연은 환상적이었습니다.서울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세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종달새집을 떠나는 세식구의 모습은 정겨웠다.그러나 멀어져가는 그들의 발거름은 웬지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다.다시 고달픈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일까. 유명산(경기도 가평) 이창순기자 cslee@* 유명산 휴양림 이용안내 ?예약 및 이용 주말에는 대부분 빈 집이 없어 예약을 해야한다(평일에는 여유가 있음).일반적으로 매월 20일부터 전화로 다음달 사용할 집을 예약.예약만하고 오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예약후 사용료의 온라인 입금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보통 사용기준은 당일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오후 1시까지(1박일 경우).취사도구(가스 레인지 등)와 식기류는 사용자가 준비.침구류는제공. ?사용료(유명산 통나무집 1박기준) 7평형 1만8,000원,8∼9평형 4만원,10∼14평형 5만원,16평형 6만원.다른 지역의 가격도 보통 3만원에서 6만원 사이. 여름을 제외하고 평일에는 30∼50% 할인하는 곳이 많다.
  • 김중권실장“初心으로 돌아가자”

    김중권(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이 1일 ‘초심(初心)’을 강조했다.약간씩표현을 달리했을 뿐,월례조회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주문해온 터여서 새삼스러운 화두(話頭)는 아니다.다만 최근 언론문건 파동과 내년 총선에 신경쓰는 인사들이 적지않은 분위기속에서 ‘성공하는 정부’를 향한 초심의 당부여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는 지적이다. 김 실장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초심을 얼마나 지키느냐에 있다”며 “비서실이 출범한 지 1년8개월여가 지났는데,처음보다 나태해진 것은 없는지 돌아보자”고 당부했다.이어 “몸과 마음과 영혼과 모든지식을 다 불태우겠다는 각오를 다지자”면서 최근 사태에 대한 견해도 피력했다. 먼저 언론문건 파동에 대해 “증거의 뒷받침도 없는 무책임한 폭로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언론관을 설명했다.“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장악해서도 안된다.간섭은 중독과 같다” 이어 보안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문건 관리 소홀로 정국이 요동을 치고있는 데 따른 반성이다.“이번 문서파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국가기밀의 초병이라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 것이다”며 “근무시간엔물론 밖에 나가서도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무심히 취급한 서류 한장과 디스켓 하나가 국정을 흔들고 국민을 불안케 하는 대혼란을 몰고 올 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실장은 총선 분위기를 겨냥했다.그는 “최근 비서실 사람들이 총선을 바라보고 일한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대통령의 국정 보좌에 틈이 생겨선 안될것”이라며 ‘진퇴(進退)도 때가 있다’는 시의론을 적시했다. 양승현기자
  • [김삼웅 칼럼] 秋史의 ‘秋思’를 기리며

    시간의 입체성을 말한 이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였던가.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흐른다.잃어버린 시간은 찾을 길 없고 오는 시간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아침 저녁의 바람결이 상큼하고 한낯의 햇볕도 한층 엷어졌다.늦은 밤 돌담의 귀뚜라미 소리 제법 청량하고 가끔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청자빛 하늘이너무 곱다. 어느 무명씨의 시조 한 편 . 강호에 비 내리듯 마음은 설레고 내 마음은 저절로 저 먼 곳에 떠 있어라 그려도 애닮다마는 하는 수가 없구나. 폭우와 폭염과 폭풍이 심했던 지난 여름의 변덕 속에서도 곡식과 과일은 무르익고 청초한 가을 꽃이 산과 들녘을 수놓는다.그리고 나뭇잎의 색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가을의 조락이 깊어간다. 이맘 때면 누구보다도 가을을 앓는 추사(秋史:金正喜)와 그의 시를 생각하게 된다.추사의‘추사(秋思)’란 시는 그의 아호와 시제(詩題)가 같은 음이어서인지 옛사람들에게도 많이 읽혔다. 어젯밤 총총한 별,싸늘한 서리남쪽의 가을 생각 끝없이 자아낸다.하늘 바람 사람 말이모두다 가르침이요 글씨 쓰고 시 짓는 데 반드시 법도가 있다네 기러기 한 번 울자 이렇게 한 해가저물다니 잎사귀마다 가을 재촉하는 듯 떨어지기 바쁘네 흰 구름 붉은 단풍 나그네 마음 흔들어 햅쌀 밥에 게장 먹는 고향이 꿈에도 그리워라. (정후수 역) 추사가 이 시를 쓴 것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이다.‘햅쌀 밥에 게장 먹는’고향을 그리며 깊어가는 가을날에‘가을 생각(秋思)’을 읊은 추사의 처지가 애닯다.누구인들 저문 계절의 애수가 엷을까만 귀양살이 9년을 넘긴 추사의 심사는 남달랐을 터이다.그래서 가을의 노래가 많다.‘추일만흥(秋日晩興)’도 그중의 하나. 가을꽃 수도 없이 뜨락 머리에 환히 피었으니 산집(山家)에 가장 좋은 가을이 돌아옴을 알겠구나 석류꽃 지고 국화 피기 전에 구경거리 계속해주니 장원홍(狀元紅·붓꽃)이 모든 풍류를 도맡았구나. 시인 묵객치고 국화 좋아하지 않는 이 있을까만 추사도 무던하여 그의 문집에는 국화를 노래한 시가 꽤 된다.역시 이맘 때의 작품으로‘중양황국(重陽黃菊)’이 있다. 망울 맺은 노란국화 초지(初地)의 선(禪)인듯이 비바람 치는 울타리 가에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네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뒤꼍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가을은 깊어가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인생도역사도 흘러간다.4세기 초 중국에 귀화한 인도의 학승 나가르주나는‘중론(中論)’이란 글에서 시간의 논리를 정리했다. 만일 과거 시간으로 인하여 미래와 현재가 있다고 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으리라. 이제 두달여 지나면 새 천년의 새벽이 열린다.그러고 보니 이 가을도 2000년대의 마지막 추절(秋節)이다.신동엽의 시집‘아사녀’에는‘산에 언덕에’란 빼어난 시가 있다.추사를 기리면서 깊어가는 가을날에 못잊을 송가로 부르면 어떨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국향(菊香) 짙은 만추에 가을걷이 끝난 농부와 함께 추사(秋史)의 ‘추사(秋思)’를 기린다. 김삼웅 주필
  • [굄돌] 영화배우 문희의 눈물

    종종 젊은 감독과 중견 감독을 만날 때마다‘미워도 다시한번’의 문희를출연시키보라고 권한다.감독들은 한결같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문희’라는배우의 컴백은 김지미 윤정희 엄앵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한다. 벌써 나이를 들먹이는 것이 부끄럽다.하여튼 10대 초반의 소년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문희의 눈물을 보았다.그후로 문희가 출연하는 영화만 보면 눈물이 흘러 나왔다.자연인으로 태어나 나의 의식의 최초눈물은 이때가 아닌가.영화를 보는 일은 문화적 의식이고 문화적 의식은 곧성장기 통과의례와도 같다.이 시기의 의식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눈물 흘리는 습관은 기도의 시간과도 맞먹는다. 간혹 아내와 함께 TV드라마,논픽션 드라마,‘편지’‘약속’같은 영화를 보노라면,결정적인 순간에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또 눈물을 흘리고 있지?’라며 나의 눈가에 자기 얼굴을 갖다댄다.문희의 눈물을 보며 자란 나는 오늘영화평론가가 되었다. 절대 여자를 울리지 말자!이감상주의가 성장하여‘절대 타인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말자’는 인생관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는 문희에게 감사한다.많은 여자 배우가 나타나고 사라졌다.반드시 멜로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숱한 여성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들이 눈물을흘렸건만,유독 문희의 눈물만이 맑게 비쳐지고 내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기능을 하는 걸까.잘 알 수가 없다.그토록 좋아하는 내 인생의 배우 문희를 딱한번 실제로 만나는 기회가 왔다. ‘아,나는 행복하다’라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그 옛날 스크린에 비친 심상이 그대로 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세월과 더불어 들려온 그녀의 인생 곡절 많이 들어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안에서 태우고 자기를 가꿔온 배우가한국에도 있구나. 8월19일 영상자료원에서 그녀에게 받은 사인을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자랑했다.세월의 먼지가 덮힌 나의 앨범에 그녀의 한복입은 브로마이드를 꽂은지꼬옥 30년만의 경사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문희를 사숙하는 나는 행복하다. [양윤모.영화평론가]
  • [쉽게 읽기] 문명이 준 상처 지혜로 극복

    인디언들에게도 세대 차이는 있는 것 같다.비장한 울림을 전해주던 시애틀추장의 연설문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를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은 문명인이 된 그 후예들의 삶을 들려 준다.1854년,대대로 살아온 땅을 팔라는 백인들의 제안에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반문하던 그 때부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그 아름답던 사람들은 지금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을 쓴 ‘곰의 마음’은 인디언으로서는 매우 성공한 현대인에 속한다. ‘곰 씨족’인 아버지와 ‘바람 씨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곰의 공격을 받고도 “나는 너를 내 아버지로 존경한다”고 말하며 대화를 나눌만큼 용감한 인디언이면서 동시에 세인트 존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이기도 하다.그들은 사라진 전설이 아니다.지금도 어느 도시 한켠에서 문명에 적응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물려 받은 지혜로 문명이 입히고간 정신의 상처들을 치유해 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인디언 주술사로서의 길과 인디언 교회의 전도사의 길을 함께 걸어온 그에게서 두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이상할 정도다.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시각에서 가지게 되는 의심에 불과할 뿐,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그들은 ‘땀의 움집’에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훈련을 통해 ‘위대한 영혼’을 만나왔던 것이다.일요일 한두 시간을 종교라는 포도주에 영혼을적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삶 전체를 종교로,찬미로 흐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인디언들은 백인들을 ‘종이 부족’이라고 부른다.모든 것을 종이에 남겨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인디언들은 마음에새긴 약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에 대하여,인간에 대하여,‘곰의 마음’은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인디언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번역해서 들려 주고 있다.이 세련되고 유쾌한 인디언의 지혜는 현대인의 정신을 치유하는 데 아스피린을 대신할 만한 피요테(그들의 약초)같은것이면서 막다른 위기에 다다른 문명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인디언에게도 세대 차이는 있다고 했지만,어쩌면 그 차이는 거울의 선도의 차이일 뿐 그 오래된 거울은 다행히도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희덕 시인
  • [화제의 책]

    * 섹스의 영혼 (토마스 무어지음/생각의 나무 1만3,000원) 심리요법가인 저자는 심미적이고 성적이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영혼이 깃든’ 섹스라고 주장한다.아울러 섹스를 침소봉대하거나 단순한 육체적 결합이란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섹스가 생활의 한 부분이지만 이를 ‘정신과 육체가 결합한 행위’로승화시켜야만 순수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제언한다.저자는 책에서 ‘영혼이 깃든 섹스’와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일관되게 탐구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 대통령의 경제학 (허버트스타인 지음/김영사 1만8,000원) 역대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경제학자가 분석 비판한다.과거의 경제정책전개과정을 파헤치며 이를 토대로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30년대 대공황기의 루스벨트에서 현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였던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저자는 미국의 경제정책이 30년대의 자유주의적 기조에서 60년대 케네디와존슨시대를 정점으로 보수화됐다고 본다.특히 미국이 각종 정책의 실패에도불구하고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민간경제의 효율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이성무 지음/동방미디어 9,000원) 조선왕조실록을 둘러싼 의문과 진실,편찬과 보관 등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담았다. 실록이 왜 정변의 원인이 됐는지,사관과 국왕 대신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임진왜란에서 6·25까지 전쟁의 와중에서 어떻게 보관했는지 등 의문을 제시하면서 답을 내리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었다.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이성무씨가 펴냈다. 특히 책은 역대 조선의 왕들이 역사를 가장 두려워 했는데 이는 왕은 사초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또 고종 순종실록이 일제에 의해 왜곡된사실도 밝힌다.이책은 실록 자체에 대한 첫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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