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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도 영유권 주장 정부가 막아”

    “간도 영유권 주장 정부가 막아”

    중국의 ‘동북공정’ 및 ‘백두산공정’에 대해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간도협약 원천 무효에 관한 결의안’도 외교부의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열린우리당 유선호 의원은 이날 ‘국회 동북아연구회’가 개최한 ‘동북공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2004년 동북아공정 때 김 의원이 제출했던 ‘간도협약 원천 무효에 대한 결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정부 및 외교부가 반대해 덮어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이는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았던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가 “중국의 동북공정, 백두산공정 등에 대한 대응으로써, 정부는 일본의 패망으로 원천 무효가 된 1905년 ‘중·일간도협약’을 문제삼아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이었다. 박 교수는 “토문강이 중국이 주장하는 두만강이 아니라는 옛 지도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간도의 영토 귀속은 논란의 대상”이라면서 “따라서 국회는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간도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의안을 제출했던 김 의원측은 “현재 국회 통외통위에 계류 중”이라면서 “현안에 밀려 처리가 늦어지고 있지만 여야 간사들의 협의로 의제로 상정, 통외통위를 통과한다면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김 의원은 통외통위 위원장이다. 이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법안이 아닌 만큼 구속력은 없지만 ‘간도’에 대해 대한민국 입법부의 공식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고, 행정부에 대한 국민적 압박이라는 정치적·외교적·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공정’의 이유 박 교수는 “중국의 백두산 공정의 대외적 목적은 변경지역의 강화를 통해 간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 권력이 붕괴할 경우 1962년에 맺었으나 현재 공개하고 있지 않은 ‘북·중변계조약’이나,1905년 중·일 간도협약 등에 대해 국제법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동북아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곳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 몽골까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해결 방안 박 교수는 중국 정부도 ‘동북공정’과 ‘백두산 공정’에 대해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만큼 한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 정부에 ‘한·중 공동역사연구소’를 설립할 것을 제안,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고구려사, 백두산 공정 등을 개별적인 사안이나 역사적인 왜곡문제로 국한하지 말고 한반도의 미래전략과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디아 리포트] (18) 친디아의 세계 열릴까

    [인디아 리포트] (18) 친디아의 세계 열릴까

    |뉴델리 이석우특파원|인도 시킴주와 중국 티베트를 잇는 해발 4545m 높이의 나투라 고갯길에 올 여름 40여년 만에 생기가 돌았다. 티베트 야둥의 자유무역시장과 시킴주 셰라탕을 오가며 교역을 벌이는 인도와 중국 상인들로 활기가 넘친 덕분이다. 쌀과 밀, 차 등 농산품을 실은 트럭과 경공업 제품 등을 갖고 나온 중국 상인들로 44년 동안 막혔던 국경 무역로가 북적였다. 이곳은 1962년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 뒤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무역로로 번성했던 563㎞의 옛 실크로드의 대동맥. 나투라 길의 재개통은 다가서는 양국 관계를 상징한다. 인도는 3225㎞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앞으로 6년동안 27개의 도로를 신설하기로 했다는 5일 두르다르샨 방송의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년 들어 급증하는 무역규모는 이미 두 나라가 뗄 수 없는 동반자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두 나라 교역액은 136억달러. 전년에 비해 79%나 늘었다.1991년 교역액이 2억 6400만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증가세다. 경제협력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과 함께 더 주목할 점은 전략적 접근이다.“국경을 맞댄 두나라가 무력 대치와 군비 부담을 덜고 나아가 전략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라지브 쿠마르 인도 외교차관은 지적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는 인도·중국의 전략적 협력은 물론 러시아까지 낀 ‘3각 협력’이 타진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2006년 두나라 우호의 해를 맞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인도 방문 등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을 협의중”이라고 쿠마르 차관은 설명했다. 압둘 칼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놓고 있는 후 주석은 오는 11월 중순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인도를 방문할 것으로 뉴델리의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전략적 협력은 자원확보 분야에서도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인도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지난달 11일 중국석유화공공사(SINOPEC)와 미국 오미멕스 드 컬럼비아 지분 50%를 8억달러에 공동매입키로 했다. 앞서 ONGC는 지난해 12월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페트로 캐나다로부터 시리아 유전 지분 37%를 4억 8400만달러에 사들였다. V S 라마무티 과기부 차관은 “정보통신분야는 물론 생명과학, 의약, 항공우주 분야까지 연구 데이터·과학자 교류 등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세계의 공장’ 중국과 정보기술(IT) 및 서비스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진 인도의 보완적인 경제구조가 협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라마무티 차관의 평가다. 집권 국민회의당의 알케이 아난드 상원의원은 “두 나라는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세계정치의 다극화 등 21세기 신질서에 비슷한 입장”이라면서 “화해협력을 통해 양측 모두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 정치·외교분야의 전략적 협력은 지역협력체에 대한 상호 참여로 두드러지고 있다. 쿠마르 차관도 “인도가 상하이협력조직의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다. 중국도 서남아시아협력회의(사크)에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물론 두 나라의 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 인도 미국상공회의소 라시미 티와리 박사는 “인도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으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면서 “제조업이 취약한 인도로 중국의 싼 공산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중국 상품이 인도시장을 평정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력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도 최근 인도가 국가안보의 우려 때문에 중국의 인도 투자 제한과 외환관리법(FEMA) 등을 개정하지 않고 대중국 투자협정을 미루고 있다고 전한 것도 뿌리 깊은 중국 기피증의 한 예다. 현동화 전 주 인도 한인회장은 “1962년 전쟁 때 인도는 콜카타(당시 캘커타)를 점령당할 위기를 맞았을 정도로 두 나라의 의구심과 경쟁관계는 뿌리 깊다.”고 평했다. 아난드 의원은 “인도와 중국은 모두 다 실용외교를 축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평화적인 주변환경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과거는 잊지 않지만 전진을 위해 내일에 더 무게를 두고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jun88@seoul.co.kr ■ “합동 군사훈련등 전분야 신뢰 증진” |뉴델리 이석우특파원|“올해 중국과 인도는 군함을 파견해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군사분야의 신뢰증진까지 두 나라의 관계발전 속도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뉴델리 외교지역에 위치한 주인도 중국대사관. 쑨위시(孫玉璽) 중국대사는 “중·인 두 나라가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모든 부문에 걸쳐 전략적 협력 관계의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계발전은 어디까지 왔나. -신뢰증진을 위한 핵심 분야인 군사분야까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연내 군함까지 파견, 해상훈련을 공동으로 실시한다.2005년부터 군사훈련에 서로 참관단을 파견하는 등 신뢰회복을 두텁게 하고 있다. ▶경제협력은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두 나라의 무역은 전년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2010년까지 500억달러 달성은 무난하다. 투자보호협정 등 제도적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경제분야의 진전이 다른 분야의 협력도 이끌 것이다. ▶인도 진출에서 중국의 관심 분야는. -경제 성장의 시동이 걸린 인도는 도로, 항만, 전기, 상하수도 등 부족한 사회간접자본(SOC)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상품수출뿐 아니라 SOC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접근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인도의 상하이협력조직 참가가 미국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란 우려가 그것이다. -중국이 주도,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하이협력조직은 지역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결성·운영되고 있다. 미국을 겨냥하거나 반미 성향의 정치·군사안보체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가 이 조직에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며 환영한다. ▶국제무대에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는 않나. -양국 모두 석유 등 자원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협력 프로젝트 도출 등 가능한 한 경쟁을 피하고 협력 극대화 방안을 협의중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 등에서 ‘동병상련’ 처지여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성사를 위해 전문가 그룹 발족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 나라 다 인구만도 10억이 넘는 ‘발전중인 개발도상국’이다. 농촌빈곤화, 실업자, 에이즈 등 많은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고 그만큼 협력의 영역도 넓다. ▶인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움직임에 대한 입장은. -중국은 유엔안보리 이사국이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유엔에서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이 더 확대돼야 보다 평등한 국제질서 구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차원에서 인도의 역할 확대도 환영한다. ▶카슈미르 북부지역 등 영토분쟁의 해결 전망은. -아직 국경문제를 완전히 매듭짓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인도 방문 등을 통해 해결의 틀과 원칙을 마련했다.(두 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 인도가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중국은 인도의 시킴 왕국의 영유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등 관계개선의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고 있다.) jun88@seoul.co.kr ■ “2020년 친디아 GDP 세계40% 육박” 친디아(China+India)의 시대는 언제 열릴까. 인도가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하고 달려온 ‘선발주자’ 중국을 뒤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오는 2032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인도는 미국·중국에 이은 3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모건스탠리 등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2020년이면 중국과 인도의 GDP는 전세계의 40%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인도는 아직 경제지표로 볼 때 중국의 적수는 아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경우 인도는 중국의 10분의1 수준.2004년 인도의 FDI는 53억달러, 중국은 606억달러였다. 수출은 중국이 인도의 8배, 저축률도 두 배 규모다. 중국은 제조업이 전체 생산에서 4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인도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도는 농업과 인프라의 수준이 세계 최하수준이다. 반면 인도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업이 전체 생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우주항공기술도 국제적이다. 인도 과기부 C R 무르티 국장은 “인도는 10∼24살까지의 청소년 인구비율이 30%로 중국(24%), 일본(15%)보다 훨씬 높다.”며 “영어와 세계 최고수준의 수학교육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인재들이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고 자부했다.
  • 러軍 총격 日어민 사망

    러軍 총격 日어민 사망

    |도쿄 이춘규특파원|조업중이던 일본 어선 선원 1명이 16일 오전 러시아 국경경비대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일본 당국은 꽃게잡이 어선인 ‘제31 깃신마루’가 홋카이도 네무로 앞바다 ‘가이가라지마’ 부근 해역에서 러시아 국경경비대에 나포됐으며 나포 과정에서 총격을 받아 승무원 4명 가운데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선박은 러시아와 일본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북방 4개섬 중 러시아가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서 조업하다, 러시아 국경경비대의 정선명령을 어기고 도주하다 총격을 받았다고 러시아 치안당국이 밝혔다. 러·일 분쟁 수역에서 일본 어선에 총격이 가해져 사망자가 나온 것은 1956년 10월 이래 50년만이라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taein@seoul.co.kr
  • [사설] 독도해양조사 日 반발 가당찮다

    독도 주변을 비롯한 동해의 해류를 조사할 우리 해양조사선이 엊그제 부산항을 나섰다. 이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우리 조사선이 독도에 접근하면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출동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측의 ‘자제’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가당치 않다. 무슨 근거로 자신들이 순시선을 띄우며, 한국 정부의 자제 운운한다는 말인가. 엄연한 한국 영토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차원을 넘어 이제 땅 주인 행세까지 하려드는 후안무치의 망동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번 동해바다 조사는 해류와 수온, 염분, 용존산소량 등을 측정하는 학술차원의 연구활동이다.2010년 간행을 목표로 한 동북아 해류도 작성작업의 일환이다. 기상악화로 보류한 지난해를 빼고 2000년 이후 해마다 해 온 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본은 제멋대로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고는 순시선 출동이니 하며 적반하장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속셈은 뻔하다. 지난 4월 독도해역 수로조사 기도처럼 독도를 분쟁지역화해 나가는 각본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간 외교마찰이 커질수록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음도 물론이다. 자제해야 할 장본인은 일본이다. 새로운 군사대국을 꿈 꾸며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을 서슴지 않는 팽창주의적 야욕부터 버려야 한다. 헛된 제국주의로 동북아 여러 나라에 고통을 안기고 끝내 패망의 치욕을 겪어야 했던 뼈 아픈 과거사를 되새겨야 한다. 일본은 독도 분쟁지역화에 대한 손익계산을 제대로 하라.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든다 한들 외교적 고립과 동북아의 불필요한 긴장만 불러올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일본은 이웃나라의 주권행사에 대한 무모한 도발을 삼가야 할 것이다.
  •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 (하)日 독도침탈 공격외교와 한국 대응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 (하)日 독도침탈 공격외교와 한국 대응

    1. 독도영유권 논쟁 개시 때의 일본의 무권리 상태 대한민국 정부는 동해의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1952년 1월18일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통치 평화선)을 발표했다. 열흘 뒤인 28일 일본 정부는 평화선 안에 포함된 독도(일본 호칭 ‘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독도영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외교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면서 한·일 독도영유권 논쟁은 시작됐다. 논쟁 시작 당시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는 배타적 독도영유권 실체를 완벽하게 가져 국제사회에 공인 받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독도영유 ‘주장’만 갖고 있었다. 독도영유권을 100이라 가정하면 한국은 독도영유권 100을 가진 반면, 일본은 0을 가진 것과 같았다. 그 후 일본 정부는 1953년 6월27일,6월28일,7월1일,7월28일 일본 순시선에 관리와 청년들을 태워 독도에 침입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해양경찰대를 파견, 독도에 접근한 일본 선박들에 영해 불법 침입을 경고하고 경고 발사까지 하면서 쫓아버렸다. 울릉도 주민들도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 독도를 지켰다. 일본정부는 다수 연구자들을 동원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증명하는 일본 고문헌자료의 조사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고문헌 증거자료는 단 1건도 나오지 않았다. 2.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위임 제의와 한국 정부의 거부 일본은 1954년 9월25일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최종 결정을 위임하자고 제의했다. 국제사법재판은 상대국가가 위임에 동의해야만 안건이 성립하며, 동의하지 않으면 안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은 1954년 10월28일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소유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일본측 제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획책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을 제출하자는 제안은 잘못된 주장을 법률적 위장으로 꾸미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독도에 대해 처음부터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국제법정에서 그 영유권 증명을 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영토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유사영토분쟁’을 꾸며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독도문제를 국제재판소에 제출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일본의 입지를 소위 독도영토분쟁과 관련해 일시적으로라도 한국과 대등한 입지에 두려고 일본은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협의 여지없이 완전하고 분쟁의 여지없는 한국의 독도영유권에 대하여 일본은 ‘유사 청구권’을 설정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1954년 10월28일 한국정부 구술서) 한국정부의 이 외교문서와 입장을 정립한 책임자는 당시 변영태 외무장관이었다. 앞으로도 국제사법재판소에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위임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외교문서 논쟁이 계속되다가,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한·일 기본조약이 맺어지고, 평화선이 취소됐다. 동시에 한·일 어업협정이 체결되어 양국은 영해에서만 배타적 어업을 하고 그 밖의 동해는 공해(公海)가 되어 자유어업을 하게 되었다. 3. 한국과 일본의 EEZ 기점 문제 유엔 신 해양법이 1994년 발효되고, 한국과 일본이 1996년 1월부터 신해양법을 채택하자, 자기영토에서 기점(base point)을 채택하여 반지름 200해리까지를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전관할 수 있게 되고,400해리가 안 되는 바다에서는 접촉국끼리 협상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1996년 재빨리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 전제하면서, 독도를 동해쪽 일본 EEZ 기점으로 채택하고, 독도와 울릉도 중간선을 EEZ 경계선으로 제안해 왔다. 이때 한국 정부가 즉각 일본의 독도기점 채택을 부정 비판하고, 한국 독도와 일본 오키섬 사이 중간선을 한·일 EEZ 경계선으로 제안했었다면 한국 독도영유권 훼손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외무부는 자문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1년 후인 1997년 뜻밖에도 독도기점을 버리고 울릉도를 한국 EEZ기점으로 채택, 한국 울릉도와 일본 오키섬 사이 중간선을 한·일 EEZ 경계선으로 제안했다. 그 이유는 독도는 사람이 자립적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무인 암석이기 때문이고, 울릉도 기점을 취해도 독도가 한국 EEZ 안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설명이 성립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일본도 독도 기점을 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1년 전에 한국보다 먼저 독도를 일본 EEZ 기점으로 택했기 때문에 첫째 조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 세계 석학도 독도는 EEZ 기점으로 취하고도 남는 작은 ‘섬’임을 밝혔다. 당시 독도에 한국 어부 김성도씨 1가구가 살고 있었다. 일본은 1996년에 30㎝의 바위인 오키노 도리(沖ノ島)에 철근 콘크리트로 독도보다 훨씬 작은 인공 섬을 만들어 EEZ 기점으로 공포했었다. 둘째, 일본이 한국측 울릉도와 오키섬 사이 경계선 제안에 동의해야 독도가 한국 EEZ 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측 제안을 거부했다.EEZ 기점은 자기 영토에서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도리어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일본 EEZ 기점으로, 울릉도는 한국 EEZ 기점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한·일간 1996∼2000년 사이 5년간 4차례 EEZ 경계협정회담이 있었는데, 일본은 계속 ‘다케시마’(독도)를 일본 EEZ 기점으로, 한국은 ‘울릉도’를 한국 기점으로 제안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고, 한국 정부는 영토 양도의 요건인 ‘묵인’을 행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국제사회의 오해를 사고 있다. 한국의 EEZ 독도 기점 채택과 선언이 꼭 필요한 이유다. 4. 신(新)한·일어업협정과 독도영유권 1999년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한국은 독도와 그 12해리 영해 주위에 ‘중간수역’(한·일공동관리수역, 잠정수역)을 설정하자는 일본 제의에 합의해줌으로써 한국 독도영유권을 또 훼손했다.(지도 참고) 한국 외무부는 당시 신어업협정에서 한국은 울릉도를 기점으로, 일본은 오키섬을 기점으로 각각 35해리를 ‘중간수역’의 동·서 양변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약 47해리이므로 35해리를 하면, 독도 영해 12해리와 접속되어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한국 EEZ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일본측은 오키섬에서는 35해리를 적용했으나, 또 함정을 파서 울릉도로부터는 33해리를 주장하여 결국 한국측 합의를 얻어 내었다. 그 결과 첫째 신어업협정에서 일본 EEZ 독도기점이 소멸되지 못하고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지나가는 경계선의 수정선을 중간수역의 좌변선으로 남겨놓게 되었다. 이를 두고 일본은 지금도 일본 EEZ 독도기점이 살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신어업협정에서 울릉도는 한국 EEZ에 넣고 독도는 질적으로 다른 ‘중간수역’안에 포위되어 들어가 울릉도로부터 독도가 수역상 분리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울릉도’명칭만 있고 ‘독도’명칭이 누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은 지금까지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기 때문에 울릉도 영유국가가 당연히 독도 영유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반박해 왔다. 국제사회와 국제법도 한국측 해석을 지지했었다. 신어업협정은 일본의 교묘한 함정에 빠져 독도가 울릉도에서 수역상 분리되어 한국측 해석과 주장을 훼손시킨 것이다. 어업협정의 수정이나 재협상이 한국의 독도영유권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5. 한국의 독도정책 방향 일본 정부는 일본 EEZ 독도 기점 선언 10년째인 올해 상반기 국제사회에서 독도에 일본 영유권 설정 응고의 큰 계획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 하나는 4월14일부터 6월30일까지 해양탐사를 한·일 EEZ 경계의 일본 제안선인 울릉도와 독도 중간선까지 실행하면서 국제수로기구(IHO)에 일본 EEZ 해양탐사라고 사전·사후에 보고하여 국제공인을 축적하는 것이다.(지도 참고) 다른 하나는 한·일 EEZ 경계획정회담을 상반기(6월 12·13일 예정)에 재개, 일본이 EEZ 독도 기점을, 한국이 EEZ 울릉도 기점을 들고 나오도록 하려 했다. 합의가 되지 않아도 양국 EEZ 기점 제안 자체로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란 사실을 응고시키려 한 것이다. 일본의 EEZ 해양탐사를 통한 독도 침탈작전은 한국정부의 강경한 저지정책과 대통령의 정곡을 찌른 당당한 담화문으로 일단 중지되었다. 요미우리신문은 2006년 5월23일자 특종보도에서 이 작전은 일본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추진된 작전임이 밝혀졌다. 한국 외교부가 이 작전을 묵인해 줄 것으로 예측했다가 한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놀라, 한국측 독도 부근 해저지명의 국제수로기구 등록신청 연기를 조건으로 일단 중지했다. 문제의 해결은 12일 도쿄 EEZ 경계 본협정 회담에서 한국측이 선명하게 독도를 기점으로 함을 세계에 선언하면서 한국 독도와 일본 오키섬 사이 중간선을 제안하는 것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공인된 대한민국의 배타적 영토이다. 한국이 당당하게 세계에 선언만 하면 일본의 독도 기점은 상쇄된다. 그리고 한국은 EEZ 장기협상을 준비하면 된다.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 (중) 연합국 ‘한국 독도영유권’ 인정 전말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 (중) 연합국 ‘한국 독도영유권’ 인정 전말

    1. 연합국의 독도 한국영토 판정과 독도 반환 1943년 11월 미국·중국·영국 등 3대 연합국 수뇌들은 카이로 회담에서 일본 패전 후 연합국정책을 담은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빼앗은 타이완과 팽호도,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빼앗은 모든 영토,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다른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할 것을 약속했다. 이어서 연합국은 1945년 7월26일 포츠담에서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의 이행과, 일본의 주권은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임을 공약했다. 일본은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9월2일 항복문서에 조인하면서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일본정부와 그 승계자가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했다. 이에 카이로선언은 포츠담선언과 일본 항복문서를 통해 일본에 구속력을 갖게 됐다. 연합국은 1945년 9월2일 국제법상의 기관으로서 연합국최고사령부(SCAP)를 설치, 구 일본제국이 1894년 1월1일 이후 빼앗은 모든 영토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연합국은 한반도를 일본에서 제외해 반환시키고,1946년 1월29일에는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 제3항에서 제주도·울릉도·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 주한 미군정에 이관시켰다. 한국이 독립하면 즉각 인계인수하도록 한 것이다(지도 (1) 참고). 연합국최고사령부는 1946년 6월22일 SCAPIN 제1033호를 발표,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일본 어부들의 접근을 막으며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그해 12월12일 국제연합 총회는 당시의 영토(독도 포함)와 주권을 승인했다. 독도도 다른 영토와 함께 대한민국 주권에 속한 영토로 공인받은 것이다. 2.‘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독도는 한국 영토 연합국은 일본을 1952년 독립시키기로 하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키로 했다.1950년에는 강화조약의 ‘준비작업’으로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 합의했다. 이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본문 해석이 모호하거나, 차이가 발생할 경우 지침(조약법에 대한 빈협정)이 되므로 매우 중요한 합의였다. ‘연합국의…합의서’는 제3조에서 “연합국은 대한민국에 한반도와 그 주변의 한국 섬들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이양하기로 합의했으며, 그 섬에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독도를 포함한다.”고 규정했다(지도 (2) 참조). 만일 강화조약 본문에 모호한 점이 생기면 준비작업인 이 합의서가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다. 3. 조약초안 작성 때의 일본의 독도 침탈을 위한 로비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은 처음 미국이 작성했는데,1∼5차 미국 초안까지는 합의서에 따라 독도를 명백하게 한국 영토로 명기했다. 그러나 제5차 미국 초안을 본 일본 임시정부가 미국인 고문 시볼드를 내세워 맹렬한 로비에 들어갔다. 로비의 미끼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넣어주면 독도를 미국 공군의 기상관측소와 레이더 기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독도는 원래 무주지였고 한국에는 독도에 대한 명칭조차 없으며,1905년 한국정부와 국민의 항의를 전혀 받음이 없이 새로 편입된 일본영토라고 거짓 근거를 붙였다. 이에 미국측은 일본측의 로비를 받아들여 제6차 미국 초안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빼내 일본 영토에 포함시켜서 연합국에 회람시켰다. 영국·호주·뉴질랜드 등은 제6차 미국 초안에 반대했다. 한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연합국의 합의를 위반해서 독도의 소속을 옮기면 동아시아에 영토분쟁의 씨앗을 뿌린다는 것이었다. 미국측 내에서도 전문가들은 독도가 한국영토이므로 한국 영토로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난처해진 미국은 7·8·9차 초안에서는 아예 독도 명칭 자체를 한국과 일본의 영토에서 모두 누락시켜 버렸다. 조약 초안에 ‘독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국측은 이에 반발, 독자적으로 1·2·3차 초안을 작성하고, 독도를 한국영토에 포함시켰다. 당황한 미국측은 영·미 합동 초안을 작성하자고 영국측에 제의하여, 결국 수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영·미 합동 초안이 단일안으로 작성됐다. 여기선 ‘독도’ 명칭 자체를 누락시키고 애매모호하게 처리해 본회의에 상정해 채택시켰다. 이것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본문에서 ‘독도’ 명칭이 누락된 배경이다. 4.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 명칭 누락 1951년 9월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은 연합국의 대 일본강화조약 제2조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만 기술했다. 독도는 그 밖의 모든 섬과 함께 기술되지 않았다. 강화조약이 체결된 직후 일본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빼내 일본영토 조항 안에 명문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강화조약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귀속시킨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1952년 5월 ‘대(對)일본평화조약’상의 지도를 발간했는데 독도(죽도)를 일본에서 제외된 조선영토로 표시했다(지도 (3) 참조). 그러다가 1952년 4월28일 일본 재독립을 전후해 일 외무성은 강화조약 2조에 일본이 포기하는 섬에 제주·거문·울릉도만 기술되고 독도가 빠진 것은 연합국이 독도를 일본영토로 묵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1952년 1월18일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통치 평화선 선포)을 발표하자, 일 정부는 열흘 후 평화선 안에 있는 독도(이른바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외교문서를 보내왔다. 이렇게 한·일간 독도영유권 논쟁은 시작됐다. 5.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핵심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에서 일본이 포기하는 섬 이름에 독도가 누락돼 있어 독도는 일본이 포기하지 않은 일본영토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 주장은 광범위한 반론과 비판을 받았다. 한국정부의 공식적 비판은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기 때문에 독도영유는 모도(母島)인 울릉도 영유국가의 영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주변에 거의 3000개 가까운 섬들이 있는데, 이를 모두 조약문에 쓸 수 없으므로 일본 방향의 대표적 섬으로 제주도·거문도·울릉도만 든 것이었다. 제주도의 일본 방향에 우도(牛島)가 있는데 조약문에 제주도만 기술돼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국제사회는 한국정부의 국제법상 ‘부속도서론’에 입각한 해석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독도를 한국영토로 해석했다. 신어업협정 이전까지 대부분의 세계 지도들에서 ‘Dokdo’로 표시했다. 일본은 독도를 울릉도에서 분리,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섬이 아님을 세계에 내보이려는 노력에 집중하게 되었다. 6.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한국영토 연합국의 독도에 대한 판정과 정책은 1945년 1월29일부터 1952년 4월28일까지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하나의 일관된 합의에 의거한 것이었다.1894년 1월1일을 기준으로 그 이후 일본제국주의가 영토 야욕으로 침탈 또는 편입한 모든 땅은 일본영토에서 제외하여 원주인에게 반환된 것이 연합국의 합의와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의거해서 일제가 영토탐욕으로 1905년 1월28일 한국에서 침탈한 독도는 한국에 반환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수립되어 연합국(미군정)으로부터 독도를 인계인수한 그날부터 독도의 영유국가는 대한민국이고, 이 사실은 그해 12월12일 국제연합으로부터 공인받았다. 연합국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명칭을 누락시켜 애매모호하게 호도한 것으로는 이미 1948년에 확립된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연합국이 1951년에 ‘독도는 일본영토’로 강화조약 본문에 기술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경우 독도는 이미 연합국의 판정에 의해 대한민국의 영토로서, 대한민국이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영토이며, 대한민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한 국가가 아닌 제3국이기 때문에,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독도는 이미 국제법상 1948년부터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대한민국의 승인과 동의가 없이는 독도는커녕 독도의 돌멩이 하나도 일본은 물론이요 연합국도 가져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이 독도명칭을 누락시켜 애매모호하게 표현했을 경우에는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해석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억지인 것이다. 그것도 진실을 추구해서가 아니고 거짓 근거로 미끼를 만들어 로비를 해서 명칭을 누락시켜 애매모호하게 한 것으로는 기존의 한국 독도영유권이 부정될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의 ‘부속섬론’에 의거한 반박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문에서 명칭 누락과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명명백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 교육부, 독도연구 3년간 27억 지원

    정부에서 독도영유권 강화를 위한 세부 계획 마련에 나선 가운데 교육인적자원부가 ‘독도 연구’를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 주제로 선정, 집중 지원키로 했다. 교육부는 27일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올해 독도, 사회통합, 고등교육정책, 국가발전과 인적자원개발 등 미래 분야, 산학협력 등 5개 주제를 지정해 모두 21억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독도 연구에 대해서는 연간 3억원씩 최장 9년까지 지원된다. 교육부는 5월10일부터 15일까지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www.krf.or.kr)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한 뒤 요건심사, 전공심사 등을 거쳐 5월말 최종 선정 연구소를 발표한다.노환진 학술진흥과장은 “이번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을 통해 독도의 역사나 영토분쟁 판례, 생태계 등 전반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사설] ‘韓·中이 후회할 것’ 오만한 고이즈미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독도와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에 대해 보인 반응은 적반하장이다.“한국과 중국이 후회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절망감을 금할 수 없다. 일본 야당 원로인 와타나베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보궐선거에서 패하고 나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고이즈미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고이즈미가 총리직에 있는 한 한·일 우호관계는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힘든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걱정스럽다. 임기를 5개월 남긴 고이즈미는 공직사회 개혁으로 인기를 얻어 역대 3위의 장수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집권 5년 평가 여론조사의 외교 부문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고, 영토분쟁을 일으키면 반짝 관심을 끌 수 있겠지만 결국 국익에 해롭다는 사실을 일본 국민 스스로 알고 있는 셈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총리가 주변국과 정상회담을 갖지 못할 정도로 독불장군식 행보를 계속해서야 되겠는가. 중국은 일본과 4년 이상 정상회담을 피하고 있으며, 한·일간 셔틀 정상회담마저 당분간 열리기 어려워졌다. 한·일, 중·일 정상외교가 중단된 것은 고이즈미 때문이라고 보는 게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고이즈미는 “외국의 정상과 대화해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말이 옳으며 한국과 중국이 이상하다.’고 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일본내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향해서도 “토론하면 어느 쪽이 이상한지 알 것”이라고 충언을 수용할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이즈미의 인식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으면 정상들이 만나봐야 결과는 뻔하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 특별담화를 ‘국내정치용’으로 폄하하는 일본의 반응이 기분 나쁘다. 아베 관방장관은 한국측이 5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강경해질 것이라며 한·일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을 지방선거 후로 미루도록 지시했다. 그같은 천박한 대응으로는 국제사회 리더로서 일본의 미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 [데스크시각] 한국외교의 현주소/박정현 정치부 차장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에 의해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되기도 한다. 중국의 송나라와 요나라가 맺은 ‘단연지맹’은 실패 외교의 본보기로 꼽힌다. 송의 진종은 1004년 요나라의 침입을 받자 직접 정벌에 나서지만 요나라가 화평을 요구하자 무기를 내려놓고 덜컥 동맹을 맺는다. 오랑캐라면서 얕보던 요나라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고, 매년 비단과 은을 상납한다. 이런 단연지맹이 나온 뒤 금나라는 요나라와 송을 차례로 멸망시킨다. 청나라는 초기에는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는 쇄국정책을 펴다가 나중에는 “이적이 될지언정 집안의 노예는 되지 말자.”는 극단적인 외교정책을 폈다. 유연하지 못한 외교는 결국 망국으로 이어졌다. 단연지맹에 11년 앞서 고려가 보여준 외교는 성공 외교의 대표적 사례다. 거란은 낙타 50필을 사신과 함께 보내 친선을 요구하지만, 고려는 오히려 낙타를 굶겨죽인다. 발끈한 거란 장수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지만, 넓은 대지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익숙한 거란의 기마병은 산악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그래서 고려와 거란은 협상을 맺게 되고, 서희는 거란에 조공을 하려 해도 여진이 가로막고 있어 갈 수 없었다는 논리로 설득한다.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더 많이 하는 대신에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의 땅을 받는다. 이른바 서희의 담판외교다. 담판외교가 성공한 데는 뛰어난 화술도 작용했겠지만, 거란의 고려 침공 목적이 송을 견제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 서희의 탁월한 국제정세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도대응 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고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 대응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25일 특별담화는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깝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문화 교류까지 거론한 것은 경제적·문화적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배수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일관계는 수교 41년 사상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수교 이후 최대의 사건은 이미 지난주에 일본이 저질렀다. 일본은 그동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우리와 입싸움을 그치지 않아 왔다. 시마네현의 독도 조례 제정도 중앙정부의 묵인 아래 진행된 지방정부의 ‘행위’쯤으로 치자. 해상보안청의 탐사선이 도쿄항을 떠나 독도를 코앞에 둔 사카이 항에 정박한 일은 일본의 말이 처음으로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독도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를 놓고 일본의 연말 선거용이라는 등의 관측이 분분하다. 하지만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면 단순한 국내 정치용이란 해석에는 의문을 가져볼 법하다. 담화를 보는 국민들은 속이 후련하다고 느끼겠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동북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과는 댜오위타이(센카쿠 열도)섬,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을 놓고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100여년전 구한 말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혼란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일본의 중국 견제를 놓고 ‘제2의 청일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일본과 미국은 올해 초 자위대와 미 해병대의 연합상륙작전을 벌이면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해양세력의 연대요, 강화다.21세기 세계질서의 최대 관심은 해양세력인 미국과 대륙세력인 중국의 충돌이라고들 한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솟아오르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을 밀어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리라고 예고한다. 옛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신밀월관계는 14년전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할 당시와 분명 다른 기류다. 우리는 이런 틈바구니에 서 있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 있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얽히고설킨 동북아의 역학 구도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냉정하게 둘러봐야 할 시점이다. 단연지맹의 우를 되풀이할지, 서희의 지혜를 본받을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박정현 정치부 차장 jhpark@seoul.co.kr
  • [노대통령 독도 특별담화] “日 영유권 주장은 한국독립 부정”

    [노대통령 독도 특별담화] “日 영유권 주장은 한국독립 부정”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의 첫머리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선언했다. 특별담화에는 일반적인 외교적 수사도 과감하게 생략됐다. 단호하게 독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다. 요컨대 담화는 일본의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수로 탐사라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선을 크게 넘어섰다. 지금껏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국제 분쟁화를 노린 일본의 주장과 행태에 대응하지 않았던 정부의 대일 외교의 기조 변화가 엿보이는 대목이다.‘조용한 외교’의 전환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격이다. 지난 23일 한·일 외교차관간의 ‘담판’ 결과도 특별담화에 적잖게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결과가 ‘일본측만 실리를 챙겼다.’는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측은 이같은 해석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EEZ문제가 한층 불거질 때부터 준비, 지난 21일쯤 특별담화를 하려다 ‘담판’ 탓에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이라고 아예 못박았다. 독도 문제가 영토분쟁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천명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은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하기도 했다. 러·일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일본의 ‘독도 침탈 과정’을 낱낱이 적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독도의 역사성’을 통해 우리 입장의 정당성을 직접 확인시켰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에 대한 권리 주장에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측의 교묘한 갖가지 도발 즉,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 대해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도 했다.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 나가겠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국제 여론의 활용안도 내놓았다. 일본측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총동원, 국제 여론에 고발하기 위함이다. 역사적·도덕적 우위를 국제사회에 홍보,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판단인 듯싶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EU를 亞 화해 모델 삼으세요”

    “세계화시대에 어떤 나라도 홀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는 국제관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유럽연합(EU)의 페레로 발트너 집행위원이 20일 한국과 EU와의 관계증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한 뒤 기자회견장인 롯데호텔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발트너 집행위원은 10년간 오스트리아 외무부 장·차관을 지냈다. 발트너 위원은 “한국과 일본간의 영토분쟁에 대해 노 대통령과 논의했다.”면서 “대규모 화해 프로젝트인 EU가 아시아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아세안, 동북아 공동체와 같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트너 위원의 방한에 맞춰 이날 서울대에 EU연구센터가 개설됐다. 연구센터는 3년반에 걸쳐 EU로부터 80만유로(약 9억 5000만원)를 지원받는다.EU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발트너 집행위원은 “한국과 EU간 에너지 협력뿐 아니라 경제적 관계도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EU는 한국의 두번째로 큰 수출시장이고 한국은 EU의 네번째 수출시장이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라운드가 마무리되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가능성과 관련,“현재 WTO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DDA 무역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따라서 현재는 한국과의 FTA는 고려할 사안은 아니지만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EU는 북한에 5억유로(약 6000억원)를 지원했으며, 북한 어린이가 맞는 백신의 70%는 EU의 재정지원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EU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독도해역’ 긴장고조] 해경 미니홈피는 ‘독도지킴이’

    싸이월드의 해양경찰청 미니홈피(www.cyworld.com/kcgdokdo)가 ‘독도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하루 30∼40명에 불과하던 방문객이 5배 이상 늘어났다.“일본 때문에 해경 여러분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는 등의 격려성 글이 쇄도한다. 누리꾼들이 해경 미니홈피를 찾는 이유는 해경의 남다른 ‘독도 사랑’ 때문.해경은 홈피에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신문기사는 물론 독도가 우리 나라 땅임을 증명하는 각종 고문헌과 지도 자료 등을 꼼꼼히 수집해 놓았다.일본의 해양탐사선이 독도 측량에 나설 태세를 보이자 누리꾼들은 홈피를 방문해 독도 관련 역사 지식을 얻고 이를 스크랩해 알리는 등 독도파수꾼에 동참했다.방명록에는 일본의 행위를 규탄하는 글도 속속 남기고 있다. 해경 홈피에 올려진 자료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독도 동영상.현재 독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홈피 운영자인 윤일수 경사는 “독도 관련 자료를 꾸준히 발굴해 미니홈피에 올린다면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독도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긴장속 독도] 日 ‘동아시아 싸움닭’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해양 측량선이 우리측의 나포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도 주변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무단으로 침입, 수로측량을 강행할 분위기다. 18일 교도통신이 독도 주변 해역을 탐사할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이 이날 도쿄를 출발했다는 보도도 이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본의 ‘무리수’는 일본외교전략의 일환으로 알려져 접점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과 독도 영유권 문제에만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는 동중국해 가스전과 오키노도리 문제로 외교전쟁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이 진행형이다. 이처럼 일본은 현재 주변국가 대부분과 영토문제 등으로 동시에 다투는 ‘동아시아의 싸움닭’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일본 외교가 이처럼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은 패전 6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해부터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외교목표로 ‘국민을 지키는 외교’‘선두에 서는 외교’‘주장하는 외교’를 선언했다. 2차대전 패전국의 멍에 때문에 60년간은 움츠려 있었지만, 이제는 공격적인 외교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세외교로 대전환이 이뤄진 셈이다. 일본의 한 외교전문가는 18일 “앞으로도 공세적인 외교정책은 총리가 누가 돼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변국과 충돌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강한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도주변 수역의 수로측량을 밀어붙이겠다는 태세도 이같은 공세외교의 산물이다. 이날 해상보안청의 측량선이 도쿄를 출발, 독도주변 수역 측량에 나설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흘렸다. 이는 오는 6월 국제회의에 앞선 명분 축적 의도로 보이며, 실제로 일본측이 20일 조사를 강행할 경우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taein@seoul.co.kr
  • 日, 中견제 경제외교 서두른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대 중국 견제 외교가 본격화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한 역사문제와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영토분쟁 등 중국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일본이 중국 외교의 성장세를 의식,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나서는 기류다. 일본은 우선 지난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좌절 때 고배를 안기고, 석유자원 외교에서 중국에 한발 뒤졌다고 판단하고 아프리카 외교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연휴 기간 에티오피아와 가나 등을 방문한다.일본 언론은 이를 아프리카의 자원확보 및 외교에서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는 중국 견제조치로 풀이했다. 방문 기간은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일주일간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기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아프리카연합(AU) 본부를 일본 정상으로서는 처음 찾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꿈꾸던 일본은 AU 회원국 전체의 지지를 확신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결정적 순간에 등을 돌려 일본외교의 신중치 못함을 국제무대에 부각시켰다. 일본은 또 중국 입김이 강해진 동아시아 외교 무대에서도 반전을 꾀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4일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축으로 포괄적인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동아시아 경제연대협정(EPA)’ 설립 제안 방침을 밝혔다. 니카이 도시히로 경제산업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과 중국,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6개국이 참여할 동아시아 EPA를 오는 2008년부터 협상을 시작해 2010년 체결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taein@seoul.co.kr
  • 日 역사왜곡 노골화… 한·일마찰 커질듯

    |도쿄 이춘규특파원|독도와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세가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는 분위기다. 맞물려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반박도 예상된다. 따라서 악화될 대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자칫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교과서 검정의 자세한 내용과 향후 일본 정부측의 태도에 따라 양국 관계의 긴장 수위는 달라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중학교 역사·공민교과서 검정 때까지만 해도 검정 과정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표현이 애매하니 명확하게 하라.’는 다소 신중한 검정의견을 냈었다. 하지만 올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는 독도에 대해 ‘시마네현에 속해, 한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는 강한 검정의견을 냈다.‘일본의 영토인 다케시마(독도)…’라고 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는 인상도 줬다. 역사왜곡 문제도 이전과 달랐다. 한 역사교과서가 검정 신청시 “2003년 아소 다로 자민당 당시 정조회장이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문제가 됐다.”고 기술했으나 검정 과정을 거치며 ‘창씨개명’이라는 표현이 자취를 감췄다. 문부과학성은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의견을 제시,‘일부 정치가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고 사과한 예가 있다.’로 바뀐 것으로 밝혀졌다.‘오해할 우려’라는 의견을 냈다지만 사실상 수정압력을 가한 셈이다.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도 역시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된 여성’이라는 표현을,‘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여성’으로 변경토록 했다. 역시 ‘오해의 우려’를 이유로 내걸었지만 옛 일본군이 종군위안부에 개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했다.”,“직접적으로 표현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라는 기존의 애매모호한 입장을 들어 영토문제나 역사왜곡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예상된다. 중국의 대응도 주목된다. 일본은 중국 등과 영토분쟁을 빚는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나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빚는 북방 4개섬 문제에 대해서도 공세적인 검정의견을 제시, 고교 교과서들이 이를 따랐다. 한편 일본 고교의 새 검정교과서는 도쿄 등 8개 지역에서 4월20일부터 7월30일까지 전시회를 거쳐 일선 고교별로 교사의 의견을 반영, 교장의 권한으로 채택된다. 중학교는 공립인 경우 일선 교육위원회가 채택한다.taein@seoul.co.kr
  • 경일대 첫 ‘독도론’ 강좌 개설

    경북 경산의 경일대가 올해 신설된 부동산지적학과에서 ‘독도론’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 7일부터 첫 강의에 들어간다고 3일 밝혔다. 국내 대학에서 ‘독도론’이 정규 과목으로 개설되기는 처음이다. 경일대는 올해 독도론을 교양과목으로 개설, 운용한 뒤 내년부터 부동산지적학과의 전공과목으로 개편할 예정이다.‘독도론’ 강의 개설은 지금까지의 독도에 대한 감정적·단편적·일시적 연구에서 탈피, 종합적·지속적·이성적인 연구를 통해 울릉도와 병행한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한 경일대는 국내 최초로 ‘간도론’을 정규 학과목으로 개설, 올 2학기부터 강의할 예정이다. 사단법인 한국지적학회 부회장이자 한국간도학회 이사인 이범관(49) 경일대 부동산지적학과 교수는 “지금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는 영토분쟁 중이며, 특히 앞으로 계속될 영토분쟁에 대비한 전문가 양성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말했다.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국제플러스] 印·파키스탄 “카슈미르 자치 협의”

    인도와 파키스탄이 최근까지 영토분쟁을 빚어온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자치정부 수립방안을 논의중이라고 IANS 통신이 1일 보도했다. 파키스탄 외무부의 타스남 아슬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분쟁의 핵심인 카슈미르를 무장해제한 뒤 자치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두 나라가 광범위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통신은 전했다. 자치방안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 파키스탄 여성 지진 잔해속 63일만에 생환

    세상에 이런 기적도 있나.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봐야겠죠.” 파키스탄 지진 두 달 만에 구조된 여성을 두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의 주인공 나크샤 비비(40)가 지난 10일 매몰된 집더미에서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그저 숨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눈을 떴다.”고 사촌 파이즈 딘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너진 지붕 잔해에서 새 대피소를 지을 철판을 끄집어 내려던 순간이었다. 정확히 63일 전 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 잔해더미에 매몰됐던 나크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영국의 BBC 인터넷판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몸무게는 겨우 35㎏. 피골이 상접한 데다 근육마저 굳어져 병상에서도 아직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다. 구조 사흘 만에 첫 미소를 띠었을 뿐 아직 말조차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칠흑 같은 곳에서 어떻게 그토록 오래 버틸 수 있었는지 추측만 가능하다. 파이즈는 나크샤가 발견된 장소가 부엌이어서 음식물의 흔적이 있었으며, 잔해들 사이로 신선한 공기도 유입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던 물이 그녀가 누운 곳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나크샤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이즈와 친척들은 그가 처음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자 곧 눈을 감을 것으로 보고 곧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병원이 있는 무자파라바드 시는 겨우 6㎞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그녀는 이틀이 지나서야 우연히 난민촌을 방문한 독일인 의사에 의해 옮겨졌다. 나크샤는 어머니를 카슈미르 영토분쟁 때 잃었으며 아버지는 지진 당시 두 다리를 잃어 이슬라마바드로 이송됐다. 이웃들은 지금껏 나크샤가 다른 난민촌으로 갔거나 매몰돼 숨졌을 것으로만 여겨왔다. 의료진은 나크샤가 점차 회복되고 있지만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어두운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돼 자극이 없을 경우 생체시계가 느려지면서 신진대사가 저하돼 마치 겨울잠을 자듯 버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올 네티즌 검색어 1위는 ‘황우석’

    ‘황우석’이 올해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찾아 본 검색어였으며, 국민의 게임 ‘카트라이더’가 그 다음이었다. 커뮤니티 포털 드림위즈는 올해 최고의 인기 검색어 10개를 집계한 결과 황우석, 카트라이더, 독도, 문근영, 내이름은 김삼순, 로또, 동방신기, 최홍만, 이영애, 청계천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고 5일 발표했다. MBC PD수첩과의 논란으로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황우석 박사는 네티즌의 검색 횟수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국내에서 1000만 회원을 확보한 온라인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는 2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보였다. 대학생들이 많이 즐긴 까닭이다. 3위에 기록된 ‘독도’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가결하면서 촉발된 영토분쟁이 사이버 임진왜란으로까지 이어졌다.최근 수능을 치고도 유학설에 휘말렸던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4위, 제빵사를 인기직종으로 급부상시키고 올해 최고의 시청률 기록한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이 5위에 선정됐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독도 연구할 대학 없다?

    독도 연구할 대학 없다?

    독도를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해 ‘우리 땅’으로 지키려는 정부의 야심찬 독도 연구 사업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초 일본과 영토 분쟁을 낳은 독도 문제를 3대 현안연구 과제의 하나로 선정, 심도있게 연구할 대학 연구소를 공모했으나 지방의 국립 K대 1곳만이 신청했다고 14일 밝혔다. 교육부가 선정한 3대 과제에는 대학정책과 인적 자원 문제도 포함돼 있으나 이들 모두에 신청한 학교가 적고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교육부가 관련심사를 전격 중단하고 공모를 내년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당초 심사결과를 다음달 발표키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독도 연구의 경우, 국제법 중 영토분쟁관련 판례연구, 고문서 중 독도관련 문헌연구, 독도의 정치·경제·사회·자원·생태학적 의미와 중요성 등을 연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대한 계획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독도 분쟁 직후인 지난 4월 발족한 청와대 산하 동북아평화를 위한 바른역사 정립기획단 관계자는 “일부 학자들이 언론에다 독도 등 현안에 대한 자기입장을 펴고 있으나 국민선동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등 사회문제를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대학 연구소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이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국가정책을 추진할 수 없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심사를 중단한 독도 분야 외에 인적자원부문에는 S대,C대, 또 다른 C대 등 3곳이, 교육정책 분야에는 E대만 신청했으나 독도 연구와 마찬가지로 자격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국내 대학연구소는 허울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부의 다른 관계자는 “간판만 내건 대학연구소가 90%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교육부가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이들 3대 과제에 대해 연구소 지정을 받으면 한해 3억원의 연구자금을 9년간 받게 된다. 물론 3년단위로 실적을 평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지원을 중단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큰 하자가 없으면 9년간 계속 지원하고 성과가 좋을 경우, 이후에도 계속 지원한다는 입장이었다. 교육부의 노환진 학술진흥과장은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정부정책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한다면 대학연구소에서는 학술적·비공식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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