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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진공, 순직선원 유가족에 7000만원 규모 ‘최고 예우’ 지원금 준다

    해진공, 순직선원 유가족에 7000만원 규모 ‘최고 예우’ 지원금 준다

    ‘바다영웅 모심(模心)’ 신규 사업… 1000만원 추모 물품 외 6000만원 예우 지원금 추가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해진공)가 31일 거친 바다에서 해운산업 발전에 헌신한 순직 선원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약속하며 총 7000만원 규모의 신규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한다. 해진공은 지난 29일 부산 태종대공원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열린 ‘제47회 순직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에 참석하며 ‘KOBC 바다영웅 모심(模心)’ 사업을 공식화했다. 이 사업은 순직 선원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는 마음(模心)’으로 기리고 유가족에게 위로와 예우를 다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총 7000만원 규모의 ‘모심’ 사업은 위령제 참석 유가족과 관계자를 위한 1000만원 상당의 추모 물품을 지원하고 이 물품은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를 통해 약 700여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더불어 6000만원 규모의 ‘예우 지원금’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다. 이 지원금은 순직·장해 선원의 유가족 및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선원·항만 종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해진공은 현재 협약기관들과 함께 지원 대상자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올해 47회째를 맞은 순직선원 합동위령제는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등 8개 해양수산 유관기관이 공동 주관했으며 해진공을 비롯해 해양수산부, 부산시 등이 후원했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조국의 해운산업을 위해 헌신하신 순직선원들의 숭고한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해진공은 앞으로도 해양 가족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해양 공동체를 위한 든든한 동반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프리먼 연장 18회 끝내기포…다저스, 400분 혈투 끝에 승리

    프리먼 연장 18회 끝내기포…다저스, 400분 혈투 끝에 승리

    오타니 2홈런·4안타·3타점 대활약프리먼, 사상 첫 2시즌 굿바이 홈런 ‘야구의 신’ 오타니 쇼헤이의 뒤에는 ‘끝내주는 남자’ 프레디 프리먼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가 오타니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최다 9출루와 프리먼의 사상 첫 두 시즌 연속 월드시리즈(WS·7전 4승제) 끝내기 홈런으로 2승(1패)째를 따내며 2년 연속 우승에 다가섰다. 다저스는 2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MLB WS 3차전에서 연장 18회 혈투 끝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6-5로 물리쳤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5시 10분 시작한 경기는 자정 직전인 11시 49분에 끝났다. 이닝으로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장으로 2018년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펼친 WS 3차전(7시간 20분)과 같고, 시간으로는 6시간 39분으로 역대 두 번째로 길었다. 프리먼이 번뜩이기 전까지는 오타니가 경기를 지배했다. 1번 지명타자로 9차례 타석에 들어서 4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볼넷 5개를 얻어 100% 출루했다. 안타 2개는 모두 2루타 장타였고 볼넷 5개 중 4개는 고의 볼넷, 나머지 하나도 사실상 고의 볼넷이었다. 경기는 7회 5-5 균형을 이룬 이후 연장 17회까지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다저스는 선발 타일러 글래스노우를 시작으로 이번 WS를 끝으로 은퇴하는 ‘불멸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를 비롯해 10명의 투수를 쏟아부었다. 토론토 역시 선발 맥스 셔저부터 지난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에릭 라워 등 9명을 동원해 대응했다. 다저스의 영웅은 18회 등장했다.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프리먼이 토론토 9번째 투수 브렌던 리틀의 싱커에 방망이를 돌렸고, 공은 LA의 깊은 밤하늘을 가르며 경기장 가장 먼 중앙 담장을 넘었다.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의 WS 1차전 연장 10회 말 2사 만루 때 역전 그랜드슬램을 퍼 올리며 WS 사상 첫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이 된 프리먼은 이번 홈런으로 ‘WS의 사나이’임을 재차 입증했다. 김혜성은 더블 헤더(하루 2경기)에 맞먹는 혈투에도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벤치를 지켰다. 오타니는 2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WS 4차전 선발 투수와 1번 타자로 나선다. 
  • 9출루 야구의 신 뒤에는 끝내주는 남자가 있었다…다저스, 연장 18회 혈투서 굿바이 승리

    9출루 야구의 신 뒤에는 끝내주는 남자가 있었다…다저스, 연장 18회 혈투서 굿바이 승리

    ‘야구의 신’ 오타니 쇼헤이의 뒤에는 ‘끝내주는 남자’ 프레디 프리먼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는 오타니의 포스트시즌 최다 9출루와 프리먼의 사상 첫 두 시즌 연속 월드시리즈(WS·7전 4승제) 끝내기 홈런으로 시리즈 2승(1패)째를 따내며 2년 연속 우승에 다가섰다. 다저스는 2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WS 3차전에서 연장 18회 혈투 끝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6-5로 물리쳤다. 이닝으로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장 18이닝(2018 WS 3차·7시간 20분) 동률, 시간으로는 6시간 39분으로 역대 두 번째로 길었다. 프리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타니가 경기를 지배했다. 1번 지명타자로 9번 타석에 들어서 4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볼넷 5개를 얻어 100% 출루했다. 안타 2개는 모두 2루타 장타였고 볼넷 5개 중 4개는 자동 고의 볼넷, 나머지 하나도 사실상 고의 볼넷이었다. 경기는 정규 7회까지 5-5 균형을 맞춘 이후 연장 17회까지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다저스는 선발 타일러 글래스노우를 시작으로 이번 WS를 끝으로 은퇴하는 ‘불멸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를 비롯해 10명의 투수를 쏟아부었다. 토론토 역시 선발 맥스 셔저부터 지난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한 에릭 라워 등 9명의 투수를 동원해 대응했다. 다저스의 영웅은 18회에 등장했다.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프리먼이 토론토 9번째 투수 브렌던 리틀의 싱커에 방망이를 돌렸고, 공은 LA의 깊은 밤하늘을 가르며 경기장 가장 먼 중앙 담장을 넘었다.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 WS 1차전 연장 10회 말 2사 만루 때 역전 그랜드슬램을 퍼 올리며 WS 사상 첫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이 된 프리먼은 이번 홈런으로 ‘WS의 사나이’임을 입증했다. 김혜성은 더블헤더에 맞먹는 혈투에도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벤치를 지켰다. 오타니는 2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WS 4차전 선발 투수와 1번 타자로 나선다. 오타니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제가 이룬 성과는 경기 중에 일어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다음 경기를 치르는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 조규성, 부상 회복 뒤 첫 풀타임 뛰며 4호골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영웅 조규성(미트윌란)이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새달 A매치를 앞두고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조규성을 다시 등용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조규성은 27일(한국시간) 몬야사 파크에서 열린 2025~26 덴마크 프로축구 수페르리가 13라운드 프레데리시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앞서던 전반 34분 추가 골을 넣었다. 미트윌란은 이날 전반 29분 프란쿨리노 디유, 후반 5분 미켈 고고르자, 8분 주니오르 브루마두가 연달아 골을 넣으며 4-0으로 이겼다. 최근 2연승을 포함해 5경기 연속 무패(4승1무) 행진을 한 미트윌란은 승점 28점(8승4무1패)을 쌓아 2위에 자리했다. 전반 초반부터 최전방에서 득점 기회를 노린 조규성은 데닐 카스티요의 크로스를 받은 뒤 수비수를 떨쳐내고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지난 9월 덴마크컵 3라운드에서 시즌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 조규성은 시즌 4호 골(정규 3골·컵 1골)을 기록했다. 한국 축구 팬으로서 더 반가운 소식은 조규성이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2023~24시즌 종료 뒤 무릎 수술을 받았던 조규성은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1년 넘는 재활 끝에 지난 8월 수페르리가 5라운드를 통해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왔다. 국가대표 수비수 이한범 역시 이날 스리백의 중앙 수비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하며 무실점 승리를 거들었다.
  • 힙지로를 움직인 1500년 전의 영웅, 을지문덕

    힙지로를 움직인 1500년 전의 영웅, 을지문덕

    607년, 수나라 양제는 북방 민족 돌궐에게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며 대군을 이끌고 변경 지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수나라는 고구려 사신을 마주쳤다. 당시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수나라와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양제는 돌궐이 고구려와 연합하여 수나라에 저항할 수 있다는 불길함을 느꼈고 곧바로 고구려 사신에게 충성 맹세를 가장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고구려왕이 직접 찾아와 조공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하라. 이를 어길 시 돌궐의 군대를 동원해 토벌하겠다.” 양제의 속셈을 간파한 고구려가 단호히 이를 거부하자 그는 고구려 정벌을 결심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징발에 나섰다. 징집한 군인만 약 113만명, 군량 운반 인원까지 합치면 약 200만명에 달하는 막강한 군세였다. 살수대첩, 벼랑 끝에서 역사를 쓰다 수나라 군사들은 요동성 공격에 실패했고 평양성 함락을 명 받은 수로군 총사령관 ‘내호아’는 육로군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 공격을 감행했다가 고구려군의 기습에 걸려 대패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제는 전군에게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평양으로 진격하라고 명했다. 수나라군은 압록강을 건넜지만, 계속된 전투와 장거리 행군으로 몹시 지쳐 있었다. 이 사실을 간파한 고구려군은 싸움을 걸고 후퇴하는 전술로 수나라군의 체력을 철저히 소모시켰다. 마침내 살수(薩水·청천강)에 이르렀을 때, 수나라군의 체력은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이때를 노린 을지문덕 장군은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 군대를 물리면 고구려왕이 황제의 요구 사항을 따르겠다는 거짓 항복을 제안했다. 군사들의 피로와 거짓 제안에 속은 양제는 철수를 명했다.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절반 정도 건널 무렵, 을지문덕 장군이 이끈 고구려군이 급습했다. 수나라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살수를 건너온 30만명의 군사 가운데 살아 돌아간 이는 약 3000명뿐이었다. 역사는 이 승리를 ‘살수대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수나라는 무리한 전쟁 준비로 인해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국운이 기울었고 결국 618년 멸망했다. 구리개에서 황금정으로: 을지로의 수난사 오늘날 개성 넘치는 카페, 바,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젊은 세대들에게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도로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인쇄소와 철물점, 공구상가 등이 밀집한 ‘도심 속 공단’을 형성했던 곳이다. 이 길의 역사는 외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난의 역사였다. 조선시대 이곳의 이름은 ‘구리개’였다. 황토로 된 언덕이 햇빛을 받아 구리처럼 빛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후기까지 한약방들이 밀집한 약재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명성황후 일파는 군란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청나라 군대와 함께 약 40여명의 중국 상인이 들어왔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청나라 상인들은 을지로와 명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고, 1883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로 이 일대는 화교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이곳의 이름을 ‘황금정’(黃金町·고가네마치)으로 바꿨다. 많은 일본인이 이곳에 거주하며 서울의 상권을 장악했으며, 특히 일제는 현재 KEB하나은행 본점 자리에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는 경제 침략의 거점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웠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乙支路)으로 부활하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서울시장 김형만을 중심으로 ‘가로명 제정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 목적은 명확했다. 일제가 만든 일본식 지명을 삭제하고 민족적 정체성이 담긴 이름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과거 ‘구리개’이자 ‘황금정’이었던 이 길에 ‘을지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조선 후기 청나라 상인들에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장악당했던 수난의 역사 위에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이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외부 세력의 기세를 꺾고, 민족의 자주 독립 정신과 기상을 드높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위원회는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최대 중심지였던 ‘본정’을 일본군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빌려 ‘충무로’로, 일본이 공사관을 세웠던 서대문 일대 ‘죽첨정’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자결한 민영환의 아호를 따 ‘충정로’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화려한 카페와 트렌디한 감성으로 채워진 ‘힙지로’의 뒷골목에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 영웅의 이름과 정신이 1500년의 시간을 넘어 굳건히 새겨져 있다. 이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잠시 힙한 감성을 내려놓고 그 이름에 담긴 숭고한 정신과 역사의 무게를 느껴볼 필요가 있다.
  • 힙지로를 움직인 1500년 전의 영웅, 을지문덕 [한ZOOM]

    힙지로를 움직인 1500년 전의 영웅, 을지문덕 [한ZOOM]

    607년, 수나라 양제는 북방 민족 돌궐에게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며 대군을 이끌고 변경 지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수나라는 고구려 사신을 마주쳤다. 당시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수나라와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양제는 돌궐이 고구려와 연합하여 수나라에 저항할 수 있다는 불길함을 느꼈고 곧바로 고구려 사신에게 충성 맹세를 가장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고구려왕이 직접 찾아와 조공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하라. 이를 어길 시 돌궐의 군대를 동원해 토벌하겠다.” 양제의 속셈을 간파한 고구려가 단호히 이를 거부하자 그는 고구려 정벌을 결심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징발에 나섰다. 징집한 군인만 약 113만명, 군량 운반 인원까지 합치면 약 200만명에 달하는 막강한 군세였다. 살수대첩, 벼랑 끝에서 역사를 쓰다 수나라 군사들은 요동성 공격에 실패했고 평양성 함락을 명 받은 수로군 총사령관 ‘내호아’는 육로군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 공격을 감행했다가 고구려군의 기습에 걸려 대패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제는 전군에게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평양으로 진격하라고 명했다. 수나라군은 압록강을 건넜지만, 계속된 전투와 장거리 행군으로 몹시 지쳐 있었다. 이 사실을 간파한 고구려군은 싸움을 걸고 후퇴하는 전술로 수나라군의 체력을 철저히 소모시켰다. 마침내 살수(薩水·청천강)에 이르렀을 때, 수나라군의 체력은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이때를 노린 을지문덕 장군은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 군대를 물리면 고구려왕이 황제의 요구 사항을 따르겠다는 거짓 항복을 제안했다. 군사들의 피로와 거짓 제안에 속은 양제는 철수를 명했다.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절반 정도 건널 무렵, 을지문덕 장군이 이끈 고구려군이 급습했다. 수나라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살수를 건너온 30만명의 군사 가운데 살아 돌아간 이는 약 3000명뿐이었다. 역사는 이 승리를 ‘살수대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수나라는 무리한 전쟁 준비로 인해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국운이 기울었고 결국 618년 멸망했다. 구리개에서 황금정으로: 을지로의 수난사 오늘날 개성 넘치는 카페, 바,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젊은 세대들에게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을지로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인쇄소와 철물점, 공구상가 등이 밀집한 ‘도심 속 공단’을 형성했던 곳이다. 이 길의 역사는 외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난의 역사였다. 조선시대 이곳의 이름은 ‘구리개’였다. 황토로 된 언덕이 햇빛을 받아 구리처럼 빛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후기까지 한약방들이 밀집한 약재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명성황후 일파는 군란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청나라 군대와 함께 약 40여명의 중국 상인이 들어왔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청나라 상인들은 을지로와 명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고, 1883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로 이 일대는 화교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이곳의 이름을 ‘황금정’(黃金町·고가네마치)으로 바꿨다. 많은 일본인이 이곳에 거주하며 서울의 상권을 장악했으며, 특히 일제는 현재 KEB하나은행 본점 자리에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는 경제 침략의 거점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웠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乙支路)으로 부활하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서울시장 김형만을 중심으로 ‘가로명 제정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 목적은 명확했다. 일제가 만든 일본식 지명을 삭제하고 민족적 정체성이 담긴 이름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과거 ‘구리개’이자 ‘황금정’이었던 이 길에 ‘을지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조선 후기 청나라 상인들에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장악당했던 수난의 역사 위에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이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외부 세력의 기세를 꺾고, 민족의 자주 독립 정신과 기상을 드높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위원회는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최대 중심지였던 ‘본정’을 일본군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빌려 ‘충무로’로, 일본이 공사관을 세웠던 서대문 일대 ‘죽첨정’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자결한 민영환의 아호를 따 ‘충정로’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화려한 카페와 트렌디한 감성으로 채워진 ‘힙지로’의 뒷골목에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 영웅의 이름과 정신이 1500년의 시간을 넘어 굳건히 새겨져 있다. 이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잠시 힙한 감성을 내려놓고 그 이름에 담긴 숭고한 정신과 역사의 무게를 느껴볼 필요가 있다.
  • 조규성 ‘완벽 부활’, 첫 풀타임 출전에 시즌 4호골까지

    조규성 ‘완벽 부활’, 첫 풀타임 출전에 시즌 4호골까지

    카타르 월드컵의 영웅 조규성이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다음달 A매치를 앞두고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조규성을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조규성(미트윌란)은 27일(한국시간) 덴마크 프레데리시아 몬야사 파크에서 열린 2025~26 수페르리가 13라운드 프레데리시아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앞서가던 전반 34분 골을 넣었다. 미트윌란은 이날 전반 29분과 34분, 후반 5분과 8분 연달아 골을 넣으며 프레데리시아를 4-0으로 이겼다. 최근 2연승을 포함해 5경기 연속 무패(4승 1무)를 이어갔다. 2위(승점 28)를 이어간 미트윌란은 선두 오르후스(승점 30)를 바짝 추격했다. 전반 초반부터 전방에서 득점 기회를 노린 조규성은 전반 34분 데닐 카스티요가 보내준 크로스를 받아 수비수를 떨쳐내고 오른발 발리슛으로 꽂아 넣었다. 지난 9월 18일 2025~26 덴마크축구협회컵(덴마크컵) 3라운드에서 시즌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 조규성은 이날 시즌 4호 골(정규리그 3골·컵대회 1골)까지 신고했다. 시즌 4호골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풀타임 출전이다. 이날 조규성은 2023~24시즌을 마친 뒤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생긴 합병증으로 1년 넘는 재활 끝에 지난 8월17일 수페르리가 5라운드에 복귀한 뒤 처음으로 풀타임을 뛰었다. 국가대표 수비수 이한범 역시 이날 스리백의 중앙 수비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하며 무실점 승리에 이바지했다.
  •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구약 성서 ‘유디트’ 황홀경 재해석여성 탐구해 성적 본능 해방 묘사‘빈 분리파’ 만들고 자유 예술 주장반짝이는 금으로 ‘사랑’ 감정 강조그림 한 점 위해 수백 장 도면 남겨 실험 되풀이… ‘노동자 예술가’ 자칭정사각형 화면, 완벽한 균형·조화 시선 분산하며 자연 속 명상 유도황금 양식을 창조한 최고의 장식 화가, 여성의 신체를 통해 에로티시즘을 회화로 구현한 실험가, 아카데미의 규범에 맞서 예술의 자유를 선언한 혁명가. 이 모든 수식어는 오스트리아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가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그는 자화상 한 점 없이 평생을 보냈고 자신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을 “배멀미처럼 두렵다”고 말할 만큼 꺼렸다. 그래서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말들은 그의 황금빛 그림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이제 클림트의 짧은 말들을 단서로 삼아 캔버스 뒤에 숨겨진 그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첫 번째 명언 “나는 작품의 대상으로서의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을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말은 예술가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내세웠던 낭만주의 전통과의 결별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실제로 단 한 점의 자화상도 남기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주의 깊게 보라”고 말했을 만큼 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떼어내 여성이라는 대상에게로 향하게 했다. 클림트는 여성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투사하고 반영해 낸 예술가였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여성에 대한 탐구는 미적 취향을 넘어 사랑과 죽음, 욕망과 불안, 생명의 원초적 힘을 탐색하는 통로였다. 그 탐구심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 바로 ‘유디트 I’이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디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그의 목을 벤 여성 영웅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용감하고 도덕적인 구원의 상징으로 그렸다. 하지만 클림트의 작품에서 유디트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탄생한다. 금빛 장식에 감싸인 반나체의 몸에 살짝 벌어진 입술, 반쯤 감긴 눈으로 관객을 유혹하듯 바라본다. 한 손에 남자의 잘린 머리를 쥐고 있지만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공포도, 죄의식도 없다. 적장을 처단한 후의 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직후의 쾌락과 성적 황홀감, 승리감이 가득하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사랑과 욕망을 의미하는 에로스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타나토스를 한 여성 안에 결합시켰다. 황금빛 장식과 노출된 유디트의 가슴은 신성함과 에로티시즘, 영성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당시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성스러운 유디트를 위험한 매력을 지닌 요부, 즉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팜파탈로 그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영화(榮華)의 끝자락에서 급속히 무너져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 빈이 겪었던 시대적 열병을 담아낸 사회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당시 빈 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속으로는 붕괴 직전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민들은 보수적인 관습에 짓눌려 있었고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됐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 속 성적 욕망이 인간 행동의 핵심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클림트의 ‘유디트1’이 탄생한다. 그는 유디트의 몸을 빌려 억압된 본능의 해방을 외쳤고 여성의 관능미를 빌려 세기말의 불안과 욕망을 그려냈다. 유디트의 손에 들린 잘린 머리는 남성적 힘의 몰락을, 그녀의 관능미는 여성적 힘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말해 준다.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의 초상은 그가 남긴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자화상이라고. 두 번째 명언 “왜 우리는 과거의 역사만을 소재로 삼아야 하는가? 왜 화풍은 옛 전통을 따라야만 하는가.” 이 말은 클림트가 보수적인 미술 제도권에 던진 공개적인 도전장이었다. 당시 빈의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성서와 신화, 역사적 주제만이 고상한 예술로 인정받았고 전통적 사실주의 화풍을 따르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졌다. 새로운 시도나 개성은 억압받았다. 클림트는 낡은 규범에 정면으로 맞섰고 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1897년,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보수적인 미술가협회를 탈퇴한 뒤 새로운 전위 예술 그룹인 빈 분리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된다. 빈 분리파 전시관 입구에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장이 황금으로 새겨진다. 낡은 전통이나 권위로부터 예술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강력한 독립선언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키스’(1907~1908)는 과거의 틀을 깨는 클림트 예술의 결정체로 탄생한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은 저항 정신보다는 사랑의 황홀경을 찬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제와 표현 방식이 혁신적이다. 클림트는 ‘키스’에서 아카데미가 요구하는 과거의 서사를 과감히 배제했다. 대신 그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주제로 삼았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 작품은 전통과 결별한다. 고전 회화에서 익숙하게 사용했던 원근법, 명암법, 사실적인 인물 묘사를 과감히 버렸다. 대신 화면을 채우는 건 장식적 패턴, 금박, 평면적 구성이다. 비잔틴 모자이크, 일본 판화, 상징주의까지 혼합한 새로운 화풍이다. 그가 황금 양식이라는 혁신적 화풍을 창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클림트는 금세공사였던 아버지가 금박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반짝이는 재료에 대한 친밀감이 그의 예술적 감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03년 라벤나 여행에서 찾아온다. 그는 산비탈레 성당에서 중세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를 마주하게 된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벽화들은 클림트에게 강렬한 영감을 줬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금속 장인의 감각, 비잔틴 미술에서 발견한 신비로운 상징성과 장식성, 동시대적 주제의식이 결합해 황금 양식이 태어난 것이다. 클림트는 중세 종교화에서 성인(聖人)을 그릴 때 사용하던 신성한 재료인 금을 동시대 연인들의 입맞춤이라는 세속적인 주제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랑의 순간을 종교적 의식처럼 영원하고 신성한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다. 세 번째 명언 “나를 볼 때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 수많은 여성들과의 염문, 미술의 혁명을 주도한 반항아인 클림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건 뜻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클림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다. 그는 자신을 천재예술가가 아니라 매일 작업에 몰두하는 성실한 장인으로 정의했다. 이런 장인 정신은 ‘스토클레 프리즈를 위한 도안-생명의 나무’③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벨기에의 부유한 사업가 스토클레를 위해 지어진 저택의 식당 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 모자이크 중 한 점이다. 클림트는 ‘스토클레 프리즈’ 작업을 위해 수백 장의 스케치와 세밀한 도면을 남겼다. “이 부분은 자개로”, “이 장식은 밝은 금색으로” 같은 재료별 구체적인 지시까지 직접 작성했다. ‘스토클레 프리즈’의 중심 이미지인 생명의 나무를 보면 황금빛 나무의 나선형 가지와 가지를 감싸는 기하학 문양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장면은 수많은 시도와 수정,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는 종이를 오려 붙이는 수작업인 콜라주와 은박과 금박을 겹겹이 쌓는 실험을 하며 세부 묘사를 하나하나 완성했다. 무늬, 색감, 소용돌이 문양의 방향을 위해 수십 번 손을 움직이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반복해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화려한 금빛 화면의 이면에는 치열한 반복의 시간과 수십 번의 손길이 깃든 장인의 손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스토클레 프리즈’는 그가 스스로를 노동자 예술가라 부른 이유를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클림트를 화려한 인물화의 대가로 기억하지만 그의 예술 세계에는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 있다. 바로 그가 여름마다 머물렀던 아름다운 아터제 호수에서 그린 풍경화들이다. 이 풍경화들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정사각형은 묘사 대상을 평화로운 분위기로 잠길 수 있게 만드는 최적의 형식이다. 정사각형을 통해 그림은 우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배나무’는 그의 생각이 풍경화에 어떻게 구현됐는지 잘 보여 준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사각형의 화면이다. 클림트는 의도적으로 이 형식을 선택했다. 가로나 세로로 긴 직사각형은 방향성을 암시하지만 정사각형은 상하좌우 어느 쪽도 강조하지 않는다. 관람자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림 안에 머물게 만든다. 화면 전체는 무성한 배나무의 잎과 꽃, 햇빛에 반짝이는 자연의 입자들로 가득 차 있다. 현실세계의 생명력 넘치는 자연 풍경이 정사각형이라는 고요한 틀 안에서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호흡과 생명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클림트는 정사각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연을 명상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클림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데생을 할 줄 안다. 나도 그렇다고 믿고 다른 몇몇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말은 세기의 걸작을 탄생시킨 화가가 평생 안고 살았던 두려움과 한계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 끝없는 자기 회의가 황금보다 더 빛나는 클림트의 예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수출 안 되면 죽느냐 사느냐 직면… ‘환율 주권’ 정책의 중심 돼야” [월요인터뷰]

    “수출 안 되면 죽느냐 사느냐 직면… ‘환율 주권’ 정책의 중심 돼야” [월요인터뷰]

    1997·2008년 위기 뒤 얻은 교훈관세·통화전쟁 때 아군 희생 불가피환율·경상수지 흑자로 힘 쌓아놔야세율 인하·R&D 투자로 고용 확대를한미 관세협상 전망은美 전 세계 상대, 우리만 봐 주지 않아통화스와프 체결 때도 공정을 어필트럼프 철학 이해도 따라 협상 좌우부동산 폭등 근본 해법은종부세 등 보유세는 근거 없는 몰수그린벨트 전면 해제로 공급 늘리고교육 개혁 통해 집값 뛴 원인 해소를최근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구조 고착화,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 부채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 속에 놓여 있다. 한미 무역 협상과 그로 인한 환율 급등 우려 등 대외 경제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부영건설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강만수(80)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차례의 국가적 위기 당시 한국 경제정책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로 공유할 경험이 적지 않다.강 전 장관은 공직 초기에는 부가가치세 도입과 금융실명제 실무를 주도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재직하면서는 금융감독·중앙은행 제도 개편 등에 참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의 대선 경제공약인 ‘747(연평균 7% 성장, 10년 뒤 1인당 GDP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공약’을 설계해 ‘MB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다.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 확대 재정, 고환율 정책 등을 추진하며 성장 중심의 경제 철학을 펴 나갔지만 동시에 ‘부자 감세’, ‘강(强)만수노믹스’ 등 비판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은행, 금융위원회와 금리·환율 노선 갈등을 겪었고 이후 산업은행장 재직 시 불거진 사법적 고초로 4년 8개월간의 감옥살이를 겪었다. 2022년부터 소설가로 변신해 지난 8월 자전적 소설집 ‘최후진술’을 출간했다. 강 전 장관은 지난 21일 부영빌딩 14층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대외 균형, 즉 경상수지 흑자가 없으면 경제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다”면서 환율 주권을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폭등 문제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근거가 없는 몰수 제도”라고 비판한 뒤 “세율을 인하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그린벨트 지역을 전면 해제하며 도시 농지까지 개발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두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얻은 핵심 교훈은.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확인한 것은 환율 주권의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이나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처럼 환율을 시장에만 맡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환율은 주권 행사로 봐야 한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대외 균형, 즉 경상수지 흑자가 없으면 경제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다. 투기를 노리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위기는 올 수밖에 없다. 위기가 오면 관세전쟁과 통화전쟁 두 가지가 일어나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쌓아야 하며 환율 주권과 경상수지 흑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물가가 폭등하고 서민 경제에 타격을 줬다는 비판이 컸는데. “(목소리가 커지며) 전쟁은 아군의 희생 없이 수행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염두에 둔 것이 ‘야전사령관은 야전병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하의 희생을 너무 염두에 두면 전쟁 자체가 수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계비 지출 증가나 해외 송금액 증가 같은 고통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수출이 안 되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직면한다. 수출의 결정적 변수는 환율이며, 따라서 모든 정책의 중심은 환율이 돼야 한다.” -‘위기보다 한은 및 경제학자들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고 했던 말의 의미는. “내 정책에 가장 반대한 세력은 한은과 국내 경제학자들이었다. 원래 외국과의 전쟁보다 내전이 더 잔인한 법이다. 한은법 제1조의 목적이 물가 안정에 있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고금리를 선호하며 환율이 떨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경제 전체를 고려하는 정부 입장과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경제학 박사 118명이 내 정책이 틀렸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학은 기술적으로 대외 부채에 문제가 없고 환율이 절상돼야 유리한 경우가 많아 우리와 근본적으로 개념이 다르다. 당시 ‘정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한은법 제92조를 들어 명확히 했다.” -현재 한은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보나. “현재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도 한은이 저성장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통화량(M2)을 보면, 과거 재무부 국장 시절(1988~199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화량이 40%였는데 지금은 GDP 대비 180%가 됐다. 세계적으로 통화가 과잉 공급돼 있다는 의미다. GDP가 100인데 돈이 180이라면, 나머지 80%는 투기 거품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제조업 등 산업 대신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주택 가격 폭등이 일어난 것이다.” -‘증세를 위한 감률’ 정책을 주장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동서고금의 재무부 장관은 눈만 뜨면 어떻게 해야 세금을 많이 받느냐를 궁리하는 자리다. 아무리 세율을 올려 봐야 세입은 GDP의 20%를 넘기지 못한다. 세율을 올리면 결국 경제가 쪼그라들고 세금도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감률 정책은 세금을 많이 받기 위한 방법이다. 세금을 내린 만큼 기업은 투자 재원이, 개인은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 단기적으로는 차질이 있을 수 있으나, 정권과 상관없이 감률 정책을 쓰는 것이 옳은 정책이다.” -2008년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300억 달러 규모)이 회자된다. 한미 무역 협상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외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많다. 우리는 미국을 6·25전쟁 때 피를 나눈 우방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협상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정을 봐 주면 외교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당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할 때도 결정권을 쥔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을 찾아가 설득했다. ‘너희(미국)를 위해서 통화 스와프를 하자. 너희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는데,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호주에는 통화 스와프를 해 주고 우리에게 안 해 주는 것은 페어(fair)하지 못하다’고 했더니, 가이트너와 루빈이 이 점을 인정해 빠르게 협상이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도 철학과 원칙은 분명히 있는 걸로 보인다. 그 철학과 원칙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협상을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해 ‘세금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 폭력이며,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될 몰수 제도’라고 비판했는데. “종부세는 조세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첫째, 보유세는 지방정부의 서비스 비용(Service Charge)이기 때문에 지방세가 돼야 한다. 둘째, 보유세는 중과하면 안 되고 유통세(거래세)는 중과해도 된다는 것이 재정학 이론이다. 셋째, 종부세는 이름부터 잘못됐다. ‘종합부동산세’가 아니라 ‘고가 아파트세’나 다름없다.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땅이나 빌딩, 주식, 미술품 같은 다른 재산은 왜 빼나. 월급쟁이가 평생 벌어 아파트 한 채 샀는데, 정부 실정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 것을 가지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몰수 제도에 가깝다. 종부세는 조세 원칙과 전혀 맞지 않는 정치 폭력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부동산 폭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부동산은 글자 그대로 부동(不動)해야 하며, 유통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 해결책은 정부가 책임지고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핵심은 택지 공급인데, 그린벨트의 비(非)그린 지역을 전면 해제하고 도시에 있는 농지까지 개발해야 한다. 그린벨트라는 건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잘못된 제도다. 젊은 청년들을 위해서는 내가 ‘보금자리 주택’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처럼, 정부가 주문 주택 식으로 필요한 위치와 평형을 책임지고 지어 줘야 한다. 또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적했듯이 고교 평준화 폐지 등 교육 개혁을 통해 주택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타개하려면. “저성장은 투자가 안 돼서 발생한다. 투자를 확대하려면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세율을 인하하고 R&D에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내가 장관 시절 가장 과감한 정책을 했던 것이 R&D 지원이다. 예산의 13번째였던 R&D 항목을 첫 번째로 올리고, 법인세를 세 번 감면해 주는 ‘삼중 공제’를 단행했다. R&D 투자 준비금(매출액의 3%까지)을 비용으로 인정해 과세 표준에서 빼 주고, 투자 금액의 10%를 세액공제하며, 인건비까지 포함한 지출에 대해 25%를 또 세액공제해 줘 실질적으로 면제하는 제도였다. 이 정책 덕분에 기술 중견기업은 세금을 거의 안 내고 R&D를 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다. 이 제도가 2012년 한국이 GDP 대비 R&D 투자율 4.02%로 세계 1위국이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 관료의 상징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경제 관료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중에 영합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표를 위해 대중에 영합할 수밖에 없으므로, 행정 관료가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한다. 공직에 있으면서 전 국민이 반대하는 부가가치세 도입 같은 일을 할 때 괴로웠으나,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진행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도 민중을 따라가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했다. 학자도, 언론도 아닌 관료가 중심을 잡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MB노믹스’ 설계한 초대 장관… 4년 8개월 옥고 뒤 자전적 소설 출간도 ●강만수 전 장관은 1945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경남고, 서울대 법학과, 뉴욕대 대학원(경제학 석사)을 졸업한 뒤 1970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85~1988년 주미 한국대사관 재무관(뉴욕 주재)을 역임했다. 재무부에서 부가가치세 신설과 금융실명제 도입 실무를 담당하며 일찌감치 핵심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IMF 구제금융 협상과 구조 개혁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진두지휘했다. 퇴임 후 2011년 3월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인 회사 특혜 외압’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021년 가석방된 후 소설가로 등단해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저서들을 출간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가 변한다…기후위기 대응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가 변한다…기후위기 대응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도·제주도도시재생지원센터 주최 ‘제주도시포럼 2025’ 기후재난시대의 대응법을 묻다“80세 이상 어르신은 폭염문자를 보지 않습니다. 폭염이 왔는지조차 모릅니다. 사회취약계층이 기후위기 속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기후와 도시재생의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도시재생의 방향을 논의하는 목소리가 제주에서 나왔다. 제주도와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지난 23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를 주제로 ‘제주도시포럼 2025’ 생활워크숍을 열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도시재생을 단순한 공간정비 사업이 아닌 기후재난 시대의 생존 인프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희철 센터장 “기후·도시재생 메타 협의체 설립” 제안…배보람 부소장 “불평등이 곧 재난”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장은 “부서별 대응은 대부분 재난 이후 임시대책에 그치고 있다”며 “주민·행정·전문가·민간이 함께 설계·집행·평가하는 다층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리적 복구만으로는 회복력이 생기지 않는다며 ‘복원→재생→재창조’로의 발전단계 전환을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또 “제주시와 고산은 강수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침수 피해가 잦다”며 “이는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라 도시 구조의 회복력 부족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기후·에너지 부서, 재난안전기관,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기후·도시재생 메타 협의체’ 설립을 제안했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기후위기는 기후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그는 “회복력이 낮은 집단은 기후재난의 충격을 더 오래, 더 깊게 겪는다”며 “기후정책과 돌봄정책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부소장은 또 “불평등은 곧 재난이 된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 당시 부유층이 사설소방대를 동원해 피해를 줄인 사례, ‘탄소배출 1위 유명인’으로 지목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도넛 경제’를 제시했다. “지구의 한계 안에서 순환·재생·분배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철 한국전력거래소 제주지사 실장은 “제주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474만t을 재생에너지와 청정수소로 전환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에 나선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관광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에너지 소비를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며 “농업과 1차산업의 강점을 살려야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 나해문 원장 “탄소 줄이려면 소비지향적인 우리 살의 방식 먼저 변해야 한다”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나해문 원장은 이날 “탄소중립이 탄소가 줄어드는 것인가”고 반문한 뒤 “탄소가 줄지 않고 늘어난다는 것은 탄소중립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방증”이라며 “기후위기의 중요한 부분인 임계점, 즉 어느 온도 이상 올라가면 기후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기후재앙으로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탄소를 줄이려면 탄소중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서 “소비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만 탄소를 줄일 수 있고 그래야만 기후에 대응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재생에너지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탄소중립 그 자체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좌장을 맡은 문만석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이사장도 같은 맥락에서 “하버드대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가 말한 ‘3.5% 법칙’을 기억하자”며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가 변한다. 기후위기 대응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제주도시포럼 2025’는 10월 1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제주시 혼디누림터 등 도내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현주현 15분도시추진단장은 “이번 제주도시포럼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아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www.jejuregen.org) ‘제주도시포럼 2025’ 배너 또는 전화문의(064-727-063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한 발짝! 느린 그곳, 어두울수록 빛나고… 깊고 높은 파도 아래 예술의 영감 숨 쉬네

    한 발짝! 느린 그곳, 어두울수록 빛나고… 깊고 높은 파도 아래 예술의 영감 숨 쉬네

    충북 청주가 불렀다. 그 재미없다는 ‘노잼 도시’가 말이다. 정확히는 온갖 인연이 손짓했고, 그들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다, 블랙홀처럼 ‘훅~’ 빨려들었다. 이번 여정에선 예술로 청주를 다시 본다. 단언컨대 당장 행장을 꾸리지 않는다면, 이는 당신에게 명백히 손해다. 이즈음에 한해, 청주에선 예술이 단풍보다 낫다. 광복 80주년의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초의 떠들썩함은 많이 가라앉았다. 79주년을 지나, 81주년을 앞둔 일상의 한 해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래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이 퍽 많았다는 걸 확인한 건 큰 수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 중 몇몇을 다시 청주에서 만나게 된다. 청주는 사실 예술 불모지(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들어서고 ‘청주의 테이트 모던’이라 할 문화제조창 등 이런저런 문화 시설들이 상승 작용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그야말로 폭풍 성장하는 중이다. 옛날 소 기르던 종축장 터에 머지않아 아트센터가 들어서고 나면 아마 나라 안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문화예술 도시로 발돋움하지 싶다. ●日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진품 전시 청주의 첫 번째 부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도’란 상찬을 받는 일본의 목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였다. 그것도 진품이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온다는 소식이었다. 한데 왜 야마나시와 청주일까. 충북과 야마나시현은 1992년에 자매도시 결연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야마나시현 전시회는 그 우의의 연장선에 있는 교류전 행사다. 야마나시는 후지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했다. 흔히 ‘후지의 나라’라고 부른다. 청주 전시회 이름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 특별전’이다. 일본의 보물 격인 중요문화재 13점 등 문화유산 100여점이 전시 중이다. 전시 하이라이트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대표작이다. 18세기 에도 시대에 성행한 회화 장르인 우키요에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일본 미술의 상징이 된 데 이어 바다 건너 유럽까지 전해지면서 빈센트 반 고흐 등의 미술가, 클로드 드뷔시 등 인상주의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안겼다. 우키요에는 애초 유럽으로 수출되는 일본 도자기의 포장재였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이 ‘포장재’의 진가를 알아본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러선 ‘자포니즘’이란 문화적 경향으로까지 확산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진품은 소장처인 야마나시현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딱 3주만 공개할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작품이다. 청주는 물론 한국으로 바깥나들이를 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앞서 9월 4~14일 공개됐고, 전시 말미인 12월 26∼28일에 또 한 번 특별 공개된다. 현재는 복제품이 전시 중이다. 박물관 건물 자체도 볼거리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이 설계했다. 전시물만 볼 게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보는 여유도 가지시길.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형제’의 숨결 두 번째 부름은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형제였다. 청주박물관 전시장 한쪽에 그들을 조명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됐다. 아사카와 형제는 일제강점기 조선 연구에 인생을 바치고, 그만큼 조선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진정한 ‘한류 팬’이다. 굳이 구분한다면, 형인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는 조선의 도자기, 동생 다쿠미(1891~1931)는 공예와 소반, 식목사업 등에 헌신했다. 먼저 만난 이는 동생 다쿠미였다. 몇 해 전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공원에서다. 흔히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렸던 곳. 유관순 열사 등 독립지사와 화가 이중섭 등 유명인 다수가 잠든 이곳에 함께 묻힌 일본인이 두 명이다. 그중 한 명이 다쿠미였다. 다쿠미가 노리타카와 친형제라는 걸 알게 해 준 건 최근 간행된 ‘이타미 준 나의 건축’(마음산책)이란 책이다.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이 생전에 남긴 글을 딸 유이화가 엮었다. 이 책에 건축가이자 민화연구자였던 조자용 등 청주행(보은 포함)을 ‘부추긴’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아사카와 형제는 그중 하나였다. 아사카와 형제는 야마나시현 후쿠토시에서 태어났다. 형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의 신(神)’이라 불린다. 1913년 경성의 소학교에 미술교사로 온 그는 1946년 돌아갈 때까지 33년 동안 조선 도자 연구에 몰두했다. 이듬해엔 그의 권유로 동생 다쿠미가 조선에 온다. 다쿠미는 먼저 황무지 같았던 한반도의 녹화운동에 헌신했다. 현 한국 인공림의 37% 정도가 그의 공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의 민예운동을 이끌고, ‘민화’라는 단어를 처음 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 백자에 눈을 뜨게 만든 것도 1915년 청화백자를 들고 그를 찾아간 아사카와 형제였다. 야나기에 관한 우리의 평가는 무척 엇갈리는 편이다. 다만 그가 아사카와 형제와 함께 경성에 설립한 조선민족미술관이 광복 직후 국립민족박물관을 거쳐 6·25전쟁 직후 현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되는 과정만큼은 분명한 ‘팩트’로 보인다. 다쿠미는 급성 폐렴으로 40세에 요절하면서 “조선의 옷을 입혀 조선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조선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그의 관을 매겠다며 나선 조선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동생을 먼저 보낸 노리타카는 이후 반평생 모았던 공예품과 도자기 등을 신생 한국에 기증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1964년에 세상을 떴다. 야마나시 출신 인물은 또 있다.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4~1926, 생몰연대는 한국의 공훈전자사료관과 일본 국회도서관 기준)다. 가네코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지만 성장한 곳은 야마나시다. 아홉 살 때 친할머니와 고모를 찾아 야마나시에서 충북 청원군 부강면(현재 세종시에 속하지만 2012년 출범 이전까지 99년 동안 충북, 청주 등에 속했던 탓에 정서적으로 청주에 가깝다)으로 온 그는 7년간 모진 학대를 받으며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을 꿈꾸는 ‘아나키스트 전사’로 성장한다. 부강에서의 삶은 그의 이후 생애를 지배하는 정신적 뿌리가 됐다. 가네코의 자서전에 따르면 할머니와 고모의 학대와 억압 속에 살던 그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부강의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따스한 인간애 덕분”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힘겨울 때마다 찾았던 곳 역시 야마나시에서 본 후지산을 닮은 산, 부용산이었다. 부강에 남은 그의 자취는 많지 않다. 묻힌 곳은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이고, 그가 살았던 집터와 등굣길의 헌병대(현 부강파출소), 일본과의 연결고리였던 부강역 정도가 있다. 그를 기리는 ‘가네코 후미코 다실’도 올해 문을 열었다. 아주 상냥한 가격에 맛있는 일본식 우동과 튀김 등을 맛볼 수 있다. 사족 같은 이야기 하나. 호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동명의 영화가 지난 10일 미국 뉴욕영화제에서 감독상 등 5관왕에 올랐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000만엔(약 1억원) 조성에 성공하면서 제작된 영화다. 전 청주시 공무원인 이규상(65) 가네코후미코선양사업회 회장에 따르면 그의 사후 100주년이 되는 내년 7월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 ‘민화의 영웅’ 조자용의 일생 이제 우리 ‘민화의 영웅’ 조자용(1926~2000)을 말할 차례다. 민화를 사랑했고 민화 속 호랑이처럼 강렬하고 기개 넘치는 삶을 산 사내다. 후대의 기억 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더피’ 덕에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국내 내로라하는 미술관들이 민화를 주제로 거푸 전시회를 여는 중이고,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점의 호랑이·까치 배지는 수개월째 예약 대기 중이다. 이런 민화 열기 이면에 민속미술 운동의 선각자였던 조자용이 있다. 그는 북한 황해도 출신이다. 1945년 광복 때 홀로 월남해 미 7사단에서 통역, 식당 일 등을 하며 지내다 194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밴더빌트대에서 토목공학 학사, 하버드대에서 건축학과 구조공학으로 석, 박사 과정을 보낸 그는 7년 만에 유엔재건단 일원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 정동 미대사관저, 대구 동산병원 등이 그의 작품이다. 당시 한국건축 양식을 계승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을 돌던 그는 신라 기와 끝(와당)에 새겨진 도깨비에 매혹돼 기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수집 대상은 민화, 공예품으로 확대됐다. 당시 모은 문화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 그는 사재를 털어 1968년 서울 등촌동에 에밀레 박물관을 세웠다.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은 보은 속리산 국립공원 옆의 에밀레 박물관이다. 등촌동에 있다가 1983년 이전해 왔다. 청주 시내에서 30분 정도 거리다. 박물관은 저 유명한 ‘정이품송’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아는 이도, 찾는 이도 거의 없다. 영화 제목에 비유하면 꼭 ‘죽은 건축가의 사회’ 같다고 할까. 2000년 조자용이 작고하면서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했다. 어렵게 운영되고는 있지만, 외부의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에밀레 박물관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양옥 개축을 위해 헐릴 뻔했던 한옥구조물들을 사다가 재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귀틀집, 돌담벽 등이 생경하면서도 인상적이다. 전시물은 대부분 민화다. 송규태, 엄미금 등 민화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대호도’(임모도)가 특히 인상적이다. 조자용이 지방 출장 중 발견한 작품으로, 당시 너무 탐이 나 타고 간 지프차와 즉석에서 바꿨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박물관의 상징물은 ‘왕도깨비 조각’이다. 충남 부여의 한 절터에서 출토된 8개의 연화문도깨비벽돌 중 연꽃 위에 선 도깨비를 표현했다. 다시 청주 시내로 온다. 냉전 시대의 산물 ‘당산 벙커’가 목적지다. 1973년 전시(戰時) 대비 시설로 은밀히 조성됐다가 50년 만인 2023년에 비밀 해제됐고, 이듬해 열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청주시립미술관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X 청주시립미술관 청주프로젝트 2025’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당산 벙커에선 ‘벙커: 어둠에서 빛으로’전이 열리고 있다. 11개 벙커에서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작인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전수천), 자본의 흐름을 호흡에 비유한 ‘플라스틱 유기체’(이병찬) 등 설치·영상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새달 16일까지 진행된다. 입장료는 없다. 새달 2일까지 이어지는 청주시립미술관 ‘다시, 찬란한 여정’전에선 백남준 작가의 ‘티브이(TV) 부처’,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 등 거장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역시 무료다. 2년마다 개최되는 청주공예비엔날레도 빼놓을 수 없다. 도자, 목칠, 섬유, 금속 작품 등 공예의 모든 분야와 만날 수 있다. ‘청주의 테이트 모던’이라 할 문화제조창 본관에서 진행 중이다. 새달 2일 종료된다. 문화제조창 밖에선 ‘2025 청주 파빌리온 아이디어 공모작’이 전시되고 있다.
  • PO 5차전 ‘폰생폰사’

    PO 5차전 ‘폰생폰사’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영웅’ 김영웅의 기적 같은 3점 홈런 2방으로 2025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5전 4승제)에서 2승2패 균형을 맞추면서 대망의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티켓은 24일 대전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에서 가려진다. 한화 이글스는 올해 정규시즌 최고의 구위로 리그를 압도한 외국인 에이스 코디 폰세를, 삼성은 정규시즌엔 다소 만족스럽진 못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선 ‘폰세급’ 활약을 펼친 최원태를 각각 선발 마운드에 올린다. 폰세는 정규 최다승인 17승, 최다 탈삼진 252개, 최고 평균자책점 1.89, 최고 승률 0.944를 기록했다. 다만 PO 1차전에선 6이닝 7피안타(1홈런) 6실점하며 흔들렸다. 반면 정규시즌을 8승 평균자책점 4.92로 마친 최원태는 가을야구 에이스로 떠올랐다. SSG 랜더스와 준PO 1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데뷔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챙겼고, 한화와 PO 2차전은 7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의 발판을 놨다. 팬들은 그의 호투를 정규리그에서 보인 폰세의 활약에 빗대 ‘폰태’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삼성 타석에선 김영웅, 한화에선 루이스 리베라토가 또 한 번 손맛을 노린다. PO 4경기에서 타율 0.643(17타수 9안타) 3홈런, 12타점, 3볼넷으로 삼성의 공격을 이끄는 김영웅은 1차전에서 폰세에게 2루타 1개와 1타점 적시타를 뽑아낸 좋은 기억이 있다. 리베라토는 2차전에서 최원태를 상대로 1회 1점 홈런에 이어 5회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가을비로 경기 일정이 예정보다 하루씩 밀렸던 PO 시리즈가 최종전까지 가게 되면서 LG 트윈스가 기다리고 있는 KS 1차전도 25일에서 26일로 늦춰졌다. 지난 1일 정규 마지막 경기 이후 3주 넘게 회복과 훈련을 병행한 LG가 PO 5차전 혈투를 치르고 오를 팀에 체력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 렛츠런파크 제주, 국내 최대 말 테마 행사 ‘제20회 제주마축제’ 개최

    렛츠런파크 제주, 국내 최대 말 테마 행사 ‘제20회 제주마축제’ 개최

    한국마사회는 오는 25일과 26일 양일간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제20회 제주마축제’를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제주마축제는 한국마사회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공동 주최한다. 도지사배 대상경주, 레클리스 콘서트 등과 함께 제주산 생산물 판촉행사, 다양한 경품과 고객 참여 이벤트 및 가족단위 체험 행사 등 풍성한 즐길 거리가 결합한 국내 최대 말 테마 축제다. 렛츠런파크에서 열리는 제주마축제에 경마대회가 빠질 수 없다. 첫날인 25일에는 ‘헌마공신 김만일 경마대회’, ‘레클리스 특별경주’와 함께 2025년 최고의 제주마를 가리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배 대상경주’가 펼쳐진다. 이날 오후 5시부터는 ‘제2회 레클리스 기념의 날’ 행사가 열린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와 함께 전장에서 남다른 활약을 펼쳐 미국 100대 영웅에 선정된 제주마의 후손이다. 이 행사는 레클리스 뮤지컬 공연을 시작으로 해병대 군악대 공연, 주한미군 헌화, 감사비 오픈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이어 오후 6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2025 레클리스 콘서트(RECKLESS CONCERT)’가 펼쳐진다. 이번 콘서트는 무료로 개최되며, ‘기억-헌신-승화’의 서사를 중심으로 비와이, 거미, 먼데이키즈, 하이키 등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출연해 힙합, 발라드, K팝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제주마 해설을 비롯해 VR 승마체험, 말 로봇 체험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한 몽생이 당근마켓, 몽생이 사생대회, 경주로 마라톤 대회 등 축제 기간만 운영되는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행사장 내 푸드존에서는 제주 핫플로 유명한 랜디스도넛을 비롯해 제주맛집 팝업 이벤트가 진행된다. 텍사스 바비큐, 멕시칸 타코, 제주식 순대, 하와이안 씨푸드, 현무암 닭강정 등 다채로운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제주마축제 기간 렛츠런파크 제주는 무료입장으로 운영된다. 또한 일부 유료 체험 프로그램은 50% 할인된 체험 티켓을 오는 24일까지 쿠팡에서 살 수 있다. 제주마축제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렛츠런파크 제주 공식 홈페이지 및 축제 인스타그램(@letsrun_jeju_festa)에서 확인 가능하다. 렛츠런파크 제주 관계자는 “이번 축제는 제주마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레클리스가 상징하는 용기와 헌신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제주가 가진 말 문화의 매력을 국내외 관광객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윤종영 경기도의원 “군마 레클리스 기념행사, 경기도-제주-마사회 협력 통해 전국적 상징사업으로 발전시켜야”

    윤종영 경기도의원 “군마 레클리스 기념행사, 경기도-제주-마사회 협력 통해 전국적 상징사업으로 발전시켜야”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부위원장 윤종영 의원(국민의힘, 연천)은 10월 22일(수) 한국마사회 제주본부를 방문해 군마 ‘레클리스’ 기념행사의 의미를 공유하고, 경기도와 제주특별자치도, 한국마사회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마사회 제주운영지원부 진창득 부장, 김동현 과장 등이 참석했으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개최되는 제2회 레클리스 기념행사의 진행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며, 간담회에 앞서 한국마사회 추완호 경영관리본부장과 ‘레클리스 기념행사’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기관 간 협력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마사회 제주본부는 매년 10월 ‘제주마축제’와 연계한 레클리스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와 공동으로 기념비 제막, 미 해병대 및 주한미군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윤 의원은 경기도에서도 올해 6월 연천군에서 ‘레클리스 기념행사’를 개최하였으며, 내년부터는 ‘레클리스 주간’을 운영할 예정”이라며, “승마대회와 기념식, 안보체험 등 지역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제주와 연천이 시기·형식은 다르지만 하나의 취지로 이어지는 상호 보완형 행사가 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윤 의원은 “행사 일정과 초청 인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양 지자체 간 협의체 구성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며, “향후 경기도와 제주특별자치도, 한국마사회가 함께하는 3자 협력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이에 진창득 부장은 “제주특별자치도는 레클리스를 지역 상징 관광콘텐츠로 육성 중이며, ‘레클리스 워케이션’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며 “향후 경기도와 교류를 확대해 레클리스가 대한민국의 우정과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윤 의원은 “레클리스는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니라 한미우정, 평화, 동물복지, 안보의 가치를 함께 담은 상징”이라며, “지자체 간 협력으로 민·군·지방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기념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폭싹 속았수다’ 출연도 했는데…삼계탕집 알바하는 배우 근황

    ‘폭싹 속았수다’ 출연도 했는데…삼계탕집 알바하는 배우 근황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영웅이 생계를 위해 삼계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근황이 전해졌다. 김영웅은 15일 방송된 TV조선 ‘내 멋대로 – 과몰입클럽’에서 촬영장이 아닌 삼계탕 가게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37년차 베테랑 배우이자 최근까지 여러 드라마에 출연한 그는 “고정 수입이 필요해 약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생계형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삼계탕을 끓이고, 서빙과 설거지를 하는 등 분주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틈틈이 대본을 손에 쥐고 연습을 이어가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가 일하는 식당은 배우 유장영이 운영하는 곳으로, 생계가 어려운 배우 50여명이 함께 일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오디션이나 촬영 일정으로 결근을 하면 오히려 박수를 받는 이색적인 근무 환경이 눈길을 끌었다. 김영웅은 “제 연기에 울고 웃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배우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영웅은 tvN ‘빈센조’ ‘해피니스’ ‘구미호뎐1938’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에는 박신혜 주연의 차기작 ‘언더커버 미쓰홍’에서 통닭집 사장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 동점·역전 스리런 쾅쾅… 가을의 전설이 된 김영웅

    동점·역전 스리런 쾅쾅… 가을의 전설이 된 김영웅

    역대 PO 11번째 연타석 홈런 기록시리즈 동률… 내일 대전서 최종전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사자 군단이 김영웅의 2홈런 6타점 화끈한 화력을 앞세워 반격에 성공했다. 정규시즌 1위 LG 트윈스와 한국시리즈(KS·7전4승제)에서 맞설 주인공은 결국 24일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최종 5차전 끝장 승부에서 가려지게 됐다. 삼성 라이온즈는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PO 4차전에서 한화 이글스를 7-4로 제압, 시리즈 2승 2패로 균형을 맞췄다. 전날 삼성에 짜릿한 5-4 역전승을 거두며 KS까지 1승만 남겨뒀던 한화는 원정 1승1패를 안고 안방 대전으로 향했다. 한화는 KS 진출을 위해, 삼성은 이번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끌고 가기 위해 승리가 간절했던 만큼 두 팀 사령탑은 일찌감치 총력전을 예고했다. 한화는 외국인 원투 펀치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를, 삼성은 헤르손 가라비토를 각각 불펜에 대기시키며 출격 시점을 살폈다. 승부는 5회 한화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신예 정우주가 선발 마운드에 올라 3과3분의1 이닝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고, 타석에선 프로 3년 차 문현빈이 1회 1타점 2루타와 5회 3점 홈런을 퍼 올려 4-0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김경문 한화 감독이 ‘지키는 야구’를 위해 6회 가동한 불펜이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네 번째 투수 황준서가 3루타와 볼넷, 안타를 거푸 허용하며 1실점 무사 1, 2루 위기 상황을 만들었다. 정규시즌 마무리로 활약한 김서현이 마운드를 이어받았으나, 김영웅이 우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3점 아치를 그리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영웅의 방망이는 7회 또 한 번 불을 뿜었다. 이번엔 한승혁의 직구를 우측 담장 밖으로 보내 3점을 쓸어 담았다. 역대 PO 11번째 연타석 홈런이다. 삼성 선발 원태인은 5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으나, 6회 구원 등판한 가라비토가 2이닝을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묶었고 이호성과 김재윤이 뒷문을 잠가 승리를 따냈다.
  • 노래는 임영웅, 야구는 김영웅!…사자군단 벼랑 끝 기사회생

    노래는 임영웅, 야구는 김영웅!…사자군단 벼랑 끝 기사회생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사자 군단이 김영웅의 2홈런 6타점 화끈한 화력을 앞세워 반격에 성공했다. 정규시즌 1위 LG 트윈스와 한국시리즈(KS·7전4승제)에서 맞설 주인공은 결국 24일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최종 5차전 끝장 승부에서 가려지게 됐다. 삼성 라이온즈는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PO 4차전에서 한화 이글스를 7-4로 제압, 시리즈 2승 2패로 균형을 맞췄다. 전날 삼성에 짜릿한 5-4 역전승을 거두며 KS까지 1승만 남겨뒀던 한화는 원정 1승1패를 안고 안방 대전으로 향했다. 한화는 KS 진출을 위해, 삼성은 이번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끌고 가기 위해 승리가 간절했던 만큼 두 팀 사령탑은 일찌감치 총력전을 예고했다. 한화는 외국인 원투 펀치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를, 삼성은 헤르손 가라비토를 각각 불펜에 대기시키며 출격 시점을 살폈다. 승부는 5회 한화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신예 정우주가 선발 마운드에 올라 3과3분의1 이닝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고, 타석에선 프로 3년 차 문현빈이 1회 1타점 2루타와 5회 3점 홈런을 퍼 올려 4-0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김경문 한화 감독이 ‘지키는 야구’를 위해 6회 가동한 불펜이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네 번째 투수 황준서가 3루타와 볼넷, 안타를 거푸 허용하며 1실점 무사 1, 2루 위기 상황을 만들었다. 정규시즌 마무리로 활약한 김서현이 마운드를 이어받았으나, 김영웅이 우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3점 아치를 그리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영웅의 방망이는 7회 또 한 번 불을 뿜었다. 이번엔 한승혁의 직구를 우측 담장 밖으로 보내 3점을 쓸어 담았다. 역대 PO 11번째 연타석 홈런이다. 삼성은 선발 원태인은 5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으나, 6회 구원 등판한 가라비토가 2이닝을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묶었고 이호성과 김재윤이 뒷문을 잠가 승리를 따냈다. PO 시리즈가 5차전까지 가면서 KS는 예정됐던 25일에서 하루 밀린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1차전이 열린다.
  • 박진만 삼성 감독 “우린 벼랑 끝, 가라비토 포함 총력전 준비” [PO 4차전]

    박진만 삼성 감독 “우린 벼랑 끝, 가라비토 포함 총력전 준비” [PO 4차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선발 투수 헤르손 가라비토가 불펜에서 대기한다. 전날 한화 이글스 구원 투수 문동주의 강속구에 꽁꽁 묶였던 타선에도 변화를 줬다. 박진만 삼성 감독의 총력전 전략이다. 박 감독은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2025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5전 4승제) 4차전을 앞두고 “이번 시리즈를 5차전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삼성은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이날마저 지면 가을야구를 마감하게 된다. 박 감독은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몰려있다. 오늘 우리 전력을 다 쏟아부을 것”이라면서 “(선발 투수) 원태인의 몸 상태도 괜찮고 가라비토도 출전할 수 있다. 다만, 초반에 (우리가) 점수를 많이 낸다면 가라비토는 5차전 선발로 준비한다”고 밝혔다. 타선은 김지찬(중견수)-김성윤(우익수)-구자욱(지명타자)-르윈 디아즈(1루수)-김영웅(3루수)-김태훈(좌익수)-이재현(유격수)-강민호(포수)-양도근(2루수) 순으로 구성했다. 전날 대비 김태훈과 이재현의 순서를 맞바꿨다. 박 감독은 “이재현의 타격 페이스가 조금 떨어진 느낌이어서 페이스가 좋은 태훈이를 위로 올렸다”면서 “2루는 류지혁 대신 양도근이 들어간다. 한화 선발 정우주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인데 빠른 공 대처에서 양도근이 낫다고 봤다. 타선을 조금 다른 분위기로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한화의 에이스들인 코디 폰세, 라이언 와이스, 류현진을 상대로 맹타를 휘둘렀던 타자들이 이날도 힘을 내주길 바란다. 그는 “지금 우리 타자들이 문동주에게만 못 쳤지 다른 투수들은 다 공략하고 있다. 오늘도 삼성다운 타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영상) “스파시바! 북한군 감사합니다” 대동강에 종이배 띄운 학생들

    (영상) “스파시바! 북한군 감사합니다” 대동강에 종이배 띄운 학생들

    “스파시바(Спасибо) 북한군, 감사합니다.” 러시아 어린이들이 북한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종이등불배를 대동강에 띄웠다. 22일 주북한 러시아 대사관에 따르면 전날 대사관 부속 학교 학생들은 평양 대동강변에서 열린 ‘우정의 등불’ 행사에 참석했다. 대사관 직원 자녀들인 학생들은 등불을 올린 종이배를 대동강에 띄우며 양국의 끈끈한 혈맹 유대를 재확인했다. 종이등불배에는 한글과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영원한 친선’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행사에는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종이등불배는 북한군이 파병된 러시아 쿠르스크주 제43중등종합학교 학생들이 기증한 것이다. 대사관 측은 “학생들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로부터 지역을 해방시킨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기 위해 종이등불배를 기증했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쿠르스크시 학생들이 북한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만들어 보낸 종이등불배”라고 전했다. 또한 “참전영웅들에 대한 소중한 추억과 그들의 영생을 기원”하는 마음을 문구에 담았다고 중앙통신은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8월 국경을 넘어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 일부 영토를 기습 점령했다. 이후 러시아군은 올해 4월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했는데, 이 과정에서 파병 북한군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우리나라 정보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북한군 전투병력 1만 5000명이 러시아에 파병됐고 이 가운데 약 20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북러는 북한 파병군인들의 ‘희생’을 양국 혈맹 관계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병됐던 북한 ‘해외작전부대’는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를 함께 들고 행진했다. 한편 북한을 방문 중인 러시아 청년친선참관단은 21일 북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간부 및 평양의 대학생들과 ‘청년친선연환모임’을 했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양국 청년들은 “친선의 전통을 굳건히 계승해나가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 여자부 노메달 굴욕 씻는다…파리 영웅 김유진·체급 바꾼 장준, 세계태권도선수권 출격

    여자부 노메달 굴욕 씻는다…파리 영웅 김유진·체급 바꾼 장준, 세계태권도선수권 출격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유진(울산시체육회)이 한국 태권도 여자부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격한다. 남자부 간판은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체급을 높인 장준(한국가스공사)이다.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은 24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리는 2025 세계태권도연맹(WT)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180개국 등에서 선수 991명이 참가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다. 한국은 남녀 모두 최다 우승국이다. 대회 5연패에 도전하는 남자부는 26번의 대회에서 24번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여자부는 2022년 과달라하라에서 대회 35년 역사상 처음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고, 이듬해 바쿠 대회에선 참가 선수 전원이 입상 불발되는 굴욕을 당했다. 이에 김유진의 발차기에 시선이 쏠린다. 김유진은 지난해 8월 파리올림픽 여자 57㎏급에서 정상에 올랐는데 한국이 해당 체급에서 올림픽 메달을 딴 건 16년 만이었다. 3년 전 세계선수권 16강에서 탈락했던 김유진은 “두 번째 대회인 만큼 후회 없이 전력을 쏟아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53㎏급 우승자 박혜진(고양시청)도 개인 세 번째 세계선수권에서 첫 메달을 조준한다. 남자부 선봉엔 2019년 맨체스터 대회 58㎏급 챔피언 장준이 선다. 장준은 지난해 초 파리올림픽 58㎏급 출전권을 박태준(경희대)에게 내준 뒤 63㎏급으로 올려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어 지난해 5월 다낭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63㎏급 금메달을 품에 안으면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장준이 빠진 남자 58㎏급에선 파리올림픽 우승자 박태준을 제친 배준서(강화군청)가 3번째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노린다. 중량급의 샛별 서건우(한국체대)는 파리올림픽 남자 80㎏급에서 4위에 그친 뒤 눈물을 쏟았던 아쉬움을 털겠다는 각오다. 그는 “아쉬움 없이 뜨거운 경기로 1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WT는 23일 중국 우시에서 총회를 열고 내년부터 적용할 경기규칙 개정안을 승인할 예정이다. 여기엔 회전 공격에 점수를 2배 부여하는 방식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회전 발차기로 머리를 때리면 한 번에 6점까지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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