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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공부 하지 맙시다”(청와대)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요즘들어 어린이 교육과 관련해 어른들을 자주 「충고」하고 있다.어린이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맙시다』가 그 내용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월요일인 지난달 30일 시·도 교육감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교육관의 일단을 내비쳤다.『어린이를 보면 인사가 공부 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제는 바르게 살라,인간이되라,공동체의식을 가져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교육관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그「혜택」은 이미 어린이들이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국민학교 어린이들의 시험이 이번 학기부터 학기당 두번에서,한번으로 줄어든 것은 대통령의 이같은 교육관을 반영한 결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김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모교인 거제 장목국교 어린이 대표 3명을 청와대에서 접견했다.중국 소녀가 보내 온 참외 씨를 길러 얻은 참외를 대통령에게 증정하러 온 자리였다.학교 선배인 대통령의 치하가 없을리 없다. 『여러분도 보다 정직하고,노력하면,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만나면 늘 하는 말이긴 하다.그러나 비서실에서 미리 낸 「말씀자료」(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자료를 말씀자료라고 한다)는 『열심히 공부하고…』로 돼 있었다.대통령은 여기서 「공부하고」를 빼는 대신에 「정직하고」를 대신 넣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말고 좋은 품성,성실한 자세,정직,공동체 의식을 먼저 길러주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잇단 발언이 지나가는 말이거나 좋은 말이어서 하는 차원이 아님을 후배 어린이들과 나눈 대화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은 취임직후 지방순시를 나갈 때도 시도 교육청순시에서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어른들은 공부하라고만 한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간교육이다.아침에 일어나 숙제했느냐를 묻지 말고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갰느냐를 먼저 물어보라』. 지난번 대통령 선거당시 어린이들과 만났을 때도 대통령은 예외 없이 공부대신 인간교육을 강조해 왔다.이는 교육정책에서 하나의 캠페인이 되고 있고,김영삼시대를 설명하는큰 특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공부보다 중요한 인간교육은,교육정책외의 다른 국정운영에도 반영되고 있다.교육관에서 그같은 국정운영 방침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국정운영철학에서 「공부할 것을 강조 하지말라」는 교육관이 파생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 각종 연설에서 적어도 10여회 이상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바르게 사는 것이 「김영삼시대」를 일관하는 철학으로 등장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김대통령의 취임이후 연설을 살펴보면 바르게 살기는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다. 취임 초기 김대통령은 『우리의 가치관·도덕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가치관의 변화를 촉구했다.이는 2단계에서 『잘살아보자는 구호는 바르게 살자는 구호로 바뀌어야 한다』로 변형되면서 바르게 살기라는 말을 등장시켰고,다시 『잘사는 것 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느끼기 시작했다』로 완성됐다. 바르게 살기의 철학기조는 교육부분에 와서 잘사는 것이 공부하는 것으로,바르게 사는 것은 정직·성실로 변화돼 반영되고 있다. 이달 중순쯤 교육개혁심의위가 구성돼 교육개혁작업이 본격화된다.교육개혁의 핵심은 공부가 전부인 현재의 교육체제를 어떻게 인간교육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인가이다.
  • 여류명창 성창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5)

    ◎동·서편제 통달한 판소리의 달인/혼신 다한 소리인생 40년… “한 서린 득음” 정평/빼어난 성조·변화무쌍한 음색에 관객 매료/서예·국악기에도 깊은 조예… 「심청가」로 인간문화재에 성창순은 본래 강산제 「심청가」로 인간문화재가 된 여류명창의 한사람이다.음이 낮고 처절한 「심청가」는 전곡이 지나치게 구성지고 구슬퍼서 극장공연 첫날에는 소리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곡이기도 하다.그러나 일명 서편제로 불리는 성창순 「심청가」는 4시간반의 완창을 변화무쌍하고도 맛갈지게 구사하여 지루감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부친 심봉사를 그리워하며 심황후가 기러기편에 편지쓰는 대목에서 「한자쓰고 눈물짓고 두자쓰고 한숨쉴제 눈물이 먼저 떨어져 글자마다 수묵이 되어」는 이조가곡과도 같은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애절한 계면조뿐아니라 흥부가중에서 「놀부심술타령」 「제비로정기」 「왼갖비단타령」등 숨막히게 전개되는 자진몰이 휘몰이 속에다 우람지고 담대한 가락을 얹어 「달기가 승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흥·청의 심맥 고수 그는 판소리는 넘어가는 가락과 내뽑는 목청에 흥과 청을 담아 판소리의 심맥인 「흥청거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지키고 있다.그래서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 흥취가 넘치고 그의 연희는 유유하고 자적하다. 최근 몇년간은 남도락에 심취하여 지난봄 국악대공연에서는 느린 육자배기에다 잦은 중몰이장단,개구리타령으로 절정을 이루더니 흥타령에서 축 늘어진 후 진도아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을 살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생전에 객기로 맘대로 놀아볼거나」 가사의 끝이 「거나」나 「구나」로 끝나는 육자배기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잘 부르려면 가장 어려운 곡으로 「그의 육자배기는 늦은 진양조장단에 한이 듬뿍 배어 멋으로 일렁이는 유장한 가락이 일품」이라는 것이 황병익교수(이대)의 말이다. 지난 6월에는 KBS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현악과 판소리 「춘향가」의 협연을 갖기도 했다. 이「춘향가」관현악곡은 작곡가 김희조씨가 성창순명창과의 협연을 위해 8개월간에 걸쳐 재구성하여 편곡한 것으로 생소한 관현악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마치 수만군을 거느린 여중호걸처럼 2시간30분의 완창을 당당한 풍모로 이끌어나갔다. 한복차림에 쥘부채,고수 한사람의 북장단에 의존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색다른 멋과 음악적 변화를 보인 역시 돋보인 무대로 지적된다. 북반주에 맞춘 판소리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아니리」와 「발림」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는 관현악연주에도 그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곧고 시원한 통큰소리,익살과 애조와 애원의 성음치레로 관객의 흥겨움을 흥청망청 당겨주었다. 타고난 재능과 기량이 번뜩이는 재인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운명을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며 「죽으면 죽었지 2등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배짱이 그것이다. ○예향 광주서 출생 그의 판소리 입문부터가 말못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도 단가 한마디씩은 부른다는 전남의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부친은 권번에서 북을 가르치던 명고수 성원목씨.어릴때부터 북장단을 즐기고 동네 굿구경에 날저무는 줄 모를만큼 예살(예살)이 거센 편이었으나 부친은 이를 극구 말려 걸핏하면 매맞기 일쑤,집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다.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오히려 부친에게 『나는 소리를 배우겠소,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어쨌든 시집이나 가서 고생하는 여자는 되지 않을 거요』하고 맞섰다.그리고 몇날을 울며불며 밥을 굶고 몸져눕자 「딸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부친이 져주었고 광주 북동에 있는 소리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생이 『저아이는 소리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라』고 했다.대경실색을 할 일이었으나 그는 내색없이 『소질이 없기는 왜 없어.두고보라지,내가 못해낼 줄 알고?』 이러고 학교를 때려치우고는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버렸다.그때 나이 15세.그러나 여기서도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시절에 만난 오정숙·박옥진은 스승으로부터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로 죽어도 남에게 뒤질 수 없는 그의 심경은 못내 참담하기만 했다. 『두고보자.지금은 너희가 나보다 나은 줄 알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들의 소리연습을 엿보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라면 다소 자신이 있었다.어릴때부터 부친의 북장단이 귀에 익어 어떤 악기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가야금·거문고·칠현금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한번 제대로 배우고 말겠다는 집념을 떨치지 못했다.그렇게 4년을 보내고 5·16직후 국극단이 해산해버리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성사근처 와룡동에 정착하여 박초월씨에게 거문고를 배우다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만정 김소희씨의 문하에서 동편제소리인 강산풍월과 심청가 바디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전처음 『갈고 닦으면 좀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그후 김소희씨의 권유로 보성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에 있는 정응민선생을 찾아나섰다.보성소리는 판소리 서편제중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연고를 맺고 있는 소리꾼들만의 소리제로 우조·평조·덜렁제·경두름제의 다양한 음색과 감칠맛이 특색이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인적없는 여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30리길 산골,밥상을 갖다놓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만큼 바닥이 기울어지는 누추한 단칸방에서 그는 그를 구제하는 소리의 진수에 빠져 모진 고생을 감내하는 뼈저린 과정을 거쳤다.하루 15시간에서 어느때는 18시간,삭신이 늘어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으나 불에 구운 왕소금으로 부운 목을 달래면서 그는 오로지 소리에만 매달렸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혹독한 겨울,여름내내 4개월동안 긴장마가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기울어진 방에 앉아 목청을 뽑던 고된 수련과 공력은 이제는 그의 일생일대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그로 인해 박유전∼정응민∼그의 아드님인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계보에 4대째로 「소리호적」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부친이 소리를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또다시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 했다.이번엔 남들이 듣고 있는 명인·명창 칭호가 그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보성에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이번엔 하성이 나오지 않았다.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환갑이 다된 박록주선생을 모시고 안양에 있는 삼막사로 들어갔다.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있었으나 몸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스승은 『명랑하게 불러라.소리는 미련해야만 한다.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그리고 인분을 먹어야만 낼 수 있다는 소리를 너는 네 집념과 오기로 백일만에 끌어냈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한스럽고도 깊고 장려한 그러나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진양조 여섯박자를 능란하게 엮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적벽가」에 나오는 한문의 뜻을 알기 위해 이번엔 우전 신호렬선생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마음이 밝아지자 눈도 밝아지는 듯했다. ○청명한 소리 얻어 68년부터 명창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해외공연,75년 남원 춘향제때는 우산을 쓴 관중들이 빽빽이 늘어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자신이 취해 빗소리도 관중의 술렁거림도 들리지 않았었다.그리고 내게서 빠져나간 소리가 관객의 가슴속에 전달됐다가 다시 내몸속으로 들어오는 자유자재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이른바 「소리가 앵기면서」 솟구치는 환희가 분류처럼 가슴 한복판을 꿰뚫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동편제 서편제의 갈래를 성큼 뛰어넘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초월의 경지,요즘은 소리속에 온자한 깊이가 배어들고 있는 시기다.더구나 지난해 4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한 부군 양명환씨가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소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이루고 싶은대로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그는 명창 칭호에 손색이 없는 반듯한 예술가의 단행을 평생 지키고 싶은 또하나의 소원을 지니고 있다. ▷연보◁ ▲1934년 1월10일 전남 광주출생 ▲1950년 광주여고1년때 김연수 창극단입단,조선국극단등 여성국극단에서 창극 활동 ▲1955년 공기남선생에게 「심청가」2년 사사,한만갑제 거문고 김난주씨에게 사사,강태홍제 가야금 원옥화씨에게 사사,춤광대 김영철씨에게 칠현금 사사 ▲1961년 만정 김소희씨에게 「심청가」「흥보가」3년간 사사 ▲1964년 전남 보성 정응민씨에게 강산제 판소리(박유전판)「심청가」「춘향가」「수궁가」사사 ▲1965년 박록주씨에게 안양 삼막사에서 백일공부 ▲1965년부터 우전 신호렬씨에게 한문과 서예 사사 ▲1968년 신인서예전 서예부 특선,제17회 국전 서예부 입선,국악협회 주최 명창대회 「춘향가」로 세종상 ▲1969년 김소희씨와 일본 교포위문공연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판소리「흥보가」「민요」공연,유럽지역 순회공연(파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1977년 「심청가」완창(4시간30분) 서울시민회관별관 ▲1979년 「춘향가」완창(5시간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0년 일본 와세다대학서 「심청가」공연 ▲1981년 제1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심청가」완창공연 ▲1984년 신재효100주년기념공연 「춘향가」공연(국립극장 대극장) ▲1985년 「춘향가」전판공연(국립극장대극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후보자 지정·국악협회 이사 ▲1988년 「심청가」 서독 쾰른음대 초청공연 ▲1990년이후 해마다 국악대공연 ▲1991년 강산제 판소리「심청가」로 인간문화재 지정,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춘향가」공연 ▲1992년 「심청가」완창(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야외음악당 공연,일본 도쿄서「심청가」공연,대한민국 국악제 독창,사단법인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설립·이사장취임 ▲1993년5월 호주 브리즈번 세계음악제에 한국대표로 출연,6월 KBS국악관현악단과 「춘향가」완창공연,부산문화극장에서 판소리 5마당 큰잔치 「심청가」공연,7월 새한전통예술 보존회 설립기념 「민족예술국악대공연」 ▲1977년부터 국악고·추계예술대·단국대·전남대 출강 KBS 제1회 국악대상 수상·국악부문 방송대상 수상 「춘향가」「심청가」「흥보가」(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 「꿈의 고속전철」 본궤도 오르기까지

    ◎정권따라 우여곡절… 20년만에 “햇빛” ○추진및 선정경위/73년 불·일 조사단,첫 건설 제의/6공때 구체화… 새정부서 “매듭” 「사상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건설공사는 지난 73년 12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사이에 프랑스와 일본의 국철조사단이 경부축의 장기수송대책으로 새로운 철도건설을 건의하면서 태동했다 그후 5년만인 79년2월 고 박정희대통령이 연두순시에서 고속전철계획과 관련해 장기 수송계획수립을 지시했었다.이 계획은 전두환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뀐뒤 처음 수립된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에 서울∼대전간 1백60㎞구간에 고속철도를 86년부터 89년 사이에 건설하는 것으로 반영됐다.그러나 2년후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수정하면서 경부고속전철건설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후에 건설여부를 결정키로 해 첫 시행계획이 미뤄졌다. 이에 따라 지난 83년 3월부터 1년8개월간 교통부 주관으로 미국의 루이스버저사,덴마크의 캠프삭스사,국토개발연구원,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참여한 타당성 조사가 실시됐다.이 조사결과 경부간의 고속철도는 92년부터 97년사이에 개통되도록 건설공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이어 86년9월에 수립된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에는 기술조사계획이 반영됐으나 정권교체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추진이 늦어져 89년7월에야 대통령령으로 고속전철 및 신국제공항건설추진위원회와 실무위원회가 각각 부총리와 교통부차관을 위원장으로 구성됐다. 정부내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함께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시작,5개월 뒤인 89년12월에 철도청 직원 54명으로 고속철도건설 실무작업단이 발족됐고 90년6월에는 서울∼천안∼대전∼대구∼부산간 4백9㎞의 노선과 정류장 예정지역에 대한 토지투기 억제조치가 함께 발표됐다.이어 91년 2월에는 정부 10개부처 공무원 및 연구기관,금융계 등으로부터 파견된 1백40명의 요원으로 고속전철사업기획단이 설립됐다.그해 6월에는 노반시설설계에 착수했고 8월에는 고속철도 차량형식 선정을 위한 제의요청서가 일본·프랑스·독일 등 3개국에 처음으로 발송되었다. 92년3월에는고속전철산업기획단이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으로 전환,발족했고 6월에는 고속철도 세부노선이 확정,발표됐다.이어 6월30일에는 시험선 구간인 천안∼대전간 7개 공구 가운데 4개 공구의 노반공사가 착공됨으로써 본격적인 대역사가 시작되었다. 최초 건의로부터 20년만이고 정부내에 추진위원회가 구성된지 15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정권교체기에 접어들면서 차량형식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듭됐다.지난해 1월31일 처음으로 입찰제의서를 접수한 이후 정권교체 직전인 지난 2월22일까지 5차례에 걸쳐 수정제의서를 받아 검토,평가했으나 선정에 실패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새정부는 지난 6월14일 고속철도의 완공연도를 당초 98년말에서 2001년으로 3년을 연장하고 89년 가격으로 산정됐던 5조8천4백62억원의 투자비도 93년 가격으로 조정해 10조7천4백억원으로 확정하는 수정계획을 발표하면서 재개됐다.수정계획 발표 하루뒤인 6월15일 대상 국가 가운데 일본이 제외되고 프랑스와 독일로 압축된 가운데 제6차 입찰제의 요청서가 발송됐고 지난달15일 양국으로부터 제6차 수정제의서를 받았다. 정권의 교체때 마다 우여곡절을 거듭한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이번에 차종선정 대상국이 결정됨으로써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TGV 선택이유/독보다 가격 파격적으로 낮아 결정/평가만족도 85%… 기술이전등 앞서 경부고속철도 차량형식 수주문제를 놓고 2년여동안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독·불전쟁」은 결국 프랑스 TGV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에 TGV제작회사인 알스톰사가 차량형식계약을 위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차량 가격면에서 독일의 지멘스사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스톰사는 최종 6차 제의서에서 차량가격을 5차때 보다 약2억3천만달러나 대폭 낮춰 우리측이 요구한 총차량가격 23억달러 수준에 제일 가까이 접근했다. 이는 알스톰사가 스페인과 계약했던 총액수 보다 2억5천만달러,유럽통합노선총계약 보다 3억7천만달러가 낮은 가격이다. 알스톰사는 또한 ▲비용 ▲기술 ▲기술이전및 국산화 ▲영업분야등 4개부문의 3백2개 세부평가 항목에서도 지멘스사 보다 1백43개 항목에서 우세,1백5개 항목에서 우세를 나타낸 지멘스사를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독일측이 기술및 기술이전에서는 강세를 보였으나 경제성·금융조건·운영경험등의 부문에서는 프랑스에 뒤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알스톰사는 금융조건 면에서 ▲총 제의가격 전액 약정금융제의 ▲대출금액의 이자율및 수수료 대폭 인하 ▲건설기간중 발생되는 이자의 전액 원금화 조건을 제시했다.우리측이 두번째로 중시한 「기술이전및 국산화」부분에서도 ▲기술훈련및 지원확대 ▲기술이전 때의 모든 예외조항 삭제 ▲국산화율 대폭 확대등을 제시함으로써 전체 평가만족도가 85%선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알스톰사가 6차 제의때 우리측의 요구에 부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수 있다. 첫째는 어떻게 해서라도 경부고속철도를 수주해 앞으로 대만·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의 고속철도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한 것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두번째는 고속철도에 관한한 세계제일의 자리를 확고히하기 위해 독일의 추격을 뿌리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TGV는 「프랑스의 자부심」「나폴레옹의 꿈」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의 첨단기술이 집합된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81년 파리∼리옹간 4백30㎞ 구간에서 첫 운행을 시작한 이래 한건의 사고없이 2억명 이상의 승객을 실어날랐다. TGV는 최고시속 5백15.3㎞를 돌파,초고속 열차부문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최초로 2백70㎞의 속도로 상업운행을 하고 있으며 지난 90년 시속 3백㎞의 제2세대 아틀랜틱선을 개통했다.또 내년에는 런던∼파리간 해저터널을 운행할 계획이다. TGV는 최근의 국제입찰에서 1백% 수주실적을 올리기도 했다.스페인의 AVE를 비롯,벨기에와 영국이 기술도입을 결정했고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휴스턴∼댈라스∼산 안토니오를 잇는 58억달러짜리 대형 공사를 따냈다.지난 1월에는 유럽통합노선중 독일구간을 제외한 3곳(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에 TGV가 선정되었다. 철도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TGV는 에너지및 철도수송부문에서 두각을나타내고 있는 「GEC 알스톰사」의 제품이다.이 회사는 영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GEC)와 프랑스의 ALCALTEL ALSTHOM그룹이 각각 50%씩 출자,공동으로 설립했다. ○불 자존심 TGV/“철로위 비행기” 실용화후 큰 인기/“유럽도시 연결 눈앞” 기대 부풀어 프랑스에서 TGV(고속열차)는 에펠탑처럼 처음에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가 날이 갈수록 국민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주면서 찬사속에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도대체 그런 빠른 열차가 가능한가에서부터 그렇게 빠른 열차가 항공기 시대에 무슨 필요가 있는가,자연의 훼손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등의 의혹과 불신이 TGV 개발계획시기 이래 끊임없이 제기됐다.그러나 1981년 9월 첫 실용화이후 「철로위의 비행기」 TGV에 쌓이고 있는 찬사는 비난과 반대의 소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91년 9월 TGV 주행10주년을 맞았을때 르 파리지앵지는 「TGV 삶」이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TGV가 프랑스인의 생활을 변화시켰다』고 지적한 이 기사는 그 변화를 「TGV 혁명」이라는 말로 나타내기까지 했다. 이 고속전철은 국민들에게 기존의 거리감을 바꾸게 했다.수도 파리에서 제2도시 리옹까지는 5백㎞의 거리지만 TGV로는 2시간 10분이면 가는 곳으로 가까워졌다.파리에서 2백㎞ 안팎이고 TGV역이 있는 도시들은 1시간쯤의 거리로 다가와 파리의 교외로 느껴지게 되었다.이른바 「교외의 확장」현상을 보게된 것이다.한국의 경우라면 대전쯤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파리와 리옹 두 도시간의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변화는 기업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파리 소재 회사들 가운데서 넓은 공간과 낮은 관리비를 쫓아 리옹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이에 따라 리옹을 거점으로 하는 동남지방 일대의 개발이 촉진되는 등 산업배치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경제의 지방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광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TGV가 닿는 곳은 더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TGV 요금은 비싼 편이지만 비행기 요금의 절반이다. 그러나 변화에는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파리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살게 된 TGV 1시간 통근권의 도시들에서는행정책임자들이 『우리 도시가 파리 부유층의 침실도시가 되어간다』고 걱정이다. TGV는 20세기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프랑스 국영철도회사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손님을 비행기와 자동차도로에 뺏겨 오다가 TGV 덕분에 회생했다.종전에 2대1이었던 철도의 화물대 여객 비율은 TGV 출현 10년만에 완전히 반전됐다.이는 여객수송 수단으로서는 퇴색일로에 있던 세계 철도역사에 놀란만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유럽의 도시들이 TGV로 연결되리라는 꿈도 현실화의 문턱에 와 있다.멀지않아 파리서 런던은 2시간10분,베니스는 5시간30분이면 가게 된다. ▷고속철도사업 일지◁ ▲73년12월=프랑스및 일본국철조사단이 새로운 경부철도건설 제의 ▲78년11월=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새로운 경부철도건설 건의 ▲79년2월=대통령연두 순시서 장기수송대학 수립지시 ▲81년6월=「제5차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서울∼대전간 고속철도건설계획 반영 ▲83년3월=서울∼부산고속철도건설 타당성 조사 착수 ▲86년9월=제6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기술조사계획 반영 ▲89년7월=대통령령으로 고속철도및 신국제공항건설추진위규정 제정 ▲89년7월∼91년2월=경부고속철도 기술조사및 기본설계시행 ▲89년10월=고속철도 국제심포지엄서울서 개최.11개국 1백명 참가 ▲89년12월=철도청직원 54명으로 고속철도건설 실무작업단 발족 ▲90년6월=서울∼부산고속철도노선 확정발표 ▲91년2월=고속전철사업기획단 설치 ▲91년6월=노반시설설계 착수 ▲91년8월=차량형식선정을 위한 제의요청서(RFP)일본·프랑스·독일에 발송 ▲92년3월=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발족 ▲92년6월=천안∼대전간 7개 시험선구간중 4개 구간 공사 착공 ▲93년6월=경부고속철도계획수정안 발표.일본 신간선 제외 ▲93년7월=프랑스·독일로부터 최종(6차)수정제의서 접수
  • 정주 집중호우 1백80㎜ 내려/시간당 70㎜ 기록

    【전주=조승용기자】 18일 하오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30분동안 전북 정주시 일원에 1시간 평균 7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이같은 집중호우는 정주시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지난 70년 이후 최고치였다. 이날 내린 1백80여㎜의 집중호우로 정주시 시기동과 연지동 일대의 가옥 5백30여채와 인근의 농경지 30㏊가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정읍군 칠보면 명천리 명천마을 송영철씨(40)의 집에 토사가 밀려들어 아들 정기군(5)이 골절상을 입었다. 또 정읍군 북면 북면저수지가 수위가 위험수위를 넘어섬에 따라 부근의 탑성리와 장고리 주민 3백여명이 인근 동신여중에 긴급 대피했다.
  • “토초세 전면 재검토”/폐지 검토설은 부인

    ◎민자/실태 긴급조사… 장단기보완책 마련/정부/우선 부과대상 줄여 조세저항 최소화 민자당은 16일 심각한 조세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토지초과이득세제를 포함,토지관련 세제를 중장기적으로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민자당은 또 정부의 토초세 보완작업과는 별개로 당세제개혁특위(위원장 나오연)위원 4명으로 실태조사반을 편성,현지조사작업을 벌여 단기 보완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김종호정책위의장은 이날 『토초세는 미실현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데 따른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종합토지세·양도소득세·과다보유세등 토지와 관련된 세제와 함께 중장기적인 재검토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의장은 그러나 『토초세가 부동산 투기를 막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된 세제』라면서 『재검토 과정에서도 부동산투기를 재연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부과키로 고지되고 있는 토초세가 공시지가 산정 및 유휴토지 판정에 문제가 많다』며 『대도시·중소도시·농촌등으로 나눠 현지 조사를 실시,당 차원의 보완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상목정조실장은 『토지에 대한 과세표준액이 현실화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토초세의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토초세 폐지검토설」을 부인하고 『24일까지 실시될 현지조사 이전에 비공식 당정협의를 갖고 정부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뒤 현지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또 다시 당정협의를 통해 단기 보완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김현철기자】 정부는 토지초과이득세를 비롯한 토지관련 세제의 과표현실화 과정에서의 조세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완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철 신경제계획위원회 민간측 위원장은 16일 제주에서 대한상의가 주최한 제18회 최고경영자 대학 강연을 통해 『정부는 토초세에 대한 조세저항의 최소화를 위해 토초세 부과대상의 완화 등 시행과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위원장은 또 『재산과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토초세제는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비점을 보완,조기정착을 도모하며 지가안정·투기소지의 해소등을 위한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토지관련세제를 취득·보유·이전단계별로 종합적인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국방부·함참 특별보안감사/19일부터 2주간 실시… 창군이래 처음

    ◎군기관리 이상 적발땐 엄중문책/권국방,시노하라사건 계기 특검단에 지시 국방부는 15일 최근 국방정보본부 고영철소령의 군사기밀 유출사건과 공군기본훈련기 선정도입과 관련된 군사기밀 해외유출사건등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점과 관련,군 특명검열단에 군내부의 전반적인 보안실태 및 보안체제의 이상유무를 특별조사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권영해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오는 19일부터 2주간 실시되는 이번 특검단의 보안특감은 창군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특검단은 이번 특감에서 국방부와 합참을 대상으로 보안상태를 집중 점검,적발되는 보안사범에 대해서는 엄중 문책할 방침이다. 특검단은 이번 특검결과에 따라 육·해·공 3군 및 기무사·정보사등 군 정보기관에 대해서도 특감을 확대,실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특감에서 지적된 사항을 토대로 올 하반기에 군사기밀보호법과 보안업무시행규칙등을 개선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고소령사건이 발생한 직후 기무사를 통해 국방부와 합참에 대한 일반 보안감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 휴전선 한국군포격/북측 주장 사실무근/국방부 성명

    국방부 김영철대변인은 15일 최근 북한의 평양중앙통신과 평양TV를 통해 한국군이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측에 1백여발의 포격과 1천2백여발의 기관총및 소총사격을 가했으며 한국해군이 서해안에서 영해를 침범,북한측 화물선을 나포하려 했다고 주장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 군기유출 안보누수(사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군에서 또 발생했다.공군이 스위스제 훈련기도입과 관련,작성한 「작전성능요구서」등이 최근 해외로 유출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시노하라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의 군사기밀유출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군사기밀관리체계가 어떻게 이토록 허술할 수 있단 말인가.아무리 국제화시대의 정보전쟁이 치열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군사안보에 이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군 자체의 보안의식과 군사기밀관리상에 어딘가 허점이 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사건은 한마디로 우리 군사기밀의 유출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외국기자가 몇차례씩 우리 군의 2급 비밀을 빼내 자기나라의 대사관 무관에게 넘겨주었는가 하면 군에서 무기구입과 관련된 회의가 있은 뒤 불과 수일만에 그 사실이 외국신문에 보도됐다는 것은 우리의 군사기밀 보안강화가 시급함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최근 시노하라씨에게 군사기밀을 빼내 넘겨준 국방부 정보본부 소속 고영철 소령을 구속한데 이어 시노하라씨 마저 구속한 것은 더 이상 군사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표현으로 볼 수 있다.시노하라씨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취재활동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이미 그의 활동은 수사결과 순수한 취재목적이 아닌 군사상 첩보행위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뿐만아니라 그가 두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사실 그 자체는 그의 행위가 단순히 보도목적으로만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저간의 행동이 첩보행위일수 밖에 없다는 의심은 불가피하다.여기에 아무리 취재목적이었다해도 주재국의 실정법을 저촉한 행위는 지울수가 없다고 본다. 군의 기밀유지가 외국언론에만 너무 관대했던 점도 또 다른 원인중의 하나다.특히 기밀취급자들 조차 지켜야할 비밀이 너무 많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현행 군사기밀보호법은 부대명칭·지휘관이름등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기밀로 규정하고 있다.적에게 알려진 사실조차 국민들은 알지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철저히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릴 것은 정정당당하게 알려야 한다.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사기밀관리체계의 문제점을 철저히 재점검해 튼튼한 보안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 첩보활동 경위 집중 수사/검찰/구속 시노하라 소환

    ◎일 무관외 제3자유출 여부도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39)를 구속·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4일 시노하라씨를 서울구치소에서 소환,국방정보본부 소속 고영철 해군소령(40·구속)으로부터 넘겨받은 군사자료 27건을 주한일본대사관 무관에게 넘겨주는등 첩보활동을 벌인 자세한 경위 등에 대해 보강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특히 시노하라씨가 직접 망원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며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시설,훈련상황 등을 촬영한 뒤 슬라이드 1백70여장을 제작한 점을 중시,슬라이드를 만들게 된 경위와 사용처에 대해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이밖에 시노라하씨가 고소령이외에 또다른 군관련자로부터 군사기밀을 넘겨 받았는지와 일본무관외에 다른 제3자에게 입수한 기밀을 유출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 시노하라 일기자 구속/검찰/“군기밀 빼내 일 무관에 전달”첩보활동

    ◎군사시설 촬영… 일 대사관 정례보고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39)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3일 시노하라씨가 지난 90년부터 고영철소령(40·구속)으로부터 군사기밀자료등 모두 27건의 군관련 정보를 빼내 전 일본대사관 무관인 후쿠야마 다츠유키씨등 일본무관 2명에게 전달해준 사실을 밝혀내고 이날 시노하라씨를 구속했다.국내 주재 외국특파원이 보도 활동등과 관련,강제출국된 사례는 있었으나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시노하라씨는 지난 90년 5월부터 공군항공기전력배치현황등 2급군사기밀 8건과 방공부대편제표등 3급비밀 3건등 모두 11건의 군사기밀을 포함한 군관련 정보 50건을 고소령으로부터 빼내 이 가운데 11건의 군사기밀등 27건을 일본무관인 후쿠야마씨 등에게 정기적으로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검찰조사결과 시노하라씨는 특히 91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중요군사정보 「북한일반동향」등의 문건을 입수,주일 대사관에서 개최하는 특파원간담회에 참석,후쿠야마씨 등에게 월 1∼2회가량 보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시노하라씨는 망원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한국군및 미군의 군사시설과 훈련상황 등을 촬영해 슬라이드로 제작,보관하고 있는 사실도 밝혀내고 관련 슬라이드 1백70여장을 압수,사용처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관계자는 『국군기무사에서 불구속 송치된 시노하라씨를 소환조사한 결과 시노하라씨가 군사기밀 등을 수집해온 목적이 단순한 취재활동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군사상 첩보활동을 한 혐의가 인정돼 구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시노하라씨가 빼낸 군사기밀 등을 후쿠야마씨등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전달한 사실은 밝혀냈으나 이 문건들이 일본대사관측이나 일본정부에 보고되었는지 여부는 관련 무관들이 일본으로 이미 출국한 상태여서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수사에서 추가로 확인된 유출기밀및 군사정보는 한미정찰기현황 등 3급비밀 3건과 한미안보협의회 자료등 7건이다. 검찰은 또 시노하라씨가 야사하라 마사사다란 필명으로 일본 월간지 「마루(환)」「팬저」(PANZER)등에 「38도선을 둘러싼 남북 선전전쟁 최신사정」등 군사논문 2건 등도 기고해온 사실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노하라씨가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전달한 군사기밀은 우리공군및 육군등 국군전체의 전투력에 관한 사항들로서 외부에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건 등이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론과 대비책」「독도출격 대비태세 현황」등 일본과 직접 관련된 비밀문건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 시노하라 재소환/검찰,군기유출수사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9일 국방부정보본부 소속 고영철해군소령(40·구속중)등으로부터 군사기밀을 넘겨받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40)를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시노하라씨를 상대로 이미 밝혀진 자료외에 또 다른 군사기밀을 입수,일본대사관등 제3자에게 넘겨주었는지 여부와 군사기밀 전달과정에서의 금품수수여부 등을 집중조사했다.
  • 시노하라기자 재소환/수뢰여부 등 조사키로

    서울지검공안1부는 8일 국군정보본부소속 해군소령 고영철씨(40·구속)로부터 군사기밀을 몰래 수집해온 혐의로 불구속 송치된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39)를 9일 상오10시 다시 불러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시노하라씨를 상대로 전일본무관등 제3자에게 이미 밝혀진 자료말고 또다른 군사기밀을 넘겨줬는지 여부와 군사기밀을 전해받는 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는지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 “군기제공자 더 없다”/국방부 발표/시노하라기자 불구속

    ◎고 소령은 군검찰에 구속송치 국방부는 6일 지난달 24일 군사기밀누설 혐의로 구속한 정보본부소속 해군 고영철소령(40)을 군사기밀보호법 제6조(탐지·수집)및 군형법 제80조 제1항(군사기밀누설)을 적용,관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검찰부에 구속송치했다. 또 고소령으로부터 군사기밀을 불법적으로 수집해 온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기자(39·소원창인)에 대해서는 군사기밀 보호법 제6조및 7조(누설)·제11조(출판물등에 의한 가중처벌)등을 적용,이날 서울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이밖에 고소령의 소개로 평소 시노하라 기자와 1∼2회 접촉이 있었던 국방부소속장교 2명과 군무원 1명을 대상으로 군사비밀 유출제공여부를 조사했으나 모두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 빼내간 군사비밀 일TV 방영/시노하라/방북때 허담등 거물접촉 시인

    ◎기무사,장교등 3명 추가소환 방침 군사기밀유출사건을 수사중인 국군기무사령부는 1일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가 87년과 91년 두차례 북한 방문에서 공식일정에 따른 활동외에는 비공식 개인활동과 개별 접촉 인물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관계기관과 공조,북한연계여부를 계속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시노하라씨는 수사과정에서 일본 사회당과 북한 노동당과의 친선교류취재차 87년 7월20일부터 8일 동안의 1차 방북시 공식일정으로 당시 허담 노동당 국제담당비서(91년5월 사망)를 만났으며 일·북한간 국교수립회담 취재를 위한 91년 1월25일부터 4일간의 2차 방북시에는 전인철 외교부부부장(92년3월 사망)등을 공식석상에서 접촉했다고 진술했다. 기무사는 특히 시노하라씨가 국방정보본부 고영철해군소령(구속중)으로부터 90년7월 입수한 군비통제기본계획(2급군사비밀)으로 기사를 송고,일본 후지TV에 80초동안 방영돼 결과적으로 한국군 군사기밀이 노출됐다고 밝혔다. 기무사는 또 시노하라씨의 미군군사기밀유출과 관련,국내 군사문제 잡지인 「월간 평지」에 게재하려다 잡지사측이 보안상의 이유로 거절한 「제7공군,그 기구와 능력」과 91년 5월 미2사단에서 입수한 「개편된 미2사단 조직기구표」등의 경우 자료내용등으로 미루어 취재목적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여 입수과정등을 정밀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무사는 시노하라씨가 「제7공군,그 기구와 능력」을 쓸때는 미7공군 공보실에 근무하는 미군하사와 공보관으로부터 받은 홍보용자료들을 토대로 했으며 「개편된 미2사단 조직기구표」에 관한 자료는 91년 5월 미2사단 공보실에서 우송한 것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무사는 시노하라씨가 고소령뿐아니라 다른 국내 정보관계자·미군관계자로부터 군사기밀을 광범위하게 입수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시노하라씨와 접촉이 많았던 장교 2명과 군무원 1명을 추가로 소환,수사할 방침이다.
  • 고 소령 전현상관/장성 등 6명 징계/국방부 방침

    국방부는 30일 국방부 정보본부 해외정보부 고영철해군소령(40)의 군사기밀 유출사건과 관련,고소령의 상관인 박모대령 등 전·현 직속상관 4명을 징계할 방침이다.
  • 군기 북 유출여부 추궁/검찰/시노하라기자 재소환

    현역해군소령의 군사기밀 유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군수사당국은 30일 일본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39)가 수집한 군사관련자료를 전주한일본 무관등에게 건네주는등 취재목적을 벗어나 적극적인 군사기밀 탐지·수집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시노하라씨를 재소환,군사기밀로 분류된 자료를 북한이나 일본으로 빼돌렸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함께 시노하라씨가 구속된 고영철소령(40)과 입건된 정춘일소령외에 오산·의정부 등지의 미군기지 등을 수차례 방문,군관계자들과 접촉해왔다는 정보에 따라 시노하라씨의 자가용운전자 구모씨를 불러 시노하라씨의 행적에 대해 참고인조사를 벌였다.
  • 주한미군기밀도 빼내/시노하라 일기자 구속 검토/군·검

    ◎87·91년 두차례 방북 드러나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소원창인·40)의 군사기밀보호법위반사건을 수사중인 국군기무사와 검찰은 29일 시노하라씨가 지난 87년과 91년 2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을 밝혀내고 정확한 방북경위및 목적등에 대해 조사중이다. 군·검은 이와함께 시노하라씨가 고영철소령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군사기밀을 빼낸것 이외에도 수차례에 결쳐 경기 오산및 의정부등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미군관계자들로부터 군사기밀을 수집해온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시노하라씨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군·검은 이를 위해 30일중 시노하라씨의 운전사 구모씨를 소환,시노하라씨의 한국내 활동행적에 대해 정밀 조사키로 했다. 이 사건의 수사지휘를 하고 있는 서울지검 관계자는 『시노하라씨가 지난 87년 사회당 의원들의 방북 및 91년1월 일본 외무성의 일·조회담 당시 동행취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현재까지 조사결과 시노하라씨는 단지 취재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군사기밀 유출사건의 중대성에 비춰 자세한 방북경위를 캐고있다』고 밝혔다. 국군기무사는 이에따라 이날 시노하라씨를 다시 불러 방북취재 경위 및 북한에서의 활동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한편 국군기무사는 이날 고소령의 군사기밀유출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이번 사건은 고소령이 개인적으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지른 단순 범행으로 판단되며 적과 연계된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무사의 조사결과 고소령은 일본 유학중 아르바이트를 했던 동생(39)으로부터 지난 89년 후지TV 서울지국장으로 부임한 시노하라씨를 소개받아 월1∼2회씩 만나 자료를 넘겨주고 진급을 부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소령이 누설한 주요 군사기밀은 ▲공군항공기 전력배치현황(2급비밀) ▲국방기구표(2급) ▲육군사단배치현황(2급) ▲1군사령부 지휘내용(2급) ▲걸프전쟁과 한국안보(3급)등이다.
  • 방북경위·행적 등 중점조사/시노하라 「군기유출」 수사 새 국면

    ◎한국 파견이후인 91년 방북 규명필요/이적행위 판명땐 한­일 외교마찰 소지 군사기밀유출사건에 관련된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가 자신이 입수한 군사기밀을 취재목적이외에 제3자에게 넘겨주고 북한을 두번이나 방문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과 함께 군사기밀의 입수배경 및 사용처등에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례없는 이 사건을 수사중인 국군기무사와 검찰은 29일 시노하라씨가 입수한 기밀문건을 전 주한 일본 무관 및 일본내 국제문제연구소 스카모토씨에게 건네준 것을 확인하는 한편 지난 87년과 91년 두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시노하라씨가 『자신이 입수한 기밀자료는 순수히 취재 및 기고자료로 사용했다』는 발언에 대한 신빙성 문제가 원점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 수사당국은 특히 시노하라씨의 북한방문 목적등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방문목적 등에 수사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노하라씨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87년 7월 일본사회당 의원들의 방북 및 91년 1월 일본 외무성의 일·조회담시 동행취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87년의 방북건은 시노하라씨가 한국에 파견되기 전(89년 3월)이므로 일견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91년 방북건에 대해서는 검증 및 규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시노하라씨의 행적조사에 수사의 초점이 새로 집중되는 것은 그가 주한 일본 무관에게 자료를 넘겨줬다는 대목이다.그는 일본 무관에게는 「미 육군참모총장 부대방문」「전 연합사령관 리스카시 한국군 방문」내용 등을 제공했으며,스카모토씨에게는 「비무장지대 적 침투간첩 사살사건」내용을 전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군관계자들은 단순하게 국가이익차원에서 취재내용을 대사관측에 전달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국가안보에 관련된 고급정보가 파악될 경우 국가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외교관례를 그가 몰랐을리 없다는 분석이다. 수사당국은 시노하라씨의 행적에서 볼때 경우에 따라서는 입수한 기밀자료가 북한등 제3국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물론 「극단적」인 상황에서 출발한 원칙론적인 입장이지만 수사당국으로서는 당연한 수사태도로 볼수있다. 시노하라씨의 행적수사결과 곧 구체적인 사건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 시노하라씨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시노하라씨가 고영철해군소령(구속중)으로부터 입수한 「공군항공기 전력배치현황」「육군사단배치현황」등은 우리 군작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사용처에 대한 보강수사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부분이다. 수사과정에서 시노하라씨는 한국의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수사진척에 따라 진위의 베일이 벗겨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노하라씨가 제3국을 이롭게 한 것이 명백히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은 국내실정법 차원을 넘어 한·일간의 미묘한 문제로 까지 발전될 소지가 있다 하겠다.
  • “군사기밀보호 허술” 입증한셈/「시노하라 사건」 왜 일어났나

    ◎형식적 관리 틈타 고 소령 3년간 빼내/진급 청탁위해 유출… 기강해이도 문제 현역소령의 군사기밀유출사건은 국가안위에 직결된 군정보관리체제에 구멍이 뚫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고영철해군소령이(국방정보본부 주변국과)지난 89년 12월부터 거의 3년동안 군사기밀을 빼내왔으나 적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의 군정보관리가 형식적으로 진행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부의 군사보안업무시행규칙에 따르면 군사기밀은 내용의 중요성과 가치의 정도에 의해 군사1급,2급,3급비밀로 구분된다. 1급비밀은 누설될 경우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전쟁을 유발하며 군사방위계획·군사정보활동 및 필수불가결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며,2급과 3급은 각각 군사방위에 막대한 지장 또는 해로운 결과초래가 우려되는 것이다.3급비밀은 다소 시간이 경과된 경우가 많다. 고소령이 유출한 「공군항공기전력배치」「육군사단 배치현황」「남북평화공존시 전력대비와 통일후 전략 및 전력대비연구」「전환기군사대비태세계획」등은 모두 2급비밀이다. 군사기밀은 해당등급의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사람만 공식 취급할 수 있게 돼있으나 내부관련자끼리는 현실적으로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고소령외에도 다른 군사연구기관 관련자들에게서도 군사기밀을 입수한 것으로 밝혀져 구체적인 유출경위에 대한 보강수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기본적으로 군기강해이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않다.고소령은 우리나라 군고위관계자를 많이 알고있는 듯한 시노하라기자에게 진급을 청탁하기위해 군사기밀을 빼내주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영관급 장교로서의 기본율을 저버린 행동이어서 동기가 석연치 않다. 군정보관련 인사관리에도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낸 이번 사건은 군의 정보관리체제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군기밀 전달받은 일TV지국장/자택·사무실 압수수색

    ◎군수사기관·사용처 등 조사키로 군수사당국은 26일 군사기밀을 유출시켜 구속된 국방정보본부 소속 고영철해군소령(40)으로부터 기밀을 전달받은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40)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외인아파트 자택과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압수수색은 마사토씨가 군사기밀을 넘겨받은 목적및 사용처를 조사키 위한 것으로 군형법의 적용을 받지않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의 경우 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돼있는 군사기밀보호법 규정에 따라 서울지검 공안1부 이종대검사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는 절차를 통해 실시됐다. 군수사당국은 이에앞서 지난 25일 고소령이 올해초부터 항공기전력배치현황·육군사단배치현황·전환기군사대비태세등 군사기밀을 마사토씨에게 유출시켜온 혐의를 밝혀내고 고소령을 구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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