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정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경위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댓글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박상진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기와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22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北김기남 “고인 뜻 받들어 할일 많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비롯한 북한측 조문단은 21일 오후 3시53분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국회에 도착했다. 빈소로 이동하는 중 한 남측 인사가 원동연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에게 “김 위원장님 건강하십니까.”라고 묻자 원 실장은 “잘 계십니다.”라고 답했다. 북측 조문단은 김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조문과 묵념을 한 뒤 빈소 오른편에 서 있던 상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비서는 여러 인사들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와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북측 조문단은 국회의장실로 이동해 김 의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홍양호 통일부 차관 등과 함께 약 1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김 의장이 800 연안호 나포와 관련, “김 위원장이 연안호 어부들에 대해 좋은 지시를 했다고 들었는데 돌아오길 희망한다. 계시는 동안 만나뵐 사람 만나고 편하게 보내시라.”고 말하자, 김 비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저희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비서는 “다 먼 길이라 하는데 먼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남북이) 가까운 곳인데…”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30여명은 오후 3시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조문단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와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성학 대표는 이날 오후 9시50분쯤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들과 만찬을 마치고 나온 김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향해 “김정일은 살인마”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남긴 꿈’ 이으려… 끝없는 조문

    그들은 꿈을 찾고 있었다, 잃어 버린 혹은 아련한. 꿈과의 이별을 겨워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검은 옷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1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국회 본청 앞.조문객들은 늦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차분히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에 빈소가 마련된 지 이틀 만에 근조리본 2만개와 국화 1만여 송이가 쓰였다. 이들은 빈소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그날이 오면’을 들으며 고인이 남긴 꿈을 생각했다. ●방명록에 다짐 적고 또 적고 조문객들은 빈소 한 쪽에 놓여진 방명록에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인의 뒤에 남겨진, 민주주의와 통일의 과제를 이어 가겠다는 다짐이 이어졌다. “못다 이루신 통일의 염원을 후손들이 이룩하겠습니다.”, “지난 10년 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가 되겠습니다.”, “대통령님 때문에 숨쉬고 살았습니다. 저의 무임승차가 부끄럽습니다.”, “고귀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겨레와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 인사드리겠습니다.” 한 줄 한 줄, 애틋함이 묻어났다. 오전 11시 10분쯤에는 최재성·백원우·서갑원 의원,임종석·오영식 전 의원 등 386출신 정치인이 합동으로 조문했다. 김영춘 전 의원은 “고인이 이룩한 민주화의 길이 다시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애통해했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힘이었는데…” 본청 앞 잔디광장에는 민주당과 국회 도서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등에서 내놓은 고인의 사진들이 전시됐다. 조문객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서울에 산다는 강대봉(50)씨 부부는 이희호 여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고인 사진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1980년 5월18일 광주 유혈 사태를 현장에서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강씨 부부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힘과 위로였던 큰 산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부부는 “그분이 평소 가장 힘주어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 각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평화 통일, 민주주의 정착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 행렬이 길어지자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늘어났다. 지난 19일 고인의 쾌유기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서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시작한 정성희(34·여)씨는 빈소를 국회로 옮긴 뒤에도 고인을 따라 왔다. 정씨는 “재임 시절에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면서 “그 분이 퇴임하고 보니 그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은 조문하러 왔다가 식수를 나눠 주는 자원봉사 일손이 모자른 것을 보고 바로 가방을 내려 놓고 ‘자원봉사’ 비표를 달았다. 지난 13일 병문안 했던 어린이 환경운동가 조나단 리(12)도 이날 고인의 영정 앞에 섰다. 국회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정치인이든, 자원봉사자든, 일반 시민이든 하나 같이 ‘꿈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직접 심은 ‘화합의 소나무’ 운구차 맞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직접 심은 ‘화합의 소나무’ 운구차 맞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일 다시 국회를 찾았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1년반 만이다. 그 사이 생과 사는 갈렸다. 이날 국회 앞 마당 대형 국기대에는 조기(弔旗)가 걸렸다. 1967년 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본청 건물 정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설치됐다. ●98년 대통령 취임때 기념 식수한 소나무 이날 오후 4시30분쯤 운구차가 국회를 들어설 때 국회 잔디광장 한복판에서는 ‘화합의 나무’가 고인을 맞았다. 고인이 1998년 2월 15대 대통령 취임식 직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념 식수한 수령 23년생 소나무다. 식수에 사용된 흙과 물은 전국의 명산·명수에서 채집한 것이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온 나라가 하나되는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참배객들은 역경 속에서도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에서 시련과 질곡을 견뎌온 김 전 대통령의 삶을 떠올렸다. 의회주의자로서 고인과 국회의 마지막 인연을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장을 치르는 국회는 아침부터 분향소 공사로 분주했다. 국지성 호우로 공사가 늦어지면서 당초 예정 시간보다 4시간가량 늦은 오후 4시쯤 공사가 마무리됐다. 분향은 오후 5시쯤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조문을 마친 뒤 “깊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상득 의원은 “나라를 위해 참 고생만 많이 하다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우리나라의 정치 기수이셨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수치 여사 조화… 고은 시인 헌시 바쳐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미얀마의 민주투사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있는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통해 조화를 보내왔다. 고은 시인은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민족통일입니다….”라는 내용의 헌시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고인의 영정에 바쳤다. 한편 오후 7시쯤 민주당측에서 고인이 지난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현 정권을 비판한 동영상을 상영하려 하자, 장례 실무를 맡고 있는 행정안전부 측에서 반대하면서 한때 작은 소동이 일기도 했다. 유가족들이 “장례식은 국민 화합과 통합으로 치러야 한다. 특정 정치적인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주당의 자제를 당부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이지운 주현진 김지훈기자 jj@seoul.co.kr
  • 김기남 등 北조문단 DJ 빈소에 헌화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한 북측 사절단 6명이 21일 오후 서울을 방문, 국회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했다. 북측 조문단은 이날 오후 2시53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이들이 도착하자 일부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조문단은 분향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으로 된 조화를 김 전 대통령 영정 오른쪽으로 옮긴 뒤 영정 앞에 일렬횡대로 서서 묵념했다. 김 비서는 조문을 한 뒤 김 전 대통령 아들인 홍업. 홍걸씨를 비롯한 유족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동영 의원,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옥두 전 의원,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등 약 20명과 악수를 했다. 김 비서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와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홍업씨는 이에 연신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조문이 끝나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김 비서에게 “김형오 국회의장이 차를 한잔 했으면 하신다.”고 말했고, 김 비서는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답했다. 북측 조문단과 김 의장과의 면담에는 정세균 대표, 정세현 김대중 평화센터 부이사장, 홍양호 통일부 차관, 박지원 의원 등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는 “환대해 줘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김 의장이 800 연안호 나포와 관련, “김 위원장이 연안호 어부들에 대해 좋은 지시를 했다고 들었는데 돌아오길 희망한다. 계시는 동안 만나뵐 사람 만나고 편하게 보내시라.”는 말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저희도 노력하겠다.”고 밝혀 정부 당국과의 접촉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측 대표단은 김 의장 등과 약 30분간 이야기를 나눈 뒤 남측 인사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북측 조문단은 4시 55분쯤 국회를 떠났다. 한편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30여명은 오후 3시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조문단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6ㆍ25는 남침이다’, ‘겉으로는 조문 핑계, 남북갈등 조장’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북한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으며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글 / 서울신문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어떻게 진행되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어떻게 진행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국장으로 엄수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국민장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장과 국민장은 장의 기간과 국고 지원 규모, 영결식 날 관공서 휴무 여부 등에서 일부 차이가 날 뿐 장례행사 절차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빈소와 영결식장이 같은 장소(국회광장)이고, 장지도 국립서울현충원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영결식 시간은 훨씬 짧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3일 오전 발인제를 거행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행정안전부는 아직 구체적인 영결식 식순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국장·국민장 장의 행사 매뉴얼’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영구는 호위병 2명이 앞장서고 영정(가로 2m·세로 2.5m)→훈장→운구병(10명)→영구→호위병(2명)→유족 순의 행렬로 빈소에서 영결식장으로 운구된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장의위원 2300여명과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될 예정이다. 영구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를 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 등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김 전 대통령의 운구는 곧바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해 안장식이 거행된다. 김 전 대통령 유족 측은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노제(路祭)는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결식장에서 안장지로 이동할 때는 선도차와 대형태극기(가로 3.6m·세로 5.4m)가 영구를 인도한다. 영구 양옆과 앞뒤는 총 22대의 경찰 순찰차가 호위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인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의 선례도 최대한 찾아 참조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안은 22일쯤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안부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공공기관은 24일 0시까지 조기를 게양하고, 민간도 23일 오후 6시까지는 조기를 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또 가로기와 차량기는 경사 때만 달기 때문에 국장 기간에는 게양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국회로 운구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국회로 운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로 옮겨진 20일 오후 서울에서는 한동안 퍼붓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려쬐었다. 이날 오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관식을 마치고 국회로 향하는 고인에게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유족과 지인들 입관식 내내 눈물 이날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오전 11시 45분부터 50분 정도 고인의 염습이 진행됐다. 용이 그려진 구름모양의 곤룡포를 수의로 입고 용안 화장을 마친 고인의 얼굴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한 참관인은 “편하게 주무시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염습에 이어 오후 1시30분쯤부터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측근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입관예식이 치러졌다. 유가족 20여명과 동교동계 인사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전병헌 의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성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 등이 함께 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고인을 바라본 참관인들은 30분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이 여사는 고인의 왼쪽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이들은 촛불을 든 채로 서교동 성당 윤일선 주임신부의 입관미사에 참여했고 ‘주여 세상 떠나는 영혼 당신 품에 거두소서’로 시작하는 성가를 나지막이 불렀다. 미사가 끝나자 이 여사와 세 아들, 동생 김대현씨, 며느리, 손자들이 고인에게 성수를 뿌렸다. 투병 중인 큰 아들 홍일씨도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이어 박지원 의원과 김선흥·최경환 비서관 등 고인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비서진들이 고인에게 인사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들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권노갑·한화갑·김옥두·한광옥 등 동교동계 인사 4명도 고인의 앞에 서서 “여사를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오후 2시쯤 입관예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입관실에는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한영애 전 의원은 “용서하세요.”를 반복하며 흐느꼈다. ●시민들 ‘우리의 소원’ 부르며 작별인사 오후 4시15분쯤 운구가 시작됐다. 고인의 손자인 종대씨가 영정을 들고 운구차에 올랐다. 운구는 입관식에 참석했던 동교동계 인사들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조순용 비서관, 박지원 의원 등 10명이 맡았다. 정 대표와 권노갑 전 의원이 맨 앞에 섰다. 이 여사는 며느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들 홍업·홍걸씨가 뒤따랐다. 운구가 끝난 세브란스병원 앞에는 한 시간 전쯤부터 400명 가까운 시민이 모였다. 일부 시민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불렀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신촌 로터리 주변에는 인도를 빼곡히 채운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운구차는 10분 남짓 만에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고인을 맞았다.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등돌렸던 丁·鄭 영정앞 한자리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등을 돌린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 한목소리를 냈다.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에서다.이날 오전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합동 분향을 올렸다. 정 의원은 민주당이 지역 분향소 설치 등 향후 움직임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정 대표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미경 사무총장은 대책회의 도중 “정 의원도 한 말씀 하시라.”고 했다.서울광장에 놓인 고인의 영정도 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정 의원이 함께 손을 모아 운반했다. 정 의원은 앞쪽에 섰다. 지난 4월 전주 덕진 재선거 공천을 둘러싸고 서로 갈등을 겪은 이후 처음 연출된 모습이다. 고인의 빈소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가던 정치인들이 만나고 손을 잡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과 애증을 나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날 서거 3시간 남짓 만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빈소를 찾아 안타까워했다. 19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빈소를 찾았다. 전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쯤 굳게 다문 입술로 분향한 뒤 고인의 둘째아들 홍업씨에게 “사람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고생 많으셨다.”고 애도를 표했다. 고인과 ‘DJP 연합’을 이뤘던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이날 오후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 말씀을 전한다.”며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을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이제 편히 쉬시길”…광주 곳곳 추도 현수막

    [김 전대통령 서거] “이제 편히 쉬시길”…광주 곳곳 추도 현수막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인 19일 전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평화와 화해를 향한 뜻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고인이 병상에서 예상됐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인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 견줘 추모 분위기가 차분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해 서울시에는 중구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에 설치되는 등 전국 130개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는 가로 22m, 세로 8m 규모이며, 고인의 영정은 2만송이의 흰 국화로 감싸졌다. 서울시는 천막 65동과 테이블 30개, 의자 70개, 이동화장실 5개, 아리수(350ml) 4000여개 등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 분향소를 찾은 정종석(57·경기 이천)씨와 동생 길임(49·서울 신림동)씨는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 “오랫동안 편찮으셨어도 괜찮아지시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물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은 1층 로비에 꾸며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1~2층에 마련된 전시공간을 둘러보며 고인을 기렸다. 상주 역할을 맡은 류상영 전 도서관장은 “김대중도서관이야말로 고인의 생애가 다 모여 있는 곳”이라면서 “‘내가 죽더라도 도서관은 국가의 것인 만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다.”고 전했다. 옛 전남도청에 마련된 ‘광주시민합동분양소’에는 아침부터 정·관·재계 등 각계에서 보내온 화환이 빽빽이 들어찼다. 거리 곳곳에도 추도 현수막이 내걸렸다. 가족과 함께 광주지역 분향소를 찾은 김영화(47·식당업)씨는 “평생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고인의 발자취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면서 “이제 나라 걱정은 접고 편히 쉬셨으면 한다.”고 명복을 빌었다. 오후에는 박광태 광주시장과 최종만 행정부시장, 5개 구청장 등이 합동조문을 했다. 동교동계 출신으로 고인과 특별한 인연을 쌓은 박 시장은 “전날 서울 세브란스병원의 빈소에서는 만감이 교차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이제는 차분히 고인의 뜻을 기리고 유지를 받드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시민단체총연합·5월단체 등이 참여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남전추모위원회’가 발족돼 장례일까지 각종 문화행사를 이끌어나가기로 했다. 추모위는 “장례일까지 매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도청 앞 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고, 장례일 당일에는 시민이 참여하는 추모대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전국 자치단체와 기업체 등은 예정된 축제 등을 연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모셔졌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정토원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기에 정토원은 3개월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뜬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선진규 정토원 원장은 “민주화에 앞장선 두 명의 지도자를 잃어 슬픔이 크다.”며 “종교를 떠나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해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1961년 첫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강원 인제군 주민들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 당시 선거를 도왔던 방효정(85) 인제군 원로회장은 “나라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남북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넷 누리꾼들의 추모행렬도 이어져 다음 아고라 추모게시판과 네이버 추모게시판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들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종합 청주 남인우·서울 유대근기자niw7263@seoul.co.kr
  • 클릭하면 中企 경영정보 한눈에

    클릭하면 中企 경영정보 한눈에

    서울 구로구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중소기업을 지원하고자 포털사이트(http://biz.guro.go.kr)를 구축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사이트에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알짜 정보들이 가득하다. 구로구는 그동안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개별적으로 운영해 오던 다양한 사이트와 서비스들을 한곳에 모아 기업지원포털사이트를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원스톱 온라인 창구인 기업지원포털사이트에는 ▲이(e) 경영특화 ▲신용정보 ▲산업물가정보 ▲입찰정보 등의 코너가 마련됐다. 이 경영특화에는 기업 경영을 위한 일반 정보가 소개된다. 신용정보에서는 해당 회사와 거래처의 신용정보 조회가 모두 가능하며, 신용정보 변동시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도 함께 시행된다. 산업물가정보 코너에선 가격 정보·물가 동향·시중 임금수준·물가지수·공공요금·법령 정보·신기술 정보 등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입찰정보 코너에선 시설·용역·물품·매각 입찰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피피티(PPT) 코너는 기업들이 파워포인트로 사업계획서, 제안서 등을 작성할 때 관련양식을 손쉽게 찾아 활용하도록 구성됐다. 구로구는 사이트를 통해 영세 기업의 홈페이지 제작지원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신용평가확인서, 공인인증서 할인 발급 및 특허·실용신안 조회 서비스를 조만간 실시할 예정이다. 구로구측은 지난 4월부터 시범가동된 기업지원포털사이트에 현재 800여개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전했다. 유영환 디지털홍보과장은 “기업지원포털사이트 구축을 계기로 관내 업체들에 대한 성공경영 지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전자세금계산서 발급, 온라인 경리·회계 프로그램 제공을 위한 고도화 사업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쌍용차 83일만에 조업 재개] 라인서 車 74대가 줄줄이… 직원들 환호성

    [쌍용차 83일만에 조업 재개] 라인서 車 74대가 줄줄이… 직원들 환호성

    쌍용자동차가 장기 파업의 상흔을 딛고 ‘부활의 시동’을 걸었다. 노조파업 이후 83일 만에 생산을 재개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13일 쌍용차 평택공장.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잰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선 직원들은 공장 가동과 첫 완성차 생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장 내부는 대부분 청소 작업 등이 끝나 불과 1주일전 노조의 점거로 전쟁터 같았던 참혹한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드디어 조립4라인에서 체어맨W가 나오자 직원들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프레스와 차체, 부품, 조립, 도장 등 모든 라인에서도 생산 활동이 재개됐다. 쌍용차는 이날 렉스턴 등 완성차 74대를 생산했다. 이후 라인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이달 말까지 2600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상진 상무(기획재무본부장)는 “9월부터 연말까지 매달 4000∼4500대 생산량을 유지하면 회생계획안이 제시한 기준치인 연 2만 7000대 생산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신차 ‘C200(프로젝트명)’을 예정대로 내년 초 출시하기 위한 연구개발 및 생산 설비 작업도 본격 재개했다. 현대차 아반떼를 겨냥해 개발 중인 ‘B100’, 중대형차 ‘Y300’ 등 연구개발도 시작했다. 쌍용차 600여개 협력업체들의 모임인 ‘협동회 채권단’은 공장 재가동에 맞춰 지난 12일부터 부품 공급을 전면 재개한 상태다. 공장 재가동 후 첫 완성차인 체어맨W를 출고한 조립4팀의 한 직원은 “직원들은 신입사원으로, 경영진은 제2의 창업으로 새 출발선에 섰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 회사를 하루 빨리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전 직원 아침 조회에서는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들의 모임’이 공로상을 받았다. 모임 대표 이순열씨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눈물이 난다.”면서 “앞으로도 회원들과 함께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홍보활동을 하는 등 쌍용차를 되살리는 일을 위해서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유일·박영태 공동관리인도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유일 공동관리인은 “볼트, 새총과 화염병,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회사 살리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직원들의 희생과 용기야말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라면서 “과거에 집착해 좌절하거나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말자.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北억류 유씨 무사귀환 “기쁘고 감사” 소지섭 “중국어 대사 외우느라 진땀 뺐죠” 정진영 “김민선은 정당했다” 경찰서 유치장이야 호텔이야? 이희호여사가 하염없이 운 이유 사고는 남자가 치고 고민은 여자가? 남잔 축구,여잔 무용…교과서 속 인권차별
  • 쌍용차 살리기 직원들이 직접 나섰다

    쌍용차 살리기 직원들이 직접 나섰다

    쌍용자동차 직원들 사이에 ‘우리 손으로 직접 회사를 살리자.’는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온라인을 구심점으로 각종 아이디어와 제안을 경영진에게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2일 쌍용차 직원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모임(회원 6900여명)’에는 회사 회생의 관건인 신차개발, 판매, 제3자 매각, 노동조합 문제 등에 관한 여러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운운’을 쓰는 직원은 정부와 쌍용차가 미래 대안으로 추진하는 회사 매각과 관련,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사주를 만나지 못했으며, 최근 쌍용차 인수 희망 회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지만 상하이차와 별반 다를 게 없고 (우리가) 선택할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직원들이 대표단을 구성해 설득력 있는 자료들을 모은 뒤 인수해 줬으면 하는 회사를 찾아가 의향서를 제출해 의사를 타진하는 역발상의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모든 직원을 대표하고 실천력도 갖춘 새로운 ‘직원협의체’ 등 조직을 구성하자는 의견도 뒤따랐다. 과거 ‘코란도 향수’를 자극해 판매 증가로 연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이디 ‘원샷원킬’이라 밝힌 직원은 신차 ‘C200(프로젝트명)’과 관련,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코란도의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해 신차 이름은 코드명 ‘C’와 연결성이 있는 CORANDO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musso5844’인 직원은 “영업 전략의 일환으로 코란도에서 체어맨까지 쌍용차 최장수 보유 고객이나 최고 주행거리차, 최다 쌍용차 보유자 등을 찾아 고마움을 표시하자.”고 제안했다. 이 밖에 코란도 플랫폼을 활용해 엔진룸의 길이를 줄이고 바닥을 낮게 해 ‘5도어 박스카’를 만들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장기간 파업으로 훼손된 평택공장 복구에 힘을 보태자는 글도 많았다. ‘C200타는날’이라 밝힌 직원은 “장기 점거 행위로 사무실 집기가 많이 손실, 파괴됐는데 개인이 쓰지 않는 컴퓨터, 캐비닛, 의자 등을 회사에 기증하자.”고 독려했다.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을 탈퇴해 강성노조 이미지를 씻자는 제안도 나왔다. ‘좋아요’라는 직원은 “어느 노총에도 간섭을 받지 않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노조로 재편성돼야 모든 국민들이 진정으로 쌍용차를 새롭게 볼 것이고 제품을 구입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직원들의 애정 어린 의견과 충고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는 경영 전략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영화로 만나는 대중음악

    영화로 만나는 대중음악

    한국영상자료원은 1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볼륨을 높여라!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의 만남’ 기획전을 연다. 여기서는 한국 최초의 뮤지컬 영화인 한형모 감독의 ‘청춘쌍곡선’(1956년)부터 조승우의 열연이 빛나는 최호 감독의 ‘고고 70’(2008년)까지 1950~2000년대 음악 영화 20여편을 상영한다.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 히트 주제곡을 낳은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년)은 46만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 비정한 사랑과 배신 때문에 자살하는 한 여인을 그린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최고 가수 이미자의 반생애를 그린 전기영화 ‘엘레지의 영화’(1967년), 배우 이미숙의 데뷔작인 ‘모모는 철부지’(1979년), 포크 가수 송창식과 김도향이 함께 출연한 ‘마음은 푸른 하늘’(1973년) 등도 눈길을 끈다. 그밖에 가수 윤도현과 김창완이 출연한 김홍준 감독의 ‘정글스토리’(1996년), 나이트클럽 밴드를 주인공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녹인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도 반가운 영화다. 서울전자음악단은 21일 신중현이 출연한 ‘미인’ 상영 뒤 공연을 하며, 더 문샤이너스는 ‘청춘대학’ 상영 뒤 흥겨운 무대를 펼쳐 보인다. 영화와 공연은 모두 무료다. 자세한 상영정보는 KOFA 홈페이지(www.koreafilm.or.kr) 참조.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지방시대] 평택에서의 전쟁과 평화/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시대] 평택에서의 전쟁과 평화/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사태가 77일만에 사측 추산 3000여억원의 상처를 남기고 지난 6일 전격적으로 타결됐다. 평택 파업사태로 사측은 차량생산차질(1459대)에 따른 손실이 3160억원, 평택지역 경제는 15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경찰도 작전 및 경비 비용으로 30억원쯤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상하이차 철수를 시작으로 기업회생 절차 개시 신청, 사측의 2646명 감축을 골자로 한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노조의 파업돌입, 사측의 평택공장 직장폐쇄, 노사의 대화시도 및 결렬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많은 극민들은 하루하루 초조하게 지켜봤다. 하물며 평택시민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2. 얼마전 용산참사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그 심정은 더욱 처절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경찰이 용산 재개발지역 주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한 용산참사는 경찰 특공대원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건물 옥상으로 끌어올려 진압작전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대량으로 준비한 시너에 불이 옮겨 붙어 철거민과 경찰 등 6명이 사망하고, 경찰 20여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아직까지 용산참사를 둘러싼 진위가 가려지지 않고 갈등의 골은 깊이 패어 있다. 헬리콥터가 출동하고 전운이 감도는 전쟁영화 같은 장면들은 결국 처참한 비극으로 끝났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도래해 공고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믿던 많은 이들에게 용산참사 등이 보여준 깊은 갈등과 적대감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우려케 하고 있다. #3. 한동안 대학이 전장(戰場)이 된 때가 있었다. 1989년 5월 대학 입시부정 사건에 항의하는 부산 동의대생들과 이를 진압하던 전의경 사이에서 7명의 사망자를 비롯, 엄청난 인명 피해를 냈다. 동의대 사태는 학생 시위사상 최악의 사건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6년 한총련 주최의 통일대축전을 원천봉쇄하려는 경찰측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간의 엄청난 폭력사태의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헬리콥터가 뜨고, 옥상 난간에 복면을 한 사람들의 초췌한 모습과 휑한 두 눈. 어찌 이런 장면이 한민족을 자부하는 우리에게 반복되는 비극이 되었는지, 그것도 그렇게 열망하던 민주주의의 시대에 말이다. #4. 국가는 추상(抽象)이고, 지역은 현실이고 구체다.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의 민초들이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때 비로소 한국이라는 추상명사는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해 몸바치겠다는 정치인 무리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더 익숙한 윤이상은 결국 조국의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한국정부의 사과를 요구한 그에게 한국(당시 김영삼 정부)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일본에서 연주회를 마친 윤이상은 조국을 향해 삼배한 후 이제 자신의 조국은 독일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 위대한 작곡가의 방랑과 한 많은 일생은 이렇게 끝났다. 1980년 광주는 여전히 민족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부인 이수자씨는 윤이상이 텔레비전 뉴스를 뚫어지듯 보며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윤이상은 1987년 2개월에 걸쳐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다. 윤이상은 조국의 처참한 비극을 잊지 못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안겨주는 곡을 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분단의 비극에 이념의 대치까지 극에 달한 이 시점에서 광주의 비극이, 용산의 참사가, 평택사태가 더는 반복되지 않고 상호존중과 신뢰의 덕목으로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금융지원 필요한데” 법원 설득이 관건

    어떻게 하면 법원과 채권단을 설득할 수 있을까. 쌍용자동차가 미래 경영 청사진을 담을 회생계획안 작성에 애를 먹고 있다. 회생계획안은 다음달 15일까지 내야 하지만 사방이 가시밭길뿐이다. 파업 기간 동안 발생한 손실을 감안하고도 사업을 지속하는 게 청산하는 것보다 낫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채 상환 일정 제시가 가장 시급하다. 파업 이전 삼일회계법인은 조사보고서에서 쌍용차의 계속 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3890억원 더 높다고 밝혔지만, 장기 파업으로 기업 가치 요인을 모두 깎아먹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금융권의 신규 대출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외에는 추가 대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추가 대출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공장을 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회사측은 대출 재개를 회생 필수조건인 동시에 법원을 설득하는 지름길로 보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쌍용차에 퇴직금 등 1000억원 안팎의 구조조정 비용을 지원할 수 있지만, 신차(프로젝트명 C200) 개발비용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경영정상화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은 이상 신규 자금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3자 매각을 염두에 둔 투자자 물색 작업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생계획안 제출 이전에 근로자 구조조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근로자들이 반발하는 등 삐그덕거릴 경우 다시 생산차질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쯤되면 쌍용차는 회생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고, 법원 설득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쌍용차의 자체 회생을 위해서는 쌍용차가 생산능력뿐 아니라 영업력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입증할 계획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법원이 회계법인의 도움을 받아 쌍용차의 계획안을 검토한 뒤 요건에 맞다고 판단하면, 1~2개월 내에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 집회를 소집한다. 이때 채권단이 계획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회생절차가 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평택이 고용특구로 지정되고, 정치권이 쌍용차 사태를 이슈화하는 등 비경제적인 요인들도 채권단과 법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쌍용차는 파업을 끝내고 내분을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금융권 자금 지원계획을 이끌어내야 법원으로부터 시한부 인생 딱지를 떼고 제2의 경영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쌍용차 극적 타결] “다 죽는다” 절박감 속 온건파 주도권 잡아 급선회

    [쌍용차 극적 타결] “다 죽는다” 절박감 속 온건파 주도권 잡아 급선회

    쌍용자동차 사태가 6일 극적 타결을 이룬 것은 노사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노조 측은 최근 며칠 사이에 점거 노조원들의 농성장 이탈이 줄을 잇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노조 때문에 공장 문을 닫게 생겼다.”는 안팎의 비난을 뒤집어쓰고 있던 상황이었다. 6일 오전 회사 측에 마지막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은 노조 측이었다. 회사 측도 대안 없이 버티던 태도를 접고 “타협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노조의 제의를 수용했다. 쌍용차 노사는 이날 핵심 쟁점이었던 정리해고자 문제에 의견 접근을 이끌어내며 협상 타결에 물꼬를 텄다. 정리해고자 976명에 대해 ‘정리해고 52%, 무급휴직 48%’로 큰 틀을 잡은 것이다. 타결에 앞서 노조는 정리해고 55%, 무급휴직 45%로 사측의 최종안 60%, 40%에 가까운 안을 제시하는 등 종전과 다른 자세를 보였다. 덕분에 정리해고자 인원을 최소화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또 노조 측은 무급휴직 기간도 8개월에서 12개월로 양보했다. 노조는 지난 2일 결렬된 5차 노사대화 때 정리해고자의 ‘총고용 보장 원칙’을 고수했었다. 때문에 정리해고자 문제에서 의견 접근을 이끌어냈음에도 타협점에 이르지 못했다. 도저히 농성을 풀 것 같지 않았던 노조원들이 대화 재개를 요청한 것은 그동안 뒷전으로 밀렸던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점거 노조원 가운데 강경파는 150명선으로 파악됐다. 강경파는 “지금 농성을 풀고 항복하면 지금까지 버틴 게 뭐가 되느냐. 끝까지 남아 있자.”고 한상균 노조지부장 등 집행부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5차 협상에서도 타결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강경파를 설득하지 못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경찰과 사측은 보고 있다. 그러나 협상 결렬 이후 경찰의 강도 높은 강제 진압이 계속되면서 노조원들의 심리적 동요가 확산됐고 노조 자체의 와해 조짐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이 도장2공장을 제외한 주변 시설물을 모두 장악한 지난 5일 하루 동안에만 110명이 농성장을 빠져나오는 등 그동안 모두 247명이 농성장을 나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농성을 풀고 나오면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탈자를 부추기는 데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장2공장에 대한 단전과 단수, 음식물 반입 중단 조치로 노조원들이 무더위와 식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찰의 완전 진압은 시간 문제’라는 의식이 퍼지면서 이탈 심리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9월15일까지 법원에 제출할 쌍용차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쌍용차의 운명을 쥔 법원의 기류가 심상찮은 것도 노사에 큰 부담이 됐다. 이에 따라 쌍용차는 회생계획안 마련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 파업이 해결된 만큼 경영정상화, 채무 변제, 대주주 지분정리 방안 등이 담긴 회생안 마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평택시는 이번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평택지역을 ‘고용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노동부에 요청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중견건설사 현진 워크아웃 신청

    올초 건설사 구조조정에서 B등급으로 분류됐던 중견건설업체 현진이 주택경기침체에 따른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채권은행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현진 관계자는 6일 “자금난 악화로 지난달 말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면서 “이번 주부터 채권단의 실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현재 기업개선작업을 위한 실사를 진행 중이며 신규자금 지원 계획 등을 담은 경영정상화 계획을 다음달 중순까지 결정할 예정이다. 현진은 시공능력평가 37위의 주택건설업체로 ‘에버빌’이라는 브랜드로 광주와 부산 등 지방 도시 위주로 아파트 사업을 벌여 왔다.윤설영기자 snow@seoul.co.kr
  • [쌍용차 극적 타결] 파업에서 타결까지…혼돈·충돌의 76일

    [쌍용차 극적 타결] 파업에서 타결까지…혼돈·충돌의 76일

    쌍용차는 지난 4월8일 직원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 등이 담긴 경영정상화 계획을 발표했고, 4월과 5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1670명이 퇴직했다. 노조는 남은 976명이 정리해고 대상자로 분류되자 5월21일 파업에 돌입한 뒤 22일부터 평택공장의 도장공장 등을 점거한 채 농성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에서 제외된 쌍용차 임직원 3000여명은 6월 26일 “총파업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으로 들어가 점거파업 중인 600여명의 노조원들과 격렬하게 충돌해 수십명이 다쳤다. 이후 한 달 가까이 교착상태를 보이다 대화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은 여야 국회의원과 평택시장 등으로 구성된 중재단이 적극 나서면서부터. 이들은 지난달 24일 노사 관계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어 다음날 노사 직접교섭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노사는 비공식으로 27일과 28일 2차례에 걸쳐 만났고 수차례 전화통화로 이견을 조율해 나갔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일부 수용하기로 하고, 사측은 무급휴직을 4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30일 정식 대화가 성사됐다. 노사는 밤샘 협상을 계속해 한때 타결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정리해고대상 974명에 대한 구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사측은 지난 2일 결국 결렬을 선언했다. 결렬 이틀 뒤인 지난 4일부터 경찰은 공장에 진입, 노조가 점거중이던 도장2공장과 부품도장공장 등 2곳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장악했다. 6일 오전까지 농성 중이던 노조원 240여명이 공장을 빠져나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노조측이 먼저 ‘최후통첩’격인 마지막 대화를 요청했고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파국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김병철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당신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영원히 잠들었다. 6일 오전 전남 해남읍 국제장례식장에서 열린 조씨의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주민, 체육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었다. 교회·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발인 예배를 시작으로 묵념, 조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큰아들 성웅씨의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문석준 중령은 조사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다니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큰아들 성웅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지를 향해 떠날 때 부인 이성란(44)씨가 “나도 따라갈래.”라며 오열하며 발을 동동 굴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씨가 타계한 4일 오후 그 충격으로 음독까지 시도했던 이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친지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차에 올랐다. 발인을 마친 운구차는 조씨의 고향인 해남군 학동리 생가 주변에 도착해 노제를 지낸 뒤 계곡면 법곡리 자택 주변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조씨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재기’를 위해 지은 자택 옆에 묻혔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쌍용차 어디로] 정리해고 → 옥쇄파업 → 협상 결렬

    법정관리 신청과 정리해고, 공장점거 농성으로 이어진 쌍용차 사태가 막판 노사협상 결렬로 파업 73일 만에 다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월9일 쌍용차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철수한 뒤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회사 측은 4월8일 2646명을 감축하는 내용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고, 4월과 5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1670명이 퇴직했다. 노조는 남은 974명이 정리해고 대상자로 분류되자 5월21일 파업에 돌입한 뒤 다음날부터 도장공장 등을 점거한 채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은 31일 직장폐쇄로 맞섰으며, 이어 6월8일에는 정리해고 대상자 974명에 대한 해고를 단행했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자 노사정 중재단의 중재로 지난달 25일 노사교섭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사측은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이후 각계로부터 대화를 촉구하는 전방위적인 움직임이 일고 협력업체들이 7월 말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법원에 조기 파산을 요청하겠다고 압박하자 노사는 물밑 접촉을 거쳐 30일 전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끝내 4일 만에 결렬됐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부고]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인문대학 철학과 교수)이 28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54세. 고인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논리학회장과 한국인지과학회장 등을 맡으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혜영씨와 딸 찬영씨, 아들 병훈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은 31일 오전. (02)2072-202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