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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은 보듬고 생명력은 탐색하고…

    시는 대개 드물게 주어지는 한가로움에서 읽게 되지만 좋은 시는 영혼을 바쁘게 출렁거려 준다. 김수영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받은 장석남은 시집 ‘왼쪽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에서 세계를 현실로드러내거나 세계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지 않는다.시집후기 평문을 쓴 선배시인 최하림은 “다만 추억 속으로 들어가세계를 재생시키고자 하는 무욕한 꿈을 갖고 그 꿈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특히 일상언어의 리듬감각을 잘 살린 시어에 주목한다. 풀린/봄/물결이여 네 고요 위에/봄비는 내려와/둥글게 둥그렇게/서로서로 몸을 감고 죽는다/…/아 너와 내가 잠들었던/이 한 덩어리 기슭의 바위에도 봄비는 와서/둥글게 둥그렇게/앉음새를 고쳐준다//(‘봄비’) 농민시에서 출발해 최근 생명시 자연시로 발전한 고재종은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사학사)에서 농촌 정경을 드러내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탐색한다.시인 고은은 “농촌시에서 영영 이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승화로서 우주와 삶의 무애를 만나게 해준다”고 평했으며 평론가임규찬은 에로스적 서정에 주목하면서 “무언가로부터 결별했다는단절의 통증 속에서 지난 세월,자신이 놓쳐버렸던 것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갈무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 막 탐스런 포도송이를/두 손 모아 받쳐드는/저 포도추렴온 연인들의…//그들 이내 포도알 하나씩 입에 따 넣고/아흐흐 아흐흐,퍼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단내와/젖지 않고는못 배기는 가슴들/(‘새말 언덕에 원두막 한 채를 치다’부분)김재영기자
  • 아직도 잊히지 않는 유럽사의 ‘악령’

    수세월을 두고 청산해도 씻기지 않는 역사적 악몽의 하나가나치즘.광풍이 휩쓸고간 지도 70여년이 흘러 그간 단죄도 지겹도록 되풀이된 듯 한데 유럽인들은 아직도 뇌리에서 유령을 떨쳐내지 못한다.최고의 문명이라 자부해온 유럽 복판에서 백주에 자행된 미친 학살이 자존심에 피멍을 들였을 게뻔한 일.그 광증의 심적기제를 규명하려는 책들이 아직까지봇물을 이루는 것도 이때문이다. ‘하이데거와 나치즘’(박찬국 지음,문예출판사),‘영혼을저당잡힌 히틀러의 여인들’(안나 마리아 지그문트 지음,청년정신)은 그중에서도 유달리 눈길을 끈다.전자는 국내작가발언이라는 점에서,후자는 색깔 독특한 테마로. ‘하이데거…’는 20세기 서구철학계 태풍의 테마였던 대철학자의 나치동조 전력에 시비붙는 책.하이데거 전공자답게지은이는 그저 시시비비 가리기를 넘어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철학적 유비관계를 따져물으며 그 만남과 갈라짐의 지점을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무엇보다 책의 개성포인트는 나치를 해부하기 위해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에까지 육박하는 지은이의 열성.그 바탕에는 현대철학이 빨아먹고 자란 하이데거 철학자체에 나치즘의 맹아가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양심적 우려가 깔려있다.농익은 하이데거 이해를 바탕으로 나치즘,하이데거,양자간 상관관계까지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끔 해주는 요령있는 길라잡이. ‘…여인들’은 문자그대로 히틀러,괴벨스,괴링 등 나치 권력자 주변 여자 이야기.애 잘낳고 가정 검소하게 꾸리는 주부가 나치가 유포시킨 여성상이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집권층 여자들은 특권을 영위했다.히틀러가 사다주는 호화사치품에 파묻혀 산 정부 에바 브라운,‘독일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출세에 광분했던 게르트루트 클링크 등 8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손정숙기자 jssohn@
  • [사설] 어떻게 ‘노예매춘’이…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접대부 10여명을 쇠창살을 단 방에 가두고 매춘을 시켜온 충북 청원군의 술집주인 부부를 서울 용산경찰서가 검거했다.이 부부는 10여년동안 속칭 ‘방석집’을 운영하며 접대부들을 매춘시켜 번돈으로 지역에서 유지 행세까지 해 왔다.남편은 지역 사교클럽 회장이고,부인은 학교의 자모회장을 맡기도했다.이들에감금돼 혹사당한 접대부들은 여러 차례 강제 낙태수술을 받았고 아홉 번이나 받은 경우도 있다.수술받은 날에도 매춘을강요했다니 부부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끝이 보이지 않는듯하다. 이런 끔찍한 인권 사각지대가 있고서야 어찌 문명한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그 지역에는 경찰관서도 없단 말인가.끊임없이 강조돼온 매매춘 단속은 공염불이었던가.윤락의 길에 들어선 본인들에게도 책임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에 대한잔혹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들을 짐승처럼 우리에 가두고 성노예처럼 부리며 착취할 권리는 아무에게도없다. 매매춘은 경찰이 ‘전쟁’이라는 말까지 붙이며 강력단속해온 것이다. 이른바 ‘노예매춘’의 참혹한 실상도 이미 지난해 9월에 발생한 전북 군산의 윤락가 화재 때 여실히 알려져사회의 공분(公憤)을 일으켰던 것이다. 화재로 윤락녀 다섯이 불에 타 숨졌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긴 일기장에는감시받지 않고 동네 목욕탕에 한 번 가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씌어 있었다.젊은 나이에 목욕탕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사라진 가련한 영혼을 가슴아파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노예매춘’이 없어졌으리라고 우리는 믿었다. 아직도 ‘노예매춘’이 있고 또 다시 우리는 ‘방석집’에서 피맺힌 일기장을 읽는다.지난해 타다 남은 집에서 나왔던일기장의 사연과 결코 다르지 않은, 절망에 빠진 이들의 절규를 듣는다.“1분 1초마다 숨통이 끊어질 것 같다” “죽고싶다. 죽으면 훨훨 나는 새로 환생하고 싶다” “100m 거리도 안되는 슈퍼도 마음대로 못 가는…” 등등.소외받는 이들이 절망의 일기장을 쓰지 않아도 되게 가장 그늘진 곳의 인권에 더 한층 깊은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소외계층과 장애인 등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자들은 더욱 준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단속 관서에도 책임을 분명하게 묻지 않으면 안된다. 작은지역사회에서 단속 기관의 묵인이나 비호 없이 다년간 가혹한 위법행위가 자행될 수 있는가.경찰서,보건소,군청 어느한 군데서도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탈출한 피해여성이왜 서울까지 와서 신고해야 했겠는가를 해당 지역 관계자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통영현대음악제, ‘그들만의 축제’ 탈피는 숙제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두번째 귀향을 반기는 고향의 인정이었을까.서울이 30여년만의 폭설과 잿빛 하늘로 짓눌려 있던 지난 16일,통영의 햇살은 거짓말처럼 눈부셨다. 윤이상을 기리고자 16일부터 3일동안 마련된 ‘통영현대음악제’.지난해 제1회 음악제가,이국땅을 떠돌던 그의 영혼을이곳에 첫발 딛게 했다면 올해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번듯한 안식처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있으리라. 생가가 있던 도천동 일대에서 해저터널까지를 포함한 ‘윤이상거리’선포식에는 독일 일본 등지에서 찾아온 외국 음악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참가해 흐뭇한 박수를 보냈다.칠순을넘긴 두 누이는 그의 얼굴과 생애를 새긴 표석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고마워했다. 이번 행사는 ‘여성과 음악’이라는 주제에 충실했다.첫날오후7시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개막공연에서는 이신우곡 ‘시편 20’과 러시아 출신 구바이둘리나의 바이올린협주곡 등 여성작곡가 작품과,고통받는 아시아 여성을 위해작곡했다는 윤이상의 ‘교향곡 제4번-어둠 속에서 노래함’이 창원시향(김도기 지휘)협연으로 초연됐다.이밖에 비디오댄스 상영,워크숍,여성작곡가 작품 발표회,베를린 윤이상앙상블 내한연주회도 열렸다. 통영시와 국제윤이상협회 한국사무국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처럼 통영을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키우겠다며 의욕을 과시한다.2002년부터는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대가들,유명 연주단체를 초청해 10일에 걸친국제음악제로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통영이 ‘음악적 성지(聖地)’로 도약하는 앞날을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현대음악이 갖고 있는난해함은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큰 걸림돌이다.개막연주회를포함해 이번 음악제에서 연주된 10여곡이 모두 처음 연주되는 곡.지방오케스트라인 창원시향이 넘치는 의욕만으로 소화해내기엔 힘겨운 시도였고 청중 또한 그리 즐거워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첫회라는 후광 효과가 사라진 탓인지 지역축제 치고 주민참여도 드물었다.거리에는 축하 깃발만 간간히 눈에 뜨일 뿐주민들은 남망산에 자리한 시민문화회관까지 올라갈 엄두를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좀더 많이,좀더 편안하게 즐기도록 하는 배려는 내년 음악제의 숙제로 남았다. 통영 허윤주기자 rara@
  • 소설가·시인 “이것이 인생”

    문인들의 산문집은 결코 되다만 글 모음집이 아니다. 소설가 윤정모의 ‘우리는 특급열차를 타러 간다’(눈과마음)는 심상치 않는 자전에세이다.숨기고 싶은 이제까지의 삶을 고백하고 있다.‘고삐’등에서 여성·분단·농촌·노동문제를 다룬 운동가 성향의 소설가로서 상당한 이름을 얻은여성작가는 재혼한 어머니가 남자와 동거하는 환경의 성장기,대학 진학후 학비를 벌기 위해 한 술집 여급 일,그리고 잘못된 결혼 등을 차례로 털어놓는다. 여러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한 뒤 당해야 한 남편의 외도와폭력,딸을 낳았다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시집으로부터의수모 등 소설 아닌 실제의 과거사는 충격적이다.딸을 결혼시키기 전까지는 가정을 깨지 않겠다고 결심한 작가는 20여년의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한 뒤 이 책을 냈다. 시인 박남준의 산문집 ‘나비가 날아간 자리’(광개토)는 9년전에 나온 산문집을 바탕으로 새 글을 얹은 책이지만 속기없는 시인의 향기가 새롭다.저자는 전북 모악산 기슭 농가에서 혼자 ‘슬프도록 정갈하게’사는 시인으로 시 독자 뿐아니라 방송매체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졌다.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남준이를 한번씩 만나고 와야 영혼의 때가 씻겨 나간다”고 고백한 바 있으며 화가인 김병종 서울대교수는 시인의 산문을 “조미료 안 넣는 산나물 무침 같은 맛”이라고 말한다. 김재영기자
  • 포커스 / 극단쎄실 ‘산씻김’ 20일부터

    작가 이현화와 연출가 채윤일이 호흡을 맞춘 극단 쎄실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산씻김’이 오는 20일부터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다시 오른다.‘산씻김’은 죽은 자의 영혼을 정화시켜 이른바 좋은 곳으로 보내려는 전통무속 ‘씻김굿’을연극 양식으로 재구성한 작품.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느끼던 여성이 씻김굿의 의례를 통해 심한 폭력의 공포를 경험하면서 자신에 내재돼있던 폭력성을 풀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하나의 오보에를 위한 A’라는 부제대로 산 자들의 정신을 씻어내기 위한 방편(A)이 과연 무엇인지를 관객스스로가 생각하게 만든다.3월4일까지 월∼토 오후4시·7시일 오후3시·6시.(02)334-5915. 김성호기자 kimus@
  • 게놈연구 철학·신학자들 시각

    [로스낸젤레스 연합]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강조해온 것처럼 인간게놈(유전자정보)지도 완성에 대한 철학·종교인들의 지적은 ‘영혼’의 중요성이다. USA투데이는 12일 철학자,신학자,생물학자,작가가 보는 인간게놈 지도 프로젝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했다.그들은 한결같이 아직도 인간이나 과학이 간파할 수 없는 한가지영역 즉,‘영혼’을 강조한다. 인간유전자정보가 해독돼 학문체계와 의료혁명을 이룬다 해도 영혼의 문제 만큼은 흔들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립 키처(컬럼비아대 철학교수·‘과학과 종교간 전쟁’강의) 전지전능하고 완전히 자비로운 신이 있다면 실제로 신의 목적은 이해할 수 없다.3만개의 유전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거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부조리하다.인간게놈 지도 작성은 인간 본질 밖의 것을 색칠한 것에 불과하다.유전적 영향이 인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윌리엄 메이(워싱턴 요한 바오로 2세 연구소 연구원) 유전자가 인간 현상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사고(thinking)가유전자의 기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버트 폴랙(생물학자·컬럼비아센터 과학·종교 연구 책임자) ‘희망’의 가치를 설명하려 한다고 하자.과학자가 영혼이 몇 온스이고 몇개의 염기쌍이 DNA 속에서 코드화됐는지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중요한 것은 희망의 실체지 영혼의 형상화가 아니다. ●닐 도널드 월쉬(베스트셀러 ‘신과의 대화’ 저자) 마치어린애가 처음 곱셈표를 외우는 것을 보고 웃듯이 신은 우리가 이런 원시적 (유전자정보)폭로에 놀라는 것을 보고 웃을것이다. 창조론에서는 신의 시간으로 치면 순간(moment)은 수십억년이나 수백만년이다.모든 게 변해야 한다는 것은 창조론의 원리가 아니라 인간이 순간이 무엇인가를 정의한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깨우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합된다.
  • 2001 길섶에서/ 얼굴과 영혼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나이 40을 넘으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그렇지만링컨은 얼굴이 특별히 잘 생긴 사람은 아니었다.젊은 날의링컨은 오히려 강파른 인상이었다. 나중에 한 소녀의 말을 듣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구레나룻을 길렀다.하지만 얼굴빛이 온화하고 맑은 빛을 띠기 시작한것은 중년이 넘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고 진실한 삶을 꾸려간 그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순우리말인 얼굴의 어원이 ‘얼꼴’이라는 학설이 있다.‘얼’은 영혼을,‘꼴’은 모양을 가리킨다.그런 점에서 우리 조상들은링컨보다 앞서 마음가짐이나 인품이 얼굴에 비친다는 것을알았던 것같다. ‘나쁘다’의 어원도 ‘나뿐이다’라고 한다.선조들은 유아독존과 이기주의를 경계한 셈이다.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인심도 날로 각박해지는 듯하다.이럴 때일수록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후덕하면서도 정직한 얼굴을 거리에서,사회에서 많이 만나고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 영국 유학중 10집 앨범낸 이상은

    서른한살.가수에게,그것도 한국의 여자가수에게 그 나이는어떤 의미일까.“음악에는 삶의 태도가 반영되게 마련이에요. 물흘러가듯, 그때그때 세월이 주는 느낌대로 노래하는 거죠. ” 10집 앨범을 내고 서울을 다니러온 이상은이 말한다.유학(영국 런던 첼시대)중에 잠깐 짬을 냈다. 새 앨범의 속지를 미처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매니저한테서CD속 가사집을 건네받고 한자한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뜯어본다.진지하다.“하나라도 오탈자가 나와선 곤란”하다.서른즈음,영혼을 물들인 상념들이 고스란히 깃든 노랫말들인데. 그는 이번 앨범에서도 11개 수록곡 전체에 손수 가사와 곡을붙였다. “평온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나도,듣는 쪽에서도.” 타이틀곡으로 뽑힌 첫번째 싱글 ‘Endless Lay’에서부터 그 의도가 감잡힌다.더욱 단조로워진 세션에,군더더기없는 리듬,읊조리는 듯한 창법.‘왜 당신은 내일을 걱정하는가…’(‘Endless Lay’중)로 시작되는 가사는 끝까지 관조적이며 구도적이다.‘Keep on dreaming keep on dancing…’진작부터 그랬지만,확실히그의 노래는 주류 대중가요들과는동떨어져 있다. 아니,부러 그가 거리를 둔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음악이,지나가는 유행같으면 못쓴다”는 고집이다.“좋은그림은 시간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잖아요.그런데 왜 음악은그게 안될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봐요.미술처럼 사물의 본질을 묻는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10집 앨범을 내면서는 내내 “보편적인 어떤 것”을 찾아보려고 애썼다.인간,자연,영원에 대한 갈구.9번째 실린 ‘어린날’같은 곡은 마치 70년대 포크송을 살짝 변주한 것같다.역시 그의 의도였다.“언제 들어도 편안한 노래가 곧 보편적인어떤 것”이라는 깨달음 덕분이다. ‘담다디’로 데뷔한 지 올해로 11년.국내 싱어송라이터치고 그만큼 부지런한 이도 없다.1년에 한번꼴로 음반을 내놓는셈이니까. “예전에는 조바심이 많았어요.‘담다디’를 부르며 껑충거리던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보려고도 했고.하지만 지금 그런 부담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습니다.뭔가를 의식하는 강박없이 음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운도 많이 따른다.1년째 미술공부를 부담없이 병행하고 있는것도 그렇다. 소속사인 일본 ‘도시바 EMI’의 사장이 사비를 들여가며 그를 후원해준다.“런던이란 데는 묘하더라구요. 매순간 뭔가가 날 툭툭 치는 느낌이랄까.음악으로 치면 록같은…” 록을 제대로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참이다. 황수정기자 sjh@
  • [굄돌] 이름

    누구에게나,그 어느 것에나 이름이 있다.밤하늘의 작은 별들에도,야산에 널린 ‘이름 모를’ 들풀들에도 이름이 있다.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름을 통해 제 존재를 증명한다.구체적인 이름으로 호명되기 전에는 제대로 존재 값을 알지 못한다.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그러니 사람과 사람,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 역시 서로 이름 부르기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찍이 김춘수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중략)//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이름이 곧 그 사람이다.이름이 그 존재를 만든다.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했을 때,비로소 그 존재는 사회적으로 인정된다.이름의 출생신고에서 시작해 사망신고로 끝나는 게 인생이다.그러니 우리네 삶을 곧 이름을 위한 삶이라고 해도 좋다.좋은 이름으로 불리고,썩 괜찮은 이름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 삶의 진실과 통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살아서 좋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어렵거니와,죽어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기는 더 어렵다. 작년 이맘 때 나는 좋은 이름으로 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이름을 남긴 영혼을 만난 적이 있다.캐나다의 벤쿠버 여행중 어느 바닷가 공원 벤치에서였다.바다를 내려보다 문득 벤치의 등받이를 보니 동판에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아마도 그 지역의 관리였나 보다.이름과 생몰 연도가 적혀 있고,작은글씨로 그가 생전에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 했던 훌륭한 봉사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죽은 그의 이름을 기리는 일종의 송덕(頌德) 의자였던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고 또 선한가.멋진 방식의 이름 남기기였다.살아서 남을 위해 봉사하던 그의 이름은 죽어서,지친 다리를 편히 쉬게 하는 의자가 되었다. 가장 낮지만 가장 높게 이름을 칭송하고 나누는 방식이 아닌가.저간에 우리가 흔히 봐왔던 송덕비는 한결같이 높은 방식이었다.보는 이들로 하여금 높이 우러러보게 강요한 측면마저 없지 않았다.송덕비에 비해 송덕 의자는 차원 높은 이름남기기의 역설을보여준다. 그것은 죽어서 살고,낮춤으로써 높아지고,남을 위함으로써나를 위하는,삶의 근원적인 역설과도 통한다. 우찬제 서강대교수 문학비평가
  • 첨단시대 인식론 ‘이런, 이게 바로 나야!’

    화성탐사를 나섰다가 우주선 파손으로 우주미아가 되게 생긴 나.남은 수단은 텔레클론 뿐이다.텔레포터 속으로 걸어들어간 육신은 분해돼 분자청사진으로 쏘아올려지고,지구에서 똑같은 나로 복제돼 나온다.사랑하는 가족과 재회한 기쁨도 잠시.화성에 두고 온 ‘원본’탓에 시도때도없이 밀려드는 묘한 분열감,죄책감을 떨칠수가 없는데…. 무슨 SF영화같은 화두를 툭 던지며 시작하는 ‘이런,이게 바로 나야!’(더글러스 호프스태터·다니엘 대닛 지음 김동광 옮김,사이언스북스).첨단과학시대에 다시 쓰는 인식론이라 할 만하다.장기이식 복제인공지능 가상현실의 난무에 지지직 잡음을 일으킨 지 오래된 근대적‘자아’에 열심히 딴지건다. 유명 인지과학자인 지은이들의 ‘브레인스토밍’에 뒤이어 19명의 석학들이 가담했다.보르헤스·하딩·렘 등 작가,튜링·도킨스·모로위츠 등 과학자,스멀리언·존 설 등 철학자들이 소설,SF,에세이,가상대담 등 형식도 자재로운 27편을 툭툭 던지며 게릴라 전법으로 자아의아성을 공략한다. 인공지능과 영혼,뇌를 둘러싼 각종 과학실험들,유전자,몸의 소프트웨어로서의 마음,창조와 자유의지를 거쳐 내면을 들여다보는 막바지 토픽까지.한번 훑고나도 무릎을 치는 ‘개안’의 느낌보다는 발랄한 제목에 속았다는 기분이 승할 법하다.그만큼 녹록치 않은 지적탐험.정독에 대한 강박관념을 비우고 이리저리 부딛쳐보는 게릴라전법은 읽는쪽에서 써도 무방할듯. 손정숙기자
  • [여성 선언] 여인의 향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EBS 세계명화’가 끝난 토요일 밤에 커다란 쿠션을 등에 대고 앉아 새벽녘까지 몇권의 책들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말은 한달에 고작해야 한두 번에 그치고 만다.어느 날은 연재 소설 원고를 써야 하고 또 어느 날은 불가피한 약속 때문에식당에 앉아 있거나 상갓집이나 낯선 여행지에 가 있거나 한다.그러니 그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그래서 나는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고백하자면 소설을 쓰며 살게 된 이후부터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수많은 독서를 할 만한 시간적,정신적인 여유가 없다.지금의 내 독서량이 문학청년 시절에 읽었던 것이 전부라고,쓰게 웃으며 농담처럼 말할 때가 있다.물론 농담이 아니다.그래서 때로 나는 친구들과 차를마시거나 영화를 보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뒷덜미를 잡힌 듯걸음을 딱 멈출 때가 있다.원고를 쓰기 전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장 고역스러운 건 어떤 의무 때문에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어거지로 읽어야 하는 때이다.그런 책들은 대개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잊혀져버린다.그러니 그 시간들은 무용지물한 것이 되고 만다.요즘세상에 한가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좋은 책과 읽고 싶은 책들을 읽기에도 시간은 늘 부족하다.그러나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은 내 몸에 꼭맞고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쉽지가 않다.그건 오랜 독서의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서구 사람들에 비해 현저하게 저조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가까운 나라 일본과 비교할 땐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나의 어떤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개의 결혼한 여성들 일부가 결혼 전보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점이다.좋은 책을 충분히 읽은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인생의양식(糧食)으로 남을 책을 골라줄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그렇다는 것을 때로는 나 자신조차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사과 한 접시를 옆에 두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진종일 책을읽던 시절이,정말이지 나에게도 있었다.아주 오래전 일이다.이따금씩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단 한권의 책이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는 세대에 속해 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어떤 낯선 영혼이 당신에게 속삭이고 당신의 영혼이 그것에 응답하는 진솔하고도 웅숭깊은 대화와 같다.읽는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발견하는 것과는분명한 차이가 있다.발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깊어지는 법이다.생각하는 것은 배우는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무엇’을 배워 얻으려면감각이나 상상력을 작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거기엔 관찰력과 기억력도 필요하고 풍부한 상상력도 갖춰야 한다.그러나 그 ‘발견’이라고 하는 건 무엇보다 어떤 ‘좋은’ 책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그것은 대개 수많은 독서의 경험 끝에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빨래하거나 밥을 짓는 데 아주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독서를 하는 데도 특별한 규칙은 필요하지 않다.다만 시간과 열정과탐구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훌륭한 독서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성장시켜준다.나는이런 사실들을 ‘독서의 기술’이라는 책으로부터배웠다.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무미건조하고 너무 평범하고 진부할 것이다.지금도 어느 곳에선가는 매처럼 빛나는 눈으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책 읽는 어머니는 더욱 아름답다. 조경란 소설가
  • ‘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병헌씨

    천상 그는 배우다.지난해 9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할 즈음이병헌(31)은 많이 수척하고 강파른 모습이었다.그런 이미지가 싹 달라졌다.한바탕 홍역같은 사랑을 앓고난 뒤 평온을 되찾은 이가 저럴까 싶게. 김대승 감독의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3일 개봉·제작 눈엔터테인먼트)에서 그는 지독한 로맨티시스트가 됐다.영원히 떠나간 옛사랑이 문득 제자의 몸을 빌려 찾아오고,그 인연의 정체를 용케도 알아채는 고등학교 교사 서인우 역이다. 목요일 점심때.“연속 일주일을 쉬어본 게 언젯적인지 모른다”며 엄살피우는 그를 붙들어 앉혔다.설렁탕 한 그릇을 게눈감추듯 ‘해치우는’ 모습너머로 영화속 인우의 익살이 휙 오버랩되고 지나간다. “영화에서처럼 영혼과 교감하는 사랑을 해본 적은 없어요.하지만 가슴뛰는 연애는 해봤죠.(웃음)모르긴 해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다음생에서도 서로를 알아볼 거라 믿어요.”영화는 인연의 힘과 윤회를 소재로 한 러브스토리다.1983년 대학캠퍼스에서 이루지 못한 인우와 태희(이은주)의 사랑은 17년 뒤 다시인연의 끈을 엮는다.제자인 현빈(여현수)을 통해 태희와의 기억이 복원되는 판타지 요소 때문에 동성애 영화로 오해받기도 한다.올해로 데뷔 10년.지난 91년 KBS ‘아스팔트 내고향’으로 연기를 시작했다.이번은 그에게 7번째 영화다.‘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런 어웨이’‘지상만가’ 등이 있었지만 그를 각인시키진 못했다.배우로서 뿌릿발을 내린 건 ‘내마음의 풍금’(99년)에 와서였다. “‘JSA’가 뜨고나니 은근히 이번 영화의 흥행성적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상대적으로 초라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서겠죠만. 근데 저는 그런 어리석은 계산은 안합니다.(영화는)평생할 작업인데,번번이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잖아요?” 툭툭 우스갯소리를 잘도 던지던 그가 진지해진다.“갈수록 두려운 건…연기에 대한 스스로의 부담과 관객의 평가예요.” 영화를 찍는 틈틈이 고3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다.눈빛이라도 읽고 오면 극중 캐릭터(국어교사) 묘사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었다. 말꼬리 한번 흐리는 법이 없다.턱선에 강단이 넘치는 서른한살의 배우.묻지도 않았는데,어느새 상대역 이은주 칭찬에 침이 마른다.“으레 신인들은 시나리오가 정해놓은 연기틀에 갇혀있게 마련이거든요. 그 친구는 달라요.평소 수수한 스타일이 그런 자신감에서 나오겠다싶을만큼 감정의 폭도 넓고.”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슬쩍 속이야기를 꺼낸다.“오랫동안 탐내온 역할이 하나 있긴 해요.교복입은 까까머리.‘친구’(3월 개봉)같은 시나리오가 왜 내겐 안들어오나 몰라요.”황수정기자 sjh@
  • 2001 길섶에서/ 사랑

    지난해 6·15 공동선언 이후 첫번째 남북이산가족 만남이 있기 직전TV의 토크쇼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노부부가 출연해 각자 북에 두고 온 가족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겨우 한달 살고 헤어진북쪽에 있는 아내를, 아내는 다섯달 살고 헤어진 남편을 추억하며 만나기를 소원하는 것이었다.반세기 넘어 다시 찾은들 무얼 어쩌겠다는것일까. 그런데 노부부는 나란히 한 자리에 앉아 끝까지 하지 못한각자의 잠시 동안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눈물 짓는 것 아닌가.혹자는이를 보고 50여년을 함께 산 배우자를 옆에 두고 늙은이들이 무슨 주책이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는 며칠밖에 안되는 변덕이나 판단없는 감상,낭만적인공상까지도 사람들은 사랑이란 꼬리표를 붙인다고 말했다.그렇다면사랑이란 진정 무엇일까.사랑이란 대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미지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은 아닐까.노 부부는 북에 두고온 사람들을 통해 사실은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싶었던 것은혹시 아니었을까. 박찬 논설위원
  • [굄돌] 칭찬

    몇 해 전에 ‘칭찬합시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묵묵하게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그들이 얼마나 칭찬 받을 만한가를 보여준프로그램이었다.눈만 뜨면 온갖 부정적 사건들을 접하는 사람들에게,‘칭찬합시다’는 신선하고 흐뭇한 정감을 제공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결코 칭찬 받지 못할 어두운 소식들이 많다. 한 때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大盜)가 출옥 후 회개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중 갑자기 소도(小盜)로 돌변했다느니,정치인들이 나랏돈을 어떻게 유용했다느니,또 누가 누구를 욕했으며 헐뜯고 싸웠다는따위의 소식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남을 의심하고,뜯어보는 버릇이 생기는 것도 차라리 자연스럽다.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형편이 그리 좋아지지 않고 있기에 남을 칭찬할 여유가 적은 것도사실이다. 제 코가 석 자일 때,남을 배려하고 칭찬하기는 쉽지 않다.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럴 수 있어야 인간의 존엄성을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내가 어려울 때 남의 어려움도 함께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을때,더불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그럴 때 우리는 누구나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로 칭찬 받을 수 있지 않을까.아름다운영혼들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꾸미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아름다운 영혼들은 우선 남에게 세심한 관심을기울일 필요가 있다.작고 구체적인 부분에서부터 남을 칭찬할 수 있는 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칭찬에 인색했을 뿐만 아니라,혹 칭찬하더라도 공소한 칭찬에 머물렀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런 예지가 필요하다.가령 각급학교의 상장 문구들이 여전히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므로’ 운운,일색이어서는 곤란하다.수상자조차 진짜 수상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상장뿐만이 아니다.각종 추천서의 문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거의 천편일률적인 추천서들을 보면서 추천 대상 인물의 진정한 특징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요컨대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좋다.구체적으로 칭찬하고 구체적으로 칭찬 받는 분위기 속에서라면, 우리는 좀더 진실하고 아름다운세상을 기획할 수 있을 터이다. ♧ 우찬제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 “색깔·이미지로 음악을 보세요”

    작곡가 리스트는 곡을 만들거나 연주자들에게 지시를 할 때 “여기를 좀더 핑크색이 되도록”“이 부분은 너무 검군”하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슈베르트는 자신이 특히 좋아했던 마단조를 가리켜 “마치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장밋빛 활을 들고 있는 듯하다”고 표현했다나. 귀로는 들을 수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음악을 색깔과 이미지로표현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성과도 같은 것일까. 최근 나란히 선보인 음반, 신나라뮤직의 ‘컬러 시리즈-오렌지&그린’과 소니의 ‘이미지’(Image)는 음악이 지닌 독특한 느낌을시각화하려는 상상력으로 넘친다. ‘컬러 시리즈’는 신나라뮤직이 KBS 제1FM ‘FM가정음악’과 손잡고 출시한 앨범.오렌지와 그린 2장으로 나뉜다.환희와 격정의 색깔 ‘오렌지’편에는 ‘마음의 불빛’이란 부제를 붙여 마스카니 오페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중 ‘왈츠2번’ 등을 담았다. 한편 ‘내인생의 푸른 나뭇잎들’이란 부제가 있는‘그린’편은 눈부신 초록빛으로 생동한다.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중 ‘아침인사’,바흐 ‘사냥칸타타’ 중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뜯고’ 등을 들려준다. ‘이미지’는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의 ‘리베르탱고’,뉴에이지 피아노의 거장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어쿠스틱 기타그룹 곤티티의 ‘방과후의 음악실’ 등 18곡을 실은 편집앨범.정열적인 남미,신비로운 달나라 등 영혼만이 떠날 수 있는 여행지로 안내한다.일본에서는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허윤주기자 rara@
  • [대한칼럼] ‘나무를 심은 사람’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아름다운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읽는다. 프로방스 지방 산악지대를 ‘나’는 걸어간다.1913년이다.사흘째 되는 날 도착한 곳은 “보기에도 참혹한 폐허”였다.벌집 같아 보이는낡은 집들,허물어진 교회가 간신히 옛 모습을 이야기할 뿐,사람의 자취는 사라진 지 오랜 듯싶다.물을 찾아 헤매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지 다섯시간만에 50대 중반의 양치기를 만난다.뜨거운 햇살과 거센바람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곳,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단 한 사람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그는 쇠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내리며 그 지팡이로 땅에 구멍을 파고 도토리를 심는다.지난 3년간 10만개를 심었으나 2만개만 싹을 틔웠고 그중 절반인 1만그루가 살아 남았다.“30년 후에는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훌륭하게 자라 있겠군요”하고 내가 말하자 그는 조용히 대답한다.“혹시 신께서 나를더 살게 해 주신다면,그 사이 계속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지금의 1만 그루는 큰 바다 가운데 한 방울의 물에지나지 않을 것이오” 다음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5년만에 전쟁터에서 돌아 온 나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탓에 그가 죽었을지도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살아서 계속 나무를 심고 있었다.떡갈나무는 내 키를 훨씬 넘게 자랐고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까지 싱싱하게자라고 있었다.1945년,그가 87세 때까지 묵묵히 나무를 심는 모습을나는 계속 지켜 보았다.그렇게 그가 일군 숲은 ‘ 큰 바다’가 돼 사나운 바람을 잠재우고 시냇물을 흐르게 하고,온갖 새와 짐승과 사람이 깃들어 사는 낙원으로 변한다.그가 워낙 말없이 그 일을 해냈기때문에 세상은 그 숲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이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엘제아르 부피에가 나무를 심기전의 황무지처럼 황폐해져 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으로 지난 연말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정치권은 거의 동파(凍破)지경이다.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도,야당총재의 회견도 이 얼음장을 녹이지 못했다.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안기부 예산횡령사건으로 정치는 마비됐다.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엄연한 범법행위가 정쟁의 대상이 돼여야가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있을 뿐이다. 연초부터 최근까지 계속된 폭설과 혹한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도 절망적이다.불가항력의 천재(天災)라고는 하지만 허술한 인프라와 복지부동의 행정은 인재(人災)를 덧붙였다.더욱 가슴 아픈 것은 영혼마저 찌든듯 각박해진 우리 자신을 확인한 것이다.자기 집앞 눈도 치우지 않은 채 구청에 항의전화를 하고,월동장구도 갖추지않은 채 경찰의 교통통제를 무시하며 먼저 가려던 얌체족들로 인해,수많은 사람들이 빙판길에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대관령을 비롯한 전국의 도로들이 마비됐다.대한매일 뉴스넷의 여론조사에서 네티즌의 75%가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것은 충격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황폐함을 드러낸 것인 듯싶다. 물론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있다.마을 사람들이 숯을 구우며 숲을 파괴하고,서로 으르렁거리며 티격태격 싸우면서,분별 없는 야심과 경쟁심만 가득 품고,어떻게 해서라도 그 땅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곳에 홀로 남아 황무지를 낙원으로 바꾸는 기적 같은 일을 해 낸 그 사람처럼,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내면서 우리사회를 지키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보통사람들이다.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계속 ‘희망의 나무’를 심어가기 바란다. 남의 탓 만 하고 자기 잘못은 되돌아 보지 않는 사람,자기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찾아 내는 사람들도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엘제아르 부피에를 닮아가면 좋겠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ysi@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1)장회익 교수 온생명 사상

    인간의 기술은 생명을 복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그러면서도 어찌된일인지 현대를 인류 역사상 생명이 가장 위협받는 시대라고 말한다. 인류의 신앙이었던 기술개발이 인류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대신 더 많은 불안과 위험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을 초토화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기로 몰아 넣었다.세기가 바뀌면서 ‘생명’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대한매일은 오늘부터 월 2회 생명 위기시대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생명중심 세계관’을 들어본다. [김재성논설위원] 인류가 암세포라는 말이 충격적입니다.심층 생태학에서 인간이 생태계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는 그물코의 하나라는 주장도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고 봅니다.하물며…. [장회익교수] 현재의 인간은 분명 암세포입니다.암세포가 생명체 내에서 유기적 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계속 자기복제를 해 암세포 무리를 양산하듯이 지구촌에서 인간이 하는 짓이 딱 그렇습니다.인간의 산업문명이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을 막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매년 수많은 생물종(種)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지구촌의 생명질서를 인간만을 위한 기형적 구조로 대치시킴으로써 ‘온생명’의 건강을 위협하고있습니다. [김위원] ‘가이아’ 이론에서는 ‘가이아’가 인간을 지구촌에서 도려 내버릴수도 있다고 했습니다.사람들이 상처 속의 고름을 짜내듯이말입니다.만일 인간이 암세포라면 그런식의 대란이 올수도 있겠군요. [장교수] 나의 ‘온생명'은 인간도 ‘온생명' 속에 포함되며 그 기능은 두뇌 혹은 정신에 해당한다고 봅니다.따라서 치유하든지 그대로 파멸을 맞든지 그 역할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다행히 인류의 소수는 ‘온생명’이 중환자 상태라는 자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위원]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생명계가 공유해야 할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것인데 생명을 복제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인간의 기술이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습니다. [장교수] 원시 상태에서 지구상의 적정 인구는 약 400만입니다.지금부터 약 1만년에서 5만년전에 지구의 인구가 그랬습니다.그런데 지금 세계인구가 얼마입니까 60억입니다.적정인구보다 약 1,500배가 더 많습니다.이를 기술개발로 해결했지만 오래전에 한계에 도달했습니다.더 짜낼 것이 없는 거지요.지금부터는 지구의 생명력을 복원시켜야 합니다. [김위원] 인류는 숱한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진화해 왔습니다.이 진화능력이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장교수] 지금의 인류는 35억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입니다.따라서 인류가 또 다른 조건에 적응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생명의진화적 적응에는 적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여유가 없습니다.‘온생명’의 생리시간표와 과학기술에 의한 환경변화의 타이밍에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지요. [김위원] 이를테면 오염된 환경에 우리 인간이 생리적으로 적응하는시간보다 공기와 물등 환경여건이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는말씀이지요?[장교수] 좋은 예가 있습니다.요즈음 지구촌의 공포인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고기 가루를 먹인 것이 유력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소의 초식성은 수만년의 진화의 결과인데 갑자기 육식을 주니까 미처 적응을 못하고 부작용을 일으킨 겁니다. [김위원] 박테리아가 당분을 향해 달음질하고 산(酸)을 피해 도망가듯이 모든 개체가 이기적 활동이 전체와 조화를 겸하는 데 인간의 이기심은 왜 생태계에 피해를 주게 됐을까요?[장교수] 욕구의 무제약성 때문입니다.욕구 자체는 생존을 위한 장치지요.밥을 먹어야 사니까 밥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그런데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있습니다.그 한계가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접점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인간은 기술개발로 전체와 개체의 조화를 이루는 접점이 무너져버렸습니다.기술개발이 욕구의 과잉충족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오늘의 기술문명이 힘만 있고 이를 제어할 눈은 없는 거인인셈이지요. [김위원] 경제성장이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해결될 문제군요.그러나 인간의 편리나 욕구를 억제하는 해결책이 이상적인 해결책일까요?[장교수] 어쨌든 지구상에서 생산해낼 수 있는 총량을 계산하고 그것을 60억 인구로 나누면 일인당 얼마의 소비가 적정소비인지 계산이나옵니다.그 이상 갖거나 소비하면 죄악이지요. [김위원] 그런 취지에서 몇가지라도 계량화 된 것이 있습니까?[장교수] 유감스럽게도 없어요.경제학자들이 그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독으로는 어렵고 생태학계와 공동으로 해야지요. [김위원] 물리학자인 카프라 교수는 “인류가 분리된 개별적 자아에집착하는 문제가 있다.그런데 그 개별적 자아란 환상에 불과하다”며 불교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물리학자에게 적합한 질문은 아닙니다만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생명의 그물망에서 떨어져 나왔을까요?[장교수] 모든 낱생명에게는 개체 보존과 생태보존이라는 두가지 본능이 있습니다.지금까지 생존한 모든 생명체들은 이들 사이에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어 왔다고 봐야지요.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기술개발로 이 균형이 무너졌습니다.아까 말한 것처럼 기술력이 증가함에 따라 생태계가 크게 훼손되고 따라서 생태보존본능이 강화돼야 되는데오히려 이것이 개체보존본능을 충족시키는 데만 활용된 것이지요.물론 절제의 윤리는 있지만 그건 모자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가능한데도 갖지 말라는 윤리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가능하더라도 절제하는 윤리,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를 함께 생각하는 새 윤리가나와야 합니다. [김위원] 人변에 쓴 윤리(倫理)의 윤(倫)자도 바뀌어야 겠군요.1854년 미 서부지역 인디언 추장이 백인에 의해 추방되면서 한 유명한 마지막 연설이 있습니다.[그대들의 제안을 고려하겠다.그러나 조건이있다.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 달라.짐승들이 없는 세상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의 영혼은 외로워서 죽게될 것이다]이 연설문 속에는 20세기 소수의 과학자들이 어렴풋이 찾아낸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궁금한 것은 훨씬 더 진보된 현대인들이 왜 150년 전 인디언들보다 영성(靈性)이 퇴화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장교수] 당시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2만∼3만년간 계속된 수렵생활을 했습니다.너무 많이 잡거나 천재지변으로 수가 격감하면 바로 자신들의 위기로연결됐습니다.모자람에서 오는 소중함,나아가 생명의 일부처럼 되는 일체감이지요.그런데 농경생활과 기술문명으로 자연을비교적 효과적으로 통제해왔던 구대륙에서는 이러한 위협을 상대적으로 더 적게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요. [김위원]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다수가 깨닫기는 요원한 일입니다.그 깨달음의 제도화는 가능할까요.?[장교수] 동강 문제해결은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새만금 사업도 예전 같으면 아무도 말리지 못합니다.그런데 몇사람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니까 대중이 공감했습니다.이제는 지리산반달곰을 못잡게 하는 법에 이의를 달 사람이 없습니다.누군가 먼저문제를 인식하면 언젠가 공유화됩니다.그래서 ‘인류가 생태계의 암적존재’라는 비관론은 자각증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희망이 있습니다.●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 장회익 교수 “온생명이란”. 1988년 4월,유고슬라비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세계 과학철학학술회의에서 ‘생명의 단위’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한 장회익(張會翼·서울대 물리학부)교수가 지구상의 생명현상 전체를 하나의 생명단위로 보는 ‘글로벌 라이프’(global lif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그후 1992년 장 교수는 이를 ‘온생명’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했다. ‘온생명’이 기존의 생명개념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는 지구상에존재하는 하나 하나의 생명을 분리된 개체로 보지 않고 전일적 생명체로 본다는 점이다.생물학계에서는 생명의 단위를 세포,더 나아가세포핵 속에 있는 DNA로 본다.DNA만 있으면 온전한 생명의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유전자라는 것이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기호의 배열이므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유전정보를 읽고 실행하는 세포가 없으면 폐지더미 속의 인쇄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세포 역시 더 큰 단위의 조직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으며 이런식으로 세포,개체,종(種),생태계,태양계를 포함한 지구가 하나의 큰생명으로 연결된 유기체적 단위라는 것이다. ‘온생명’이론이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이론과 다른 점은 ‘가이아’이론이 지구를 인간과 별개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반면,장교수의 ‘온생명’이론은 ‘온생명’안에 인간도 포함되며 인간은 ‘온생명’의 정신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두 이론이 지구를 하나의유기적 실체로 보는 것은 같지만 다른 점은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 기조가 다른 것과 유사하다. ‘온생명’사상이 인류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구생태계가 하나의 생명체임을 전제로할 때 현대 산업사회의 인류는 일종의 암세포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우선 인간이 지구촌생태계의 유기적 기능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세포가 자기 증식을 계속하면서 주변세포를 죽이듯이 인류의 끝없는 욕망이 생명세계를 사막으로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1961)▲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물리학 박사(1969)▲현재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겸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 겸임교수▲저서:‘과학과 메타과학’(1990)‘삶과 온생명’(1998)
  • [굄돌] 거짓말 사회

    의심 많은 사람을 조심하라.그 자신이 남을 잘 속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잘 속이지 않는 사람은 남을 잘 믿는다.큰 소리로말하는 사람을 경계하라.제 거짓을 큰 목소리로 위장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진실한 말은 큰 목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확실히’‘결단코’‘절대로’등의 부사형 언어를 많이 쓰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강조 부사는 위장의 그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진실은 그런 언어로 전달되는 게 아니다. 나날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이치의 목록들로,그런것들을 거론하는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다. 하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 마음이 그리 편안할 수만은 없지싶다.정치의 동굴을 비롯해 경제의 시장,나아가 인터넷 바다에 이르기까지 거짓말들은 공기처럼 떠돌고 있다.요컨대 거짓으로 ‘늑대다!’하고 외쳐대는 양치기 소년이 너무나 많다.거의 매일같이 이런저런 거짓말에 치여산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투명한 진실은 멀리 망명을 떠난 것일까.좀처럼 돌아올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쩔 수없이 의심 많은 사람들이 되어 있다.남을 잘 속이지 않는데도,의심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속절없는 노릇이다.매우 피곤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일이 많은데,거짓말 사회가 그것을 가중시킨다.이래서는 곤란하다.언제부터인가 망명을 떠난 투명한 진실을 불러들여 믿음에 바탕을 둔 진실한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서로가 서로에게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영혼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올해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고,노숙자의 임시 주거지가 늘어날 지도 모른다.이런 난세에는밥을 나누는 것과 더불어 진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거짓말로는난세를 치세할 수 없다.물론 살면서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 살기는 곤란할지 모른다.그야말로 불가피한 선의의 거짓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자기 삶에서 단 한번만 하기로 약속하면 어떨까.그러면,그야말로 위대한 거짓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위대한 거짓말만 있고,밥먹듯 하는 거짓말은 없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문학부 교수
  • 해학·풍류 넘치는 상상의 세계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휴식이다” 숫돌에 몸을 가는고행을 하듯 술을 마신 화가 장욱진(1918∼1990).한국 현대미술계에남다른 자취를 남긴 그의 10주기 회고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02-734-6111∼3)에서 열리고 있다.2월 15일까지.그동안 먹그림전이나종이그림전 등은 있었지만 유화작품만을 모아 대규모 회고전을 열기는 95년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처음이다. 장욱진은 해,달,가족,동물,까치 등 주변의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표현한 동심의 화가다.해학과 풍류가 넘치는 투명한 상상의 세계를 작가는 자그마한 화면에 담아냈다.장욱진의 그림은 대부분 3∼4호,기껏해야 10호 정도다.화폭이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지고 밀도가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그의 그림은 서양화 재료를 썼지만 동양화의 정신이 배어 있는 것이 특징.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장욱진의 그림은 수묵화로 번안된 유화”라며 “장욱진이통칭 서양화가로 불리지만 그의 그림이야말로 진정한 한국화” 라고지적한다. 장욱진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또 하나의 열쇠는 그가 유난히 집짓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실제로 장욱진은 서울대 교수를 그만둔 1960년이후 서울 명륜동 집과 새로 지은 지방의 화실들을 옮겨 다녔다. 63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삼패리에 작업실을 차려 12년간 홀로 살았던 그는 다시 충북 수안보(80∼85년)로,경기도 신갈(86∼90년)로떠돌았다.장욱진에게 술이 구원이었듯이 떠남 또한 구원이었던 셈이다. 작가의 현실의 집은 그림에선 하나의 정신적 이상향으로 나타난다. 그의 작품에 으레 등장하는 조그만 집 한 채는 곧 세속의 방황을 잠재워주는 고고한 영혼의 거처다.평전 ‘그 사람 장욱진’(김영사)을펴낸 김형국 서울대 교수는 “피카소 그림에서 여인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장욱진에겐 집이 그런 무게를 지닌다”고 말한다. 전시작품은 49년작 ‘독’에서 타계 직전 그린 마지막 유작 ‘밤과노인’(1990년)에 이르기까지 70여점.한국전쟁 와중에 고향인 충남연기에 머물며 작은 갱지에 보리밭 사잇길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 이순경 여사(80·역사학자 두계 이병도의 맏딸)를 모델로 한 ‘진진묘(眞眞妙)’,무성한 나뭇가지위에 집이 올라앉아 있는 ‘가로수’ 등 1940년대에서 90년까지의 대표작들이 망라됐다.‘소’‘가족’‘아이들’‘수안보 집’‘나무와까치’‘두 나무’ 등 미공개작도 20여점이 전시돼 관심을 모은다.전시를 준비해온 장욱진의 큰딸 장경수씨(56)는 “아버지의 작품이 500여점 가량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 모아보니 유화만 721점이나 됐다”며 기뻐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장욱진 전작도록과 92년 미국에서 출간된 ‘황금방주:장욱진의 그림과 사상’의 한국어 보급판도 나왔다.국내 작가의전작도록이 출간되기는 운보 김기창에 이어 장화백이 두번째다. ‘해와 달·나무와 장욱진’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의 관람료는 일반3,000원,학생 2,000원이다.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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