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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대선 지역공약 내지 말자/박현갑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대선 지역공약 내지 말자/박현갑 정책뉴스부장

    “플래카드 업자들만 돈 벌었다. 영남권 민심은 굉장히 안 좋다. 레임덕이 우려된다. 다음 대통령 후보들은 조심하겠지.”(대구지역 공기업 간부 A씨) “1997년 5월 김영삼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면서 레임덕이 오더라. 청와대에서 공무원들에게 보고 좀 해 달라고 했으나 없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왔다. 현 대통령은 일을 열심히 하는 분이니 권력 누수 현상이 있겠느냐.”(공직자 B씨) 동남권 신공항 공약 백지화 소식에 나온 주변의 반응들이다. 올해는 유난히 지역문제로 시끄럽다. 지역개발을 위한 대통령 선거공약이 문제였다. 동남권 신공항 선정은 2007년 8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 원래 2009년에 후보지를 발표하려 했으나 ‘영혼 없는 공무원’ 때문인지 어제서야 백지화로 결론났다. 2년 전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나 이번 발표내용은 사실상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역갈등이 난무할 선거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이다. 당장 오는 27일 재·보선에 이어 내년에 총선(4월)과 대선(12월)이 있다. 지역이기주의성 발언은 극에 달한 상태다.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해 신문지상에 광고전을 잇따라 폈다. 지역주민의 표로서 당선된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지역발전을 위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보를 보였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예산낭비가 아닐 수 없다. 과학 비즈니스벨트 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당초 충청권 조성 방침을 선회해 입지 선정 재검토 입장을 보이면서 경기, 전남·북, 경남·북 등 여러 광역지자체가 유치전에 가세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듯 신공항 백지화로 성난 대구·경북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이 사업을 대구·경북권에 줄 경우, 충청권은 물론 유치를 희망하는 다른 지자체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들은 특정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지역중심형 개발공약’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대선은 그 후보의 시대 비전과 정책대안을 구체화한 공약을 알리고 이를 토대로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하는 과정이다. 또 대선 후보의 공약은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등 특정 지역을 근거로 한 공직 입후보자의 공약과는 그 크기가 달라야 한다. 최고 통치권자로서 국토 전체를 정책대상지로 삼아 지구적 문제가 된 녹색성장 방안 강구 등 담론의 폭과 깊이가 다른 것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개발공약이 필요하다면 ‘사업중심형 개발공약’이 바람직하다. 개발취지와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평가기준, 심사일정 등과 함께 공표하고 희망 지역으로부터 사업 제안서를 받아서 처리하면 뒤탈이 적다. 우리나라처럼 국토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은 나라에서는 특정 지역을 토대로 한 대선공약은 그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약을 못 지키기나 수정할 경우, 그 해명도 공약내용을 토대로 하는 게 옳다. 2007년 12월 나온 한나라당의 17대 대선 권역별 정책공약집에 보면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은 ‘통합을 위한 네번째 약속’이다. 이 공약집은 한나라당 17대 대선 중앙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 주도 아래 나왔다. 김 전 의장은 편집후기에서 “400여명의 정책전문가들이 참여해 180여 차례 토론과 회의를 거쳤다. 공약 최종 결정단계에서 대선후보는 국민의 편에 서서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장시간 난상토론으로 공약안을 검증했다.”며 ‘전문가 검증 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공약을 ‘없던 일’로 하려면 당시 공약의 문제점에 대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기고백은 공약이행자가 하는 게 유권자에 대한 도리이다. 정책의 효율성은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표밭갈이에만 치중한 선거공약은 더 이상 내지 않는 게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다. eagleduo@seoul.co.kr
  • 군위 ‘삼국유사 테마’ 도시로

    군위 ‘삼국유사 테마’ 도시로

    인구 2만여명의 초미니 자치단체인 경북 군위군이 역사·문화·관광 중심 도시 도약을 위한 날개를 활짝 펼쳤다. 시대별 역사·문화 콘텐츠를 관광산업과 연계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나선 것이다. 군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국비 641억원 등 총 1374억원을 투입해 의흥면 이지리 일대 143만㎡ 터에 ‘삼국유사 가온누리(세상의 중심)’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29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시대~고려시대까지의 신화, 문학, 설화, 놀이, 장소 등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사업을 접목한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컨셉트는 크게 세 가지. ▲삼국유사의 영혼을 담은 ‘으뜸누리’ ▲삼국유사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얼쑤누리’ ▲삼국유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아름누리’ 등 3개 공간이다. ‘으뜸누리’에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모든 고대국가의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삼국유사 역사체험관 및 이야기 학교가 들어선다. 놀이마당, 수경공원, 먹거리촌이 들어설 ‘얼쑤누리’에서는 삼국유사 문학관 및 콘텐츠 마당놀이, 관람객 휴양놀이, 야외 카페 등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아름누리’에는 삼국유사 콘텐츠센터와 국제교류관, 문화 콘텐츠 창작 마을 등이 들어선다. 군은 또 올해부터 2017년까지 일연(1206∼1289)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인각사(고로면 화북리) 복원에도 나선다. 사업비는 113억원. 천년고찰 인각사는 신라 선덕왕 12년(643)에 원효가 창건했으나 이후 사찰 내 상당수 건축물이 훼손 또는 소실됐다. 군은 극락전과 명부전, 요사채, 시주문, 일각문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2013년까지 82억원을 들여 군위읍 서부리 옛 군청사 및 군수 관사 부지에 ‘군위 역사문화 테마공원’을 조성, 조선시대 역사·문화를 재현한다. 아울러 80여년 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네티즌들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된 중앙선 화본 역사(驛舍·산성면 화본리), 관사 2개동 복원 및 정비 사업도 벌인다. 군은 또 내년부터 3년간 국비 92억원 등 132억원으로 군위읍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의 옛 생가 일원에 ‘사랑과 나눔’ 공원도 조성한다. 군위 용대리는 김 추기경이 다섯살 때 부모를 따라 선산에서 군위로 이주해 군위초교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장욱 군수는 “군위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라며 “이러한 사업을 통해 민족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관광산업과도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조민기 트위터 글로 인터넷 ‘시끌’

    조민기 트위터 글로 인터넷 ‘시끌’

     탤런트 조민기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인터넷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조민기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드라마와 작가를 겨냥한 듯한 원색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누가 보아도 지난 27일 종영한 MBC TV 주말극 ‘욕망의 불꽃’과 정하연 작가에 대한 비난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조민기는 정 작가가 ‘명예훼손’을 언급하자 아예 작심한듯 “내 영혼이 훼손됐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조민기는 30일 오후 5시 30분쯤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근데 그(정하연 작가)는 엄청 최고인가 봅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발언이 이슈가 되자 반박에 나선 정 작가를 정면 겨냥한 것이다. 조민기는 이어 ”그는 명예가 훼손되었다 하는데. 나는 영혼이 훼손되었지요. 아버지뻘 얘기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리 교만하진 않으시죠.”라고 정 작가의 명예훼손 주장을 반박했다. 앞서 조민기는 지난 26일 트위터에 “완~전 쫑!! 지난 월화수목 간절곶에서 마지막 촬영했는데 심신이 표독스러워져서 얼굴 안보여주고 싶어서 그냥 올라왔어”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했어.반성도 없고 위선만 있는 악령들로부터 탈출”이라고 썼다.  간절곶은 ‘욕망의 불꽃’의 주 촬영지이자 마지막 촬영지였던 울산의 관광지다.  다음날인 27일 밤에는 “이 세상 단 한 사람은 그것을 ‘완벽한 대본’이라며 녹화 당일날 배우들에게 던져주며 그 완벽함을 배우들이 제대로 못해준다고 끝까지 하더이다.봐주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저희들도 자기가 쓴 대본 내용을 기억 못 하는 자의 ‘작가정신’에 화를 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포기했었어요”라고 했다. 대본 지연 등으로 드라마 촬영이 급박하게 돌아간 사연에 대한 불만이다.  조민기는 또 “세상의 밝고 어두움은 내 눈이 감지하는 게 아니었어. 분명하네 무겁고, 역겹다는 것이 마음에서 사라지니…, 심안이 밝아지니 육안도 개운하게 밝은…, 라식 수술하면 이렇게 되는 거겠지?”라는 말로 촬영하며 불편했던 심경을 드러냈다.  ‘욕망의 불꽃’은 복수심과 욕망에 눈이 먼 악녀 윤나영을 중심으로 천륜을 끊고 의심하며 이용하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았다.  ‘욕망의 불꽃’은 스타급 작가와 배우들을 기용했음에도 초기 낮은 시청률로 한바탕 내분을 겪었다.  지난해 말 정하연 작가가 배우들과 함께 한 대본 연습 현장에서 신은경과 조민기의 연기력을 지적했다. 당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정하연 작가가 신은경과 조민기가 연기를 못하기 때문에 드라마가 안되고 있다.”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주인공을 양인숙(엄수정 분)으로 만들겠다.”고 해 주위를 싸늘하게 했다고 전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정하연 작가도 반격에 나섰다. 조민기가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정 작가는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7~8개월동안 함게 고생했는데 그런 글을 한두개도 아니고 7개나 트위터에 올린 것은 나 뿐만 아니라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을 모두 욕보이는 것”이라며 “고생한 사람들은 다들 뭐가 되나”라고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정작가는 이어 “내가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인데 이런 논란이 일다니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작가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서 깜박깜박 잊는다고 쓰면 모를까. 이건 너무 악의적이다. 프로그램 전체를 모독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작가는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서 고소까지 생각했지만 조민기 쪽에서 정식으로 사과를 한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라며 “만약 사과가 없다면 정식으로 고소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조민기 소속사 라임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개인적인 공간에 올린 글의 파장이 너무 커진 것 같다. ”고 아쉬움을 표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천안함 폭침 1주기] 백령도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

    [천안함 폭침 1주기] 백령도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

    27일 오전 11시 서해 최북단 백령도. 천안함 유족들은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 새겨진 병사들의 얼굴 부조를 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설치 위령탑 앞에 선 300여명의 해군 장병들도 함께 흐느꼈다. 천안함 유족들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생존 장병, 해군 및 해병 장병 등은 20분의 짧은 위령탑 제막식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천안함 피격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 건립된 위령탑은 올해 1월 4일부터 8억 2000만원을 들여 제작됐으며 세개의 삼각뿔이 8.7m 높이로 치솟아 있다. 주탑은 우리 영해와 영토, 국민을 언제나 굳건히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중앙에 있는 보조탑에는 46용사 얼굴을 부조로 담았으며 좌측에는 추모시, 우측에는 비문을 각각 새겼다. 비문은 “서해 바다를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 천안함 46용사가 있었다. 이제 그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여기 위령탑을 세우나니 비록 육신은 죽었다 하나 그 영혼, 역사로 다시 부활하고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자유대한의 수호신이 되리라.”고 병사들을 추모했다. 또 “46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히려 ‘전우가 목숨 바쳐 지킨 바다, 우리가 사수한다.’는 해군 장병들의 해양수호 의지는 자손만대 계승될 것이다. 꽃피지 못한 채 산화한 그대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이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해군 대규모 해상훈련 마무리 주탑 아래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해 북방한계선(NLL) 사수를 위해 산화한 병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겠다는 해군 장병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김성찬 참모총장은 “해군 장병들은 고인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받들어 NLL과 조국 해상을 최선봉에서 반드시 수호할 것을 다짐한다.”고 약속했다. 한편 천안함 사건 1주기를 맞아 지난 25일부터 실시된 해군의 대규모 해상훈련이 이날 마무리됐다. 동해와 서해, 남해 전 작전 해역에서 해군 작전사령부 예하 전 함대사령부가 참가한 훈련에는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구축함, 초계함, 잠수함 등 함정 30여척과 P3C 해상초계기, 링스헬기 등의 항공기가 참가했다. 3일간 실시된 훈련은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해 대잠수함전, 대공전, 해상공방전, 해양차단작전, 대함 및 대공 사격 등이 강도 높게 실시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올해 나이 여든하나!’ MBC ‘무릎팍도사’의 개그맨 유세윤 버전으로 그렇다. 그런데 이 ‘사내’-2008년작 ‘그랜토리노’의 고집불통 참전용사를 떠올리면 할아버지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지칠 줄을 모른다. 환갑을 넘긴 1990년 이후 감독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19편을 연출했다. 다작이면 작품 수준이 들쭉날쭉할 법한데, 그렇지도 않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으로 오롯이 두 시간을 끌고 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얘기다. 그의 신작 ‘히어애프터’(Hereafter)가 24일 개봉했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영화) 3부작-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석양의 무법자-의 총잡이와 1970~80년대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망나니 형사가 어떻게 거장이 됐는지 56년 영화인생을 더듬어 봤다. ●선악이 모호한 총잡이와 무대포 형사 1955년부터 B급 영화의 단역으로 나서던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1959년 CBS 서부연속극 ‘로하이드’였다. 주인공 로디 역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때문인지 감독이던 토마스 카는 “게으르다. 한 번도 촬영 시작을 같이한 적이 없다.”고 뒷담화(?)를 남겼다. ‘로하이드’의 인기가 쇠할 무렵 기회가 왔다. 무명에 가깝던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원제:A Fistful of Dollars)였다. 이때가 1964년. 레오네 감독은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을 원했는데 거절당했다. 이스트우드는 “모두에게 친절한 영웅에 신물이 나던 찰나였다. 안티 히어로가 될 때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저예산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은 흥행은 물론,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판초를 뒤집어 쓰고 시가를 씹어대는 고독한 카우보이는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정통 서부극의 영웅과는 정반대 지형에서 관객의 뇌리에 각인됐다. 1970~80년대는 ‘더티 해리’ 5부작과 보냈다. 샌프란시코의 강력계 형사 해리 캘러헌이 법망을 피하는 악당들을 매그넘44 권총으로 단죄하는 이 영화는 ‘파시스트적인 폭력’이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관객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전성기에도 그의 연기에 대해 “뻣뻣한 나무 막대기” “얼굴 찌푸리고 서 있는 것 외에 할 줄을 모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연기는 고함치고, 울부짖고, 감정을 쥐어짜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감독 20년 만에 거장 반열 경력이 쌓이면 카메라의 뒷사정이 궁금해지는 모양. ‘더티 해리’ 돈 시겔 감독의 연출 권유에 솔깃해진 그는 1971년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찍으면서 제작사 맬파소프로덕션을 차렸다. DJ와 스토커를 다룬 데뷔작은 흥행은 물론, ‘소름 끼치는 스릴러이자 아름다운 음악영화’란 호평을 얻았다.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20년이 지난 뒤. 악명을 떨쳤던 무법자가 은퇴 이후 조용히 살려고 하지만, 악덕 보안관과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결국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용서받지 못한 자’로 1992년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쓸었다. 배우 출신으로는 5번째 감독상 수상. 2005년에는 30대 여성복서와 늙은 트레이너의 ‘유사 부녀’ 관계를 다룬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또한번 거머쥐었다. 필름 바깥의 삶도 흥미롭다. 1952년 공화당원이 됐고, 68·72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베트남·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인 척하는 것은 질색했다. 스스로는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라고 말한다. 1986~88년 카멜시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소기업과 환경 보호에 힘썼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히어애프터’는 어떤 영화 기획자로 나선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협업으로도 화제를 모은 ‘히어애프터’(12세 이상 관람가)는 사후세계를 다룬다. 영혼과 대화하는 심령술사 조지(맷 데이먼)와 쓰나미에 휩쓸려 죽다가 살아난 여기자 마리(세실 드 프랑스), 모든 걸 의지했던 쌍둥이 형을 잃은 마커스(프랭키 맥라렌)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발짝 물러서 관조한다. 죽음의 위험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결국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이스트우드는 “저 세상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믿는 바는 있지만 모두 가설일 뿐이다. 가 봐야 아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화 속 사후세계의 영상은 평화롭다. 노감독은 죽음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공지영 “신정아 에세이, 대필 의혹”…신세계 정용진도 곤혹

    공지영 “신정아 에세이, 대필 의혹”…신세계 정용진도 곤혹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 ‘4001’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대필 의혹 및 대기업 임원과의 만남설 등 각종 의혹과 소문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24일 소설가 공지영씨는 신씨의 에세이를 누군가 대신 썼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신정아씨 책을 읽는데 생각보다 지루하다.”며 “그냥 기자들이 호들갑 떨며 전해주는 이슈들만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듯”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서문과 본문의 문장이 너무 달라, 대필 의혹이 상당히…논문 리포트도 대필이라는데”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공씨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책 ‘상처없는 영혼’과 신씨의 책 표지가 너무 비슷하다고 주장하자 “왜 하필 나랑. 근데 이거 너무 비슷하잖아. 철저하게 묻어가기인가?!”라며 표지 디자인 표절 의혹도 제기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애매한 글을 썼다가 신씨와 ‘저녁식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베스트셀러 작가님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 책이 많이 팔릴까 봐 걱정을 하시더라는…그래서 속으로 설마 했는데…설마가 사람 잡았네...ㅠㅠ”라는 글과 함께 신씨의 책이 잘 팔린다는 기사를 링크했다.  단순히 ‘베스트 셀러 작가와 저녁’이라는 말과 링크된 신씨 관련 기사만 연관지어 보면 정 부회장과 신씨가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 글이 곧바로 네티즌들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오해가 시작됐다. “정 부회장과 저녁을 먹은 사람은 신정아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났다는 이야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점점 확산되자 신세계는 24일 정 부회장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 이모씨 이며 신씨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도 이날 트위터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국어가 잘못된 건가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가끔 틀리기는 하지만”이란 글을 올리며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오해는 ‘신정아님=베스트셀러작가’라는 기자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 제 무식이 원인입니다”, “베스트셀러작가의 의미를 재정의 해야겠어요” 등의 글을 연이어 올리며 거듭 해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선데이서울 73년 7월 8일호 제6권 27호 통권 제 247호]  귀여운 두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 꿇어 엎드린 그 젊은이의 뺨에는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만 흘러내린다. 아내는 복역 중에 있고 연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사랑과 미움의 갈림길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애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어떤 가장. 재기의 몸부림과 속죄의 절규로 썼다는 애독자 김모씨(기사 원본엔 풀 네임 적시돼 있음)의 수기를 싣는다.   아마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해(1972년) 9월8일자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일가족 집단 음독자살」 제하의 기사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의 일가족 가장이다. 이제 내 나이 30살. 그리하여 나는 이 사건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잃고 속죄의 몸부림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시초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독자살 미수에 그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鄭京淑(25·가명)이라는 여인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보고 왠지 동정심에 이끌려 찾아가 치료와 퇴원 수속까지 자비로 해준 일이 있었다. 동정은 사랑으로 변하여 결국 부모와 친척이 없다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동거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군에 입대했고 파월(월남 파병을 말함) 되었다가 69년 8월에 귀국, 제대했다.  제대를 한 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님과 가족들에게 얘기했으나 과거가 있는 그 여자(실연 후 음독했다고 함)와는 절대로 결혼시킬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69년 8월27일 나의 집이 있는 서울을 도피해 인천시내 K예식장에서 가족들이라고는 한 사람도 참석치 않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약 1년 동안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서울 금호동 변두리에 셋방을 얻어 생활했다. 아내가 첫딸을 낳자 어머니도 어느 정도 이해하여 집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와의 결혼을 극력 반대하던 어머니의 감정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어머니와 아내는 서먹서먹 했고 보이지 않는 불화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또 아들을 낳아 우리는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나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근이 되어 그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나는 직장 부근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번 갈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나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지(池)모양(20)과 사귀게 되었다.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으면 결국 몸을 하락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池양은 펄쩍 뛰며 아내와 헤어질 것을 요구해 왔다. 결국은 아내와 본격적인 이혼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장님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내도 설마 내 말이 거짓이겠지 하며 『사실이라면 사귀고 있는 여자와 직접 만난 다음에 합의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후 두 여인은 몇차례 만났으며 그때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두 여인의 사이는 외면적으로는 사이가 좋아보였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이혼 조건으로 요구하는 위자료를 그 당시 나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어 어렵게 되어 하루 하루 이혼문제는 지연되었으며 자연 池양과 나는 시내 여러 곳으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池양의 가족들은 나의 환경을 알게 된 후 자기 딸을 집에다 감금하다시피 꼼짝 못하게 했다. 더우기(더욱이)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머리까지 가위로 빡빡 깎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수건으로 쓰고서라도 또 집을 뛰쳐나와 나에게 빨리 이혼할 것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9월4일 아내는 이혼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 9월5일 합의이혼 수속을 끝내자고 말해 池양은 이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깊은 정이 든 아내와 막상 헤어지자니 망설여졌다. 나는 나의 확실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아는 선배를 찾아가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어떠한 판단이 옳은 지를 상의했다.  선배는 두 자식을 위해서 절대로 아내와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도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 여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池양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池양은 여태껏 미루어 온 결정을 눈 앞에 놓고 무슨 얘기냐고 흥분하여 서로가 옥신각신 심한 언쟁을 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있던 아내는 池양이 처녀의 몸으로 당신과 사귄 것인만큼 또 한 여인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 자기가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지금의 내가 말한 것은 심중히 생각한 결론이며 움직일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얘기가 쉽게 끝나지 않아 그날 밤 10시경 두 여인과 나는 집 부근에 있는 여관으로 장소를 옮겨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못 얻었다.  밤이 늦어 잠깐 잠이 들어 새벽 5시경 눈을 떠보니 두 여인은 어린 것을 데리고 내가 풀어논 팔뚝시계와 외투에 든 돈 등을 꺼내 가지고 행방을 감춰버렸다.  나는 혹시 집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가본즉 池양이 새벽 4시경 집에 들어와 잠자고 있던 맏딸 주현(3세)을 마저 업고 나갔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하루 온종일 두 여인의 행방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밤 9시가 조금 못되어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금 집 근방에 있는 여관마다 두 여인을 찾아 헤맸다. 겨우 신림동에 있는 K여관 101호실에 투숙한 사실을 알고 방문을 「노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여관 종업원이 창문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싸늘한 체온의 두 자식과 시체와도 흡사한 두 여인이 눈 앞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즉시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급히 S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주현이가 숨지고 다음 날 하오 2시경 장남 재훈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으로 그때까지도 의식불명인 두 여인의 회복을 미칠 것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약 46시간만에 점차 의식이 회복되는 두 여인을 뒤로 하고 나는 당면한 병원비와 입원비를 마련코자 집으로 뛰어가 세간살이와 집을 헐값에 급히 팔아 가지고(내놓고의 뜻으로 보임) 병원으로 돌아오니 이미 대기했던 각 신문사 기자와 방송사 기자들의 취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두 여인과 나에게 조서를 받아가고 다음 날 아내는 (직계)비속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회복되는대로 구속된다는 사실을 형사로부터 들었다.  그 후 두 여인의 건강은 놀라울이(놀라울) 만큼 빨리 회복돼 갔으며 음독을 하게 된 경위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여관을 나선 그들은 시계를 팔아 받은 돈으로 수십 곳의 약방을 돌아 음독할 약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해주고 어린 자식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느니 차라리 자식과 함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池양은 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닥쳐올 가족들의 비난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나머지 각자의 이유는 달랐으나 죽는다는 것에 합의를 보아 기묘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뒤 池양의 가족들은 나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했으나 웬일인지 고소를 취하, 나는 풀려났으며 그 해 10월27일 두 여인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되었다.  나의 잘못으로 죄 없는 어린 두 자식이 희생됐고 또 두 여인이 구속된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수차 자살을 기도했으나 뜻을 못 이룬채 두 여인이 구속돼 있는 경찰서로 면회를 갔었다. 그러자 아내가 그 전 내가 자기 오빠뻘이 되는 사람 집에 있을 때「타이어」 2개를 갖고 간 일이 있다고 해서 절도죄로 피소, 나 역시 11월1일 구속되어 한 경찰서 감방 안에는 뭇사람들의 웃음과 조롱거리가 된 두 여인과 내가 마주 쳐다보이는 쇠창살문 안에서 고통스런 3일을 함께 지냈다.  11월5일 두 여인은 먼저 영등포구치소로 넘어가고 나 혼자 있다가 11월10일 나도 구치소로 넘어가 영등포구치소로 내에 3인이 같이 수감됐다. 검치가 시작되어 매일 검사 앞에 푸른 수의를 걸친 두 여인과 나는 같은 검사실에서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나 池양은 내가 약을 사줬으며 자기는 절대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끝내 부인했다. 그러나 나는 살인죄에는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인정되어 절도죄로 10월 구형에 6월형을 선고받아 머리를 깎고 기결수로 노역장에 출역을 했으며 복역 중에는 두 여인의 공판 하루 전날 증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두 연인은 구형에서 징역 5년씩을 선고받았다. 池양 측에서는 변호인을 선정하여 변론을 했으나 아내는 변호인도 없이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며 池양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인가를 뉘우치며 짧은 복역기간 동안이나마 열심히 반성하고 일했다.  나는 형기가 만료되어 지난 5월3일 구치소의 육중한 철문을 나와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날 나는 아직도 구치소 안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를 면회하였다.  아내는 슬프게 흐느끼면서 『당신을 전과자로 만들고 두 자식을 죽인 내가 죄가 많아요. 이제라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池양과 결혼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석방되어 나오는 날까지 나는 꼭 당신만을 기다리겠소. 당신의 깊은 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건강히 있으라』고 일러둔채 말문이 막혀 돌아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첫날 면회를 간 후 이틀이 멀다 하고 나는 면회를 가며 매일 편지를 띄우고 있다. 이제 오직 나에게는 아내가 나오는 날까지 과거의 아픔을 거울삼아 힘껏 못다 이룬 둘만의 행복을 향해 줄달음칠 결심이다. 그래서 참되게 살겠다.  ■한 가족 음독자살 당시의 보도  「선데이서울」제207호 72년 9월24일자 P16에 보면 9월8일 金모여인과 정부 池모양이 신림1동 C여관에서 함께 음독자살을 꾀한 사건이 났다고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金씨의 수기에서와 같이 金씨의 아들(1살) 딸(3살)도 함께 어른들에 의해 음독, 72년 9월8일 현재 아들만 죽고 나머지 3명은 가료 중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사에는 池양과 金씨가 동거하는 곳에 나타난 金씨의 아내 鄭여인이 『위자료를 내면 양보하겠다』고 요구하여 옥신각신 하던 끝에 집에 돌아온 金씨가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라. 둘 다 꼴보기 싫다』며 내쫓아 버렸는데 엉뚱하게 본처와 정부가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 딸만 절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자유영혼’ 비트겐슈타인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자유영혼’ 비트겐슈타인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듣고 있노라면, 이 어질할 정도로 아름다운 왈츠곡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가 프러시아 군대에 패한 직후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렵다. ‘예술의 도시’ 빈이 실은 말러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을 가장 홀대했던 도시라는 사실도. 이런 빈의 이중성을 로베르트 무질은 이렇게 묘사한다. “국가 제도상으로는 자유주의 국가였지만, 그 통치 체계는 관료적이었다. 통치 체계는 관료적이었지만, 삶에 대한 일반 대중의 태도는 자유주의적이었다. 법 앞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했다. 그러나 물론 모든 사람이 시민은 아니었다. 부여된 자유를 매우 엄격하게 행사하는 의회가 존재하지만, 정작 의회의 문은 대개 닫혀 있었다.”(‘특성없는 남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 태어난 곳은 바로 여기, 몰락해 가는 제국의 수도이자 신흥 부르주아의 장식적 예술 취미가 극에 달한 도시, 클림트·쉴레·쇤베르크·아돌프 루스 같은 새로운 천재들로 북적거리는, 역설과 파괴와 새로움이 공존하는 세기말의 빈이었다. ●빈, 세기말 제국의 마지막 나날들 비트겐슈타인의 부친은 자수성가한 철강 재벌이자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후원자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벌이 그렇듯, 그 역시 자식들의 예술적 삶만은 용납하지 않았고, 그와 갈등하던 큰아들을 비롯해 세 아들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다른 여덟 형제들에 비해 가장 ‘비예술적’이었던 막내 비트겐슈타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이 과정에서 러셀과 프레게가 제기한 수학적 문제들에 흥미를 느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얼마 후 부친이 사망하고 그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지만, 가난한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에게 유산을 기부하고 본격적으로 논리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을 사로잡았던 문제는 오직 하나, 기만과 허영에 들뜬 부르주아의 세계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 ‘논리-철학 논고’는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탄생했다. 죽음을 마주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논리학 책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아주 낯선 형태로 등장하는 윤리학, 미학, 영혼, 인생에 대한 사유의 편린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전장에서 그는 한 손으로 ‘논리-철학 논고’를 집필하는 한편, 다른 한 손에는 늘 톨스토이의 책을 쥐고 있었다. 삶의 의미란 자신의 실천적 일상에 충실한 사람에게만 드러난다는 톨스토이의 가르침은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논리-철학 논고’는 논리적으로 말해질 수 없는 삶의 영역들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언어와 세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작업의 가치는 “문제들이 해결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준다.”는 사실에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명제를 구성할 때 그에 상응하는 ‘그림’을 산출한다. 건축가가 떠올리는 청사진처럼, 언어를 사용하면서 어떤 ‘모델’을 떠올리는 것이다. 물리학의 좌표 체계처럼 하나의 명제는 특정한 논리적 공간을 갖는다. 다시 말해, 어떤 이름이 뜻을 갖는 것은 이름들 간의 논리적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다. 예컨대, ‘장미’라는 이름은 다른 여러 꽃들의 좌표 체계 속의 한 위치로서 규정된다. 이런 식으로 언어는 실재를 기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언어로 ‘모든 것’을 기술할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언어가 모델을 통해 실재를 기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즉, 언어는 실재를 기술할 수는 있지만 “더 높은 것은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 삶의 의미, 윤리적 가치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 바깥에 놓인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 ‘논리-철학 논고’의 핵심은 말해진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에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로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삶을 사변적인 것으로 대상화하려는 철학적 태도를 비판한다. 삶의 의미는 말해질 수 없고 다만 ‘보여질’ 수 있을 뿐이다. 윤리는 명제들의 체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윤리적인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 절,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에 함축된 의미다. 이처럼 삶의 가치는 단지 행위를 통해 ‘보여질’ 수 있을 뿐 말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논리-철학 논고’를 버려야 한다.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버려라!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바람과 달리, 비트겐슈타인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사다리’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나 분석철학자들에 의해 한층 견고하게 지지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조롱으로 오해되었으며, 그가 주목했던 ‘언어의 한계’에 대한 사유는 무시되었다. 모든 오해들에 맞서는 대신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 방향 전환을 꾀한다. 빈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것. 오래지 않아 케임브리지로 돌아가서 자신의 철학적 탐구를 계속했지만, 교사로서의 경험은 후기 저작 ‘철학적 탐구’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저 너 자신을 개선시켜라” 1936년부터 1949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은 ‘철학적 탐구’는 자신이 밟고 올라가기 위해 만든 ‘논고’라는 사다리를 스스로 버리고 얻은 결과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탐구했던 ‘언어와 실재’의 논리적 관계로부터 벗어나 언어가 사용되는 삶의 맥락 속으로 뛰어든다. 이제 문제는, 언어의 사용을 지배하는 실천적인 규칙들과 이런 규칙들로 운용되는 다양한 언어 게임들, 그리고 이런 언어 게임들을 구성하는 여러 삶의 형식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말의 의미는 결국 그것의 사용에 있다. 삶의 의미가 사는 행위에 있듯이. 언어는 형식적 구조가 아니라 행위라는 깨달음! 이 지점에서 논리학과 윤리학은 구분될 필요가 없어진다. 논리학은 윤리학이다. 나의 논리가 나의 삶인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삶이 바로 나의 논리인 것! 우리는 언어의 한계로 우리를 데려가는 낯선 삶의 실험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언어의 차원을 넘어선 고결하고 종교적인 삶의 형식들, 그 속에서만 언어는 행위가 되고 시(詩)가 되기 때문이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나니, 행위하는 자들은 자신의 삶으로 논리를 구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스승이었지만, 사유의 측면에서 비트겐슈타인과 가장 멀리 있었던 러셀의 묘사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완전하게 전통적 천재관에 부합되는, 열정적이고, 심오하며, 열띠고, 지배적인 천재”의 살아 있는 예였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천재성’은, 인간은 성실하고 진실해야 하며, 그것이 전부라는 신념의 발현이었다. ●교수이면서도 강단 위 직업적 철학 혐오 그는 강단에서 행해지는 직업적 철학을 혐오했고, 철학교수가 되려는 제자의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물론 그 자신도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직을 끝내 사임했다. 이유는 하나. 대학교수이면서 정직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미심장한 문제들은 위대한 작가들이 제기해 놓았고, 철학은 단지 그런 문제들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사유를 절대화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철학이 오해되는 것에 대해서도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이 책 속에 표현된 사고들을, 또는 어쨌든 비슷한 사고들을, 스스로 이미 언젠가 해본 사람만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철학에 덧씌워진 모든 사변적 장식물과 합리적 보정물을 제거해 나가고자 했다. 음악에서 쇤베르크가 했던 것처럼, 건축에서 로스가 했던 것처럼, 비트겐슈타인도 가장 기본적인 질문만을 갖고 삶을 돌파해 나간 것이다. “그저 너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동료들과 그 자신에게 반복했던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고향집이 아닌 케임브리지에서 임종을 맞는다. 앞으로 며칠밖에 못 살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그의 대답은 “좋습니다.”였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던 의사 베번 부인에게 남긴 유언은 “그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였다. 일체의 지적, 사회적 관습에 의연하게 맞서면서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다그쳤던 비트겐슈타인에게, 삶이란 말해질 수 없고 다만 보일 수 있을 뿐인 어떤 것, ‘멋진 예술작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채운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다국적 드림팀에 영혼 팔아볼까

    다국적 드림팀에 영혼 팔아볼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완성한 희곡 ‘파우스트’는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부질없음을 느낀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젊음과 영혼을 거래한다는 게 큰 얼개다. 누구나 공감을 가질 법한 이 얘기는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부소니의 ‘파우스트박사’ 등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변주됐다. 국립오페라단이 16~20일(17일 제외)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샤를 구노(1818~1893)의 ‘파우스트’를 올린다. 지난해 ‘메피스토펠레’에 이어 ‘파우스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무엇보다 팬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의 일류 오페라단 못지않은 화려한 캐스팅. 파우스트 역(16·19일)을 맡은 테너 김우경(34)은 이번이 국내 오페라 데뷔 무대다. 2004년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1위를 차지했다. 2006~2007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 주인공 알프레도를 맡아 주연급으로 발돋움했다.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이 이미 3년 전에 김우경에게 출연 제안을 했을 만큼 품을 들였다. 김우경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파우스트는 그저 하나의 인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축약한 캐릭터”라면서 “연륜이 짧은 내가 그런 부분들을 손끝에서 표현하는 게 어렵지만 국내 데뷔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 역(16, 19, 20일)의 새뮤얼 래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적인 베이스<서울신문 3월 8일자 21면>이다. 역시 국내 관객과는 처음 만 난다.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오페라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만 300회 이상 맡은 ‘악마 전문’ 배우다. 파우스트 박사가 사랑에 빠지는 마르그리트를 맡은 그리스 출신 알렉시아 불가리두는 라 스칼라 등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소프라노다. 김우경과는 2008년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라보엠’ 중 연인 사이인 미미와 로돌포로 입을 맞췄다.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오타비오 마리노와 연출을 맡은 이소영 단장은 6년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파우스트’를 국내 초연할 때도 손발을 맞췄다. ‘정결한 집’ ‘보석의 노래’ ‘금송아지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아리아는 물론, 발레 장면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1만∼15만원. (02)586-528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

    “‘달빛 길어올리기’가 101번째 작품이 아니라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리면 좋겠다. 지난 100편의 작품에서 도망쳐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임권택(75) 감독이 3년 동안 공을 들인 ‘달빛 길어올리기’(17일 개봉)는 ‘축제’(1996) 이후 15년 만에 동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50년 감독 인생 최초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 촬영방식을 취했다. 촬영기간 내내 “이렇게 신기한 게 있었느냐.”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는 후문이다. 시대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는 노() 감독의 의지인 셈이다. ●취재·각본·촬영에 1년씩 임 감독은 “한지(韓紙)의 깊고 넓은 세계를 겁도 없이 영화화한다고 대든 게 경솔했다.”면서도 “후회하면서도 이런 깊은 세계를 한쪽이나마 영화로 담는 행운을 잡아 좋다.”고 말했다. “나 같은 나이 든 감독이라도 이런 영화를 해서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의 술자리에서 들은 한지 얘기에 솔깃해 3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임 감독이나 영화 속에서 1000년을 버틸 한지를 재현해 보려는 장인들의 ‘무모한’ 열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열정만큼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물다. 게다가 절정의 고수는 화려한 초식으로 현혹하지 않고도 상대를 무릎 꿇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불현듯 찾아온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118분이 너무 편안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임 감독의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일도 많다. 국내 ‘빅3’인 CJ,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최초로 공동 투자배급에 나선다. 거장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표현인 셈. 임 감독의 가족들도 얼굴을 드러냈다. 배우로 활동 중인 둘째 아들 권현상(본명 임동재)과 첫째 아들 임동준이 한지 장인을 맡은 안병경의 아들로 나온다. 대부분의 장면을 권현상이 소화했지만, 막판에 사정이 생겨 임동준이 마무리했다. 유망한 배우였지만 임 감독과 결혼한 이후 내조에 전념해 온 채령은 지공예 공방 주인으로 깜짝 출연한다. ●7급 공무원과 아내, 그리고 다큐 PD 만년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은 전주시청 한지과로 발령이 난다. 시장의 역점사업인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을 담당하면서 “잘만 되면 6급도 되고, 5급 돼서 ‘관’(사무관)도 붙여볼 기회”란 생각에 마냥 즐겁다. 필용은 뇌경색을 앓는 아내 효경(예지원)의 병 시중도 하고 있다. 대대로 한지를 만드는 집에서 태어난 아내는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필용 부모에게 타박을 당했다. 설상가상 필용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 터. 날마다 밤샘 근무를 하면서 업무에 집중하던 필용은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지원(강수연)을 도와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했지만 어느새 이들의 거리는 좁혀진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한지와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이야기다. ‘한지의 본향’ 전주시와 전주국제영화제가 순제작비의 60%를 지원했다. 때문에 필용이 교재 삼아 보는 다큐멘터리나 다큐 PD인 지원의 작품(‘달빛 길어올리기’)은 물론 다양한 한지 공예품과 한지 전문가 인터뷰 등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몇 차례 나온다. 자칫 ‘한지의 세계화’라는 당위에 치우쳐 영화가 무거워질 법한데, 임 감독은 그 사이에 사람의 얘기를 촘촘하게 직조했다. 부부인 필용과 효경, 서로에게 끌리는 필용과 지원은 물론 경쟁자(?)인 효경과 지원까지 반복적으로 스치면서 미묘하게 마음을 연다. 특히 필용과 지원의 하룻밤은 외도라는 생각보다는 생활인이라면 한번쯤 겪을 수도 있는 에피소드처럼 그려진다. 임 감독은 “둘(필용과 지원) 사이의 감정은 일생을 살면서 피어나기도 했다가 잠자기도 했다가 큰 사고 없이 일상에 묻혀 지나가는 그런 것”이라면서 “그런 감정들이 파고들어 삶에 불편함을 주는 극적인 확대를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지원:한지는 물질보다는 영혼에 가까운 거 같아요. 옛 사람들은 백지를 흰 백(白)자가 아닌 백지(百紙)라고 썼대요. 손이 100번 가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뜻이죠.…효경씨는 한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효경:달빛은 소란하지 않고 고요해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에요.…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담담하고 조용해졌을 때 한지와 같은 달빛은 한가득 길어 올려질 거예요. 필용과 한지 장인들이 무주 구천동 첩첩산중에서 1000년을 버틸 종이를 재현하는 장면에서 지원과 효경이 주고받는 대사는 메시지와 여백을 동시에 담은 듯하다. 어쩌면 101편에 이르는 임 감독의 필모그래피(작품 연보)야말로 ‘달빛을 한가득 길어 올리려는’ 영화장인의 지난한 도전 과정일지도 모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임권택 감독의 주요 작품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 ‘아다다’(1987) ‘연산일기’(1987) ‘아제아제바라아제’(1989) ‘장군의 아들’(1990) ‘장군의 아들 2’(1991) ‘개벽’(1991) ‘장군의 아들 3’(1992)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창’(1997) ‘춘향뎐’(1999) ‘취화선’(2002) ‘하류인생’(2004) ‘천년학’(2007)
  • [열린세상] 뇌사와 식물인간/이상건 서울대 의학 교수

    [열린세상] 뇌사와 식물인간/이상건 서울대 의학 교수

    얼마 전 큰 인기를 얻었던 판타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보는 내내 감동으로 코가 빨개진 딸아이도 귀여웠고, 영혼이 바뀐다는 익숙한 소재를 살짝 비틀어 만든 내용도 좋았다. 훌륭한 연기, 감칠맛 나는 대사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극중에 잠깐 비치는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것을 보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 장면이 옥에 티로 남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을 놓고 의사가 ‘제 판단은 뇌사입니다.’라고 하는 장면이다. 의식은 없지만 인공호흡기도 없이 혼자 숨을 잘 쉬고 있는데 뇌사라는 말이 나왔다. 판타지 드라마도 지켜야 할 규칙은 있어야 한다. 해리 포터는 빗자루를 타고 날지만 기차는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다. 바로 그날 인터넷을 통해 왜 적절한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책과 함께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어쨌든 아직 뇌사와 식물인간 그리고 혼수상태라는 말의 사용에 있어 혼동이 있어 보인다.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뇌구조와 기능을 알면 도움이 된다. 사람의 뇌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크게 보면 대뇌, 소뇌, 그리고 뇌간으로 나눌 수 있다. 대뇌는 뇌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서 가장 크게 발달한 곳이다. 매체에서 흔히 보는 쭈글쭈글한 주름을 갖는 호두 같은 부분이 대뇌피질이다. 이 대뇌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기둥 모양의 뇌가 뇌간이다. 뇌간은 곧 척수로 연결된다. 그리고 소뇌는 뇌간 뒤에, 머리로 보면 뒤통수 아래쪽에 위치한다. 일단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기억하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능은 대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뇌간은 눈동자와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일 들을 하는 뇌신경들이 나오고,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몸의 자율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자리다. 우리가 깨어 있도록 신호를 보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소뇌는 우리의 움직임이 세밀하고 조화롭게 되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말하는 기능은 실제로는 ‘각성’과 ‘인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각성은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하고 인지는 우리가 자극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고 기억하며, 또 대책을 세우는 것과 같은 뇌의 사고기능을 말한다. 각성은 뇌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인지는 대뇌피질의 기능이다. 혼수상태란 어떤 원인에서든 뇌에 손상이 가해져 주위 자극을 적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알맞은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식물인간 상태는 혼수상태 후에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대뇌피질이 전체적으로 회복불능의 손상을 입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뇌간의 기능이 살아 있으므로 환자는 눈을 뜨는 게 가능하고 자는 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도 나누어진다. 많은 경우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숨을 쉴 수 있으나, 호흡이 약하거나 기도가 제대로 유지가 안 되어 부분적으로 기계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스스로 자세를 바꾸거나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뇌의 기능이 없으므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기능이 없다. 한마디로 각성 기능은 살아 있으나 인지 기능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식물인간 상태라는 말이 붙는다. 뇌사는 대뇌와 더불어 뇌간까지 모두 복구 불능의 손상을 입어 뇌의 전체 활동이 정지된 경우다. 따라서 인지, 각성, 호흡 모두 제로 상태다. 심장은 뛰고 있으나 뇌간에서 뻗어 나오는 뇌신경의 기능도 없다. 식물인간 상태는 합병증이 없다면 몇 년이고 생존이 가능하나 뇌사는 며칠을 넘기기 어렵다. 뇌사는 장기이식으로 연결될 수 있고 한 생명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함부로 선언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복잡한 뇌사 판정 과정이 있는 것이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제대로 만들어 보자. 당시 의사가 ‘현재 환자는 뇌 손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하여 식물인간 상태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꼭 뇌사라고 말하고 싶었으면 최소한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어 한번 짚고 넘어간다.
  • [이슈 인터뷰] “함께 고통 나누는 심정… 문학·종교와 통해”

    [이슈 인터뷰] “함께 고통 나누는 심정… 문학·종교와 통해”

    평생을 고독한 인문주의자로 살아왔던 이어령 이사장이 지난해 기독교로 귀의했다. 그해 3월 신앙 고백서인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펴냈고, 11월에는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도 내놨다. ●실명 위기 딸 권유로 ‘첫발’ 계기는 딸의 아픔이었다. 2006년 5월 미국에서 법률가로 살던 딸 민아씨가 하와이병원에서 실명 진단을 받았다. 하와이로 간 그에게 독실한 신자였던 딸은 교회를 권유했고 이어령은 마침내 교회에 몸을 던졌다. 세례는 이듬해 7월 일본에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에게 받았다. 그런데 그는 기독교 투신이 화제가 되는 것에 적잖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관점은 조금 다르다. 주류 기독교계에 가깝기보다는 김규항이 쓴 ‘예수전’을 떠올리는 화법을 쓴다. “종교란 것이 결국 아픔에 대한 공감 같은 것 아니겠어요. 문학도 본질적으로는 허무주의예요.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그런 심정이 종교와도 통하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내놨다. ●“영·육 분리할 필요 있나요” 영혼만 강조하고 몸을 부인하는 사고방식도 편치 않은 듯했다. “영과 육으로 나누는 게 좀 그래요. 예수도, 사람의 아들로 몸을 가진 채 태어났고, 사람의 아들인 예수가 그렇게 살았으니, 이제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삶에 대해 변명할 수 없게 된 게 중요하거든요. 이를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왜 기독교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랬다. “종교가 무엇이냐,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지하철 보세요. 입구는 여러 곳이라도 갈 곳만 잘 찾아가면 되지 않나요.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가야 할 방향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 종교가 무엇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파이터’ - 예술보다 위대한 링위의 삶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파이터’ - 예술보다 위대한 링위의 삶

    ‘파이터’는 ‘아이리시 선더’라 불린 권투선수 미키 워드(오른쪽·마크 월버그)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키의 권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형 디키(크리스천 베일)다. 그는 한때 전설적인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와 일전을 벌였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선수였으나 마약에 굴복해 경력을 망치고 만다. 아홉 명의 자식을 거느린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맏아들 디키의 명성을 이용해 미키의 매니저로 나선다. 도로포장 인부로 일하며 간간이 링 위에 오를 뿐인 미키는 선수로서 형편없는 경력을 쌓을 수밖에 없다. 형을 편애하는 데다 돈을 밝히는 어머니, 훈련에 오히려 장애를 끼치는 형, 경력용 디딤돌을 구하는 상대 선수들은 모두 미키를 삼류 선수의 수렁에 빠트리고 있었다. 그 즈음 미키는 미래의 아내 샬린을 만나면서 앞으로 갈 길을 재점검한다. 스포츠 영화 가운데 독보적인 자리를 점한 권투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권투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새 삶과 희망을 얻은 인물을 그린 작품군이다. ‘상처뿐인 영광’(1956)처럼 권투 자체의 매력보다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드라마에 역점을 둔 영화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록키’(1976)에 이르러 장르의 완성점에 도달했다. 두 번째는 권투의 폭력적 특성, 자기 파괴적인 인물, 링의 세계를 지배하는 음모, 갈등, 욕망을 차가운 스타일과 결합시킨 ‘권투 누아르 영화’다. ‘육체와 영혼’(1947), ‘챔피언’(1949), ‘팻 시티’(1972) 등의 수작이 만들어지던 중 1980년에 마틴 스콜세지가 ‘분노의 주먹’을 내놓았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마지막 시기에 등장해 한 시대를 마감한 ‘분노의 주먹’은 이후 등장한 권투 영화들이 넘어서지 못한 이정표다. ‘허리케인 카터’(1999), ‘알리’(2001),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등 훌륭한 드라마는 많았지만, ‘분노의 주먹’의 그늘에서 벗어난 작품은 찾기 어렵다. 재간꾼 데이비드 O 러셀은 어쩌면 ‘분노의 주먹’에 대고 가벼운 잽을 날리고 싶었던 걸까. ‘분노의 주먹’이 인상적인 흑백 영상에 고도의 스타일로 새겨둔 피와 땀과 고통의 예술이라면, 얼핏 평범해 보이는 ‘파이터’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 사실적인 권투 영화를 추구한 쪽이다. 예술의 무게에 눌리지 않은 ‘파이터’는 삶이 영화보다 거대한 것임을 재확인한다. ‘파이터’는 링 안팎의 세계를 각각 중계방송과 다큐멘터리의 톤으로 재현했다. 디키와 그의 유별난 가족 앞으로 바짝 다가선 카메라는 그들 모두가 얼마나 생생한 존재인지 보여 준다. 케이블 중계 프로그램을 확대한 듯이 느껴지는 경기 장면은 요즘 권투 경기가 소비되는 형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경기 때문에 겪는 아픔과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다른 권투 영화에 비해 ‘파이터’는 인물이 경기를 즐기고 성취하는 부분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하긴 권투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부정적인 면에 치중할 필요가 무어 있겠나. 스포츠의 순기능에 충실한 장르 영화로서 ‘파이터’는 권투를 통해 인생을 역전시킨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경쾌한 걸음으로 되밟아 본 작품이다. 매번 찌푸린 표정으로 권투 영화를 보던 차에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10일 개봉. 영화평론가
  • “갑옷에 싸인 뜨거운 가슴…절제·신중함이 브람스 매력”

    “갑옷에 싸인 뜨거운 가슴…절제·신중함이 브람스 매력”

    “브람스란 사람 자체가 표현을 막 폭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뜨거운 가슴은 있지만 많은 갑옷을 껴입은 것처럼 절제하고 은근하면서 신중하게 표현하는 게 그의 매력인 것 같다.”(임헌정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10일 예술의전당서 첫 막 예술의전당이 지난해 시작한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The Great 3B Series)의 두 번째 주인공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동시에 독일음악의 전통을 계승한 브람스야말로 지난해 베토벤(1770~1827)에 이어 또 한명의 ‘위대한 B’(Great B)로 손색 없을 터. 내년에 펼쳐질 ‘3B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는 바흐다. 브람스의 교향곡과 협주곡 등 전곡 대장정을 이끌 지휘자는 1999년부터 5년간 말러교향곡 전곡을 연주해 ‘말러 신드롬’에 불을 지폈던 지휘자 임헌정(58·서울대 교수)이다. 그와 22년 동안 호흡을 맞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임 교수는 “단원들에게는 항상 영혼을 담아 살아 있는 음악을 연주하자고 강조한다.”면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음표가 아닌 브람스의 마음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부천 필하모닉은 그동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1991)과 말러 교향곡(1999~2003), 베토벤 교향곡(2003), 슈만과 브람스 교향곡(2010) 등 끊임없이 전곡 연주에 도전했다. 음악단체로는 처음으로 ‘호암상’을 수상하며 국내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경선·송영훈… 화려한 협연 총 4회(3·5·9·11월)로 이뤄진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브람스’의 첫 막은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오른다. 프로그램은 ‘교향곡 제1번 C단조’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브람스가 22세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해 완성까지 무려 21년이 걸린 ‘교향곡 제1번’은 ‘베토벤의 열 번째 교향곡’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운명 교향곡’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엄숙한 분위기나 깊이 있는 선율, 목가적인 분위기는 물론 4악장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돼 강물처럼 흐르는 느낌은 브람스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인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은 중후한 악상 속에 차분하고 독특한 로맨티시즘이 스며든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협연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은 1993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와 199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등에서 연속 입상하면서 ‘제2의 정경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국내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히는 송영훈은 피아졸라의 곡을 모은 솔로 앨범 ‘탱고’를 발매하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예정된 네 차례 공연을 동일한 좌석의 등급으로 한번에 예매하면 20% 할인해 준다. 매회 2만~4만원. (02)580-13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조지6세에 KO 당한 저커버그

    말더듬증을 앓던 영국 왕 조지 6세가 ‘페이스북 제국’을 건설한 천재 마크 저커버그를 녹다운시켰다. ‘킹스 스피치’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콜린 퍼스)가 언어치료사(제프리 러시)를 만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올해 최다인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반면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는 지난 1월 ‘아카데미 전초전’ 격인 골든글러브에서 작품·감독·각본·음악상 4개 부문을 휩쓸었지만, 막상 본 경기에서는 편집·각색·음악상에 그쳤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감독에게 밀린 것은 올 아카데미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미스터 다아시’ 오스카를 품다 ‘미스터 다아시’. 1995년 영국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피츠윌리엄 다아시로 출연한 뒤로 한 번도 그를 떠나지 않은 별명이다. 빳빳한 구레나룻과 꾹 다문 입술, 융통성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겐 영혼이라도 내줄 것처럼 충성스러운 이미지는 그의 외모·말투와 묘하게 어울렸다. 이 캐릭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의 마크 다아시였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캐릭터에 꽂힌 원작자 헬렌 필딩은 이름마저 비슷한 또 다른 다아시를 창조한 것. 결코 로맨틱하지 않은 얼굴이지만, ‘만인의 연인’이 된 영국 배우 콜린 퍼스(51)가 이번에는 연설 공포증을 앓던 조지 6세를 완벽하게 소화해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퍼스는 “내 커리어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심장 언저리가 격하게 떨린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변 허락지 않은 내털리 포트먼 여우주연상은 예상대로 ‘블랙 스완’에서 소름끼치는 명연기를 펼친 내털리 포트먼(30)에게 돌아갔다.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오른 포트먼은 “저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모범을 보여준 분들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며 그답게 ‘착한’ 소감을 밝혔다. 포트먼은 이 영화를 통해 안무가 벤자민 마일피드를 만나 2세를 얻은 데 이어 겹경사를 누린 셈이다. 열세살의 나이에 ‘레옹’(1994)의 마틸다 역으로 첫선을 보인 뒤 17년 만에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쥔 포트먼은 지성파 여배우의 대명사인 조디 포스터(49)의 뒤를 고스란히 밟게 됐다<서울신문 2월 22일자 20면>. ●‘백수’(百壽) 눈앞에 둔 더글러스의 입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포장부터 뜯어고쳐 큰 관심이 쏠렸다. 8번이나 사회를 맡았던 빌리 크리스털은 물론, 우피 골드버그(4회), 스티브 마틴(3회), 데이비드 레터맨, 크리스 록 등 입담 좋은 한명을 내세우던 전통을 깨뜨렸다.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젊은 피’ 제임스 프랑코와 앤 해서웨이를 내세운 것. 특히 프랑코는 막간에 붉은색 드레스에 금발 가발을 쓰고 마릴린 먼로를 흉내 내는 등 큰 즐거움을 안겼다. ‘OK 목장의 혈투’(1957) ‘스파르타쿠스’(1960) 등 남성적인 캐릭터로 시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95)는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서 걸쭉한 입담을 뽐냈다. 젊었을 때 여배우들과의 스캔들로 유명했던 더글러스는 사회자 해서웨이를 바라보며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가 영화를 할 때에는 왜 앤 같은 배우가 없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리시’란 별명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복서 미키 워드(마크 월버그)의 실화를 다룬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파이터’는 남녀 조연상을 휩쓸어 이번 시상식의 숨은 승리자로 평가된다. 크리스천 베일은 주인공의 골칫덩어리 형으로, 멜리사 레오는 극성스러운 어머니 역을 맡아 열연했다. ‘메멘토’ ‘다크나이트’의 천재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촬영·시각효과·음향효과·음향편집상 등 기술 부문 4개 상을 싹쓸이해 아쉬움을 달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주요 부문 수상자☆ ●작품상 이에인 캐닝 등(킹스 스피치) ●감독상 톰 후퍼(킹스 스피치) ●남우주연상 콜린 퍼스(킹스 스피치) ●여우주연상 내털리 포트먼(블랙 스완) ▲남우조연상 크리스천 베일(파이터) ▲여우조연상 멜리사 레오(파이터) ▲각본상 데이비드 세이들러(킹스 스피치) ▲각색상 아론 소킨(소셜 네트워크) ▲촬영상 월리 피스터(인셉션) ▲장편 애니메이션상 리 언크리치(토이스토리3) ▲주제가상 랜디 뉴먼(토이스토리3) ▲외국어영화상 수잔 비에르(인 어 베터 월드) ●작곡상 트렌스 리즈너(소셜 네트워크) ▲음악상 트렌트 리즈너(소셜 네트워크) ▲편집상 앵거스 윌(소셜 네트워크) ●미술상 로버트 스트롬버그 등(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상상 콜린 앳우드(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히말라야로 다시 부른 10년 전 사진 한장…

    히말라야로 다시 부른 10년 전 사진 한장…

    그는 이해선이다. 아니 ‘군장돌마’다, 그곳에서만큼은. 우리네 순자, 명자, 영자처럼 흔한 이름인 군장돌마가 되어 떠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기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그곳을 다시 찾아 먼지 더께를 털어내며 하나씩 기억을 끄집어냈다. 손때 묻고 빛바랜 기억들은 곧바로 오늘의 것이 되어 그리움과 외로움, 반가움의 이미지로 현현했다. ‘인연 언젠가 만날’(꿈의지도 펴냄)은 사진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이해선이 인도 히말라야 산맥 한 골짜기에 있는 라다크를 찾아 만난 사람들, 풍경들,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다. 2000년, 그리고 2010년의 방문, 아니면 그보다 훨씬 과거의 방문…. 여행기지만 그냥 여행서라고 부를 수도 없고, 상처투성이 영혼의 치유를 이뤄내고 왔지만 보통 영적 순례기처럼 알듯 모를 듯한 잠언들로 채우지도 않았다. 대신 구체적인 인연과 기억, 경험과 추억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한가득 담겨 있다. 라다크식 막걸리라고 할 수 있는 ‘창’에 보릿가루 ‘참바’ 한 줌을 타서 휘휘 저어 마시는 것으로 한 끼니 삼는 마부들, 친구의 구멍 난 모자 기워준 것을 보더니 자기 것도 기워 달라며 일부러 손가락 구멍 만들어 내미는 어린 라마승들, 황량하고 적막한 골짜기 돌투성이 길을 운전하다 과로로 쓰러진 뒤 배낭에서 꺼낸 우황청심환 한 알에 명의 보듯 바라보는 버스기사…. 모두 군장돌마의 낯설지만 오래된 인연들이다. 10년 만의 두 번째 히말라야 여행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라다크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인 ‘스칼장 아몽’의 사진을 뒤늦게 그 가족에게 보냈더니, 꼭 한 번 다시 찾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해온 것. 그렇게 다시 찾은 라다크에서 그는 자신에게 군장돌마라는 이름을 지어준, 돌가루로 만다라를 만들던 노승(僧) 롭상 눌보와 재회했다. 10년 전 “야크를 타보라.”고 순진한 낯빛으로 권했던,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이름 모르는 소년 라마승을 찾았으나 테러로 희생됐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접한다. 그는 라다크에서 ‘원형질의 고독’을 봤노라고 얘기한다. 절벽 동굴에 부닥쳐 풀썩거리는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만월의 빛은 외로움의 극단을 맛보도록 등을 자꾸 떠밀고 결국 한 마리 짐승처럼 그를 워우워우 울게 만들었다. 1만 4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北서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김정일”

    “北서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김정일”

    ‘탈북여성 1호 박사’, ‘용기 있는 국제 여성’. 이애란(47)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2009년 북한 이탈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미국 국무부로부터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은 이 교수가 23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중공교) ‘국가안보정책과정’의 안보 강사로 나섰다. ●“北, 먹는 문제가 체제 위협할 수준” 이 교수는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와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 등을 전하며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이 교수는 “북한의 내부 상황은 남한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 이상으로 불안정하다.”면서 “장기간의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국가적 통제력이 상당히 약화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이어졌던 남한의 식량 지원마저 끊기면서 먹는 문제가 체제유지를 위협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북한의 잇단 도발과 대남 강경정책에 대해서는 “남한 길들이기와 후계체제 동력 확보를 위한 것 같다.”면서 “말로는 ‘전쟁 불사’를 거론하지만, 북한에서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김정일”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잃을 것이 많은 자가 두려워하는 것인데 김정일 일가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막대한 부를 숨겨두고 있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어 그만큼 잃을 것도 많아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북한에서 전쟁을 가장 원하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 노동에 지친 북한 국민들”이라며 “그들은 전쟁으로라도 김정일 일가 체제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은 ‘영혼이 있는 안보관’ 가져야” 이 교수는 공무원들에게 ‘영혼이 있는 안보관’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공무원은 정권에 따라 변한다고 해서 ‘영혼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안보관만큼은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확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보와 관련해서는 정권을 위한 정책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 들어 단절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식량지원은 필요하지만, 식량이 실제로 국민에게 전달되는지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공교는 중앙부처 6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가안보정책과정을 올해 신설해 이날부터 3일간 진행하며, 11월까지 3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별다른 밑반찬도 내지 않고 단품으로 승부를 보는 맛집들이 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둘째아들 김정철의 싱가포르 원정 관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국 출신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66)의 내한공연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설픈 한국말 인사 대신 곡부터 연주20일 서울 송파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흔히들 내한공연을 온 팝스타들이 ‘립서비스’로 내놓는 어설픈 한국말 인사나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식의 치레는 없었다. 다짜고짜 첫 곡 ‘키 투 더 하이웨이’(Key To The Highway)를 뽑아내더니 ‘생큐~ 굿 이브닝’이라고 한 게 그의 가장 긴 멘트였다. 무대 위에는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트레이드 마크인 뿔테안경을 쓴 그를 중심으로 두명의 건반 주자와 드러머. 베이스기타, 두명의 여성코러스가 전부였다. 주최 측이 대형화면으로 내보내는 장면 역시 ‘기타의 신’의 손놀림을 클로즈업할 뿐 화려한 무대장치나 오케스트라 협연 등 ‘액세서리’는 없었다. 단지 노련한 세션맨의 도움을 받은 클랩턴과 그의 음악이 전부였다. 이것만으로도 울림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1997년과 2007년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살아있는 거장’의 무심한 듯한 목소리와 울부짖는 기타에 1만여명의 팬들은 넋을 잃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목을 축일 때와 기타를 바꿔 메는 시간을 제외하면 120분 동안 숨도 돌리지 않았다. 그룹 ‘야드버즈’와 ‘크림’의 멤버로 두번, 솔로 아티스트로 한번 등 남들은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기가 어렵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세번 헌액된 그답게 완벽한 무대를 연출했다. 조금씩 들떠가던 체조경기장에 불을 지핀 것은 5번째 곡으로 ‘아이 샷 더 셰리프’( I Shot the Sheriff)를 부르면서다. 후반부에 이르러 ‘레일라’(Layla)와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 ‘비포 유 어큐스 미’(Before You Accuse Me) 등 히트곡을 쏟아내자 공연장은 터져나갈듯 달아올랐다. 다섯살짜리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이날도 부르지 않았다. ●“서울공연에도 김정철 오나” 전화 한편 싱가포르 공연(14일)에 김정철 일행을 취재하려는 일본 취재진이 몰려 분위기가 흐려진 탓에 클랩턴의 매니저가 15일 주최 측인 나인엔터테인먼트에 “혹시 김정철이 한국에도 오는 것 아니냐.”고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클랩턴은 내한한 뒤로는 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고, 이날 공연도 관중들의 기립 박수 속에 무사히 끝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6) 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6) 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1971년 출판된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로 이반 일리히는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엄청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의무교육 폐지’로 요약되는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학교 옹호자들뿐 아니라 급진적 교육개혁파들로부터도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좌·우파 모두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의 행보. 학교 폐지를 넘어 병원 폐지, 급기야 복지의 폐지까지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를 거부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삶을 제도와 국가에 맡기지 마라! 정말 ‘핫’(hot)하지 않은가? ●학교라는 의례 게임의 장 이른바 ‘가치의 제도화’. 현대사회는 건강, 배움, 이동이라는 바람과 가치를 병원, 학교, 고속도로 같은 제도의 서비스 문제로 끊임없이 치환시키는 사회이다. 이 중에서도 학교는 ‘가치의 제도화’를 익히는 기본 코스다. 왜냐? 학교는 ‘인문적 교양’ 혹은 ‘인적 자원의 생산’ 같은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곳이 아니라 그 어떤 가치를 채택하든 그것이 ‘학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신화를 저장하고 유통시키는 게임의 구조로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 학교라는 게임의 구조를 보자. 학교는 배움을 수업과 동일시하게 만들고 졸업장을 자격이나 능력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홀로 배우는 자, 자격증이 없는 비전문가는 점차 불신의 대상이 된다. 또한 수업은 다음 수업으로 단계적으로 연결되는데 각 단계마다 소위 전문가가 정교하게 고안하고 측정한 숫자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제 모든 가치는 쪼개고 붙이고 잴 수 있다는 관념이 내면화된다. 더구나 그 문턱마다 상벌, 진급, 졸업이라는 ‘기대’가 부여되기 때문에 그 기대를 향해 전문가가 만든 교육과정을 소비하면서 무한히 앞으로 ‘진보’하는 것만이 선(善)이 된다. 학교는 결코 배우는 장이 아니다. 사실 가르치는 장도 아니다. 학교의 구조는 몇 개의 단계를 진급하는 의례게임의 장, 끝없는 소비 신화에 신참자를 끌어들이는 입문의례의 장이다. 학교가 사람들에게 교육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게임의 법칙, 그 자체이다. 그러나 무릇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학교라는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라는 게임에서 매 문턱마다 탈락자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스타 오디션과 같은 서바이벌 게임은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진한 반면, 학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신화(하지만 학교가 평등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를 확산하면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 음험하고 교묘하다. 학교는 우리가 의심 없이 참여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견고한 게임이다. ●문제는 학교가 아니라 ‘제도’다 일리히는 결코 ‘학교’를 없애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일리히가 폐지하자고 주장한 것은 학교 ‘제도’이다. 만약 소수는 돈을 따지만 대부분은 돈을 잃는 로또를 의무적으로 구입하자고 하면 당신은 찬성하겠는가? 그런데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의 탈락자를 만드는 학교제도의 확산, 혹은 의무교육의 확산을 왜 받아들이는가? 만약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모든 사람이 교회 혹은 절에 가야 한다는 법을 만들고 교회나 절에 공공자금을 지원하자고 하면 모두 찬성하겠는가? 그런데 왜 배움을 위해 학교라는 제도를 만들고 그곳에 공공자금을 투여하는 일에는 반대하지 않는가? 모든 배움의 열망과 기회와 방법을 독점하면서 누구나 다녀야 하는 의무가 된 곳, 근대학교는 이제 교회에 가면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사제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했던 중세의 교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중세의 교회가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면 근대의 학교는 현세의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고 기대하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제 학교에서 배운 게임의 법칙은 전 사회로 확장된다. 가치를 양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는 일, 소위 자격증이나 전문가를 받아들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된다. 내가 수도를 고치는 것보다 전문가를 부르는 게 더 마음이 놓이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음식도 제대로 하려면 전문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고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 내가 꾸리는 삶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나의 능력은 점점 쇠퇴한다. 제도로부터 삶이 철저히 소외되는 상황. 일리히가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런 ‘학교화한 사회’(schooled society)이다. ●상호의존적 공동체로 소박하고 근본적인 혁명 “우리는 신조차도 할 수 없는 것, 즉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우리들의 ‘교육학적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 ‘학교 없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일리히의 답변은 ‘공생‘(conviviality)이다. 학교, 병원, 군대, 정부, 복지 시스템 같은 독점적이고 조작적인 제도를 거부하고 말 그대로 ‘함께-활력 넘치는’(convivial) 상호의존적 도구를 생산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아니라 내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탈 것. 친구들과 함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네트워크를 만들 것. 고통을 사유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지혜와 노하우를 공동체 내에 생산할 것. 지나치게 소박하다고? 그러나 이러한 문제작 ‘학교 없는 사회’로부터 40여년이 지났어도 학교는 막강하다. 오히려 학교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자는 주장,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를 위해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점점 더 힘을 얻는다. 온정과 진보의 환상 속에서 작동하는 비정하고 반동적인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리히의 소박하나 근본적인 제안은 새삼 절실하다. 새로운 혁명을 원하는가? 그럼 자기 두 발로 걷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희경 문탁 네트워크 연구원
  • 아시아 女갑부 니나 왕,곡절의 15조원 유산 이야기

    아시아 女갑부 니나 왕,곡절의 15조원 유산 이야기

     아시아 최대 여성 갑부인 중국의 니나 왕과 그녀가 남긴 유산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20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세계 곳곳에 400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아시아 최고 여성부호(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 순위 154위)에 오른 부동산 재벌 니나 왕을 재조명했다.  그녀는 먼저 죽은 남편의 재산 때문에 평생을 의심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검소하게 살았던 것이 밝혀져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니나 왕은 1990년 남편 테디 왕이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남편의 재산을 놓고 시아버지와 8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상속자로 인정받는 등 곡절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2007년 지병인 난소암으로 영화와 애환을 뒤로 한채 결국 사망하게 된다.  암이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남겨준 큰 돈을 허투로 쓰지 않는다는 일념과 함께 치료를 받지 않았다.시아버지는 법정에서 “니나 왕은 아들이 납치돼 경찰서로 가는 순간에도 돈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탔다. 남편에게도 돈쓰기를 아까워 했다.”며 공격을 했을 정도다.  그녀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시아버지가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고 사망 신고를 권유했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죽게 만들 수는 없다.”며 사망신고를 하지않고 그를 기다렸다. 남편을 납치했다는 괴한들이 체포된 뒤 남편을 살해해 바다에 수장했다고 실토해도 그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그녀가 남편의 재산 때문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두 사람간의 재산을 둔 법적 싸움이 시작됐다.  시아버지는 “아들이 모든 재산을 나에게 준다는 유서를 써놓았었다.”며 증거를 제시해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니나 왕은 마지막 재판에서 남편이 납치를 당하기 한달전에 자필로 작성한 ‘모든 재산을 아내 니나 왕에게 준다’는 내용의 새로운 유서를 공개, 결국 남편의 유산을 손에 넣게 됐다. 8년만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전속 풍수사인 토니 찬이 “그녀의 숨겨진 애인이었다.”면서 “그녀는 2006년 전 재산을 나에게 준다는 유서를 써 줬다.”고 주장,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홍콩법원의 존슨 램 판사는 판결문에서 “니나 왕이 2006년에 써줬다고 토니 찬이 주장하는 유언장에 니나 왕이 서명하지 않았다.”면서 “토니 찬이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제시한 문제의 2006년 유언장은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2002년 ‘자신이 죽으면 모든 재산을 차이나켐 자선기금에 넘기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산은 1000억홍콩달러(약 15조억원). 그녀의 이같은 유언에 따라 유산은 그녀의 친족들이 운영하는 ‘차이나 켐 자선 재단’에 넘어갔다.  남편을 사랑한 마음과 큰 돈에도 자신의 이익을 차리지 않았던 나니왕의 이야기는 지금도 중국 전역에서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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