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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정상회담/ 문정인·이종석박사 좌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첫날밤을 평양에서 보낸 남측 수행원 중 북한·통일관련 전문가인 문정인(文正仁)연세대교수,이종석(李鍾奭)세종연구소 연구실장이 14일 오전 10시 평양고려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좌담을 나눴다. ■첫날 대환영의 의미/ “전날 느꼈던 감격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이라며 인사말을 건넨 이들은 순안비행장에 직접 영접을 나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태도와 평양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에 대해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대해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교수는 “환영인파에 대한 북한측의 집계가 정부 60만명,고려호텔 80만명,백화원영빈관 100만명 등 제각각일 정도로 대규모 환영행렬이었다”면서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환영인파가 눈물을 흘린 건 조선역사상 최초’인만큼 평양시민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영의사를 표했다고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김위원장이 영접시 상석을 양보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동승해 1시간 가량 밀담을 나눈 것에 대해 “놀랍고도 역사적인일”이라고입을 모았다.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남북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들이 기존의 적대적인 남북관계 해소에 상당한 기여를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위원장에 대한 평가/ 공항영접에서 김위원장이 보여준 ‘보무당당하고 활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의견.문교수는 특히 “김대통령의 대북관련정책 기조에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이 깔려있는데 김위원장의 태도에서도실사구시를 느낄 수 있어 더욱 기대를 품게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대의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성과를 얻어내려는 김대통령이나 최근 대외경제개방 등 실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김위원장의 행보에서 공통점을 찾을수 있다는 해석이다. ■2차 정상회담 전망/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정상간 첫 만남인 만큼 전날의 ‘환담’에서 목표의 80% 정도는 달성됐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실장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면서 “합의를 이뤄낸뒤 남북교류,경협,이산가족문제 등 실천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등을 논의하고 정상회담과 함께다양한 채널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교수도 “13일 김위원장이 1차회담에서 ‘전세계의 궁금증을 풀어줘야한다’고 명시한 만큼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길상 박록삼기
  • TV에 비친 金正日위원장 큰 변화

    13일 생중계나 녹화중계를 통해 안방에 소개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즐겨 입는 점퍼옷 차림 그대로였지만늘 왼쪽 깃에 다는 ‘김일성 배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큰 변화였다. ■복장/ 양복을 거의 입지 않는 스타일대로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이나 정상회담장에서 점퍼를 입었다.상하의 모두 짙은 베이지색으로 상의는 점퍼,하의는 정장 바지였다.그러나 왼쪽 깃의 김일성 배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남측에 대한 배려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헤어스타일·안경/ 평소처럼 뒤로 넘긴 고수머리였다.지난달 중국을 방문,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와 비교해도 큰 변화는 없다.안경도두꺼운 금테안경이었다.때에 따라 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낄 때도 있다. 김 위원장과 함께 공항영접을 나온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어 눈길을 끌었다. ■신체/ 김 위원장의 신장은 165㎝로 추정되나 이날 드러낸 모습으로는 족히170㎝는 넘어 보였다.이는 굽 높은 구두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체중도 80㎏가량으로 추정됐다.TV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은 내내 밝은 모습으로,듣던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황성기기자 ma
  • 남북 정상회담/ 北 영접인사들 면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수행,13일 평양 순안공항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영접인사로 나온 13명은 북한의 핵심실세들.헌법상 국가수반이자서열 2위인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이 김 국방위원장의 뒤에 바싹 붙어 김대통령을 맞이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대표적인 외교통.1954년 이후 당 국제부 등 외교분야에서일해온 대외관계 전문가다.조명록은 서열 3위로 군부 인사 중 가장 높다.군에 대한 김 국방위원장의 대리인 격으로 군의 정치통제를 총괄한다.해방전만주비행학교를 나온 북한 공군의 1세대며 공군사령관 등을 지냈다. 홍성남(洪成南) 총리와 김국태(金國泰)·김용순(金容淳)·최태복(崔泰福)등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도 김 국방위원장과 함께 비행기 트랩 앞까지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했다.홍성남은 내각에서 경제문제를 오래 다룬 기술관료다.김국태는 인사,김용순은 대남을 각각 담당하고 최태복은 교육을 맡으면서최고인민회의 의장도 겸하고 있다. 민족화해협의회의장직을 맡으며 대남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김윤혁(金潤赫) 상임위 서기장도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김 국방위원장의 부인 김영숙씨와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은 나오지 않았다.북측 인사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및 대남담당 관계자들이 많았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이모저모

    ●1차 남북정상회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13일 오전 11시45분쯤 같은 승용차를 타고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김국방위원장은 차에서 내린 뒤 영빈관 입구에 서서 뒤차로 도착한 이희호(李姬鎬)여사에게 먼저 들어갈 것을 권하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숙소 입구에서 보라색과 주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여성들로부터 “반갑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건네받고 환한표정을 지었다. 이어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은 영빈관 입구에서 파도 치는 바다그림을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는데 김 대통령은 남북한 사진기자들에게 “잘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김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과의 사진촬영이 끝나자 이여사에게도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권유하고 촬영 뒤에는큰 목소리로 “장관들도 함께 합시다”라고 제의,다함께 기념촬영을 했다.김국방위원장은 “김용순 위원장 어디 있어”라고 부른 뒤 김대통령 내외와 공식수행원,김용순 위원장과 함께 다시 한번 포즈를 취했다. 접견실에서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이 공항까지 영접 나오는 등 대대적으로 환영해준 데 대해 “감개 무량합니다”라고 인사하자 김 국방위원장은“절대 섭섭하지 않게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라며 “세계가 주목을 하고있는데 2박3일 동안 대답을 해줘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만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인민문화궁전에서 주최한 만찬에는 남북대표가 어우러져 동포애를 과시했다. 김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이토록 지척에 같은 동포가 살고 있는데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면서 “성대한 만찬에 가슴뭉클한 동포사랑을 느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김일성 주석이 직접 이름을 지은 것으로알려진 인민문화궁전은 지상 4층,지하 1층으로 세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85년 8월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과 90년 10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91년 2월제3차 남북고위급회담 장소로도 사용됐다. ●오찬/ 김 대통령 내외는 단둘이서 오찬을 했다.점심 식단은 깨즙을 뿌린 닭고기와 생선전,청포종합냉채,평양온반,옥돌 불고기 새우남새볶음,설기떡,밤정과 등 ‘푸짐하게’차려졌다.김 대통령은 “음식이 맛있었다”고 평가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회담/ 정치권 표정

    여야는 1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을 일제히 환영했다.특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민주당] 감격 그 자체였다.당사 사무실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TV 생중계를지켜보던 당직자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 영접을 하고,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대화 장면이 비칠 때마다 탄성과 박수를 보냈다. 서영훈(徐英勳) 대표는 “오늘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았던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민족사와 세계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날이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김 대통령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았다”고 평가했다.이어 “김구 선생이 38선을넘는 사진이 남북관계의 상징적인 사진이었으나 오늘 이후에는 김 대통령의평양 도착 사진이 더 큰 상징이 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라며 눈시울을 붉혔고,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은 “봄이 오는 과정에서 꽃샘추위와 어려움이있겠지만 대세는 막을 수 없다”는 소회를피력했다. [한나라당]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의 눈길을거두지 않았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정상회담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됐던 55년 분단의 역사를 접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방북 기간이나 이후에도 국민과 민족을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에는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한구(李漢久) 제2정조위원장은 “북한이 회담에서 약속한 내용을준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소홀하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특별한 언급은 없었으나 당사에서 TV로 생중계되는김 대통령의 평양 순안도착 장면을 관심있게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 등 당직자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영접을 나온 것과 관련,“생각했던 것보다 파격적인 예우”라면서 “북측의예우가 가식이 아니라면 이번 정상회담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역사적전기가 될 것이라는 좋은 징조”라고 반겼다. 강동형 최광숙기자 yunbin@
  • 남북 정상회담/ 金대통령·金위원장 대화록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13일 오전 김대통령숙소인 백화원영빈관 접견실에서 20분 가량 상봉을 겸한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입장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환영해 감개무량하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고 김위원장은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이 나눈 대화록은 다음과 같다. [김대통령] (응접실 벽에 걸린 대형그림을 보면서) 무슨 그림들입니까. [김위원장] 원래는 춘하추동 그림입니다(전금진 아태평화위 참사가 ‘묘향산의 춘하추동을 그린 것입니다’라고 설명). [김위원장] (김용순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가리키며) 용순비서,김대통령과 자동차를 같이 타고 오느라 수행한 장관들과 인사를 못나눴어요.(남측 공식수행원들을 향해) 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통일부장관은 TV에서 봐서 잘 압니다.(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보고)남북정상회담 북남합의때 TV로 많이 봤습니다. [김위원장] 날씨가 대단히 좋고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 밤에 김대통령의코스를 대줬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초대소(영빈관)까지 올지 알려줬습니다.준비관계를 금방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처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김대통령을 하룻동안) 못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아닙니다.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 이렇게 많은 분들이 환영나와 놀라고 감사합니다.평생 북녘땅을밟지 못할 줄 알았는데 환영해줘서 감개무량하고 감사합니다.7,000만 민족의대화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날씨도 화창합니다.민족적인 경사를 축하하는 것같습니다.성공을 예언하는 것 같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마중나온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김위원장] 오늘아침 비행장에 나가기 전에 TV를 봤습니다.공항을 떠나시는것을 보고 대구관제소와 연결하는 것까지 본 뒤 비행장에 갔습니다.아침에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계란 반숙을 절반만 드시고 떠나셨다고 하셨는데구경오시는데 아침식사를 적게 하셨나요. [김대통령] 평양에 오면 식사를할줄 알고 그랬습니다(웃음). [김위원장]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외국 수반도환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김대통령의 방북길을환영 안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예절을 지킵니다.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 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왜 이북에서는 TV와 방송에 많이 안 나오고 잠잠하느냐고 하는데 천만에 말씀입니다.와서 보면 알게 됩니다.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방북을 지지하고 환영하는지 똑똑히보여드리겠습니다.장관들도 김대통령과 동참해 힘든,두려운,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민족입니다.(김용순위원장을 향해) ‘오늘 (연도에) 얼마나 나왔나’고 물었고 김용순 위원장은 ‘60만명 가량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김위원장은 ‘나는 40만명정도 되는 것 같던데’라고 언급. [김대통령] 나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습니다(웃음).김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온것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성심을 갖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거리에그렇게 많은 인파가 나올줄 몰랐습니다. [김위원장] 그저께 생방송을 통해 (김대통령의) 행로를 알려주니까 여자들이명절때처럼 고운 옷들을 입고 나왔습니다. 6월13일은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될 날입니다. [김대통령] 이제 그런 역사를 만들어갑시다. [김위원장] 오후부터는 공식 합의된 일정이 진행됩니다.이 백화원초대소(영빈관)는 주석님께서 생전에 이름을 지어준 것인데 백가지 꽃이 피는 장소라는 뜻입니다.한번 산보삼아 둘러보십시오.주석님께서 생존했다면 (백화원 영빈관까지 오는 승용차 좌석에) 주석님이 앉아 대통령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서거 전까지 그게 소원이셨습니다.(94년에)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회담을한다고 했을때 많이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유엔에까지 자료를 부탁해 가져왔는데,그때 김영삼대통령과 다정다심한 게 있었다면 직통전화 한 통화면 자료를 다 줬을텐데.이번에는 좋은 전례를 남겼습니다.이에 따라 모든 관계를 해결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대통령] 동감입니다.앞으로는 직접 연락해야죠. [김위원장]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김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김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입니다.2박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합니다.대답을 주는 사업에 김대통령 뿐 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회담/ 시민 표정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에서 직접 영접하고 북한 주민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감동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남과 북이한핏줄임을 새삼 확인하며 회담의 성공을 기대했다.일부 시민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편길석(片吉錫·67·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모습을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면서 “나도 죽기 전에 평양에 한번 가보고싶다”고 활짝 웃었다. 순안공항에서 회담 장소인 백화원영빈관으로 가는 길목에 환영나온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본 황재환(黃在換·70·경기도 남양주시 오남면)씨는 “벌써 통일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면서 “남과 북이 한핏줄임을 확인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주부 문은경(文銀景·25·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두 정상이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김재우(金在雨·51·건축업·경기 용인 수지읍)씨는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 정상회담이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근처 부동산소개소로 가서 텔레비전을 봤다”면서 “김 위원장이 직접 마중나온 것을 보고 북한이 생각보다 적극적인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낙관했다. 유창순(柳昌淳·71·황해민보사 편집국장)씨는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는모습을 보니 50년 동안 가시지 않았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향민 2세인 조남일(趙南一·32·변리사)씨는 “두 분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빨리 북한에 있는 친지들을 만날 날이 오면 좋겠다”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대전시 동구 성남동 형제의 집 미전향 장기수인 김용수씨(68) 등 3명은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이 눈녹듯 사라졌다”면서 “정상회담이 분단을 종식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근본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할 원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향민 이성만(李成萬·64·평북 중앙도민회 총무부장)씨는 “김 위원장이공항에 나와 대통령을 영접하고 차에 함께 타는 모습을 보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대통령이 우리를 대신해 고향 땅을 밟아주셔서 망향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두 정상이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황씨는 이날 오전 인천 뉴스타호텔에서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갖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그들도 인정하는 사실인데 굳이 이를 들먹여 북측을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북측도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만을 상대하려는 접근방식을 버리고 남측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남북 정상회담/ 서울 프레스센터 이모저모

    “와∼” 13일 오전 10시38분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의 특별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서 TV(멀티큐브)를 지켜보던 기자들은 일제히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터뜨렸다.김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이 가져다주는 감동의 물결은 프레스센터라고 예외가 아니었다.몇몇 국내기자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도했다. 정상회담 일정이 본격 시작된 13일 600여평의 서울 프레스센터에는 1,0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기자들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모습을나타내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기자는 “그동안 기자들이 썼던 예측 기사를 여지없이 뒤엎는 파격”이라고말했다. 외신기자들도 김 국방위원장의 공항 영접에 놀랍다는 반응.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도널드 커크 기자는 “(평양 도착장면이) 흥미진진하다(exciting)”며 “북측의 환대는 정상회담 성공의 좋은 신호(goodsign)”라고 말했다.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오모카와 마코토(面川誠) 기자는 “김 국방위원장의 공항 영접은 북측이 관계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레스센터에서는 이날부터 평양 정상회담 진행상황에 대한 공식 브리핑이시작됐다. 오전 9시 30분 오홍근(吳弘根) 국정홍보처장이 첫 정례 브리핑을실시하자 내외신 카메라 기자들이 서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자리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은 오후 3시 브리핑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공항영접은 우리도 사전에 알고 있었으나,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밝히지 않았을뿐”이라고 털어놨다. 또 이날 평양시민 60만명이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열렬히 연호했다고 강조했다. ●서영훈(徐英勳)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정동영(鄭東泳) 대변인과 함께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다.서 대표는 ‘평남 덕천에 동생이 살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동생과의 상봉을) 기대한다”면서 “고향산천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김상연기자 ca
  • 남북 정상회담/ 서울서 평양까지(I)

    남북이 분단된 지 55년 만에 한반도의 하늘길이 활짝 열렸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을 가슴에품고 13일 역사적인 평양 방문에 나섰다.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간의 첫 상봉 장면은 감격 그 자체였다.남과북의 한 핏줄들은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 >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7분.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의 문이 열리고,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행기 트랩의 위 아래에서 얼굴을 마주했다.남북을 가로막아 온 분단 55년의 역사가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는 서울공항을 이륙한 지 67분 만인 오전 10시25분평양 순안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순안공항을 감싼 창공 멀리 김 대통령의전용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순안공항에 나와 있던 북한측 환영객 1,000여명은들고 있던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전용기의 동체와 날개에 새겨진 국·영문 국호와 태극기는 이제 남북한이 새로운 역사로 접어들었음을 세계에 선명하게 알렸다. 김 대통령의 전용기가 활주로에서 벗어나 계류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순안공항은 또다른 환호성으로 뒤덮였다.10시33분.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환영객들은 ‘김정일,김정일’을 연호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환호하는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큰 걸음으로김 대통령이 탄 특별기를 향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측 고위급 인사들이 그를 따랐다. 김 국방위원장은 붉은 카펫을 따라 김 대통령의 전용기 트랩 앞까지 걸어나갔다.이윽고 10시37분,전용기의 문이 열리고 김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일순간 순안공항은 환호의 물결로 뒤덮였다.김 대통령은 평양의 하늘과 바람,그리고 평양 사람들의 환호에 겨운 듯잠시 트랩 위에서 감격에 젖는 모습을 보였다. 김 국방위원장은 10여계단 트랩 아래에서 박수로 김 대통령을 환영했다.곧이어 김 대통령이 트랩을내려서면서 두 정상은 밝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인사를 나눴다.순안공항은 ‘김정일’과 ‘만세’를 연호하는 환영객들의 환호로 다시 한번 크게 출렁였다. 이날 김 대통령에 대한 기내 영접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전희정씨가 맡았다.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의 소개로 배석해 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 당 대남담당 비서,조명록 군총정치국장,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 고위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김 대통령도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 등 우리측 수행원들을 김 국방위원장에게 소개했다. 순안공항의 환영행사는 의장대 사열과 꽃다발 증정 등 간단한 형태로 10여분간 진행됐다.정상의 외국 방문때 흔히 있는 도착성명 발표나 방문연설은생략됐다.두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한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순안공항에는 용진가(勇進歌)가 연주됐다.북측이 국빈방문때 연주하는 노래다.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두 정상은 잠시 연단에 올라 사진기자들에게 기념포즈를 취했다.연단을 내려온 김 대통령은 부인 이 여사와 함께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았다. 두 정상이 행사장에서 리무진까지 걸어가는 동안 환영행사장 한편에 도열해있던 환영객들은 다시 한번 꽃다발을 흔들며 ‘김정일’과 ‘만세’를 열렬히 연호했고, 김 대통령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이들에게 화답했다. 이날 환영행사에는 김 대통령 부인 이 여사의 카운터파트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김 국방위원장의 부인 김영숙씨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 취재진과 수행원들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1002편 특별기가 오전 10시16분쯤평양 순안공항에 내리자마자 북측 검색요원들이 일일이 명단을 확인하고 간단한 짐 검색을 실시했다. 북측은 김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리고 있는 동안 5대의 X레이 투시기를 설치하고 20여분 동안 취재진 및 수행원의 소지품과 몸을 검색했다.검색은 까다롭지 않았다.북측 검색요원은 한 취재진의 사진기가 무비카메라 모양과 비슷하자 “셔터를 눌러봐도 되느냐”고 물은 뒤 셔터를 눌러 사진기임을 확인하고 되돌려 주었다. 검색대를 통과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남측 취재진과 수행원을 맞았다.북측안내원들은 남측에서 보낸 얼굴사진을 사전에 본 때문인지 취재진과 수행원들을 바로 알아차렸다.한 안내원은 “○○신문 기자 아닙니까”라고 물은 뒤자기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북측은 남측의 수행원에 대해서는 집단 안내를 했으나 수행기자 50명에 대해서는 1대 1로 안내했다.북측 안내원들은 수행기자들이 버스를 타고 프레스센터로 오는 동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주요 건물을 소개하고 연도 환영인파등을 설명했다.회담 전망 등을 시시콜콜하게 묻기도 했다.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해 한 취재기자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안내할 수 있느냐”고 묻자 북측 안내원은 “어디라도 얘기해 달라”면서도 “정상회담 취재가 목적인 이상 여러 곳을 가는 것은 방문 취지와 다른것 아니냐”고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 김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행사를 마친 뒤 10시50분 공항을 출발,연도에 늘어선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동승한 차량 행렬은 공항을 떠난 지 20분 만인 11시10분쯤 평양시 입구인 연못동에 도착,잠시 머물렀다.두 정상은 차에서 내려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으며,악수를 나누기도했다. 이곳 평양시 입구에서부터는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시민들은 연도에 줄지어 서서 진홍색과 분홍색 조화(꽃술) 등을 흔들었다.시민들은 조화를 흔드며 “만세”“김정일 결사 옹위(擁衛)”를 끊임없이외쳤다.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은 서울 브리핑에서 “60만명의 인파가 남측 대표단 일행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북측의 한 안내원은 “평양시민들이 대부분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남측의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기 위한 자발적인 인파”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다른 안내원들은 “어제 김 대통령이 오는 것으로 알고 공(허탕)을쳤다”고 말해 전날에도 사람들이 나왔다가 되돌아간 일이 있음을 실토했다. 또 다른 안내원은 “위대하신 장군님이 여러분을 따뜻하게 환영하기 위해조치를 취했다.소감이 어떠냐”“김정일 장군님이 광폭(廣幅)정치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는 것이다”“남측 통일사절들이 그런 기대에 보답하지 않으면 정말 안된다”“어제는 날씨가 흐렸는데 날씨도 (김대통령이오시는 것을) 알아 주는 것 같다”“몇 시간 전에만 동원령을 내리면 시민들이 모두 동원될 수 있다.서울에서 출발 할 때도 이처럼 시민들이 환영했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표명했다. 시민들은 남자의 경우 양복을 입거나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으며,여자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흰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꽃술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만세 만세”“김정일 김정일 결사옹위 결사옹위”라는 두 가지 구호를 일사불란하게,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했다. 차량행렬은 연못동에서 4·25 문화회관까지의 ‘용거리’,전승기념관까지의‘비파거리’, 보통강 강안도로,보통문,만수대 의사당,옥류교,만수대 언덕,개선문 거리,종로거리,김일성 종합대학까지 평양의 주요거리를 10㎞ 정도 순회했는데 환영인파는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연도를 메웠다. 차량행렬은 평균 시속 30㎞ 정도로 달렸는데 연도의 환영인파가 꽃술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11시40분까지 무려 30분 동안 이어졌다.연도 중간 중간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돋웠다. 시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은 편이었으며,행렬이 지나갈 때는 더욱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다.일부 시민들은 차도로 몸을 들이밀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공식 차량 행렬이 끝나고 기자들이 탄 차량은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한 본대와 분리돼 기자들의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다. 고려호텔로 가는 동안에도 집이나 직장으로 되돌아가는 평양시민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반가운 표정으로 꽃술과 손을 흔들었다.그러나 구호는 외치지않았다.
  • 南北정상 뜨겁게 만났다

    남북의 두 정상이 55년 만에 뜨겁게 만났다.반세기 만의 만남이었지만 전혀낯설지 않았으며,뜨거운 동포애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낮 숙소인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상봉을 겸한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간 현안에대해 아무 격식없이 논의,합의점을 찾기로 했다.14일 2차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은 이날 남측에서 박재규(朴在圭)통일·이헌재(李憲宰)재경·박지원(朴智元)문광부장관과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공식수행원 전원,북측에서 김용순(金容淳) 조선아태평화위원장 등이 각각 배석한 가운데 27분간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국방위원장은 “6월13일은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될 날”이라고 했으며,김 대통령도 “이제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세계가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내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갖고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2박3일 동안대답해 줘야 하고,대답을 주는 사업에 김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들도기여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김 대통령의 방북을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남측의구체적 카드를 요청했다. 두 정상은 또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도록하자면서 남북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키로 대체적인 의견을 모았다.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평양시민들이 환영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으며,김 국방위원장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김 대통령의) 방북을 지지하고 환영하는지 똑똑히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앞서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오전 10시25분쯤 평양 순안공항에도착,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남녘 동포의 뜻에 따라 민족의평화와 협력과 통일에 앞장서고자 평양에 왔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주최 만찬에 참석,평양에서의 첫 연설을 통해 “(저의) 이번 방문으로 7,000만 민족이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이어 “이번 방문으로 반세기 동안의 불신과 대결의 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뀌기를 충심으로 바란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 그들의 한을 이제는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남북한 사이에 풀어야 할 산적한 숙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책임있는 당국자간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국방위원장은 순안공항으로 직접 나와 김 대통령 등 대표단을 영접했으며,김 대통령이 타는 벤츠승용차에 동승해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가는 동안 ‘1대1 차중 대담’을 했다.두 정상은 영빈관으로 가는 도중 60여만명의 평양시민이 연도에 나와 환영하자 차에서 함께 내려 환영객과 악수를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예방한 뒤 공연도 관람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회담 이모저모

    텔레비전을 통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을 지켜본 13일 국민들은 감격과 설렘,기대로 가득찬 하루를 보냈다. 직장인들도 퇴근한 뒤 선술집에서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얘기로 꽃을 피웠다. ●술집 샐러리맨이 즐겨찾는 무교동,강남,사당동 등 서울 시내 술집은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이들은 직장동료,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술잔을 나누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을 되새겼다.오후 9시30분쯤 중구 다동 숯불바베큐 골뱅이집에서 직장동료와 술을 마시던 김민호씨(30·SK텔레콤 대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영접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수년내 북한에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북5도민협회 서울 구기동 이북5도민협회 사무실은 축제 분위기였다.실향민과 협회 사무직원들은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하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통일부 산하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는 방문객이 평소 2명에 그쳤으나 이날은 수십명이 찾았다.평남 평원군 한천면이 고향인 황정옥(黃貞玉·67·서울 중랑구망우동)씨는 “순안이 고향이어서 더 마음이 설^^다”면서 “두 정상의 만남을 보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센터를 찾아왔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대학가 기말고사가 한창인 대학가도 남북 정상의 만남에 들뜬 분위기였다. 고려대 도서관 지하 휴게실은 오전 10시쯤부터 200여명의 학생들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이들은 김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순안공항에 무사히 착륙하고 김 대통령이 비행기 계단을 내려와 김 국방위원장과 손을 맞잡자 환호성을 질렀다.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난 이날 서울대,고려대 등 전국 10여개 대학에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한반도기’가 나란히 내걸렸다. ●초·중·고교 서울 풍문여고와 영동고,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북포와 백령초등학교 등 일부 학교들도 수업 대신 학생들에게 김 대통령의 평양 도착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백령초등학교 7개 교실에서는 두 정상의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임진각 임진각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나오자 실향민과 관광객 60여명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이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하자 “분위기가 너무 좋다”,“금방이라도 통일이 될것 같다”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함북 청진이 고향인 박창환씨(68·경기도 김포시 월곶면)는 “이제 동생들과 어머니를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면서 “두 정상이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의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영우 이창구기자 ywchun@
  • 남북 정상회담/ 남북 첫 직항로 의미

    우리나라 항공기가 사상 처음 북한 영공에 들어간 순간은 어땠을까. 1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북은 처음으로 남북간 직항로를 열었다는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김대통령을 태운 특별기(보잉 737기)는 오전서울을 출발,중국 상공까지 가지않고 서해 상공을 통해 1시간 7분 만에 평양에 안착했다.기존에 없던 새 항로를 개척한 셈이다.특별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시각은 오전 9시18분.특별기가 서해쪽으로 기수를 돌리자(북측 군시설보안문제로 육지를 직접 통과하지 않았다) 충주비행단에서 떠오른 F-16전투기 편대와 원주·수원비행단에서 출동한 F5전투기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호비행을 시작했다.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는 조영길(曺永吉) 합참의장등 장병 40여명이 모니터를 통해 전용기와 경호전투기들의 행적을 쫓았다. 특별기는 고도 2만2,000피트에 이른 뒤부터 남쪽 공역 전체를 관할하는 대구관제소의 지시를 받기 시작했다.중국측 항공 관제구역에 들어가기 직전인서울 서쪽 270㎞ 지점에서는 북쪽으로 기수를 꺾어 본격 북행을 시작했다.북상하던 특별기가 서해 북방한계선(NNL) 상공에 이르자 사상 처음 대구-평양관제소간 첫 교신이 이뤄졌다.오전 9시45분이었다. 특별기가 북방한계선을 넘는 순간,대구관제소는 ‘우리 공역을 넘어섰다’는 뜻의 “핸드 오프”(HAND OFF)를 외쳤고,평양관제소는 관제 인수를 의미하는 “라저”(ROGER)로 응답했다. 특별기가 북한 영공으로 넘어가기 직전 우리 경호전투기는 영접나온 북측공군기에 직접 통신과 날갯짓으로 경호를 인계하고 부대로 복귀했다. 특별기는 북한 공군기의 경호 아래 서서히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북한 남포상공을 거친 뒤 평양 순안공항 상공으로 진입했다.순안공항 관제타워를 불러착륙허가를 받은 특별기는 10시25분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거리는총 700여㎞,비행시간은 67분이었다. 순안공항 활주로에 들어온 특별기의 몸체에는 우리 국호 ‘대한민국’과 영문 ‘Republic of Korea’가,꼬리 부분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 정상회담/ 在日 민단·조총련 표정

    13일 일본 전역에 NHK TV 등을 통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평양 첫 대면이 생중계되자 60만 재일동포들은 국적의 남북에 관계없이 두 정상의 만남에 흥분하고 탄성을 질렀다. [민단] 도쿄의 민단 본부에서는 60명의 직원들이 TV 앞에서 ‘세기의 순간’을 지켜봤다. 정진일(鄭眞一) 선전국 부국장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면서 “김국방위원장이 김대통령 영접을 나와 박수를 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고 흥분하는 모습이었다.‘민단신문’의 이청건(李淸鍵) 편집차장은 “21세기의 역사적 영상”이라면서 “이산가족의 문제가 잘 진행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한 재일 한국인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남북 통일이 실현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조총련] 조총련 본부에서도 이날 150여명의 본부 직원들이 일손이 잡히지않는 듯 TV가 있는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남북 정상의 첫 대면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다.직원들은 두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에 ‘만세’를 외치기도하고 박수로 치기도 했다.조일남(趙一南) 국제국 부국장은 김위원장의 공항영접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새삼 감동을 느꼈으며 두정상의 열의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한 기자는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과 분열은 최대의 환영표시”라며 “김국방위원장이 이처럼 손님을 영접한 일은 전례가없다”고 말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 정상회담/ 북한측 최상급 의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의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방문 첫날인 13일부터 파격(破格) 그 자체였다. [김정일 위원장 공항영접]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의 영접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나간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김 위원장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초청으로 84년 5월4일 북한을 특별열차편으로방문한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평양역에서 김 주석과 함께영접했을 뿐이다. 김 주석은 80년초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공항에 영접나간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의 공항영접은 북한이 김 대통령을 국가원수로서 최고의 예우를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94년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방문했을 때도 평양에서 김영남(金永南)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영접했었다. [숙소까지 동승] 영접에 이어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김 위원장이 동승한 것도 파격이다.두 정상은 동승한 리무진에서 첫 대면의 어색함을 털고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이 자리에서 김위원장은 격의없는 대화를 주문했다.특히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상석인 뒷자리 오른쪽을 안내하면서 김 대통령이 먼저 차에 오르자 옆자리에 앉았다. 김 위원장의 동승으로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두번째 차량을 이용했다.외교대국인 프랑스는 국빈방문 때 대통령이 공항에 영접을 나가 영빈관까지 동승하는 최고의 의전을 해왔으나 시라크 대통령 때부터는 의전간소화 지침에 따라 이런 극진한 예우가 사라졌다. [의장대 사열 및 분열] 북한 인민군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가 이날순안공항에 도착한 김 대통령에 대해 사열과 분열 등 의장행사를 한 점도 특이하다.북측의 군 의장행사는 정상회담을 준비해온 통일·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의장행사는 북측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국가 관계로 새롭게 규정되는 사례라는 해석이다. [두 정상 환담] 김 위원장은 남측 공동취재단 기자 2명이 접견실에 있는데도김 대통령, 공식수행원들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고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때 TV에서 많이 봤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94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때 김 주석의 심정을 털어놓은 것도 보통의 일은 아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구본영의 남북프리즘] 정상회담과 ‘작은 발걸음 정책’

    대한매일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 객원연구원을 역임한 통일문제 전문기자인 편집국 행정뉴스팀 구본영(具本永)차장의전문칼럼 ‘남북프리즘’난을 신설한다. 1970년 3월 19일 동독 에르프루프역.전후 서독 정상으로서는 처음 동독 땅을 밟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플랫폼에서 슈토프 동독 총리의 영접을 받았다.통독의 견인차가 된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이 첫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하지만 동서독 정상의 첫 만남은 별다른 결실없이 싱겁게 끝난다. 그러나 브란트-슈토프간 동서독 첫 정상회담 이후 무려 20년이란 산고(産苦)를 겪은 뒤에야 독일은 마침내 통일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이룬다.이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교훈이다. 브란트-슈토프 회담 이후 30년이 지난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실로 극적인 장면이다. 공식석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던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영접을 나와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도 55년 만의 남북정상의 첫 악수가 분단의 사슬을 끊으면서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사실 분단 이후 처음인 남쪽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그 자체 만으로도 엄청난 역사적 함의를 가진다.통일로 가는 긴 여정에서 분명히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간의 우여곡절과 파란은 상당 기간 이어질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김 대통령의 2박3일간 평양 체류로 평화통일의 문이당장 활짝 열릴 것으로 보기는 무리라는 얘기다.따라서 우리의 이번 첫 정상회담에서도 엄청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은 게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북한이 현재 경제난·식량난·에너지난 3중고로 곤궁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북측으로선 정상회담은 물론 그 이후에도 체제유지에 최우선적 목표를 둘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키 어렵다. 제도적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양 들떠서는 안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대통령도 서울을 떠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분한 머리”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장의 뾰족한 합의 못지않게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간 각종 대화와 교류 채널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리처드 하스 전 백악관특별보좌관도 국내언론과의 회견에서 “당장 많은 문제가 풀리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대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브란트의 신동방정책도 참모인 에곤 바 외교안보담당 특보의 ‘접촉을 통한변화 유도’라는 비교적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나중에 외무장관이된 발터 쉘의 지지를 받아 ‘작은 발걸음 정책’으로 발전했다가 결국 ‘신동방 정책’으로 자리매김된 독일식 포용정책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 대통령의 이번 평양방문은 ‘작은 발걸음’이지만 길게 보면 역사적으로 ‘큰 발걸음’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 남북 정상회담/ 金대통령 기내 영접 全熙正씨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기내에서 영접한 인물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전희정(全熙正)씨라고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밝혔다. 전씨는 오랫동안 의전분야에서 일해온 전문가로 지난 80년부터 주석부 외사국장을 맡아 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해왔다.김주석 사후에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김위원장과 고위간부들의 의전,외국인 참관안내 등을 담당하는 외사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1930년 3월 북한쪽 강원도에서 출생한 그는 50년대부터 외무성에서 근무하면서 캄보디아 대사관 1등서기관,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참사관 등을 지냈다. 전씨는 직책에 걸맞게 지난 80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8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김일성훈장’ 등 각종 훈장과 상을 받았다. 가족으로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다.장남 영진은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현재 외무성 8국(서유럽국) 프랑스담당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때 프랑스주재 북한일반대표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
  • 남북 정상회담/ 서울서 평양까지(II)

    > 김 대통령은 오후 3시20분쯤 캐딜락 승용차편으로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에도착,로비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김 대통령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 상임위원장도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김 대통령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김윤혁 사회민주당 부위원장,강릉수 문화상,려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과 잇따라 악수했다. 이어 남측 외교통상부 손상하 의전장이 박재규 통일부장관,임동원 대통령특보 등의 순으로 남측 공식수행원들을 김 상임위원장에게 소개했다. 김상임위원장은 “김 대통령께서 어떻게 보면 북행열차를 타고 오신건데 앞으로는 북남이 합심 협력해 통일열차를 기쁘게 타고 갈 날이 멀지 않은 것같다”고 김 대통령의 방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김 대통령도 “그럴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 김대통령은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관현악, 국악,무용 등의 공연을 관람했다.북측은공연전 남측 수행원 전원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성 명의로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과 일행을 위한 예술공연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힌 초대장을 보냈다. 공연장에는 남측 수행원과 북측 관계자 등이 500석 규모의 좌석을 가득 메웠으며 김 대통령 내외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안내로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환영곡’ 속에 입장하자 박수로 환영했다.이에 김 대통령은 남북 관람객들의 박수에 손을 들어 화답한 뒤 공연장 앞쪽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착석했다. 귀빈석에는 김 대통령 우측으로 김영남 상임위원장,박지원 문광부장관,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고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좌측으로는 이희호 여사,몽양 려운형 선생의 딸 려원구 조국통일민주전선 서기국장,차범석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강현수 평양시당 책임비서 순으로 앉았다. 공연에서는 먼저 관현악(지휘자 김병화)으로 ‘아리랑’‘청산벌에 풍년이왔네’ 등 2곡이 연주됐다.이어 무용 쟁강춤,물동이 춤,천안삼거리(독무),키춤,장고춤 순으로이어졌고,가야금 독주와 병창에 이어 무용 ‘눈이 내린다’ 등 8가지 순서로 진행됐다. 공연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전 출연진이 도열해 있는 무대로 올라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내외’라고 적힌 큰 꽃바구니를 전달했으며,함께 기념촬영했다. > 평양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고려호텔은 45층 건물 2개동으로 평양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기자실 프레스센터는 이 건물 3층에 마련됐으며,탁자와 의자 40여개,위성송출장비,팩시밀리,전화기 등 기사송출에 필요한 장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숙소는 17층부터 25층까지 각 층별로 4∼8명씩 1인 1실로 배치됐다.숙소는침실과 응접실,욕실로 나누어져 있고,탁자에는 호텔측에서 제공한 바나나 사과 오렌지가 2개씩 바구니에 담겨 있었으며,‘룡성’표 과자,땅콩 등이 접시에 있었다. 냉장고에는 신덕샘물 2통,룡성 맥주와 사이다,오미자 단물,신덕 탄산물이 1병씩 채워져 있었다. 침실에는 꽃무늬 양탄자에 싱글침대 2개가 구비돼 있고,탁자와 전화기 한대가 설치돼 있다.전화기 옆에는 ‘전화안내’라는 책자에 대통령과 공식수행원이 묵고 있는 숙소와 연결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 김 대통령은 오전 8시15분 평양을 향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뗐다.청와대 직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나선 김 대통령 내외는 정문 앞에 운집한 실향민과 주민들을 보고는 승용차에서 내려 잠시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대통령 내외를 태운 승용차가 서울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출근길 시민들은박수를 치며 김 대통령을 환송했다. 오전 8시55분쯤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환송행사에서 방북인사를 통해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가운 머리로 방북길에 오른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김 대통령은 일반 환송객들을 향해 답례를 한 뒤 활주로 양편에 도열한 3부 요인 등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대통령은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환송객들과 악수를 나누고 3군 의장대,전통의장대,취타대의 사열을 받은 뒤 도열병을 통과,전용기에 올랐다.
  • [사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반갑습니다.만나고 싶었습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마주잡으며 인사말을 나눌 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이토록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을 그토록 먼 길을 돌아야 했던가.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김대통령이 천천히내려와 이례적으로 공항영접에 나선 북한의 김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맞잡고악수 하는 순간,우리는 한민족임을 절감하게 되었다.50대의 김위원장은 70대의 김대통령을 마치 혈육을 대하듯 극진히 맞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평생의 노력이 구체화한 현장에서 김대통령은 벅찬 감회에 젖은 듯 했다.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며 다정한 모습으로 의장대를 사열하고,환영 나온 1,000여명의 인파가 ‘김정일’‘김대중’을 연호하는 가운데 나란히 승용차에 올라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것을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가슴 밑바닥에서 치미는 뜨거운 감격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남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우리 민족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순간,살다 보면이런 날도 있구나 싶게 꿈 같던 일이 현실화 된 그 순간은 진정 남북이 한마음이 된 축복의 시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에 간 김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영접은 융숭함을 넘어선 파격적인 것이어서 회담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좀처럼 일반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의 김위원장이 직접공항에 나와 김대통령을 맞이하고 의장대 사열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가진 것은 사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이날 공항에는 김위원장 이외에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거의 모두 나왔다. 지난 70년 동서독의 첫 정상회담 당시 동독을 찾은 서독 총리에 대한 동독의공식적인 영접행사는 극히 사무적이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묵시적으로‘특수관계’로 인정돼 왔고 따라서 순안공항과 평양 거리의 환영인파들도남북 국기 대신 꽃을 흔들어 반겼다. 그러나 김대통령을 남한의 국가 원수로 인정하고 최고 예우를 갖춘 이번 공항 의전행사를 통해 남북 관계는 새롭게 진전한 셈이다. 또 북한의 김위원장은 공항의전 행사가 끝난 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향하는 김대통령을 그냥 배웅하지 않고 리무진 승용차에 함께 타고 숙소로향하는 파격을 연출했다.사실상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승용차 안에서 극히자유스럽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관례를 깨트린 이같은 파격은 바로 남과 북이 외국이 아닌 한나라요 한핏줄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형식과 절차를 뛰어 넘어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7,000만 민족의 염원이 김위원장의 전격적이고파격적인 김대통령 공항영접과 승용차 동승의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싶다.북한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 또한바로 이런 결과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싶어 지난 하룻동안의 우려가 말끔히 씻어지는 느낌이다. 남북 두 정상은 상봉 첫날부터 승용차 안에서의 회담에 이어 본격적인 공식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남북 화해 협력과 민족공존공영의 길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핫라인 설치에 의견을 모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물론 금물이다.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우리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환영에 흥분해서 반세기 만에 맞은 역사적인 기회를 그르쳐서도 안될 것이다.다만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상호 이해와 협력의 폭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김대통령은 평양도착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남과 북 우리 동포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면서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다.이번 평양방문으로 온 겨레가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평양에서의 2박3일 공식일정 동안 남북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과 대립과 분쟁으로 얼룩진 남북관계가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외세에 의한 남북분단,그로 인한무수한 상처와 손실을 씻어내고, 자주적인 평화공존의 순결한 씨앗이 뿌려졌다.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로, 남북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돌출할지 모르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남북 정상의 첫 상봉,좋은 시작이 김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으로 이어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남북정상회담/ 金대통령 방북길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라 남북 화해·협력의 첫발을 내디딘다.첫날부터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과 상봉을 겸한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냉전구도 해체를 통한민족의 장래를 논의하게 된다. ■평양 도착/ 김 대통령은 항공편으로 대략 1시간 가량 비행 끝에 북한 순안비행장에 내려 감격적인 도착성명을 발표한다.분단 이후 남북간 첫 직항로가열리는 셈이다.김 대통령은 도착성명을 통해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자”고 북측 지도자들과 온 민족에게 호소할 예정이다.북측은 순안공항에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보내김 대통령을 영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단한 공항 도착행사를 마친 김 대통령은 곧바로 숙소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한뒤 수행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다.이어 김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첫대좌를 갖는다. 정상회담은 생중계가 되지 않으나 도착행사와 성명 발표 등은 국내 TV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라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전했다. ■서울 출발/ ‘국민의 기대와 염원 속의 평양 향발’이 기본 구상이다.먼저13일 아침은 김홍일(金弘一) 의원과 손자 손녀 등 가족들과 관저에서 식사를함께 한뒤 배웅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어 본관 집무실에 도착,간단히상징적 행사를 갖고 수석비서관들의 인사를 받은 뒤 승용차에 올라 청와대정문 앞까지 도열한 비서관 및 직원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환송박수를 받는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사랑방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마중나온 청와대 이웃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서울공항으로 이동한다.동원인파는전혀 없지만,차량 이동속도를 조절할 계획이어서 연도 및 건물 안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김 대통령은 공항에 도착해 3부요인과 정당대표,국무위원,시민들로부터 공식 배웅을 받게 된다. 이어 ‘국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출발성명을 발표한다.성명은 ‘북측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자 한다.남과북의 우리 민족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 전날 표정/ 11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머문 김 대통령은 12일 아침 일찍 돌아와 오후에 간단한 관련보고를 받은 것 말고는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낮시간 동안 잠시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녹지원 및 옆 꽃동산을산책하고 연못의 잉어와 처용,나리 등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는 망중한의 시간을 가졌다. 박 대변인은 “꽃,나무,새들을 보고 이 여사와 얘기도 나누고 깊은 상념에잠기기도 했다”며 “북한의 방북연기 요청 등에 전혀 개의치않은 채 담담하고 차분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했다”고 전했다.또호텔에서 연설문 정리를 마무리지은 뒤 오후에 공보수석실로 최종본을 내려보내고 각종 자료를 통해 북한의 역사·풍물·지형·인물을 익히는 일을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기본 생각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한민족이 둘로나뉘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편하고 긴장된 속에서 살아온 것을 청산하고 갈라진 두 민족이 처음으로 화해와 협력,장기적으로는 번영과 통일의길로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쏠려있다”고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조문외교 이모저모

    [도쿄 양승현특파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 참석차 8일 도쿄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활발한 한·미·일 ‘3각 조문외교’를 펼쳤다. 특히 클린턴 미 대통령은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6개국 정상과의 회담 제의를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김 대통령과만 만나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한·미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예정보다 10분 늦은 오후 5시15분부터 30분 동안 오쿠라호텔 프레지던트슈트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동북아지역의 정세 변화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이번 회담이 이뤄진 데는 미·일이 일관되게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덕분”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자 클린턴 대통령은 “김 대통령이야말로 북한이 발전하는데 설득하고 도와줄 가장 적절한 분”이라고 화답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에서 얼굴이라도 봤으면 한다”는 김 대통령의 요청에 “아·태경제협력체(APEC)에서 보게 될 것”이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11월 브루나이 APEC에 나오게 하면 큰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말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결과를 듣기를 바란다”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조그마한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전폭적 지원와 지지를 약속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고마움을 표시한 뒤 “재임 중 미국 역사에 남을 많은 업적을 남긴 만큼 퇴임 후에도 많은 업적과 유익한 일을 하기를 평생 친구로서기원한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김 대통령은 예정보다 빠른 오전 11시20분부터 27분 동안영빈관에서 모리 일본 총리와 회담했다.모리 총리는 김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에 대해 “일본 정부와 국민,유가족을 대신해 감사한다”고 말했다.김 대통령은 “오부치 전 총리에 대한 존경심과 서거에 대한 애석함이 컸기 때문에 참석키로 했다”고 화답했다. 두나라 정상은 서울대와 도쿄대간 학문교류를 화제로 올렸으며,특히 김 대통령은 “신문 보도를 보고 그 내용을 알았다”면서 “진작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다.시작했으니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부치 전 총리 장례식/ 도쿄 부도칸에서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 열린오부치 전 총리 장례식에는 각국 조문사절과 유엔 등 3개 국제기관 대표가참석했는데,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맨 앞줄 중앙 자리에 앉고,두번째로 헌화·묵념하는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일본 정부는 공항 영접때도 다른 국가 조문사절의 경우 주재국 대사를 내보냈으나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만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을 보내영접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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