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웅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20억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상장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영업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울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753
  • DJ 환영 열기의 명암/梁承賢 차장·정치팀(오늘의 눈)

    金大中 대통령을 맞는 미국의 열기가 뜨겁다.유력지인 워싱턴 포스트지는 金대통령을 ‘한국에서 온 영웅(hero)’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어디를 가도,누구를 만나도 온통 환영일색이다. 7일 상오(한국 시간) 루빈 미재무장관 부부가 예정에 없이 金대통령의 국제인권연맹 인권상 수상식에 참석했고,사회자가 앉은채 박수를 치도록 유도했지만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 박수로 진심어린 축하를 했다.이에 앞서 金대통령의 뉴욕 케네디공항 도착때는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가 주재국 대사로는 처음으로 환영식에 나왔다.모두들 金대통령 칭찬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의전을 중시하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金대통령의 방미는 ‘특별 대우’임에 분명하다.그러나 이같은 대우는 金대통령이 일궈온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징성’ 등으로 미뤄볼때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50년만에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한때 ‘망명지’였던 미국을 다시 찾은 金대통령의 극적인 인생 역정이 미국을 들뜨게 하는데 보탬이 된 듯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미국 기업들의 대한(對韓)투자 유치를 위한 좋은 전조(前兆)이긴 하나 그렇다고 전부는 아니다.金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대권에 도전하는 야당 총재가 아니다.그의 두 어깨는 난국 극복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미국은 민간 투자가의 해외 투자에 정부 영향력이 별로 없는 나라다.환대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해서 기업도산이 줄을 잇고,실업자수가 나날이 늘고 있는 우리의 각박한 현실을 치유할 처방전을 함께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金대통령이 IMF의 추가지원과 미국의 2선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민주당 행정부와 공화당 주도의 의회와의 불화도 뛰어넘는 신뢰감과 지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취임후 100일을 ‘대통령 혼자 애쓴다’고 느끼고 있다.무려 7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행사로 가득한 金대통령의 방미 세일즈외교가 또다시 국내용 ‘신 용비어천가(新 龍飛御天歌)’로 머물 공산도 없지 않다.진심으로 환영받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은 방미수행단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IMF이후 모처럼 자부심을 맛보게 했다.그러나 실직의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바람은 재기의 터전을 일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국제사회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한국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 올해의 인권상 수상 연설문

    먼저,오늘 나에게 영예로운 인권상을 수여해 주신 국제인권연맹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은 금년 2월에 한국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여야간 정권교체를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 이룬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승리였습니다.지금 한국은 유엔인권위원국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한국 국민이 기나긴 고난과 고통의 시간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전진의 발걸음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오늘의 이 인권상은 내가 받을 영광이 아니라 나와 함께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우리 한국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세계 각국의 언론인으로부터 ‘당신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느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그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였습니다.하나는 ‘우리 국민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일 죽지 않으면,나는 국민을 위해서 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것이고,다른 하나는 ‘내가 비록 이대로 죽는다 하더라도 인권과 정의,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은 역사속에서 패배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에,나는 우리 국민과 역사속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금년 2월에 그토록 염원하던 여야간 정권교체를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 이룬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승리였습니다.한국은 유엔인권위원국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러나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권력과 금력의 폭압 앞에 인권이 유린되고 있으며,인권운동가들의 투쟁 또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적 특수성이 인권침해를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는 그동안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널리 논의되어 왔습니다.아시아에는 서구적 개념의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철학과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희생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아시아에도 서구 못지 않은 인권사상의 철학적 기반이 있었습니다.중국의 맹자는 서구 민주주의의 철학적 시조인 존 로크보다 2,000년을 앞서서 ‘임금이 백성을 위해서 선정을 베풀지 않으면 백성은 이를 쫓아낼 권리가 있다’는 주권재민론을 주장했습니다.부처님도 ‘천상천하에 내 인격이 제일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우리나라의 민족종교인 동학에서도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서구보다 2,000년 앞서서 중국에서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오늘의 군현제도를 실시했습니다.또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아무리 고관의 아들도 공개 국가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간부직 관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누구도 인권을 위해 싸울 수가 없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선배영웅들은 이번에 유엔인권위원회가 ‘인권옹호가 선언’을 채택한 것을 지하에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나는 이 선언이 금년말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인권수호의 고귀한 사명에 헌신해온 국제인권연맹과 인권분야 비정부기구(NGO)의 활약상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한국의 새 정부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로서 국민 개개인의 인권문제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 일환으로서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등 제도적인 인권수호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나아가 지구촌 도처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한국이 세계의 모든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면서,인권옹호가와 국제인권연맹의 헌신에 동참하는 것을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랑… 질투… 오페라 ‘돈 카를로’

    사랑,질투,운명.시공을 초월해 인간의 감동을 이끌어내온 명작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성 3요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비견될 만큼 드라마틱하고도 격정적인 내용의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를 국립오페라단이 제90회 정기공연으로 6∼12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평일 하오 7시30분,주말 하오 4시) 274­1172. 정치와 종교의 대립을 보여주는 필립왕과 재판장,숙명적인 사랑으로 애태우는 엘리자베타와 카를로,질투의 화신 에볼리,불륜의 에볼리와 카를로…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대비가 뚜렷할 뿐아니라 영웅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자들과 사랑 때문에 파멸해 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웅장한 한편의 비극으로 그려진 작품.지난 88년 우리말로 공연한 작품을 10년만에 원어로 재공연한다.당시 출연자인 지금은 중견 성악가로 자리잡은 이규도 박성원 정영자씨 등이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또 30대의 류재광 장유상 진귀옥 김명지 정영자씨 등이 한팀을 이루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김신영 박경념 김동식 남완 등 20대 신인들도8일 한회 공연을 맡았다.공교롭게도 캐스팅이 20,30,40대로 나뉘어져 성악가들의 세대별 배역 소화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로 또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연출 신경욱(서울예고 교장) 지휘 최승한씨(연세대 음대교수).
  • ‘혈맥’·‘오구’/새로운 연출 색다른 재미/리바이벌 연극 2편

    ‘하늘아래 새것 없다’ 좋은 창작희곡이 가물에 콩나듯 하는 연극판 실정에 더욱 실감스런 말.‘더 재미 있어진’ 리바이벌 연극 두편이 그래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끈다.국립극단 ‘혈맥’(12∼21일·서울 국립극장 소극장)과 연희단거리패 ‘오구’(17∼7월30일·서울 정동극장). ‘혈맥’은 사실주의 극작가 김영수의 48년작.산비탈 방공호에 깃들어 사는 거복이네,땜질쟁이네,지식청년 원칠네 등을 통해 가난,무질서하고 절망적이던 해방공간을 희비극으로 그린 사실주의 희곡 고전.그간 무수히 공연됐지만 이번엔 국립극단이 해마다 한편씩 마련할 ‘한국연극재발견’시리즈 첫주자다.임영웅의 선굵은 연출과 조련된 국립극단 연기자들의 만남도 기대해봄직.정상철·백성희·김재건·권복순등 출연.평일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 4시.274­1151. 한편 89년 첫선보인 ‘오구’는 죽은자를 진혼하는 ‘산오구굿’에서 골격을 따온 작품.특히 지난해 정동극장 한달 공연서 크게 히트한뒤 올해부터 정동극장 상설 레퍼토리가 된다. 해마다 6월이면 다시 만져져정동극장에 오르는 것.이참에 정동극장이 기존에 운영중인 ‘외국인 대상 문화관광상품’ 목록에도 올라 영어·일어 자막해설 등이 따라붙는 등 대접받는다.이윤택 극·연출.강부자 주역.평일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 3시·6시30분(화·금·7월22·23일 쉼).773­8960.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파키스탄 핵실험 주역 압둘 카디르 칸

    ◎국민적 영웅… 75년부터 핵연구소 맡아 세계를 놀라게 한 파키스탄 핵실험을 주도한 사람은 ‘이슬람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62) 박사. 독일서 금속학을 전공한 그는 75년 귀국,카후타 핵연구소(KRL)를 맡아 파키스탄 핵개발을 이끌어 왔다. 카후타 핵연구소는 파키스탄이 74년 인도 최초의 핵실험에 자극받아 자체적으로 핵개발을 위해 카라치 원전건설과 함께 이슬라마바드 동부에 세운 연구소. 소장으로 재임해온 칸 박사는 이후 영국에서는 우라늄 농축장비와 기술을 수입하고 중국으로부터는 원폭 설계를 도입해 84년 핵개발에 성공했다.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국내에서와는 달리 서방에서 그는 ‘외국의 핵기술을 훔친 스파이’,‘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아’ 등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실제 네덜란드에서는 83년 우라늄 농축기술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궐석재판에서 4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 북한 드라마 解禁/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북한의 TV프로그램은 뉴스 다큐멘터리 드라마 스포츠 논평 문화예술 교육 생활과학정보 어린이시간대로 짜여진다.드라마 편성에서 예술영화의 경우는 시리즈가 많고 연속극은 3,4회쯤의 미니시리즈물이 주종을 이룬다.주제는 김일성 부자의 일화를 통해 본 신화적 영웅성이 강조되지만 극적인 재미를 위해 이기심이나 명예욕,남녀간 사랑 등이 보조모멘트로 삽입되기도 한다는 것이다.지난 92년 SBS의 ‘모래시계’가 직장인의 퇴근시간을 앞당길 만큼 인기를 끌고 있을때 북한에선 ‘백금산’이란 드라마가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다는 내외통신의 보도도 있었다.드라마 ‘백금산’은 선동·구호·선전성이 강했던 종래의 드라마와는 달리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남녀간의 사랑을 적당히 가미하여 천편일률적인 계몽식 내용을 탈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북한이 이처럼 드라마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90년초 전작가동맹위원장 천세봉의 인기소설을 각색한 ‘석개울의 새봄’이 ‘폭풍같은 반향’으로 방영되면서부터다.또한 남녀간의 애정문제를다룬 작품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북한당국이 사상통제의 무기로 활용해온 문학작품의 선정성을 ‘직접통제’에서 ‘간접통제’로 바꿨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TV드라마 ‘북방의 겨울’이 우리 TV방송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그동안은 선전·선동성이 강하고 체제홍보를 위한 연출된 자료라는 점에서 공개자료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으나 안기부는 확고한 ‘정보공개 확대’라는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자료들을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일본이 가깝고도 먼나라라면 북한은 가깝고도 가까운 우리의 혈연이다. 더구나 리틀엔젤스 북한방문 공연에 이어 소떼의 북행(北行) 등 남북교류의 다양한 변화가 실감되는 요즘이다. 모처럼의 드라마 해금(解禁)이 ‘피바다’류의 흘러간 혁명가극을 공개하는 수준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반세기동안 두절된 문화예술의 긴 이질성을 찾아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달라진 최근의 북한 예술을 접하는 일은 중요하다.문화예술의 현상과 실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야말로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민족화합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 2개월 영아 백신맞고 사망/복지부,녹십자 DTaP 사용금지 지시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경남 창원보건소에서 생후 2개월된 영아가 녹십자의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예방백신(DTaP)을 맞고 사망한 사건과 관련,27일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복지부는 창원보건소가 사용한 주사약과 같은 날 들여온 DTaP 백신 161병을 수거,식품의약품안전청에 검사를 의하는 한편 녹십자가 같은 시기에 제조한 백신을 사용하지 말라고 전국 의료기관에 지시했다. 복지부는 창원보건소에서 접종 수칙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여부와 백신관리상태,접종전 영아 건강상태 예진 여부도 함께 조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6일 상오 창원보건소에서 DTaP 백신과 경구용 소아마비 접종을 받은 姜동헌씨의 생후 2개월된 아들 영웅군이 심하게 울고 구토를 해 창원중앙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접종을 받은지 3시간여만에 숨졌다.
  • 스포츠영웅 충남서 또 탄생/야구 박찬호이어 박세리 세계무대 우뚝

    충남의 아들과 딸이 세계 프로 스포츠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공주 출신의 朴贊浩(24·LA 다저스)가 지난해 14승의 대위업을 달성하며 미국 메이저리그에 우뚝 서자 대전 유성 출신의 朴세리(20)도 세계 4대 메이저의 하나인 여자프로골프선수권(LPGA) 챔피언십을 따내며 오빠에게 화답했다.특히 朴세리는 LPGA에 진출한지 1년도 안된 새내기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내 주위를 경악케 하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충남이 고향이다.朴贊浩는 공주 중동초등학교와 공주중,공주고를 거친 공주 토박이.반면 朴세리는 유성에서 태어나 유성초등,갈마중에 이어 공주 금성여고를 나왔다. 흔히들 ‘충청도 양반’이라고 한다.이 말에는 행동이 느리다는 것과 예절바르고 지조가 곧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행동이 굼뜬 것은 그만큼 결정을 내리기까지 심사숙고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따라서 한번 마음 먹으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초지일관한다. 朴贊浩와 朴세리에는 바로 이런 ‘양반 기질’이 배여 있다.두 사람은 모두 아득하게 보였던 미 프로야구와 미 프로골프에 뜻을 두었다.중간에 좌절하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 상훈치탈 ‘제자리 걸음’

    ◎79명중 충청작전관련 鄭鎬溶·崔世昌씨만 박탈/全·盧 前 대통령 등 14명 대상 제외… 憲訴제기 상태 5·18은 193명의 사망자와 47명의 실종자(95년 검찰발표 기준)를 낳았다.그리고 광주시민 모두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그러나 그 희생을 있게한 ‘공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훈장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이른바 충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당시 특전사령관 鄭鎬溶씨와 제3특전여단장 崔世昌씨 등 79명(2개단체 포함).이들중 鄭씨와 崔씨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받은 상훈을 취소토록 규정하고 있는 5·18특별법 제7조에 의거 지난해 훈장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5·18특별법에 따라 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16명중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충정작전이 아니라 ‘국가안보 공헌’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는 이유와 ‘상명하복 관계에 있던 영관급 이하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국방부측 논리로 치탈대상에서 제외됐다.全 전대통령은 전쟁영웅에게나 수여되는 최고훈격의 태극무공훈장을,盧 전대통령은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국방부는 ‘3년이상 형을 받은 자에대해 서훈을 취소한다’는 상훈법 8조 적용도 검토했으나 지난 63년 제정된이후 적용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 또한 무산됐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상자를 축소하기 위해 5·18특별법과 상훈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특히 ‘유죄가 확정된 全·盧 전 대통령 등 14명에 대해 훈장을 박탈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헌법소원을 제출했던 卞禎洙 변호사(68·정일종합법률법인)는 “일단 헌법소원이 심판에 회부되면 180일 이내에 위헌여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서 “이는 헌법재판소의 명백한 직무태만”이라고 비난했다.그는 새 정권에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戰犯의 영웅화/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일제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에다 한국에서는 강제징병과 학도병제를 실시하고 종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 ‘A급 전쟁범죄자’로 회부되어 48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일본의 군국주의자다. 그런 전쟁범죄자가 일본 영화 ‘프라이드:운명의 순간’에서 전범이 아닌 ‘영웅적 사무라이’로 등장해 중국과 서방언론등에 의한 국제적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일제의 식민지 침탈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대동아전쟁은 일본의 자위(自衛)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자 아시아 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었음을 강변하고 도조는 ‘일본의 명예를 지키려다 연합군측의 사전각본에 따라 부당하게 처형되는 희대의 영웅’으로 부상된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 생색내고 무의미한 것도 의미있는체 꾸미는가 하면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고 보면 또한 번심한 장난을 쳤구나 하는 안쓰러운 감이 없지 않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나 남경 대학살등을 고교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자학(自虐)사관’ 이라면서 반일교과서 회수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해 왔었다. 그릇된 과거를 덮으려는 자체가 이미 그릇됨을 인정한다는 것을 아마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개봉을 앞둔 영화시사회에서 과거사 망언으로 유명한 한 고위관리가“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뿐 아니라 핵심을 찾아내는데도 성공하고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니 그 뻔뻔스러움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의 참다운 영웅이란 자신의 존재를 대중속에 파묻고 사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선한 영웅이 있듯이 악한 영웅도 있다. 영웅이 없는 사회에서 오죽이나 궁색했으면 전범을 영웅화했겠느냐는 측은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도도한 세계사를 역행시킬수는 없다. 영화라는 방법으로 과거를 미화하려는 자체가 영웅의 이미지에서는 이미 어긋난 처사다. 차제에 무분별한 일본영화수입을 심사숙고해봐야겠다.우리 청소년의 역사를 보는 눈은 우리어른들이 지켜줘야하기 때문이다.
  • 풍자·해학으로 푼 현실 조롱/극단 연우 ‘김치국씨 환장하다’

    ‘칠수와 만수’ ‘한씨연대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 일련의 예리한 현실비판 무대로 80년대 연극계를 강타했던 극단 연우무대가 마침내 IMF속의 한국사회를 겨냥해 메스를 빼들었다. 오는 15일부터 서울 연우소극장에서 선보일 ‘김치국씨 환장하다’는 지난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연우가 1년6개월만의 침묵을 깨는 첫 무대.통렬한 현실비판으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의 병폐를 해부하되 그 방식이 질펀한 풍자와 해학으로 일관하는 현실조롱의 코미디라는 점에서 다소 의외다.이 점에서는 또한 그동안 IMF현실을 빗대면서도 희망과 위안을 전달 메시지로 삼았던 많은 작품들과도 확연히 비교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치국씨는 지독한 자린고비에다 황소고집을 지닌 김밥집 주인.6·25때 월남,갖은 고생끝에 자수성가한 그는 어느날 자신이 18억원을 북한동포를 돕는데 써달라며 적십자사에 기증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한다.자신도 모르게 통장에서 전재산이 빠져나간뒤 당황한 그는 기증사실을 완강히 부인하지만이 또한 보통시민의 미덕으로 언론에 부풀려질 뿐이다.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김치국씨.하지만 정치권과 수사기관에서는 그를 북풍공작의 희생양으로 몰아세운다.내용상의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어수룩한 주인공이 겪는 환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환장할 만큼의 재미를 안겨준다. 70년대 ‘말뚝이’시리즈로 전통 마당극의 현대적 수용에 힘써온 재미극작가 장소현씨가 원작을 쓰고 카피라이터 이윤철씨가 이를 긴박감과 감칠맛 풍기는 무대 언어로 살려냈다.연출은 연극동인 ‘혜화동실험실’의 2기 동인으로 실험연극운동의 선두에 서온 극단 작은신화의 대표 최용훈이 맡고 강신일·김내하·박남희 등이 출연한다.6월21일까지.744­7090.
  • ‘폭력에 대항한 양심’/종교의 광기에 맞선 자유인

    독재의 얼굴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종교·사상·민족·개발 등 갖은 이름으로 자신의 등장과 행동을 합리화한다.히틀러가 그랬고 킬링 핑드의 주역 폴 포트가 그랬다.그러나 외양은 다를지라도 독재의 본질은 같다.그것은 단 하나의 이념 아래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는 점이다.16세기의 제네바 역시 마찬가지였다.종교라는 이름의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제네바에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남았고 칼뱅이 바로 그 예언자였다. 당시 제네바의 모든 권력을 차지했던 칼뱅은 정신적인 독재자이자 광신적인 주지주의자(主知主義者)였다.이런 칼뱅에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맞서 관용의 정신을 부르짖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카스텔리오다.최근 도서출판 자작나무에서 나온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폭력에 대항한 양심’(안인희 옮김)은 위대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삶을 통해 16세기 제네바의 정신적 풍경을 그린 인문교양서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라는 책에서 이미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에라스무스의 모습을빌어 당대의 폭력과 혼란에 항의했다.그 뒤를 이어 나온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1536년 5월 어느날 검은 색 사제복을 입은 깡마른 칼뱅이 코르나뱅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제네바의 자유는 사라졌다.그는 거대한 조직력을 이용해 자유시민들로 구성된 도시와 국가 전체를 엄격한 복종기구로 만들어버렸다.그의 가르침은 곧 법이었다. 이 엄청난 권력에 대항한 카스텔리오는 그야말로 코끼리 앞의 모기였다.그러나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신학적인 견해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세르베토 살해사건’을 목격하면서 영웅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양심의 부름을 느낀 카스텔리오는 칼뱅을 고발한다.시대의 광증에 사로잡혀 이단자들을 들짐승처럼 쫓고 고문하던 때,박해받는 이들을 위해 변론을 떠맡은 카스텔리오는 홀로 불의에 대항해 싸운다.카스텔리오의 공격은 칼뱅이 세르베토 처형사건을 관청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칼뱅은 이단의 처형을 부정하고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 카스텔리오의 책들을 불태웠다.결국카스텔리오를 기다린 것은 세르베토가 그랬던 것처럼 화형장의 불길이었다.칼뱅은 카스텔리오의 사상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을 철저히 봉쇄했다. 카스텔리오라는 이름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가 츠바이크의 손길이 닿을때까지 역사의 뒤안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폭력에 대항한 양심’에는 독재의 해악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정신의 치열함이 담겨져 있다.
  • 남성주의 드라마/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TV드라마에서의 남성중심·여성비하의 표현은 거의가 고정 틀로 정해져 있다.남성은 가부장적 권위를 갖추고 여성위에 군림하는 한편 여성은 참고 복종하면서 생활속의 갈등을 혼자서 극복해 나간다.이런 여성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는 언제나 다소곳한채 남편과 자식, 부모와 형제를 위해 헌신봉사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더구나 최근 몇개월사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인한 복고풍(復古風) 드라마에서는 가족주의 회귀가 두드러진다.단지 그것은 가족간의 스토리가 아닌,보수적인 남성중심주의로 퇴행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시청자는 남성지배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를 부정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벌을 받게 되거나 결국 불행만을 초래하게 될 뿐이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에 물들어버린다. 한국방송개발원이 방송3사 드라마들의 등장인물을 분석한 결과 ‘남성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여성에겐 불행이 찾아오고’‘순종·인내형에겐 보상이 주어지며’‘여성의 관심거리는 신변 위주인데 비해 남성은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표현된다는 지적이다.예를 들어 시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이혼한 여성이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어하지만 딸이 심한 우울증에 걸리는 바람에 불행해진다는 것이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하게 아들을 키워낸 여성은 아들의 성공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식이다.아버지나 남편의 의무는 배제된채 어머니의 책임만을 강조한 예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대장부는 활개를 치고 천하를 경영할 것이요,아녀자처럼 집안에 칩복(蟄伏)하여 일생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남녀에 대한 정의다.그러나 ‘권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인간으로 정당하게 인정하고 대우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는동안 각자에겐 여러 역할이 주어진다.남성이 순진한 양이 될 수 있고 여성이 독한 매가 될 수도 있다.여성이 영웅일 수 있는 것처럼 남성이 강변의 민들레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여성희생과 남성군림의 방법을 끈질기게 드라마에 사용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드라마는 시대의 반영이라는 차원에서 좀더 앞을 내다보는 신선한 시각이 아쉽다.
  • ‘30명 사망설’… 루머 난무/유혈 치닫는 印尼사태

    ◎시민들 사망회사원 ‘순교자’ 추앙/군경,프락치 대학교내 대거 배치/민간은행 금리 연 70%까지 폭등 【자카르타 외신 종합 연합】 ○…이번 인도네시아 시위와 관련,공식 집계된 사망자수는 4명이지만 30명이 사망했다는 등 갖가지 루머가 난무해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형편. ○…인도네시아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첫번째 사망자의 장례식이 11일 요그야카르타시(市) 근교에서 수백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보안군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원 모세스 가툿카사(39)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영웅적 순교자’로 추앙되며 그의 죽음이 정치쟁점화 되고 있다. 그의 관은 인도네시아 야당과 학생,시민들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요그야카르타 중심가를 통해 운구되어 시내에서 10㎞ 떨어진 조그만 공동묘지에 묻혔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신은 위대하다’,‘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말자’등의 구호와 함께 정부의 개혁을 촉구했다. ○…군경이 학생들의 시위동정을 정탐하기 위해 사복경찰과 프락치를 교내에무수히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복 경찰관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른 한편,애매한 시민이 프락치로 몰려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사태도 발생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 ○…인도네시아에 있는 2만여 한국 교민들은 중국 화교 상점에 대한 약탈이 격화되자,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엉뚱한 피해를 보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는 모습. 특히 한국 현지업체들은 최근 민간 은행의 경우 금리가 최고 연 70%까지 폭등,어려움이 많다고 토로. ○…인도네시아와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신뢰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미 상품의 대(對)인도네시아 수출을 재정지원할 10억달러 규모의 협정을 체결.
  • 南北 화해외교 주도권 잡자/金炳局 고려대 교수·정치학(時論)

    ○역사는 독재자에 관대 지금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노동당과 군부 등에 포진한 기득권 계층이 충성하는 한 金正日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 변방 지역의 주민을 굶기면서까지 식량을 비축하고 당과 군부를 먹여 살리고 있다.미국 정부의 한 전문가가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이렇게 정권안정의 제물로 죽어가는 변방 지역의 주민은 전체 북한 인구의 사분의 일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처럼 무시무시한 생존전략이 실패할 조짐은 어디서고 보이지 않는다.당은 여전히 金正日 비서에 대한 충성의 노래를 읊어대고 군부는 무력으로 사회질서를 지탱한다. 그러나 시야(視野)를 조금 넓혀 세계사를 훑어보면 오히려 체제붕괴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역사는 폭력과 착취에 대한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혁명의 미명 아래 어린아이까지 학살한 크메르루즈가 권좌에서 쫓겨나기 까지에는 5년의 세월이 걸렸고 수천만명을 시베리아로 추방해 굶겨 죽인 스탈린은 오히려 전쟁에서 러시아를 구한 국민적영웅이 되어 편안히 자신의 생을 마쳤던 것처럼 ‘역사’는 독재자를 상당히 관대하게 대하곤 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독일식 통일이 일어나면 2등시민이 되고 만다는 위기의식에다 국민의 상당수를 아사(餓死)상태로 몰고 가면서 자기만의 살 길을 모색해 온 ‘죄의식’까지 가세하여 북한의 지배층을 金正日 비서의 편에 확고히 묶어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미국에서는 대북한 정책의 기본방향을 틀어 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북한이 붕괴(崩壞)되지 않는다면 우선적 과제는 남과 북의 화해 및 공존을 이끌어 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과 평양을 갈라놓는 두터운 불신의 벽에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 탓에 미국 내에서 논의되는 남북 화해론(和解論)은 아직은 그 논리가 어슬프다.남과 북이 ‘언제’‘무엇’을 ‘어떻게’ 서로 주고받아 대화의 폭을 넓혀 가는가 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한 심층적 논의가 아직은 없다.단지 모든 정책대안을 다같이 검토하다 보면 언젠가는 남과북의 교착상태를 깰실마리를 찾을 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하에 논의의 폭을 대단히 포괄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美 거론 화해론 미봉책 화해의 실마리는 아무런 조건없이 아사상태에 놓인 북한 주민을 살리는 식량 원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는가 하면 임시방편(臨時方便)에 불과한 원조 보다는 경제적 봉쇄에 대한 해제가 북한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끌어낼 촉매제라는 주장 역시 심심치 않게 들린다.그러나 문제의 본질인 ‘정치’를 이처럼 비껴가는 한 남북 화해의 창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심지어 미군의 지위와 역할까지 남북대화의 주제로 삼을 자세가 되어야 화해를 가능케 할 일괄타결의 기회가 온다는 극단적 견해마저 등장하는 형국이다. ○실상은 남한 양보론 불과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주의 주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논리가 있다.남과 북이 화해하려면 강자인 한국이 대승적(大乘的) 자세에서 먼저 북한을 감동시킬 만한 양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화해의 실마리를 원조의 제공에서 찾든 대화의 기회를 경제적 제재에 대한 해제나 군사적 회담의 개최에서 찾든 한국이 화해의 책임자로 부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 내에서 거론되는 ‘남북 화해론’은 결국 ‘남한 양보론’이다.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면 마음이 편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경제가 환란(換亂)으로 쓰러진 마당에 무슨 수로 북한을 살릴 원조에 나설 수 있는가 하는 무력감 때문은 아니다.하물며 승자독식의 독일식 통일을 갈망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오히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테러를 일삼아 온 북한이 ‘전향(轉向)’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 피해자인 우리가 아무런 사전보장없이 단지 대화의 창을 열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먼저 양보하여야 한다는 것이 기막힐 뿐이다. ○구체적 전략 빨리 짜야 우리는 생각나는대로 마구 내놓는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 미국식 화해론에 민족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그러나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무조건 양보를 거부하면 한국은 아사상태에 놓인 동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 조차 싫어하는 냉혈(冷血)동물로 국제사회에 비추어 진다.심지어 북한의 붕괴를 은연중에 바라면서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의 개선에 발을 걸고 북한 주민을 아사상태로 몰고 간다는 의혹까지 받을 수 있다.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어설픈 화해론이 미국의 정계와 관계 및 학계에 더 확산되기 전에 남과 북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서로 주고 받느냐 하는 구체적 전략을 미국에 내놓으면서 화해외교의 이니시어티브를 쥐어야 한다.
  • 美 칼럼니스트 필립 바우링 IHT 기고(해외논단)

    ◎中 점진적 개혁만이 성장 보장 개혁가인 신임 주룽지(朱鎔基) 국무원총리의 등장으로 중국의 향후 개혁방향에 관심이 쏠려있다.특히 개혁의 속도와 관련한 관심이 최우선적이라 할수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최근 “중국의 점진적 개혁은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단을 실었다.IHT는 중국의 개혁은 급진적인 성격보다는 건실한 경제성장이 바탕이 된 점진적인 성격이 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필립 바우링 논설위원이 쓴 글의 요지. ○‘희망과 두려움’ 시선 공조 중국은 지금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해 있다.희망은 경제개혁이 크게 발전할 것이며,보다 개방된 정치적 환경에 의해 수행될 것이란 것이다.두려움이란 다름아닌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어 잘해야 방향을 잃은 개혁이 될 것이며,자칫 심각한 사회적 긴장을 야기시킬 것이란 것이다. 외국인들 특히 번지고 있는 주총리에 대한 기대감은 그의 과업이 크다는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 비현실적이라는 우려도 있다.그의 과업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그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게 불요불급한 인물으로 전락할 것이다. 주총리가 의견을 구하는 뻬이징(北京)의 젊은 관료들의 결집력과 과업의 올바른 방향성이 그에게는 적지않은 힘이 될 수 있다.국영기업체들의 인원정리·금융기관들의 신용제고 방안등이 놓여있는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되는 속에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할 때의 어려움은 아직 중국 내부에서 충분히 인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여러가지 경제적 선행지표들이 중앙통제적이며 비현실적인 경제목표하에 추진됐던 과거의 양상들을 떠올리게 되는 형편이다. 지난주 뻬이징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 참석자들은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력을 흡수하고 통화가치의 안정을 위해 8%로 잡았다는 보고를 받았다.중국의 경제관리들은 현재의 경제추세와 관련,성장둔화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아직도 사회기반 시설과 주택개발예산은 감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올 1/4분기의 이룩한 7% 정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수입증가률이 떨어지고 전력소비가 감소되고 있다는 경제자료와 비교해 보면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자동차의 생산량은 정체돼 있으며,모든 제조업체의 재고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성장목표 8% 높지 않은가 수출은 상대적으로 호황세를 타고 있지만 성장률은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무역적자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소비자들이 주요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중국정부는 은행대출이 산업기반과 공공주택 투자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많은 도시에서는 주택건설에 대한 과도한 희망감에 들떠 있는 형편이며,은행들은 어떻게 하면 이같은 욕구에 부응하고 질높은 대출을 해줄 수 있을 까 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그렇지만 이같은 은행의 노력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혁과 단기적 의미의 성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급격한 개혁은 한국·태국에서 처럼 고통스런 경기후퇴를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또한 안정이 가장 앞선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는 다른 양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벌써부터 중국 내부에서는 인원정리에 따른 항의시위가 주총리보다 훨씬 유화적인 노선을 걷는 층에게 불안감을 던져 주고 있기도 하다. 경제원동력이 제대로 갖쳐진 상하이(上海)와 같은 지역에서는 주총리의 과업과제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그러나 내지(內地)나 북동지역으로 가면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급진개혁은 경기후퇴 불러 중국정부의 ‘하겠다’는 의지에는 응당 재정적인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것이다.지금의 국가재정은 비밀스런 자본도피가 뚜렷하게 늘고 있슴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실한 편이다.외국자본은 더디게 들어 오고 있지만 경제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촉진제가 되고 있다.그러나 외국자본은 두가지의 측면이 있다.잘못된 분야에서의 과도한 투자는 중국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미 제너럴 모터스(GM)와 국영기업체들의 합작으로 만든 자동차 공장들이 과잉생산 체제로 허덕이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중국에는 2천달러의 세단 승용차의 시장이 적지만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농촌지역에서는 3천달러의 소형자동차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미국의 자동차 생산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도 3천달러의 소형자동차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도 정치적 성격인 도시지역 및 국영기업체에 대한 문제는 계속 떠안게 될 것이다.마오쩌뚱(毛澤東)이후의 중국은 항상 강력한 경제성장이 점진적인 개혁과 상호균형을 취해왔었다.경제성장과 점진개혁이 서로를 지원해 온 셈이라 할 수 있다. 주총리는 개혁문제를 경제적·정치적으로 무리없이 해결할 때 중국의 참된 영웅으로 떠 오를 수 있을 것이다.
  • 태양절은 金正日 충성다짐의 날

    ◎黨政軍 간부 결사옹위 맹세 “진짜 충신 되자”/軍 장성 22명 승진·黨政 간부 표창 ‘사기진작’ 지난해‘태양절’로 격상된 이후 처음 맞는 올해 金日成의 86회 생일(15일)행사는 사망한 金日成을 기리는 행사라기보다는 金正日에대한 충성행사로 일관됐다. 지난 15일을 전후해 북한 전역이 ‘민족 최대의명절’을 맞아 떠들썩한 가운데 金正日에 절대충성을 다짐하는 각종 집회와 충성맹세예식이 잇따라 열렸다. 金正日에 대한 충성예식은 군(軍)에서부터 시작됐다.군총정치국장 趙明祿 등 북한군 수뇌부는 지난 13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육해공군 충성맹세 예식’을 갖고 金正日을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결의했다.이날 당정(黨政)간부들도 별도로 충성결의대회를 열고 金日成의 유훈을 받들고 金正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맹세했다. 이어 14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金日成 생일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부주석 李鍾玉은 당정군 간부들에 대해 金正日의 ‘수령결사옹위투사·진짜배기 충신’이 되자고 역설했다.당정군 간부들은 15일엔金日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金正日의 친위조직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청소년 조직들도 金正日을 총폭탄으로 사수하자는 결의모임을 잇따라 가졌다.13일에 열린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충성 결의대회’에서 청년동맹 1비서 이일환은 金正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자고 촉구했다.이어 조선소년단은 14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1만명이 동원된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를 개최하고 전체 소년단원들에게 金正日을 옹호·고수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金正日은 지난 11일 金日成의 생일에 즈음해 金桂冠 외교부 부부장 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에게 ‘공화국영웅’·‘노력영웅’ 칭호와 김일성 훈장 등 각종 칭호와 표창을 무더기로 수여했다.이어 13일엔 군최고사령관명령으로 장성급 22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올들어 처음 실시된 군장성급 승진인사는 올해가 金日成 생일을 태양절로 기념하는 첫번째 해인데다 군창건 66주년(25일)을 앞두고 군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金正日에 대한 충성맹세와 함께 金日成 생일을 계기로 생산증대를 독려하는 근로자들의 노역배가궐기모임도 연일 개최되고 있다.지난달 金正日의 성진제강연합기업소 현지지도와 생산성제고를 위한 궐기모임(3월23일) 이후 전국각지의 공장·기업소 및 협동농장에서는 노역배가를 촉구하는 결의모임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한편 金正日은 15일 金日成의 생일을 맞아 제313대연합부대를 방문,金日成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 것을 촉구했다.이날 노동신문은 金日成 생일을 맞아 게재한 기념사설에서 “金日成의 영도는 곧 金正日의 영도”라고 주장했다.이신문은 “수령의 유훈은 영원하다”고 역설해 金日成의 유훈통치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지난해 당총비서에 추대된 金正日은 북한정권창건 50돌(9월9일)을 전후해 주석직에 취임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세계인권선언에 보내는 金 대통령 영상 메시지

    金大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의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행사에 인권옹호를 다짐하는 영상메시지를 보냈다.다음은 金대통령의 메시지 전문. 인류역사 이래 사람이 있는 곳에 인권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인권의 침해가 있었습니다.그리고 인권의 침해가 있는 곳에는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투사들이 있었습니다.그들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예수님은 고통받고 천대받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잘하고 못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하고 못한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그에 따라서 상벌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부처님은 개인의 인격이 이 우주속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선언했습니다.유교의 맹자는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임금에 대해서 백성들은 하늘을 대신해서 이를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권에 대한 문제가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로 세계 각국에 의해서 승인된 것은 지금부터 50년전 ‘세계인권선언’의 선포부터였습니다.그 이후 유엔인권위원회를 포함한 무수한 인권단체와 인권투쟁가들이 세계 도처에서 고귀한 희생과 노력을 바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왔습니다. 이러한 인류에 대한 희생과 노력이 계속되는 한 세계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인권은 날로 신장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나는 40년에 걸쳐 다섯번의 죽을 고비와 6년의 감옥살이,10년의 망명과 연금생활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인권을 위해 싸워왔습니다.앞으로도 내 여생을 바쳐서 이를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인권의 옹호를 위해 싸우는 세계의 모든 벗들에게 감사와 축복을 보냅니다.
  • 제임스 먼로(美國의 대통령 문화:18)

    ◎‘먼로 독트린’ 천명… 미 외교정책 기틀 확립/재임전 국무­전쟁장관 자격 영과 전쟁서 승리/성실과 결단력으로 재선… 평화­번영시대 열어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는 1823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 독트린’을 통해 신생 미합중국의 독자적 외교정책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독립초기 신생국의 체제정비에 심혈을 쏟았던 버지니아왕조의 막내이자 건국세대(Founding Fathers)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두차례 임기 내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특히 그는 신생국가로써의 국내외적 불안정을 씻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호감의 시대’(Eraof Good Feelings)를 전개시켜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중퇴 독립전쟁 참전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던 1758년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의 개척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했으며 16세 되던 해에윌리엄스버그에 있던 당시 버지니아 식민지의 최고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대학에서 수학했다.그러나 2년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륙군 소위로 참전,뉴욕전투,저먼타운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특진을 거듭,1778년 전쟁이 끝날때는 계급이 중령까지 올랐다. 특히 먼로는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에 의해 남부 미군의 현황파악을 위한 연락관으로 임명받아 활약했으며 이후 줄곧 제퍼슨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전쟁이 끝난후에는 제퍼슨의 지도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프레데릭스버그에서 개업했다.제퍼슨과 먼로의 우정은 16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계속됐다. 이어 먼로는 1782년,24세의 약관에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듬해에는 대륙회의 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활약한뒤 잠시 정계를 떠나 변호사일에 주력했다.그러나 1790년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제퍼슨,매디슨(4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결성,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당에 맞섰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주재 대사를 맡는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이렇다할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1794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프랑스와의 관계강화에 노력했으나 프랑스혁명 신봉자인 그의 노골적인 친프랑스 언동은 워싱턴의 분노를 사게돼 2년만에 소환되고 말았다.그는 다시 1803년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대사로 임명됐으나 역시 본국정부 의도와 다른 무역협상을 벌임에 따라 다시 소환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에 먼로는 제퍼슨에 의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구매협상 대표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1천500만달러에 당시 미국영토 2배에 달하는 영토를 구매토록하는 협상을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성사시킴으로서 협상력을 과시했다.또 매디슨에 의해 국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812년 영국에 선전포고,전쟁에 돌입했다.그러나 워싱턴이 함락되는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을 전쟁장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국무와 전쟁 겸임장관이 된 그는 탁월한 지휘역량을 발휘,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후 매디슨 행정부 말기는 전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됐고 그 주역인 먼로의 인기는 치솟았다.대사로 프랑스·영국을 오가는 사이사이에 두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도 갖춘 그는 자연스레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1816년 선거에서 당선,매디슨의 뒤를 잇게 됐다. 59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다양한 공직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거기서 생성된 그의 정치감각은 탁월한 각료 임명으로 나타났다.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전쟁장관 존 칼훈,재무장관 윌리엄크로포드,법무장관 윌리엄 워드 등은 지성적이고 뛰어난 능력과 함께 단합이 잘돼 환상의 진용으로 평가됐다.더우기 먼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굳센 결단력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했다. 먼로는 남부와 서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820년 실시된 두번째 선거에서는 232표중 231표를 얻어 만장일치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에 이어 최다 득표로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먼로는 퇴임후 리스버그의 오크힐에서 거주했으나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5년후 부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뉴욕의 딸 집으로 옮겨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831년 7월4일,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퇴임후 곤궁… 사저 매각 먼로의 유적으로는 현재 프레데릭스버그의 박물관,사저이던 샬롯빌의 애쉬론,리스버그의 오크힐 등이 보존돼 있다.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은 먼로독트린을 초안하던 책상 등 다양한 유품들이 진열되고 있다.또한 애쉬론 사저는 퇴임후 경제난으로 팔았던 것을 1931년 박애주의자 제이 존스가 구입,일반에 공개했다.1974년 존스 가족은 그의 모교인 윌리엄&메리 대학에 이를 기증,이 대학이 박물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먼로는 제퍼슨,매디슨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제퍼슨은 자신의 사저인 샬롯빌의 몽티첼로 인근에 ‘지적공동체’(intellectual community)마을의 설립을 위해 이들을 모여살도록 권고,애쉬론을 먼로에게 소개했으며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도 이 부근에 있다. ◎먼로 지명/도시·학교·산·교회 등 238개/워싱턴·링컨과 함께 도시지명 ‘빅3’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도시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많다.신대륙으로의 이주자들이 정착,새 도시를 건설할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먼로 지명은 워싱턴,링컨과 함께 미대통령 가운데 도시명으로 가장 많이 쓰인 ‘빅3’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지명이 49곳으로 가장 많고,링컨은 45,먼로는 44,제퍼슨은 41 순으로 나타나 있다.이 숫자는 미자동차협회(AAA)가 최근 발행한 ‘로드 아틀라스’에 나타난 지명을 기준으로 한것이기 때문에 산·강·호수 등 자연의 이름과 학교·역 등 공공기관의 이름까지 합하면 실제로 대통령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훨씬 많다. 먼로박물관이 펴낸 먼로 지명 연구 책자인 ‘먼로,USA’에 따르면 미국내 ‘먼로’가 들어가는 지명은 모두 238개에 달한다.그리고 미국 해방흑인들이 세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와 남극해의 먼로섬 등 미국 밖에도 존재한다. 미국내 50개주중 36개주에 흩어져 있는먼로 지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시이름으로 26곳이 있다.인구 40명인 노스 다코타주의 소읍에서부터 인구 5만5천인 루이지애나주의 먼로시까지 다양하다.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 이름은 모두 18곳으로 인구 9천명의 미주리주 먼로카운티에서 인구 71만명의 뉴욕주 먼로카운티까지 그 규모가 제각각 이다. 먼로 지명이 가장 많은 주는 오하이오로 35곳이 있고,다음은 인디애나 23,일리노이 19,미주리 17,아이오와·펜실베이니아 13,버지니아 11 순을 기록하고 있다.자연지명으로는 강·호수명 10곳,산 6,숲 2,협곡 2,다리·전망대 1곳 등이 있고 교회 7곳,학교 3곳 등도 있다.
위로