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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3人 한일의원연맹 탈퇴 ‘3색시각’

    독도 영유권 문제와 역사왜곡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 대일감정을 반영하듯 국회의원 3명이 한일의원연맹을 탈퇴했다. 열린우리당 이근식·염동연 의원,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행동을 같이 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엇갈린다. 이근식 의원은 ‘행동파’로 분류된다. 지난달 17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를 통과시키자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곧바로 탈퇴했다. 그날 일본 도쿄에서 유학중인 막내딸도 귀국시켰다. 조례 통과 전부터 막내딸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내년 3월까지 유학 예정이던 막내딸도 미련없이 일본땅을 떠났다. 이 의원은 “앞으로 한·일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재가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막내딸도 다시는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염동연 의원은 ‘정치적’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17일 탈퇴를 선언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는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 선거운동기간이었고, 후보로 출마한 상태였다. 순수성을 강조하는 염 의원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는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재오 의원은 ‘눈치형’에 가깝다. 지난달부터 연맹에 탈퇴를 문의했지만 탈퇴서는 결국 지난 7일에야 냈다. 차일피일 미룬 이유에 대해 이 의원측 관계자는 “주위 의원들에게 함께 탈퇴하자고 제의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혼자 탈퇴하면 관심을 끌지 못할 것 같아 보류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혼자 탈퇴하면 튀는 행동이 될 것 같아 보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과는 달리 탈퇴를 확인하는 언론의 질문이 이어지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탈퇴서를 낸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광기의 외교’ 에 국제 고립…日 뒤늦게 ‘허둥’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과 밀착,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일본외교가 역사교과서 왜곡파동과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패전 60주년을 맞아 ‘힘의 외교’를 강화한 것이 “능력을 과신, 국제현실을 도외시했다.”는 반성론마저 나온다. 일본측은 중국의 반일시위 격화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지방에서 시작된 반일시위가 9일 수도 베이징으로 옮겨온데다 일본대사관 일부 기물파손 사태까지 발생하자 기업활동 타격 등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0일에도 광저우(廣州)·선전 등지에서 반일시위가 열려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은 10일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대규모 반일시위는 ‘극히 유감’이라는 뜻을 전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양국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17일 베이징에서 열릴 중ㆍ일 외무장관 회담을 관계회복의 실마리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정치권도 중국·한국과의 외교갈등 해소에 본격 나서는 기류다. 자민당 다케베, 공명당 후유시바 간사장 등 연립여당 간사장들이 이달말 중국과 한국을 연쇄방문, 관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이달말쯤 방한, 냉각된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8일자에서 동아시아가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이 왜곡 역사교과서 승인을 중단하고 일제 점령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에 이어 믿었던 미국까지도 ‘관련국간 합의’를 강조하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위 진출 노력에 찬물을 끼얹자 일본 외교관계자들은 “미국과의 비공식대화에서 들은 얘기”라고 애써 평가절하하면서도 허둥대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는 점을 당혹해하고 있다. 이러다간 일본의 상임위 진출은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아울러 미국이 9일 중국과 차관급협의를 정기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미국이 일본 중시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을 수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taein@seoul.co.kr
  • “일본 독도영유권 주장 근거는 영토표기 모순 많은 교통지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1779년의 나가쿠보세키스이사 발행 ‘개정 일본 여지로정전도(日本與地路程全圖)’는 교통지도일 뿐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지도에는 부산과 경상남도도 표시돼 있어 이 지도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할 경우 부산과 경상남도도 일본 영토가 되는 모순이 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됐다.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인 원로사학자 최서면(77) 명지대 석좌교수는 일본 참의원 의원 모임인 ‘아시아의 신기축을 생각하는 회의’ 초청으로 지난 7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이렇게 밝혔다.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정부와 학계는 이 지도를 독도영유권의 중요한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강연에서 이 지도는 일본 지도사상 처음으로 경도와 위도선을 적어 넣은 지도로 마쓰시마(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가 등장하지만 거리 감각없이 표기한 일종의 교통지도라고 지적했다. 반면 최 이사장은 이보다 훨씬 후인 1892년 당시 일본 최대의 지도전문 출판사인 중촌종미당 발행 만국신지도의 지리통계표 조선편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된 것은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taein@seoul.co.kr
  • 독도, 알아야 지킨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교과서들이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그동안 ‘망언’으로 치부해 왔던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그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독도 영유권 귀속의 논리를 가르칠 것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우리땅인지, 일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인지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독도 영유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독도 역사와 독도 관련 분쟁의 역사를 다룬 것부터 목숨을 걸고 독도 지키기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 지도로 본 독도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것들이다. ●CD로 듣는 독도 이야기(문철영 지음, 경세원 펴냄) 이 책은 단국대 역사학과 문철영 교수가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의 ‘역사이야기’란 코너에서 나누었던 대담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화하듯 쉽게 풀어낸 내용이어서 독도 영유권 문제의 윤곽을 더듬고 맥을 짚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책에 따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까지 크게 세번이다. 울릉도·독도는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 우리의 영토로 지속되다가 1693년 첫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극심했던 왜구의 피해 예방차원에서 조선 조정이 공도(空島)정책을 취한 틈을 타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에 출몰하면서 조선 어선들과 큰 충돌이 벌어진 것. 그러나 이때 어민 대표인 안영복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1699년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해주게 된다. 두번째 논쟁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을 표방한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일본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울릉도·독도 문제를 재조사했으나, 역시 조선 영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게 보고했다. 태정관도 이를 바탕으로 1877년 최종 지령문을 내무성에 내렸고, 내무성은 이를 시마네현에 통보했다. 책은 1905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주권이 미치지 않는 ‘무주지’로 규정,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고,2차대전에서 패전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의 애매성을 구실로 지금까지도 억지주장을 펴는 과정을 소상히 살핀다. 대담 내용을 담은 CD도 있다.1만원.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호사카 유지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지은이는 일본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주장만을 들으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믿어버릴 만큼 논리와 자료를 정교하게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을 논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다. 일본은 1693년 한·일 어민들간의 충돌때 도쿠카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은 울릉도일 뿐 독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37년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까지 간다는 도해 허가증을 받고 울릉도까지 넘어간 상인이 사형에 처해진 일을 내세우며, 이는 자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항해를 일본이 허용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에도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내줄 때는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였으므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해 허가증을 발행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3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도다. 책에선 우선 ‘대일본국군여지전도’와 ‘개정대일본도’,‘교정대일본여지전도’ 등 에도시대에 작성된 상당수의 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점을 주목한다. 독도에서 일본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섬은 그려져 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로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 ‘대일본전도’‘관판 실측전도’ 등 메이지시대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총 17장의 일본 고지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있다.1만 3500원.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양태진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지음, 제이제이북스 펴냄)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는 독도의 지세와 생태는 물론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의 독도 관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지도와 지명,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측의 주장, 독도문제의 본질, 독도 수호인 안영복과 홍순칠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포진한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시마네현 의회에서 거론돼온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1만 5000원. ‘아, 독도수비대’는 1950년대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뼈대로 한 실화소설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 한국 어부들을 방해하고 테러를 가하는 등 침탈행위를 일삼자 젊은이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방어에 나서는 이야기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암벽의 ‘한국령’이라는 표식도 이들이 새긴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면서 한·일 양국관계가 유례없는 냉각기를 맞고 있다. 서울신문은 8일 건국대 법대 김창록 교수와 도쿄신문 야마모토 유지(山本勇二) 서울지국장의 대담을 통해 교과서·독도 문제 등 쟁점과 양국간 동반자 관계 재정립을 위한 해법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야마모토 유지 지국장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다. 양국의 외교로 사태가 현재보다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10%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한국이 독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면 일본도 대응을 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다케시마에 대한 보도가 없었는데 일본 정부의 대응도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교과서의 경우 합격본이 신청본보다 많이 수정됐다. 부드러워졌다. 채택률도 높아질 것이다. ●김창록 교수 독도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지나치게 갈등을 키우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분명히 한국의 땅이다. 한국민들은 영토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사와 직결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계속 도발하면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다. 문제의 본질과 한·일 관계를 고려해 잘 관리해야 한다. 교과서의 경우 역사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계속 검정과 채택률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일본은 역사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야마모토 양국 국사교과서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한·일합병에서 광복까지 40년을 60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일본은 2∼3페이지밖에 없다. 이같은 정보량 차이가 한·일 양국민의 역사 인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김창록 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과서 기술에 깔려 있는 역사 인식이 문제다. ●야마모토 도쿄신문에 한국 초등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을 소개했다. 일본 신문에서 한국 교과서를 다룬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안용복, 다케시마 편입, 위안부 문제, 안중근·유관순 선생 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기간 시설을 정비하고 개발을 하고 토지 조사도 했지만 한국인은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한다고 기사를 썼다. ●김창록 최근 문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사회가 분기점에 와 있고 그 분기점이 무엇을 의미하며 방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 ●야마모토 4년 전 교과서 파동 때와 비교해보면 과거에는 일본의 많은 교과서가 위안부 표현을 썼지만 현재는 거의 없다.4년 전보다 역사 반성이 명백하게 줄어들고 일본이 아시아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이 늘었다.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해서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부도 이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일·미동맹, 중국의 강대국화,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경화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 사회가 무라야마 총리 시대와는 달라지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대로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김창록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를 사과했고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도 오부치 총리가 거듭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기본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야마모토 일본 사회는 1998년 이후에 변화가 있었다. 북한의 움직임이다. 핵문제나 납치문제가 일본의 태도를 변하게 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창록 북한 관련 문제들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자위대 파병과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변하는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일본의 정체성 변화가 한국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이 최근 2∼3년간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문제이다. 북한이라는 위험한 나라가 있어서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됐다. 대북 압력책과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변했다고 본다. ●김창록 대응방식이 중요하다. 납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 갖는 의미보다 너무 크게 과장됐다. 아시아 전체 질서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너무 선정적으로 접근했다. ●야마모토 일본은 납치문제 때문에 북한을 지지할 수 없다. 일·북 수교를 하자는 여론이 줄어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직접 시작한 외교니까 수교를 위해 노력하지만 외무성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지향하는 국가로서 근린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북한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세계의 지도국이 되겠다고 하기 전에 아시아에서 먼저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들은 일·한 관계에서 일본이 가해자, 한국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1998년 이후 월드컵 등 문화교류가 강화되고 파트너십이 생기면서 일·한 관계는 가해자·피해자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북 관계는 납치와 미사일 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계속됐다. ●김창록 한국민은 북한 정권을 지지하진 않지만 북한을 형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지메를 당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일본은 한국이 같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야마모토 일본의 70대 이상 정치인들은 외교적으로는 사과를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50∼60대 정치인들은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김창록 한국도 변했다. 김종필로 상징되는 일본통이 물러났다.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일본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7년 이후 한국은 크게 변했다.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과거 문제보다는 현재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저자세 외교로부터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선언’으로 과거사 문제를 털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진정한 파트너가 되자고 약속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야마모토 일본과 한국 정치인의 교류는 활발하지만 불편해 보인다. 역사문제 때문인 것 같다. 일본 정치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도 일본의 새로운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없다. ●김창록 적극적인 상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 인식차를 해소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식민지 배상문제를 해결하는 협정이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미봉책으로 덮어오다 보니 지속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야마모토 사할린·원폭피해자·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1980년대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 평화기금 창설에도 간여하지 않았는가. 역사 인식을 정리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최선의 외교방법을 제의했는데 한국은 일본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김창록 원폭 피해자 문제의 일부 해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쟁취한 것이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노력을 했지만 피해자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고이즈미 정권 들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최근 일본이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큰 인식차가 문제의 근원이다. ●야마모토 당분간 양국관계의 돌파구는 없다. 고이즈미 총리가 상반기에 한국을 오더라도 불편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동북아가 계속 대립·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너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한편에서는 교류가 계속된다. 일본 관광객의 숫자는 변함없다. 이론 대립과 교류가 동시에 나오는 시대이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낙관적이라고 전망할 수 없다.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식민지배에 대한 양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한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역사에 대해 보다 겸허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 박지윤기자 koohy@seoul.co.kr
  • 정세균 원내대표 국회연설 “대북특사 보내자”

    정세균 원내대표 국회연설 “대북특사 보내자”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는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단호한 대일외교를 강조했다. 특히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 특사 파견도 제안했다. 정 원내대표는 최근 가장 큰 관심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비롯해 남북문제, 경제회복, 학교폭력 근절 방안 등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을 일일이 거론, 집권여당으로서 대처방향을 밝혔다. 대북관계에서 대북특사 파견과 함께 필요시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정 원내대표는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파견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6자회담 복귀 결단을 촉구하면서 “필요하다면 남북정상 간의 직접대화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남북 국회 대표단의 상호방문’도 북한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조류독감에 대한 공동대처, 북한 영유아에 대한 지원 등 남북협력 사안들이 산적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위한 ‘남북장관급 회담’의 조속 개최도 희망했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배제,3선 연임 제한 등이 주요 쟁점인 지방선거제도 논의는 오는 6월까지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는 지금부터 쟁점 논의에 착수해 적어도 지방선거 1년 전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논의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3대 쟁점법안 중의 하나인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는 “처리 시기보다는 토론과 논의, 그리고 절차와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면서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정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예상대로 여야의 평가가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오영식 공보부대표는 “일본에 단호한 입장을 천명한 점은 적절했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슈에 대한 분명한 해결방식이 없다며 비난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책임있는 다수당의 대표로서 독도와 교과서 왜곡 문제 등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이벤트나 구호성 촉구가 아니라 결과나 성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분명한 해결방식을 제시해야 한다.”고 혹평했다. 이어 남북문제, 지방선거제도 등 여러 현안을 거론한 것과 관련,“이는 국회에서 여야 협의를 거쳐 신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내용이 없고 국민코드와 맞지 않다.”며 평가절하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독도 영유권 주장 日교과서 늘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달 일본 교과서 기술의 기준이 되는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해야 한다.”는 망언을 했던 나카야마 나리아키 일본 문부과학상이 6일 왜곡교과서의 전형으로 비판받는 후소샤 교과서가 “균형 잡혔다.”고 또다시 망언을 했다. 나카야마 문부상은 이날 중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후소샤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으로 아시아인들이 희생된 사실을 기술한 점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한때 아시아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점을 깊이 반성한다는 데 입각,(검정작업 등을)진행한다는 데 변화가 없다.”며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독도 문제 왜곡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일본 언론들은 7일 중학생용 모든 공민교과서와 일부 지리교과서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인 것으로 기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후소샤 외에도 도쿄서적과 오사카서적 등 대형출판사의 공민교과서가 독도관련 기술을 이처럼 기재한 것으로 드러나자 다른 출판사들도 이달말까지 예정된 ‘자주 정정(訂正)’ 기간에 독도 기술을 포함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taein@seoul.co.kr
  • [韓·日 교과서 전쟁] (3) 한·일 양심세력에 듣는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파문을 지켜보는 우리나라 시민운동가들의 분노는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일부 ‘양심세력’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지난 2001년 1차 교과서 파동 이후 한·중·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의 전후 처리방식과 역사왜곡에 저항하며 힘겹게 공동 연대를 구축해오던 터에 파문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올바른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중인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김은식(35) 태평양전쟁 희생자 보상 추진위원회 사무국장과 후쿠도메 노리야키(55) ‘일본의 전후책임을 생각하는 히로시마 모임’사무국장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양국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후쿠도메 사무국장은 “4년 전 처음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보다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됐다.”면서 “특히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사회화되면서 언론도 하루종일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전달하고 있다.”며 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일본이 양국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지적했다. 독도의 경우 “일본인들은 독도가 1905년 전후 한국을 지배하기 이전부터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 뿐,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며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한 일본 지자체간에 친선을 넘어선 도움이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후쿠도메 사무국장은 80년대 중반 대구 계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 유골봉환 문제 등 한·일 과거사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최근 일본에서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와 ‘교과서 네트워크’를 구성해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지난달 18일에는 일제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1945년 발생한 일본 나가사키현 이키 지역의 ‘조선인 귀국선 해난사고 및 희생자 유골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김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새역모’의 핵심멤버들이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한·중·일 연대를 강화해 범 아시아적인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어 자칫 잘못 문제를 제기할 경우 ‘비국민’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라 시민단체들도 독도문제를 전면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일 관계의 갈등과 대결구도가 어려워질수록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일본 사회의 여론이 일방적인 흐름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김 국장은 제안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반외교 “日 독도영유권 주장 불용”

    반외교 “日 독도영유권 주장 불용”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7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을 만나 “일본 공민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독도 관련 기술을 즉각 삭제하라.”고 강력 요구했으나, 마치무라 외상은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양국의 외교 책임자간 회담에서도 접점이 도출되지 않음에 따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교과서 왜곡으로 빚어진 한·일간 갈등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일단 일본측의 노력을 지켜보는 한편 북핵 문제 등 나머지 제반 현안과 관련한 양국간 협의는 계속 강화해 나간다는 입장이어서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한 더 이상의 추가 강경대응은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제4차 ACD(아시아협력대화)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 중인 반 장관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시내 메리어트 호텔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교과서의 영유권 기술에서 일본 정부의 의도로 개악된 사실이 드러나 미래협력을 위한 일본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며 “외교장관으로서 뿐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에 마치무라 외상은 “일본은 화해에 바탕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결의에는 변함이 없으며, 한국민의 심정을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했다. 이날 반 장관은 독도 문제와는 별도로 “조속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해 일본측이 전력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카슈미르 ‘평화버스’ 총격속 첫운행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는 ‘서남아시아의 화약고’ 카슈미르 지역을 가로지르는 버스가 인도 독립 이후 50여년 만에 처음 운행됐다. 하지만 이슬람 반군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 때문에 운행이 일시 중단되는 등 순탄치 못한 출발이었다. 7일 오전 11시30분(현지시간) 인도령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서는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가진 뒤 첫 버스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인 무자파라바드로 향했다. 비슷한 시간 무자파라바드에서도 스리나가르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두 버스에 탄 승객은 약 50명이며 대부분 이산가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스리나가르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17㎞를 가다가 로켓포와 총으로 무장한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몇 분 동안 운행이 중단됐다.AFP통신은 인도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 사상자는 없으며 버스는 운행이 곧 재개됐다고 밝혔다. 인도∼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잇는 버스 운행이 이뤄지게 된 것은 14개월에 걸친 양국의 평화협상에서 나온 첫 가시적 성과물이다. 그러나 인도의 카슈미르 지배를 반대하는 이슬람 반군세력은 이 버스가 ‘관(棺)’이 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가운데 지난 6일 인도측 버스정류장에 총격이 가해져 8명이 다치고 테러범 2명이 숨졌다. 카슈미르는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물러난 이후 힌두교 국가인 인도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2차례 전쟁을 치르는 등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日, 왜곡시정 거부

    日, 왜곡시정 거부

    정부는 6일 일본 정부에 독도 관련 교과서 왜곡 부분을 즉각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한·일 양국의 입장이 접점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태식 외교부 차관은 이날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교과서 왜곡에 대해 전체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면서 일본 정부가 시정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이규형 외교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 차관은 검정을 통과한 일부 공민교과서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특히 “공민교과서 검정 신청본의 내용이 검정 과정에서 일본 문부성의 일정 역할 및 관여로 변경 된 것으로 보인 점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면서 “일본 정부가 교과서 상의 독도 영유권에 관한 기술을 즉시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차관은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개선하려는 어떠한 도발행위도 용납치 않고 엄정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독도 문제로 인해 한일관계에 더이상의 긴장과 대립이 초래되지 않도록 일본이 부적절한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다카노 대사는 “독도에 관한 교과서 기술은 출판사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며 구체적 기술은 편집자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정부가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독도에 대한 양국의 입장은 상이하지만 그로 인해 어업문제를 포함해 양국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대국적 견지에서 대처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차관은 “출판사의 독자적 결정으로 독도 문제가 기술됐다는 다카노 대사의 설명은 일본 언론의 보도내용과도 상치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라종일 주일 한국대사도 이날 일본 외무성을 방문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 조치에 강력 항의했다.ACD(아시아협력대화)회의 참석차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 중인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7일 현지에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을 만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진상을 따질 예정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이날 국회 독도특위에 출석,“이달 중 개최될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유엔 인권위원회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교과서 문제를 집중 제기할 방침”이라며 “일제 식민지 피해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왜곡 시정을 위한 공동방안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마산시 ‘대마도의 날’ 조례공포

    경남 마산시는 시의회가 제정한 ‘대마도의 날’ 조례를 6일 공포, 이 조례가 사실상 발효됐다. 황철곤 시장은 이날 오전 “영토 관련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각계 여론을 수렴한 결과 조례를 공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공포서류에 결재를 했다.”고 밝혔다. 황 시장은 “이 조례가 독도를 비롯한 우리 영토에 대한 애착심을 되새기는 선언적·상징적 규정으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점을 고려해 공포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례는 관보에 게재돼야 효력을 발휘하나 의회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고 명시한 부칙에 따라 발효됐다. 조례는 1조에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고 영유권 확보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2조는 “조선조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 3조는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가 있으므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노력한다.”고 돼 있다. 시와 시의회는 영토 관련 조항에 대해서는 수정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日의 역사왜곡은 영토침략”

    일본정부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결과가 드러남에 따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규탄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흥사단은 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본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흥사단은 오전 10시부터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규탄집회를 여는 등 전국 15개 도시와 미국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도 전개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낮 12시 일본대사관에 역사왜곡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독도사수국민연대는 북핵저지 시민연대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의 역사왜곡은 영토 침략행위와 다름없다.”며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피켓 등을 불태웠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日 교과서 왜곡 파문] 이라크戰도 美배려 왜곡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 왜곡한 역사교과서 검정작업에 일본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관여할 수 없다.’고 호언했던 일본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막후에서 감독하고,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현장을 지휘·감독해, 검정교과서가 아니라 국정교과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후소샤판 공민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에 따라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청본에 ‘한국과 우리나라가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로 돼 있었으나 문부성이 “영유권이 애매하게 표현됐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특히 문부성은 후소샤가 ‘한국이 점령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수정안을 내자 ‘불법점거’가 정부 견해라며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검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압박, 극우적인 후소샤마저 곤혹스러워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문부성측은 정부 견해에 맞지 않는다는 검정 의견을 제시했을 뿐 “표현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라크전 발발이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부부 별성제(결혼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걸 고치는) 기술 등도 정부측이 압박, 여러 대목이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문부성은 일본서적신사의 공민교과서 내용 중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기술한 대목에서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표현은 안 된다며 구두로 출판사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라크전 개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검정 의견은 문서로 반드시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구두로 통보했다. 이에 대해 문부성측은 “수정 과정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만 밝혔다. 문부성은 이라크전 발발에 대해서도 신청본의 ‘유엔결의 없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뒤에야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근린제국조항 대신 미국 배려조항이 적용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일본서적신사의 경우 지난해 2월 자위대가 파견된 이라크를 본문에 전지(戰地·전투지역)라고 신청본에 기술했으나 문부성이 ‘비전투지역’으로 바꾸도록 지시, 이를 수정한 뒤에야 통과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비전투지역이라고 주장한 것을 뒷받침한 검정 지침이었다. taein@seoul.co.kr
  • [韓·日 교과서 전쟁] (2) ‘日우경화’ 대응 전략

    [韓·日 교과서 전쟁] (2) ‘日우경화’ 대응 전략

    2001년 동북아시아를 대립과 분열로 몰아넣었던 후소샤의 역사 및 공민 교과서가 ‘복수’(당시 관계자의 말)를 다짐한 지 4년 만에 훨씬 더 ‘개악’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올해는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연이은 공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맞물려 2001년까지의 교과서 왜곡 문제와는 다른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 프로젝트의 중간과정의 하나라면 문제는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등 일본 우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과서 왜곡 등의 우경화 프로젝트가 ‘정의 대 부정의’,‘전쟁 찬미 대 평화 애호 세력’ 간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이에 따라 국가의 벽을 뛰어넘는 한·중·일 연대의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마 2001년의 ‘역사적 참패’에서 그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선 모든 대결을 국가간의 대치국면으로 이끌어 일본 시민을 일본 국가라는 틀로 재집결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교과서문제를 영토문제와 한 다발로 묶어 국가간 대결로 가져가려는 올해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주효한 감이 있다. 다소 때늦은 감이 있지만, 외교부가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하기로 한 것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분리대응 방식이 교과서문제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면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역사 인식 문제에서는 한·중·일 시민연대의 틀을 만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독도 문제에서는 연대의 틀은 사실 불가능하다. 특히 일본의 시민단체 중에는 영토 문제를 민족주의간의 충돌로 이해하는 단체가 적지 않고, 또 일본 공산당도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인식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 내에 한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줄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면의 대응방식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정·삭제 요구와 함께 개악된 교과서의 채택률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립 중학교 교과서 채택은 전국에 약 570개 있는 채택지구별로 이루어지는데 지구내의 모든 공립 중학교는 교육위원 결정에 따라 동일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 교육위원은 지방자치단체 수장이 임명하고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위원의 정치적 성향이 교과서 채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육위원은 실제로는 선정과정에서 교사 등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성향이 교과서 선정을 좌우하듯 보이지만, 현장 교사의 소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새역모’가 지방의회를 동원해 현장의견 수렴을 금지하는 청원을 내도록 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현장의 소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자매관계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의 교사·학생·학부형에게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의견 개진은 공격이나 비난이 아닌, 설득이 되어야 할 것이고, 자매관계 파기와 같은 방식은 현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독도 문제를 공격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전술적으로 무의미하다. 후소샤 역사교과서와 공민 교과서는 한 묶음이다. 역사 교과서 채택률을 낮추는 것은 동시에 공민 교과서 채택률을 낮추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견 개진은 역사교과서 채택을 낮추는 것에 모아져야 하며, 이는 어디까지나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것일 뿐, 한국과 일본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교과서 문제와는 달리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이상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지속적인 노력에는 많은 품이 드는 법이다. 최근 주유엔 한국 대표부 대사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중견국가들’과 힘을 합쳐 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교적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필자가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같은 발언이 최근의 일본 우경화 프로젝트에 대한 보복 조치의 하나로 나온 것이라면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조치가 과연 유효한 대응방식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대응에는 정당성과 함께 그 실효성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까지를 상정한 대응방식인가에 대해 혼란스럽다. 일본이 전범 국가일 뿐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엔 외교 속에서 펼치고 국제 사회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한국이 반전과 반침략을 국시로 하는 ‘평화의 나라’라는 것을 외국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양이었던 많은 제3세계 국가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이 해방 후 걸어온 길이 과연 그러한가.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반침략과 반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반일과 반공이라는 ‘특정집단에 대한 증오’로 왜소화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결국 일본의 우경화 파동은 우리에게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독도문제는 한국 사회가 ‘평화의 나라’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길고도 험난한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동반하는 것이다.
  • [이도운특파원 워싱턴저널] 미·일동맹 토론회 독도문제 관심사

    4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워싱턴의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미·일 동맹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당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AEI의 댄 블러멘설 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같은 주제의 논문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존재의 이유조차 희미해졌던 미·일 동맹이 테러와의 전쟁과 북한 핵 문제로 활력을 되찾았으며, 이를 토대로 향후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사일 방위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위상을 강화시킨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블러멘설 연구원이 사회를 맡았고 주미 일본대사관의 가네하라 노부카쓰 정무공사가 일본측,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동북아시아 정책분석관이 미국측, 제네바 국제대학원의 랜신 시앙 교수가 중국측 입장을 각각 설명했다. 여기에다 또다른 한 자리를 차지한 토론자는 주미 호주대사관의 앤드루 시어러 정무담당 공사참사관이었다. 동북아 정세를 중심으로 미·일 동맹을 논하는 자리라면 호주가 아니라 당연히 한국의 외교관이 참석했어야 한다는 ‘한국적 상식’과는 동떨어진 구성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아태 지역을 바라보는 미국측, 좀더 범위를 좁히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AEI의 시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한반도 문제가 주요 논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 그 가운데서도 독도 문제가 미·일 동맹 토론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토론자는 발비나 황 연구원이었다. 그녀는 “독도 분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간의 협력이 방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네하라 공사는 일문일답 시간에 질문이 이어지자 “독도는 (2차대전)전쟁 후 한국이 장악했다.”면서 “우리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법정에서 해결하자고 주장해 왔고 한국은 이를 거부해 이 문제로 인한 분쟁이 계속돼 왔다.”고 말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발비나 황 연구원뿐만 아니라 가네하라 공사도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서 줄곧 일본측 명칭인 ‘다케시마’ 대신 독도라고 호칭한 점이다. 토론이 끝난 뒤 그 이유를 묻자 가네하라 공사는 “질문자가 그렇게 (독도라고)물어서 그렇게 답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dawn@seoul.co.kr
  • [日 역사 ‘날조’] ‘후소샤’만 문제가 아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우리 정부나 시민단체들이 왜곡된 교과서의 표본으로 후소샤판 교과서에 대책을 집중한 사이 다른 출판사들의 교과서나 부교재 등도 역사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해 오래 전부터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후소샤 채택률 0.039% 불과 지난 2월 서울신문사 후원 한·일수교 4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0.039%의 채택률에 그친 후소샤 교과서 대신 50% 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한 도쿄교과서를 분석, 도쿄교과서도 후소샤 못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 눈길을 끈 바 있다. 실제로 도쿄서적의 중학교 지리교과서는 지도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했다. 그리고 양국 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는 동해도 일본해(日本海)로 표기하고 있다. 이번에 공민교과서에는 아예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못박았다. ●부교재 역사왜곡 적지않아 아울러 각종 부교재들도 적지 않은 기술이 왜곡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검정교과서를 출판하지 않는 한 출판사의 역사교과서 부교재는 “(백제와 신라의 일부가) 391년 왜(일본 야마토조정)에 정복당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기술했다. 일제 식민지 지배 도구로 활용된 이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정부나 시민단체들의 교과서 대책은 단순히 후소샤 교과서만이 아니라 일본 대다수 중학생이 접하는 도쿄서적이나 오사카서적 등 대형 출판사 교과서와 부교재에도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taein@seoul.co.kr
  • [日 역사 ‘날조’] 日정부 왜 강수 두나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5일 완료된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에 ‘작은 것은 양보하고, 큰 것은 오히려 개악하는’ 꼼수를 썼다는 게 도쿄 외교가의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의 이처럼 강경하고 안하무인격 외교자세는 이미 지난해 예견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일본 외교의 목표를 ‘국익을 지키는 외교’로 못박고 관련 예산도 책정, 힘에 의한 강경외교를 예고한 바 있다. 교과서 검정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국익을 지키는 외교’를 위해 주변국과의 전면적인 충돌까지 각오하는 모양새다. 이는 공민교과서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관련 부분을 확연하게 개악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는 일본 정부의 전략도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교과서 왜곡 문제로만 한정될 경우 일본내 양심세력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지만, 독도 등의 영유권 문제가 부각되면 일본내 양심세력이 정부를 비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도쿄 외교소식통은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영토 문제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한국 정부는 교과서와 영토문제를 분리시키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교묘하게 혼동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패전 60주년인 올해를 ‘패전국·전범국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해로 규정, 작심하고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교과서 문제도 정면돌파하고, 이미 지난해 선언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추진하는 등 경제대국에 이어 ‘정치외교의 대국’도 되겠다는 야심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같은 강경외교 밀어붙이기는 일본 외교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은 현재 한국과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으로 대립하고 있다.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문제로, 미국과는 쇠고기 수입과 주일미군 재편, 유럽연합(EU)과는 중국에 대한 무기금수조치 해제 문제로 맞서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야당을 중심으로 “일본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자민당의 ‘마이웨이 외교’는 제동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투톱 형식으로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 역사 ‘날조’] 우리 정부 대응은

    [日 역사 ‘날조’] 우리 정부 대응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분야별 분리 대응으로 요약된다. 즉 역사 및 공민 교과서에 대해 달리 대처하는 이른바 투 트랙(two-track) 개념이다. 또 교과서 검정 결과가 이제 공식 발표된 만큼 채택률을 낮추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독도·교과서 분리 대응… 2기 한·일 공동연구 지속 역사 교과서는 미흡하지만 ‘일부’ 평가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후소샤 공민(도덕)교과서의 경우 독도전경 사진이 게재됐고 독도 영유권 주장이 실려 있어 가장 크게 ‘개악’됐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독도 관련 왜곡이 실려 있는 공민 교과서는 ‘독도 문제’로 묶어 대응하고, 역사 교과서 문제는 별도로 다뤄 나간다는 게획이다. 분리대응 방침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 비판적인 일본내 지식인들도 영토 문제인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입장과 비슷해, 자칫 양식있는 일본인과 일본내 시민단체의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교과서 왜곡에 대한 세세한 문제점을 정부가 직접 일본측에 제기하지 않고, 학계나 민간에 맡길 방침이다. 채택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 역시 민간 차원에서 하도록 할 계획이다. 한·일 시민단체간 연대활동을 지원하고, 한·일 의원연맹 등 친선단체와 일본과 자매결연한 국내 지자체까지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일본측이 내정간섭 운운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막자는 취지다. ●이달 유엔등서 위안부 발언권 검토 일단 정부는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소환하고 라종일 주일 한국대사를 일본 외무성에 보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정부는 역사인식 재정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노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제2기 한·일 역사 공동연구를 발전·지속시키고, 국제무대에서 교과서 문제를 적극 제기해 나갈 방침이다. 또 이달로 예정된 유엔 인권위 여성 및 아동권리 관련 회의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왜곡 및 식민지 피해문제에 관한 발언권 신청도 적극 검토 중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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