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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연평도 포격 5년 만에 반토막 난 정부 지원

    북한이 연평도에 기습적인 포격을 한 게 어제로 5년이 됐다. 북한은 당시 170여발의 포탄을 발사해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북한이 우리 영토에 직접적인 포격을 가한 것은 6·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8개월 만의 일이라 국민들은 충격이 더 컸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명백한 무력도발로 국민들은 국가 안보에는 한 치의 허점도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부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대대적인 전력 증강과 서해 5도 주민들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 계획의 절반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우려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연평도 포격 사건 이듬해인 2011년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을 마련했다. 10년 동안 78개 사업에 민간 자본을 포함해 9109억원을 들여 생활안정자금 등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올해까지 지원 액수는 2583억원으로 목표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정부 지원 예산도 첫해인 2011년 426억원에서 올해는 232억원으로 5년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됐다. 관광객도 줄면서 서해 5도를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헛구호가 아니냐는 비난도 크다. 전력 증강도 충분치 않다. 연평도 포격 이후 K9 자주포 배치를 3배 이상 늘렸지만 서북 도서에서는 6·25 때 쓰던 전차의 포탑을 활용한 해안포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섬 상륙작전을 시도하면 제대로 막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북한군 동태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 2012년까지 도입하려던 전술 비행선도 사업이 좌초돼 올해 다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또 서북 도서에 민간인 대피소가 모두 42곳인데, 북한의 화생방 공격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해 줄 가스여과기를 갖춘 곳은 5곳밖에 없는 등 대피시설도 부실하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일이다. 8·25 합의 이후 오는 26일 판문점에서 남북이 당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하는 등 남북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남북 장관급 회담이 8년 만에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안보태세와 관련해서는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연평도 도발 5주년을 서북 도서 우리 군의 전력증강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아직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무라야마 “그 시대 한국에 필요했던 대통령”

    일본 언론들이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한국 민주화에 대한 공헌, 대일 입장 등을 조명했다. 아사히·니혼게이자이·요미우리 등 주요 신문들은 1면에 주요 기사로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했다. 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이 군부독재 아래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1992년 당선으로 문민정권을 부활시켰다”면서 “재임 중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체포를 명하고 1980년 광주사건(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의 진상 규명에 노력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신문은 김 전 대통령 재임 중에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하나로 중앙청으로 쓰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독도에 접안 시설을 건설한 것도 소개했다. NHK 웹사이트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 기사는 많이 읽은 5위 등에 랭크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김 전 대통령이 역사나 영토를 둘러싸고 일본에 강경한 발언을 많이 했으나 2002년에는 와세다대 특명교수로 취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91) 전 일본 총리는 이날 “그 시대 한국에 가장 필요한,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면서 “마음으로부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95년 8월 15일 총리직에 있던 무라야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한·일 관계의 기본 틀을 만든 역사적 담화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역사 반성 등에 대한 일본 내 국수주의적 정치인들의 반발과 망언이 늘면서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한·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에 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강한 어조로 언급해 양국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LG, 모바일 페이 빅3에 도전장… 범용성 ‘승부수’

    LG, 모바일 페이 빅3에 도전장… 범용성 ‘승부수’

    ‘페이 전쟁’이 뜨겁다. 삼성페이(삼성전자)와 애플페이(애플), 안드로이드페이(구글) 등 모바일 간편결제 ‘빅3’가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시작한 가운데 LG전자도 도전장을 던졌다. 우선 애플과 삼성이 모바일 간편결제로 세계 시장에서 격돌한다. 애플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 이어 19일(현지시간) 호주에 애플페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지난 7월에는 영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이르면 내년 초부터 중국을 비롯해 영국, 스페인 등에 삼성페이 서비스를 출시하며 애플의 글로벌 공략에 ‘맞불’을 놓는다. 앞서 애플은 지난해 10월, 삼성과 구글은 지난 9월 미국에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며 한차례 맞붙었다. 구글도 최근 공개한 레퍼런스폰 ‘넥서스5X’와 ‘넥서스6P’에 안드로이드페이를 탑재했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만 쓸 수 있지만 구글은 세계 시장을 순차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LG전자도 페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LG전자는 19일 국내 카드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자체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LG페이’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단계인 지금은 제조사별로 스마트폰과 이용자를 묶어두는 ‘록인’(가둬 두기) 효과가 생기지만, 각 서비스의 범용성과 사용 편리성이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애플페이와 삼성페이는 범용성에서 명암이 엇갈렸다. 근거리무선통신(NFC) 방식의 단말기에서만 결제가 가능한 애플페이는 미국에서 NFC 결제 단말기가 확산되지 않아 가입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 안드로이드페이 역시 NFC 방식만 지원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가장 보편적인 결제방식인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방식까지 지원하는 삼성페이는 국내 출시 2개월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순항 중이다. 후발주자인 LG전자가 꺼내든 카드도 범용성이다. LG전자는 LG페이가 MST, NFC 등 단말기의 결제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 가능한 서비스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여러 종류의 신용카드 정보를 담아두었다가 스마트폰과 연동해 결제에 이용할 수 있는 휴대장치인 ‘화이트 카드’를 채택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결제 외에 다양한 서비스를 늘리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애플은 애플페이에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추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현금출금과 멤버십카드 서비스를 추가한 데 이어 교통카드, 온라인 결제 서비스, 모바일 송금 서비스 등도 준비하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박현갑의 시사 궁금증 풀이 10] 테러 막겠다고 헌법개정?

    [박현갑의 시사 궁금증 풀이 10] 테러 막겠다고 헌법개정?

     테러를 막겠다고 헌법까지 개정한다고?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프랑스 파리에서의 테러로 전 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는 두차례에 걸쳐 IS근거지에 대한 공습에 나선 가운데 테러대책으로 개헌까지 거론하고 있다. 평소 유약하다는 평을 받고있던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베르사이유 궁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면서 테러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사람에 대해 국적 박탈이나 추방 등의 예외적인 조처를 하기위해 개헌까지 필요하다고 했다.올랑드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것은 2012년 취임 뒤 처음이었다. ● 국적 박탈-추방 등 조치... 비강계엄 조항 개정 의지 그런데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테러근절을 위해 개헌까지 거론했다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테러근절을 위한 예방책 마련은 개별 입법사항으로도 마련할 수 있기때문이다. 우리 정부 대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법무부는 18일 테러 대책의 하나로 해외동포를 포함한 외국인이 출국할 때에도 인적사항을 조회하고 나서 항공사가 탑승권을 발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올랑드 대통령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 헌법 16조와 36조를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파악되었다. 프랑스 헌법 16조 1항은 공화국의 제도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제협약의 집행이 심각하고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헌법에 의한 공권력의 정상적인 기능이 정지되는 경우에 공화국 대통령은 수상 양원의 의장 헌법재판소장과 공식협의를 거친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되어 있다. 36조 1항은 계엄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데크레로 이뤄진다고 되어 있다. 헌법 재판소의 한동훈 책임연구관은 이와 관련, “프랑스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올랑드 대통령은 우리 헌법상 긴급명령권과 계엄선포에 각각 해당하는 16조와 36조로는 이번 테러같은 새로운 국가위기상황에 대처하기가 적절하지 않아 개헌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물리적 근절책보다 ‘공존’에 바탕 둔 근본적 대책 중요 자유 평등 박애를 강조하는 문명국가이자 관용과 연대로 다름을 포용하던 프랑스가 테러로 인해 헌법개정까지 거론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증오와 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염려스럽다. 올랑드 대통령은 IS를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했지만 인간의 세계관이란 제어될 성질의 것인 아니지 않나.  세계 최강 대국 미국의 상황도 녹록치않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대상은 무슬림(이슬람 신자)으로 나타났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공공종교연구소(PRRI)가 17일 공개한 여론조사로는, 응답자의 70%가 사회 각 분야에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게이와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들이 차별받는다는 답변이 68%였고, 흑인(63%), 히스패닉(56%) 등의 순으로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테러는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만행이다. 근절해야 한다. 근절하려면 IS같은 테러행위자에 대한 공격 등 물리적 대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근본적 대책이라고 하면 테러동기 요인을 파악해 이러한 요인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서방과 이슬람의 공존이다. 이는 법 개정만으로 해결할 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명사회가 무슬림과 비무슬림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 佛, IS 근거지 20차례 집중 폭격… 지휘본부·무기고 초토화

    佛, IS 근거지 20차례 집중 폭격… 지휘본부·무기고 초토화

    프랑스가 파리 테러 발생 이틀 만에 테러 배후인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응징에 나섰다. 시리아 내 IS 근거지인 락까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터키 안탈리아에 모인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IS의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국방부가 15일 밤(현지시간) 프랑스군 전투기 10대를 포함한 항공기 12대가 IS의 사실상 수도 락까에 20차례 폭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고 AFP 등이 이날 보도했다. 프랑스군의 공습은 시리아 시간으로 15일 오후 8시 50분쯤 시작됐으며 IS의 지휘본부, 대원 모병소, 무기고, 훈련시설 등을 주로 타격했다. 미국은 프랑스에 IS 시설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이번 공습을 도왔다. 하지만 프랑스 공습으로 인한 IS의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락까 현지 활동가에 따르면 프랑스군 전투기는 지휘본부와 감옥 등 IS의 몇몇 핵심 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으나 IS 대원들은 공습 전에 이미 건물에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IS 소속 매체 아마끄는 “공습으로 사망한 IS 대원은 없다”고 밝혔다. 파리 테러를 계기로 프랑스의 대IS 전략은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프랑스는 IS를 겨냥해 이라크와 시리아 등 2곳에서 동시에 공습을 벌여 온 유일한 국가다. IS 격퇴의 고삐를 죄기 위해 새달 핵항공모함인 ‘샤를드골’함을 걸프 해역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은 “IS가 재정 확보를 위해 석유와 가스를 암시장에 팔고 있다”며 “공습의 목표는 IS의 석유와 가스시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파리에 있는 싱크탱크인 테러리즘분석센터의 샤를르 브리자르 연구원은 “IS가 통제 가능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한 재정과 자원을 끊을 수는 없다”면서 “IS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몰아내려면 지역 강대국들과 함께 지상군을 파견해야 한다”며 공습 작전의 한계를 지적했다. 미국은 여전히 지상군 파견에 회의적이며 공습을 통해 IS 세력을 격퇴한다는 현행 전략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벤 로즈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15일 ABC 등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IS를 겨냥한 공습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겠지만 미국 지상군을 파견하는 방안은 해법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16일 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G20 정상들은 성명에서 “외국 테러리스트의 급속한 유입”을 경고하며 테러리스트의 이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국경 통제와 항공 안전을 강화하기로 했다. G20 정상회의에서 미·러 정상은 따로 만나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 별도 양자 회담을 하고 이슬람 테러와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되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서울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美 폭격기 2대, 中 인공섬 상공 출격… 하늘로 번진 갈등

    美 폭격기 2대, 中 인공섬 상공 출격… 하늘로 번진 갈등

    미군 폭격기 두 대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공섬 상공을 비행했다고 미 국방부가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중국 측이 물러나라고 경고했지만 미군 폭격기들은 이를 무시하고 비행을 강행했다. 미국과 중국이 지난달 말부터 해상에서 벌인 무력시위가 이번에는 상공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빌 어반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서에서 “미국 폭격기 B52 두 대가 지난 8일과 9일 두 차례 괌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 상공을 비행한 뒤 귀환했다”고 밝혔다. 어반 대변인은 이 비행이 “국제 공역에서 이뤄진 정기적인 임무”라면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전문지 더힐은 미국 폭격기 두 대가 “항행의 자유” 작전의 일환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만든 인공섬 12해리(약 22㎞) 안에 진입해 비행했으며 중국군으로부터 “우리 영토에서 나가라”는 신호를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어반 대변인은 이에 대해 미국 폭격기가 중국의 지상 통제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으나 폭격기는 12해리 이내 상공에는 진입하지 않았고 어떠한 도발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격기가 사고 없이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으며 모든 임무는 국제법에 따라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미군 폭격기의 이번 비행은 중국군 전투기가 남중국해에 배치돼 훈련한 사실이 알려진 지 약 2주 만에 이뤄졌다. 중국 언론은 중국 최신예 전투기 젠11B가 미사일을 장착하고 남중국해 파라셀군도의 우디섬 상공에서 훈련하는 사진을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우디섬은 스프래틀리군도에서 북쪽으로 약 870㎞ 떨어진 곳이다. 중국이 전투기를 배치한 우디섬은 미군의 정찰기가 정기적으로 비행하는 지역이며 실제로 두 국가 간 충돌도 있었다. 2001년 미군 정찰기와 중국군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군 조종사 1명이 사망하고 미군 정찰기는 중국 하이난섬에 비상착륙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우디섬 상공에서 중국 전투기가 미군 경찰기를 따라다니며 위협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곳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신뢰를 얻으려면/이기철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신뢰를 얻으려면/이기철 국제부장

    최근 가장 뜨거운 국제 이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은 이미 확립된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지켜야 이웃 나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중국은 2002년 11월 남중국해에서의 긴장 고조를 방지하기 위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 선언문’(DOC)에 합의하면서 외교적 해결의 길을 텄다. 남은 것은 DOC의 구속력 있는 이행 방안을 담는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수칙’(COC) 제정으로, 중국이 거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COC 제정을 거부하고 있다. 이게 마뜩잖다면 국제 법정에서 해결하는 방안도 있다. 해양 분쟁이 국제 사법기관에 의해 타결된 사례가 더러 있다. 실제로 ‘앙숙’인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맞붙은 벵골만 분쟁,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한 암초와 작은 섬들에 대한 분쟁 등이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나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해 해결된 바 있다. 필리핀이 2013년 1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국제 중재를 신청했고, 상설중재재판소는 최근 필리핀의 요청을 받아들인 상태다. 문제의 스프래틀리 군도를 중국은 난사 군도, 베트남은 쯔엉사 군도, 필리핀은 칼라얀 군도로 부르는 데서 보듯 과거 각국 어부들은 ‘무주공해’에서 자유롭게 조업했음을 보여 준다. 중국 하이난도에서 1000㎞, 베트남에서 450㎞, 필리핀의 팔라완과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각각 100㎞가량 떨어져 있는 이 군도의 해역 넓이는 한반도 갑절 정도인 43만㎢에 이른다. 이 해역에 750여개의 작은 섬과 모래톱, 암초, 산호초 등이 있다. 해면에 돌출한 섬들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4㎢ 정도다. 한강 둔치까지 포함한 여의도 면적과 비슷하다. 이곳의 산호 암초에 중국이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인공섬을 자기네 땅이라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국제법상 섬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영토라고 우기며 12해리(약 22㎞) 이내에서 항해 또는 그 상공을 비행할 때 허락을 맡으라고 한다. 중국은 베트남과 필리핀에 무력을 행사해 산호초인 존슨사우스와 미스치프 등을 야금야금 점거해 왔다. 이곳에 3㎞ 넘는 활주로까지 만든 것은 중국의 함포외교 거점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남중국해 분쟁은 서울에서 수만 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가 무심할 수는 없다. 우리 수출 물동량의 30%, 수입 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 해상 교통로다. 지난해 이 해역을 거쳐 한국을 오간 물동량은 11억 8500만t으로 추산된다는 보고도 나왔다. 자바해를 거쳐 우회하면 이틀 정도 더 걸리고, 당연히 운임은 올라간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다. 중국이 인공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다른 나라의 선박과 항공기가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까. 중국 헌법 32조는 “중국 내 외국인은 반드시 중국의 법률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항행의 자유라는 깃발을 나부끼며 오가는 선박에 대해 중국이 검색, 나포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불응하면 마늘전쟁, 희토류전쟁, 연어전쟁이 보여 주듯 보복이 예상된다. 경제적·군사적으로 이미 강국이 된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해결 과정에서 이웃 약소국에 패권적 행태를 보여 준다면 청나라 말기 중국이 서구 열강의 함포에 당했던 ‘정글’ 행태를 정당화하는 당착에 빠진다. 중국이 국제법을 따라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chuli@seoul.co.kr
  • [‘땅의 재난’ 관리 선진국에서 배운다] 美, 도심형 싱크홀은 상하수도관 정비…자연발생형은 보험 해결

    [‘땅의 재난’ 관리 선진국에서 배운다] 美, 도심형 싱크홀은 상하수도관 정비…자연발생형은 보험 해결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오후 2시 미국 뉴욕 브루클린 선셋파크 5번가와 64번가 교차로. ‘횡단보도 폐쇄’라고 적힌 팻말 너머로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평온했던 곳.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날 밤까지 멀쩡했던 길이 밑으로 큼직하게 뚫렸는데 불안하죠. 처음에는 매캐한 가스 냄새가 진동해서 가스관이 붕괴된 줄 알았어요.”(에드윈 마르티네스·15) 올 8월 4일 이곳에서는 지름 6m의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했다. 수십 년간 지하 6m 깊이의 황토빛 흙에 파묻혔던 거대한 상수도관이 하루아침에 민낯을 드러냈다. 예고 없이 생긴 싱크홀이었다. 원인 조사와 복구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뉴욕시 환경보호과와 용역 계약을 맺은 공사업체 관계자는 “12m를 더 굴착해 관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정확한 원인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매설된 지 100년도 더 된 관로의 노후화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최근 발생한 도로 함몰들은 대부분 이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교차로 인근 상인들은 울상이었다. 도로가 통제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땅 면적이 남한의 98배에 이르는 미국에서는 싱크홀이 다양한 요인으로 형성된다. 서울처럼 인위적인 개발로 발생하는 지반 침하를 일컫는 ‘도심형 싱크홀’이 빈번한 곳이 뉴욕이다. 뉴욕은 브롱크스,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스테이튼아일랜드 등 5개 자치구(카운티)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도 맨해튼은 선캄브리아기 기반암과 수만년 된 퇴적층이 쌓인 지반이다. 지질 및 토목학 전문가들은 뉴욕을 지반이 단단한 암석으로 이뤄진 지역으로 손꼽는다. 덕분에 건축물을 세우거나 터널을 뚫어 지하철을 개통해 지하수를 퍼내도 부분적인 도로 함몰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뉴욕에도 복병은 있다. 노후화된 사회기반시설이다. 지하철, 상하수도관 등 시내 대부분의 사회기반시설은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다. 지하 구조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상수도관이다. 미국수도협회(AWWA)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하수도관이 매설된 시기는 크게 1800년대 후반, 192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1945년) 이후로 나뉜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향후 20년간 노후화된 상하수도관 정비가 가장 시급한 지역은 뉴욕,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3개 주다. 3350억 달러(약 381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새뮤얼 아리아라트남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미국에서 도심형 싱크홀이 발생하는 가장 큰 요인은 상하수도관 파손 때문”이라며 “파이프(관로)가 손상된 지점에는 대부분 싱크홀이 생긴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 8월 4일과 6일 이틀 간격으로 브루클린, 브롱크스 등 뉴욕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싱크홀은 모두 노후화된 상수도관 파손이 원인이었다. 수압이 거센 상수도관에 균열이 생겨 새나간 물이 지반을 연약하게 만들었다. 흙이 물에 쓸려 빠져나가면서 형성된 지하 동공은 비가 많이 오면 지표면부터 가라앉는다. AWWA와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은 상하수도관 파손의 원인, 피해 규모 등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노후화된 상하수도관의 교체율은 전체의 0.5%에 그친다. 밥 브링크먼 뉴욕 롱아일랜드 호프스트라대 지질학과 교수는 “주정부 차원에서 상하수도관에 사용된 소재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수명을 예측해 순차적으로 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수만㎞의 관로를 일일이 점검하려면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 퀸스 화이트스톤 지역에서는 2009년 다른 이유로 땅이 자주 꺼졌다. 홍수가 빈번한 저지대에 배관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게 요인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갑자기 늘어난 물의 양을 소화할 배관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통상 하수도관은 물이 관로의 50%도 채우지 않고 흐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지역은 하수도관을 통과하는 물의 양이 관로의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 이 때문에 관로는 빠르게 낙후됐고 지하수 유실 등으로 지반까지 약해지면서 도심형 싱크홀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당국은 배관 시스템 재정비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뉴욕은 한국과 달리 사전 시추조사가 법으로 의무화돼 있지는 않다. 시추조사는 지하에 있는 흙을 직접 채취해 지질 구조를 분석하는 조사다. 뉴욕은 이런 세부 사항은 시공자와 발주자가 협의해 정하도록 내버려 뒀다. 자율이 주어지되 엄격한 책임이 따르도록 했다. 에드 카바잔지안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이자 미국토목학회(ASCE) 전 회장은 “부실 시공으로 나중에 인근 건물주나 시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시정부를 비롯해 다양한 주체들이 시공사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걸고 보상을 받게 돼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주형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한국이나 일본은 법적으로 의무화된 사항들이 많다 보니 지반조사가 안전을 담보할 수준으로 됐느냐보다는 의무사항을 준수했느냐, 즉 형식적인 측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며 “그에 비해 안전 자체에 좀 더 중점을 두는 미국 시스템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텍사스, 앨라배마, 켄터키, 펜실베이니아 등 7개 주는 미국에서 지질적 요인에 의한(자연발생형) 싱크홀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이 지역의 지반을 구성하는 석회암, 암염 등이 지하수, 빗물 등 물과 만나 녹아내리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가 약해진 지반이 내려앉아 구멍이 뚫려 발생하는 형태다. 2013년 2월 28일 플로리다주에서는 집에서 잠자던 남성이 순식간에 15m 땅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 이후 싱크홀에 대한 공포가 커지자 미국 내무부 산하 지질조사국(USGS)은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같은 해 위성, 레이더 등으로 싱크홀의 전조 증상을 탐사해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 지도 제작에 들어갔다. USGS는 미국 전체 영토의 40%가 지질적 요인으로 싱크홀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플로리다주에서 싱크홀이 화두가 된 것은 20세기 이후다. 지질 상태는 그대로였지만 지역 내 유입 인구가 늘면서 대지 사용률이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싱크홀 문제가 생겨났다. 싱크홀로 인한 재산 피해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골머리 앓았다. 그 결과 나온 대안이 ‘시장의 손’에 맡기는 것이었다. 플로리다에서 보험업을 하려면 싱크홀 관련 보험 상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단, 서서히 일어나는 지반 침하는 싱크홀 범주에서 제외된다. 부동산 소유자들이 위험을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플로리다주 정부는 1970년대 센트럴플로리다대학에 ‘싱크홀 인스티튜트’라는 전담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지금은 이 기관의 기능이 플로리다주 지질조사국(FGS)으로 이관됐다. 싱크홀 발생 후 원인 조사 및 복구도 부동산 소유자와 보험사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플로리다주 소방 당국은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해 수도, 가스 등에 이상이 없는지만 확인한다. 지반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는 부동산 소유자가 직접 지질공사 업체를 고용해 비용을 지불하고 조사해야 한다. 글 사진 뉴욕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글로벌 시대] 올해 노벨의학상 논란을 보며/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올해 노벨의학상 논란을 보며/이옥순 인도연구원장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에는 중국인 과학자 투유유가 포함됐다.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의 퇴치에 큰 공을 세운 덕분이다. 소식에 따르면 투유유는 20년의 오랜 연구 끝에 1600년 전에 나온 중국의 전통 의학서에 언급된 개똥쑥에서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을 찾아냈다. 1971년이었다. 하나 1977년 중국어 논문으로 발표된 그 성과가 국경을 넘어 외부 세계에 알려진 건 한참 후였다. 수상 소식을 접한 투유유는 중국 전통 의학 시스템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총리는 투유유의 노벨상 수상이 국가로서 중국의 힘과 글로벌 세상에서의 지속적인 부상(浮上)을 반영한다고 애국적 발언을 섞어 축하했다. 그러자 일부 인도인이 투유유의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21세기 글로벌 세상의 경제적 라이벌이자 영토와 인구, 고대의 지혜와 전통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경쟁 구도인 인도는 시간을 두고 전승된 전통 의학의 결과를 투유유 한 사람이나 중국의 공으로 인정하는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도 전통 의학이 오랜 시간을 두고 전수됐고, 고대의 인도 의학서에도 개똥쑥의 유사한 효능이 언급됐다. 특히 1918년에 나온 한 약초 보고서에는 개똥쑥이 말라리아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된 걸 증거로 내세웠다. 일부 언론은 아예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이 인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문제를 논평한 인도인 학자들은 문화혁명 당시에 연구를 진행한 중국의 투유유가 아르테미시닌의 임상실험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인도 전통 의학에서 힌트를 얻어 유사한 연구를 진행한 인도 연구자들이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기준을 준수하느라 결과를 도출하는 데 시간이 걸린 데 비해 큰 정치적 영향력을 업은 중국의 투유유가 예외적 상황에서 연구했으므로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도인 학자와 노벨상 관계자 간의 공방이 여러 차례 이어졌으나 노벨위원회가 이 분야에 대한 인도인의 공헌을 인정하거나 수상자를 바꾸는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는 이유는 최근에 개똥쑥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 제국주의의 직간접적 압박으로 대국으로서 패배감과 굴욕감을 경험한 인도와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그 제국주의를 수입한 일본의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에선 20세기 내내 전통적인 것을 폄하하고, 서구적이며 근대적인 걸 칭송하는 것이 대세였다. 낙후된 과거를 버리고 근대성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인도와 중국이 서구를 이기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극복하고 일등국이 되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진 것이다. 의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치료법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서구의 근대과학과 근대 의료 시스템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났다. 예를 들면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전통적 치유법은 지배자 영국에 의해 미신으로, 미개한 관습으로 무시됐다. 우리 양방과 한방의 갈등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투유유의 성공 사례는 현대적인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 전통적인 것이 다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 준다. 즉 전통적 지혜와 근대적 시스템이 잘 결합한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씨줄날줄] 획기적 발굴과 안타까운 이면/서동철 논설위원

    지난주 경기 안성시 도기동에서 장수왕 시대 고구려의 남진(南進) 경로를 밝힐 수 있는 삼국시대 목책성(木柵城)이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고구려 산성이 알려 준 것은 묻혀 있던 삼국시대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매장 문화재 보호 정책이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 보여 준 것도 못지않은 성과였다. 목책성이란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나무 기둥을 촘촘하게 박아 만든 방어 시설이다. 도기동 산성은 백제가 쌓은 뒤 고구려가 점령해 방어 시설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으로 안성천이 스치듯 흘러나가는 도기동 산성에 오르면 서남쪽으로는 평택과 천안 일대까지 안성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동북으로는 병풍처럼 가로막은 차령산맥이 멀리 지나는 가운데 안성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군사 지식이 없어도 요충으로 느껴진다. 남한 지역에서 확인된 고구려 군사 유적은 50개 남짓하다. 삼국시대 한반도 남북을 잇는 대표적 교통로였던 임진강 및 한탄강 주변과 양주, 한강 북안 아차산 일대와 금강 유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금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은 진천 대모산성과 세종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산성이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 백제 수도 한성을 공략한 뒤 남쪽으로 여세를 몰아 지금의 충청권 일대를 한동안 점령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당시 신라의 영토이던 충주를 점령해 이른바 중원 고구려비를 남기기도 했다. 도기동 목책성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군데군데 끊긴 4개 구간에 걸쳐 130m 정도가 드러났다. 산줄기 지형으로 추정하면 전체 산성은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역사적 가치는 물론 사료로만 전하던 삼국시대 책(柵)의 구조를 명확하게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추가 조사에 이은 사적 지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발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그동안 일대의 소규모 발굴 조사에서는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결과 산성 뒤편은 이미 개발이 이루어졌다. 목책성이 드러난 산성의 앞부분도 이미 보기 흉할 만큼 파괴됐다.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전 국토 정밀 문화재 지표조사가 진작에 이루어졌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발굴된 것은 경사스럽지만 그 가치가 크면 클수록 해당 토지의 개발 당사자가 더 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도 모순이다. 도기동 목책성 자리에 대형 창고를 지으려 했던 땅 주인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수십억원의 은행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손발을 묶은 발굴 비용도 부담해야 했다. 내 땅에서 문화재가 나오는 것이 재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의 위상과 외교력의 간극/이호령 한국 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열린세상] 국가의 위상과 외교력의 간극/이호령 한국 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최근 남중국해 중국의 인공섬을 둘러싼 미·중 간의 대립과 아세안(ASEAN) 확대국방장관회의에서 보인 아세안 국가들의 분열과 미·중 간의 입장 차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관을 가진 홉스의 현실주의 돋보기로 보는 21세기 같아 보인다. 일본 안보법제 통과 이후 일본 자위대의 작전범위 등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과 47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종료 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국제법에 근거한 동맹론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시기와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起)에 이은 시진핑의 신형대국론에 기초한 중국몽은 지난 9월 대규모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통해 가늠해 보면 경제굴기와 군사굴기를 통해 꿈의 실현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으로 예측되는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중 간 이해 충돌의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는 5년 연속 국방비를 두 자릿수로 대폭 증강해 최첨단 무기 개발 및 군사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완료해 이에 대한 12해리 영해권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남중국해에서 가상 적국을 가정한 실탄훈련 실시는 중국과 영토 분쟁 상태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세우며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는 해양 세력인 미국의 대립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녹록지 않은 국제 정세는 한국 외교에 대한 국내외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압박의 기저에는 두 가지 개념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절대 개념의 안경을 끼고 미·중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권’의 과민 반응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우리 국방의 직접적 위협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같이해 온 60년 넘는 동맹 국가로 포괄적 전략 동맹관계를 심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중국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상호 의존도가 높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관계의 내실화를 발전시키고자 노력을 해 오고 있는 국가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국가인가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외교정책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한 약소국의 편승 외교에 불과하다. 우리는 2014년 국력이 주요20개국(G20) 중 9위를, 2015년 포브스의 글로벌 2000개 기업의 보유 숫자가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다음인 5위를 차지하는 중견 국가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의식에는 어느 국가에 편승해야만 이익을 보다 높일 수 있다는 사고가 여전히 잔존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와 ‘눈치 보기’ 외교 등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일본 안보법제 통과에 따라 유사시 한반도 불안정 사태에 따른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놓고 사전에 우리 동의를 얻어야 하는 주권 범위에 대해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일본 방위상이 남한 지역으로 제한한다는 발언과 이어 47차 한·미 SCM에서 주권 범위는 국제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미 국방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가중되는 핵위협과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어떻게 한·미·일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보다는 ‘주권’의 해석 범위를 놓고 3자 간의 균열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국력과 외교력 간의 간극이 여전히 크지 않나 싶다. 우리의 힘을 과대 평가해 우를 범하는 것도 문제다. 스스로 과소 평가해 실기를 범하지 않는지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국익을 보호하고 증대시키려면 외교적 수사보다는 정공법이 때로는 더 효과적이고 필요하다. 우리가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정답을 듣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구하고자 힘과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21세기는 손실보다 이익의 파이를 키우고자 협력을 추구하는 논제로섬 게임의 장이다. 제로섬 게임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국가의 위상에 맞게 당당하면서도 섬세한 외교를 펼쳐 나가는 데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경제 블로그] “목숨 걸고 유치해 오라” 행원들 계좌이동 스트레스

    [경제 블로그] “목숨 걸고 유치해 오라” 행원들 계좌이동 스트레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서 “(계좌이동제가) 세상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은 없겠지만 은행권 경쟁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30일부터 계좌이동제를 통해 클릭 한 번만으로 주거래은행 갈아타기가 가능해졌습니다. 고객 선택권을 높이고 은행 산업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임 위원장이 얘기한 ‘은행권 경쟁의 촉매제’ 역시 고객 유치를 위한 서비스와 상품의 차별화이겠지요. 그런데 금융 당국의 기대와 달리 시중은행에서는 행원들 ‘쥐어짜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경쟁적으로 고객 유치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죠. 신한은행은 지난 9월부터 영업점 경영평가(KPI)에 신규 고객 유치 실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만점 만점에 2%(200점)로 배점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은행은 계좌이동제를 염두에 두고 올해 초부터 KPI(1000점 만점)에 130점을 배점했습니다. 하반기부터 30점을 추가해 전체 점수의 16%(160점)가 계좌이동제 유치 실적입니다. A은행 관계자는 “KPI 목표로 ‘통일 달성’을 넣었다면 진즉에 통일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행원들은 KPI에 목숨을 건다는 얘깁니다. 매년 KPI 성적에 따라 승진과 성과급이 결정돼서죠. 계좌이동제 시행을 전후로 주요 은행들은 “차별화된 혜택을 내놓으며 긴 안목으로 평생 고객을 유치해 나가겠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정작 행원들을 향해선 “목숨 걸고 신규 고객을 유치해 오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과열 경쟁 양상도 보입니다. 신한은행은 경품으로 자동차(아반떼·스파크)를 내걸고 주거래 고객 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은행 영업점에서는 “왜 우리는 자동차 경품을 지원해 주지 않느냐”며 본점에 항의를 한다고 합니다. 계좌이동제를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아닌 ‘영토 확장’(시장 점유율 확대)의 기회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행원들이 실적에 등 떠밀려 유치해 온 고객은 충성도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의 부탁을 받고 ‘억지로’ 가입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죠. 은행 간 실적 다툼으로 ‘평생 고객’ 다지기의 기반이 벌써부터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핵항모 탄 美국방 “中, 남중국해 정세 흔들지 말라”

    핵항모 탄 美국방 “中, 남중국해 정세 흔들지 말라”

    애슈턴 카터(왼쪽) 미국 국방장관이 5일 핵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 승선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 근처를 항해했다. 미국 의회에선 동맹국 군함도 중국이 이 지역 남중국해에 조성한 인공섬 12해리 안쪽에 진입, 항행 자유구역(공해)임을 천명해야 한다는 촉구가 터져 나왔다. 카터 장관은 이날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바주에서 수직이착륙 수송기인 오스프리를 타고 30분을 날아 남중국해에 정박해 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 승선해 3시간 동안 항해하면서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히사무딘 후세인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이 동승랬다. 지난달 27일 미 해군 구축함 래슨이 중국이 만든 인공섬 12해리 안쪽을 통과한 것과 다르게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은 인공섬에서 150~200해리 떨어진 말레이 주변 해역을 선회했다. 카터 장관은 선상 기자회견에서 항모 이름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몽둥이(빅 스틱) 외교’를 상기시킨 뒤 “오래 지속된 남중국해 정세를 중국이 흔드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몽둥이 외교의 일환으로 필리핀을 식민지화 했다. 미국이 분기마다 2회 이상 난사 군도 인공섬 12해리 안쪽에 해군 함정을 파견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영국 가디언 보도가 최근 나온 가운데 미국은 경제·통상 분야 국익을 좇아 중국과 대립 중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대만 등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남중국해 지역은 연간 5조 달러 규모의 상품이 지나는 통관로다. 한국의 경우엔 연간 수출 물동량의 30%, 수입 에너지의 90%가 이 해상을 통과한다. 한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오른쪽)은 이날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만든 인공섬은 국제법에 비춰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다”라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가 저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지난달 27일 래슨함처럼) 인공섬 12해리 내 해역에 진입하는 행동을 함께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보·군사 동맹국에 은근한 압박을 추가로 가한 셈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열린세상] 한·중·일 협력강화 한국이 주도해야/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열린세상] 한·중·일 협력강화 한국이 주도해야/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3년 반 만에 개최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끝났다. 늦었지만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이 있는 세 나라가 한 곳에서 머리를 맞댄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난 사흘 동안 세 나라 정상은 경제, 사회, 지속 가능한 개발,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동북아 지역의 안보협력과 국제문제에 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너무 힘들게 그리고 오랜만에 성사된 회담인지라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차분히 성과와 한계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만 하는지도 고민해야만 한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3국 간 협력이 복원됐다는 점이다. 3국은 협력의 가치와 실질적 협력 방안들에 대해 소중한 합의를 도출했다. 즉 ‘역사 직시와 미래 지향’이라는 원칙하에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장관급 협의체를 포함한 정부 간 신규 협의체를 설립하고 3국협력사무국(TCS)의 역량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3국이 정상회의의 정례화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 3국 정상회의가 지속 가능한 협력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3국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점도 큰 성과다. 3국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해 가기로 합의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북한의 국지적 도발과 핵·미사일 실험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엄중한 경고를 했다. 이는 3국이 북한에 대해 외교적 강압을 한 것이며, 앞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3국 정상회의가 남긴 한계와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그간 협력의 장애물이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기대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비록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국이 조기 타결하기로 중지를 모았으나, 이는 지켜봐야만 확인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일본이 진전된 안을 제시하지 않고, 한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양국 간 관계 진전 및 한·중·일 3국 협력은 또다시 좌초될 수 있다. 영토분쟁 또한 향후 3국 협력 증진에 구조적 도전 요인이 될 수 있다. 동중국해에서의 중·일 간 영토 분쟁과 남중국해의 난사군도 갈등, 그리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이면에는 각국의 지역 전략과 이에 따른 첨예한 국익이 내재돼 있다. 따라서 이는 단기간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3국이 영토 분쟁을 3국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설정하거나 3국 협력의 장(場)에서 이를 무리하게 해결하고자 한다면, 3국 간 협력 증진은 요원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더욱 구조화될 수 있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3국 정상 간 만남을 통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회와 희망, 도전 요소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수백 년간 지역 평화를 위해 세 국가 간 지속적인 협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고 강대국 간 협력이 창출되고 제도화되기 쉽지 않다는 국제정치학자들의 냉엄한 주장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한·중·일 3국 협력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국을 경영했고 제국을 꿈꿨던 중·일 양국 사이에서 중견국 한국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3국 협력을 통해 한국이 추구할 국익들은 너무나 다양하다. 환경, 문화, 교육, 원자력 협력 등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협력 의제들도 많다. 물론 북한 문제와 같이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위해 협력을 반드시 견인해야만 하는 사안도 있다. 한국이 3국 협력을 주도해야만 하는 이유다. 한국이 3국 간 불신을 용해하는 용광로가 되고, 3국 간 이해를 증진시키는 소통의 광장이 돼야 한다. 이 속에서 우리의 귀중한 국익이 창출되길 기대한다.
  • 카터 “주권 존중해야”… 자위대 한반도 진출, 日 손 들어줘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2일 제4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입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중요한 동맹국이며 이 동맹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애매한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미국이 한·일 양국을 배려한 발언처럼 보이나 사실상 북한 지역이 국제법적으로 주권 국가라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카터 장관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대한 한·일 간 입장 차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아주 중요한 동맹국이며 이 동맹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동맹”이라며 “국제법 안에는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부분도 포함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의 도발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동맹의 관점에서 해결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헌법상 북한이 우리 영토라서 일본의 자위대 진출 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터 장관의 발언은 얼핏 북한이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이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배려한 태도로 보이지만 사실상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별개의 국가이며 ‘한국 주권의 유효 범위는 휴전선 이남’이라는 일본 측의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 자위대의 해외 전개 여지를 최대한 열어놓고자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는 “미국이 우회적 방식으로 유엔 회원국인 한국과 북한을 구분한 것”이라며 “유사시 북한과 일본이 충돌했을 때 한·미 동맹보다 당사자인 미·일 동맹을 더 우선시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논란이 확산되자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고, 동맹의 관점에서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주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해석도 존중한다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한편 양국 국방 장관은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상당량이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라며 “동 지역에서의 항해와 상공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中 “역사 직시하라” 일침… 日 “남중국해 우려” 공세

    中 “역사 직시하라” 일침… 日 “남중국해 우려” 공세

    일본과 중국은 1일 한·일·중 3국 정상회의 직후 서울에서 양국 개별 정상회담을 열고 두 나라 사이의 현안을 둘러싼 이견에도 불구,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해 나가는 등 관계 개선에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양측이 현상 유지 및 위기관리를 통한 관계 유지에 합의한 것으로 두 나라의 각종 수준의 대화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이날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면서 과거사 문제 등 갈등 현안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고 NHK와 신화통신 등이 보도했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전략적 호혜관계의 총체적인 발전을 확고히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리 총리는 회담 모두에 “양국 총리는 오늘 겨우 첫 정식 회담을 실현할 수 있었다. (3년 반 동안 회담을 열지 못한) 이런 상황이 된 원인은 일본 측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그는 이어 “역사를 직시하고 거울로 삼는다는 정신에 입각해 정치적 민감한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베 총리는 중국의 남중국해에서 암초 매립과 인공 섬 건설에 대해서 우려를 전달하면서 공세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등을 둘러싼 영토문제, 난징(南京) 대학살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중국 정부의 일본 민간인 4명에 대한 스파이 혐의 구속 등 현안에 대해 양측은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리 총리는 이날 양국관계 조정과정에서의 긍정적 동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 보다 전향적이고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 아베 총리도 “2006년 총리 취임(1차 집권) 뒤 곧바로 중국을 처음 방문하고 전략적 호혜 관계를 제창했다”면서 “이에 입각해 관계를 개선·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화답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지나치게 압박해 미국에 지나치게 기울고, 군비 및 자위대 활동 강화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남사군도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수세로 몰리고 있는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화통신은 회담 직후 논평을 통해 “긍정적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일본은 정치적 용기와 역사적 안목을 갖고 더 정직하고 충실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일 정상 회담은 올 4월 아베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회담 이후 반년 만으로 아베 총리와 리 총리와의 회담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번 회담은 3년 반 만에 재개된 3국 정상회의 참석차 리 총리와 아베 총리가 서울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사설] 한·중·일 협력복원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3년 6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어제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선언을 통해 동북아평화협력 구현과 공동번영을 위해 경제·사회 협력 확대, 지속 가능한 개발 촉진과 3국 국민 간 상호 신뢰 및 이해 증진 및 지역, 국제사회의 평화·번영에 공헌 등 5대 협력 방안에 합의했다. 3국 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이날 합의한 사안을 구체적으로 보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의미 있는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정부 간 신규 협의체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전자상거래를 위해 디지털 시장의 단일화에도 합의했다. 2020년까지 3국 간 인적교류를 3000만명으로 늘린다는 목표도 나왔다. 갈등의 핵심인 역사문제와 관련해서 3국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관련 문제들을 적절히 처리하자”는 절충선을 택했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3국 정상은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3년 반 만에 개최된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협력이 완전히 복원됐다”고 평가한 점도 눈에 띈다. 항구적인 지역의 평화·안정과 공동번영을 구축하기 위해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 안보상의 갈등이 병존하고 있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이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역사와 영토 문제로 갈등과 대립으로 얽혀 있던 동북아 지역이 과거의 질곡을 딛고 화해와 협력을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크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반목과 갈등으로 공존공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3국 정상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3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하면 16조 달러로 전 세계 경제 총액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번에 합의한 것처럼 한·중·일 FTA를 성사시키면 ‘동북아 시장통합’이란 의미 있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공동 번영을 위해 역사와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갈등이 3국의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 현상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3국 정상이 한두 번 만나 복잡하게 얽힌 현안을 단번에 해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3국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간다는 정신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번 합의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해야 한다.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말고 동북아 평화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타래처럼 얽힌 과거사나 외교·안보 문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풀어가면서 경제협력과 인적교류 등에서 협력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상생의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4만 군견’ 폭탄특공대·방패삽… 아군 위한 개발 맞나요?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4만 군견’ 폭탄특공대·방패삽… 아군 위한 개발 맞나요?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돌을 갈아 창을 만들고 나무를 다듬어 몽둥이를 만든 이후로 끊임없이 신무기를 개발해 남의 영토를 침략하거나 국토를 지키려고도 했죠. 무기의 성능을 개량해 더 많은 인원을 살상하고자 하는 욕구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무기가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실패’ 딱지가 붙었고, 일부는 어렵게 빛을 봤으나 볼품없는 성능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첨단 무기를 동경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전 이번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무기를 보여 드리려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번 들여다볼까요. 2차 세계대전은 신무기의 각축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무기가 쏟아진 전쟁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소련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과 나치 독일은 상대 병사를 더 많이, 효과적으로 살상하기 위한 무기 개발에 힘을 쏟았는데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무기도 참 많았습니다.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개폭탄’(antitank dog)입니다. ●개에 폭탄을 매달아 전차에 돌진시켰더니 소련군은 독일과의 전쟁 초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구형 전차로 독일에 맞서야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독일의 신형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소련군은 ‘맨몸’으로 대항하다 연이은 패배로 후퇴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군견을 훈련시켜 자살 특공대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개 4만 마리를 활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는데요. 시한폭탄을 두른 개를 적 전차에 돌진시키는 단순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투입해 본 결과 독일 전차로 달려가기는커녕 소련 전차로 돌진해 폭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디젤(중유)을 사용하는 소련 전차를 이용해 훈련한 개들이 가솔린(휘발유)을 사용하는 독일 전차 대신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소련 전차로 달려왔기 때문이죠. 놀란 소련군은 불쌍한 개를 더 희생시키는 대신 이 계획을 즉시 폐기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은 프랑스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준비했습니다. 독일은 스페인부터 벨기에까지 해안 높은 지역에 수많은 콘크리트 벙커를 짓고 대포와 기관총을 촘촘하게 설치해 대비했죠. 영국군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벙커를 파괴할 방법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무기가 ‘판잰드럼’입니다. 판잰드럼은 바퀴 모양의 구조물에 로켓을 달아 추진력으로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기상천외한 무기였습니다. 여기에 폭약을 실으면 적이 있는 고지로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 폭발하게 한다는 복안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로켓의 추진력이 약해 예상보다 속도가 느렸고, 추진력을 강화하자 로켓이 바퀴에서 분리돼 튀어나가 버렸습니다. 또 평지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굴러갔지만 돌이 가득한 고지에서는 제멋대로 굴러가 오히려 바다 쪽으로 되돌아오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습니다. 1t 무게의 폭발물을 실은 구조물이 굴러오는 재난을 상상하기도 싫었던 연합군은 개발 계획을 포기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적의 총탄을 방어하는 황당한 ‘삽’도 등장했는데요. 바로 캐나다군의 ‘맥아담 방패삽’입니다. 평소에는 병사의 개인 삽으로 사용하다가 유사시 적과 조우하면 총에 끼울 수 있도록 구멍을 냈습니다. 그런데 손바닥만 한 삽의 크기로는 총탄을 막을 수 없었고, 세기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죠. 스스로를 ‘천재 전략가’라고 치켜세웠다가 결국 패망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대형 무기를 선호했습니다. 무기를 좋은 정치 선전 도구로 여겼던 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기로 적을 단번에 제압하길 원했습니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당시 군 전문가들도 무기의 크기와 공격력이 비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마우스 전차’와 ‘구스타프 열차포’입니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구경 800㎜에 포신 길이만 32.5m, 전체 길이 47.3m, 너비 7.1m, 높이 11.6m, 무게 1350t의 거대한 모습이었습니다. 2500명이 철로를 설치해 길을 터야 했고, 250명이 포를 조작해 4.8t이나 되는 포탄을 하루 14번만 쏠 수 있었죠. 프랑스 침공 당시 요새인 마지노선을 공격하려고 구상했지만, 개발이 늦어져 소련 요새 공격인 세바스토폴 전투에 딱 한 번 사용했을 뿐입니다. 결국 연합군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독일군 스스로 파괴했죠. ●박물관 전시물이 된 최대 시속 20㎞ 괴물전차 1942년 히틀러는 연합군 전차가 절대로 파괴하지 못할 ‘괴물 전차’를 제작하도록 지시합니다. 전세가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운 1943년 11월 개발된 것이 8호 전차 ‘마우스’입니다. 총중량 188t, 전면장갑 200㎜, 포탑장갑 240㎜로 괴물 그 자체였습니다. 구경 128㎜ 주포와 75㎜ 부포를 갖춰 화력도 강력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무거워 속도가 시속 20㎞에 불과했던 것이죠. 시제품 2대가 있었지만 독일은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전차를 폭파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폭파된 전차를 노획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냉전 시대에도 황당한 작전이 있었는데요. 바로 ‘도청 고양이 작전’입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고양이의 몸속에 실제로 도청 장치를 삽입해 대화 내용을 엿듣는 방식을 고안해 냈습니다. 당시에는 도청 장치 크기가 지금처럼 작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겁니다. 고양이가 배가 고프면 현장을 이탈하는 문제가 부각되자 식욕을 억제하는 수술까지 했다고 합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CIA는 결국 고양이를 현장에 투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고양이가 자동차에 치여 죽었기 때문이죠. 고양이 몸속의 도청 장치가 탄로날까봐 CIA는 즉시 고양이 사체를 회수했고, 그것으로 프로젝트는 끝이었습니다. 배우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지아이조2’에 등장하는 ‘신의 지팡이’ 위성 공격 시스템도 실제로 1980년대 미국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길이 6m, 무게 100kg의 텅스텐(중석)탄을 시속 1만 1000㎞로 지상으로 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핵미사일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데다 탄도미사일 생산 사격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적군을 게이로 만들자” 황당 발상의 결말은 199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황당 무기로는 ‘게이 폭탄’이 있습니다. 1994년 미 공군 소속인 오하이오주 라이트연구소는 적진에 ‘아프로디시악’이라는 물질이 가득한 폭탄을 투하해 적군들이 서로 참을 수 없는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이 폭탄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아프로디시악은 일종의 최음제로, 적진에 투하해 남성 위주로 구성된 적군을 동성애에 빠지게 하고 최종적으로 전의를 상실시킬 의도로 개발했습니다. 연구소는 이 ‘안전한 비살상 무기’를 사용하면 사랑에 굶주린 군인들이 총을 놓고 동성 연인에게 푹 빠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연구소는 상부에 무려 7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는데요. 시작도 하기 전에 효과에 의문을 가진 정부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아 자동 폐기됐습니다. 적군은 물론 아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다 일반인이 최음제에 노출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생기겠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만 이 무기는 황당한 발명자에게 상을 주는 2007년 ‘이그노벨상’ 평화상 부문에 선정돼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전쟁을 막아 전 세계에 평화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죠. 라이트연구소 일부 연구진은 적군에게 땀·방귀·입냄새를 유발해 냄새로 숨어 있는 병사를 찾아내고 적진의 사기까지 떨어뜨리는 특수 폭탄도 개발했지만 마찬가지로 상부로부터 외면당했다고 하니 정말 노력이 가상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junghy77@seoul.co.kr
  • [생명의 窓] 노벨상과 과학입국/설대우 중앙대 약대 교수

    [생명의 窓] 노벨상과 과학입국/설대우 중앙대 약대 교수

    올해 노벨상은 중국인 수상자가 있어 우리의 관심을 더 끌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노벨상은 있었지만, 과학 분야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상한 것이어서 중국으로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이번 노벨상에서 중국만큼이나 기세등등한 나라는 일본이다. 이렇게 되자 노벨상 때문에 논란이 된 곳은 오히려 우리나라다. 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데도 중국마저 배출한 노벨 과학상이 없다는 충격이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것이다. 자존심을 다친 정부는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10년 내 노벨상급 과학자 1000명 육성, 기초연구비 비중 확대, 2025년까지 세계 1등 기술 10개 창출 등 목표 제시와 계획 수립을 발표했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또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에 대한 보상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창조나 발견은 윤리적이어야 하고 인류사에서 엄청난 긍정적 영향과 진보를 만들어 낼 만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가 속한 분야에 한정해 평가한다면 앞으로 20년 내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노벨 과학상이 나오긴 불가능하다. 정부가 세운 목표와 계획은 거창해 보이지만 어딘지 어색한 것은 특정인의 노벨상 수상을 목적으로 급조된 적이 있던 이전의 ‘노벨상추진위원회’를 보는 것 같아서다. 정말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원한다면 필요한 것은 그런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소박한 체질 개선이 먼저다. 첫 단추는 정부 연구비 배분에서의 환골탈태다. 어떨 땐 ‘줄기세포’, 어떨 땐 ‘녹색성장’, 또 어떨 땐 ‘창조경제’로 연구비 배분의 우선순위가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연구자들이 ‘연구비 따라 삼만리’를 하는 상황에서 무슨 ‘깊은 연구’가 이뤄지겠는가. 둘째는 ‘논문지상주의’를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나오면 과포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의 내용’이다. 대부분 추격 기술이거나 아류인데도 유명 학술지란 이름표 때문에 연구비 지원 등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은 고려해 볼 문제다. 셋째는 노벨 과학상은 ‘기초 연구에서 나온다’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예는 많지만 단지 두 개만 든다고 해도 쾰러와 밀스테인은 단일 클론 항체를 만들 수 있는 ‘실용화 기술’로 198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1993년 멀리스 역시 ‘중합효소연쇄반응’이라는 실용화 기술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문제는 결국 그 성과물이지 기초 연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이제 ‘기초 연구’와 ‘실용화 연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한때 노벨 과학상의 산실이었던 미국 벨연구소 사례에서 보듯 기초 연구 성과도 실용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입국’이 노벨 과학상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더이상 모방이나 추격 기술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새로운 연구와 과감한 도전에 더 많은 연구비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매번 폼 나는 분야, ‘논문 지상주의’에 갇혀 추격과 아류 수준의 연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서는 미래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단순히 노벨 과학상 수상이 아니라 과학기술 수준을 현저히 높이는 일이 돼야 한다. 본말이 확실해야 하는 이유는 노벨상은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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