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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4) 자연적 사실주의의 인식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4) 자연적 사실주의의 인식

    지난주에 인격적 정신주의에 대한 철학적 문제점이 논의되었다. 그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인격적 정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주재한다면, 세상은 그 인격이 쓴 책과 같다. 그런 경우 세상의 그 숱한 역사적 무의미와 부조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그 인격적 정신이 절대적이라면, 그 정신은 자기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부가 분열되지 않는 절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정신의 인간적 주체인 의식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지난번 글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인격적 정신주의에 대하여 자연적 사실주의는 세상을 책으로 보지 않는다. 해체철학자 데리다는 세상을 책이 아닌 ‘텍스트’(text)라고 규명했다. 여기서 ‘텍스트’는 흔히 말하는 교재의 뜻이 아니다.‘텍스트’는 직물(textile)과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단지 책과 대비하기 위하여 데리다가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데리다는 그의 저서인 ‘표지학(문자학)’에서 유명한 명제를 던진다.“텍스트 바깥은 없다.” 저 구절은 이 세상이 온통 가로 세로 실이 엮어지면서 천짜기(텍스트)를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차연(差延=differance)의 법칙만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차연의 의미를 몇 차례(14·26·27·30회 글) 설명했으므로 여기서 더 설명하지 않겠다. 간단히 예시하자면, 부부로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르지만 제각각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남편 속에 아내의 흔적이 연기 또는 연장되어 있고, 그 역도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 차연적 세상보기다. 세상이 다 그런 상관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사가 일방적으로만 결정되지 않고 다 작용과 반작용이 함께 왕래하므로 일방은 100% 옳고, 타방은 100% 그르다고 흑백으로 결판내릴 수 없는 셈이다. 그리고 세상에 순수와 비(非)순수가 선명하게 쪼개지지도 않는다. 순수와 비순수는 서로 연기법처럼 얽혀 있어서 순수와 비순수가 노자가 말한 화광동진(和光同塵=빛과 먼지가 서로 뒤엉켜 있음)처럼 뒤엉켜 있다. 인격적 정신주의는 말과 소리를 매우 귀하게 여기고 문자를 천시한다고 지난번 지적됐다. 말과 소리는 신과 영혼의 내면적 일치를 표현하는 인격적 정신의 영역인데, 문자는 외적 정보만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적 사실주의는 문자(writing)나 표지(mark)를 말소리(speech & voice)보다 더 진리의 본질에 적합하다고 여긴다. 말소리는 단가적이다. 내가 진실을 말하든지, 거짓을 말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문자나 표지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알린다. 즉 문자와 표지는 차연과 천짜기처럼 이중적이다. 종이 위에 내가 줄을 그으면, 거기에 대뜸 차이가 나누어진다. 하나의 종이에 두 공간이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원효대사가 자주 쓰던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두 공간이 중간의 선으로 말미암아 생겼지만, 그 두 공간은 서로 상대방이 있기에 자기가 성립하는 그런 차연의 상관성과 같다. 도장의 양각과 음각도 이중적 현상이지만, 그 두 개가 완연히 이원론적으로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긴 줄과 짧은 줄도 서로 상관적이므로 한 사실의 이중성이다. 일방이 없으면 타방도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인간들의 자기중심적 이기심 때문에 자기 것만 보려고 하지만, 자연의 사실은 늘 이처럼 이중성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상생과 상극은 자연의 생명세계에서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상생현상을 보면 상극현상이 뒤에 숨어 있기에 비동시적이나, 상생은 상극과 늘 함께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죽음을 초래하는 상극은 늘 삶의 생기를 촉진하는 상생을 가능케 한다. 삶과 죽음이 비동시적이지만, 동시적으로 상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자연적 사실이다. 자연적 사실은 문자(writing=이것을 ‘글쓰기’로 잘못 생각하는 학계의 풍조가 있음)나 표지처럼 같음(同)과 다름(異)이 서로 의지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32회 글) 의타기적(依他起的=다른 것에 의거해서 생김)인 차연적 사실과 유사하다. 그런데 그 문자를 또 ‘글자’(letter)와 같은 의미로 좁게 읽어서도 안 된다. 씌어진 모든 흔적과 표지를 데리다가 문자나 문자학(표지학=grammatology)으로 사용하고 있다. 말소리 대신에 문자나 표지가 해체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주의 자연적 사실을 상징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엇이 사실인가 하는 철학적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보통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만을 연상한다. 객관적 사실이외에 자연적 사실이 있다. 하이데거가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위적 사실’(arte-fact)과 자연적 사실(fact)을 구분했다. 전자는 어떤 데이터를 얻기 위하여 제한된 시공의 범위 안에서 일어난 일과 행위의 결과를 제3자적 입장에서 검토해 보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사건을 인위적으로 제한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사건을 일체 세상사와의 연관 구조 아래서 함께 읽는 태도를 말한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경찰관은 제한된 시공 안에서만 일어난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동을 가리고 교통법의 위반여부를 조사한다. 이것이 인위적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적 사실은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한 모든 직간접적인 원인들, 즉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제반사항 등의 연관관계를 다 보는 사고방식이다. 자연적 사실은 사법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기 위한 행정적 조치로써는 전혀 쓸모가 없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다 얽혀 있다는 일체 연관의 사유방식으로는 세상사를 판단할 수 없다. 세상사의 일체 연관구조는 자연적 사실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예컨대 남미의 자연적 사실이 남미의 것으로 제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 차원의 충격으로 다가오고, 이것이 또 다른 행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 같다. 사법적 판결은 시비고리의 문제를 푸는 제한적이고 인위적 제도지만, 그런 판단의 진리가 전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길이 아님을 자연적 사실주의가 말하려 한다. 사법적 판결은 인격적 독립성의 실체를 인정하는 가설에서 출발한 제도다. 저 제도가 인격적 정신주의의 문명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동안 인격적 정신주의 철학은 판단으로 진리가 구성된다고 주장해 왔다. 전통적 서양철학의 진리론은 곧 판단론이었다. 이것은 동양의 주자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도덕판단을 통해서 선악 시비를 가리고, 악의 교정을 도덕의지가 수행해야 한다고 서양의 도덕철학과 주자학은 다 역설해 왔다. 모든 판단적 진리는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한 사유에서 파생됐다. 진리의 절대성은 절대적 선과 호환되므로 진리와 선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사유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에 의지해서 불순한 사회악을 도려내야 한다. 철학적 판단론은 외과적 수술론과 같다. 정사(正邪)와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의 절대성이 없으면, 판단이 의지해야 할 권위가 사라진다. 순수성(절대성, 불변성)은 판단적 진리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자연적 사실주의는 그런 순수성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20세기 프랑스의 시인 발레리가 정신의 순수성을 찾으러 모든 철학적 노력을 경주했다. 그가 순수성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하면 할수록, 원초적 순수가 있기는 커녕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의하여 이미 매개되어 있음을 느꼈다. 나라는 의식은 너라는 것이 있기에 생겼고, 나(I)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는 커녕 나자신(myself)과 어떤 간격을 늘 운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차이에 불과함을 시인 발레리는 깨달았다. 순수가 허상이고 낭만적 환상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자연적 사실주의는 절대주의가 철학적 신화라는 것을 폭로한다. 전체주의와 사회주의는 국가전체와 사회공동체를 각각 다 대표하는 불변의 유일한 진리로서의 절대선이 있다고 믿는 점에서, 이들 사상은 순수주의적 절대주의의 신화에 현혹된 허상이라고 자연적 사실주의는 생각한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절대주의를 다소 부드럽게 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상대주의이므로 유일 절대주의의 허상을 떨쳐버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들 사상도 상대주의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기실 다양한 개인적 절대주의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경연장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갈망하므로, 나를 절대시하는 자아성의 철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말소리와 달리 문자표지가 세상을 동시적 이중성으로 보게 하듯이, 세상은 노자가 말한 바처럼 ‘화광동진’이다. 세상은 늘 명/암(明/暗), 정/염(淨/染), 선/악(善/惡), 약/독(藥/毒) 등이 직물처럼 한 쌍으로 짜여져 있다. 이것은 흔히 쉽게 생각하듯이 암/염/악/독(暗/染/惡/毒) 등의 국면을 어쩔 수 없이 용인하자는 패배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세상이 진리의지와 선의지의 판단으로 정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깨끗한 빛은 더러운 먼지가 있음으로 반사되어 빛난다. 세상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선택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젠 체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일체 자연의 사실처럼 사실의 이중성을 다 수용하고, 그러면서 그 이중적 가치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지 않고 초탈하면, 세상은 이미 그리고 늘 공평무사하게 있어왔다는 것이다. 밝음에 집착하는 이는 밝음을 좋아해도 자기를 못 보는 청맹과니가 되고, 깨끗함에 집착하는 이는 그 깨끗함으로 인하여 고고한 귀족주의에 젖게 되고, 선에 집착하는 이는 그 선을 감당하지 못해 위선이 되고, 약에 집착하는 이는 그 약으로 죽는다. 그래서 자연적 사실주의는 가치의 양가성을 수용하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일체개공(一切皆空=모든 것이 다 공임)의 진리를 터득한다. 데리다가 그의 저서 ‘산종’(散種)에서 세상이란 텍스트(직물)가 ‘파르마콘’(pharmkon=약이 곧 독)의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또한 그 ‘파르마콘’이 ‘코라’(khora=빈 공간)를 자궁으로 해서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처럼 언급한 것은 세상을 ‘파르마콘’의 이중적 존재와 ‘코라’의 공(空)사상으로 읽기를 종용하는 것이겠다. 공은 절대주의적 진리의 해체를 뜻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손원천기자의 배낭 둘러메Go!] 평창 기화천 플라이낚시

    [손원천기자의 배낭 둘러메Go!] 평창 기화천 플라이낚시

    ‘맑은 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항구성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플라이낚시는 항상 거기 있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결같은 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위에서 캐스팅하는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50년 경력의 베테랑 낚시꾼인 폴 퀸네트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라는 책에 쓴 플라이 낚시 예찬론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명수가 없다.‘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물고기를 잡았는가를 겨루지 않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출발해서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저 대자연의 품속에서 한나절 놀다 오면 그뿐. 송어 플라이 낚시의 메카, 강원도 평창의 기화천을 다녀왔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아침햇살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부챗살처럼 퍼져가는 미국 몬태나 주 빅블랙풋 강변. 폴(브래드 피트)이 낚싯대를 치켜들자 S자 형태로 허공을 가르던 낚싯줄이 이내 미끼를 수면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지난 1993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 개봉 이후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플라이 낚시가 일반인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됐다. # 플라이 낚시는? 두껍고 무거운 라인(낚싯줄)을 캐스팅을 통해 원하는 곳까지 날려보낸 다음 가짜미끼인 플라이훅으로 물고기를 잡는 낚시다.미끼를 원하는 곳까지 던지는 것을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플라이 낚시를 독특한 낚시장르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 털바늘 미끼를 원하는 곳까지 보내기 위해 무거운 줄을 날리는 독특한 캐스팅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캐스팅만으로 플라이 낚시에 매력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매끄럽고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라인을 볼 때면 이세상 어느 춤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평창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42번국도변에 위치한 기화천. 벌써 가을인가 싶을 만치 제법 서늘한 새벽공기가 이방인들을 맞았다. 울뚝불뚝 솟은 산자락,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 농촌의 새벽풍경은 언제봐도 고즈넉하다. 얼음장처럼 찬 기화천은 냉수성 어종인 송어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춘데다, 주변에 송어양식장도 많아 대표적인 송어낚시 메카로 알려져 있다. 포인트에 도착해 물속상황을 체크하던 박영환(44) 낚시광(www.fishmania.net)대표와 프로스태프인 김병남(41)씨가 능숙한 솜씨로 웨이더(방수바지)와 조끼, 계류화(미끄럼방지 신발)등으로 갈아입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 플라이낚시가 도입된 초창기부터 20년 넘게 활동한 베테랑 플라이 피셔.10년 경력의 김 프로와는 사제지간이다. # 타잉과 캐스팅이 플라이 낚시의 묘미 “미끼 선택부터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2번로드에 고동색 계열의 드라이(물위에 뜨는 미끼)를 세팅한 박 대표는 “송어의 먹잇감인 수서곤충의 우화과정을 눈여겨보았다가, 비슷한 색상과 모양의 미끼를 선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플라이 낚시인들은 대부분 미끼를 스스로 만든다. 이 과정을 ‘타잉’이라고 부르는데, 캐스팅·피싱 등과 함께 플라이 낚시의 3대 묘미를 이룬다. 박 대표도 플라이 낚시 입문시절에는 “지나가던 사람이 낀 앙골라 장갑이나 털목도리만 봐도 타잉이 생각났다.”고 할 만큼 타잉이 주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시리릿∼소리를 내며 낚싯대 가이드를 통과한 라인이 새벽안개를 뚫고 계곡사이에 잔잔한 공명을 남겼다. 바닥이 훤히 비칠 만큼 맑고 깨끗한 여울앞에 멈춰선 박 대표가 마치 리본체조를 하듯 유려한 자세로 라인을 날렸다. 캐스팅한 다음에 라인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액션을 주기도 했다. 그는 “여울에는 산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물고기가 있을 확률이 높다.”며 “소를 이루는 여울의 꼬리부분, 수온이 높을 경우 수심이 깊은 곳, 돌무더기 뒤의 와류가 생기는 곳 등을 빼놓지 말고 탐색할 것”을 주문했다. 화려한 색보다는 카키색 계열의 옷을 입고, 하류에서 상류로 탐색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플라이 낚시의 기본. 고기의 시야각을 피하기 위해 낮은 포복자세로 포인트에 접근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연과 하나됨을 즐긴다 물살을 가르고 바위를 넘으며 1㎞남짓한 계곡을 오르자니 운동량이 상당하다. 어지간한 산 하나를 트레킹한 듯하다. 그동안 잡은 것은 갈겨니 몇마리와 송어새끼 두어수. 그러나 일행의 얼굴 어디서도 안달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한순간 박 대표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졌다. 끌려나오지 않으려 앙탈을 부리던 녀석은 15㎝ 남짓한 산천어. 모처럼 박 대표의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번져갔다. 조심스레 아가리에서 바늘(미늘이 없다)을 뺀 다음 곧바로 방류. 물고기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머리를 상류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른바 ‘캐치 앤드 릴리즈(catch & release)’다. 이 장면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오버랩된다.“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플라이낚시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가 브래드 피트에게 플라이 낚시를 가르친 이유는 뭘까. 자연과 한몸이 되는 플라이 낚시를 통해 진정한 삶을 깨달으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브래드 피트가 멋지게 라인을 날리던 몬태나주의 빅 베어풋 강변이 아니더라도 대자연의 품속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돌아오는 길이 빈손인들 또 어떠리. Tip ‘일몰전 3시간 일출후 3시간’ 노려라 얼음만 얼지 않는다면 사계절 즐길 수 있는 플라이 낚시. 많이 잡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만, 대상어에 따라 출조지를 정해야 녀석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올 수 있다. 또 어떤 곳에서건 물고기의 입질이 가장 활발한 일몰전 3시간, 일출 후 3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음은 박영환씨가 추천하는 전국의 유명 포인트.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흐르는 계류에는 산천어, 오른쪽에는 열목어가 주로 서식하고 있다. 왼쪽, 즉 영동지방의 주요 포인트로는 강원도 간성의 북천, 양양의 오색천·갈천·어성천, 주문진의 연곡천, 삼척의 대이리 계곡 등이 있다. 영서지방에는 내린천이 있는 인제와 현리 등이 많이 알려진 포인트. 강계에서는 끄리·강준치·눈불개 등이 주대상어들이다. 끄리는 금강, 강준치는 충북 삼탄, 눈불개는 대청댐 밑에서 주로 잡는다. 박영환씨가 운영하는 피싱숍 낚시광에서는 수시로 플라이 낚시출조 행사를 벌인다. 초보자도 참여할 수 있다.(031)717-7072,716-7555.
  • [길섶에서] 가을편지/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친구에게서 또 편지가 날아왔다. 외국 나가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서울 하늘을 이고 사는데, 그리고 두어달에 한번쯤은 만나 술잔을 나누는데 이 ‘나이 든 문학소년’은 여전히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는 그 흔한 인사말 한토막 없이 김현승 님의 시 ‘가을의 기도’만 달랑 들어 있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요 며칠 하늘이 높고 푸르더니만 이 녀석 ‘가을병’이 도졌구먼, 하고 픽 웃고 말았지만 가슴 한 구석은 어느새 뜨끈해졌다. 그래, 이 시 한 수면 됐지, 다른 안부 물을 필요 뭐 있겠나. 올가을은 친구 편지에 실려 슬며시 다가왔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가슴속 그림한폭] 박종석 ‘성산 카일라스’/엄홍길 산악인

    [가슴속 그림한폭] 박종석 ‘성산 카일라스’/엄홍길 산악인

    국내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엄홍길. 얼굴은 부드럽지만 몸은 강인하다. 허벅지 인대가 당긴다며 몇 초도 앉아있질 못한다. 거실을 순례하듯 서성인다. 낭가파르바트(8125m,1999년 정복) 원정 때에 썩어 수술했다는 발가락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벽면에 박종석 화백의 그림. 카일라스라는 티베트의 성산 앞에 티베트식 고둥이 놓여있다. 히말라야의 밤엔 이 그림처럼 별이 쏟아지죠. 온갖 상상을 허락하는 유일한 곳. 팔베개를 하고 잠들기 전. 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합니다.‘수백만년 전 히밀라야는 바다였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라를 집어들면… 신만이 살던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원주민들의 말대로 순례를 마치면 영겁의 죄가 정화되려나… 그리고 산에서 영원히 쉬는 동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을, 내 죽음도 내 영혼 한구석에 살고….’ 오르는 길은‘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그림의 포근함은 어쩌면 위기에 대한 복선입니다. 신은 쉽게 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칸첸중가(8586m,2000년 정복)에선 산소가 거의 없어진 8500m 이상에서 비부아크(노숙)를 했죠. 곳곳엔 크레바스가 노리고 있고, 눈사태를 만나는 건 비일비재합니다. 안나푸르나(8091m,1999년 정복) 원정 땐 발목이 돌아가 산행 마감선고도 받았고…. 하지만 정작 오를 땐 위험도 죽음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무당이 작두를 타듯 오직 정상에 미쳐 있죠. 동료는 시련을 참아내는 인내뿐입니다. 정상을 정복한 기분? 기쁩니다. 잠시후 준비하고 올라온 과정을 돌아보며 허탈해지고, 곧 하산이 걱정되죠. 단 1%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오를 때와 마찬가지의 위험이 있고 여기서 죽는다면 정상 정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탈진 상태이기 일쑤이고 정신없이 끌려서 내려옵니다. 생각이란 단지 감사하다는 것뿐. 정상을 허락한 신과 자연과 동료와 후원자와 친구에게…. 나 혼자가 무어 대단했겠습니까. 그림처럼 그들이 별이 되어 하늘에 떠오면 카일라스산을 향해 마음속 고둥을 붑니다.‘나는 산이고 산은 나이니 어찌 다시 오르지 않겠는가.’ 난 그래서 산을 오릅니다. 내 젊은 날의 목표였던 14좌를 오르고 한동안은 기쁘고 한동안은 허탈했죠. 하지만 곧 내 존재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등반 목표를 세우고 또 새로운 일도 시작했죠. 상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목표를 세우고 인내를 가지고 성취하는 것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과 팀워크의 중요성들을 얘기합니다. 그 와중에 짬이 나서 거실에 앉으면, 이 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내년 봄엔 돌아가야지. 내 마음의 고향.’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록·재즈와 함께하는 가을스케치

    록·재즈와 함께하는 가을스케치

    록, 재즈, 뉴웨이브, 그리고 가요…. 초가을 9월을 맞아 다채로운 음악들이 팬들을 찾아간다. 우선 데뷔 30주년을 맞은 ‘블론디(Blondie)’의 내한공연이 눈길을 끈다.‘Heart of glass’,‘Call me’ 등 소위 ‘롤러장 음악’으로 유명한 뉴웨이브 펑크 록그룹. 원년 멤버 모두가 참여하는 이번 공연은 ‘블론디’란 이름으로 벌이는 첫 내한공연이자 은퇴공연이 될 듯하다.7080세대라면 1970∼80년대의 대표적인 섹스심벌 데보라 해리(보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설렐 법도 하다. 오는 9월 1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02)6402-4636. ‘타협하지 않는 영혼’ 임재범의 데뷔 20주년 콘서트 ‘비상’이 뒤를 잇는다.9월16∼17일 이틀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파트Ⅰ,Ⅱ로 나뉘어 각기 다른 노래들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 파트Ⅰ(16일)은 1986∼1996년 사이, 파트Ⅱ(17일)는 1997년∼현재까지 발표한 앨범 수록곡 위주로 공연을 펼친다.2일 패키지 티켓을 구입하면 할인혜택을 받는다.(02)527-3950.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 오페라 ‘해피엔딩 카르멘’과 포르투갈 민속음악인 파두(fado)가수 마리자의 공연이 각각 2일과 21일 열린다.22일엔 영국의 4인조 남성 아카펠라 그룹 칸타빌레의 첫 내한공연이 마련돼 있다.(02)2005-0114. 야외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9월21∼24일 경기도 가평에서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재즈 스테이지, 파티 스테이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031)581-2813∼4.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3) 인격적 정신주의의 철학적 문제점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3) 인격적 정신주의의 철학적 문제점

    세상의 근본진리가 인격적이라고 보는 철학과 자연적이라고 보는 철학이 각각 있다. 전자는 세상의 근본진리가 신과 인간의 정신에 의하여 현재적으로 늘 창조되는 것으로 여기는 정신주의와 상통하고, 후자는 세상의 근본진리가 자연적 필연성의 법칙으로 생기하고 소멸하는 세상의 여여한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주의를 천명한다. 진리의 인격성을 주장하는 정신주의 철학은 세상의 근본적 진리를 창조하는 인격적 저자가 있고, 그 저자의 의도에 의하여 진리가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고 본다. 신은 정신이고 정신은 인격이며, 인간의 정신도 인격이고 그 정신적 인격은 인간의 영혼을 통하여 신의 인격과 접목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주의에서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인격적 정신이 쓰고 있는 책과 같다. 세상은 인격적 정신이 쓰고 있는 책과 같아서 이 책의 줄거리가 역사의 전개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18~19세기 독일의 헤겔은 신과 같은 절대정신이 자기 스스로 구체적인 역사의 시대정신으로 각각 구현했다가 종국적으로 자기의 절대정신으로 자각되어 되돌아오는 과정을 역사로 보았다. 이 헤겔의 정신주의는 능동적으로 말하는 절대정신과 각 역사시대를 통하여 수동적으로 말하여진 시대정신과의 통사적 일치를 겨냥하고 있다. 헤겔이 본 세상은 신과 같은 절대정신이 저자로서 자기 스스로 쓴 자기 역사책과 다르지 않다. 인격적 정신주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정신과 영혼과 의식의 관계를 잠시 설명한다. 정신은 보다 신학적 개념이고, 영혼은 정신이 인간학적 의미로 하강한 것이고, 의식은 영혼이란 종교적 의미를 철학적 사고의 주체로 변용한 것이다. 정신, 영혼, 의식의 개념을 중시하는 철학을 나는 인격적 정신주의라고 부르겠다. 인격적 정신주의와 다른 자연적 사실주의를 다음주에 언급하겠다. 정신주의의 철학전통은 서구에서 오래되었다. 독일의 하이데거가 그의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지적했듯이, 정신주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소크라테스부터 휴머니즘의 전통이 생기면서 흥기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이전의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통적으로 영혼과 이성의 위대함을 아주 높인 정신주의 철학을 펼쳤다.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지고의 진리로 여겼던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인 ‘파이드로스’에서 스승 소크라테스가 씌어진 문자와 같은 기록을 죽은 정신 또는 소피스트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판매하려는 지식으로 경멸하고, 오직 살아 있는 영혼의 숨결이 담긴 말의 대화를 진실한 정신으로 여기고 있다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문자기록은 밖에서 들어온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이기에 영혼의 내면적 자각이 없는 죽은 지식임에 반하여, 우리 영혼의 내면적 목소리인 말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의 얼이 살아 있다고 플라톤은 스승의 입을 빌려 말한다. 이런 말 중시의 정신주의가 기독교의 ‘말씀’(logos)의 신학과 결부되어 말의 진리는 서양 정신주의 철학의 인격성을 더욱 더 두드러지게 했다. 이 말의 진리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결부되었다. 정신주의 철학이 도덕을 말할 때에 신의 말을 대변하는 내면적 영혼의 말로서 양심의 소리를 인격의 중심으로 등장시켰고, 또 정신주의 철학이 지식을 설파할 때에 그것은 이성의 논리를 지고의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이성의 법칙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정신주의 철학에서 신은 곧 이성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이성이 인격적 정신주의 신학의 생명이었다. 프랑스의 해체 철학자 데리다는 이 정신주의를 말씀중심주의(logocentrism), 소리중심주의(phonocentrism)라고 그의 저서 ‘표지와 차이’에서 비판적으로 기술했다. 정신주의는 나의 인격과 신의 인격이 내면의 성역인 영혼에서 만나서 신의 말씀을 내가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내면적 일치의 형이상학이므로, 그런 인격적 정신주의는 ‘스스로 말하는 것을 듣기’(hearing oneself speak)의 철학에 다름 아니라고 데리다는 지적했다. 신의 말씀이 나의 영혼의 말과 동일하고 내가 그 말을 듣는 것이다. 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듣기’의 철학이 강한 ‘자가애정’(auto-affection)의 사상을 잉태하면서 자기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심리를 낳았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독일의 20세기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출발시켰다. 그런 그가 후설이 절대적 진리의 명증성을 내면적 의식의 자기동일성인 ‘생각하는 의식’(noesis)과 ‘생각되는 의식’(noema)과의 현존적(현재적으로 존재하는) 일치에서 발견하여 보려고 시도했으나, 완전히 실패했다고 그의 저서인 ‘목소리와 현상’에서 논파했다. 그래서 그는 후설을 떠났다. 의식의 자기동일성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생생한 현재의 시각에서 신과 영혼과의 합일처럼 또는 헤겔이 겨냥한 절대정신과 역사와의 합일처럼 명징하게 입증되어야 하는데, 후설은 그런 현재적 시각에서 ‘스스로 말하는 것을 듣기’와 같은 자기일치의 명증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예감했다고 데리다는 생각했다. 자의식의 자기동일성이 정신주의 철학의 환상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소견이다. 후설도 이 환상을 극복하기 위해 신과 인간이 만나듯 ‘생각하는 의식’과 ‘생각되는 의식’이 순수하게 일치된 의식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헛수고했다는 것이다. 후설이 찾고자 한 의식의 자기동일성은 순수지금이라는 생생한 영혼의 현재적 시각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 순수지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고, 지금이라는 시각은 사실상 시간적으로 조금 전의 내 생각과 조금 뒤의 내 생각과의 사이에 낀 간격과 차이에서 생기는 쉼표와 같은 빈 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데리다의 소론이다. 말하자면 순수 현재적 시각이라는 것은 하나의 환상인 셈이다. 순수 현재의 한 점으로서의 지금 이 시각인 ‘딱’하는 순간도 내가 의식하는 순간에 그것은 이미 조금 흘러간 과거에 해당한다. 기독교 신학과 후설의 현상학이 귀중하게 여기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는 순수 현존적 시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 시각은 실존하는 시각이 아니라 의식이 근접과거로부터 다시 당기는 기억(retention)과 근접미래로부터 미리 당기는 예상(protention)과의 사이에 있는 차이와 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기동일성의 절대적 근원을 찾기 위한 순수지금이 정신과 영혼과 의식의 자기동일성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의식의 자기동일성이라는 것은 무수한 차이들과 간격들의 연속에 불과한 셈이다. 데리다가 지적한 후설의 자기동일성 착각은 불교의 유식학이 말하는 바처럼 폭류처럼 빨리, 거세게 물이 흐를 때에 기실 앞 물과 뒷 물이 다른 물인 줄 모르고 동일한 물의 흐름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물의 흐름이나 의식의 흐름도 순간적으로 표변하고 달라지는데, 마치 영화필름처럼 각각 다른 장면들을 빨리 돌리면 연속으로 동일한 것이 흐른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데리다가 분석한 것은 의식이 동일하게 지속하기는커녕 찰나찰나 무상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물도 같은 물이 흐르지 않고 새 인연을 찰나적으로 만나면서 앞 물과 단절되지만 워낙 빠르게 흐르니까 연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자기동일적 정신주의의 근거를 찾기 위한 후설의 현상학적 모색이 결국 그 근거를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고 데리다가 진단했다. 그러나 정신주의는 후설의 실패로 막을 내리지 않았다. 정신의 인간학적 샘터인 인격과 영혼의 자기동일성을 사랑하는 낭만주의 철학이 서구사회에서 워낙 강하게 남아 있어서 하루아침에 정신과 인격의 동일성 근거가 무너졌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겠다. 그러나 지금 해체주의의 등장으로 인격적 정신주의의 철학이 서구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즉 불변적 인격정신과 그 정신의 인간학적 현상인 영혼이라는 인격적 존재자(存在者)가 있다는 믿음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격적 정신주의는 자기 영혼과 이성이 자기 안에서 정신적으로 분비한 자기의 목소리 듣기처럼 강력한 인격적 자가애정의 자부심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영혼의 내면적 말은 나의 자의적인 말이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신의 말과 같고 그것이 논리적 이성의 법칙에 타당한 소리이기에 정신과 영혼의 이성적 말과 소리는 보편적 의식의 자기동일성을 현재에서 줄곧 창조하고 표현하는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의식의 자기동일성이 곧 절대진리가 된다. 데리다는 인격적 정신주의는 서구의 역사에서 늘 절대진리의 추구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온 역사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 역사와 서구 지성이 굳세게 견지하고 있는 배타적 자가애정의 원천이 되는 ‘백색신화’(white mythology)의 뿌리이다. 정신주의가 귀하게 여겨온 영혼의 말과 소리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표현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밖에 비가 온다.’라고 말하면, 내 말은 참과 거짓 중에 하나가 된다. 즉 내가 참을 말했든지, 아니면 거짓을 말했든지 둘 중의 하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양면을 다 고려하는 이중성의 생각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즉 인격적 정신주의가 이끄는 철학은 이성주의가 언표하는 양자택일적 판단의 양식과 다르지 않다. 인격의 정신은 선하든지 악하든지, 참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의 하나로 귀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주의적 진리를 신봉하는 인격적 정신주의의 철학사상이 여기서도 하나의 역설을 만난다. 왜냐하면 절대주의는 자기와 상대가 되는 어떤 가치나 실재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절대주의를 따르는 말과 소리의 현상이 의외로 절대적이지 않는 양자택일적 현실 앞에 늘 서 있다. 즉 참이든지 거짓이든지, 선이든지 악이든지 양자택일적 판단의 기로에 의식이 늘 놓여 있다. 이것이 절대주의적 진리의 역설이다. 현실적으로 세상은 양자택일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정신주의는 절대진리의 이름으로 세상을 절대진리에 맞도록 판단하고 구성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절대주의, 정신주의는 늘 세상이 인격적 절대진리와 합치할 때까지 투쟁적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절대적 정신주의는 인간에게 거짓과 악과 투쟁할 것을 소리 높여 외친다. 여기서 인격적 정신주의와 다른 자연적 사실주의의 모습이 새로 떠오른다. 이것은 다음주에 음미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종이엔 사람의 영혼이 담겨 있죠”

    ‘만진 사람의 영혼이 담겨 있는 종이로 만들다.’ 한국인 미술가 전광영(62)의 작품은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낡은 한지에서 탄생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버려진 종이로 조용히 추상 작품을 만드는 한국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개했다. 전씨는 다음달 7∼21일 뉴욕 맨해튼 20가(街) 첼시의 킴 포스터 갤러리와 79가의 미셸 로젠펠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는다고 신문은 전했다. NYT에 따르면 ‘한지 작가’ 전씨는 지난 3년간 전세계의 헌책방과 시골집을 뒤져 고서 2만권 이상을 구입, 냉방시설이 갖춰진 창고에 모아놨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뽕나무 잎으로 만든 수제 종이를 모으기 위해서다. 어떤 것은 100년이나 된 작은 종이들이 모여 전씨의 지난 20년간 작품세계의 토대가 되었다.NYT는 이 종이들이 여러 세대의 손을 거친 만큼 작품엔 그 사람들의 영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평가했다. 전씨는 “새 종이는 사용할 수 없다.”면서 “내게 낡은 종이는 인생이요, 역사”라고 말했다. 이어 “종이에는 그걸 만진 이들의 영혼이 있고 나는 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싸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 문득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게 됐다면서 이후 벽과 문, 창문 등의 한지 조각을 모아 입체적 회화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나에게 중요한 건 마지막에 결과로 나타난 미가 아니라 작업 자체의 무형적 측면”이라고 강조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자궁의 권력

    [한승원 토굴살이] 자궁의 권력

    늘 자궁의 권력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왔다. 우주를 낳은 자궁의 가장 확실한 가시적인 모습은 바닷물이다. 나는 물 무섬증이 있다. 이 세상 지순지고의 윤리는 물 같은 것이다. 젊은 시절 대단한 자궁 권력자였던 퇴기 춘향 어머니는 춘향의 자궁 속에 이몽룡을 빠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몽룡이 어사출또한 다음 사형선고 받은 춘향을 옥에서 끌어냈다는 말을 듣고 동원으로 달려가며 춘향 어머니가 외쳐대는 말,“너 이놈들, 내 배(자궁) 다치지 마라. 열녀 춘향이 난 배다, 이놈들!” 이보다 더 호쾌한 자궁 권력 과시의 말이 어디에 있는가. 연산군 어머니 윤씨의 자궁은 죽은 다음에도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권력을 과시했다. 나를 낳고 키워 가르치고 한 여인을 짝지어주신 어머니의 자궁 권력은 나로 하여금 많은 동생들의 삶을 돌보지 않을 수 없도록 압력을 넣었고, 나는 그 권력에 순종하는 것을 효도라 여기며 늘 고개 숙이고 따르곤 했다. 그 어머니에게서 바통을 받아 나를 양생하면서 소설가 둘을 낳은 늙은 아내의 자궁 권력 앞에서 나는 늘 고마워하고 삼가곤 한다. 토굴 바람벽에 걸어놓은 메모판에다 ‘곡신(谷神)’이라고 써놓았다. 장차 소설로 자라날 ‘씨앗 말’인데 ‘곡신은 그윽한 암컷(玄牝)이고 그것의 문은 우주의 뿌리(天地根)’라는 노자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노자 번역자들이 곡신을 ‘골짜기의 여신(女神)’으로 읽는데, 오독이다. 나는 곡신을 여근(女根)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읽는다. 곡(谷)은 음(陰)으로 자궁에 해당하고, 신(神)은 양(陽)으로 음핵과 질(膣)에 해당한다. 음핵과 질은 성감대가 제일 민감한 곳으로, 여자가 몸을 여성답게(女性性) 매혹적으로 가꾸어 남자로 하여금 발기하여 사정하게 한다. 자궁은 수태된 생명체가 잘 자라도록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한다(母性性). 자궁은 멍청스럽고 둔한 데가 있다. 자궁이 질이나 음핵처럼 예민한 성감대를 가진 기관이라면 열 달 동안 고통스럽게 아기를 키우겠는가. ‘곡신은 여성성과 모성성을 완벽하게 갖춘 현묘한 암컷이고, 그 암컷의 문은 우주를 생성시키는 근원이다.’라고 풀어야 마땅하다. 바닷가 토굴로 이사하자마자 ‘곡신’을 소설로 형상화하려고 마음먹었다. 중학1학년 때 내 영혼에 깊이 각인된 낱말 하나가 있다. 한겨울에 어머니를 따라 장엘 갔는데, 매생이를 팔러 나온 해변 남자와 한 장돌뱅이가 흥정을 하다가 입 다툼을 했다. 장돌뱅이가 “뻘○지에서 나온 새끼가 지랄하고 자빠졌네!”하자, 해변 남자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니, 그럼 너는 천관산 꼭대기 돌팍엉설○지에서 나왔냐?”하고 소리쳤다. 장돌뱅이가 사용한 짭짤하고 축축한 낱말은 내 몸에 소름을 돋아나게 했다. ‘우주의 뿌리’를 상징하는 말은 ‘연꽃’과 ‘조개’와 ‘바다’‘동굴’등 여러 가지이다. 불교에 ‘옴 마니 반메 훔’(om mani padma hum)이란 주문(呪文)이 있는데,‘옴’은 남녀가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해 교합하며 발음하는 성스러운 오르가슴의 안간힘 소리, 혹은 갓 말을 배우는 아기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이고,‘훔’은 성스러운 교합을 마치는 안식의 숨소리이다.‘마니’는 금강석인데 남근을 상징하고,‘반메’는 연꽃인데 여근을 상징한다. 그 주문은, 여성 에너지(연꽃)와 남성 에너지(금강석)의 교합하는 순간의 오르가슴 같은 깨달음의 환희에 이르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것은 주역에 있는 말,‘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어우러지는 것을 도라고 이른다.(一陰一陽 謂之道)’와 같다. ‘심청전’에서 심봉사는 아내가 딸 ‘청’을 낳자 사타구니를 만져보고 ‘큰 조개가 작은 조개를 낳았다!’고 한다. 훗날,‘청’의 자궁은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죽음의 세계를 다녀온 다음 관세음보살의 그것으로 거듭나서, 이 세상의 탐욕과 미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준다. 말하자면 깨달음의 새 우주를 창조하는 자궁(곡신)이 된 것이다. 나는 늘 희망하며 산다. 내 토굴이 하나의 곡신의 늪이기를.
  • “사랑·나눔으로 이기주의 극복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성모 승천 대축일’(15일)을 앞두고 “사랑과 나눔으로 이기주의를 극복하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11일 발표했다. 정 추기경은 메시지에서 “61주년 광복절을 맞는 우리나라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내려 화해와 통일이 이뤄지고, 집중호우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이 하루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전통 미덕인 사랑과 나눔의 정신은 많이 사라졌다.”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추기경은 “우리만 행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는 국제적으로도 갈등과 분쟁을 불러와 평화를 깨뜨리고 사람들을 죄악과 폭력으로 내몬다.”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나눔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성모 승천 대축일(聖母昇天大祝日)’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 생활을 마치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축일로 8세기에 8월15일로 날짜가 확정됐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날을 8·15 광복의 기쁨과 함께 기념하고 있다. 정 추기경은 15일 낮 12시 명동성당에서 기념 미사를 집전한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Leisure+α] 여행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하와이 최대의 건강과 웰빙 엑스포,라이프페스트 카팔루아가 오는 9월8일부터 10일까지 마우이의 카팔루아 리조트에서 열린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라이프페스트 카팔루아는 마우이 섬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을 살찌우고 영혼을 젊게 하며 신체적 건강의 증진을 돕는 것을 목표로 특히, 세계적인 건강 관리와 미용 전문가, 하와이 문화 전문가들의 지도 하에 다양한 강연회와 워크숍,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다.www.kapalua.com
  • [책꽂이]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잘랄 앗 딘 알 루미 지음, 최준서 옮김, 하늘아래 펴냄) 12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루미는 총 6권,2만7000여 대구로 된 대서사시 ‘영적인 마스나위’를 남긴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영적인 마스나위’는 700여 가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피즘의 교의, 역사, 전통을 노래해 오늘날 ‘신비주의의 바이블’‘페르시아어의 코란’ 등으로 불린다. 이 책엔 루미의 작품 중 80편이 실려 있다.‘이슬람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수피 루미가 들려주는 불안한 영혼들을 위한 지혜의 노래.1만원.●이스라엘(김종철 지음, 리수 펴냄) 이스라엘 국기에 담긴 뜻은 유대인조차 말하기를 꺼릴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위아래 파란 줄과 가운데 다윗의 별. 이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 이남부터 남쪽의 나일강 북쪽임을 뜻하는데, 유프라테스강이 있는 이라크나 남쪽 이집트의 입장에서 보면 땅을 칠 노릇이다. 가장 평화스러워야 할 성서의 땅이 첨예한 갈등의 땅이 돼버린 역사의 아이러니. 평화가 사라진 5000년 성서의 나라 이스라엘을 분석한다.1만5900원.●세계 명상음악 순례(김진묵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일부 원시부족은 기존의 의식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의식이 들어오면 치유능력이 생긴다고 믿고 그 매개로 음악을 활용한다. 음악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미국의 흑인들은 노예시절 드럼을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해 백인들에게 저항한 적이 있다. 음악에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기능도 있다. 함께 찬송가를 부르거나 록 콘서트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공통된 심장 박동을 느낀다. 명상 혹은 명상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 사용하는 것이 명상음악. 음악 속에 내재된 ‘명상성’을 살폈다.1만원.●인연산책(서문성 엮음, 미래북 펴냄) 인생은 인과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 지금 나의 모습은 전생에 지은 업의 소산이다. 모든 것은 인연과(因緣果)의 진리에 의한 것이다. 책은 남이 지은 죄와 복을 내가 대신 받을 수 없고 내가 지은 죄와 복을 남이 대신 받아갈 수도 없는 것이 인과의 이치임을 강조한다. 부록으로 ‘불설삼세인과경’과 ‘업보차별경’이 실렸다.9000원.●대통령으로 산다는 것(허원순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 청와대 출입기자가 지켜본 대통령과 청와대 뒷이야기. 적막하다 못해 절간 같다는 관저 생활, 정치보다는 법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대통령의 의식세계, 마이 웨이를 고집함으로써 반대세력을 포용하지 못한 점 등을 다뤘다.1만2000원.●핀란드 들여다보기(이병문 지음, 매경출판 펴냄) 자녀품위비까지 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 노키아를 키워낸 경제저력, 소득 50% 수준의 과다한 세금, 산업전사를 키우는 교육제도, 외로운 늑대를 닮은 국민성…. 이 책은 북유럽 복지국가의 대표 모델인 핀란드의 경쟁력을 살핀다. 국가경쟁력 1위의 배경은 탄탄한 소프트웨어. 헬싱키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경영을 공부한 저자는 핀란드는 상대방이 말을 하면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을 갖춘 나라라고 말한다.1만2000원.
  • [이 한권의 책] 동심을 통해 인간본성을 보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존재가 처음부터 모든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고, 성인이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특별히 탁월한 것이 가장 정상적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믿음을 뿌리에서부터 흔들면서 붕괴시킨다. 인간이란 원시 생물체에서부터 환경과의 충돌에 의거해 지난하게 진화해 온 결과이고, 따라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정할지는 몰라도 무조건 특별히 탁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론의 주장을 검토할 수 있는 묘한 학문 영역이 있다. 발달 심리학이 그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유아들의 행동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의식·무의식을 탐색함으로써 성인들의 세계에서 발휘되는 언어생활, 각종 지성적인 활동, 예술 작업, 종교 활동 등의 원시적인 형태들을 추적한다.‘데카르트의 아기’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발달 심리학의 이러한 과제들을 일반 대중들이 실감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블룸은 현재 예일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그는 미국심리학회에서 ‘발달심리학의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아이들은 낱말들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쓴 학자다. 유아들은 이미 물질적인 존재와 비물질적인 존재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정신 혹은 영혼의 관념이 생겨난다. 유아들은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가치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공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도덕심과 도덕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유아들은 혐오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동정심이 발생한다. 유아들은 자연적인 세계와 인위적인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신성한 존재를 믿는 종교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암암리에 구분한다. 여기에서 웃음과 유머가 발생한다. 블룸이 이 책을 통해 내리는 결론들이다. 블룸은 유아들의 행동과 의식에 관한 갖가지 예화와 사실들을, 심리학 분야는 물론이고 시, 소설, 영화, 미술, 신화, 종교, 철학 등의 각종 교양 영역과 연결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블룸이 책 제목에 ‘데카르트’를 삽입했다고 해서 그가 물질·정신 이원론이나 원리상 물질과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물질·정신 이원론 혹은 독자적인 영혼의 존재는 인간의 특정한 삶의 방식에서 진화론적으로 발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룸이 드러내 보이는 유아들의 세계는 대단히 매혹적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존재의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발생적인 기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블룸의 문체가 결코 딱딱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일단 읽기 시작하면 특별히 긴급한 일이 없는 한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문득 자신이 평소 인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고, 자신 혹은 나아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자연스러운 기초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다만 한 가지 부연할 것은 이러한 블룸의 작업은 발생론적인 신경과학 연구와 결합될 때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 ‘연금술사’의 코엘료 데뷔작 ‘순례자’

    프랑스 남부 도시 생장드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북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700㎞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었다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59)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년 전, 산티아고 길을 온전히 걸어서 순례하기 전까지 그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루지 못할 꿈에 불과했다. 음반회사의 중역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던 그가 일상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영혼의 목소리를 좇아 길을 나선 순간 신기루 같던 그 꿈은 놀랍게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길 안내자 페트루스와 함께 걸었던 ‘산티아고의 길’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했고, 그 깨달음을 글로 옮기도록 용기를 북돋워줬다. 순례를 다녀온 이듬해 출간한 데뷔작 ‘순례자’(1987)는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를 전파하는 동시에 한 인간이 꿈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산티아고 길’에 감사를 표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썼다.”는 코엘료는 이후 ‘연금술사’‘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잇따라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며 동시대 가장 각광받는 작가 중 한명으로 떠올랐다. 문학동네에서 번역출간된 ‘순례자’는 코엘료를 사랑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책이다. ‘산티아고의 길’순례 20주년을 맞아 코엘료는 지난 3월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그 여정의 중간에서 그는 ‘우리를 신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며,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는 페트루스의 말을 떠올린다. 기적의 한조각은 이미 이루어졌다. 코엘료가 순례할 당시 연간 400명이었던 순례자들의 숫자가 어느덧 450만명으로 불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박명숙 옮김,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평생 모은 작품과 고향에 묻혔으면…”

    “평생 모은 작품과 고향에 묻혔으면…”

    “고향을 위해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3일 광주를 방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河正雄·66)씨는 “나의 영혼이 미술작품들과 함께 광주에 영원히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한 이듬해인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미술관측에 자신이 평생 모아 소장하고 있던 세계 유명작가의 미술작품 1800여점을 기증했다. 이 중에는 20세기 서구미술사 거장들인 루오, 뭉크, 샤갈, 달리, 피카소, 아르망, 로랑생 등의 그림과 판화·조각 등이 들어 있다. 사토 구라지, 야스유키 등 일본의 유명작가와 재일교포 화가 전화황·송영옥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가 30여년 동안 수집한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작품은 전국 유명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대여 품목’으로 대접받고 있을 정도이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그의 삶의 이력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193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당시 ‘핏덩이’를 안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산골 오지였던 아키타현으로 이주했다. 수력발전소가 많아 노동강도는 셌지만 일거리는 많았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그의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사카로 되돌아 왔다.2년 동안 기다렸으나 배표를 구하지 못한 그들의 고향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또다시 아키타현으로 향했다. 호구지책 때문이었다. 그는 소학교 2학년부터 고교를 그곳에서 졸업했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냉내와 차별을 받기 일쑤였다. 일본인 동기생들은 모두 일자리를 구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졸업식날 바로 무작정 동경으로 향했다. 재일교포가 운영하던 전기제품 생산회사에 일당 250엔을 받고 가까스로 취업했다. 점심은 빵 한조각으로 때우며 돈을 절약, 야간에는 ‘디자인 스쿨’을 다녔다.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부모를 졸랐다. 그림공부를 할 요량에서였다. 어머니는 “미쳤느냐.”며 만류했다. 스스로 “꿈을 이루겠다.”며 야간학교에 다녔으나 이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두눈의 시력을 잃고 만다. “병도 고쳐주고 그림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한 때 북송선을 탈까도 고민했단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조총련에서 일할 것을 권유받았다. 조총련은 당시 동포들의 인권운동과 상공회, 납세조합 건립 등에 열중하고 있었다. 차별과 설움을 가슴 한쪽에 안고 살아온 터라 열심히 일했다. 당시 스물네살이었다. 그는 결혼과 함께 동경의 한 전자상가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주인의 말에 속아 돈을 모두 털리고, 그를 계기로 그 전자제품 상가를 떠맡게 됐다.1964년 동경 올림픽 직전이었다. 올림픽과 함께 일본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그 특수로 인해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월급으로 1만 3000엔을 받았던 그는 하루에 2000만엔을 넘게 벌어들였다.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돈을 손에 쥔 그는 자연히 ‘어릴 적 꿈’ 실현에 나섰다. 닥치는 대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사모았다. 유명전시회는 빠짐없이 찾아가고, 교포 및 일본 화가들과 두터운 교류를 했다. 그의 그림 실력도 아마추어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키타현 다자와코(田澤湖町)에 ‘기도의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설계까지 마쳤다. 위령·기도·진혼의 뜻을 담고 차별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기원의 뜻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일간 위안부 배상 등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자와코 읍측으로부터 미술관 기증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결국 광주에 영원히 둥지를 틀게 됐다. 그는 “기증한 작품들이 ‘광주 문화중심도시’ 육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뭇 사람들의 마음 모이면 그것이 바로 천심이지요”

    몽골의 불교는 지난 70년간 사회주의 암흑기를 거치며 재생이 어려울 정도로 철저히 파괴됐다.40대 이상 스님들은 무참히 처형당했고 사원과 불경은 남김없이 불태워졌다. 그러나 1991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몽골 불교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때 700개가 넘는 라마교 사원이 있었고, 남자 인구의 3분의1(11만명)이 라마승이던, 유구한 전통의 불교국 몽골의 신심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몽골에서는 300개 이상의 사원들이 복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바로 푸레바트 라마다. ‘현대의 자나바자르’로 칭송받는 그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시 중심에 자리잡은 간단사(寺)내 몽골불교대학의 한 접견실에서 만났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이 젊은 큰스님은 접하기 쉽지 않았지만, 일단 만남이 이뤄지자 친구처럼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간의 성문제에서 불교미술, 우주, 한반도의 통일과제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남녀가 서로 끌려 가정을 이루고 아기도 낳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달라 음양이 만나면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합방을 하려는 수많은 인연 있는 영혼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원수관계도 있습니다. 몽골 불교에는 피말리는 고통의 삶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궁합이론이 있지요.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아주 높은 차원의 과학입니다.” 몽골 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탄트라 불교, 즉 밀불교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푸레바트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밀불교는 수행자가 신체로는 인계(印契·부처나 보살의 깨달음 혹은 서원을 나타낸 여러 가지 손모양)를 맺고 입으로는 진언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부처를 주시, 부처의 불가사의한 신(身)·구(口)·의(意) 삼밀(三密)과 수행자의 삼밀이 합일함으로써 현재의 육신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표로 한다. 그런 만큼 사변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불교사상의 실천을 강조한다. 푸레바트는 정신적 지도자이자 불교미술대학을 세운 몽골 최고의 불모(佛母·불화를 그리거나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다. 그는 몽골 불교의 대성(大聖) 자나바자르가 그랬듯이 수많은 탱화와 불상을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몽골불교의 상징인 간단사 금동 관음입상의 재건을 총지휘하고 마지막 점안을 한 사람도 그다. 푸레바트는 같은 밀불교권인 티베트와 비교해 몽골의 불교미술은 “색깔이 훨씬 다채롭고 스케일이 크며 힘이 넘친다.”고 평했다. 푸레바트는 몽골 불교가 ‘티베트 불교의 아류’로 비쳐지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몽골은 일찍이 기원전 훈족 시대부터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티베트보다 1600년 앞서, 중국보다 800년 앞서 불교를 수용한 것이지요. 몽골은 고대부터 스피드·정보 강국이었던 만큼 직접 불교현장을 찾아 좋은 것만 가져와 발전시켰습니다. 몽골과 티베트, 중국문화 가운데 어디가 주류이고 아류인지는 불교 문양만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어요.” 몽골 밀불교는 샤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샤먼의 80%는 불교신자”라고 소개한 푸레바트는 “샤먼에게 내리는 신이 모두 불교의 호법신장인 것만 봐도 불교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샤먼한테는 ‘잔챙이’ 신이 내리지만 라마에게는 공중부양으로 천지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신이 내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푸레바트는 ‘몽골의 달라이라마’라 불리기도 한다.“일을 하려면 정치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소신. 그는 올해 몽골제국 건립 800주년을 맞아 칭기즈칸을 국신(國神)으로 모시고, 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에 칭기즈칸 상을 조성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기자는 이 ‘영험한’ 라마에게 뜬금없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에 대해 한마디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온 국민이 기도해야 합니다. 몽골이 극심한 분열을 겪은 16세기 자나바자르 성인은 시대를 일깨우는 기도문 ‘차긴 톡히 노올록치’를 만들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뭇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것이 바로 천심이지요. 한국의 명망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남북이 함께 할 기도문을 만들어 보세요.” 사뭇 다정다감한 라마는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오는 기자에게 밀교적 분위기 가득한 신비로운 미소를 선물로 안겨줬다. 글 몽골 울란바토르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상황판단 실전연습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상황판단 실전연습

    문 1) 애니메이션 비즈니스는 원작의 존재 유무와 OSMU(One Source Multi Use:캐릭터 상품 판매나 라이선스 제공 등 극장 상영 이외의 다양한 사업 경로) 사업전개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에 따를 때, 다음 중 비즈니스 사례와 유형이 바르게 연결된 것만을 모두 고르면? (1)제 3유형:1983년 출판만화 ‘둘리’가 연재된 뒤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이후 ‘둘리바’ 등 1500여종의 캐릭터상품이 생산되어 연간 20여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등 처음 등장한 지 20년이 지났으나 상품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제 1유형:‘센과 지히로의 행방불명’은 출판만화의 원작 없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기획 및 제작되어 2001년 일본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이어 디즈니에 의해 북미지역에 배급되어 흥행에 성공하였다. (3)제 4유형:‘라이온 킹’은 1994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다. 극장 개봉 이전 테마파크, 캐릭터 머천다이징 등을 통해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대중에게 노출하는 등 제작단계부터 상품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계열사들을 동원하여 전략적으로 사업을 전개하였다. (4)제 1유형:한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포트리스’는 게임 콘텐츠의 원작을 TV 애니메이션화한 보기 드문 사례다. 애니메이션 제작 전에 TV방영과 머천다이징, 라이선싱 사업에 대한 전략을 기획하여 3개월 동안 완구 판매로 45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5)제 2유형:일본의 ‘포켓몬스터’는 게임을 원작으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높은 흥행기록을 수립하였고, 캐릭터 상품의 판매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미디어믹스 전략으로 단기간에 여러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여 시너지효과를 창출하였다. 해설) (1)‘둘리가 연재된 후 애니매이션이 제작’의 내용으로 보아 적극적이고, 종합적이지 못하므로 제 3유형이라고 할 수 없다. (2)원작이 없으므로 제 1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3)제작 단계부터 상품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계열사들을 동원하여 전략적으로 사업을 전개했으므로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OSMU를 전개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제 4유형에 속한다. (4)점진적인 진행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제 1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5)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므로 원작이 없는 제 2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정답)(3) 문 2) 다음에 제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 중 적절한 것을 고른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오늘날에는 착취당하고 욕을 먹지만, 돼지는 많은 문명의 상징학(The Study of Symbols)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명예로운 역사를 갖고 있다. 많은 수의 새끼를 낳고 젖이 잘 나오는 덕분에 암퇘지는 고대 세계 전역에서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집트인은 하얀 암퇘지는 위대한 어머니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믿었다. 몇몇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로부터 피해 숨어 있는 동안 한 암퇘지의 젖을 먹고 자랐고, 땅의 생식력의 여신인 케레스와 데메테르에게 정규적으로 돼지를 바쳤다. 힌두교도 역시 돼지를 공경했고, 돼지가 비슈누신(神)의 여성적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불교도는 돼지를 무지와 탐욕의 상징으로 보았다. 유대 전통에서도 돼지는 부정한 음식을 나타냈다. 기독교도는 호색과 육체의 죄악을 나타내는 표시로 돼지를 택했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는 부정한 영혼을 가다레네(Gadarene) 돼지 몸속으로 몰아넣는데, 이 돼지는 남자와 여자들이 자기들의 미천한 본성을 눌러 이겨야 할 필요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돼지가 나타내는 이미지는 점차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갔다. 나. 오늘날과 달리 고대 세계에서 돼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동물로 여겨졌다. 다. 종교적 관점에서 돼지는 탐식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보편적이다. 라. 지역에 따라 돼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여겨 숭배하기도 했을 것이다. 마. 오늘날 힌두교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는 종교적 이유도 작용할 것이다. (1)가, 다 (2)가, 나, 마 (3)가, 라, 마 (4)나, 다, 라 (5)나, 라, 마 해설) 논점:돼지가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 가. 제시된 내용으로부터 판단할 수 없다. 다. 힌두교에서는 돼지의 이미지가 긍정적이므로 옳지 않다. 라.‘많은 수의 새끼를 낳고 젖이 잘 나오는’ 특성으로부터 돼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여겨 숭배시하기도 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마. 힌두교에서 돼지를 공경했다는 것에서 판단이 가능하다. 정답)(5) 에듀PSAT 연구소 이승일 소장
  • [책꽂이]

    ●아버지의 집(오인태 지음, 고요아침 펴냄)1991년 ‘녹두꽃’3집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나이 마흔 넘어 깨닫게 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한 표제작을 비롯해 존재의 내면과 소통하는 울림 깊은 시들을 묶었다.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7000원. ●어린 여행자 몽도(르 클레지오 지음, 진형준 옮김, 조화로운삶 펴냄)떠돌이 고아 소년 몽도,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소녀 륄라비, 환상의 나라를 꿈꾸는 가스파르 등 사회규범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이야기한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는 르 클레지오의 대표 소설집.1만원. ●약혼(이응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사랑을 화두로 한 9편의 단편소설 묶음집. 말랑말랑한 로맨틱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현대인이 직면한 존재론적인 문제를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종교적인 성찰로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지만 매력적이다.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저자의 네번째 작품집.9500원.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정글 같은 도시의 한복판을 헤쳐가는 서른한살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 친구와 가족, 은밀한 욕망 등에 관한 솔직담백한 고백서. 감각적이고 간결한 문체, 속도감 있는 전개, 신세대 라이프스타일을 시차없이 끌어들이는 순발력 등이 소설을 쉬 읽히게 한다.‘낭만적 사랑과 사회’ 등 도시적 감수성으로 근래 가장 주목받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1만원. ●희고 둥근 달(정찬 지음, 현대문학 펴냄)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고대 로마황제 칼리굴라에 사로잡힌 연극배우(‘희고 둥근 달’), 상습가출자로 평생을 유랑하는 아버지(‘폐역을 지나, 부서진 다리를 지나’) 등 상처받은 영혼들이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 소설 9편 수록.1983년 등단한 저자는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9000원.
  • 27일 개봉 일본 공포영화 ‘유실물’

    주인을 알 수 없는 낯선 물건에 대한 터부의식은 우리 민간신앙에도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27일 개봉하는 ‘유실물’은 버려진 물건에 대한 금기를 공포물의 중심소재로 끌어안은 일본 공포영화이다. 지하철 유실물 보관소의 넘쳐나는 주인잃은 물건들이 이 영화에서는 공포의 근원이다. 지하철 승차권, 지하철 의자에 떨어진 팔찌를 주운 인물이 갑자기 실종되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지하철 승차권을 주운 여동생이 다음날 종적을 감춰버리자 나나(사와지리 에리카)는 동생의 실종이 원한이 서린 지하철 유실물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의문사하는 희생자들에게는 버려진 물건을 주웠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물건들의 주인이 동일인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얼개. 그러나 완성도 높은 ‘J(일본) 호러’의 계보에는 결코 끼지 못한다. 지하철 기관사와 여주인공이 연쇄살인을 일삼는 원혼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은 다음 장면이 예측될 만큼 틀에 박혔다. 제작진으로서는 작품의 최대 감상포인트로 공력을 쏟았을 마지막 하이라이트 대목은 시시한 좀비영화의 진부한 클라이막스를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씁쓸하다. 죽은 영혼들이 터널을 꽉 메운 채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장면들은 공포감이 아니라 매스꺼움을 자극한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언어논리영역-독해 5

    예제 1) 다음 글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을 모두 고르시오.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는 밀레토스 최후의 철학자 아낙시메네스의 문하생 아낙사고라스를 아테네로 데려 왔다. 아낙사고라스는 전형적인 이오니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철학자로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주장과는 달리 지구는 원주형이며 신성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일반화하여 모든 운동은 정신 또는 넋의 작용이라고 주장하였다. 달은 반사광으로 반짝거리고 월식이 지구의 그림자 때문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는 기술이나 자연철학은 무시당하고 있었으며,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은 인간과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지 자연계를 이해하거나 지배하는 일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천문학은 시간 낭비라고 여겼으며 자연철학보다는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연구했다. 이러한 전통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플라톤은 자신의 정치학적, 신학적 견해와 조화를 이루며 그것에 종속될 수 있는 자연철학을 주장하고 피타고라스학파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또한 원자론을 반대하였고 혼돈에서 질서로, 즉 지적 존재인 신이 합리적인 계획에 의해 세계를 체계화함으로써 혼돈 속에 있던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과학 사상의 전환기를 이루는 철학자이다. 그는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형상화한 최후의 철학자이면서 광범위한 경험적 연구를 시도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천문학에서는 제5의 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는 영원불변의 천계와 생성소멸의 지상을 주장했다. ㄱ. 피타고라스학파는 지구는 원형이며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ㄴ. 그리스의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최고의 절정기를 맞는다. ㄷ.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합리성을 주장했으며 관찰과 실험을 중시했다. ㄹ. 플라톤은 철인정치와 이데아론을 주장했다. ㅁ. 이오니아 전통과 플라톤 사상 간에는 상반되는 점이 존재한다. (1)ㄱ,ㄴ,ㄷ,ㅁ (2)ㄱ,ㄷ,ㄹ (3)ㄱ,ㄴ,ㄷ,ㄹ (4)ㄴ,ㄷ,ㄹ (5)ㄴ,ㄹ,ㅁ 해설) ㄱ. 지구가 원형이라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다. ㄴ. 최고의 절정기와 관련된 진술이 없다. ㄷ. 자연의 합리성의 주장 여부를 알 수 없다. ㄹ. 제시문에 진술되지 않았다. ㅁ.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정답)(3) 예제 2) 다음 중 레비나스의 사상을 옹호하는 논리로 부적절한 것을 고르시오. 레비나스의 타자철학, 그의 타자 얼굴론이 왜 현대 철학사에서 문제되는 것이며 기존의 철학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존재의 외부성에 관한 그의 철학적 고찰은 각별하다. 그의 타자철학이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나 칸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인 자아론은 생각하는 자아 또는 선험적 의식을 가진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정의함으로써 그 무엇과도 독립된 실체로서의 인간주체의 확실한 의식과 인간 중심주의의 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런데 레비나스에 있어 자기 자신, 즉 자아의 동일성은 궁극적으로 ‘나’라는 주체를 떠나 존재 자신을 전적으로 타자적인 것으로써 구성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1)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과 거주문화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궁극적인 자아의 모습은 결국 신의 이미지가 숨쉬고 있는 타인의 얼굴들 속에 숨겨져 있으므로 주체의 자아는 이미 타인에게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다. (3)주체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환경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활동을 하든지 간에 주체는 타자적인 것 또는 타인들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4)‘나’라는 주체의 주변들 속에서 거주하는 집, 집 앞의 터, 푸른 나무, 일상적인 모든 용품 등 이런 것들은 이미 ‘나’라는 주체를 표현하고 있다. (5)사유 중심주의는 인간 주체의 내면에서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게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해설) 주체의 사유 중심주의를 탈피한 레비나스의 철학적 이해는 서구의 일반적인 사유주의의 전통과 구분된다. 데카르트의 사유주의가 인간 주체의 내면성 속에서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게 의미있는 것이라면 레비나스의 진리는 타인의 얼굴들 속에서 계시적인 진리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명백한 진리는 주체 안에서가 아니라 주체바깥에서 오는 타자적인 것으로서 이해되며 나와 다른 수많은 얼굴들이 존재하듯이 계시적인 진리 역시 다의적으로 존재한다. 정답)(5) 방재훈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 강사
  • [Book Review] 안데르센 평전

    순수한 동심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하지만 그는 정작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이기를 거부했다. 성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환상과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거침없이 그려낸 그의 작품은 영어 혹은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달콤한 이야기로 변질됐다. 스스로 “나의 인생사가 나의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라고 했듯, 안데르센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의 작품이 왜 복잡다단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영국 출신의 안데르센 연구가 재키 울슐라거가 쓴 ‘안데르센 평전’(전선화 옮김, 미래M&B 펴냄)은 근대 동화의 개척자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평전이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책으로는 ‘안데르센 자서전’이 국내에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고 어두운 내용이 빠져 있어 “은폐의 걸작”이란 말을 듣는다. 안데르센은 마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10년마다 새로 자서전을 써냈다. 구두수선공인 아버지와 알코올중독자 세탁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이 써놓은 글을 보면 상류층과의 친분관계에 몰두하느라 헐떡이는 그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안데르센 평전’은 자서전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저자는 덴마크어로 씌어진 편지, 일기, 평론 등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안데르센의 복잡한 내면과 창작의 비밀을 밝힌다. 책은 부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분노, 양성애적인 욕망,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글쓰기의 괴로움 등 안데르센이 평소 지닌 감정의 무늬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안데르센은 인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못생긴 데다 눈치까지 없던 안데르센을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키가 크고 말라서 살도 없고 뼈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초롱같이 긴 턱과 창백한 얼굴로 도마뱀처럼 구부린 채 꿈틀거리며 다녔다. 행동은 단순하고 아이처럼 순진하여 어딘가 바보 같았다.” 기괴함마저 안겨주는 쓸쓸한 영혼의 모습이다. 책에는 자신의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바르 콜린을 비롯, 젊고 매력적인 남성들에게 느꼈던 안데르센의 동성애적 감정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실려 있어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200편이 넘는 동화를 쓴 작가로 기억된다. 안데르센 이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나 독일의 그림 형제가 구전민담을 수집해 정리한 데 반해, 안데르센은 처음으로 옛이야기를 문학적 양식으로 소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안데르센은 근대 동화의 창조자라 할 만하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기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의붓누이 카렌 마리는 동화 ‘빨간 구두’의 카렌으로, 한 때 사랑한 여인 리보르는 ‘팽이와 공’의 공으로 형상화됐다. 자신의 영혼의 자화상을 동화 속에 그려놓은 것은 물론.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자 사랑에 목숨을 건 ‘인어공주’였으며,‘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었다. 우울한 ‘전나무’,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 악마 같은 ‘그림자’도 모두 안데르센의 분신이다. 책은 안데르센이 주변 인물이나 경험을 동화에 어떻게 끌어들였는지, 어떤 식으로 작품의 초고를 수정해갔는지 소상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안데르센 동화의 원전도 만날 수 있다. 중역과 축약 번역, 번안으로 접하던 안데르센 동화와는 또 다른 감흥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어른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만이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안데르센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안데르센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양수겸장’의 작가다. 저자는 안데르센 특유의 구어체와 수다스러운 어투, 비약과 유머, 풍자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번역상의 오류가 안데르센을 단순한 동화작가의 범주에 가두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2002년 덴마크 오덴세 시가 수여하는 ‘안데르센 특별상’ 수상작.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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