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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자유로운 영혼의 풍류 피아니스트 인생 40년 임동창

    [김문이 만난사람] 자유로운 영혼의 풍류 피아니스트 인생 40년 임동창

    우리가 흔히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 있다. ‘놀고 있네’이다. 하는 행동이나 몸짓에 대한 빈정거림의 뜻으로 들린다. 그런데 어설픈 것이 아니라 ‘제대로 놀고 있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헐 것이 없구나/그저 놀기만 허면 되는 것을…/논다는 것은 삶을 흐르게 두는 것이며/바람과 하나 되는/숨결을 이루는 것이다/이것이 풍류다.’ 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읊어 대는 논다는 것에 대한 ‘허튼소리’다. 그에게 피아니스트, 작곡가, 허튼가락 창시자, 수도승 중 어느 것이 제일 맞느냐고 하면 항상 ‘노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17살 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허무’와 ‘안타까움’을 느꼈고, 몰입과 몰아의 과정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의 열쇠로 ‘풍류’의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명의 소리를 만드는 천재 작곡가라는 말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유희하는 풍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클래식, 국악, 가요, 가곡, 불교음악 등 그의 음악은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든다. 2012년에는 서양에서 유입된 지 100년이 넘은 피아노를 국악기로 만든 ‘임동창 피앗고’를 내놓아 평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살아온 그의 음악 인생이 올해로 40년을 맞고 있다. 15살 때 무당 신내림 받듯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고 17살 때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악상으로 작곡에 빠져들었으며 20살 때 피아노 페달에 구멍이 난 후 피아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다음은 출가로 이어지고….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분수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까만 티셔츠에 헐렁한 흰색 바지, 그리고 분홍색 양산을 썼다. 머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빛났다. 양산이 썩 잘 어울린다고 하자 머리를 쓱쓱 만지면서 “여름날 양산을 안 쓰면 머리가 너무 뜨겁다”며 파안대소. 이것저것 거두절미하고 ‘임동창의 풍류’란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네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자유로운 연주’, ‘오롯한 내 음악’,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뭐꼬?’ 등이지요. 나이 50이 넘어 겨우 끝냈고 제 인생의 족쇄가 풀렸습니다. 숙제를 끝낸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지요.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의 결정체가 바로 풍류입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신명 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이지요.” 인간의 본성에는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 즉 풍류성이 본디 들어 있다는 그는 풍류성을 깨어나게 해서 사느냐, 잠든 상태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며 “풍류성이 안 깨어나면 불감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풍류성을 깨워서 아름답게 건강하게 신명 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악 속에, 핏속에 그 절대자유의 에너지 풍류가 녹아 있으며 그가 풀어낸 ‘허튼가락’도 바로 이러한 풍류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허튼가락’은 틀에 박힌 박자를 허문 순수한 내면의 소리, 즉흥의 소리, 자유의 소리를 말한다. 그는 2010년 이 같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 ‘동창이 밝았느냐’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직선 활동을 합니다. 이 직선 활동은 에너지가 있어 얻는 것이 많아 보이겠지만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곡선 활동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듯하나 단 하나도 내 손 안에 잡히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물이 흐르듯, 보이지 않는 것은 바람이 불듯 이것이 ‘허튼가락’이지요.” 그는 ‘풍류학교’를 전북 완주에 곧 설립한다. 7년 전 충남 서천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 영재들을 위해 방과후 학습으로 ‘풍류’ 프로그램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때 부모 자식 간 불통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랑으로 통하는’ 그런 풍류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풍류학교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풀어짐’입니다. 풀어짐만이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리한 몸짓, 마음짓, 흥짓으로 몸을 풀고 머리를 텅 비우고 어두운 감정의 찌꺼기들을 날려 버리는 ‘푸는 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풀어져 저절로 몰입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거든요. 아울러 학생들의 재능과 꿈을 찾아 주는 일도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의 남원 생활을 정리하고 올가을 완주로 터전을 옮기게 되면 “세계 최초의 풍류학교를 본격적으로 꾸려 나갈 예정”이라며 의욕을 보인다. 그가 풀어낸 네 가지 숙제 가운데 ‘이 뭐꼬?’에 대해서는 “인천 용화사 행자승 시절 송담 스님한테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를 받을 때였다. 수식관을 할 때 수를 세었던 그 자리에 경상도 사투리로 줄여서 ‘이 뭐꼬?’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풀어낸 것이었다”면서 ‘이 뭐꼬?’는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고, 돌도 고르고, 붙잡으면 달아나고, 놔 주면 돌아오고 결국 피아노 치는 것과 너무도 똑같으며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군산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가 피아노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는 수업이고 뭐고 관심이 없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음악 선생님이 ‘고향집’이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고향집에 홀로 계신 어머님 그리워~.’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이때까지 느껴 보지 못한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음악 선생님한테 달려가 막무가내로 음악실 열쇠를 잠시만 달라고 했다. 건반을 이리저리 눌러 봤다. 신기하게 악보도 없이 ‘고향집’이 비슷하게 흘러나왔다. 둘째 날도 그랬다. 왼손을 두 배로 빠르게 쳤다. 완전히 신이 났다. 이후 머릿속에는 온통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교 수업은 뒷전으로 하고 피아노 연습에만 몰두했다. 낮에는 이길환 선생한테 레슨을 받고, 저녁에는 교회 피아노로 연습을 하고, 밤에는 계단 틈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고3 때 자퇴 처리가 됐고 야간학교에 진학해 겨우 고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월간음악’ 콩쿠르에서 고등부 1위를 차지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꼼짝없이 얼어버렸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왜 얼었을까.’ 20살이 되면서 그는 어느 날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풀어진 상태에서 피아노를 쳐 보았다. 손가락이 건반을 치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한 음 한 음을 칠 때마다 그 신비로움이 텅 빈 자신의 몸을 채웠다. 마치 신이 내리듯 영혼이 자유로워졌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학생을 집에 바래다주던 중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불교책 2권을 읽고 ‘나를 알아야 나의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가를 하게 된다. 용화사에서 9개월 동안 공양주로 지낸 뒤 상법 스님을 은사로, 송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보림’(寶林)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입대 영장을 받게 됐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다가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영천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 군악대에 배치받았다. 그런데 절에 있을 때 수행했던 ‘이 뭐꼬?’가 안 돼 탈영을 결심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꼭 봐야 한다는 핑계로 2박3일 특별휴가를 얻었다. 부대를 빠져나온 그는 먼저 피아노를 가르쳐 준 이길환 선생한테 인사드리고 용화사에 올라가 군복, 군화, 군번줄, 군모 등을 모두 아궁이에 넣어 태워 버렸다. 승복으로 갈아입은 후 고향으로 내려가 시청으로 가서 대뜸 본인 사망신고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용화사로 발길을 옮겼다. 진허 스님이 “군대생활 3년도 못 하는 사람이 어찌 평생 중노릇을 하겠는가”라고 꾸짖었다. 결국 부대로 들어가 일주일 동안 자대 영창 신세를 진 뒤 한 달간 대구에 있는 5관구 헌병대 감옥에서 지냈다. 이때 하루 종일 가부좌를 튼 채 ‘이 뭐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석가모니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후에는 재즈와 작곡 공부를 다시 했다. 아울러 서울시립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작곡 공부뿐만 아니라 지휘 공부도 하게 된다. 대학 2학년 때에는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연극 음악을 했다. 국립극단의 ‘넋씨’를 비롯해 ‘왕자호동’, ‘메디아’, ‘봄날의 꿈’ 등에 참여했다. 그가 머리를 지금처럼 빡빡 밀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서였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로 다짐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오롯이 음악만을 향했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를 안 쓰고 휴대전화도 없다. 굳이 이유를 말한다면 자유롭게 음악적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꿈을 물었더니 “음악에 진정성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하게 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다음 달 16, 17일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등 올 한 해에도 서울과 지방에서 임동창의 신들린 연주는 계속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임동창은 누구 1956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17살부터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했다. 21살 때 인천 용화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보림. 30살에 서울시립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하며 최동선·박인호 선생을 사사했다. 35살 때 김덕수 사물놀이를 만나 국악의 최고 명인·명창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국악을 심도 있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45살 때 모든 외부 활동을 접고 ‘수제천’을 소재로 작곡에 전념하면서 1년 2개월 동안 500여 페이지를 작곡했다. 46살 때 ‘텅 비워져 조상을 만났다‘라는 허튼가락 장르를 개척한 뒤 영산회상, 여민락, 대취타, 전래동요, 민요, 산조 등을 새롭게 작곡했다. 51살에는 제자들과 재즈 무대를 펼쳤다. 55살 때에는 ‘임동창의 풍류, 허튼가락’ 작품곡집 중 1~6권을 출간했다. 대표 앨범으로는 ‘임동창’(1993년), ‘오이디푸스와의 여행’(1997년),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1997년), ‘이생강 임동창의 공감’(1998년), ‘영산회상’, ‘경풍년/염양춘/수룡음’, ‘수제천’(2010년), ‘1300년의 사랑 이야기1-정읍사’(2011년), ‘1300년의 사랑 이야기2-달하’(2012년) 등이 있다. 주요 저서는 ‘임동창 풍류 마음의 거울’, ‘임동창 풍류 사랑의 거울’, ‘임동창 풍류 거울 경’(2011년), ‘노는 사람 임동창’(2013년) 등이다.
  • 한국전쟁서 피흘린 그들의 영혼 기리며…

    한국전쟁서 피흘린 그들의 영혼 기리며…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앞둔 2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워싱턴카운티의 헤이거스타운에서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앤티텀 312지부(회장 레스 비숍)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노병들은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 지역 출신 전우 42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바라보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행사에는 비숍 회장 등 참전용사들과 에드워드 초우 메릴랜드주 보훈부 장관, 미 국방부 및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존 도너휴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은 축사에서 “지난 3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기념비 제막식이라는 결실을 거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참전용사들께 감사한다”면서 “이 기념비는 후세대에 대한 교육 목적도 될 수 있고, 발전된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와 시민 기부금 등 총 10만 달러가 투입된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는 3개의 대형 비석과 3개의 깃발이 나란히 세워졌으며, 벤치도 마련돼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될 예정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공연단신]

    사천의 착한 영혼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사람’을 현대적으로 다듬었다. 이병훈 연출, 길윤이, 김다정, 김병건 등 출연. 7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소극장판. 전석 2만원. (02)1688-5966. 더 솔리스츠 아카펠라 국내 최초 아카펠라 그룹 ‘솔리스츠’가 27일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하우스 콘서트를 갖는다. 8000~1만원. (031)790-7979.
  • 이정록시인 윤동주문학상 수상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제8회 윤동주문학대상 수상자로 이정록(49) 시인이 선정됐다고 23일 밝혔다. 수상작은 ‘영혼의 거처’ 등 시 10편이다. 젊은작가상은 김병호(42) 시인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오는 9월 28일 열리며 상금은 각각 1000만원, 300만원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정전 60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한국전쟁’과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석좌교수의 ‘또 하나의 냉전’이다. 전자는 적국의 시선으로 본 한국전쟁이란 점에서, 후자는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전쟁과 그 전후의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한국전쟁] 왕수쩡 지음/나진희·황선영 옮김/글항아리/1000쪽/4만원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99년 중국에서 초판이 출간됐고,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선 첫 번역 출간이다. 14년의 시차에 담긴 의미는 꽤 함축적일 터이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적군인 미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 한국전쟁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제정치적 맥락이나 이념적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태도에서 벗어난다. 이는 저자가 정치학자나 군사학자가 아니라 팩트를 추적하는 논픽션 작가라는 지점과 맞닿아있다. 치밀한 자료 수집과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 등 방대한 취재량이 압도적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국 소속 15개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또한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을 비롯한 서구의 다양한 관련서와 더글러스 맥아더의 회고록 등도 참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정전 협정까지의 긴박하고 참혹했던, 때로는 무기력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복원해낸다. 1950년 10월 8일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출병하는 대목에서 출발한 책은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작전 의도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정보전과 피말리는 심리전,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 등에 대한 꼼꼼한 기술을 거쳐 또 다른 전쟁의 양상을 보였던 정전 협상의 체결에서 끝을 맺는다.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대령 계급의 국가 1급 작가라는 저자의 또 다른 타이틀은 중국 중심의 서술이란 한계를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중국 내부의 자료들을 통해 한국전쟁의 한 축이었던 중국의 당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이 책만의 장점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또 하나의 냉전] 권헌익 지음/이한중 옮김/민음사/256쪽/1만 8000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간 냉전의 역사선상에 놓인다. 1945년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냉전’은 실제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정치·외교·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냉전이 “오랜 평화이자 상상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해방공간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에게 이 시기는 과연 냉전일 수 있을까. 2010년 컬럼비아대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즉 한반도 해방공간의 역사가 세계 냉전사와 틀을 같이하는가 달리하는가,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 책은 한국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제주 4·3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폭력전 내전과 그와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냉전을 내전으로 경험한 사회에서 냉전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이용해 접근한다. 저자는 제주 4·3사건으로 분열된 하귀리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서야 학살자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면서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한다. 또한 베트남전쟁 당시 형은 혁명군에, 동생은 미국편에 가담해 총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가족이 어느 한 명을 추모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고통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말한다. “한반도의 해방공간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도 있고 또 밖에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가 세계사의 영역에서는 생경해지는 상황은 불행한 일이며 이제는 이 잘못된 구도가 고쳐져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7쪽) 베트남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 ‘학살, 그 이후’와 전쟁의 후유증을 기록한 ‘베트남전쟁의 영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는 최근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틀을 형성하고자 하는 ‘한국전쟁을 넘어서’국제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국내 최대 책잔치 서울국제도서전 19일 개막

    국내 최대 책잔치 서울국제도서전 19일 개막

    국내 최대의 책잔치인 서울국제도서전이 19일부터 23일까지 닷새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 19회째를 맞은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책, 사람 그리고 미래’. 주빈국인 인도 등 25개국 610개 출판사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올 도서전에선 ‘조선 활자 책 특별전’ ‘김동리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인문학 아카데미’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조선 활자 책 특별전에선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 조선시대의 활자가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무녀도’의 작가인 김동리 특별전에는 애제자였던 박경리, 이문구의 책과 유품이 함께 전시된다. 박범신, 신달자, 조경란, 이승우, 김혜나, 정지아, 김숨 등 21명의 국내 대표 작가들은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독자와 만난다. ‘인문학 아카데미’에선 유시민, 박웅현, 이현우 등의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주빈국인 인도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와 마하트마 간디에 관한 도서 등을 전시한다. ‘인도의 영혼들’에선 테레사 수녀(평화상) 등 인도의 노벨상 수상자 7명을 소개한다. 인도 작가인 게타 다르마라잔이 방한해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다. 인도는 세투마드하반 국립도서재단 회장과 23개 출판사 대표자들로 이뤄진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한다. 비시누 프라카시 주한 인도 대사는 “인도에선 매년 6만개 출판사가 10만종의 책을 출간한다”며 “고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의 부인으로 전해지는 인도 아유타국의 스리라트나 공주를 다룬 만화책 외에 10권의 인도 어린이 도서를 한국어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에는 수교 50주년을 맞은 캐나다의 출판 현황과 문화도 소개된다. 캐나다의 동화 작가인 캐럴린 메롤라가 독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형규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은 “출판사 외에 서점, 도서관, 출판유통 업체 등이 모두 참여해 풍성한 축제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장료는 학생 1000원, 일반인 3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책꽂이]

    박새 둥지에 날아든 뻐꾸기 영어교사들(전정완 지음, 북랩 펴냄) 현재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영문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한 책. 보어 규칙과 8품사, 분사·동명사·부정사 용법 등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고 전수되는 엉터리 영문법의 유래와 오용 사례를 촘촘히 추적·분석했다. 134쪽. 1만원. 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박재현 지음, 공명 펴냄) 유엔 나이로비 사무소 안전보안국 보안대 작전담당관으로 활동하는 박재현의 에세이집.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이 ‘최고의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 꿈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담았다. 280쪽. 1만 4000원. 6·25 바다의 전우들(최영섭 지음, 세창미디어 펴냄) 6·25 전쟁 북침설이 만연한 사회를 향해 예비역 해군 대령이 내놓은 자서전적 증언기. 저자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은 북측의 육전대(해병) 1000여명이 부산 앞바다에서 수장됐다는 새로운 증언을 내놓는다. 360쪽. 1만 5000원.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박정호 지음, 한빛비즈 펴냄) ‘이야기 속에 숨겨진 경제학의 힘’ ‘음식에 깃든 경제원리’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경제학적 통찰’ 등의 소주제들을 통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내재된 경제학적 진실을 읽어 낸다. 320쪽. 1만 5000원. 나의 프랑스식 서재(김남주 지음, 이봄 펴냄) 1990년 장 그르니에의 책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번역 에세이. 프랑수아즈 사강, 아멜리 노통브,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등 그동안 번역한 책들에 붙인 ‘옮긴이의 말’을 묶었다. 272쪽. 1만 2000원. 지식의 반전:거짓말 주의보(존 로이드·존 미친슨 지음, 이한음 옮김, 해나무 펴냄) 잘못된 통념과 상식을 바로잡는 책. ‘시원하려면 짙은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한다’ 등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많다. 또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인 평균인 164㎝보다 큰 169㎝의 ‘키다리’였다고 주장한다. 340쪽. 1만 4800원.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 (클레어 던 지음, 공지민 옮김, 지와사랑 펴냄) 전대미문의 심리학자 융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평전. 무서우면서도 심오한 의미가 있는 여러 이미지에 주목했던 어린 시절, 직업적 성공을 거둔 청년기, 영혼 세계를 재발견한 중년 시절까지 융의 여정을 정리했다. 336쪽. 2만 5000원.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강제윤 지음, 호미 펴냄) 300여곳의 전국 섬을 순례한 강제윤 시인이 섬의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을 짧은 글과 함께 엮은 포토 에세이집. 섬 유랑자의 눈길을 따라 비경을 찾아 떠난다. 시인은 가장 인상 깊었던 섬으로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를 꼽았다. 220쪽. 1만 6000원. 당신으로 충분하다(정혜신 지음, 푸른숲 펴냄)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6주간의 힐링 토크. 개인맞춤형 심리분석 프로그램인 ‘내 마음 보고서’ 분석 결과 평균적 모습을 보인 30대 여성 4명과 저자가 6주간 진행한 집단 상담을 바탕으로 했다. 288쪽. 1만 3800원.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에리히 프롬 지음, 이종훈 옮김, 휴 펴냄)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1966년에 쓴 책.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구약 읽기를 시도했다. 구약은 인간이 우상으로부터 해방돼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267쪽. 1만 4000원.
  • [박현갑의 시시콜콜] 전문대, 고등직업교육기관이 되려면

    [박현갑의 시시콜콜] 전문대, 고등직업교육기관이 되려면

    바람직한 정책은 치밀한 현실 진단과 올바른 방향 제시가 될 때 나올 수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부의 모토가 바뀌는 현실에서 이상적인 정책이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정책은 미래 인재와 먹거리를 준비하는 토양이라는 점에서 정권과 관계없이 장기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교육부가 밝힌 전문대학 육성방안은 이런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이 방안은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전문대 위상을 정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우선 2~3년제 중심인 전문대의 수업연한을 4년으로 확대한다. 이르면 2016학년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올해 고등교육법 개정, 내년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및 4년제 학과 설치 대학신청 접수 등의 일정을 마련 중이다. 또 하나, 2017년까지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교를 육성한다. 국가직무표준(NCS)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특성화장학금 지급 등에 쓸 예산을 지원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의 4년제 대학들이 구조조정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좋은 방안이다. 학벌 중시 사회에서 4년제 대학에 비해 ‘서자’ 취급을 당했던 전문대학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할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문대는 ‘샌드위치’였다. 정부가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육성책을 펴면서 신입생 지원율은 떨어졌고 그나마 인기 있는 학과들은 4년제 대학에서 개설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물리치료학과, 방사선학과, 안경광학과, 피부미용학과 등 과거 전문대에 개설됐던 인기학과들이 그렇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문대 관련 자료 요구는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아쉽다면 교육당국의 행태다. 전문대 위기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교육부가 이번에 전문대 육성방안을 마련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히고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이번 전문대 육성방안이 전문대 위상 제고로 이어지려면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을 고쳐야 한다. 고교 졸업 후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하면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재직자 특별전형은 일반 대학이 아닌 전문대학 중심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체 근무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일반대학에 가면 현장경험이 단절될 수 있다. 마이스터고 및 특성화고와 전문대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장기적으로는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단선형 학제에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다선형을 가미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화천 산채밥상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화천 산채밥상

    별빛이 길을 안내하던 산골짜기에도 전기불이 들어오고 휴대전화가 펑펑 터지니 ‘궁벽한 오지’가 사라진 시대다. 하지만 살면서 심산에 숨어들어 사나흘 세상을 잊고 싶을 때가 있다.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면 좋겠다. 걸어온 내 경계를 지울 수 있으니까. 산이 가로막아 한나절은 걸어야 닿는 곳이면 좋겠다. 중간에 맘 바뀌어 돌아서지 못하게. 구들에 장작을 밀어 넣어 주고, 산 쪽 으슥하게 자리 잡은 화장실이 무서워 밤이면 풀숲에 실례를 하는 곳. 허나 아침이면 내 어머니를 닮은 촌부가 조물조물 열두 가지 나물을 무치고 된장찌개 바글바글 끓여 한 상 내오는 곳. 처음 보는 주인집 아저씨와 오래된 식구처럼 한 뚝배기에 숟가락을 담그는 곳. 밥상 물리기도 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서울 사람 참견을 하는 곳. 비 오는 날 계곡 돌 굴러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와르르와르르 요란한 곳. 들꽃이 흔들릴 때마다 두고 온 일상에 대해 내 뇌가 삭제 버튼을 작동시키는 곳. 그렇게 산과 강이 가로막은 곳을 찾아, 치유의 밥상을 찾아 떠난 곳은 강원 화천 속의 오지 비수구미였다. 오죽하면 호랑이 소동으로 마을이 알려졌을까. 화전 일구고 나물 뜯고 뱀을 잡아 생계를 이어 가던 자연이 전 재산인 동네인데, 트레킹 코스가 생기면서 숲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을은 4년 전 내려온 도회지댁 나 홀로 혜자씨만 빼면 나머지 세 가구는 토박이다. 그 덕에 우린 산 여인들이 억척스럽게 따낸 산채 밥상을 받는 호강을 누린다.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해산(日山)의 발목, 비수구미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최북단이면서 가장 길다는 해산터널(1986m)을 지나 구절양장 멀미 나는 곡예 길을 내려가는데 비포장도로로 20여분 갔을까. 길이 끊겼다. 강 건너 빈 배로 보아 강을 건너야 마을로 들어서지 싶다. 어쩌자고 비는 내린다. 차에 옷가지를 놔둔 채 렌즈 배낭만 달랑 메고 산 위쪽으로 열린 이른바 ‘올레길’로 접어들었다. 20여분 걸으니 ‘출렁다리’가 나온다. 다리 건너 첫 집이 이장 댁이다. 간밤 비로 계곡물이 제법 불었다. 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예약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숨어든 것이고, 비가 와서 길이 패어 난장인데 산을 넘어온 여인을 보고 이장 부부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마루로 올라서며 밥을 주셔야 하고 잠도 자야겠다고 생짜를 놨다. 일순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난 안방에서 커피를 마신 것으로 하룻밤 허락받았다고 간주했다. 열목어가 노닌다는 계곡을 돌고 오니 둥근 ‘양은 밥상’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가운데에 된장찌개가 놓이고 찬은 비린 것 한 토막 없는, 모조리 나물이다. 허나 귀한 병풍쌈이 올랐다. 데쳐 놓은 이파리를 집어 손바닥에 펼치니 차고도 넘친다. 병풍쌈을 반 갈라 손에 얹고 밥 한 수저와 집 고추장, 무장아찌를 얹었다. 커서 볼이 미어지겠다. 오물오물 그 큰 잎을 씹느라 머릿속 잡념이 모두 지워졌다. 꿀꺽 넘기니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은은한 향과 매끄러운 식감이 역시 나물의 여왕이지 싶다. 마치 유년 시절 ‘밥상의 묵언’을 강조하시던 아버지와 겸상한 것처럼, 난 이장 어르신과 수시로 수저를 부딪치며 말없이 한 뚝배기 속 된장을 퍼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나물, 고봉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텔레비전이야 세상 얘기를 떠들건 말건, 치열하게 집중한 밥상이 얼마 만인가. 나물 찬과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로가 참으로 크다. “병풍쌈은 해발 1000m 이상 깊은 곳에서 자생해요. 약간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해서 여성들은 접근하기 힘듭니다. 각종 비타민과 섬유질이 많아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죠. 따놓기 무섭게 팔려 나가요. 밥상에 올라온 나물은 다 집 주변에서 채취한 거예요. 갓 딴 나물의 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정말 맛있는 것은 말린 묵나물이에요.” 그러고 보니 환갑이 넘은 이장 김상준씨(62) 얼굴이 장판처럼 팽팽하다. 열 살은 젊어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부부는 “산나물만 먹어서 그렇다”며 활짝 웃는다. 약속 없이 들이닥친 손님이라 찬 걱정을 하더니만 다음 날 아침 밥상은 산채가 더 늘었다. 데쳐서 들기름에 무치고, 볶고, 조물조물한 나물 찬이 12가지다. 집 두부 숭덩숭덩 썰어 넣고 직접 발효시킨 청국장이 올라왔다. 20년간 고집 부리던 아침 단식이 무너졌다. 이 정갈한 나물 밥상을 보고 어찌 식탐이 안 생길까.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우체국 일을 겸하는 김 이장을 따라 강가로 나왔다. 배 건너편에는 ‘이장님 배’를 타고 파로호 다른 언덕배기로 가야 하는 두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밥이란, 밥상이란 이래야 한다. 산이 텃밭인데 더 무엇을 바랄까. 봄 볕 좋은 날 장을 담가 항아리에 다독거려 놓고 깊은 산중 그윽한 산채를 따다 쌈을 싸 먹는 소박한 영혼의 음식. 도시의 독기를 빼기 위해 단 며칠이라도 그 산중 밥상과 마주하기를 당신에게만 귀엣말로 속삭이노니. “떠나세요.” 글 사진 화천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강원도 화천군 동촌2리. 비수구미 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트레킹을 하거나 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화천에서 해산령터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 트레킹 쪽문이 열려있다. 6㎞ 약 2시간 코스. 두 번째는 배편. 평화의 댐 20m 전, 비수구미 이정표를 따라 비포장 길을 내려가면 선착장에 닿는다. 민박에 연락해 배를 타거나 최근 산 쪽으로 난 출렁다리 길로 걸어 들어가는 방법이다. 20분 소요. 해산민박 이장 댁과 만동이네집이 산채 밥상을 내놓는다. 예약 필수. 계절맛집(지역번호 033) 해산민박 이장 댁(김상준, 442-0962, 산채 밥상, 닭도리탕), 만동이네집 민박(김영순, 442-0145, 산채 밥상, 붕어찜 등 민물 생선 요리), 비수구미 산장 펜션(이혜자, 442-0994)
  • [김문이 만난사람] 남대문 옷장수 출신… 세계 패션무대 누비는 디자이너 박춘무

    [김문이 만난사람] 남대문 옷장수 출신… 세계 패션무대 누비는 디자이너 박춘무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에 따라 사람이 달라보인다는 뜻이다.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가장 앞에 놓였을까. 무색무취하다. 흑과 백, 모노톤을 추구한다. 때문에 화려하지 않고 섹시하지도 않다. 어찌 보면 옷도 아닌 것이 아무렇게나 걸쳐 입어도 나름대로 감성이 담긴 옷으로 변한다. 새롭거나, 남들한테 비위를 맞추는 옷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 패션무대에서는 잘도 통한다. 뉴욕과 북유럽, 파리의 패션 무대를 놀라게 한다. 과연 어떤 무기일까.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박춘무(59)씨. 1988년 데무(DEMOO)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패션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국내에서는 1995년 뉴웨이브인서울(NWS) 컬렉션 등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패션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콘셉 코리아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국내보다는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인지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1996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 포르테 참가를 시작으로 세계무대를 노크한 그는 1999년 파리 컬렉션 무대에서는 한 장의 천이 몸에 휘감기는 것만으로도 구조적인 코트가 되고 스커트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이목을 끌었다. 2009년부터 뉴욕 컬렉션에는 매 시즌 참가하고 있다. 이때마다 가장 투명하고 얇은 옷을 보여주는 컬렉션을 열었고, 한복의 동정이나 깃에서 영감을 얻는 구조적인 옷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외 수출액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데무 박춘무 블루 라벨’ 등은 2011년 해외 전시회에서 30만 달러 이상의 수출계약을 맺었으며 지난해에는 파리 후즈넥스트(Who’s Next), 트라노이(Tranoi)와 뉴욕 코트리(Coterie)에 참가해 50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또한 릭오언스·지방시·발망 등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명실공히 이탈리아 최고의 온·오프라인 편집매장인 루이자비아로마·안토니올리와 입점계약을 맺는 등 진가를 빛내고 있다. 1999년 뉴욕에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2001년 9·11 테러의 여파로 뉴욕 매장을 철수했지만 뉴욕, 파리, 이탈리아, 일본, 중동 등 전 세계 30개국 100여개의 유명 편집매장에 입점한 그의 브랜드는 지속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모노톤, 블랙, 절제된 라인, 아방가르드, 그리고 독특한 라인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 “그의 패션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볼수록 매력 있는 것, 볼수록 멋이 있는 것, 자세히 보면 깊이가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소비자 자신이 만족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데무’의 특징 중 하나이다. 유럽의 경우 40, 50대가 주요 소비자라고 박씨는 설명한다. ‘데무’는 자신의 이름 끝자 ‘무’ 앞에 ‘~부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드’(DE)를 붙여 탄생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작업실에서 올해 데뷔 25주년이 되는 박씨를 만났다. 안에는 완성된 옷과 한창 작업 중인 옷들이 쭉 걸려 있었다. 듣던 대로 흑과 백의 작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박씨 역시 검정과 하얀색 옷을 간편하게 입고 있었고 안경테도 까만색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데무’라는 이름이 꾸준히 무성하게 이어간다는 뜻이 담긴 느낌이라고 했더니 “처음 오픈할 때 ‘박춘무 패션’이라고 하기도 싫었고 그러다가 프랑스어 ‘De’를 생각해내 제 이름 끝자 앞에 ‘데’를 붙였더니 심플하게 감이 왔다. 그런 이름 덕분인지 프랑스 컬렉션에 많이 참가하게 됐다”며 웃는다. 그에게 유럽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물었다. “북유럽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아방가르드다’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 ‘서양처럼 섹시하지 않으면서도 멋이 있다’고들 합니다. 유럽에 자주 가다 보니까 유럽사람들은 감성적이며 동양적인 것을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동서양을 아우르는 옷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요.” 그는 화려한 것, 진한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정리가 안 된 옷에 실용성과 트렌드를 플러스하는 것”이다. 치장이 아닌 자연스러움, 그러면서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옷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인지 25년 동안 쭉 무색무취한 옷을 추구해 왔다. 옷을 만드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저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붓을 든 수묵화의 선이랄까. 그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그동안 그룹전을 두번 했고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누드 크로키를 한다. 그는 김제 출신이다. 어린 시절에는 의류공장 근처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아동복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음악과 멋을 좋아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아동복 장사를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 1973년 부산진여상을 졸업한 직후 어머니와 함께 남대문 옷 도매 및 소매시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옷을 떼어다가 명동 소매점에 파는 일 등이다. 학창시절 가고 싶어 했던 미술대학 진학 또한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먹고살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다.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고 검은 옷이나 군복 같은 카키색 옷만 입고 다녔다. 어렸을 적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무채색 옷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옷장사는 비교적 잘됐다. 똑같은 옷도 그의 손을 거치면 더 잘 팔렸다. 어느새 돈이 조금씩 모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아닌데, 돈만 벌면 뭐하냐’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가슴속의 우물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옷장사를 한 지 6년째, 홍익공업전문대 도안과에 진학했다. 하루종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옷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2년 동안 대학공부를 마쳤고 이어 1987년 국제패션연구원을 졸업했다. 새로운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냥 흔한 옷이 아니라 정말 다른 옷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이런 생각으로 혼자만의 길을 선언하고 이듬해 브랜드 ‘데무’를 론칭했다. ‘데무’ 오픈 전에 하얏트호텔에서 다른 두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쇼를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갖는다. 셔츠는 왜 관습적으로 면 소재나 체크무늬로만 하는지, 또 블라우스는 실크 같은 것으로 해야 하는지 등이다.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옷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역발상이었다. 스포티한 느낌에 부드러운 원단을, 그리고 사랑스러운 블라우스에 셔츠같이 라인이 잘 사는 빳빳한 원단을 사용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패션쇼 리뷰에서 ‘옷도 아니다’라는 악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잘 팔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방가르드를 바탕으로 항상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한다. 그는 작업을 할 때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선이 나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옷을 만들고 나서 거꾸로 입어보고, 잘라도 보고, 틀어서 입어보기도 한다. 가봉하다가 잘못 나온 것도 이런 식으로 다시 입어본다. “요즘 패션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유행에 너무 따라가지 말고 본인 특유의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개성을 위해 오늘도 디자인하고 그것을 입어주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이쁘다라는 규정이 딱히 있나요. 길을 가다가 거리의 콘크리트가 한구석에 올라와 있으면 보는 시각에 따라 이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구조적인 느낌이 멋있게 보일 때도 있지요. 또한 잡초가 더 예쁠 수도 있어요. 테크닉은 나중 문제이거든요.” 그의 디자인 영감은 일상 속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때그때 자신을 사로잡는 어떤 느낌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울러 빛을 디자인에 많이 도입한다. 소재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옷에 반사되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첫 데뷔 때부터 이러한 영감과 빛, 그리고 관습에 반하는 감성 등을 바탕으로 흰색과 검정으로 표현해 왔다. 이는 ‘데무의 상징’이자 그가 추구하는 패션의 철학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외국에 다녀 보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디자이너 박춘무는 올해 데뷔 25주년… ‘데무’ 브랜드 30개국 100여개 편집매장에 입점 김제 출신이다. 부산진여상을 졸업하고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6년 동안 했다. 홍익공업전문대학교와 국제패션연구원을 졸업한 뒤 1988년 ‘데무’라는 브랜드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95년 뉴웨이브인서울 컬렉션 등을 시작으로 국내 무대는 물론 매년 유럽과 뉴욕 등 해외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다. 1999년에는 뉴욕에 단독매장을 오픈했다가 9·11 테러 여파로 철수했다. 현재 뉴욕, 파리, 이탈리아, 일본, 중동 등 전 세계 30개국 100여개의 유명 편집매장에 그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1998년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상, 2001년 제38회 무역의 날 기술 및 디자인 개발 부문 대통령상, 2009년 제18회 한국섬유패션대상 디자이너 부문, 2009년 대한민국 패션품질대상, 2010년 제10회 서울패션위크 헌정디자이너 10인 선정, 2012년 제5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표창 등이다.
  • 두정상 ‘적과의 동침’ 커플 될까

    7~8일(현지시간) 열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백악관이 아닌 휴양지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 대통령들은 인간적 친밀도를 과시하는 휴양지 회동을 주로 동맹국 정상에 대한 ‘선물’ 격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6일 과거 라이벌 국가의 정상들이 인간적 유대관계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몇몇 사례에 빗댔다. 1985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처음 만났을 때 강하게 끌렸고, 당초 15분으로 예정된 환담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레이건은 나중에 “고르바초프에게는 그전 소련 지도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따뜻함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갈수록 두터워졌고 고르바초프는 획기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게 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베이징으로 날아가 1주일 동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마오타이를 건배하며 신뢰를 쌓았고, 중국은 국제사회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뒤 “그(푸틴)의 눈에서 영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믿을 만한 인물”이라고 말했고, 미국은 동유럽에서 미사일방어(MD)망 구축을 포기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시 주석이 종전 중국 지도자와 달리 인간적 관계를 맺는 데 적극적이며 미국민들과의 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평하고 있다. 랜초미라지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네 마리의 두루미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날/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

    [열린세상] 네 마리의 두루미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날/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도시인 로렌스는 현재 전체 인구 8만 7000명으로 5만명 이상이 대학생으로 구성된 미국의 전통적인 대학 타운이다. 이곳에 있는 캔자스 대학교의 캠퍼스 안쪽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작은 호수와 함께 대학의 130년 역사를 상징하는 큰 나무와 잔디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언덕 위 아담한 쉼터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마주 보이는 앞쪽에 2m 높이의 두루미 4마리가 서로 엉켜 하늘을 향하여 막 날 것 같은 형상의 동판 조각품이 있다. 두루미 앞에는 캔자스 대학의 교수, 학생, 직원 중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44명의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 기념비가 놓여 있다. 조각품을 만든 캔자스 대학 디자인과 교수 존 해비너는 두루미는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며 서로 엉켜 있는 4마리는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 중국, 대한민국과 북한을 나타낸다고 했다. 한국전쟁의 희생자 44명의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두루미 4마리가 평화를 향하여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을 고대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지구 건너편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조각품이 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놀라웠다. 한국전쟁 희생자 기념을 위한 이 조각품과 기념비는 2005년 4월 완공되었다. 당시 로버트 헤멘웨이 총장은 전통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전국대학농구대회 시즌이 되면 경기장에 직접 나와 관중에게 기념비 설립계획을 설명하면서 경기 관람권 판매대금의 일부를 적립하겠다고 이해를 구하였고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 일부 재미교포 독지가의 도움을 포함하여 학교 구성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총장의 집념으로 7년에 걸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30만 달러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나고 52년 세월이 지났지만 대학 캠퍼스에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44명의 교직원과 학생을 기리는 한국전쟁 희생자 기념비와 조각품이 미국 중부지방 대학 캠퍼스 중앙에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의 조국도 아닌 다른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숭고한 영혼에 대한 감사함을 반세기가 지났지만 잊지 않는 미국인의 자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늘,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58회 현충일을 맞이했다.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희생한 전몰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빌고자 지정된 날이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1950년 전쟁의 시작으로 한반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국민이 갈래갈래 찢겼다.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간 우리 세대는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교훈 삼아 이를 악물고 대한민국 건설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국민 1인당 소득 2만 3000달러, 세계 무역 대국 13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게 되면서,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정치적으로 좌와 우가 충돌하면서 이 땅에 피와 땀을 흘린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용사들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 같아 두렵다. 미국의 작은 시골 대학타운에서조차 먼 타향에서 전사한 자국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는 부끄러움이 없는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고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도 플레이오프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조용필과 싸이의 콘서트장에서, 대학의 축제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유명한 연예인보다는 백령도 피격 용사와 희생자 가족이 나와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모금활동도 전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일상화되어야 하고 10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국가가 국민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국민 또한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캔자스 대학의 해비너 교수가 염원한 대로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두루미 4마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몸을 풀고 하늘 높이 날아야 한다. 대한민국 두루미가 더욱 강한 날갯짓으로 힘차게 하늘 높이 날아 다른 두루미도 끌어올려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오도록 해야 한다.
  • ‘트렌스젠더’ 변신한 전직 ‘네이비실’ 대원 미모가…

    ‘트렌스젠더’ 변신한 전직 ‘네이비실’ 대원 미모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출신 정예 대원이 은퇴 후 트렌스젠더가 돼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에도 참여한 바 있는 화제의 전직 네이비실 대원은 현재 플로리다에 살고있는 크리스틴 벡(46). 그녀는 지난 20년 간 특수부대에서 생활하며 13번의 작전과 7번의 전투를 치루며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간 많은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룬 그는 지난 2011년 은퇴 후 자신과의 ‘전투’에 들어갔다. 바로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하는 것. 벡은 “어린시절 부터 내 몸은 남자였지만 마음은 여자였다.” 면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이같은 성정체성 고민은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은퇴 후 가족은 물론 동료 대원들한테도 성전환 수술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모두 따뜻하게 인정해 줬다.”고 덧붙였다.       결국 호르몬 주사를 맞고 레이저로 수염도 제거하며 서서히 여자로 변신을 시작한 벡은 지난 3월 화장하고 여자옷을 입은 사진을 자신의 SNS사이트에 내걸었다. 이같은 사연이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 그녀가 자신의 특별한 삶을 담은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제목도 그녀다운 ‘전사 공주’(Warrior Princess). 벡은 “나는 군대에서도 아마존 여전사 같았다.” 면서 “모습은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경험과 영혼을 가진 같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가자’ 폭격에 세 딸 잃고도 “증오하지 않는다”

    ‘가자’ 폭격에 세 딸 잃고도 “증오하지 않는다”

    2009년 1월 1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서 쏜 포탄이 떨어졌다. 난민촌에서 일하던 의사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집에도 여지없이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는 평소처럼 이스라엘TV에 전화를 걸어 가자의 상황을 알리는 중이었다. 폭격으로 세 딸이 숨진 직후 절규하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이스라엘에 생방송됐다. 또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 지긋지긋한 전쟁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부엘아이시가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증오나 복수를 택하지 않았다. 세 딸이 죽고 자신은 살았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그 비극이 좋은 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랑TV는 3일 오전 7시 ‘코리아 투데이’에서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I Shall Not Hate)의 저자인 아부엘아이시의 삶을 소개한다.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출간된 저서는 자신과 죽은 세 딸, 그리고 가자지구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딸이 사람들의 생각, 마음, 영혼에서 희망이라는 의미로 부활하기를 바란 그는 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호소했다. 아부엘아이시는 이스라엘에 점령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자랐다. 유엔이 주는 우유 배급표를 모아 팔고 지우개를 잃어버릴까 실에 꿰어 걸고 다녔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교육을 잘 받아 난민촌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집트에 유학한 뒤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가자와 이스라엘의 병원을 오가며 돈을 벌었다. 풍족했던 삶에 2008년 그늘이 드리워졌다. 세 딸을 남겨놓고 아내가 급성백혈병을 앓다 숨진 것이다. 아픈 아내를 병원으로 옮기고, 다시 시신을 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는 검문소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난민의 처지를 절감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2008년 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재침공했다. 아부엘아이시는 최근 저서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프로그램에선 아부엘아이시와의 인터뷰 내용을 방영한다. 외세의 침입, 식민 통치, 영토 분할까지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닮은꼴 역사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관련해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강조했다.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그 속에서 “이스라엘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라 말하는 아부엘아이시의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들어볼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란의 카프카’ 죽음을 탐구하다

    1951년 4월 4일, 당시 48세이던 이란의 소설가 사데크 헤다야트는 프랑스 파리의 셋방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지갑에는 장례 비용 10만 프랑이 들어 있었다. 유서는 없었다. 쓰고 있던 원고는 죽기 직전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파리의 마른 강에 몸을 던져 첫번째 자살을 시도한 지 24년 만이었다. 헤다야트는 죽음에 매혹된 작가였다. 테헤란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공부한 그는 릴케의 시를 탐독하며 죽음에 빠져들었다. 죽음은 실존의 문제였다. 신조차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헤다야트는 작품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말했다. “죽음의 문제에 비하면 종교나 신앙, 신념 등은 너무도 허약하고 유치한 집착이다.” “죽음, 죽음이여…너는 어디에 있는가?” 문학과지성사가 ‘눈먼 부엉이’로, 연금술사가 ‘눈먼 올빼미’란 제목으로 나란히 펴낸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탐구서다. 서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만큼 단순하며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주인공은 필통 뚜껑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어느 날 자신이 ‘창녀’라 부르는 아내를 칼로 살해한다. 술과 아편에 취해 환영을 본다. 서사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죽음에 대한 무수한 심상과 환영들이다. 밤과 잠, 망각, 꿈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죽음은 “삶의 심연에서 우리를 건져내서 자신의 품에 거두어주는 존재”이며, 화자는 “망각의 잠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기를” 갈망한다. 삶은 고통이다. “세계는 텅 빈 슬픔의 집”이며 “삶은 부자연스럽고, 불가해하며, 비현실적”이다. 환영들을 그림으로 옮기는 화자의 독백은 마치 죽음의 풍경을 글로 적는 헤다야트 자신 같다. “이 삶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중략) 마치 종양처럼, 조금씩 내 영혼을 파먹어 들어가던 고통을 종이에 옮겨놓고 싶다.” 헤다야트는 초현실주의적인 언어로 실존의 부조리를 다뤄 ‘이란의 카프카’라는 평을 듣는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죽음의 심연을 탐구한 이 책은 풍속을 해치는 데다 잔혹하다는 이유로 이란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 2006년에는 이란 정부가 헤다야트의 모든 작품 출판권을 몰수했다. 문학과지성사 1만 2000원, 연금술사 1만 3800원.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서울광장] ‘끼리끼리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끼리끼리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부처님 얼굴도 세 번’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끝없는 과거사 부정과 위안부 망언에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한국은 물론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마침내 일본은 유엔 기구로부터 “범국민 차원의 위안부 문제 교육을 하라”는 권고까지 받았다. 아시아 최고의 문명국임을 자임하는 일본이 졸지에 국민교육이 필요한 야만국으로 전락한 셈이니 이보다 더한 수치가 따로 없다. 그런데 의아하다. 누가 일본 문화를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수치의 문화’라고 했는가.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심각한 수준의 욕이 되는 사회라는 얘기도 괜한 소리 같다. 지금 그들이 벌이는 역사왜곡 퍼레이드보다 더 부끄럽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시퍼렇게 살아 있는 역사에 거짓의 말뚝을 박는 일본은 과연 행복한가. 아무리 거만의 부를 쌓아 올린들 ‘정신적 거지’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진정한 부자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평화헌법을 뜯어고치고 병장기를 산처럼 쌓아 올리며 군국으로 치달은들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면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왜 죽을 꾀를 내려 하는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싸구려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동묘지에서 돌베개로 잠을 청했던 ‘마지막 독립군’ 김준엽 선생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 일본의 무모한 ‘역사 다시 쓰기’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 또한 역사왜곡 논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흉보면서 닮는다더니 일본의 청맹과니 역사관을 나무라면서 우리는 정작 외눈박이 사관의 포로가 돼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 근현대사를 친일수구파와 반일자주파의 대결로 그린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여전히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강고한 진영 논리 앞에 역사의 진실은 발붙일 곳이 없다. 증오의 수사만 넘쳐난다. 그런 와중에 종편 채널에선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주장을 내보내고,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에선 5·18 희생자의 영혼까지 모독하는 반인륜을 서슴지 않아 공분을 사고 있다. 민족사의 비극인 5·18의 정신과 역사성을 송두리째 부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식의 배반이요, 이성의 죽음이다.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그 후과가 치명적인 것인가를 우리는 일본의 극우 망동에서 똑똑히 봤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과거사를 제 멋대로 요리하며 스스로 역사의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져 봐야 한다. 유엔 기구도 지적했듯 일본의 몰염치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 부재 탓이 크다.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한국사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나마 수능시험을 위해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당연히 근현대사에 대해 까막눈일 수밖에 없다. 5·16과 5·18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같은 것 아니냐고 되묻는 학생도 있다는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근현대사는 동네북 신세다. 누더기가 됐다. 어떻게든 역사 교육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상한 상황이다. 대학들이 앞다퉈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끼리끼리 파당을 짓는 위태위태한 가학적 역사놀이가 계속되는 한 국민 통합은 요원하다.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와는 이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것은 참극으로 이어진다. 자기중심의 민족사든 국민사든 오로지 그 집단을 위해서만 쓰인 ‘끼리끼리 역사’는 역사로서 함량 미달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일갈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이 그들만의 일체감의 역사, 미망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고 우리마저 덩달아 미친 역사의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정직한 역사에 미래가 있다. jmkim@seoul.co.kr
  • 불안한 마음… 삶의 일부라 생각하세요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형태와 정도는 달라도 누구든 불안의 자장에서 평생 벗어날 순 없다. 다만, 그것을 용기 있게 드러내느냐 애써 감추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처럼, 뚜렷한 대상도 없고 원인도 알 수 없는 막연한 걱정은 우리를 외롭고 두렵게 만드는 괴물임에 틀림없다. ‘한없이 외로운 불안’(오동재 지음, 행성:B 잎새 펴냄)은 불안한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또 불안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 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노파심 많은 부모로 인해 불안증을 안고 살았던 스스로의 경험과 25년에 걸친 환자 상담 사례를 토대로 불안장애에 관한 궁금증을 알기 쉽게 풀어 썼다. 저자는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경제적 급성장을 이룬 경우 사회 구성원들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더 많은 불안을 느끼게 되며, 여기에 타인의 시선과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문화권의 특성이 더해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다수가 불안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불안은 본능적인 감정이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병이 된다. 가령 발표할 때의 불안은 인구의 30%가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특정 공포증 등은 치료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장애도 불안을 느끼는 원리와 이유를 이해하고, 억지로 외면하는 대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다스리고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1만 4000원.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시인協, 박정희·이승만 찬양 논란 ‘사람’ 전량 회수

    한국시인협회가 인물 찬양 논란을 낳은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신달자 시협 회장은 23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한국시인협회를 생각하는 시인들의 질문에 답합니다’)을 통해 “근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남긴 빛과 그늘을 문학의 눈으로 살펴보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충실히 반영되지 못한 작품들이 일부 수록되었고 누락된 인물도 있는 등 시인들과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걱정과 심려를 끼쳤다”며 시집을 전량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시협 관계자는 “전날 밤 4시간여의 집행부 회의를 거쳐 시집의 전량 회수를 결정했다”면서 “초판된 시집 1000부 가운데 기증본 300부를 제외한 나머지 서점 유통 분량은 모두 거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협은 오는 30일로 예정된 시집 출판기념회 등 일체의 관련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시협은 최근 한국 근대 인물 112명에 대한 시를 시집으로 펴내면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인물들의 공적을 부각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지난 22일 고영, 김요일 등 시협 소속의 시인 55명은 홈페이지에 “세속적 허명을 위해 시의 영혼을 파는 참혹한 양태를 맨 정신으로는 묵과할 수 없다”며 항의 성명서를 올리고 시집의 전량 회수를 요구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아빠를 바람나게 하라①Memories, Arts

    아빠를 바람나게 하라①Memories, Arts

    FAMILY TRIP 아빠를 바람나게 하라 오랜만의 주말. 자녀가 보챌 때 리모콘만 만지작대고 있는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떨쳐 일어나자. 이제 남자답게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봄볕 따사로운 산으로, 들로, 테마를 정해 떠나보자. 왜 모녀여행만 있는 거야? 모녀母女여행은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부녀여행은커녕 부자여행도 쉽게 듣기 어렵다. 왜 아빠는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만 살아야 하는가. 최근 일과 집에서 벗어나는 아빠가 늘고 있다. 캠핑으로 대표되는 가족여행이 시작이었다면, M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아빠들이 가족, 특히 자녀에게 다가가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분출되는 따뜻한 정이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어렵다고? 조금의 노력만 더하면 가능하다. 테마별로 하루 일정부터 장기간을 요하는 해외여행까지 자녀와 갈 만한 곳과 상품을 골라 봤다. ●Memories 거꾸로 시계를 되감다 옛 향기가 남아 있는 곳이 갈수록 사라진다. 기술은 시간을 지배하고, 그렇게 추억도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즐겁게 뛰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할애해 보자. 아이들은 신기함과 새로움을 체험하고, 아빠는 그리운 향수에 푹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1 철도동호회 네티즌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한 화본역의 모습. 건너편에 급수탑이 보인다 2 화본역에서 가까운 추억의 학교는 60~70년대 모습을 재현한 체험박물관이다 3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열혈강호>, <용비불패> 캐릭터의 복장을 입어 볼 수 있다 4 옛날 만화가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내부 모습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아빠의 어린 시절을 보여줄께 경상북도 군위군에 자리한 화본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산성중학교는 폐교됐지만, 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체험박물관 ‘추억의 학교’로 변신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충실하게 전시품을 갖춘 내부에는 당시 사용하던 교실의 물품들은 물론이고 실제 일기장, 뮤직박스, 가정집, 화장실, 이발소, 옛 골목길, 극장, 자동차까지 전시돼 있어 정말 없는 게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업무에 치여 자녀와 소원했던 아빠였어도 좋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는 자녀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절로 만발할 테니. 산성중학교 가는 길에 화본역도 들러 보자. 화본역은 아이들과 손을 잡고 그냥 나들이 삼아 가볼 만한 곳으로, 역에 내리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호젓한 분위기의 역사건물과 급수탑을 만날 수 있다. 1899년부터 1967년까지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급수탑은 여름이면 외부가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주인공이 뛰어다닐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람료 성인 2,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1,500원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824-1 찾아가기 청량리역에서 아침 8시2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오후 12시40분에 화본역에 도착한다. 문의 군위군청 관광마케팅팀 054-380-6915 만화세계로 타임워프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즐겨 보는 요즘 아이들은 모른다. 형광등 빛 흐릿한 곳에서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손때 묻은 종이 만화책을 뒤적이던 기억을. 가득 꽂힌 책만 봐도 행복하고, 배고플 때면 주인아저씨가 끓여 주는 퍼진 라면만 먹어도 충분했다. 갈 곳 없고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천국이자 안식처였던 만화방은 점점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부천 소재의 한국만화박물관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만화의 보고라 할 만하다.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수장고에는 <고바우 영감>, <엄마 찾아 삼만리> 등 50~60년대 만화 육필원고 6만여 장, <코주부 삼국지>를 비롯한 70년대 만화 단행본, 각종 희귀잡지 및 작가 소장품 등이 보관 중이고, 2층 열람공간에는 국내만화, 해외만화, 학술자료, 논문 등 25만여 권의 장서가 망라돼 있다. 3층에는 옛날 만화가게를 재현해 놨는데 연탄 난로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만화책이 주욱 늘어서 반가움을 자아낸다. 4층에는 인기만화 <열혈강호>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림의 세계’, 직접 투수가 돼 야구체험을 할 수 있는 ‘외인구단과의 한판승부’ 등을 마련해 흥미를 더한다. 관람료 일반 5,000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입장마감 오후 5시) 주소 부천시 원미구 상동 529-2(영상문화단지 내) 문의 한국만화박물관 032-310-3090 comicsmuseum.org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Arts 아이 마음에 예술 혼을 꽃피운다 때로는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다. 하지만 자녀와 함께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왕이면 자라나는 아이의 꿈을 키우고 가슴을 울릴 교육적인 테마를 택해 보는 것이 어떨까. 미술과 건축에 특화된 여행지로 떠나 봤다. 1 북촌미술관의 조각상 2 20세기 최고의 건축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롱샹성당 3 베네세하우스의 오벌룸 전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유럽예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건축물 감상이다. 유명 건축가의 철학과 영혼이 담긴 건축물을 만날 때 우리는 때로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럽 곳곳에는 공간과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 주는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한 예로 압도적인 아우라와 기하학적인 형태, 자연광만을 이용해 20세기 최고의 건축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롱샹성당 등 뛰어난 건축물 안에서 우리는 사람과 공간, 색과 면, 자연과의 조화 등을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물을 만나는 여행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자명하다.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만나는 일, 예술의 극치를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관련상품 혼이 담긴 유럽 핵심 건축 기행 19일 특징 로마·피렌체·베니스·바젤·스트라스부르·슈투트가르트·프랑크푸르트·쾰른·뒤셀도르프·베를린·파리 등을 방문한다. 전 일정 자유며, 여행 전에 현대 건축 강좌 등의 전문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 이해를 돕는다. 가격 436만원부터 문의 인터파크투어 02-3479-6433 섬이 곧 예술이다 안도 다다오의 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를 찾아 떠나는 예술산책 시간. 일본의 출판 교육 그룹 베네세는 구리제련소에서 나온 폐기물에 찌들어 황무지와 같던 나오시마를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섬을 예술로 살린다는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었다. 그후 나오시마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진행돼 지중地中미술관, 버려진 집을 개조해서 미술 작품으로 만든 이에家 프로젝트 등이 연이어 완성됐다. 꿈은 마침내 실현됐고 지금은 한 해 3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체험형 작품이 많아 배경지식 없이도 예술을 느낄 수 있으며 숨어 있는 예술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관련상품 나오시마 예술산책 4일 특징 전 일정 자유.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나오시마의 유일한 고급 호텔이자 미술관 베네세하우스 2박 포함. 가격 100만원부터(유류할증료 및 항공세 제외) 문의 하나투어 1577-1233 갤러리에 대한 부담을 벗자 서울 곳곳에 갤러리가 얼마나 많은지 조금만 걷다 보면 놀랄 정도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안목도 없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오히려 작품 감상이 방해받는 경우도 있다. 특히 미술을 잘 모르는 아빠라면 자녀를 대동한 갤러리 투어에 더욱 주저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 편안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컬처워크’는 그래서 주목된다. 누구나 쉽게 미술, 전시를 친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갤러리 여행 프로그램으로 전문지식을 가진 아트가이드가 동행해 함께 갤러리를 순회하고 안내한다. 현재 4월까지 북촌 갤러리, 북촌 마을, 청담 갤러리, 고궁 등 네 가지 코스를 운영한다. 다른 이들과 번잡하게 이동하는 것이 싫다면?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퍼스널 아트가이드가 안내하는 일대일(1:1)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가격 1만5,000원부터. 일대일 프로그램은 10만원 홈페이지 컬처투어 www.kulturewalk.kr 글 김명상, 최승표 기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착잡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람의 복부를 사무라이 칼로 가르고 파헤쳐 내장을 드러나게 하는 천하의 무뢰배들. 난도질은 부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육과 폭력의 조종으로 조선을 울린 흉포한 무뢰한들. 매화꽃을 찾아 떠난 길에 들른 목포의 ‘근대역사관’에서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이었다. 식민지의 피와 땀을 착취하려고 1920년 6월에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 건물에 전시된 일제침략의 실증적 유적·역사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시대를 살면서 부끄럽게도 오랜만에 우리 역사를 자각했다. ‘임산부와 노약자 관람 주의’라는 권고문에 예상은 했다. 사람을 포박하여 땅바닥에 앉혀 놓았는데, 방금 잘린 목이 붙어 있던 부위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쳤고, 강제동원됐을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항일조직 간부들은 무릎을 꿇리고 뒤에서 머리를 쏘아 사살했다. 짐승만도 못할 짓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우는 아기와 동생을 안간힘으로 안고 있는 어린 형. 그 시대와 사람들의 지옥 고통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처참했다.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사진으로 찍어 식민지 무단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인면수심의 범죄자들. 일제 침략자들의 후예는 오늘도 침탈을 대한민국 근대화로 견강부회한다. 동양척식의 서양식 건물은 앞선 세계건축양식을 조선에 도입했다는 식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원을 수탈하려고 만든 신작로와 철도를 교통의 근대화라고 억지를 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담은 사진촬영기는 문명사진술로 강변된다. 이러니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민족과 문명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게 위장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총리 아베는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망언과 망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총리의 책무다”(2005년 4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2007년 3월), 2012년 12월 26일 총리 취임 이후에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내용이 포함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2013년 4월 22일),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2013년 4월 23일). 이쯤 되면 아베의 심신은 조선의 무고한 양민의 배를 가르고, 목을 자르고, 머리에 총을 쏘고, 어린 자식 앞에서 부모를 죽이던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하수인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12일 아베는 731이라는 번호가 붙은 자위대의 항공훈련기 조종석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731 세균부대’는 수많은 한국·중국·몽골·러시아인들을 마루타(통나무)로 취급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행위이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서든, 영혼 없는 집단최면의 발로에서든 망언을 제조하고 있는 아베와 일본 정치인들은 제2의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사죄한 브란트 전 독일 총리 같은 정치인이 일본 풍토에서 나오기는 불가능한가.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68년이 지나서도 93세의 나치 용의자를 찾아 기소하는 독일 국민의 반성을 일본 사회에서 기대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역사에 대한 건망증을 경계하며 자기반성을 상실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현재와 미래에 반영하는 사회, 동시에 지구촌 세계의 일원으로서 보편적 가치와 양식을 공유하는 국가로 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야만을 부정하고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반인륜적·반문명적 저질행태를 지속하는 일본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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