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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양부모 무관심으로..” 37년간 시민권 취득 못한 한인 또 수감

    3살 때 미국에 입양됐지만 양부모들의 무관심으로 마흔에도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못한 한인 영주권자가 또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수감됐다.  양부모의 학대와 두 차례의 파양으로 방황 끝에 추방위기에 놓인 애덤 크랩서(한국명 신송혁·40) 씨다.  그는 지난 1월 5일 ‘가족 문제’로 체포된 후 유죄 평결을 받아 1개월간 실형을 살고 지난 8일 석방됐지만 ICE는 그를 ‘가족 위협’ 혐의로 또다시 체포했다.  크랩서의 추방 반대 운동을 펼쳐온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등은 이번 수감 조치에 대해 “결혼해 자녀들을 둔 그를 추방해서는 안 된다”며 “추방 반대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1979년 한국의 보육원에서 누나와 함께 미국 미시간주에 입양된 크랩서 씨는 9살 때 양부모에 의해 버려졌다. 다시 새 양부모에 입양된 그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다 16살 때 다시 쫓겨났다.이후 정처 없이 떠돌았고,경범죄를 저지르는 등 방황했다.  그사이 결혼하고 자녀까지 낳아 기르는 등 자립과 재기를 다졌지만 방황하던 시절 경범죄 전과가 드러나며 추방 위기에 몰렸다. 그의 사연은 지난해 뉴욕타임스,CBS,AP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25) 로봇 ④ 드론 열전(列傳)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25) 로봇 ④ 드론 열전(列傳)

     백수에서 백만장자로, 3DR의 호르디 무뇨스 “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라 서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저는 닌텐도 게임기의 부품으로 무선 헬리콥터 자동 조정기를 만들었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멕시코 출신의 20살 청년이 창고에서 만든 장난감 같은 물건을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한 글이다. 항공 엔지니어가 꿈이었던 청년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 폴리테크닉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두 번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부모님도 더는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자 티후아나로 돌아와 생선 타코 가게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만류로 타코 가게를 정리하고 엔세나다에 있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였다. 한 학기를 다니던 중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임신하였다. 둘은 아이를 미국에서 키우고 싶었다. 다행히 여자친구가 미국 국적이 있어 함께 미국행을 결심한다. 두 학기를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로 이주해 영주권을 신청하였다. 영주권이 나오기까지는 취직을 할 수도 없었고 학교에 다닐 수도 없어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창고에서 인터넷을 뒤지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게임기 컨트롤러를 분해해 무선 조정 헬리콥터와 연결해보았다. 문득 이렇게 하면 누구나 쉽게 모형 헬리콥터를 조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던 그는 자동 헬기 조정 시스템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와 40대를 만들었는데 1시간도 되지 않아 모두 팔렸다. 그는 이 물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로봇 헬리콥터’라고 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상업용 ‘드론’(Drone)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그는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과 함께 ‘3D 로보틱스’를 설립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멕시코 이민자에서 세계 3대 상업용 드론 회사 CEO로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을 한 ‘호르디 무뇨스’(Jordi Munoz)의 이야기다. 이어 2015년에는 멕시코 대통령이 수여하는 ‘젊은 기업가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인생에서 크리스 앤더슨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상위 20%보다 하위 80%의 긴 꼬리가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롱테일(Long Tail) 경제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크리스 앤더슨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앤더슨은 와이어드지 편집장 시절에 드론의 시대를 예감하고 드론 커뮤니티인 ‘DIY드론스’를 만들어 공유의 장을 열었다. 어느 날 이 사이트에 어눌한 영어로 한 멕시코 청년이 글을 올렸고 회원들은 그가 만든 자동 조정 헬리콥터에 찬사를 보냈다. 앤더슨 자신도 그때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그 뒤 무뇨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최초의 상업용 드론이 탄생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메이커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재능의 롱테일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졸업장이나 자격증과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 2012년 앤더슨은 12년간 몸담았던 와이어드를 떠나 3D 로봇틱스에서 무뇨스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 DJI의 왕타오 미국의 경제지 포천은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40세 이하의 비즈니스계 톱스타 40인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 2015년에는 할리우드 스타이자 친환경 육아용품 업체 ‘어니스트 컴퍼니’ 설립자인 ‘제시카 알바’, 스마트밴드로 억만장자가 된 ‘핏빗’의 CEO ‘제임스 박’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중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DJI의 CEO 프랭크 왕(왕타오)의 얼굴도 보였다. DJI는 창업 10년 만에 전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10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가 상장을 하게 되면 지분의 45%를 보유하고 있는 프랭크 왕의 재산은 45억 달러로 한국의 부자 톱 5에 들 정도가 된다. DJI가 내놓은 드론 ‘팬텀’은 미국 타임지의 ‘2014년 10대 과학기술 제품’,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가장 대표적인 글로벌 로봇’, 뉴욕타임스의 ‘2014 우수 첨단기술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35살의 나이에 프랭크 왕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   왕타오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동향인 저장성 항저우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유별나게 모형 헬리콥터와 로봇을 좋아했던 그는 다른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상하이에 있는 화동사범대학의 심리학과에 진학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3학년을 다니다 자퇴를 하였다. 미국 유학을 꿈꾸며 스탠퍼드와 MIT에 원서를 내보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홍콩과기대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 졸업 과제로 자동 헬리콥터 조정기를 만들면서 왕타오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는다. 매일 밤을 새우며 오직 무인 헬리콥터에만 매달리던 그는 2006년에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제조업의 메카인 선전에서 창업하였다. 이런 왕타오의 열정과 노력을 지켜보던 지도교수 리져샹 교수는 기꺼이 그의 멘토로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리 교수는 당시 적지 않은 액수인 200만 위안을 지원해 DJI의 첫 번째 투자자가 되었다. 현재 리 교수는 DJI의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어 10억 달러의 부호가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창업 후에도 그는 일주일에 80시간을 일에 빠져 살았다. “남들은 새 모델을 출시하는 데 몇 년이 걸리지만 우리는 몇 개월이면 충분하다”라며 앞만 보고 달렸다. DJI는 지난 9년간 11개의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2013년 누구나 쉽게 조정할 수 있는 드론 ‘팬텀1’을 출시하면서 드론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이어서 1400만 화소의 독자 카메라를 장착한 ‘팬텀2’, 2km까지 비행할 수 있는 ‘팬텀3’로 라인업을 갖추면서 드론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2010년 1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4년에는 5억 달러에 육박했고, 2015년에는 10억 달러가 예상되어 5년 만에 무려 1000배가 늘어난 셈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일까. 회사는 성장하는데 창업 멤버는 모두 회사를 떠났다. 북미 시장을 개척하고 지금의 팬텀이 있기까지 많은 기여를 했던 콜린 귄은 소송까지 벌이면서 DJI를 떠나 3D 로보틱스로 가버렸다. 왕타오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라며 자신을 ‘까칠한 완벽주위자’(abrasive perfectionist)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 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머리만 가지고 올 것, 감정은 두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왕타오도 힘들었겠지만 이런 보스와 함께한 직원들도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몇 년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소개된 ‘불완전한 리더를 찬양하라’라는 보고서는 독선적 리더십을 경고하며 완벽한 리더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잡스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린다면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도전하는 다이아몬드 수저, Parrot의 앙리 세이두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수저 계급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자녀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계급’의 종류도 흙수저부터 금, 은, 동,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다양하다. 이 분류에 따르면 앞에 소개한 호르디 뮤노스나 왕타오는 흙수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주인공은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을까? 프랑스의 떠오르는 IT기업 패롯(Parrot)의 CEO인 앙리 세이두는 도무지 전쟁터와 같은 IT 업계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인물이다. 우선 집안의 배경이 일반 수저들과 다르다. 할아버지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서비스 그룹 슐룸버거의 창업주인 마르셀 슐룸버거다. 아버지는 프랑스 최고 미디어 기업인 파테의 제롬 세이두 회장이고 삼촌들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사 고몽의 회장 니콜라 세이두, 프로축구 클럽 릴 OSC의 소유주 미셀 세이두이다. 본인은 패롯의 CEO이자 프랑스 명품 수제화 크리스티앙 루브탱의 공동 창업자로 개인 재산만 1억 달러가 넘는 자산가이기도 하다. 최근 루이뷔통의 새로운 모델로 발탁된 그의 딸은 ‘미션임파서블’과 ‘007 스펙터’에서 시크한 연기로 인기를 끈 배우 레아 세이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앙리 세이두는 1994년 패롯을 설립하면서 IT와 인연을 맺게 된다. 초기에는 음성인식 기기와 차량용 무선 핸즈프리 제품을 생산하였는데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이후 2012년 스위스의 드론 회사 센스플라이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드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감각으로 3년 만에 패롯을 세계 3대 드론 기업으로 키웠다. 지면 관계상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살펴보도록 하자.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요즘 연예인들, 군대 덕 제대로 본다는데…

    요즘 연예인들, 군대 덕 제대로 본다는데…

    착한 남자 - 윤시윤·현빈·오종혁 등 해병대서 ‘성실 군복무’로 대중 환호 나쁜 남자 - ‘꼼수기피’ 유승준 14년간 입국 금지… 송승헌·장혁 병역비리로 곤혹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걱정했지만 전우들의 도움으로 군 생활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팬들 덕분에 2년이란 시간을 견뎠고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지난 27일 21개월의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전역한 탤런트 윤시윤(30)은 인천 서구 금곡동 해병대 2사단 정문에 모인 500여명의 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윤시윤은 “전우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국방의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20대 남성 연예인들에게 군 입대는 큰 고민거리다. 인기가 절정일 때 입대 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 7월 국방부 홍보지원대(일명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는 연예인에게 군 입대는 경력 단절을 의미한다. ‘사랑일 뿐이야’로 유명했던 발라드 가수 김민우(46)의 경우 1991년 입대해 1993년 제대했으나 결국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조용히 은퇴했다. ●사회 물의 일으킨 ‘병역기피’ 오빠들 하지만 최근 군대를 바라보는 연예계의 시각도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전과 같은 병역비리는 물론이고 현역병 입대를 회피하다 추후 적발되면 연예계 활동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가수 유승준(40·미국명 스티브 유)과 배우 송승헌(40)의 사례는 반면교사가 됐다. 병무청 관계자는 29일 “이 두 명의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들도 병역을 회피하고자 하는 풍조가 확연히 줄었고 소위 스타급 연예인들의 경우 군 복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추세”라고 했다. 1990년대 말 재미교포 출신으로 인기 절정의 스타였으나 2002년 병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국이 금지됐던 유승준은 지난해 5월 인터넷 방송을 통해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지금이라도 군대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유승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현행법상 입영이 불가능한 39세가 되고 나서야 입대하겠다고 나선 그의 진정성이 의심됐기 때문이다. 송승헌과 장혁(40)의 경우 2004년 소변 검사 결과를 조작해 사구체신염 판정으로 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결국 군에 입대하게 된 사례다. 특히 전방 15사단에서 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송승헌은 2006년 11월 전역할 당시 부대를 나서면서도 팬들에게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고 말해야 했을 정도로 비리 연예인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11세 때 영국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피아니스트 이루마(38)는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2006년 7월 해군에 입대해 성실히 군복무를 마쳤다. 당시 이루마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입대 이유를 설명했다. ●말 많고 탈 많던 ‘연예병사’ 역사 뒤안길로 국방부는 특히 1997년부터 2013년 7월까지 ‘연예병사’로 불리는 국방홍보지원대를 운영했다. 홍보지원대 소속 연예병사는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 가수, MC 등으로 활동한 현역병 중에서 선발됐고 통상 경쟁률은 3대1이 넘었다. 연예병사 제도는 많은 연예인이 전역 후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연예병사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 장병 위문 프로그램인 ‘위문열차’ 등을 통해 전국의 각 부대를 돌며 연기나 노래를 계속하며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한류 스타 싸이(39·본명 박재상)를 들 수 있다. 싸이는 2003부터 2005년까지 병역특례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지만 부실 근무가 적발되면서 2007년 12월 현역으로 재입대해 한때 비리 연예인으로 낙인 찍혔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로 바뀌었다. 52사단 통신대를 거쳐 연예병사로 선발된 싸이는 장병 위문공연에서 장병들의 인기를 끌었고 결국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기에 이른다. 그는 평소 “군 위문 공연을 다니면서 무대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의 멤버였던 가수 문희준(38)도 도발적인 언행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고 ‘100만 안티설’이 돌 정도로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렸다. 하지만 2005년 11월 입대해 2007년 11월까지 연예병사로 위문 열차 프로그램을 맡는 동안 모범적 군 생활로 이미지를 개선했다. 인기 절정이었던 1994년 12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면서 입대한 차인표(49)는 이들에 앞서 원조 연예병사로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일반 병사는 물론 여군 간부들까지 연예병사들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군 당국이 관리하기가 어려웠고, 간부들이 연예병사들을 행사에 동원한 뒤 포상 차원에서 휴가와 외박을 남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 비(34·본명 정지훈)는 군 복무 중이던 2013년 1월 배우 김태희와 버젓이 열애했다는 사실과 함께 365일 중 71일의 휴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2013년 7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다. ●땀내 나는 군생활은 또 하나의 홍보수단 최근에는 오히려 일부 연예인이 ‘위기는 기회’라고 시위하듯 해병대 같은 힘든 군 생활을 자원해 ‘개념 연예인’이라는 홍보 효과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배우 생활의 절정기를 맞았던 배우 현빈(34·본명 김태평)은 연평도 포격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2011년 3월 해병대에 입대해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현빈에 이어 가수이자 탤런트 오종혁(33)의 해병대 복무도 화제가 됐다. 2011년 4월 군악대로 입대한 그는 사령관에게 직접 탄원서를 제출하며 해병대 수색대원을 자원했고 2013년 1월 전역할 예정이었으나 설한기 훈련에 참가하겠다고 전역을 한 달 이상 연기해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오종혁은 2013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손에 담배를 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해병대 복무를 통해 쌓은 이미지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를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해병대 출신인 가수 김흥국(57)이 후배 가수 이정(35)에게 해병대 입대를 권유한 사실도 연예계에 널리 회자됐다. 특히 이정이 2009년 1월 첫 휴가를 나왔을 때 분당 지하철에서 마중 나온 어머니를 앞에 두고 해병대 노래인 ‘위로휴가가’를 부르며 눈물짓던 동영상이 한때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연기·노래실력만큼 중요해진 ‘자원 입대’ 이 밖에 2009년 2월 전역한 그룹 지오디(GOD) 멤버 김태우(35)는 육군 27사단 수색대대, 지난해 5월 전역한 송중기(31)도 22사단 수색대대를 나왔다 병무청은 2000년 이후 연예인들의 병역이 민감한 문제가 된 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군의 미필률(면제율) 변화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1960년대생의 군 면제율은 30.5%로 이들이 군에 입대할 당시인 1980년대에는 3명 중 1명이 면제될 정도로 면제가 흔했다. 하지만 1970년대생의 면제율은 18.3%, 1980년대생은 9.8%, 1990년대생은 4.8%로 점차 낮아지면서 유명인사의 군 면제는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촉매가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연예인들까지 굳이 자원해서 군대를 가려 하는 것은 대중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연기 실력이나 노래 실력보다 휠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능력 증빙만 가능하다면 NIW 제도로 미영주권 취득 가능해…

    능력 증빙만 가능하다면 NIW 제도로 미영주권 취득 가능해…

    최근 빠른 시간 내에 고용주 없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National Interest Waiver(NIW)로 영주권을 취득한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NIW란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 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석/박사를 취득한 사람들은 고학력자에 해당되므로, 자격조건 상 NIW 수속을 진행하는 데 있어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이에 해당되지 않는, 학사학위만 소유한 경우라면 NIW 신청이 불가능한 것일까? 미이민법에서 규정한 NIW의 신청 조건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Alien with Advanced Degree (고학력자)이고, 두번째는 Alien with Exceptional Ability(탁월한 능력)이다. 즉, 고학력자이거나 혹은 탁월한 능력을 소지한 자라면 누구나 NIW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학위 없이도 NIW를 신청해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미이민법에서는 신청자의 학위를 심사할 때 학사+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석사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 업체 NIW Korea 관계자는 “학사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실무 경력이 많은 자라면 NIW를 신청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또한 학위가 없다 해도 탁월한 능력만 증빙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NIW를 통해 성공적인 미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또한 NIW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어느 특정 전공,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NIW Korea 관계자는 “상담 시 특허 등 특정한 증빙 자료의 여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아 이공계 전공이나 경력자들만 NIW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틀린 사실”이라며, “NIW는 본인의 전문 분야가 문과든 이과든 상관없이 본인의 탁월함을 증빙할 수 있을 만한 자료만 있다면 충분히 신청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태권도 사범, 한의사, 건축설계사, 유치원 교사, 피아노 학원장, 역사학자, 통상전문가, 변호사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NIW를 통해 성공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사례가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미국 이민제도의 핫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NIW에 대한 더욱 자세한 정보와 문의는 NIW Korea/USA 홈페이지(www.niw.co.kr) 또는 대표번호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국 자주 찾는 한국인, 영국 공항서 입국 심사 10분으로 단축

     영국을 자주 찾거나 영국 비자가 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25일부터 일정 비용을 내고 공항에서 빠른 입국 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영국 정부가 입국절차 간소화 제도인 여행자 등록제(RTS)에 한국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시행된 RTS는 외국인이 히스로 공항 등 영국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ePassport 게이트 또는 영국/EU 시민 입국 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입국 서류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등록하면 많게는 1시간정도 걸리던 입국 심사가 10분 이내로 단축된다. 지금은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국민이 이용하고 있다.  다만, 자격요건이 있고 비용(등록비 70파운드·약 12만원)도 든다. 비즈니스·학술·교육·관광·치료 목적으로 과거 1년간 영국을 4회 이상 방문했거나 영주권 또는 비자 소지자여야 한다. 영국 정부 웹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영국 정부가 자국 안보 측면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안전한 외국인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 약 30만명이 한해 영국을 방문하고, 이중 기업 활동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은 3만여명에 이른다고 대사관은 덧붙였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주권 있는 재외국민 기초생활급여 안 준다

    앞으로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재외국민과 거주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심의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기초생활 수급 자격 단위인 개별 가구 범위를 명확히 했다. 기존에도 재외국민과 거주 불명자에게는 기초생활 보장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지만, 재외국민이 주민등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됨에 따라 급여 대상과 범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개정안은 또 조사일 기준으로 과거 5년 내에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재산은 수급자의 재산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가족 간의 재산 양도, 처분 재산 은닉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급여를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재산을 처분한 금액이 이미 산정됐거나 다른 재산 구입, 부채 상환, 의료비 지급 등 개별 가구원을 위해 쓰인 사실을 입증하면 제외한다. 개정안에서는 차상위계층의 생활 여건 등을 고려해 재산이나 소득 산정 기준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차상위계층은 중위 소득 50% 이하의 ‘잠재 빈곤층’과 소득은 낮지만 고정 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을 의미한다. 개정안에는 지난 7월부터 생계·교육·주거·의료 등 맞춤형 급여가 시행됨에 따라 관련 사항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급여별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도 담겼다. 분야별 소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13명 이내로 구성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양안 해빙무드… 수감 첩보원 첫 맞교환

    중국과 대만이 지난 7일 정상회담에 이어 양안에서 수감 중인 첩보원들을 맞교환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양안 언론과 영국 BBC 등이 30일 보도했다. 양안 간 간첩 교환은 이번이 처음으로, 해빙 무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됐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에 구금됐던 추쿵순(朱恭訓) 전 대만 군사정보국 4처 부처장과 수창쿼(徐章國) 전 조장이 지난달 석방돼 대만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뤄사오허(羅紹和) 대만 국방부 대변인은 “이들은 2006년 중국에서 공식 임무를 수행하다 간첩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대만 언론들은 이들이 군사정보국 후방 업무에 복귀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 역시 홍콩 영주권을 지니고 대만 정보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70세 고령의 중국 간첩 리즈하오(李志豪)를 지난달 말 조기 가석방했다. 찰스 천(陳以信) 대만 총통부 대변인은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향후 양안 간 우호적인 교류가 지속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대만 언론 역시 “중국에서 복역 중인 대만 첩보원이 100명이 넘는다”면서 “지금이 첩보원 석방 노력을 기울일 절호의 기회”라고 촉구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 美 카네기홀 공연 김장실 의원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 美 카네기홀 공연 김장실 의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지난 3일(현지시간) 전 세계 예술가들이 ‘꿈의 무대’로 꼽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 구슬픈 한국의 대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60~70대 한국 동포들은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내듯 펑펑 울었다. 카네기홀을 ‘눈물바다’로 만든 사람은 바로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다. 전문 아티스트가 아닌 공연자가 120년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네기홀에서 ‘솔드 아웃’(SOLD OUT·매진) 스티커를 받으며 ‘대박’을 터트린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지난 20일 김 의원과 만나 공연 기획 단계부터 성황리에 마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부르는 김 의원의 노래와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져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김 의원은 “노래는 귀를 열게 하고 노래에 담긴 의미는 가슴을 적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와 정계에서 대중가요로 시대를 말하는 노래꾼이자 이야기꾼으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섰는데. -국내 대중 가수 중 패티김, 조용필 등 최정상 가수들만 무대에 섰다. 전문적인 성악 훈련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가 선 것은 처음이다. 전 세계 국회의원 중에 누가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할 수 있겠나. 기록을 찾아봐야겠지만 없을 것 같다. →발상 자체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성사됐나. -우연히 부산의 한 방송국에 출연해 ‘부산과 대중가요’를 주제로 얘기하다가 노래를 했다. 성악을 전공한 방송 진행자가 ‘대중가요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해박하고 노래가 직업 가수 뺨친다’며 그 자리에서 뉴욕에 있는 공연 기획자인 박준식 제이삭(JSAC) 대표이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게 지난 7월이었다. 이어 8월 초 한국을 방문한 박 대표와 식사를 같이 하다가 그 자리에서 노래를 3곡 불렀고 박 대표가 이에 만족해 공연이 성사됐다. 한국인의 가슴을 촉촉히 적셨던 히트 가요를 선곡해서 그 노래가 가지는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당시에 일어났던 정치적 사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얘기했다. 거기에 노래를 만든 가수와 작사가, 작곡가, 음반 제작자와 팬들 사이에 있었던 뒷얘기를 통해 연예사적 재미를 더했다. 재미없는 노래에 재미있는 ‘당의정’을 입혀 관객들 입에 솔솔 녹도록 했다. →(인터뷰 도중 때마침 박 대표가 ‘매진’ 딱지가 붙은 공연 포스터를 들고 오자) 박 대표가 직접 공연 기획 과정을 말씀해 달라. -(박 대표) 제이삭은 뉴욕에 있는 공연 기획사다. 처음에는 카네기홀 공연이 연 2회도 힘들었는데 7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연 26회로 늘었다. 현재 국립무용단, 국립오페라단, KBS 교향악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단의 해외 공연은 대부분 저희가 맡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김 의원과의 미팅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제가 가장 반대했다. 카네기홀은 1년 전에 미리 대관 신청을 받는데 특히 올해는 개관 125주년이어서 대관 검열이 아주 까다로웠다. 그래서 김 의원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거절할지부터 고민했다. 식사 자리에서 김 의원이 대뜸 노래의 스토리를 얘기하며 직접 3곡을 불렀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는데 대놓고 열창을 했다. 특히 ‘동백아가씨’에 대한 사연을 들었는데 음악과 내용의 연결고리가 너무 좋았다. 광복 70주년이기도 해서 ‘이거다’ 싶었다. 미국 이민자 중에는 이산가족이 많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는데 영주권도 없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한국인이 몇십만명 된다. 이들은 한국에서 부모님이 위독하거나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아도 못간다. 그렇게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이 많다. 또 2~3세대 자녀들은 1세대들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를 알 길이 없다. →카네기홀 측의 승인을 어떻게 받았나. -(박 대표)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도 한국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까다로운데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같은 음악가들이 초연을 한 125년 역사의 카네기홀이니 얼마나 뻣뻣하겠나. 게다가 아티스트도 아니고 강연을 하겠다고 하는데…. 카네기홀 측에서 ‘이 사람 아티스트냐’고 물어봐서 ‘아티스트는 아닌데 노래를 잘한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카네기홀 측도 공연이 망해 명예가 실추될까 봐 주시한다. 전문 아티스트 기록이 없으면 무대에 서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대중가요가 아니라 ‘강연과 콘서트’로 콘셉트를 잡았다. 일제시대부터 해방이 되고 전쟁을 거쳐 다시 휴전이 된 모든 과정을 영문으로 번역해 기안을 올렸고 결국 승인받았다. →어떻게 매진이 됐나. -(박 대표) 공연 열흘 전 첫 언론 보도가 나갔는데 사무실 업무가 마비됐다. 이민 1세대, 1.5세대 등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우리가 외국계 회사인 줄 알고 ‘아이 니드 코리안 토크쇼 티켓’(I need Korean Talk Show ticket·한국인 토크쇼 티켓이 필요합니다)이라며 간절한 목소리로 안 되는 영어를 더듬더듬 써 가며 전화를 걸어왔다. 돈을 받아선 안 되겠다 싶어서 40달러의 티켓 비용을 무료로 전환했다. 카네기홀 측에서는 공연 일주일 전에 홍보 포스터가 다 나갔는데 어떻게 무료로 하느냐며 반대했다. 우리가 완강하게 밀어붙이자 카네기홀 측에서 ‘공연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무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제가 카네기홀에서만 170회 공연을 기획했는데, 매진된 건 처음이다. 아티스트들은 각성해야 한다. 하하.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공연 초반부에 관객들이 점잖게 앉아 있길래 다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카네기홀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한국인이 막걸리 마시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젓가락을) 두들기는 60~70년대 정감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공연 내용은 어땠나. -해방 이후 70년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그 시대에 발생한 정치·사회적 사건에 시대정신이 드러난다. 1940년대는 아무래도 해방의 기쁨보다 더 큰 게 없다. 식민 지배가 30년이 넘었고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한다고 하니 독립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방이 됐다. 얼마나 기뻤겠나. 해방을 기뻐하는 노래가 막 쏟아져 나왔다. ‘사대문을 열어라’ ‘울어라 은방울’ 같은 노래들이다. 가장 상징적인 노래는 ‘귀국선’이다. 일본에 동포 230만명이 살고 있었고 중국에 200만, 기타 수십만명이 외국에 살고 있었는데 귀국선은 귀환 동포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는 주요한 통로였다. 그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다시는 빼앗기지 말고 잘 살아 보자는 욕구가 있었다. 그런 욕구가 가사에 잘 표현돼 있다. →1950년대에는 어떤 노래가 상징적인가. -한국전쟁보다 더 1950년대를 특정 짓는 사건은 없다. 중공군이 내려왔을 때 유엔군과 국군은 6중, 7중으로 포위당해 독 안에 든 쥐처럼 죽을 지경으로 집중 타격을 받았다. 한국 지형은 동고서저형이어서 육로 철수가 어려웠다. 그래서 흥남부두에서 해상 철수를 했다. 자유를 잠시 맛본 이북 사람 수십만명이 ‘우리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대규모 수송선을 수백척 동원해서 무기를 버리고 군인 10만명, 민간인 9만 8000명을 태우고 내려왔다. 그때 많이들 헤어졌다. 부산에 홀몸으로 내려온 여성분에게서 피란 중 가족과 헤어진 구구절절한 사연를 들었다. 손잡고 같이 타자 했는데 서로 타려고 밀치고 당기다가 밀려서 아이 손, 마누라 손 놓고 ‘어디 갔노, 어디 갔노’ 찾다가 어디 가 버렸는지 몰라 펑펑 울고…. 그 감정을 잘 표현한 노래가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다. 또 부산에서 울다가 죽을 순 없으니까 국제시장에서 장사하고 구두도 닦으며 살았다. 오며 가며 눈이 맞았던 경상도 처녀하고 정을 주고 살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헤어졌던 부모, 형제, 처자식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서울로 떠났다. 그러면 경상도 처녀가 가지 말라며 붙들고 늘어진다. 서울 가면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데, 차창 밖으로 보니까 정들었던 경상도 아가씨가 울고 있고…. 그런 사나이의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한 노래가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다. 이승만 정부가 사사오입, 발췌개헌을 하면서 계속 권위주의 정부로 치달았다. 이승만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후보로 신익희 선생이 나섰는데 1956년 5월 5일 오후 5시 5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호남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정권 교체의 꿈이 사라지고 허망한 상태가 됐다. 그때 손인호 선생의 ‘비 내리는 호남선’ 노래에 대한 유언비어가 돌았다. 신 선생 부인이 너무 억울해 그 노래를 작사를 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었다. 그런 풍문이 노래 판매를 촉진시켰다. →1960년대의 대표곡은 무엇인가. -경제 개발로 산업화가 본격화돼 촌에서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출세를 많이 했다. 출세를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계층 상승’이라고 한다. 돈을 많이 벌거나 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집안과 혼인을 맺는 것, 3가지가 전통적인 출세 방식이다. 조선시대 500년간 쌓여 왔던 계층 구조가 일제시대 때 반쯤 파괴됐고 한국전쟁으로 계층구조가 거의 다 파괴됐다. 특히 1960년대에는 남자가 출세를 하면서 그렇지 못한 여인과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출세한 남자는 도시의 좋은 집안에서 얼른 낚아채 가 버린다. 그러면 시골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여인과는 멀어진다. 이런 식의 이별이 워낙 많았다. 1960년대 초·중반의 영화와 소설, 대중가요, 라디오 드라마의 60~70%가 서울로 간 남자는 출세해서 예쁜 집 규수를 얻고 시골에서 사랑했던 여인은 버림받고 그 여인은 사회적 장벽으로 인한 거리감 때문에 남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을 다뤘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남진의 ‘가슴 아프게’,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의 전형적인 도식이다. 1964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와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동백아가씨’가 엄청나게 히트를 했다. 왜색조라며 노래가 나온 지 1년도 안 돼 방송금지가요가 됐는데도 20만장이 팔렸다. 3년 뒤인 1968년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음반 제작 금지를 당했는데도 200만장이 팔렸다. 음반을 낸 지구레코드사 고 임정수 사장의 얘기다. 한국 가요 사상 가장 히트한 노래가 동백아가씨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장실 의원은 김 의원은 국내 문화·체육계의 대부 격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과 정치특보 등을 지냈다. 문화관광부 예술국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역임했다. 이후 예술의 전당 사장에 임명돼 문화 공연계의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 대한장애인농구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4년 인천세계휠체어농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준비 중이다.
  • 재외국민 투표율 내년 총선 변수 되나

    재외국민 투표율 내년 총선 변수 되나

    “정치권에서 이렇게 열심히 재외 동포를 위해 일하는 줄은 몰랐네요.” 지난 8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회가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준비한 ‘여야 국회의원 초청 재외동포정책포럼’이 열린 생명찬교회. 제임스 안 한인회장은 새누리당 재외국민위원장인 심윤조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재외동포위원장인 김성곤 의원이 재외동포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전해 듣고 이렇게 반겼다. 이날 모임은 재외 국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처럼 여야가 재외 국민들의 권익 향상에 나선 이유는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1972년 중단된 재외선거가 40년 만에 부활하면서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재외 국민을 향한 여야의 구애도 뜨겁다. 재외 국민 유권자 등록은 오는 15일부터 내년 2월 13일까지 실시된다. 재외 국민 유권자 수는 총유권자 4000만여명의 5%인 223만여명으로 승부를 가를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투표율이 낮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재외 국민 가운데 5.57%(12만 3418명)가 유권자로 등록했고 2.53%(5만 6456명)가 투표를 했다. 이어진 18대 대선에서는 10%(22만 2389명)가 유권자로 등록했고 7.1%(15만 8196명)가 투표했다. 특히 18대 대선의 재외선거 결과는 눈길을 끌었다.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의 전신) 문재인 후보가 56.4%(8만 9192명)의 득표율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42.6%(6만 7319명)를 앞선 것이다. 두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는 13.8% 포인트(2만 1873명)나 됐다. 당시 야당에서 재외 국민을 집중 공략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후 새누리당도 외교관 출신인 심 의원을 위원장으로 발탁, 재외국민 선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심 의원은 “재외 국민들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외선거의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유권자 등록의 번거로움과 원거리 거주자가 공관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문제 등 때문이었다. 이에 국회는 지난 7월 영주권자의 우편 등록과 인터넷 등록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영주권자의 영구명부제 도입 등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 설립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여야가 함께 논의하고 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기술 없는 외국인 노동자 국내 거주 어려워진다

    앞으로 숙련 기술이 없는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나라에 장기간 거주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부는 앞으로 닥칠 초고령사회의 노동력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자 해외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되 나이가 들었을 때 독립 생계가 어려워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비전문 외국 인력은 우리나라에 터를 잡고 살기 어렵게 정주 자격을 까다롭게 고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외국 인력 활용 방안은 18일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 시안(2016~2020)’에 담겼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비전문 이주노동자가 많아지다 보면 우리 사회에 사회보장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 문제로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외국 인력 도입이 국내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고 근로조건을 저하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비전문 외국 인력에 대해 단기 순환, 노동시장 보완, 정주화 방지 등의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동의 질을 확보하고자 사실상 해외 우수 인재만 영주권을 갖고 우리나라에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단순 기능 외국인은 정해진 체류 기간이 만료되고서도 일시 귀국 후 재입국해 최대 9년 10개월까지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정부는 학력, 연령, 한국어 능력, 임금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전문직종 취업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일정 소득이나 자산 요건을 갖춰야만 거주(F-2) 또는 영주(F-5)로 자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연간 전문직종 취업 자격, 거주 또는 영주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는 쿼터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NIW 제도, 본인 스스로 미국 영주권 취득 가능

    NIW 제도, 본인 스스로 미국 영주권 취득 가능

    현재 미국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위한 경선에 한창이다. 이러한 열풍에 미국 이민자들 및 이민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특히 도날드 트럼프가 멕시코 계 이민자들과 불법 체류자들을 비난하자 이 문제는 정치적 이슈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직업을 빼앗아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의사 등 석/박사 이상 고학력자들에 대한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공화당과 민주당 측은 오히려 고학력자들을 좀 더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U.S. research university 통계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는 매년 약 5만명의 유학생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전공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이들이 해마다 미국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는 130,000여 개(1인당 2.6개의 일자리)다. 이들은 이미 미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취업비자(H-1b)는 1년에 6만 5천개로 한정되어 있고, 고용주를 통한 미영주권 취득은 노동청의 적체로 인하여 최대 5년까지도 소요되고 있어서 고학력 외국인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용주 없이 본인 스스로 미국 영주권을 취득 할 수 있는 ‘독립이민’ 제도, National Interest Waiver (NIW) 이다. NIW 란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나 본인의 탁월함을 증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미국의 고용주나 노동허가의 취득 절차 없이 본인 스스로 영주권을 취득하는 프로그램으로, 미국 취업이민 2순위에 속한다. NIW의 장점은 수속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NIW Korea(www.niw.co.kr)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봄부터 NIW 승인 기간이 평균 4개월로 빨라졌다”며 “STEM OPT의 연장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신분 문제를 위한 상담이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한편 NIW Korea는 2015년 기준 300명에 가까운 승인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미국 내 유수 대학들의 초청을 받아 NIW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세미나 및 NIW 제도, 미국 영주권 취득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대표전화(02-558-8238)로 문의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민 1명뿐… 산마리노·안도라 등 5개국 1명만 거주

    지난해 전 세계에 흩어진 재외동포가 718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외교부가 12일 밝혔다. 이중 우리 교민이 단 1명만 사는 나라도 산마리노 등 5개국이 있다. 외교부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발간한 ‘2015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일반체류자를 합친 재외동포는 세계 181개국 718만 4827명으로 추산됐다. 연도별로는 2007년 704만 4000여명으로 처음으로 재외동포 700만명 시대를 연 뒤 2009년 682만 2600여명, 2011년 717만 5600여명, 213년 701만 2900여명 등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이 같은 수치는 각국 공관에서 파악한 재외동포 현황을 취합해 2년마다 추산하는 것이다. 국가별로는 258만 5900여명이 거주하는 중국이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으로는 미국(223만 8900여명), 일본(85만 5700여명), 캐나다(22만 4000여명), 우즈베키스탄(18만 6000여명) 순이었다. 반면 유럽의 산마리노(시민권자), 리히텐슈타인(영주권자), 안도라(영주권자), 태평양의 키리바시(영주권자),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일반 체류자) 등 5개국은 교민이 단 1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이혼 앞둔 며느리 몰래 손녀 데리고 미국 간 할머니… 결말은?

    아들이 이혼 소송 중인 상황에서 며느리가 돌보던 손녀를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몰래 데려가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기소된 할머니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국 영주권자인 최모(59·여)씨는 지난해 5월 강원도 춘천에서 당시 5살인 손녀 A양을 만났다. 최씨 아들과 며느리 이모씨는 이혼 소송 중이었고, A양은 이씨와 그의 어머니가 돌보고 있었다. 최씨는 이씨 어머니에게 “손녀에게 점심을 먹이고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 A양을 불러냈다. 하지만 최씨는 미국에 있는 아들로부터 “딸을 미국으로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은 상태였다. 국내 거주 기간 만료가 임박했던 최씨는 A양을 서울로 데려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씨는 딸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고, 최씨는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최씨가 거짓말까지 하면서 A양을 외국으로 데려가 보호자들과 떼어놔 A양의 보호·양육 상태를 침해했다고 기소했다. 국외이송약취는 폭행이나 협박, 감금 또는 그에 준하는 불법적인 힘을 사용해 사람을 외국으로 데려가는 행위로, 유죄가 인정되면 징역 2년 이상 15년 이하에 처해진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심우용)는 11일 “최씨가 불법적인 힘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고, 그에게 이끌려 미국으로 간 A양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가 손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며느리 이씨와 그의 어머니는 A양을 인접 도시에 사는 낯선 친척집에 위탁했다. A양은 최씨를 만났을 때 “아빠한테 가고 싶다”고 말했고, 이혼소송에서도 A양의 양육권은 아빠에게 돌아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혼 앞둔 며느리 몰래 손녀와 미국行 할머니 ´국외이송약취...무죄´

     아들 부부가 이혼소송 중인 상황에서 며느리가 돌보던 손녀를 몰래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데려간 할머니가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11일 서울서부지법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자로 국내에 머물던 A(59·여)씨는 지난해 5월 춘천에서 당시 다섯 살이던 손녀 B양을 만났다.그의 아들과 며느리 C씨는 이혼소송 중이었고, C씨와 그의 어머니가 손녀를 돌보고 있었다.  A씨는 사돈에게 “손녀에게 점심을 먹이고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 B양을 불러냈다.  미국행 항공권을 미리 예매해 놓았던 A씨는 사돈에게 한 약속과 달리 곧장 손녀를 차에 태워 서울로 데리고 왔다.  서울에서 남편과 만난 A씨는 남편 차로 인천공항에 가서는 손녀와 함께 비행기에 탔다.  이후 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C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폐쇄회로(CC)TV를 추적한 끝에 B양이 할머니 A씨의 손에 이끌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 일로 A씨는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입건됐다.국외이송약취란 폭행이나 협박,감금 또는 그에 준하는 불법적인 힘을 사용해 사람을 외국으로 데려가는 행위를 말한다. 유죄가 인정되면 2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검찰은 A씨가 거짓말까지 해 가며 B양을 외국으로 데려가 보호자들과 떼어놓아 B양의 보호·양육 상태를 침해했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심우용 부장판사)는 “A씨가 불법적인 힘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고,그에게 이끌려 미국으로 간 B양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손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사돈이나 손녀에게 폭행이나 협박 또는 불법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약취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혼소송에서도 B양의 양육권은 아빠에게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지자체 외국인 투자자 유치 “이대론 안돼”

    지자체 외국인 투자자 유치 “이대론 안돼”

    지방자치단체들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자 도입한 ‘외국인 부동산투자이민제’가 지역별로 편차를 드러내고 있다. 인천과 부산, 여수 등에서는 유입 효과가 크지 않아 활성화 방안을 찾는 와중에 강원도가 이 제도를 확대해 도입했다. 제주도는 외자유치 덕분에 세수 증대 효과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외국인의 토지잠식과 난개발, 분양형 숙박시설의 팽창, 지역사회 경제효과 미흡 등 부작용이 시민들 사이에서 지적됐다. 5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부동산투자이민제 적용을 받아 매각된 부동산은 미분양 주택 7가구뿐이다. 송도국제도시 5가구, 영종지구 2가구다. 청라국제도시는 아예 실적이 없다. 부동산투자이민제는 법무부에서 지정한 시설에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투자와 동시에 거주자격을, 투자 후 5년이 지나고서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인천은 2014년 9월부터 올 9월까지 일몰제로 적용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7억원 이상 미분양 주택이 대상이었다. 인천에서 이 제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낸 것은 투자 금액과 대상이 제한적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7억원을 초과하는 미분양 주택은 전체 미분양주택 1250가구의 4.6%인 57가구에 불과하다. 부산은 오는 8일 분양하는 해운대관광리조트와 동부산관광단지 등 2곳이 2013년 5월 부동산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됐다. 해운대관광리조트는 외국인 투자금액 7억원, 동부산관광단지는 5억원으로 설정됐다. 해운대관광리조트 사업자인 ㈜엘시티PFV는 이미 투자이민제 도입을 전제로 중국 기업과 1조원대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 때문에 부산에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적용되는 첫 사례가 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투자는 두 곳 다 호텔 등 시설이 들어서는 4~5년 뒤에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남 여수 경도도 2013년 부동산투자이민제를 시행한 이래 현재까지 한 건의 투자 실적이 없다. 강원도는 2011년 평창 알펜시아관광단지에 도입돼 3건의 호텔분양권을 유치했다. 현재 차이나드림시티가 들어설 강릉 정동진특구에 추가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강릉 정동진지구가 특구로 지정되면 법무부가 제도 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강원도는 2018년 4월까지 부동산투자이민제 적용 지역을 동계올림픽특구 전 지역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2010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 부동산투자이민제’를 도입한 제주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제주는 2010~2014년 1조 240억원의 외국자본 투자가 이뤄졌다. 5억원 이상의 콘도를 구입해 영주권을 받은 외국인은 2010년 3명과 2011년 8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2년 155명으로 급증한 뒤로 2013년 476명, 2014년 1007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와중에 한라산 난개발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투자이민 적용지역을 관광단지와 관광지로 한정하는 개선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건의했다. 부동산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을 6000건으로 제한하는 ‘총량제’ 도입도 검토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주도에서 이 제도는 2018년 4월 자동폐기될 예정이라 더이상의 신규투자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평창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병무청 자원입대 병사 격려 행사

    병무청은 7일까지 현역으로 군에 복무할 의무가 없음에도 자원해서 병역을 이행 중인 병사 100명을 초청해 격려 행사를 연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자원입대한 외국 영주권자와 질병으로 현역 복무 의무가 없는데도 이를 치료하고 현역으로 입대한 병사 100명이 참가한다. 행사 기간 이들은 공주 한옥마을 숙식 체험, 다도·다식 만들기, 송산리 고분군 탐방 등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가족과 함께 축하공연도 관람한다.
  • [뉴스 분석] 北, 재미 유학생 주원문씨 반년 만에 송환

    [뉴스 분석] 北, 재미 유학생 주원문씨 반년 만에 송환

    북한이 5일 억류 중이던 한국 국적 미국 대학생 주원문(21)씨를 전격 송환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 관계자는 “오늘 오전 북측이 북한적십자 중앙위원회 명의 통지문을 통해 지난 4월 22일 이후 북측 지역에 억류돼 있던 주씨를 오후 5시 30분에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해 왔고 우리 측이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주씨를 남측에 송환한 것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조치에 따라 주원문을 판문점을 통해 10월 5일 추방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송환된 주씨는 지난 4월 22일 중국 단둥에서 북한에 들어가려다 붙잡힌 미국 영주권자다. 이로써 북한이 억류한 우리 국민은 4명에서 3명(김정욱, 김국기, 최춘길)으로 줄었다. 정부 당국자도 나머지 3명과 관련해 “북한이 억류 중인 국민들을 조속히 석방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과 검찰은 송환된 주씨를 수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 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주씨를 송환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는 일단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억류자 문제를 일부 해소하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인도적 사안에서도 개선 노력을 보였다는 명분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오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과 20~26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라는 ‘빅 이벤트’에 앞서 자신들이 남북 관계를 주도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문제’와 관련해 개선 요구와 압박을 받고 있는 점을 의식해 자신들도 인권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을)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준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들도 인권에 대해 개선 의지가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안재형 “아들 캐디백 멨듯…탁구 부활 위해 십자가 메겠다”

    안재형 “아들 캐디백 멨듯…탁구 부활 위해 십자가 메겠다”

    29일 태국 파타야 좀티엔 해변가에 있는 앰배서더 시티호텔 1123호. 추석 연휴 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201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대표팀을 이끌고 온 안재형(50) 남자탁구대표팀 코치의 방안 티테이블에는 약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을 이렇게 많이 먹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깨에 생긴 석회화건염이 허리까지 퍼져 좋지 않다”고 겸연쩍게 말했다. 굳이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될 듯했다. 8년 동안 골프선수인 외동아들 안병훈(24)을 위해 그 무거운 골프백을 메고 하루 평균 7~8㎞씩 걸어다녔으니 성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탁구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아들을 위해 8년 동안이나 탁구를 떠나 외도를 했다. 그는 “탁구계 선후배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자식을 위한 이유 있는 외도였다”고 말했다. 지난 8년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여느 부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왕년의 탁구여왕 자오즈민(중국)과 결혼한 ‘핑퐁 커플’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 5월 아들 덕분에 또 한번 유명세를 치렀다. 자오즈민과 결혼 이후 생애 두 번째로 많이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아들 병훈이 유러피언남자골프(EPAG) 투어 메이저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은 덕이었다. 당시 그는 탁구계로 돌아와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씨름 중이었다. 10년 가까이 홀아비 생활을 자처한 끝에 아들을 번듯한 골프 챔피언으로 만든 ‘아버지’ 안재형의 삶은 어땠을까. 그가 아들 뒷바라지에만 매달리기로 결심한 건 대한항공 감독 지휘봉을 막 손에 들었던 2006년이었다. 아들 병훈이가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면서 탁구 지도자로서의 꿈을 접었다. 결심은 확고했다. 그는 아들의 캐디로, 운전기사로, 매니저로 1인 다역을 자처했다. 아들의 뒷바라지에 올인했다. 1년에 1억원 이상 써야 하는 살림이 문제였지만 그건 2002년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아내 자오즈민이 맡았다. 자오즈민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였지만 이름만 널리 알려졌을 뿐, 중국 정부로부터 거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처음 종이컵 사업으로 시작해 하얼빈에서 식당을 낸 뒤 지금은 베이징에서 이동통신 부가서비스업체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아이를 왜 하나만 낳았느냐는 질문에 안 코치는 “원래 집사람이 형제가 많다. 위부터 다섯 째인 집사람까지 전부 딸이고, 그 아래 동생 둘만 사내”라면서 “형제 많은 것이 아마 싫었던 것 같다. 병훈이가 딸이었다면 더 낳았겠지만 아내가 병훈이를 낳고는 ‘아들이니 이제 그만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고 웃었다. 2005년 초 그를 대신해 병훈을 보살피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뜨면서 아들을 돌보게 됐다. 그는 아들을 성남의 남서울골프장 연습생으로 들여보냈다. 병훈은 연습장에서 볼을 줍고 마지막 내장객이 티오프하면 그 뒤를 따라서 9홀을 돌았다. 그러다 그해 말 미국 영주권을 받았고, 안 코치는 아들과 단 둘이 길고도 먼 타국 생활을 시작했다. 4년 고생 끝에 2009년 병훈이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이름 석 자를 알리자 안 코치는 뿌듯했다. 이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 출전권까지 손에 넣어 성공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2011년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도 첫 승을 거두기까지는 무려 4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골프백을 멘 안재형’이었지만 그의 몸속에는 여전히 탁구인의 피와 DNA가 흐르고 있었다. 타국에 나가 있었지만 2006년부터 맡았던 국내 실업탁구 선수 랭킹 산정 작업을 도맡아 처리했다. 각급 대회 뒤 개개인의 성적을 점수화해 국내랭킹을 매기는 꽤나 복잡한 일이었다. 골프 대디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탁구와 아들의 골프를 오가는 생활은 계속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대표팀을 찾아가 선후배들과 재회하는 기쁨도 나눴다. 8년 동안 자리를 비우다 지도자로 돌아온 그의 눈에 비친 한국 남자탁구는 썩 마뜩지 않았다. 중국 탁구가 워낙 강세이긴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물론, 멘털까지 탁구를 떠날 당시의 후배들과 비교를 하기조차 어려웠다. “당시엔 싹도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자신이 국가대표로 뛰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직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진단을 내리고는 “연습밖에 다른 묘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러내면서 가능성을 엿본 그는 “병훈이를 위해 백을 메고 힘든 코스를 넘었던 것처럼 이제는 탁구 후배들을 위해 십자가를 메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중국 쑤저우세계선수권대회 남자복식에서 이상수-서현덕(삼성생명) 조가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내가 정작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잖아요. 탁구도 비슷하지 않나요. 그걸 후배들한테 가르쳐줘야죠.” 이날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남자복식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그는 “‘아빠가 가르치는 인생이야기’는 이제 ‘선배가 알려주는 탁구 이야기’로 버전이 바뀌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글 사진 파타야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안재형은 ▲1965년 1월 8일(50세) ▲한양대 교육대학원 ▲배우자 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복식 동메달 ▲2000년 탁구 국가대표팀 청소년 상비군 감독 ▲2001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탁구팀 코치 ▲2006년 대한항공 여자 탁구팀 감독
  • “아들 캐디백 멨듯… 탁구 부활 위해 십자가 메겠다”

    “아들 캐디백 멨듯… 탁구 부활 위해 십자가 메겠다”

    29일 태국 파타야 좀티엔 해변가에 있는 앰배서더 시티호텔 1123호. 추석 연휴 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201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대표팀을 이끌고 온 안재형(50) 남자탁구대표팀 코치의 방안 티테이블에는 약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을 이렇게 많이 먹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깨에 생긴 석회화건염이 허리까지 퍼져 좋지 않다”고 겸연쩍게 말했다. 굳이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될 듯했다. 8년 동안 골프선수인 외동아들 안병훈(24)을 위해 그 무거운 골프백을 메고 하루 평균 7~8㎞씩 걸어다녔으니 성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탁구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아들을 위해 8년 동안이나 탁구를 떠나 외도를 했다. 그는 “탁구계 선후배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자식을 위한 이유 있는 외도였다”고 말했다. 지난 8년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여느 부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왕년의 탁구여왕 자오즈민(중국)과 결혼한 ‘핑퐁 커플’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 5월 아들 덕분에 또 한번 유명세를 치렀다. 자오즈민과 결혼 이후 생애 두 번째로 많이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아들 병훈이 유러피언남자골프(EPAG) 투어 메이저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은 덕이었다. 당시 그는 탁구계로 돌아와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씨름 중이었다. 10년 가까이 홀아비 생활을 자처한 끝에 아들을 번듯한 골프 챔피언으로 만든 ‘아버지’ 안재형의 삶은 어땠을까. 그가 아들 뒷바라지에만 매달리기로 결심한 건 대한항공 감독 지휘봉을 막 손에 들었던 2006년이었다. 아들 병훈이가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면서 탁구 지도자로서의 꿈을 접었다. 결심은 확고했다. 그는 아들의 캐디로, 운전기사로, 매니저로 1인 다역을 자처했다. 아들의 뒷바라지에 올인했다. 1년에 1억원 이상 써야 하는 살림이 문제였지만 그건 2002년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아내 자오즈민이 맡았다. 자오즈민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였지만 이름만 널리 알려졌을 뿐, 중국 정부로부터 거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처음 종이컵 사업으로 시작해 하얼빈에서 식당을 낸 뒤 지금은 베이징에서 이동통신 부가서비스업체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아이를 왜 하나만 낳았느냐는 질문에 안 코치는 “원래 집사람이 형제가 많다. 위부터 다섯 째인 집사람까지 전부 딸이고, 그 아래 동생 둘만 사내”라면서 “형제 많은 것이 아마 싫었던 것 같다. 병훈이가 딸이었다면 더 낳았겠지만 아내가 병훈이를 낳고는 ‘아들이니 이제 그만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고 웃었다. 2005년 초 그를 대신해 병훈을 보살피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뜨면서 아들을 돌보게 됐다. 그는 아들을 성남의 남서울골프장 연습생으로 들여보냈다. 병훈은 연습장에서 볼을 줍고 마지막 내장객이 티오프하면 그 뒤를 따라서 9홀을 돌았다. 그러다 그해 말 미국 영주권을 받았고, 안 코치는 아들과 단 둘이 길고도 먼 타국 생활을 시작했다. 4년 고생 끝에 2009년 병훈이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이름 석 자를 알리자 안 코치는 뿌듯했다. 이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 출전권까지 손에 넣어 성공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2011년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도 첫 승을 거두기까지는 무려 4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골프백을 멘 안재형’이었지만 그 몸속에는 여전히 탁구인의 피와 DNA가 흐르고 있었다. 타국에 나가 있었지만 2006년부터 맡았던 국내 실업탁구 선수 랭킹 산정 작업을 도맡아 처리했다. 각급 대회 뒤 개개인의 성적을 점수화해 국내랭킹을 매기는 꽤나 복잡한 일이었다. 골프 대디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탁구와 아들의 골프를 오가는 생활은 계속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대표팀을 찾아가 선후배들과 재회하는 기쁨도 나눴다. 8년 동안 자리를 비우다 지도자로 돌아온 그의 눈에 비친 한국 남자탁구는 썩 마뜩지 않았다. 중국 탁구가 워낙 강세이긴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물론, 멘털까지 탁구를 떠날 당시의 후배들과 비교를 하기조차 어려웠다. “당시엔 싹도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자신이 국가대표로 뛰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직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진단을 내리고는 “연습밖에 다른 묘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러내면서 가능성을 엿본 그는 “병훈이를 위해 백을 메고 힘든 코스를 넘었던 것처럼 이제는 탁구 후배들을 위해 십자가를 메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중국 쑤저우세계선수권대회 남자복식에서 이상수-서현덕(삼성생명) 조가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내가 정작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잖아요. 탁구도 비슷하지 않나요. 그걸 후배들한테 가르쳐줘야죠.” 이날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남자복식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그는 “‘아빠가 가르치는 인생이야기’는 이제 ‘선배가 알려주는 탁구 이야기’로 버전이 바뀌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글 사진 파타야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안재형은▲1965년 1월 8일(50세) ▲한양대 교육대학원 ▲배우자 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복식 동메달 ▲2000년 탁구 국가대표팀 청소년 상비군 감독 ▲2001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탁구팀 코치 ▲2006년 대한항공 여자 탁구팀 감독
  • [씨줄날줄] 병역기피를 위한 국적이탈 논란/이동구 논설위원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국적 포기에 여론의 시선이 따갑다. 국적 포기가 병역 면제를 위한 것이라는 데 비난의 초점이 모여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그제 국감에서 고위공직자 26명의 자녀 30명이 국적 이탈 및 상실로 병적에서 제적됐다고 밝힌 게 단초였다. 또 이들 고위공직자가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현재도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각종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비난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는 “군대에 안 가야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는 나라니까 그렇지”라는 댓글에서부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도 않고, 지키고 싶지도 않은 나라에서 고위직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라며 격앙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우리 국민은 ‘병역의 의무’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나 대선 때마다 후보 또는 자녀들의 병역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하는 이유다. 가까이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인준 과정에서 자신의 병역 면제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고, 지난해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했던 고승덕 후보도 아들의 이중국적과 병역 기피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병역 문제만큼은 사회지도층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병풍 조작 사건이다. 2002년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두 아들이 부당하게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폭로전이 그것이다. 모두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이로 인해 대선의 판도가 달라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속인주의를 원칙으로 속지주의를 보충해 부모가 외국에 거주할 당시 출생할 경우 이중국적자가 된다. 한때 원정출산이 유행했던 것도 이중국적으로 남자아이의 경우 병역의무를 면제받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병역 기피형 국적 포기자를 막기 위해 2005년 국적법을 개정했다. 이른바 ‘홍준표법’으로 이후 이중국적 상태에 있는 남자들도 병역의무를 이행토록 했다. 이중국적자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고서는 국적을 이탈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직계존속이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체류할 당시 출생한 경우 18세까지 국적을 포기할 수 있다. 논란이 된 고위공직자의 자녀들도 국적법에 따라 이민, 영주권 획득 등의 과정을 거친 합법적인 국적 포기자들일 수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가 병역의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자녀를 그냥 지켜만 봤다면 국가관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공직을 떠나야 한다는 여론의 지적은 결코 과하지 않다. 2002년 병역을 고의로 회피한 가수 유승준씨가 지금까지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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