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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소록도로 가려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김밥은 안사람이 아침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록도는 승용차로 내 산방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상예보를 보니 비 소식이 있어 마음이 좀 급해진다.가뭄 끝이므로 논밭의 작물들에는 감로수이리라. 며칠 전부터 텃밭에 물을 주곤 했던 얼치기 농사꾼인 나의 수고도 덜어질 것이다. 조금 전에도 텃밭을 다녀왔지만 시들시들하던 고추와 가지, 아욱 등이 응급 치료를 받은 환자처럼 이제는 조금 풋풋해진 듯하다.소록도는 한센인과 성직자, 의사와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살고 있는 섬이다. ‘작은 사슴 섬’인 소록도는 내 산방과 지척에 있으니 그분들이야말로 이웃사촌인 셈이다. 한센인에게 43년간 봉사하고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렛(82) 두 분은 이 지상에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다.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자원봉사자 간호사로 와서 70세가 넘어 떠날 때 두 분이 남긴 말은 단 한마디였다. ‘헤어지는 아픔을 줄까 봐 말없이 떠납니다.’ 문득 재작년 가을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 ‘코닉 추기경 하우스’로 강연하러 갔을 때, 나를 초청한 분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뵈려고 하니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안사람이 빈의 ‘암파크 갤러리’에서 도예 초대전 중이었으므로 두 분에게 도자기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알프스 밑의 인스브루크에 사는 두 분과 연락은 닿았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마가렛은 치매 치료 중이었고, 마리안느는 나서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수녀가 아니므로 수녀원 생활을 못한 채 친척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희소식이 들렸다. 고흥군에서 두 분에게 매월 1004달러씩 노후생활 안정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소식이었다. 2026년 10월까지 10년간 지원한다고 해서 혼자 손뼉을 쳤다. 1004달러에다 고흥 군민의 따뜻한 마음까지 보태졌을 것을 생각하니 고흥 가는 길이 행복하기만 하다. 녹동항까지 뻥 뚫린 외길 곳곳에 고흥을 자랑하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 ‘우주항공 중심도시 고흥’. 바다를 배경으로 한 승경(勝景)과 나로도의 우주센터를 홍보하려고 내건 광고판일 것이다. 소록대교를 건넌 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왼편의 언덕 위에 두 분이 살았던 단층 벽돌집이 보인다. 과묵한 낙락장송들이 묵상 중이다. 소록도 본당 신도이자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 관리자인 서(徐)스텔라님이 현관문을 열어 준다. 신발장 위에 두 분께서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주워 온 소라고둥, 조개껍데기, 조약돌들이 있다. 작은 거실은 외국인이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벽에는 매화나무가 그려진 한국화와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더구나 두 분이 남기고 간 카세트와 테이프들이 있기에 아무 곡이라도 듣고 싶어 하자 서스텔라님이 테이프 하나를 빼서 틀어 주는데 국악 명상 음악이다. 내가 놀라자 “저는 1981년부터 뵀는데 마리안느 큰할매는 육자배기를 좋아하셨어요. 저 액자는 마가렛 작은할매가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수녀님한테 선물받은 거고요”라고 알려 준다. 두 분의 침실은 각각 3평 정도다. 마리안느 방의 유리창으로는 낙락장송이 보이고, 마가렛의 창호에는 하심(下心)과 사랑이란 글씨가 붙어 있다. 천등산 금탑사 비구니 스님들이 왕래하면서 한 스님이 써 준 글씨라고 한다. 두 분이 살았던 집은 현재 헌신과 봉사의 삶을 기려 등록문화재 제660호로 지정돼 있고,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이라는 패가 붙어 있다. 그러나 나는 ‘천사의 집’이라 부르고 싶다. 천사는 구름 위가 아니라 지상에 있어야 한다고 갈망해서다. 어제 비가 내렸는지 땅은 촉촉하나 하늘은 푸르다. 오스트리아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비 갠 뒤 해가 나자 어느 파란 눈의 수녀분이 ‘천사가 소풍 가는 날’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두 분이 후원받아 지은 숲속의 결핵 병동과 호젓한 치유 숲길로 언젠가는 두 분의 맑은 영혼이 소풍 올 것만 같다.
  • [관가 인사이드] 출세길 열리는데… 영혼쯤 없으면 어때

    [관가 인사이드] 출세길 열리는데… 영혼쯤 없으면 어때

    #1. 경제 부처 A국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철저한 친기업 성장주의자였다. 비정규직이나 소득 불균형 문제가 제기될 때면 방대한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수출 주도 성장론에서 낙수 효과로 이어지는, 반박하기 어려운 탄탄한 논리를 펼쳐 상대를 제압했다. 소득 주도 성장이나 분수 효과 등에 대해선 “현실을 모르는 아마추어나 하는 소리”라며 단칼에 잘랐다. 하지만 그는 새 정부 출범 뒤 진급했고, 지금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소득 주도 성장’ 등의 정책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한때 A국장을 모셨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은 영혼이 있어야 하고, 우리 부는 영혼이 없어도 되는 모양이네요.”#2. 지난달 14일 통계청이 내놓은 ‘5월 고용동향’에선 긍정적인 신호가 엿보였다. 취업률은 오르고 실업률은 내려갔다. 15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층 고용지표도 호전됐다. 매월 역대 최고 기록을 깨나갔던 청년실업률도 낮아졌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20대로 좁히면 상황은 여전히 나쁘다고 했다. 또 평소 잘 언급하지 않던 ‘고용보조지표3’(체감실업률)을 제시하며 “청년 체감실업률은 22.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에는 청년실업률이 9.7%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고, 체감실업률이 20%를 넘었지만 당시 기재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되레 “실업률 증가세가 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재부가 애써 고용지표 개선의 의미를 축소 해석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의지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 “추경 분위기 위해 고용 개선됐는데도 축소” 새 정부 출범 50일 만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역사 국정교과서와 원자력발전소, 성과연봉제, 물대포 등이 지워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던 경찰청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블랙리스트는 법의 심판을, 4대강 사업은 4번째 감사를 각각 받고 있다. 도입 뒤 해마다 정쟁의 도마에 올랐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은 소리 소문 없이 정부 예산안 속에 녹아들고 있다. 정책뿐 아니라 사람도 바뀌고 있다. 세종 관가는 인적 구성의 변화로 재조직화가 활기차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바닥에선 ‘불편한 침묵’도 흐르고 있다. 한 경제 부처 과장은 “지금까지의 ‘늘공’(언제나 공무원) 인사를 보면 기대와 달리 ‘바람보다 먼저 누웠던 이’들이 중용되는 것 같다”면서 “새 정권의 철학에 부응할 수 있는 인물들을 승진시켜 중책을 맡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과한 기대였나 보다”고 말했다. # 역시나 ‘바람보다 먼저 눕던 이’들이 승진 사회 부처의 한 고참 사무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정권에서 무리하게 추진했던 정책에 열정적으로 앞장섰던 몇몇 간부들이 ‘이미 짐쌌다’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그런데 이분들의 표정이 요즘엔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보수, 어떤 정권이든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큰 의미는 없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포용적 성장이 자기의 소신임을 꿋꿋하게 밝혀 왔던 한 경제 부처 간부가 기다렸다는 듯 자원해 청와대 파견을 간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누가 정권을 잡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장관으로 오든 ‘최선’을 다한 사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청와대로 갔다. 경제 부처 B과장은 “옆에서 보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과하게 전임 장관을 잘 모셨다”면서 “인사 소식을 듣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공무원은 언제나 위에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원칙 인사 여전” 최근 실의에 빠져 연일 세종의 밤거리를 누비며 폭음하는 고위 공무원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중 한 1급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인사는 절대적으로 인사권자의 뜻에 따르는 거니까 그걸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잘못하는 거지. 그래도 인사의 원칙은 뚜렷이 보여야 되거든. 원칙이 보여야 거기에 따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이 정권이) ‘영혼 없는 공무원은 적폐’라고 했는데 인사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강수정, “아빠 영혼 털리는 중” 아들 사진 공개 ‘깜찍 옆모습’

    강수정, “아빠 영혼 털리는 중” 아들 사진 공개 ‘깜찍 옆모습’

    방송인 강수정이 아들 사진을 공개했다. 강수정은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타요의 힘이란. 한국의 또 다른 즐거움! 아주 신난 우리 아들. 휴가 시작과 동시에 아빠 영혼 털리는 중. 난 아직 괜찮다”라는 글과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모형 버스에 타고 있는 강수정 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옆모습만 봐도 강수정을 닮은듯한 아들의 외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강수정은 지난 2008년 재미교포와 결혼했으며 2014년 득남했다. 현재 MBN ‘엄지의 제왕’에 출연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오십 미터/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 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그리움은 부재하는 것을 향한 마음의 이상화다. 그것은 사랑한 당신이 지금 여기 없기에 생기는 잉여 감정이다. 그리움은 질병이지만 더러는 무르익어 영혼에 그늘과 그윽한 향기를 만든다. ‘너’를 향한 그리움은 뼛속까지 깊다. ‘너’를 마음에 담지 않고 “오십 미터”를 나아가기 힘들다. ‘너’를 마음에서 떨쳐낼 수 없는 것은 그 사랑이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잊는 것이다. 하지만 잊고 싶어도 그립지 않은 날이 없으니, 어찌 할 것인가. 사랑이 괴롭더라도 더 사랑하라. 이 생에서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는 힘들다. 장석주 시인
  • “삶은 잃어가는 과정… 남겨진 이에 말 걸었죠”

    “삶은 잃어가는 과정… 남겨진 이에 말 걸었죠”

    바깥은 여름/김애란 지음/문학동네/272쪽/1만 3000원 김애란(37)은 늘 한국 문단의 ‘현상’이었고 ‘가능성’이었다. 엉뚱하면서도 의표를 찔렀고, 싱그러우면서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속내로 독자들을 웃고 울렸다.그가 올여름 소설 시장에 돌아왔다. 인간에 대한 겹겹의 추문과 질문, 의심과 희망을 품은 이야기를 들고. 5년 만에 펴낸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이다. 바깥은 여름이지만, 안쪽에선 추위가 그득하다. 7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짚이는 감각은 상실의 통증이기 때문이다. 겨우 중산층의 끄트머리에 안착했다 안도하는 순간, 후진하던 어린이집 차에 아이를 잃고(입동), 두 사람만의 냄새로 채워 가던 공간에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허물처럼 무너진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소수 언어의 유일한 화자들은 말과 함께 영혼을 잃고(침묵의 미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모르는 존재가 되어 있다(가리는 손).김애란은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들의 내면, 이들의 불행을 탐닉하거나 외면하는 세상의 간교함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풍경으로 그려낸다. 2012년에 쓰인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를 제외하고는 6편이 모두 2014년 봄 이후부터 쓰인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짐작이 될 법하다. 굳이 세월호 참사라고 적시하진 않았지만 작가는 “저도 사회의 공기를 마시며 사니까요. 많은 사람이 가치관, 지향점을 크게 휘청거렸던 경험이죠”라며 에둘러 암시했다. 누가 될까 저어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든 성인이든 삶은 늘 무언가 잃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건강이든 신념이든 관계이든요. 제가 훌륭한 사람이어서 뭔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겠다는 게 아니라, 제가 제 속에서 절실한 말을 찾아낸 것 같아요.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266쪽)하는 말이요. 때문에 당장 서둘러 (상실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 자리인지 더듬어 보고 부재하는 사람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게 됐네요.” ‘김애란 소설’의 전매특허였던 발랄한 상상력, 위트 있는 어법이 거둬진 것도 그 때문이다.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에선 주인공이 세상을 뜨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농담하고 부모님도 웃겨 드리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당사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은 뒤)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를 쓰다 보니 유머를 더하는 게 어려웠어요.” 소설의 변화는 작가 자신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스물둘에 소설가로 데뷔했던 그는 어느덧 등단 15년차 작가가 됐다.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청춘들의 삶을 대변해온 그의 관심도 ‘작고 흔한 속됨, 얼룩이 있는 인간’으로 옮겨갔다. “20대 때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고 렌즈를 내 안쪽에 집중해 탐구하는 글들을 많이 썼었죠.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관계가 더 눈에 보였어요.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는 내가 가진 색을 지키면서 형식, 내용, 세계관에 차이를 주고 싶어 고민도 많고 헤맨 시간이 길었어요. 하지만 20대에서 30대로 중간 세대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고개를 앞뒤로 돌릴 수 있는 폭이 생겼고 다른 몸을 가지면서 생기는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20대는 그때의 몸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있었고, 미덕과 한계가 있었다면, 앞으로 쓰는 글들은 그대로 미덕과 한계가 있겠죠.” 김애란의 쿨한 유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이번 소설집이 낯설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에게 작가는 싱긋, 웃으며 귀띔했다. “유머는 몸에 기억된 감각이기 때문에 휘발된 게 아니라 잠재돼 있다”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숲이 말을 걸었다… 정복할 생각 말고 그저 쉬다 가라고

    숲이 말을 걸었다… 정복할 생각 말고 그저 쉬다 가라고

    우리나라 산은 4440개다. 연 1회 이상 등산인구가 3200만명, 월 1회 이상 산을 찾는 마니아도 1300만명이나 된다. 각종 꽃과 풍경, 단풍에 설경까지 유명한 명산·명소가 수두룩하다. 과거 황폐한 산림에 심은 나무들이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는 ‘숨겨진 숲’도 있다. 80년 된 낙엽송, 90년이 넘은 소나무,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작나무 등 사람 발길이 아직은 많지 않아 거칠지만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전문가들은 ‘좋은 숲’과 접촉하는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래에서 꼭대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적으로 산을 오르는 정복이 아닌 숲에 머물며 온몸으로 기운을 받아들이는 소통을 강조한다.●100년 숲의 ‘자화상’… 강원 횡성 ‘낙엽송숲’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강원 횡성 안흥 상안리에는 숨겨진 ‘낙엽송숲’(낙엽송·소나무 명품숲)이 있다. 산림 공무원 중에서도 일부만 알고 있는 명소다. 공개된 숲이지만 유명세를 타지 않아 안내표지판이나 주차장도 없어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좁은 진입로와 임도를 한참 올라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횡성 낙엽송숲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이다. 단기 국토녹화 성공지이자 조림·숲가꾸기 등 미래 숲 관리의 교육장소로 선정됐다. 숲은 인공림 48㏊, 천연림 12㏊ 등 60㏊로 축구장 84개 규모다. 낙엽송(38㏊)은 목재 생산을 위해 1938년부터 심었으니 대부분 71~80년 수령을 자랑한다.숲은 20분에서 3시간 40분까지 걸을 수 있도록 4개 코스가 조성돼 있는데 다양한 임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숲 초입은 높이가 18~26m, 흉고 직경(가슴 높이 지름)이 30~40㎝에 달하는 곧게 자란 낙엽송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능선에는 자연적으로 자란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천연림이다 보니 인공림과 같은 수려함은 없지만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 온 당당함이 읽혀진다. 능선을 걸을 때는 맨발 산행을 권한다. 능선 아래쪽으로는 잣나무(10㏊) 조림지가 펼쳐져 있다. 낙엽송과 소나무, 잣나무를 한곳에서 비교하며 숲을 향유할 수 있다. 신정숙 숲해설가는 “낙엽송은 연두색 잎이 나오는 4월과 단풍이 노랗게 지는 11월이 가장 아름답다”면서 “비가 온 직후 숲에서는 피톤치드와 바람의 상쾌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준다”고 말했다. 낙엽송숲은 다른 숲과 달리 하층 식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걷기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의 모습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부지방산림청은 등산객 유치를 위해 시설 설치 및 개량, 하부 정리사업 등에 대한 건의를 받지만 ‘현상 유지’를 견지하고 있다. 목재 생산을 위한 숲 가꾸기도 실시하지 않는다. 목재 생산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지름 30㎝, 70년생 이상의 우량 대경재가 즐비하지만 좋은 숲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녹아 있다. 이미라 북부청장은 “지역 학생들이 참여해 가지치기 등을 체험하고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미래세대들이 숲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학습의 장”이라며 “강원권에서 가장 오래된 낙엽송 조림지이자 잘 가꾼 숲의 모델이 될 수 있는 100년 숲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수려한 백색의 장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나무의 수피가 하얀, 이국적인 풍광으로 잘 알려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만나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 산을 올라야 한다. 방문객은 숲 입구에서부터 선택해야 한다. 해발 900m 숲을 오르는 데 정리된 원정임도를 걸을지, 숲길인 원대임도를 오를지 시작점이 갈린다. 김달환 숲해설가는 “자작나무숲의 백미는 밑에서 보면서 올라오는 것”이라며 “원대임도를 따라 오르다 힘들고 지루한 산행이란 불만이 터져 나올 때쯤 눈앞에 백색의 장관이 펼쳐지는데 이때부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전했다. 자작나무숲은 아픔과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역사의 현장이다. 원래 이곳은 소나무숲이었는데 솔잎혹파리 피해를 당해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 대신 목재 생산용 낙엽송을 심을 계획이었으나 묘목이 부족해 대체 수종으로 북한 압록강변에서 채취한 자작나무 묘목을 1989~1996년에 심었다. 전체 조림 면적지(138㏊) 중 핵심 군락지는 25㏊다.자작나무숲이 알려진 것은 2006년 유아숲체험원으로 지정된 후 방문했던 유치원 교사가 블로그에 소개한 것이 계기다. 봄철 산불위험 기간에 입산을 통제하는 데도 2012년 1만 4000여명이던 방문객이 지난해 22만 4000여명으로 5년 만에 16배 증가했다. 탐방객 증가로 안내소가 설치됐고 지난해부터 숲해설가, 숲길체험지도사 등을 배치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자작나무는 20~30년생으로 높이는 16m, 흉고직경은 16~18㎝로 북유럽이나 북미의 큰 나무에는 못 미치지만 녹색의 숲과 수만 그루의 하얀색 자작나무가 그려내는 풍경에 탐방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작나무는 음양의 조화가 잘 이뤄져 “사랑이 잘 이뤄지고 오랜간다”는 속설이 있어 웨딩 촬영지로 인기다. 특히 한겨울, 추위와 눈길을 뚫고 산길을 오르는 예비 신혼부부들에게는 경외감이 들 정도다.숲에 앉아 있으면 평화롭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폐를 상징하는 흰색이 피부를 상쾌하게 해주고, 간을 표현하는 초록색이 눈을 맑게 해 준다. 숲에 들어가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나무 껍질을 훼손하면 안 된다. 벗겨진 하얀 껍질은 복원이 안 돼 나무를 볼품없이 만든다. 풍경에 취해 길을 잃을 수 있다. 자작나무숲에서는 한 달에 1~2건씩 조난 사고가 발생한다. 입산 시간을 하절기에는 오후 3시, 동절기에는 오후 2시로 제한하는 이유다. 자작나무숲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더이상 자작나무를 심지 않는다. 양묘가 힘든 데다 기계 파종도 안 돼 대량 식목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 고기연 동부지방산림청장은 “희귀성과 아름다운 경관, 스토리텔링이 있는 숲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면서 “자작나무숲에서는 등산이 아닌 2시간 이상 체류해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권했다. ●소나무 풍욕의 최적지… 대관령 금강송 군락지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유자효의 소나무) 대관령은 경북 울진 소광리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강송 군락지다. 1922~1928년 소나무 씨앗을 뿌려 조성한 인공림(789㏊)과 천연림(1953㏊)이 어우러져 ‘송해’(松海)를 이룬다. 대관령휴양림 인근에는 지난해 8월 국립대관령 치유의 숲이 개장했다. 주차장에서 금강송전망대까지 600m 구간은 무장애 데크(치유데크로드)를 설치했다. 국내 유일로 나무 사이에 만들어 숲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데크를 걸으며 다양한 꽃과 나무, 풀 등을 만날 수 있는데 숲태교 참가자들이 꼽는 최고의 프로그램도 숲길 산책이다. 최근에는 대관령 소나무에서 피톤치드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망대에서는 대관령 옛길을 비롯해 금강송 군락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풍욕’에 최적지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치열한 자리 경쟁이 벌어진다. 전망대에서 대관령 옛길을 연결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김진숙 국립대관령 치유의 숲 산림치유지도사는 “난이도가 다른 7개 숲길이 조성돼 있는데 완주하려면 3일 정도 걸린다”면서 “혈압이 있는 중년에게는 고난이도 숲길을 추천하는데 등산이 아닌 풍욕과 명상이 치유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릉·횡성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김지미 “내 연기는 아직도 미완성”

    김지미 “내 연기는 아직도 미완성”

    “영화 나이로 치면 환갑이에요. 그동안 영화인답게 살았죠. 그래도 전 아직도 연기가 완성되지 않고 철도 들지 않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영원한 은막의 연인 김지미(77)가 29일 데뷔 60주년 기념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 상영전 개막식에서 지난 60년을 돌이키며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며 “저를 아껴 준 많은 영화 팬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데 요즘 들어 저 스스로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간혹 한다”며 “영원히 여러분 가슴속에 남는 배우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후배 영화인에 대한 격려와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김지미는 “세계에 우리 영화를 널리 알린 것에 대해 박수를 쳐 주고 싶다”면서도 “요즘 영혼이 없는 흥미 위주 작품이 많은 것은 아쉽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와 관객 폭을 넓히고 사회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김지미는 고등학교 때인 1957년 김기영 감독의 길거리 캐스팅으로 ‘황혼열차’를 찍은 이래 공식 기록으로만 370여편에 출연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다.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700편이 넘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1960∼70년대 최고 스타로 군림했던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에도 나섰으며 1990년대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영화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표작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그건 여러분이 정해 줘야 할 것 같다. 어떤 작품이든 찍고 나면 부족한 점이 많아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항상 뒤따랐다. 완성된 연기를 보여 준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 오며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맺다 보니 가장 많은 감독을 ‘입봉’(데뷔)시킨 배우로 자부한다며 웃는 그는 그중에서도 임권택 감독과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소개했다.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를 끝으로 연기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아직 해 보고 싶은, 혹은 해 보지 못한 역할이 남아 있는지 묻자 “700가지 이상의 인생을 살았는데 안 해 본 역할이 있겠느냐”며 “그동안 행복하고 신나게 일을 했다. 그런데 만족스러운 작품이 없다. 인생에는 영원히 만족이란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다음달 1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김지미의 출연작으로 필름이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인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를 비롯해 ‘춘향전’, ‘장희빈’(이상 1961), ‘춘희’(1967), ‘비전’(1970), ‘토지’(1974), ‘을화’(1979), ‘길소뜸’(1985), ‘티켓’(1986) 등 20편이 상영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보희 기자의 무비인사이드] ‘리얼’ 김수현판 ‘23 아이덴티티’(feat.설리)

    [이보희 기자의 무비인사이드] ‘리얼’ 김수현판 ‘23 아이덴티티’(feat.설리)

    ‘리얼’은 확실히 보는 즐거움은 만족시킨다. 김수현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성동일과 이성민의 연기는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설리는 얼굴 그 자체로 ‘열일’을 한다. 그러나 멋들어진 액션도, 배우들의 명연기도 탄탄한 구조 안에 짜여지지 않는다면 빛을 바래게 된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자아가 있고, 하나의 자아가 다른 육체로 독립해 ‘누가 진짜냐’를 두고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극 초반 분열된 자아로 인해 고민하는 김수현의 모습은 ‘23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맥어보이를 기대케 만들었다. 그러나 자아가 분리되고 카지노를 둘러싼 음모가 벌어지면서부터 이야기가 난해해진다. 집중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김수현은 조폭 장태영과 르포기자 장태영 또는 사업가 장태영으로 분해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껌을 찰지게 씹으며 조폭 장태영의 맛을 살리는가 하면, 의문의 사업가로 분할 때는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다른 느낌을 표현했다. 액션신부터 러브신까지 빈틈 없이 소화했다. 특히 무용과 접목한 액션신은 환상적이었다. 설리는 물리치료사이자 조폭 장태영의 여자친구로 분해 신비스러운 매력을 선보였다. 몽환적인 얼굴 자체로 별다른 연기가 필요없을 것 같던 그녀는 극 말미엔 영화 ‘리얼’에서 가장 리얼한 연기를 선보인다. 성동일은 다른 조직의 보스 조원근으로 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살벌한 연기를 펼쳤고, 이성민은 신경정신과 박사로 등장해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조우진은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췄지만 영혼은 없는, 특유의 연기톤으로 사도진 변호사 역을 깔끔하게 소화했다. 이사랑 감독은 ‘리얼’에 대해 “마술쇼 같은 영화”라며 “일단 눈과 귀가 즐거운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했다”고 전했다. 그랬다. 마술쇼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보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근대 저편의 문학, 이란의 현대시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근대 저편의 문학, 이란의 현대시

    한국문학번역원 산하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마음이음’에서 이란 시선집을 출간했다. 이는 한국 현대시와 이란 현대시가 상호 교차 출간 사업을 통해 서로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법 큰 의의를 가진다. 사업의 첫 성과로 한국과 이란에서 동시에 상대국 시선집을 출간하게 돼 한국에서는 이란 시선집 ‘미친 듯 푸른 하늘을 보았다’가, 이란에서는 이란이슬람예술센터와의 업무 협약 결과로 한국 시선집 ‘도화 아래 잠들다’가 나왔다. 이란 시선집에는 이란 시편들 가운데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세대의 시인 84명의 작품 93편이 실렸다. 시선집 번역자인 신견식은 “페르시아어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에 두루 걸쳐 문화어로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여러 언어에 수많은 차용어를 건네주어 딴 언어와 연결 고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비록 번역어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번 시선집을 통해 우리는 페르시아어와 그곳 문학이 가지는 이러한 고유하고도 스케일 큰 특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서문에서 고은 선생도 “페르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명확한 사실을 알 겨를 없는 근대의 한쪽 골짝에 갇혀 있다”라고 적었는데, 이는 서구 중심의 세계문학 지도에 ‘근대 저편’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페르시아 문학의 세계문학적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물론 그동안 그곳 문학이 우리에게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전에 13세기 초 페르시아 영토였던 아프가니스탄 발크에서 태어난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잠언 모음집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2005)가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이슬람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것을 가장 보편적인 인류 정신과 상상력으로 승화해 간 루미의 언어는 페르시아 전통의 시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 있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근자에 출간된 ‘백 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2015)에는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수록됐다. 2014년 한국시인협회가 이란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종철 회장이 이란시인협회와 양국 시인선의 상호 번역 출간을 약정했고, 그는 암 투병 중이었음에도 이 시집 발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바 있다. 이러한 소개와 교류의 흐름이 토대가 돼 이번에 양국 대표 시선집이 의젓하고도 충실하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대 행사로 이란 시인 알리레자 가즈베가 입국해 장석남 시인과 대담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됐다. 가즈베는 페르시아 문학의 위대함과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장석남은 이란 현대시에 나타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인상적이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이번 시선집은 그동안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이란 문학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실물적 사례를 제공해 주었다. 그 안에는 읽는 이의 영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절제된 잠언시, 사랑의 언어를 통해 독자들의 함축적 공감을 끌어올리는 페르시아 전통 서정시, 모성적 감성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를 노래한 여성시, 전쟁의 비극을 바라보는 사회시까지 망라돼 그쪽 현대시의 역사가 한국 현대시의 역사와 퍽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은 제16회 한국문학 번역출판 국제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워크숍은 한국 문학의 수준 높은 번역과 해외 출판시장 진출 강화 방안을 토론하기 위해 열렸는데, 여기서 해외 문학 관련 유관 기관과의 협력 및 교류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이번 시선집이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노력의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시선집을 기점으로 삼아 이란을 비롯한 ‘근대 저편’의 제3세계 문학들을 심층적으로 접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그 첫 단추로, 우리는 저 페르시아의 광활한 세계문학적 가능성과 만나게 된 것이다.
  • [속닥속닥] 장관은 부재중

    [속닥속닥] 장관은 부재중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 “통계 숫자부터 맞춰야” 사기 꺾여 입 다문 교육부, 영혼없는 대답만…# “그건 국정기획위에 물어보세요. 저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주최한 유아교육·보육 통합 토론회에 참석했던 교육부 모 국장의 답변이다. 2시간여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담당 직원들이 총리실 산하 유·보통합 추진단의 기본 안조차 모른 채 토론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토론회 직후 “기본통계 자료부터 교육부 것과 복지부 것이 서로 달랐다. 통계 숫자를 맞추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김 위원장에게 몰린 사이 교육부 해당 국장과 직원들은 옆으로 급히 빠져나갔다. 질문 타이밍을 놓친 기자가 5분 뒤 해당 국장에게 “왜 교육부와 복지부 통계가 다르냐”고 전화로 묻자 그는 “제가 지금 말씀드릴 처지가 아니다”라면서 “국정기획위에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국회에서 결정되면 교육부는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학교 미세먼지 대책으로 언급한 ‘1학교 1측정기’ 사업에 대해 국회가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데 대한 교육부의 답변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20일 환경부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는데 굳이 초등학교마다 간이 측정기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한 보고서를 내놨다. 대당 600만원짜리 측정도 오류가 많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우려도 드러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추가경정으로 잡힌 360억원의 예산이 낭비될 지경이다.“교육부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잘못된 예산을 책정한 거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담당 과장은 “제가 KTX를 타고 있어 답하기 곤란하다”면서 “교육부는 국회가 논의하면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전화를 끊었다. 회피와 무기력에 빠진 교육부의 최근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교육부 직원 몇 명에게 “솔직히 답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새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 부재라는 두 가지 답변이 공통으로 나왔다. 지난 정부와 색깔이 워낙 다른 정권으로 전환되면서 직원들이 혼란을 많이 느끼고 있으며, 큰 사안이 터지지만 바로잡아 줄 장관이 없어서 교육부는 사실상 ‘공황상태’란 것이다. 한 교육부 직원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9년 동안 교육부는 솔직히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사실상 왼쪽 아니냐”면서 “갑자기 방향이 바뀌니 사실 본청 직원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맞춰서 일하기 무척 어렵다”고 했다. 다른 교육부 직원은 “문 대통령이 오자마자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하고, 교육부가 이를 바로 따르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꺾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2년 동안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라는 큰 사건을 교육부가 끌고 가면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새 대통령이 와서 나흘 만에 되돌렸다”며 “교육부는 아무 생각도 없고 윗분 말만 따르는 ‘멍청이’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터진 누리과정 전액 국고지원 발표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전수평가에서 표집조사로의 전환도 이런 사안들이다. 교육부가 몇 년씩 추진하던 정책이 갑자기 180도 방향을 바꾸면서 해당 부서 공무원들이 갈피를 못 잡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 그동안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었기에… 말 그대로 공황상태 이를 정리해줄 교육부 장관 부재도 무기력을 부른다. 현재 교육부의 가장 ‘핫이슈’인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은 애초대로라면 5월 공청회를 열고 7월에 확정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 공청회 일정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이런저런 추측성 기사만 터진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고교 내신 산출제도 변경을 비롯해 외국어고와 자사고 폐지 논란,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노조 전환 등 이념 논쟁이 다분한 큰 이슈들이 연이어 언론에 거론되지만, 교육부는 입을 닫은 상태다. 이를 두고 교육부 직원들은 “섣불리 대답했다가 크게 다친다는 것을 공무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큰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 다음 인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교육부 직원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누가 의욕적으로 일하겠느냐”면서 “진보 쪽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든 누구든 빨리 교육부 장관으로 오고, 대대적인 인사가 한번 나야 분위기가 잡힐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최문환(60) 서울시교육청 서기관은 서울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이달 말 퇴직한다. 최 서기관은 1982년 서울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교육행정공직을 시작했다. 35년간 교육행정의 한길에 혼신의 열정을 바쳐 온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로 ‘서울시교육청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시절의 ‘육영재단’을 꼽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기였던 2006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만 3년이다. 이때 그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의 이사취임취소 처분을 했다. 이 기간 그는 정수장학회·삼성이건희장학재단 업무도 함께 봤다.“공익법인 담당 사무관으로 보직 발령을 받아 가니까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하려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부임하기 전에 이미 ‘청문회를 실시한다’고 언론보도를 통해 공표된 상황이었다”는 그는 “그때 육영재단 업무처리에 있어 외압이나 이념에 치우칠 경우 사회적 큰 파장이 일 수도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법과 원칙을 고수하느라 고군분투한 기억이 새롭다”고 회상했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지 않습니까.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라며 “이념을 찾으려면 정당으로 가라”는 최 서기관. 이는 최 서기관이 공익법인 담당 사무를 수행하는 동안 겪었던 뼈저린 체험담이다. “공직자는 정치논리와 이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편익만 보고 가야 한다”는 최 서기관의 당부가 가슴에 새겨지는 이유다.다음은 일문일답. →이달 말로 교육행정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공직에 투신한 지 얼마 만인가. -서울시 지방직과 총무처가 시행한 국가고시 2곳에 응시했다. 서울시가 먼저 1981년 9월 28일 중구청 세무1과로 공직 발령을 냈다. 그리고 이듬해 총무처에서 문교부로 공직 발령을 내자, 서울시교육청이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발령을 냈다. 그래서 서울시 공직을 사직하고, 교육행정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돌아보니 35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35년 교육행정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는. -내가 뭐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나름대로 열심히 많은 업무를 보았지만, 지나고 보니 ‘파편’이다. 35년 공무원 생활이란 게 일관된 업무가 아니다. 전체를 보고 아우르는 안목은 길렀을지 모르지만 전문성을 키울 수 없었다. 아쉽다.→35년 공직생활에 인생관도 여러 번 바뀌었을 법한데. -공무원으로서 어떤 인생관을 가질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또 개선해 나가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공무원이 뭐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념과 철학을 갖는다면 그건 정당에 가야 하지 않겠나.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공무원은 싫은 업무도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다.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다. 정직하고 신뢰받는 행정을 위해 나름 열심히 했다. →공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육영재단이다. 2006년 1월 1일자로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보직을 받아 가보니,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시키려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2월까지 육영재단 취소를 위한 청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공익법인이면 정수장학회 업무도 봤는가.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 재력가 김지태의 재산을 강탈해 설립된 재단이라고 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부산 김지태 씨 유족도 이를 돌려 달라고 소송을 낸 터였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직접 나와 우리를 조사했다. 여러 검토가 있었지만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강탈한 위법은 맞지만 시효가 지나 돌려줄 수 없다’는 판결로 마무리됐다.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익법인 업무가 때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때가 있다. 아마 내가 담당할 때도 그러한 때였던 것 같다. 선거 때마다 정치적인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삼성꿈나무장학재단’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때 나는 담당 팀장이었다. 교육부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당시 기부금 처리가 이슈가 되었었는데 교육청이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부가 직접 하게 된 거다. →앞에서 노무현 정부 때 육영재단 설립취소 절차가 진행됐다고 했다. 그런데 설립 취소되지 않았는데. -공익법인법에 재단설립을 취소하려면 3단계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사전원취임 취소’를 통해 당해 법인에 정상화 기회를 부여한 후에도 정상화 되지 못할 경우 청문회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설립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취임 취소를 먼저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청문회라는 것은 설립취소를 할 경우 억울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한 것이다. →청문회가 그렇게 중요한가. 청문회는 어떻게 진행되나. -청문회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청에서 청문위원을 선임해 청문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재단 사람을 불러서 객관적으로 진행하는 거다. 그 청문회 결과 개선의 여지가 없다거나 정상화될 수 없다는 판단을 객관적으로 내렸을 때 그때 ‘취소’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공서에서 설립취소를 명했을 때 육영재단의 설립취소가 정당한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행정절차법으로 청문회 규정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왜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의 무리수를 두려고 했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시 국정감사의 이슈였기에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공익법인 교육행정 경험을 살려 석사학위도 취득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대민 봉사를 위해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 도리가 아닌가. 행정 경험도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지식 습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무자 시절에는 야간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했고, 간부가 되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했다. 논문을 제출할 즈음 마침 공익법인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관련 업무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에서 제안한 일부가 업무에 채택되어 보람이 있었다. 당시 공익법인업무는 각 지역교육청에서 처리하고 본청은 정관변경 등 일부 주요업무만 보았었다. 대민 업무인 데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라 모두 기피하는 업무다 보니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본청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개선되었다. →‘송은잡기’란 서적을 편찬했다는데. -별거 아니다. 소박한 책 제호다. 송은은 아버님의 자호고, 잡기는 여러 가지 기록을 의미한다. 작년 2월 아버님이 영면하실 때 영전에 바친 조그만 책자다. 아버님은 한학을 하셨다. 한시와 비문, 서예작품을 많이 남기셨다. 그대로 두기가 아까웠다. 이를 모아서 엮고, 가족사와 조상도, 족보와 제례를 담아 조그만 책으로 만들었다. 가족에게는 아버님이 주신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귀가 따갑게 들은 일반 원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업무처리’ 다. 업무처리에 있어 공성성과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키는 덕목은 ‘신뢰’와 ‘유연함’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고 애쓰고,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장 시절에는 직원들에게 ‘서로 스트레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했다. 공무원이 되어 자리가 올라가면 권위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민원인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자고 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민원을 대하자. 우리 국민이 이런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고 신뢰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주요 프로필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국제대학교 경제학사 2007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서울특별시 장학법인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1980년 서울시에서 1년 봉직 1981년 8월 1일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35년 봉직. 주요보직으로 서울시의회 교육협력관, 서울시교육청 예산담당관,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역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로연수 중
  • [수요 에세이] 정권의 성공을 위한 행정의 몇 가지 원칙/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수요 에세이] 정권의 성공을 위한 행정의 몇 가지 원칙/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지금 새 정부가 들어와 굵직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난 정부와 참으로 다른 점이 많다. 단호하게 신속히 추진하려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환경평가 등을 이유로 뜸을 들이기로 했다. 물을 가두기 위해 20조원이 넘게 들인 4대강 보는 수문을 열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집요하게 추진했던 공기업의 성과급 제도는 그만두기로 하였다. 원자력발전소는 더이상 건설하지 않기로 하였다. 최저임금제도, 국정교과서 문제, 외고 및 과학고 존폐 문제, 비정규직과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 등 많은 분야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정책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담당 공무원들은 하루아침에 반대의 논리를 말하고 집행하게 되었다. 정치에서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논리를 명확히 세우고 장점을 의심 없이 주장한다. 그래서 그런 정강정책을 내걸고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 그 정책은 ‘일리 있는 것’을 넘어 ‘옳은 것’이 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은 그렇지 못하다. 다음 정권은 왜 그런 정책을 펼쳤느냐고 문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공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은 그동안 성과급제도가 바람직하다고 공기업을 설득하고 독려했다.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주요한 요소였고, 국민들에게 옳은 방향이라고 설명하면서 일해 왔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공기업의 성과급 제도 확산이 불필요하다고 앞장선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그토록 열심히 성과급 제도 확산에 땀을 흘렸단 말인가. 자괴감이 들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는 핀잔도 듣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행정은 정권을 실현해야 하므로. 선진국에서도 공무원들은 서류 캐비닛이 두 종류라고 한다. 어느 당이 집권하는가에 따라 사용하는 캐비닛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도 등 공기업에 대해서 보수정당은 민영화를 주장하지만, 진보정당은 국유화를 꾸준히 주장한다. 그런데 정권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정책방향이 정반대로 바뀐다. 이때 공무원들은 옛날 캐비닛으로 현명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 집권세력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정책방향을 따라야 한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두 측면을 충족하기 위해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적합하게 정책이 확정되고 집행되게 하여야 한다. 공무원이 이렇게 되도록 잘 관리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충분히 문제점이 부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여야 한다. 전 대통령도 정당한 절차를 도외시하였다 하여 탄핵이 되지 않았는가. 둘째, 공무원은 모든 국민들의 생각을 반영하여야 한다. 어떤 일에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특히 선거에서 집권당을 지지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그 정책을 반대할 수도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일일수록 무시할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 내용과 절차 면에서 반영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정책의 큰 실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셋째, 공무원은 전체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인 듯 하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다. 집권 세력의 정책이 전체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때, 이를 설득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집권세력의 뜻에 맞지 않으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정책도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집권세력을 돕는 행정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행정은 지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공무원은 전체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생각은 모두가 다르다. 이를 종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훌륭한 정권은 최대의 국민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어야 한다. 이것은 행정의 협력을 잘 받아야 가능하다.
  • “블랙리스트 조사위 주내 구성”

    도종환(63)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9일 세종시 문체부 청사 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도 장관은 취임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팔길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정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면서 “다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도록 이번 주 안에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체부 직원들에게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도 장관은 이날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쉽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국민의 쉼표 있는 삶과 관광의 균형 발전, 지역 문화의 고른 발전, 공정한 예술 생태계 조성 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취임식을 마무리한 도 장관은 기자실에도 들러 블랙리스트 청산과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진상조사위에 대해서는 15명 규모로 구성해 진상조사분과와 제도개선분과로 나눠 3개월 정도 운영하고 필요하면 1개월 정도 연장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이 밖에 도 장관은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북한 참여 등을 통한 평화올림픽 실현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도 장관은 오는 24일 전북 무주에서 개막하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찾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장웅 북한 IOC 위원과도 만나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중국 한한령으로 피해를 본 관광산업 피해 복구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관광전략회의 운영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블랙리스트’ 실행 책임자로 지목됐던 박명진(7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김세훈(53)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두 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종료된 것에 따른 조치다. 두 위원장은 대통령 선거 직전인 지난달 8일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문체부는 감사 진행을 이유로 수리하지 않았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이번주 안에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구성”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이번주 안에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구성”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9일 취임과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도 장관은 이날 세종시 문체부 청사 강당에서 취임식을 한 뒤 기자실에 들러 “(블랙리스트와 국정농단에 대한) 문체부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번 주말까지 구성하려고 한다”며 “15명 규모로 구성해 진상조사분과와 제도개선분과로 나눠 3개월 정도 운영하고 필요하면 1개월 정도 연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도 장관은 이어 “예술인 중에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분들이 직접 참여해서 조사하고 대책도 마련했으면 한다”고 했다. 도 장관은 “핵심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도 장관은 앞서 취임사에서도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의 일부를 인용해 부처 쇄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도 장관이 인용한 키플링의 시는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이다. 도 장관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분위기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도 장관은 “대회가 7개월여 남은 상황에 붐이 조성되지 않아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D-200, D-100, 성화봉송 등 붐업을 위한 여러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 참여 등을 통해 평화올림픽을 실현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를 위해 오는 24일 전북 무주에서 개막하는 2017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석차 방한하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장웅 북한 IOC 위원과도 만나겠다고 했다. 도 장관은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도 추진해 보겠다”며 “이를 위해선 선수에 대한 배려를 포함해 세심한 논의가 필요한데, 장웅 IOC 위원과 의논하고 통일부와도 상의해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께도 요청해 올림픽 붐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재정적 어려움이 없게 이번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은 일자리 중심이지만 올림픽도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도 장관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피해를 본 관광산업의 피해 복구를 위해서도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광산업의 피해가 심각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기회에 관광산업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고, 다변화해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께 말씀드려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관광전략회의도 운영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도 장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리 개편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서 접근하겠다”고 답했다. 게임산업 육성과 관련해선 “게임이 콘텐츠 수출을 주도하는 산업이자 여가 문화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했으나 존폐 ‘셧다운(shutdown) 제도’에 대해선 “부모책임시간제 등을 도입해 교육적으로 해결할 여지를 열어놓고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유연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도 장관은 마지막으로 이날 취임사에서 언급한 ‘영혼이 있는 공무원’에 대해 “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지시를 막아주고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주면 직원들이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종환 ‘팔길이 원칙’ 확인…“블랙리스트 없는 사회 만들겠다”

    도종환 ‘팔길이 원칙’ 확인…“블랙리스트 없는 사회 만들겠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9일 취임식에서 문체부 직원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도 장관의 취임식은 이날 세종시 문체부 청사 강당에서 열렸다. 그는 “여러분들이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돼야 한다”며 “여러분의 사유·감수성·상상력·행동이 문화예술인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 장관은 ‘팔길이 원칙’(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한 입장을 공고히 했다. 그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명령을 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확실히 천명했다. 그는 “다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도록 예술인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도 장관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의 인용하며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키플링의 시는 이렇다.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도 장관은 앞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했다. 그는 방명록에 “문화로 아름다운 나라, 건강한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관가 인사이드] ‘필기 1등’ 탈락 시킬 공직가치…대한민국에 있습니까

    [관가 인사이드] ‘필기 1등’ 탈락 시킬 공직가치…대한민국에 있습니까

    ‘공무원에게 어떻게 영혼을 불어넣을까.’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열린 ‘공직 가치에 대한 이해와 대응’ 토론회에서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이 같은 내용이 논의됐다. 막스 베버가 ‘관료제의 합리성이 개인을 영혼이 없는 철창에 가두어 버릴 수 있다’고 통찰한 이래 ‘공무원의 영혼’은 공직사회의 오랜 화두였다. 김동극 인사혁신처장은 “공직 가치는 새로운 환경에서 공무원들에게 등대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며 “승진 심사에서 공직 가치 검증절차를 마련하고, 신임 관리자 교육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보편타당한 공직 가치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윤수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에 이르는 만큼 공직 가치 발전을 통해 전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0~50대는 20~30대보다 공직 가치 중요시” 김상묵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국가공무원 648명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공직 가치를 분석한 내용을 소개했다. ‘공공부문 종사자의 직무 인식조사’에 따르면 연령별로 공직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40~50대는 20~30대보다 공직 가치 중요도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높았으며, 5급 이상은 6급 이하보다 혁신적 가치, 민주적 가치, 전문직업적 가치 등의 공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또 재직기간이 길수록 공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재직기간이 길고, 연령과 직급이 높을수록 공직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김 교수는 공직 가치를 높이려면 공직 가치가 투철한 인재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서양에서는 공직 가치가 투철한 인재가 공무원으로 일을 하지만 공무원시험이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공직 가치가 높은 응시자일수록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낮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필기시험으로 공직 가치 수준 평가 힘들어”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줄을 세우는 필기시험을 치르다 보니 봉사를 많이 하고,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응시자보다는 노량진에서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개인적 경험으로 필기시험 성적이 좋은 응시자를 불합격시키는 데는 큰 용기가 따른다”고 고백했다. ‘공공기관 종사자의 공직 가치 특성과 현실’을 연구한 이창길 세종대 교수는 1년 전 공직 가치에 대한 연구 제안을 받았을 때 ‘또 국가관이냐’란 거부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직 가치는 분명히 공직사회의 등대인데 지금까지 가치를 교육하려 들던 정부의 의지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종사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직무 인식조사에서 공직 가치의 인식 수준은 65.0점으로 중앙부처 공무원의 평균 68.8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공무원은 정치적 충성심, 정권의 품위, 정치적 중립성, 국가안보, 조직과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의 가치를 공공기관 종사자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공공기관 직원은 도전정신, 독립성, 시민참여, 고객지향 등의 가치가 공무원보다 훨씬 내재화돼 있었다. 이 교수는 조사 결과를 통해 조직의 윤리적 가치가 강할수록 정부의 목표 달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분석했다. #“소극행정은 공직 가치 향상으로 개선 가능” 심동철 고려대 교수는 500명을 설문조사해 지방공무원의 공직 가치를 조사했는데 국가직 공무원과 큰 차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 가치에 따라 지방공무원을 ‘전통 행정가’, ‘윤리적 민주주의자’, ‘소극적 공공혁신가’, ‘복지부동형’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유형별로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전통 행정가가 34%로 가장 많았고, 공직 가치에 대한 값이 모두 낮은 복지부동형이 30%, 변화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소극적 공공혁신가가 25%, 윤리적 가치와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는 윤리적 민주주의자는 12%로 가장 적었다. 김근세 성균관대 교수는 대통령의 인사나 청문회가 공직 가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정만석 인사혁신처 윤리복무국장은 “공무원의 소극 행정 개선은 모든 정권의 화두인데 공직 가치로 공무원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포토 다큐] 비워서 가볍게 산새처럼 훨훨

    [포토 다큐] 비워서 가볍게 산새처럼 훨훨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 사이에 길게 누운 지장산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샌드위치 패널 집이 보인다. 기둥과 기와는 없지만 부처님 모시고 수행하는 도연 스님의 암자이다. 이곳에 자리잡은 인연일까. 스님은 철원에 찾아오는 두루미와 함께 겨울을 난다.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두루미의 겨울 살림살이를 렌즈에 담는다. 두루미 사진으로, 그림으로, 책으로 스님은 잘 알려진 사람이다.꼼꼼한 손길로 암자 주변 동식물을 돌보지만 유독 산새에게 애정을 보인다. 왜? “손 대신 날개를 선택해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그냥 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뼛속까지 비우고 가벼워졌기 때문에 날 수 있습니다. 무소유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새를 닮고 싶습니다.” 스님이 새와 함께 정진하는 이유이다.머리 깎고 산에 들어온 것이 넓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함이라는 스님이 특별한 욕심을 냈다. 산새를 통해 깨달은 지혜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산새 학교’를 연 것이다. 별다른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암자 마당 나무그늘 밑에 평상 놓고 산새가 살아가는 모습을 얘기하며 새가 떠난 둥지를 모아 보여 주고 아이들과 놀면서 새 둥지를 만들어 나무에 걸어 놓는 것이 전부다. 철원에서 온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평상에 앉아 스님 얘기를 듣고 있다. “스님, 새소리 흉내 한 번 더 해줘요.” “둥지에 새알이 너무 작아요.” 아이들이 시끌시끌하게 즐겁다.산새와 살고 있다는 유명세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보기 힘든 산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사람도 있지만 스님은 나무 그늘 밑에 조용히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저건 노랑턱멧새, 이건 콩새, 멀리 들리는 것은 흰눈썹황금새”라는 식으로 새 종류를 알려줄 뿐이다. 아름다운 새소리에 눈을 돌리면 새는 아쉽게 날아간다. “보려 하면 안 보이고 조용히 기다리면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 산새입니다. 새가 허락하는 간격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게 중요하죠.” “살아가는 이치도 다르지 않은데, 그걸 넘으려 하니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라고 새소리만 들어 아쉬워하는 이에게 한마디 한다. 번식을 위해 애써 지은 둥지를 새끼 다 키우면 훌훌 버리고 떠나는 새의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이 하늘로 던진 그물에 스스로 갇힌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산새 학교를 운영하는 스님의 소망이다. 돌아나오는 어둑한 암자 마당에 “쪼로롱” 하고 방울새 소리가 울린다. 카메라로 가는 손을 멈추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들었다. 글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사진 도연스님 제공
  • 영혼·개성 있는 문어들, 사람과 교감하다

    영혼·개성 있는 문어들, 사람과 교감하다

    문어의 영혼/사이 몽고메리 지음/최로미 옮김/글항아리/356쪽/1만 6000원서양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문어와 같은 두족류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극악한 적은 대개 문어 형상을 하고 있고 뭔가 꺼려지는 대상이 있다면 그 형체는 어김없이 문어다. 영화 ‘타이탄’의 크라켄, ‘캐리비언의 해적’의 문어 머리 선장 데비 존스가 대표적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인간을 만든 ‘엔지니어’를 몰살시킨 것도 문어 모양의 에일리언이었다. 새 책 ‘문어의 영혼’은 이 같은 생각을 가진 보편적인 서양 사람이 쓴 문어 이야기다. 저자 스스로도 ‘악마의 물고기’라고 표현할 만큼 경원시하면서도 문어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재밌고 놀랍다. 문어는 말 그대로 ‘머리에 다리가 달린’ 두족류다. 흔히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위는 인간의 배에 해당된다. 심장은 세 개, 피는 푸른빛이다. 수컷은 발 중 하나가 생식기에 해당되는 ‘교접완’이다. 수명은 4년. 암컷은 알을 낳고 돌보다 생을 마감한다. 문어는 이처럼 여러모로 사람과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배·머리·다리 순으로 이뤄진 구조부터 그렇다. 저자는 이런 간극을 넘어 문어를 알고 싶었다. 거대 괴물로 표현되는 미디어 속 문어가 아닌 진짜 문어를 만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 아쿠아리움에 2년여 동안이나 드나들며 문어인 아테네, 옥타비아, 칼리, 카르마를 만났다. 문어는 주로 촉각과 미각으로 세상을 파악하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살갗과 문어의 빨판을 접촉시키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문어들은 놀랍게도 사람과 교감할 줄 알았다. 저자의 팔을 감싸고 빨판으로 뽀뽀 자국을 만들었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친숙한 사람을 반겼다. 자신에게 잘 대해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기억해 뒀다가 다르게 대했다.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심통을 부리는가 하면 사람에게 물벼락을 안기며 장난을 쳤다. 하긴 하찮은 초파리 수컷도 암컷에게 성적 거절을 당하면 알코올을 찾는다는데 영특하다고 알려진 문어야 더 말할 게 없다. 문어 각자의 성격도 판이했다. 점잖은 문어가 있는가 하면 유달리 짓궂은 문어도 있고, 느긋하거나 예민한 문어도 있었다. 외계생물처럼 생긴 문어가 각각의 ‘의식’를 지닌 영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어가 각각의 의식을 가진 하나의 영혼이라면, 그 정신세계는 어떤 것일까. 책은 저자와 문어의 교감을 통해 문어가 가진 의식과 정신을 독자가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돕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1500년 만에 들려주는 목소리

    1500년 만에 들려주는 목소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교황을 위해 노래하는 아이들’로 유명한 교황청 시스티나성당 합창단이 한국을 찾는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다음달 7~15일 교황청 시스티나성당 합창단이 창설 1500년 만에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한다”고 15일 밝혔다.시스티나 합창단은 교회 초기부터 존재하던 것을 6세기 무렵 그레고리오 교황이 체계적으로 정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71년 교황 식스토 4세가 재정비하면서 교황 전속 합창단이 됐다. ‘시스티나’ 성당과 합창단 이름은 식스토 4세 교황의 이름을 딴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유명한 팔레스트리나의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루카 마렌지오, 크리스토발 모랄레스 등이 모두 이 합창단 출신이다. 19세기 주세페 바이니와 도메니코 무스타파 등 저명 음악가들이 합창단 지휘자로 활약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로렌조 페로시, 도메니코 바르톨루치, 주세페 리베르토 등이 합창단을 이끌었다. 성인 남성 20명과 소년 3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음향 시스템 없이 무반주 전통을 지키면서 주로 그레고리오 성가와 팔레스트리나(교회용 합창곡)를 부른다. 이들의 무반주 전통은 아카펠라의 기원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 전속 합창단답게 교황이 주례하는 전례의 합창을 전담하는 한편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전례음악 알림이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2015년 영국·이탈리아, 지난해에는 이탈리아·헝가리·독일을 방문했다. 이탈리아 출신 마시모 팔롬벨라 몬시뇰이 지휘를 맡은 내한 공연에서 합창단은 그레고리오 성가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를 비롯해 ‘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마니피캇’, ‘불쌍히 여기소서’ 등 9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은 7월 5일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을 시작으로 7일 대전교구 충남대 정심화홀, 9일 광주대교구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1일 부산교구 KBS홀, 13일 대구대교구 범어주교좌성당, 15일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 등에서 열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만추’ 김태용 국악극 도전…외국인 관광객들과 ‘얼쑤’

    ‘만추’ 김태용 국악극 도전…외국인 관광객들과 ‘얼쑤’

    영화 ‘만추’, ‘가족의 탄생’ 등을 연출한 김태용(48) 영화감독이 국악 공연 연출에 도전한다. 14일 국립국악원에 따르면 김 감독은 오는 10월 4~2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악극 ‘꼭두’를 연출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공연으로 예산 12억~13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무대다.●음악·무용 결합… 12억~13억 투입 대작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은 주로 넌버벌 퍼포먼스 위주인데 전통 공연 분야에는 이렇다 할 대표 공연이 없어서 작품 개발을 하게 됐다”면서 “국악을 잘 모르는 외국인도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난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김 감독은 국악 공연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3월 초 국립국악원의 요청을 수락해 현재는 영상을 활용한 형태의 공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김 감독이 판소리 등 국악 장르에 상당한 애정을 보여 온 점도 국립국악원이 이번 공연의 연출로 선임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김 감독은 앞서 2013년 제1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에 라이브 연주를 결합한 공연 ‘청춘의 십자로’를 개막작으로 선보였다. 이어 지난해 같은 영화제에서 고(故)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1961)을 판소리와 라이브 연주가 어우러진 공연으로 재탄생시켰다. 올해도 레게 음악과 판소리를 엮은 음악극 ‘레게 이나 필름, 흥부’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통극 대표 공연 만들기 착수 공연은 장례식 때 상여에 사용되던 인형인 꼭두를 소재로 음악과 무용을 결합한 작품이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죽은 영혼을 좋은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꼭두 4가지 캐릭터를 통해 듣는 이의 흥을 돋우고 위로를 전하는 국악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예술단이 무대를 채우고 영화음악감독 방준석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이 공연을 토대로 한 단편 영화 제작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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