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혼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아이윈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윤세아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시장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송해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34
  • 뭉크의 주변을 맴도는 죽음 [으른들의 미술사]

    뭉크의 주변을 맴도는 죽음 [으른들의 미술사]

    방 한 구석 침대에서 누군가 죽음을 맞고 있다. 죽음을 맞은 이 앞에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이 작품에서 죽은 이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다. 다만 슬퍼하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한다. 뭉크는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가족 가운데 어머니와 누나 두 명을 잃었다. 뭉크 어머니 로이라는 1868년 12월 5남매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았다. 로이라가 숨을 거둔 그날 새벽 누군가 소피에와 뭉크를 깨워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로이라는 두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나는 너희들 곁을 떠나야 돼. 내가 가버리면 슬플 거야. 우리는 곧 하늘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신께서 너희와 함께 하기를...” 5살의 뭉크는 이 말의 뜻을 몰랐지만 무서웠다고 술회했다. 요람을 흔드는 죽음의 천사창백한 얼굴들, 검은 옷을 입은 인물들과 그림자, 그리고 단축법으로 표현된 죽은 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엔 슬픔과 침묵만이 흘렀다. 뭉크의 가족은 모두 죽음은 잠자는 것이라고 믿었다. 뭉크는 훗날 ‘질병, 광기, 죽음은 늘 내 요람 곁에 있었지’라며 죽음이 그의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였음을 밝히고 있다. 뭉크는 20여 년에 걸쳐 이 작품을 유화, 파스텔, 석판화 등 여러 버전으로 제작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의 석판화와 개인소장(작품명 ‘임종’) 석판화 두 점이 선보인다. 임종을 맞은 이 주변에 5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한다. 다만 맨 앞에 있는 여성만 관객을 향해 있다. 다른 버전의 작품들을 보면 이 여성은 환자 머리맡에 놓인 물병과 약병을 챙겨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 인물을 카렌 이모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 옆의 노인은 뭉크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카푸트 모르툼, 죽은 이의 머리흥미로운 점은 유화 버전과 달리 벽지에 알 수 없는 두 인물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성별도, 연령도 알 수 없는 두 영혼은 죽은 이를 바라본다. 유화 버전에서 이 벽은 적갈색의 빈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 안료 이름은 카푸트 모르툼(Caput Mortuum)이다. 이는 라틴어로 ‘죽은 이의 머리’라는 뜻이다. 카푸트 모르툼은 연금술에서 사용하고 남은 찌꺼기를 의미하는데 바로 산화철로 적갈색을 띤다. 뭉크는 유화에서는 ‘죽은 이의 머리’ 색으로, 판화에서는 죽은 이의 머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예술로 승화된 그리움여기 누워 죽음을 맞은 이가 뭉크의 어머니나 누나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뭉크는 1895년 서른 살이 넘어 어릴 적 어머니와 누나의 상실감을 표현했다. 뭉크 작품의 특징은 어릴 적 기억을 그렸지만 어릴 때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모두 성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끝나지 않은 뭉크 삶의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고 닥칠 일이다. 누군가 슬퍼하고 기억해 준다면 잘 산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뭉크는 어머니를, 누나를 죽는 날까지 그리워했다. <편집자주>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에드바르 뭉크 전시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을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올해는 뭉크가 사망한 지 80주기를 맞이하는 해다.
  • 죽고 싶다는 딸과 공감하는 엄마…무대 위에 오른 안락사

    죽고 싶다는 딸과 공감하는 엄마…무대 위에 오른 안락사

    “죽고 싶다”는 한마디가 진실로 절실한 사람이 있다. 병명도 모른 채 만성 체력 저하 증상으로 8년째 침대에서 지내는 비의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이대로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 캄캄한 앞날을 견디자니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비에게 죽음은 감옥 같은 육신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 수단이다. 주어진 삶은 고통스럽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류는 오랫동안 죽음을 인간의 손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해왔지만 최근 들어 이와는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사회가 분명히 다뤄야 할 의제이기도 하다. ‘비bea’는 연극으로서 안락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삶에 그다지 희망이 없는 비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비와 같은 불치병 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비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한 번쯤 고민하게 한다. 비에게 어느 날 공감 능력이 탁월한 간병인 레이가 등장한다. 레이에게 연애도 임신도 불가능한 고충을 털어놓던 비는 레이에게 부탁해 엄마에게 줄 편지를 대신 써달라더니 깜짝 놀랄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에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안락사를 부탁한 것. 그러나 엄마는 살인은 불법이라며 비가 했던 것처럼 레이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거절한다.죽고 싶은 딸과 살게 두고 싶은 엄마의 양보할 수 없는 생각의 간극은 레이를 통해 조금씩 좁혀진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무거운 주제지만 비의 천진난만함과 레이의 생기발랄함이 만난 덕에 무겁지 않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때론 대책 없이 유쾌하기까지 한 작품은 안락사 문제를 마냥 어두운 분위기 속에 터부시하는 대신 다양한 감정으로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죽고 싶으면서도 남들이 느끼는 욕망과 감정에 솔직해져 보고 싶은 비의 대사와 행동들은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세상의 규범이 자유의지를 지닌 영혼을 속박할 수 있는지, 인생의 나머지가 죽음뿐이라면 죽을 권리를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지 등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공감이라는 낯선 현상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연극적으로 신선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공연 막바지 감옥 담장처럼 비의 방을 감싸던 벽이 열리고 사과나무가 선 정원이 나타나는 무대도 인상적이다. 비가 갇혀있던 굴레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얻는 것 같기도,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엄격한 장벽이 허물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이 작품은 영국 국립극장 출신 극작가 겸 연출가 믹 고든의 대표작이다. 이준우 연출은 “우리 삶을 충실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알고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작품이 전하는 공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무엇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어야 작품의 매력이 살아난다는 점에서 연극적 가치도 남다르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24일까지. 비는 이지혜·김주연, 레이는 강기둥·김세환, 엄마 캐서린은 방은진·강명주가 맡았다.
  • 꿈 잃은 심장 향한 ‘빈 살롱’의 꽉찬 외침… 도전의 설렘으로 채워 보라!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꿈 잃은 심장 향한 ‘빈 살롱’의 꽉찬 외침… 도전의 설렘으로 채워 보라!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낭만 하면 떠오르는 공간, 살롱문학, 철학, 예술, 어떤 주제든토론하고, 연주하고, 상상하던 곳‘살롱의 슈퍼스타’ 조르주 상드사랑하고 연결하고, 뜨거웠던‘열린 예술의 유토피아’로 자리매김그저 휴식의 공간 넘어당장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역동적 실천 잃지 말라는거대한 울림 진동하는 ‘미래 꿈터’ ‘낭만’이라고 하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은 온갖 꿈들이 떠오른다.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은 마음. 젊은 시절의 열정과 이상을 간직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아직은 늦지 않았다’며 서로의 꿈을 무조건 응원해 주는 모임이라도 만들고 싶다. 꼭 엄청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그저 축하하고 싶은 사소한 기쁜 일이라도 생기면, 아는 사람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다 초대해 작은 파티를 벌이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낭만 하면 떠오르는 공간은 ‘살롱’(Salon)이다. 문학과 철학과 예술에 대해 언제든 마음 내키는 대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곳. 누군가는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누군가는 열띤 토론을 하고, 누군가는 차를 마시며 차분히 책을 읽어도, 서로의 ‘자기다움’을 해치지 않는 그런 자유로운 모임이 가능한 곳. 내게 그런 ‘낭만적인 꿈’을 되찾아준 곳이 바로 19세기 ‘살롱’의 성지, 파리의 낭만주의 미술관(La Musée de la Vie Romantique)이다. 해외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이런 곳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 높이나 규모 면에서는 이제 한국도 아쉬울 것이 없지만, 걸작이 셀 수 없이 많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 같은 곳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러움이 앞선다. 방대한 컬렉션과 뛰어난 작품성, 역사적 의미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는 박물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럴 때 나는 ‘작가들의 집’을 상상해 본다. 멋진 예술가가 살았던 집을 도시 한복판에 복원하는 것은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복원에는 ‘창조적 시선’이 필요하다. 단지 어떤 유명한 예술가의 유품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예술가의 삶이 지금 여기의 우리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내게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 곳이 바로 파리 낭만주의 미술관이었다. 화가 아리 셰퍼의 집이자 아틀리에였던 이곳을 국가에서 매입해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파리 낭만주의미술관. 이 아름다운 미술관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셰퍼 자신만이 아니라 ‘19세기의 프랑스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그때 그 시절의 낭만주의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작가 조르주 상드였다. ‘쇼팽의 연인’으로도 알려진 상드의 유품들과 초상화가 이 낭만주의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다. 조르주 상드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기적으로 ‘살롱’을 개최해 예술과 문학과 철학적 비전을 나누었던 당시 아티스트들의 열정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은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컬렉션 기능도 하면서 ‘살롱의 슈퍼스타, 조르주 상드의 유품이 남아 있는 집’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음악과 미술, 문학과 철학에 관한 온갖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새로운 우정과 사랑과 연대감이 싹트던 공간. 그곳에서 상드는 예술가들의 수많은 인연의 네트워크를 가능케 한 명실상부한 살롱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방문객들이 향기로운 베이커리와 커피, 차를 즐기며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의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이곳의 장점이 됐다. 과거와 현재의 뜨거운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런 공간의 공통점이다. 우리도 지역마다 그 지역 태생 예술가의 삶을 기념하고, 관람객들이 자신의 꿈을 대입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예술가가 남긴 유품이나 작품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이 어렵다면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오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곳은 파리 예술가들의 아늑하고도 풍요로운 아지트였다. 1830년 셰퍼는 이 집에 거주하면서 화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이 동네는 수많은 화가들과 작가들로 붐볐다. 그는 정기적으로 금요일 밤 살롱을 열어 이웃과 예술가들을 초대해 창의성과 동지애를 나누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작가 조르주 상드와 그녀의 파트너이자 작곡가인 쇼팽은 살롱의 단골이었다. 다른 유명한 손님으로는 들라크루아, 앵그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있었다. 셰퍼의 집은 활기가 넘쳤고, 셰퍼는 친구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셰퍼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네덜란드의 화가가 프랑스의 화가들이나 영국의 작가까지 초청해 매주 자신의 공간과 비용을 기탄없이 내주며 예술가들의 공동체, 살롱을 이끌어 갔다는 사실이 더욱 이 공간을 ‘열린 예술의 유토피아’로 느껴지게 만든다. 상드, 쇼팽, 들라크루아, 리스트, 로시니, 디킨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아름다운 살롱의 주인공이었고, 특히 상드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녀의 초상화, 쇼팽과 리스트가 연주하던 피아노, 사람들이 앉고, 이야기하고, 박수를 쳤던 각종 의자와 테이블들, 그들이 나누었던 손편지와 온갖 장신구들까지, 이곳에 아름답게 전시돼 있다. 평생 낭만과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조르주 상드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글 속에 ‘마음 속의 눈부신 젊음’을 유지하려는 온갖 노력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노년까지 영혼을 젊고 떨리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죽음 직전까지 삶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것이 자신의 재능과 내면의 행복을 계속 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해체를 향한 내리막길로 여기는 것은 실수입니다. 그 반대가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놀라운 속도로 오르막길을 오르게 됩니다.” “나는 다시 결혼하느니 차라리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다.” “쇼팽의 선물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깊고 충만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입니다. 그는 하나의 악기가 무한의 언어를 말하게 했다.”(내 인생의 이야기: 조르주 상드의 자서전)“이 세상 단 하나의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선언했던 조르주 상드는 평생 무려 4만여통에 가까운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에서 다루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심오하다 보니 그녀의 편지가 바로 프랑스의 역사는 물론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고 한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2000여명이라고 하니, 조르주 상드라는 존재가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과 교분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연인과 친지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수평적 인연으로 얽혀 있는 그녀의 편지는 아직도 새롭게 발굴되는 중이라고 하니, 사랑과 우정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녀의 사랑은 곧 창작의 불꽃이 됐다. 그 뜨거운 사랑은 자신의 창작뿐 아니라 연인의 창작에도 불씨를 지피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랑을 받았던 뮈세도, 쇼팽도, 그녀와 함께할 때 수많은 걸작들을 창조했다. 사랑은 낭만주의의 불꽃이었고, 사랑으로부터 음악과 미술과 문학 그리고 혁명을 향한 갈망까지 함께 불타오르곤 했다. 상드가 일으킨 혁명은 바로 여성도 얼마든지 남자와 다름없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 유럽에 전파하는 것이다. ‘쇼팽의 연인’, ‘쇼팽의 푸른 노트’, ‘디자이어 오브 러브’, ‘파리에서의 마지막 키스’ 등 조르주 상드의 인생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은 어떻게 한 여성에게서 이토록 다채로운 인연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는지를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 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패션이었던 ‘여성의 바지 차림’은 조르주 상드가 일으킨 또 하나의 패션 혁명이었으며, 격식과 억압에 짓눌린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기 위한 용감한 실험이었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 곳곳을 누비며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들을 점유했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은 파격과 실험이 많았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가장 많이 흘러넘치는 감정은 친절과 다정함이었다. 조르주 상드의 일기와 편지 곳곳에는 그녀를 살롱의 슈퍼스타로 만든 ‘인간관계의 비밀’이 넘쳐 난다. “그 보물, 친절을 내면에서 잘 지키십시오. 주저 없이 베푸는 법, 후회 없이 실패하는 법, 비열하지 않게 목표를 성취하는 법을 알아 두세요.” 그녀는 세상이 자신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까지 묶어 놓을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고 싱그러운 영혼을, 사랑할 줄 아는 영혼을, 언제든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영혼을 간직하고 싶어 했다. 가끔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벗어나 상상하고, 토론하고, 마음껏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남들의 비웃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제 갈 길만 바삐 걸어간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다다를 수 없는 별에 다다르고 싶은 끝없는 갈망. 낭만은 ‘도달할 수 없는 꿈’을 떠올리게 하지만, 또 그런 낭만을 품고 살아가는 삶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겠지’ 싶은 아스라한 희망을 암시한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잊어버린 모든 꿈들. 이성과 합리성의 이름으로 가로막았던 모든 것들.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며 미루고 또 미뤄 왔던 모든 꿈들. 막상 여유가 생길지라도 ‘더 중요한 일들’ 때문에 결국 미뤄지는 것들.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런 ‘낭만적인 꿈들’을 이뤄 낸 사람들이 여전히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그 정도 예산과 그 정도 재능으로는 아직 안 된다며 포기했던 그 모든 꿈들을 향한 도전을, 지금 여기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시작해 보자. 우리들의 힐링 스페이스는 그저 휴식을 취하는 아늑한 공간만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마음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선물하는 곳이 아닐까. 낭만주의 미술관은 다시금 우리의 ‘꿈을 잃은 심장’을 향해 외치는 것 같다. 다시 꿈을 꾸어 보라고. 지금 당장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결코 불가능한 꿈을 향한 도전의 설렘을 잃지 말아 달라고.
  • 따로 또 같이…콜로덴코가 꽉 채운 봄밤

    따로 또 같이…콜로덴코가 꽉 채운 봄밤

    혼자여도, 함께여도 진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명연주자라는 뜻일 터. 바딤 콜로덴코가 독주와 협연 모두 명품 연주를 선보이며 봄밤을 황홀하게 꽉 채웠다. 콜로덴코는 지난 14일과 15일 연달아 무대에 서며 한국관객들과 만났다. 14일에는 금호문화재단의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로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독주회, 15일에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마스터즈 시리즈’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을 가졌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인 그는 2013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로 광범위한 레퍼토리와 독보적인 시적 해석으로 전 세계의 초청을 끊임없이 받는 피아니스트다. 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시대와 양식을 관통하는 음반들을 발매하며 BBC 음악 매거진의 ‘에디터 초이스상’과 ‘올해의 디아파종상’, 그라모폰 매거진 ‘에디터스 초이스’ 등에 선정됐다. 콜로덴코는 첫 내한 독주회에서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과 제프스키의 세르히오 오르테가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에 의한 36개의 변주곡을 선보였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는 익히 많은 연주를 통해 잘 알려진 곡이지만 미묘한 변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를 선보였다. 마지막까지 어떻게 연주할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은 기존의 월광 소나타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며 그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에 의한 변주곡은 남미에서 시민 저항운동의 상징처럼 불리는 곡을 변주한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들도 잘 접하지 못한 낯선 곡이었지만 관객들을 사로잡는 데는 아무런 장애 요소가 되지 않았다. 휘파람을 곁들이며 온몸으로 연주한 그는 어려운 곡을 깊이 있으면서도 선명하게 풀어냈다. 강력하고 또렷한 타건으로 곡을 연주한 그는 마치 시대가 염원하는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 또는 필생의 걸작을 그려내는 화가 같았다. 대개는 난해한 현대음악의 실험적 요소가 그의 손끝에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해석되며 연주하는 내내 관객들의 숨을 멎게 했다. 쉬는 시간 없던 연주가 끝난 후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작은 공연장을 꽉 채운 그의 연주는 이튿날 큰 공연장으로 옮겨서도 여전했다. 그는 이날 경기필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2번 A장조, 작품125를 연주했다. 콜로덴코는 유연하고 다채로운 해석으로 전날과 마찬가지로 경이로운 솜씨를 뽐내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리스트가 곡에 숨겨둔 빛나는 구석들을 찾아 연주자가 이 곡을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끌어내고 연결하며 오케스트라와 환상의 호흡을 만들어냈다. 변화무쌍한 난곡이었기에 그가 지닌 진가가 더욱 도드라졌다. 관객들의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그는 베토벤 바가텔 3번, 리스트 연습곡 3번으로 화답했다. 다시 찾아온다면 수많은 예매 관객을 미리 확보할 만큼의 명품 연주 덕에 관객들은 황홀한 봄밤을 보낼 수 있었다.이날 공연은 김선욱의 지휘에도 관심이 쏠렸다. 음악적으로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인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을 비롯해 여러 음악 관계자가 공연장을 찾은 가운데 그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1막 전주곡과 콜로덴코와의 협연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이끌었다. 1988년생의 젊은 거장인 김선욱은 지난 1월 간담회에서 “언제쯤 신인 지휘자가 아닌 걸까” 질문하며 오해와 편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이날 연주는 악기들이 잘 어우러져 풍성한 음색을 들려주며 지휘자로서도 궤도에 오른 모습을 보여줬다.
  • 마약 남태현, 재활센터 퇴소 근황 전했다

    마약 남태현, 재활센터 퇴소 근황 전했다

    그룹 위너 출신 가수 남태현이 마약 파문 이후 근황을 전했다. 남태현은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남태현은 “재활센터에서 퇴소하고 같은 건물에 공간을 얻어 계속해서 단약 의지를 굳히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저의 정신과 영혼은 아직은 더디지만 많이 괜찮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저의 잘못된 생활태도와 사고방식을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 나가며 세상에 섞이려 더욱 노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태현은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제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은 결국 ‘음악’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물론 두렵고 막막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기다려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답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논란이 아닌 위로가 되는 그리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태현은 “저의 모든 이야기들을 담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기에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조금씩 제작비를 마련하고 있어서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이 음악들이 세상에 나올 때는 기다려주신 분들이 만족할 만한 좋은 결과물들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남태현은 지난 1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더 어눌하고 더 낮은 음으로 연민의 콰지모도 보여줄 것”

    “더 어눌하고 더 낮은 음으로 연민의 콰지모도 보여줄 것”

    더 낮은 음으로 더 어눌하게. 데뷔 20년을 맞은 뮤지컬 배우 정성화(49)가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종지기 콰지모도를 연기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무대 위에서 마냥 노래 실력을 뽐낸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끔찍하게 생긴 콰지모도를 관객이 연민할 수 있으려면 콰지모도 그 자체가 돼야 했다. 등이 불편한 콰지모도를 연기하기 위해 낮은 자세로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훈련을 상당히 오래 했다고 한다. 본래의 폭발적인 고음 대신 낮은 음역대로 넘버(노래)를 소화했다. 대사도 다소 어눌하게 발음했다. 첫 공연 리뷰에서 “너무 청아한 콰지모도”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란다. 정성화는 최근 간담회에서 “지금도 무대 위에서 발전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철칙처럼 지킨다”고 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무대에 섰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역할로도 큰 사랑을 받으며 업계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됐음에도 정성화는 이번 콰지모도를 “뮤지컬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뮤지컬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5세기 파리와 노트르담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보헤미안 여성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향한 세 남자의 욕망을 그린다. 그중에서 콰지모도는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가졌지만 추하고 끔찍한 외모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마저 거부당한 존재다. “콰지모도의 제스처나 연출적인 부분에서 이해되지 않는 게 많았다. ‘선배 콰지모도’인 윤형렬 배우가 많은 도움을 줬다. 무대에서 몇 걸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 줬다. 연습실 분위기가 태릉선수촌 같았다.” 1994년 SBS 공채 코미디언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성화는 2004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웅’ 안중근 외에도 ‘레미제라블’ 장발장, ‘맨 오브 라만차’ 돈키호테 등 굵직한 배역을 도맡으며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는 24일까지 공연된다.
  • 맨발의 집시, 파리를 홀리다

    맨발의 집시, 파리를 홀리다

    올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2024 파리올림픽은 파리에 있는 유구한 문화유산에서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베르사유궁전 정원에서 승마, 앵발리드에서 양궁,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식인데 그냥 찍어도 그림이 될 풍경에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꿈 같은 일은 많은 이를 설레게 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찬란한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파리올림픽에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2019년 화재가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4월까지 복원하고 싶어 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환경 문제 등으로 계획이 미뤄져 올림픽이 끝난 뒤인 올해 12월에나 본모습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를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올림픽 기간에 제대로 못 본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를 조금이나마 달랠 기회가 있다. 바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서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한국어 버전은 6년 만이다.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 때문에 꼽추인 콰지모도의 이야기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진짜 핵심 인물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다. ‘백년전쟁’, ‘페스트’ 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교회가 타락을 거듭해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로 꼽히는 15세기를 배경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 대주교인 프롤로,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의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을 그렸다. 이들은 사랑은 저마다의 이유로 금지돼있다. 콰지모도는 순수한 영혼이지만 외모가 추하고, 프롤로는 성직자, 페뷔스는 이미 약혼한 몸이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랑 때문에 이들이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중세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원작에서는 에스메랄다가 만 16세의 소녀지만 뮤지컬에서는 30대의 유리아, 정유지, 솔라가 맡았다. 세 배우 모두 농익은 관록으로 세 남자는 물론 파리 전체를 홀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뽐낸다. 각자 매력이 달라 빠져들게 되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회전문 관객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다. 특히 이들이 과감히 맨발로 무대 위에 등장해 춤을 추는 모습은 집시 여인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프랑스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 스루’(Sung through) 형식이다. 뛰어난 음악성과 운율을 살린 대사 및 가사, 노래와 연기를 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나뉜 점이 특징이다.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춤과 마치 서커스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 등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다뤄 대중성을 추구하는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매력이 있다. 남자들이 먼저 좋아해 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에스메랄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에스메랄다는 비극을 맞는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게 스러져가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희극적인 뮤지컬과는 다른 진한 여운을 남긴다.탄탄한 서사와 다양한 볼거리, 아름답고 절절한 넘버, 마음에 전해오는 감동이 어우러져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23개 나라에서 15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명작 뮤지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 ‘대성당의 시대’는 부르는 이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며 몇 번이고 듣고 싶게 한다. 3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 공연이 끝나면 부산(3월 29일~4월 7일), 대구(4월 12~21일), 경기 이천(4월 26~28일) 공연으로 이어진다.
  • 전시회야 뮤지컬이야? 그림 보는 재미 가득한 ‘화가시리즈’

    전시회야 뮤지컬이야? 그림 보는 재미 가득한 ‘화가시리즈’

    뮤지컬 공연인데 마치 미술관에 온 것처럼 색이 화려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완성작이 걸려있기도 하지만 화가가 실제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처럼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도 보여준다. 요즘 대학로 뮤지컬에 영상을 쓰는 건 기본이 됐지만 단연 그 활용도 면에서 압도적이다. 창작 뮤지컬 ‘화가시리즈’가 뮤지컬의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작가의 드라마틱한 삶을 마치 큐레이터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펼쳐 내면서 미술과 공연을 모두 잡았다. ‘화가시리즈’는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로 이뤄졌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의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삶을 다뤘다. 각각 1시간 정도 길이로 따로 볼 수도 있고 20분 정도의 인터미션을 두고 같이 볼 수도 있다.‘모딜리아니’는 인물의 내면을 그리고 싶은 모딜리아니의 고뇌를 압축해 담아냈다. “철저한 고뇌 없이 명작은 탄생할 수 없다”는 그는 “실제도 허구도 아닌 무의식을 찾으려 한다”며 정답을 요구하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눈동자를 본다는 건 영혼을 보는 것이라 믿는 그는 다수의 그림에서 눈동자를 생략했으며 영혼을 잘 알고 나서야 겨우 눈동자를 그려 넣은 괴짜 화가이기도 하다. 모딜리아니는 사후에야 그림의 가치가 폭등한 비운의 삶을 살았다. 사는 동안 초라하게 지낸 그의 삶을 빛내는 유일한 존재는 아내 잔이다. 그러나 축복받지 못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건강악화로 35세에 죽은 모딜리아니와 그의 죽음을 슬퍼해 21세의 나이에 자살한 잔의 비극으로 끝나버린다.두 번째 이야기인 ‘에곤 실레’는 그가 그린 자화상에 대한 비하인드를 풀어냈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독특한 묘사와 색감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어떻게 이런 그림이 탄생했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10대 때부터 이미 완성형 화가에 가까웠던 에곤 실레답게 주인공은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음악도 강렬한 록음악으로 채웠다. 학교에서는 르네상스 화풍을 따를 것을 강요하지만 에곤 실레는 오늘의 예술을 그리고 싶어 반항하는데 이후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를 만나 빈 분리파에 합류해 꽃을 피우게 된다. 에곤 실레는 연인인 발리 노이칠을 만나 그림 세계가 더 깊어진다.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는 같은 시대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았지만 인간의 내면, 진정한 자아, 영혼 등을 추구했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빼어난 화가였지만 에곤 실레 역시 시대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는 1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18년 10월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에 아내를 잃고 3일 뒤 자신도 사망했다. 그림으로 영훤한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결국 그림이다. 무대 삼면을 발광다이오드(LED)로 채우고 화가들의 명화를 미디어 아트로 볼 수 있게 하면서 몰입감이 엄청나다. 그림과 음악의 신선한 조합은 새로운 것을 찾는 관객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작품을 쓴 백혜빈 작가는 “두 예술가의 초상을 넘어 우리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숨어있는 자신만의 답을 꺼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록 세상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살아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세상에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진짜 자신의 초상을 그려가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삶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된다. 9~10일이 마지막 공연이다. 서울 종로구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 누아르 거장 vs 할리우드 젊은 피 ‘오스카 맞불’[OTT 언박싱]

    누아르 거장 vs 할리우드 젊은 피 ‘오스카 맞불’[OTT 언박싱]

    오는 10일(현지시간) 세계인의 영화축제 오스카 시상식이 96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최고의 영화 중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품이 후보에 오르고 수상한다는 점에서 매년 오스카 후보작을 올리기 위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흥행이 그해 성과를 나타내는 결산의 지표라면 오스카 후보 지명과 수상은 앞으로도 믿고 기대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신뢰의 증표와도 같다. 2022년 제94회 오스카 시상식 당시 넷플릭스는 ‘파워 오브 도그’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총 37개 후보에 오르며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줬지만 애플TV+의 ‘코다’가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에 오르며 자존심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치열한 OTT의 오스카 경쟁이 올해도 펼쳐질 예정이다. 먼저 애플TV+의 대표작은 ‘플라워 킬링 문’이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OTT 플랫폼의 장점은 기존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꺼렸던 작품들을 창작자가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상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넷플릭스를 만나 세상에 나온 게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범죄 누아르 장르의 살아 있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역시 넷플릭스와 ‘아이리시맨’을 선보이며 오스카 사냥에 나선 바 있다. 이번에는 애플TV+와 손잡고 다시 한번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완성했다. ‘플라워 킬링 문’은 1930년대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거주지로 정했던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었다. 석유를 시추하면서 다가온 검은 욕망은 이곳에 자리잡은 오세이지족의 영혼을 파괴한다. 어니스트와 같은 백인 하류 계층은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결혼 후 살인을 통해 땅을 갈취하고자 한다. 작품은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 있게 사랑과 배신의 교차점을 서부극의 거친 질감으로 담아낸다. 어니스트의 사랑을 진심이라 여기지만 그의 손에 죽어가는 몰리, 몰리를 사랑하지만 욕망으로 인해 그녀를 죽여야 하는 어니스트의 모습은 조그마한 보금자리와 믿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잔혹한 역사를 보여 준다. 폭력과 살육, 강탈로 얼룩진 미국의 이면을 담아내며 감정적인 씁쓸함을 통해 여운을 자아낸다.애플TV+가 범죄 장르의 거장을 데려와 오스카를 노린다면 넷플릭스는 오스카를 놀라게 했던 초신성을 택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배우이자 첫 연출작 ‘스타 이즈 본’으로 오스카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브래들리 쿠퍼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포함해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두 교황’, ‘틱, 틱... 붐!’ 등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근사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던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또 다른 쾌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알려진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생애를 다루었다. 유럽에 강하게 예속됐던 미국 클래식 음악계에 파란을 가져올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지만 단순히 그의 예술세계를 나열하는 수준이었다면 오스카의 주목을 받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삼아 아내였던 칠레 출신 배우 펠리시아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전개는 신선함을 자아낸다. 본인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아내와 끝없이 갈등하고 다투는 모습을 격조와 격렬함을 동시에 지닌 교향곡 ‘부부의 세계’로 완성한다. 평생의 뮤즈이자 동반자, 성취와 고뇌를 동시에 안기는 예술과도 같았던 펠리시아를 향한 번스타인의 사랑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감정을 자아내는 전기영화라 할 수 있다.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홋카이도에 어둠이 내려앉자, 영혼 달래는 맛천국이 열렸다

    홋카이도에 어둠이 내려앉자, 영혼 달래는 맛천국이 열렸다

    어느 지역이나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솔푸드가 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식량창고’라 불리는 홋카이도도 마찬가지다. 광활한 북쪽 대지가 선물한 채소와 해산물, 유제품 등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가 넘쳐 난다. 자연스레 이 재료를 활용한 토속 요리도 발달했다. 이번 여정에선 라멘, 징기스칸, 수프 카레, 부타동 등 홋카이도 토속 음식의 세계를 엿본다. 음식을 통해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역사를 톺아보자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음식 자체를 탐닉하는 ‘미식’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눈요기는 그 후의 일이다. ‘야행’ 맛·잘·알 고수 믿고 먹기 여기는 삿포로시의 한 구역인 스스키노. 호사가들이 ‘일본의 3대 유흥가’ 중 한 곳으로 꼽을 만큼 일본에서도 소문난 유흥가다. 라멘 등 서민 음식점부터 고급 게요릿집까지 몰려 있다. 이 일대에 먹고 마시는 업소만 3000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 많은 업소 중에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을 골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여정에선 ‘오모레인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오모레인저는 삿포로에 있는 OMO3호텔 소속의 여행 도우미다. 대부분 이 지역 출신으로, 지역전문가 집단이라 보면 된다. 도심의 맛집과 명소에 대해 강의하거나, 실제 참가자들을 인솔하고 나가는 밤나들이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이들이 ‘올빼미 야행’을 벌이는 것엔 사연이 있다. 삿포로 중심가의 맛집들은 대체로 저녁 때 문을 연다. 스스키노 유흥가의 영업시간과 맞추려는 거다. 저녁 6시께 문을 열어 새벽 서너 시까지 영업하는 라멘집이 허다하다. 심지어 요루노시게처럼 밤 10시에 문을 열고 새벽에 문을 닫는 빵집도 있다. 오모레인저가 소개하는 곳은 자체적으로 검증을 끝낸 곳이다. ‘미스터리 쇼퍼’처럼 입소문 난 맛집들을 일일이 찾아 직접 맛을 본 뒤 체험 코스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전부를 호텔 측에서 댄다고 한다. 투숙객을 모두 호텔 내 영업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우리 숙박업소들과 달리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가 독특하다. ‘라멘’ 미소라멘 성지, 절로 미소 먼저 라멘부터. 라멘의 종류는 크게 쇼유(간장)와 시오(소금) 그리고 미소(된장) 등으로 갈리는데, 삿포로는 이 중 미소라멘의 발상지로 꼽힌다. 돼지기름인 라드를 넣어 라멘의 온기가 오래 유지되고, 풍성한 식감을 안겨 주는 면발이 매력이다. 홋카이도 주민들의 라멘 사랑은 남달라서 2001년 ‘홋카이도의 유산 25’ 중 하나로 삿포로 라멘을 선정했다. 라멘 앞에 ‘삿포로’라는 지역명을 자랑스레 붙일 만큼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종류의 라멘 맛집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명한 집들은 대부분 미소라멘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소노카즈오, 멘야스즈란 등이 널리 알려졌다. 스스키노역 인근에 있는데 두 집 모두 밤 10시에 문을 연다. 이른바 ‘오픈런’을 벌여야 하는 데다, 늘 대기열이 늘어서 있어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들이 맛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후지야 누들은 다소 ‘이른’ 오후 6시에 문을 연다. 정통 미소라멘을 고집하는 집으로 된장 소믈리에가 조리한다. ‘포렴’ 이름값하네, 면발부심 오래된 라멘집들이 몰려 있는 곳도 있다. ‘라멘 요코초’다. 삿포로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저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에 실릴 만큼 해외에도 잘 알려진 라멘골목이다. 1950년대에 8개의 점포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7곳으로 늘었다. 오가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비좁은 골목 양옆에 라멘가게가 빽빽하게 마주 보고 있다. 여기선 OMO3호텔의 식사권이 통용된다. 호텔 측이 라멘 골목과 협업한 결과다.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식사권은 3장. 미소, 쇼유, 시오 라멘 등을 종류별로 하프 사이즈로 맛볼 수 있다. 라면 위에 홋카이도 특산물인 옥수수와 버터를 토핑으로 올려도 별미다. 라멘 요코초에선 가게마다 내건 포렴(일본어로 노렌)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포렴 왼쪽에 제면소 이름이 적힌 업소는 면을 전문 제작업체에서 사다가 쓰는 집이다. 홋카이도의 라멘 맛집들은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드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는 ‘니시야마’ 등 이름난 제면소의 면을 가져다 쓴다. ‘자가 수타’ 면을 고급으로 치는 우리와 다소 다르다. 이때 해당 제면소에서 자신들의 면을 쓰는 라멘집에 포렴을 선물하는데, 각 라멘집 앞에 걸린 포렴은 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징기스칸’ 불판 양고기 끝판왕 홋카이도 음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징기스칸이다. 불판에 양고기를 얹고 양파와 숙주, 양배추, 단호박 등을 함께 구워 먹는 음식이다. 일본 전국적으로는 이른바 ‘부먹’, 그러니까 양념에 재운 양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홋카이도는 다르다. ‘찍먹’처럼 구운 양고기를 양념에 찍어 먹는 걸 선호한다. 징기스칸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양고기와 불판이다. 일본 내 양고기 자급률은 0.7%에 불과하다. 그마저 대부분 홋카이도에서 생산된다. 그러니 홋카이도산 양고기가 비쌀 수밖에 없다. 생산지마다 고유 브랜드가 있는 와규(일본 소고기)처럼 홋카이도산 양도 고유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아스파라거스양이다. 아스파라거스는 값이 결코 싸지 않은 채소다. 홋카이도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일반 포장 판매에 쓰고 남은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먹여 키운다고 한다. 불판도 중요하다. 마루타케라는 곳처럼 불판을 자체 제작하는 업소도 있는데, 보통은 볼록렌즈처럼 생긴 불판을 쓴다. 냄비가 두꺼운 데다 불판의 높이도 높아 고기가 전체적으로 천천히 익는다. 잔열을 이용해 고기를 고르게 굽기 위해 냄비 둘레를 일부러 높이기도 한다니, 치밀한 일본 사람들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다루마 5.5, 후쿠스케, 유우히, 히쓰지 등이 맛집으로 소문났다. 대체로 오후 5시께 문을 열고 밤 10~12시까지 영업한다. ‘수프카레’ 감칠맛에 녹아드네 수프 카레도 삿포로 사람들의 각별한 자부심이 담긴 음식이다. 찌개 국물처럼 묽은 카레에 감자, 피망, 당근 등의 채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끓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메인 재료로 닭고기나 소고기, 해산물 등을 푸짐하게 넣어 즐긴다. 카레를 묽게 만들면 무슨 맛일까 싶은데, 뜻밖에 입에 착 감길 정도로 맛있다. 주문할 때 카레 베이스와 맵기 정도, 토핑 등을 취향껏 고를 수 있다. 음식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1975년 삿포로의 아잔타라는 다방이 중국의 약선 수프를 변형해 처음 내놓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1993년 매직 스타이스라는 식당에서 ‘수프 카레’라는 이름으로 내기 시작하면서 일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삿포로에만 200개가 넘는 수프 카레 가게가 영업 중이라고 한다. 스스키노의 스아게, 가라쿠 등에 사람이 몰리는 편. 긴 대기는 각오해야 한다. 이번 여정에선 치열한 ‘구글링’을 통해 덜 밀리는 집을 찾아갔다. 소문난 맛집과는 거리가 있는 업소인 듯한데도 맛은 훌륭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 수프 카레 맛집을 찾는 수고를 덜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이센동’ 노포서 한끼의 호사 가이센동은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 일본식 덮밥을 말한다. 한두 가지 재료만 들어가면 마구로동(참치), 사케동(연어)처럼 주재료 이름을 붙이고, 3~4가지 이상의 해산물이 들어가야 비로소 가이센동이라 부를 수 있단다. 가이센동은 니조 시장에서 먹는 게 제격이다. 이른 새벽부터 관광객들이 몰리는 전통시장이다. 스스키노 중심부에서 10분 정도 거리다. 해산물이 싱싱하긴 한데, 음식값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어지간한 가이센동은 한 그릇에 2000~3000엔(약 1만 8000~2만 7000원)을 훌쩍 넘긴다. 대기열이 늘어선 바깥쪽 식당보다는 시장 내부의 허름한 집을 찾길 권한다. ‘스낵바’ 퇴근길 한잔 소확행 오모레인저와 함께하는 나이트 투어 프로그램도 재밌다. 스스키노의 음식점을 ‘개척’하고 거리를 ‘탐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삿포로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주점 거리 ‘제로 번지’, 술자리의 마지막에 ‘해장용’으로 찾는다는 파르페 카페 등을 돌아본다. ‘해장 파르페’도 특이했지만 무엇보다 독특한 건 스낵바였다. 일본의 월급쟁이들이 1차를 마치고 종종 들른다는 일종의 간이주점이다. 이름 그대로 스낵(과자)을 안주로 내고, 원하는 주류를 정해진 시간 내에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주로 ‘마마’라 불리는 여주인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삿포로에서 편의점보다 많은 게 스낵바”라는 이야기가 회자할 정도라니, 스낵바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돼 체험하기 어려운데, 오모레인저가 추천하는 집은 관광객도 방문할 수 있다. ‘부타동’ 화끈한 불맛, 힘 불끈 이제 이웃 소도시 오비히로로 간다. 부타동을 먹기 위해서다. 삿포로에서 승용차로 두어 시간 거리다. 부타동은 쉽게 말해 돼지고기 덮밥이다. 오비히로가 중심인 도카치 지방에서는 메이지 시대 말부터 양돈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오비히로의 명물인 부타동은 이런 토대 위에서 생겨났다. 이른바 ‘원조’는 오비히로역 앞의 부타동 판초다. 1933년 이 가게 점주가 오비히로의 들녘을 거닐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과 개척자들의 보양식으로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위에 보양식으로 유명한 장어구이풍의 소스를 얹은 게 원형이다. 오비히로역 주변에 부타동 맛집들이 몰려 있다. 하게텐은 부타동 판초와 쌍벽을 이루는 집이다. 판초가 문을 연 이듬해에 개점했다고 한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부타동 노 돈다도 지역 주민들이 줄 서는 가게로 알려져 있다.‘스위츠’ 달달함에 무장 해제 오비히로는 달달한 먹거리, 스위츠(달콤한 과자를 뜻하는 일본식 영어)의 왕국과도 같은 곳이다. 홋카이도의 ‘원픽’ 과자 중 하나인 ‘마루세이 버터샌드’를 생산하는 롯카테이를 비롯해 류게쓰, 그랑베리 등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스위츠 업체 본점이 오비히로에 있다. 작은 도시 규모에 비춰 보면 퍽 의외다. 너른 도카치 평야를 중심으로 유제품과 밀가루, 팥 등 양질의 농축산물이 생산되기에 가능한 결과로 여겨진다. 본점 매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맛볼 수 있다. 다카하시 만주야도 찾을 만하다. 70년 넘도록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지역 과자점이다. 명물은 오반야키(일본식 풀빵)다. 팥 맛과 치즈 맛, 두 가지다.
  • 심야 도시, 깜박이는 상념… 점·선만으로 영혼의 야상곡

    심야 도시, 깜박이는 상념… 점·선만으로 영혼의 야상곡

    분명 점과 선만으로 직조된 도시의 밤 풍경인데 어디선가 리드미컬한 선율, 적막 속에서만 털어놓을 수 있는 내면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뉴욕, 파리,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야경을 통해 어둠이 도시에 내려앉았을 때야 떠오르는 감각과 개성, 에너지를 전해 온 작가 윤협(42)의 회화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과의 교감을 시각에 더해 청각적인 경험으로도 확장한다.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이 올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한 그의 개인전 ‘녹턴시티’는 이렇게 회화 그 너머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그의 20년 작업을 아울렀다. 윤협은 구상한 이미지를 밑그림 없이 점과 선으로 채워 나가는 독창적인 방식을 일찌감치 구축하며 해외 유명 글로벌 브랜드에서 ‘러브콜’을 받아 왔다. 2014년 미국 패션 브랜드 랙앤드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맨해튼 소호에 벽화를 선보이며 현지 예술계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의 작품은 나이키 오리건 본사, 크리스찬 디올 뉴욕 지점, 페이스북 뉴욕 본사 등에 설치된 것으로 유명하다.모든 그림이 점과 선으로 이뤄졌지만 미세하게 색감을 조율해나가는 색 조합 작업이 화면에 다채로운 변화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힙합, 펑크 등 인디 음악을 사랑하고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그는 여기서 느끼는 감각을 작업에도 깊이 연결시킨다. 작품에 대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조합해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지듯 점과 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현상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0년 브루클린으로 이주하며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된 뉴욕 야경을 조망한 16m 길이의 대형 파노라마 회화 ‘뉴욕의 밤’이 처음 공개됐다.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바라본 월스트리트부터 뉴저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현대의 풍경화는 작가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에서 받은 ‘명상의 느낌’을 불빛으로 흥성거리는 메가시티의 야경에서도 느끼게 한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을 그린 ‘JFK공항에 착륙’은 도시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 결핍, 희망 등의 다양한 감정과 상념을 빨강, 주황, 노랑, 파랑의 불빛을 묘사한 점과 선으로 수놓았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는 영상으로 만든 그의 서울, 파리 등의 야경 그림이 세 개의 벽면을 가득 채워 도시의 고요 속에 오롯이 몰입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5월 26일까지.
  • 추상회화 개척자 신기옥 작가 ‘영혼의 선율’ 전시회…11일 갤러리 비선재 개막

    추상회화 개척자 신기옥 작가 ‘영혼의 선율’ 전시회…11일 갤러리 비선재 개막

    우리나라 1세대 추상 회화의 개척자인 신기옥(1940~) 작가의 개인전 ‘영혼의 선율’(On Spiritual Resonance)이 오는 11일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3길 갤러리 비선재에서 개막해 오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신 작가가 선보이는 ‘선율’ 연작은 1960년대 서구 미술양식이었던 ‘후기 추상회화’(Post-painterly Abstraction)의 동시대적 재구축이다. 양식의 표면을 넘어 그 이면에 철학적 사유와 의미를 ‘기입’(embody)했다. ‘선율’ 연작은 지난해 시작해 현재에 이르며, 수직과 수평이 교차해 진중하고 순수한 추상적 구성을 완성한다.3월11~4월30일 비선재 갤러리 전시 ‘선율’ 연작은 수직과 수평의 필선이 반복적으로 중첩된 격자 구조로 구성된다. 그의 필선은 생동하며 유려하다. 그것의 구성은 세계의 구조를 상징한다. 그는 ‘천맥’(阡陌)이라는 한자어의 뜻을 변형해 캔버스에 담았다. 천맥은 경작지인 밭 사이로 난 길을 뜻한다. 남북으로 난 것을 ‘천’(阡)이라 하며, 동서로 난 것을 ‘맥’(陌)이라 부른다. 그는 천(阡)을 ‘수직의 시간’, 맥(陌)을 ‘수평으로 일상’으로 변용했다. 예술적 시간(시적 시간, 수직)과 범용(凡庸)한 시간(수평)이 함께 연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 화면에 천맥의 길을 인도하여 그 안쪽으로 영혼의 선율을 파종한다.내면과 세계의 만남을 상징 이번 전시의 주제인 ‘영혼의 선율’은 우리 내면과 세계의 만남을 상징한다. 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C. Danto·1924~2013) 또한 예술은 ‘만남과 성찰‘(Encounter & Reflection)의 끝없는 반복에서 생성된 결과라고 말했다. ’영혼의 선율‘은 작가의 삶과 경험이 세계와 함께 찾은 최적의 심적 거리를 상징한다. 세계의 천맥(阡陌)을 상징하는 가로선과 세로선이 중첩되어 역사를 직조하며, 그 가로선과 세로선 사이로 작가의 떨리는 내면의 선율이 메아리친다. ‘영혼의 선율’은 5세기 때 남제(南齊)에 살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畫品錄)에서 논증했던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현대적 번역어이기도 하다. 기운생동은 작가의 필력과 기세이기도 하거니와 보는 사람과 감응하는 영혼의 울림을 뜻하기도 한다.1세대 추상회화 그룹 ‘오리진’ 창립 멤버 신 작가는 제1세대 추상회화의 개척자로 오리진 그룹의 창립 회원이다. 그는 오리진 그룹 활동을 통해 추상회화가 지니는 본질적 의미를 철학적으로 추구하거나 현대성(modernity)의 정의를 엄밀한 시각 논리로 규명하고자 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실험성과 현대성의 의미를 언어로 재구성했으며, 다시 시각 언어가 펼치는 모험의 세계로 종횡했다. 따라서 오리진 그룹의 활동이 우리나라 현대 추상회화에 미친 영향력은 압도적으로 크다. 그는 김택화(金澤和·1940~2006), 최명영(崔明永·1941~), 김수익(金守益·1941~), 이승조(李承祚·1941~1990), 서승원(徐承元·1941~) 등 쟁쟁한 추상회화가들과 함께 했다.오랜 ‘묵계’ 끝에 67세 나이로 30년 만에 재데뷔 신 작가는 ‘오리진’의 창립 회원으로서 1960년대 우리나라 현대미술 운동에서 상당한 아이디어와 실천 강령을 제시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무대 디자이너, 화실 교육(입시 교육), 마포중 교사, 건축가 등으로 1970~1990년대라는 무려 서른 개의 성상(星霜)을 보냈다. 그가 미술계로 돌아온 것은 2007년으로 67세가 되던 해였다. 그 당시 예맥화랑을 통해 재데뷔를 했으며, 2006년 당시 언론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당시 작성된 여러 기사는 작가의 예술혼에 담긴 용기와 삶의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밝히듯 스스로 묵계(默契)를 맺었다. 그는 “나의 모든 일과 노동은 그림을 위한 과정이지 결코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묵계, 즉 묵약(默約)에서 마음이 단 한 차례도 벗어난 적 없다. 67세가 되던 어느 날 캔버스가 놓인 이젤 앞에 섰고, 설레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고, 놀랍게도 30년 만에 재개하는 그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선율이 이어졌고, 획선에 기운이 실렸다. 구도 또한 볼 수 없었던 신안(新案)이었다.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았고, 현재 갤러리 비선재와 함께 글로벌 프로모션을 모색하며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예술로 승화된 뭉크 가족의 비극 [으른들의 미술사]

    예술로 승화된 뭉크 가족의 비극 [으른들의 미술사]

    <편집자주>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이해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 전시를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올해는 또한 뭉크가 사망한 지 80주기를 맞이하는 해다. ‘으른들의 미술사’는 뭉크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며 뭉크의 삶, 사랑, 예술, 죽음의 의미를 돌아본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에는 뭉크 빵집, 뭉크 호텔, 뭉크 커피숍 등 온통 뭉크로 도배되어 있다. 뭉크는 오슬로, 더 나아가 노르웨이 국민 화가다. 물론 현재 뭉크에 대한 평가는 노르웨이를 넘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잇따른 가족의 죽음뭉크 예술에서 어떤 점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을까. 뭉크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늘 시달려 왔다. 특히 그의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은 끊임없이 뭉크의 영혼을 지배했다. 2남 3녀 중 둘째였던 뭉크는 5살에 결핵에 걸린 엄마와 영영 이별했다. 엄마를 잃은 후 뭉크 가족은 웃음이 사라지고 황량해졌다. 특히 아내를 잃은 아버지의 외로움은 슬픔을 넘어 광기로 변했다. 집안은 적막했고 내내 고독과 우울감이 떠돌았다. 9년 후 뭉크가 14살 되던 해 연년생 누나 소피에가 엄마와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뭉크 가족은 그나마 남아 있던 미소마저 잃고 뭉크는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끝나지 않은 비극통상 자매들은 자라면서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철이 들면 친구보다 더 가까이 지낸다. 그러나 로이라와 잉게르 자매는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따로 서 있다. 차가운 푸른색 옷을 입은 자매들을 통해 냉랭하고 차가운 뭉크 가족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자를 눌러쓴 로이라의 불안한 상태는 이후 정신질환으로 발전했다. 뭉크 가족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자매를 그린 1년 후 뭉크 아버지가 사망하고 6년 후에는 뭉크의 바로 아래 동생 안드레아스가 서른 살 젊은 나이에 페렴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안드레아스는 신혼생활 중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다. 로이라 마저 30여 년 뒤 앓고 있던 정신질환으로 사망했다. 죽음은 너무도 가까이 뭉크 곁에 있었다. 뭉크 가족의 비극은 아직 진행중이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 속 자매를 그린 작품이 유독 쓸쓸한 이유다.
  • [황수정 칼럼] 청년 의사들의 사다리 독점 분투기

    [황수정 칼럼] 청년 의사들의 사다리 독점 분투기

    소아과 의사 800여명이 지난해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를 열어 보톡스 시술을 공개적으로 배웠다. 그래도 사람들은 따지지 않았다. 의사들이 업계 최하위 소득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1억원 넘는 연봉이 울 일인가”라거나 “자유시장 경제에서 수요 예측을 못 한 탓”이란 타박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업무복귀 명령서를 전달하려고 공무원들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갔다. 엄정 대응하는 척했지만 진짜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제발 병원으로 복귀해 달라는 호소였다. 대한민국 어떤 직역의 집단행동에 공권력이 이런 배려와 공력을 들인 적 있나. 이 낯선 상황들의 근거는 하나. 의료를 공공재로 특별 대접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총궐기대회에서 ‘나는 공공재가 아니다’란 시위 팻말을 들었다. “노예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주 80시간의 노예 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려고 의사수를 늘리자는데 극렬 반대한다. 2000명 증원에 의대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는다는 게 전공의들의 불만이었다. 정부가 의대 교수진을 두 배 늘리겠다고 했다. 그래도 의대 증원만은 반대다. 의사수를 건드리지 말고 필수의료 수가를 5배쯤 올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쉽게 말하자면 의료 수입을 하향 평준화 아닌 상향 평준화해 달라는 얘기다. 한국의 개업 전문의 연봉은 노동자 평균 임금의 6.8배, 2억 6200만원(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의료대란을 주도하는 전공의들은 20~30대 청년들이다. 청년 의사들이 의사 윤리를 저버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이런 말은 속으로 백번 외쳐도 발화할 수는 없어야 한다.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 내 주변에도 공부 잘하는 고3들은 하나같이 의대가 목표다. 정부는 지방 의대의 지역 인재 선발 비중을 두 배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니 N수생들만 들썩이는 게 아니다. 공부 좀 하는 지방의 수험생들도 역대급으로 술렁거리고 있다. 어느 전공의가 기자회견에서 “말단 5급 사무관” 운운해 논란이다. 젊은 의사들이 증원 반대에 왜 사생결단하듯 매달리는지 해답이 그 말에 들어 있다. 극단적 능력주의 시대의 총아가 의사다.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을 걸어 평생 특권을 보장받는다. 그런 직업은 지금 대한민국에 의사 말고는 없다. 사법시험 폐지 10년에 영혼을 갈아 로스쿨을 나온들 예전의 법률시장이 아니다. 행정고시에 붙어 봤자 청년 의사의 눈에도 겨우 “말단 5급”이다. 최고 두뇌들의 출구이자 시험 한 번에 신분 이동이 보장된 계층 사다리는 의대뿐이다. 집단 휴학에 들어간 의대생들도 “증원 수를 왜 우리와 논의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학생들마저 집단 엘리트주의 선민의식에 젖어 있다. 2000명을 더 뽑고 말고의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니다. 2000등까지 수능 성적대로 기회를 줄 일이 아니다. 진짜 의사가 되고 싶은 소명의식의 무게를 다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의대 입시에서 성적만으로 줄세워 뽑는 정시 비중은 전체 수능의 정시 비중보다 20% 포인트 가까이 더 높다. 당장 내년 입시에서 이걸 바꿀 필요가 있다. 의대의 수시전형만큼은 하다못해 독서 100권쯤 학생기록부에 의무적으로 담게 하면 어떤가. 새로 출범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이런 문제도 논의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근 20일 가까이 전공의들이 병원 밖에 나와 있다. 나는 왜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말이 생각날까. 집단운동을 연구한 호퍼는 “불만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조금이라도 원할 때보다 많은 것을 가졌고 더 많은 것을 원할 때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직업 윤리를 말하는 것도 이 시점에는 사치가 됐다. 이렇게 오래 생업 현장을 포기할 수 있는 힘센 청년 집단은 전공의들 말고는 없다.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귀신 영화

    [길섶에서] 귀신 영화

    주말에 악귀가 등장하는 영화 ‘파묘’를 관람했다. 무신론자인 데다가 영혼이나 귀신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이라 여겨 온 나로선 거부감이 들 만한 영화다. 그래도 며칠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무료함이라도 달래 보자며 영화관을 향했던 것. ‘귀신 영화’가 이처럼 관객 몰이를 하는 게 드문 터라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귀신 영화는 토속적 무속신앙을 토대로 한 게 많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의 한풀이가 주요 소재다. 그와 달리 파묘는 악귀를 무찌르는 서구적 프레임에 풍수사상을 토대로 ‘친일파 척결’이란 역사성을 심은 게 관객의 흥미를 한껏 끌어올린 듯했다. 영화 속 무당 김고은의 굿 장면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했다. 칼을 들고 춤을 추고 동물 피를 뿌리고 하는 풍경. 무서웠지만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귀신이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객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 듯싶고.
  • [열린세상] 의료 대란과 승자의 저주

    [열린세상] 의료 대란과 승자의 저주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 집단이 강대강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공권력을 앞세워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고, 의사 집단은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 동맹 휴학으로 맞서고 있다. 이는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에 비유된다. 둘 다 피하지 않으면 공멸하지만 먼저 피하는 쪽은 겁쟁이가 된다. 의사 집단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최대 무기는 환자이다. 전공의가 한 달만 파업해도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마비되고 환자의 생명은 위험에 빠진다. 이전 정부들도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은 의사들의 반대에 밀려 의대 증원에 실패했다. 그에 맞서 정부는 ‘의사들은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강변한다. 정부는 높은 국민의 지지와 공권력(업무개시명령)을 장전하고 있다. 극한 대치가 길어지면 누가 이기든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 이런 현상을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했다. 정부와 의사 집단이 ‘벼랑 끝 전술’로 버틴다면 환자의 생명을 내팽개쳤다는 저주를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패배한 쪽은 더 심한 내상을 입는다. 승자는 저주를 받고, 패자는 좌절에 빠진다. 이래저래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최대 걸림돌은 숫자 집착이다. 정부는 2000명의 증원을 내세우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350명을 고수한다. 이러한 숫자가 나온 근거는 분명치 않다. 정부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와 전국 의과대 수요 조사를 근거로 제시한다. 의협은 한국의대·의전원협회(KAMC)의 연구 결과를 내민다. 숫자의 근거와 의미를 모르면 어떤 대화도 의미가 없다. 양측은 ‘의료현안협의체’를 만들어 28차례 회의를 거듭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영혼 없는 숫자 논쟁은 일방 승리와 일방 패배를 부채질할 뿐이다. 숫자 대결에서 가장 빠른 해법은 절충안이다. 정부와 의협이 조금씩 양보해 중간 수준(1000명 내외)의 증원에 합의하는 것이다. 의료 공백에 따른 환자의 생명 위험을 생각하면 절충안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숫자 조정은 근원적 치유책이 아니다. 절충안은 의사들의 관심사(의료 소득)와 정부의 관심사(필수 의료)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타협하더라도 근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이대로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유력한 근본 해법은 공동연구이다. 정부와 의협이 증원 규모를 산출할 연구기관을 선정하는 것이다. 양측이 연구기관에서 제시한 증원 규모를 받아들이면 서로 만족하는 상생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1개의 연구기관이 불안하면 2~3개 연구기관의 평균치를 채택할 수도 있다. 그마저도 미덥지 못하면 정부와 의협이 공동연구단을 꾸리면 된다. 공동연구단 구성은 의료 갈등의 해소뿐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와 의협이 스스로 풀지 못하면 국민의 집단지성에 기대야 한다. 요즘 숙의공론화는 첨예한 갈등 현장에서 관심을 끄는 인기 상품이다. 이는 무작위로 선발된 국민대표단이 정보 숙지, 전문가의 질의응답, 소규모 분임 토의를 거쳐 표결하는 방식이다. 집단은 언제나 개인을 이긴다. 주식 투자에 관한 실험에서 대학생 집단은 최고 주식 전문가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의대 증원에 대해서도 숙의공론화를 활용하면 전혀 새로운 집단지성을 만들 수 있다. 국민대표단은 숙의 과정을 통해 적정 증원 규모를 찾아낼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문제 해결 방식도 달라야 한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어렵사리 전투에서 이겨도 ‘승자의 저주’에 빠진다. 의사는 힘을 빼고 정부도 칼을 거둬야 한다. 서로 승리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 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정부든 의사든 국민과 환자가 없으면 설 자리가 없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 [이붕우의 뒷모습 세상] 뒷모습은 상상의 창

    [이붕우의 뒷모습 세상] 뒷모습은 상상의 창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래서 그는 뒤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그가 본 뒷모습에는 실망과 배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시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풀꽃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의 상상력이 탁월하다.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시대를 읽어 내는 노동시인 박노해는 뒷모습에 사회적 상상력을 더한다. “그가 돈으로 꾸밀 수 없는 내면. 그가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영혼. 명예로도 미모로도 가릴 수 없는 사람의 실상. 오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하나 그 내면의 빛과 향기에 나는 감전되었다.” 두 시인의 뒷모습에는 공통적으로 아름다움의 시선이 있다. 뒷모습은 때때로 숨겨지고 통제되기도 한다. 김일성 3대 세습체제가 작동하는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북한 전역 곳곳에 서 있다. 동상의 형상이니 뒷모습이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뒷모습은 보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 촬영이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동상 앞에 서서 앞모습을 우러러보고 머리를 조아리고 그 앞에 엎드려야 한다. 이 지점에서 누구든 상상하게 된다. “뒷모습에 혹이라도 달렸나, 독재의 비밀이 숨겨져 있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벗겨질까 두려운 걸까?” 앞모습은 얼굴 표정과 행동이 주장을 하고 뒷모습은 오로지 뒤에서 보는 자가 말을 한다. 뒷모습의 내러티브(Narrative)는 뒷모습의 주인이 아니라 그걸 보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뒷모습은 보는 자의 시선이 지배하고 그 권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러니 독재자가 뒷모습을 감출 만하다. 인생길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 누구는 스치듯 지나가고 누구는 한참 머물다 간다. 시시각각 앞모습이 되고 뒷모습이 된다. 그러다 궁극에는 모두 다 뒷모습이 된다. 그런 뒷모습에서 배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마음 아파할 일도 아니요, 돌아선 뒷모습을 잡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앞모습이다가 결국 뒷모습이 아니던가. 뒷모습은 우리의 운명이다. 누구나 세월 따라 시절인연(時節因緣)으로 흐르다 뒷모습으로 마감한다. 유장한 저 강물처럼 흐르면 돌아올 수 없는 뒷모습이 된다. 그걸 아쉬워한들, 서러워한들 뭣 하겠는가. 다만 나의 뒷모습, 서로의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면 된다. 이처럼 뒷모습은 상상의 창이다. 사실을 넘은 상상의 세상이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상상하고 상상을 통해 미래로 달려간다. 뒷모습 세상도 마찬가지다. 앞모습에 몰두한 나머지 잊고 사는 지금의 뒷모습. 이런 나의 뒷모습과 앞선 제3자의 뒷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래 나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지금 걷는 내 발을 헛디디지 않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붕우 작가·전 국방홍보원장
  • “죽은 내 딸 부활할 것” 무덤에서 꺼내 5일간 기도, 결말은? [여기는 남미]

    “죽은 내 딸 부활할 것” 무덤에서 꺼내 5일간 기도, 결말은? [여기는 남미]

    무덤에서 사망한 20대 여성의 시신을 꺼내 부활을 놓고 기도하던 가족이 5일 만에 기도를 접었다. 이단 종교에 심취한 가족이 벌인 해프닝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중미 카리브국가 니카라과의 북부 빌위 지역에서 최근 벌어진 사건이다 공시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인으로 마리아 이사벨 로페스(여, 24)가 사망한 건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1일장으로 장례를 치른 가족은 이튿날 시신을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여기까진 그저 평범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3일 후인 15일 가족이 공동묘지로 달려가면서 로페스의 죽음은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가족은 로페스가 부활할 것이라면서 관을 열고 시신을 꺼냈다. 이웃들은 “누군가 로페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말이 돌았다”면서 “로페스가 영원히 죽은 게 아니라며 가족들이 무덤을 파헤쳤다”고 말했다. 가족은 생전에 로페스가 생활하던 방으로 시신을 옮겨놓고 그의 부활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일부 이웃들이 소용없는 일이라고 만류했지만 가족은 “믿음이 있으면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건 다 포기해도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하는 건 믿음”이라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안장한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꺼냈지만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고 가족은 이를 부활을 예고하는 신호로 여겼다고 한다. 가족은 시신을 모신 방에서 밤낮 부르짖으면서 기도를 올렸다. 만사를 제쳐두고 기도에 몰두하는 가족을 위해 일부 이웃은 음식을 만들어 갖다 주기도 했다. 한 이웃은 “신이 영혼을 되돌려 보내기 위해 육신을 상하지 않게 한 것이라고 가족은 굳게 믿었다”면서 “그런 가족의 건강이 걱정돼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이웃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도에 집중하던 가족이 로페스를 다시 무덤에 묻기로 한 건 20일이었다. 믿음을 붙잡겠다고 고집을 피던 가족은 기도를 시작한 지 닷새가 되면서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고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자 기도를 접고 시신을 다시 안장했다. 한편 사건이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종교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이 정도면 민폐”라고 지적하는 네티즌도 많았다. 한 네티즌은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부패할 때까지 집에 모셔놓고 기도를 드린 건 이웃들에게도 폐를 끼친 것으로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사진=가족들이 무덤에서 관을 꺼내 집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영상 캡처)
  • 김혜은 “출산 후 배우 데뷔, 치과의사 남편 반대”

    김혜은 “출산 후 배우 데뷔, 치과의사 남편 반대”

    배우 김혜은이 출산 후 배우 데뷔를 남편이 극구 반대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채널A ‘4인용식탁’에서는 김영옥과 김혜은, 우현, 박하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됐다. 김혜은은 고 김웅길 아세아텍 회장의 아들이자 치과의사 김인수 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남편과 첫 만남에 대해 “같은 미용실을 다녔는데 헤어 디자이너가 소개해줬다. 약속을 잊어버렸는데 피부 관리실 누워 있다가 전화 받고 놀라서 갔다. 얼굴이 번질거리고 머리에 기름이 졌는데, 남편은 그게 자신감 있어 보여서 좋았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그는 “남편이 제 스타일이 아니었다. 데이트하자고 해서 교회에 있다고 하니 오겠다더라. 펑펑 우는 거다. 옆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순수한 영혼이니까 눈물이 나오겠지 싶고, 한 달 지나니 ‘내가 왜 계속 만나고 있지?’ 싶었다.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 신이 계신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애를 낳고 연기를 시작하니 정신 나갔냐고 하더라. 방송국 직원(기상캐스터)이라고 해서 결혼했는데, 배신감이 엄청나게 들었다고 했다. 가정이 있는데 자기 살길만 살려고 한다고 엄청나게 싸웠다”며 “기상캐스터 할 때 카메오 제안을 받고 속성 연기학원에서 배웠다. 재밌어서 아무도 모르게 다녔다. 시작하고 6~7년은 눈치 보면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 직원들도 남편이 반대하는 걸 다 알고 있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찍고 나니까 직원들도 ‘게임 끝났다. 이제 사모님 못 말린다’고 했다더라. 지금은 남편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 가장 고귀한 시인 단테여, 모자이크 도시에서 영원한 안식을…[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가장 고귀한 시인 단테여, 모자이크 도시에서 영원한 안식을…[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꼭 가져가던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호위무사가 나를 지켜 주는 듯한 든든함이 느껴진다. 아주 멀리 떠날수록 나의 둔감한 영혼을 죽비처럼 후려치는 시원한 문장을 읽고 싶어진다. 위대한 작가 단테에게 혼쭐이 나는 듯한 순간이 많은데, 그마저도 이상하게 상쾌하다. 나를 혼낼 자격이 있는 훌륭한 어른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날기 위해 태어난 인간아, 어찌하여 작은 바람에도 그렇게 추락하는가?” 단테의 ‘신곡’ 중 한 대목이다.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창공을 가로질러 힘차게 날아오르는 삶을 꿈꾸지만, 아주 작은 역경에도 흔들리고, 곁눈질하고, 절망한다. 이런 단테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인간의 나약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작가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가 닥쳤을 때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그야말로 ‘앗, 뜨거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내가 바로 그런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필이면 위기가 닥쳤을 때 더더욱 두려움에 빠져 용감하게 약자의 편을 들지 못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분노를 참고 침묵하면서 상황을 바꾸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단테의 문장 하나하나가 심장을 꿰뚫는 화살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판다. 1318년 피렌체서 추방당한 단테라벤나 왕자의 초대로 잠시 망명여러 차례 유해 강탈 막아 내기도실제 시신 묻힌 무덤 방문객 많아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 한 사람인 단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단연 피렌체였는데, 알고 보니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 말고도 단테 마니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모자이크의 도시로 더 많이 알려진 라벤나다.라벤나에는 단테의 무덤이 있고, 피렌체와 다른 또 하나의 단테 박물관이 있으며, 단테의 시신을 두고 서로 권력 다툼을 벌였던 이들의 수많은 후일담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는 단테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으나 단테의 무덤과 박물관이 라벤나에 생기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318년 라벤나의 왕자 귀도 2세의 공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온갖 고초를 겪고 있던 단테를 라벤나에 초대했던 것이다. 고향 피렌체에서 정치적인 권력 다툼에 밀려 추방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단테가 실제로 라벤나에서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다. 단테는 안타깝게도 1321년 베네치아공화국의 외교사절단에서 라벤나로 돌아오는 길에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그는 라베나의 산 피에르 마조레 교회(지금은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묻혔고, 나중에 그의 시신을 향한 피비린 암투가 벌어진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는 단테의 문장처럼 그는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온갖 지옥을 겪어 냈고, 이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의 위대한 수문장이 돼 라벤나를 지켜 주고 있는 것 같다. 오랜 망명 생활과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고결한 성품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무덤이 어디 있든, 동상이 어디 있든 상관없이 우리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빛난다.1329년 교황 요한 22세의 추기경이자 조카인 베르트랑 뒤 푸제는 단테의 ‘군주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의 뼈를 화형에 처하려 했다. 하지만 라벤나 사람들은 단테의 유골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 냈다. 피렌체의 권력자들은 결국 단테를 추방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피렌체시는 그의 유해를 돌려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피렌체는 1829년 산타크로체 대성당에 단테의 무덤을 만들었다. 단테의 시신은 여전히 라벤나에 남아 있고, 피렌체의 단테 묘는 자리만 있을 뿐 시신이 없다. 피렌체에 있는 그의 무덤 자리 앞면에는 “가장 고귀한 시인을 기리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테의 시신을 둘러싼 피비린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1945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가 연합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테의 유해를 발텔리나 보루로 옮겨 와 ‘이탈리아다움의 가장 위대한 상징’으로 써먹으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런 파시스트들의 사악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라벤나는 단테의 시신을 무사히 잘 지켜내고 있다. 단테의 무덤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단테 박물관에 들어갔다. 단테의 생애와 그가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시물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단테의 문장들은 마치 거대한 모자이크의 흩어진 조각들처럼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나는 비애의 도시로 가는 길이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영원한 슬픔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신곡’의 한 대목처럼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추락했다. 뛰어난 리더십과 문장력으로 일찍이 정치 무대에서 성공했지만 결국 피렌체 정계와 로마 교황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쓸쓸한 망명객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괴롭고 쓸쓸한 시절에 ‘신곡’의 집필이 시작된다. 그가 만약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했다면 인류는 단테의 ‘신곡’이라는 명작을 갖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런 절망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지옥의 늪을 건너 끝끝내 천국에 다다르는 희망에 관해 썼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끝내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곡’에는 절망에 빠진 인간의 어깨를 툭 치며 ‘이봐,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 듯한 가벼운 유머도 있다. “여기 남아서 죽어 버리든가, 아니면 그 못생긴 엉덩이를 이끌고 저 문으로 돌아가든가. 다 네게 달렸어, 친구.”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늘 심각하고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단테의 책 속에서 뜻밖의 유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죽지 않았지만, 삶의 숨결을 잃었다”며 절망했던 단테가 마침내 붙잡은 희망의 나무는 바로 ‘아름다움’과 ‘사랑’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아련한 사랑이었지만 평생 그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이상형으로 남아 있던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리움, 그것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향한 갈망’이 합쳐진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는 “아름다움은 영혼을 일깨워 행동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벤나에서 ‘신곡’을 다시 펼쳤을 때 나 또한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건너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 혼자 나를 하루하루 고문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이 사방에서 하루에 1밀리씩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원고 집필이나 강연 같은 공식적인 약속은 간신히 지키고 있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들’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루하루 나이 들어감이 두려웠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화가 났고, 적어도 겉으로는 아주 괜찮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진저리가 났다. 패배감과 분노와 질투로 가득 찬 진짜 내 속마음을 보여 주면 모두가 나에게서 뒷걸음질치며 도망갈 것만 같았다. 사회적인 약속은 부지런히 이행하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는 중이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도전했을 때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혐오를 부지런히 키워 가고 있을 때 단테의 ‘신곡’ 속 다음 문장을 다시 만났다. “나는 행함으로써 패배한 것이 아니라, 행하지 않음으로써 패배했다.” 너무도 뼈아픈 자기진단이었다. 뭔가를 해 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습관은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나는 라벤나의 위대한 문화유산들뿐만 아니라 골목골목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자이크가 내 고민의 해답임을 깨달았다. 부서지고 이지러지고 찌그러진 채로도 모자이크는 훌륭한 한 조각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은 단지 하나하나의 깨진 조각들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큰 그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루하루의 끈기다. 단테는 또 내 안에서 속삭인다. “그럼 뭐야? 왜 망설이는 거야? 왜 겁쟁이처럼 사는 것을 좋아하는가? 왜 대담하고 예리하게 시작하지 못하는가?” 오늘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낼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순간, 내가 가장 싫어지는 이 순간, 그 순간이 내가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신곡’의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의 모자이크 조각이 돼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골목골목마다 모자이크로 장식가까이서 보면 그저 깨진 조각들멀리 떨어져서 봐야 큰 그림 보여오늘도 내 인생의 소중한 한 조각 삶의 불완전성을 온전히 끌어안는다는 점에서는 모자이크의 작업 원리와 단테의 ‘신곡’이 비슷하다. 인생의 부스러진 부분, 이지러진 부분, 깨어진 부분, 도저히 예뻐 보이지 않는 부분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부정하고 싶지만 실은 그 결점들이 하나하나 서로의 요철을 맞추어 가며 모자이크는 이루어진다. 게다가 모자이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적인 거리가 필요하다. 모자이크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답진 않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바라보면 모자이크가 딱 아름다워 보이는 그 자리를 찾는 것이 균형감각이다. 적정 거리에서 모자이크를 바라보면 비로소 그림의 전체성이 보인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좀 엉망진창이고 결핍투성이일지라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이라는 큰 그림에 이어 붙이면 그 깨진 모서리들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윤곽선이 돼 광대한 삶과 사랑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쓸쓸한 그대여, 일단은 오늘을 버틸 일이다. 오늘을 버틸 힘만 있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으니까.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우리는 삶이라는 광대한 모자이크를 마침내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으로 고꾸라져 있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를 일으켜 세우며 이렇게 속삭여 본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모자이크의 가장 소중한 한 조각임을 잊지 말자고. 깨어진 모자이크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고. 문학평론가·작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