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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에 비친 金正日위원장 큰 변화

    13일 생중계나 녹화중계를 통해 안방에 소개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즐겨 입는 점퍼옷 차림 그대로였지만늘 왼쪽 깃에 다는 ‘김일성 배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큰 변화였다. ■복장/ 양복을 거의 입지 않는 스타일대로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이나 정상회담장에서 점퍼를 입었다.상하의 모두 짙은 베이지색으로 상의는 점퍼,하의는 정장 바지였다.그러나 왼쪽 깃의 김일성 배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남측에 대한 배려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헤어스타일·안경/ 평소처럼 뒤로 넘긴 고수머리였다.지난달 중국을 방문,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와 비교해도 큰 변화는 없다.안경도두꺼운 금테안경이었다.때에 따라 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낄 때도 있다. 김 위원장과 함께 공항영접을 나온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어 눈길을 끌었다. ■신체/ 김 위원장의 신장은 165㎝로 추정되나 이날 드러낸 모습으로는 족히170㎝는 넘어 보였다.이는 굽 높은 구두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체중도 80㎏가량으로 추정됐다.TV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은 내내 밝은 모습으로,듣던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황성기기자 ma
  • 남북 정상회담/ 北 영접인사들 면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수행,13일 평양 순안공항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영접인사로 나온 13명은 북한의 핵심실세들.헌법상 국가수반이자서열 2위인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이 김 국방위원장의 뒤에 바싹 붙어 김대통령을 맞이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대표적인 외교통.1954년 이후 당 국제부 등 외교분야에서일해온 대외관계 전문가다.조명록은 서열 3위로 군부 인사 중 가장 높다.군에 대한 김 국방위원장의 대리인 격으로 군의 정치통제를 총괄한다.해방전만주비행학교를 나온 북한 공군의 1세대며 공군사령관 등을 지냈다. 홍성남(洪成南) 총리와 김국태(金國泰)·김용순(金容淳)·최태복(崔泰福)등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도 김 국방위원장과 함께 비행기 트랩 앞까지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했다.홍성남은 내각에서 경제문제를 오래 다룬 기술관료다.김국태는 인사,김용순은 대남을 각각 담당하고 최태복은 교육을 맡으면서최고인민회의 의장도 겸하고 있다. 민족화해협의회의장직을 맡으며 대남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김윤혁(金潤赫) 상임위 서기장도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김 국방위원장의 부인 김영숙씨와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은 나오지 않았다.북측 인사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및 대남담당 관계자들이 많았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이모저모

    ●1차 남북정상회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13일 오전 11시45분쯤 같은 승용차를 타고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김국방위원장은 차에서 내린 뒤 영빈관 입구에 서서 뒤차로 도착한 이희호(李姬鎬)여사에게 먼저 들어갈 것을 권하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숙소 입구에서 보라색과 주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여성들로부터 “반갑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건네받고 환한표정을 지었다. 이어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은 영빈관 입구에서 파도 치는 바다그림을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는데 김 대통령은 남북한 사진기자들에게 “잘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김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과의 사진촬영이 끝나자 이여사에게도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권유하고 촬영 뒤에는큰 목소리로 “장관들도 함께 합시다”라고 제의,다함께 기념촬영을 했다.김국방위원장은 “김용순 위원장 어디 있어”라고 부른 뒤 김대통령 내외와 공식수행원,김용순 위원장과 함께 다시 한번 포즈를 취했다. 접견실에서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이 공항까지 영접 나오는 등 대대적으로 환영해준 데 대해 “감개 무량합니다”라고 인사하자 김 국방위원장은“절대 섭섭하지 않게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라며 “세계가 주목을 하고있는데 2박3일 동안 대답을 해줘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만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인민문화궁전에서 주최한 만찬에는 남북대표가 어우러져 동포애를 과시했다. 김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이토록 지척에 같은 동포가 살고 있는데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면서 “성대한 만찬에 가슴뭉클한 동포사랑을 느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김일성 주석이 직접 이름을 지은 것으로알려진 인민문화궁전은 지상 4층,지하 1층으로 세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85년 8월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과 90년 10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91년 2월제3차 남북고위급회담 장소로도 사용됐다. ●오찬/ 김 대통령 내외는 단둘이서 오찬을 했다.점심 식단은 깨즙을 뿌린 닭고기와 생선전,청포종합냉채,평양온반,옥돌 불고기 새우남새볶음,설기떡,밤정과 등 ‘푸짐하게’차려졌다.김 대통령은 “음식이 맛있었다”고 평가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회담/ 정치권 표정

    여야는 1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을 일제히 환영했다.특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민주당] 감격 그 자체였다.당사 사무실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TV 생중계를지켜보던 당직자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 영접을 하고,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대화 장면이 비칠 때마다 탄성과 박수를 보냈다. 서영훈(徐英勳) 대표는 “오늘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았던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민족사와 세계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날이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김 대통령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았다”고 평가했다.이어 “김구 선생이 38선을넘는 사진이 남북관계의 상징적인 사진이었으나 오늘 이후에는 김 대통령의평양 도착 사진이 더 큰 상징이 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라며 눈시울을 붉혔고,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은 “봄이 오는 과정에서 꽃샘추위와 어려움이있겠지만 대세는 막을 수 없다”는 소회를피력했다. [한나라당]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의 눈길을거두지 않았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정상회담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됐던 55년 분단의 역사를 접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방북 기간이나 이후에도 국민과 민족을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에는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한구(李漢久) 제2정조위원장은 “북한이 회담에서 약속한 내용을준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소홀하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특별한 언급은 없었으나 당사에서 TV로 생중계되는김 대통령의 평양 순안도착 장면을 관심있게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 등 당직자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영접을 나온 것과 관련,“생각했던 것보다 파격적인 예우”라면서 “북측의예우가 가식이 아니라면 이번 정상회담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역사적전기가 될 것이라는 좋은 징조”라고 반겼다. 강동형 최광숙기자 yunbin@
  • [구본영의 남북프리즘] 정상회담과 ‘작은 발걸음 정책’

    대한매일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 객원연구원을 역임한 통일문제 전문기자인 편집국 행정뉴스팀 구본영(具本永)차장의전문칼럼 ‘남북프리즘’난을 신설한다. 1970년 3월 19일 동독 에르프루프역.전후 서독 정상으로서는 처음 동독 땅을 밟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플랫폼에서 슈토프 동독 총리의 영접을 받았다.통독의 견인차가 된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이 첫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하지만 동서독 정상의 첫 만남은 별다른 결실없이 싱겁게 끝난다. 그러나 브란트-슈토프간 동서독 첫 정상회담 이후 무려 20년이란 산고(産苦)를 겪은 뒤에야 독일은 마침내 통일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이룬다.이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교훈이다. 브란트-슈토프 회담 이후 30년이 지난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실로 극적인 장면이다. 공식석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던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영접을 나와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도 55년 만의 남북정상의 첫 악수가 분단의 사슬을 끊으면서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사실 분단 이후 처음인 남쪽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그 자체 만으로도 엄청난 역사적 함의를 가진다.통일로 가는 긴 여정에서 분명히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간의 우여곡절과 파란은 상당 기간 이어질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김 대통령의 2박3일간 평양 체류로 평화통일의 문이당장 활짝 열릴 것으로 보기는 무리라는 얘기다.따라서 우리의 이번 첫 정상회담에서도 엄청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은 게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북한이 현재 경제난·식량난·에너지난 3중고로 곤궁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북측으로선 정상회담은 물론 그 이후에도 체제유지에 최우선적 목표를 둘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키 어렵다. 제도적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양 들떠서는 안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대통령도 서울을 떠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분한 머리”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장의 뾰족한 합의 못지않게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간 각종 대화와 교류 채널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리처드 하스 전 백악관특별보좌관도 국내언론과의 회견에서 “당장 많은 문제가 풀리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대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브란트의 신동방정책도 참모인 에곤 바 외교안보담당 특보의 ‘접촉을 통한변화 유도’라는 비교적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나중에 외무장관이된 발터 쉘의 지지를 받아 ‘작은 발걸음 정책’으로 발전했다가 결국 ‘신동방 정책’으로 자리매김된 독일식 포용정책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 대통령의 이번 평양방문은 ‘작은 발걸음’이지만 길게 보면 역사적으로 ‘큰 발걸음’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 남북 정상회담/ 金대통령 기내 영접 全熙正씨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기내에서 영접한 인물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전희정(全熙正)씨라고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밝혔다. 전씨는 오랫동안 의전분야에서 일해온 전문가로 지난 80년부터 주석부 외사국장을 맡아 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해왔다.김주석 사후에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김위원장과 고위간부들의 의전,외국인 참관안내 등을 담당하는 외사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1930년 3월 북한쪽 강원도에서 출생한 그는 50년대부터 외무성에서 근무하면서 캄보디아 대사관 1등서기관,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참사관 등을 지냈다. 전씨는 직책에 걸맞게 지난 80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8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김일성훈장’ 등 각종 훈장과 상을 받았다. 가족으로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다.장남 영진은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현재 외무성 8국(서유럽국) 프랑스담당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때 프랑스주재 북한일반대표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
  • 남북 정상회담/ 서울서 평양까지(II)

    > 김 대통령은 오후 3시20분쯤 캐딜락 승용차편으로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에도착,로비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김 대통령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 상임위원장도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김 대통령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김윤혁 사회민주당 부위원장,강릉수 문화상,려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과 잇따라 악수했다. 이어 남측 외교통상부 손상하 의전장이 박재규 통일부장관,임동원 대통령특보 등의 순으로 남측 공식수행원들을 김 상임위원장에게 소개했다. 김상임위원장은 “김 대통령께서 어떻게 보면 북행열차를 타고 오신건데 앞으로는 북남이 합심 협력해 통일열차를 기쁘게 타고 갈 날이 멀지 않은 것같다”고 김 대통령의 방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김 대통령도 “그럴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 김대통령은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관현악, 국악,무용 등의 공연을 관람했다.북측은공연전 남측 수행원 전원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성 명의로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과 일행을 위한 예술공연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힌 초대장을 보냈다. 공연장에는 남측 수행원과 북측 관계자 등이 500석 규모의 좌석을 가득 메웠으며 김 대통령 내외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안내로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환영곡’ 속에 입장하자 박수로 환영했다.이에 김 대통령은 남북 관람객들의 박수에 손을 들어 화답한 뒤 공연장 앞쪽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착석했다. 귀빈석에는 김 대통령 우측으로 김영남 상임위원장,박지원 문광부장관,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고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좌측으로는 이희호 여사,몽양 려운형 선생의 딸 려원구 조국통일민주전선 서기국장,차범석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강현수 평양시당 책임비서 순으로 앉았다. 공연에서는 먼저 관현악(지휘자 김병화)으로 ‘아리랑’‘청산벌에 풍년이왔네’ 등 2곡이 연주됐다.이어 무용 쟁강춤,물동이 춤,천안삼거리(독무),키춤,장고춤 순으로이어졌고,가야금 독주와 병창에 이어 무용 ‘눈이 내린다’ 등 8가지 순서로 진행됐다. 공연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전 출연진이 도열해 있는 무대로 올라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내외’라고 적힌 큰 꽃바구니를 전달했으며,함께 기념촬영했다. > 평양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고려호텔은 45층 건물 2개동으로 평양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기자실 프레스센터는 이 건물 3층에 마련됐으며,탁자와 의자 40여개,위성송출장비,팩시밀리,전화기 등 기사송출에 필요한 장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숙소는 17층부터 25층까지 각 층별로 4∼8명씩 1인 1실로 배치됐다.숙소는침실과 응접실,욕실로 나누어져 있고,탁자에는 호텔측에서 제공한 바나나 사과 오렌지가 2개씩 바구니에 담겨 있었으며,‘룡성’표 과자,땅콩 등이 접시에 있었다. 냉장고에는 신덕샘물 2통,룡성 맥주와 사이다,오미자 단물,신덕 탄산물이 1병씩 채워져 있었다. 침실에는 꽃무늬 양탄자에 싱글침대 2개가 구비돼 있고,탁자와 전화기 한대가 설치돼 있다.전화기 옆에는 ‘전화안내’라는 책자에 대통령과 공식수행원이 묵고 있는 숙소와 연결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 김 대통령은 오전 8시15분 평양을 향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뗐다.청와대 직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나선 김 대통령 내외는 정문 앞에 운집한 실향민과 주민들을 보고는 승용차에서 내려 잠시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대통령 내외를 태운 승용차가 서울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출근길 시민들은박수를 치며 김 대통령을 환송했다. 오전 8시55분쯤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환송행사에서 방북인사를 통해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가운 머리로 방북길에 오른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김 대통령은 일반 환송객들을 향해 답례를 한 뒤 활주로 양편에 도열한 3부 요인 등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대통령은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환송객들과 악수를 나누고 3군 의장대,전통의장대,취타대의 사열을 받은 뒤 도열병을 통과,전용기에 올랐다.
  • [사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반갑습니다.만나고 싶었습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마주잡으며 인사말을 나눌 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이토록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을 그토록 먼 길을 돌아야 했던가.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김대통령이 천천히내려와 이례적으로 공항영접에 나선 북한의 김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맞잡고악수 하는 순간,우리는 한민족임을 절감하게 되었다.50대의 김위원장은 70대의 김대통령을 마치 혈육을 대하듯 극진히 맞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평생의 노력이 구체화한 현장에서 김대통령은 벅찬 감회에 젖은 듯 했다.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며 다정한 모습으로 의장대를 사열하고,환영 나온 1,000여명의 인파가 ‘김정일’‘김대중’을 연호하는 가운데 나란히 승용차에 올라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것을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가슴 밑바닥에서 치미는 뜨거운 감격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남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우리 민족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순간,살다 보면이런 날도 있구나 싶게 꿈 같던 일이 현실화 된 그 순간은 진정 남북이 한마음이 된 축복의 시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에 간 김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영접은 융숭함을 넘어선 파격적인 것이어서 회담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좀처럼 일반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의 김위원장이 직접공항에 나와 김대통령을 맞이하고 의장대 사열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가진 것은 사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이날 공항에는 김위원장 이외에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거의 모두 나왔다. 지난 70년 동서독의 첫 정상회담 당시 동독을 찾은 서독 총리에 대한 동독의공식적인 영접행사는 극히 사무적이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묵시적으로‘특수관계’로 인정돼 왔고 따라서 순안공항과 평양 거리의 환영인파들도남북 국기 대신 꽃을 흔들어 반겼다. 그러나 김대통령을 남한의 국가 원수로 인정하고 최고 예우를 갖춘 이번 공항 의전행사를 통해 남북 관계는 새롭게 진전한 셈이다. 또 북한의 김위원장은 공항의전 행사가 끝난 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향하는 김대통령을 그냥 배웅하지 않고 리무진 승용차에 함께 타고 숙소로향하는 파격을 연출했다.사실상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승용차 안에서 극히자유스럽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관례를 깨트린 이같은 파격은 바로 남과 북이 외국이 아닌 한나라요 한핏줄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형식과 절차를 뛰어 넘어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7,000만 민족의 염원이 김위원장의 전격적이고파격적인 김대통령 공항영접과 승용차 동승의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싶다.북한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 또한바로 이런 결과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싶어 지난 하룻동안의 우려가 말끔히 씻어지는 느낌이다. 남북 두 정상은 상봉 첫날부터 승용차 안에서의 회담에 이어 본격적인 공식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남북 화해 협력과 민족공존공영의 길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핫라인 설치에 의견을 모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물론 금물이다.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우리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환영에 흥분해서 반세기 만에 맞은 역사적인 기회를 그르쳐서도 안될 것이다.다만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상호 이해와 협력의 폭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김대통령은 평양도착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남과 북 우리 동포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면서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다.이번 평양방문으로 온 겨레가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평양에서의 2박3일 공식일정 동안 남북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과 대립과 분쟁으로 얼룩진 남북관계가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외세에 의한 남북분단,그로 인한무수한 상처와 손실을 씻어내고, 자주적인 평화공존의 순결한 씨앗이 뿌려졌다.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로, 남북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돌출할지 모르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남북 정상의 첫 상봉,좋은 시작이 김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으로 이어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남북 정상회담/ 在日 민단·조총련 표정

    13일 일본 전역에 NHK TV 등을 통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평양 첫 대면이 생중계되자 60만 재일동포들은 국적의 남북에 관계없이 두 정상의 만남에 흥분하고 탄성을 질렀다. [민단] 도쿄의 민단 본부에서는 60명의 직원들이 TV 앞에서 ‘세기의 순간’을 지켜봤다. 정진일(鄭眞一) 선전국 부국장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면서 “김국방위원장이 김대통령 영접을 나와 박수를 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고 흥분하는 모습이었다.‘민단신문’의 이청건(李淸鍵) 편집차장은 “21세기의 역사적 영상”이라면서 “이산가족의 문제가 잘 진행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한 재일 한국인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남북 통일이 실현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조총련] 조총련 본부에서도 이날 150여명의 본부 직원들이 일손이 잡히지않는 듯 TV가 있는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남북 정상의 첫 대면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다.직원들은 두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에 ‘만세’를 외치기도하고 박수로 치기도 했다.조일남(趙一南) 국제국 부국장은 김위원장의 공항영접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새삼 감동을 느꼈으며 두정상의 열의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한 기자는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과 분열은 최대의 환영표시”라며 “김국방위원장이 이처럼 손님을 영접한 일은 전례가없다”고 말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 정상회담/ 북한측 최상급 의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의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방문 첫날인 13일부터 파격(破格) 그 자체였다. [김정일 위원장 공항영접]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의 영접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나간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김 위원장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초청으로 84년 5월4일 북한을 특별열차편으로방문한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평양역에서 김 주석과 함께영접했을 뿐이다. 김 주석은 80년초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공항에 영접나간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의 공항영접은 북한이 김 대통령을 국가원수로서 최고의 예우를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94년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방문했을 때도 평양에서 김영남(金永南)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영접했었다. [숙소까지 동승] 영접에 이어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김 위원장이 동승한 것도 파격이다.두 정상은 동승한 리무진에서 첫 대면의 어색함을 털고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이 자리에서 김위원장은 격의없는 대화를 주문했다.특히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상석인 뒷자리 오른쪽을 안내하면서 김 대통령이 먼저 차에 오르자 옆자리에 앉았다. 김 위원장의 동승으로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두번째 차량을 이용했다.외교대국인 프랑스는 국빈방문 때 대통령이 공항에 영접을 나가 영빈관까지 동승하는 최고의 의전을 해왔으나 시라크 대통령 때부터는 의전간소화 지침에 따라 이런 극진한 예우가 사라졌다. [의장대 사열 및 분열] 북한 인민군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가 이날순안공항에 도착한 김 대통령에 대해 사열과 분열 등 의장행사를 한 점도 특이하다.북측의 군 의장행사는 정상회담을 준비해온 통일·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의장행사는 북측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국가 관계로 새롭게 규정되는 사례라는 해석이다. [두 정상 환담] 김 위원장은 남측 공동취재단 기자 2명이 접견실에 있는데도김 대통령, 공식수행원들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고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때 TV에서 많이 봤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94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때 김 주석의 심정을 털어놓은 것도 보통의 일은 아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정상회담/ 金대통령 방북길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라 남북 화해·협력의 첫발을 내디딘다.첫날부터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과 상봉을 겸한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냉전구도 해체를 통한민족의 장래를 논의하게 된다. ■평양 도착/ 김 대통령은 항공편으로 대략 1시간 가량 비행 끝에 북한 순안비행장에 내려 감격적인 도착성명을 발표한다.분단 이후 남북간 첫 직항로가열리는 셈이다.김 대통령은 도착성명을 통해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자”고 북측 지도자들과 온 민족에게 호소할 예정이다.북측은 순안공항에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보내김 대통령을 영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단한 공항 도착행사를 마친 김 대통령은 곧바로 숙소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한뒤 수행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다.이어 김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첫대좌를 갖는다. 정상회담은 생중계가 되지 않으나 도착행사와 성명 발표 등은 국내 TV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라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전했다. ■서울 출발/ ‘국민의 기대와 염원 속의 평양 향발’이 기본 구상이다.먼저13일 아침은 김홍일(金弘一) 의원과 손자 손녀 등 가족들과 관저에서 식사를함께 한뒤 배웅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어 본관 집무실에 도착,간단히상징적 행사를 갖고 수석비서관들의 인사를 받은 뒤 승용차에 올라 청와대정문 앞까지 도열한 비서관 및 직원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환송박수를 받는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사랑방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마중나온 청와대 이웃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서울공항으로 이동한다.동원인파는전혀 없지만,차량 이동속도를 조절할 계획이어서 연도 및 건물 안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김 대통령은 공항에 도착해 3부요인과 정당대표,국무위원,시민들로부터 공식 배웅을 받게 된다. 이어 ‘국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출발성명을 발표한다.성명은 ‘북측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자 한다.남과북의 우리 민족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 전날 표정/ 11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머문 김 대통령은 12일 아침 일찍 돌아와 오후에 간단한 관련보고를 받은 것 말고는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낮시간 동안 잠시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녹지원 및 옆 꽃동산을산책하고 연못의 잉어와 처용,나리 등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는 망중한의 시간을 가졌다. 박 대변인은 “꽃,나무,새들을 보고 이 여사와 얘기도 나누고 깊은 상념에잠기기도 했다”며 “북한의 방북연기 요청 등에 전혀 개의치않은 채 담담하고 차분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했다”고 전했다.또호텔에서 연설문 정리를 마무리지은 뒤 오후에 공보수석실로 최종본을 내려보내고 각종 자료를 통해 북한의 역사·풍물·지형·인물을 익히는 일을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기본 생각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한민족이 둘로나뉘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편하고 긴장된 속에서 살아온 것을 청산하고 갈라진 두 민족이 처음으로 화해와 협력,장기적으로는 번영과 통일의길로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쏠려있다”고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정상회담 D-3/ 퍼스트 레이디들 만날까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체류일정이 최종조율단계에 들어서면서 ‘퍼스트레이디’간의 만남 여부가 다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선 정상회담에 부부동반 행사가 없는게 통례.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부인인 김영숙씨는 지금까지 공식석상에 나타난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두 정상의 부인끼리 만날 가능성은 적은셈이다. 김씨 대신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부인의 영접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평. 오히려 관례로 볼때 북한여성계 대표들이 대통령부인의 체류기간동안 카운터파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여원구(呂鴛九·70세가량)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천연옥(千延玉·55)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의 참석이 예상된다.국회부의장격인 여 부의장은 몽양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딸로 서울출신.범민련 북측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대통령 조문외교 이모저모

    [도쿄 양승현특파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 참석차 8일 도쿄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활발한 한·미·일 ‘3각 조문외교’를 펼쳤다. 특히 클린턴 미 대통령은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6개국 정상과의 회담 제의를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김 대통령과만 만나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한·미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예정보다 10분 늦은 오후 5시15분부터 30분 동안 오쿠라호텔 프레지던트슈트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동북아지역의 정세 변화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이번 회담이 이뤄진 데는 미·일이 일관되게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덕분”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자 클린턴 대통령은 “김 대통령이야말로 북한이 발전하는데 설득하고 도와줄 가장 적절한 분”이라고 화답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에서 얼굴이라도 봤으면 한다”는 김 대통령의 요청에 “아·태경제협력체(APEC)에서 보게 될 것”이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11월 브루나이 APEC에 나오게 하면 큰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말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결과를 듣기를 바란다”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조그마한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전폭적 지원와 지지를 약속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고마움을 표시한 뒤 “재임 중 미국 역사에 남을 많은 업적을 남긴 만큼 퇴임 후에도 많은 업적과 유익한 일을 하기를 평생 친구로서기원한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김 대통령은 예정보다 빠른 오전 11시20분부터 27분 동안영빈관에서 모리 일본 총리와 회담했다.모리 총리는 김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에 대해 “일본 정부와 국민,유가족을 대신해 감사한다”고 말했다.김 대통령은 “오부치 전 총리에 대한 존경심과 서거에 대한 애석함이 컸기 때문에 참석키로 했다”고 화답했다. 두나라 정상은 서울대와 도쿄대간 학문교류를 화제로 올렸으며,특히 김 대통령은 “신문 보도를 보고 그 내용을 알았다”면서 “진작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다.시작했으니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부치 전 총리 장례식/ 도쿄 부도칸에서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 열린오부치 전 총리 장례식에는 각국 조문사절과 유엔 등 3개 국제기관 대표가참석했는데,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맨 앞줄 중앙 자리에 앉고,두번째로 헌화·묵념하는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일본 정부는 공항 영접때도 다른 국가 조문사절의 경우 주재국 대사를 내보냈으나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만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을 보내영접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
  • 남북정상회담 D-4/ 미리본 ‘평양 2박3일’

    6월12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사상 처음으로 남한 국적의 항공기 한 대가 사뿐히 착륙한다.비행기에 분주하게 트랩이 설치된다.TV카메라 등 모든 눈길이트랩 위 비행기 문에 쏠려있다. 이윽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가 나란히 모습을드러낸다.김 대통령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자 비행기 아래 영접 나와있던 북한측 인사와 남측 선발대원들이 박수로 답하고 환영음악이 연주된다. 2박3일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트랩을 내려온 김 대통령은 북한측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다.김용순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나 홍성남 내각 총리 등이 영접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항에서는 간단한 환영식이 있게 된다.예포 발사나 국가 연주 등 민감한 절차는 생략된다. ■12일 일정/ 환영식을 마친 김 대통령은 평양시내 모처로 이동,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상봉’하게된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되지 않는다.두 정상은 날씨 등을 화제로 30분정도부담없는 환담을 나눈다. 상봉후 김 대통령은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이동한다. 오찬을 한 뒤 오후 만수대의사당으로 가 김 국방위원장과 1차 단독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때 우리 국민들은 김 국방위원장의 얼굴을 TV로 지켜볼 수 있다. 단독회담에는 기록원 등 2∼3명의 배석자만 참석한다.1차 단독회담 직후 양측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저녁에는 김 국방위원장 주최 만찬이 있다.여기에는 우리측에서 김 대통령내외를 비롯,청와대와 행정부의 장·차관급 공식수행원 10명,민간 특별수행원 24명 등이 참석하게 된다. ■13일 일정/ 김 대통령은 방북기간중 평양학생소년궁전과 고구려 유적지 등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12일 정상회담 직후와 13일에 걸쳐 방문할지,13일에만 방문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방북 둘째날인 13일에는 유적지 방문과 2차 단독정상회담 등이 예정돼 있다.만일 12일 확대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13일 오전 확대회담이 열리게된다.2차 단독회담은 두 정상의 마지막 회담이다. 여기서 최종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두 정상은 공동성명 또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13일 만찬은 우리측이 주최할 것으로 보이는데 김 국방위원장이 참석할 지는 미지수다.만찬이 끝난 뒤 우리측은 정상회담 성과를 최종 정리하면서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14일 일정/ 평양 체류 마지막 날에는 귀환준비와 현지에 설치한 장비 철수등으로 아침부터 분주할 것이다. 김 대통령은 오전에는 특별한 공식행사는 갖지 않을 것 같다.북측의 환송행사에 참석한 뒤 바로 승용차편으로 출발한다.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타고판문점에 도착한다. 판문점에서 환영행사를 가진 뒤 서울로 귀환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 美·러 정상회담 결산

    “클린턴은 매우 편안하고 유쾌한 협상 파트너”,“푸틴은 개인의 자유를존중하면서 강력하고 번영된 러시아를 건설할 충분한 능력을 지닌 사람”.4일 모스크바에서의 미-러 정상회담이 끝난 뒤 두 사람의 상대에 대한 평가다.미·러 양국 언론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했다.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가 상대방에 대한 ‘탐색’이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두 정상이 모스크바 대좌에서 채택한 것은 ‘전략적 안정 원칙’에 관한 공동선언문과 2가지 협정.▲핵무기용 플루토늄 68t을 민수용으로 전환하거나폐기하고 ▲2001년 가을쯤 모스크바에 미사일 발사 조기경보 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 이슈였던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에 직결되는 탄도탄 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팽팽한 이견만 노출했다. 클린턴도 정상회담이 끝난 뒤 “상황은 바뀔 수 있으며 새로운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위협에 대처해야만 하며 어떤 방법으로든이 문제에 있어서 이견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정상회담 중 체첸사태와 관련,체첸전중 인권유린 상황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지만 푸틴으로부터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플루토늄 폐기협정은 의미가 크긴 하나 양국간 사전 조율에서 이미 합의된사항.결국 두 정상의 만남은 성과 없이 ‘각자가 주장을 되풀이하고 외교적으로 만족을 표시한 수준’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임기 만료 7개월을 앞둔 클린턴이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NMD체제에 강경 입장을 취하는 등 자신의이미지를 서방에 알리는 기회로 십분 활용했다는 평가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이 방문한 3일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과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만을 보내 영접했다.또 미리 일정이 잡혀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푸틴은 5일 클린턴이 러시아를 떠나기도 전에 먼저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김수정기자 crystal@. *클린턴, 서방지도자론 첫 러의회 연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5일 서방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의회 연단에 섰다.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주의제였던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위한 탄도탄 요걱미사일(ABM)협정 개정 합의 도출에 실패한클린턴은 이날 러시아 의원들을 상대로 NMD체제 필요성에 대한 홍보를 계속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및 연방위원회(상원)합동 회의석상에서 연설한 클린턴 대통령은 NMD가 러시아의 핵억지력에는 아무 손상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공개되고 허심탄회한 토론을 촉구했다. 특유의 여유있는 제스처로 43분간 연설을 이어간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나“정치적인 해결없이 시민의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러시아의 체첸 강공책을 비난했다. 의원들은 정중하게 그러나짧은 박수로 화답했다. 김수정기자
  • 남북정상회담 D-11/ 출발 이모저모

    ◆입북/ 손인교(孫仁敎)단장 등 남북정상회담 선발대는 31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통해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선발대원들은 회의실을 통과하기 앞서 남쪽으로 몸을 돌려 환한 표정으로 취재중인 사진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회의실 안에는 선발대를 맞이할 양복차림의 북측연락관 3명이 먼저 들어와기다리고 있었다.우리측은 북측 연락관에게 선발대원 전원의 이름과 성별·소속·직위와 사진이 부착돼 있는 선발대 명단을 전달했다. 선발대는 손단장을 선두로 회의실로 들어와 북측연락관들과 악수를 나눈 뒤바로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회의실을 통과한 시간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북측 연락관은 선발대 명단과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그냥 악수만 하고 통과시켜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이에 남측 선발대중 한명이 “확인도 않고 그냥 통과시키면 어떡하느냐”고 농담을 던져 한때 폭소. 선발대원들은 악수를 나누면서 북측 연락관에게 “반갑습니다.OOO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고 북측 연락관들도 “반갑습니다”라고 화답. ◆평양행/ 북측 지역으로 넘어온 선발대는 북측의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국장의 영접을 받아 잠시 차를 마시며 환담한 뒤 10시30분쯤 북측이 제공한 승용차 4대와 버스 2대에 분승,평양으로 떠났다.선발대는 평양∼개성간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서흥찻집(휴게소)에서 한 차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20분쯤 숙소인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했다. ◆판문점 도착/ 이에 앞서 선발대원들은 오전 7시35분 남북회담사무국에 집결,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잠시 면담한 뒤 8시 3대의 승용차와 1대의 대형버스에 분승,판문점으로 떠났다. 오전 9시27분 판문점 자유의 집에 도착한선발대원들의 얼굴은 밝아보였으나 한편으로는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남북정상회담 D-17/ 공동선언에 뭘 담나

    6월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은 55년 만의 첫 정상간 만남의 성과를 담는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정부 당국자들은 25일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이지만 한반도 냉전·대치상태를 벗어나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향해 노력해 나간다는 합의 내용을담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공동선언은 반세기 동안 지속돼온 남북간의 대립·대치상태를 청산하고 화해·협력의 새로운 장(場)에 남북이 함께 첫 발을 내딛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린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정부는 두 정상이 남북기본합의서 등 기존에 남북이 체결한 합의의 실천·이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공동선언에 그같은내용을 담아내겠다는 입장이다.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어는 공존과 교류라는전문가들의 지적도 맥을 같이한다. ‘한반도 비핵화선언’‘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문제에 대한 정상간의 논의내용도 공동선언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남북기본합의서(92년체결) 자체가 화해·불가침·교류협력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이를 실천하기 위한틀을 만들고 공동선언에 이를 담아내겠다는 생각이다. 정상들의 만남에서 구체적인 합의나 논의까지야 어렵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그동안 먼지가 쌓인 채로 사문화돼 있는 합의서를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수 있는 계기가 되고,공동선언은 그같은 정신을 포괄적이지만 포함하게 될것이란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정상간에 논의할 의제가 구체화되지 않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반도 현안 전체에 대한 논의를 의제에 구애없이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남북한은 민족의 화해·교류·통일의 실현에 대해 원칙적으로 같은 입장”이라며 “상호간에 합의한 수준에서도 공동선언의 채택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남북한은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원칙과 민족의 화해·단합,교류·협력,평화·통일의 실현을 ‘4·8 정상회담 합의서’와 ‘실무절차 합의서’에 명기해 놓고 있어 최소한 이 수준 이상에서 공동선언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석우기자 swlee@. *행사장 나올 北측 인사는. 다음달 남북정상회담 기간중 북측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나설까. 남북간 정상회담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공항 영접,정상회담장 배석,만찬행사 등에 나올 인사들의 윤곽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통일부 등 정부당국과 전문기관 등에서도 남북고위급회담 등 과거의 몇몇 사례를 참고,각종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있다. □공항 영접은 6월12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도착시 순안공항에서영접할 인물로는 우리의 통일부장관에 해당되는 김용순 조평통 부위원장이우선 예상된다.김 부위원장은 대남문제를 총괄하는 조선노동당의 대남담당비서며 아태평화위 위원장직도 맡고 있어 가장 가능성이 높다.외국과의 정상회담이 아니기 때문에 외무상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김윤혁 서기장이 나올 수도 있다.격(格)으로만 따지자면,홍성남 총리도무난해 보인다. □정상회담 배석은 양 정상은 확대 정상회담보다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배석시킨 단독회담을 가질 공산이 크다.이 경우 북측에서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대남 문제의베테랑인 김용순 조평통 부위원장이 배석할 가능성이 높다.우리측에서 박지원(朴智元) 문화부장관이 배석할 경우‘4·8합의서’를 같이 이끌어 낸 송호경 조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나올 법도 하다. □만찬행사에는 북측이 일반적인 관례를 따른다고 가정하면 정치 경제 문화등 각계 인사가 망라될 것이다.이 경우 내각과 최고인민회의 등의 대표급 인사는 당연 참석이 예상된다. 이와함께 서울시장격인 양만길 평양인민위원장,서울시의장격인 강현수 평양시 당위원회 책임비서 등이 참석할 가능성도 크다.조선천도교회 류미영 중앙지도위원장 등 종교계 인사와 박관오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학술계 인사도참석이 전망된다. 문화·체육계 인사로는 유명 영화배우 오미란과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 이명훈(2m35㎝) 등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마라톤 영웅 정성옥,가요 ‘휘파람’으로 유명한 국민가수 전혜영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체육계 인사들의 참석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 제고의 효과도 있어 북측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주북한 중국 대사나 러시아 대사 등 외교사절의 초청도 예상된다.세계 각국의 이목도 한꺼번에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는 그러나 북측이 이처럼 만찬을 대규모로 갖기보다는,양측을 모두합쳐 100명이내로 소규모로 차릴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한 당국자는 “김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모습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만찬에는 몇몇 핵심 인사만 참석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상연기자 carlos@
  • 만수대의사당, 주요정치행사 단골 개최

    오는 6월 남북한 정상이 만나 한반도 현안 전반을 논의하는 회담장으론 만수대의사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숙소는 외국 귀빈들을 맞는 영빈관격인 백화원초대소,주 연회장은 인민문화궁전이 유력시 되고 있다. □만수대의사당 평양시 중심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격인 최고인민회의의 건물.84년 10월 건립됐다.지하 1층,지상 4층의 석조건물로 주요 정치행사와 외국국빈의 영접 등에 쓰인다.지난 98년 9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추대도이곳에서 이뤄졌다. 연회장시설도 갖추고 있어 회담직후 이곳에서 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백화원초대소 평양시 외곽인 대성구역 임흥동의 대동강변에 위치해 있는국빈급 외국손님의 영빈관.김일성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의 경내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은 불가능하다.통로로 연결된 3개의 건물이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전면에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대리석 복도와 기둥이 웅장함과 호화스러움을 더한다.지난 98년 경협논의를 위해 이곳에 묵고 있던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전격 방문하기도 했다.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측 숙소로 이용된 일도 있다.83년에 건립. □인민문화궁전 74년에 완공된뒤 국제회의 및 정치집회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지상 4층의 3개 건물에 3,000석규모의 대회의실과 700석규모의 연회장 등 500개의 다용도 방이 있다.85년 남북적십자회담과 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회담장소로 쓰였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 집무실인 노동당 본청사 건물에서 인접한 평양시내 중심부인 천리마거리 부근에 위치해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D-24/ 선발대 평양서 뭘 할까

    정상회담 실무절차합의서가 18일 타결됨에 따라 남북 양측은 이제 회담 장소인 평양에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우리측 실무진 30명이 이달말쯤 선발대로 평양에 들어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올 때까지 북측 실무진과 보도·통신·경호·의전 분야의세부사항을 확정짓는다. 보도·통신과 관련 양측은 어떤 장면을 생중계할지와 우리측 위성생중계장비(SNG)의 반입여부 등을 최종협의한다.특히 양 정상을 카메라에 담는 횟수와 카메라 각도까지 세세하게 의논한다. 의전 문제의 경우 정상회담 장소와 김 대통령의 숙소,방문지 등을 최종 확정한다.방문지와 관련,우리 정부는 김일성묘나 단군릉 등 이념적 색채가 있는 방문지는 찾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평양 순안공항(항공로로 방북할 경우)에서 김 대통령을 영접할 북측 인사들도 결정한다.실무진들은 특히 회담장 등에서 양 정상의 걸음걸이 수까지 일일이 재가며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경호의 경우 우리측 반입 총기 등 경호관련 물품의 종류와 개수는 물론,양측 경호팀간의 역할분담까지 일일이 논의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바짝긴장하는 눈치다.한번의 실수로 정상의 권위에 큰 손상을 입히는 불상사가일어날 수 있기 때문.한 당국자는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무부의 의전규정을 그대로 원용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선발대의 준비과정에서 마찰이 있을 수도 있다.회담장소가 될 것으로 보이는 금수산의사당에 대한 우리측의 현장답사 요구가 북측의 보안 이해와 상충될 경우 제대로 이뤄질 지 미지수다.또 김 대통령이 묵게 될 것으로 보이는백화원초대소 등에 대한 설계도면이 경호상 필요할 수 있는데 북한이 이를순순히 내줄지도 관심이다. 김상연기자
  • [승화되는 ‘5·18’정신](3)치유되지 않은 상처

    5·18은 80년대의 어둠을 뚫고 나가는 선봉에 선 거대한 횃불이었다.‘산자여 따르라’는 외침처럼 지식인들은 행동에 나섰고 민중의 힘도 이와 함께했다.그 힘은 민주화와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하지만 횃불의 그늘에는아직도 아픔을 안고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참상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아픔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 “끌려간 다음에 많이 맞았어.머리가 아파” 지난 97년 어딘가를 떠돌다가 경찰에 의해 전남 무안의 한 부랑인 수용시설에 들어온 김모씨.자신의 가족과 나이,주변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어디선가 맞았다는 기억만 흐릿할 뿐. 그는 5·18피해자로 등록돼 보상금을 지급받았다.그뒤 보상금을 챙긴 가족이 떠나버리고 지금은 복지시설에 수용된 채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5·18 때 겪은 참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는 사망한 30여명을 빼고도 120여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머리를 심하게 다쳤거나 여자인 경우 집단 성폭행당한 경험을갖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불행을넘어 가족에게도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80년 5월 11공수여단 소속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전전하다 최근 숨진 하모씨(전남 나주시).그의 어머니 김모씨(65)는 “5월만 되면 가슴이 저며온다”고 말한다.아들은 5·18을 겪은 후 “누군가 날죽이려고 해요… 살인마가 와요”라고 넋두리를 하며 고통에 시달렸다.그 모습을 생각하면 어머니 김씨는 지금도 온 몸이 떨린다. 광주시립 S병원에 입원중인 김모씨(38)는 80년 당시 전교 1∼2등을 다투던고교 3년생이었다.하지만 5월19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돼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6월쯤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병아리새끼를 죽인다.나와”하고 악을 쓰거나 혼잣말을 해댔다. 그는 모 의과대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정신분열증으로 판명돼 학업을 중단했다.이어 82년 겨울에는 철도레일에 오른팔을 올려 놓고 자해를 했다. 이들 말고도 당시의 충격으로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거나 이혼 등으로 가정파탄에 이른 피해자가 갈수록늘고 있다고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광주시립정신병원 정신과 최재영(崔宰榮·35) 전문의는 “5·18 피해자들이공통적으로 겪는 질환으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우울증’‘불안장애’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이들은 사고 당시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악몽에 시달리고,심해지면 정신분열증까지 앓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수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병원 설립을 희망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보상이 충분히 이뤄졌다며 병원 설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20년째 유족회 활동 鄭水萬회장. 정수만(鄭水萬·53) 5·18유족회장은 5·18 2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80년 동생(31)을 잃고 유족회를 이끈 지 20년째를 맞은 그는 수많은 좌절과고통을 감내하면서도 5·18의 위상을 오늘에 이르게 한 핵심 인사중의 하나다. “5·18이 세계 인권과 평화·민주주의의 견인차로 우뚝 서게 된 데는 광주시민과 국민,전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그런의미에서 5·18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5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는 ‘현재진행형’,나아가 ‘미래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5·18 정신선양을 위한 투쟁과정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81년 5·18 구 묘역에서 열린 첫 추모제 행사 때는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는 추모제를 주도하면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구속된 뒤 검찰 조사과정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추가돼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추모제 때 제물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제는 5·18이 국민통합과 지역·계층간 갈등을 해소하는 매개체가 돼야합니다”정회장은 정치적·지역적 이유로 5·18의 전국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광주 최치봉기자. *진실규명 앞장선 해외인사 방문. 지난 80년 이후 5·18 진실규명에 큰 도움을 준 다른 나라의 민주인사들이16일 대거 광주를 찾았다.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 행사위원회가 ‘보은’의 뜻으로 이들을 초청했다. 특히 해외인사 중에는 81년 광주방문 체험담을 담은 ‘거대한 강물처럼 한국의 기억’이란 책을 펴낸 루이스 M 윌슨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의장과 광주항쟁 3일 후 희생자와 유가족 후원활동을 위해 독일 교회 대표로 당시 광주를 방문한 헬무트 알무쉐 목사가 이곳을 다시 찾았다. 또 이날 광주를 방문한 해외인사는 패리스 하비 국제노동권리재단 사무총장과 댄 존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대표,폴 슈나이스 독일 동아시아 선교회 의장 등 모두 12명이다. 이들은 18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5·18 전야제 및 기념식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5·18묘역에서는 전국 시사만화 작가회의 주관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친숙한 만화를 통해 광주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5·18 시사만화 전시회가 열렸다. 광주 남기창기자. *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대구서도 다양한 기념행사.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지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열린다. YMCA를 비롯한 대구지역의 23개 시민단체들은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맞아18일 오후 7시 대구 YMCA강당에서 ‘5·18정신 계승 결의대회 및 기념강연회’를 개최한다.또 대구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3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앞광장에서 광주항쟁 사진전과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희망의 시민포럼은 17일부터 사흘간 경상감영공원에서 광주항쟁 사진전을 갖는다. 이밖에 극장 ‘열린공간 큐’는 17일부터 사흘간 영화 ‘꽃잎’ 등 광주항쟁 관련 영화 6편을 상영하는 ‘광주항쟁 영화제’를 개최한다.한편 대경연합은 이미 지난 14일 200여명의 회원들이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5·18광주민주화 운동…망월동묘역 정치인 발길 줄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망월동 묘역에는 여야 정치인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6일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강창성(姜昌成)부총재,이부영(李富榮)총무,권철현(權哲賢)대변인,맹형규(孟亨奎)총재비서실장,이원창(李元昌)총재특보 등 당직자들과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찾아헌화·참배했다.이총재는 지난 96년 총선과 97년 대선을 앞두고 ‘전략적’ 차원에서 망월동을 방문했었다. 허경만(許京萬)전남지사와 고재유(高在維)광주시장이 이총재를 영접했고,묘역에서는 정수만(鄭水萬)5·18유족회장 등이 안내를 맡았다. 이총재는 “5·18은 특정지역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발전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이를 계기로전 국민의 통합과 지역발전을 이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 기념식에는 민주당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정동영(鄭東泳)대변인 등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다. 이에 앞서 여야 386 당선자 16명과 원외 지구당 위원장 4명은 17일 오후 망월동 묘역을 공동 참배한다.민주당에선 김민석(金民錫)의원과 임종석(任鍾晳)·장성민(張誠珉)·정범구(鄭範九)·송영길(宋永吉)·김성호(金成鎬)·이종걸(李鍾杰)·함승희(咸承熙)당선자,한나라당에선 원희룡(元喜龍)·오세훈(吳世勳)·김영춘(金榮春)·안영근(安泳根)·정병국(鄭柄國)·심규철(沈揆喆)·김부겸(金富謙)·심재철(沈在哲)당선자가 공동참배단에 합류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5·18광주민주화 운동…계엄군 훈·포장 영예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를 진압하거나 시민군과의 전투에서 공을세웠다는 이유로 일부 계엄군에게 수여된 훈·포장은 과연 영예인가? 5·18 광주 진압작전인 충정작전에 계엄군으로 참가해 훈·포장을 받은 사람은 장성 3명,영관장교 7명,위관장교 11명,하사관 19명,사병 28명 등 모두69명에 이른다. 이들은 충정작전이 마무리된 직후인 8월20일 훈·포장을 받았다.포상 이유는 광주시내 일원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시위와 시민군을 효과적으로 진압해공을 세웠다는 ‘충정작전 유공’이다. 이 가운데 훈장은 36명,포장은 33명에게 수여됐는데 5·18에 대한 사법적,역사적 평가가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바뀐 이후에도 이를 반납한 사람은 현재까지 1명도 없다.다만 당시 특전사령부 정호용 소장과 제3특전여단최세창 준장 등 2명만이 지난 김영삼 정권때 5·18재판으로 형을 받아,수여받은 훈장이 정부에 의해 박탈됐을 뿐이다. 이에대해 5·18관련단체들은 당시 계엄군의 활동이 엄연히 불법적인 것으로확인된 만큼 그들이 받은 훈·포장은 당연히 자진 반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수만 5·18유족회장은 “용서와 화해는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라며 “5·18로 받은 훈·포장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용서와 화해의 손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광주 남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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