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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올해 교단 떠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올해 교단 떠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초·중학교 국어시간 ‘시읽기’에 등장한다. 평범한 농촌의 일상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앙증스러운 ‘동요시’가 아닐까 싶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60)씨. 현재 섬진강 상류지역,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교사로 몸담고 있다.1970년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38년째. 그 세월 중 20여년이나 2학년 ‘꼬맹이’들의 담임을 맡아 함께 뒹굴었다.‘영원한 2학년’인 까닭이다. 그는 지난 3월21일부터 어린이날인 오늘(5일)까지 아주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덕치초 2학년 아이들이 평소 그렸던 그림 150여점을 모아 광주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것. 재학생은 물론 2학년을 거쳐간 제자 졸업생들도 많이 참석, 코흘리개 시절을 떠올렸다. 김 시인은 2학년 어린이들과 각별하다. 평소 2학년을 “깨끗한 영혼, 이슬을 단 풀잎”이라며 무척 아꼈다. 이런 그가 올해로 교단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에구 섭섭도 하여라. 어린이날을 맞아 그를 만나러 떠났다. 서울에서 전주, 다시 전주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임실을 거쳐 5시간 만에 강진 터미널에 내렸다. 주름이 잔뜩 파인 할머니 몇분이 좌판을 깔고 산나물을 파는 모습이 눈에 띈다. 택시를 타고 덕치초 정문에 도착한 것은 10분 후. 어릴 적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렸던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 아담한 2층건물이 회문산을 바로 등지고 섬진강 상류의 물흐름을 묵묵히 감상하고 있는 자태였다. 주위는 온통 푸르름으로 학교를 둘러쌌다. 푸른 잔디밭의 운동장에는 어린이들 몇몇이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학교건물 유리창에는 1학년부터 6학년 교실을 알리는 색종이 간판이 붙어 있었다. 김 시인은 운동장 한쪽에 별도의 작은 가건물 공간을 마련, 시도 쓰고 아이들과 상담도 하며 지낸다. 여기에는 각종 문학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멀리서 왔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머리를 짧게 깎아서 그런지 김 시인은 환갑의 나이지만 40대 후반이라고 우겨도 얼마든지 통할 것 같은 동안(童顔)이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 나이를 안 먹느냐고 인사를 건네자 “그런 것 같다.”며 웃는다. ▶아직도 2학년 담임인가요? “아닙니다. 올해는 국어교과 전담입니다.1∼2학년은 글짓기를 가르치고 3∼6학년은 국어만 가르치고 있지요.2학년만 20년 넘게 맡고 있다가 이번 학기 처음으로 교과전담을 하게 됐습니다.2학년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대신 진실이 통합니다. 또 한 순간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해요. 이는 흡수능력이 가장 왕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TV나 자동차 등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들이 전혀 없어도 뛰어놀 땅만 있으면 그들은 행복합니다.” ▶20년 동안 2학년 꼬맹이들과 지낸 소감이 있다면? “그들은 진지합니다. 이는 곧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나무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같지요. 또 표현을 잘 합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지요. 그래서 몇년 동안 2학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두었다가 이번에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추억을 만들어주고 또 어른들에게는 우리 어린이들의 진지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덕치초 재학생은 모두 46명이다.2학년 7명,3학년 11명,4학년 11명 등이다. 하지만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더러는 농촌학교체험을 하러 도시에서 몇명씩 오기도 한다. 김 시인이 어릴 적 이 학교에 다닐 때는 반 학생이 모두 18명. 워낙 가난한 마을이어서인지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농민이 꿈이었던 그는 농고를 졸업한 뒤 은행대출을 받아 돼지와 오리사육 사업을 하다 그만 망하고 말았다. 서울로 도망가서 빈둥빈둥 지내다 다시 고향에 내려 왔다. 친구들이 ‘선생’을 권유했다.1960년대말 당시만 하더라도 교사수가 절대 부족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교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떠밀리다시피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어 지원서를 제출했더니 혼자만 합격통지서를 받았다.4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뒤 1970년 덕치초 바로 인근의 청웅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덕치초로 온 것은 1년 뒤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책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나면서였다. 산골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차에 ‘도스토옙스키전집’을 구입한 그날로 독서삼매경에 푹 빠졌다. 이후 철학을 생각하게 됐으며 그 생각을 정리하려고 틈틈이 글을 써두게 됐다. 여기에 격동기의 1970∼80년대 사회상을 담다보니 어느날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위에 감수 받을 시인도 없고 해서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 글을 보내면서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결국 1985년 시집 ‘섬진강’을 펴내면서 오늘날 국민적 시인 반열에 올랐다. ▶교단을 떠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아직 정년도 남았는데? “6·25 혼란 중에 실제나이보다 세살 적게 호적에 올려져 51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정년까지 4,5년은 더 남은 셈이지만 솔직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나이 예순이 되면 그만두려고 했지요.” 이어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일을 털어 놓는다. 어쩌면 교직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서울 가서 결혼해 살다가 가정파탄이 생겨 아이들만 이곳 할머니한테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오게 됩니다. 그 제자 놈들이 저보고 또 (자기네 자식들을)가르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가슴이 정말 미어지더군요. 그 아이들도 울고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처럼 시들어가는 나뭇잎 같은 아이들을 살려 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애정을 많이 쏟았다. 처음보다 아이들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했지만 그는 “가난의 대물림과 양극화 현상으로 벼랑끝으로 몰리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장탄식을 한다. 그는 지난해 모 텔레비전 방송사의 요청으로 덕치초 2학년 아이들과 인간드라마를 한편 찍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이들과의 이별’을 예감했다고 고백했다. 행복과 보람, 말할 수 없는 어떤 안타까움이 동시에 교차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아이들이 놀 줄을 모른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같이 놀아 줄 상대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이는 정서가 고갈되고 교육이 점수위주로 이뤄지는 탓입니다. 교육정책 자체가 21세기의 개념도 모르고 방향도 잃고 있지요. 대안은 환경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생태 순환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는 이달에 책 2권을 낸다. 지금의 섬진강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과 초등학교 이전에 경험했던 고향마을(덕치면 진메마을) 이야기를 모았다. 교단을 떠나면 글쓰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달부터 고향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라며 웃어 넘긴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으며 모두 대학생이다. 전주에서 출퇴근해온 그는 곧 진메마을로 집을 옮겨 노모를 모시며 살 예정이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임실 출생. ▲68년 순창농림고 졸업. ▲70년 청웅초등학교 교사. ▲71년 덕치초등학교 교사. ▲82년 창작과 비평사 ‘21인 신작시집’에 작품발표로 문단 데뷔. ▲97∼2002년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교사. ▲02∼현재 덕치초등학교 교사. ▲03∼현재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주요 수상내역 2002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1997 제12회 소월시문학상,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등. ●주요 도서작품 콩 너는 죽었다(동시집), 풍경일기(산문집). 시집 섬진강, 맑은날, 꽃산가는 길,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그 여자네집, 강같은 세월 외 다수.
  • [사설] 문화재 갈아엎는 규제완화 안 된다

    옛것을 존중할 줄 모르는 무교양·무지인가. 빨리빨리 문화가 빚은 조급증인가. 충남 당진에서 문화재 발굴로 공장 설립이 늦어진다며, 공장 사업시행업체가 발굴현장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었다고 한다. 발굴 현장은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노출된 현장이었다. 문화재 발굴·보존·보호에 대한 우리의 불감증 내지는 무관심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 관련회사를 문화재 보호법위반 혐의로 고발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발굴자들에게 빨리 마무리하지 않는다고 채근했는가 하면, 회사측의 훼손모습을 촬영하는 조사원들의 카메라를 빼앗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다. 이와 유사한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한다는 게 문화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산업단지내의 문화재 조사 및 그 처리를 대폭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의 창업지원 방편의 하나라고 한다. 문화재 조사를 포기하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전문가의 지적처럼 “문화재를 전봇대로 취급하는 개발지상주의의 고백”이나 다름없다. 한번 훼손·멸실된 문화재는 영구히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처사와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전환과 더불어 근본적인 제도적 보완 대책을 서둘러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발굴기관의 중복 발굴 허용, 발굴비용의 정부, 지방자치단체 부담·지원확대 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5000년 문화민족 운운이 부끄럽지 않은 문화재 발굴·보존정책이 시급하다.
  • 한미FTA 이달내 비준 불투명

    한나라당은 5월 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통합민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17대 국회 임기내 처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TV토론을 제안했던 우리는 큰 양보를 해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면서 “국회가 본격적으로 FTA 안건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 지도부는 17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민주당내 책임 있는 의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비준동의안 처리를 반대하는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내 ‘찬성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쇠고기 청문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반대하기 위한 정략적 공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양보한 쇠고기 청문회가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걱정하는 대목이다. 안 원내대표는 이어 “14일로 예정된 통일외교통상위의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청문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해 달라.”면서 “(그날) 비준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 통외통위를 통과하면 16일 본회의에서 표결로라도 처리될 수 있도록 거듭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쇠고기 청문회에서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쇠고기 재협상, 나아가 한·미 FTA 비준 연기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식탁에 불안을 주고, 축산농가에는 절망을 주고, 국가에는 모욕을 가져다 준 협상의 전 과정을 철저히 해부하고 바로잡는 것이 우리 국회의 책무다.”며 ‘전의’를 다졌다. 그는 또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를 방청석에 모든 국민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임할 것”이라면서 “17대 마지막 국회, 마지막 청문회에 우리의 영혼을 바쳐서 임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천 공동대표는 “한·미 FTA 비준문제는 결국 한·미 FTA 피해계층에 대한 피해보전 문제로 귀촉된다.”면서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때 할 일이 많다.”고 주장했다. 결국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의 초점을 비준동의안 처리가 아니라 피해대책 논의에 맞추겠다는 얘기다. 나길회 한상우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생체공학 눈/육철수 논설위원

    헬렌 켈러는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보고 듣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시각·청각장애에다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녀다. 하지만 맑은 영혼을 간직했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과 소중한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단다. 그래도 마음의 눈만으론 확신이 없었나 보다. 세상을 단 한번만이라도 직접 보길 소망했다. 사흘만 눈을 뜬다면, 맨 먼저 자신의 삶이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은 아름다운 꽃과 노을, 동트는 아침, 밤하늘의 별…. 그리고 활기찬 출근길, 영화, 네온사인, 쇼윈도…. 그런 뒤에 잠시나마 세상을 만나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겠다고 했다. 비장애인이 늘상, 감흥이 무뎌진 채로 접하는 세상의 모든 게 그녀에겐 경이의 대상이었다. 가슴 저미는 감동은 또 있다. 시각장애를 딛고 최근 뉴욕주지사에 오른 데이비드 패터슨의 인간승리다. 보고서를 서류 대신 녹음기로 몇시간이고 들으며 벅찬 업무를 수행한단다. 그는 “잃어버린 것들을 보충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했다. 초능력은 역시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나는, 켈러와 패터슨 같은 사람들을 이 땅에 보낸 하늘의 뜻에 새삼 경외를 느낀다. 이제 화제를 과학으로 돌려 보자. 영국의 어느 안과병원에서 ‘생체공학 눈’(bionic eye)을 실명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다.‘아거스2’(ArgusⅡ)로 명명된 이 인공 눈은 소형 카메라로 사물을 포착해 수신기와 전극판에 영상신호를 전달하고, 이를 망막의 시신경을 통해 뇌에 알려서 이미지를 파악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흑백의 점으로 인식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대단한 과학기술의 진전이다. 이런 의술이 켈러의 생존시에 가능했다면, 그녀가 그토록 갈망한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절반이라도 눈에 담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자코(e-nose), 전자혀(e-tongue) 등 오감(五感) 기능 로봇을 속속 개발하는 시대다. 신체부위와 호환이 문제여서 그렇지, 심장·피부·귀·망막·장기·뼈·혈관 등의 인공기술도 놀라운 수준이다. 인공신체가 제아무리 탁월해도 부모가 만들어준 신체발부만 한 게 있으랴만, 잃은 걸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겐 희망의 불씨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분’과 만날 시간이 왔다.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맞이하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천지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퍼붓는 정열의 햇살로 온통 찬란해진다.98세에 작고한 피천득 시인은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찬미했다. 어디 이뿐이랴. 어버이, 스승,‘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삼 생각나게 한다. 그럴 것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기념적인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禪),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奉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5월과 무관치 않은 한 스님을 만나보자. 곧 칠순임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지낸다. 무장무애(無障無), 아무 거리낌 없이 ‘하하하’ 크게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한 부처 같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말할 수 없도록’ 그리워해 그림(禪畵·선화)을 그리고 시를 쓴다. 내공이 워낙 깊은지라, 주위에서는 ‘선화의 대가’라고 칭송한다. 10년 전쯤이다. 스님이 양저우(揚州)박물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루는 양저우시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때마침 선화의 대가가 양저우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글씨와 그림에 관한 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어릴 적 은사도 참석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중국의 한 원로화가가 붓을 잡더니 즉석에서 물소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 화가는 붓을 한국의 스님에게 건넸다.‘화답’을 청했던 것. 뒤질세라 스님은 주먹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원래 악필(握筆)인 스님은 창호지에 원을 그리고 점을 몇군데 쓱쓱 찍었다. 불과 몇분 후 붓을 내려놓자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짓는 복덩이 동자상이었다. 양저우시장이 즉석에서 “공부 잘하도록 우리 아들 방에 걸어놓으면 너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은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을 섰다. 스님은 이날 밤 새도록 붓을 잡았다. 스님과 관계된 일화는 많다. 프랑스 상원의장 초청으로 뤽상부르궁전 의장공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프랑스와 우리나라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베를린, 카사블랑카,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돌며 전람회를 열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얼마 전에는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엽서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다. 법문 스타일도 독특하다.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마무리할 때 ‘우리의 소원은 성불’을 불러 신도들을 울리기도 한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중생을 연민하고 구제하는 일에 남달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통도사(通度寺)의 축서암(鷲棲庵)을 찾았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된 암자로 영축산(靈鷲山·혹은 영취산)의 옛 이름 축서산에서 비롯된다. 400여년이라는 축서암의 세월 가운데 근래 30년을 문제(?)의 스님이 살아서인지 축서암은 거대한 화실처럼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게 핀 자목련이 원숙한 여인처럼 금방이라도 유혹할 듯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 뒤로는 온갖 푸른나무들이 병풍처럼 쭉 늘어서 넋을 놓게 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자양반인가? 읍내(서울)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촌구석까지는 뭐할라고 왔노.”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선화의 대가 수안(殊眼) 스님이었다. “차나 마시고 가게.” 합장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쥐 두마리가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떠받치는 그림이 창문에 붙여져 있었다. “왜 ‘수안’이라고 했습니까?” “내 속가의 성이 ‘문(文)’이야.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殊)에다 ‘문수의 안목을 키워라’해서 안(眼)을 넣었지.” “만화방창, 이 봄에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허허허, 봄이 되면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많지.” 연근차 몇잔을 마셨다. 스님은 평소 길을 떠날 때 차보따리를 끼고 다닌다. 스님이 마실 차, 그리고 스님과 만날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한다. 그게 바로 풍류의 시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수무향(眞水無香)의 ‘풍류차’를 권하면서 ‘어차피 인생살이가 다반사(茶飯事)이지요.’라고 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을 보더니 “어라, 머리만 안깎았군.”이라고 했다. 전생이 스님인가? “호 하나 지어주랴? 고을 제(濟)에서 삼수는 빼버리자, 그리고 산에 기대 살아야 하니 산(山)을 넣어 제산(齊山)으로 해삐리라.‘재산’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다. 하하하.” 얼핏 ‘개구쟁이 스님’의 장난기로 들려올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토굴생활 등 혹독한 수행으로 ‘대긍정(大肯定)’의 경지까지 오른 ‘큰스님’의 말씀 아닌가. “대긍정은 어떤 것인가요?” “별거 아니야, 긍정과 부정도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부정이 많다 보면 그림자가 많아져. 캄캄한 방에 전깃불 켜는 것도 수행이지. 스위치 하나로 어둠과 밝음, 즉 긍정과 부정이 생기거든. 흐르는 물이 굴곡을 탓하는 거 어디 봤는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별로 들 것도 없으면서 왜 무겁게 짊어지고 쫓기면서 살아? 아나 다 놓아삐리라. 집착은 곧 노예인 것이야.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해봐. 요즘은 어머니도 고향도 다 잊고 살아가. 지혜는 없고 지식과 정보의 노예로 다들 전락했어. 그러니까 고급인력들이 빈둥빈둥 놀고 자빠졌지.” 스님의 시 중에 ‘사모곡’이 있다.‘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자/기쁠 때 불러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아기가 됩니다.’ 스님은 ‘진리는 곧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비원’을 통해 무의탁 노인을 돕는다. 또 부산 지역 지체장애아동들에게 매년 휠체어 100대씩 사서 선물하는 등 수십년째 선행을 베풀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져 몇푼의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일도 다반사이다. 스스로 ‘수행화가’라고 표현하는 그는 17세 때 출가 직후부터 석정 스님을 스승으로 전각과 선화를 익혔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 어머니, 초가집 등 토속적 냄새가 짙게 담겨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됐습니다. 그동안 후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비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안 일어날 물이 어디 있겠어. 성불하려면 비워야 해. 가득차 있으면 뭘 담겠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문 하나를 정중히 부탁했다.“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이 절로 푸르기 마련인데 괜히 욕심 보탤 거 없어. 심청사달(心淸事達)이야.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부정과 긍정도 다 흑백논리야. 최선을 다해도 나중에 부끄러운데 눈속임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영혼이 부끄럽겠나. 내 자식이 귀하면 이웃 자식도 귀하고, 사회와 국가도 귀하지 않겠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수안 스님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57년 석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64년 월하 스님에게 비구계 수지하고 이후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에서 수선안거에 정진했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85년 파리 초대전,86년 중앙승가대건립기금마련 전시회,89년 두달간 유럽순회전 등 유럽과 러시아, 남미 등에서 전시를 가져 독특한 수행력을 과시했다. 특히 불우어린이와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는다. 그림전시도 ‘중생돕기’ 차원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전’에 공동전시를 가졌다.
  • 팍팍한 삶 잊게하는 사람의 향기

    팍팍한 삶 잊게하는 사람의 향기

    “적어도 2년에 한 번쯤은 시집을 내야 하는데…. 일도 바쁘고 쓴 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퇴고를 하다 보니 7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네요.” 중견 시인 최창일(56·한국시인협회 이사)이 다섯 번째 시집 ‘꽃잎에 앉은 그대 마음 세상 모두 아름다워라’(젠북 펴냄)를 냈다. 서정적인 시편에 최성환 화백의 그림이 곁들여진 시화집이다. 자연을 노래한 ‘봄날, 깨닫다’‘삶보다 빠른 세월’‘고요한 겸손’ 등 100여편의 시가 실렸다. “이번 시화집을 통해 사람의 향기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아하고 맑은 생활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그만큼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지요.”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시인은 그래서 인생을 성찰한 시 ‘아름다운 휴식’과 눈·비에도 담을 타는 모습이 인생과 비슷한 시 ‘담쟁이’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고향 뒷산의 대숲소리가 들리고 찔레꽃이 흐벅진 고향 언덕길을 눈에 그대로 밟히듯 그려냈다. 팍팍한 삶을 잠시 잊게 해주는 시편들이다.“유년의 봄날엔 유난히 허기졌다/산과 들로 쏘다니다 만난 찔레꽃은 간식거리였다/그런데 오늘은 새벽 산책길 아파트 화단에서/눈부신 하얀 얼굴의 찔레꽃이 웃는다”(‘찔레꽃’ 중에서) ‘나이’에서 우러나는 삶에 대한 웅숭깊은 통찰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지나간 청춘의 굴곡을 쓰다듬으며/이제사 침침한 눈으로/빛과 어둠과 알맹이와 쭉정이를 가려내며/쉰두 살,/구멍 숭숭 뚫린 폐허의 가슴으로/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와 찢어진 꽃/상처 입은 새의 날갯죽지를/어루만질 줄도 알게 되었다”(‘쉰두 살’에서) 정연희 한국소설가협회장은 “최 시인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홀로 보고, 함께 있던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들이 자연에서 맑은 영혼과 희망을 길어올리는 서정성을 포착해 냈다는 것이다. 미대에 다니는 딸과 함께 올해말 기획 시집을 낼 예정이라는 시인은 “한 줄짜리 사랑의 시를 쓰고 옆에 그림을 넣는 시화집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섬/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시인은 고속도로 화장실서 시(詩)창작론 요약본을 만났다고 했다.‘한걸음 더 가까이’‘우리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열 권 넘게 읽은 시창작론이 딱 두 줄에 요약됐다고 했다. 시인은 시의 퇴고는 보태는 것(添·첨)이 아니라, 빼는 것(削·삭)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이 진정 줄이고 싶은 게 단어와 문장이라는 껍질일까. 시인의 ‘삭’은 붉게 녹슨 영혼의 군더더기를 닦아내는 몸부림이다. 정제되지 않은 삶의 찌꺼기를 거르는 고통이다.“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섬’이다. 단 두 줄이다. 단절·고독·절망의 절규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우리의 아픔 아닌가. 지난해 작고한 오규원은 인간 대신 사물을 세상 중심에 뒀다.“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껍질만 남은 육신을 꾹꾹 눌렀다. 시와 더불어 자신을 보냈다. 새털같은 영혼이 가슴 아리다. 삶이 곧 시다.‘삭’은 곧 고통이다. 우리는 얼마나 ‘삭’의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문화마당] ‘문화 프렌들리’ 정책은 없는가/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문화마당] ‘문화 프렌들리’ 정책은 없는가/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의 이상을 실험하기 위한 ‘실험용 쥐’가 되어야 했던 문화예술기관과 단체들의 지난 10년간의 시련과 몰락이 그렇게 쉽게 정리되고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니 이미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설상가상이라고 행정안전부 쪽에서는 작은 정부를 위해 지난 10년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해 운영해 온 극립극장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민영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은 펄쩍 뛸 것이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해 본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이렇게 관료들의 실적을 위한 개혁과 혁신의 희생물은 언제나 힘없는 문화예술 기관이었다. 물론 지난 정부에서 문화예술분야가 힘이 없었다거나 ‘빽’이 없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참여를 허용 받았던 실세들은 그 ‘빽’을 자신의 입신과 양명에 사용했을 뿐 관료들에 의한 비문화적인 문화예술개혁에는 철저히 구경꾼으로 일관했다. 이들이 철저하게 함구와 방관으로 일관할 때 실적주의와 새로운 정부의 코드에 입맛을 맞추려는 관료세력들은 오직 자신들의 실적과 개혁의 기수로서 거듭나기 위해 문화예술을 낭떠러지에서 밀기에 바빴다. 사실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나 철학도 없이 새로운 정책들을 남발한 것은 지난 10년간 좌파 문화권력들이 일 벌이고 자리차지하면서 문화예술계를 피폐화시킨 것보다 그 폐해가 더욱 크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개혁이란 이름과 ‘배 째 드리겠다.’는 엄포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문화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문화부의 높은 곳, 힘 있는 부처 눈치 보기는 여전하다. 인수위 시절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관람료 폐지 정책은 제대로 된 검토나 고민 없이 이미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여전히 인수위 시절 대통령님의 말씀을 그저 실천에 옮기겠다는 권위주의 시대에 영혼 없는 충성심(?)으로 무장된 관료들의 무소신이 낳은 결과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행정안전부는 작은 정부를 실천하기 위해 현재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립기관들의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어 더욱더 얼떨떨하다. 참여정부는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더니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정책에 있어 민영화라는 우회전과 입장료 폐지라는 좌회전을 동시에 시도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스스로 상실할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는 서로 상반된 문화예술정책을 미술관과 박물관, 미술관과 화랑, 도서실과 독서실도 구분 못하는 관료들이 각 부처별로 각각 동시에 추구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입장료 폐지는 실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영화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지 별개로 다루어질 일은 아니다. 입장료 폐지가 시행된다면 민영화 이후 어떤 방법으로든 국고지원은 지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영화된 기관들은 이름만 민영화일 뿐 달라질 것이 거의 없다. 이렇게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사안을 한 정부에서 각 부처가 서로 경쟁하듯 검토하고 시행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문화정책,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까지 의심받기에 이른 것이다.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개혁의 칼을 쥐어 준 것과 문화권력자들을 양산한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보호를 전제로 실적을 위한 개혁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문화예술 기관들은 책임운영기관으로 전락하고 대한민국 공연문화의 상징인 국립극장은 대관수입 증대에 내몰려야 했다. 이는 문화인들이 입을 옷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문외한들에게 주문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라도 기업에만 프렌들리하게 할 것이 아니라 관료들의 조직보호와 실적을 위한 ‘총알받이용’이 아닌 문화인들이 ‘을’에서 ‘갑’이 되는 문화 프렌들리 정책을 기대해 본다.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 “음악은 내게 열정과 사랑이죠”

    “유명한 테너 카루소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오페라 가수들은 대중적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그 분들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50)가 2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려움을 딛고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 같은 히트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그는 “젊은이들에게 오페라를 전달하려면 대중적인 노래로 가까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첼리는 22일 오후 8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공연을 가질 예정.2000년 4월 수원국제음악제에서 정명훈·조수미와 무대를 꾸민 뒤 꼭 8년 만이다.1958년 투스카니에서 태어난 보첼리는 1994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 뒤 ‘파바로티와 친구들’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1999년 펴낸 팝음반 ‘꿈(Sogno)’은 전 세계적으로 6000만장이 팔렸다. 보첼리는 ‘불편한 몸에도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 힘의 원천은 열정”이라면서 “음악은 내게 열정과 사랑을 의미하며, 지금까지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휘자 정명훈과 일했던 경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서 “사람들은 ‘영혼의 아리아(Sacred Arias)’라는 음반을 만들 때 몇장이나 나가겠느냐고 비아냥댔지만 그는 내게 신뢰를 보냈고, 그 음반은 무려 500만장이나 팔렸다.”고 정명훈과의 깊은 우정을 과시했다. 보첼리는 이번에 푸치니의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과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비롯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와 가스탈돈의 ‘금지된 노래’, 토스티의 ‘라 세레나타’ 같은 이탈리아 칸초네로 프로그램을 짰다. 보첼리의 내한 공연에는 소프라노 루이지아 보르시와 바리톤 지안프랑코 몬트레소, 헤더 허들리가 초청가수로 나선다. 마르첼로 로타가 지휘하는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윤학원 코랄합창단이 출연한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법정스님“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

    법정스님“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

    “조상 대대로 영혼과 살과 뼈를 묻어온 곳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성한 땅을 대운하 사업으로 훼손하는 것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입니다.” 불교계 원로 법정(73) 스님이 2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봄 정기법회를 갖고 찬반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법정 스님은 사찰 앞마당을 메운 1000여명의 신자들에게 설법하면서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땅이 근래에 와서 방방곡곡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에 의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계천은 기존 하천을 복원한 것이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땅을 파헤치고 토막 내는 반자연적 사업”이라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하는 사람은 개발사업으로 주변 땅값을 올려 재미를 보려는 땅투기꾼과 건설업자들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구토와 헛구역질 등으로 50일 동안 사실상 단식 상태에 있었다고 밝힌 그는 “70년 넘게 몸을 끌고다니다 보니 부품이 삐걱거려 정비공장에 다니느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렸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는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티베트 사태 등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실정이니 양식 있는 사람들과 언론이 정부를 대신해 발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예뻐서라기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법정 스님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길상사 정기법회 때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설법하고 있다. 한편 길상사는 법회 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 연합뉴스
  • [김달진 문학상] “구체적인 생활체험이 담긴 시 쓰고파”

    [김달진 문학상] “구체적인 생활체험이 담긴 시 쓰고파”

    “연구와 학교수업 등으로 침묵기간을 갖는 등 그동안 작품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큰 상을 받게 되니 쑥스러운 마음이 앞설 뿐입니다.” 시집 ‘바이칼 키스’로 제19회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대철(63) 국민대 국문과 교수는 시작 활동에 소홀했다는 겸사의 말부터 했다. 생전에 김달진 선생을 직접 뵙지는 못해 아쉽다는 그는 “젊은 시절 선생의 시집 ‘청시’를 읽었을 때 세속적인 느낌을 주는 다른 서정시들과는 달리 투명하기 이를데 없는 느낌을 받아 애송했다.”고 말했다.‘바이칼 키스’는 바이칼 주변 민족들의 영혼을 나눠갖는 인사를 가리키는 말. 시집엔 백두대간과 백두산, 두만강, 고비사막,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등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아 나선 체험을 바탕으로 한 60편의 시가 실렸다. 심사위원들은 “수상 시집은 시인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민족분단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를 바이칼이라는 구체적인 현장체험을 통해 민족의 원형적 모습으로 생생하게 복원해 내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첫시집 ‘무인도를 위하여’ 이후 23년 동안 창작의 공백 기간을 거친 시인은 2000년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를 내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충남 홍성 출신으로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등의 시집을 냈다. “백두대간에서 시작해 백두산, 두만강을 거쳐 멀리 바이칼 호수까지 이르는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아나섰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분단상황 등 우리의 역사적 상처를 몸소 체험하고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신 교수는 “머리에서 기획한 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체험이 담긴 시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 실린 ‘흘러온 물 푸르게 흘러가는 초원에선 빛이 향기를 낸다’ 같은 생태시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에 이어, 지금은 한남정맥을 타는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그 여정이 끝나면 시를 창작할 예정지만, 시가 발표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어머니는, 음악을 닮았을 거예요. 취재, 글 박혜란 기자 ┃ 사진 한영희 무대에 설 때마다 그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오늘 연주하는 이 곡이 삶을 뒤흔들 운명의 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지금 객석 어디에서 친부모님이 내 연주를 숨죽여 듣고 있는 건 아닐까. 연주가 끝나고 그분들이 다가와 “우리가 네 엄마, 아빠란다” 하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34세, 신성호)는 유럽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연주자이다. 2004년 유럽 콘서트홀 연맹이 ‘라이징 스타’로 지목하여, 뉴욕 카네기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빈 무지크페라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같은 세계 유명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날아와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1975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사흘 만에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돌이 되기 전 ‘좋아하는 것은 우유이며, 그 밖에 신체적 특성은 없다’는 문서 한 장을 발급받고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2006년 한민족문화공동체대회의 초청을 받고서였다. 갓난아기는 그 사이 서른 넘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썼다. 하지만 서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청년들보다 더 한국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젓가락질을 잘했고, 김치와 곱창을 즐겨 먹었다. “열여덟 살까지 살았던 곳은 수도 브뤼셀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벨기에 남부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보름달’이다 ‘밥공기’다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그들과, 부모님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춘기 때는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로 어설픈 반항아가 되기도 했고, 4년 넘게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과 미움도 다 버렸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란과 방황 속에서 그의 삶을 이끌어준 등대는 기타였다. 양부모님은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어린 아들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신 기타를 사주었다. 여덟 살 때 처음 기타를 잡은 그는 자기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기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제2의 목소리였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였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벨기에인인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랑 없이는 살아도 기타 없이는 못 살아요.” 기타가 그의 정체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타를 잘 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끝없이 연습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것은 연주자로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공허함과 상실감이 늘 따라다니기에, 입양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놀랍도록 큰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지 않아요. 그보다는 평범하고 평온한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은 ‘테크닉은 뛰어난데 영혼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유럽 음악계에서 그는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수련을 하듯이 꾸준히 연습하고,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울 것.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묻고, 나를 알아가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자신과 자기 음악의 뿌리를 찾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양부모님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지요. 친부모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의 양아버지는 체육 교사였고, 양어머니는 화원을 운영했다. 소박하고 따뜻한 분들이었고, 언제나 그의 뜻을 존중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기타 케이스 안에 양부모의 사진을 지니고 다녔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안부 전화를 했다.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던 날선 감성은 이제 조금씩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초에는 충남 서산의 한 시골 보육원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아이들이 본 것이 희망이었길 바랍니다.” 마치 동생들에게 처음으로 큰형 노릇을 한 사람처럼 그는 뿌듯해했다. 현을 튕기는 그의 오른손 손톱은 길고 날카로운 삼각형이다. 현을 눌러야 하는 왼손 손톱은 바짝 깎아 동그랗다. 그렇게 서로 다르게 생긴 양손으로 그는 영혼을 울리는 연주를 할 수 있다. 같은 것과 다른 것, 얻은 것과 잃은 것, 슬픔과 기쁨을 모두 껴안고 그는 묵묵히 현을 고르고 있다. 드니 성호는 열네 살 때 벨기에 청소년 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파리 알프레드 코르토 음악학교와 벨기에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클래식기타 이중주단으로 유명한 세르지오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의 수제자이기도 한 그는 탱고와 같은 남미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세 장의 앨범을 내고 유럽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 미국 작가 무어 소설 ‘더티 잡’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리는 미국 작가 크리스토퍼 무어(51)는 ‘문학의 요리사’로 불린다. 삶의 부조리를 유머로 절묘하게 요리해내는 빼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죽음과 같은 묵직한 주제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 그 무거움을 극복하게 만든다. 무어의 대표작 ‘더티 잡’(Dirty Job, 황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이 번역돼 나왔다. 죽음에 관한 블랙 코미디라 할 이 소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죽음을 비웃을 수는 없어도 죽음 앞에서 크게 웃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죽음도 출생, 성장, 결혼 같은 삶의 과정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일인 만큼 특별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꽃미남이고 능력도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남성에 주눅이 든 소심하고 나약한 남성 찰리가 소설의 주인공. 그는 우연히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아내를 맞아들인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내는 딸 소피를 낳다가 숨을 거둔다. 이때 소심한 남성 특유의 피해의식이 작동한다.“누군가 날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엮어내는 상황들은 익살스럽기 짝이 없지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소시민적 행복이 깨질까 전전긍긍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정면으로 맞서게 하는 또다른 동력이 된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영혼의 그릇’을 수거해 윤회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더러운 직업’ 종사자 찰리의 눈을 통해 죽음은 새롭게 다가온다.“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나게 마련이죠.”라며 담담히 받아들일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두려운 것을 적극 끌어안을 때만이 내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패러독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주는 교훈”이라고 이 소설을 평했다.1만 4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책꽂이]

    ●홀소리 여행(김길나 지음, 서정시학 펴냄) 1995년 시집 ‘새벽 날개’로 등단한 시인의 네번째 시집. 한글의 닿소리와 홀소리를 시의 모티프로 삼아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과 영혼을 노래했다.6000원.●소녀, 소년을 만나다(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문학동네 펴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가운데 소녀를 사랑한 소녀 이피스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소년으로 변신한다는 이피스 신화를 재해색한 장편소설. 스코틀랜드 출신의 레즈비언인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성적 소수자들의 사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남아선호 사상을 에둘러 비판한다.9500원.●카카오 80%의 여름(나가이 스루미 지음, 김주영 옮김. 비플 펴냄) 17세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꿈과 욕망을 다룬 청춘 미스터리 소설. 사이버 친구, 노인 대상 범죄 등 녹록지 않은 사회문제를 다뤘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돋보인다.9500원.●사월의 마녀(마이굴 악셀손 지음, 박현용 옮김, 문학동네 펴냄) 스웨덴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수상한 작가의 판타지 미스터리 소설. 장애와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인 스웨덴 복지 정책의 이면을 살핀다.1만 5000원.●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카슨 매컬러스 지음, 이소영 옮김, 열림원 펴냄)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에 비견되는 작가의 일곱가지 색깔 사랑 이야기.‘놀랍고 두렵고 슬픈’ 7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소외와 고독, 열망 등 인간관계와 감정의 실체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싼다.9000원.
  • 세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가?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은 명지대·LG연암문고와 함께 추진하는 서양고서 국역출판사업의 일환으로 ‘그들이 본 우리’(Korea Heritage Books·살림출판사) 시리즈 1차분 세 권을 15일 첫 출간한다.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에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1만여점의 한국 관련 고서와 문서, 사진 가운데 엄선한 91종이 실린다. 번역원 측은 “이 가운데는 지금껏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와 유일본 등 희귀본이 적지 않다.”며 “동북아 지역 인문사회과학과 한국학 전반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출간될 도서는 ‘임진난의 기록-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임진왜란’‘백두산으로 가는 길-영국군 장교의 백두산 등정기’‘조선의 소녀 옥분이-선교사 구타펠이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등 세 권.‘임진난의 기록’은 16세기 임진왜란을 직접 목격한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의 서간문이다. 프로이스 신부는 당시 유일하게 제3국인으로 임진왜란을 목격한 주인공. 그는 임진왜란의 발발양상, 구체적인 한반도 침략과 평화협상 과정 등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내륙에서는 패배의 연속이지만 바다에서는 불을 뿜는 전함(거북선)으로 조선 수군이 우세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영국군 대위인 카벤디시와 굴드 아담스의 백두산 등정기다.1891년 백두산을 오른 이들은 서울, 원산, 갑산, 보천의 모습과 기온, 고도, 각 지역의 가구 등을 상세히 적었다. 당시 대표적인 민속화가인 김준근의 풍속화도 여러 점 실려 있다.‘조선의 소녀 옥분이’는 미국 감리교 여성선교사 미너바 구타펠이 쓴 9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이 중 4편은 실화로 조선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이 사업은 세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계기이자 우리를 세계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출간 의의를 밝혔다. 번역원 측은 “현재 연간 평균 예산은 1억 5000만원으로, 매년 10종씩 10년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나 예산이 늘어나면 앞으로 5년내에 완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관가 포커스] 조달청 차장의 ‘씁쓸한 퇴진’

    지난 7일 오후 정부대전청사 2층 대강당은 조달청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갑작스러운 염재현 차장(1급)의 퇴임식이 있어서다. 지난달 10일 장수만 청장 부임 후 대전청사 차장 중 가장 먼저 용퇴 의사를 밝힌 지 한 달 만에 마련된 자리다. 이 자리에서 염 차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라며 “(공무원은)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말로 28년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선배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 퇴임식에 참석한 조달 공무원들은 아쉬워했다. 감사원에 대해 원성이 터져 나왔고 “영혼이 필요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염 차장은 지난해 8월 구매사업본부장 재직 당시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으면서 공직생활에 오점을 남겼다. 감사원은 레미콘·아스콘 조달구매의 문제를 지적했다. 단체수의계약이 폐지됐음에도 조합을 참여시킨 것에 대해 대가성 및 특정업체 결탁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개시 통보를 한 것. 때문에 그의 명예 퇴직은 불허됐다. 게다가 감사 6개월이 지나도록 처분이 내려지지 않자, 후임 인사 지연 등 부담을 느껴 사직(명퇴금 포기)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최대 치적인 단체수의계약 폐지에 반하지만 비리가 아닌 물품의 특성과 당시 상황을 고려한 집행기관의 정책 운용에 대해 징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의도된 감사’,‘지나친 실적주의’,‘괘씸죄’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감사원이 당시의 상황과 물품의 특수성을 잘 알면서도 원칙의 잣대를 고수한 것과 장기간 처분을 미룬 것에 대해 후배들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존경받는 선배의 씁쓸한 퇴진을 보면서 ‘실용’과 ‘원칙’ 사이에서 이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음악이 부리는 조화/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글로벌 시대] 음악이 부리는 조화/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있은 지 달포가 지난 지금도 이에 대한 평가는 진행형이다. 당초 공연 전부터 미국에선 찬반이 분분했다. 지지자들은 음악이라는 인류 보편적 매개체를 통해 북한 사람과 소통하는 기회라는 데 의미를 뒀고 이 공연이 북·미관계를 푸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가졌다. 반대자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될 뿐이라고 했다. 논란의 와중에서 주최측은 북한에 공연 중계, 외신 취재, 양국 국가를 포함한 연주곡의 자유선정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해 비판론을 무마코자 했다. 현장에 다녀온 미국인들은 공연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청중도 점점 호응을 높여가다가 끝내 기립하며 못내 작별을 아쉬워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북한 언론이 공연을 아주 작게 취급한 사실과 청중이 동원된 것으로 보였다는 점, 공연 후에도 북한이 핵문제에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남북 축구경기에서 우리 국가 연주에 여전히 반대하였음을 들어 그 성과를 부인하였다. 이렇듯 북한과의 문화교류는 예외 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찬반 모두 부분적인 진실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과 외국간의 교류에는 의당 북측의 계산된 의도가 있을 것이나,(최근 북측은 뉴욕필 공연을 개방 사례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상대측의 목표가 전혀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반화하여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북에 득이 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상대가 겨냥하는 효과도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1931년 전설적인 재즈 연주가 루이 암스트롱은 그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텍사스의 오스틴에 공연을 하러 간다. 청중 중에는 찰스 블랙이라는 텍사스 대학 신입생이 있었다. 그는 암스트롱이 누구인지 모르고 재즈 음악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그가 공연에 간 이유는 함께 춤출 여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날 연주를 듣고 흑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그는 암스트롱을 비롯한 흑인 음악가들의 천재적 재능과 공연장을 압도하는 권위, 예술적 자기통제 능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까지 하인으로서의 흑인만을 보아왔던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한 고교생은 음악은 좋으나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검둥이일 뿐’이라면서 나가 버렸다고 한다. 후일 블랙은 예일 법대의 저명한 헌법학 교수가 된다. 그런데 16세에 접한 암스트롱의 음악은 흑백문제에 대한 그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결국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권소송에 참여하도록 이끈다.1954년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 소송에서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릴 때 그는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승소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평양의 뉴욕필 공연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 동원된 사람들일 수 있다. 중계에 접한 많은 이들도 뉴욕필이 누구인지 모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뿌려진 감동의 씨앗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상당수는 ‘그래도 저들은 원쑤 미제일 뿐’이라고 단정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은 심금을 울리는 보편적 언어로 말한다. 그것이 어떠한 조화를 부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지 지금 말하기는 이르다.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경색국면으로 치닫는 요즈음 뉴욕필이 남긴 음향은 벌써 공허한 듯 보인다. 그러나 ‘신세계로부터’나 ‘파리의 미국인’의 선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또 ‘캉디드 서곡’을 연주하기 직전 작곡자 번스타인의 영혼이 지휘하게 하자면서 지휘석을 비워 경의를 표한 로린 마젤의 모습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게다. 그 기억의 자리는 음악이 정치공학과는 다른 작동원리와 시간개념으로 조화를 부리는 곳일 테고 그 조화는 진행형일 것이다. 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 [5일 TV 하이라이트]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시에나는 중세 토스카나의 선구적 도시로, 붉은 빛 전통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한 두오모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인 캄포 광장 이외에도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오랜 전통의 기운이 내뿜는 소박함에 취하게 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찾아 머나먼 중세마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 본다.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10시10분) 성북구 정릉 3동 894번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스카이 아파트가’. 정밀 안전진단 결과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위험등급으로 판정받고 철거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이 아파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보금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KBS2 오후 7시55분) 영수에게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안 한자는 바쁘다는 영수를 기어이 불러들여 결혼을 재촉한다. 심란해져 돌아오던 영수는 오피스텔에서 경화와 마주치는데, 같은 건물로 이사를 온다는 말에 어이가 없다. 소라 때문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영수는 돌아온 종원에게 결혼하자면 할 거냐고 묻는다. ●TV속의 TV(MBC 오전 11시) 죽은 아빠의 영혼이 젊은 남자의 몸속에 들어가 딸의 주위를 맴도는 49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누구세요?’. 딸을 향한 아빠의 따뜻한 부성애와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를 살펴 본다. 이번 주 ‘TV 시간여행’에서는 과거 TV속 배경음악들을 되돌아본다. ●천하일색 박정금(MBC 오후 7시55분) 유라는 아이를 갖게 됐지만 경수가 별로 기뻐하는 내색이 없자 화를 낸다. 용준은 형 용두에게 박정금과 결혼하면 안 되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용두로부터 크게 욕을 먹고는 할 말을 잃는다. 한편 가출소녀의 사건 문제로 정금은 다시 어렵게 경수와 재회하지만, 감정을 숨긴 채 말한다. ●조강지처클럽(SBS 오후 10시) 지란이 대문 밖에서 벌을 세우다 철이를 잃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수는 지란에게 건방지다고 핀잔을 준다. 양순마저 지란을 나무라자 어이가 없어진 지란은 화신이 바람난 것 같다고 역공을 취한다. 한편 복수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 기적은 저녁을 먹다 복수를 혼자 두고 나와 용희와 통화를 한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EBS 오후 5시50분) 헨리는 갑작스레 병으로 앓아 눕는다. 그는 아내 메리와 세 명의 딸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고 싶었지만 법적인 문제로 모든 재산을 전처의 아들인 존 대시우드에게 넘겨 줘야 하는 상태. 헨리는 성품이 모질지 않은 존을 불러 새어머니와 배다른 여동생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라 유언하고 숨을 거둔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30분) 환경 오염과 보전에 관한 사항은 전 세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남아메리카 대륙도 예외는 아니다. 생계를 위해 원주민들이 삼림과 수자원을 파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나오는 다량의 쓰레기도 물 부족과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총선 D-8(유세전 대격돌)] “박근혜 이름 팔지 말라”

    [총선 D-8(유세전 대격돌)] “박근혜 이름 팔지 말라”

    “부산을 사수하라.” 한나라당이 흔들리는 부산 표심 잡기에 나섰다. 부산의 전체 17개 지역구 중 남구을, 서구, 사하갑·을, 금정구 등 5곳에서 친박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으로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31일 부산시당에서 중앙선대위 회의를 열고 ‘부산 지키기’에 돌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강재섭 대표와 박희태·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총출동했다. 남은 기간 박 위원장은 영남권에서, 김 위원장은 수도권에서 후보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강 대표는 회의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겨냥,“엄연히 당에 계시는 박근혜 전 대표 이름과 영혼을 팔고 있는 후보들이 많다.”면서 “그분들은 당원이 아니다. 우리 한나라당은 총선 뒤 한나라당 이름을 도용한 분들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복당 불허’ 입장을 재차 주장했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몇몇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들어오겠다고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당행위를 한 뒤 복당한 예가 없었다.”고 말하며 거들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전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유세를 간절히 원한다.”며 대구 달성군에 머물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SOS 요청’을 보냈다. 이어 안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가 박빙지역 모든 지역구의 선거 유세에 나오시길 국민들과 당원이 바라고 있다. 다시 한번 애당심을 기대한다.”고 거듭 청했다. ●“박근혜 침묵도 이적행위” 부산 선대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더 이상 박 전 대표께서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침묵은) 무언의 무소속 지원으로밖에 볼 수 없고 이적행위에 해당한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부산 선거판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날 강 대표는 무소속 후보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5개 지역구를 차례로 방문해 지원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무소속 출마한 남구에서 유세도 제대로 못하고 체면만 구기는 등 친박 성향 지지자들의 ‘저항’을 실감해야 했다. 부산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아일랜드」의「잔·다르크」가 임신을 했다 』 - 그렇잖아도 심심찮게 세계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영국의 처녀 하원의원「버나데트·더블린」 양(22)이 가을에는 아버지 없는 엄마가 되겠다고 스스로를 폭로해, 본바닥 「아일랜드」와 영국은 고사하고 온 세계에 다시 한번 「쇼킹」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핫·팬츠」로 의사당 휩쓸고…약한자의 대변자를 자부 북「아일랜드」의 「쿠크스타운」빈민가에서 태어나 여자대학생의 몸으로 쟁쟁한 상대후보의 경쟁을 물리치고 겨우 21살의 나이에 영국 하원의원의 자리를 차지한 것만도 영국의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거니와 신사중의 신사만 모이는 「신사의 나라」의 의사당에서 휘파람을 불며 복도건 어디건 마구 뛰어다니기가 일쑤. 그런가 하면 「미니」나 「핫·팬츠」차림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품위를 자랑하는 다른 의원들의 눈둘바를 모르게 만드는 말괄량이 의원도 영국의회 사상으로는 처음있는 일이다. 술·담배가 또한 보통이 아닌 「헤비」급. 북「아일랜드」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분쟁으로 온통 폭동의 거센 바람속에 가랑잎처럼 밀려다닐 때, 「데블린」양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에 대항하여 「가톨릭」계의 군중을 선두에 나서서 지휘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이 「아가씨 투사」의 팔짓 발짓의 몸짓 하나하나도 모두가 의표를 찌르는 일들 뿐이라 자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 비록 가난한 목수였지만 「아일랜드」의 자유와 통일을 염원하고 또 그러한 행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어렸을때부터 「데블린」양에 배어들어 12살 때는 벌써 「반역의 시」를 불러 정치적 항의 행동의 첫발을 내디뎌 「투사」로서의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분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세기를 걸쳐 내려오는 숙명적 대결, 언론과 집회를 제한하는 특별권한법, 언제까지나 헤어날 아무런 보장도 없는 서민들의 가난-이런것들이 하나하나 「데블린」양의 과격한 마음에 불을 질러 폭발적 행동을 치닫게 만들었다. “의원(議員)은 정치문제만 대표…사생아 배건말건 개인(個人)일” 타고난 웅변을 종횡으로 휘둘러「벨파스트」대학에 들어가자 이미 학생지도자의 하나로 꼽혔다. 이후로의 「데블린」 양의 생활은 정치집회와 데모의 연속이었다. 능란한 말주변과 지칠줄 모르는 행동력은 희망없는 나날을 지내는 「가톨릭」계통의 빈민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잘 살수 있는가』그들은 환호속에 「데블린」양을 지도자로 삼았고 성녀(聖女)로 따르기조차 하게 된 것이다. 이번의 「성녀임신」소식은 「아이리시·타임즈」의 여기자가 「데블린」양과 「인터뷰」한데서 명백해진 것인데, 이에 따르면 「데블린」양은 올 2월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나아갈 길을 결정할때까지 침묵을 지켜 왔다는 것. 이제 마음이 서서 세상에 털어 놓는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기르려고 했어요. 낙태는 도의상 할수없어요. 아버지가 누구냐고요? 그것은 밝힐 수 없죠. 왜 밝힐수 없느냐는 것도 말할수 없어요』-서슴없는 태도다. 『의원은 정치문제를 대표할 따름이며 도덕적인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겠어요? 의원도 사람인 이상 아이를 낳는 법. 그것이 사생아건 뭐건 상관할건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다운 배짱이다. 물론 자기로서도 도덕적인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단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사생아의 딱지를 붙여 차별하려고 드니 그런 모순이 어디있어요. 왜 죄가 아기한테 있어요. 있다면 부모지요』 사생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 2학년 때 학생토론회에서 당당한 이론을 펼친적이 있다. 이번의 「임신」은 그 실천에 불과한 것.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본적인 성도덕에 대해 놀랄만큼 모르고 있어요. 모두가 인습에 사로잡힌 옹고집이란 말예요. 자유연애는 인정하지만 사생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모순이 어디있을까요』 「데블린」양은 결혼도 않지만 의원직도 그만두지 않겠단다. 더구나 다음 선거에도 출마하겠다니…. 지지자가 「가톨릭」신자들이라 그들의 엄격한 윤리관에 비추어 이번 일이 용납이 될는지 다음 선거에서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장본인인 「데블린」양 생각으로는 별로 타격을 받을 것 같지 않다는 눈치. 「데블린」양의 자서전적인 저서『내 영혼의 가치』를 들춰보면 곳곳에 의회의 타락과 무능을 꼬집고는 자기는 국회의원에의 매력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연애를 인정한다면 사생아(私生兒)도 인정해야 마땅” 『북「아일랜드」문제가 「웨스트민스터」에서 토의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선거구에 관심이 없는 의원들, 이권과 지위만이 그들에게는 보물, 의회란 그들의 사교「클럽」입니다. 내가 「아일랜드」를 위해 해준 것은 겨우 벽촌에 우체통 하나를 설치해준 것 뿐예요. 정치란 나에게는 알 수도 없는 「게임」, 내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의를 찾자면 「아일랜드」의 비참한 현상위에 이득을 노리는 정객들이 내 자리를 못차지하게 하는 것 뿐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놓고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반응은 어떤가. 「데블린」양의 지지파, 중부 「얼스터」독립사회주의자 기구에서는 『얼마나 용기있는 일인가, 역시 「데블린」양은 경탄할만 하다』고 즉각 성명을 발표하곤 공민권운동측의 선동적 악선전을 막기위해 「데블린」양을 북「아일랜드」수도로 불러 재신임을 다짐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대변인은 『누가 이런 궁지에 몰리더라도 교회는 변함없는 신의 사랑을 내릴뿐』이라고 자못 관용이다. 「데블린」양의 앙숙인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 「이안·페이즐리」목사마저도 『죄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외엔 할말이 없소』 식이다. 환호를 지르며 갈채를 보낸 것은 역시 「아일랜드」의 「우먼·리브」. 『어젯 밤을 기해 결혼 않은 엄마의 수치심은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죽어버렸다』 스스럼없이 정치집회에 나온 「데블린」양의 아랫배는 아닌게 아니라 엄마가 될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Q>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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