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아,옛날이여
“서울 세종로의 차량 증가 비율만큼 늘어난 골퍼들로 주말 골프장은 마치 명절 전날의 대중탕처럼 혼잡하고,서울 인근의 골프장은 주중에도 200여 명이 늘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984년 발행된 최영정의 ‘18홀’이라는 골프 칼럼 모음집에 실린 글이다.그 시절에 차량의 통행이 제일 많은 도로는 종각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세종로였고,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추석이나 설 전날이면 묵은 때를 벗겨내려고 대중목욕탕을 찾았다.2004년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차량증가 비율의 기준을 ‘세종로’로 잡고,혼잡의 잣대를 ‘명절 전날의 대중탕’에 들이댔다는 사실은,참으로 고색창연한 비교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80년 대 후반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골퍼의 태평성대였다.친구와 둘이서 라운드를 하면서 구불구불 펼쳐진 산 아래쪽 홀들을 굽어다 보면,우리들처럼 둘이나 혼자서 라운드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았다.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한 시간도 넘게 골프장에 늦게 도착했음에도,내 앞 시각에 티샷을 해야 할 다른 골퍼들도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한 탓에,나는 첫 홀부터 라운드를 한 적도 있다.
요즘,주말에 라운드를 나갈 때면 나는 용사처럼 몸과 마음을 무장한다.첫 번째 시련은 골프장까지 가는 길에서 겪어야 한다.도로상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 위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범퍼와 범퍼 사이에 끼어서 꼼짝 못하고 갇혀 있으면 파란 잔디가 그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 그리워진다.두 번째 역경은,탈의실에서 넘어야 한다.옷장의 개수나 목욕시설을 여성골퍼가 증가하는 비율로 맞추지 못한 골프장의 여성탈의실에 들어서면,정말 ‘명절 전날의 대중탕’이 연상된다.
세 번째 난관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골프코스에서 뚫어야 한다.티잉 그라운드에서는 하품을 불어 끄며 속절없이 기다리고,페어웨이에서는 포수에게 몰리는 토끼처럼 뛰다보면,아,옛날이 그리워진다.
“30년 전에 내가 여기 회원권을 샀는데,골프장 측에서 대출도 알선해 주면서 반강제로 회원권을 안겼지.아침에 일찍 와서 서너 홀 치고,점심시간에 서너 홀 치고,저녁 무렵에 나머지 홀을 치고….여자라야 하얀 삼각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캐디뿐이었어.남자골퍼 하나에 젊은 여자캐디 한 명씩을 묶어 주었으니까,연애사건도 종종 일어났고….”
옛날이 좋았노라고,입을 내밀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 내게,구력 40년이라는 백발의 노인이 먼먼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