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거상 여불위」진시황 生父 파란많은 일대기
중국 진(秦)나라의 재상이자 섭정왕으로 천하에 권세를 떨친 ‘왕관 없는왕’,재사(才士)와 능사(能士)를 모으고 군대와 정권을 장악하는 법을 알았던 지략가,시공을 초월하는 고전 ‘여씨춘추’의 편찬자,한 시대를 풍미한권력가였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 죽음을 강요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여불위(?∼BC 235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최근 솔출판사에서 펴낸 ‘거상 여불위’(정 시앙밍 지음,김하림 옮김)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의 생부 여불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역사소설로 관심을 모은다.
여불위는 한(韓)나라 양책(陽翟,지금의 허난성)의 상인으로 중국의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실업가다.어느날 여불위는 조나라 수도 한단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그곳에 인질로 잡혀 있던 진나라의 서공자(庶公子) 이인(異人,훗날의진 장양왕)을 만난다.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임을 간파한 그는 상인 특유의 지략과 수단을 발휘,이인을 앞세운 정권찬탈의 대장정에 나선다.10여년에 걸친 장대한 계락 끝에 이인을 왕으로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 13년동안 재상을 지내면서 전국시대 말기 제후국 중 가장 강대했던 진의 실제 통치자로군림한다.여불위는 장양왕의 옹립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영정(영政,훗날의 진시황)을 임신한 애첩 조희를 장양왕의 정실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핏줄이 대국을 통치하는 세상을 실현한다.그러나 여불위는 결국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아들 진시황에게 죽음을 강요당한다.
이 소설은 ‘여불위는 진시황의 친아버지였다’는 전제에서 출발,역사의 이면에 가려진 여불위의 흔적을 좇는다.여불위는 10년동안 진나라의 왕관없는왕 노릇을 하며 조야(朝野)를 뒤흔들었다.그러나 여불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이 소설엔 한낱 보석상에 불과했던 여불위가 진나라 재상직에 오르고 한족의 역사를 새로 쓰도록 하기까지의 거침없는행적이 그대로 묘사돼 있다.특히 ‘일자천금(一字千金)’의 수를 동원해 전국의 인재들로 하여금 ‘여씨춘추’를 편찬하게 하는 과정,정국거(鄭國渠)란 대수로를 만들게 되는 이야기,열두살짜리 사자 감라를 기용하는 배짱,조희의 손아귀에 가짜 내시 노애를 들여보내는 대목 등은 독자들에게 소설 읽는재미를 안겨준다.
작가에 따르면 여불위는 악비 같은 영웅도,진회 같은 매국노도 아니다.이원·조고 등이 국가의 죄인·방탕아·소인배로 지탄받았던 반면 여불위는 국가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토를 넓히는 등 업적을 남겼다는 것.다만 여불위의 잘못은 음모를 꾀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체했고,진 왕의 혈통을바꿨으면서 바꾸지 않은 체한 ‘거짓’에 있다는 게 작가의 견해다.작가는여불위가 ‘사기’의 ‘열전’에는 들어있지만 ‘세가’에 기록되지 못한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라고 밝힌다.
역자인 김하림교수(조선대 중국학과)는 “진시황이 왕위를 계승할 때 그는겨우 13세의 어린 아이였다.진나라의 정책이나 제도의 대부분은 여불위가 나이 어린 진시황 대신 진나라의 섭정왕으로 군림하면서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었다.진시황은 이를 계승 발전시켰을 따름이다.그런 점에서 여불위는 보다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김종면기자 j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