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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호남 총리 시사… 자문그룹 오늘 출범

    文, 호남 총리 시사… 자문그룹 오늘 출범

    자문그룹, 전직 장·차관 60여명 정세현·이영탁 공동위원장에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가 14일 출범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내각에 몸담았던 장·차관 60여명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문 전 대표에게 집권 비전과 국정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된다. 국민의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원광대 총장과 참여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이영탁 전 실장이 이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또 박승 한국은행 총재,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전 우석대 총장,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가 상임고문을 맡기로 했다. 전직 장·차관들은 크게 경제 분야(재정·금융, 산업·건설, 생명·과학기술)와 사회 분야(교육·문화, 복지·환경, 통일·외교·안보) 그룹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경제 분야에선 박봉흠·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활동한다. 사회 분야에는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 등이 합류했다. 문 전 대표는 13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그는 이날 SBS에 출연해 지역 탕평 총리론을 거론하며 “내가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국무총리는 지역적으로 탕평과 국민 통합을 이루는 분이었으면 한다”며 집권 시 첫 총리로 호남 출신 기용을 시사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각각 방문했다. 한기총 등이 동성(同性) 결혼 합법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자 문 전 대표는 “동성혼은 국민정서상이나 현행 법체계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성적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되지 않도록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돼 있다”며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인사]

    ■행정자치부 △장관비서실장 김성중△장관정책보좌관 김하균△의정담당관 김항섭△공공서비스혁신과장 김영수 ■산업통상자원부 ◇서기관 승진△제1차관실 김태훈△감사담당관실 이건필△기획재정담당관실 유재호△산업재난담당관실 박학희△무역진흥과 송영진△경제자유구역기획단 김도헌△기후변화산업환경과 장혜정△입지총괄과 이중엽△산업기술시장과 정승혜△철강화학과 이재석△조선해양플랜트과 주세형△동북아통상과 윤진영△자유무역협정상품과 김태희△에너지자원정책과 김태권△신재생에너지과 박병기△에너지신산업정책과 홍수경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2국장 김종성△권익보호국장 박우귀△방송심의1국 지상파텔레비전팀장 정호근△방송심의2국 정보교양채널팀장 서정배△방송심의2국 연예오락채널팀장 양귀미△통신심의국 불법정보팀장 이상은△통신심의국 법질서보호팀장 최광호△권익보호국 민원상담팀장 신종철△인터넷피해구제센터 권리보호기획팀장 김희철△인터넷피해구제센터 권리침해대응팀장 최은희△인터넷피해구제센터 분쟁조정팀장 박종현△대구사무소장 강희영△강원사무소장 김철환△권익보호국 연구위원 송명훈△인터넷피해구제센터 연구위원 염상민 ■세종시 ◇국장급△의회사무처장 홍민표△정책기획관 강성기 ■MBC △감사국 부국장 겸 감사기획팀장 고학진 ■우리은행 ◇승진 <영업본부장>△광진성동 박완식△구로금천 원종래△서대문 정석영△영등포 조광희△용산 신영재△종로 김정록△중랑노원 구본신△중부 강성모△경기남부 이기범△부산중부 이현식△부산경남동부 서동립△삼성기업 김왕수△트윈타워기업 정동운△중앙기업 신광춘△미래기업 심상형<영업본부장대우>△개인영업전략부 홍윤기△글로벌사업본부 김인식△ICT지원센터 김종윤△경영기획단 이석태△베트남우리은행 권혁태<부장대우>△국내그룹 허시영△개인고객본부 김성중△기업영업전략부 김호은△기관영업전략부 김희동△부동산금융부 이상도△주택기금부 박문환△글로벌전략부 김홍주△투자금융부 김태훈△자금부 곽용섭△외환업무센터 오세윤△스마트금융부 박준용△ICT지원센터 한재철△차세대ICT마케팅부 김지환△리스크총괄부 장인호△여신감리부 유치복△총무부 이호현△중기업심사부 한장환 김찬종△대기업심사부 김상섭 강영호△여신관리부 조동식△기술금융센터 서한태△기업개선부 김영섭 정현배△기업금융부 박경래△회계부 김유재△미래전략부 양기현△IR부 곽성민△검사실 성병규△서초영업본부 김동경△중국우리은행 이재환 장재호<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삼성 조규대△트윈타워 이상규△강남 나성문△종로 임정섭<금융센터장>△반월중앙 이용우△한전빛가람 조영직<금융센터 기업지점장>△본점 김성중△가락중앙 김광석△가산IT 유영호△도산대로 권홍덕△둔촌역 정승수△서초 이현규△선릉 박기수△양재중앙 유기덕△역삼역 임채영△잠실나루역 육병수△테헤란로 손철수△남동공단 조병산△부천내동 최수봉△분당중앙 한민수△울산중앙 이상진<금융센터 개인지점장>△강남교보타워 김춘대△남역삼동 이양범△동여의도 강용재△서울시청 박두환△신사동 이지수△삼성반도체 김영조△수원 이명란△안양 김애자△안양중앙 김정기△코오롱타워 김형수<영업지점장>△국내그룹 윤종백 이준형 김종수 안광수 황덕진 백인근 신상갑 임채석 함병수 박종욱<지점장>△광진구청 황필기△금천구청 심원섭△까치산역 양대열△노원구청 김순기△둔촌남 김진성△마포구청 오현석△방학동 민영인△삼성엔지니어링 황영근△삼성SDS 김영봉△상계역 정준환△서울시설공단 박영주△성동구청 김행옥△성북구청 이대열△송파구청 구무효△숭실대 이광배△아시아선수촌 박국재△여의도광장 김용기△역촌동 이상협△영등포유통상가 문오수△용산전자랜드 최종일△우면동 주영웅△원남동 함동수△원효로 최정복△원효중앙 최은진△자하문 강부원△종암 김행식△중구청 오영진△중랑구청 전재화△중화동 박종민△창동역 강우삼△풍납동 김동우△한남빌리지 전현주△연수동 이경성△인하대학교 오병학△고강동 김미숙△곤지암 권태운△광교신도시 심창호△교하 홍종봉△구리 조병삼△김포양촌 김동국△남양주 이학주△동백역 임창혁△동탄산단 김재식△모란역 양일영△문산 장효정△분당차병원 이옥자△서판교 이상헌△수지성복 김명희△수지신정 이진욱△시화센트럴 이용건△시화스틸랜드 임홍빈△역곡 김중호△중동중앙 최진영△파주남 인상후△행신동 배동욱△화성봉담 이승우△화성정남 서영탁△화성팔탄 강래만△노은 송용섭△논산 강진호△신부동 김만배△아산배방 민사제△천안산단 박한수△천안청수 오완식△제천 함근석△충북혁신도시 권혁수△속초 권용섭△구서동 하연식△기장 김지정△반여동 김용표△센텀파크 김연숙△온천남 곽병준△화전공단 이수근△울산북 전해열△밀양 이광수△양산신도시 고재성△진영 류원청△창원테크노파크 서도영△다사 임남균△대구용산동 남춘섭△범물동 장규철△상인동 박상형△성당동 김용한△영주 류경호△외동산단 이승혁△신창 김용태△영등동 박본수△전주송천동 최원△전주효자동 박길옥<지점장대우>△당산동 송원규△대방동 임동범△여의도중앙 조홍찬△은평구청 장덕훈△청계8가 서정빈△청파동 윤명희△포이동 박종혁△한남동 박용선△화곡동 최대희△동두천 임기원△안성 정동진△정왕동 고봉덕△대전 신근석△영도 한상훈△홍콩 권용규
  • [김영탁의 시식남녀] 송어 뛰노는 물 맑은 생수골, 충주

    [김영탁의 시식남녀] 송어 뛰노는 물 맑은 생수골, 충주

    충주엔 생수(生水)가 있다. 충주댐이 가까이 있고 서울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한강의 상류다. 충주엔 김생수(金生水) 시인도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충북 제천시 백운면 가을 들판을 날고 있는 장수잠자리가 '원서문학관' 문학행사장 위로 투명한 헬리콥터 비행할 때였다. 김생수 시인은, 김생수입니다, 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돈 주고 사먹는 생수가 아니라, 아득한 시절 아무 데서나 공짜로 퍼마시던 맑은 우물 속 생수 같은 이미지였다. 말하는 게 어딘가 어눌하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통기타를 안고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부르는 사람이다. 늘 국방색 군용잠바를 걸친 더벅머리, 가인 김생수 시인. 충주시 버스터미널 바깥까지 나와 김생수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조리터 명가'로 손을 이끈다. 2대째 가업을 이어온 식당이다. 양채영, 강순희, 김영옥, 안춘화, 이정애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몸이 불편한데도 애써 참석한 원로 양채영 시인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충주에서 큰 상징으로 있는 그는 주변의 시인들에게도 큰 나무로 있다. 식탁 위 송어와 향어가 정갈하다. 붉은색으로 빛이 나는 송어는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육질이 혀를 자극했다. 이 집만의 독특한 소스도 충분히 조연으로서 괜찮다. 향어는 연한 핑크색으로 식욕을 돋우며 유혹한다. 일단 일미一味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하나의 맛을 느끼는 것도 좋다. 송어를 먹다가 향어를 먹는 건 부드러움에서 약간 졸깃한 맛으로 이동하는 것. 그러다가 큰 그릇에 갖은 야채를 넣고 송어를 넣고 비벼 먹다가 향어를 넣어서 먹는다. 향어는 한국 전역을 비롯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분포하고 있다.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다. 향어는 70년대 소양호에서 처음 가두리양식장을 설치하여 양식했으나 초기에 실패가 많았다. 수온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양호와 충주호에서 대량 양식되어 비교적 싼 값에 서민들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양호와 충주호 식수원이 오염된다 하여 90년대 중반쯤 모두 철거되었다. 지금은 논이나 밭 등에 향어양식장을 만들어 운영되기 때문에 비교적 값이 비싼 편이다. 송어는 1급수에서 양식이 가능하므로 월악산 계곡 등 산골 맑은 물에서 주로 양식한다. '충주 남한강변/ 송어횟집에서/ 붉은 고추장 송어회 한 점/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부어 넣고 매운 건지 쓴 건지/ 아! 눈물이 난다.'(양채영 '식시식食詩食') '향어는 물결무늬처럼 접시에 가지런히 누었고/ 송어는 계곡물 소리로 냄비에 펄펄 끓었다/ 꽉 다문 입, 한마디 투덜거리지 않았다/ 머지않아 다시 살과 뼈들이 되어 헤엄치리라'(김생수 '살과 뼈들의 운행') 시인은 향어회와 송어매운탕을 앞에 두고 물결의 파동과 물소리를 듣는다. 물의 화신化身이 물고기이듯 돌고 도는 선순환 구조 속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법. 역시 생수生水 시인답다. 일행은 아이들처럼 조잘거리며 놀다가 마즈막재로 이동했다. 마즈막재는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있는 고개다.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재가 되었다는 애처로운 전설이 있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얘기와 마즈막재 부근에 피어 있는 별꽃을 보면서 우주와 블랙홀 얘기에 빠졌다. 아마 바람을 타고 있는 별꽃이 유난히 눈에 밟히는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들 별꽃이라고 할 때 최준 시인은 별에서 먼 꽃이라고 했다. 김생수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 '시인의 집'에 다시 자리를 틀었다. 주인장을 닮은 카페는 소박하면서 털털했다. 흑백 LP판 돌아가면서 노래 '해 뜨는 집'이 나왔다. 공직에 근무하면서 알뜰하게 저축해서 자투리땅을 사서 지은 집이다. 주인이 챙겨오는 마른안주와 과일을 두고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드디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계속 앙코르다. 나중에 음성에서 온 김시영 가인이 합세하여 노래를 불렀다. 밤에 어울리는 음색이다. 시나브로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강순희 시인이 운영하는 '행복한 우동가게'로 달렸다. 마침 우동가게 옆 시인공원에서 김생수 시인이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을 하는 날이다. 우선 강 시인이 자랑하는 돌솥우동을 먹었다. 투박한 돌솥에 우동을 끓인 것인데 모양새가 묵직하며 고급스럽다. 숙성된 반죽을 손으로 쳐서 만들어서 면발도 쫄깃하면서 좋다. 착한 가격에 맛과 양이 만족스럽다. 이렇게 팔아서 남을까 싶다. 우동가게는 새벽까지 영업하는데 밤새도록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몰려왔다. 우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와 술안주가 풍성했다. 강 시인의 친정인 강진 솜씨와 충주 물 솜씨로 메뉴에 없는 먹거리와 안주가 만들어졌다. 일부러 갖은 산나물을 다듬고 데치고 묻혀서 상큼한 밥상으로 태어났다. 아무리 불금이라도 놀라운 건 충주 사람들은 밤잠도 없나 싶게 밤새 북적거렸다. 충주는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리가 세 개나 되고 나머지는 산으로 마감되어 있어 어쩌면 내륙의 섬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외지 사람들도 많이 들락거렸다. '우동이란/ 매끈하게 와 닿아/ 척하고 안기는 어떤 숨결 혹은,/ 사랑 같은 것.'(강순희, '우동') 우동의 면발이 아니, 우동이란 후들거리며 찰랑거리는 부드러운 살결이 척하고 감길 땐 살갑다.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 달아날까 봐 조심스럽다. 강 시인은 그런 촉감을 숨결과 사랑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사랑이라고 한다. 그는 사랑 앞에 용감한 여인이다. 춤의 리듬이 살아 움직이는 부드러움이 '행복한 우동가게'의 면발 속에 끈끈하게 응집되어 있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특별하고 강력한 소스까지. 밤은 길지만 술쟁이, 시쟁이들에겐 늘 짧다. '천일해장국'은 올갱이로만 해장국을 만드는 집이다. 올갱이도 인근에서 직접 갖고 온 거라 색깔도 좋고 속풀이로 좋단다. 청동구리 같은 올갱이의 식감은 간밤에 시달렸던 간을 위로해줄 것 같다. 큰 냄비엔 올갱이로 가득 차 있고 부추가 조연으로 들어가서 까슬한 올갱이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봄이면 하얀 사과꽃이 눈부시고, 가을에는 그 꽃자리마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리는 길 위에서 각자의 곳으로 향했다. 고향의 느낌 넘실거리는 곳을 떠나려니 간밤에 들었는지, 예전에 읽었는지 머릿속에서 시 한 편이 번뜩 되뇌어진다. '주홍빛 늙은 호박 으깨어/ 김치 호박국 끊여 저녁 밥상 올리면/ 유년 시절 추억이 늬엇늬엇 안겨온다'(이정애, '호박국') 서울 오기 전 음성 최준 시인의 집에 잠시 들렀다. 가게에서 술맛 좋다는 음성막걸리를 샀다. 시인의 집 허름한 식탁에 배추와 된장을 놓고 물맛이 좋다는 음성막걸리를 마셨다. 시원하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주말 영화]

    ■브레이브 하트(EBS1 토요일 밤 10시 45분) 배우로 먼저 이름을 날리고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스타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첫손으로 꼽힌다. 2등 자리를 다투는 선두주자를 꼽으라면 멜 깁슨이 아닐까 싶다. 호주 출신의 이 배우는 ‘매드맥스’ 시리즈와 ‘리쎌웨폰’ 시리즈로 톱스타에 오른 뒤 연출 영역에 도전,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족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사랑과 투쟁, 죽음을 그린 두 번째 연출작 ‘브레이브 하트’를 통해 감독상과 작품상 등 미국 아카데미 5관왕에 올랐다. 자신이 주연도 맡았다. 이후에도 예수를 파격적으로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아포칼립토’(2006) 등 문제작을 연출한 바 있다. 근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신작 ‘헥소 리지’가 다음달 개봉할 예정이다. 양심적 집총 거부자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기를 그렸다.1995년작. ■슬로우 비디오(OBS 일요일 밤 10시 10분) 올해 4전5기 끝에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히트시키며 국내 영화 시장에서 주가를 올린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20세기 폭스의 두 번째 한국 영화다. 남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슬로 비디오 보듯이 볼 수 있는 동체 시력을 지닌 주인공이 집안에 틀어박혀 살다가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의 에이스 직원으로 거듭나며 겪는 좌충우돌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헬로우 고스트’(2010)로 3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이 다시 만났다. 김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강풀 원작의 ‘바보’(2008)까지 보태면 세 번째 호흡이다. 2014년작.
  • [김영탁의 시식남녀] ‘아구, 통술 공화국’을 찾다

    [김영탁의 시식남녀] ‘아구, 통술 공화국’을 찾다

    ‘마산’하면 ‘아구찜’이다. 서울이나 전국 어디를 가도 온통 ‘마산아구찜’식당이다. 상관없다. 마산 아구찜은 이미 전국구이기 때문이다. 원조 논쟁?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산이다. 마산은 아구찜 식당마다 제각각 하나씩 아구의 일가를 이뤄왔다. 말 그대로 '아구 공화국'인 셈이다. 마산역으로 마중 나온 이상옥, 성선경, 이주언 시인을 만났을 때 마산역 광장의 시계탑은 오후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끼니를 놓친 시인 무리들은 오동동할매아구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표준어는 '아귀'다. 하지만 이 지역 말로 '아구'라고 불러야 금세 입속에 침이 고인다. 아구는 생긴 모양이 흉측하고 못생겨서 바닷고기가 흔할 땐 어망에 걸려도 어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다에 던져버린 생선이다. 이제는 껍질과 내장,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 또한 특유의 맛이 있어 뼈만 남기고 알뜰하게 발라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은 콜라겐이 많아 사람의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아귀의 간은 비타민A가 많아 고소하고 진하며 남자들의 강장식품이다. 요리는 찜, 탕, 수육 등이 있다. 지방마다 요리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원조 격인 마산 지역은 아귀를 말려서 다시 불렸다가 아주 매운 양념으로 요리하는 것이 특별하다. 지금도 말린 아구로 아구찜을 만드는 식당이 있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말린 아구찜이 오리지널이라며 그 맛을 만끽하기도 한다. 옛 음식은 이렇듯 추억 혹은 익숙함으로 형체를 바꿔 DNA에 각인된다. 하지만 말려서 꾸득꾸득한 마산 특유의 아구를 제외하고 생아구찜과 탕, 수육을 시켰던 것은 성선경 시인이 결정한 듯하다. 마산 특유의 아구를 주문하지 않은 이유는 나중에 이주언 시인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그의 입을 빌려 보면, 생아구로 만든 것보다 말린 아구 맛이 덜했다고 한다. 생선은 신선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옛날에는 아구를 말려서 보관해두었다가 콩나물 등을 넣고 찜요리를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 말려야 했고, 말린 생선은 신선도가 떨어져 국물 맛이 잘 우러나지 않고, 그래서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찜요리로 만든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일행들은 한편으로는 마산막걸리잔 기울이느라, 한편으로는 아구찜과 수육을 오가며 젓가락질하느라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시의 거리 마산의 시인들은 타관에서 온 시인의 손을 '시의 거리'로 잡아 끌었다. 시를 돌에 새겨서 세워놓은 소박하고 조용한 공원이었다. 마산이 한눈에 보이는 중심부여서 사방팔방으로 트였다. '누나야 석류꽃이 피었습니다/ 푸르듯 붉은 꽃이 가지마다 피었습니다/ 오월달 맑은 날에 잊은 듯이 피었습니다/ 누나가 가신 날에 잎사귀마다 그늘지어/ 하늘가 높은 곳에 몸부림치며/ 그때 같이 석류꽃이 피었습니다'('석류' 전문) 현촌 김세익(1924~1995) 시인의 시비는 날개 형태로 날아가는 돌 같다. 김세익 시인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마산여고 교사로 10년을 마산에서 살았다. 이석(본명 이순섭·1925~2000)을 비롯해 조두남, 이은상, 이원수, 임화 등 수많은 시인과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보듬은 마산의 품은 넉넉하고 따듯한 남쪽 도시이며 출렁이는 바다를 거느리고 있다. 마산은 '가고파'의 고장, 곧 노산의 고장이다. 또한 3·15 의거의 고장으로 그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옥에 티 같은 노산의 흠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을 법하다. 노산문학관이 될 뻔하던 건물은 마산문학관이 됐다. 전북 고창에는 미당문학관이 있다. 친일 흔적은 흔적대로 두고 미당의 문학적 업적은 업적대로 기리고 있다. 좀더 시간을 두고 객관적인 접근이 이뤄진다면 노산의 공과 역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합포만을 통째로 담은 통술집 '통술집'이라는 말이 궁금했다. 도대체 '통술'이 뭘까? 뭔가 큰 인심이 배어 있는 듯도 한데…. 술집은 바닷가의 특성을 잘 살린 곳이다. 술집이라고 부르기엔 먹거리가 너무 풍부하고, 음식점이라고 부르면 찾아가는 목적에 어긋나는 느낌이다. '통술집'은 식사를 하지 않고 찾아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안주는 밥이 될 만큼 충분히 먹고도 남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안주로 만들어내기에 바다를 통째 안주로 낸다는 의미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요즘은 치킨 같은 다른 안주가 한두 가지 섞여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주인의 과잉친절 혹은 엉뚱한 애교인 셈이다. 술이 들어오는데 플라스틱 물통에 소주, 막걸리, 맥주가 꽉 채워져 있다. 성선경 시인과 필자의 연속적인 건배로 벌써 빈 병은 퇴역하고 남은 술병들은 병정처럼 통 속에 서 있었다. '바다를 가운데로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의 옷고름 풀어헤쳐요/ 당신은 소라의 가슴으로/ 당신은 가자미 눈짓으로/ 추억의 살점 저미어 건네 봐요/ 여기선 우리,/ 바다를 통째 건져서 마셔 봐요' (이주언 '통술집') '오동추야 오동동 긴 이야기 한겨울 깡통시장 다녀가고/ 속살 얼비치던 여인 치맛자락 쓸듯 합포 바다 잔잔한 설렘 시심으로 다녀가고'(김일태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도대체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과 해물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푸짐하여, 가히 전주에 있는 전주막걸릿집보다 못함이 없었다. 오히려 바다를 밥상으로 끌어당겨서 더 풍부하고 넘실거린다. 이주언 시인의 농익은 사랑이 저미는 시는 맛과 살〔肉〕을 통해서 사랑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우리와 바다가 통째로 동일화한다. 특히 소라의 가슴과 가자미 눈짓은 은근하여 추억의 살점이 몸 안으로 살며시 들어온다. 김일태 시인은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긴 이야기를 깡통에 넣고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축약된 얘기는 시가 되어 벌써 시심은 합포 바다에 다다랐다. '접시 위의 메로 구이는 결국 파국을 보여주지, 잔뜩 긴장한 속살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물렁물렁한 뼈, 그 뼈의 촉이 쓴 기억은 십 년이 지났다, 또 십 년이 지날 것이다, 기억을 향해 울기 시작한 물고기의 벌어진 입과 결별해 버린 저녁'(박서영 '메로 구이') '문을 열 때 멀뚱히 쳐다보는 눈/ 접시 위에 시 한 수로 누웠다/ 마주친 눈에 바다로 가는 물길이 잡힌다'(최석균 '도다리 시인') 온갖 해산물에 메로구이까지 내놓는 마산 통술집도 시인들의 술통을 다 채우지 못했다. 성선경 시인이 내밀하게 소개한 '부광수산'에서 도다리까지 저며낸 뒤에도 긴긴 밤은 쉬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숙취로 쓰린 속은 복국 한 사발 들이킨 뒤 덜컹거리는 귀경 열차에서 성 시인의 시편 '복찌개'를 읊조리며 달랬다. '속 쓰린 소리 복, 복, 복/ 쓰린 속을 달래는 소리 복복, 복복, 복복/ 소기 풀리는 소리 복복복, 복복복'(성선경 '복찌개')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김영탁의 시식남녀] 여수, 한강, 와이키키브라더스

    [김영탁의 시식남녀] 여수, 한강, 와이키키브라더스

    여수에 대한 세 가지 기억 여수에 대한 개별적인 기억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 그리고 지금은 휴간된 문예지 '정신과표현'의 고(故) 송명진 시인이다. 모두 외롭고 쓸쓸하고 고단하며 아련하다. 모든 게 마지막이며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여수는 운명적으로 세 가지를 감싼다.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다가 세월에 떠밀리며 유랑 밴드로 전전한다. 영화는 제 삶에서조차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세상과 운명에 내몰린 이들을 덤덤히 그렸다. 마지막 장면은 여수의 밤무대에서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로 마무리된다. 그 울림은 처연하고 애달프다. 삶도, 사랑도, 희망도 쉽게 끝낼 것들이 아님을 아련히 짐작케 한다. 소설 '여수의 사랑'은 우리가 모두 버리고 싶은, 까마득하게 잊었던 생의 치욕들을 까집어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 기억은 고통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상처를 안을 수밖에 없는, 삶의 궤적이란 뼈아픈 과정이다. 고통스럽고 아픈 과정의 진실이, 다시 시작하고 살아갈 동력을 작동하게 한다. 이 소설은 지리멸렬한, 끝없는 절망, 좌절감 같은 바닥정서로 보면,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통한다. 그리고 황폐한 세상의 바닥에서 부재를 그리워하며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을 각성한다. 쓸쓸하고 외롭고 고단한 운명 속에서 죽음과 삶에 대한 교차는 생에 대한 강렬한 내구성을 키워낸다.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아프지만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여수의 사랑이다. 송명진 시인은 '정신과표현'의 발행인 겸 주간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 1월 8일 영면했다. 그는 전남 광양에서 출생했으나 청년기를 여수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여수 문화예술을 위하여 크나큰 일을 일구어냈다. '정신과표현'이 창간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와 같이 일했다.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 시인들의 정성으로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착한 미소'(황금알)가 나왔다. 그는 서울에 살면서도 애증이 점철된 여수를 늘 그리워했다. “언제 여수에 내려가 산비탈에 흙으로 집을 지어 살까?”하며 매양 여수로 내려가는 꿈을 꿨다. 그는 여수를 다녀오면 활기에 넘쳤고 옥돔, 조기, 가자미 등속을 가져와 우리는 솥에 쪄서 먹었다. 언제나 자신을 숨기고 낮춘 겸손의 미덕과 장인정신이 투철했던 송명진 시인은 이제 영겁의 시간 동안 여수 앞바다 파도소리를 듣고 있을 테다. 오동도 시누대, 그리고 돌산 '자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가 있지/ 세상에 덜렁 혼자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이게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개를 흔들 때/ 마음의 짐일랑 그대로 팽개치고/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 먼 길 달려온 자네에게/ 늘 넉넉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닮은 섬들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중심은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넌지시 귀띔해 줄 걸세/ 때로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거냐며/ 생미역 한 줄기 풀어/ 엉기고 맺힌 생을 해장시켜 줄 걸세/ 자네, 외로움이 얼마나 심했느냐고/ 겨울 이기고 돌아온 동백꽃 웃음이/ 옷깃을 풀고 와락 안겨들 걸세'(신병은 '여수 가는 길' 전문) 여수에 왔으니 오동도를 건너뛸 수는 없다. 마침 석양의 황금빛 구름이 들어올 무렵이다. 순천 사람 양해열 시인의 안내로 오동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바닷가 해안 바위를 깔고 앉아 할머니가 파는 멍게와 해삼이 눈에 들어온다. 오동잎처럼 보이는 오동도. 언제인지 모를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섰기에 오동도라 불렀지만, 시누대가 지천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여기를 병참기지로 삼아 시누대로 화살을 만들었다. 잔뜩 매서워진 찬바람을 품안에 들이면 동백 또한 이곳에 흐드러질 것이다. 문득 동백 범벅에 드러누워 뒹굴고픈 충동이 들지만, 이는 겨울의 몫이다. 가끔 바람이 지나가며 시누대를 쓰다듬었다. 오동도는 순식간에 번쩍이며 서쪽에서 몰려오는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듯했다. 아직 석양의 구름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황금빛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십년만에 찾아온 여수는 익은 듯하나 새로운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설마/ 혼자 깊어지다/ 뚝/ 뚝/ 저를 놓아버리는 단음절 첫말이/ 이렇게 뜨거운데/ 설마 설마/ 그게 한순간일라구'(신병은 '동백꽃 풍경' 중) 동백은 보는 이에 따라 희로애락이 다채롭지만, 신병은 시인의 '동백꽃 풍경'은 처연한 아픔이 동반한다. 동백꽃의 부재를 시로 달래볼 뿐이다. 해풍에 실려 오는 풍만한 처녀 가슴 같은 바람에 해삼과 멍게를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는 걸로 서운함을 달랬고, 그렇게 여수의 밤이 조금씩 깊어갔다. . 주인의 예쁜 딸 이름을 걸고 하는 '은하횟집'은 가정집을 개조하여 정감이 나는 횟집이었다. 주로 자연산을 쓰는데 그날그날 배로 잡아온 고기를 뼈째로 썰어주는 단골들만 오는 소박한 식당이다. 박해미, 채의정 시인이 합류했다. 자연산 광어, 돔, 우럭 등속을 뼈째로 썬, 맛깔스럽게 차려진 한 상이 나왔다. 주요리 옆으로 멍게와 전복이 예쁘게 치장을 하고 식욕을 당겼다. 특이한 건 뚝배기에 쌈장을 먹음직스럽게 담았는데 갖은 고명이 들어 있었다. 깨소금과 청양고추, 잘게 썬 대파 등이다. 회와 어울림이 여수 바깥에서 구경하기 힘든 맛이다. 여수까지 왔거들랑 순천만을 빼기에는 서운함이 크다. 일단 시 한 편. '널을 타고 이승을 건너가는 여인들/ 넓은 갯벌 수평선 위를 기고 있다/ 꼬막은 어금니를 꽉 깨무는 버릇이 있어/ 술병처럼 목을 늘인 흑두루미식당,/ 짭쪼롬한 내 손톱 밑이 시리다'(남푸름 '순천만 꼬막정식') 꼬막 채취할 때 한쪽 무릎을 널빤지에 대고 뻘밭에 미끄러지는 모습을 ‘널을 타고 이승을 건너간’ 빼어난 묘사는 리얼한 현장을 초월하여 신비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몸과 뻘이 하나로 육화되어 감각을 건드리며 밀려오는 밀도는 시리면서 꽉 찬다. 여수는 사랑과 삶, 그리고 영겁으로 회귀하는 삶의 연속성을 가르쳐준다. 따뜻한 남풍이 머뭇거리는 나그네의 등을 연신 떠민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김영탁의 시식남녀] 시인은 속초 물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김영탁의 시식남녀] 시인은 속초 물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물소리를 아시는지. 설악에서 발원하여 산과 계곡을 타고 논밭을 적시며 냇가를 이루다가 속초 앞바다까지 흐르는 물이 내는 소리. 그 소리엔 고 이성선 시인의 음성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구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산길을 걸으며/ 내 앞에 가시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들의 꽃 피고 나비가 날아가는 사이에서/ 당신 옷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 목소리는 거기 계셨습니다/ 산안개가 나무를 밟고 계곡을 밟고 나를 밟아/ 가이없는 그 발길로 내 가슴을 스칠 때/당신의 시는 이끼처럼/ 내 눈동자를 닦았습니다// 오래된 기와지붕에 닿은 하늘빛처럼/ 우물 속에 깃들인 깊은 소리처럼/ 저녁 들을 밟고 내려오는 산그림자의 무량한 몸빛/ 당신 앞에 나의 시간은 신비였습니다// 돌담 샘물에 떨어진 배꽃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새벽 산에서 옷을 벗는 새벽빛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나의 길을 이렇게 오십니다// 산사로 향한 따뜻한 길처럼/ 하늘에 새 날려 보내고 서 있는 나무처럼/ 내 앞에 당신은 그렇게 계십니다'(이성선의 '당신이 나를 스칠 때') 강원도를 향해 가는 두 시간 남짓으로 짧아진 그 길 위에서 왜 문득 이성선 시인이 떠올랐을까. 늘 말이 없던, 서늘한 물 안에 따뜻함을 가졌던 시인. ‘물소리시낭송회’에서 만났던 게 족히 20년은 되었을 터. 그때 그에게 느낀 건 물의 이미지였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의 손이 그랬고 말이 그랬고 음성이 그랬다. 그렇게 흐르는 물과 늘 함께했던 은자(隱者) 최명길 시인의 온화한 미소가 떠오른다. 고 이성선 시인이 세상을 뜨고 난 이후 속초의 산과 물을 지키는 이였다. 그 역시 이성선 시인의 뒤를 따라 2014년 5월 백두대간 심연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설악산에 걸린 흰 구름 조각/ 그가 내게 보낸 편지인가/ 내용은 날아가 지워지고/ 지워지다 한 줄만 남아 청봉에 걸려 있다'('구름편지') 고 최명길 시인과 시를 생각하면 은자와 미륵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생전에 숨어있곤 하는 그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연락이 되다가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기 일쑤다. 미륵 같은 그의 미소를 생각하면 그냥 기다리는 게 상책일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바람에 실린 물소리를 타고 문득 나타나 평화로운 미소를 말없이 건넬 것 같은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20분 가량 늦게 도착한 버스가 속초 동명동 터미널에 멈추니 최근에 시집 '바람의 독서'(황금알)를 펴낸 채재순 시인과 부군인 최재도 극작가가 마중을 나왔다. 이곳은 무슨 몬스터인지, 괴물인지를 사냥하겠다며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다지만 새삼스러운 일이다. 속초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 자체로 시(詩)와 식(食)의 명소다. 곤드레밥상을 한상 앞에 앉으니 이미 건강해진 기분이다.척박하고 부족한 농토에 산이 많은 데서 난 감자와 산나물이 시대를 돌고 돌아 이제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밥상을 압도하는 무쇠돌솥의 곤드레밥은 묵직하고 튼실한 강원도의 힘이다. 슴슴한 간장을 넣어 비빈다. 비빈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나물 반찬을 입맛대로 젓가락으로 당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채재순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식량이 모자라 늘려 먹던 시절에는 곤드레 나물을 많이 넣고, 쌀을 조금 넣어 죽이나 밥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허기를 기신기신 때워야 했던 곤드레밥이 이제 어엿한 건강식이 됐으니 세상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텃밭에서 금방 따온 나물이나 채소로 만들어낸 음식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밥상을 만들어낸다. 이 집에서 곤드레 밥상을 앞에 놓고 축하할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종종 이야기와 정에 취해 있곤 한다. '산 중 솔바람과 구름이 안으로 들어오네/ 곤드레 꺾어 한 아름 안기던 친구의 얼굴 아른거리고/ 그윽한 이야기와 정에 취해 빙그레 웃음이 이는 오후/ 눈동자엔 산나리 피어나고, 마음 가득 퍼지는 산내음'(채재순 '곤드레밥') 솔바람과 구름까지 끌어당겨 비벼 내놓았으니 참 맛나겠다. 거기에 곤드레를 보내온 친구까지 끌어온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청정무구한 밥이 이루어진다. 낙산사 양양에서는 뭐든지 주면 먹어라 양양으로 가는 길목 해맞이 공원에 들려서 황금찬 시인의 '설악의 아침'시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요즘 노 시인은 자주 고향 속초를 찾는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아들 황도제 시인이 세상을 뜨고 난 후, 수유리 마을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조금 야윈 듯한, 쓸쓸한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황도제 시인이 세상을 뜨기 전 공간시낭송에서 함께 시낭송을 하고 뒤풀이 때 소주 한잔 하면서 시집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뜨고 난 이틀 후에 그의 '겨울새가 물어온 시 한 편'시집이 도착했다. '별이 묻어나는 이슬과의 이별/ 가을은 겨울을 예감하였다./ 시를 모르는 짐승/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눈이 내렸다./ 겨울새가 물어온 시 한 편/ 꽃보다 아름다운 눈/ 희고 고운 서정시였다' 2009년 1월이었다. 설악 소공원을 소요할 때는 어둑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해맞이 공원에 오고 나니 아직 해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다. 일행은 낙산사와 홍련암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낙산사는 신라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동해의 명산인 오봉산에 창건한 사찰이다. 낙산사라는 사찰명은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사찰로 인정되어 2009년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다. 홍련암 및 의상대 주변 해안 일대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2007년 명승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걸쳐 화재와 전쟁 등으로 파괴와 중건이 계속되었다. 858년 범일국사의 중창 이후 몽골군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파괴된 것을 그때마다 재건하였다. 특히 2005년 4월 5일 양양지방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보물 제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리고, 원통보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불길에 재만 남은 흔적 위에 불심은 불처럼 일어나 낙산사는 다시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양양 뚜거리탕과 은어 낙산사 문을 나서자 벌써 밤기운이 몰아왔다. 수미산을 떠나 환속한 세속의 밤은 반짝이는 전기 불빛이 현실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양양에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기다리고 있는 시인들과 음식 때문일 것이다. 양양 '강촌식당'에 도착했다. 시인들의 단골집이었다. 잠깐 헤어졌다가 미리 와서 기다린 노금희 시인이 반갑다. 이곳 양양에서 태어난 노 시인은 이곳에서 직장생활 하며, 결혼해 살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오면 통과의례같이 한 번씩 먹는 음식이 뚜거리탕이라고 한다. 뚜거리, 뚝저구, 꾹저구 등 동해안의 마을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이 민물어종은 돌과 모래의 색깔과 비슷한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어종이다. 작지만 아귀를 닮은 입만 커서 못 생겼지만 맛이 좋다고 한다. 양양에서는 뚜거리라 하는데 보드랍게 갈아 만들거나, 혹은 통째로, 또 툭툭 썰어서 끓인다. 여기에 고추장과 막장(해풍에 익은 구수한 강원도 토속장)을 적절히 맞춰 섞어서 끓인 후 수제비를 넣거나 부추, 파를 밀가루에 살짝 버무려 함께 한소끔 끓여내는 음식이다. 자주 접하는 추어탕이나, 섭국(홍합국), 뚜거리탕 모두 장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음식이니 집집마다 손맛을 가늠케 하는 음식이다. 최명길 시인이 생전에 무거운 입을 열어 칭찬했던 뚜거리탕을 한 숟가락 떠서 먹어 보니 아득한 느낌이다. 70년대 배고팠던 가난한 냄새가 난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오면 정성 어린 손길로 해주는 어머니 음식이다. 청정무구한 뚜거리와 쫀득한 수제비의 감촉에 더해 토속장이 배어 있는 질감은 눈이 감길 정도다. 주인공인 뚜거리와 찬조 출현하는 파와 부추 등속이 적절하다. 과장이 되겠지만 여기서 석 달 정도 살면서 뚜거리탕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은어는 섬진강에서도 많이 살지만, 양양 남대천으로 회귀해 올라온다.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와 물살 빠른 하구에 서식하는 일년생 회귀 어족이 은어다. 은어는 맑은 물에 서식하며 돌의 이끼를 먹고 자란다. 은어는 회, 구이, 튀김, 조림, 탕 등 여러 가지 요리법이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은어, 자연산만 쓰는 이곳 양양 남대천의 은어 요리는 귀한 재료임에 비해 비교적 값이 싸다. 제철이 아니면 회를 먹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잡은 후 급속냉동을 시킨다고 하니 회를 제외한 어느 요리도 사철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뚜거리탕을 먹고 나니 은어 튀김이 들어왔다. 은어 튀김은 입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빙설이 녹듯 사라졌다. 비린내나 기름 냄새는 흔적도 없고 수박향이 은은하다. 너무 빨리 입속에서 사라지는 은어는 투명한 몸 때문일까. 양양의 은어 튀김은 만년빙설이다. 어려서부터 남대천을 끼고 살아온 양양 남자들의 은어낚시와 뚜거리 잡는 일은 인이 박힌 추억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어린아이가 오십이 넘어 늙고 늙어서도 남대천을 서성거린다고 한다. 봄이면 민물 벚굴과 재첩을 채취하고, 황어와 은어, 가을에 연어까지 고향을 찾아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양양의 시인들은 여름이면 멱을 감고 율구(해당화 열매)로 간식을 대신하고, 남대천에서 은어와 뚜거리, 지금은 사라진 칠성장어와 함께 놀았다고 한다. '남대천 유유히 흐르다 멈칫,/ 사람들 품에 흘러들었다/ 뚝배기의 붉은 기운, 어머니의 품'(노금희, '뚜거리탕') 뚜거리탕을 감싼 뚝배기는 어머니 품이 되었다. 넉넉하고 따뜻하다. 간밤 허기진 배를 달래는 때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 식사가 시작되기 전 반지르르한 감자전이 식탁에 놓였다. 양은술잔의 구기자 막걸리가 식욕을 당긴다. 다들 허기진 뒤라 조용한 가운데 먹는 데 열중이다. 식탐일까 마는 그래도 배고픈 건 어쩔 수 없다. 황태구이가 상위로 올라오자 구기자 술이 더 당긴다. 고성의 김진희 최문석 최광호 백형태 황연옥 시인 등이 자리에 합류했다. 산채비비빔밥이 들어왔다. 강원도 산나물이 오늘 여기 다 모여서 우리 몸과 함께하게 되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비빔밥을 모두 다 비운 식객들은 배를 두드리고 있다. 그래도 구기자 막걸리는 잘 들어간다. 속초는 포켓몬인지, 무슨 괴물인지 아니라도 속초는 이리 맛있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발전용 석탄·원전만 세제 혜택 주는 정책 개선을”

    “발전 석탄과 원전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에너지 정책은 개선돼야 한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람직한 국가 에너지 정책 개선 방향’을 주제로 열린 민간 기구 ‘포럼 에너지 4.0’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발제자로 나선 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왜곡된 에너지 시장을 정상화하려면 전체 에너지 원의 가격·세제에 대한 통합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휘발유나 경유에는 관세,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 각종 세금을 물리면서 발전용 석탄과 원전에는 세금을 거의 물리지 않는 현재의 세금 구조는 에너지 시장을 왜곡한다고 설명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도 “발전용 석탄과 원전에는 낮은 세금이나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현재의 세금 구조가 전력 편중 현상을 유발해 미세먼지, 온실가스 등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근 친환경차로 각광받는 전기차와 관련해서는 “석탄, 원자력 발전에 대부분 의존하는 우리 전력망을 고려할 때 전기차의 환경성을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며 수송용 세제에 전기를 점진적으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병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은 “석탄, 원자력에 편중된 에너지 무게중심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김영탁의 시식남녀] 가난과 억척의 맛, 부산

    [김영탁의 시식남녀] 가난과 억척의 맛, 부산

    부산의 전철 안에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이 가사 없는 선율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시끌시끌한 경상도 사투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졌다. 목련 빛 바바리를 걸친 영화배우 같은 김종미 시인을 비롯해 최영철, 김종미, 고명자, 김다희, 김성배, 김요아킴, 김예강, 정온, 신정민 시인 등 부산에서 시 쓰는 이들이 많이들 모였다. 박효운 사장이 15년 째 운영한다는 '부광돼지국밥'은 부산시인들의 단골식당이라 한다. 투박하고 오래된 뚝배기국밥에 국물보다 돼지고기를 수북하게 쌓아 내온다. 큰 스테인레스 함지박에 담은 부추를 함께 내준다. 아무쪼록 국밥은 뜨거운 김 후후 불어가며, 입천장도 살짝 데어가며 먹어야 제맛이다. 국밥이 입으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모르쇠로 퍼먹다가 국그릇이 바닥이 보일 때쯤 소주잔을 채워 건배를 했다. '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양파 새우젓이 있다/ 푸른 물 뚝뚝 흐르는 도장을 찍으러 간다/(중략)/ 히죽이 웃는 대가리에서 야성을 캐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최영철, '야성은 빛나다') '전쟁 직후 검은 솥바닥 같은 부산/ 산을 타고 오르는 좁은 골목엔/ 피난민의 눈물로 끓여낸/ 국물이 있다// 뜨거운 돼지국밥과/ 차가운 가야밀면이/ 온도가 똑같다면// 그것은 눈물의 온도/ 버리고 온 피의 온도'(김종미, '슬픈 음식') 야성에 유혹되지 않고 야성을 연마함으로써 극복하는 행위로 국밥을 먹는 최 시인이야말로 진짜 부산 사내인 듯하다. 또한 돼지국밥 한 그릇에서 눈물과 피를 건져내는 김 시인은 민족과 지역의 역사를 견뎌온 사람들의 슬프고도 힘겨운 삶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부산 중앙동은 옛 냄새가 났다. 거리 곳곳에 문화유산이나 유적지를 잘 복원하였다. 국밥집 곁에는 나선 형태라 이름 붙여진 '소라 계단'이 있다. 층층이 나가는 길이 있고, 사람과 오토바이도 함께 다니는 조심스럽지만, 재미있는 계단이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탄생한 부산은 산과 바다 사이의 땅이 좁으미 산을 깎아 집을 지었고, 그러다보니 중간중간 도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단을 다 올라와 ‘40계단 문화관’으로 들어갔다. 아련한 근현대의 역사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유산을 모아 낳은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갖은 옛 음식들이 모형으로 즐비한 음식 코너에는 꿀꿀이죽이 눈길을 끈다. 일명 ‘유엔탕’이라고 불린 것은 이름으로나마 격을 높게 부르고 싶은 탓일 테다. 먹을 것이 너무나 귀한 시절, 유엔군 병사들이 먹다 남긴 음식과 난민구제회에서 나눠주던 강냉이가루를 함께 넣고 끓인 게 꿀꿀이죽이며 ‘유엔탕’이었다. 어쩌다 기름진 쇠고기 살점이 나오는 날이면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부산은 계단의 도시다. 아래위를 잇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계단이 곳곳에 산재한다는 것은 부산이 그만큼 경사진 도시라는 얘기다. 땅만 경사진 것이 아니라 부산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칠 할이 경사라는 게 최영철 시인의 설명이다. 작은 포구였던 시절부터, 일제의 수탈을 거쳐 한국전쟁의 아수라까지 한몸에 받아낸 지역이니 부산은 언제나 늘 가파랐고, 사람들의 삶 역시 자칫 발을 헛디딜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승과 하강을 거듭했다. '그냥 엎어질 걸 그랬다// 그날 밤 꽃무늬 팬티를 내릴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선 젊은 그 밤/ 식은 밥처럼 굳은/ 계단을 내려오며 골목을 돌며/ 여전히 여관 이름만 만지작거렸지// 지금은 모처럼 화창한 봄날/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오다 엎어진 여인의/ 코피처럼/ 맞은편 철쭉이 비리다/ 아니 쌉싸름하다'(정온, '화춘장') 정온 시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귀화했다. 그가 발견한 ‘40계단’ 초입에 화춘장여관이라니. 사실 우리는 여관 앞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철쭉을 바라보며 탄성을 연발했다. 부끄러워 급하게 여관을 빠져나오다 엎어진 여인의 코피 맛은 비리고 쌉싸름하다. 활달하고 분방한 시는 진퇴(進退)를 잘 알고 있다. 정 시인은 화춘장과 철쭉을 식재료로 한편 맛있는 시를 버무렸다. 터벅터벅 걸어갈만한 거리에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있다. 어림잡아 보니 쇠락해 가는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보다 대여섯 배나 많은 헌책방들(47개)이 즐비했고 책을 사거나 팔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책 안 읽는 한국인이라고 세계 독서통계에도 부끄러운 낙인이 찍혔지만 최소한 이곳은 책에 대한 갈증과 아름다운 책 향기로 가득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함경북도에서 피난 온 부부가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보문서점(현 글방쉼터)을 시작으로 1970년대 70여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흥성했다. 피난 온 예술인들은 용두산을 오르내리는 게 일과였고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하여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문화와 추억의 거리로 기억됐다. 헌책이 새 주인을 만나 재탄생되는 창조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집 한 권을 반값에 사고/ 나머지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소문난 찹쌀도너츠를 책장에서/ 방금 튀겨 나온 향기를 따라/ 문장 곱씹은 시가 오물거린다'(김성배, '헌책과 찹쌀도너츠')한참을 걸어서인지 약간의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차에 김종미 시인이 찹쌀 도넛을 사서 일행들에게 나누어준다. 이 골목에서 도넛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명물집 '유진스넥'이다. 김성배 시인이 시 한편을 뚝딱 토해낸 배경이다. 용두산 공원 밑 광복동에 위치한 40년 된 고갈비집 '남마담'이 있다. 고갈비는 큰 고등어를 숙성하여 구워서 먹는데 고등어도 뼈가 있으니 갈비라 할 만하다.80년대까지만 해도 고갈비로 알려진 고등어구이는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던 '소박한 호사'였다. 고갈비는 자갈치에서 막 들여온 고등어에 소금간을 하고 숙성을 한 다음 연탄불에 올려서 바싹하게 굽는데, 요즘은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남마담'이란 애초에 남자가 요리를 하고 마담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고갈비의 원조로 고갈비 골목을 형성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할매집'과 두 곳만 남았고 사람들의 왕래도 뜸해 보였다. '날 선 세상에 저 멀리 잘려나간/ 한 줌의 희망마저 그려보지 못한 창백한 아가미/ 파르르 저며 떠는 잔비늘들의 서걱거림/ 끝내 버둥거렸던 긴 꼬리의 외마디 침묵'(김요아킴, '자갈치 횟집에서') 김요아킴 시인의 목을 메이게 한 건, 우리들에게 바다의 쫄깃한 맛으로 허기진 저녁 뱃속을 위로할 회 몇 점이었다. 아마도 김 시인은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그 맑은 두 눈을 마주쳤을 것이고, 회를 뜨는 광경을 목격했을 터. 그러나 날 선 세상에 저 멀리 잘려나간 한 줌의 희망은 시인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연민과 함께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줌의 희망과 외마디 침묵은 김 시인에게 육화되면서 시로 살아났다. 자갈치시장 안팎은 싱싱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부두와 밤바다를 불빛으로 몸을 나타내는 묵직한 배의 윤곽들이 그림 같다. 다음날 영도다리를 보기 위해 택시를 탔다. 영도다리엔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보슬비가 내리는데도 북적였다.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듣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우람한 몸체를 뽐내며 상판 일부를 끄떡 들어 올린 영도대교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경계라인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경비는 연신 호루라기를 불었다. 가장 큰 유산이었던 다리 난간의 낙서들, 거기 베인 눈물과 한숨, 그리운 이름들을 애타게 부르던 흔적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관광객만 몰려오고 있다. 여기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 6․25전쟁과 가난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래도 값진 유산일 것이다. 가난과 눈물, 흥청거림과 억척스러움, 그리고 돼지국밥과 간밤에 남긴 회 몇 점을 뒤로 하고 부산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김영탁의 시식남녀] 객이 토박이 되는…강진의 情을 먹다

    [김영탁의 시식남녀] 객이 토박이 되는…강진의 情을 먹다

    강진은 두 번 와야 했다. 첫 번째는 지난해 가을이었다. 목포를 거쳐 강진까지 허위허위 찾았다. 목포라고 가만히 읊조리면 금방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질 듯하다. KTX 목포역에 서니 서해 일몰의 기운이 저물면서 붉다. 애먼 감상은 얼른 떨쳐낸다. 강진의 이수희 시인이 강진문화원 일에다 늘 약속이 법성포 굴비 두름처럼 엮여 있는 마당발 이성구 시조시인을 닦달하여 목포역까지 애써 고마운 길 마중을 나오도록 했다. 영랑생가에서 300m 쯤 떨어져 있는 사의재(四宜齋)를 찾았다. 사의재에서 다산의 뒤를 밟다 그곳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11월 23일 낯선 강진으로 유배되는 길 처음 묵은 주막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 삼은 곳이다.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다산이 붙인 이름이다. 스스로 경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공간이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며 혁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사려 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는가. 제자라도 기르셔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다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배지에서 만난 촌로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다산에게 심기일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자신을 새로 추스른 다산이 1802년 10월 초부터 최초 제자 황상을 시작으로 강진읍 여섯 제자에게 자신이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했다. 당대 최고 권위의 학당이 이곳 강진에 창설된 셈이다. 다산은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꼬박 4년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 '사의재 주막'에서 중씰하고 인심 좋은 주모를 만나 소박하고 맛난 술상을 받았다. 200년하고도 십수 년 전 다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추어탕과 메생이전을 앞에 두고 다산이 강진에서 처음 밥상을 받았던 그 마음을 되짚었다.시레기가 담뿍 담긴 추어탕을 호호 불며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이수희 시인의 입술이 붉다. 고향의 풋내를 느끼는 듯하다. '봉숭아 물이 든다/ 입안 가득 괴어오는/ 분홍빛 풋내'(이수희, '고향') 강진과 짧은 만남 뒤 한동안 앓았다. 강진의 맛과 정이 입안에 가득 머물러 있었던 탓이다. 이부자리 안에서 괜스레 입맛 다시며 뒤척거리는 밤이 이어졌다. 서울의 일상에서도 강진의 여운은 계속되었다. '저 강진만 들녘에 새떼 쫓은 아이/ 너도 목마르겠구나/ 올벼도 다 익어 가는데/ 배진강 물 흘러 술 빚고/ 쪽빛 청자에 병영곡주 담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자꾸나'(송행숙, '강진은 우주다') 마음은 강진만 언저리를 늘상 휘적거렸지만, 길은 멀었고 삶은 질척거렸다. 두 번째 강진은 선물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김미진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진군청에서 '김영탁의 詩食男女'를 초대하고 싶다는 전갈이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석천한정식'으로 내달렸다. 강진의 들판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눈을 씻고, 멀리 월출산을 바라보며 눈인사를 한다. 다시 왔다고, 반갑다고, 배고프다고. 잘 차려진 강진 전통한식이 한상이다. 율무죽으로 술적심을 시키더니 남도의 너른 들판과 바다에서 마음껏 당겨온 풍부한 식재료로 밥상을 풍요롭게 연출한다. 후덕하고 정이 넘친다. 게장은 짜지 않은 심심한 절제가 좋다. 고구마 줄기 요리는 그냥 삶아서 무친 게 아닌 묵은지처럼 오래 묵은 맛이 난다. 고구마 줄기와 함께 붕어찜이 숨은 그림처럼 줄기 속에 숨어있는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깊은 토속의 맛이 우러난다. 물천어 요리의 진수다. 병영성, 병영주조 막걸리 맛을 보다 수백 년 전, 파란 눈의 사내가 거친 풍랑을 맞아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불시착하고, 다시 곡절을 거친 뒤 이곳 강진 병영성까지 끌려온 역사가 실감도 나지 않는다. 병영성 곁에는 하멜기념관이 있다. 결국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은 『하멜표류기』를 썼다. 엄밀히 얘기하면, 하멜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 동안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해 작성한 업무보고서였다. 국역판 『하멜표류기』는 1917년 재미교포 잡지 『태평양』에 연재된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고 이를 『청춘』에 실은 것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10년 계획으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병영성은 남도의 군사요충지였다. 전쟁의 칼바람이 늘 가시지 않던 이곳은 이제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그저 막걸리 익는 냄새 가득한 공간이다. 60년이 곧 되어가는 전통적인 술도가 병영주조장이 코 앞이었다. '꿈속 눈 녹아 지은 터에/ 만월이 뜨고 지고/ 천변 버들개지 피고 지고/ 수인산 안개 풀어/ 강진만 한 사발,/ 노을 한 사발'(김미진, '설성만월(雪城滿月) 막걸리') 병영주조장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잘 익은 술 냄새로 해 지는 어스름한 강진의 나그네에게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54년의 전통을 오롯이 간직한 술도가는 초기의 건물과 사세를 확장하면서 새로 지은 술도가가 마주 보고 있었다. 김견식 대표가 반겨준다. 술맛이 얼마나 좋은지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1호 지점으로 지정되었고, 일본으로도 수출하고 있었다. 일본 수출용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병에 담아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술도 있으나, 생수통처럼 생긴 용기에 담은 설성동동주도 있다. 일본인들은 막걸리를 생수통처럼 거꾸로 꽂아서 생수를 받아먹듯 술잔을 꼭지에 대고 마신다는 것이다. 서로 권커니 잣거니 하며 먹는 게 술 먹는 맛인데 말이다. 술 익는 술도가 안을 거니는 것만으로 적당히 취기가 오르는 듯하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일본에 막걸리를 소개한 정은숙 작가는 왜 병영주조가 인기냐는 질문을 던진다. 김견식 대표는 "뭐 별거 있간. 강진쌀 중 가장 실한 놈으로 술 빚고, 누룩과 주정도 최고급 쓰믄 되지. 뭐, 월출산 물 좋은 것은 다들 아실 것이고."라며 가볍게 받는다. 술도가 안은 술이 발효하는 소리와 시식남녀 일행들이 침 삼키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꿀꺽꿀꺽 술 넘어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울대가 꿀렁거린다. 일본수출용 생수형 막걸리를 방문 기념선물로 받았다. 차속에서 술병에 담긴 막걸리는 우윳빛으로 찰랑거렸다. 마량포구(馬養浦口) 봉별기(逢別記) 마량(馬養)을 포구로 부르다가 지금은 규모가 커지면서 강진을 대표하는 항구로 발돋움했다. 마량이라는 뜻은 한양에 바치는 제주도 말이 잠시 거쳐 가는 데서 비롯됐다. 현재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부산 목포 여수 등 여러 곳으로 뱃길이 열려 있다. 토요일, 마량포구는 수산시장이 문을 여는데 전국적인 축제가 된다. 실물경제에도 능했던 다산의 후예답게 다양하고 풍부한 상품을 만들었다. 가령 된장 물회, 강진 삼합(전복+매생이+라면), 소낙비(소고기+낙지+비빔밥), 강진만 장어탕, 오감만족회 등 자칭 5대천왕이라는 먹을거리를 내놨다. 마량에서는 어디를 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굳이 단골을 정하지 말고 여기저기 떠돌며 무엇을 먹어도 좋다는 뜻이다. 간밤에 헤어진 박수철 강진 부군수와 임채용 마량면장이 늦은 점심 식당으로 들어와 요란한 이별식을 치른다. 왁자지껄한 만남과 이별의 시공간이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강진을 나섰다. 두 번으로는 부족했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 번째는 언제일지 아직 모른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뿌연 하늘 “쿨럭 쿨럭”… 세 집 건너 한 집서 폐암 고통받는데도…

    뿌연 하늘 “쿨럭 쿨럭”… 세 집 건너 한 집서 폐암 고통받는데도…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는 매일 연기를 뿜는데 액화천연가스(LNG)로 가동하는 당진 GS-EPS 화력발전소 3개는 대부분 쉬고 있어요. 석탄보다 LNG가 비싸서 그런 거지 뭐겠어요. 그런데도 석탄 화력발전소는 계속 늘리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지요. 정부에서 전력 수요를 과장되게 잡아 이런 폐단이 나오는 것도 있어요. 배출량을 통제하는 석탄화력 총량제부터 도입해야 합니다.” 유종준(46) 충남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착공하지 않은 화력 신·증설 계획을 철회하고 그런 계획도 세우지 않아야 한다”면서 화력 신·증설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화력발전소 반대가 거세다. 우리나라 주 에너지인 화력이 미세먼지 공포의 대상이 되자 반발이 봇물 터지듯 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3월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피스 연구 결과 석탄 화력발전소 20기가 추가로 지어지면 1년에 750여명이 조기 사망하는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달 8일 “화력이 밀집된 충남 당진·태안·보령·서천 지역 상공에 아황산가스 등 2차로 생성된 미세먼지가 서울보다 최대 2배 이상 많이 떠 있다”고 발표했다. 화력발전소에 대한 반발은 환경단체에 그치지 않는다. 충남도는 지난달 7일 도내 4개 화력 지역의 특별대책지역 지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남승홍 도 주무관은 “오는 10월 인천, 부산과 함께 국회에서 전력생산 문제 합동 토론회를 열고 12월에는 화력 관련 법 개정에 발벗고 나서겠다”고 말했다. 당진, 보령, 태안, 서천 등 충남의 4개 화력 지역 단체장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수도권 화력발전소와 배출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고 환경영향평가 때 자치단체 의견을 반영할 것 등 5개 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충남 서해안에는 국내 화력의 절반이 집중돼 있다. 자주 잿빛 하늘이다. 최식 보령시 발전소관리팀장은 “성주산에 올라가면 보령화력 주변뿐 아니라 서해안 일대에 검은 띠가 보인다. 이게 편서풍을 타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거다”라면서 “보령화력 반경 5㎞ 안에 주포·주교·오천·천북면이 있는데 주민들은 ‘전기는 다 서울에서 쓰는데 왜 충남에만 화력이 몰리느냐’고 불만이 많다”고 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국내 화력발전소 53기 중 절반인 26기가 보령, 태안, 당진, 서천 등 4개 시·군에 건설돼 가동 중이다. 보령화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진저리를 친다. 주교면 고정리 주민 심현수(60)씨는 “겨울철에는 회(석탄재) 처리장에서 분진이 날려 빨래를 못 넌다. 돌풍이 불면 앞이 안 보이고 눈이 따갑다”면서 “저기압일 때는 가스 냄새가 심해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배추 등 채소에도 까맣게 분진이 내려앉는다. 콩 등 농산물은 물론 산속 나무들도 열매를 잘 맺지 못한다. 심씨는 “회 처리장 제방 때문에 유속이 떨어져 썰물 때 수로 위로 치솟을 정도로 토사가 쌓이면서 배도 오가기 힘들다”며 “어업도 못 할 판이지만 돈이 없어 이사를 못 간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30년 넘게 이렇게 당하고 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건강검진은 매우 부실하다. 65세 이상 주민에게 2년에 한 번 해주는 정도다. 주교면 은포리 주민 김두영(64)씨는 “집 옥상에 올라가 회 처리장에 수북이 쌓인 연탄재를 볼 때마다 두렵다. 보령화력에서 10만t짜리 화물선에 싣고 온 석탄을 하루에 다 땐다고 들었다”며 “1년에 발전소 주변 주민이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데 거의 다 폐암이다. 젊은이도 많이 죽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역학조사를 요구해도 한전은 미루고 행정기관은 소극적이다. (피해를 당해도) 아무 혜택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령화력은 1983년 1~2호기가 가동됐고, 현재 9~10호기가 건설 중이다. 충남도와 단국대가 보령·태안화력 인근 주민 150명을 조사한 결과 혈중 카드뮴 평균 농도가 ℓ당 1.77㎍으로 청양 등 내륙 주민 1.00㎍보다 훨씬 높았다. 소변 중 비소 함유량도 g당 195.18㎍으로 내륙 94.94㎍보다 두 배가 넘었다. 최식 팀장은 “세 집 건너 한 집씩 암에 걸리다시피 해 공포와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보령 말고도 충남에는 당진·태안·서천에 석탄 화력이 있다. 설비용량이 국내 절반(26기)인 만큼 발전용량도 1만 2400㎿로 전국 2만 6273㎿의 47.2%를 차지한다. 이 중 63%의 전기가 수도권에 공급된다. 여기에 석탄 화력만 7기가 더 건설된다. 보령화력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000㎿급 2기, 태안화력 9~10호기도 올해 모두 2100㎿ 규모로 지어진다. 당진화력은 지난해 1020㎿의 9호기에 이어 올해 같은 규모의 10호기가 완공된다. 충남에는 이들 석탄 화력 외에도 당진 GS-EPS 등 대기업이 건설한 화력도 집중돼 있다. 전국적으로도 석탄 화력은 계속 증가했다. 1990년 2244만 4509㎿h이던 것이 2000년 9942만 7471㎿h로 급증했고, 2010년 1억 9828만 7360㎿h에 이어 2014년 2억 376만 5391㎿h로 큰 폭으로 늘었다.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석탄 화력의 비율도 1990년 20.90%에서 2000년 38.00%, 2010년 41.85%, 2014년 39.08%로 계속 커졌다. 반면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로 꼽히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30년 역사에도 공급 역량이 절대 열세다. 오히려 ‘대체할 수 없는’ 에너지인 양 계속 성장하는 화력과 대조적이다. 신재생이 2005년 40만 4101㎿h에서 2010년 447만 8058㎿h, 2014년 1379만 3952㎿h로 급증하기는 했으나 석탄 화력의 증가량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5년 0.11%, 2010년 0.94%, 2014년 2.64%에 불과하다. 정부마다 신재생에너지를 자랑한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가 도입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줘 무리한 사업도 속출했다. 가로림조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한전 자회사인 서부발전이 가로림만의 서산~태안을 잇는 조력발전소를 만들려다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세계적인 갯벌이 있고 점박이물범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곳에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2011년 1조원이 넘던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예산도 최근 들어 8000억원 안팎으로 줄었다. 2014년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11% 확대 시점이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늦춰졌다. 박병기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은 “신재생은 에너지 효율이 낮고 많은 시설비와 면적이 필요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면서 “화력과 비슷한 경제성이 있으려면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4년 기준 ㎾h당 발전단가가 석탄 60원, 원자력 120원, 태양광 140원, 풍력 90원이라고 했다. 박 사무관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등 기후의 영향을 받아서 일정 부분 화력이 (전기 생산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나친 석탄 중심의 화력발전이다. 서천화력은 내년 폐기되지만, 그 자리에 더 큰 화력이 들어선다. 1984년에 건설된 200㎿짜리 2기가 폐기되고 2019년 가을 1000㎿짜리 1기가 신설된다. 건설지 철조망 주변으로 350여 가구의 집이 즐비하다. 김형천(59) 서천화력발전소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애초 발전소가 동백정해수욕장 등 마을 관광자원을 망가뜨렸는데 새 화력이 건설되면 먹고사는 일도 힘들어진다”고 했다. 신서천화력은 보령화력에서 화물선으로 석탄을 날라 김 등 양식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어선 운항에도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김씨는 “화력발전소가 생긴 뒤 한시 어업면허로 바뀌는 등 발전소가 바다의 주인이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의 주범도 석탄 화력이다. 기존 53기 외에도 전국에 20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석탄 화력의 비중이 너무 커진다. 30년 넘은 석탄 화력은 폐기하고 20년 안에 석탄을 LNG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올 하반기 수립할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도 석탄 비중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영탁의 詩食男女] 인천 밴댕이회, 근현대의 문틈에서 꼬리치다

    [김영탁의 詩食男女] 인천 밴댕이회, 근현대의 문틈에서 꼬리치다

    인천역으로 가는 전동차에서 꾸벅거린다. 서울 혜화역에서 4호선을 타고 동대문서 1호선 인천행으로 갈아탄 뒤 빈자리 욕심을 부리며 냉큼 앉았나 싶었는데, 종점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누군가가 "영탁형"하며 부른다. 인천역에서 만나기로 한 호병탁 평론가가 씨익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아마 용산쯤에서 탔을 테고, 졸고 있는 이를 애써 깨우지 않고 목적지까지 함께 덜컹거렸나 보다. 인천역에 김원옥 시인이 대처 나갔다 돌아온 동생 대하는 외사촌 누나처럼 맞으러 나와 있다. 인천이 무에 얼마나 낯선 곳이라고 마중씩이나 나오셨을까. 김 시인은 인천의 내력에 대하여 얘기를 들려주었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지』기록에는 인천을 미추홀국이라고 하였다. 미추홀이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인천의 옛 이름이다. 미추홀국은 일명 비류왕국이다. 백제의 건국 시조로서 온조설과 비류설이 있다. 두 가지 설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비류와 온조가 형제이고 또 그 생모가 ‘소서노’라는 점, 비류의 아버지는 우태이고 온조의 아버지는 주몽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생모인 소서노가 전남편인 우태와의 사이에서 비류를 낳고, 개가한 뒤의 남편인 주몽과의 사이에서 온조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줄줄줄 이어지는 설명이 숨 가쁘다. 김 시인은 시도 좋지만 역사지식도 해박하기만 하다. 『동국여지승람』의 잘못을 바로잡은 지리책 『대동여지지』에는 문학산성이 곧 미추홀의 고도라고 하였다. 인천 연수구 제2, 3대 연수문화원 원장을 지냈다. 내친 김에 인천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내면까지 짚어본 『연수문화유적깊이알기』라는 책을 썼다. 이가림 시인은 그의 부군이다. 그나저나 옛 역사이야기로 시작한 인천에서는 대체 무얼 먹어야 하는가. 일행은 40여 년 된 화상(華商)이 하는 한 중국집으로 들어섰다. 중국집에 가면 영화배우 이소령 성룡 등이 생각난다. 그들이 한국식 짜장면을 알기는 할까. 이소룡이 전국의 극장가를 평정하던 시절,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은 이소령을 흉내 내며, 개목걸이와 나무를 이어 얼기설기 만든 쌍절곤을 휘두르곤 했다. 하지만 인천의 중국집은 다른 느낌이다. 청일조계지가 있는 차이나타운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연상하기에 ‘독립운동자금’이나 ‘독립투사’ ‘상해 임시정부’ 등이 떠오른다. 인천의 시인들이 타관의 시인들에게 이 중국집을 소개한 건 필시 이유가 있을 터다. 늦은 점심에 김원옥 김윤식 이경림 김영승 이병춘 정세훈 시인과 이성재 수필가, 조근직․김보섭 사진가, 호병탁 평론가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커다란 회전원탁에 둘러앉았다. 오풍냉채, 부추잡채, 간소새우, 유산슬, 간풍육, 계란탕, 꽃빵, 물만두 등이 나올 때고 젓가락 한 번씩 집을 때마다 꼬박 고량주 한 잔씩이다. 단무지 집어 먹는 젓가락에도 고량주는 어김없이 한 잔씩이다. 맛도 맛이지만 오랜 세월을 맛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밥 먹는 것에도 법이 있다는 걸/ 엄동설한 공사판 새참/ 야간노동 공장 야식/ 더불어 허겁지겁 먹어 본/ 없는 반찬 가난한 밥상/ 함께 옹기종기 먹어 본/ 우리는 절실하게 안다네// 내 밥 수저에 올릴/ 반찬 한 젓가락 집어/ 상대방의/ 부실한 밥 수저에/ 말없이, 고이 올려주는, 법'(정세훈 '밥 먹는 법') 충남 홍성이 고향인 정 시인은 인천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 스물도 되기 전 인천 땅을 밟았고 꼬박 30년의 세월을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인천은 그에게 직업병인 진폐증을 안겼고, 건강을 추스르라며 인천 바깥 김포로 그를 밀어냈다. 겨우 병마에서 벗어났건만 무엇에 홀린 듯 2011년 초부터 다시 인천을 오가며 이런저런 일을 보고 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정 시인은 부족한 자신의 밥을 타인의 수저에 고이 올릴 줄 아는 마음씨 고운 이다. 고량주에 젖어든 소년소녀의 달뜬 발걸음은 연오정(然吾亭)에 가닿는다. 독립운동동가 조훈(1886-1938)의 후손인 한의사 조길이 그의 부친의 뜻에 따라 1960년 건립한 육각정자가 바로 연오정이다. 연오정에 눈길이 가는 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느낌 때문에 여백이 풍부해서였다. 아예 저기 가서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막걸리 한잔 생각이 나는 건 어쩌면 언덕을 오르며 계속 목이 마른 탓일지도. 드디어 인천항이 보인다. 수목과 건물이 어우러져 보이는 바다는 호수로 당겨왔다가 화물선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서해를 예약하는 지평이 아득하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서로 얼굴을 지그재그로 위치를 잡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때 철거 문제로 논란이 컸던 맥아더 장군 동상이 보인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보면서 UN성냥과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미국이 원조한 잉여농산물 밀가루 포대가 생각난다. 밀가루 포대엔 한국과 미국이 악수하는 투박한 손 그림과 USA라고 크게 표기된 게 떠오른다. 밀가루를 다 먹고 나면, 포대는 종이가 귀한 시절 다양하게 쓰였다. 도배지도 되고 바닥지도 되고 노트를 대신하고 곡식류를 저장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쓰다가 지치면 화장실 화장지로도 고급이었다.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옛 제물포구락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에 침략받은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은 인천을 놓고 세력다툼을 벌였다. 제물포구락부는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지붕은 양철로 덮고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의 시설이 있다. 아래층이 위층보다 면적이 적은 건물이며 옥외에는 테니스장도 있었다. 1901년 6월 22일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여는 것으로 개관되어 본격적인 교류활동이 시작되었다. 각국의 조계들이 철폐됨에 따라 이 건물은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에 이관되어 정방각(情芳閣)이라 불렸다. 1934년 일본부인회관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의 장교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한부인회인천지부회관으로 이용되다가 한국전쟁 당시 다시 미군사병구락부가 된다. 1952년 7월 미군은 이곳을 우리 측에 인계하고 1953년부터 1990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천시립박물관청사로 문을 열게 되었다. '상투 틀던 시절, 응봉산 자락에/ 노랑머리로 일어나 보헤미안들에게/ 술친구도 되어주고/ 정오 사이렌 소리도 듣고/ 게다짝에 밟히고 군화에 차이고/ 이제는/ 맥아더와 더불어/ 자유공원에서 자유를 누리는가'(김원옥 '구 제물포구락부) 이렇듯 인천은 근현대의 관문이며, 치욕스러운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노천 박물관이다.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거리마다 일본․중국 등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길이 보전하여 치욕의 역사를 상기할 일이다. 역사의 향기가 짙고 깊게 배어있는 인천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또 하나. 인천은 항구다. 또한 6월은 밴댕이 철이다. 김윤식 시인과 정세훈 시인에게 늘 정겹게 밴댕이를 썰어주던 밴댕이 식당 안주인은 꿈속 같다며 그를 반겼다. 오래전 정 시인은 이곳에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남을 억누르며 못살게 구는/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그러한 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리하여, 남을 하나도 때려눕힐 수 없다는 것이”라는 시 '행복'을 걸어 뒀다고 했다. 낡은 건물 천장이 무너지며 '행복' 편액은 사라졌지만 행복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다만/ 밴댕이 속 같은 하루의 속에서/ 밴댕이 속 같은 저녁의 속에서// 죽은 밴댕이를 질겅거리고 있는/ 죽어가는 밴댕이들이었으므로'(이경림 '인천역 앞 수원집') 문경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귀화한 이경림 시인 덕분에 인천과 문경의 거리는 훌쩍 지척으로 당겨졌다. 내륙 오지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시도 쉬지 않는 인천 바다만큼 시작활동이 왕성하다. 시 또한 독특하고 감각적인 정신세계를 엿보인다. 자아와 대상의 실존의 거리를 좁혔다 동일시했다 자유자재다. 그간 밴댕이를 손질했던 칼이 보고 싶어 주인에게 부탁하여, 도마 위에 나열해봤다. 칼날이 닳아 쇠의 면적이 사라져 더는 못 쓰는 칼부터 얼마 전 복무를 마친 칼까지 이 집의 연륜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인들은 북성부두, 이른바 똥바다로 갔다. 먹고 싶은 건 많고, 나눌 얘기도 많다. 하지만 밤은 짧고, 취기는 밤샘 통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더리탕과 민어, 물텀벙탕을 뒤로 하고 다시 인천역으로 향한다. 여러 시인들이 다시 한 번 인천에서 만날 핑계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근현대의 관문 인천은 넓고 깊다. 시인들도 많고 먹거리도 풍부하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남성 갱년기도 호르몬 투여? 신체검사 필수”

    “남성 갱년기도 호르몬 투여? 신체검사 필수”

    중년을 갓 넘긴 남성 A씨는 최근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과 달리 자신감이 없고 일에도 흥미가 떨어졌다. 가슴에 구멍이 난 듯 공허하기만 하고 퇴직 이후 긴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걱정이다. 여성이 폐경하고서 느끼는 심리 변화가 A씨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모든 여성은 50대에 누구나 갱년기를 겪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사춘기 때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변화를 경험하듯 갱년기를 맞으면 몸과 마음은 2차 격동기를 겪게 된다. 여성은 폐경과 동시에 갱년기가 뚜렷하게 찾아오지만, 남성 갱년기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증상이 나타나 자각이 힘들고 여성 갱년기만큼 증상이 복합적이다. 신체적·심리적인 무기력증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발기부전이나 성욕감퇴, 안면홍조 등의 발진이 생길 수 있으며 식욕감퇴, 우울증, 기억력 저하, 복부비만, 골다공증 등이 생기기도 한다. 갱년기가 나타나는 원인은 호르몬 부족이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일반적으로 30대 후반부터 감소해 40대 후반에 급격히 수치가 떨어지고 난소의 크기도 작아진다. 에스토르겐은 유방, 비뇨생식기뿐만 아니라 혈관과 뼈 등에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폐경 후 증후군 외에도 심혈관 질환과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다. 불면증과 고독감 등의 심리적 증상과 함께 두통, 관절·근육통, 어지럼증, 심장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피부 노화가 빨라져 주름이 깊어지고 피부 탄력도 떨어진다. 남성도 50세가 넘으면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점차 감소한다. 이 호르몬은 30세 전후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해마다 약 1%씩 감소하며 40~60세 남성의 약 7%, 60~80세 남성의 21%는 혈중 남성호르몬이 정상치 미만까지 떨어진다. 임승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50대 남성의 절반 정도가 새벽에 테스토스테론 부족 현상을 겪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리듬이 깨져 저녁에도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이 감소하면 뇌, 골(骨) 대사, 근육질과 신체지방분포, 성 기능, 적혈구 생산, 심혈관계도 영향을 받는다. 신체적으로는 근육의 양과 골량이 감소해 체지방이 증가하고, 팔과 다리보다 주로 배에 지방이 축적돼 배가 나오는 전형적인 노인의 체형이 된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 많아지기도 한다. 호르몬 감소가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갱년기 증상은 호르몬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다만 경윤수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는 “호르몬 치료는 일부 장기뿐만 아니라 신체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는 치료 방법이므로 남성 갱년기 치료에 무조건 호르몬 보충 요법을 써선 안 된다”며 “신체검사를 해 다른 이상이 없을 때만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갱년기를 겪는 여성에게 주기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하면 자궁이 폐경 이전 상태로 돌아가 갱년기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호르몬 보충요법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치료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김영탁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970년대 이전에는 무분별하게 여성호르몬을 사용해 암 발생이 증가했지만, 최근에는 이를 예방하는 약제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진하며 적정 용량의 호르몬을 보충하면 자궁암, 유방암 등의 암 발생 위험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갱년기 치료는 호르몬 보충요법 못지않게 운동과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하다. 남성 갱년기를 겪고 있다면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한다. 이성원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조깅이나 걷기 같은 유산소운동과 근력 강화 운동을 병행하고, 정기적으로 성생활을 하며 무기질이 많고 지방은 적은 음식을 먹는 게 갱년기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중년 여성에게는 혈액 순환과 심장·혈관 건강에 좋은 빨리 걷기, 자전거, 수영, 에어로빅, 하체 강화와 관절염 예방에 좋은 고정식 자전거 타기, 스트레칭 등을 권한다. 한의학에서는 갱년기를 신장 기능이 허약해져 오는 ‘신허증’으로 본다. 이진무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부인과 교수는 “여기서 신장이란 생식기능과 비뇨기 기능의 신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서 받은 선천적인 기능을 저장하고 뼈를 관장하며 우리 몸의 진액 중 하나인 정액, 뇌척수액, 골수 등을 포괄하는 개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 갱년기에는 긴장한 심신을 이완하고 노화를 늦추는 한약을 처방한다. 또 갱년기에 잘 발생하는 근육통, 어깨결림 등을 치료하고 기혈 순환을 돕고자 봉침, 약침을 포함한 침치료와 뜸치료, 부항요법 등을 시행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영탁의 詩食男女] 울산, 소머리국밥과 참가자미

    [김영탁의 詩食男女] 울산, 소머리국밥과 참가자미

    아주 멀어서 빨라도 하루 종일, 아니면 1박 2일 정도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 울산, 동해,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귀신고래. 멀다는 기억의 저편에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과 송창식의 노래가 어느 정도 침전된 탓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리는 서울에서 울산까지 두 시간 오십 분 만큼이었다. 기꺼이 역사까지 마중나온 정일근 시인은 3년 만이지만 좋은 안색이 어제 본듯하다. '시식남녀'(詩食男女)의 첫 만남이 아니라도 늦은 점심을 위해 일단 먹어야 했다. 일행은 승용차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언양으로 달려갔다. 언양장터 소머리국밥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렇게 울산역에 도착하여 곧장 소머리 속으로 들어간다고 봐야할 것이다. 소를 찾아 나선 것인데 한 편의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의 꼬리를 보기 전 두각頭角을 본다는 건 직방으로 도道의 길을 가는 법. 시장기에 맞춘 입들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소머리를 향하여 길을 가는 것이다. 언양 재래시장 진입로 부근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을 때 보슬비가 내려오신다. 얼마나 느리게 오시는지 안개비 같아서 비를 맞아도 좋을 만큼 우산을 펴지 않아서 좋았다. 재래시장은 오일장처럼 없는 게 없이 풍물이 펼쳐져 있다. 보슬비 탓에 조금 가라앉은 듯하지만 흥성거렸다. 장터 국밥집으로 가는 길목에 대장간이 있다. 방금 풀무질을 마치고 나온 듯한 검푸른 낫, 칼, 호미와 농기구, 잡다한 쇠붙이와 숫돌이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숫돌 앞에 멈춰 서서 오래전에 숫돌로 칼 갈아 쓰던 시절을 기억해 냈다. 오일장이 아닌데도 장날처럼 이러한 쇠붙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장장이가 허름한 지붕을 붙박이 삼아 부지런히 놀리는 손길 탓인 듯했다. 언양 오일장은 울산의 재래시장 중 태화장과 더불어 가장 큰 장이 서는 곳이다. 근처 주변 마을의 온갖 먹거리와 특산물이 모인다. 예전 장돌뱅이들처럼 오일장마다 돌며 장사하는 사람들과 직접 농사지은 생산물을 갖고 나온 촌부들이 좁은 골목 구석구석 진풍경을 이룬다.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 불편하지만 먹거리의 싱싱함과 인정에 끌려온다. 그리고 옛것을 놓지 않으려는 풍물의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오랜 세월을 견디고 독특한 맛을 이어오면서 소문이 난 언양 장터 골목마다 붙어 있는 국밥집. 장날이면 식당 앞에 걸어 놓은 솥단지에서는 고기 삶는 냄새가 골목을 진동시켰을 터이다. 무럭무럭 나오는 하얀 김의 열기는 식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뽀얗게 얹히어 시장기를 보탰을 터. 비좁은 자리에 엉덩이와 이마를 맞대고 뜨거운 국물과 고기 한 점 숟가락에 떠서 후루룩후루룩 아, 얼마나 시원할까. 그래, 장터 국밥은 그런 왁자한 풍경이 양념으로 얹어져야 제대로 맛나지. 장날 아닌 날에 장터 국밥 먹을 땐 애써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한다. 청정지역 언양 인근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축산물로 언양 불고기 단지가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부속물이 장터의 국밥집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오창헌 시인이 잘 아는 집이 있는 듯 앞장을 섰다. 왠일인지 정일근 시인은 빙긋이 웃으며 늑장을 부린다. 무슨 사정인지 오 시인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 나온다. 정 시인은 다시 한 번 빙긋 웃고 만다. 정일근 시인의 단골집인 오십 년 전통 국밥집에서 소머리 국밥을 주문했다. 그는 예전에 울산의 중심이었으며 울산의 관문인 언양의 유래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은 울산이 산업도시의 중심이 되었지만 불과 백 년도 채 되지 않던 시절에는 양반 문화의 중심은 언양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울산 언양에는 5000~6000년 전으로 알려진 선사문화의 발자취 속에 음식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언양의 음식문화는 선사시대 사냥을 통해 얻어낸 맛의 전통이 이곳 사람들의 DNA 속에 각인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처럼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남아 있는 현장이 울산 언양이다. 사냥에서 얻은 고기로 음식의 맛을 후손들에게 전했으며, 그 전통적으로 이어진 맛의 결정체가 언양 소머리국밥에 있는 것이다. 국밥에 소면을 얹고 심심한 겉절이 부추를 국밥에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시원하면서 담백한 국물, 부드럽고 쫀득한 소머리 살코기, 매끈한 소면, 맛의 절정에 오른 깍두기는 일품이었다. 우리는 소머리국밥이 입으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그저 후르륵 거리며 국을 훔치고 있었다. 오십 년 전통 언양 장터 소머리 국밥이라도 소금 파 매운 다대기 듬뿍 넣어도 싱거울 때가 있다 세상 입맛 돋우는 풍경들이 흩어져버린 장날 아닌 날에는 -김양희, 「장날 아닌 날에는」 눈 감아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뼈의 경전을 받아 마시는 오후, 떨어지는 빗방울은 뜨겁다 -김성순, 「소머리 국밥」 아무리 매운 다대기를 넣어도 양이 차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는 김양희 시인은 장날에 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정통 '국밥론자'다.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이 맵고 고달파도 좋은 시만 쓴다면 그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일념, 열정의 내공이 깊다. 김성순 시인의 시는 목젖을 뜨겁게 데운다. 뼈의 경전이 사무쳐오기에 차가운 빗방울마저 녹일 수 있는 용광로를 가진 그는 앉으나 서나 오매불망 경전을 읽고 읽는다. 그리고 언제가 경전經典을 치며 쓸 것이다. 오창헌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소머리로 곰탕 맛을 내려면 정성도 보통 정성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소머리를 그릇에 넣고 물을 부어 센 불에 달구면 부르르 끓어오르는데 이때 약한 불로 푹 고아 차게 식히고 기름 덩이를 거두는 게 필수. 그걸 여러 번 반복해도 소머리 기름이 나온다고 한다. 애들 말로 소머리 기름 짱이다. 마지막 기름기를 제거했다 싶은 때 한소끔 더 끓인 후 식혀 나머지 기름기를 거두어야 한다. 소머리 곰탕 먹으려다 머리 허해진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소머리 곰탕 1번지는 언양 장터에 있다지만 국물 맛은 고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귀띔하네 기름 덩이 걸러낸 손이 맛을 낸다고 하네 -오창헌, 「울산 언양 소머리 곰탕이 맛있는 두 가지 이유」 웃을 줄밖에 모르는 두 남녀, 생애 처음인 듯 소머리 국밥집에서 만났다 -이궁로, 「연애」 맛의 두 가지 이유의 근본을 잘 알고 있는 오창헌 시인은 참으로 섬세하다. 그는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 모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행동하고 만지고 밀착하는 시인이기에 손맛이 최고라고 한다. 손맛을 하는 사람이 바로 몸을 아끼지 않는 장인이 아닐까. 「연애」를 노래한 이궁로 시인은 정말 아직 연애를 하는 사춘기 소녀 같다. 아니 시와 열애를 하는 그는 만남이 시와 예술로 승화된다는 걸 직시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생애 첫 만남을 소머리 국밥집으로 자리한 것만 봐도 인연을 육화할 줄 아는 사랑의 시인 이궁로다. 일행은 한참을 승용차로 달려서 정자 해변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울산 참가자미가 기다리는 곳이다. 울산에서만 건져 올린 참가자미는 다른 지역의 바닷가에서 잡힌 것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울산 하면 참가자미이고 참이라는 말이 가자미 중 진짜라는 말과 통하고 맛을 안 봐도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다의 생물을 파는 수산물 도매상에서 참가자미와 해삼, 멍게를 한 자루를 사서 근방에 있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횟감을 사오면 회를 떠주고 술과 밥을 파는 집이다. 참가자미 회는 고소하고 시원하고 쫀득쫀득한 육질이 풍부하면서 비리지 않아서 좋다. 평소에 술을 잘 못하는 정일근 시인도 그날은 술이 당기는 듯 잘 마셨다. 술을 좀 하는 사람은 필자와 정일근 시인, 김 요아킴 시인이고 나머지 시인들은 조금씩 홀짝홀짝 마셨다. 시와 음식을 앞에 둔 시식남녀 대열은 계속 늘어난다. 횟집으로 달려온 두 사람이 있다. 장상관 시인과 시를 잘 쓰고 있는데 아직 미등단인 이현옥 예비시인이었다. 바다를 짊어졌던 몸이 접시를 방석 삼아 누웠다 빚더미에 억눌려 뼈 째 썰린 살점을 씹는 전사들 격랑이 한동안 저 사내들 앞에서는 무릎 꿇겠다 -장상관, 「참가재미」 참가자미의 맛은 담백한 타원형의 몸에 그득하지만, 고수 칼잡이를 만나야 천의무봉의 그 칼질이 받아낸 진짜 맛을 읽을 수 있으니 보라, 가로로 길게 쓴 저 참가자미의 詩 같은 진짜 맛을 알지 못하고 바다를 안다고 말하지 마시라, 방! -정일근, 「진짜 맛, 진짜 시인-참가자미의 시詩」 억눌린 자나 살점을 씹는 시인들이나 한 몸으로 엮어내는 장상관 시인은 술도 호쾌하게 마셨다. 그의 시적 발현은 대상들을 동일시하므로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상호 소통과 반전의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므로 저 사내들은 격랑과 함께 낮은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진짜 맛과 진짜 시인을 노래한 정일근 시인은 고수답게 노래한다. 고수의 도법刀法은 상처가 없다. 그의 말처럼 천의무봉 아닌가! 요리를 하는 데 있어 칼솜씨에 따라 요리 맛도 달라진다. 똑같은 재료라도 칼질에 따라 맛은 제각각이다. 칼의 결에 따라 시가 되는데 칼이 가는 길 따라 시를 쓰는 행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칼질을 받아내야만 진짜 맛이 나는 법인데, 이 말은 외부의 상처를 어떻게 승화하는가에 따라 시가 되는 법을 얘기하고 있다고 본다. 어쩌면 정일근의 시론이 탄생한 셈이다. 그러니 넓고 깊은 가없는 시의 바다를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될 일이다. 간밤엔 그대를 살 발라서 참 맛있게 술 한잔했네 꿈속에 참가자미 울산바다를 안방으로 내어주고는 아침엔 참가자미 해장국 먹으며 땀이 뻘뻘 나네 -김영탁, 「울산 참가자미 해장국」 태화강 굽이도는 무동교 그 언저리에 안개가 자욱하다. 불빛이 안개를 가르고 보니 멀리서 울산역이 보인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hanmail.net
  • “정부가 해외진출 의료기관 적극 홍보해야”

    2011년까지 해외로 진출한 국내 의료기관 111곳 가운데 25.2%인 28개 기관이 현지화에 실패해 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진출률이 가장 높은 피부·성형 분야가 철수 건수도 가장 많았다. 김영탁 서울아산병원 국제사업실장은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 코리아 2016’ 해외진출 의료기관 투자 세미나에서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이같이 밝히고 “현재까지도 해외에서 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국내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국내 의료기관이 현지화에 실패하는 원인으로 김 실장은 해외 병원 설립·운영 경험 부족을 꼽았다. 그는 “국가별 의료법, 세법, 외국인 투자법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현지 의료면허 취득 시 언어·시간적 제약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국내 의료시설과 장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2위고, 의료기술은 선진국의 80~90% 수준이지만 인지도가 낮아 이미 진출한 외국계 병원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수급도 문제다. 진료 공백이 생길 수 있어 해외 파견이 가능한 의료진 수는 한계가 있고, 현지에서 의사를 고용하려면 높은 임금이 부담이다. 그는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 의료기관을 홍보해야 하며, 한 국가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전략이 필요한 만큼 사전에 시장 분석을 철저히 해야 실패 확률이 낮다”고 조언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게시판] 서울시, 국립환경과학원, 경희대

    [게시판] 서울시, 국립환경과학원, 경희대

    ■서울시는 27∼28일 서울시청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 전문가들이 모여서 터널 화재 위험성과 안전관리에 관한 토론회를 한다. 이번 토론회는 서울시 도로시설안전포럼과 대전 도시안전 디자인포럼, 한국화재소방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다. 각국이 터널 내 화재 발생시 열과 연기 발생률에 대해 발표하고 지하쇼핑거리 화재와 재난방지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오는 28일에는 일본과 대만 참석자들이 홍지문터널을 찾아 시설물과 방재설비 현황, 재난대응체계 등을 살펴본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 도로시설과(2133-1655)로 문의하면 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영산강유역환경청과 함께 26일 광주 서구 홀리데이인호텔에서 ‘영산강·섬진강 수계 물환경 관리 대포럼’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영산강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녹조 등 조류(藻類·수중에서 광합성으로 독립 영양생활을 하는 하등식물의 총칭) 문제와 강 하구에 쌓이는 퇴적 오염물질의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내년에 설립 50주년을 맞는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올 가을 국내 최고 수준의 인문학과 경영학을 융합한 리더십 특별세미나를 개최한다. 오세훈 고려대 석좌교수(전 서울시장)와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 등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새로운 CEO 리더십 ▲창조경제의 글로벌 트렌드 ▲산업융합과 신기술혁신 등의 주제로 강연과 토론 시간이 펼쳐진다. 지난 7일에는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의 ‘초경쟁시대의 창조적 리더십’이란 주제로 펼쳐진 첫 강연을 성황리에 끝냈고, 21일엔 오세훈 고려대 석좌교수가 강연을 펼쳤다. 오는 28일에는 이민화 KAIST 초빙교수(전 메디슨 창업자), 12월5일 이영탁 중소기업미래경영원 및 세계미래포럼이사장(전 국무조정실장), 12월12일 조강래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12월19일 김의환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국장(전 청와대 중소기업비서관실) 순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한번에 인문학을 마스터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 휴넷 인문학 通패스 출시

    한번에 인문학을 마스터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 휴넷 인문학 通패스 출시

    평생교육 대표기업 휴넷(대표 조영탁, 이인숙)이 ‘행복한 인문학당’ 전 강의를 최대 76% 할인된 가격에 수강할 수 있는 ‘인문학 通(통)패스’를 출시했다. 인문학 통패스는행복한 인문학당내 130여개 200만원 상당의모든 강좌를 76% 할인된 가격에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상품이다.1년권과 3년권 두 가지로 구성됐으며 1년권은 정가의 76%인 50만원, 3년권은 52% 할인된 99만원에 제공한다. 총 130여개의 인문학 강좌는 크게 4개로 나뉜다. 전문가들이 꼽은 대표 고전 100선을 다루는 ‘도전!문사철100클럽’, 음악,미술,건축 등 예술 분야 교육 프로그램인 ‘아트 앤 상상스쿨’, 사서삼경을 원문으로 공부하는 ‘원문독파 사서삼경’, 인간학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는 ‘사마천의史記대학’이 포함됐다. 세부 과목으로는 ‘초한지’, ‘데미안’, ‘손자병법’등 전통 인문학 작품과 ‘세계의 미술관 산책’,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음악가’, ‘건축,창조를 말하다’ 등문사철예(文史哲藝)를 총망라했다. 모든 강좌는 온라인과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학습할 수 있어 본인의 스케줄에 따라 공부할 수 있다. 서울대,연세대 등 국내 유수 대학 교수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강의해 이해하기 쉬운 것도 특징이다. 휴넷 관계자는 “문학, 역사, 철학, 예술까지 공부할 수 있는 종합 인문학 패키지 과정으로 더욱 풍성하게 학습할 수 있어,인문학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11월 한정 혜택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인문학 통패스 이벤트는 11월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며 자세한 내용은 휴넷 홈페이지(www.hunet.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기업이 변해야 김대리가 산다] 휴가는 ‘휴가답게’ 재충전 하라

    [기업이 변해야 김대리가 산다] 휴가는 ‘휴가답게’ 재충전 하라

    “근무시간보다 몰입도가 중요하다. 오랜 시간 일하고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친다면 긍정적인 성과가 나올 수 없다. 짧은 시간을 일해도 몰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재충전이 필요하다.” ●휴넷, 징검다리 휴일제 등 휴가 독려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한 달 동안 휴가를 주는 온라인 교육기업 휴넷의 조영탁 대표는 직원들의 휴가 사용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휴넷뿐 아니라 징검다리 휴일제나 집중 휴가제를 도입하는 등 휴가 사용을 독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업무 효율성은 물론 직원들의 책임감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넥센타이어는 그동안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던 사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휴가 사용이 부진한 부서의 부서장에게 인사고과 페널티를 부여하고 있다. 강제로라도 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또 20년 동안 근무한 직원에게는 4박 5일간 동남아여행, 25년 근무한 직원에겐 6박 7일간 호주여행, 30년 근무한 직원에겐 9박 10일간 유럽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사는 오래 일한 만큼 가족과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라는 차원에서 부부동반 여행경비를 모두 부담한다. 플라스틱 필름 제품을 생산하는 더블유스코프코리아 직원들은 짧아도 일주일 이상의 휴가를 떠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휴가를 내면 주말을 포함해 8~9일 정도 쉴 수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3~4일의 짧은 휴가 기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오히려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로 돌아오기 일쑤인 점을 감안하면, 긴 휴가가 효과적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기업들이 적은 인원을 장시간 일하게 해 생산성을 높이는 전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실질적인 재충전을 위해서는 휴가를 휴가답게 사용할 수 있는 회사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정모(35·여)씨는 이달 초 휴가 기간 동안 업무용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정씨는 “회사 방침에 따라 휴가를 냈지만 하루에 두세 번 정도 동료나 상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며 “눈치 보며 쉬느니 차라리 출근해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美연구소 “일·가정 양립, 충성도 4배↑” 휴가를 휴가답게 사용하는 등 근로문화 개선을 통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비영리연구소인 FWI(가정직장연구소·Families and Work Institute)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휴가 사용 등으로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회사에 헌신하는 비중이 4배 정도 높았다. 또 새로운 일자리를 고려할 때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지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경우도 80%에 달했다. 나영돈 고용노동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국내외 연구결과를 보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경우 애사심도 강해지고 업무생산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2008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휴일제도 실태조사 보고서는 ‘직장인들은 소득보전을 위해 휴가 사용보다는 수당을 받는 것을 선호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당시 직장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평균 18.6일의 연차 가운데 7.6일만 사용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22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9.7%가 ‘연차휴가 수당을 받는 것보다 휴가를 모두 사용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인식 변화를 드러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기업이 변해야 김대리가 산다] 휴가도 일의 연장선… 재충전이 살길

    [기업이 변해야 김대리가 산다] 휴가도 일의 연장선… 재충전이 살길

    온라인 교육 기업인 휴넷에서 일하는 박기복(38) 팀장은 지난달 회사에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고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박 팀장은 휴가 기간 평소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했다. 또 2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삶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박 팀장은 “평소와 달리 충분히 여유를 갖고 ‘오늘 안 되면 내일 하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즐겼다”며 “그러다 보니 5년간의 회사 일을 되돌아보게 됐고 다시 입사하는 사람처럼 새로운 출발점에 선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직장인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라며 “휴가도 일의 연장선이고, 재충전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휴식 없는 직장인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박 팀장처럼 5년 동안 근무한 휴넷 직원들은 한 달간 ‘학습휴가’로 불리는 유급휴가를 갈 수 있다. 직장인이 월급을 받으면서 한 달을 통째로 쉬는 것은 우리나라 근로 환경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지만 휴넷은 1999년 회사 설립 이후 이 제도를 계속 실시하고 있다. 2012년 11명, 2013년 10명, 2014년 3명이 휴가를 다녀왔으며 올해엔 16명이 휴가를 갈 예정이다. 조영탁 휴넷 대표는 “휴가 대상자들은 근속 만 5년을 채운 뒤 1년 안에 업무 상황 등을 고려해 계획적으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며 “한 달간의 공백 때문에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는 단기 대체 인력을 채용해 모든 직원이 빠짐없이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임원급인 양은희(44·여) 이사도 학습휴가 제도로 2013년 가족과 함께 이집트와 터키 배낭여행을 갈 수 있었다. 양 이사는 “아들과 남편이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자랑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주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며 “좋은 기회로 휴식을 취했으니 회사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복귀 이후 업무에 더 충실하게 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휴가로 인한 재충전이 업무 효율성을 높여 줄 뿐 아니라 회사와 직원이 상생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작년 직장인 평균 휴가 8.6일 불과 회사의 이러한 제도 덕분에 직원들은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한 달간 휴가를 가기는커녕 일주일 동안의 여름휴가나 10일 이상의 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14년 24개국 직장인 78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한 해 동안 평균 8.6일의 휴가만 사용했다. 프랑스(30.7일), 덴마크 (28.6일), 독일(27.7일) 등 유럽 국가뿐 아니라 멕시코(13.6일), 태국(12.1일), 말레이시아(10.7일)보다도 열악한 수준이다. 열심히 일한 김 대리들이 어디로든 떠나기는커녕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휴넷의 사례처럼 직원들이 휴가를 모두 사용하거나 장기간 휴가를 가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대한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애당초 휴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량, 휴가 사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상사의 눈치, 휴가를 짧게 사용하거나 아예 가지 않는 직원을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는 기업 문화는 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여름에도 수많은 김 대리들은 재충전의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코스피·코스닥 경쟁 통해 체질개선 유도

    코스피·코스닥 경쟁 통해 체질개선 유도

    지금의 한국거래소(KRX)는 2005년 증권거래소, 코스닥위원회, 선물거래소 등 4개 관련 기관이 합쳐져 출범한 조직이다. 당시 초대 이사장인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 상장(IPO)을 추진했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금융위원회가 IPO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거래소 구조는 통합 이전처럼 돌아가지만 지주회사라는 ‘우산’이 씌워졌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각각의 자회사로 경쟁시켜 체질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궁극적으로는 대체거래소(ATS) 도입 등 진정한 경쟁 체제 구축과 코스닥 시장 건전화 방안 마련, 거래소 상장 차익의 사회 환원 문제를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성공의 변수다. 금융위는 2일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등 시장 간 상호경쟁이 제한돼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시장 발전이 정체된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상장 실적을 들었다. 우리의 코스닥과 비슷한 미국의 나스닥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411건, 대형주 중심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349건을 상장시켰다. 그런데 거래소(KRX)는 114건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600여개가 유가증권시장, 9000여개가 코스닥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데 연간 신규 상장이 40건에 불과한 것은 거래소의 상장 유치 노력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신생 기업이 문제였다. 바이두 등 중국의 신흥 인터넷 기업은 적자 상태에서도 나스닥에 상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세계적 게임 개발 업체인 한국 기업 넥슨이 2011년 우리 시장을 놔두고 일본거래소(JPX)에 상장한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사례”라며 거래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주식 거래 비용 인하 등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의 분석이다. 이는 뒤집어 보면 투자자 보호이기도 하다. 거래소에 따르면 1996년 코스닥시장 개설 후 지금까지 상장 폐지된 기업이 494개다. 이 중 80%(392개)가 정보기술(IT) 거품기에 상장됐다. 코스닥 분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은 이때의 학습효과 탓이 크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활성화라기보다는 진입 장벽을 낮춰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효과가 더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코스닥을 (상장도 폐지도 많은) 다산다사(多産多死) 시장이 아닌 우리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키울 것”이라면서 “상장 활성화 측면과 투자자 신뢰 보호 측면을 고려해 적절한 기준을 세워 나가겠지만 지금의 상장 기준은 이익요건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상장 기준 완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거래소는 증권사들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2007년 상장 논의가 한창일 무렵 거래소는 3700억원을 출자해 자본시장발전재단(가칭)을 설립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이 중 1700억원을 상장차익 반환 몫으로 책정했는데 당시에도 규모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상장 차익 처리는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설 사안이 아니다”라는 주장(박창균 중앙대 교수)도 있다. 거래소 체제를 개편하는 목적은 내부 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외부 경쟁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후에도 독점 구조가 유지된다면 간섭, 통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조직 구조만 옥상옥으로 바뀔 뿐 변하는 게 없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위원은 “ATS가 빨리 도입돼야 하고, 해외거래소와의 제휴를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경쟁 환경에 더 빨리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년 관련 법 개정으로 ATS 도입 근거는 있다. 거래소 노조는 “결국 코스닥 분리 의도를 관철하려는 정치적 꼼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레 비효율적이고 투자자 보호에도 취약하다는 주장이다. 애초 금융위는 코스닥 분리를 추진했으나 노조와 정치권 등의 반대로 ‘지주회사 내 자회사 설립’ 절충안으로 돌아섰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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