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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찾은 DJ

    광주찾은 DJ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5일 ‘정치적 고향’인 광주를 찾았다. 첫날 망월동 5·18국립묘지를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은 6일에는 ‘김대중컨벤션센터’ 개관식에 참석한다.DJ의 광주방문은 지난해 11월 광주비엔날레 관람 이후 10개월 만이다.KTX편으로 광주역에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 박광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의 영접을 받았다. 지지자 100여명도 역사에 몰려들었고 거리에는 광주 방문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여러군데 내걸렸다. 망월동 묘지를 방문 헌화 분향한 뒤 방명록에는 자신과 이희호 여사 공동 명의로 ‘추묘(追墓) 5·18 민주영령’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그러나 목적은 개관식 참석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자신을 입원까지 하게 한 도청정국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단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을 당한 DJ가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심경을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DJ의 방문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동상이몽’ 중이다.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기싸움을 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은 문희상 의장, 배기선 사무총장 등 지도부와 광주·전남지역 의원들이 개관식에 참석한다. 민주당은 더 열정적이다. 한화갑 대표 등 지도부는 첫날 일정부터 동행하면서 ‘DJ적자=민주당’임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北대표단 국회방문 표정

    北대표단 국회방문 표정

    ‘8·15축전’에 참가 중인 북측대표단의 사상 첫 국회방문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오전 11시10분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함께 국회에 도착한 김기남 단장 등 북측 대표단 20명은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의 영접을 받으며 의사당 본청 앞에 도착했다. 김 단장은 국회의장실 접견실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북남 화합과 단합에서 많은 성과가 있을 것을 바랍니다.’라고 썼다. 김원기 의장 예방에서 참석자들은 남북 국회회담의 조속한 개최에 공감을 표시했다. 김 의장은 남북국회 회담 개최를 촉구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하게 되면 이번과 비교되지 않을 더욱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6자회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에 김 단장은 초청에 감사의 말을 전한 뒤 “통일 사업에 국회가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임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북핵 6자회담과 관련,“지금 회담 계통에서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으니 그것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여러차례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임 제1부부장은 자신도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북남은 인민들간에도 교류협력을 하고 있지만 국회만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 교류의 필요성을 공감을 표시했다. ●의원석에 노트북 열리자 당황 기색 북측 대표단은 이후 30여분 동안 비공개로 면담을 가진 뒤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김 단장 일행은 오는 9월1일부터 본격 운영을 앞둔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도중 의원석에서 갑자기 노트북 형태의 소형 컴퓨터 수 백개가 튀어나오자 북측 대표단 일행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하는 등 놀라는 눈치였다. ●오찬장 아리랑 연주에 “내집 같다” 이어 국회 의정홀에 마련된 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에는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과 남측 및 해외 대표단, 국회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김 단장은 현장 연주팀의 아리랑 등의 연주를 듣고 “우리 공화국에서 들리던 선율이 여기서도 들리니 제 집에 온 기분”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건너편에 앉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보고 “구면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원기 의장의 오찬사에 이어 답사에 나선 북측 최창식 보건성 부상은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위하여”라며 복분자주로 건배를 제의했다. 박준석 박지연기자 pjs@seoul.co.kr
  • ‘앙숙’ 이란·이라크 화해무드

    이브라힘 알 자파리 이라크 총리가 이란을 방문,4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양국의 ‘앙숙 관계’가 해소될지 주목된다. 자파리 총리는 16일(현지시간) 이란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부총리의 초청 형식으로 이란 방문길에 올라 테헤란에 도착했다. 사흘 동안의 이번 방문에서 자파리 총리는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및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자파리 총리를 영접한 이란 아레프 부총리는 “두 국가의 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됐다.”고 환영했다. 양국 관계는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시아파 신정체제가 수립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이후 양국은 1980∼1988년 영토 분쟁으로 전쟁을 벌여 100만명이 숨지는 등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라크에서는 수니파의 지지를 받던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시아파가 집권에 성공하면서 이란과 관계개선의 계기가 마련됐다.자파리 총리는 후세인 정권 당시 이란에서 망명생활을 한 인연도 있다. 영국 BBC는 양국이 안보·국경문제와 더불어 경제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알리 유네시 이란 정보장관은 이라크 내에서 활동 중인 이란 반정부 단체 ‘인민 무자헤딘’ 등을 이라크 정부가 축출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AP통신에 밝혔다. 경제 이슈 가운데에는 이라크 유전지대 바스라와 이란의 항구도시 아바단을 잇는 송유관 건설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또 이란이 전력과 식수를 이라크에 공급하고, 이란 항공기가 바그다드와 나자프에 취항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이라크에서 시아파가 집권한 이후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해온 미국은 양국 관계개선이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시아파 국가간 동맹이 강화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장택동기자 외신 taecks@seoul.co.kr
  • 모범용사 항공우주산업 방문

    서울신문과 국방부가 주최하고 한화가 후원하는 제42회 국군 모범용사 초대행사 닷새째인 24일 모범용사들은 부부동반으로 경남 사천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를 방문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회사에 도착, 홍광표 이사의 영접을 받았다. 이자리에서 홍 이사는 “국가의 안보를 짊어진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격려했다. 이어 일행은 회사 내 항공박물관에 들러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발자취를 둘러봤다. 특히 박물관앞 마당에 전시된 각종 항공기를 보면서 격세지감이 들었다. 특히 6·25당시 우리의 영공을 지켰던 무스탕 전투기와 탱크 등을 어루만지며 선배들의 조국사랑을 되새겼다. 공군사관학교 송진철 원사는 “보잘것없는 장비로 북괴군을 물리친 선배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면서 “선배들의 조국사랑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회사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마친 모범용사 부부들은 항공기 조립과정을 견학,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울산으로 건너가 현대중공업을 견학하고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1박,25일 아침 백상승 경주시장 초청의 아침식사를 마친 후 해산한다.
  • [남북 관급회담] ‘반북 현수막’ 실랑이…北, 회담장 지각

    [남북 관급회담] ‘반북 현수막’ 실랑이…北, 회담장 지각

    “15차 장관급회담은 1년 만에 새롭게 출발한 만큼 힘있게 속도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자.” 21일 남북장관급 회담이 13개월 만에 재개되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힘주어 강조했다. ●남북대화 첫 원탁테이블 등장 정 장관은 회담장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오늘은 봄에 뿌린 씨앗이 잘 익는 하지(夏至)라 이번 회담은 하지회담”이라면서 “남북관계를 잘하라는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지난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 장관이 만났으니 통일농사 씨앗은 이미 뿌려진 것과 같다.”고 화답했다. 환담이 끝난 뒤 정 장관은 북측 대표단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낸 회담장의 원탁 테이블을 소개했다. 남북대화 최초로 등장한 라운드 테이블은 양측이 5명씩 모두 10명이 앉을 수 있는 구조로 마련됐다. 정부 당국자는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회담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 직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특히 정 장관과 권 책임참사는 이동하는 내내 손을 꼭잡고 귀엣말을 나누는 등 지난 ‘6·17 회동’ 이후 친밀해진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진 환영 만찬에서 양측 대표단은 메인 음식으로 나온 갈비구이와 전채요리, 녹두죽 등을 들며 회담 첫날을 마무리했다. 만찬장에는 북측이 6·15 5주년을 기념해 만든 노래인 ‘통일6·15’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양측 대표단은 와인과 문배주를 들며 6·15 5주년 기념우표 등을 화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특히 정 장관은 권 책임참사를 “회담 신동”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정 장관은 만찬사를 통해 “남북간 화해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서 “제2, 제3의 6·15를 만들려면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해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과 공존을 여는 뜻깊은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권 책임참사는 “이번 회담은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기 위한 실천적 조치를 강구해 온 겨레에 기쁜 선물을 내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만찬에는 열린우리당 배기선·한명숙 의원 등 국회의원 10여명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 최상룡 전 주일대사 등이 배석했다. ●“이곳이 제 나라 제 땅입니다” 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후 3시쯤 고려항공 전세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단장인 권 책임참사는 입국 소감을 묻자 “이 곳이 제 나라 제 땅이죠. 기대를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짧게 대답할 뿐 별도의 도착성명은 발표하지 않고 곧바로 회담장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남측 대표인 박병원 재경부 차관과 배종신 문화부 차관, 김천식·한기범 통일부 국장 등이 마중 나와 북측 대표단을 영접했다. 정 장관과 이봉조 차관 등 통일부 간부들은 일찍부터 워커힐호텔에 나와 행사장 곳곳을 둘러보며 회담 준비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한완상 한적 총재, 고려항공기로 방북 앞서 반북단체인 자유사랑청년연합 소속 회원들은 ‘악의 축 김정일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라고 쓴 플래카드와 김 위원장의 모형을 막대기에 매단 사진을 미니버스에 붙이고 인천공항을 나오던 중 북측 대표단 차량과 맞서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북측 대표단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은 오후 5시35분쯤 회담장에 도착했다. 한편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날 북측 대표단을 태우고 온 고려항공의 JS615 전세기편을 이용해 평양을 방문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너무 괴로워 어머니 곁으로 갑니다

    김천호 충북교육감이 20일 오전 4시30분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관사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63세. 부인 신정숙(59)씨는 “남편이 잠을 자다 괴로워하는 기척을 보여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김 교육감은 구급차에 실려 곧바로 충북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져 있었다. 시신은 청주 흥덕성당에 안치됐다. 김 교육감은 지난 6일 자신의 방문과 관련,‘영접’에 소홀했다며 질책을 받은 옥천 모중 교감이 자살한 사건 때문에 괴로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작고한 어머니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써온 김 교육감은 15일자 편지에서 “저 요즘 힘들거든요. 어머님이 붙들어 주세요.”라는 글을 남겨 사건과 관련해 괴로움이 컸음을 내비쳤다. 사모곡(思母曲)을 담은 편지는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고, 관사 안방 탁자에는 최근 3∼4일치가 원고지에 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1962년 청주사범을 졸업한 뒤 초등교사로 교단에 섰으며 74년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80년 청주대 법학과,86년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잇따라 졸업하고 2000년 충남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받는 등 평생 배움의 길을 걸어왔다. 71년 청주 한벌초에서는 축구부를 지도하면서 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최순호 전 포항스틸러스 감독을 축구에 입문시켰다. 최 전 감독은 “운동을 하느라 수업을 빼먹으면 나중에 따로 가르쳐줄 만큼 인자하신 참스승이었다.”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2002년 보궐선거를 통해 도교육감에 당선된 뒤 2003년 재선됐다. 유족으로 부인 신씨와 2남1녀가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22일 오전 9시 흥덕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한 뒤 도교육청에서 영결식을 치른다.(043)271-1621.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우중 ‘판도라 상자’ 열리나] “구속·재산 환수” 격렬시위 “회장님 돌아오셨다” 영접

    [김우중 ‘판도라 상자’ 열리나] “구속·재산 환수” 격렬시위 “회장님 돌아오셨다” 영접

    14일 새벽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인천공항으로 귀국하자 대우사태 피해자들은 김 회장을 즉각 구속하고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옛 대우그룹 임원들은 ‘돌아온 회장님’을 박수를 치며 반갑게 맞았다. ●공항에서는 반대시위로 아수라장 김 전 회장은 이날 오전 5시26분 베트남 하노이발 아시아나항공 OZ734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분홍색 넥타이 차림의 김 전 회장은 노령과 오랜 여행, 지병 탓인지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탑승구에서 대기 중이던 검찰 직원 10여명은 곧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김 전 회장은 “제가 책임지러 들어왔습니다. 대우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김 전 회장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던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동지회’와 민주노동당 관계자 등 200명이 일제히 “김우중을 구속하라.”고 외치고 일부 시위자는 김 전 회장에게 생수를 뿌리며 “대우사태의 책임을 져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일부 시위자는 도로에 눕는가 하면 경찰차량을 가로막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순찰차 뒤쪽 유리가 파손됐다. 박태웅 대우자동차 전 부사장을 비롯한 ‘대우인회’ 20여명 등 전·현직 대우관계자들 100여명도 이런 광경을 지켜봤다. ●‘대우맨’들, 대검청사 앞에서 환영 박수 김 전 회장은 이날 오전 6시50분쯤 서초동 대검청사 민원실 쪽에 도착했다. 김 전 회장은 차에서 내려 양복 매무새를 고친 뒤 사진기자들에게 잠시 포즈를 취하고 짤막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사태에 대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돌아왔다.”며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자세한 것은 검찰에서 밝히겠다.”면서 조사실로 직행했다. 대검 청사 앞에는 새벽 5시30분부터 전ㆍ현직 대우그룹 관계자 70여명이 모여 김 전 회장을 기다렸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이 탄 승용차가 도착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오전 11시 대검 정문 앞에서는 김창현 사무총장, 이용식 최고위원 등 민주노동당 관계자들 10여명이 김 전 회장을 즉각 구속하고 재산을 환수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범죄자임에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벌써 정치권에서 사면설이 나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교장, 교육감 과잉영접’글 배후지목 교감 자살

    교육감 방문 준비에 소홀했다며 교장에게 질책을 받고 이 사실이 인터넷에 올려진 것과 관련, 교육청 등으로부터 추궁을 받아오던 충북 옥천군의 모 여중 교감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6일 오전 5시쯤 대전시 동구 인동 H아파트 110동 뒤쪽 잔디밭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O여중 교감 김모(61)씨가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송모(57)씨가 발견했다. 김씨는 이 아파트 13층 옥상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옥상에는 김씨의 슬리퍼가 남겨져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24일 김천호 충북도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한 것과 관련, 같은 학교 정모(49) 교장으로부터 “화장실에 왜 수건을 비치하지 않아 교육감이 본인의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도록 했느냐.”며 질책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 교사 조모(48)씨는 같은달 30일 옥천신문 홈페이지에 ‘교육감 대왕님 학교에 납시다.’라는 제목으로 이같은 사실을 띄웠다. 김씨는 내년 8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전교조 충북지부와 옥천교육청은 같은달 31일 진상조사에 나섰다. 김씨의 아들(29)은 “글이 인터넷에 실린 뒤 아버지가 배후 조종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몹시 괴로워했다.”며 “외압에 시달리다 못해 교사 집을 찾아가 밤을 새우며 삭제를 요청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김 교감과 갈등이나 수건사건 등 얘기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서 “책임을 통감하지만 가타부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中 이례적 ‘환대’ 朴대표도 ‘깜짝’

    |베이징 이종수특파원|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24일 만났다. 한국 야당 대표로는 이례적이다.‘융숭한 환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은 40여분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을 놓고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탕자쉬안 “재보선 성과 놀랐다” 박 대표는 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당위성과 중국의 ‘강한 역할론’을 거듭 당부했고, 후 주석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후 주석은 중국의 지속적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두 사람은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열기 위한 양국의 공조 필요성과 교류 강화 방안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후 주석은 회담 장소인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서서 기다리며 박 대표를 영접하면서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라며 “고견을 들려달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분홍색 체크무늬 정장 차림의 박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귀한 시간을 내줘 감사하다.”며 “중국의 큰 발전과 변화에 감탄했고 무한한 잠재력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화답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과묵하고 수줍은 성격이라는 평을 듣는 후 주석이 이례적으로 박 대표에게 립서비스도 많이 했다.”며 “특히 박 대표가 이공계 육성 비결을 묻자 크게 웃는 등 회담 분위기가 시종 화기애애했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와 후 주석의 면담이 성사된 것을 놓고 한나라당은 두 가지 배경을 꼽고 있다. 먼저 박 대표에 대한 정치적 평가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전날 박 대표를 초청한 만찬에서 “4·30 재보선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정치적 위상에 대해 중국측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국에서 큰 관심을 얻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도 한몫했다는 해석이다.‘고도 경제 성장과 새마을 운동’이라는 코드로 상징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중국측은 박 대표 방문 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책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후주석 새마을운동 공부” 탕자쉬안 국무위원도 박 대표를 만났을 때 포항제철과 제주개발계획을 거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중국인들의 평가는 대단하다.”며 “후 주석도 새마을운동을 공부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높다.”라고 전했다. 구상찬 부대변인은 “중국 식자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에 견주기도 한다.”라고 귀띔했다. viele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1)고군산군도의 경관적 가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1)고군산군도의 경관적 가치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신지도 곶리도 말도 횡경도 방축도 야미도 등이 별처럼 모여 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앉은 이 섬들 때문에 고군산군도는 ‘호수에 뜬 섬들’로 불렸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중국 사신들이 서해를 건너오면 고려군사들이 고군산까지 영접을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과 한반도가 뱃길로 연결되는 길목이었음은 물론이고 서남해안 쪽에서는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는 중간 허리였다. 조운선과 상선, 군선이 상존했으며, 이순신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도 난중일기에 보인다. 사람과 배만 그러한가. 물고기에게도 필수 코스였으니, 유명한 칠산어장의 북단이 바로 고군산이다.1906년 군도 끝자락 말도에 등대를 세워 올해로 99년째 불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이곳은 일찍부터 서해 항로의 요충지였다. 때맞춰 북상하는 조기같은 회유어종의 통로라 함은 역으로 남하하는 홍어나 대구 같은 한류어종의 통로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군산 수협조차도 애초에는 육지가 아니라 장자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군산진을 설치하고 서해를 경영하다가 옥구로 옮기게 된다. 왜구의 노략질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황당선의 ‘황당한’ 일도 자주 벌어졌다. 군산진만 육지로 떠난 것이 아니다.20세기 후반에는 물고기들이 떠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황금어장 칠산이 고갈되면서 섬사람들은 서울이나 군산 등지의 저잣거리로 떠나갔다. 모진 세월은 이 천혜의 섬들을 가만 두질 않았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공사용 차량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분진을 일으키더니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야미도와 신지도가 방조제로 이어졌고, 그 바람에 승용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고군산 수천년 역사 속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변화’가 밀어닥친 것. 약삭빠른 업자들은 관광유람선을 띄웠고 부동산업자들은 ‘새만금 새땅‘식으로 서부 개척시대를 방불케하는 거품경쟁에 나선다. 물고기가 사라진 바다에 땅장사들이 대신 몰려든 셈이다. 수산과학원 산하 갯벌연구소의 전용 조사선에 몸을 실었다. 분기별로 행하는 정기 탐사 일정이었다. 연구원들은 항해 내내 포자망으로 해파리 유체를 채취하고, 멸치 난어를 조사했다. 예전에 없던 아열대성 해파리떼가 한반도를 휩쓸어 그물 가득 해파리만 든다.20세기 초반 시인 김억이 ‘해파리의 노래’를 상재했으나 이런 ‘괴물’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남방 해파리의 알이 고군산 근역에서 보임은 수온 상승의 반증 아니겠는가. 바다 물고기들의 동향도 수상쩍다. 조기 갈치는 물론이고 여타 고급 어종들이 대거 사라진 자리를 멸치떼가 채우고 있다. 고급 어종 비율이 1967∼69년도 39%에서 36년 만인 1999년 23%로 줄었으니 엄청난 감소다. 멸치는 1992년 군산수협 위탁량이 88t이던 것이 2002년에는 2359t으로 급증했다. 먹이사슬 상층부를 차지하는 큰물고기들이 사라지자 아래쪽 개체인 멸치떼가 극성을 부리는 것. 생태계의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이러다가 고기가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진반농반의 걱정을 전하자 동행한 김수관 군산대 교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동의한다.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동해안의 엄청난 인구증가와 산업화로 서해에 쏟아부어지는 오염총량을 계산할 때 서해가 죽음의 바다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란다. 일제시대에 고군산 근역에서 미역 김 해삼 상어 가오리 넙치 고등어 멸치 조기 삼치 대구 도미 청어 전광어 새우 숭어 참장어 가사리 병어 민어 홍어 오징어 뱅어 갈치 등이 잡혔다니, 종다원성이 해체된 비극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바다의 젖줄인 동진강, 만경강을 끊어 놓으니 바깥 생태계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고 있다.”는 갯벌연구소 조영조 소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만금간척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반대해 온 환경운동가를 비롯, 뜻있는 많은 이들이 잠시 반성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고군산 같은 방조제 바깥 섬들의 안위를 도외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막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바깥 바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환경운동조차 언제나 육지 중심이었던 것이다. 현재 군산쪽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남쪽 일부만 트여 좁은 수로로 조류가 엄청난 속도로 드나든다. 그래서 신시도 아래쪽 무녀도와 비안도 사이는 거대한 물골이 패였으며, 이곳에서는 어떤 어업도 불가능하다. 무녀도 어민 김용문(55)씨는 “조류가 빨라 그물 설치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양식이나 조개 채취도 다 지난 얘기”라며 “방조제 안쪽은 그래도 보상이나 넉넉히 받았지만 바깥쪽은 단돈 1000만원이 고작이었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어류가 산란을 위해 새만금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거대한 장애물이 가로막으니 애당초 어업은 결단난 것이다. 무녀도를 둘러보니 물고기 못지 않게 자연 경관의 훼손도 심하다. 왕왕 경제적 가치만으로 간척의 폐해를 계산하느라 대개 경관가치는 무시되기 일쑤다. 무녀산 중봉의 ‘삼각형’이란 곳까지 올랐다. 왼쪽으로 선유팔경이 펼쳐지고 무녀도 서두리 마을과 염전, 닭섬을 비롯한 자잘한 섬들, 그리고 비안도, 신시도 같은 섬까지 한 눈에 들어와 가히 관해의 요처답다. 선유도와 무녀도를 이어주는 현수교가 멋스럽다. 섬들은 아득한데 저 멀리 한 눈에 들어오는 방조제가 철책처럼 흉물스럽게 방벽을 두르고 있다. 무녀도가 한창 ‘잘 나갈 때’, 삼월 삼짇날이면 선남선녀들이 밥솥을 짊어지고 산정에 올라 진달래꽃 향기에 취해 놀다 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고군산은 예로부터 ‘신들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춤추는 무녀의 형상에서 따왔다는 무녀도란 섬 이름이 말해 주듯 섬마다 신들이 좌정하고 있었다. 선유도 모래사장이 끝나는 지점에 망주봉이 기암괴석으로 솟아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절경만 보고 돌아올 뿐 거기에 오룡묘 신당이 있는 것은 모른다. 다섯 용을 모신 곳인 만큼 기와집이 화려한 폼새로 지어졌고, 산신각도 따로 세워져 신당의 위용을 자랑한다. 해마다 당제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음은 물론 수년에 한번씩 별신제를 올릴 때면 내로라는 굿쟁이들이 몰려들어 삼현육각을 잡고 남사당패까지 몰려와 신명의 굿판으로 바다를 달구었던 서해안 최대 신당의 하나였다. 신당 형체는 여전하나 문짝은 떨어져 나가고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할 정도로 쇠락했다. 군의관으로 고군산에 근무하면서 이 일대의 신당을 조사, 세상에 알린 서홍관씨가 80년대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섬마다 있던 신당이 주민들의 기독교 개종으로 멸시와 박해를 당해 심지어는 불태워지기도 했단다. 여기서도 종교적 극단주의의 한 정형을 본다. 고군산 신당의 파괴는 문화적 반달리즘의 명백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장자도에도 어사대란 당집과 할머니바위가 있다. 비승비속의 당할머니가 모셨던 신당이다. 건너 횡경도에는 할아버지바위가 있어 양자간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고군산의 12섬에서 모두 신당 및 당숲이 확인되지만 당제가 남아 있는 곳은 없다. 당집이나마 문화유산으로 지정·보호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즉, 오룡묘같이 역사문화적 전통이 분명한 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군산시의 안목이 불안하기만 하다. 고군산에는 그동안 말로만 들어온 초분도 전해진다. 분묘 대신 짚으로 엮은 초분에 시신을 안치하는 초분 전통은 진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전통으로 알려졌다. 그 초분이 고군산에도 남아 있어 남해안뿐 아니라 서해안까지도 초분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녀도 초입에는 아예 궁금해 하는 외지인을 위해 ‘관광용 초분’까지 만들어 두었다. 무녀도에는 고군산 유일의 초분이 남아 해마다 짚을 갈아주면서 정성스레 보존해 오고 있다. 이처럼 신들이 잠을 청한 안식처이자, 초분 같은 고풍스런 유산까지 전해지는 것, 난초와 모감주나무군락을 비롯한 자연유산의 보고인 고군산의 경관가치에 관해서는 아무런 고려나 계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은 선유도에 잠시 들러 회를 먹고는 휘∼ 해수욕장을 한번 둘러보고 떠난다. 연육된 무녀도나 장자도는 그 관광객들이 떨구고 간 몇 푼의 푼돈 수혜도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고군산이지만 이곳에도 ‘남북의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 선유도는 관광형 어촌으로 변신하면서 인심이 살벌해졌다. 멀리 떠있는 말도처럼 불과 15호 밖에 안되는 섬에서도 어제까지 ‘형님, 아우’하던 공동체가 깡그리 해체되는 중이다. 이웃 섬 주민들이 조개를 캐가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대책없는 개발이 떠안긴 ‘인간성 파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고군산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고군산의 예스러움이 완벽하게 소멸되는 중이니 새만금 간척지가 가져다준 반갑지 않은 ‘보너스’ 아니겠는가. 다행스러운 일은 이곳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3년전부터 고군산청년연합회를 조직한 이들은 해마다 체육대회를 열어 공동체의 연대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번갈아 12섬을 돌아가면서 여는데 박영구(43) 부회장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다. 모처럼 12섬 젊은이들이 모여 단합도 꾀하고, 훗날을 생각하는 지혜도 모은다.”고 말한다. 대횟날이면 아침부터 각 섬에서 배를 끌고 집결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부녀회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술추렴도 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여 ‘섬들의 바다축제’를 연출한다. 청년들은 김양식을 하며 어렵사리 버티고 있으나 김값이 폭락하면서 하나, 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 무녀도에만 청년들이 20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고작 8명만이 남아 있다. 살기 힘들어 떠나는 청년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음 세대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섬, 그런 섬을 만들지 않고서야 우리 바다의 미래가 어디에 있겠는가. 새만금의 거대 장벽은 안쪽의 갇힌 생물은 물론 이렇듯 바깥쪽 사람들의 삶까지 옥죄고 있다. 미래 세대와 해양의 종다원성을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유림 속 한자이야기] (70) 巫山之夢(무산지몽)

    儒林 (323)에는 巫山之夢(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이 나오는데,‘남녀간의 密會(밀회)나 情交(정교)’혹은 ‘덧없는 한때의 꿈’을 이르는 말이다. ‘巫’는 工(공)자 모양을 가로 세로로 놓은 형태의 도구인데, 가로로 놓였던 부분이 小篆(소전)에서 人(인)자처럼 변하여 오늘날의 字形(자형)으로 변했다.用例(용례)로는 ‘巫覡(무격:무당과 박수),巫女(무녀:무당),巫俗(무속:무당의 풍속)’ 등이 있다. ‘山’자는 산 모양을 본뜬 것이다. 참고로 ‘岳’은 산 뒤에 두어 봉우리의 산이 더 보이는 글자이니 山보다는 더 높고 큰 산의 상형이다.山자의 用例에는 山戰水戰(산전수전: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었음),山海珍味(산해진미: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 등이 있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夢’자의 원형은 현재의 字形(자형)에서 ‘夕’(저녁 석)이 생략된 형태로,‘꿈’을 뜻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본래 ‘어둡다, 컴컴하다.’는 뜻의 ‘夢’자가 ‘꿈’의 뜻으로 자리잡더니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夢寐(몽매:잠을 자면서 꿈을 꿈),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夢死(몽사:헛되이 살다 죽음),夢想(몽상: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등에 쓰인다. 巫山之夢은 文選(문선)에 수록된 高唐賦(고당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시대 楚(초)의 襄王(양왕)이 宋玉(송옥)과 함께 雲夢(운몽)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高唐館(고당관)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왕은 때마침 기이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송옥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옥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선대의 어떤 왕이 고당관에서 宴會(연회)를 열고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을 巫山(무산)에 사는 여인이라고 소개하며 왕의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魅惑(매혹)되어 雲雨(운우)의 情(정)을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 머물면서 朝夕(조석)으로 그대만을 그리워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왕이 巫山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만난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朝雲廟(조운묘)라는 사당을 세웠다. 유사한 말로는 중국 당나라의 淳于(순우분)이 술에 취하여 홰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가지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槐安國(괴안국)으로부터 영접을 받아 20년 동안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유래한 ‘南柯一夢(남가일몽)’,盧生(노생)이라는 사람이 邯鄲(한단)이란 곳에서 呂翁(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잠깐 동안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邯鄲之夢(한단지몽)’이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지지-반대시위대 충돌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양안분단 이후 56년 만에 본토를 방문한 롄잔(連戰) 타이완 국민당 주석이 26일 오후 난징(南京)의 루커우(祿口) 국제공항에 도착,7박8일 일정에 들어갔다. 전세기 편으로 난징에 도착한 롄 주석 일행은 중국공산당 타이완사무판공실 천윈린(陳雲林) 주임 등 중국 관리들과 타이완 상인 대표단의 영접을 받았다. 롄 주석은 도착 직후 공항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타이베이와 난징은 그리 멀지도 않은데 이곳에 오는데 60년이나 걸렸다.”며 “국민당은 평화적이고 안정된 양안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빙쿤(江丙坤), 우보슝(吳伯雄), 린청즈(林澄枝) 등 부주석 3명을 포함해 당내 중진급 등 70여명을 이끌고 중국 땅을 밟은 롄 주석은 다음달 3일까지 베이징(北京), 시안(西安), 상하이(上海) 등을 방문한다. 이날 대륙 전체가 롄 주석을 맞기 위해 들뜬 모습이었고 타이완에선 롄 주석의 중국 방문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반대하는 세력이 충돌하는 등 파장이 만만찮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롄 주석의 직함을 ‘중국 국민당’ 주석으로 명기하면서 29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이른바 3차 국공(國共)회담을 갖는다며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홍콩과 타이완 언론은 롄 주석이 조부 롄헝(連橫)의 저서 ‘대만통사(臺灣通史)’, 지난해 총통선거 출마를 앞두고 낸 ‘변화, 이제는 희망이 있다’와 최근 출간한 ‘롄잔,2005년 대륙행’ 등 세 권의 책을 선물로 갖고 왔으며 어떤 책이 누구에게 전달될지는 분명치 않다고 보도했다. ●첫 방문지 난징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의 취재진이 운집, 롄 주석이 27일 찾게 될 쑨원(孫文)의 묘소를 사전 취재하거나 방문단이 묵을 호텔과 회의장 등에 전송 시설을 확보하느라 분주했다.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롄 주석이 29일 강연하게 될 베이징대 학생들이 미리 표를 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강연 후 질의응답을 위해 학교측은 웹사이트에서 미리 질문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롄 주석이 다녔던 시안의 초등학교에선 학생과 교사들이 무용공연 등의 환영식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앞서 이날 오전 롄 주석 일행이 출발한 타이베이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충돌하는 바람에 극도의 혼잡이 빚어졌다. 오전 7시부터 모인 시위대는 9시쯤 출국 로비와 건물 밖을 가득 메웠으며 서로 욕설을 퍼붓다 계란을 집어 던지는 등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는 병원에 실려갔으며 일반 승객의 출국 수속이 한때 마비됐다. 일부 여당 의원마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시위대에 합세, 계란을 집어던지고 새총으로 쇠구슬을 쏘기도 했다. oilma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한 해는 마쓰리로 시작해 마쓰리와 함께 저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계절 내내 지역별 마쓰리가 계속된다. 일본인들은 마쓰리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고 문화전수도 한다. 큰 규모만도 6만개에서 30만개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사람이 하는 마쓰리에서 수 백만명이 참여하는 마쓰리도 있다. 마쓰리 행사를 위한 물품을 취급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전문직업인도 많다. 마쓰리는 생활이요, 사업이다. 일본의 마쓰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가 시작될 때 오쇼가쓰(正月)마쓰리 등이 많이 열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는 전국적으로 오본(盆)마쓰리 등이 많이 개최된다. 이런 마쓰리 때 가장 신성한 존재는 마을이나 씨족의 신(神)이다. 신들에게 풍요, 행복을 비는 행위가 마쓰리의 기본적인 형태다. ●마쓰리로 시작돼 마쓰리로 끝나 마쓰리는 일반적으로 물과 꽃으로 신을 영접, 차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은 신사를 축소한 가마 형태의 ‘미코시’(神輿)나 손수레 위에 실은 ‘다시’(山車)로 옮겨져 모셔진다. 본격적으로는 이를 메거나 떠밀고 동네를 돌면서 “왓쇼이, 왓쇼이”를 외친다. 이런 것을 반복한 뒤 음식을 나눠먹는다.‘왓쇼이’가 한국어 ‘왔소’에서 왔다는 것은 통설이다. 미코시나 다시의 운반은 남성의 권리였다.2차대전 후 여성도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남성우위 전통이 여전하다. 홋카이도 출신 60대 자영업자 스즈키씨. 그녀는 고향마을에서 어릴 적 “여자는 미코시를 멜 수 없어.”라고 해 뒷전에 밀려 있었다. 도쿄에서 지금까지 살며 먼발치서 구경한 적은 있지만 아직도 참가경험은 없다. 하지만 일본은 1970∼80년대 지방분권이 강해지면서 지역 문화축제가 크게 팽창하면서 여성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으로 새로운 볼거리인 마쓰리를 찾아 원정다니는 흐름이 형성됐다. ●이틀간 7000명이 춤을 춰 마쓰리는 사회통합과 전통문화나 가치전수의 장이다. 지역 마쓰리는 한 해 마쓰리가 끝난 직후부터 다음 해의 마쓰리 준비를 위해 구성원들이 물품과 예산을 마련했다. 각종 이벤트성의 마쓰리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도쿄시내의 상점가인 파루센터에서 매년 8월 열리는 마쓰리도 인근 ‘아사가야중학교’ 학생들이 마쓰리에 쓰일 장식품을 합동으로 만들며 ‘지역사회활동 참여’를 배우게 된다. 자동차·전기·전자업체 등 지역 기업·상점들과 자위대까지도 협찬 형식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는 도쿄 ‘고엔지 아와오도리’는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춤 대열에 참가한다. 지난해 8월말 이틀간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7000여명이 춤을 췄는데, 이들은 수십개 팀별로 수개월전부터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익혀 열연했다. 교토의 기온 마쓰리를 구경했다는 한 외교관은 “일본 마쓰리는 단순히 축제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사회 교육의 장이다. 지역사회의 전통문화를 훌륭히 전수한다. 한국도 참고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마쓰리의 소멸 위기 하지만 지금 많은 마쓰리가 존립위기를 맞고 있다. 아예 사라지는 지역 마쓰리도 적지 않다. 그 자리를 하나·춤·상가 마쓰리 등 이벤트성 마쓰리가 대체하면서 “신이 떠나버린 이벤트 마쓰리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는 마쓰리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특히 지역사회 작은 신사가 중심이 돼 주민들이 참여하는 전통적 마쓰리들이 다수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수백명씩이 참석, 미코시를 끌고 마을을 몇차례나 돌 때면 수천명이 길거리에서 호응했었지만 요즘엔 참가자가 수십명으로 줄어,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지방도시는 물론 도쿄도 마찬가지다. 실제 많은 도시인들은 마쓰리를 보지만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50대 이사카씨는 간사이 고향에서 어릴 적 마쓰리에 참가했던 적은 있지만 성인이 된 뒤 이런 기억은 없다. 도쿄에서 태어난 30대 회사원 아오노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도쿄 오모테산노 마쓰리에서 미코시를 한 번 멘 적이 있다. 그러나 “갑자기 사람이 없다고 간청을 해 참가했는데 메고가다 골목길에서 다칠 뻔했다.”며 앞으로 다시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마쓰리가 수백만명이 관람하는 등 대성황을 보이는 이면에 전통적인 마을단위의 마쓰리들이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마쓰리란 무엇인가 일본어 마쓰리는 우리말로는 축제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는 무속신앙의 제사의례를 나타내는 말로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린 모습을 본뜬 한자 제(祭)를 빌려서 표시했다. 제사를 올리거나 ‘혼령을 모시다.’는 뜻도 있다. 즉 떠받들거나 바치다는 의미가 강하다. 일왕이 영토나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 행위를 ‘마쓰리고토’(政)라고 부른 것도 마쓰리에서 파생됐다. 일왕이 부족연합의 수장인 동시에 최고위 제사장이었던 제정일치 사회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말이다. 마쓰리는 이처럼 신에게 희생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는 집단제의에서 비롯한 축제다. 이런 신성한 축제이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행해진다. 참가자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는 동시에 세속의 때도 씻어낸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전통적 개념의 마쓰리의 형식과 내용이 변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주도로 마쓰리가 지역특산물 판매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마쓰리 원형은 가야·백제문화”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과 일본의 지역축제 연구 전문가이면서 영화감독인 마에다 겐지 ‘하늘하우스’ 대표이사는 “마쓰리의 원형은 한반도, 중국남부 등 도래인들의 문화”라면서 “그 가운데 5세기 전후 가야와 백제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마쓰리의 기원은. -일본은 섬나라이다. 따라서 문화는 한반도, 중국남부, 인도네시아는 물론 호주, 그리고 퉁구스 등지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을 섬기는 행사를 했다. 그게 마쓰리의 원형이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이다. 특히 4∼6세기의 가야문화가 중심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도 마찬가지다. 마쓰리 행위의 원형은 무엇인가. -도래인들의 생활수단이 마쓰리 행위에 반영돼 전수중이다. 무당이나 광대, 남사당패 등의 문화가 대표적이다. 한자나 불교, 식생활도 반영됐다. 무엇보다 생활 범위를 확대한 도래인들의 ‘프런티어정신’이 마쓰리에서는 중요하다. 일본인들의 선조는 한반도와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게 마쓰리에서도 확인된다. 마쓰리의 의식형태 등을 보면 어느나라에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한국축제 식민지시대에 다 없어져 그런데도 한국에 지역축제는 적다. -한국에도 많았었지만 일본이 1920∼45년 식민지통치기간 한국에서의 ‘마쓰리’를 없앴다. 대신 일본계 신사를 지었다. 이 때 별신굿 등 한국의 전통 ‘마쓰리’들이 사라졌다. 마쓰리의 종류는 어느정도인가. -마쓰리는 혼자서도 한다. 보통 30만개라고 하지만 100만개 이상의 마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마쓰리는 신사가 중심인데, 신사는 큰 것만 6만 9000여개다. 일년에 20회 이상 마쓰리를 하는 신사도 있다. 절이나 이벤트성 마쓰리는 여기서 파생됐다. 최근의 마쓰리 경향은. -풍류 마쓰리, 이른바 이벤트성 마쓰리가 늘고 있다. 대신 애니미즘적 마쓰리나 생활재현 마쓰리, 조상신 마쓰리 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마쓰리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나. -여성이 배제된 마쓰리가 많고 그 시대가 길었다. 오르는 것이 여성에게 금지된 산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은 무당이 굿의 주역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게 많았다. 물론 모심기 마쓰리 등에서는 여성이 주역이었다. 반면 신사를 중심으로 한 마쓰리는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금지하는 곳이 많다. 마쓰리의 장래를 어떻게 보나. -조상신을 모시는 마쓰리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가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마쓰리문화는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다. 자연재해극복과 마쓰리의 연관은. -지진과 관련은 적다. 하지만 자연재해의 공포를 극복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마쓰리는 많다. 일본사람 마음속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밝고 재해에 대한 공포심은 적다. 외국의 침략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이 일본과의 큰 차이다. ●강릉 단오제 일본 왕실 마쓰리 모태 한국문화가 마쓰리에 남아 있나. -너무나 많다. 유명한 아사쿠사 산샤마쓰리의 경우 가장 큰 미코시에는 조선의 신이 탄다. 강릉 단오제는 일본 왕실 마쓰리의 모태다. 줄다리기, 광대, 굿 등의 영향도 크다. 시가현 비와호 주변에선 가야금과 유사한 2000년전의 악기가 발견됐는데 그게 지금도 많은 마쓰리에서 쓰인다. 이와 같이 마쓰리를 연구하면 한반도와 연관 사실이 부각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것이다. 집단적 스트레스 해소책도 되나. -마쓰리는 개인이나 집단의 스트레스해소에 매우 좋다. 그래서 1년간 지역사회에서 마쓰리를 위해 돈을 모아 마쓰리에 쓰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역사회 화합의 요소도 많다. 마쓰리와 ‘천황제’의 관련성은. -민속학과 마쓰리를 파고들면 일본인의 생활전체를 알 수 있다. 일본인의 정신성과 생활형식 등을 연결하는 구조다. 그런 일본인의 정신과 생활구조의 최상층부에 ‘천황’이 존재한다. 마쓰리의 학문적 연구는 적은데. -마쓰리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적다. 조선(한반도)을 연구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쓰리를 지원하는 단체도 없다.(상업적, 이벤트성 마쓰리는 많은 기업들이 지원)마쓰리를 통해 일본 문화의 기원을 알고, 동북아시아나 해양민족의 영향과 교류 등을 알아 거울로 삼으면 좋을텐데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taein@seoul.co.kr
  • [기고] 개성공단의 현주소/배국열 土公 개성사업처 분양팀장

    개성공단은 지금 공사 중이다. 작년 여름 이래 남북당국간 대화가 끊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토목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1월 말 현재 47.3%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남북연결도로는 완공되었고, 경의선 철도도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다. 시범단지의 개발 열기는 더욱 뜨겁다. 작년 말 리빙아트와 에스제이테크의 공장이 준공하였고, 현재 8개 공장 건축이 한창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근로자들의 행렬도 장관이다. 남쪽에서는 건설자재와 남한 근로자를 실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고 있으며, 북쪽에서는 북한 근로자를 실은 만원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필자는 작년 6월 시범단지 입주업체(15개)를 선정하였고, 그들의 개성공단 입주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지난 1월27일 이들 입주업체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성공단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의 다른 공단보다 경쟁력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러하냐고 물으니까,“통행규제가 심하고, 북측인력의 노동생산력이 낮다.”고 한다. 물론 앞으로는 점차 개선되겠지만 현장의 애로사항을 풀어 나가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야 한다. 요즘 들어 출입규제가 더 강화된 것 같다. 조업중에 부품이나 부자재가 없을 경우 신속하게 남한으로부터 조달해야 할 텐데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면 출입기간 동안 조업을 중단해야 할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완제품의 출하도 신고한 물량과 조금만 차이가 나도 출하를 막고 이로 인하여 바이어로부터 클레임을 당할 수도 있다. 이들 업체에 의하면 “출입규제가 심해 중국에 비하여 물류비가 비싸고 이에 따라 공장건축비도 비싸다.”고 한다. 개성공단 출입문제는 남북분단의 현실로 볼 때 빠른 시일 내에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발업자인 토지공사는 북측이 ‘개성공단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고, 입주업체의 기업 활동을 위해서는 중국 선전과 같이 출입이 원활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북측에 꾸준히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의 메시지가 북측 고위층에 전달되어 하루속히 출입문제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개성공단 개발현장이나 입주공장에는 현재 북측 근로자 14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입주업체들은 북측이 더 적합한 인력을 조달해줄 것과 채용한 근로자가 열심히 일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으나,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반세기동안 다른 경제체제에 살아온 북측 근로자가 기대만큼 일해 주길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손재주가 좋고 근면하기 때문에 입주업체나 북측근로자가 서로 노력하면 노동생산성은 점차 향상되리라 믿는다. 이제 봄이 되면 전기와 통신이 개통될 것이고, 공장건축이나 조업도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토지공사에서는 새로운 입주업체를 선정하기 위하여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성공단의 본궤도 진입은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린 성과이고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개성공단이 우리민족만의 것이 아닌 동북아의 것 나아가 세계적인 공단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 땀은 개성공단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모아져야 한다. 정치논리에 휘둘려서도 안 되고 특정기업의 이익을 위해 개성공단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벌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여기에는 북측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하루빨리 관리위원회에 북측관계자를 파견시켜 입주기업의 활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중국공장을 방문하면 부시장이 영접하는데, 개성공단은 애로사항을 말하려고 해도 북측 관계자를 만날 수도 없다.”고 하는 한 입주업체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배국열 土公 개성사업처 분양팀장
  • [씨줄날줄] 발해와 일본/이용원 논설위원

    옛 발해 땅에서 일본까지의 뱃길을 되살리려던 ‘발해 뗏목탐사대’의 꿈이 또다시 좌절됐다. 탐사대원들은 표류 3일만에 구출되었고 탐사는 중단됐다. 그래도 지난 1998년 초 첫 탐사에서 대원 4명이 폭풍우를 만나 모두 숨진 걸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발해(698∼926년)와 일본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양국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기록은 없다. 반면 200년동안 공식사절단이 50회쯤 오갈 만큼 교류가 활발했다. 발해사(渤海使·발해 사절단)가 일본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727년. 사절단이 일본 국왕에게 전한 국서에서 발해의 2대 임금 무왕(武王)은 “고려(=고구려)의 옛터를 회복하고 풍속을 이어받았다.”고 밝히며 고려 국왕을 자처했다. 일본도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인정해 이 무렵 일본 기록은 발해·고려를 동의어로 섞어 썼다. 양국 교류에서 주도권은 발해가 행사했다. 발해사가 34차례 일본을 찾은 데 견줘 일본이 발해에 보낸 공식사절인 견(遣)발해사는 3회에 불과했다. 발해사는 일본에서 국빈 못잖은 대접을 받았다. 일본 사서는 발해사 접대를 전담하는 관원이 13가지 직책에 2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했다. 이들은 발해사의 음식·의복 수발은 물론 입국·입경(入京)·귀국 등 단계별로 영접·환송을 나눠 맡았다. 사절의 교류는 곧 경제교류였다. 발해사가 들고 온 것(수출품)은 주로 담비·호랑이 등의 가죽이었고 때로는 백두산 산삼과 꿀이 포함됐다. 발해 모피는 신분과시용으로 귀족사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920년 발해사를 환영하는 연회에서 일본의 한 왕자는 6월의 더위에도 담비가죽옷 8벌을 껴입고 참석한 일이 있다. 반면 발해사가 가져간 것(수입품)은 삼베·명주 등 섬유류가 대부분이었다. 발해사는 문화교류에도 크게 이바지해, 발해사가 뜨면 일본은 당대의 문장가들을 모아 한시(漢詩)를 주고받는 접대를 했다. 발해에서 ‘음성(音聲)’을 배우던 일본인이 귀국중 재난을 당한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유학생·유학승도 꽤 있은 듯하다. 당나라조차 ‘해동성국’이라고 부러워한 발해, 그 발해와 일본이 통하는 뱃길은 평화와 공존·공영의 길이었다. 이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발해 뗏목탐사대’의 꿈이 머잖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여왕·총리에 ‘취화선’등 영화 DVD 선물

    |런던 박정현특파원|영국을 국빈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저인 버킹엄 궁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2일 토니 블레어 총리와 정상회담, 양국의 첨단산업 협력협의체인 하이테크 포럼 연설 등의 일정을 보냈다. 노 대통령은 여왕과 블레어 총리에게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오아시스·초록물고기의 영화 DVD를 선물했다. 노 대통령은 2일 오전 9시20분쯤(현지시간) 다우닝가 총리 관저에 도착해 블레어 총리의 영접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곧바로 정상회담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은 1시간 가깝게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가진 뒤 블레어 총리와 오찬을 함께 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1일(한국시간 2일 새벽) 버킹엄 궁의 볼룸에서 여왕이 주최한 만찬에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만찬은 여왕의 만찬사, 애국가, 노 대통령의 답사, 영국국가 연주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만찬사에서 “한국민이 통일을 이룩해 평화를 누리면서 한반도 전체가 모든 한국민의 복리를 위해 번영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답사에서 올해로 영국이 상주공관을 한국에 개설한 지 120년 되는 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지금까지의 선린우호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를 더욱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가야겠다.”고 밝혔다. jhpark@seoul.co.kr
  • 盧대통령 버킹엄궁서 잔다

    |런던 박정현특파원|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한 노 대통령은 대영제국의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왕실로부터 전통적이고 화려한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국빈 방문이 공식 방문과 다른 점은 런던 시내 호스 가즈(Horse Guards)에서 공식 환영행사를 받고, 여왕의 관저인 버킹엄궁을 숙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버킹엄 궁에서 잠을 자는 최초의 한국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영국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으로 국빈 방문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윌슨 대통령에 이어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두번째였고, 러시아는 제정러시아 붕괴 이후 푸틴 대통령이 유일했다. 올 상반기 국빈 방문한 외국 정상은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다. 전날 밤 런던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힐튼호텔로 찾아온 찰스 황태자의 동생인 에드워즈 왕자 내외로부터 호스 가즈로 안내받았다. 노 대통령 내외가 12시50분쯤 환영 행사장에 도착해 여왕으로부터 영접을 받은 뒤 단상으로 이동할 무렵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같은 시간에 시내 그린파크와 런던타워에서는 4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이어 의장대장이 우리말로 “의장대 사열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으며, 노 대통령은 100여명의 화려한 의장대를 사열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황금빛 왕실 전용마차 두 대에 나눠타고 화려한 복장을 한 근위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버킹엄 궁으로 향했다. 노 대통령과 여왕이 탄 마차는 말 6마리, 권 여사와 에든버러 공이 탄 마차는 4마리가 이끌었다. 공식수행원들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 다섯대에 나눠타고 뒤를 따랐다. 여왕은 이날 외국 원수에게 주는 가장 높은 훈장인 배스 대십자훈장을 노 대통령에게 수여했다. jhpark@seoul.co.kr
  • [폴리시 메이커] 임일순 제주 韓商대회준비기획단장

    [폴리시 메이커] 임일순 제주 韓商대회준비기획단장

    “한상(韓商)대회의 목적은 동포기업인 대 동포기업인, 동포기업인 대 국내기업인 간에 한민족 경제인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궁극적으로 한민족의 경제적 역량을 강화하자는 데 있습니다.” 임일순(57) 제주도 한상대회준비기획단장이 26∼28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차 세계 한상대회 준비 ‘100일 작전’을 끝내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 2002년부터 열리고 있는 이 대회는 그동안 서울에서 두번 열렸고 지방개최는 제주가 처음이다. 세계 42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기업인 960여명과 국내 경제인 360여명 등 1300여명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준비를 책임진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더욱이 미국 경량철골계의 대부 백영중(74) 패코스틸회장, 미국 부동산계의 알렉스 한(64) 한원 커머셜회장 겸 미국 상공인단체총연합회장, 캐나다 백화점계의 이영현(62) 영리트레이딩회장 겸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장, 인도네시아 목재·제지계의 승은호(62) 코린도그룹회장, 카자흐스탄 제분·주류계의 최유리(56) 도스타 홀딩그룹회장, 일본 파친코계의 한창우(73) 마루한회장, 미국 컴퓨터그래픽스계의 이종문(76) 암벡스 벤처그룹회장, 스페인 선박업계의 권영호 인터브로고회장 등 세계적으로 쟁쟁한 동포 CEO들이 오게 돼 있어 그의 100일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이번 대회가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알릴 절호의 기회여서 열흘전부터는 투자유치 지원팀·기업비즈니스 지원팀 등 15개 태스크포스팀을 이끌면서 공항영접, 투자유치 홍보 및 설명회, 제주특산품 수출 마케팅, 관광안내, 환송까지의 예행연습을 거듭해온 그다. 숨고르기도 잠깐 뿐, 그는 25일 오후 평양에서 무역상담을 마치고 중국 선양(瀋陽)을 경유해 들어오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원 165명을 영접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갔다. 참가자 대부분이 들어오는 26일까지는 공항에서, 대회가 종료될 때까지는 컨벤션센터에 진을 쳐야 할 판이다. 박 단장은 공항으로 가면서 “화교자본이 중국 본토로 들어가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한상이 화상(華商) 못지 않은 지위와 세력으로 성장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한나라 5·18묘역 참배 “호남 언 손 이제야”

    한나라 5·18묘역 참배 “호남 언 손 이제야”

    한나라당 의원들이 30일 단체로 광주 망월동 국립5·18묘지를 참배했다. 전남 구례,곡성에서 2박3일간 열린 의원연찬회의 마지막 순서다.참가 의원은 100여명.이 정도 숫자의 국회의원이,그것도 호남과는 질긴 ‘악연’을 이어오고 있는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단체참배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적지 않다. 지금까진 박근혜 대표나 몇몇 의원들이 개별 자격으로 5·18묘역을 참배했었다. 박광태 광주시장 등 현지 인사들의 영접 속에 박 대표와 의원들이 오후 1시47분에 도착했다.박 대표는 방명록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 뒤 가슴에 검정리본을 단 의원들과 5·18 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헌화분향하고 정성환 관리소장의 안내로 묘역을 둘러봤다. 박 대표는 참배 도중 “방문 자체보다는 당 의원들을 다 모시고 이곳에 와서 뜻이 깊은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더 노력해서 믿음과 사랑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원희룡 최고의원도 “개별적인 사유로 몇몇 의원이 불참했지만 어쨌든 전체 의원이 민주 항쟁의 상징인 묘역에 참배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상징성을 강조했다. 네번째로 참배했다는 대구 출신 강재섭 의원은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이해하고 동서화합을 이루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권오을 의원도 “광주사태에 대해 우리 당 의원들이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이번 방문을 계기로 마음 속에 지니고 있던 부채 의식을 털고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3일 의총에서 5·18 묘역 참배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부 영남권 의원들은 불참했다.이방호 의원은 연찬회에는 참석했지만 참배에는 불참했다.그러나 안택수 의원은 참배한 뒤 “참배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위기상황인데 너무 한가로운 일정이라고 지적한 것”이라면서 “이번이 두번째 참배”라고 해명했다.한 당직자는 “이번 묘역 참배로 호남지역이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시각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호남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찬회를 마무리하면서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는데 다음 구절은 5·18묘역 참배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호남은 한나라당의 뜨거운 심장이 아니라 겨울날 추위에 꽁꽁 언 손이었습니다.이제 그 속에 저희 입김을 불어넣어 녹이겠습니다.그리고 저희에게 뜨거운 악수를 청할 때까지 겸허히 반성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광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MK·자칭린 소중한 ‘윈윈’ 인연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자칭린(64)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겸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인연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6일 방한한 자칭린 주석은 중국 공산당 핵심지도부인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서열 4위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실력자. 정 회장과는 2002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당시 베이징 당서기였던 자칭린 주석은 현대자동차가 베이징에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하며 현대가(家)와 인연을 맺었다.성장 가능성이 큰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가졌던 정 회장으로서는 가능한 한 수도 베이징에 공장을 짓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했다.자칭린 주석도 베이징시 발전을 위해 공장 유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처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게임 덕분에 베이징현대기차 설립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됐다.2002년 2월 현대차와 베이징기차간에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의향서가 체결됐고,불과 8개월만인 그해 10월 베이징현대기차가 공식 출범하기에 이르렀다.자칭린 주석은 정협 주석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베이징현대기차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고마운 손님’이 한국을 찾자 정 회장은 환영행사 마련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돈독한 관계를 반영하듯,정 회장은 29일 오전 경주를 방문한 자칭린 주석이 다른 일정에 들어가기 앞서 조금이라도 먼저 만나기 위해 김해공항에 나가 직접 영접하는 ‘성의’를 보였고,저녁에는 성대한 만찬까지 베풀었다.30일 울산 현대차공장 방문때도 직접 안내할 계획이다.자칭린 주석에 대한 각별한 예우의 뜻이 담겨 있다.정 회장이 자칭린 주석 초청 만찬에 현대차그룹 사장단과 부사장급 이상 경영진이 총출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신세졌던 ‘손님’을 이 참에 제대로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직접 나서 행사 스케줄과 숙박시설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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