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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야외수영장 영화 ‘괴물’덕 톡톡

    한강 야외 수영장이 영화 ‘괴물’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영화 장면에 등장하는 한강에 대한 관심으로 어린이 입장객들이 몰리면서 19일부터 야간운영 시간을 한시간 연장하기로 했다. 18일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 따르면 뚝섬·광나루·여의도·망원·잠원·잠실 지구 등 6개 야외수영장의 개장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1시간 더 늘리기로 했다. 이는 올해 폭염이 예년보다 심한데다 한강과 둔치 경관을 보려고 수영장을 찾는 이용객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 관계자는 “수영장에 온 어린이들이 영화 괴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면서 저녁 때 물놀이를 더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해 초등학교 개학을 하루 앞둔 폐장일(27일)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6개 수영장의 입장객 수는 지난달 1일 개장 이후 하루평균 9669명을 기록해 예년에 비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지난 15일 광복절 휴일에는 망원 8367명, 여의도 8330명, 뚝섬 7194명 등 모두 2만 7042명이 몰려 역대 최고 입장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업소측은 올해부터 수영장 운영주체를 위탁업체에서 직영으로 바꾸면서 샤워실, 탈의실, 응급실 등 편의시설을 개선하고 소독처리 등을 강화한 것도 이용객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어린이 2000원, 어른 4000원 등 입장료가 민간 수영장에 비해 매우 싼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한·미FTA 체결지원위 발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원활한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기구인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가 11일 발족했다. 위원회는 위원장을 맡은 한덕수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7명의 민간위원,6명의 정부위원 등 총 14명으로 구성됐다. 민간위원으로는 이희범 무역협회장, 손경식 상의회장, 김용구 중기협회장, 장대환 신문협회장, 이정환 전 농촌경제연구원장, 송보경 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대표, 김화중 여성단체협의회장 등이 위촉됐다. 정부위원으로는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영주 국무조정실장,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변양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이백만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등이 참여한다.위원회는 한·미 FTA를 둘러싼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앞으로 국민에게 협상정보 등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의견 수렴 및 토론 등을 통해 사전에 갈등 요인을 완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위촉장을 수여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라이언 킹 기르실 분~”

    “라이언 킹 기르실 분~”

    두 달 전 경북 영주 유기동물보호협회에 ‘킹’이라는 이름의 새 가족이 생겼다. 킹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특이하게 생긴 개나 고양이쯤으로 여기지만 킹은 엄연한 사자다. 생후 70여일 된 ‘라이언 킹’이 동물원이 아닌 이곳으로 온 사연은 무엇일까. ●값비싼 고양이 분유 주며 어렵게 길러 협회 대표 권영일(37)씨는 지난 6월4일 봉화군에 있는 미니 동물원을 찾았다. 동물원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라면 박스 속에 다 죽어가는 새끼 사자. 일주일 전 사자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지만 두 마리는 어미에게 깔려 죽고 한 마리만 간신히 살아 남았다. 전문 사육사가 없어 방치된 상태였다.“털은 반쯤 빠져 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더군요.” 권씨가 살려 보겠다고 하자 주인은 “이게 크면 500만원짜리니 50만원을 주고 사가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밥값과 함께 새끼사자 값 50만원을 지불했다.“죽게 내버려 두면 합법이고 데려와 살리면 불법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두고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었지요.” ●1㎏ 못되던 사자 4.6㎏으로 성장 ‘쇼독’(Show Dog·품평대회 출품견)을 훈련시키는 게 그의 본업. 하지만 사자 기르는 데는 초보였다. 한 사파리의 사자 사육사에게 문의했지만 “사자 기르는 법은 알아서 뭐하냐.”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기증을 할 테니 사자를 살려 달라고 하자 “넘쳐나는 게 사자”라며 거절했다. 여건이 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올렸지만 새 주인은커녕 “불법으로 사자를 키운다.”는 신고만 접수됐다. 결국 ‘독학’으로 사자 양육에 나섰다. 추위를 못견딜 것 같아 전기장판을 깔아 주고 이불로 언덕을 만들어 줬다. 값비싼 고양이용 분유를 어렵게 구해 먹였다. 동물관련 TV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로 보면서 사자가 나오는 부분을 꼼꼼히 봤다. 이런 정성 덕에 1㎏도 안 나가던 킹은 지금 4.6㎏이 나가는 건강한 새끼 사자가 됐다. ●유기견 돌보기 벅차… 동물원선 안 받아줘 일반인이 맹수를 기르는 게 불법은 아닐까.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출처가 분명한 사자는 개인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단 권씨의 경우 분양허가서를 지방환경청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주인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유기견을 돌보느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1년에 고작 300만원. 유기견 수십마리를 뒷바라지하기엔 벅찬 마당에 하루에 쇠고기를 한 근씩 먹어치우는 사자의 왕성한 식욕을 채워주기는 힘에 겹다. 공간도 고민거리다. 사자를 계속 키우려면 법적으로 2000평 이상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동물원에 기증하겠다는 뜻도 밝혔지만 거절당했다.“죽어가는 걸 살려 냈으니 이제 더 이상 미련은 없습니다. 우리 킹 데려 가실 분 안 계신가요.” 글 영주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전시·교육 연계… 亞 최고 박물관 만들겠다”

    “여성이기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장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별을 떠나 전문가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시아 최고의 박물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60년 역사상 외부 인사로는 첫번째 수장이자, 최초의 여성관장이 나왔다. 김홍남(58) 국립민속박물관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관장은 8일 인사가 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앙박물관이라는 큰 배의 선장이 돼 두렵기도 하고,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관장은 서울대 미학과, 미국 예일대 미술사 석·박사 출신으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제직하면서 6년간 이대박물관장으로 활동했고, 지난 2003년부터 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한 전문가다.3년 전 중앙박물관장 공모에 지원했으나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다. 최초의 여성 중앙박물관장이라는 호칭에는 “여성이기 때문에(이번 인사에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동안 국내외 박물관에서 16∼17년간 일했음을 강조했다. 특히 여성 최초로 민속박물관장이 됐을 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들었지만, 딱딱한 틀을 깨고 직원들과 합심해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제는 성별·전공분야 등 굳어 있는 것들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중앙박물관이 지난해 용산으로 이전한 뒤 정착기를 거쳤다면 이제부터는 안정적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에너지를 돌려야 할 것”이라면서 “전시와 교육이 함께 어우러져 규모만큼 콘텐츠로서도 해외에서 인정받는 박물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박물관 운영에 대해서는 업무를 파악한 뒤로 답변을 미루면서도, 소신 있는 발언들로 의욕을 보였다.“중앙박물관이 `세계 6대 박물관’‘동양 최대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우리만 그렇게 떠들 게 아니라 남들도 인정해야 해요. 콘텐츠를 더욱 개발하고, 이를 위해 국제적인 박물관들과 주파수를 맞춰 소통하는 등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박물관의 교육기능 확충을 강조했다.“박물관의 양대 기능은 전시와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을 효과적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박물관)대강당은 미어터지는데, 막상 전시실은 파리만 날리는 일을 자주 봅니다. 전시 유물과 연계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는 관람객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인도하는 ‘강제적 관람’을 지양하고, 선택적·자발적 관람을 유도하는 전시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명품감상’프로그램 같은 것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미국 국적 또는 이중 국적 소유 논란에 대해서는 “나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고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영주권을 메릴랜드주립대 전임강사가 됐을 때 취득했고, 이것도 지난해 말 기한이 만료돼 현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2㎝ 하은주 신한은행 입단

    ‘뜨거운 감자’ 하은주(23·202㎝)가 신한은행에 전격 입단, 국내무대로 복귀한다. 하은주는 1일 서울 중구 명동 로얄호텔에서 아버지 하동기씨와 오상영 신한은행 단장, 이영주 감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한은행 입단식을 가졌다.계약조건은 5년 동안 연봉 1억 2000만원으로 밝혀졌지만 광고를 통해 보전되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계약금이 7억원에 달해 총액 13억원의 여자프로농구 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뜨린 셈.이로써 지난 6월 초 일본에서 한국으로 국적 회복을 하겠다고 발표했던 하은주는 신한은행 34번 유니폼을 입고 2007년 겨울리그부터 뛰게 됐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국조실 차관급 누가” 술렁술렁

    국무조정실이 차관 인사를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등의 차관 인사가 단행될 때 국무조정실의 차관급도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3월 차관급으로 승진한 유종상 기획차장의 퇴임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누가 후임이 될 것인지 말들이 많다. 이미 유 차장의 후임으로는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가 각각 1명씩 추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 인사의 기용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는다.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의 ‘친정’인 재경부나 기획예산처 출신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내부 인사로는 박기종 기획관리조정관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4년째 1급 자리를 지킨 선임 조정관이기 때문. 업무 능력으로 박철곤 규제개혁조정관도 물망에 오른다. 당초 이달 말쯤 단행될 것으로 보였던 차관 인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여름 휴가 일정이 늦춰지면서 다음달 중순으로 순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부산 태종대공원 무료화

    부산시는 빠르면 오는 9월부터 부산의 대표적 유원지인 영도구 동삼2동 태종대공원을 무료화할 방침이라고 31일 밝혔다. 시는 태종대를 ‘차없는 무료 유원지’로 운영한다는 방침아래 정문 입구에452면 규모의 공영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문경길(상)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문경길(상)

    상주 옛길은 경북선(김천∼영주) 철로를 건너 문경시 모전동으로 들어선다. 곧바로 문경 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충북 보은군으로 통하는 국도 3호선과 만난다. 이어 공설운동장을 지나 1㎞쯤 거슬러 오르면 공평동 표석골 마을에 다다른다. 표석골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당교(唐橋)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전승기념비를 세웠다는 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때의 표석은 찾아 볼 수 없다. ●유곡 찰방역의 ‘둔전’ 공평·유곡들 이곳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길은 올해 초 왕복 4차로로 넓혀져 시원스럽게 나 있다. 길 양쪽으로는 공평·유곡들이 온통 푸르름을 자랑하며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이 들판은 유곡찰방 소속 1300여 역졸들의 군량을 충당하던 둔전(屯田)이었다. 둔전 북쪽 끝자락에는 장승백이 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 도로 중앙에는 ‘장승백이’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현재 장승은 없다. 63년전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이분남(78) 할머니는 “마을 앞 길가에 조상대대로 세워졌던 장승은 올해 길이 확장되면서 사라졌다.”며 서운해한 뒤 “빨리 다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시대의 장승은 세워진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달랐다고 한다. 동행한 안태현(40·민속학 전공) 문경새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길가의 것은 이정표 또는 경계 등의 구실을 했고, 마을 입구의 것은 주로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었으나 전염병이나 역병 등을 물리치는 주술적 역할도 겸했다.”고 설명했다. 장승백이 마을을 벗어나 국도 3호선을 따라 곧장 가면 유곡동에 도착한다. 영남역지상의 유곡 찰방역이 있던 곳이다. 유곡역은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한 역도체계에서 상주도의 으뜸역이었다. 이 역은 덕통·낙동·구미·지보·소계역 등 지금의 문경을 비롯한 상주·의성·예천·안동·구미·군위·청송 등지의 19개 역을 관할했다. 이곳에는 역리 1238명과 노비 67명 등 모두 1305명이 소속됐었다. 상등마 2마리와 중등마 5마리가 배치됐다. 특히 유곡 찰방역의 규모는 문헌상 조선시대 찰방역 가운데 가장 자세히 남아 있다. 영남역지에는 유곡 찰방역의 경우 찰방이 역무를 총괄하는 행정 관서인 동헌 6칸을 비롯해 찰방이 잠을 자는 침소인 내동헌 및 사환고 각 4칸, 마구간인 마단 5칸, 천교정·내삼문·문루·형사청·사령청 각 6칸, 역리들이 실무를 보는 곳인 작청 10칸, 진휼창 20칸 등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상주도의 으뜸역 유곡 찰방역 안 학예사는 “찰방역 전체에 대한 상세 기록은 유곡 찰방역이 유일한 정도”라며 “따라서 복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곡동 한복판을 지나는 옛길변에는 관찰사 박문수, 어사 박이도 등 관리 15명의 선정비 또는 불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 아낙들이 빨래판으로 쓰거나 버려진 것들을 이곳에 모아 정비했다고 한 주민은 귀띔했다. 유곡역을 벗어난 옛길은 3번 국도 왼쪽 아래로 잠시 비켜난 뒤 불정동 원골에서 다시 만난다. 원골은 고려시대 원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원골로 불린다. 원골 앞을 지난 길손은 영강 상류지점의 견탄(犬灘)을 건너야 했다. 옛날 견탄 여울에는 개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견탄을 건넌 옛길은 대성광업소 직원 사택촌으로 잘 알려진 호계면 견탄 3리 입구에서 영강과 나란히 1㎞쯤 상류 불정마을 건너편까지 강변쪽으로 난다. ●한양길 최대 험로 토끼벼랑 이곳에서 수풀을 헤치고 산허리를 올라서면 관갑천 잔도(串甲遷 棧道)가 나온다. 일명 토끼벼랑(兎遷)으로 옛길상의 험로로 가장 악명(?) 높은 곳이다. 잔도는 강가의 험한 벼랑부분의 암반을 파서 낸 길을 말한다. 또한 토끼벼랑은 이곳에서 길을 잃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토끼가 달아나면서 벼랑길을 열어 주어 진군했다는 데서 연유했다. 역시 동행한 엄원식(38) 문경시 학예사는 “토끼벼랑은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옛길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며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과연 잔도 400여m 전 구간은 전율을 느낄 만큼 위험하다. 폭이 1m 내외로 좁고 위쪽은 깎은 듯한 절벽이, 아래쪽은 70도 이상 경사진 낭떠러지이다. 마침 장마철인 관계로 길마저 미끄러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잔도 끝부분은 바윗길로 표면은 금세 길손이 짚고 간 듯 반질거린다. 불현듯 얼마나 많은 길손들이 지나다녔으면 이처럼 반질반질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면 고모산성이 자리하고 있다.1500여년전에 축조된 이 산성은 신라와 고구려의 접전지로, 둘레가 1.6㎞에 이른다. 산성은 막바지 복원공사가 한창이며, 탐방로도 말끔히 정비돼 있다. 산성 초입에서 몇 발짝 옮기면 돌고개가 나온다. 달리 ‘꿀떡고개’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과거객들에게 꿀떡을 팔았던 곳이라 해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인근 마성면 오천리 새터 주민들은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꿀떡을 사 먹으며 과거에 붙게 해 달라고 기원했던 곳”이라고 들려줬다. 돌고개 옆 옛길가의 주막거리가 정겹다. 문경시가 올해 초 복원한 것이다. 주막은 2동의 초가와 헛간, 창고 등 옛 양식대로 지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막에는 주모가 없어 목을 축이거나 요기를 면할 수는 없다. 옛길은 돌고개를 넘어 눈앞에 펼쳐지는 문경새재로 향한다. 글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길손들의 쉼터 ‘주막’ 주막은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옛 풍물 중 하나이다.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체취가 오롯이 묻어 있는 곳이어서 못내 아쉽다. 주막은 17세기를 전후해 국가 관할인 원(院·역의 기능을 보조하여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사상(私商)의 발달과 함께 본격화됐다. 주막집·탄막(炭幕)·주사(酒肆)·주가(酒家)·주포(酒鋪)·봉놋방이라고도 했다. 주막은 개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했던 일반 여관으로 민초들이 단골고객이었다. 관리나 거상(巨商)들이 주로 출입했던 고급여관인 보행객주(步行客主)와는 구분됐다. 주막 또는 주막촌은 주로 시골장터와 삼거리 길목, 나루터 등 길손의 통행이 잦은 곳에 자리잡았다. 옛길에는 평균 4㎞ 간격으로 100여곳의 주막촌이 분포했다. 그러나 팔조령 등 험로지역에는 1∼2㎞ 간격으로 자리했다. 주막은 대개 한두 개의 침실과 술청을 갖춘 작은 건물로 형성됐으며, 식당·주점·여관 기능을 함께 했다. 또 상거래 장소이자 팔도의 소식과 문물을 교류하는 문화적 기능도 겸비했다. 메뉴로는 국밥이나 국수가 전부였고, 술도 탁주가 주종이었다. 방값은 음식 등을 사 먹고 잠을 자는 곳이라 별도로 받지 않았다. 대신 많게는 10여명씩 혼숙을 해야 했다. 잠자리는 선착순으로 아랫목·구석·마루를 차지했지만, 지위와 권세가 낮으면 순서와 상관없이 구석이나 마루로 밀려나야 했다. 주막은 경우에 따라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층민이 주로 이용한 주막은 도박꾼과 강도들로 득실댔다. 때문에 죄인 색출의 요지이기도 했다. 일부 주막의 주모들은 자신이 직접 몸을 팔거나 들병이(술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술을 파는 장수)를 고용한 윤락업도 병행했다. 주막의 바깥 주인인 ‘식주인’은 관아의 끄나풀로 손님들의 동향을 정탐해 밀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막은 보행에 의존하던 길손들의 문화가 70년대 이후 교통수단으로 대체되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고위직들 “휴가를 어쩌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로 접어들었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정상적인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크고 복구도 아직 되지 않은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 북핵문제, 조만간 있을 차관급 인사 등 산적한 현안 때문에 ‘일상을 훌훌 털지 못하고’ 어수선한 휴가철을 보내고 있다. 급기야 장관들이 나서 “일부부서를 제외하고는 휴가를 정상적으로 추진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한다. 장관들이 외형적이나마 휴가를 가면서 직원들의 휴가를 독려하기도 한다. 일부는 강원도로 가는 것이 강원도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강원도를 택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가능한 한 여름 휴가를 강원도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강원도로 방향을 바꾸는 분위기다.●수해복구부서는 복구완료후 한명숙 국무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휴가가 끝나는 다음에 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로 갈지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수해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비서실의 귀띔이다.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떠안고 있어 다음달 3,4일 짧은 휴가를 떠난다. 당초 가지 않는 것도 생각했지만 아랫사람들도 못가게 될까봐 떠나기로 했단다. 구체적인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강원도로 갈 가능성이 크다. 수해 현장 등을 둘러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휴가도 즐기겠다는 생각이다. 미혼인 김선욱 법제처장도 강원도를 택했다. 마침 언니가 횡성에 살고 있어 다음달 2일부터 7일까지 그곳에서 지낼 생각이다. 수해복구 주무장관인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수해복구를 위해 연기해 놓고 있다. 이 장관이 휴가를 미루면서 재난 관련 부서도 모두 정상 근무중이다. 권오룡 1차관과 장인태 2차관도 마찬가지다. 행자부는 현재의 분위기로는 다음 달 11일쯤 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점치고, 그 이후에 장·차관이 휴가를 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일반 직원들은 예정대로 휴가를 가라.”고 지시를 해 일반 직원들은 눈치껏 일정을 잡는 분위기다. 행자부의 한 서기관은 “아이들도 있고 한데 (휴가를) 가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 “업무 여건과 개인 사정 등을 고려해 부서별로 휴가를 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미 FTA협상과 수해복구문제등이 걸려 있는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당초 26∼28일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다가 결국 취소했다. 향후 계획도 잡고 있지 않다. 이명수 차관도 당초 이번주 휴가계획이었는데, 역시 취소했다. 하지만 일반직원들에게는 정상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농림부 관계자는 “당초 수해 때문에 7월말까지 휴가를 못쓰도록 동결했다가, 지난 28일 오전 장관지시에 따라 다음주부터 휴가 가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서 “그러나 8월말까지 3주 남짓 전 직원들이 몰아서 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라, 부서별로 근무인원을 조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의 경우는 권오규 부총리를 비롯해 대부분이 휴가를 계획하고 있지만, 수해를 감안,8월로 시기를 조정했다.9월초 한·미 FTA 3차 협상을 앞둔 통상교섭본부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실무자들로 하여금 여름휴가를 다녀오도록 했다.●통일·안보부서는 휴가중 근무?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휴가기간 중에 휴가를 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분당 자택에서 미사일 사태 등의 상황을 보고받을 예정이다. 도중에 사무실에 들러 업무도 챙겨볼 생각이란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수해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우려 등으로 엄두를 못내고 있다.“국방장관으로서 긴급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장관은 다음달 15일 광복절인 월요일과 주말을 끼고 하루 이틀 정도 보태 편법(?)휴가를 갈까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멀리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관사에 기거하면서 쉬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의 한 간부는 “장관이 휴가를 가기 이전에는 장관의 급한 지시가 떨어질까 휴가를 못가고, 정작 장관이 휴가를 갔을 때는 업무공백이 생길까봐 휴가를 못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부처종합 정리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장맛비 오늘로 끝

    장맛비 오늘로 끝

    28일 경기 남부와 충청 지역에 시간당 30∼50㎜의 집중호우가 내려 비 피해가 잇따랐다. 올해 마지막 장마인 이번 비는 29일 오전까지 계속되다 차차 갤 것으로 보인다. 28일 하루 동안 (오후 10시 현재)경기 포승 325.5㎜, 송탄 288.5㎜(이상 무인관측기록)를 비롯해 수원 168.5㎜, 충북 제천 153.0㎜, 충주 150.5㎜ 등 큰 비가 왔다. 기상청은 오후 10시15분을 기해 충청남도 천안·아산·연기·예산·태안·당진·서산·홍성과 충북 괴산·충주·제천·진천·음성·단양·증평, 경북 문경·영주에 호우주의보가 발효했다. 기타 서울·경기 등에 내려졌던 호우경보와 주위보는 해제됐다. 기상청은 “28일 오후부터 29일 오전까지 호우주의보 지역은 40∼80㎜가 더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로 오후 6시 현재 경기 안성에서 1명이 사망하고 충북 진천에서 2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평택에서는 안성천 홍수경보가 발령돼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충남 794㏊, 경기 291㏊, 충북 60㏊ 등 농경지가 침수됐다. 서울 잠수교와 여의 상·하류IC 등 전국 34곳에서 교통이 통제됐다. 비는 29일 낮을 고비로 그치고 이후에는 전국에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주말탐방] 한옥의 재발견

    [주말탐방] 한옥의 재발견

    최근 한 TV 광고에 흥미로운 문구가 등장했다.‘집이란 무엇일까’. 기실 우리네는 점심 한 끼도 허투로 먹지 않는다. 옷 한 벌 고르는 데 백화점에서 한나절을 허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집에 대한 고민은 인색하다. 우연과 필연의 교집합으로 세상에 나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겪다 저 너머 세상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우리를 둘러싸는 게 바로 집이다. 집은 삶과 죽음의 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네 집에서 ‘5000년 역사’의 흔적을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공간에는 정작 뿌리가 없다. 한옥에 관심을 갖는 요즘 분위기도 너무나 서구풍 일색인 데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민족을 앞세운 얄팍한 상업주의나 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원형(原型)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한옥의 재발견,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숙제이다. “어이 김씨, 좀 더 세게 내리쳐 봐라. 그래가꼬 수백년 동안 지붕 하중을 견디겠나?” 지난 25일 오후 충남 부여군 합정리 백제역사재현단지 건축 현장.10여명의 목공 기능인들이 400여평 넓이의 금당의 기둥에 매달려 있다.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으려 하늘을 가린 함석 지붕 아래로 들어서니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오랜만에 내리쬐는 햇살에 함석이 한껏 달궈진 탓이다. 인부들의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한다. 큰 비로 열흘남짓이나 공을 친 터라 쉴 틈이 없다. 서너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지붕의 하중을 땅으로 분산하는 포부재를 떡매로 연방 내리친다. 공사를 총지휘하는 최기영(63) 대목장(大木匠)의 목소리가 건물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언뜻 내비치는 검게 그을린 어깨 근육. 경복궁 중건 이래 최대 한옥 건축현장이라는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매달리면서 얻은 ‘훈장’이다. 이들의 손길로 한옥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옥의 원형 백제 한옥 재현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1년. 충남도가 3771억원을 들여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100만평 정도.83만평의 백제역사재현촌과 17만평의 연구교육촌으로 나뉜다. 역사재현촌은 ▲백제건국 초기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개국촌 ▲왕궁 ▲전통민속촌 ▲풍속종교촌으로 이뤄진다. 이곳에 들어설 한옥은 모두 166동. 사용되는 나무는 18t 트럭 500대 분량으로 160억원어치다. 강원도 산도 있지만 주로 러시아와 캐나다에서 들여왔다. 기와 82만 2000장, 화강석 8400t, 흙 500t도 들어간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기능촌 5층 목탑’. 바닥면적은 16평에 불과하지만 높이는 38m에 이른다.12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세심하고 빼어난 건축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환중(62·충남 홍성군 형산리)씨는 “5년째 더위와 삭풍과 싸우며 일하고 있지만 후손에게 천년 넘게 남을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것은 목수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밝게 웃었다. 재현단지가 주목을 받는 것은 단지 규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제가 부여를 도읍으로 삼았던 서기 600년대 한옥을 되살렸다는 의의가 더 크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건축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모두 12∼13세기 것. 국내에서는 백제 건축 양식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충남도는 중국 뤄양, 일본 교토 등 백제와 활발하게 교류한 지역을 중심으로 20여차례의 답사를 거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백제 한옥 양식을 복원할 수 있었다. 최 대목장은 “백제 한옥은 처마의 길이가 짧고 집을 한 덩어리로 받쳐주는 들보인 하앙이 강조되면서 조선 한옥보다 좀 더 고급스럽고 근엄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우리 시대의 한옥 양식을 만드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반영구적, 친환경적 한옥 한옥이 단순히 전통시대의 유물만은 아니다.‘전통의 재발견’이라는 최근 추세에 따라 한옥은 새로운 주거의 형태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 얼마 전 임기를 마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서울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도 별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한옥식으로 내부를 개조한 아파트도 적지 않다. 향교나 사찰에 가면 조선 시대 한옥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는 30년만 지나도 곳곳에 금이 가고 물이 새기 일쑤다. 한옥의 내구연한은 150년이다. 제대로 짓고 틈틈이 수리하면 500년 이상 간다. 한옥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주 재료인 소나무와 회벽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고, 축축하면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인다. 외부와의 공기 소통도 원활하다. 요즘 유행하는 아토피성 피부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친환경적’이라는 면에서 지상의 어떤 건축물도 따라갈 수 없다. 전용면적이라는 개념 없이 100평이면 100평 다 건물로 쓸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하지만 한옥이 보편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돈’ 문제다. 한옥의 평당 건축비는 1000만원 이상. 아파트의 서너배나 된다. 서민들로서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땅값이 비싼 도시에서 마당까지 갖춘 한옥을 지으려면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자재의 표준화로 건축비를 상당히 낮출 수 있다. 도시민들도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한옥의 풍취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건축학과 장헌덕 교수는 “기술과 자재를 표준화하고 비교적 저렴한 목재를 사용하면 평당 건축비가 700만원 선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서 “서구식 건축물에 흙벽을 치거나 한지를 바르는 등의 리모델링도 현대 한옥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여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재현공사 규모는 ▲면적 100만평 (개국촌·왕궁·전통민속촌·풍속종교촌) ▲공사비 3771억원 ▲완공시기 2010년 ▲동 166동 ▲나무 18t ▲트럭 500대분160억원 ▲기와 82만 2000여장 ▲화강석 8400t ▲흙 500t ▲기타건축물 (기능촌5층목탑) 바닥면적 16평·높이 38m 12층아파트 규모 ■ 최기영씨가 말하는 대목장이란 대목장은 설계, 치목, 건설, 감리 등 나무로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문짝, 난간 등 작은 목공일을 하는 소목장과 구분된다. 조선시대에 대목장의 지위는 상당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위계 질서 속에서도 세종 때 남대문 재건 사업을 총괄한 대목장은 중인 신분으로 정5품의 벼슬에 올랐을 정도다.1982년부터는 대목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현재 최기영, 신응수, 전흥수씨가 일가를 이룬 대목장으로 꼽힌다. 대목은 철저하게 도제식으로 계승된다. 따라서 나름의 기문(技門)이 형성돼 있다. 신 대목장은 구한말 경복궁 중건 때 활약했던 도편수 최원식을 시조로 1960년대 초 남대문 중수 작업의 도편수인 조원제-이광규로 이어지는 기문을 계승했다. 최 대목장은 일제 말 수덕사 대웅전 해체 복원을 지휘한 도편수 김덕기-김중희의 맥을 이었다. 문화재청은 실력있는 목수를 양성하기 위해 문화재수리기능자를 자격시험으로 관리한다. 석공과 화공, 와공, 미장공 등 18개 직종이 있다.2006년 1월 현재 문화재수리기능자는 모두 3766명으로, 목수는 683명이다. 비슷한 직종은 문화재수리기술자를 꼽을 수 있다. 기능자가 특정 분야의 실무를 맡는다면 기술자는 공사 현장 전반을 관리하고 기능자를 지도·감독한다. 모두 933명이 있다. 기능자와 기술자 자격시험은 매년 한 차례 치러진다. 기능자는 필기와 실기, 기술자는 필기와 면접 등으로 이뤄져 있다. 기능자는 실무 경력 5년 이상이면 응시가 가능하다. 현장에서 뛰는 만큼 실기 평가가 훨씬 중요하다. 문화재 관련 자격증을 따고 싶은데, 옛날 방식대로 현장경력을 쌓는 것이 어렵다면 한국전통문화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기술자는 한국문화재기술자협회가 해마다 강좌를 연다. 부여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21세기 감수성 깃든 한옥 짓고파” 충남 부여 백제역사재현촌 옆에 자리잡은 한국전통문화학교는 전통문화 교육의 산실이다. 지난 2000년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4년제 국립대학으로 문을 열었다. 문화재관리학 등 6개 전공이 개설돼 있다. 서효원, 홍경화씨는 이제 졸업을 앞둔 스물네살 동갑내기로 나란히 전통건축학과 4학년이다. 서씨는 전통건축학과 1회, 홍씨는 2회 입학생이다. 이들이 한옥 건축을 진로로 잡은 것은 ‘고(古)건축이 비전이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3년 넘게 우리 옛집을 만나면서 ‘한옥 다시살리기’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전통건축학과의 교과 과정은 일반 건축과보다 범위가 넓다. 기본적인 서구 건축과 더불어 나무를 다루는 치목과 복원 설계 등 한옥 건축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가르친다. 설계 중심인 서구 건축과는 달리 실제 집을 짓는 기술도 배운다. 홍씨는 “한옥은 안과 밖, 마루와 정원 등을 구분하지 않아 전체가 하나의 생물”이라면서 “차가운 콘크리트가 아닌 따뜻한 나무와 흙의 질감은 어떤 화려한 서구 건축물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늬만 한옥’인 최근의 열풍에는 단호하다. 홍씨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한옥”이라면서 “독립기념관이나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보듯 기와만 올렸다고 한옥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서씨는 “우리 옛 건축이 명맥을 이었다면 서구 건축의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거장을 낳았을 것이고, 우리도 지금보다 훨씬 현대적인 한옥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면서 “한옥이라는 틀 안에 삶의 편리함과 21세기의 감수성이 함께 녹아든 ‘대한민국식 한옥’의 모범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면서 밝게 웃었다. 부여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베트남 반체제인사’ 인도 불허 결정

    “민주주의 국가로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27일 송환불허 결정으로 ‘자유의 몸’이 된 베트남 반체제 인사 응우옌 후 창(56)은 하마터면 베트남에 강제로 송환될 뻔했다는 생각 때문인 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구욱서)는 “피청구인은 범죄인인도조약의 절대적 인도 거절사유인 정치범으로 인정된다.”며 베트남측의 송환 청구를 불허했다. 우리나라는 25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 범죄인의 신병을 처리해왔지만 법원이 정치범임을 인정해 송환을 거절한 것은 처음이다. 형사소송법상 고법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날 석방된 응우옌은 원하는 국가로 출국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정부는 응우옌이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범죄자이자 폭탄테러범이라며 인도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해외 망명정부의 ‘민주투사’로 판단해 국제법의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따라 인도를 거절했다. 이 결정에는 테러와 관련한 국제조약, 유엔 안보리 결의에 관한 국제법적 효력과 관련한 판단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국제 인권국가 대열에 명실상부하게 합류했다는 의미를 띤다. 재판부는 “베트남이 ‘폭탄테러 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안보리의 2001.9.28자 결의’는 구체적인 범죄인 인도의무를 부과하는 국제협정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범죄인인도법에 따르면 다수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위협하면 정치범이라도 강제 송환해야 하지만 테러가 미수에 그친 점, 법보다 앞서는 우리와 베트남 사이의 인도조약에는 관련 조항이 없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응우옌은 “언론과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공산정권에 반대한다.”면서 “한국에 좀 더 머문 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을 다니며 자신에게 보내준 지지와 성원에 감사 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응우옌은 누구 1981년 미국에 망명, 영주권을 얻고 1995년 미국에서 ‘자유베트남 정부’를 만들어 망명정부를 자칭하며 베트남 정부에 대한 저항활동을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는 그를 2001년 6월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 폭탄테러 미수 사건 등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하고 수배했다. 응우옌은 지난 4월 사업차 우리나라에 입국했다가 체포됐다.
  • [로칼뉴스]경찰을 과부인줄 알고

    형제가 한밤중에 더듬다가 덜컥 과부방에 뛰어들어 엉뚱한 짓을 하려던 K(23)씨 형제가 경찰에 붙들렸다. 이들은 어느 날 밤 술에 곤드레가 되어 홀로 잠자는 J여인 방에 숨어들어 욕을 뵈려던 것이 엉뚱하게도 도경 경무과 근무 J경장 방에 잘못 침입, 다리를 만지며 수작을 걸다 잠에서 깨어난 유도 3단의 J경장에게 보기좋게 KO 됐던 것. 억세게 재수없는 이들 형제는 경찰에서 한결 뉘우치는 빛없이 『그 놈의 과부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투덜투덜-. <안산(案山)> 진정인은 정신분열증 대지 1만평을 사기 당했다는 진정인이 정신 분열증 환자로 밝혀져 허위 사실로 드러나자 열심히 수사하던 D서는 맥 빠진 표정-. 대구(大邱) 태평로 李모(62) 노인은 같은 동 자기소유 대지 1만평의 등기 이전을 시내 달성동 張모 행정대서사에게 맡겼다가 사기당했다고 청와대에 진정까지 했는데 이 노인의 장남이 수사하던 D서에 나타나 아버지의 정신 분열증 진단서를 보이고 이해를 구하자 담당 형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 <대구(大邱)> 감방서 설탕물만 며칠전 부산 D서에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C(28)씨는 유치장속에서 결백을 주장, 계속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경찰은 달걀, 소시지등 유치장에선 구경할 수 없는 온갖 진수성찬을 진상하고 있으나 모두 사절, 오직 설탕물만 요구하고 있다고. 설탕물만 마시는 C씨의 설명인즉 『설탕은 죄 없는 어린애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억울한(?) 누명엔 설탕물이 특효약? <안산(案山)> 수라장 이룬 2중 결혼식의 현장 내연의 처가 있는 청년이 묘령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정체가 발각, 식장이 수라장이 되었다. 부산 T회사 경리과장인 金모(29)씨는 동거중인 홍(洪)모(26) 여인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속이고 집을 나와 엉뚱하게 예식장으로 출근(?), 결혼식을 올리려다 이같은 사고를 빚은 것. 자기 남편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별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임신 9개월의 홍(洪)여인은 「웨딩·마치」를 듣자 그만 넋을 잃었고 새신부 아버지 송(宋)모씨는 3층 계단에서 2층 계단으로 떨어져 실신. 가끔 일어나는 중혼극(重婚劇)이긴 하지만 정말 왜들 이러실까? <안산(案山)> 유방 만졌다, 아니다에 증인은 두 살짜리 전남 광주 지검 황상구(黃相九) 검사는 K서에서 송치되어온 강제 추행 피의자 정(鄭)모 (51) 씨를 조사중에 있는데-. 혐의 내용인즉 젖먹이고 있는 유부녀의 젖꼭지를 鄭씨가 만졌다는 것인데 鄭씨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반면 같은 마을 朴모 여인은 분명히 자기의 유방을 만졌다고. 양쪽의 주장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는 반면에 증인이라는 것은 겨우 두 살짜리 젖먹던 어린애뿐이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한다? <광주(光州)> 3년만에 차삯을 낸 청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를 했던 청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철도국장 앞으로 차비를 가져왔다. 경북(慶北) 영주(榮州)군 장수(長壽)면 유(劉)모(27)씨는 3년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했던 서울-주안(朱安), 서울-수색(水色), 영주(榮州)-충기(豊基)간의 차비 6백30원을 영주 철도국장 앞으로 보내온 것.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劉씨의 차비계산이 틀려 40원을 되돌려 준 철도당무자들은 이와같은 처음 있는 일에 감사하다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 <영주(榮州)> 절에 살며 도둑질 경기(京畿)도 양평(楊平)경찰서는「아베크」절도단 최(崔)모(25)와 김(金)모(17 女)를 상습 절도혐의로 구속. 이들은 4개월 전부터 여주군 금사면 묘현사(寺)에서 동거생활을 시작, 여주군을 무대로 경찰 경비 전화선만을 8회에 걸쳐 끊어 팔아왔다고. 절에 살면서 부처님 힘만 믿고 한 짓 같은데 하필이면 도물(盜物)이 경찰 전화선이냐고 수사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양평(楊平)> [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 총리비서실 - 국무조정실 ‘미묘한 기류’

    28일 한명숙 국무총리 취임 100일을 앞두고 비서실과 국무조정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총리를 보좌하는 공동운명체이지만, 일각에서 ‘국정 수행 능력’이 거론되면서 서로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비서실은 “한 총리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미흡하다.”고 볼멘소리다. 반면 국무조정실은 “비서실이 정책 입안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무적 판단’을 강조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총리를 정점으로 경쟁하면서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두 조직은 과거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의 골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처럼 갈등이 자주 표출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한 총리가 최근 회의 석상에서 “국무조정실의 보고서나 회의자료가 다소 부실하다.”고 지적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비서실은 더욱 국무조정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총리가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국무조정실이 보다 긴장의 고삐를 다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국무조정실 내에서는 “정책은 이상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비서실이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오해”라는 항변의 목소리가 높다.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총리의 대통령 주례보고 등을 준비하기 위해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등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특히 부처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정책 조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국무조정실이 그 어느 때보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총리실은 ‘일 잘하는 총리실’을 위한 워크숍을 28∼29일 용인 법무연수원에서 갖는다. 비서실, 국무조정실 과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이 워크숍이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가 될지, 시각차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지 주목된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 “진짜 승부 이제부터”

    인성여고 출신의 8년차 가드 김나연(27·177㎝)은 지난 겨울 친정팀 국민은행으로 돌아왔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99년 국민은행을 통해 프로에 뛰어든 김나연은 이듬해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에 1대1 트레이드된 뒤 2004년에는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신한은행으로 또 한번 둥지를 옮겼다. 우리은행에서 김나연 강영숙 이연화를 내주고 김영옥을 받은 것. 하지만 슈팅가드 포지션에 유망주들이 득실거리는 신한은행에서도 김나연의 자리는 마땅찮았다. 어느덧 중고참 대열에 들어섰지만 좀처럼 기회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김나연은 올초 신한은행 이영주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국민은행으로 보내주시지 않으면 은퇴를 하겠습니다.”라며 간곡하게 요청했다. 농구판의 관행(?)대로라면 당장 자기 팀에서 중용하지 않더라도 상대에게 득이 될 선수를 풀어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신한은행에선 김나연을 친정팀으로 보냈다. 친정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은 김나연은 한결 성숙해진 플레이를 펼쳤다. 올 여름리그 정규리그에서 3점슛 40개를 던져 18개를 성공,45%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국민은행의 아킬레스건인 외곽슈터 부재를 해결했다. 26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4차전. 김나연은 초반부터 날카로운 손맛을 뽐냈다.3쿼터까지 3점슛 7개를 던져 3개를 꽂아넣는 등 13점 3리바운드 2스틸로 맹활약했다. 김나연의 투혼은 수비에서도 빛났다.3차전에서 37점을 몰아쳤던 삼성생명의 에이스 변연하(20점)를 3쿼터까지 12점으로 묶은 것. ‘원투펀치’ 정선민(19점 7리바운드 8어시스트)-마리아 스테파노바(17점 14리바운드)에 김나연의 깜짝 플레이로 국민은행이 삼성생명에 61-58로 이겼다. 국민은행은 1·2차전을 내준 뒤 3·4차전을 모두 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3쿼터까지는 국민은행의 일방적인 페이스. 쿼터 종료 2분48초를 남기고 52-32, 무려 20점차로 승부를 벌린 것. 모두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명가 삼성생명의 저력은 그때부터 발휘됐다. 센터 안 바우터스(18점 16리바운드)가 낚아낸 리바운드를 변연하가 쏙쏙 집어넣어 경기종료 33초를 남기고 58-59까지 추격한 것. 하지만 삼성생명은 믿었던 박정은이 마지막 공격찬스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고, 종료 3.8초 전 스테파노바에게 가로채기를 허용한 것이 뼈아팠다.5차전은 2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천안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사]

    ■ 삼신상호저축은행 △인천지점장 김중국△여신1팀장 안상민△여신3〃 한명석■ 근로복지공단 ◇승진 (본부장)△보험관리본부 백만종(지사장)△전주 이상원△포항 한영식△창원 하태수△제주 이철환△의정부 이동형(부장)△본부 송석만△양산 김진태△춘천 이병용△성남 임화영△창원 김대철△대구 이형달△부산 강성식△군산 정형곤◇전보 (본부 국장)△혁신홍보 강형구△복지사업 고근호(지사장)△서울강남 이윤택△서울서부 이은애△서울남부 류용하△서울북부 홍형기△영주 김용주△안동 변병창△안산 신태식△고양 이찬희△성남 이병관△충주 오세위△안산재활훈련원 송기남(센터장)△서초 윤태식(본부 팀장)△경영혁신 양승현△조직예산 박현식△고객서비스혁신 신종인△정보개발 한상홍△정보운영 김영성△진료비심사 변행섭△산재심사 신태곤△임금고용 김영준(지사 부장)△서울본부 고종석 장석주 서윤조 김영숙△서울동부 서백석△서울서부 김영손△서울관악 김종국△의정부 임용빈△원주 문충식△부산본부 최종걸△대구본부 김용도 신상태△대구북부 이창호△구미 김장홍△경인본부 김원혁 우기영 전용배△인천북부 김영권 강윤호△수원 이성묵 김재봉△안산재활훈련원 김봉태△광주 윤연호△대전본부 주영수△천안 박상윤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9) ‘화엄의 세계 압축판’ 영주 부석사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9) ‘화엄의 세계 압축판’ 영주 부석사

    백두대간이 내달리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태백산에서 꺾어내린 봉황산 중턱에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앉은 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중국에서 유학한 의상 대사가 신라통일기인 676년 화엄종을 들여와 ‘해동 화엄종 수사찰(海東 華嚴宗 首寺刹)’로 세운 한국의 화엄종찰이다.‘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이자 ‘나라에서 가장 예쁘며 웅장한 절집’으로 통하는 1300년 고찰.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사격이 떨어졌지만 한국불교의 ‘처음’으로 평가받는 화엄과 한국불교의 요체인 선(禪)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화엄세계의 결정판이다. 중국에서 지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화엄(華嚴)을 깨친 뒤 돌아온 의상 대사가 화엄종지를 펼 곳을 찾아다니다가 낙점한 곳이 바로 부석사.“신라 문무왕 16년(676) 왕명에 의해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들어있어 창건주와 창건연대가 명확한, 몇 안되는 고찰중 하나다.9세기 이후부터 크고 작은 가람들이 들어섰고 고승대덕들을 숱하게 배출했지만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해 소실된 것을 1376년 원응 스님이 중창에 나서 많은 건물을 다시 세웠다.“이름 없는 꽃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법계(法界)를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화엄. 부석사는 이 화엄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유일무이의 걸작인 것이다. ‘태백산 부석사’현판이 걸린 절의 첫 문, 일주문을 들어선 뒤 천왕문∼범종루∼안양루∼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극락정토로 이르는 찰나의 점철이다. 천왕문 바로 앞 왼편엔 절에서 불사며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세우던 당간 지주가 보란 듯이 버티고 섰다.“한국 사찰의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세련된 명작”으로 평가받는 그 유산이다. 여기서부터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으로 구성된 아홉 개의 석축은 극락에 이르는 화엄의 구품정토(九品淨土),‘구품 만다라’를 상징한다. 하·중·상품은 각각 3개의 또 다른 품계로 구성되어 있어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고통의 사바 세계를 하나씩 떨쳐내고 마침내 최상품인 극락,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의 무량수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가파른 산기슭, 자로 잰 듯한 구품층계로 나뉘어진 석단 위에서 차례로 자태를 뽐낸다. 범종루와 안양루는 각각 별개의 건물이면서, 무량수전으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서 몸은 숙이되 얼굴은 치켜들어야만 지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돌계단을 딛고 누각의 바닥을 쳐다보며 걷다 보면 구품의 정점인 무량수전이 마침내 저 높이서 모습을 드러내보인다. 무량수전에 이르기 전 바로 전 품인 안양루. 난간 아래쪽의 편액은 ‘안양문’, 위층의 것엔 ‘안양루’라고 쓰여 있듯 누각과 문의 이중역할을 하는 독특한 건축이다. 극락의 다른 이름인 안양(安養). 여기서 내려보면 소백산맥의 봉우리와 줄기가 파도치듯 꿈틀거리며 첩첩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풍경이 일품이다. 여기에 서서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친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까나.”라는 시를 남긴 김삿갓의 심경이 절실히 읽힌다. ‘화엄 구품정토’ 부석사의 절정은 아무래도 고려 말 세워진 무량수전이다. 안양루의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사뿐히 고개를 내쳐든 추녀와 아래 중간 부분이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눈에 쏙 들어온다. 배흘림이란 멀리서 볼 때 착시현상을 고쳐잡기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일부러 굵게 만든 수법. 여기에 중앙을 향해 다소 기울도록 기둥을 만들어 가람이 뉘어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한 ‘안쏠림’과 ‘귀올림’같은 목조 건축방식은 후대에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건축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미명을 남겼다.“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최순우 선생이 기록한 무량수전 평이다. 바로 화엄인 것이다. 그런데 무량수전 안에는 석가여래가 없다. 대신 고려시대에 봉안된 소조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법당 서편을 지키고 있다. 흙을 빚어 만든 불상치곤 균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 서방극락을 주재한다는 아미타불. 그래서 앉은 방향도 남향이 아닌, 동쪽의 사바세계 쪽이다. 화엄사찰이라면 당연히 화엄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셨어야 할 텐데 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이유는 무엇일까? “화엄과 정토의 융합을 통해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삶 속에서 하나로 정착시켜 진리를 인식 밖에서 보게 한 의상 스님의 요체”라는 게 학계와 불교계의 일치된 생각이다. 그 대신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3층석탑이 무량수전 동쪽에, 석등이 앞 마당에 각각 놓여있다. 불상이 안치된 조선시대의 수미단 안쪽에는 신라 형식의 사각형 불대좌가 있다. 불상의 앞쪽에는 전통적으로 불단과 법당 바닥을 장식했던 녹유전(綠釉塼)이 깔려 있었지만 후대에 전부 마룻바닥으로 교체되었다. 이 녹유전은 일제가 모두 가져갔고 지금 부석사 유물전시관에 석 점,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점이 남아있을 뿐이다. 의상 대사가 화엄의 정신과 세계를 조형으로 압축해 놓은 부석사. 이 부석사의 가람과 공간 하나하나에는 모두 철학과 원칙이 배어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 가람을 놓고 끊임없이 연구를 지속해 왔는데 그중 하나가 안양루∼무량수전을 이루는 맥과 그것에서 30도 비켜서 한 축을 이루는 천왕문∼범종각의 이중적 가람배치다. 천왕문∼범종각 축의 끝에는 무량수전과는 별개의 대웅전이 있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그곳에는 주초의 흔적뿐만 아니라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결국 의상 대사는 한 사찰 안에 두 절을 세우고 화합과 융화를 일굼으로써 화엄의 큰 뜻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kimus@seoul.co.kr ■ 의상대사와 선묘 부석사에는 창건주 의상 대사와 중국 여인 선묘 낭자에 얽힌 유명한 설화가 전해진다. 선묘는 국비 유학생으로 당나라에 머물던 의상 대사를 흠모해 의상 대사가 공부를 마치고 배편으로 신라에 돌아올 때 용으로 변해 무사히 험한 풍랑을 헤쳐 나오도록 도왔고,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는 인물. 용으로 변해 의상을 보호하며 신라까지 날아온 선묘는 의상 대사가 절을 지을 때 이 지역에 있던 500명의 도적 무리가 절 창건을 방해하자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려 물리쳤다고 한다. 무량수전 왼편 뒤쪽에는 당시 선묘가 들어올려 도적 무리를 제어했다는,‘浮石(부석)’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절의 이름을 부석사로 정한 것도 이같은 사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부석사와 관련된 의상대사와 선묘의 이야기는 설화로 회자되지만 삼국사기 등 사료에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무량수전 뒤편, 의상대사의 상과 일대기를 담은 벽화를 봉안한 조사당 오른쪽 벽면에 선묘 상이 걸려 있다. 1916년 일제가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할 때 무량수전 기단부 아래에서 기다랗고 꾸불꾸불하게 이어진 용 모양의 돌덩이가 발견되어 이 설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음이 입증되기도 했다. 당시 무량수전에 봉안된 소조 아미타여래좌상 바로 아래에 용의 머리 부분이 있었고 꼬리 부분은 무량수전 앞의 석등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후 이 돌덩이가 바로 설화와 사료의 내용을 따라 의도적으로 만든 석룡(石龍)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용의 허리 부분이 이어지지 않고 중간이 끊겨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저질렀거나, 혹은 일제강점기에 잘라내어 가운데 부분을 가져갔다는 등의 추측이 무성하다. 아무튼 선묘 용의 꼬리 부분이 묻혔다는 석등을 100번 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 석등 둘레를 도는 신도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공직 초대석] 국무조정실 김영주 실장

    [공직 초대석] 국무조정실 김영주 실장

    정부 부처 사이에 얽히고설킨 현안을 풀어가는 데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가 있다. 하지만 업무 성격 탓에 “내가 했노라.”고 대놓고 ‘들이대기’는 또 어려운 자리다. 바로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한다.’는 국무조정실장이다. 김영주(56·행시 17회) 국무조정실장은 2년6개월 동안의 청와대 생활을 정리한 뒤 지난 3월 지금의 자리에 앉았다.‘대통령의 남자’에서 ‘총리의 그림자’로 변신한 김 실장을 만나봤다. ●노 대통령과 한 총리는 보완 관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에서 재정·금융·예산·기획 분야를 두루 거친 김 실장은 2003년 9월 정책기획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뒤 정책기획수석, 경제정책수석을 지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용량이 큰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김 실장을 내보낸 뒤 국무회의 석상에서 “각료들이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할 만큼 신뢰가 높았던 참모였다. 김 실장은 “특정 현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청와대는 그만큼 정책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면서 “총리실은 다뤄야 할 과제가 워낙 많아 청와대에 비해 깊이는 덜 하지만, 스팩트럼이 넓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총리실은 정책을 조정·결정하는 업무 말고도 단순히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업무도 많다.”면서 “총리실이 청와대보다 중압감은 덜한 것 같지만, 업무의 깊이가 아닌 폭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고 일의 성격을 구분했다. 김 실장은 노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의 다른 점도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그는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로 선이 굵다.”면서 “특정 현안을 처리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또 “총리는 업무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편”이라면서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보완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한 총리를 가리켜 ‘영(令)이 안 선다.’는 등 이해찬 전 총리와 비교하는 언론 보도에도 불만을 나타냈다. 김 실장은 “총리 지시사항은 별도로 관리할 정도로 내각을 이끄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총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다분히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난제는 이념적 갈등 총리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주한미군기지 평택이전 등 굵직굵직한 국정 현안을 끌어안고 있다. 때문에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다양한 ‘눈’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했다. 김 실장은 “한·미 FTA나 주한미군 이전 문제처럼 무엇이 실질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이념적으로 부딪쳐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 많다.”면서 “법과 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사회적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실장은 특히 한·미 FTA에는 “각 부처는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 대내조정을 어떻게 하느냐 등 세 가지만 분담한다.”면서 “갈등관리가 빠져 있는데, 이는 총리실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총리실에 한·미 FTA 전담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그는 또 국가 정책은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컨대 대형 유통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영세자영업자나 도·소매업자가 타격을 받아 사회적 갈등이 파생될 수 있다. 김 실장은 “조화를 이루고 균형점에 도달하려면 활발한 토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모든 정책은 국민적 이해와 수긍이 밑바탕돼야 하기 때문에 갈등을 조정하다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장은 ‘참모급’ 장관 국무조정실장은 각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는 장관급 요직이다. 그러나 총리를 보좌해야 하고,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늘 ‘뒷자리’다. 김 실장은 “실제 업무를 맡는 부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을 해도 보도자료 하나 제대로 못낸다.”면서 “섭섭할 때도 있지만 결과를 해당 부처에 맡겨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만큼 조정하는 사람이 나서면 부처의 힘이 약화될 수 있다.”고 못박았다. 총리를 보좌해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다 보면 ‘회의 장관’이라는 별명도 따라붙을 만큼 참석해야 할 회의가 많다. 김 실장은 “단순히 참석만 하는 회의보다 주재하는 회의가 부담이 된다.”면서 “회의를 주재하는 과정에서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지 못해 얼버무린 적도 있다.”며 웃음지었다. 김 실장은 후배 공직자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맡은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조직에 얼마나 공헌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직책의 높고 낮음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공직자는 네트워크도 중요하며, 평소에 신뢰를 쌓아야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자산이 된다.”면서 “자기 이익만 고집한다는 소릴 들으면 일하기가 어렵다.”고 충고했다. 글 장세훈기자 사진 김명국기자 shjang@seoul.co.kr ■ 김 조정실장 어떤 일하나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은 주재하는 회의만 차관회의 등 40개에 이른다. 또 대통령이나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 등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60개에 이른다. 때문에 김 실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한달 평균 50건, 하루 평균 2.5건의 회의를 소화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기획단 단장과 정부출연연구회 이사 등 겸직하고 있는 직위도 80개가 넘는다. 국무조정실장의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 3월 국무조정실에 ‘복수 차장(차관급)제’가 도입됐으나,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이달부터는 모두 81가지의 ‘일하는 방식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개선방안은 김 실장이 진두지휘한다. 보고나 결재에 낭비되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등을 활용하도록 했다. 또 모든 회의는 한 시간 안에 끝내도록 하고, 보고서는 2쪽을 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직원들이 정보를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정부통합지식관리시스템(KMS)에 개인의 미니홈페이지를 연계해서 구축한 직원들에게는 ‘사이버 머니’를 나눠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제도도 도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열린세상] 법률인력자원 활용과 기업경쟁력/전원 변호사

    얼마 전, 변호사 1만명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가 났다. 혹자는 국제비교를 통한 변호사 1인당 국민 수를 거론하며 변호사 수가 여전히 절대적으로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수가 아니라 변호사를 얼마나 많이 이용하느냐는 점이라고 본다. 변호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중 많은 수가 준실업 상태라면, 지금 대학가의 고시열풍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망국병이 될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변호사 1인당 평균 수임건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변호사 수의 증가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1인당 평균 수임건수가 낮은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신뢰가 부족한 법 감정, 분쟁해결 방법에 대한 문화차이, 법률조력을 방해·제약하는 잘못된 시스템 등이 주원인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은 방문받는 자의 입장에서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을 낮추는 일에 주력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집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제공한 소극적 의미의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젠 찾아오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이다.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기업을 찾고, 또 그들의 법무 수요에 맞추어 준비해야 한다. 그 시작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기업을 향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에 나서는 일이다. 이러한 노력은 일부이긴 하나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정부유관기관을 통한 노력이 이미 있었다. 이젠 이러한 노력을 좀더 세분화·체계화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지원대상기업을 산업별·업종별로 세분화하고, 지원대상을 확대하는 일이다. 또한 기업군별 협회를 통한 간접지원을 실시함으로써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컨설팅받고, 이를 통해 기업리스크를 줄여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소요비용은 수익자에게 일부를 부담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돈 많은 대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법무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시급히 서둘러야 할 사안이다.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또 다른 정책대안으로 기업의 신용평가에 법무시스템 평가항목을 도입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환자가 건강진단을 받듯이, 법무진단을 통해 기업의 잠복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내 소수의 전횡이나 부정을 예방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표·특허권 침해로 인해 기업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최근 세계적인 국내 IT기업들이 해외에서 특허권 침해로 피소되어 홍역을 치른 일도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기업지원을 위해 변호사들을 희망 컨설팅분야에 따라 군(群)으로 나눠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금융전문·IT전문·특허전문 등 전문변호사 양성을 자연스럽게 유도해서 법률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준법관리인에 초점이 맞춰진 ‘기업내 법률가 제도’도 ‘감시인 역할’보다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협력자 역할’로 제도의 본질을 삼으면 어떨까 한다. 최근 한 중소기업의 법무진단 컨설팅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그 기업의 경영주를 만났더니 “더 많은 중소기업이 이런 컨설팅을 자주 받을 수 있다면 문닫는 기업도 줄어들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우리 기업 중 상시 법률조력을 통해 기업을 경영하는 곳은 대기업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젠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노력은 법률시장뿐만 아니라 노무·세무 등 기업경쟁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야로 점차 확대함으로써 기업의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기업의 미래는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전원 변호사
  • 대기업 문화예술지원 불균형

    대기업 문화예술지원 불균형

    기업들의 문화예술지원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장르별 편중 현상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가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지원 현황을 조사해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298개 기업이 1800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전년보다 5.3% 늘어난 수치로 2003년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문화예술지원금의 대부분을 출연재단을 통해 집행했다. 전체 지원액 중 문화재단 출연금은 922억원이었고, 개별 기업의 지원액은 878억원이었다. 문화재단으로는 삼성문화재단이, 개별기업으로는 현대중공업이 1위를 차지했다. 협의회는 순위만 공개하고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장르별 지원액은 극심한 쏠림 현상을 보였다. 미술관 건립 및 운영, 소장품 매입 등 미술 분야에만 802억원이 몰렸다. 이어 문화시설 등 인프라에 368억원, 서양음악에 301억원이 지원됐다. 반면 연극(50억원), 무용(49억원), 국악(24억원) 등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기업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보다는 미술품 투자 등에 더 관심이 많은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영주 회장은 “장르 불균형 현상을 줄이기 위해 중소 기업과 소규모 예술단체의 짝짓기(매칭)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면서 “문화예술 지원금에 대한 세액 감면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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