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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외교 지도」가 바뀌고 있다/페만사태 장기화로 새판도 형성

    ◎국익따라 「합종연형」 가속화/미­시리아 후세인 응징 공동대응책 모색/소­사우디 국교재개… 중동평화 정착 기대/이란­이라크 반미 전선 형성,아랍맹주 노려 페르시아만 사태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는 중동지역의 외교 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미소와 적대관계에 있던 아랍국가들이 이들과 국교를 재개하거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가 하면 미국과 소련은 페만사태라는 지역분쟁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 국제정치의 새 기류가 중동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특히 지난 9일 헬싱키 정상회담에서 소련이 중동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요청함으로써 대 중동정책에서 냉전외교의 틀을 벗어나 미소의 실질적인 협력과 공존의 시대를 열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제의는 소련의 중동진출을 저지해온 미국의 전통적인 대 중동정책이 수정되는 것으로 전략적 가치를 놓고 늘 대립해왔던 미소의 외교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소련은 미국의 중동에서의 역할증대 요청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교를 재개하고 이스라엘 및 바레인과 외교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앞으로 과거의 외교패턴을 크게 바꾸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고 최첨단무기를 판매하는 등 대 중동 군사관계를 강화하고 적대관계에 있던 시리아와도 외교관계를 개선시키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이같은 중동지역에서의 새로운 외교관계 정립은 미소의 협력을 바탕으로 아랍국가들이 새로운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지역안보의 기본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가장 강력한 아랍국가인 이란과 이라크가 과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손을 맞잡음으로써 안보가 취약한 다른 중동국가들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고 외세를 배격하는 아랍민족주의와 미소와의 대립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중동은 여전히 불안한 지역으로 남을 전망이라 각국간의 새로운 외교관계를 정리해 본다. ▷미국­시리아◁ 과거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시리아가 외교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키고 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전격적으로 시리아를방문,중동에서 가장 반미적이던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대 이라크 공동전선을 펴기로 합의했다. 아사드 대통령의 이같은 극적인 변신은 오랜 앙숙인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ㆍ합병시키며 아랍세계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노골화시킨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시리아는 이란ㆍ이라크전쟁에서도 리비아와 함께 이란을 지원했었다. 시리아는 따라서 후세인과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인 아사드 대통령은 동서화해로 소련의 군사지원이 줄고 있는데다 고립은 위험하다고 판단,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이미 이집트를 통해 대 서방 화해를 촉구했었다. 미국도 아사드 대통령이 국제 테러에 깊이 관여했으며 비난해 왔으나 아랍국가들의 대 이라크 공동보조를 위해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해 왔다. 시리아는 이집트와 함께 직접 군대를 파견하는등 적극적으로 대 이라크 공세에 참여하고 있다. 시리아는 페르시아만에 집결한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면 이집트ㆍ사우디와 함께 아랍의 지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사우디아라비아◁ 소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7일 반세기여만에 국교를 재개했다. 소련을 방문중인 사우드 알 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평화공존ㆍ평등ㆍ상대방 국가의 주권ㆍ영토보존ㆍ내정불간섭 존중의 원칙을 바탕으로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중동전문가들은 2차대전 이후 일관되게 반공노선을 견지해온 사우디가 소련과 국교를 회복한 것은 페만위기로 안보위협이 높아지자 이라크와 동맹국이며 군사대국인 소련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평화를 위해 소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소련도 중동진출을 위해 사우디와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대규모 석유생산국인 소련과 사우디가 국교를 정상화 시킴으로써 석유시장에서의 이들의 영향력도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소련과 사우디 외교관계는 지난 38년 스탈린이 사우디주재 소련 대사관을 폐쇄한 이후 단절돼 왔었다. ▷소련­이스라엘◁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소련의 외교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지난 16일 방소중인 2명의 이스라엘 장관과 회담한 것은 양국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만난 니만 이스라엘 에너지장관은 『이번 회담을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소련과 이스라엘은 지난 67년 중동전쟁때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양국관계는 아직 경제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과 소련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특히 미국이 사우디에 최첨단 무기를 수출하고 기술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아랍국가에 비해 무기체계와 군사기술의 질적 우위라는 전통적인 군사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와도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바레인도 소련과곧 국교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이라크◁ 중동지역의 라이벌 관계이며 8년간이나 전쟁을 치렀던 이란과 이라크가 이번 중동사태를 계기로 가까워 지고 있다. 양국이 언제 공식 외교관계를 재개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공동으로 반미 전선을 형성하는등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후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점령 이란 영토로부터의 철수,이란군 포로석방 등 대 이란 화해조치를 취했으며 지난 10일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이란을 전격방문,국교재개를 합의했다. 이란ㆍ이라크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이라크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어렵게하고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조치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 경제위기 둘러싼 강ㆍ온 대립의 저변

    ◎치열한 개혁속도 논쟁… 크렘린 갈등 증폭/급진파 “시장경제 도입 5백일내 매듭”/온건파 “사유재산제등 단계적 실시를”/방법론에 큰 이견… 소 지도부 분열 가능성도 이번 가을 회기에서의 종합적인 경제개혁안 채택을 싸고 현재 개회중인 인민대표회의(의회)를 포함,소련전역이 급진 대 온건의 일대 논쟁에 휘말려 있다. 논란의 초점은 16인 대통령자문위원인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의 주도로 입안된 급진적인 개혁안인 「5백일 계획」과 니콜라이 리슈코프 현 총리가 추진하는 단계적 경제개혁안이다. 이 2개 안이 함께 인민대표회의에 제출돼 있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샤탈린안을 지지하는 쪽이다. 우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혁 세력들이 절대적으로 이 안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의회는 이미 지난 11일 샤탈린안을 공식 채택,오는 10월1일부터 시행할 것을 결의해 놓고 있다. 소련영토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이같은 결의는 중앙정부로서도 사실상 뒤집을 수 없는 결정이다. 일반 소련국민들도 급진개혁을 요구한다. 지난 16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분위기가 이를 대변한다. 「리슈코프 사임」「옐친 대통령 지지」 등이 시위대의 주장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분명치는 않지만 지난 14일 인민대표회의에서 샤탈린안과 거의 유사한 절충안을 제시,급진개혁 지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3개 개혁안이 의회에 제출돼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 경제보좌관 아벨 아간베기얀이 이끄는 긴급조정위가 설치됐지만 단일안 마련에는 실패했다. 리슈코프총리도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샤탈린안이 채택될 경우 가격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와 실업 등이 초래돼 소 전역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리슈코프의 약점은 취임 후 5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국민들이 겪는 경제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현재대로라면 그의 계획이 의회에서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소련경제가 처한 사정이 과연 샤탈린의 급진개혁안으로 회복될 것이냐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샤탈린안은 가격자유화와 국유재산의 대폭적인 사유화등 본격적인 시장경제 도입과 15개 공화국의 경제주권을 대폭인정,소연방의 소위 「경제연합체화」를 주요골자로 담고 있다. 이를 위한 5백일간의 시행지침도 마련돼 있다. 우선 1백일까지는 공화국간 경제개혁위가 설립돼 개혁일정을 조정한다. 기존 경제부처의 권한은 유명무실해진다. 그리고 국가자산의 매각과 농민에 토지매각이 시작된다. 이 기간중 세출삭감을 통해 국방비 10% 삭감,KGB예산 20% 삭감,외국에 대한 원조의 76%를 줄여나간다. 각 공화국 중앙은행으로 구성된 연방준비은행을 설립,직종별로 설치되는 상업은행과 함께 2중은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루블화의 단일환율제를 정착시킨다. 2백50일까지는 가격자유화의 전면실시와 소규모기업의 절반까지 사유화를 이룬다. 4백일까지는 제조산업의 40%를 매각하고 자본자유화를 전면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5백일까지는 제조업체의 70%,건설ㆍ소규모기업의 90%를 사유화시킨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담고 있다. 이 과정 전반에서 각공화국은 중앙정부에 앞서 상당한 경제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개혁추진과정에서 초래될 부작용은 최대한 국가에서 흡수한다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리슈코프안은 92년까지 단계적 시장화를 추구하되 가격인상 실시시기와 폭,사유화의 도입 폭을 싸고 샤탈린 안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중앙정부의 경제 권한도 보다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세금ㆍ루블화관리ㆍ석유 등의 전략자원관리는 계속 중앙정부가 관할하자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안은 개혁의 실시시기와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 개혁을 하겠다는 기본 정신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안을 싸고 전개되는 갈등은 현 지도부내의 균열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리슈코프는 자신의 안이 거부될 경우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혀놓았고 옐친측은 그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어쩔 수 없이 샤탈린안 지지쪽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결국은 지난 5년간의 실정을 자인하는 결과가 돼 리슈코프의 사임만으로 정치적인 부담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반국민들의 샤탈린안 지지도 현 경제사정에 대한 불만에서 오는 반사적인 지지의 측면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년초 정부가 일부 품목의 가격자유화 방침을 발표했을때 가격폭등과 사재기 등의 일대혼란을 겪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샤탈린안이 안고 있는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그후로도 생필품의 부족현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도저도 안되니까 차라리 한꺼번에 해버리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 퍼져있다는 지적이 있다. 급진경제개혁을 실시했을 때 나타날 여러 쇼크현상을 과연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 함께 필연적으로 가속화될 각 공화국의 정치적인 탈크렘린 현상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급진개혁 채택 이후의 소련에 오히려 불안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 「통독의 사법적 처리」/오페르만교수 강연 요지

    ◎통독,40년만에 다시 「국제법상의 주체」로/입법등 3권 새기구 구성까진 서독에/사실상 서독 연방가입… 동독조약 소멸/2차대전 교전국간 새조약 체결… 전쟁배상 매듭 통일독일의 완전한 주권을 보장하는 소위 「2+4」협정이 12일 체결됨으로써 통독을 둘러싼 외부적인 여건은 다 마무리됐다. 이제 10월3일이 되면 동서독은 40여년만에 다시 한 나라가 된다. 그러나 독일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수십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와 법제도하에 유지돼온 두 나라의 통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주한 독일문화원은 13일 상오 서울 중앙대에서 독일 튀빙엔대 법대교수이며 바덴뷔르템베르크 헌법재판소 판사인 토마스 오페르만박사를 초청,통독의 법적ㆍ제도적인 문제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다음은 「독일통일의 정치ㆍ사법적 측면」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오페르만박사의 이날 강연 요지이다. 동서독의 통합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간과돼서 안될 것은 이 과정에서 보여준 동독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정이다. 지난 3월 총선에서 동독유권자들은 조기통일을 공약한 우파연합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따라서 나는 「통합」(Anschluβ)이라는 말보다는 동독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의미에서 「가입」(Beitritt)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서독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에 가입함으로써 통일과정은 완료되고 동독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서독의 영토는 그 지역 만큼 더 넓어지는 식이 된다. 1871년의 독일제국,1945년 패망 당시와 같은 단일 독일국가가 국제법상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에 따라 서독이 현재 체결하고 있는 국제법상 조약은 존속하고 동독의 조약은 소멸된다. 유엔등 국제기구에서 독일대표는 서독이 담당하고 동독이 안고 있는 외채도 서독이 떠맡는다. 동독의 모든 국가재산은 서독의 연방재산에 편입된다. 이와 함께 동독의 입법ㆍ사법ㆍ행정도 모두 서독으로 편입된다. 동독의 인민대회와 서독연방의회가 합쳐 통일독일 입법기구가 탄생된다. 그리고 서독의 11개 주와 동독의 5개 주를 묶어 새 연방회의(Bunmdesrat)가 구성된다. 그리고 서독의 현 연방법원이 독일전역에 최고 사법권을 행사한다. 예를 들어 동독 라이프치히시 지방법원의 최종심을 이 연방법원이 담당한다. 헬무트 콜 현 서독 총리를 최초 연방총리로 하는 새 독일정부가 출범한다. 이미 지금까지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5월18일 체결된 통화 및 경제사회통합을 위한 제1차 국가조약에 의해 7월2일부터 통화통합이 시행됐다. 12월2일 총선실시를 위한 선거조약도 중요한 합의였다. 10월3일부터 서독 기본법을 동독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8월31일 동서독이 체결한 제2차 국가조약(통일조약)에 의해 마련될 「연결법(□berleitungsgesetz)」이다. 이 연결법에 의해 베를린이 새 수도로 정해진다. 그리고 통일의지를 담은 기본법 전문과 동독의 서독가입을 허용한 기본법 23조 개정,그리고 기본법에 위배되는 동독법률의 효력에 관한 구제 길이 명시된다. 연방을 구성할 각주의 재정 및 법제도 통일문제,동독이 체결한 국제법상 조약의 효력문제 등이 모두 해결되게 된다. 연결법의 설치 근거는 기본법 23조2항에 명시돼있다. 기본법개정의 폭을 둘러싸고 현재 집권 기민당(CDU)과 제1야당인 사민당(SPD)간에 견해차가 있다. 사민당은 헌법평의회를 구성해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제의하고 있다. 반면 기민당은 연결법을 통해 기본법을 최소한으로 손질만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40년간 서독국민들이 이 기본법을 준수해 왔고 연결법을 통해 꼭 필요한 부분은 개정ㆍ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외부적인 측면에서도 몇 단계 더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소위 독일조약(Deutschland Dokument)에 의거,연합국 지위동결과 독일 및 베를린시의 주권회복,통일독일이 속한 군사ㆍ경제동맹문제 등의 문제가 완전 해결돼야 한다. 10월1일을 기해 이 조약체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오데르 나이세강을 국경으로 하는 독일ㆍ폴란드간의 최종 국제조약도 남아 있다. 통일독일은 오데르 나이세강을 국경으로 확정함으로써 패전 이전과 비교하면 영토가 줄어드는 셈이된다. 그러나 이는 독일의 나치즘이 주변국들에 행한 과거 죄과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독일과 2차대전 교전국과의 평화조약도 앞으로 체결돼야 한다. 전쟁 배상문제도 이 과정에서 매듭지어질 것이다. 통일독일은 자동적으로 EC(유럽공동체)에 가입케 된다. 이를 위해 EC와 일련의 경과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앞으로 기본법개정등을 둘러싸고 동서독간에 마찰이 예상되는 부문도 많이 있다. 특히 「낙태」등 윤리적인 문제들을 놓고 양측 국민들의 법감정에 격차가 크다. 서독에서 낙태는 불법이지만 동독은 현재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 외에 환경보전ㆍ근로권리ㆍ사회보장권ㆍ건강권ㆍ교육권 등 양측의 견해가 다른 분야가 많다. 재산권 분쟁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앞으로 3∼5년 뒤면 이런 문제들은 모두 해소되고 양쪽의 생활ㆍ의식수준이 비슷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통일독일은 인구ㆍ경제력 등 여러 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은 과거 나치때와 같이 「힘을 추구하는 힘」(Power­oriented Power)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 통독협정 체결… 전후시대 종지부

    ◎「2+4」회담,통독 나토가입등 현안 타결/동독 소군 94년까지 완전 철수/폴란드 서부국경도 인정키로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동ㆍ서독과 미국ㆍ소련ㆍ영국ㆍ프랑스 등 2차대전 전승 4개국은 12일 통일 독일이 주변국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완전 주권을 보장받는 내용의 이른바 「2+4」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후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동서독 양국이 오는 10월3일로 예정된 통일시점을 향해 매진하는 가운데 약 7개월간의 회담을 통해 체결된 이번 「2+4」협정은 이밖에 통일독일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완전 회원국으로 잔류하고 오는 94년까지 현 동독내의 모든 소련군 병력을 완전 철수시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번 협정체결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한스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이 협정체결과 관련,독일인들은 이제 히틀러가 집권한 지난 1933년 1월 이후 최초로 민주국가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일 미국 소련 영국 외무장관들과의 회담을 마친뒤 『이같은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된 것에 매우 감격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히고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 서독이 떠안게 된 약 75억달러의 재정부담과 통일독일의 완전 주권회복 시기가 내년중으로 미뤄진 것 등 일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희석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의 원안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주 서독이 동독에서 철수할 약 37만의 소련군에 대해 주거 및 훈련비를 지원키로 약속한 것은 이번 협정에 대한 소련의 승인을 얻어내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겐셔는 독일통일을 기해 주권의 완전회복을 요구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이번 협정에 조인한 관련국 의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해 그 시기는 수개월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겐셔는 4대 전승국들이 의회승인에 앞서 통독 이틀전인 오는 10월1일을 기해 독일에 대한 점령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통일독일은 나토 및 EC(구주공동체) 회원국으로 잔류할 것이나 현 동독영토내에는 소련군이 주둔하는한 나토회원국 군대는 주둔하지 않게 된다. 지난 7월 이같은 문제에 합의한 서독의 콜 총리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또 통일독일이 군대 규모를 37만으로 제한하고 핵,화학,생물학 무기를 포기할 것에 합의함으로써 바르샤바조약기구측에도 협력의 손길을 뻗쳤다. 독일은 또 소련의 요청에 따라 현 동독영토를 비핵지대화해 핵무기 배치를 자제할 계획이다. 이번 협정에는 또 통일독일의 영토를 베를린을 포함한 현 동서독 영토만으로 국한,폴란드의 현 서부국경을 인정할 것임을 밝히는 문안도 포함돼 있다.
  • 「한민족 공동체안」발표 1돌 국제학술회의

    ◎한반도 통일 교류확대ㆍ동질성 회복이 지름길/북방정책ㆍ냉전체제 붕괴로 분위기 성숙/소 영향력 행사가 긴장완화의 최대변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주년 기념 통일문제 국제학술회의가 11일부터 2일간 예정으로 한국ㆍ미국ㆍ소련 일본 등 4개국의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롯데호텔에서 통일원주최로 열렸다. 참석 학자들은 국제적인 냉전체제의 붕괴와 한국의 지속적인 북방정책 추진에 따른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으로 한반도의 통일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고 진단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대국,특히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자들은 특히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면 주변 강대국들간에 보다 긴밀한 관계증진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남북한간에는 독일의 통일과정처럼교류확대를 통한 상호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음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주요 주제발표와 토의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남북한 경제ㆍ사회공동체 모색을 위하여(기조연설 이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한반도의 현실적 여건을 냉철히 감안할 때 국가통일이 당장 이룩되기 어렵다면 남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과 불편,생활상의 손실을 줄여 나가는 한편 그 바탕이 되는 민족통일부터라도 추진해야 한다. 즉 통일문제는 정부나 권력체제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민족구성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만 한다는 점에 기본적 발상을 두어야 한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남북한의 정부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 그 원초적 바탕이 되는 민족공동생활권을 이룩하기 위해 경제통합ㆍ사회통합을 먼저 실현해 나가자는데 근본적인 취지가 있는 것이다. 남북한간에 정치적인 요소의 개입없이 상호 이득이 되는 경제교류와 협력을 계속 추진해 간다면 국민생활의 다른 분야도 이같은 정신이 확산,사회적 동질성을 점차 모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호불신 뿌리깊어 ◇동서화해와 한반도 통일전망(다케시타 히데시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교수)=한반도의 통일저해 요인으로 상호불신,거대한 군사력,전쟁경험 및 상이한 체제 등이 꼽힌다. 또 한국은 「먼저 건설하고 남북체제간 경쟁을 통해 체제의 결말을 짓고 나서 통일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우선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위해 통일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며 그 다음에 건설을 하자」는 입장을 견지,통일을 향한 수순에서도 상이한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간부들이 모인 파티에서 북한사람들이 한국의 가요인 「동백아가씨」를 부른 에피소드라든가 중국의 연변 조선족들이 최근 급속하게 탈이데올로기화 하는 현실 등을 볼 때 남북한간의 상호 혐오감과 불신감이 뿌리깊다는 지금까지의 도식도 수정돼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한민족은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존재는 남북 모두에게 중요한 국내적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남북간에는 체제나 이념을 떠나 정서적으로 뿌리를 같이하기 때문에 통일로의 에너지는 독일보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 분단의 주요인이었던국제 냉전구조가 와해된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한반도의 주변 강대국도 침묵할 수 밖에 없으며 전쟁을 도발한 독일과는 달리 한반도 통일문제에 주변 강대국의 자문을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군축 신중한 접근을 ◇군사문제와 한민족 공동체형성(케빈 루이스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한민족 공동체 개념에서 필수조건은 전반적인 실행계획중 군축문제 및 군사전략 차원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취급이다. 즉 군축과 군사부문 협상에서 성급한 접근,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추구하는 모든 부문의 동시전진이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군축은 소망스러운 것이긴 하나 큰 대가를 지불하고 엄청난 모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추구해야할 대상은 못되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주둔 군사력은 향후 몇년간 더욱 감소될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한반도의 상황발전과는 상관없이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 실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병력이 철수하더라도 잔류한 미군력만 적절히 운용하면 현재와 같은 전쟁억제력을발휘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90년대를 향한 통일정책(김학준 대통령 사회담당보좌역)=한민족 공동체방안의 논점 가운데 논란의 주요 요인은 남북체제연합론의 개념에 있다. 우선 국가연합의 개념은 국가들의 통합,즉 주권을 보유한 영토적 국민국가들의 통합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통합된 국가의 대표들에 의해 제한된 권리를 보유하며 수립되나 이것은 국민이나 각 회원국가의 정부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ㆍ언어ㆍ역사ㆍ문화를 달리해온 국가들 사이에서는 국가연합 창설사례를 볼 수 있지만 남북한처럼 민족적 동질성을 가진 경우에는 국가연합을 채택한 사례가 없다. ○쌍무관계 개선 필요 국가연합의 개념이 「1민족 2국가」의 원리이고 연방제가 「1민족 2지역정부」의 원리라면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채택하고 있는 체제연합의 개념은 「1민족 2체제」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체제연합방안은 현실적으로 남북을 분단시키고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한편으로는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달성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두개의 다른 체제,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게 될 교류와 협력의 기초위에서 쌍무관계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북연합과 경제협력(알렉세이 세미요노프ㆍ소련 과학아카데미 사무총장)=북한의 경제발전은 주체경제전략에 의해 지도돼 왔다. 이것의 기본원리는 자급자족으로써 다양화된 경제체제의 건설을 지향하며 균형성장보다는 성장률을 우선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경제는 전반적인 불균형,천연자원 원자재 전력의 만성적인 부족,산업재원의 정신적ㆍ물질적인 마모,저수준의 기술,불규칙적인 운송체계 등으로 일컬어진다. 게다가 대외경제구조도 자국에 부족한 원자재의 조달과 수입대금지불을 위한 외환획득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지도자들은 해외의 자본과 첨단기술도입에 필요한 합작부문에 있어서 의존적 태도,일방적으로 수혜만 받으려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심각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남북경제교류 절실 이같은 북한경제의 문제점 때문에 남북간의 경제교류는 상호 우대를 강화하면서 적대감을 해소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 추진돼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남북 경제교류에 제3국을 유치,이데올로기의 완충장치로 담당케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안병준 교수(연세대)=소련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미하일 노소브연구원(소련 미ㆍ캐나다연구소)=소련은 이미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포기했기 때문에 남을 설득하거나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장벽도 소련이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독일인 스스로 제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케시타 히데시 교수=미국이 한국에 대한 영향력보다는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훨씬 크다고 본다.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을 위해 소련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국제 핵폐기물처리협정에 조인토록 해야 할 것이다.
  • 「탈냉전시대」일ㆍ소 새관계 기틀마련/셰바르드나제,일서 무슨일 했나

    ◎극동ㆍ페만지역 안정 공동 인식/경제ㆍ과학ㆍ기술교류 원칙 합의 3박4일간 일본에 체류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소련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관심을 도처에서 피력했다. 그의 이번 방일 목적은 내년 4월 중순으로 예정되어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 준비였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방일 직전인 4일 상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연설과 7일의 이일기자회견을 통해 극동아시아지역의 안전보장문제와 페르시아만 위기해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7일 기자회견에서도 모두연설에서부터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긴장완화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또 한반도의 핵문제에도 언급,『한반도에 있는 미국 핵무기의 존재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과 조정이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한반도의 위험요소는 역시 핵의 존재에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발언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과의 관계는 소련의 주권문제』라고 강조한점이다. 소련이 비록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기는 하나 한국과의 국교수립은 북한의 희망을 도외시하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달중 개막되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소련 외무장관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소련의 외교책임자로서 처음으로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이번 방일중 「탈냉전」의 인식도 분명히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 『냉전후의 지역분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페르시아만 사태가 냉전종식전에 일어났더라면 세계대전 직전까지 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은 불필요하다. 이 문제는 유엔안보리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가장 괄목할만한 방일 성과는 역시 페르시아만 위기에 관해 일ㆍ소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일ㆍ소 양국이 개별적인 국제문제에 대해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것이 첫 케이스로서 주목을 끌었다. 공동성명은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로부터의 즉시 철수 ▲쿠웨이트의 주권ㆍ독립ㆍ영토보전의 신속한 회복 ▲유엔ㆍ안전보장이사회 제결의의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이행 ▲이라크 및 쿠웨이트에 억류중인 외국인질의 신속한 출국 등을 요구함과 동시에 유엔 제결의의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이행을 위해 『모든 국가가 적절한 방법으로 협력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밝혔다. 어쨌든 이라크의 침공을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비난하고 깊은 우려를 표명한 이 공동성명은 과거 여러차례 다른 나라를 침략한 바 있는 일ㆍ소 양국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일본을 떠나기에 앞서 일ㆍ소 양국정부는 이번 그의 방일 성과를 종합정리,발표했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내년 4월 중순 일본을 공식방문하겠다』는 구두 메시지를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통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음을 명백히 함과 동시에 일ㆍ소 쌍방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이 일ㆍ소 관계의 최대의 전기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점에 합의했다는 취지를분명히 하고 있다. 이밖에 일ㆍ소 정상회담에서는 ▲일ㆍ소 평화조약문제 ▲경제ㆍ과학기술ㆍ문화ㆍ인도 및 기타 양국간의 제반문제 등에 『실질적인 전진을 위한 합의가 최고 레벨의 협의에서 달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공통의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도쿄 외교가에서는 이번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일본방문이 일ㆍ소관계가 전후냉각기로부터 새로운 발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이라크의 군사대국화 방지에 초점/윤곽 잡히는 부시의 중동과녁

    ◎경제제재 계속… 침략정책 포기 유도/중동 세력균형 구축돼야 미군 철수 부시 미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미 행정부의 페르시아만 외교계획에는 「후세인에게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강요한다」는 온건한 목표가 설정돼 있다. 부시 대통령 측근들은 미국과 그 우방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억제시킬 수 있으며 그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이라크를 일개 지역세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초점이 돼온 이 접근법은 「페르시아만 위기가 중동은 물론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후세인이 팽창정책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관리들 말에 의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것은 후세인 축출정책이 아니라 후세인 침략 저지정책이다. 미국의 일부 보수파 평론가들은 부시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에 대해 「나쁜 정책」「나쁜 정치」라고 걱정하면서 『제2의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내주에 의회가 속개되면 부시 대통령은 『냉전 종식으로 생긴 「평화 배당금」을 페르시아만의 장기 군사작전에 꼭 써야 하느냐』는 논쟁에 직면할 것이다. 부시의 전략은 아랍인들과 불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미군의 장기적인 페르시아만 주둔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집트ㆍ시리아ㆍ이란 등을 이 지역에서 이라크의 힘과 상쇄시킬 위치에 놓았다. 또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오른 미소 협조와 서구맹방들의 이 지역에서의 군사역할확대는 군사적으로 취약한 걸프 국가들에 안보를 제공하고 후세인을 억제시키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더라도 패배를 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시의 접근방법엔 여전히 위험성이 따르고 있다는 점을 미국 관리들은 시인하고 있다. 부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회피했던 종합적인 중동정책의 수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그의 구상에 관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지는 부시 측근과 행정부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미국의 새로운 대 중동 종합정책의 윤곽을 더듬었다. 첫째,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새로운 외교활동에 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하기 시작했지만 부시는 후세인이 쿠웨이트 철수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이 군비증강을 계속하자 전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같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은 『부시가 무력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오랫동안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도발이 없는데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그렇지않아도 깨지기 쉬운 아랍연합을 갈기갈기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고위관리들에 따르면 부시는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대한 미 정책의 제1조는 이라크가 식량ㆍ재화ㆍ군수품의 부족을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경제제재조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후세인이 철수가 아니라 공격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약화돼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며 후세인은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협상을 희망하면서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시는 유엔의 기본 요구,즉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관리들은 아랍국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몇가지 방안에 대해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시 쿠웨이트가 영토문제와 대 이란 전비문제 협상에 성의있게 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가 쿠웨이트 철수에 동의하면 이라크­쿠웨이트간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접근은 후세인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자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고위관리는 『미군 철수는 후세인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없도록 중동의 군사력과 정치적 균형이 재정립된 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몇가지 가정,즉 ▲미소의 이해 일치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적 역할 확대 ▲이집트 시리아 이란의 연대 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맹방들이 장기간 확고한 군사력으로 남아 있거나 앞으로도 신속히 대응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중동의 세력재편이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거래에는 늘 말썽이 많았고 이란의 대미 반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리아는 테러리즘 지원 때문에 오랫동안 비난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랍 국가들이 부시를 지원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같은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쿠웨이트 정부에 관한 문제다. 분명히 미국은 쿠웨이트 왕정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미국으로선 그건 꼴사나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 “명분보다 실리” 아랍권 편가르기/페만사태와 중동각국의 대응

    ◎대미 의존 큰 사우디ㆍ애,“반이라크” 노선/요르단ㆍ튀니지ㆍ알제리는 “양비론” 주장 이라크­쿠웨이트 사태를 계기로 아랍권의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친이라크,반이라크,중간입장 등 노선 선택과 자국의 이해득실,대서방관계 등 명분과 실리의 다양한 상황요인 속에서 아랍국들은 「처신」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출된 「회교성지 수호자」 사우디의 약체성과 아랍권의 대의를 감소시킨 미군 등 서방군의 대거 아랍권 배치 등은 아랍권 내부에서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어 설사 사태가 해결된다 해도 향후 아랍권의 단결에 큰 후유증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페」만사태에 대처하는 아랍각국의 태도와 전망을 살펴본다. ▲사우디아라비아=미군을 불러들임으로써 쿠웨이트와 같은 운명을 모면했으나 상대적으로 왕국의 허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아랍세계로부터의 불만과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이집트=사태발발 직후 반이라크 선봉에 나섰으며 3천명의 군대를 사우디에 파견하는 등 적극책으로 서방의호감을 샀다. 그러나 아랍권 내부에서는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높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좀더 온건한 태도,선봉장보다는 중재자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어느 다른 아랍지도자들보다 국내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시리아=이란­이라크전에서 유일하게 이란을 지지한 아랍국 시리아는 이번에도 반이라크 노선을 택하고 사우디에 군병력을 파견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노련한 전략가. 반이라크 노선에 동조하고 나섬으로써 서방에 좋은 인상을 안겨줬으며 EC등과의 관계개선,미국이 작성한 테러지원국 블랙리스트로부터의 삭제 등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종전의 반미 노선을 취해 온 것과 대조적으로 켈리 미 국무차관보의 두차례에 걸친 방문,부시 대통령의 아사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등 미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요르단=「페」만 분쟁으로 입장이 가장 난처해진 국가. 후세인왕은 친이라크 노선을 취했다가 방향전환을 하는 등 갈팡질팡하여 미국등 서방으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지만 대신 국내에서는 「인기」가 증가해 정권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서방으로부터의 지원중단등으로 국내경제는 벌써 타격을 입고 있지만 국민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뜻을 것스를 수는 없다. ▲모로코=아랍지도자중 이라크의 침공을 맨 먼저 규탄하고 역시 아랍국중 유일하게 쿠웨이트주재 대사관을 폐쇄시키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반이라크 노선의 강경국. 하산왕은 「원상회복」만이 해결책이라며 대 이라크 강경책을 주장하면서 역시 상징적이기는 하나 군대를 사우디에 파견하고 있다. 그의 태도는 서방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나 아랍­이스라엘간 대결에서는 미국의 이스라엘 두둔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튀니지=이라크의 침공을 비난하고 나섰으나 「외군의 배치」를 아울러 비난하는등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이로 아랍정상회담에 「준비부족」을 이유로 불참했던 벤 알리 대통령은 외군배치의 정당성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스라엘의 아랍영토 점령이나 레바논 침공에 대해서는 비슷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를 묻고 있다. ▲알제리=역시 이라크와 외군배치를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미군투입을 비난하면서 아랍권 자체의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소수정권을 이끌고 있는 차들리 대통령은 국민의 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사태해결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희망하고 있다. ▲리비아=카다피 대통령은 아라파트 PLO의장과 함께 카이로 정상회담에서 유일하게 대 이라크 제재결의안에 부표를 던졌다. 그는 그러나 사태초기부터 이라크의 침공을 규탄하고 나섰으며 한편으로 미군의 사우디 파병에는 이례적으로 공개비난을 삼가고 있다. 카다피는 오히려 국제법 준수,유엔결의 존중 등을 표명하면서 비록 아랍이 아닌 서방군을 불러들인 사우디측의 태도가 「유감」이기는 하나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해 반미 노선을 취하던 시대는 지나간 듯 하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
  • “한가닥 기대”… 중동평화협상/케야르의 중재노력 성공할까

    ◎후세인 유화제스처에 서방국은 냉담/미,무조건 철수 고수속 봉쇄압력 가중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서는 등 무력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페르시아만사태에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갑자기 활발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외교적 해결시도는 유엔이 대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을 결의하고 미군등 현지주둔 다국적군이 속속 증강돼 무력충돌 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고 이라크와 서방국이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지만 양측 모두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고충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란ㆍ이라크전쟁의 휴전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는 케야르총장은 오는 30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아지즈 이라크외무장관과 회동할 예정이며 후세인 이라크대통령도 케야르총장과 바그다드에서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비아랍권 지도자로서는 최초의 후세인의 협상을 벌이게될 전망이다. 유엔사무총장을지냈던 발트하임 오스트리아대통령도 지난 25일 바그다드로 후세인을 방문,이라크에 억류중인 오스트리아인들의 출국문제에 중점을 두긴 했으나 사태해결 노력을 시도했었다. 케야르총장의 중재시도에 때맞춰 후세인 요르단국왕이 26일 리비아를 첫 기착지로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 영국 서독 스페인 등 북아프리카 및 유럽국 순방길에 올랐고 바시르 수단 국가원수는 리비아특사와 함께 바그다드에서 후세인을 만났으며 이집트도 외무장관을 소련과 프랑스로 보내 평화적인 사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이 외교적 해결노력이 부쩍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대치상태가 장기화 되거나 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이전까지 배럴당 20달러를 밑돌았던 유가가 이미 30달러선을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고 조속한 평화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더욱 치솟아 세계적인 대공황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케야르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체류중인 2백만명에 가까운 외국인,특히 2만여명이 서방국 인질들의 신변안전확보가 시급하고 요르단 시리아 수단 등 친이라크적인 아랍국들은 이라크의 명분을 살려주면서 아랍권의 분열을 막기 위한 아랍자체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이들의 중재방향이 한가닥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철수시키는 대신 후세인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의 한 정부소식통은 『아랍 중재안에는 쿠웨이트 망명정부의 알사바국왕을 복귀시키도록 돼 있지 않다』고 말해 「시온주의자와 미 제국주의자 편에 선 부패한 왕정」을 폐지시켰다는 명분을 후세인편에 안겨주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교적 해결노력에 대한 서방국들의 시각은 아직 냉담하기만 하다. 미국은 유엔ㆍ이라크간 회담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라크군의 무조건 즉각 철수를 촉구한 유엔안보리의 결의내용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대처 영국총리도 협상에 의한 사태해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원상회복을 촉구했다. 이에대해 이라크도 사면초가에 몰린 나머지 서방국에 협상카드를 내밀고는 있지만 『영국에 의해 부당하게 독립국가로 분리된 쿠웨이트가 원래 이라크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해 당사국들이 입장이 이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당장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어느쪽도 일방적인 양보를 할만큼 다급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외교적 해결노력도 후세인 요르단국왕의 방미를 비롯한 초반의 중재노력처럼 무위로 끝날 공산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이라크가 앞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쿠웨이트 철수거부 ▲체면과 실익을 얻으면서 철수 ▲무조건 철수 ▲일전불사 등 4가지로 요약된다. 현재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방측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체제가 유가급등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붕괴될 가능성등 이라크쪽에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간다면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반환등 받아들여지지 않을조건에 연계시켜 쿠웨이트에서의 철수를 계속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서방국의 어려움 못지 않게 이라크의 식략난등 자체문제가 심각해질 경우에는 국경지대 유전 등 쿠웨이트영토 일부를 넘겨받고 쿠웨이트에서 왕정을 폐지하는 대신 자유총선에 의한 공화국을 수립시키는 등 실익과 체면을 세우면서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방국의 어려움에 비해 이라크의 곤경이 극에 달한다면 쿠웨이트에서의 철수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을 공격,아랍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길을 택할 최악의 경우도 가상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동지역의 평화에 「암적인 존재」인 후세인과 이라크의 군사력을 이번 기회에 무력화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는 있지만 향후 사태진전에 따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철수를 얻어낸다면 후세인 제거는 다음기회로 미루는 차선책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금 당장 외교적 해결노력이 결실을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미국이나 이라크가 아직은 힘겨루기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이 다같이 힘의 한계가 무엇이고 이번사태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어느정도는 할 수 있는 시점에 왔다는게 최근 부쩍 는 외교행보의 배경이라할 수 있다.
  • “화ㆍ전의 고빗길”… 미의 「중동카드」

    관심을 모았던 부시 미국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국왕의 회담이 성과없이 끝남에 따라 페르시아만 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이다. 세계의 이목이 중동에 쏠려 있는 가운데 미국의 지미 카터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박사는 16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페르시아만에서 미국의 진정한 이익」이란 글에서 이라크와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권고하고 있다. 반면 방한중인 미국의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은 본사와의 단독회견에서 이라크를 차제에 군사적으로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있는 두 인사의 중동사태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정리해 본다. ◎미 전 안보담당 보좌관 브레진스키의 「협상론」/미국의 최대임무는 대서방 원유 안정공급/소ㆍ일과 공동대응으로 평화적해결 바람직 쿠웨이트 위기에서 진정으로 미국에 중요한 국가이익은 페르시아만이 서방에 적정한 가격의 안정된 석유를 공급토록 하는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같은 이해관계를 위태롭게 했으며 미국이 즉각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이라크는 이 지역의 군림하는 국가로 부상하고 석유가격을 마음대로 정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80년 카터독트린선언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어떤 적대적인 국가가 페르시아만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데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부시대통령이 지난주 더 이상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파병을 결정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에 미국 혼자서라도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이같은 조치의 필요성에 대해 미국내에서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부시행정부는 확고함을 보여줌으로써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은 이같은 신뢰성 있는 방패역할을 바탕으로 이제 산유국들의 증산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도 적극적으로 증산채비를 갖추고 있고 중동 뿐 아니라 그외 지역의 우호적인 산유국들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수출부족분을 보충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미국이 선언한 또다른 정책목표 즉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토해내는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그것도 바람직한 목표라는 것은 분명하다. 힘이 더 센 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인 이웃국가를 무자비하게 강압적으로 합병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받아들여져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고 유엔이 비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점은 완전히 미국 혼자나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응이 아니라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국제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라크를 쿠웨이트로부터 축출할 수 있으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냉전후 최초의 위기에서 국제적인 협조를 해냈다는 찬사를 받을만한 일이다. 두가지 요구만 충족된다면 실제로 찬사를 받을 수 있다. 먼저 집단적인 행동이 진정으로 국제적인 행동이 되어야지 유엔 깃발아래 행동이 이루어지더라도 주로 미국이 주축이 되는 원정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말은 그렇게 해야 진지한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소련ㆍ일본 또는 다른 주요국가가 회피할 수 없으며 적어도 몇개 아랍국이 지속적으로 이라크에 압력을 가하는데 참여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이 균등하게 국제적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경제제재든 봉쇄든 간에 국제적인 압력은 이라크를 협상에 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지 공격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이라크를 압박하는 것이어야지 목을 조르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결국 그 목표는 2차세계대전 당시와 같이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해결이 되어야 한다. 이같은 점을 무시한다면 궁지에 몰린 이라크정부가 국제적 봉쇄조치를 아랍민중들에 의한 대미전쟁으로 변형시키는 필사의 노력을 벌이도록 할 것이고 요르단을 공격해 이스라엘의 대응을 촉발함으로써 매우 양상이 다른 폭발의 뇌관을 건드리는 셈이 된다. 이 문제에 조심하지 않으면 이라크를 쿠웨이트로부터 축출하는 군사비는 상당히 높아지게 되는데 미국국민들이 쿠웨이트왕을 다시 권좌에 앉히는 대가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받아들일지 의심스럽다. 게다가미국의 공격적인 자세는 상당한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란과 시리아는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나설 유혹을 받을 것이고 이스라엘정부도 일방적인 군사개입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라크는 분쟁을 확대해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면 중동전체가 화염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는 분쟁의 확대로 나타날 뿐 아니라 서방국가가 석유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의 축출이라는 2차적인 목표는 첫번째,그리고 중심적인 목표인 석유공급선을 위태롭게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이같은 점을 간과한 신경질적인 반응은 사담 후세인을 히틀러에 비교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오류를 범하게 한다. 두사람의 비교는 히틀러는 7천만 국민과 산업적으로 지구전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사담 후세인은 1천7백만 인구에 군수산업이나 식량생산도 없는 국가를 이끌고 있다는 차이점을 간과한데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단호하게,그러나 지각있게 행동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은 침략을 저지하는데 두어져야지 아랍의 대미 성전을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원활한 석유의 공급이 궁극적인 미국의 과제이며 쿠웨이트의 해방은 국제사회의 책임이다. 반드시 쿠웨이트가 해방돼야만 원활한 석유공급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전략문제연 부소장 테일러의 「전쟁론」/분쟁 장기화땐 「경제숨통죄기」실패 가능성/온건아랍 공존돕게 대 이라크 무력화 마땅 ­귀하는 안보문제,특히 동북아 및 중동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중동문제 전문가로서 이라크,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후세인이 왜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강점했다고 보는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이란과의 오랜 전쟁으로 피폐된 경제의 회생과 군비증강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나세르와 같은 아랍세계의 지도자가 되려는 개인적 야심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방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는 성공할 수 있겠는가. ▲경제제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지 나만의 예상이 아니라 슐레진저 전미 국방장관등 많은 CSIS연구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라크가 이번 경제봉쇄에 6개월이나 1년을 버틸 경우 유가의 급등으로 서방국가들의 고통이 심각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어느나라나 일본 혹은 그밖의 다른 나라가 될지는 모르지만 대 이라크 경제봉쇄를 해제하는 나라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시 미대통령은 중동사태에 적절히 대응해왔다고 보는가. ▲부시대통령은 미군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신속히 파견했고 유엔으로 하여금 경제제재를 취하게 하는 등 매우 훌륭히 대응해 왔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장기적인 전략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라크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어떤가. ▲매우 높다고 본다. 이라크가 이미 침략행위를 했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군을 공격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와의 무력충돌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이라크군을 공격할 경우 반미감정의 고조와 아랍민족주의를 유발하는 역효과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랍민족주의는 아랍인들을 결속시키는 유일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아랍민족주의의 촉발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아랍민족주의는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하지만 언제나 국가이익에 따라 분열돼 왔다. ­미국이 무력공격을 시도할 경우 이라크나 쿠웨이트에 있는 서방인들이 인질이 되지 않겠는가. ▲이 문제가 바로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매우 심각한 과제이다. ­쿠데타에 의한 후세인 정권의 자체붕괴 가능성은. ▲물론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난다해도 다음 지도자가 어떤 인물이 될지 알 수 없으며 또 다른 강경파 지도자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라크가 군사강국으로 남아 있는 한 지도자의 교체는 의미가 없다. ­그러면 중동위기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후세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이라크가 군사강국으로 중동의 힘의 균형을 깨고 있다는데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철수시킬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중동위기가 잠시 잠복기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후세인은 2년이나 3년후에 또다시 침략행위를 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은 이번 기회에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최첨단 장비를 자랑하는 미국의 공군과 해군 화력은 불과 5주 정도면 이라크의 군사ㆍ통신시설과 정유소 등 기간산업시설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이때 미국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경제봉쇄조치가 실패할 경우 유엔안보리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군사행동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 이라크 공격에 해군과 공군력이면 충분한가. ▲미국에서도 지금 이 문제가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해ㆍ공군력만으로도 이라크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끝까지 저항할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지상군의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앞으로의 중동전망은. ▲이번 중동사태를 계기로 이라크의 군사력은 약화될 것이다.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중동은 세계의 원유 공급원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온건 아랍국가들의 주도아래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원유가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 정해져야지 강경파 국가의 인위적 조작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이나 소련을 비롯,주요국가들은 중동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서로 협력해야 하며 장기적인 에너지전략과 함께 무분별한 무기판매로 또 다른 이라크가 등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사면초가” 후세인의 시간 벌기/왜 부시에 「친서」 보냈나

    ◎서방 봉쇄조치로 세 불리 판단/“일단 국제여론 피해보자” 속셈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측에 나란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나선 것은 세불리를 느낀 나머지 현재와 같은 극한 대치상황을 일단 모면하고 시간을 벌어들이는 한편 악화될 대로 악화된 국제여론을 이라크에 유리하도록 돌이켜 보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후세인은 미국 EC 일본 등 서방세계와 아랍국들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일치단결해 대이라크 경제제재및 무력해상봉쇄 조치로 목을 죄어옴에 따라 국제적 고립감과 미국과의 전쟁에 대한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고 식량난등 국내 반발의 위험마저 고조됨에 따라 현재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일단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12일 쿠웨이트 점령군 철수의 전제조건으로 사우디주둔 외국군 철수및 경제제재 해제와 팔레스타인점령 이스라엘군 철수등을 요구했던 후세인이 불과 며칠만에 미군이 사우디주둔 병력수를 현상태에서 더이상 증강시키지 않는다면 쿠웨이트로부터의 철군협상을 개시할 용의가 있고 사우디를 절대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저자세로 돌변한 것은 저간의 다급한 사정을 말해준다. 이란에 대한 평화협정 제의는 만일 서방세계와 협상이 무산돼 일전이 불가피할 경우 적어도 이라크를 제외하고는 중동최대의 군사대국인 이란만은 적으로 만들지 않고 사면초가 상황에서 벗어나 싸워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88년 휴전에 들어간 지 2년이 지났으나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소유권 분쟁과 이라크가 점령한 이란영토 반환문제에 이견을 보여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는 유일한 해상연결수단인 이 수로를 이란측과 공유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이란은 지난 75년 알제국 경협정대로 이 수로를 국경선으로 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같은 후세인의 제의에 대해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은 이미 수락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이란은 이제까지의 대이라크 강경규탄 입장에서 다소 선회,아랍세계의 자체해결및 원유증산 자제를 촉구하는등 이라크 간접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후세인의 친서제의가 다소 진전된 것이기는 하지만 쿠웨이트점령 이라크군의 선철수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후세인의 이번 제의는 이라크가 한풀 꺾이고 들어감으로써 그동안 팽팽히 맞서왔던 양측의 세력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이번 페르시아만 위기에 개입한 미국의 목표가 쿠웨이트 주권의 원상회복을 통한 단기적인 원유공급안정성 확보뿐 아니라 위험인물인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항구적인 중동평화를 꾀하는 데 있고 현재의 경제제재조치가 먹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서두를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남은 일은 후세인이 이대로 버티느냐,아니면 상당한 굴욕감을 감수하면서 선쿠웨이트 철수를 받아들여 서서히 무너지느냐 하는 두가지 선택뿐인 것 같다.
  • 아랍국 긴급 정상회담 배경과 전망

    ◎“중동 불끄기”… 아랍 결속의 시험대로/이라크군 철수ㆍ평화군 창설 논의/후세인 반발,타협안 제시 불투명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긴박한 중동위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긴급 아랍 정상회담이 10일 카이로에서 열렸다.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의 긴급제안에 의해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당초 9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하루 연기됐다. 이집트 관리들은 각국 대표들의 카이로 도착이 늦어져 연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 뿐 내면적으로는 각국간의 이견조정을 위한 막후협상의 필요성 때문에 연기된 것이다. 이집트ㆍ사우디아라비아ㆍ요르단ㆍ리비아 등 21개 아랍연맹 대부분의 나라가 참석하는 이번 정상회담은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중동사태 해결을 위한 실효성있는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바라크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파멸적인」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이 외세의 개입 없이 아랍인들 스스로가 중동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무바라크대통령은 중동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의 철수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원상회복 ▲쿠웨이트와 이라크간의 완충역할을 할 「아랍평화군」의 창설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같은 논의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이라크가 이미 쿠웨이트와의 합병을 선언했기 때문에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이라크군의 철수와 알 사바 쿠웨이트왕정의 복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아랍평화군의 창설문제에 대해서도 무바라크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아랍국가 정상들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의 군사력으로 이라크에 대응할 수 있는 힘과 결속력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때 아랍평화군의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더욱이 아랍평화군이 창설된다해도 강력한 군사강국인 이라크의 군사력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때 쿠웨이트가 가입돼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협회)는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있는 엄연한 안보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침공에 대한 어떤 군사적 대응조치도 하지 못했다. GCC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라크의 불법적인 침략행위에 대해 강력한 응징은 고사하고 비난성명조차 며칠 후에나 겨우 발표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무바라크대통령은 또 이라크와의 협상안으로 ▲쿠웨이트에서 자유선거를 통한 새정부 구성 ▲쿠웨이트와의 영토분쟁 해결과 이라크의 재정ㆍ전략적 이익을 인정하는 포괄적인 협상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라크가 마지막 순간에 아랍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라크가 이같은 「무바라크 구상」에 어느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라크가 반응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교소식통들은 후세인이 이미 쿠웨이트를 합병하는등 강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협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이라크가 정상회담에 참석한 것은 이보다는 오히려 미국을 비난하고 쿠웨이트 침공의 「정당성」을 강요하기 위한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라크대표단도 『이라크는 미국의 위협에 대해 아랍권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는 실제로 쿠웨이트 합병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미국을 강도높게 비난하며 사우디에 진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이라크의 강변에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랍국가는 물론이고 당초 이라크의 입장을 지지했던 요르단도 쿠웨이트의 합병이후 안보의 위협을 느껴 이미 반이라크 노선으로 돌아섰다. 아랍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라크는 이제 더이상 형제국이 아님을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아랍세계에서조차도 그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아랍국가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명목아래 정상회담에 들어갔으나 군사강국인 이라크의 야욕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우디에 이미 미군이 진주하고 서방 강대국들의 함대가 페르시아만에 속속 집결하는가 하면 유엔의 각종 대이라크 제재조치가 발효되는등 이라크에 대한 정치ㆍ군사ㆍ경제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번 회담이 열리고 있어서 이라크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아랍국가들은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라크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낼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대이라크 경제봉쇄강화와 더나아가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쿠웨이트,괴뢰ㆍ망명정부 대립 가능성/이라크 점령이후 어떻게 되나

    ◎얼굴없는 급조정부 통치력 의문 괴뢰정부/국제적 지원얻어 영토회복 총력 망명정부/국민들도 망명왕정 지지… 국외투쟁 장기화될듯 불과 다섯시간만에 정부가 무너져 버린 쿠웨이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쿠웨이트는 면적 1만7천8백㎢에 인구는 1백80만명. 이 가운데 쿠웨이트인은 불과 70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아랍계,혹은 스리랑카 등지로부터 취업 입국한 외국인으로 구성된 작은 나라이지만 1천억달러로 추산되는 대외자산과 9백45억배럴에 달하는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부국이다. 쿠웨이트산 석유의 공급량과 대외자산운용에 따라 세계석유시장과 금융시장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쿠웨이트 정정의 향방은 주목되고 있다. 쿠웨이트의 앞날을 좌우할 요소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이라크의 점령정책,둘째 미국ㆍ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들의 반응,셋째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투쟁 계속」을 다짐하고 있는 국왕세력의 움직임 등이다. 이라크는 점령 몇시간만에 「신쿠웨이트 자유임시정부」라는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워 성명을 발표케 함으로써 쿠웨이트정부 대신 괴뢰정권을 세워 이들을 통한 문제해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꼭두각시정부는 2일 셰이크 자비르 알 아마드 알 사바국왕 및 그의 일족인 총리(왕세자)ㆍ전왕ㆍ재무장관ㆍ국방장관의 재산을 몰수하고 의회를 해산시켰다. 또 국경문제는 이라크와 「형제애」에 기초해 해결하겠다고 선언,이라크의 뜻대로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제원유가 상승을 꾀하고 있는 이라크정부가 쿠웨이트의 석유생산을 일방적으로 감축시키려 할 가능성도 크다. 이 꼭두각시정부는 아직은 구성인물이 단 한명도 밝혀지지 않은 실체없는 정부. 이라크의 무력지원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구성된다 하더라도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정부나 베트남침공하에 세워진 캄보디아 프놈펜정부처럼 국제적 고립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이구동성으로 이라크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도 쿠웨이트의 앞날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은 이라크의 자국내 자산을동결하는 한편 꼭두각시정부가 인출하지 못하도록 쿠웨이트자산도 동결시켰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조치로 쿠웨이트는 1천억달러가 넘는 해외자산의 상당부분을 당분간 운용하기 어렵게 됐다. 따라서 이라크의 압력하에 석유생산이 감축되고 해외자산이 동결되게 된다면 쿠웨이트의 경제사정은 현저히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우디로 피신한 국왕등은 쿠웨이트가 가까운 접경지역에 머물면서 계속 투쟁할 것을 다짐하고 외국의 군사개입을 호소하고 있다. 쿠웨이트 왕가는 2백34년전 무력이 아닌 합의에 의해 왕가를 창설,쿠웨이트를 다스려 왔으며 아랍권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언론 자유와 의회정치를 허용한 전통을 갖고 있다. 지난 75년 석유국유화를 주장하는 아랍민족주의 운동(ANM)이 결성되고 83,86,87년 친이란세력이 폭탄테러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으며 86년에는 의회가 해산되는 등 정정불안을 겪기도 했지만 쿠웨이트국민의 반왕정감정은 높지 않다. 따라서 국왕이 이끄는 망명정부에 대한 쿠웨이트국민들의 지지는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에서도 꼭두각시정부보다는 국왕의 망명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분간 쿠웨이트는 실질적 통치행위는 하지만 정통성은 결여된 친이라크 괴뢰정부와 국왕의 망명정부가 대립하는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 포연속에 사라진 중동 평화구도/유정렬 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보고… ①이라크 혁명평의회는 『쿠웨이트의 혁명세력이 알 사바 국왕정부를 전복했으며 이 혁명세력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진입시켰다. 이라크군은 사태정상화 여부에 따라 수일 또는 수준안에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이 명분하에 지난 2일 새벽에 탱크 3백50대를 앞세운 14개 사단을 투입해서 수시간내에 쿠웨이트의 주요 정부청사와 왕궁을 점령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쿠웨이트 자유임시정부」로 알려진 새 정부의 영도자가 알 사바 국왕의 가족중의 한사람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란­이라크전 악몽에 이란­이라크 전쟁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의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한 저명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는 「1984」에 미소간의 제3차 세계대전이 이 페르시아만에서 「석유」를 애워싸고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1979년에 한 적도 있으니,이 지역은 전쟁의 화산이 아닐 수 없다. 이 학자는 1984년을 1914년에 흥미롭게 비교하였다. 이번 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당사국과 주변 아랍국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면 지난달 17일과 18일에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과잉생산으로 원유가를 하락시키고 있으며 쿠웨이트가 국경분쟁지역에서 24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채굴해 갔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쿠웨이트는 이에 맞서 지난달 20일에 이라크의 비난은 이란­이라크전비의 채권국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중재에 나선 이집트의 무바라크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쿠웨이트 분쟁해결 회담개최계획을 7월24일에 발표하였다.(분쟁 발발후에 무바라크대통령이 이라크방문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따고 한다. 이 분쟁해결에 가장 유력한 입장에 있는 아랍국가는 이집트이다) 지난달 26일에는 제네바에서 OPEC 석유장관회의가 개최되어 유가인상에 합의했는데 이때 이라크의 강력한 주장이 작용됐었다. 7월31일에는 이라크의 대군이 쿠웨이트국경에 집결되는 가운데 제다에서 양국간의 회담이 개최됐으나 8월2일에 이 회담은 결렬되고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라크,영유권을 주장 ②7월3일의 제다회담을 앞두고 이라크는 국경분쟁지역에서 훔쳐간 원유의 대가로 수십억달러를 쿠웨이트는 변상하고 양국간의 영토분쟁에 관한 추가 회담을 개최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초강경 입장을 표명,이를 쿠웨이트에 강요하였다. 이 양국간의 국경선은 획정되어 있지 않아 과거에도 문제가 되었는데 양국이 오토만제국 치하에 있다 해방되고,또 오늘의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가형성후에도 국경선획정의 필요성을 못느껴 왔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인들이 이 분쟁지역을 드나들면서 석유를 채굴해 갔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이란전 발발후부터 이 지대에서 쿠웨이트의 석유 채굴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하며,1983년까지 계속된 쿠웨이트의이라크에 대한 전비지원으로 문제가 잠복해 있다. 전후에 쿠웨이트의 부채상환 요구가 이라크를 자극한 면도 있다. 1984년에 이라크의 대외채무는 약 60억달러이며 쿠웨이트를 포함한 아랍제국으로부터의 무이자 원조를 포함하면 약 3백억달러에 이르렀다. 쿠웨이트가 독립이후 이라크 역대 정부는 계속 쿠웨이트에 대한이라크의 영유권을 주장해 왔으며 한때는 영국군이,또 한때는 아랍연맹의 이집트·사우디·요르단 및 수단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쿠웨이트 안보를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 1973년에는 이라크군이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군 초소들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으며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이라크는 와르바와 부비얀 두 섬에 대한 영유권도 계속 주장하였다. ③이번 이라크의 군사행동의 원인중의 하나는 국경문제 해결을 통한 세력확장이라는 정치적인 욕심이라고 본다.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의 종언이 몰고 온 이란­이라크전쟁도 사트 알 아랍수로의 영유권문제가 근인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이번의 쿠웨이트 침공도 설명될 수 있다. 팔레비의 몰락으로 사라진 페르시아만 지역의 패권의 재형성 과정의 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다른 원인은 경제·재정적인 문제로 수백억에 달하는 대외채무와 전후복구에 필요한 재원조달과 경제난 해소이다. 이라크는 연초에 배럴당 20달러이었던 유가가 6월말 13달러60센트로 하락한 책임을 쿠웨이트에 돌리고 있으며,전비로쿠웨이트에 진 채무는 약 2백억달러에 이른다. 쿠웨이트는 이 채권을 포기할 의사를 밝히면서 국경분쟁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지난주 OPEC회의도 이라크의 압력을 받아들여 유가를 배럴당 3달러씩 인상시킨 것도 이라크의 재정난 해결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력사용은 자제해야 중요한 것은 페르시아,나아가서는 중동지역의 평화구조의 구축문제이다. 누구를 주축으로 어떤 관계와 질서가 편성 유지되어야 하느냐가 아직도 미궁에 처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GCC)가 있고 또 아랍연맹도 있으며 국제연합도 있어 각기 평화회복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당사자들간의 중재에 의한 정치협상이 시도되어야 되겠다. 무력사용은 자타가 부인하며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우리는 상호존중해야 될 것이다.
  • 쿠웨이트 이라크 어떤 나라인가

    ◎전쟁외채 6백억달러… 1백만의 대군 ▷이라크◁ ▲영토=면적은 43만8천3백㎢로 북부 산악지대와 남부 습지로 구성. 이라크를 둘러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남동쪽에서 만나 전장 1백92㎞의 샤트 알 아랍 수로를 형성,걸프만으로 흐르고 있다. 이라크는 터키(북),이란(동),걸프만(동남쪽),사우디아라비아(남),요르단과 시리아(서)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지난 79년 사담 후세인대통령 집권후 군사력 증강 추진. 현재 병력수는 1백만명 가량으로 의무병역제. 18세이상 남자 21∼24개월 복무. 육군 95만5천명(민병 48만명 포함),군단 7,기갑사단 7,기계화사단 7,주력전차 5천5백대,해군 5천명,프리깃함 5척,초계정 20척,공군 4만명,미그기 등 5백13대 작전기 보유. ▲인구=1천6백만명중 다수가 시아파 회교도이나 집권세력은 수니파. 그밖에 기독교마을과 북부지방에 3백5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 반군 거주지역이 존재. 공용어는 아랍어로 인구의 81%가 사용. 15%는 쿠르드어 사용. 수도는 바그다드로 4백60만명 거주. ▲경제=석유비축량은 1천억배럴. 80∼88년까지의 대이란전으로 석유수출 격감. 그러나 터키와 사우디 통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으며 현재는 하루 3백만배럴 수준으로 회복. 대이란전으로 6백억∼7백억달러의 외채 부담. ▲역사=16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6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21년 영국의 통제를 받는 왕국이 됨. 58년 7월14일 카셈중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독립. 63년 바트당의 압둘 살람 아레프가 카셈을 암살하고 대통령에 취임,이어 그의 동생 라만 아레프 참모총장이 대통령직 승계. 68년 바트당 온건파의 쿠데타로 바크르장군이 대통령에 취임. 바크르 정부하에서 69년부터 부통령을 지낸 사담 후세인이 79년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 ◎석유,하루 백만배럴 생산… 병력 2만명 ▷쿠웨이트◁ ▲영토=1만7천8백19㎢의 영토를 갖고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이라크,남쪽과 서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군사력=병역제도는 2년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학생에 대해서는 1년 복무를 인정하고 있다. 89년 현재 1만6천명의 군병력과 2백8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2천2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라주 F1­C전투기 25대,스카이호크공격기 30대,연습기 1대,헬기 40대,수송기 6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호크 지대공미사일도 갖추고 있다. 해군의 경우 2천1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사일 적재함정및 해안순찰선을 포함,약 1백척의 선박을 갖고 있다. ▲인구=1백70만 쿠웨이트 인구중 4분의1이 수도 쿠웨이트와 그 인근에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상을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랍인이며 팔레스타인인도 30만명이 있다.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수니파 회교도이지만 인구의 30%가량은 시아파를 믿고 있다. 이란 시아파의 후손들은 약 15만명 정도이다. 알사바 가문이 1756년 아라비아 오지에서 이곳에 이주,정착한 후 쿠웨이트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인구의 70%이상이 공식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0%는 쿠르드어,4%는 이란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경제=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쿠웨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이다. 국토의 1%만이 개간돼 있는 쿠웨이트의 지난 88년 개인소득은 1만3천6백80달러이며 89년 상반기(1∼6월) 석유생산량은 하루 1백3만7천배럴이었다. ▲역사=영국이 1899년 이 지역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이전에는 몽고인,아랍 칼리프,그리고 터키 오토만제국이 번갈아가며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 지역을 지배해 왔다.〈연합〉
  • 「분쟁요소」제거… 통독 스케줄 순항/서독­파「국경문제」합의의 뜻

    ◎서독,「오데르­나이세 국경선」 인정 확약/국제 정지작업 매듭… 내년 통일 가시화 서독과 폴란드간의 국경문제가 타결됨으로써 연내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동ㆍ서독통일작업은 또 하나의 큰 진전을 이뤄냈다.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17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2+4회담」(동ㆍ서독+미영불소외무장관 참석)은 현 동독과 폴란드간의 경계인 오데르 나이세 국경을 독일의 통일이후에도 변경없이 그대로 인정한다는 합의를 도출해 냈다. 한쪽 당사자 자격으로 이날 회담에 초청된 크리츠토프 스쿠비스체브스키 폴란드외무장관은 회담결과에 대만족을 표시했으며 다른 참석자들도 역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날 회담은 또 연내실현을 목표로 추진중인 서독측의 「통독스케줄」을 인정키로 확인했다. 이로써 소련의 「나토속통일」수용조치와 함께 동ㆍ서독통일을 위한 주변정비 작업은 마무리 손질까지 끝냈으며 돌발사태가 없는한 동ㆍ서독의 완전통일이 금년안에 차질없이 실현될 수 있는 국제적 분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날 확인된 오데르 나이세국경선은 2차대전직후 포츠담 선언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서 과거 독일땅이었던 포메라니아와 실레시아 등지의 10만3천㎢가 폴란드영토로 편입됨으로써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특히 당사국인 폴란드는 통독으로 인해 거대독일이 출현할 경우 현영토의 3분의 1이 관련되는 국경문제에 대한 분쟁이 발생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통독작업이 구체화됨에 따라 현국경선의 사전보장조치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서독측은 당초 오데르 나이세 국경을 지키겠다는 국제적 약속과 이를 뒷바침할 협정을 체결하자는 폴란드의 요구를 묵살한채 애매한 태도를 보여 왔고 이같은 자세는 폴란드는 물론 통독 자체를 달갑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는 유럽국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같이 국경문제가 통일작업에 방해요소로 부각되자 동서독의회는 지난달 경제ㆍ사회통합 협정을 비준하면서 함께 현 국경을 보장한다는 선언을 채택했다. 아울러 헬무트 콜수상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거듭 확인했고 지난번 「2+4회담」에서 프랑스의 제의를 받아들여 폴란드를 초청키로 결정,이번 파리회담에서 양쪽 당사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통독후에도 오데르 나이세 현 국경선을 보장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비단 폴란드에만 관계되는 사안이 아니다. 이 국경선의 변경은 2차대전 이후에 확정된 유럽전역 각국간의 국경문제에 직결되며 특히 통일독일이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현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릴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소련 등 독일과의 접경국은 물론 여타 유럽국가들이 이 문제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7일의 회담에서 서독측이 현 국경보장 의사를 거듭 확인한 것은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통독작업이 수월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국제적 약속을 요구하는 폴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유럽국가들을 안심시켜 연내 통일을 무리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진다. 16일의 콜­고르바초프회담에서는 「통일독일은 동ㆍ서독과 베를린을 포함한다」라고 확인했지만 17일 파리회담은 이를 더 구체화시켜 국경문제까지 확실하게못박은 셈이다. 이날의 합의에 따라 서독과 폴란드는 국경문제에 대한 협약과 우호친선협정 체결 준비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 국경선 유지에 대한 법적인 지위보장을 위해 협약체결이 필요하다는 폴란드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다. 폴란드의 입장에서는 과거 독일 영토인 현 폴란드 땅의 일부에 대한 회복,병합원칙을 담고 있는 서독연방헌법 관련조항이 살아있는한 구두로 하는 약속은 믿을만한게 못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한편 폴란드측은 이번 회담에서 서독측에 대해 2차대전 전쟁 피해 배상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6백만명정도가 희생된 폴란드측의 전쟁피해 배상요구는 그동안 국경문제와 관련하여 두나라간의 현안으로 걸려있는 문제이다. 양국 외무장관사이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서독이 대폴란드 경제원조회담 개최에 합의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면 이 역시 적절한 타결책이 마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회담에서 서독측이 거론한 과거 독일영토였던 폴란드 땅에 사는 게르만민족 보호요구도 함께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리회담의 합의사항은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제4차 「2+4회담」등을 거쳐 보다 구체화된뒤 11월19.20일 파리에서 개최될 예정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공인되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 연내 정치통합으로 가는 길(이제 독일은 「하나」:6ㆍ끝)

    ◎4전승국등 이해관계 조정이 과제/대국화 경계… 미ㆍ소,「세력권 묶어두기」고집/파도 국경문제 의구심,새 조약체결 요구/콜,주변국 불안 씻기 분주… 내주 방소땐 거액 차관 『아직 근무수칙이 바뀐게 없기 때문입니다』 「7ㆍ1경제통합조치」를 계기로 용도폐지된 검문소에 소련군초병이 남아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져 다가가 물어 봤으나 이 병사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서베를린과 동독의 포츠담을 이어주는 글리니케다리 검문소의 서방측 검문요원들은 모두 철수했으나 소련군측은 계속해서 근무를 시키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미ㆍ영ㆍ불ㆍ소등 승전 4개국 외무장관들의 박수를 받으며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체크 포인트 찰리 검문소 자리에도 건물은 없어졌으나 미국의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달라진게 없다는 소련군병사의 얘기나 베를린 하늘에 나부끼고 있는 성조기는 바로 동서독의 통일문제에 얽힌 복잡한 국제관계의 일면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협정의 발효로 지난 1일부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구현한 양독은 올해안에 완전통일을 이룩한다는 공동목표를 설정해 놓고 마지막 일정인 정치통합작업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금년내에 통일완수를 위한 전독총선을 실시하자는 서독측의 제의에 확답을 피해 오던 동독은 지난 2일 서독측의 요구를 받아 들이면서 오는 12월2일 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의,해가 가기전에 통일독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치통합일정에는 국제관계 조정이라는 필수적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들어 있다. 동서독의 통일문제가 대두되자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독일민족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면서 짐짓 관대하고 아량있어 보이는 태도를 나타내며 관여치 않겠다는 말을 해 왔다. 그러나 양독의 통일을 단순한 독일민족 내부문제로만 보는 유럽사람들은 거의 없다. 분단된 동서독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바로 「거대독일」의 탄생을 의미하며 그것은 국제정치역학의 대변혁을 초래한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시각이다. 게르만민족의 팽창주의에 숱한 시련을 겪어온 주변 나라들은 단단히 죄였던 고삐가 풀리는 상태로 밖에 볼 수 없는 통독에 환영의 박수만을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 찬성하고 축하하기는 커녕 분단상태가 가능한 한 더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데 더 솔직한 그들의 심정일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은 2차대전전승국들과의 관계. 이들의 승인이 없으면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의 주권회복이 불가능하며 결국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미ㆍ영ㆍ불 등 서방 측 전승국들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소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방측의 입장은 통일독일을 NATO에 묶어 둠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가함과 함께 집단통제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빠진 NATO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소련은 어떤 경우라도 통일독일이 소련의 안보에 위험을 주어서는 안된다는게 기본 입장이며 이의 해결책으로 NATO 및바르샤바 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 방법을 제의하기로 했었다. 역사의 유물로 밀려난 동서독 국경검문소에 계속해서 근무자를 배치하고 있는 소련은 병사의 말대로 통독문제와 관련하여 아직 결정적인 자세의 전환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평소 『소련을 무시한 통일은 안할 것』을 강조해온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다음 주중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그의 방소길에는 이례적으로 테오 바이겔 재무장관이 수행한다. 서방언론들은 『바이겔장관의 가방에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살 때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며칠전 서독정부가 소련에 3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일방적인 발표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본정부는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을 통일승인의 값으로 소련에 지불하려는 것 같다고 현지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NATO 개혁용의 표명이나 이미 정치기구로 탈바꿈하기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개혁결정등은 통독을 위한 호재로 작용할 것임이틀림없다. 통독작업 진행과정에서 걸림돌 역할을 해오던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지난달 22일 동서독 의회가 『동서독은 현재 또는 미래에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표면적으로는 잠잠해 졌다. 그러나 당사국인 폴란드는 조약체결을 희망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동서독이 보여온 애매한 태도때문에 주변나라들은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밖에도 통독은 결국 동서독간의 「국경선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므로 해서 동독지역은 자동적으로 EC(유럽공동체)가입효과를 취하게 되지만 동독과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과의 관계는 미묘한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현재의 동서독 정부는 의무와 약속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통일 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 당사국들이 확신감을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소련을 포함한 전승국들의 입장,주변나라들의 이해와 협조등 국제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앞으로 남은 통독완결작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 대만 새대륙정책의 저변(특파원 코너)

    ◎경제력 바탕,북경에 “우호의 손짓”/관광ㆍ친지방문 등 민간교류도 적극도모/통일보다는 정치ㆍ군사적 긴장해소 포석 대만이 제8대 이등휘총통의 취임을 계기로 적극적인 대륙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 이총통은 지난 20일의 취임식과 22일 취임후 처음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중화민국 대만의 입장에선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대중국 정책방안들을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원감란시기 임시조례」의 폐기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듣기에 생소한 이 조례는 대륙의 국ㆍ공내전에서 국민당 장개석총통의 패색이 짙어진 1948년 만든 것으로 국민당의 중화민국정부에 대항하는 모택동공산당을 『모든 국민이 동원돼 진압해야 마땅한 반란조직』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1912년 중화민국을 세운 손문의 뒤를 이어 대권을 쥐게 됐던 장개석의 입장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또 공산당이 대륙에서 존재하는 한 이를 반란이 계속되는 기간으로 보고 총통에게 비상조치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종신제가 가능토록 한게 이 조례의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총통이 이 조례의 폐기를 선언한 것은 북경정권이 더이상 반란단체가 아니며 때문에 앞으론 합법성을 인정하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반란단체가 아닌 이상 대만이 구태여 본토수복의 꿈을 간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나타내고 있다. 이총통은 또 지금까지 중공이라 부르던 북경정권을 그들의 정식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호칭했고 상호 언론기관 특파원을 상주시킬 것 등을 제의하면서 앞으로 중국과 대만이 동등한 입장에서 정부대 정부의 대화를 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이러한 대만의 입장은 결코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통일논의를 위해선 상호 대등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평소 자신의 소신을 거듭 밝혔다. 이총통은 이밖에 대만의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대륙정책에 호응하는 표시로 중국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그들 해안지방의 군사시설을 대륙 안쪽 3백㎞까지 철수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양안의 민간교류 확대를 위해 대만은 친지방문 뿐 아니라 단순한관광목적인 경우에도 대륙행을 허가키로 하고 공산당원인 대륙인이 대만방문을 원하면 적정한 심사를 통해 입국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대만은 또 「동원감란시기 임시조례」의 폐기선언을 했으므로 과거 반란분자인 공산당원에게 자수절차를 생략하는 특혜(?)를 준다는 말도 했다. 어떻게 보면 조그만 섬만을 차지하고 있는 처지에서 가당치도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중화민국만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내세웠던 대만으로선 체면을 손상시키면서까지 그들 입장을 후퇴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측은 이같은 대만의 견해표명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 다만 정부대 정부의 대화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경정권이 중국대륙전체를 대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총통의 조례폐기 선언등은 한낱 말장난 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측은 대만이 어디까지나 그들 영토의 일부이기 때문에 「1국2체제」방식의 통일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대 정부가 아닌 공산당대 국민당의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국민당도 한개의 정당으로 인정,공산당영도하의 다당제를 하고 대만의 자본주의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총통은 정부대 정부의 대화를 통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선 이총통이 내세우는 「1국2정부」는 전혀 현실성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대만측의 실제 저의는 통일보다는 양안사이의 군사ㆍ정치적 긴장감을 완전히 해소시켜 대만의 경제와 사회복지수준을 더욱 높이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이 둘로 갈라진 현실을 북경측이 일단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될 경우 통일논의에 있어 대등한 입장이 되는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대만의 위상이 높아지는등 이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만은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벌어놓은 뒤 11억 중국 대륙주민들이 모두 크게 부러워하는 모범생의 위치에서 통일문제의 주도권을 잡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홍콩=우홍제특파원〉
  • 리투아니아 첫 비공산 대통령/사주디스 의장 란츠베르기스 선출

    ◎곧 독립선언 결의안 채택 【빌나 AP UPI 연합 특약】 리투아니아공화국 독립을 주도한 인민조직 사주디스의장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58)가 11일 공화국 인민대표대회(의회)에서 리투아니아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란츠베르기스는 이로써 소련의 15개공화국중 최초의 비공산당출신 공화국 지도자가 됐다. 란츠베르기스는 이날 실시된 투표에서 총1백33명중 91표를 획득,38표를 얻는 데 그친 현리투아니아공화국 공산당제1서기 알기르라스 브라자우스가스를 쉽게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식명칭은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이다. 란츠베르기스의 당선이 발표되자 의원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그의 대통령피선을 축하했다고 한 소식통이 말했다. 란츠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은 결코 무효화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리투아니아주둔 소련군의 감축을 주장했다. 【빌나 UPI 연합 특약】 소련의 리투아니아공화국 인민대표대회가 11일 「리투아니아 국가지위회복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독립을 선언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리투아니아 인민대표대회는 10일 하오9시 개회,의사절차를 마련했는데 대표대회는 이 절차에 따라 11일 결의안을 채택한다. 리투아니아 인민전선 사주디스소속의원 비르기지우스 세파이투스는 이날 대표대회결의에는 ▲공화국 명칭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에서 리투아니아공화국으로의 변경 ▲1938년 헌법의 회복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결의안은 또 「리투아니아 최고회의가 리투아니아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리투아니아 영토는 불가분이고 다른 나라의 헌법은 리투아니아영토내에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결의안에는 이밖에 모든 인종그룹의 인권보장내용과 1975년 헬싱키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선언한 현 유럽국경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다. 그러나 「독립선언」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는 모스크바 당국과의 분리 협상을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기대와 불안… 「통독」움직임의 반향

    ◎무너지는 동독… 일어서는 「거대 독일」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에 힘입은 통독논의는 오는 18일 동독의 자유총선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단계로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들,특히 독일과 인접한 유럽각국은 거대독일의 출현을 우려,통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분단극복이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판단,벙어리 냉가슴앓이를 간직한채 통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통독 움직임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배경및 전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시각/초강대국화 우려,나토잔류 강력 희망/고르비 실각땐 통일행보 지연 가능성/국민열망이 원동력… “올해가 재결합 완성의 해”인식 지난2월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돌며 통독외교를 벌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양독의 신속한 통일만이 동독의 경제적ㆍ정치적 붕괴와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사태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콜총리의 「동독붕괴」발언은 서독측의 정치적 주장이기보다는 객관적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동독은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독 경제위기감 팽배 동독의 미래에 대한 동독인들의 불안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작년에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올들어 지난 두달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11만5천명에 달한다. 1월의 하루 1천8백명에서 2월엔 하루 2천2백5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독일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내년엔 다소 고개를 숙이겠지만 앞으로도 동독 인구 1천6백만명 가운데 1백80만명 이상이 더 빠져 나가 동독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독 사회의 공동화 실상은 작년 11월10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동독군이 잘 대변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동독군은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져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나토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나토측 추정에 따르면 동독국가인민군(NPA)의 병력 수는 작년의 17만3천명에서 지금은 9만명에 불과하다. 동독경제는 지금 파국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숙련 노동 인력의 엑소더스로 사회 각 분야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살쾡이 파업(노동조합의 일부가 본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멋대로 벌이는 파업)ㆍ작업정지ㆍ태업 등의 만연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마르크화간의 공정 환율은 1대1이나 서베를린 암시장에선 10대1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독경제에 절망과 무질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콜 총리가 지난 2월 제의한 「양독의 통화 단일화」는 1차적으로 동독인 엑소더스의 저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날로 시세가 떨어지는 동독의 「장난감」 돈을 서독의 안정되고 태환성 있는 통화로 바꿔주면,그것도 1대1의 공정 환율로 바꿔주면 동독인들이 동독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돼 엑소더스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통화 단일화」의 논리라고 타임지는 풀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3분의2와 서독인의 4분의3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분단된 독일 국민의 이같은 통일 열망이 통독의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동독을 붕괴의 위기로 몰아가고 서독의 사회복지에 중압감을 안겨주고 있는 동독 주민의 끊임없는 엑소더스야말로 현실적으로 양독의 신속한 통일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풀이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얼마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통일이 1990년에 완성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년내 통일을 예견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통합과 통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을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독일통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당초 금년 5월로 예정됐던 동독 총선때까지는 진지한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동독정부가 총선일을 3월18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자 사태의 급박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동독지도부가 5월까지 나라를 지탱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총선일을 당긴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3월 동독 총선에선 통일 지지 정당들이 압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제 독일통일은 가능성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로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부시 정부는 국제적인 통독 협상방안을 서둘러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13일 오타와 회담에서 두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 영 불 소 4개국간에 합의된 통독협상의 틀 「2+4」가 그것이다. 「2+4」방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이 통일의 경제적 정치적 법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 다음에 두 독일과 4강이 만나서 통일된 독일의 병력 규모라든가 나토와의 관계등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 금년 초까지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나치와의 전쟁에서 2천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소련이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인 7천7백만명의 재결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르바초프는지난 2월초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브의 독일 중립화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서독 총리 콜의 방소를 받아들여 『통독은 독일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의 비대한 힘과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나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 독일의 나토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는 「경제거인」 독일을 고립시켜 강대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어 고르바초프도 결국 독일의 나토 잔류를 받아 들일것으로 워싱턴은 내다보고 있다. ○통독협상 방안 마련중 콜이 이끄는 서독의 기민당 정권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와 독일 통일을 확정시켜야 한다는 방침 아래 서독의 온 체중을 실어 통독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콜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 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이 주둔해서는 안된다는 방안을내놓고 있다. 서독은 또 과도기간중 독일 동부에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인종분규 등에 직면한 고르바초프가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만일 그가 실각할 경우 그의 대담한 동서긴장완화정책에 따라 급격히 빨라진 통독 행보도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시각/동독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통독」불변/국제적 지위ㆍ국경ㆍEC와의 관계 촉각/양독의 경제격차가 기폭제… “민족주의 망령 부활”긴장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독 통일 작업을 바라보는 서유럽 나라들의 요즈음 모습은 엉거주춤한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묘책도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질 않는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민족의 소리를 외면할 처지가 못되며,자국의 이해에 관련된다 하여 민족자결의 명분에 반하는 처신을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 변화가 촉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독에심한 거부감을 가져오던 서유럽나라들이 어느새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독총선이 끝난 뒤에 곧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든지,오는 7월1일부터는 서독 돈이 동독에서도 통용되는 등 통화 통합과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성급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가능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통독작업이 급진전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말할것도 없이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 대전의 결과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두쪽으로 갈라졌으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신호였습니다. 이러한 대결 구조가 존속되는 한 독일의 분단상황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반대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분단국의 재통일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런던 국제관계연구소의 토머스 펠러만 박사는 독일의 재통일 문제를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동서간 대립과 대결구조의 해소는 분단민족의 통합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반도라 해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흐름이 외면해 지나칠 이유가 없으며 당사자들(남북한 지칭)이 이같은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할때 분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같이 분단국 재통일 문제의 부각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의 견해이지만 이에 곁들여 『동독의 소멸』현상을 중요한 모멘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호네커정권이 무너지면서 동독의 공산당은 물론 과거의 동독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독은 책임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구체적인 통일 논의는 오는 18일의 동독 총선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총선뒤 동독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첫 과제는 서독의 통일 스케줄에 자신들의 일정표를 짜맞추는 일이 될것입니다』 파리사회과학연구소의 코르넬리우스 교수는 줄곧 두개의 독일을 고집해 오던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통일논의의 최대 장애가 제거된 셈이며 이로인해 국민들의 통일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서독이 대화할 책임있는 상대가 없는 때를 역으로 통일논의의 최적기로 삼아 기회를 놓칠세라 안팎으로 뛰어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붕괴로 새 국면 이와함께 동서독간에 빚어진 경제ㆍ사회적 격차가 통일작업을 재촉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헝가리가 국경철조망을 걷어 치운 뒤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 현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되어 요즈음도 하루 2천∼3천명이 서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들은 체제나 이념문제를 떠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보다 잘사는 형제들 곁으로 향하는 대열이다. 『서독으로의 탈출 대열이 보여주듯 파탄지경에 이른 동독경제는 서독경제의 도움이 절실하며 칼자루를 쥔 서독의 통일논의에 응할수 밖에 없는 상황』(불 리베라시옹지)이 통독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그동안 동서독이 꾸준히 힘기울여온 통일기반 조성 작업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 의한 대동독 경제원조,인적교류,문화ㆍ체육교류등을 통한 민족동질성의 고취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통일논의가 동서독 국민들에게 다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와같은 통독논의의 가속화에 대한 원인분석 뒤에 따르는 관심은 자연히 통일독일의 지위와 국경보장문제, EC(구주공동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독 페이스 불가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날 곡괭이를 들고 장벽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신문을 통해 보면서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알랭 투랜박사(파리 국제전략연구소)는 많은 유럽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한맺힌 통일염원의 표출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망령의 부활」을 느꼈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거나 중부유럽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싸여있다. 이같은 통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연유하는 것이 요즈음 초점이 되고 있는 오데르­나이세국경선 선보장문제이며 헬싱키협약 준수의무 요구나 EC통합범위 안에서의 통독작업 진행 주장 등이다. 콜총리가 6일 오데르­나이세 국경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통독을 보는 유럽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씻은듯 가셔질리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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