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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료 내린 한전·대기시간 줄인 서울대병원 만족도 ‘쑥’

    전기료 내린 한전·대기시간 줄인 서울대병원 만족도 ‘쑥’

    S·A등급 받은 기관 전년보다 18%↑ 고용정보원·강원랜드 등 21곳 최하폭염이 계속되던 지난해 전기요금을 내렸던 한국전력과 검사 대기 시간을 줄인 서울대병원 등이 공공기관 고객만족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획재정부는 28일 ‘2018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 22개 기관이 S등급, 107개 기관이 A등급, 95개 기관이 B등급, 21개 기관이 C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고객만족도 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평가는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을 유형과 핵심 기능에 따라 구분 지어 상대평가로 진행한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마사회, 한국관광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대한석탄공사 등이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반면 한국고용정보원, 강원랜드, 국제방송교류재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재정정보원 등은 최하인 C등급으로 평가됐다. 김유정 기재부 공공정책국 공공혁신과장은 “공공기관들이 서비스 품질 향상에 신경을 쓰면서 지난해보다 S등급과 A등급을 받은 기관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 S와 A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은 2017년 109곳에서 지난해 129곳으로 18.3% 증가했다. 특히 2017년 B등급을 받았던 한전은 지난해 여름 폭염 당시 ‘주택용 전기요금 할인’ 제도와 ‘희망검침일 제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A등급으로 올랐다. 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관련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미래 직업 랩’을 개관한 한국잡월드와 채혈·엑스레이 등 비예약검사에도 예약 시스템을 적용한 서울대병원 등도 B등급에서 A등급으로 등급이 올라갔다. 기재부는 조사 결과를 2018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하고, 공공기관경영정보시스템(알리오)에 통합 공시할 계획이다. C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에 결과를 통보해 다음달 말까지 개선 계획을 제출하게 하고 분기별 이행 실적을 점검하게 할 예정이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김태연 지사님, 이제 대한민국으로 모시겠습니다”

    “김태연 지사님, 이제 대한민국으로 모시겠습니다”

    한국으로 송환 예정인 독립운동가 김태연 지사의 유해가 28일 중국 상하이 창닝구에 위치한 외국인 공동 묘지인 만국공묘에서 태극기에 덮인 채 유해 운구차로 옮겨지고 있다. 유해 앞에는 외손자 조관길씨가 김 지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상하이 연합뉴스
  • 英 찰스 왕세자 부부 쿠바 첫 방문… 반체제 인사들과 회동 안 해

    英 찰스 왕세자 부부 쿠바 첫 방문… 반체제 인사들과 회동 안 해

    영국 찰스 왕세자와 부인인 카밀라 왕세자빈이 영국 왕실 일원 중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다. 찰스 왕세자 부부는 24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도착한 뒤 혁명광장에서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 영정에 헌화한 뒤 나흘간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쿠바비시온방송 등 현지 매체들은 이날 찰스 왕세자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악 스튜디오를 방문한 뒤 태양공원 등 재생에너지 현장, 유기농 농장, 생물 의학 연구소 등도 참관했다고 전했다. 찰스 왕세자는 평소 환경보호 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는 또 영국 클래식 자동차 소유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왕세자 부부는 이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주최 공식 만찬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라울 카스트로 공산당 총서기와는 만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찰스 왕세자는 또 이번 방문 기간에 공산당 일당 체제를 비판하는 반체제 인사들과의 면담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아 쿠바 출신 망명자들과 미국 보수 진영의 비판을 사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영국 왕실 대변인은 찰스 왕세자의 쿠바 방문에 대해 “양국 관계 증진과 문화 교류 확대를 도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는 이번 방문에 대해 “인권문제 등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쿠바에 대해 관여하려는 오래된 접근정책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오빠들 뮤비 속 그 장소로… 방탄 순례단

    오빠들 뮤비 속 그 장소로… 방탄 순례단

    방탄소년단(BTS)은 단순한 인기 아이돌 그룹을 넘어서 어느덧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전 세계에 산재한 팬들에게 위안을 주고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아이돌’을 통해 한복과 탈춤 등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기도 했던 방탄소년단은 그간 뮤직비디오 등 촬영지로 국내의 숨겨진 장소를 발굴해 오기도 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촬영지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지만 사진 한 장, 영상 한 컷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국내외 팬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진 것은 당연하다. 방탄소년단의 흔적이 스민 대표적인 촬영지를 돌아봤다. 지도에서 양주, 강릉, 제천, 청주, 부안 등 다섯 곳을 선으로 이어 보니 숫자 7 모양이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크게 틀고 이 ‘BTS 로드’를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봄날’ 뮤비 첫 장면 그대로… 양주 일영역 ‘봄날’ 뮤직비디오 첫 장면의 눈이 내리는 간이역. 뷔가 플랫폼 아래로 내려오더니 몸을 웅크려 철길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멀리서 봄을 싣고 달려올 기차를 기다리는 듯하다. ‘BTS 로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근교의 일영역이었다. ‘아미’라면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가장 먼저 떠올릴 곳이다. 경기 양주 장흥면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교외선상에 놓인 기차역으로 벽제역과 장흥역 사이에 있다. 1961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가 2004년 여객열차의 운행이 중지됐다. 이름 없는 수많은 간이역 중 하나였지만 2017년 방탄소년단 ‘봄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사시사철 팬들의 발길이 이어진다.일영역에 도착하자 안쪽에서 휴대전화로 재생한 듯한 ‘봄날’ 음악과 함께 밝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친구 세 명이 다양한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타타’(뷔가 만든 캐릭터) 인형과 ‘아미밤’ 덕분에 한눈에도 팬임을 알 수 있었다. 3년 전부터 방탄소년단 팬이 된 서은지(34)씨는 “뮤직비디오를 감명 깊게 봐서 오게 됐다. 팬들에게는 뜻깊은 장소”라며 웃었다. 팬이 아니라도 작은 간이역의 소박한 분위기를 느끼며 예쁜 사진 한 장 남기기에 손색없는 곳이다.일영역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장흥조각공원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 형형색색 개성을 뽐내는 40여점의 조각들 사이로 쉬엄쉬엄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공원 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제4회 뉴드로잉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다. 화가 장욱진의 예술정신을 재해석한 신진작가 80명의 작품 155점을 1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2층 상설전에서는 독창적인 조형세계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유 네버 워크 얼론’ 커버 속 버스정류장 재현… 주문진해변 ‘봄날’의 여운을 마저 느끼기 위해 다음 목적지 강원 강릉으로 이동한다. 서울양양고속도로로 한참을 달리다 양양에서 남쪽으로 꺾어진다.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다 도착한 곳은 주문진해변이다. 1.5㎞ 해변이 길게 이어진 이곳은 강릉 최북단 해변이다. 주문리와 향호리에 걸쳐 있어 북쪽 일부를 향호해변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은 타이틀곡 ‘봄날’이 들어 있는 ‘유 네버 워크 얼론’ 앨범 재킷 촬영을 이곳에서 진행했다. 해변 주차장 근처에 ‘BTS 앨범재킷 촬영장소’라는 안내만이 큼직하게 서 있다. 강릉시는 지난해 해수욕장 개장에 앞서 방탄소년단 앨범 사진 속 버스정류장을 설치했다. 국내외에서 찾아온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애써 찾아온 해변에 파도치는 바다와 백사장만 있었다면 괜스레 허무했겠지만, 똑같이 재현된 포토존 앞에 서자 사진 속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맑은 바다에 높게 일렁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거닐다 주문진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산시장 입구에 이르자 여유로운 해변과 대비되는 활기가 끼쳐온다. 대로변 양옆으로 늘어선 건어물 가게에서는 상인들이 쥐포, 황태채 등을 권하며 손님들을 부른다. 멸치, 홍합, 조갯살부터 큼직한 가오리까지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이 바싹 말라 있다. 안쪽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자 현대화되지 않은 진짜 전통시장이다. 복어, 오징어, 대게, 전복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수산물이 싱싱하다.●강릉까지 왔는데… 오죽헌·공방마을·카페거리는 들러야 강릉 시내 쪽으로 이동해 강릉의 역사를 대표하는 오죽헌에 들렀다. 5000원권 지폐의 인물 율곡 이이와 5만원권을 장식하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됐다.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기 새겨져 있다. 몽룡실이라고 이름 붙은 별당 건물의 방 한 칸은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곳이다. 신사임당 영정이 모셔져 있다. 너른 마당에는 율곡송, 율곡매, 사임당 배롱나무 등이 수호목 역할을 하며 수백년간 자리를 지키는 등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오죽헌 옆 율곡기념관에서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오죽헌에서 나와 바로 앞 예술창작인촌(공방마을)을 둘러본다.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예쁜 카페들이 모인 곳인다. 가게 수는 많지 않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지만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으로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언제부턴가 ‘커피의 도시’로 불리게 된 강릉에는 곳곳에 커피향 가득한 멋진 카페가 많다. 골목골목에서 나만의 ‘인생 카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영 포에버’ 속 질주 장면 배경 모산비행장 아쉬운 발걸음으로 강릉을 뒤로하고 충북 제천으로 떠난다. 방탄소년단이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려 한다. 방탄소년단이 최근까지 이어온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직전 ‘윙스’ 이야기가 양주 일영역과 강릉 주문진해변 등에 걸쳐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보다 앞선 ‘화양연화’ 시리즈의 무대들을 둘러볼 차례다.제천 모산비행장은 제천 시가지 북쪽 끝에 자리 잡은 면적 18만여㎡의 시설로 육군 5019부대가 관리한다. 동서 정방향으로 뻗은 활주로는 약 1.1㎞ 길이로 곧게 뻗어 있다. 군사시설로 건설됐고 전투기가 뜨고 내렸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관제탑 없이 활주로 부지만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쉬어갈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쓰이고 있다. 비행장 한 편에 인공구조물 설치 금지, 폐기물·쓰레기통 무단 방치를 금지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안내판이 서 있을 뿐이다. 다만 군사시설이라 내비게이션에서 ‘모산비행장’으로는 검색되지 않고 위성지도에는 논밭으로만 표시된다. ‘의림지동주민센터’로 검색해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활주로에 들어서자 ‘에필로그 : 영 포에버’ 뮤직비디오를 통해 익숙한 풍광이 펼쳐진다. 꿈을 가두는 철조망 미로를 헤치고 빠져나온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이곳에서 ‘넘어져 다치고 아파도/ 끝없이 달리네 꿈을 향해’라고 노래하며 힘차게 질주했다. 넓은 비행장 하늘 한복판에는 마침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수백 마리의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서쪽으로 저무는 저녁 해는 키의 세 배가 넘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청춘의 상처를 보듬는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이 머리에 스치며 어딘가 애달픈 정취를 자아낸다. 시민들은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보낸다. 동네 어르신들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활주로 주변을 돌며 운동하고, 개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활주로를 내달린다. 아빠는 어린 아들의 손에 드론 조종기를 쥐어 준다.●3분 거리 의림지·의림지파크랜드 들러 보기 모산비행장에서 차로 3분이면 닿을 거리에 제천 대표 관광명소인 의림지가 있다. 걸어서도 2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의림지는 둘레 18㎞, 수심 8~13m의 저수지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통한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리들이 잔물결을 내며 조용히 떠다니는 의림지 맞은편에서 방탄소년단의 ‘아이 니드 유’ 등 신나는 노래들이 시끌벅적하게 들려온다. 의림지파크랜드 바이킹에서 나오는 소리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어 만세를 부르고 즐거운 비명을 연신 내지른다. 1998년 개장한 놀이공원은 허름한 외관으로 마치 시곗바늘이 그 시절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범퍼카, 회전목마, 디스코팡팡 등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행복한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낫 투데이’ 청주연초제조창 복합단지로 탈바꿈 청주로 발걸음을 옮긴다. 평택제천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차례로 갈아타고 2시간쯤 달려 옛 청주연초제조창에 다다른다. ‘유 네버 워크 얼론’ 수록곡 ‘낫 투데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주차장과 건물 옥상이 이곳 연초제조창이다. 다만 낡은 옛 건물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비즈니스 복합단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바로 옆에 지난해 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헛걸음은 아니다.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1946년 경성 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개설된 뒤 58년간 담배를 생산했다. 이후 14년간 방치되다 공장 일부가 국내 최초 수장형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된 미술관은 수장공간 10개, 보존과학공간 15개를 구비하고 있다. 이곳의 독특한 점은 기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관하는 역할만 했던 수장고를 일부 개방해 관람객들이 수장된 상태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미술관들이 대개 백화점에 가지런히 전시된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이곳은 대형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듯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5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특별전 ‘별 헤는 날: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국내 유명작가 15명의 작품 23점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15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 ‘정상에 선 사나이’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산악인 고상돈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당시엔 전문 산악인이라는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고상돈은 이곳 연초제조창에서 일하며 등산활동을 이어 갔다. 영상은 일제의 담배 전매제도 도입, 국내 첫 양담배 생산, 직지심경 등 여러 이야기를 거미줄처럼 엮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인 청주관은 현재 기획전시실을 포함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도보로 20분가량 떨어진 수암골에서는 보다 소박한 미술 이야기가 이어진다.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골목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었다.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제인’ 등 여러 드라마의 주요 무대로 각광받았고 특색 있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섰다.●‘세이브 미’ 뮤비 배경 포토존 마련된 새만금홍보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전북 부안 새만금홍보관이다. 방탄소년단의 현란한 칼군무가 원테이크 기법으로 그려져 강한 인상을 남기는 ‘세이브 미’ 뮤직비디오가 새만금에서 촬영됐다. 홍보관 마당에는 이곳을 찾아오는 팬들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포토존 뒤편 울타리에는 멤버들의 이름과 ‘방탄 보라해’ 등 메시지가 빼곡히 적힌 리본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 이미 많은 팬들이 다녀갔음을 알려 준다.부안에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부안영상테마파크에 들러 봐도 좋겠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가 촬영됐는데 최근작으로는 ‘물괴’, ‘왕이 된 남자’, ‘백일의 낭군님’ 등이 있다. 4만 6000여㎡ 넓은 부지에는 경복궁·창덕궁 등 왕궁부터 기와촌, 평민촌, 공예촌, 저잣거리, 방목장 등 다양한 장소가 조성돼 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조선시대 한양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글 사진 양주·강릉·제천·청주·부안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 지리산 삼성궁(三聖宮)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 지리산 삼성궁(三聖宮)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神市)이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하였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 하편 > 다시 춘분 (春分)이다. 하지만 아직도 지리산(智異山) 깊숙한 골짜기에는 꽃샘 심술 가득한 겨울 바람이 드나든다. 여기에 더해 온 세상이 전부 '돌'로 이루어져 있다. 흡사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삐거덕 오래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든 시간이 ‘갑자기’ 바뀐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눈앞의 풍경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단군, 배달국,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 진조선, 고조선, 대가락국, 발해 등등 잊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태고사와 상고사의 한 장면이 돌탑과 솟대모양으로 펼쳐진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은 지리산 청학동 옆 삼성궁으로 가 보자.이곳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산 옆자락에 위치한 마고성 혹은 삼성궁으로 알려진 곳이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하동군에서 지원, 관리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지리산 구석에 위치하다보니 사람들 발길이 그리 잦은 곳은 아니지만 어쩌다 삼성궁 앞마당에 한 번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탄성 한 번 안 지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냥 딴 세상에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원래 삼성궁은 지리산 신선도장(神仙道場)으로 알려져 온 곳으로 ‘한풀선사’로 알려진 이 고장 출신인 강민주씨가 만든 곳이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83년 지리산 해발 850m, 부지면적 4만 3967㎡에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알리기 위해 삼한시대(三韓時代) 천신(天神)을 제사 지낸 장소인 소도(蘇塗)를 본 떠 삼성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삼성궁의 ‘삼성’은 환인, 환웅, 단군을 일컫는 말로 정확히 이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어이기도 하다.현재 삼성궁에서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민족이 6천 여 년 전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선무라고 알려진 아리랑 검법, 택견 등 전통 무예를 갈고 닦으면 일반인들도 우리 민족 고유의 얼과 천지화랑(天指花郞)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삼성궁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단연 수많은 돌탑과 솟대들이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돌탑과 솟대, 토기와 기묘한 모양의 토우, 조각, 옹기, 기왓돌 등 돌과 흙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죄다 모아 놓았다. 가는 길목 곳곳에 아주 작은 돌조각 하나에도 예술적 감성이 확실해서 허투루 대강 돌무더기를 쌓은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더불어 삼성궁의 본전(本殿)인 환인, 환웅, 단군의 영정을 모셔둔 건국전, 태극 모양을 지닌 연못, 길목 군데군데 기묘한 모양의 부조들은 지리산 산행의 의미를 더더욱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봄에는 삼신제, 가을에는 개천대제, 겨울에는 고로쇠 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도 열리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의식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도 마련해 준다. <지리산 삼성궁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당신의 인생에서 한 번은 가 봐도 좋을만한.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 3. 가는 방법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삼성궁 -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청학동행 버스 이용 가능. 4. 감탄하는 점은? - 온 세상이 돌로 만든 듯하다. 돌로 만든 돌탑과 솟대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볼거리에 비하여 관람객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 6. 꼭 봐야할 장소는? - 갖가지 기묘한 형태의 돌탑과 솟대들. 연못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청학동 마을회관 주변에 가면 식당이 많다. 솔바람식당, 포란정, 성남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bdsj.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청학동, 최참판댁, 화계장터, 섬진강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하동군에서 관리, 지원하는 곳이어서 종교적 색채보다는 관광지로서의 특색이 더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한 풍경과 개성을 지닌 장소로 한 번은 방문을 해도 좋을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발인…말없이 장례식장 떠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발인…말없이 장례식장 떠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씨 부모의 발인식이 20일 경기도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8시 20분쯤 유족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각각 이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영정을 들고 장례식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운구차 2대로 향했다. 검정색 상복을 입은 이씨와 동생은 침통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발인에 참석한 유족과 지인 등 30여명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거나 흐느꼈다. 이들은 각 시신이 운구차에 오르자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취재진 2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씨 형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차량에 올라 자리를 떠났다.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이씨의 불법 투자유치 등과 관련된 피해자들로 인한 소란은 없었다. 이씨는 지난 18일 부모의 장례 절차 준비 등을 위해 재판부에 신청한 구속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 당일 오후부터 빈소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회사를 세워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7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매매하고 시세차익 약 130억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2016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같은 해 4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현재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이씨의 구속 정지 기한은 오는 22일 오후 9시까지이며 이 시간까지 수감 중인 구치소로 돌아가야 한다. 범행에 가담한 동생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구속 기간 만료로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형제는 항소해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씨의 부모는 지난 16일 안양시 자택과 평택의 한 창고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강도살인 혐의를 받는 김 모(34)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이날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열린다. 공범인 중국 동포 A(33)씨 등 3명은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손바닥만한 작은 영정 받아든 유가족들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달라” 마지막 당부 영정 실은 버스 광장 한바퀴 돈 뒤 시청行 서울시 청사 지하 4층 서고에 임시 보관 “분향소 철거, 끝이 아닌 진실규명의 시작” “우리 아들 딸들아, 저 조그만 사진 틀 안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아가들아. 엄마 아빠 가슴에 안겨 이제 잠시만 집으로 가자. 이곳에서 밥을 굶고, 머리를 자르고, 눈물과 절규로 하루하루를 보낸 우리 엄마, 아빠들 지켜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집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오자. 우리를 지켜준 모든 분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집에 가자.”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혼사를 읽어내려가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어 안산 단원고 학생들부터 희생자 289명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유가족들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분향소 앞으로 나와 사진을 받아들었다. 손바닥 만한 액자 속 가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 유족들은 영정을 천으로 닦은 뒤 검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이날 이안식을 시작으로 18일까지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은 모두 철거된다. 2014년 7월 처음 설치된 이후 4년 8개월 만이다. 5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 온 영정들이 1시간 30분에 걸쳐 모두 떼어지는 동안 노란색 옷을 입은 시민들은 영정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안식이 끝나고 영정을 담은 상자를 태운 버스는 수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던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돈 후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추모 낭독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힘이 든다”면서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공간임을 잘 알기에 이안식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며 다시 한번 안전한 국가를 소망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추모 발언에서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천막은 촛불 항쟁의 발원지이자 중심지”라며 “분향소를 닫는 것이 끝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한 언론, 폭식 투쟁했던 ‘일베’ 회원, 옆을 지나가며 욕설을 퍼붓는 태극기 부대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안식에 앞서 종교인들도 가족들을 위로했다. 명진 스님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음을 알려줬다”며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이 광장에서 울었던 모든 날들, 꿈꾸고 희망했던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 기억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은 참사 3개월 만인 2014년 7월 14일 처음 설치됐다. 당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단식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동시에 단식에 돌입하면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참사와 진상규명 필요성을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해왔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 벌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해 8월과 9월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이 단식을 조롱하며 농성장 코앞에서 음식을 먹는 ‘폭식투쟁’을 벌이는 등 유족들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광화문 떠나는 289명의 슬픔

    광화문 떠나는 289명의 슬픔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내 희생자 영정이 천막 설치 4년 8개월 만에 옮겨졌다. 서울시는 18일 오전 10시부터 세월호 천막을 철거한 뒤 현 분향소 자리에 ‘기억·안전 전시공간’을 조성한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17일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 289명의 영정을 옮기는 이안식(移安式)을 개최했다. 전체 희생자 304명 중 미수습자 9명과 초기에 유가족이 영정을 가져간 6명을 제외한 289개의 영정이 분향소에 있었다. 이안식에는 희생자 가족, 종교단체,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추모했다. 사회자의 고인 호명 때 희생자 가족이 나와 영정을 받았다. 영정은 천막 앞에서 검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겼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호명하자 희생자 가족들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영정을 실은 차는 광장을 한 바퀴 돈 뒤 시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영정은 신청사 지하 4층 서고에 임시 보관된다. 유족들은 영정을 어디로 모실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가족협의회 측 관계자는 “시민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든든한 힘이 됐고, 쓰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4년8개월 만에…세월호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 떠났다

    4년8개월 만에…세월호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 떠났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내 희생자 영정이 천막 설치 4년 8개월 만에 옮겨졌다. 서울시는 18일 오전 10시부터 세월호 천막을 철거한 뒤 현 분향소 자리에 ‘기억·안전 전시공간’을 조성한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17일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 304명의 영정을 옮기는 이안식(移安式)을 개최했다. 이안식에는 희생자 가족, 종교단체,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추모했다. 사회자의 고인 호명 때 희생자 가족이 나와 영정을 받았다. 영정은 천막 앞에서 검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겼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호명하자 희생자 가족들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영정을 실은 차는 광장을 한 바퀴 돈 뒤 시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영정은 신청사 지하 4층 서고에 임시 보관된다. 유족들은 영정을 어디로 모실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가족협의회 측 관계자는 “세월호 광장 안에 있는 어느 것 하나도 시민 여러분의 손길과 체취가 깃들지 않은 게 없다”며 “시민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가족협의회에는 든든한 힘이 됐고, 쓰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울시가 다음달 12일 공개하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은 원래 천막의 절반인 79.98㎡ 규모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참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고 안전의식을 함양하는 상징적 장소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일정을 고려해 우선 올해 말까지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이후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유가족 측과 협의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서울포토] 영정 어루만지며…

    [서울포토] 영정 어루만지며…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 앞에서 304명의 영정을 서울시청 서고로 옮기는 ‘이운식’이 열리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광화문광장 떠나는 영정

    [서울포토] 광화문광장 떠나는 영정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에서 304명의 영정사진을 서울시청 서고로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되고 있다. 분향소 자리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조성돼 다음 달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눈물 흘리는 유가족

    [서울포토] 눈물 흘리는 유가족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 앞에서 304명의 영정을 서울시청 서고로 옮기는 ‘이운식’이 열리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서 떠난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서 떠난다

    세월호 천막 철거를 하루 앞두고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안식이 열렸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오늘(17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 304명의 영정을 옮기는 이안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희생자 가족과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추모했다. 먼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과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추모 낭독이 이어졌다. 박 소장은 “304명의 영정을 빼고 분향소를 닫는 것이 끝이 아니다.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힘이 든다”면서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공간임을 잘 알기에 이안식을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영정을 옮기는 절차가 진행됐다. 사회자가 고인을 호명하면 희생자 가족이 나와 영정을 받았다. 사회자가 단원고 반별로 희생자들을 한 명씩 호명하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영정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서고에 임시 보관될 예정이다. 분향소 천막 14개 동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철거된다. 철거가 끝나면 이곳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된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경제 ‘역풍’을 피하려면/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경제 ‘역풍’을 피하려면/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지난 12일 한국 정부와 정책 협의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에 강력하게 ‘중단기적 역풍’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과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 관심을 끈다. IMF의 지지가 정책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제안은 ‘포용국가’의 목표정합성 측면에서 엄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불리던 IMF가 한국 정부에 9조원의 추경 편성을 포함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기관으로 변신한 상황에서는 당연하다. 이는 2022년까지 주로 재정을 통해 모든 국민이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사회정책 비전과도 상통한다. 다만 IMF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재정적자를 통한 지출 증대를 시사하면서 증세에 거리를 취한 점은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다. 2018년에만 25조원이 넘는 초과세수를 거둔 정부에 당장은 지출 증대가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추경의 정례화에 대한 비난은 물론 증세 없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부담될 수 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증세를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은 수십 년 된 IMF 권고에 속한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론화됐지만 현실에서는 유연성만 실행됐고, 안정성은 ‘철밥통’으로 폄하됐다. 현 정부 들어 고용난이 심화되면서 유연안정성 의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IMF 협의단의 기자회견과 같은 날 국회 연설에서 덴마크 모델을 언급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상황에서 이 모델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덴마크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이 한국 경사노위의 현주소에 비추어 볼 때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변경이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의 확대에서 보듯 위원회의 운영 실태가 ‘주고받기’의 타협이 아니라 노조에 대한 압박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주노총에 오히려 불참의 안도감을 심어 주고 있다. 더욱이 경제 활력이 기업 지원과 등치되면서 ‘노동존중’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통령이 “기업과의 활발한 접촉”을 지시하자마자 경제보좌관이 경총에 가서 “20대는 물론 30~40대도 동남아시아 가라”는 망언을 한 것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친기업’ 행보는 경사노위에 대한 노조의 불신을 가중시켜 경사노위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덴마크 모델은 엄밀히 말하자면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에 관한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복지 기반 생활안정의 결합이다. 이 모델은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많아지면 실업수당 지급은 증가하지만, 세수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34조 ②항에도 불구하고 복지 증대에 관한 사회적, 정치적 합의가 없는 현실도 걸림돌이다. 해고의 자유와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맞교환된다면 그것은 현찰과 어음의 부등가 교환이 될 것이다. 덴마크 모델에서는 정부의 능동적인 일자리 정책이 세 번째 구성 요소이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 정부의 실적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덴마크 모델의 도입은 비정규직을 전면화해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결국 성장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대안은 기업 내부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정성을 실현하는 독일 모델을 기본으로 경사노위에서 ‘한국형 유연안정성 모델’에 합의하는 것이다. 유연성은 해고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고용은 최대한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임금이 줄어든 노동자는 기왕에 초과 근무시간을 적립해 둔 노동시간 계좌에서 시간을 인출하거나 사회정책으로 지원을 받아 생활안정도 기대할 수 있다. 노사 협력의 전통이 거의 전무한 한국 경제에 이 모델을 도입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을 완화하고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건설하려면 시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광화문 ‘세월호 천막’ 18일 철거…‘기억공간’으로 재탄생

    광화문 ‘세월호 천막’ 18일 철거…‘기억공간’으로 재탄생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4년 8개월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켰던 일명 ‘세월호 천막’이 오는 18일 철거된다. 빈자리에는 추모시설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세월호 유족들의 철거 의사에 따라 오는 18일 오전 10시부터 천막 14개동 철거를 시작한다고 14일 밝혔다. 세월호 천막과 분향소가 있었던 자리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기억공간)이 설치된다. 이 공간은 다음 달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목조 형태인 기억공간은 현 분향소 위치(교보문고 방향)에 79.98㎡ 규모로 조성된다. 이는 현재 세월호 천막의 절반 규모다. 서울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고 안전의식을 함양하는 상징적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기억공간은 전시실1, 전시실2, 시민참여공간, 진실마중대 등 4개로 구성된다. 전시실1에는 ‘기억을 담은 오늘’을 주제로 터치형 인터랙티브 조명 작품이 설치된다. 전시실2에는 ‘내일의 약속’을 주제로 한 영상, 애니메이션, 키오스크(KIOSK·무인 정보 단말기) 작품이 들어선다. 시민참여공간은 ‘그날의 기억’을 주제로 한 그래픽 디자인과 그림을 10인치 모니터를 통해 구현한다.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기억공간 재개관으로 더 많은 시민이 함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과 미래를 공유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천막 철거 시작 하루 전날인 오는 17일 세월호 유족들은 천막 안에 있는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을 진행한다. 영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의식은 ‘이안식’이라 부르지만, 유족들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이운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약 300개의 영정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서고에 임시 보관될 예정이다. 한편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다음 달 12∼14일 광화문 북측광장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추모문화제, 콘퍼런스, 전시 등이 펼쳐진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죽음, 두렵지요 하지만 ‘끝’은 선택하고 싶어요

    죽음, 두렵지요 하지만 ‘끝’은 선택하고 싶어요

    모두에게 죽음은 두렵다. 인간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닫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종교가 생기고 철학이 발달한 이유다. 의료기술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자 또 다른 두려움도 생겼다. 병상에 누워 주렁주렁 의료기기를 달고, 고통과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공포다. 억지로라도 생명을 늘리려다 보니 존엄하지 않은 마지막 삶을 강요받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암 환자 3명을 만났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무엇이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지를 물었다.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그간 삶에서 숱한 선택을 스스로 해 왔듯이 죽음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지 되물었다.■간암 투병 중인 73세 황정숙씨 2007년의 일이었다. 부엌에서 갈비탕을 끓이던 황정숙(73·여)씨는 갑자기 하혈을 하며 쓰러졌다. 동네 병원에선 “암인 것 같은데, 좀 애매하다고”만 했다. 대학병원에서 대장 기스트(GIST·희귀 암의 일종)라는 걸 알게 됐다. 영정사진을 찍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건강을 회복한 듯했다.하지만 2015년 다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 간을 3분의1이나 잘라 냈다. 또 암세포가 번질지 모르니 항암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항암제를 먹었던 8개월 황씨는 죽는 게 낫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이 퉁퉁 부었다. 손바닥은 갈라져 피가 났다. 하는 수 없이 장갑을 끼고 살았다. 급기야는 발바닥까지 망가져 걸을 수가 없었다. “설설 기어다녔어요…. 사는 게 아니었죠. 그런데 다른 환자가 그 약을 먹은 뒤에도 병이 심해져 결국 죽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먹지 말자’. 독한 약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삶 살아서 뭐해요.” 황씨가 항암제를 끊은 지 벌써 3년이 됐다. 다행히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가끔 배가 아프긴 하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병원에 가라고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황씨는 병이 심해지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더라도 항암제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진통제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삶을 마칠 생각이다. “물론 저도 죽음이 두려워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끝’도 결국 제 삶의 일부예요. 가족들과 즐겁게 살았던 때를 생각하며…, 내가 갈 때를 알고 준비도 하면서…, 잘못한 일 있으면 회개도 하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약으로 연명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황씨는 얼마 전 14년간 키우던 개를 안락사시켰다. 자식 같이 키우던 개라 끝까지 돌보려 했지만 수의사가 안락사를 권했다. 수의사는 “개가 말기암 환자보다 고통이 심할 것”이라며 “안락사시키는 게 개를 위하는 길”이라고 했다. 황씨는 결국 펑펑 울며 승낙했다. “저도 주사 맞으며 자는 것처럼 편하게 가고 싶어요. 개도 안락사를 할 수 있는데 사람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해요.” 황씨는 처음엔 가명 인터뷰를 원했다. 하지만 실명으로 이야기하는 게 더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하자 흔쾌히 응했다. “꼭 가족 품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건 아닙니다. 혼자 있는 곳에서 가도 상관없어요. 다만 제 죽음만큼은 제가 관리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안락사를) 끝내 허용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나라가 제 삶의 질을 책임질 거 아니면 마감을 선택할 권리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25년 암과 싸우는 66세 정판배씨 “젊을 때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눈앞에 닥치니 너무 두렵고 캄캄하더라고요.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서 보니 죽음을 미리 준비하게 됐어요. 다음엔 좀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임종 전 고통이 심한 환자에게는 안락사도 필요하다고 봐요.”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정판배(66)씨는 지난 25년간 암과의 전쟁을 치러 왔다. 1994년 마흔 한 살에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상상도 못했죠.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니 세상이 무너지더라고요.” 당시 정씨는 육군 중령이었다. 정기 건강검진에서 암덩어리를 발견했다. 당시 위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에 해당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위 전체를 절제해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암은 이후에도 정씨 곁을 맴돌았다. 수술 5년 뒤엔 만성골수성 백혈병이, 그 뒤엔 대장암이 생겼다. “수시로 팔다리에 마비와 경련이 와요. 마비가 오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손을 집어넣어요. 그래야만 풀리거든요.” 정씨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하고, 늘 부어 있다.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부와 뼈는 유리처럼 약해졌다. 뭔가와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나고 다친다. 언제 경련이 올지 몰라 응급처치를 위해 뿌리는 파스를 두 통씩 들고 다닌다. 10년 넘게 복용 중인 백혈병 치료제 부작용이다. 수술 후유증도 심각하다. 시시때때로 음식물과 담즙이 식도까지 올라오는 통에 정씨의 목은 항상 헐어 있다. 수술 후엔 한 번도 반듯하게 누워 본 적이 없다. “또다시 병이 찾아오면 치료를 하지 않고 편안한 임종을 맞을 겁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과 고통 속에 사는 날을 하루하루 연장하는 건 이제 저에게 무의미해요.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결심이 더 확고해졌어요.” 지난해 어머니의 죽음은 정씨가 존엄한 죽음을 결심하는 큰 계기가 됐다. 당시 아흔 넷인 어머니는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피부가 괴사했다. 다리가 썩어 들어갔지만 노모는 고통조차 제 입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매일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노모는 결국 고통 속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정씨는 담즘 역류를 완화해 주는 수술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만 발버둥 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죽는 건 개인의 주관대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그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저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게 내가 꿈꾸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기스트 고위험 앓는 40세 이지연씨 “일상이 갈등의 연속이에요. 다시 병이 안 나려면 적당히 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씩 좋아지니까 더 일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이러다 병나겠네, 하면서 조심하게 되고…. 아프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들을 항상 하게 돼요.” 지난달 16일 만난 기스트(희귀성 암의 일종) 고위험 환자인 이지연(40·여)씨는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에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서 “그게 건강한 사람과 아파 본 사람의 차이”라며 입을 뗐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이씨는 매일 아침 6시에 나와 운동하고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했고, 주말에는 승마, 골프, 보드 등 취미 생활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병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2015년 초 갑작스레 쓰러져 실려 간 병원에서 기스트 진단을 받았다. 위에서 생긴 종양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1년간 약물치료를 한 뒤 이듬해 위 전체와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극심한 고통은 정작 수술 이후 시작됐다. 1년 내내 구토와 설사가 반복됐다. 어지러워서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너무너무 아프니까 병원에 왜 창문이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이해했어요. 지켜보는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못 버텼을 거예요.” 1년여에 걸친 재활 끝에 건강을 다소 회복했지만 삶에 대한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이씨는 “다음에 또 병이 재발하면 그땐 수술 대신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미혼인 이씨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돌봄이나 경제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는 “언젠가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제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면서 “정신이 있을 때 제가 제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락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통이란 자체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사회가 내 고통의 경중을 따지거나 판단한다는 게 좀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스위스행’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병을 앓는 지인에게 ‘스위스에선 외국인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서 외려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전 여기 있으면 그냥 고통스럽게 죽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언제든 제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2016년 6월 19일 저녁 부산 금정구의 한 빌라. 노부부는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한 낡은 빌라에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 할머니의 여든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근처에 사는 둘째 아들이 고기를 사들고 왔다. 할머니가 호호 불어가며 할아버지(당시 85)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삼킬 수 있는 건 단 두 점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맛나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많이 아팠다. 위암 4기였다. 2011년 이 몹쓸 병이 덮쳤다. 수술을 받고 나은 줄 알았는데 재발했고, 식도와 십이지장까지 번졌다. 의사는 위 전체를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해야 하는데,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두 달 만에 15㎏이 빠졌다. 낮에는 걸을 힘이 없어, 밤에는 배를 찢는 고통에 바닥을 기었다. 64년간 해로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가요. 당신 없이 혼자 남겨지기 싫어요.” 잔칫상을 물리고 아들마저 돌아간 밤 10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둘 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을 잡고, 각자 영정을 팔에 낀 채, 마지막 잠에 들었다. 노부부는 한날한시에 떠났다. 어느덧 석 달 뒤면 탈상(脫喪)이지만 늙은 아들은 아픈 기억을 털어내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살며 매일 문안을 왔던 둘째 아들 김영성(59·가명)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미 숨을 거둔 부모를 처음 발견해 신고한 이도 그였다. “처음 위암이 발병했을 때는 바로 수술도 받고, 억지로라도 음식 삼키게 하는 약까지 먹어가며 밥 드셨어요.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하니까 두 분 다 충격 많이 받았죠. 그때 그 표정은 평생 못 잊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졌다. 가장 큰 고통은 먹지 못하는 괴로움이었다. 새 모이처럼 잘게 썬 것만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죽이 아니면 씹다가 내뱉는 게 대부분이었다. 협심증까지 덮쳤고, 종종 심근경색 증상이 왔다. 1931년생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었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자식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을 건냈다. “이제 그만 내를 놔도….” 침묵이 흘렀다. “근데 걸리는 건 느그 엄마다. 자꾸 같이 가자고 안 카나…. 만다꼬 그래쌌는지 모르긋다. 니가 쫌 어뜨케 해봐라.”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들 내외와 좀 더 살며 남을 생을 누려주길 바랐다. 두 사람은 전쟁 통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후 공무원으로 일하며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다. 할머니는 걱정이 많고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와 이리 쓸쓸하노’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듬직한 남편인 할아버지를 의지하며 정성껏 세 아들을 길렀다. “내 나이가 인제 팔십인데 느그 아부지까지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노. 내 친구 중에 살아 있는 아는 아무도 없다. 이 정도면 천수 누린거다. 그카고 맨날 토하는 이 병, 니는 안 겪어봐서 모른다. 하루종일 뱅기(변기) 붙들고 토악질해봐라. 딱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읍따.” 할머니도 아팠다. 젊어서부터 메니에르병을 앓았다. 귓속 달팽이관이 부어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가 이어졌다. 처음엔 단순히 체한 것인 줄 알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게 이상해 병원에 가보니 치료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건강할 때는 그래도 버틸만 했지만, 나이가 드니 병은 마치 달거리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흘 내내 지속했고, 후유증으로 열흘은 누워 있어야 했다. 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자고 권했다. 노부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있는 건 딱 하루도 싫다. 고마 마음 편히 내 집에 있다 때 되면 갈 꺼니까 걱정하지 말그라. 몬 참아가 모르핀(마약성 진통제) 맞아야 하믄 때가 온 기다.” 노부부는 하나둘 작별할 준비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옷 한 벌씩을 꺼내 입고 사진관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베이지색 남방, 할머니는 분홍색 재킷을 골랐다. 입체(3D) 사진을 찍고서 두 사람의 모습을 20㎝가량의 작은 인형으로 만들었다. 인형 속 두 사람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답지 않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적금도 해지해 아들들에게 나눠줬다. 마지막 목욕을 하고 하얀 종이에 글을 적었다.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열렸던 그날, 노부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고기를 들고 온 아들에게 숯불로 구워먹고 싶다며 번개탄을 사오라고 했다.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오후 8시쯤이었다. “제가 종종 어무이 곁에서 자거든요.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품을 더 느껴보고 싶어가…그날도 그랄라고 했는데, 자꾸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노부부가 숨을 거둔 건 아들이 떠나고 2시간쯤 뒤로 추정된다. 지난 2년간 조금씩 모아왔던 수면제를 함께 입에 넣었다. 고기를 굽다 남은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메스꺼운 연기가 시커멓게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고통 없이 떠나는 방법으로 번개탄을 선택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듯했다. 몸부림친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싶었던 노부부 바람과 달리 아들은 곤욕을 치렀다. 부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번개탄을 사다 놓은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아들은 집에 가지 않고 노부부 집 옥상에 있는 의자에 3시간 반가량 앉아 있었다. 오후 11시 30분쯤 노부부가 잠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함께 자려는 생각으로 내려갔다가 참사의 현장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게 아들이 노부부의 자살을 예견했던 정황증거라고 판단했다. 아들은 “평소에도 자주 옥상에 있다가 내려갔고, 부모님이 이렇게 돌아가실지는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아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적 공방에 지친 아들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서 아들은 아내와 함께 노부부의 집으로 이사했다. 노부부가 숨을 거둔 방을 침실로 사용한다. “저한테는 이 집이 슬프면서도 추억이 어린 장소예요. 맨날 이 문을 열면 두 분이 웃는 얼굴로 앉아 계셨는데…. 텅 빈 방을 보고 있으면 제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내한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안락사가 허용됐다면 노부부는 좀 더 편히 떠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원할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땐 가족 동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영양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나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노부부가 세상을 떠났던 2016년엔 존엄사법도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고,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아들은 우리 사회가 안락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제가 (부모 죽음을 바랐던) 패륜아처럼 보입니까? 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더 사셔야 한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두 분께 또 다른 괴로움을 주는 거였어요. ‘죽기 전까지 고통을 더 참으라’는 말과 같은 거니까. 죽음을 보는 사회 인식도 이제 많이 바뀌었잖아요. 공포나 두려움, 소멸 이런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저는 몹쓸 병에 걸린다면 주저 없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할 겁니다. 본인의 죽음을 과연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공론의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부산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부산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광화문 세월호 천막, 내주 자진 철거…기억공간 들어선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 내주 자진 철거…기억공간 들어선다

    세월호 유족이 이르면 내주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천막을 자진 철거한다. 2014년 7월 14일 천막이 광장에 처음 들어선 지 약 1700일 만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서울시는 광장에 현재의 절반 규모로 추모 시설물을 설치해 참사 5주년인 내달 16일 이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갖고 서울시의 ‘세월호 추모기억 전시공간’(기억공간) 설치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시는 조만간 광화문광장 소재지인 종로구에 가설물 설치 인가를 신청하고 이달 15일 전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새롭게 들어서는 기억공간은 현재 광장 하단에 좌우로 7개씩 늘어선 천막 중 오른쪽 천막들의 위치에 비슷한 크기로 들어선다. 목조로 만들어지는 기억공간 내부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각종 전시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월호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앞선 대형참사를 기억하고 시민의 안전의식을 일깨우는 콘텐츠를 넣는 방안도 검토된다. 기억공간 공사를 위해 세월호 유족은 곧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을 하고 직접 천막을 철거하기로 서울시와 최근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기억공간이 임시 시설이라는 서울시와 공간을 상설화해야 한다는 유족 간의 입장차는 아직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억공간 운영 기간은 올해 중 유족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뉴욕 한국문화원에서는 처음으로 3·1운동 기록물 전시회가 열리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이날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앞 다그 함마르셸드 광장에서 100년 전 3·1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열렸다. 영하까지 떨어진 쌀쌀한 날씨임에도 3·1운동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400여명의 한인 동포의 열기가 이어졌다. 여성 참가자들은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유관순(1902~1920) 열사의 100년 전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그대로 재현했다. 또 이마에 태극기 문양을 새긴 머리띠를 두른 어르신, 고사리손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어린이 등은 한목소리로 아리랑과 ‘3·1절 노래’를 합창했고, 이어 기미독립선언문 낭독도 이어졌다. 이들은 맨해튼 1번 애비뉴 47번가부터 수십m 떨어진 주유엔 한국대표부가 있는 45번가까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도 했다. 특히 뉴욕 퀸스에 거주하는 유관순 열사의 조카 손녀 유혜경(54)씨가 유관순 열사의 대역을 맡아 만세 삼창의 선창을 맡았다. 유씨는 “유관순 열사의 조카 손녀로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유씨는 유관순 열사 친동생인 유인석씨의 손녀다. 또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 재학 중인 한인 2세 생도들과 이날 만세운동 재현에 필요한 태극기와 한복, 머리띠, 유관순 열사 영정 등을 지원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세종·충남지회, 천안시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뉴욕 한국문화원에는 치열했던 100년 전 3·1운동 역사 기록물이 전시됐다. 문화원은 4월 26일까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고 이날 밝혔다. 전시 주제는 ‘함께하는 대한민국 100년’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독립운동 시작, 미주 이민과 독립운동, 3·1운동 배경·과정·영향, 임정 수립·활동 등으로 치열했던 항일운동 역사를 느낄 수 있다. 한편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은 2일 정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헤이그 시내 이준열사기념관에서 열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된 해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활약상을 되새길 전국의 역사적 장소들이 후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짙게 배인 7개 지역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우리 근대사가 기억하는 선조들의 뜨거운 함성과 눈물에 귀 기울여볼 때다.① 서울 독립문… 역사박물관·경희궁 등 일제강점기 흔적 서울에는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을 전시한다.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아픈 역사가 서린 궁궐이다.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이 거주했던 궁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상이었다. 경희궁을 나서면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이 금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도심재생예술을 입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 등으로 시간 여행이 이어진다. 3·1운동 열사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딜쿠샤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 서울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위창 오세창 넋 기린 곳 망우리공원은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소파 방정환 등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연보비를 읽다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9월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이곳은 20년 전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25만여평)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는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숲이 우거져 고즈넉한 곳에 5.2㎞ ‘사색의 길’도 조성됐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③ 충북 괴산 홍범식 고택… 1919년 1500명의 함성 생생히 독립운동가 홍범식은 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탄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택에 들어서면 홍명희가 3·1운동을 준비했다는 사랑채를 만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1500여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안채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봤다면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괴산호의 절경이 아름다운 연하협구름다리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④ 충남 천안 유관순 생가와 7개 전시관 있는 독립기념관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높이 51m ‘겨레의 탑’과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를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자료와 체험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주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핑 공간에는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시설이 있어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병천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체포돼 옥사할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했다. 가까운 곳에 그의 영정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⑤ 전남 완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본섬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소안도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린다. 함경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땅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객선 이름부터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이곳이 어떻게 항일운동 성지가 됐는지 알 수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과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을 알게 된다. 인구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도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성지였음을 뒷받침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해변 등도 소안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다.⑥ 경북 안동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지사의 투쟁사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사를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유림이 생겨났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고문시설인 벽관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흥미롭다. 기념관을 나서면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생가 등이 있다. 안동의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임청각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가까운 월영교의 밤경치도 놓치면 아깝다.⑦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도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밀양은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으로 항일 독립운동 요람이다. 의열단은 식민지배자와 민족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 등 식민지배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모든 투쟁의 배후에 김원봉이 있었다. 김원봉이 태어난 집터에 지난해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영상과 자료들로 그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대는 밀양의 만세운동으로부터 태극기 변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이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밀양 관아지와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되는 장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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