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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치아에 우뚝 솟은 유영국 ‘절정의 산’…RM 소장작 앞 ‘인증샷 찍기’도

    베네치아에 우뚝 솟은 유영국 ‘절정의 산’…RM 소장작 앞 ‘인증샷 찍기’도

    가을빛으로 일렁이는 산, 청신한 청록빛으로 깊어가는 산…. 계절과 빛,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 산의 아름다움이 물과 정원을 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중세 건축물에 ‘제 자리인 듯’ 녹아들었다. 16세기에 지어져 20세기 ‘영혼의 건축가’로 불리는 마리오 보타, 고건축물에 새 숨을 불어넣은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 등이 리모델링한 베네치아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절정의 산’이 펼쳐지면서다.17일(현지시간) 개막을 사흘 앞두고 현장에서 만난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병행 전시 유영국 개인전 ‘무한 세계로의 여정’은 유영국의 예술 여정의 전환점이자 절정기의 강렬한 추상회화로 비엔날레 참석차 현장을 찾은 미국, 유럽 주요 미술계 관계자들과 매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내 1세대 모더니스트로 색채의 미학을 극단까지 밀고 간 그의 진가를 새롭게 발견한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색의 깊이와 형태에서 드러나는 정신성이 마크 로스코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나왔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는 “유영국의 추상화들은 빛나고 매혹적이며 특유의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대조적인 색면으로 채워져 있다”며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병행 전시 10선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개인 소장 등 유화 29점과 석판화 11점이 나온 이번 전시는 특히 그의 작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1960~1970년대 유화가 내걸린 3층 공간이 압권이다. 화폭 위 정교한 균형 감각, 풍부한 색의 변주, 공간감과 깊이감을 더하는 세밀한 표현력 등이 성큼 자연의 숭엄함을 체감하게 한다. BTS RM의 소장작 ‘워크’(1968) 연작 앞에서는 전시를 찾아온 현지 관람객들의 ‘인증샷 찍기’도 이어졌다. 초록색 정원을 창밖으로 품고 있는 1층 전시장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기단 위에 석판화를 한 점씩 올려 작은 산이 솟아오른 듯, 섬이 떠 있는 듯 분위기를 연출했다.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주제인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가 서구 예술이 식민 지배를 겪은 국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변형됐는지 탐구한다는 점에서 식민 경험, 전쟁, 분단 등 카오스 같은 상황을 겪으며 한국의 미학과 동양 사상에 서양 미술의 언어를 조화시킨 유영국의 작품 세계는 비엔날레 주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 강남 1채 살 때 비강남 2채… 양극화 심화

    강남 1채 살 때 비강남 2채… 양극화 심화

    강남 3구 규제에도 가치 회복세압구정 신현대 115㎡ 41.8억 거래작년 3.3㎡당 가격 배율 2배 증가서울·경기 3.3㎡당 2231만원 격차 서울에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그 외 22개구 간의 집값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강남 3구는 여전히 규제로 묶여 있음에도 최근 일부 단지에서 신고가가 잇따르고 있다. 16일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아파트 3.3㎡(평)당 평균 매매가는 강남 3구가 6609만원, 그 외 서울 지역은 3237만원으로 두 지역 간 가격 격차는 3372만원으로 나타났다. 두 지역 간 격차는 2021년 3255만원에서 2022년 3178만원으로 일시적으로 좁아졌지만, 최근 2년 사이 다시 벌어졌다. 부동산시장 호황기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다는 뜻)과 ‘패닉바잉’(공황매수) 등으로 서울 대부분 집값이 동반 상승했지만, 침체기엔 수요자의 자산 선택이 제한돼 대기 수요가 높은 지역으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우리은행은 분석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강남 3구는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 지역으로 묶여 있고 저리 대출인 신생아 특례대출 이용 등에 제한이 있지만, 집값 조정기 급매물 매입 수요 유입과 시장 회복기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에 힘입어 비교적 빠른 회복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 3구 아파트값은 실수요자가 몰리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현대9, 11, 12차) 전용면적 115㎡가 최고가인 41억 8000만원에 거래됐다. 직전 거래였던 2021년 4월 35억원보다 6억 8000만원 오른 것이다. 지난 1일 개포주공6단지 전용면적 60㎡는 역시 최고가인 20억원에 매매됐다. 지난 2월 동일 면적이 18억 5000만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해 1억 5000만원 올랐다. 강남 3구 아파트 3.3㎡당 가격으로 서울 그 외 지역 아파트 3.3㎡당 가격을 나눈 배율을 살펴보면 집값 호황기인 2020∼2022년에는 1.9배였지만, 집값이 하향 조정기를 거친 2023년 이후에는 2배로 증가했다. 강남 3구 아파트 1채로 기타 그외 서울 지역 아파트 2채를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 격차도 꾸준히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2015년 792만원이었던 두 지역 간 3.3㎡당 아파트 가격 격차는 2017년 1121만원으로 벌어졌고, 2021년에는 2280만원으로 커졌다. 그러다 2022년 하반기에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수도권 전반의 주택 매입 수요가 위축되면서 2259만원으로 격차가 감소했고, 2023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호재와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 추진 호재 등이 힘을 받으며 2231만원으로 다시 좁혀졌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두 지역 간 가격 차이가 2261만원으로 다시 벌어진 상태다.
  • “강남 1채가 강북 2채 살 돈”…서울 아파트값 격차 더 벌어졌다

    “강남 1채가 강북 2채 살 돈”…서울 아파트값 격차 더 벌어졌다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기를 거치며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그 외 서울 내 지역 간 아파트값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강남 3구와 이 밖의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3.3㎡당 3372만원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3.3㎡당 3178만원에서 2023년 3309만원 등으로 커졌던 격차가 올해 더 벌어진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강남 3구는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고 저리 대출인 신생아 특례대출 이용 등에 제한이 있지만, 집값 조정기 급매물 매입수요 유입과 시장 회복기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에 힘입어 비교적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 3구 집값으로 나머지 서울 자치구 집값을 나눈 배율을 살펴보면 집값 호황기인 2020~2022년엔 이 배율이 1.9배로 줄어들었지만,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2023~2024년엔 배율이 2배로 증가했다. 이는 강남 3구 아파트 1가구로 기타 서울 내 지역 아파트 2가구를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함 랩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집값 대세 상승기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다는 뜻)과 패닉바잉(공황매수) 등으로 서울 강남·북 등 대부분의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분위기였지만 시장 침체기엔 수요자의 자산 선택이 제한돼 차별화 양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전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밀집도가 지속되며 의식주 중 하나인 수도권 주택 시장도 지역 내 부동산 업황과 개별 호재, 수급에 따라 가격 편차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며 “당분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집값의 양극화와 수요 쏠림은 택지를 사들이기 어려운 환경과 신축 분양 선호에 힘입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아파트값 양극화는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22년 하반기에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수도권 전반의 주택매입 수요가 위축되며 2259만원으로 감소했던 격차는 2023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호재와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 추진 호재 등이 힘을 받으며 2231만원으로 더욱 좁혀졌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두 지역 간 가격 차는 다시 벌어졌다. 올해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3.3㎡당 매매가는 4040만원, 경기·인천 아파트 매매가는 1779만원으로 2261만원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이토록 독특한 로미오와 줄리엣…영혼의 감각 깨우는 ‘알앤제이’

    이토록 독특한 로미오와 줄리엣…영혼의 감각 깨우는 ‘알앤제이’

    1990년대 대중가요에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구속하지 말라는 절박한 외침이 담겨 있다. 엄격한 규율과 규칙을 요구하던 세상은 학생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고 어른들의 뜻대로 순응할 것을 종용했다. 그래서 과연 아이들은 행복했을까 묻자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수많은 가요가 그토록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자유를 갈망한 이유다. 연극 ‘알앤제이’의 네 학생의 삶이 그렇다.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남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하루하루 강압적인 분위기를 겨우 견뎌가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행복했다면 아마 별문제 없었겠지만 이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갑갑함을 느끼던 어느 날 소년들은 늦은 밤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비밀의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있었나니. 그것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의 R, 줄리엣의 J를 딴 R&J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창작됐다. 원작을 대단히 독창적으로 활용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수많은 2차 창작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알앤제이’의 구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학생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역을 맡아 자기들끼리 연극을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의 흐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익히 알려진 연극에는 특별한 변주도 없다.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작품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연기하는 학생들의 모습 그 자체다. 어른들이 정한 틀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살던 학생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그간 깨닫지 못한 감정과 세상을 알게 되고 갇혀 지냈던 알을 점점 깨고 나온다. 역할극에 진심이 된 학생들은 인물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해 금기와 억압, 편견의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한다. 연극을 한 번에 쭉 이어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감옥 같은 현실을 오가며 깊어지는 고뇌를 긴장감 있게 담았다. 연극을 통해 영혼의 감각들을 깨우고 꽁꽁 묶여있던 감정들을 분출하면서 소년들의 눈빛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격렬하게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이나 반짝인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고 복귀해야 하는 엄격한 현실은 이들의 환상을 언제든 산산조각 낼 수 있지만 그 위태로움이 소년들의 꿈을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낸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할 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매혹적인 붉은 천은 힘차게 박동하는 소년들의 심장을 꺼내놓은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초연부터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선보여온 알앤제이는 극장 특유의 공간감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관객들은 무대를 둘러싸고 앉아 다양한 시선에서 감상할 수 있고 배우들은 객석으로까지 이어진 무대를 역동적으로 오가며 다른 공연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보적인 울림을 창조한다. 몰입감을 끌어올리며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익히 아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보다는 학생들의 잔상이 더 강렬하게 남는다. 작품을 쓴 조 칼라코는 “이 학생들의 모임이 하나의 공동체로, 하나의 부족으로 느껴질수록 마지막에 그들이 자신들의 ‘꿈’이 끝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가슴은 더더욱 미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함께 안녕을 고하는 작품의 결말은 선명하지 않지만 그의 말대로 공연을 보고 나면 복잡한 감정이 미어지게 밀려오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28일까지.
  • “염산 뿌린다”…서윤아, ♥김동완 팬에 받은 ‘충격적’ 악플

    “염산 뿌린다”…서윤아, ♥김동완 팬에 받은 ‘충격적’ 악플

    가수 김동완과 함께 ‘신랑수업’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서윤아가 충격적인 악플을 공개했다. 서윤아는 지난 1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김동완 팬들로부터 받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캡처해 올렸다. 김동완 팬들이 서윤아에게 보낸 DM에는 “지옥에서 천벌이나 받아”, “팬한테 상처 주는 쓰레기”, “왜 대놓고 팬들을 영혼 살인하냐”, “얼굴에 염산을 뿌리겠다”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협박성 발언이 가득했다. 해당 DM을 접한 서윤아는 “저한테 왜 이러시는지. 저한테 이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서윤아는 최근 채널A 예능프로그램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에서 김동완과 러브라인을 그리고 있다.
  • 절규, 그리고 그 너머… 혁신가 뭉크, 시작과 끝을 아우르다

    절규, 그리고 그 너머… 혁신가 뭉크, 시작과 끝을 아우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 140여점 선봬전 세계 기관·개인 소장작 모아대체 불가능 존재감 알린 ‘절규’ 불안한 심연 표현한 자화상 등독창적 기법 통해 강렬한 울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절규’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예술의 전모를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로 본다.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맞아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주최하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이 그 무대다. 이번 전시에는 노르웨이 대표 화가인 뭉크의 ‘절규’ 등 주요작 140점이 대거 나온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 오슬로 도시박물관, 미국 세라 캠벨 블래퍼 재단 등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컬렉터의 소장작을 촘촘히 모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뭉크 전시를 10회 이상 기획한 뭉크 전문가인 큐레이터가 전시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 개인 소장가들을 한 명 한 명 설득해 이뤄진 전시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귀한 자리이기도 하다.주제별로 14개 섹션으로 이뤄지는 전시는 “뭉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울렀다”고 할 정도로 그의 생애와 창작 활동의 주요 순간들을 꿰는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판화, 드로잉 등을 두루 모아 놨다. 화가로 첫발을 내디딘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에서의 청년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새로운 화풍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발전시키던 시절, 말년까지 비극적 삶을 예술로 찬란하게 꽃피웠던 예술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절규’로만 잘 알려진 뭉크의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표현 기법 실험에 초점을 맞춰 그의 작품 세계를 더 입체적으로 느껴 볼 수 있게 한다. 기존 예술 문법을 벗어난 강렬한 형태와 색채로 현대미술에 뚜렷한 인장을 남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비와 눈에 노출시키거나 사진, 무성영화 프레임을 그림에 적용하는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무너뜨리는 시도를 이어 갔다.작품별로는 그를 현대미술사에 대체 불가능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절규’(채색 판화본)를 비롯해 평생 몰두했던 ‘생의 프리즈’ 연작,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며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자화상’, 여성의 창조성에 더해 치명적인 여성과 연약한 여성을 결합한 ‘마돈나’, 그에게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리운, 어린 시절 겪은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에서 잉태된 ‘아픈 아이’, 여성의 나체를 통해 욕망, 질투, 증오 등 극한의 감정을 표현한 누드 연작, 내면을 투영한 풍경화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통렬한 호소력으로 인간의 감정을 화폭에 옮겨 온 뭉크는 ‘자화상은 화가의 영혼의 창’이라는 표현과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다. 그는 화업을 시작한 1880년대 초반 청년기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81년의 생애 동안 2만 5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가운데 70여점의 회화와 20여점의 판화, 100여점의 수채화, 드로잉 등은 자신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자화상이다. 뭉크 전문가인 스웨덴 큐레이터 이리스 뮐러 베스테르만은 저서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에서 “뭉크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심연과 변화무쌍함을 탐구했던 최초의 화가”라며 “뭉크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세상에 대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기에 그의 자화상에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소외와 고독, 삶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이 드러난다”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3점의 자화상을 감상할 수 있다. 그가 크리스티아니아의 왕립드로잉학교에 다니던 18살에 그리기 시작해 19살에 완성한 ‘자화상’ (1882~1883)과 뭉크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 죽음을 한 해 앞둔 시점에 그린 자화상(1940~1943) 등이 나와 청년기와 말년의 자화상을 비교해 보며 삶과 예술, 심상의 변화를 짚어 볼 수 있다. 생명의 원천, 사랑, 이별, 절망, 노년, 죽음 등 삶의 순환과 죽음을 그려 낸 그의 핵심 작업이자 현대미술사의 중대한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생의 프리즈’를 이루는 대표작들도 고루 소개된다. ‘여름밤. 목소리’(1894~1895), ‘마돈나’(1895), ‘키스 Ⅳ’(1902), ‘뱀파이어Ⅱ’(1902), ‘질투Ⅱ’(1896), ‘절규’(1895), ‘불안’(1896), ‘카를 요한의 저녁’(1896~1 897), ‘임종의 자리에서’(1896) 등 20여점을 ‘생의 프리즈’ 섹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숲을 향해서Ⅱ’(1915), ‘벌목지’(1912) 등 작가가 자신이 머물렀던 숲, 해안, 뜰, 마을 풍경에 내면을 투영한 풍경화들도 다수 나온다.뭉크는 한 가지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실험을 이어 나간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전시에서도 다양한 버전으로 구현된 같은 주제의 작품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해 볼 수 있다. 채색 석판화로 제작된 6점의 ‘뱀파이어’와 4점의 ‘마돈나’가 함께 나오는 것이 한 예다. 작가가 판화 위에 다시 채색을 해 작품에 독자성을 부여한 채색 판화는 뭉크가 활발히 시도한 기법인 데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채색 판화 작품 규모는 유럽에서도 한자리에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뭉크의 채색 판화는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로, 회화에 담으려 했던 메시지를 변형시키거나 확장한 시도에서 판화를 자기 작품의 ‘보급판’이 아닌 작품을 확장, 재평가하기 위한 매체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남성들과 선정적 댄스’ 영상 유출, 왕관 빼앗긴 미인대회 우승자

    ‘남성들과 선정적 댄스’ 영상 유출, 왕관 빼앗긴 미인대회 우승자

    말레이시아의 미인대회 우승자가 태국에서 ‘문란한 휴가’를 보냈다는 이유로 왕관을 박탈당했다. 싱가포르 영자매체인 아시아원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3 운덕 은가다우 조호르 미인대회 우승자인 비루 니카 테린시프(24)가 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도중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남성 댄서들과 함께 선정적으로 춤을 추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에 현지에서는 고결한 마음과 정신 등을 상징하는 미인대회의 우승자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미인대회 추최 측인 카다잔두순 문화협회(KDCA)는 결국 8일 “테린시프의 우승 타이틀을 취소한다”면서 “고결한 정신과 영혼을 상징하는 신화 속 전설인 ‘후미노둔’을 표상으로 하는 미인대회 우승자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녀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개인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면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넋을 잃기도 한다”면서 “휴가지에서 촬영된 영상에 어불평과 불만이 쏟아졌다. 우리 협회는 이 문제에 인해 표적이 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끌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인대회 우승 왕관을 빼앗긴 테린시프 역시 이날 SNS에 “(나의 행동이) 부주의했다. 명예롭고 겸손하게 우승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어 “(나의 설명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선택이지만,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비난하지는 말아달라. 그들은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호소했다. 테린시프는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온 모델로, 지난해 보르네오에서 열린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뒤 대중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한편, 미인대회 우승자가 사생활 문제로 왕관 타이틀을 박탈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미스일본협회는 ‘56회 미스 일본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시노 카롤리나(26)가 사퇴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본인이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퇴하고자 했다”고 전했지만, 현지 주간지 ‘슈칸분슌’은 그녀가 40대 기혼 성형외과 의사와 약 3년간 불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카롤리나의 사퇴 이후 그녀가 소속돼 있던 모델 에이전시 역시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 클래식 봄꽃… 러시아 ‘현의 거장’ 핀다

    클래식 봄꽃… 러시아 ‘현의 거장’ 핀다

    살아 있는 ‘바이올린 전설’로 불리는 막심 벤게로프(50)와 ‘어깨 첼로’의 대가 세르게이 말로프(41)까지 러시아 ‘현(絃)의 거장’들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 벤게로프는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바이올린 리사이틀에서 그의 172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엑스 크로이처’로 거장의 연주를 선보인다. 그는 8일 KBS 클래식FM에 출연해 “활은 내 오른손의 연장이고, 악기는 내 영혼의 연장”이라며 음악에 대한 진심을 드러냈다. 벤게로프는 8년 만의 내한 무대에서 러시아 여성 피아니스트 폴리나 오세틴스카야와 함께 프로코피예프 5개의 멜로디와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라벨의 치간느 등 친숙한 명곡을 들려준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진하고 풍부한 음색과 탁월한 기교, 흡인력 강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무르익은 연주를 통해 거장의 향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벤게로프는 다섯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예프게니 키신, 바딤 레핀과 함께 러시아의 3대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10세에 데뷔 음반을 발매한 후 그래미상, 그라모폰 올해의 연주자상 등을 받았다. 그는 어깨 부상으로 바이올린조차 들지 못하게 됐던 좌절 끝에 2007년 지휘자로 변신해 미국 카네기홀 데뷔를 했다. 절망의 순간을 새로운 음악적 도전으로 돌파한 그는 2011년 바이올리니스트로 다시 무대에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벤게로프와 마찬가지로 다섯살에 데뷔한 피아노 신동 오세틴스카야도 매 시즌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는 세계적 연주자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면서 고국에서의 공연이 봉쇄됐다.모던 바이올린부터 바로크 바이올린, 비올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까지 어깨 위 모든 현악을 섭렵한 말로프는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선다. 그는 다양한 현악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즉흥적 선율을 만들어 내는 연주자다. 말로프는 비올라보다는 크고 첼로보다는 작은 ‘어깨 첼로’로 불리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첼로 모음곡 등을 연주한다.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저음 현악기로 신비로운 음색을 낸다. 말로프는 이번 공연에서 전자 바이올린으로 바흐를 재해석하는 즉흥 연주를 통해 바로크 시대의 바흐를 현대로 소환한다.
  • 알프스의 숨은 진주,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한ZOOM]

    알프스의 숨은 진주,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한ZOOM]

    발칸반도 북쪽에 위치한 슬로베니아(Slovenia)는 알프스산맥 동쪽 끝에 위치해 있어 스위스와 더불어 산맥이 주는 유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슬로베니아를 ‘발칸반도의 스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슬로베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지만 호수 속에 있는 섬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이 작은 섬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레드섬’(Bled Island)이다.블레드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슬로베니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블레드에는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이 흘러내려와 만든 블레드 호수가 있다. 그리고 이 호수의 한가운데에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의 작은 섬 ‘블레드섬’이 있다. 일단 블레드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플라트나’(Pletna)라는 이름의 배를 타야 한다. 배는 약 15명 정도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작은 크기이다. 자연보호를 위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 배를 몬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등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큰 편이다. 몬테네그로는 네덜란드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키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큰 키에 매일 노를 저어 생활근육까지 가지고 있는 뱃사공이 배를 몰기 시작하자 승객들의 관심은 목적지인 블레드섬보다 뱃사공의 외모에 쏠리기 시작했다. 슬로베니아가 미남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기까지 하니 잘생기고 큰 키에 근육을 가진 뱃사공의 외모에 대한 승객들의 관심은 블레드섬에 닿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도 이 곳 블레드호수와 블레드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곳이 사람들로 인해 훼손되는 것이 두려웠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여왕은 블레드섬을 오가는 배의 수를 제한해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리고 배의 수를 제한하는 대신 뱃사공 자격을 아무나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자격을 상속할 수 있도록 해서 뱃사공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18세기부터 이어진 뱃사공 자격 상속제도 덕분에 오늘날 뱃사공들은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고소득자라고 한다. 잘생긴 외모에 고소득자라는 이야기까지 퍼지자 승객들의 감탄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동양에서 온 사람들이 왜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알 길이 없는 잘생긴 고소득자 뱃사공은 덤덤한 표정으로 블레드섬을 향해 계속 노를 저었다.블레드 섬을 둘러싼 전설들 블레드 섬에 내려 처음 만나는 것은 99개 계단이다. 블레드섬은 결혼식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는데,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개 계단을 모두 오르면 평생 행복하게 산다는 전설이 있다. 99개 계단을 모두 오르면 ‘성모승천성당’이라는 이름의 성당이 나온다. 원래 이 성당은 고대 슬라브 전설에 등장하는 생명의 여신 ‘지바’(Ziva)를 모시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8세기 무렵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면서 이 곳을 성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이 성당 50m 높이 위에는 1534년 이탈리아 파도바(Padua)에서 ‘프란치스쿠스 파타비누스(Franziskus Patavinus)’가 만든 ‘소원의 종’이 달려있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다. 강도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블레드섬에 설치할 종을 만들었다. 그런데 종을 블레드섬으로 옮기던 날 폭풍이 불어 종을 싣고 가던 배가 호수 바닥에 가라앉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로마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교황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 블레드섬에 보냈다.알프스의 진주 블레드호수를 끼고 있는 절벽 위에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블레드성(Bled Castle)이 있다. 이 성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알프스 만년설이 녹아 만든 맑은 블레드호수와 맑은 호수 물에 비친 그림자마저 아름다운 블레드섬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 곳에 오기 전에 읽은 슬로베니아 가이드북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은 블레드섬을 ‘알프스의 진주’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 올라 내려다 본 블레드섬은 가이드북의 표현대로 알프스 만년설 위에 놓여있는 진주알 같아 보였다. 역시 사람이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읺다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블레드성 계단을 내려왔다.
  • AI로 복원된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옥자야, 아빠가 한번 안아보자”

    AI로 복원된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옥자야, 아빠가 한번 안아보자”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서 열린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소개된 유족사연이 소개되자 참석자들도 울컥하고 하늘도 안개를 자욱이 피워올리며 물기를 머금었다. 제주출신 배우 고두심이 먼저 김옥자 할머니의 사연을 낭독해나가자 참석자들은 숨죽였고 내레이션이 나오는 가운데 김옥자씨의 손녀 한은빈(17)양이 나와 뒤이어 사연을 소개해나갔다. “저는 오늘 할머니의 아버지이며 저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신 사무치게 그리운 이를 향해 할머니를 대신해서 70년 넘게 가슴 깊은 곳에 묻어온 슬픔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한다”면서 “할머니는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제일 먼저 “음력 동짓달 스무날 찾아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이 바로 ‘가메기 모른 시껫날(까마귀 모르는 제삿날)’ 이라고 하는데요.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까마귀조차 모르게 지내는 제사라고 하는데 이날이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직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저로서도 홀로 남겨진 딸자식이 되어 어두운 그늘 속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고 했다. 뒤이어 “1948년 초겨울 어느날 할머니의 가족들은 곤을동으로 피신했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튿날 ‘옥자야, 아부지 집에 강(가서) 소 여물 먹이고 금방 돌아오켜(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가시나물로 올라가셨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달이 흐른 봄 어느 날 증조할머니께서도 화북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셨다. 뒤이어 제할머니의 남동생도 세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을 전했다. 5세때 가족들을 모두 잃은 김옥자 할머니는 막내 이모 손에서 자라다 열다섯 살이 되자 육지로 올라가서 채소장사, 공장 여공, 식모살이 등 힘겨운 삶을 이어가며 그리움을 망각 속에 던져버렸다. 이렇게 모진 세월을 견디다 20대에 귀향한 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손녀는 “슬픈사연을 지녔지만 손주들 앞에선 항상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밝고 강인한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할머니의 미소 뒤에 숨겨진 아픔을 헤아리게 되었다”며 “할머니의 가장 큰 슬픔은 이제 얼굴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망각이었다. 할머니께서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꿈에 나왔는데도 나가 몰라 봐실지도 모르주”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할 때 유골이 나타났는데 얼굴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오목한 뒤통수 뼈 한 조각만 있었다고 해요. 할머니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큰 아빠는 저 손바닥만한 뒤통수 뼈가 어머니가 기억해야 할 아버지의 얼굴이고 제가 기억해야 할 “외할아버지 얼굴이구나예”라는 말을 하셨다. 얼굴없는 얼굴이 저희 가족이 기억해야 할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고 했다.유족 증언을 바탕으로 수천장의 인물 사진을 참고해 인공지능(AI)기술로 복원하는 과정을 거쳐 김옥자 어르신의 아버지 고(故) 김병주 씨의 생전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해 이날 딸과 다시 만났다. 김옥자 어르신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다섯 살이라는 나이만 잊어버리지 않아요. 이 사진이 아버지 얼굴 닮았나요. 아버지 얼굴이면 닮았다고 말 좀 해주세요”라며 깊은 그리움을 표했다. 딥페이스 기술을 활용한 영상으로 재현한 고 김병주 씨는 “옥자야 오래 기다렸지. 이리 와.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빠가 한번 안아보게”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영상을 보던 1만여 참석자들은 유족의 한맺힌 사연에 눈시욹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 神의 뜻 품은 장엄한 빛의 대화[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神의 뜻 품은 장엄한 빛의 대화[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러 가는 길이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남천동주교좌성당. 건물의 한 면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다. 기독교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 구원과 생명인 신을 상징한다. 교회 건물에서 흔히 보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런 빛의 의미를 극대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스테인드글라스와 만난다는 건 곧 신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남천성당은 1991년 완공돼 이듬해 축성식을 했다. 조성 초기부터 이미 독특한 디자인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2019년엔 이곳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친상을 치르면서 세상 사람 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도 했다. 정면에서 보는 성당은 직삼각형의 형태다. 왼쪽 측벽이 45도 경사졌다. 이 경사진 외벽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커튼을 치듯 건축 자재를 둘러쳐 외벽으로 삼는 이른바 ‘커튼 월’ 기법이다. 종교 건물치고 무척 대담한 설계다. 뾰족하게 치솟은 종탑도, 우아한 아치 기둥도 없다. 전통과 관습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전체적으로는 배의 돛을 형상화했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설계다. 종탑은 건물 오른쪽에 살짝 떨어져 있다. 거대한 열쇠 모양이다. 그 안에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돼 달라는 바람을 담았다. 어쩌면 설계자는 내심 바람에 흔들리는 돛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까지 이 종탑에 맡겼을는지도 모르겠다. 성당 문을 열면 사선으로 낮게 깔린 구조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벽이다. 그 아래로 오후의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벽과 지붕의 역할을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동시에 해내고 있는 셈이다. 건폐율(건축면적의 대지면적에 대한 비율)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게 무슨 비효율이냐고 비아냥댈지도 모르겠다. 스테인드글라스 자리에 사무실을 조성하면 훨씬 ‘돈’이 될 테니 말이다. 그 정도로 스테인드글라스의 규모는 놀랍다. 길이 53m, 높이 42m에 이르는 대작이다. ‘사제 화가’로 알려진 조광호 신부의 작품으로, 전체 작업 기간이 3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남천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일반적인 교회 성화와 달리 무슨 내용을 담은 건지 한눈에 알아보기 쉽지 않다. 비구상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세 개의 원이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인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원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완벽하고도 영원한 존재다. 커다란 원 안에는 십자가 등 작은 형상들을 그려 넣었다. 물이 생성되는 창조의 순간을 보는 듯하다. 전체적인 바탕색은 파란색이다. 천상의 색이자 영혼의 색이다. 현실적으로는 바다의 색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성당의 전체적인 외형이 배의 돛과 닮았다는 점을 상기하시라.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같은 건축의 상징성에 완벽히 조응하고 있다.아랫부분의 창문들엔 좀더 작고 구체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천지창조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사건별로 형상화한 것이다. 아마도 가까운 거리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마주하게 될 성도들을 고려한 배치일 것이다. 전체와 부분을 고루 아우르려 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규모는 종종 과시로 이어진다. 높이와 부피로 모든 걸 재단하려는 이들에게서 흔한 현상이다. 남천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다르다. 거대하지만 윽박지르거나 과시하는 느낌이 아니다. 사실 장삼이사들이 교회 건물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온갖 상징과 은유를 모두 깨닫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 빛 아래 서면 누구나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이는 겸손이지 위축이 아니다.
  • [진경호 칼럼] 조국을 충동구매한다는 것

    [진경호 칼럼] 조국을 충동구매한다는 것

    내가 새집으로 이사를 했어. 근데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깨질 거 같아. 그래서 문을 열었어. 그랬더니 매연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나. 그래서 남친한테 물었어. 자기야, 어떡해야 돼? 창문 열어, 말아? 레트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정이가 던진 난제 중 난제다. 덜떨어진 남자사람친구 해태와 삼천포가 답을 내놓을 리 없다. “그래도 매연이 낫지 않나?” “아니지, 문 닫고 페인트가 낫지.” 이 영혼 투명한 둘을 보다 못한 나정이가 입을 열었다. “환장한다. 정답은 이거야. ‘괜찮니?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가?’” 우주 섭리가 녹아든 이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대화는 말한다. 솔루션 이전에 공감이라는 것, 공감은 감성에서 나오며 이성은 감성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 사람 사는 이치다. 합리를 좇는 비합리적 동물이 인간이다. 쇼펜하우어의 ‘충동의지’가 이를 말하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부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지속성을 높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이성이 아닌 감성을 인간의 본질로 봤다. 이성과 감성 사이의 인간을 정치 성향으로 나누면 보수 우파는 이성에, 진보 좌파는 감성에 좀더 다가서 있다. 해서 공감 능력에 관한 한 보수는 진보를 따르지 못한다(찬반 연구가 무수하니 공방은 사양한다). 솔루션을 내놓기 전에 공감부터 해야 할 터인데 보수 정권은 이를 종종 까먹는다. 그렇다고 진보 정권이 우위는 아니다. 공감(하는 척)만 할 뿐 솔루션이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보면 된다. 선거는 이성의 합집합이 아니다. 유권자는 합리와 상식만을 좇지 않는다. 증거가 4·10 총선의 조국이다. 표창장을 위조해 자식을 대학 보내고는 정의와 법치를 외친 내로남불의 아이콘이 명예회복을 운운하며 당을 만들고, 비례대표 후보 2번에 자신을 앉히고, 본인도 예상 못한 지지율에 가슴 벅차 “느그들, 쫄았제!” 하며 콧김 씩씩 뿜어 대는 게 2024년 봄 대한민국 풍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마뜩잖은 ‘반윤석열’ 친문·비명 표심이 조국에게 몰렸다는 분석은 결국 4·10 총선이 미래에 대한 설계는 온데간데없이 원한과 증오가 맞부닥치는 복수혈전으로 전락했음을 말해 준다. ‘윤석열 대 이재명’의 리턴매치와 ‘한동훈 대 조국’의 뉴매치가 어떤 정치판을 만들지는 이미 공고돼 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은) 자격을 잃었다. 너는 해고다, 집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고 외치며 탄핵의 추억을 되지폈다.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을 공약 1호로 내세웠다. 어쩌다 한번 선거로나마 주인 노릇 해야 할 국민 다수가 정치 빌런의 느닷없는 복수극에 엑스트라로 동원될 처지가 됐다. 출연료는커녕 다치지 않으면 다행일 판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복속된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딛고 일어서 80억 개체의 문명사를 일굴 수 있었는지를 진화생물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으로 설명한다. “호모사피엔스는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헤어 등은 그러나 결코 인간을 ‘다정한 존재’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 인간”이고 “우리(내집단)에 대한 친화력 상승이 그들(외집단)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이들을 밀어내기도 한다”고 짚었다. 인종과 종교의 적대감에서 보듯 이런 인간의 양면성은 종종 집단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게 인류의 현재진행형 역사다. 둘로 나뉜 공감이 증오와 파국만 부를 뿐이라면 공감의 경계를 넓히는 길밖에 없다. 멸문지화를 입었다는 조국을 넘어 반칙과 편법에 좌절할 미래세대를 봐야 한다. 어쩌면 문을 여네 마네 솔루션에만 매달린 해태와 삼천포가 진정 나정이의 고통을 공감했던 것인지 모른다. 진경호 논설실장
  • [열린세상] 청년 안중근과 빌렘 신부

    [열린세상] 청년 안중근과 빌렘 신부

    빌렘 신부는 영화 ‘미션’의 로드리고 수사와 얼굴이 닮았다. 덥수룩한 수염도 비슷했고, 그의 삶도 그랬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였던 알자스로렌에서 태어난 그는 1883년 사제가 됐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조선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황해도 전담 사제가 된 그는 청계동 공소에서 거행된 세례식에서 열여덟 살 안중근을 만났다. 1897년 1월 추운 겨울이었다. 안중근은 순전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었다. 미사를 드리는 제대에서 사제를 돕는 복사(服事)를 서는가 하면 인근의 공소를 찾아 복음을 전했다.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빌렘은 안중근에게 영적인 아버지였다. 신앙으로 그를 키웠고, 프랑스어를 가르쳤으며, 유럽과 미국의 독립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학을 세워야 한다는 대화도 했다. 여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한학과 조선 역사를 배운 청년이 신부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읽었다. 청년 안중근이 독립과 항일을 너머 세계 평화와 인류의 사랑이라는 경지로 사상을 펼친 배경은 천주교와 빌렘 신부의 영향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공동 은행, 화폐, 평화 군대를 창설하자는 제안을 안중근이 한 시점도 유럽연맹이 창설되기 40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런 생각의 씨앗도 빌렘 신부에게서 전파됐을 가능성이 크다. 알자스로렌은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으로 정복군이 수없이 바뀌었다. 주민들은 평화를 갈망하고 주세페 마치니 같은 유럽 통합의 꿈을 꾸고 있었다. 황해도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교육에 매진하던 안중근은 1907년 홀연히 사라졌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빌렘의 가르침을 내려놓고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던 것이다. 10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들어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풍찬노숙이었다. 1909년 10월 의거 후 안중근은 평화와 인권,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사형을 언도받았다. 안 의사는 신앙의 아버지에게 전보를 보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천주교에서 행하는 종부성사를 드려 달라는 간청이었다. 1910년 2월 17일. 안 의사의 전보를 받은 빌렘은 주교에게 뤼순 방문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독립투쟁을 지원하거나 일제와 척을 지는 행동이 천주교에 가져올 위험을 주교는 우려하며 강행할 경우 징계를 하겠노라 위협했다. 극심한 갈등으로 고뇌하던 빌렘은 뤼순행을 결심했다. 3월 2일 출발해 닷새 만에 도착한 신부는 감옥 면회실에서 사형을 앞둔 어린 양을 만났다. “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안 의사의 세례명)가 간수 2명과 방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저에게 한국식으로 큰절을 하자 저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처럼 그의 두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불쌍한 도마야, 내가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신부는 나흘간 네 번 면회하며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주었다. 도마는 미사를 드리는 응송 구절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장중했다. 3월 26일 안 의사가 순국한 뒤 귀국한 빌렘은 60일 성무정지를 당했다. 사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목자로서 사제의 본분을 다한 그는 처연했으며 괴로웠다. 알자스로렌으로 돌아간 신부는 훗날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김규식을 도왔고, 로만 칼라를 하고 성경을 읽다 선종했다. 말년에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접으며 하나, 둘, 셋을 발음하다 하늘나라로 갔다. 안 의사가 순국한 3월. 나는 빌렘 신부 생각이 나면 영화 ‘미션’을 본다. 신앙의 길로 들어서 사랑과 속죄의 삶을 살던 로드리고 수사는 열강 군대에 신자들과 함께 맞서다 숨을 거둔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곡이 울려 퍼지고 화면에는 요한복음 1장 5절이 흐른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니, 어두움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서울광장] 소통 없는 정책은 실패를 부른다

    [서울광장] 소통 없는 정책은 실패를 부른다

    정부 정책은 종종 헛발질을 한다. 시장을 잘 모르거나, 흐름을 빠르게 거꾸로 바꾸겠다는 오만함에서 시작된 정책일수록 그렇다. 그 부작용은 어려운 사람일수록, 미래 세대일수록 온몸으로 맞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젊은층은 아파트를 선호하고, 대부분 기성세대가 젊은 시절 살다가 내놓은 매물을 산다. 아파트값이 다락같이 오르던 2021년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아파트 매수자 중 2030세대가 46%였다. 상대적으로 중저가가 많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까지 해서 샀는데 지금 아파트값은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강남 집값 안정이었다. 강남 집값은 유동성, 사교육은 물론 일자리 탓도 크다. 서울시 일자리의 30%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있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다른 곳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답이다. 정부가 집중할 일은 취약계층의 주거복지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전셋값도 오르자 전세자금대출 기준이 완화되면서 전세자금대출이 더 활성화됐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6년 말 36조원에서 2021년 말 162조원으로 126조원이나 늘었다. 이런 활황의 빈틈을 사기꾼들은 놓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원인이었던 주택담보대출도 그랬다. 주택담보대출은 좋은 제도지만 고삐 풀린 대출은 중개인을 거치면서 약탈적 대출로 변해 대출자의 삶을 파괴했다. 전세자금대출은 전세사기의 땔감이 됐다. 건물주들이 공인중개사와 작당하고 사기를 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3차례에 걸쳐 전세사기 의심 공인중개사 6224명을 점검한 결과 1309명이 위반행위를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72%가 2030이다. 세상살이는 청년층보다는 기성세대에게 우호적이다. 정책 만드는 사람이 기성세대이고,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정책의 규제 영향성을 심의하듯이 정책이 청년 등 미래세대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 청년들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물어보자. 인공지능(AI) 활용이 쉬워진 시대, 할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공의부터 시작하자. 2016년 제정된 전공의법은 주당 80시간, 연속 36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한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 더 꼬박 일하라는 건 전공의는 물론 그 전공의가 돌보는 환자도 무시하는 행위다. 전공의법에 명시된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전공의 2명에 고용주인 병원장과 교수가 10명으로 전공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든 구조다. 매달 열리던 회의도 지난해부터 분기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의대 증원은 전공의들 불만 폭발의 방아쇠였다. 이런 부당대우를 몰랐을 리 없는 전문의들이, 교수들이 이제야 나서고 있다. 필수의료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가 아닌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몰리는 까닭은 실손보험의 비급여 지원 때문이다.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실손보험은 3차례에 걸쳐 개정됐지만 여전히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책 입안자의 의도를 따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낸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생각한다. 부모세대가 된 것은 노력이 아닌 운이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청년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간 또한 길어진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층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소셜미디어(SNS)에 글 올리고, 댓글 달고, 유튜브를 보며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좋지만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라고. 그래야 청년에 약탈적인 정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전경하 논설위원
  • 은혜로운 고양이, 은혜갚은 고양이들을 만나다 [인마이포캣]

    은혜로운 고양이, 은혜갚은 고양이들을 만나다 [인마이포캣]

    2023년 2월 튀르키예 시리아 대지진이 일어난 현장에서 고양이로 인해 생존자를 찾은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양이를 따라온 구조대가 해당 장소의 잔해를 들어 내자 생존해 있는 두 아이와 엄마를 발견한 것이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사람과 교감이 부족한 반려동물로 여겨져 이런 에피소드들은 어쩌다 생긴 우연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지내본 사람들은 알 거다. 고양이들도 희노애락을 느낀다는 것을. 나의 고양이들도 자기를 특별히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집사를 따른다. 신기하게도 우리 세 가족에겐 각자 영혼의 파트너가 있다. 누군가가 슬퍼하면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 위로하는 듯한 행동도 보인다. 츤데레 같은 녀석들이다. 우연히 만난 고양이로 인해 삶이 바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양이로 삶이 바뀐 떠돌이 영국 가수 집사의 어깨 위에 올라가 거리의 주목을 끌었던 고양이 ‘밥’의 실화는 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주인공의 삶까지 바꾸었다. 영국에서 떠돌이 가수로 지내던 노숙자 제임스 보웬은 우연히 길고양이를 만났다. 의지할 데 없던 그에게 고양이 ‘밥’은 단 하나의 친구가 되면서 함께 지내게 된다. 노숙생활을 했기에 그는 고양이와 함께 다니며 거리공연을 했다. 밥과 함께 거리를 걸어가던 어느 날 사람들의 소동에 놀란 밥에게 제임스가 어깨를 내어주자 털썩 올라가 앉게 되며 제임스와 밥은 이 거리의 유명 인사가 된다. 밥과 제임스는 24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실화 같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기특하고 신기하고 부럽고 안쓰럽기도 했다. 특히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016)’ 에 주인공 ‘밥’ 고양이가 실제로 출연해 연기를 했다는 사실은 보면서도 믿기가 어려웠다. 아기를 안듯 살포시 들어 안기만 해도 발버둥치는 우리 고양이들이 새삼 서운하기도 했다. 밥과 함께 한 이야기는 제임스 보웬을 노숙자의 삶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고 그는 새 삶을 살게 됐다.화재에서 주인 목숨을 구한 ‘은냥이’ 경남 양산시에 있는 고양이 ‘야옹이’도 집에서든 밖에서든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개냥이다. 이 고양이가 특별한 이유는 주인의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냥이라는 거다. 어느 날 집에 큰 불이 났는데 하필 이날 주인은 만취한 상태로 정신없이 잠이 들었었다. 이 고양이는 문을 사정없이 긁으면서 큰 소리로 계속 울었고 주인은 깨어나 다행히 집 밖으로 나와 사고를 면했다. 큰 불길에 위험을 느꼈을테지만 피하지 않고 불길 안에서 온 몸이 그을릴 때까지 문을 긁어서 위험을 알린 일은 수의사도 놀라워했다. 수년 전 길에서 만난 이 고양이는 대퇴골이 완전히 골절된 상태로 집을 찾아왔고 두 부부는 정성껏 치료를 해주며 돌봤다고 한다. 그 고마움이 무척 컸던 모양이다.주인 무덤을 찾는 고양이 ‘톨도’ 2011년 9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3살된 고양이 ‘톨도’(Toldo)는 그를 키우던 주인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1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주인이 묻힌 무덤으로 성묘를 갔다. 생전 그의 주인을 무척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무덤에 가서는 나뭇잎, 막대기, 종이컵 등과 같은 것을 무덤 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묘에서 먹을 것을 가져가면 먹을 것을 물어서 무덤 앞에 두기도 했다. 톨도가 그렇게 무덤에 선물을 가져다 두는 것은 주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육식을 거부한 용흥사 ‘해탈이’ 경북 상주의 용흥사에서 지내던 ‘해탈보살’ 고양이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양이는 2020년 SBS 동물 농장에 ‘불심깊은 고양이 해탈이’로 소개됐다. 이곳 주지스님인 우성스님은 2006년 법당 근처에서 상처를 입고 떨고 있던 새끼고양이를 발견하고 정성껏 치료해주었다. 당시 스님은 해탈이를 데려오며 절에서 함께 지내기위해서 지켜야 할 규칙을 얘기했다. 그것은 ①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을 것 ②야옹하고 시끄럽게 울지 않을 것 ③살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3가지다. 주지스님을 따라 법당에 들어온 고양이는 방석 위에서 스님들과 함께 합장을 하듯 울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있기 시작했다. 보통 고양이들은 법당인지 아닌지 알 길없이 야옹대며 돌아다니기 일쑤다. 해탈이는 승복을 입고 두 앞발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몇 시간이든 방석 위에 앉아 있었고 법당에서는 소리없이 조용히 부처님을 쳐다보며 기도하듯 했다. 절밥을 먹어 익숙한 탓인지 외부에서 생선, 고기 등을 갖다 줘도 먹지 않는 모습은 신기했다. 산 속에 있는 쥐도, 많은 곤충들도 죽이지 않고 쫒으며 놀기만 해서 마치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기특한 해탈보살 고양이는 2013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사람의 감성을 지닌 고양이들 이 외에도 고양이의 보은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훈련이 가능한 개와는 달리 우리는 고양이를 교육시키기 보다 오히려 집사를 자청하며 고양이에게 맞춰준다. 아마 고양이들도 이 인간의 헌신을 알아주는 것이 아닐까. 고양이는 개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곁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이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고양이의 행동과 습성 등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진행중이다. 그들의 묘한 매력들은 집사들의 마음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호기심도 불태울 만큼 넘친다. 보면 볼수록 더 사랑스럽고 알면 알수록 더 아리송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늘도 나는 장난감을 든다.
  • 성북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 보러 오세요”

    성북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 보러 오세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집 ‘님의 침묵’ 1926년 초판본 등 서울 성북구를 구심점 삼아 활동한 걸출한 근현대 문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성북근현대문학관이 지난 19일 개관했다. 개관 특별전시에 포함된 님의 침묵 초판본은 지난해 2월 성북구청이 경매에서 1억 5100만원에 낙찰받아 국내 현대문학 서적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유족도 직접 소장하지 못한 초판본은 희귀 서적으로 꼽힌다. 개관식에는 한용운 선생의 딸 한영숙 여사, 외손자 정재홍씨,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빈 여사 등이 참석해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문학관의 시작을 축하했다. 정씨는 축시에서 “성북동을 빛낸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해본다”며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온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 속으로, 우리의 영혼이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는 시간여행을 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성북동 한 가운데 있는 성북근현대문학관은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 상허 이태준 작가 가옥이자 최근엔 한옥 카페로 유명한 ‘수연산방’, 간송미술관 등 여러 문화예술 현장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아담한 전시공간에는 조지훈, 염상섭, 김광섭 등 성북의 문인들을 다룬 상설전시와 만해 한용운 선생 관련 특별전시 ‘긔룬 것은 다 님이다’가 열린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이 구청장은 “성북은 근현대 문학인의 생활근거지이자 작품 속 무대였고 소통의 장이었다”며 “관련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 살아있는 문학 현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 왜 중국 공산당은 돌연 총리 기자회견을 취소했을까? [이철의 차이나 핀홀]

    왜 중국 공산당은 돌연 총리 기자회견을 취소했을까? [이철의 차이나 핀홀]

    <13> 中, 총리 회견 취소 미스터리해외매체-중국 지도부 간 유일통로‘개혁개방 전통’ 하루 아침에 폐지해외매체 중심 다양한 가능성 제기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이유 못찾아‘시진핑 3기’ 폐쇄성 상징 사건으로 중국이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큰 파장을 남겼다. 전통적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회 뒤 가졌던 국무원 총리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앞으로 수년 간 총리의 기자회견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필자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 결정이 갑자기 내려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미 중국대사인 셰펑은 관련 질문을 받고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홍콩 입법위원이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인 웡캄파이도 “그런 일이 있었나”라고 기자들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에서 숙의를 거쳐 나온 결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발표가 나오자 기자들 사이에서 “아!”하고 탄성이 나왔다고 한다. 기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회를 비롯해 중국의 지도자급 인사의 기자 회견은 기자들이 사전에 질문을 제출하고 관련 부처가 이를 조율해 준비된 답변을 읽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약속대련’(미리 약속된 방법으로 대결)이다. 돌발 질문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서구세계의 ‘각본 없는’ 기자회견보다 부담이 적다. 그럼에도 중국 국무원 총리의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이 뉴스는 지난해 말 열렸어야 할 제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가 아직도 열리지 않았다거나,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 내용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중국의 국방예산이 지난해보다 7% 넘게 증가하고 과학기술 예산도 10% 이상 늘어났다는 소식을 압도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표를 두고 ‘다른 뉴스를 덮기 위한 연막’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외신의 분석을 보자면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를 시진핑 권력 강화로 인한 총리의 위상 추락으로 평가했다. 한국 언론들도 대부분 이 관점을 그대로 수용해 전달하는 모양새다. 한 술 더떠 미국의소리(VoA)방송은 “시진핑이 리창을 모욕했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리창 총리의 권력 약화는 지난해 3월 ‘시진핑 3기’ 공식 출범 당시 ‘당이 정책 결정을 하고 국무원은 집행만 한다’는 원칙이 정해질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이미 중화권 언론에서 리창을 ‘역대 최약체 총리’로 평가하지 않는가. 약화된 총리의 위상을 굳이 ‘약속대련’ 형태의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면서 더 모양 빠지게 만들 이유는 없어 보인다. 총리의 위상을 더 낮추는 것이 공산당이나 시진핑 국가주석에 무슨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시장에도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중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양회의 총리 기자회견은 ‘외국과 중국 지도부 간 거의 유일한 직접 대화 통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 기업의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는 중국 정부가 총리의 기자 회견을 취소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필자는 중국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시진핑의 권력 강화나 총리의 위상 격하 같은 피상적 이유는 아닐 것으로 본다.다른 가능성을 살펴보자. 어떤 이들은 중국 정부가 이번 양회에서 현재의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갈 비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중국 정부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5% 안팎)가 실현 가능성이 낮다보니 리창 총리가 이에 부담을 느껴 기자회견을 접었다는 추측이다. 쉽게 말해서 리창이 올해 양회 발표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자신의 머리로 결정한 사안도 아니고 목표 달성 가능성도 높지 않기에 기자회견을 피했다는 것이다. 주요 경제 정책과 관련 인사를 논의하는 3중전회가 아직도 열리지 못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가 바탕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리창은 중국 내 ‘2인자’다. 정책 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의 올해 GDP 성장률 목표만 해도 ‘5% 내외’이지만 인플레이션 목표를 ‘3% 내외’로 잡은 것을 보면 이 둘을 합친 경상 성장률(명목 성장률)이 무려 8%에 달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는 것도 지금의 중국 현실에서 8% 성장이 쉽지 않은 도전 과제여서다. 그래서일까. 리창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입으로 정책 발표를 하면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리창이 정부 발표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는 추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중국 정부의 누적된 데이터 모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 통계가 문제가 많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전문가와 기관들이 꾸준히 지적해 온 문제다. 인구 통계 불일치와 실업률 통계 비판 등 중국 정부의 데이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최근 통계 데이터를 검증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 데이터가 오염되거나 왜곡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설이 나온다. 그래서 당분간 제대로 된 데이터를 공개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향후 수년간 총리가 기자 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아도 이들 데이터는 결국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외부로 노출되게 마련이다. 국가 통계를 수정하면 각 지방정부의 데이터도 모두 달라져야 하므로 조만간 누군가에게 지적당해 알려지게 돼 있다. 그래서 이런 추론 역시 신빙성이 크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리창이 시진핑 그룹의 정책 방향과 다른 주장을 펼치다가 충돌을 빚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리창은 시진핑에 ‘충성의 노래’를 불러온 사람이지만, 2022년 상하이 봉쇄 당시 시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등 자신만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가끔씩 독자 행보를 보이려는 리창의 태도에 격노(?)한 시진핑 그룹 쪽에서 마치 벌을 주듯 리창의 기자회견을 금지했다고 볼 수 있다. 총리의 기자회견을 취소할 결정을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시진핑뿐이다. 하지만 중국 내 정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리창이 시진핑 그룹의 의사에 반해 자기 주장을 펼치려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국무원 총리의 기자회견 돌연 취소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양회 기간에 연출됐다는 점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다른 가능성은 중국 공산당이 올해 정책 내용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폐막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 특파원들의 질문에 모호한 답변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향후 수 년간 총리의 기자회견이 없을 것이라는 선언도 당분간 정책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재 미중 관계나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태다. 중국이 대미·양안 전략에 쏟는 자원이 매우 커졌다. 대미·양안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세부사항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여러 프로젝트 내용은 이미 이번 양회 직전 각 지방에서 치러진 지방 양회에서 대부분 노출됐기에 이 가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필자가 생각하는 마지막 추측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 내 권력 투쟁이다. 중국 정부의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행정부 격인 국무원과 그 수장인 총리다. 과거보다 위상과 역할이 축소됐다고는 해도 총리의 권한과 이권은 여전히 크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리창과 차이치(서열 5위) 중앙판공실 주임 간 권력 투쟁에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고 나왔다. 이른바 ‘넘버2’ 자리를 둘러싼 암투다. 1997년 한국 영화 ‘넘버3’에서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두고 서태주(한석규 분)와 박재철(박상면)이 갈등한 것처럼 말이다. 시 주석을 포함한 7인의 상무위원회 직무 가운데 총리는 직접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자리다. 차이치가 맡고 있는 중앙판공실 주임은 시진핑의 비서실장이다. “몸과 마음뿐 아니라 영혼까지 시 주석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차이치의 시각에서 리창은 ‘한 번쯤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가정해 보면 굳이 총리 기자 회견을 없애고 수년 내에는 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당내에 ‘당신들이 줄을 서야 할 곳은 총리 집무실이 아니라 중앙판공실’이라고 신호를 보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권력 갈등을 이런 식으로 외부에 알리는 것이 과연 시진핑 3기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 또한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결국 필자는 이번 양회에서 중국 공산당이 총리의 기자 회견을 중단한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불투명성과 예측불가능성은 14억 중국 인민들과 중국을 바라보는 외국 기업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만의 운동장에서 그들만의 논리로 돌아가는’ 중국이라면 결코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이번 양회는 중국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전차군단, 전통의 삼선 유니폼 대신 나이키 입는다

    전차군단, 전통의 삼선 유니폼 대신 나이키 입는다

    ‘전차군단’ 독일 축구가 자국 브랜드 아디다스 대신 아디다스의 라이벌이자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 유니폼을 입고 2030년, 2034년 월드컵 무대를 누빈다. 독일축구협회(DFB)는 22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7년부터 8년 동안 나이키와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발표했다. DFB는 70년가량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베른트 노이엔도르프 DFB 회장은 “나이키와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독일 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 핵심 업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6년 12월까지는 독일 축구가 70년 이상 많은 빚을 진 오랜 파트너 아디다스와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DFB가 아디다스와 결별하는 것은 돈 문제 때문이다. DFB는 나이키로부터 기존 아디다스의 지원 규모의 두 배인 연간 1억 유로(1455억)를 받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DFB의 이번 결정에 대해 독일 정치권은 맹비난을 하고 나섰다. 로버트 하벡 경제부 장관은 “애국심을 발휘해야 했다”면서 “세 개의 줄무늬가 없는 독일 대표팀 유니폼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고, 칼 라우터바흐 보건부 장관은 “잘못된 결정”이라며 “전통과 영혼을 붕괴시키는 상업적인 선택”이라며 비판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DFB는 “엄청난 사건에 대한 격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2만 4000개 이상의 축구 클럽, 220만 명의 현역 선수, 5만 5000명의 심판 등을 지원하는 우리로서는 재정적인 조건을 고려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이키가 최고의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독일은 24일 프랑스와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프랑스는 나이키 유니폼을 입고 있다
  • 김혜순 ‘날개 환상통’,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韓 작품 최초(종합)

    김혜순 ‘날개 환상통’,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韓 작품 최초(종합)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 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 문학 작품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개최한 ‘2023 NBCC 어워즈’에서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인 ‘팬텀 페인 윙즈’(Phantom Pain Wings)를 시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김 시인과 번역가인 최돈미 시인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을 대신해 참석한 뉴디렉션퍼블리싱의 편집자 제프리 양은 “젠더는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시집은 최돈미 시인과 함께 썼기에 그녀와 함께 상을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김 시인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 시인은 22일 ‘날개 환상통’을 펴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전혀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다. 아시아 여자에게 상을 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훌륭한 번역으로 오래 함께해온 최돈미 씨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시인의 시집은 ‘모든 영혼들’(새스키아 해밀턴), ‘무뢰한들의 모임’(로미오 오리오건), ‘안내 데스크’(로빈 시프), ‘미세 증거’(샤리프 새너헌) 등 4개의 경쟁작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 부문 최종후보작 5개 가운데 유일한 번역 시집이기도 했다.‘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이 등단 40주년을 맞던 지난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열세 번째 시집으로 그의 전작 시집인 ‘불쌍한 사랑 기계’,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죽음의 자서전’ 등을 영어로 옮겼던 한국계 미국인인 최 시인의 번역으로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후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말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 포함되기도 했다. 시집은 한국문학번역원의 ‘해외출판사 번역출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날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에는 시 번역의 어려움으로 우리 문학 작품이 국제상을 수상하는 것은 먼일처럼 느껴졌었다”며 “김 시인은 이미 시 부문에서 국제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하며 문화적 장벽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하고 있다. 국제상 입후보·수상 소식이 늘어난 것은 최 시인처럼 양질의 번역을 할 수 있는 번역가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고 짚었다.번역원은 이처럼 양질의 번역가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꾸준히 만들기 위해 번역가 양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할 계획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미국의 언론·출판계에 종사하는 도서평론가들이 1974년 뉴욕에서 창설한 비영리 단체로, 1975년부터 매년 그 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영어로 쓰인 최고의 책을 선정해 시·소설·논픽션·전기·번역서 등 부문 별로 상을 수여한다.
  • 김혜순 ‘날개 환상통’,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韓 작품 최초

    김혜순 ‘날개 환상통’,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韓 작품 최초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 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 문학 작품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개최한 ‘2023 NBCC 어워즈’에서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인 ‘팬텀 페인 윙즈’(Phantom Pain Wings)를 시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김 시인과 번역가인 최돈미 시인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을 대신해 참석한 뉴디렉션퍼블리싱의 편집자 제프리 양은 “젠더는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시집은 최돈미 시인과 함께 썼기에 그녀와 함께 상을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김 시인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 시인의 시집은 ‘모든 영혼들’(새스키아 해밀턴), ‘무뢰한들의 모임’(로미오 오리오건), ‘안내 데스크’(로빈 시프), ‘미세 증거’(샤리프 새너헌) 등 4개의 경쟁작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 부문 최종후보작 5개 가운데 유일한 번역 시집이기도 했다.‘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이 등단 40주년을 맞던 지난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열세 번째 시집으로 그의 전작 시집인 ‘불쌍한 사랑 기계’,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죽음의 자서전’ 등을 영어로 옮겼던 한국계 미국인인 최 시인의 번역으로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후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말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 포함되기도 했다. 시집은 한국문학번역원의 ‘해외출판사 번역출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22일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에는 시 번역의 어려움으로 우리 문학 작품이 국제상을 수상하는 것은 먼일처럼 느껴졌었다”며 “김 시인은 이미 시 부문에서 국제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하며 문화적 장벽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하고 있다. 국제상 입후보·수상 소식이 늘어난 것은 최 시인처럼 양질의 번역을 할 수 있는 번역가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고 짚었다.번역원은 이처럼 양질의 번역가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꾸준히 만들기 위해 번역가 양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할 계획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미국의 언론·출판계에 종사하는 도서평론가들이 1974년 뉴욕에서 창설한 비영리 단체로, 1975년부터 매년 그 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영어로 쓰인 최고의 책을 선정해 시·소설·논픽션·전기·번역서 등 부문 별로 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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